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극우화 방지 특강 👩🏫 한국 필수 시청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7
요즘 들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인권과 다양성의 시초 같던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했고, 하루아침에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먹고 살기 팍팍할 때마다 극우가 새로운 대안처럼 떠올랐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무섭게 세를 넓혀가는 중입니다.
오늘은 극우 막는 처방전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나려 해요. 떠들썩하게 선거를 치른 나라로 갑니다! 여권은 넣어두고 호기심만 챙겨 주세요. 각국 선거 결과 브리핑을 듣고 유럽에서 극우가 약진한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극우화 특징도 준비되어 있으니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북부 지역에 살면서 이민자들을 실은 버스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봐야 했어요. 치안이 불안정해서 무서웠죠. 그래서 지역에서 활동하며 보안 정책을 펼치는 국민연합 의원들을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프랑스 국민연합(극우 정당) 선거캠프에 참여한 아나엘 씨
#1 2024 세계 선거의 해, 키워드는?
무려 42억 명. 2024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소로 향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어느 국가 하나 빠짐없이 내외 정세 긴장을 겪는 지금, 그 상황을 집약하여 보여줄 주요 선거들이 올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입니다. 4.10 총선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강화됐고, 민주당 주도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특검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보수 여당과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예상보다 약진했고, 제3당이자 좌파 정당인 정의당이 원내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우경화된 선거 결과라 할 수 있죠.
대형 분쟁국들에서도 선거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란히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푸틴은 무려 5선째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개입한 이란도 조기 대선을 치릅니다. 라이시 전 대통령이 급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히잡 시위로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에 반기를 든 국민들의 선택은 온건 정책을 약속한 마수드 페제스키안이었습니다. 자국은 물론, 타국의 선거 결과에 따라 앞으로 두 분쟁의 향방이 어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더 서쪽으로 이동해보겠습니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선 뚜렷한 극우화 추세가 확인됐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주요국 극우 정당들이 눈에 띄게 많은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지난 대선에도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르펜이 이끄는 RN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EU에 쌓인 회원국들의 불만이 드러난 결과인데요. 현재 유럽 전역은 경제난과 이주자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공동체 EU가 요구하는 명분과 협력에서 벗어나 자국의 독자적인 이익을 우선시하고자 하는 거죠.
브렉시트로 그 첫발을 당긴 영국도 올해 조기 총선을 치렀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통과된 ‘르완다 정책’은 주변 국가들의 반이주 정서를 들쑤시기도 했죠. 영국은 14년 만에 노동당이 정권교체를 이뤘습니다. 노동당은 친기업적 행보, 불법 이주자 대응 강화 등 기존의 좌파 색깔을 지운 ‘우클릭 공약’으로 민심을 얻었습니다.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 나이젤 패라지도 선전했습니다. 영국이 상당히 극우화되고 있음을 실감하시겠죠.
대서양을 건너면 11월 대선을 치르는 미국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극적인 총격 사건을 겪으며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는데요. 바이든 현 대통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후보 퇴진 요구가 나올 정도로 지지율이 저조합니다. 바이든 임기 동안 경제가 회복됐다곤 하나 민생이 실감할 정도는 아니며, 그에 따라 이주자에 대한 불만과 경계는 강화됐습니다. 바이든은 젊은 진보 유권자들의 민심을 크게 잃었습니다. 비인륜적일 정도의 이스라엘 지원과 흑인, 성소수자 등 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주요한 원인입니다. 바이든은 극우화된 유권자의 마음도 돌리지 못했고, 지지층이 기대한 극우화 방지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선거 소개에 극우화란 단어가 유독 많이 나온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극우화의 원인, 유럽과 우리나라의 극우화, 극우화를 방지하는 선거제도에 대해 차례로 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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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극우는 ‘이것’을 먹고 자랐다
‘유럽이 우경화된다’는 말, 익숙하게 들으셨을 겁니다. 시리아발 난민 위기, 브렉시트를 지나며 꾸준히 언급된 주제이지요. 민주주의와 선진성의 표상이었던 유럽의 변화가 심상치 않은 건 확실해 보입니다. 이번 꼭지에서는 ‘유럽의 우경화’라는 현상이 나타난 배경과 국제 사회에 가져올 영향을 함께 보겠습니다.
극우가 약진하는 원인은 대개 세 가지로 꼽힙니다. 고물가, 경제난, 그리고 이민 정책입니다. 유럽과 중동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전쟁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에너지난을 가져왔죠. 여기에 강력한 환경 규제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농가 부채는 증가했고, 농민들은 트랙터 시위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두드러진 갈등은 ‘난민’입니다. 소도시와 지방을 중심으로 난민이 수용되면서 주민들의 반감은 커졌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우호적이었지만, 경제난이 길어지자 난민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여론이 우세했습니다.
