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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공론장’을 위해 행동강령 및 운영 정책을 보완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캠페인즈팀입니다. 항상 캠페인즈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양한 캠페이너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더 나은 공론장이 될 수 있도록 캠페인즈 행동강령 및 운영 정책을 보완했습니다. 이번 보완의 배경과 내용을 캠페이너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더 나은 공론장을 함께 만들기 위한 약속을 담았습니다. 더 나은 공론장을 함께 만들기 위한 약속을 추가했습니다. 사회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장, 사회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캠페인즈는 다양한 이슈들과 관련된 사회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여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구현하는 ‘디지털 시민광장’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캠페이너가 캠페인즈를 통해 ‘내 활동의 중심지’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여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구현하는 ‘시민활동 생태계’가 꾸려지길 바랍니다. 또한 혐오와 차별의 확산 속에서도 서로를 존중하며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캠페인즈는 서로 존중하며 의견을 나누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연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약속에 추가했습니다. 캠페이너는 시민들의 집단 지성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으며, 함께 ‘디지털 시민 광장’을 만들어 갑니다. 캠페이너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의제를 확산하는 ‘내 활동의 중심지’를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서로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여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시민활동 생태계’를 만들어 갑니다. 캠페이너는 혐오와 차별 없는 더 나은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대를 만들어 갑니다. 캠페이너는 캠페인즈를 더 나은 공론장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를 존중하며 토론하여 문화를 형성해 나가며, 규칙을 만들어 갑니다. 존중과 배려를 담아 댓글 규칙을 개정합니다. 캠페이너가 함께 하는 약속을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규칙도 추가했습니다. 더 나은 공론장을 위해서는 토론을 하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존중과 배려의 출발점은 ‘말’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의견이나 토론을 나누는 댓글에서 높임말·경어를 사용하는 것이 새로운 규칙으로 추가됩니다. 새로운 규칙에 따라 댓글에서의 반말·평어 사용은 제한됩니다. 반말·평어로 작성된 댓글은 운영 정책에 따라 사전 공지 없이 삭제 또는 가림처리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공론장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함께 토론하기 위해 댓글에서 높임말·경어를 사용해주세요!? 더 나은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즈 운영자의 책임을 명시합니다.  혐오와 차별이 없는 더 나은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캠페인즈 운영자가 조금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자 행동강령에 책임을 명시하였습니다. 캠페인즈팀은 이번 행동강령 및 운영정책의 보완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운영을 펼칠 예정입니다. 댓글에서의 높임말·경어 사용을 시작으로 캠페인즈만의 문화를 만들고, 혐오와 차별이 없는 더 나은 공론장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캠페인즈팀은 더 나은 공론장을 위해 필요한 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지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개발하고, 도입해 나가고자 합니다. 기술을 통해 캠페인즈를 더 나은 공론장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반영하기 위해 기술의 개발과 도입도 캠페인즈 운영자의 책임에 명시했습니다. 앞으로 캠페인즈에 도입될 더 나은 공론장을 위한 기능들도 기대해주세요.? 행동강령 및 운영정책 위반이 발견 될 경우 신고해 주세요.  기존 행동강령과 운영 정책에선 규칙 혹은 운영 정책 위반 사례 발견시 이메일을 통한 신고만 가능했습니다. 기존 방식인 이메일(contact@campaigns.do)을 통한 신고와 함께 신고 기능을 활용해 캠페인즈팀에 위반 사례를 알릴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디지털 시민 광장’ 캠페인즈는 공론장의 참여자이자 수호자인 캠페이너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입니다. 더 나은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행동강령, 운영 정책을 위반한 사례가 발견될 경우 캠페이너 여러분의 적극적인 신고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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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발언을 어떻게 처벌할까?
나는 이전에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혐오발언을 정리하고 여덟 가지 종류로 나눴다. (캠페인즈<전장연 시위를 보는 시선들_혐오란 무엇인가>) 자료를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혐오발언의 상당수가 정치인들의 발언을 근거로 삼거나 발언의 힘을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나무위키가 그러했다). 일상에서의 혐오발언은 잠시 뒤로 하고 정치인이나 공무원 같은 공인이나 남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예인, 종교인 등이 이런 소리를 계속 하면 이를 규제/처벌할 수는 없을까?  혐오발언에서 자유로운 나라, 사회, 개인은 없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혐오발언을 하지 않더라고 우리는 나도 모르게 혐오발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차피 고칠 수 없으니 그냥 살자고 하는 인간들이 있다. 이런 인간들 때문에라도 공인이나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혐오발언에 대해 강력하게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 흔히 말하는 경각심이라는 것이다. 또 도널드 트럼프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힘을 얻기 위해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교육이나 교화를 행함과 동시에, 엄격한 처벌을 통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흔히 이야기하는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논리를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혐오가 무엇인가에 대해 법적인 정의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나라가 많은 상태에서 혐오발언을 처벌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혐오가 무엇인가에 대해 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관을 중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느끼기에 “저거 좀 심하다”, “너무했네” 하는 것들이 혐오발언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일관성이 있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없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대구에서 이슬람 사원 건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돼지머리를 사다가 이슬람 신도들 앞에 전시하는 행위를 했다. 이걸 보고 많은 사람들은 왜 저렇게 까지 하냐고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개신교 관련 방송사가 만든 영상물을 한번 틀어보자. 그러면 이슬람교는 이런 저런 이유로 문제가 많은 종교이며 이슬람교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한다는 영상물이 심심치 않게 제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개신교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권력자를 비판하거나 풍자할 때 그들의 성행위나 성기, 외모 등을 과장해 표현하며 조롱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인 경우는 더더욱)이건 처벌을 해야 할까? 그 사람의 행위나 판단이 아니라 외모를 비하한 것이니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으나) 일각에서는 그런 행위가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움츠려들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을 보고 위아래로 훑으며 뭘 입었는지 스캔을 하는 행위는 혐오일까 아닐까? 길을 지나가는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면서 느끼하고 불쾌한 눈빛을 보내는 행위는 혐오일까 아닐까? 나는 이전에 글을 통해 혐오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리한 적이 있다. (캠페인즈<전장연 시위를 보는 시선들_혐오란 무엇인가>)  혐오란 “다수자와 구별되는 속성을 지닌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이들의 특성, 지위에 토대를 두고 이루어지는 비하적인 관념을 옹호, 증진, 확산하거나, 이들을 비방, 비하, 모욕, 멸시, 낙인찍기, 위협, 공격하는 표현을 하고 이것을 정당화하는 생각”이며, 혐오의 구성 요소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대상: 다수와 구별되는 속성을 지닌 특정 집단  2) 관념: 그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3) 표현: 말, 글, 행동을 통한 표현  4) 효과: 표현을 통해 이루어지는 부정적인 결과 혐오를 강화시키는 요소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혐오표현리포트」, 2019, p.49~p.56 요약)   1)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의 지위: 사회적 지위, 집단내 지위, 청중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   2) 혐오표현의 맥락: 대상 집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존재, 대상 집단에 대한 법·제도 장치, 언론지형, 정치지역, 혐오표현이나 폭력의 발생 빈도, 대항표현과 대항역량의 확보   3) 혐오표현의 범위: 공개성, 조직성, 계획성, 반복성·지속성   4) 혐오표현의 매체: 매체의 공신력, 매체의 영향력, 복제와 유포의 용이성   5) 혐오표현의 의도와 효과 이번에는 이 정리에 이어서 혐오발언을 어떻게 규제 혹은 처벌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혐오발언,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어떤 나라는 혐오발언 자체를 처벌하기도 하고(대표적으로 독일) 어떤 나라는 혐오발언을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 기존의 다른 범죄를 가지고 처벌하기도 한다(대표적으로 일본). 무엇이 되었건 해외에서 혐오발언을 금지하는 수많은 법률을 보면 “타인의 권리나 존엄성, 신체적 안전을 해치는 것”과 “공공의 질서 혹은 국가 안보를 해치는 것”에 해당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모두 혐오발언이 가져오는 눈에 보이는 해악에 대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당장 어떤 행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을 처벌하거나 규제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위에 말한 눈에 보이는 해악들은 모두 그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 속에서 탄생한다. 일본에는 건상자(健常者, 켄죠-샤)라는 말이 있다. ‘건강하고 정상인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게 비장애인을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놀이공원 같은 곳에 가면 ‘건상자이신 분은 할인 적용이 안 됩니다’나 ‘장애가 없으신 분’ 같은 문구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말을 계속 사용하고 이런 말이 널리 허용되는 사회 분위기는 개인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부지불식간에 장애인을 건강하지 않고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이 문화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법적인 처벌은 처벌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수단이기도 하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다. 법이 모든 도덕적 가치를 다 반영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바꿔 생각해보면 처벌을 동반하는 법적 규제는 그 사회가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처벌을 동반한 법적 규제는 우리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그 방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혐오발언에 대한 처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혐오발언의 법적 처벌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금지가 정답인가? 자유롭게 토론하고 생각하며 더 나은 발언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하지 않는가? 법적인 금지로 개인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보다 혐오발언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을 지속해 모두가 혐오발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더 교육적이고 민주주의적이지 않을까? 처벌은 악용될 소지가 너무 많지 않나?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자율적인 개인이 구성한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혐오발언에 대한 법적인 금지가 이를 해치는 것이 아닐까?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혐오표현/혐오발언은 위에서 말했듯이 특정 집단의 특성이나 지위에 대한 비하적인 관념에 기반하고 있다. 혐오표현이나 혐오발언에 대해 혐오 관념을 강하게 가진 이들을 공론장으로 데리고 와서 그들의 발언을 들어보자고 하는 것은 결국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혐오표현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자유시장경제라는 생각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공정’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나는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공론장으로 데려오는 것에 반대한다. 혐오에 대한 정의가 애매한데 이를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냐는말에 대해서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혐오에 대한 정의가 애매하다는 말은 혐오표현/혐오발언이 무엇인지에 대해 각잡고 제대로 논의해 보자는 주장의 근거는 될 수 있지만 그것을 금지하자는 말의 근거는 될 수 없다. 우리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대해 처벌하고 있다. 훼손되고 모욕되는 명예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명예훼손과 모욕에 대한 처벌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공적인 발언을 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도 마찬가지다. 어떤 한 종류의 혐오표현이 금지되는 것은 그와 연결된/비슷한 다른 혐오표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조심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자신의 발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더 건강하고 거대한 표현의 자유를 촉진하는 것이 아닐까? 또 혐오발언에 대한 법적인 금지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해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로불편러나 꼰대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 혹은 타인이 하고 싶은 말을 국가가 나서서 못하게 한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지껄이는 그 자유는 어떤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당신은 그 발언을 어떤 상황에서 하고 있는가?  마치며 2023년 5월 3일 수요일 오전 9시 30분, 서울시청사 시청사 8층 간담회장1에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위원회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위 원 장 : 윤기찬 (법무법인 케이디에이치 변호사)  부위원장 : 김영윤 (국민통합연대 시민사회활동가)  위     원 : 장지호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위     원 : 함인경 (법률사무소 강함 대표변호사) 위     원 : 문재원 (DL건설) 위     원 : 박규빈 ((주)지역도시건축사사무소 리플래폼) 위     원 : 송경택 (서울시의원) 위     원 : 박유진 (서울시의원) 위     원 : 박상혁 (서울시의원) 위     원 : 허훈 (서울시의원) 위     원 : 정상훈 (서울시 행정국장) 위     원 : 임춘근 (서울시 균형발전기획관) 이 회의에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와 CTS라는 개신교 단체에서 주관하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가 동시에 서울 광장 사용을 신고했는데 무엇을 받아들일 것이냐를 놓고 회의를 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사용 신고 수리에 반대하며 이런 말들이 나왔다. (이하 회의 속기록 에서 발췌) 이 행사(작년의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셨던 분들과 그 주변에 그 인근에서 바로 옆에서 이를 반대하는 또 시위가 또 대규모로 있으셨어요. 저는 어떻게 보면, 시민들의 그 의견이 다르셔서 뭐 표출하셨던 상황들인데, 이게 논란이 있다는 거죠, 이거 자체가. 그리고 또 서울시민의 광장이라는 게,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그 공공성이 되게 강해야 된다는 커야 된다는 거죠, 판단 기준에 있어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렇게 논란이 있고 서로 문제가 있다고 그러면, 이 앞으로도 이런 뭐 퀴어축제라든지, 사실은 이런 뭐 문제가 있는 축제들은 저희 위원회에서 걸러내야 될 것 같고요. 시민의 자유를 이야기를 하고 문화생활, 공익행사 뭐 이런 문화를, ‘소수성에 대한 문화를 인정하고 가자.’ 그러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또 피해를 보는 서울시민들이 많은 부분들이 있어요. 그 여러분들이 뭐 저는 이거 이 행사가 사실상 3∼4일로 끝나지만, 전과 후의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게 큰 범위로 계속 가다 보면 더 많은 피해들을 시민들이 입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조금 뭐 다른 뭐 이태원이나, 뭐 다른 이런 작은 집단에서 시작하다가 서울시, 마치 이게 뭐 대한민국 자체가 이 성소수자들을 인정하는 문화로 하면서 서울시가 받아 들이면서, 이거 저는 개인적으로는 참 이게 그 청소년에 뭐 건전, 아니 그니까 ‘바르게 커야 되는 이런 성 문화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참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좋지 않다.’라고 생각하고, 인근을 이용하고 있는 서울시민의 교통이라든지, 정작 정말 이 광장을 이용하고 싶은 시민들에게는, 굉장히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그며칠이라도. 그래서 저는 이런 문화가, 이런 문화를 그들은 문화라고 이야기하지만, 이거를 서울시 입장에서, 뭐 ‘단 며칠이라도 땡큐하다.’라고 진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민으로서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고, 단 며칠이지만 이거를 축제로 인정을 해줘야 되나에 대한 고민이 있는 상황에서 저는 반대 입장이고, 지금 상황에서 뭐 이 두 가지가 붙었을때, 딱 봐도 ‘문화의 다양성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정말 청소년 정서 회복을 위해서 이 축제를 하겠다’라고 했을 때, 어느 손을 들어야 되는지는, 그냥 이 청소년·청년을위한 회복콘서트, 서울퀴어문화, 성 문화잖아요. 갈등 유발을 어디가 더 할 것인가, 공공이기 때문에. 그러면 퀴어축제는 아까 ‘작년에 축제가 열렸을 때, 반대시위도 열렸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갈등을 유발할 요소가 어디가 더 있나. 그리고 이 이쪽 청소년·청년은 갈등을 유발할 것인가, 안 유발할 것인가를 봤을 때, 전혀 유발할 사유가 없죠. 정확히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전부 ‘〇〇〇위원’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장일치인지 다수결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냥 “다수가 ‘예’라고” 했다는게 회의록의 전부다. 심지어 어떤 발언들 밑에는 “다수가 웃었다”는 불필요한 정보까지 기재되어 있다. 그 이전의 회의들에는 이런 회의록도 없다. 그냥 수리/불수리만 나와 있다. 이태원 추모공간을 불수리한 결정에 대해서도 회의록이 없다. 서울광장에 임시로 스케이트장을 만드는 의견을 수리한 결정에 대해서도 회의록이 없다. 이번 달만, 그것도 이렇게 불성실하고 불충분한 회의록을 공개한 것은 왜일까? 악의적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공개 방식도 내용도, 이렇게 불쾌하고 악의적인 회의록은 살면서 처음 본다. 공론을 빙자한 혐오의 장은 처벌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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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성을 가지게 된 ‘지방청년’이라는 단어
