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에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지명해 논란입니다. 방통위원장 임명에는 국회 동의가 필수는 아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다면 이진숙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 들어 임명된 세 번째 방통위원장이 됩니다. 첫 번째 방통위원장 이동관, 두 번째 방통위원장 김홍일, 현재 지명된 이진숙까지. 세 사람 모두 방통위원장 후보로 지명된 것 자체만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언론현업단체·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렀는데요. 이 과정에서 최대 논란은 이들의 정치적 편향성과 정권 취향에 맞춘 방송·언론 관련 행보가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앞의 두 위원장은 ‘예상된다’가 아닌 ‘벌어졌다’는 표현이 맞겠지요.)
이명박 정부에서 홍보수석, 대변인 등을 지내며 언론(방송)을 시찰하고 방송 인사 개입,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등을 진행하여 ‘언론장악 기술자’로 불린 이동관 씨. 방송통신 이력이 전무하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으로 윤 대통령의 신뢰를 받아 국민권익위원장이 되었다 권력의 필요에 따라 방통위원장 자리까지 들어찬 김홍일 씨. 거기에 이명박 정권 당시 MBC 내에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이진숙 씨는 MBC 기자 출신으로 MB정권에서 임명한 김재철 MBC 사장 휘하에서 MBC 홍보국장 겸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이러한 활동 때문에 MBC 기자회에서 제명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문제적 MBC 보도의 책임자였으며 언론계를 떠난 이후엔 직업 정치인으로 살아온 이진숙 씨까지. 이들의 과거 행보를 보면 노조와 시민사회가 무엇을 막고자 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윤 정부 방통위원장들의 문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합니다. (상임위원 5인 중 위원장 포함 2명을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이들을 임명할 때 위와 같은 논란에 대해서 해명하거나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은 각 후보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습니다.
- 이동관 : 이동관 후보자는 언론계에서 오래 근무한 중진으로 이 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인간관계·리더십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의 방송통신 분야 국정과제를 추진할 적임자 - 김홍일 : 방송통신위원회는 각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안이 산적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공명정대한 업무처리가 필요한 시점으로 김홍일 후보자는 업무처리, 법과 원칙에서의 확고한 소신 등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으로 방통위 중립과 독립성 지켜낼 인사 - 이진숙 : 이진숙 후보자는 이라크전 당시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로 활약하는 등 언론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경영인으로서도 관리능력과 소통 능력을 고루 갖췄다, 언론계에서 쌓은 경험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방통위 운영을 정상화하고 미디어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해 방송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적임자 |
이동관 위원장, 이진숙 후보자를 설명하기 위해 꺼낸 “언론계에서의 경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동관 위원장의 경우 동아일보 논설위원 시절 한나라당 집권을 위한 칼럼을 썼고 이진숙 후보자도 앞선 언급한 것처럼 MBC 내 간부급 인사가 되면서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에 나선 노조를 탄압하고 김재철 사장을 옹호했습니다. 1991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전에서 종군기자 활동을 한 바는 사실이나 이후 MBC 파업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내외부에서 ‘기자 이진숙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는 기자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동관 위원장이 “다양한 인간관계”, 즉 개인적 인연을 이용해 자신의 농지법 위반 사실(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부동산 투기 파문이 확산되던 상황)을 밝히려던 국민일보에 기사를 내보내지 말라는 청탁을 한 바도 있습니다. 이진숙 후보자가 정권에 협력한 대가로 간 대전MBC 사장이라는 자리에서는, 직원 임금은 체불하면서 사장 스스로는 특별 성과급을 받는 일도 있었으니 “경영인으로서 관리능력”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김홍일 위원장에 대한 “공명정대”, “균형 감각” 같은 표현 또한 그가 검사 시절 BBK 사건을 봐주기 수사했다는 의혹이나,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 등을 보았을 때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균형’이나 ‘공명정대’, 이진숙 후보자를 설명하는 “미디어의 공정성” 같은 표현들은 사용할 때마다 ‘조작적 정의’를 내려야 하는 매우 가변적인 개념에 가깝습니다.