물론 외부의 변화가 전부는 아닙니다. 기존 집권 세력이 추진해 온 ‘정치적 목표’에 더 집착한 나머지 국민을 설득하거나 민생을 수습하는 일에 소홀했고, 극우는 이런 빈틈을 파고든 것이죠. 프랑스ㆍ영국ㆍ이란에서 잇따라 치러진 선거에서도 “민생을 실패한 정부는 필패한다”는 메시지가 증명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극우 정당은 이민과 국경 통제와 생필품 부가가치세 폐지 등의 정책으로 민심을 달랬고 유권자는 응답했습니다.
극우는 혼란한 세상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극우는 단순히 우파 가장자리가 아닙니다. 인류가 오랜 시간 발전시킨 인권·자유·평화의 가치를 경시하는 세력입니다. 이에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각자도생이 거세질 거라는 우려가 큽니다. 함께 해결해야 하는 기후, 전쟁과 난민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겠죠. 여성 인권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선 만 명이 넘는 여성은 극우 집권으로 임신 중지권이 타격받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답니다. 자유주의의 승리를 상징하는 공간인 유럽에서 고립주의를 지지한다면, 서구를 비롯해 한국에 가져올 악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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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의 ‘뿌리 깊은’ 극우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볼까요. 올해 총선에서는 범야권이 192석을 차지하며 보수당이 참패했지만, 윤석열 정부와 2030 남성 유권자들의 우경화는 확연히 두드러집니다. 대통령은 공적 발언에서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며 정치적 반대자와 반국가 세력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극우 성향 인물을 공공기관장이나 중앙부처 장관으로 임명하기도 했죠.
‘외부’ 요소가 침범해 ’내부‘를 위협한다. 극우가 사람들의 분노를 동원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레임입니다. 사회적 긴장에서 비롯된 불안을 이권을 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거죠. 여기서 외부 요소는 극우 세력이 규정한 표준 시민을 벗어나는 존재라면 모두 포함됩니다. 동성애, 페미니스트 등에 대한 혐오 행동과 담론이 크게 퍼진 이유입니다. 앞서 보았듯 유럽의 극우는 이민자를 외부의 존재로 낙인찍었는데요. 한국 극우의 뿌리엔 반공이 있습니다. 이념 전쟁이 남긴 분단 체제에서 정부가 수립된 만큼 반북·반공의 뿌리가 깊죠.
한국 극우의 특징은 또 있습니다. 보수와 극우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보수 정부가 극우 성향을 드러낸 건 이번 정부만이 아닙니다. 보수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있어요. 민주화 백래시로 등장한 극우 단체가 ‘빨갱이 척결’ ‘동성애는 악마‘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울 때, 보수는 이들과 구분되면서 진보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만한 정치적 의제를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보수 엘리트들은 극우 정치를 간혹 우려하고 때론 거리를 유지하지만, 결국은 용인하고 엄호하죠. 충성심 높은 유권자를 확보해 보수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최근 극우의 새로운 지지층인 2030 남성은 안티페미니즘을 축으로 강하게 결집합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모은 건 새로 등장한 극우 정당이 아닌 보수정당이었습니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간판 공약으로 제시하고 구조적인 성차별을 부정하는 등 극우 남성들에게 적극 어필했죠.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많은 국가의 젊은 세대에서 정치적인 성별 격차가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만큼 격차가 뚜렷한 곳은 없다고 짚었는데요. 대통령은 한국의 성평등 수준이 대부분의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은 묻어둔 채, ‘급격한’ 성평등 추진에 불만을 품은 젊은 남성들을 공략했다고 설명합니다.