지방소멸, 지역 청년일자리 부족, 청년세대 인구 감소 및 수도권 쏠림 현상 등 많은 단어들이 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나 정작 지역 속 청년들의 목소리는 반영 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방청년’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상징성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무엇이 문제고 어디부터 풀어나가야할까. 한국의 지역 내 총생산 규모는 수도권이 1,017조원(52.5%), 비수도권이 919조원(47.5%)을 차지해 수도권이 전국 지역내총생산의 과반을 점하고 있음. 단순히 경제적 규모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고용상황도 격차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비수도권 청년고용률은 39.3%로 수도권 청년고용률은 44.9%에 비해 5.3%나 낮다. 시/도 지역별로 구분해보면 수도권(서울51%, 인천48%, 경기47.3%)과 비교해 영남권(부산40.5%, 대구42.7%, 경북41.1%, 경남37.8%, 울산38.9%)과 호남권(전북39.1%, 전남39.3%, 광주37.3%)의 청년고용률이 큰 차이로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흔히 ‘이중구조’ 혹은 ‘분절적 노동시장’으로 표현되는데, 기업규모, 고용형태에 따른 격차가 전반적으로 벌어져 있는 것이다. 대기업(500인 이상) 대비 중소기업(500인 미만) 평균임금 비중은 1980년 96.0%에서 꾸준히 하락해 2020년 기준 58.8%까지 낮아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역 인구이동에서 2030의 비중이 47.1% 차지 (20대 25.3%, 30대 21.8%)하고 있으며, 특히 '시도간 인구이동'에 있어 전입사유로 '직업'(일자리)을 선택한 비중은 34.5%로 일자리를 이유로 한 시도간 인구이동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인 인구감소 속에서도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입 순이동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역 특수성을 반영한 고용서비스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청년유니온은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청년 지역일자리 실태조사>와 <지방소멸 시대의 청년세대 지역격차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를 진행했다. 비수도권 응답자 중 지역 내 '일자리 충분정도'에 대해 비수도권 청년 78.9% ' 불충분하다' 응답했다. 성별별로는 비수도권 남성 청년 71.7% - 여성 청년 84.1%로 '불충분하다'의 응답격차가 나타났으며, 수도권 이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 비수도권 청년 여성 47.6%, 남성 38.3%이 ‘예“라고 응답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상경한 청년의 경우 상경이유에 대해 '다양하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32.1%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원하는 교육을 받기 위해(직업훈련, 기타 교양 교육 등)'가 22.2%로 그 뒤를 이었다. 또한 취업 준비 과정에서 겪은 직업훈련 기관이나 교육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직업 훈련 기관 접근성 질문에 대해 훈련기관은 있으나 이용하지 않는다의 답변이 40.1%로 가장 많았고, 찾기 어렵다 23.9%, 찾을 수 있으나 거리가 너무 멀다 21.8%, 들어본 적 없다 11.3% 순이었다. 응답자중 45.7%가 접근성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훈련기관은 있으나 이용하지 않는다‘ 답변의 이유에 대해서는 실용적이지 않고, 수도권에 비해 퀄리티가 낮다 등이 있었다. 이는 접근성뿐만 아니라 교육의 퀄리티나 다양성을 높이는 등 훈련기관이 실제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한편, 비수도권 청년에게 수도권 이주 계획 혹은 의사를 묻는 질문에 43.7%가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수도권으로 이동할 의사가 없다’를 선택한 응답자 중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12.5%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이유로는 수도권의 높은 물가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고(46.3%), 수도권 생활의 적응에 대한 두려움이 (16.3%) 다음을 이었다. 그 외엔 단순히 이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현재 큰 불편함이 없다는 답변 등이 있었다. 결국 이주할 의사가 없다는 응답자들도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만족해서라기 보단, 수도권 생활에 대한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실태조사와 질적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에 나서고 있는 참여자들이 강한 수도권으로의 이주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구직 과정에서의 경험과 판단은 다양하고 더 많은 수의 일자리가 모여 있는 수도권으로의 이주를 고민하게 하면서, 지역 청년을 지역으로부터 빠져나가게 하고, 결국 이것이 지역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유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업 전반을 두고 이야기 하는게 필요하겠지만, 구직시기부터 시작되는 지역이탈. 교육 격차에 우선 주목해보았다. 청년 실업률 및 장기실업률의 효과성이 나온 ‘적극적 노동시작 정책’의 지출 규모를 늘릴 필요가 있다. 한국은 OECD국가 내에서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지출이 적은 국가에 속한다. 2019년 기준 OECD 국가별 GDP대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지출 비율을 보면 한국은 GDP 대비 0.37%로 OECD 평균인 0.72%의 절반수준에 머물러 있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중에서도 고용개선 효과성이 큰 고용서비스 정책과 직업훈련 정책의 경우에도 지출 규모가 매우 낮은 상황이다. GDP대비 고용서비스 지출규모는 0.04%로 OECD 평균인 0.12%의 1/3수준으로 낮으며, 직업훈련 지출규모는 0.07%로 OECD평균인 0.10%의 2/3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비수도권 청년이 지역에서 정주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지역 내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의 창출과 직업다양성의 확보가 가장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함께 주목해야할 것은 양질의 직업훈련과 고용서비스가 지역 특성에 맞게 이뤄질 필요성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존에 추진되고 있는 ‘상생형 일자리’의 확대, 산업변화에 조응하는 지역 직업훈련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 고용서비스와 관련된 인력 확충 등 중앙정부 차원의 직접일자리 정책, 고용서비스 및 직업훈련 정책과 더불어 해당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시행하고 있는 청년일자리 정책의 효과성에 대해 전반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그에 따른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과제들이 있으나 먼저 중앙정부 차원의 직접일자리 정책, 고용서비스, 직업훈련 정책과 해당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시행하고 있는 청년일자리 정책의 효과성에 대해 주목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진입시기부터 이뤄지는 지역 이탈, 그리고 ‘일자리’를 이유로 한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은 살고 있던 지역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협당하는 것이다, 그 현실의 중심에 있는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이주하지 않더라도 동일한 정책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수도권으로의 이주가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인구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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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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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가 청소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며칠 전 누군가 청소노동자에게 피로회복제 두 박스를 선물하는 모습을 봤다. 노동자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힘내세요”라고 응원한 사람은 정규직 노동자였다. 몇 분 뒤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간부가 노동자들을 찾아왔다. 그는 회사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노조 성명서를 최근 발표했고, 예정된 노사교섭에서도 이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참을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EBS(한국교육방송공사) 청소노동자 이야기다. 이 노동자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나오는 시간에 청소노동자들은 로비에 모여 피켓을 든다. 피켓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내가 쓸고 닦은 EBS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일방적으로 인원감축하는 EBS 규탄한다.” “노예계약 요구하는 EBS 규탄한다.” “미화노동자도 사람이다.” 구호가 정확히 알려주듯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EBS는 5월 들어 청소용역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청소노동자 TO를 27명에서 24명으로 3명 줄였다. 그런데 3명 전부 노동조합 간부다. 게다가 평일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말 특근을 아예 없앴는데, 이로 인해 임금이 50만원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해고, 노동강도 강화, 일방적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 누구의 밥줄이 끊길 줄 모르는 상황에서 각자도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EBS 노동자들은 용기 있게 ‘노동조합’으로 뭉쳤다. 그리고 해고된 동료와 함께 ‘투쟁’하는 길을 결심했다. 노동자들이 단단하게 뭉쳤고(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EBS분회), 정규직 노조가 함께하고(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미디어 전문 언론들이 꾸준히 이 사태를 보도하고 있는 만큼 청소노동자들이 결국 웃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태가 며칠 만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면 이 사태는 ‘원청이 주도하는 구조조정-노동개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EBS 사측이 전형적으로 악덕-원청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EBS는 재정 위기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제작비와 제작인력을 줄이고 있고, 청소용역비도 이런 맥락에서 줄였다. 회사의 논리는 대략 이런 식이다. 우리 회사는 오래 전부터 재정 압박을 받아왔다. →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상황을 맞았고, 전사적으로 비용절감을 해야 한다. → 고통분담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 청소노동자들 요구를 받아들이면 비용절감 기조가 흔들린다. 굉장히 익숙한 주장과 논리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모든 회사, 모든 원청이 이렇게 선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하게도 이런 선동의 효과를 정확히 안다. EBS의 주장은 고통분담을 해야 할 정규직 노동자 일부 또는 다수에게 이렇게 다가간다. ‘회사가 망해가는데 청소노조가 떼를 쓴다.’ 회사는 또 이런 여론을 명분 삼아 구조조정을 강행할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 덕성여대의 모습이다. 2022년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자 학교는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2022~2026년에 걸쳐 TO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 청소용역비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 입장이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자 학교는 이렇게 주장했다. ‘모두가 고통분담을 하고 있는데 청소노동자들이 특혜를 바라며 억지농성을 하고 있다.’ 학교는 담화문에 달린 댓글, 게시판에 올라온 노조 비난 글을 명분으로 노동조합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올해 2월 졸업식 때 청소노동자들이 세 시간 동안 길바닥에 드러누워서야 대화가 시작됐고, 일 년이 넘은 갈등이 끝났다.  나는 EBS가 악덕-원청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EBS가 보인 모습은 전형적이다. EBS는 다른 공공기관들이 일정 수준에서 진행한 정규직화를 계속 미뤄왔다. EBS는 다른 기업이 그런 것처럼 청소노동자들을 ‘비용’으로만 다뤘다. EBS는 노동부의 용역노동자 보호지침을 위반했다. EBS는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조합과 어떠한 협의조차 하지 않은 채 구조조정-노동개악을 추진했다. EBS는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표적해고에 “용역업체가 한 일”이라며 뒤로 숨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EBS가 왜 충북 청주에 사무실이 있는 직원수 25명의 청소용역업체와 계약했는지, 왜 청소노동자들부터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는지, 원청이 친 사고인데 왜 원청이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경험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나는 해고된 노동자들이 결국 현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EBS 청소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갈지다.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이 EBS의 예산 운용과 경영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대응하면 좋겠다. 함께 EBS의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고민하면 좋겠다.  나는 EBS의 구성원들이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고, 그렇게 해야 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검색사이트에 ‘EBS+청소노동자’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그간 EBS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이들의 투쟁을 다룬 뉴스리포트와 다큐멘터리가 결과창을 가득 채운다. 이중 다큐멘터리 <세상을 잇는 다큐 it> 시리즈인 <휴게실,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편은 대학, 빌딩, 옥외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휴게실에 주목한 내용이다. EBS의 이 다큐멘터리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에는 이례적으로 제작진의 당부가 적혀 있다. 촬영하는 동안 청소노동자들은 행여 들킬세라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했습니다. 얼굴이 알려지면 일자리를 잃을까 봐 인터뷰를 하면서도 신분을 감춰야 했습니다. 취재진을 따라다니는 감시의 눈길도 있었습니다. 당연한 요구를 하면서도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방송이 나간 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제작진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바로 EBS 로비에서 말이다. 노동자들은 해고됐고 불이익을 당했다. 경제위기의 시대, 많은 기업과 원청이 청소·보안 노동자들부터 수를 줄인다. EBS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EBS 문제가 어떻게 정리될지 더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토론을 시작하면 좋겠다. 나는 청소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토론이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끌어올리는 시작점이라고 믿는다.  청소노동을 왜 외주화해야 하는가. 직접고용하면 안 되는가.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은 왜 저임금이어야 하나.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왜 발밑에 있어야 하나.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에는 왜 창문이 없나.청소노동자들을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존재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청소노동자들은 왜 다른 구성원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 5~6시에 출근해야 하는가.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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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필요성과 국가의 역할
