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모여

202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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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특정 정치세력이나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오직 시민의 힘으로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입니다. 정부지원금 0%, 오직 시민의 후원으로 투명하게 운영됩니다.

영화 ‘잇다,팔레스타인(Stitching Palestine)’은 전통 자수를 놓는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여성 12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에 의해 삶터를 떠날 수밖에 없고, 팔레스타인에 정주할 수 없는 이들의 삶이 천에 수를 놓듯 영화에 새겨진다.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며 전통의상인 토부와 쿠피예를 입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행위는 팔레스타인 문화를 기억하기 위한 비폭력 저항운동이다. 국내에서도 팔레스타인의 희생자를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연대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참여연대 황수영 활동가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은 학살을 멈춰라. 팔레스타인에 자유와 평화를! : 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신발 시위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기 위한 크고 작은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20231117_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
ⓒ스튜디오R
팔레스타인에서 1달 동안 1만 개 넘는 우주가 사라졌다

지난 11월 17일(금), 광화문 보신각 광장에 신발 2천 켤레가 놓였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은 가자와 서안 지구에서 한 달간 희생된 1만 명 넘는 이들을 애도하고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중단을 촉구하고자 <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를 개최했다. 광장에 배치된 어린이 및 유아 신발부터 운동화, 장화, 구두 등 다양한 신발은 약 일주일 동안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바라며 시민들이 기증해 준 것들이다. 애초에 목표로 했던 1천 켤레를 넘어 3천 켤레의 신발이 사무실에 도착했고, 사람들의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모여 신발 시위는 시작되었다. 

20231117_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
ⓒ박승호

신발 2천 켤레는 단순히 팔레스타인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을 넘어, 공습으로 희생된 사람 한 명 한 명을 조명하고자 했다. 매일 전 세계로 타전되는 비현실적인 사망자 통계가 아닌, 이스라엘의 공습이 없었다면 누군가의 가족이나 지인, 친근한 이웃으로 살아갔을 사람들을 호명하는 비폭력 시위였다. 신발 시위가 있던 날 광장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애도와 평화의 마음을 나눠주었다. 매서운 추위에도 아침 일찍부터 신발 설치를 함께한 활동가들, 신발 시위를 찬찬히 둘러보다 사진을 찍거나 꽃다발을 신발 위에 내려놓고 가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참여한 시민들이 적은 애도와 연대의 메시지가 쌓여갔고 금세 보신각 광장을 팔레스타인에서 사라진 1만 개의 우주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으로 가득 메웠다. 신발 시위가 저물어 가는 ‘추모의 밤’ 시간에는 "태어난 국가에 따라 평화를 누릴 수 있는지 나뉘는 것이 부당하다"는 청소년과 희생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떠올리며 시를 낭독하는 시인의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추모의 밤’에 참여한 시민들은 실제 팔레스타인의 희생자 수는 신발 2천 켤레가 상징하는 2천 명의 약 7배에 달한다는 현실을 떠올리며 큰 목소리로 집단학살 중단과 즉각 휴전을 촉구했다.

전 세계의 평화를 향한 외침이 전달되었을까,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이 나흘간의 임시 휴전에 합의했다. 공습이 시작된 이후 46일 만에 이루어진 이 조치를 통해 양측은 인질과 수감자를 풀어주고 가자 지구에 연료, 물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허용하기로 했다. 국제사회의 잇따른 환영 성명에도 이스라엘은 ‘일시적인 공습 중단’으로 단정 짓고, 향후 계속 공습을 진행할 예정이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인질 석방을 위한 ‘임시 휴전’ 상태임을 감안할 때 아직은 상황을 주시해야할 때다. 