극우가 한국 사회에 내린 깊은 뿌리, 그리고 극우와 보수가 하나 되어 자연스럽게 세력을 과시하고 있는 현 상황을 진단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마도 ‘극우에게 동의하지 않는 다수의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겠죠.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희망은 있습니다. 다음 글을 읽으며 그 실마리를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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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떻게 극우를 막을 것인가”
우리를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에 던져진 질문일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좌나 우가 아닌 ‘극단’입니다. 일부 극단적인 세력이 결집하여 만든 후보, 정당을 국민의 대표로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민의를 반영한다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극단적인 정당, 정치, 이념, 인물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앞서 언급한 유럽 의회 선거, 기억하시나요? 프랑스의 극우 정당인 RN이 대승을 거뒀는데요. 하지만 프랑스의 총선 결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RN이 유럽 의회 선거에서 대승하고 나서,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조기 총선을 선언했죠. 이 총선에서 좌파연합이 RN을 크게 밀어냈습니다. 마크롱의 일방적인 연금개혁과 우경화된 난민법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집권당과 극우 정당의 대안으로 떠오른 좌파연합은 프랑스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프랑스 헌법은 가장 뻔하지만, 가장 명확한 해법인 ‘선거 제도’에 민주주의를 맡겼습니다. 일종의 안전장치를 걸어둔 셈인데요. 물론 이번 조기 총선은 프랑스 국민들의 시민의식, 극단을 막겠다는 정치권의 의지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심에는 ‘제도’가 있습니다. 선거 제도의 힘과 영향력을 다시금 확인한 선거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프랑스 결선투표제, 조금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요. A 후보가 당선되려면 우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의 표를 얻어야 합니다. 1차에서 이미 당선이 확실시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후보가 출마하는 1차 투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겠죠. 이후에는 1차 때 12.5% 이상 득표한 후보들끼리 결선, 즉 2차 투표를 진행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흔히 ‘소신’ 투표라고 부르는, 나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투표가 프랑스에선 가능합니다.
결선투표제의 가장 큰 효용은 극단주의의 집권을 막는다는 데 있습니다. 극단적인 소수의견의 과대 대표를 방지하는 것이죠. 유권자들이 광범위하게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는, 결선투표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좌파연합인 NFP(신인민전선)에서 134명, 범여권에서 82명이 사퇴한 덕분에 RN과 맞붙은 280여 선거구 중 200개 이상에서 1대1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결선에서 RN 후보들이 대거 낙선한 이유입니다.
극단을 막기 위한 차악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시민들은 투표장에 나서 선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원 배지를 사수하는 것보다 극단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정치인들의 의지도 인상 깊습니다. 전통적으로 적대적 관계에 가까운 정치 세력이 극우 차단이라는 명분으로 뜻을 모았으니까요. 대의민주주의의 존속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이어서 우리의 선거제도도 다시금 정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프랑스 총선으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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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남긴 편지
정치가 실패했기에 사회가 붕괴한 걸까요, 사회가 실패했기에 정치가 붕괴한 걸까요?
이번 호 딥다이브를 준비한 에디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사실 전 개인적으론 제도로 수습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단 생각이 들 만큼 인간과 사회에 대한 희망을 크게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더 이상 간극을 좁힐 수 없을 것만 같은 여성혐오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의 연속, 인면수심의 범죄, 약자에 대한 동정 대신 조롱과 착취, 부패… 겨우 제도로 이런 인간들을 중화할 수 있을까?건강한 생각은 아니죠.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에디터로서 갖춰야 할 균형 있는 견해도 아닙니다. 그래서 버나드 크릭의 『정치를 옹호함』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크릭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란 다양한 집단의 이해와 이익을 적절히 조정·합의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정치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한 측의 승리만을 위한 지저분한 알력 다툼도, 선전전도 아니란 겁니다. 우리는 정치 없는 정치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합의와 조정보다는 내 몫이, 내 어떤 지위나 주장도 훼손되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풍경. 현재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이며, 이번 호 레터 주제 ‘극우화’의 가장 문제적인 측면입니다. 극우화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보수적 사상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정치 없음’입니다. 인내, 타협, 양보, 사고의 전환,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합의, 그리고 전진. 지금의 정치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정치의 정수…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정치를 되찾아오기 위해서겠지요. 사실 에디터 레터 초반에 언급한 저의 절망의 원인들도 사법적 좌절, 정치적 효능감의 상실, 어긋나는 행정이란 제도적 측면에 걸쳐 있으니까요. 저는 제도가 곧 한 사회의 정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라 생각합니다. 여성과 경제적, 정치적 약자들이 동등한 정치 주체가 아니니까, 내가 소속된 집단을 완벽히 이해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대표자가 선출되지 않으니까.기능하지 못하는 제도를, 동등하게 정치하지 못하게 하는 이 제도를 어떻게 손볼 것인가. 어떤 제도로 어떻게 정치를 되찾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모두가 내 몫을 조금도 빼앗기지 않으려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에, 합의와 조정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여유를 부여할 수 있을까?폴라리스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엔 어떤 답이 준비돼 있나요?
2024. 07. 22
에디터 푸릇🌿 드림
만든 사람들: 푸릇🌿, 해안🌊, 모래🏖️, 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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