전장연 시위가 사회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전국장애인연대는"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여 출근길에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전장연이란 단체는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한다."며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 반면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전장연의 시위를 긍정적으로 봐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론은 전장연 시위를 어떻게 봐라보고 있을까요? kbs여론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장애인 이동권의 시위에는 공감하지만 출퇴근시위에는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올바른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바를 들어주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주는 것일겁니다. 월간 <유레카>시사읽기에 따르면 장애인 이동권은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기가 힘이 든다고 합니다. 실제로 휠체어 장애인 분들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률은 26.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두번째로는 서울시 지하철의 경우 정치권에서 1역사 1동선(출구부터 동선까지 휠체어 리프트없이 엘리베이터로만 이용가능하게 하는 것)을 약속했지만 2022년 예산안에 따르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예산자체가 아얘 빠졌다고 합니다. 지역 간 이동에도 제약이 있는 상황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특별 교통수단을 관리하는 아동지원센터가 나뉘어져있기 때문에 이를 통합할 수 있는 '광역이동지원센터'를 의무 설치하는 내용이 담겨져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합니다. 우선 유명무실한 법 제도부터 보완, 강화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또 장애인이동권 보장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예산권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또 장애인분과 꾸준한 소통을 통해 불편한 점을 바로 바로 수용하여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장애인을 위한 정책기구를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정의로운 나라일까요? 누구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고 있을까요? 최근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에 대한 반대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왜 장애인분들이 시위에 참여하는지 목소리를 듣고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국가의 역할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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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에 대한 집단지식을 모으다.
매일매일 뉴스가 쏟아집니다. 어이없고, 때로는 화나는 이야기들 속에 안타까운 이름들이 아주 잠깐 스쳐갑니다. 하루 평균 2.3명. 오늘 아침 일터로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수치입니다. 대단히 큰 사고가 아니면, 기사 한 줄 없이 통계로만 파악되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사회가 그나마 관심을 가지고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1년이 지났지만 이것으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법에서 말하는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모호'하다거나, 중대산업재해의 기준을 노동자 '1명 이상'에서 '2명 이상'으로 늘려달라는 등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며 개정을 요구하는 경영계의 목소리에 정부가 더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날이 있는 5월. 기본적인 안전 조치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죽음이 수십년 째 반복되는 것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누군인가.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왜 당연하지 않는가. 우리는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때그때의 기사나 자료로는 꾸준한 관심을 갖기도,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산업재해에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번 고민으로만 그쳤는데, 이번에는 그 고민 앞에 ‘함께'를 두고 힘을 모아보았습니다. 5월 12일, 월요일 저녁 빠띠 활동가 5명이 “산업재해"로 위키문서를 만들기 위해 모였습니다. 모든 사용자가 개방된 협업을 통해 항목을 완성시켜 가는 위키피디아처럼 공동작업으로 ‘산업재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모아보기로 한 것이죠.  '산재' 둘러싼 지식들 모으다 보니 알게 된 사실들 우선 산업재해 문제에 대해 평소 어떤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산업재해를 줄이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지키는 일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을 모았습니다. 본격적인 공동작업에 앞서 항목을 잡았습니다. 개요, 법령, 통계, 기사, 자료, 주요 사고, 관련활동으로 정한 항목을 각각 나눠 우선 자료를 모아보기로 했습니다.  자료를 찾다가 다른 사람이 맡은 항목에 해당되면 붙여놓기도 하고, 일단은 할 수 있는 만큼의 자료를 찾아 모았습니다. 우선 첫 시간에는 자료를 모으고 본인이 찾은 자료를 어떻게 분류, 정렬을 하면 좋을지 제안하고 서로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런 몇 번의 공동작업으로 문서의 흐름을 잡고, 항목을 추가하거나 조정하고, 추가된 항목에 자료를 다시 찾아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당신의 일터는 안전합니까... 일상과 가까운 산재 산업재해에 대해 관심을 꽤나 갖고 있었다 생각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참여하며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위키 문서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더 구체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전체적인 맥락과 과정을 더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하게 된 이유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기업이라는 이름은 빠지게 된 것이나 하는 사실들 말이죠.  또 산업재해 데이터를 가지고 구인공고를 낸 기업의 산업재해 사고 현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정보공개센터의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프로젝트와 2020년부터 지금까지 이달의 산재 사망 사고 기록을 해 온 노동건강연대의 이달의 기업살인 활동은 우리의 일상이 이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려주어 감동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위키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추모 캠페인] 끼임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SPC 제빵노동자를 추모합니다. 같이 산재 사고에 대해 추모의 마음을 모아보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활동이겠구나 생각도 들었고요.   우리가 시작한 위키문서는 아직 빈곳이 많습니다. 위키로 우리가 모은 것은 정보나 지식만은 아닙니다. 그 문제에 대해 함께 하고 관심을 계속 기울이겠다는 마음도 쌓여있습니다. 산업재해에 대해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나요? 당신은 얼마나 마음을 낼 수 있나요? 당신의 자리를 비워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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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띠가 보는 '노동과 민주주의'] 행복하게 일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면
우리는 왜 일을 할까요? 보통은 ‘먹고 살기 위해(돈을 벌기 위해)’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실제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부분이고요. 하지만 ‘돈이 전부’라는 명제에는 고개를 끄덕이기가 어렵더라고요. 일로 맺는 관계, 일로 얻는 성취감은 때때로 돈을 잊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물론 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죠? 이처럼 ‘일이 무엇인지, 왜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은 무궁무진합니다. 100명에게 물어보면, 100개의 답이 나올지도 몰라요. 다양한 일터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일하고 싶어합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분은 없을 거예요. 오늘 이 글에서는, 함께 머리 맞대고 행복하게 일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이들의 사례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청년 조합원이 만드는 일터와 노동조합의 조직문화,  ‘BLAH in the 공청’ 2021년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하 공공운수노조)은, 청년 조합원이 일터 혹은 노조 내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노동 문제와 필요한 변화를 이야기 할 수 있는 ‘BLAH in the 공청’이라는 공론장을 운영했어요. 이를 통해 조합원들과 새로운 소통 방식을 실험하고, 산발적이고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던 논의의 장을 조직 내부로 끌어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려 했는데요. 조직문화, 임금격차, 노동조합의 역할 등 주요 논의 의제를 정해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보다 풍성한 논의를 위해, 공론장 행사 전에는 사전토론 콘텐츠를 온라인 플랫폼에 게재하여 조합원들의 의제 학습을 도모하기도 했는데요. 부득이한 사정으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참가자들은 사전토론 게시글에 댓글과 공감을 남기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일터에서의 내 권리 찾기,  ‘일하는 서울시민 노동톡Talk’ 2021년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일하는 시민이 자신의 노동 경험과 문제를 나누고 함께 대안을 찾아보는 ‘일하는 서울시민 노동톡Talk’을 운영했습니다. 특히, 여성/성소수자, 청(소)년/노인/장애인,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 30인 미만의 노동사업장 등 그동안 노동 관련 논의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고자 했는데요. 대상/의제별 공론장 행사를 진행하고, 사전토론 콘텐츠를 온라인 플랫폼에 업로드해 참여자들이 의제에 대해 미리 학습하고 투표와 댓글로 토론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1차 온라인 사전토론 - 1차 공론장 행사 - 2차 온라인 사전토론 - 2차 공론장 행사’의 과정으로 논의가 단계적으로 숙성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마련했습니다. ‘일하는 서울시민 노동톡Talk’은 지방정부 차원의 노동정책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요. 논의 결과는 서울시 노동정책에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노동 문제 대안을 찾다,  ‘플랫폼 노동 건강 아이디어톤’ 대리운전, 퀵서비스, 가사관리, 배달서비스 등 플랫폼 노동은 우리의 일상에 굉장히 깊숙하게 들어와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은 정부의 각종 보호체계에서 비껴나 있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1년 연세대 긱업스 연구팀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출된 플랫폼 노동자의 건강 증진을 위한 아이디어톤(참여형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아이디어톤은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논의하여 결과물을 도출하는 해커톤 형식에서 영감을 받았는데요. 당사자인 플랫폼 노동자, 의료/노무/법률/보건 분야 전문가, 시민이 하루를 함께 보내며 아이디어를 모으고 대안으로 발전시키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집단지성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내 고향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위원회 지역소멸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립니다. 특히 많은 지역이 인재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설사 지역에 남는 청년이 있다고 하더라도,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에 부딪혀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요. 2021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위원회(이하 청년위)는, 광주/대구/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등에서 당사자인 지역 청년들과 함께 지역의 노동 문제와 대안을 찾아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공론장 행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진행되었는데요. 본 행사에 앞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디지털 도구 활용 교육, 관련자료 배포 등을 진행했습니다. 공론장이라는 문화가 아직 낯선 분들을 위해 디지털 투표 플랫폼을 활용해 문턱을 낮추려고도 했는데요. 덕분에 참여자들은 쉽고 편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습니다. 네 가지 사례, 모두 잘 살펴보셨나요? 눈치채셨겠지만, 모두 빠띠가 함께 기획하고 진행했던 공론장입니다. 네 공론장은 다루는 의제도, 참여주체도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답니다. 발견하셨나요? 빠띠는 모든 공론장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에, 아래의 공통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보통 ‘노동 문제’라고 하면, 대립이나 투쟁 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노동 관련 논의도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있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① 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한다. -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당사자의 참여 보장 - 다양한 관점을 위한 시민, 전문가 등의 참여 보장 ② 보다 더 많은 참여를 위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다. - 온라인 공론장 플랫폼 빠띠 믹스를 활용하여 사전토론 및 의견수렴 - 온라인 투표 플랫폼 빠띠 타운홀을 활용하여 참여의 문턱 낮춤 ③ 더 풍성한 논의를 위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 온라인 공론장 플랫폼 빠띠 믹스를 활용하여 사전정보 제공 - 디지털 도구 활용 교육, 의제 관련 자료 배포 ④ 평등하고 안전한 대화와 숙의 환경을 만든다. - 참여자 모두의 참여를 독려하며, 평등한 발언권 제공 - 그라운드룰을 함께 정하고, 그에 따라 토론하며 안전하게 대화 처음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일터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일을 합니다. 하지만 행복하게 일하고 싶은 바람은 매한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노동에 어떤 행복을 녹이고 싶으신가요? 이 당연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이런 자리가 하나둘씩 늘어나면 대안과 실천으로 이어지고, 언젠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요? ✏️ 글 : 소이 /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공론장팀 활동가 / soy@parti.coop  ——  모두가 민주주의 위기를 말할 때, 빠띠는 디지털 기술로 민주주의를 혁신합니다.더 많고 더 나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 빠띠를 후원해주세요!—> 빠띠 후원하기 : bit.ly/빠띠즌가입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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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터의 죽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즈메의 문단속’ 보셨나요? ‘스즈메의 문단속’은 ‘스즈메’가 ‘소타’와 함께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고, ‘스즈메’는 문을 닫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다 고향에서 자신이 잊고 있었던 상처를 마주하게 됩니다.  “12년 전에 일어난 재해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거든요. 지금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갈 수 없어서 피난 중입니다.” “제 딸이 12살인데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던 해에 태어났거든요. 그 재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셈이죠. 제 딸처럼 재해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는 세대들이 일본엔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이 영화는 12년 전 동일본대지진을 소재로 제작되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서 “오래도록 잊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이를 다뤘다고 밝혔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을 ‘돌려주며’ 재난을 막아내고, 또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배경과 함께 영화를 보니 재난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재난은 사회에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려집니다. 