20231117_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
ⓒ참여연대
20231117_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
ⓒ참여연대
사라진 우주를 기억하기 위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

신발 시위를 제안한 황수영 활동가는 “팔레스타인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어서,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어서” 기획서를 순식간에 써 내려갔다고 한다. 매일 언론으로 타전되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공습 소식, 병원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는 주민과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 사진을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몫이 없는 이들의 곁에 서서 연대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대안을 찾는 게 직업인 활동가로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던 터라 동료의 제안이 반가웠고 감사했다.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에서 신발 기증을 위한 웹 포스터 홍보를 시작한 뒤, 참여연대 사무실로 택배 박스가 ‘쏟아졌다’. 신발이 가득 든 큰 상자부터 한 켤레가 든 작은 쇼핑백까지 매일 같이 사무실로 신발이 든 상자가 배송되었다. 많은 물량에 택배 노동자분께서 사무실로 전화를 주시기도 하고 (“1층으로 내려와 주세요. 택배 20박스가 왔어요.”), 토요일 아침을 ‘택배 40박스를 사무실 2층에 두었다’는 문자로 시작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사무실이 위치한 동네를 담당하는 택배 노동자분과의 새로운 인연!) 뿐만 아니라 하루 평균 10명 이상이 사무실을 방문해서 신발을 기증했다. 친구들과 신발을 들고 방문한 청소년부터 아이 신발을 들고 찾아온 가족, 신발을 기증하며 당일 시위 현장을 촬영하고 싶다는 청년, 신발이 가득 든 가방을 내려두면서 “도움이 더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음료수를 건네던 수녀님 등 신발을 매개로 많은 시민과 만날 수 있었다. 매일 저녁, 사무실 지하에서 신발이 담긴 택배 박스를 정리하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다들 뭐라도 하고 싶었구나.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고 참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20231117_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
ⓒ박승호
상처 난 마음이 모여 만드는 변화

세계 저편에서 일어나는 집단학살의 현장을 보며 ‘뭐라도 해야겠다’ 결심하는 그 마음은 힘이 세다. 전화를 걸어 신발 기증에 관해 조심스레 묻고, 사무실 입구에서 쭈뼛쭈뼛 어색한 얼굴로 서성이던, 두 손 모아 신발을 건네며 꼭 감사 인사를 덧붙이는 사람들. 신발을 부치는 택배에 편지와 작은 선물을 담아 보내던 이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파커J.파머는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지 강조하며 마음은 감정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음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매개”이고, “오로지 마음만이 이해할 수 있고 마음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경험”이야말로 우리를 생각하는 대로 살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고 설파한다. 그 마음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고 흩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깨지고 열리는 과정에서 모순을 끌어안고 다양성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자칫 추상적일 수 있는 이 이야기에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떠올려 본다. 전 세계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현장을 목도하며 인간성 상실의 위기를 느끼는 현재, ‘뭐라도 해야겠다’는 소박하고 단단한 마음이야말로 세계시민으로서 함께 살고자 하는 ‘열려있는 마음’이라고 확신한다.  

신발 시위 때 사용할 신발 2천 켤레를 짝 맞춰 포장 이사 박스에 정리하는 이 단순한 일은 시민들의 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신발 시위가 정말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 않냐며 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혹자에게는 시위를 통해 외치는 “학살을 멈춰라”, “즉각 휴전하라” 같은 촉구하는 언어가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역만리에서 우리가 요구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냐는 냉소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되새겨 본다. 매 순간 이어지는 공습에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희생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은 마음을 모으고 ‘폭력을 멈춰라!’ 큰 소리로 외치는 일이다. 세상은 뭐라도 하지 않으면 못 참겠어서,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깨지고 상처 난 마음이 모여 변화시킬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존엄을 되찾는 날까지 함께 걸어주시라.

* 이 글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이지원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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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각자 갖고는 있어도 그 마음들을 모아 한 목소리로 만드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수고가 필요한데요..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해주신 덕분에 시민들의 목소리와 마음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아기들 신발이 특히 가슴아프네요.

보신각 앞에 놓인 신발 2천켤레를 보니, 팔레스타인의 아픔이 나와 상관없는 먼 일이 아니라, 내 가까이까지로 전달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신발시위는 처음 봤네요. 인상깊습니다. 이러한 절실한 활동들이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1만 개가 넘는 우주가 사라졌다는 말이 머릿 속에 남네요. 수많은 택배 박스와 신발들이 한국을 비롯해 다른 국제 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을 잊지 않았다는 걸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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