공정성(fairness)이라는 표현을 언론에 요구되거나 언론이 따라야 한다고 여겨지는 ‘윤리규범’으로서의 개념으로 국한해 보겠습니다. 이때의 공정성은 매우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A의 의견 5, B의 의견 5, 이렇게 5:5를 맞춘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성의 핵심은 ‘누구에게 공정할 것인가(fair to whom)’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보도엔 그를 취재하고 작성한 기자, 그 보도가 담고 있는 이해관계자들(크게는 고발자와 피고발자가 있을 것이고, 그 보도를 만들어준 여러 다양한 취재원들도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 보도를 읽을 시민들, 그 보도를 내보내 줄 언론사와 그 언론사와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연루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보도가 ‘누구에게 공정한가’하는 사실은 개개인마다 다르게 평가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는 공정하다고 느낀 보도가 다른 누구에는 불공정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정성이란 없게 됩니다. 이렇게나 주관적인 개념인 ‘공정’을, 납득 가능한 설명도 정의도 없이 근거의 최일선에 내세운다면? 합리적 대화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안적 사실이라고요? 그것은 거짓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실의 이 설명들은 거의 모두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입니다.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란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인파를 두고 벌어진 논란에서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언급한 단어로, 그가 사용하면서 언론학계의 주요 화두가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언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인원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인원보다 적다는 기사가 나오자,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 현장 참석 인원, 교통 이용 데이터 등을 들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취임식’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거짓이라는 비판을 받자 이번엔 켈리앤 콘웨이 선임고문이 NBC <Meet the Press>에 출연해 “대변인은 그냥 ‘대안적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는 기상천외한 해명(?)을 하게 됩니다.
<원문> Chuck Todd(해당 프로그램 진행자, NBC 저널리스트): You did not answer the question of why the president asked the White House press secretary to come out in front of the podium for the first time and utter a falsehood? Why did he do that? It undermines the credibility of the entire White House press office on day one. Kellyanne Conway: Don't be so overly dramatic about it, Chuck. What-- You're saying it's a falsehood. And they're giving Sean Spicer, our press secretary, gave alternative facts to that. But the point remains– Chuck Todd: Wait a minute. Alternative facts? Alternative facts? Four of the five facts he uttered, the one thing he got right was Zeke Miller. Four of the five facts he uttered were just not true. Look, alternative facts are not facts. They're falsehoods. <번역> 척 토드: 당신은 왜 대통령이 백악관 대변인에게 처음으로 단상 앞에 나와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는지 답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이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첫날부터 백악관 대변인실 전체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켈리앤 콘웨이: 그렇게 과하게 반응하지 마세요, 척. 당신은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그저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점은– 척 토드: 잠깐만요. 대안적 사실이라고요? 대안적 사실? 그가 말한 다섯 가지 사실 중 네 가지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브리핑 내용 중 Zeke Miller라는 저널리스트와 관련한 부분만이 사실이라는 의미). 보세요, 대안적 사실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이에요. |
허울 좋게 ‘대안적 사실’이라고 표현한 것이지 그냥… 거짓말입니다. 이 표현은 이후 언론학에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시대의 특징으로 언급되거나, 언론의 객관성이나 진실성, 신뢰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주는 표현으로 해석되거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해프닝을 강조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방통위원장 후보자들을 설명하는 대통령실의 표현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안적 사실이란 표현은 너무 잘 포장해준 단어 같기도 합니다. 비슷한 함의를 가진 다른 표현도 있는데, 이는 나중에 또 언급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성착취·스팸 문자, 모두 방통위 소관인데…
덧붙이고 싶은 점은, 이들이 방송(비판적 언론)을 건드릴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보니 방통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방통위는 무엇을 해야하느냐는 일종의 ‘전문성의 영역’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방송 공정성이 합리적 논쟁도 없이 빼앗기고, 미디어 공공성 또한 축소될 위기 속에 한가한 소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자리의 본래 목적, 즉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방통위법 제1조)이 무엇이며 방송과 통신의 융합환경에서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것인지 또한 계속해서 뒤로 미루기에는 우리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디지털 성착취 및 온라인 성착취 범죄물 등의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역할, 불법 스팸 문자 차단을 위한 정책적 추진, AI가 만든 허위조작정보 대응을 위해 해외기구와 국제적 연대 및 대응, 글로벌 OTT에 대한 책임 강화와 이들의 요금 인상 등에 대한 대처 등이 모두 방송통신위원회 소관입니다. 우리는 이런 논의를 언제 제대로 해보게 될까요. 대안적 사실에 밀려나는 고민이 너무나 많습니다.