재난 피해자의 이야기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도 생깁니다. 이는 산업재해와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연재해와 산업재해는 다른 측면이 있지만, 우리에게 남는 고민은 닿아있습니다. 피해자를 어떻게 치유할지,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역할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어떤 죽음을 기억하고 있나요? 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0년 재해자 108,379명 사망자 2,062명 2021년 재해자 122,713명 사망자 2,080명 2022년 재해자 130,348명 사망자 2,223명 하루에 여섯 명 이상의 사람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오늘도 누군가는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1년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일하다 다치고, 아프고, 2천 명이 사망한다니, 믿어지시나요? 이것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우리가 아는 죽음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심지어 통계자료에 모든 산업재해가 담긴 것도 아닙니다. 기록되고, 기억되고, 사건화되는 죽음은 적은데 우리는 그마저도 잊어가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일하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스크린도어 수리는 안전을 위해 2인 1조로 작업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적어서 혼자 수리에 나섰고,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하청업체로 위험을 외주화하는 사회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2017년 전주 콜센터에서 일하던 홍수연 님이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했습니다. 해당 업체는 시간 외 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서도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퇴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현장실습’을 명목으로 끊임없는 감정노동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공간에, 분초 단위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공간에 보내졌던 홍수연 님은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2018년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 김용균 님이 사망했습니다. 2년 전 구의역에서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2인 1조 근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김용균 님은 암흑 속에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한 채, 홀로 개구부 안 문제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보고할 사진을 찍기 위해서 안전장치가 없는 컨베이어 벨트 위로 머리를 밀어 넣어야 했습니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비정규직에게 더 잔혹한 현장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2020년에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건설 현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습니다. 한익스프레스는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자 폭발 위험이 있는 작업을 동시에 하도록 했습니다. 냉동창고의 결로를 방지한다며 비상구 대피로를 폐쇄해 피해가 커졌습니다. 시공사에 벌금, 관리자 2명 실형이 선고되었으나 한익스프레스는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2021년에는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선호 님이 사망했습니다. 300kg이나 되는 컨테이너의 벽체가 무너졌고, 깔렸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는 사전 계획을 세우고 안전조치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전관리자는 물론 기본적인 안전핀, 장비조차 없었습니다. 이전에도 같은 문제로 인해 사고가 있었음에도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산재 사망까지 이어졌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사망사고가 있었습니다. 경남 제지업체 공장에서는 20대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치료 중, 양산 제조 공장에서는 압력 용기 부품에 맞아 치료받던 중 사망했습니다. 김해 제조공장에서 지게차가 전복되며 깔려 사망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올해 1분기에만 128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매일 수많은 사람이 일터에서 사망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죽음은, 사회에 제기되는 죽음은 많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죽음, 여전한 사회 죽음이 쌓이고, 분노가 모여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법 시행 이후 첫 재판이 있었습니다.  건설노동자가 공사 현장에서 추락, 사망한 사건에서 원청 법인은 1억 6천만 원, 하청 법인은 1천만 원의 벌금을 받았습니다. 원청 대표이사는 징역 2년(집행유예 3년), 안전보건 총괄책임자(현장소장)는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어진 한국제강 사건에서는 한국제강 법인 벌금 1억 원, 대표이사가 징역 1년, 법정 구속되었고 협력업체 대표는 징역 6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전에도 같은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했음에도 재판부는 최저 형량을 선고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진짜 책임자인 원청의 책임이 강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전체 사업장의 68% 이상에 해당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지 못합니다. 43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법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기소조차 되지 않습니다. 2022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사고만 250여 건이 발생했음에도 기소된 것은 14건이 전부입니다. 또 앞서 본 것처럼 기소되어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너무나 낮은 처벌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경총은 ‘매우 엄중한 형량’이라며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을 죽여도 벌금 몇 푼이 고작이고, 징역은 1년, 그마저도 다른 책임자들은 집행유예에 그쳤습니다. 안전이 우선되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인데도 말입니다. 이게 과도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중대재해를 처벌하는 것은 ‘안전한 일터’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안전에 책임이 있는 기업이 그 책임을 이행하도록 하기 위함일 겁니다. 이윤을 위해 안전을 방기한 기업을 처벌하고, 다음, 그다음의 산업재해를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사건과 처벌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결국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죽음은 숫자로만 기억되고, 우연하고도 불행한 사고로 여겨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쉬이 이야기하기도 어려워집니다, 해결된 것이 없어 반복해서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사회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즈메의 문단속’ 영화에서 ‘스즈메’가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역할을 줍니다. 그저 시혜적으로 동정 어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즈메’가 할 수 있는 일을 줍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역할을 하며 ‘스즈메’는 치유의 과정으로 나아갑니다. 숨겨두던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재난을 겪은 사회의 역할은 무엇일지 생각해 봅니다. 우선, 사회는 그 이전과 달라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사망으로 괴로워하는데, 다음날 똑같은 죽음을 맞는 이가 생긴다면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권리를 보장하고, 은폐·조작·피해자 탓 없이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분명히 처벌하는 것은 당연히, 또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참사가 발생한 우리 공동체의 구조를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안의 우리는 피해자와 주위 사람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가 변화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제정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의 과제가 많습니다. 끊임없이 주목하고, 슬픔을 넘어서서 사건의 본질을 짚어내고,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남은 사람들의 이후 삶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자유롭게 의견을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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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과 그럴듯한 말들
출처 : 중대재해처벌법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자료 - 고노부 본문 8, 9쪽개인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게 관리상의 조치 의무를 부과한다. 노동자 사망 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자연인에 대한 처벌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이다. 법인의 경우 50억 원 이하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대해 경영계와 노동계 그리고 전문가들이 여러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데 살펴보자. 경영계와 노동계 출처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방향에 대한 노사 및 전문가 토론회 개최 경영계는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에 대한 모호성을 이유로 산업현장 혼란이 심각해 시행령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직업성 질병 범위 축소와 안전 보건 관계 법령을 산업안전보건법 등으로 특정하며 모호한 표현의 삭제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법률상 위임근거가 없어도 법 시행에 필요한 사항이면 하위법령에 규정할 수 있게 하여 경영책임자 개념을 구체화하고 실질적 지배, 운영, 관리 책임이 있는 경우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 입장에서 모호한 표현은 부담된다. 법 적용의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책임자 구체화에 사활을 거는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내용으로 하면, 기업 사장까지 처벌이 가능하지만 실질적 운영 관리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 짓는다면 현장 반장 수준에서 처벌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는 명확성이 낮지 않고, 중처법 시행 1년도 안 된 법령 개정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 시행령을 개정한다면 직업성 질병의 범위 확대와 안전 보건 관계 법령을 포괄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증받은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이행에 대해 의무 이행을 갈음하자는 의견에 대해서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럴듯한 말말말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송치까지 평균 약 9개월을 넘기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근로감독관의 업무 부담이 매우 커지고 있고, 현장에서는 높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로펌이나 고문변호사의 고용 등을 통해 수사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무조건 혐의를 부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근로감독관 업무 부담 감소와 24년 50인 미만 확대 적용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고,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대가로 한 이익은 허용할 수 없다는 원칙 위에 경제적 제재의 방법을 검토하는 것 또한 백안시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2021년 기준 근로감독관 1인이 2600여 개의 사업장을 담당한다.)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계는 안전보건경영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보다는 법률을 지킬 수 없다는 집단적 의사표시를 하고 있고, 노동계는 처벌 수준의 강화만을 주장하고 있고 행정의 측면에서는 감독관이 사후적 수사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라며 앞의 의견들과 비슷하게 발언했다. 또한,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고 재판 결과도 늦어질 것으로 예상됨을 고려할 때 형사처벌 수준을 높여 산재를 예방하려는 철학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현재 9+4개로 구성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의 수를 줄일 필요가 있고 산안법을 통해 일반 중대재해를 처벌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습, 반복, 다수 사망사고를 가중처벌하는 등 산업안전법령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발언했다. 출처 : 고용노동부,‘지속가능한 중대재해 예방체계’를 주제로 토론회 개최특히,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과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속 가능한 중대재해 예방체계’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다른 발언도 했다. 기업이 안전보건관리 시스템 구축과 이행이라는 기업의 자율을 강조하며 정부는 뒷받침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전형배 교수는 현재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에 속해있다.)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대기업조차 안전역량을 체계적으로 향상시키기보다 당장의 형사 처벌을 피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어 자율안전의 의지와 움직임이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현재 처벌 위주 산업안전 법령과 정책은 기업 스스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없게 한다”라고 말했다.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기업의 자율적인 사업장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 중대재해 때문에 생긴 법안이다. 그런데, 관련자 및 전문가들 의견은 다시 기업 자율에 안전을 맡기자는 것 아닌가. 처벌이 없다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기업들이 할 확률이 있는 것인가.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강제 사항이나 처벌 조항이 없다면 기업들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이윤만 창출하고자 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는 지금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로펌을 드나든다고 하지 않나. 기업 자율권 보장을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한다면 반대급부로 노동자들도 얻는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는 노동자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기업에게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은 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올 뿐이다. 법 위반 처벌 수준이 강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기업의 의지가 약해진다는 논리가 상식적인 것일까? 처벌 수준이 약하다면 안전에 대한 기업의 의지가 강해진다는 논리의 출처는 어디인가.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법이 문제일까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문제일까.출처 : 고용노동부 장관, 전국 산업안전보건 감독관과 현장 밀착형 중대재해 감축 방안 격의 없이 논의중부청 우도윤 광역중대재해관리과장은 “그간의 정책은 사업주에 대한 규제에 집중되어 근로자 개인의 안전 인식 전환에는 한계가 있던 것이 사실”이라며, “범국민 캠페인을 강화하고, 근로자의 안전 인식·행동 제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발언은 산업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분들에게 모욕적이다. 산업재해가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 부재로 발생했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지. 죽음을 벌기 위해 산업 현장에 가는 것이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는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 있다. 기한이 정해져 있고, 현장 환경이나 분위기도 노동자 개인이 바꿀수 없다.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도 산업 현장 조건이 안전하지 않다면 소용없다. 관계 부처 담당자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었어야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대한 여러 의견을 보다 보면 최저임금이 떠오른다. 최저임금 인하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지불 역량이 부족한 영세업자를 이유로 든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안전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을 이유로 들어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주장한다. 우리 사회의 일부 전문가들은 왜 이렇게 경영계의 불편을 잘 해결해 주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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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은 자유로운 삶을 제공할까요?
플랫폼 노동은 자유로운 삶을 제공할까요?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면서 공유경제나 긱워커와 같은 단어들이 나타났습니다. 공유경제는 여분의 경제적 이득을, 긱워커는 노동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를 제공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긱 이코노미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업무 일정을 직접 관리할 수 있고 전통적인 형태의 장기 고용 계약에 얽매이지 않고도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긱경제라고 설명합니다. 더해 긱 이코노미 속의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유연한 근무 시간과 여유로운 일정을 즐기며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의미 있는 커리어를 쌓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례에서 플랫폼 노동자는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노출 되어 있었습니다.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들에게 자유와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까요?  자유와 여유보다, 불안하고 바쁘고 아픈 노동자가 더 많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과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가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식 배달·대리운전 등 플랫폼의 ‘일감 강제 배정’ 알고리즘이 플랫폼 노동자를 옥죄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10명 중 6명은 출·퇴근은 물론 휴게시간도 스스로 정할 수 없었습니다. 알고리즘 배차를 100% 따르면 곧바로 과로에 노출됐습니다. 자동 배차를 100% 수락한 라이더들은 지역배달대행사 주문을 자율적으로 선택한 라이더들보다 평균 주행거리가 25%(30㎞) 늘었습니다. 이 같은 과로는 라이더들의 과속·교통법규 위반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또한 알고리즘 배차를 거부한 순간부터 ‘좋은 콜’ 배정이 줄어드는 예도 있었습니다. A씨가 꺼리는 콜을 거부한 지 이틀째인 실험 4일차에는 서울 압구정 한복판에서 점심 피크타임인데도 약 20분간 콜을 전혀 받지 못하는 공백이 두 차례나 생겼습니다. 우아한청년들 관계자는 “배차 거절에 따른 패널티는 없으며 평점, 등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며 “배차 1건을 거절한 데 대한 압박이나 휴식을 중단하라는 취지로 배달종사자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경향신문 2022.11.02) 플랫폼노동자를 떠올리면 흔히 배달 노동자를 많이 떠올리지만, 플랫폼을 통해 가사노동이나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 역시 이에 해당됩니다. 외에도 대리운전기사, 프리랜서 종사자 등도 해당 범위안에 포함 됩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에 따르면 가사돌봄유니온·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와 지난해 7월부터 8일간 가사·돌봄 노동자 100명을 대상으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사례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1명 꼴로 성희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사 돌봄 노동자 63명 중 9명, 아이 돌봄 노동자 37명 중 1명이 "업무 중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주변에서 성희롱 경험을 들었던 응답자까지 포함하면 가사 돌봄 노동자 63명 중 16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성희롱 등 고충을 겪은 가사·돌봄 노동자가 전문기관에 도움을 받았다는 응답은 거의 없었습니다. 응답자들의 38.8%가 ‘혼자 처리하거나 삭인다’고 답했고, 8.5%는 ‘하소연할 상대가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노동자상담센터나 여성단체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3%에 불과했습니다.  가사 돌봄 노동자 중 절반 가까이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었습니다. 가사 돌봄 노동자 63명 중 38명(49%)이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락스나 세제 등 청소용품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 및 두통은 21%, 디스크나 타박상이 각각 12%, 3.9%를 차지했습니다. 아동 돌봄 노동자도 35명 중 19명인 54%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었다고 답했습니다.  (아주경제 2023.01.19) 중개업체나 플랫폼 기업은 이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뉴얼과 규정 업체마다 제각각인 성폭력 예방 교육, 사후 대응 매뉴얼, 가해자 관리 규정은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익명의 가사노동자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비스 제공자는 범죄 조회를 하지만 이용자는 하지 않는다”며 “성폭력 가해자에게는 강제 이용 정지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약관에 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다른 업체와 ‘블랙리스트’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향신문 2023.03.07) 플랫폼 노동, 종속노동으로 근로조건 저하 가능성 높아 플랫폼 노동자 대부분은 플랫폼에 종속되기 쉬운 상황에 노출됩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연구보고서(2018)는 플랫폼 노동이 노동자들을 지나치게 착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방식에 종속된 노동자들이 사용자 측과 충분한 협상력을 갖지 못해 노동조건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의 저자인 알렉산드리아 J.레브넬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조교수 역시 저서를 통해 긱이코노미 생태계의 최첨단 플랫폼은 노동자를 초기 산업사회로 데려간다고 주장합니다.  “초기 산업사회에는 노동자가 장시간을 일하더라도 시간이 아니라 생산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고, 산업안전이란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긱 이코노미도 종사자는 중계인만 있고 고용자가 없습니다. 소속된 직장도, 정식 계약도, 병가 휴가와 육아휴직도 없으며 노후를 위한 연금, 퇴직금도 없습니다. 플랫폼은 수수료만 가져갈 뿐 그 외의 책임을 일체 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서비스 처리 건수 기준으로 돈을 지급합니다. 심지어 요구에 늦게 응답하면 일을 주지 않거나 고객의 나쁜 평가를 검수하지 않고 노동 정지 처분을 일방적으로 내립니다. “ 알렉산드리아 J.레브넬은 책에서 “공유경제라는 말이 처음으로 대중의 어휘속으로 들어왔을 때, 돈을 적게 쓰면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되고, 그만큼 여가 시간이 늘어나 가족,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나홀로 볼링' 현상의 성장세도 꺾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유경제가 일으킨 파괴는 전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경제적 불안정성과 노동자의 취약성만 키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들은 임시 노동을 전전하면서 말이 독립적인 사장님이지 실상은 플랫폼의 독단적인 피벗과 이용 정지 처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 노동자 안정성 보장하는 추세 '증가' 2021년 2월19일, 영국 대법원은 우버 운전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5년 간의 법정 다툼 끝에, 노동의 종속성을 주장한 우버 기사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영국 재판부는 우버 기사들을 노동자로 판단한 핵심 근거로 우버 측에서 기사들이 택하는 운전경로, 책정요금 등을 철저히 통제한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즉 ‘종속성’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에선 우버 기사가 노동자라는 판결이 잇달아 나오기도 했습니다. (MBC 2021. 02. 19) 미국 뉴욕시는 2018년 말 우버·리프트 등 차량호출서비스 앱(애플리케이션)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운전기사에 최저표준운임(Minimum Pay Standard)을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저임금에 시달리던 플랫폼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수년간 요구한 임금협상을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물론 플랫폼 노동자를 위해 별도의 최저임금을 도입한 도시는 미국에서 뉴욕이 처음입니다. 이후 뉴욕시에선 우버·리프트 기사뿐 아니라 우버이츠·도어대시 등에서 일감을 받는 배달 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기도 합니다. (경향신문 2023.05.10) 또한 프랑스는 우버이츠, 딜리버루 등에서 자전거, 스쿠터 등을 타고 음식 등을 배달하는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최저 임금을 보장합니다. 4월 20일,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 FNAE는 배달 플랫폼들이 배달노동자에게 최소 11.75유로(약 1만7000원)의 시급을 주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는 올해 1월 1일 기준 프랑스 세전 최저임금인 11.27유로(약 1만60000원)보다 0.48유로(약 700원) 높습니다. 그레구아르 르클레르 FANE 대표는 이번 합의가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배달 부문에서 현존하는 플랫폼은 물론 앞으로 생길 플랫폼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선비즈 2023.04.21) 플랫폼 노동은 누구에게 자유와 효율을 줄까? 플랫폼 노동은 누구에게 자율적이고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 걸까요. 음식을 팔아도 1000원이 채 남지 않는 상인들, 불안정하고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지만, 노동환경을 보호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들. 플랫폼 노동은 고용주와 노동자가 있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정책적인 논의가 더 필요합니다. 미국의 경우 플랫폼 독점방지 규제 5법을, 유럽의 경우 플랫폼 독과점을 규제하는 디지털시장법(DMA) 도입을 논의중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이를 조정하는 고민이 필요 할까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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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민주주의와 시민주도 공론장
숙의민주주의와 시민주도 공론장 이 글은 한국행정연구원에서 2019년 2월 26일에 발간한 ‘행정포커스’ 138호에 ‘시민주도 공론장의 발전, 민주행정의 새로운 동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로, 현 시점에서 봤을 때 충분히 업데이트 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2019~2022년 동안의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수많은 시민주도 공론장 사례 등이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빠띠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세요! 공론화의 시대? 공론화 유행의 시대? 2019년 1월 28일, 한국리서치와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발표한 ‘2018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52.4%가 이번 정부에서 갈등이 늘었다고 대답했고, 47.1%가 갈등 해소 노력이 부족하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90%가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기업과 노동자 간의 노사 갈등, 빈부 갈등,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 등이 심하다고 인식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사이 남녀 간의 젠더 갈등이 전면에 부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갈등들의 해소 방안은 공론화가 행정 신뢰도를 높이고 숙의민주주의에 기여한다는 대답이 65.3%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공론화 법제화’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신고리 원전 공론화,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제주교육 공론화 제도화, 서산시 자원회수시설 공론화 등, 최근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제도적 공론화 실행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는 ‘신고리 원전 공론화’입니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계속하되, 탈원전 정책은 지속하기로 결론을 냈습니다. 이에 따라 차후의 다른 원전 건설 계획은 백지화되었습니다.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원전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여전히 원전 확장 정책이라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원전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다른 원전의 건설 백지화가 이후의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비판할 것입니다. 공론화 결과를 지지하는 입장은 공론장에서 절차적 합리성을 거쳐 합의에 도달했기 때문에 민주적으로 공공정책 추진의 정당성을 확보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고리 공론화는 숙의민주주의의 제도화라는 차원에서 국가가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데에서 중요한 경험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원전을 건설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에너지 공급 정책의 미래 비전 혹은 대안적 방향성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단발성으로 이루어지고 정당화에 그쳐서는 안 되며, 지속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떠올릴 수 있는 사례는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입니다. 