강성원. (2016, June 3). 이진숙 대전MBC 사장, 성과급 챙기고 직원 임금체불. 미디어오늘.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mod=news&act=articleView&idxno=130335 김현빈. (2023, July 29). 이동관 새 방통위원장 지명... 尹 “공영방송 대수술” 두고 대치 정국 불가피.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72814530002847?did=NA 박석호. (2024, July 4). 환경부장관 김완섭·방통위원장 이진숙·금융위원장 김병환 지명. 부산일보.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4070415120387972 배경환. (2023, December 6). 尹, 방통위원장에 김홍일 지명… “궂은 일 마다하지 않겠다”(종합). 아시아경제. https://view.asiae.co.kr/article/2023120610262120673 안경숙. (2007, July 11). 보수신문, 어느 쪽이냐에 따라 잣대 바뀌어. 미디어오늘.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873 안재승. (2012, March 14). [편집국에서] ‘기자 이진숙’으로 돌아오라.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523495.html 정준기. (2024, July 4). 환경부 김완섭·금융위 김병환·방통위 이진숙… 尹, 총선 후 개각 신호탄.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0410350004405?did=NA 주재현. (2023, July 28). 尹, 방통위원장에 이동관 지명.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9SB2EPR78/GE0201 현일훈, & 김기정. (2023, December 6). [단독] 尹, 김홍일 방통위원장 오늘 지명…"하루도 비울 수 없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2659#home NBC News (Director). (2017, January 23). Kellyanne Conway: Press Secretary Sean Spicer Gave “Alternative Facts” | Meet The Press | NBC News [Video recording]. https://youtu.be/VSrEEDQgFc8?si=mbPh4Gyr27niD893&t=92 Sinderbrand, R. (2017, January 23). How Kellyanne Conway ushered in the era of ‘alternative facts.’ Washington Post.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the-fix/wp/2017/01/22/how-kellyanne-conway-ushered-in-the-era-of-alternative-facts/ |
코멘트
5방통위원장은 야당과 싸울게 아니라 실제 업무 영역(디지털 성착취 대응, 스팸 차단, AI 허위정보 대응 등)에서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담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취임하자마자 좌파 우파를 나눌게 아니고 디지털 성범죄 관련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어야.....
예전에 강의한 유튜브 영상을 잠깐 보니 별 근거 없이 좌파 연예인, 우파 연예인 나누고, 좌파 영화, 우파 영화 나누고, 보다보면 DNA에 스며든다고 열심히 이야기를 하시던데.. 그런 분이 방통위원장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https://www.youtube.com/watch?v=LatYGK6FXcs
오, 방통위원장이 문제가 있다는 말만 많이 들었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 때문인지는 잘 몰랐는데요. 잘 정리해주신 덕분에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가장 마지막 단락에 핵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방통위는 정책 기구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와 같은 문제에 대응하거나,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 속에서 시민을 위한 더 나은 미디어 생태계를 만드는 등 정책적 대응을 고민해야 하는 기구인데요. 이진숙 후보자의 "공정한 언론 환경을 만드는 게 역할"이라는 발언이 윤석열 정부가 방통위의 역할을 잘못인식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봅니다.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적임자를 찾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싶네요. 5인 합의제 기구이자 방송, 통신 정책을 다루는 기구라는 본질부터 파악하고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