교육부는 대학입시 개편 안을 ‘열린 안’으로 국가교육회의에 넘겼고, 이는 이견이 크고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아 공론화 과정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는 시나리오 워크샵에 의해 제안 된 4가지 의제 중 시민참여단이 숙의를 거쳐 선택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시민참여단은 교육부와 마찬가지로 납득할만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였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제 간에 치열한 경쟁이 있었지만 시민참여단에게 납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였고, 특정 의제의 선택이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되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시민이 아닌 특정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시나리오 워크샵의 임의적인 의제 설정, 공론화의 외주화, 정책위기 극복을 위한 동원으로서의 공론화 목적 등이 문제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육에 관한 다양한 가치관과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사안에 대해 단발적인 공론화 절차로는 결론이 나기 어렵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장기적인 과정으로서 대안적인 미래 비전을 만들어가는 공론장을 구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갈등 의식조사로 돌아가서 흥미로웠던 점은 갈등해소 방안으로 공론화 법제화에 공감하는 동시에 공론화가 책임회피 수단으로 남용 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52.3%라는 점입니다. 이는 공론화 결정 여부를 정부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대답했던 비율이 10.7%에 불과하고, 일정 여건을 구비해 국민의 제안에 따른다는 비율이 58.5%에 육박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앞서의 두 사례가 정부 주도의 제도로서의 공론장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심화, 숙의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일보 진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왜 심화 될 필요가 있고, 숙의민주주의가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리고 정부 주도의 제도 공론장으로는 왜 여전히 한계가 있고, 어떻게 그것을 넘어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숙의민주주의 협의의 대의민주주의는 선거 참여를 통한 대표자의 선출, 3권 분립 등 민주주의 제도를 지칭합니다.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협소한 이해로 인해 정책의 결정, 집행, 평가 등의 과정에서 민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특히 소수자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다는 비판 속에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대두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가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데 중요하다는 관점이 대두하게 됩니다.  ‘시민참여’는 행정에 시민이 참여하여 정책 결정 및 평가 등, 정책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문위원회, 공청회, 시민운동을 통한 참여 등의 방법을 들 수 있습니다. 대의의 정도를 강화하는 차원뿐만 아니라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 확산이라는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이는 ‘참여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 합니다. 시민참여라는 정부 차원의 슬로건 하에 이루어지는 정책들이 실제로는 관에 의한 민의 동원, 정책 추진의 정당화 차원이 될 수 있다는 비판 속에서 ‘시민주도’라는 슬로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수동적인 참여가 아니라 자발성과 자율성에 입각한 시민들의 주도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민과 관의 협력 관계 구축을 통한 통치라는 의미의 ‘거버넌스’도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차원에서 동일선상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들은 시민참여를 증대하여 대의의 정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직접민주주의적 보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참여를 강조하는 접근에는 공적 의제들에 대한 다양한 시민들의 숙의가 빠져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얕은 정보에 의존하여 일면 합리적이면서도 일면 무지한 상태로 순간의 선호를 모아내는 데 그칠 수 있습니다. 미디어의 편향된 정보와 정치권력의 의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집단적 편향성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반면 숙의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주도적 참여를 전제로 시민들의 숙의와 포괄적 대표성을 더하여 한 단계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숙의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론화’와 ‘공론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공론은 공적 의제에 관하여 모아진 의견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순히 조사를 통해 다수의 의견을 파악한 여론과 달리, 공론은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절차의 과정을 거친 깊은 토론, 즉 숙의를 통해 재형성된 여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론화는 공적 의제에 관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모으는 과정을 말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경험의 맥락에서 보면, 공론화는 공공성을 지니지만 논의되지 않는 의제를 여럿이 의논하는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는 의미와 공공 정책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들의 의견을 확인하고 결집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론화는 대개 후자의 의미이고, 시민사회에서 새롭게 제기하는 공론화는 전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공론장이란 공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론장이란 정부를 포함하는 국가와 시민들로 이루어진 시민사회 사이에서 형성되는 공간으로서, 시민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숙의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공적 공간을 말합니다. 이러한 논의에 따라 숙의민주주의는 시민 주도적 참여에 의해 공론장에서 공론화라는 의사수렴 제도 및 실천들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민주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숙의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상호 이해를 통해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과 합의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그리고 사회갈등을 극복하거나 예방하고, 참여자들의 책임감이 높아져 결과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이 강화되어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숙의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민주주의의 심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정부 주도의 제도 공론장의 한계와 다양한 시민주도 공론장의 가능성 지금까지 논의한 숙의민주주의는 현재 폭발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정부 주도의 제도 공론장과 대체로 조응합니다. 앞서 언급한 신고리 원전 공론화와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의 사례에서 볼 때, 정부 주도의 제도 공론장은 정부가 이미 추진중인 정책과 관련한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짧은 시간 안에 결론을 내려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설계와 관리, 즉 절차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부 주도의 제도 공론장을 민주주의의 진전이라고 평가하더라도 한계를 주목하고 극복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정부 주도의 제도 공론장의 한계는 앞서 살펴봤던 하버마스식의 거시적인 국가 공론장 자체에 내재하는 한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국가기구에 대항하는 시민사회의 공론장 역할을 강조하지만 최종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여전히 국가기구에 위임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등한 시민들의 이성적 논의를 전제하고 있지만 현실의 제도 공론장은 약자, 소수자들의 경험에 대한 표현을 다수자의 관점에서 억제하고 배제하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위해서 시민들이 주도하는 시민사회 공론장의 가능성, 시민에 의한 자발적 공론화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사회 공론장’은 시민 주도의 자율적 참여를 통한 시민사회 차원의 다양한 공론장 실험들을 의미합니다. 가장 작게는 개인 대 개인 간의 숙의 토론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다양한 단위의 집단, 조직, 공동체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주제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숙의 토론 방식들의 실험들을 의미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몸담고 있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에서는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라는 차원에서 다양한 공론장 실험들을 수행하고 있습니다.(바꿈은 2020년 초에 해소) 청년들이 자신들의 중요한 문제로 여기는 젠더 문제, 대학 문제, 어린이집 영유아교사의 노동 조건 문제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로 공론장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공론장 실험은 공론조사를 응용한 정책 배틀, 사이언스 슬램을 차용한 정책 경연, 합의회의, 월드카페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공론장 실험들이 기존의 행사들과 다른 것은 참여자들로 하여금 소비자나 수동적 참여자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로 논의하고 자신의 참여로 인해 산출되거나 변화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시민사회 공론장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주도적 역량을 점차 갖출 수 있게 됩니다. ‘풀뿌리 공론장’은 시민사회 공론장과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독자적인 영역과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풀뿌리 공론장은 ‘지역’ 차원에서 실현되는 생활세계의 일상적 공론장을 의미합니다. 풀뿌리 공론장은 정부 주도 제도 공론장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공론장 또한 협의의 의미에서 시민사회단체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시민 개개인들의 문제의식들을 충분히 대의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제기된 것입니다. 풀뿌리 공론장의 대표적인 최근 사례로 대전의 ‘누구나 정상회담’을 들 수 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 시기에 대전지역의 시민들은 자체적인 대화 모임을 거쳐 지방선거 의제들을 도출했고 후보와 협약을 맺기도 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월평공원 공론화’를 들 수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가 공원에 들어서게 되는 상황이 되자 찬반 속에서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숙의단을 모아 현장답사 및 상호토론을 거쳐 산출한 결과를 지방정부에 전달하여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친 사례입니다. 풀뿌리 공론장은 각 지역별로 일상적인 공론장에 시민들이 상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 공론장과 풀뿌리 공론장도 거시적인 공론장의 문제, 정부주도의 문제를 피할 수는 있지만 대표성의 문제가 잔존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된 ‘소우주(microcosm) 모델’은 무작위로 추첨 선발한 사람들로 구성된 시민들의 작은 공중이 숙의토론의 단위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는 대표성을 확보하면서도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 공론장과 풀뿌리 공론장도 항상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소우주 모델과 결합되는 방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디지털 공론장’을 별도의 공론장 영역 및 실험의 차원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디지털 공론장이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을 전제하는 개념입니다. 디지털 공론장의 발전 및 확산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활동가 그룹 ‘빠띠’가 제작 및 운영하는 서울시의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 ‘민주주의 서울’을 일례로 들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서울’에 난임 시술 받는 사람이 주기적으로 꼭 맞아야 하는 주사를 보건소에서 맞게 해달라는 청원글이 올라왔습니다. ‘민주주의 서울’은 50명이 공감하면 부서가 답변하고, 500명이 공감하면 공론장이 열리고, 5천명이 공감하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답변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해당 의제는 공론의제선정단 회의에서 논의 후 공론화 단계를 밟아 제안된 발굴 사례로 서울시에서 당사자와 만나고 시민제안 워크숍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디지털 공론장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면, 디지털 공론장 또한 일상적 공론장의 핵심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됩니다.  시민사회 공론장, 풀뿌리 공론장, 디지털 공론장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강화한 시민들은 정부 주도의 거시적인 국가 제도 공론장에서도 점차 자신들의 주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시민주도 제도 공론장의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시민주도 제도 공론장’이란 시민사회가 기획 및 주도를 하고 정부가 운영 및 지원을 하는 거시적 제도 공론장이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공론장이 국가 차원의 하나의 거대한 영역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영역에서의 다양한 형태의 시민주도 공론장이 있을 수 있고 제각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조성되고 발전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공론장들이 서로 연결되어 선순환하는 네트워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공론장의 발전 방향은 민주시민들의 역량을 강화할 것입니다. 역량을 갖춘 민주시민들의 주도적 참여에 의한 숙의민주주의는 갈등 회피나 덮기가 아닌 근본적인 해결의 가능성을 높이고, 시민들의 의제 설정 권한을 확대할 것입니다. 정부의 관심 정책만이 아닌 시민들의 공익,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를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시민주도 공론장들의 발전은 국가 차원의 거시적 제도 공론장이 제 역할을 하는 데 필수이며, 좀더 정확한 의미에서의 거버넌스, 주민자치, 지방분권 등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토대가 됨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것입니다. 시민조차 되지 못한 배제된 자들의 임파워먼트를 통한 민주주의의 급진화  아직 좀더 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심화와 관련 된 논의들의 이면에는 시민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에 대한 강조가 공통적으로 존재합니다. 임파워먼트는 단순히 역량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힘ㆍ권력을 가지지 못했거나 적게 가진 자에게 더 많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 깊이 들어가면 시민 자신의 자발적 표출,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공간과 자원의 지원과 독려, 시민들의 조건과 요구를 표현할 수 있는 담론의 구성 등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요인들을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화와 요인들 간의 생산적인 관계의 발전 등을 포함합니다. 시민은 정의상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집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성소수자, 난민, 여성, 청년과 같이 충분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배제된 자들이 존재합니다. 시민들의 더 많은 임파워먼트도 중요하지만 ‘배제된 비시민’의 임파워먼트 또한 그에 못지않게, 혹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시민의 주도적 참여에 의한 숙의민주주의의 발전, 민주주의의 심화는 분명 더 나은 대의민주주의를 의미하지만, 급진적 실험을 통한 사회구조 혹은 제도의 변형까지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정치체제 역시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그 자체의 변형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점을 일부러 막아둘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급진적 실험의 성공과 성과는 제도 혹은 구조의 변형을 가능하게 해주는 맹아가 되며, 때로는 변형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청년 당사자들에게 예산 편성 등의 행정 권한을 상당 부분 직접적으로 위임하기로 한 서울시의 청년자치정부는 기존에 시도되지 않던 급진적인 실험으로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려는 전략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급진화는 시민조차 되지 못하는 배제된 자들의 임파워먼트와 급진적 실험에 의한 구조 혹은 제도의 변형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더욱 진전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숙의민주주의와 공론장의 발전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심화를 의미하지만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급진화와 잘 조화될 수 있습니다. 이상적 담화 상황에서의 합리적 토론에 의한 상호합의라는 의사소통 가능성을 지향하는 숙의민주주의의 관점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물신화하지 않고, 더 나은 민주주의적 제도로의 변형에 관한 합의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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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살해 후 자살한 끔찍한 악마들'을 위한 변명
글의 가독성을 위해 높임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무능력한 부모를 잘못 만난 탓으로 죄 없는 어린이가 희생당했다고 비난하는 당시 기사들의 '희생자'담론은 가족 집단동반자살의 원인을 부모의 죄로 사고하는 도덕적 결정론을 초월하지 못한다. 가부장에게 순진무구한 어린이를 잔인하게 죽인 죄인이라는 화살을 돌리는 것은 결국 부권적 개발논리의 허점을 묻지 못하고 가족내부의 폭력성으로 원인을 두는 순환론의 반복에 봉사한다. 희생자담론은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탈정치화한다. 이것은 이웃의 자살을 방조한 세태에 화살을 돌리는 태도와 유사한 한계를 갖는다. 암묵적으로 (가족단위의) 각자도생을 '책임감의 정당화'로써 전제하는 형식의 연민은 동정에 가까울 뿐이며 윤리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이정숙, 2017; p361)   "이 사건에 대해 박완서는 에세이를 남겼는데, TV뉴스로 보도된 사건에서 범인이 죽기 전에 소리 내어 한바탕 울었다는 점을 들면서 처자식까지 죽인 비정성을 간단히 극악무도하다고만 단정할 수 없는 사회의 부조리를 겨냥했다.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시 하지 말자는 생각은 모든 서구식 사고방식이 그렇듯이 듣기 좋고 합리적"이지만 우리 사회의 실상이 그런 사고방식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사형수의 자식으로 살아갈 아이들의 혐란한 인생을 그려보았을 때 총을 쏜 것이 그 나름의 부정(父精)이었을 거라는 견해이다. 그리고 그의 심성이 극한으로 몰린 것은 근명과 성실로는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고질적인 가난 때문임을 짚었다."(이정숙, 2017; p364) 오늘 쓸 글은 쓰기에 있어 다른 글보다 고민이 크다. 가정의 달인 5월에만 잇달아 발생한 이른바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현재 주요 담론에 (어찌보면) 역행하는 논지의 글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 역시 진정한 의미의 가족동반자살은 적어도 아동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설사 아동은 아동 나름대로 학교에서 교우관계도 안 좋고, 너무 이른 미디어 유해물을 접해 온 결과 삶이라는 것에 아동 나름의(?) 회의감이 들어 자살의 뜻을 부모와 일치했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책임은 아동의 그같은 죽음욕구가 형성된 과정을 쫒고 아동을 그같은 욕구로부터 잠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자녀 살해 후 자살'의 일부 원인에 '가정 문제'나 '가족 갈등'이 포함된다는 사실은 그들 모두가 '경제적 원인'으로 '내몰려 자살한' 이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최아라, 2022). 그런 이유로 '자녀 살해 후 자살'에서 "아동에겐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다-"라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 집단동반자살'이란 표현과 그 사건에 대한 일반대중의 '온정주의적'인 시각을 금기시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 많이 부족한 글이 될 것이다. 특히 많은 '자녀 살해 후 자살'은 그 '가해부모'가 자살에 성공한 경우가 많아 그들의 입장을 추론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객관적'으로 표시되는 여러 지표들이 있겠지만, '객관적' 지표들은 그들의 '주관적' 세계를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다. 이 글은 한 줄기로 매끄럽게 주제를 논하기보단 단편적인 여러 목차로 이 글이 담고있는 어떤 우려를 최대한 설명해보고자 했다. 필자의 어떤 글보다도 비판적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목차 1.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지 말라"는 명령    1-1.  '자녀의 성공'은 어떤 경로를 통해 상상되는가? 2. "내가 죽으면 우리 자녀는 어디로 가나요?" 3.  '실패에 대한 책임'과 '질타의 소비'를 통한 '성공신화'에의 굳건한 봉사    4. 맺으며   1.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지 말라"는 명령 이 명령의 내용은 얼핏 보기에 심플하고, 또 너무도 당연하다. 특히 이같은 명령은 "내 자식 훈육을 위해 내가 몇 대 좀 때리겠다는데 왜 말려!"로 대표되는 체벌적 훈육을 문제 삼을 때 핵심이 되는 명령이다. 이같은 체벌은 아동의 '신체, 정신'적 안녕을 가질 권리를 침해하기에 근절될 필요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같은 체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아동에 대한 '신체, 정신'적 안녕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으로 대표되는 '입시 지옥'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미 한참 전인 2009년에 처음 찍어낸 엄기호의 [아무도 남을 돌보지마라]에는 "항상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보살핀다고 해서 '헬리콥터 맘'이라 불리는 중산층 엄마들은 아이를 피트니스 센터에 보내고, [r] 발음을 잘하기 위해 혀 밑을 자르고, 일찍이 성형수술을 시키는 등 아이의 신체 자본 역시 관리한다."(엄기호, 2009; p60)라는 지적이 있었다. 혀 밑을 자르는 사례는 차마 믿을 수 없지만, 그 맥락에 대해서는 모두가 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대한민국 부모가 아동을 고문하길 좋아하는 사디스트는 아닐 테고, 부모 역시 이러는 '이유'가 있을 터. 그것은 분명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로 대표되는, 무한경쟁사회에서 자기 자식이 생존해낼 수 있도록 부모 나름의 '원조'라고 생각된다. 자녀가 성장해 사회에서 성공하느냐 마느냐, 아니 비록 '성공'이 아니더라도 '생존'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책임'이 온전히 한 '가족 단위'에 전가된 무한경쟁사회에서 부모는 자녀의 '삶(놀기, 더 먹기 등)'을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소유물'에 둘 필요를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식새끼를 '사람되게'하는 책임"이 부모에게 전가된 우리 사회에서 자녀의 실패는 곧 부모의 실패이게 된다. 정리하자면 A)'자기 자녀'가 우리사회에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생존하기 위해서)는 B)부모의 지원(강제)이 필요한데, C)그 필요한 부모의 지원이 불가능하거나 극히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빈곤, 가난, 차별, 계층 억압) D)'부모의 실패'가 곧 '자녀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바, E)이런 상황에서 "자녀를 부모와 독립된 인격체로 보라!"는 명령이 현실적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부모의 세계에서 자녀를 자신과 독립된 (운명적)인격체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녀를 두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곧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유기하는 것에 다를바 아니다. 적어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러하다.  학교폭력이 만연하고,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부터 부산의 돌려차기남까지 끈질기게 이어지는 여성혐오, 노동자의 끼임사고와 그럼에도 그치지 않는 산업재해, 그 시정에 대한 비웃음, 학교폭력 등. 이같은 현실 앞에서 "자녀를 그러한 삶에 홀로 노출시키는 것과 데려감으로써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그들'의 입장에서 '부모된 도리'는 무엇일까? 1-1. '자녀의 성공'은 어떤 경로를 통해 상상되는가? 그런데 부모가 피치못해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면서까지 바라는 '자녀의 성공'이란 무엇인가? 아니, 애초에 부모는 어떤 경로를 통해 '자녀의 성공'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 상상의 근거나 재료는 누구에 의해 제공되는가? 이렇게 질문을 펼쳐놓았으나 필자는 대답할 수 없다. 얼핏 신자유주의를 욕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신자유주의가 엄습하지 않았던 전근대 사회에서조차 '횟초리'로 표상되는, 자녀의 '인간됨'을 목표로 하는 훈육은 있어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자녀의 성공'을 부모가 무엇으로 상상하고, 또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논하려면 좀 더 큰 개념을 가져와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러나 필자는 부족하여 그러한 논의를 이끌어낼 능력이 안 된다. 해서, 목차 1-1은 질문의 형태로 남겨두고자 한다. 다만, 현재로 한정해 얘기해보자면, 입시지옥의 대척점으로 상징되는 '대안교육' 담론을 논의로 끌어올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레 적어본다. 예컨대 대안교육을 폄하하는 이들의 문장이나 표현을 통해 그들이 말하는 성공이란 무엇인지를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또는 대안교육에 들어선 이들이 말하는 성공이란 무엇인가?  2. "내가 죽으면 우리 자녀는 어디로 가나요?" '책임있는 부모'가 자기네 자녀를 살해하지 않고 자기들만 자살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남겨진(버려진) 자녀는 어디로 가는가? 통상 부모를 잃은 미성년 자녀는 '위탁' 또는 '입양'의 기로에 놓인다.  아동의 친척이 남겨진 아동을 맡아 키우는 걸 상상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해법은 우선 여전히 문제를 '가족'의 영역에 남겨두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친척은 이미 아동과 최소 3촌(寸) 사이인지라 거리감이 있으며, 친척이 자기네 자녀를 갖고 있는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빈곤한 부모'의 친척은 높은 확률로 1) 역시 빈곤하거나, 2) 빈곤에 허덕였던 부모를 내버려두었거나, 3)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정도로 (물적, 심리적) 거리가 긴 친척일 것이다. 이들에게 자녀가 위탁된들 '그들' 부모로서는 자녀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버려두는 것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필자가 알기로는 친척에게 남겨진 아동을 위탁해야 할 법적인 의무조차 없다.  "'가정위탁보호제도'는 원가정의 역할을 대신할 대리보호가정에 요보호 아동의 건강한 발달과 성장을 위임하는 공적 계약이며, 이를 가정외보호(out-of-homecare)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가정외보호 형태는 아동양육시설, 아동공동생활가정(그룹홈), 가정위탁으로 나뉜다."(박혜지 외, 2020; p66)  "가정위탁은 크게 아동과 혈연관계가 없는 일반가정위탁, 조부모가 양육하는 대리양육가정위탁, 조부모를 제외한 8촌 이내의 혈족이 돌보는 친인척가정위탁, 2세 이하 또는 학대 피해나 경계선 지능 아동 등 전문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아동을 돌보는 전문가정위탁, 긴급보호조치가 필요한 아동을 돌보는 일시가정위탁보호로 나뉜다."(https://www.newspim.com/news/v...) "가정위탁은 소규모 가정 내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단체생활을 하는 시설위탁보다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복지부의 아동보호 기본방향도 시설보호보다는 가정위탁 등 가정보호 조치가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여전히 시설보호가 압도적이다. ... 가정위탁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선 위탁가정 확대가 먼저 이뤄져야 하지만 위탁가정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모집 자체가 쉽지 않다. ... 보호아동을 24시간 내내 돌봐야 하는 위탁가정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 육아비용은 더 불어날 수밖에 없다."(https://www.newspim.com/news/v...) 가정위탁이 그렇다면 시설보호는 어떠한가? 시설 안에서의 경험은 어느 정도 운에 맡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아동의 심리적 고통은 별개로 치더라도 말이다. 중요한 건 시설에서 아동이 나와야 하는 순간, 즉 그들이 '보호종료아동'이 되는 순간에 있다. 비록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자산형성을 장려하는 중앙정부 차원의 제도인 '디딤씨앗통장'이 있지만, "후원자의 후원금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여 운영되는 한계가 존재한다."(김규리 외, 2021; p29)  경제적 자립을 넘어 "자립준비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 심리적 자립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https://m.khan.co.kr/national/...)는 지적은 여전히 심리적으로도 많은 지원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읽다보면 느껴지겠지만 목차2의 글은 필자가 논문이나 인터넷 뉴스를 '훑어보아' 정리한 자료로서, 그 내용의 정확성 등을 의심할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내용을 훑은 이가 필자가 아닌 '자살로 내몰린 부모'라면, 그 내용이 불안정하거니와 내용의 분위기도 결코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렇다고 공공이 대놓고 "안심하고 자녀분을 남기고 자살하세요! 남겨진 자녀는 우리가 이러이러한 과정을 통해 안전하고 행복하게 키워드리겠습니다!"라고 광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자살을 고민 중인 부모가 공공기관에 전화로 남겨진 자신의 자녀가 어떻게 될지 문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살을 국가의 실패로 바라보는 현상황에서 그들은 통치 권력에 포섭되고 싶지 않을 거니까.  즉, 부모에게 있어 남겨진 자녀가 가게 될 어떤 곳도 희망적인 곳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곧 부모에게 있어 자녀의 행복한 삶을 상상할 근거가 부재하다는 것이고, 차라리 '지옥'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걱정되는 우려의 근거들만 잔뜩임을 가리킨다.  2023년 4월 12일 고영인, 인재근 의원과 세이브더칠드런 등이 공동주최한 "'개인의 비극' 너머 대안을 묻다"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제자들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남은 자녀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보았"다(https://www.sc.or.kr/news/stor...)라고 말하는 점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해야 한다. 3.  '실패에 대한 책임'과 '질타의 소비'를 통한 '성공신화'에의 굳건한 봉사 '자녀 살해 후 자살'이란 용어는 '가족동반자살'이라는 용어가 '아동 살해 가해자'인 부모를 향해 "얼마나 힘들었으면-"하고 '온정주의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막고자 제안된 용어다. 위 국제 심포지엄 참가자들 중 일부는 "온정주의와 연결되지 않도록 자녀 살해 후 생존(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주면 좋겠다."(https://www.womennews.co.kr/ne...)고 의견을 냈다고 한다. '처벌'이란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가리킨다. 처벌이 존재함을 공포하는 것으로 다른 이들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경고의 기능도 겸한다.  상습적 아동학대나 음주, 방임, 또는 가족갈등 등을 원인으로 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이 아닌 경제적 빈곤 등을 원인으로 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에서 '잘못'은 곧 '경제적 실패'이다. (필자는 앞의 요인들도 결코 경제적 어려움과 연관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건 생존의 과정에서의 역기능이 아닐까?) 이같은 '경제적 실패'가 '사건'의 형태로 사회에 드러나면 사회구성원이 공유하고(기대고) 있는 '체제'에 의문이 가해진다. "과연 지금의 체제는 잘 작동하고 있는가?" 이 의문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야 한다. 이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담론'이라면, 담론의 주조자는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언론, 특히 신문은 기사의 작성에 있어 작성자의 의도가 개입된다. 작성자의 의도를 반영한 언어로 기사가 작성되고, 그 기사가 대중 사이에 공유되며, 특정 사안에 대한 대중적 차원의 담론이 형성된다. 성소수자 집회를 다루는 기사에서 작성자의 의도로 '에이즈의 확산!'이라던가 하는 언어가 강조되거나 장애인 탈시설 시위를 두고 '일반시민을 볼모로...'와 같은 언어가 대표적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언론은 '가족동반자살'이라는 언어를 지양하고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언어를 지향하는 것으로 '가해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는 건 아닐까? 필자는 이 점이 우려스럽다.  이렇게 체제의 결함 또는 모순에 의해 발생한 사건에서 가해자를 개인으로 한정 지어 그 개인에게 대중이 질타하는 것을 '성숙한 시민의 태도'로 생각하는 현상이 확산될수록, 체제를 의심하지 않고 싶어하는(불안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는) 개인들이 '실패한 개인'을 향한 질타에 참여해 질타를 소비할수록, 제1가해자라 할 수 있는 체제는 손 안 쓰고 코 푸는 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단지 이런 차원의 우려에서, 필자는 개인을 악마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 악마가 조주빈이나 조두순이라 하더라도, 필자는 악마들의 서사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4. 맺으며 변명이지만, 3번 목차의 내용이 좀 마음에 안 든다. 사실 글을 쓰던 도중 필자의 실수로 내용이 전부 삭제되고는 되돌려지지 않아 다시 쓴 결과 내용이 논리적 정합성이나 타당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시간에 쫓겨 쓰는지라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캠페인즈에도 <임시저장> 기능이 생겼으면 한다... (실수로 ctrl+z를 누르니 글이 태반이 싹 날아가더군요...) - 필자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의 해결책 중 하나로 '가족단위의 돌봄'을 뛰어넘는 돌봄 체계의 필요를 주장하고 싶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이웃과 이웃 간의 단절은 당장 부모가 죽으면 남겨진 자녀를 누가 돌볼지, 아니 애초에 자녀가 남겨졌음을 누가 발견이라도 해낼지 우려하게 만든다. 비단 아동뿐 아니라 돌봄을 받는 장애인이나 노인도 이에 속한다.  돌봄의 책임이 온전히 '가족'에게 있지 않아 가족이 무너지더라도 누군가 다른 이가 아동에 대한 돌봄을 '기꺼이' 이어나갈 수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용어가 진정으로 의미있는 언어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돌봄의 책임이 온전히 가족에게 있다면, 그래서 부모가 자녀의 독립된 인격체를 상상하기 어렵다면, '가족동반자살'이란 용어는 결국 설득력 있는 언어가 아닐까? 어차피 자녀가 실패하든, 부모가 실패하든, '가족'이 실패하는 것은 똑같기 때문에.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의견 주시면 더더욱 감사합니다. -참고 및 인용 1.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엄기호, 2009 2.[1960-70년대 '가족 집단동반자살'을 둘러싼 징후적 불안의 문제], 이정숙, 2017 3.[1950~60년대 한국사회 경제구조 변화와 가족동반자살], 정승화, ? 4.[가정위탁보호가 종료된 청소년들의 자립과정 경험에 대한 질적연구], 박혜지, 이정화, 2020 5.[아동양육시설 보호종료아동이 경험한 디딤씨앗통장의 의미에 관한 질적 사례연구], 김규리,김용회,한창근, 2021. 6.[자녀살해 후 자살에 관한 연구 : 주요일간지를 중심으로], 최아라, 2022 7. 그외 링크로 삽입한 뉴스와 글
재택이 최고의 복지라는데, 엔데믹과 함께 유연근무도 회귀해야 하나요?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가장 큰 혁신은 바로 노동현장이었습니다. 글로벌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재택과 원격근무와 같은 유연근무제가 탄력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겪는 출근전쟁을 벗어나 편안한 공간에서 아이도 케어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연근무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직장인 830명을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자의 60%가 협업 및 소통에 있어서도 재택근무를 더 선호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77.5%가 사무실 출근과 재택을 병행했을 때 업무에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2022.7.1. 재택근무 경험자 60% "사무실 출근보다 협업 수월", 출처 뉴시스).  또한 유연근무는 육아휴직보다 워킹맘과 워킹대디의 죄책감과 부담을 덜어주고, 어느 저출산 복지정책보다 일·가정 양립에 기여하며, 기업의 인력손실도 덜어준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신입 구직자의 경우에도 사무실 출근과 재택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를 선호하는 경우가 64.7%로 과반을 차지하며 변화된 근무형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보여줬습니다(2023. 4. 13 취준생이 원하는 기업? “100% 재택보다 출근·재택 병행, 점심 제공”, 출처 조선일보). 그러나 엔데믹 이후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요청했습니다. IT 기업의 경우 “‘판교등대’가 다시 밝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적 악화를 이유로 재택근무를 축소했습니다. 넥슨, 엔씨소프트 등 주요 게임사들은 엔데믹 이후 사무실 출근 체제로 전환을 했고 카카오 공동체도 근무 체제를 변경했습니다. 상시 재택근무와 워케이션을 내세웠던 야놀자 역시 돌연 재택근무를 종료해 직원들 사이에 큰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직원들은 경기 침체로 인한 수익 저하를 재택을 핑계로 댄다는 소리가 나올만큼 일방적인 기업의 결정에 납득하기 어려움을 토로했고, 여파는 IT기업 노조 설립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3.5.1. '판교등대' 재현에 촉각…재택 양극화도 불만, 출처 뉴스토마토). 그렇다면 유연근무는 기업의 말처럼 업무 효율성과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요?  실제로 재택근무가 동료 및 멘토와 연결되지 않아 다양한 성장 기회를 놓치고 자발적인 아이디어 생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도 있습니다.(2023.4.23. 원격근무가 생산성이 높다고? "헛소리", 출처 포춘코리아).  그래서 최근 엔데믹 이후에는 이러한 단점을 상쇄할 ‘워케이션(Workcation)’ 실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실험은 현재까지 기업과 직원, 지역경제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한국관광공사가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워케이션 제도가 업무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61.5%에 달했습니다. 직무 만족도 증대(85%), 직원 삶의 질 개선(92%), 복지 향상(98%)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직원이 다 따로 떨어져 일하는 재택근무와 달리 워케이션 제도는 한시적 기간에 일부 직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하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2023. 3. 25 재택근무는 줄어도… 휴양지서 원격근무하는 ‘워케이션’은 계속된다, 출처 조선경제). 갑작스런 펜데믹은 노동유연화를 앞당기는 혁신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심찬 혁신의 시작은 엔데믹과 더불어 추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자의 선택권 확대는 기업의 피할 수 없는 과제임은 분명해보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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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외교 vs 굴욕외교? 한일정상회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난 7일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의 ‘셔틀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가치외교’를 내세워 일본과 안보, 경제, 글로벌 이슈 등을 협력해나갈 것을 밝혔는데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미래 지향적 협력 관계가 확고해졌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대통령이 일본에 저자세로 나가며 통 큰 양보를 한 데 비해 얻은 게 별로 없다는 ‘굴욕외교’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외교는 양면게임’이라고 했던 퍼트넘 교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로버트 퍼트넘은 외교는 ‘국가 간 협상인 외부게임’과 ‘국내정치인 내부게임이 동시에 진행되는 양면게임’이라고 말했는데요.   흔히 외교는 국가와 국가 간 협상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국내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대외협상에 성공해도 국회, 기업, 시민단체 등 복잡하게 얽힌 국내 이해관계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정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동안 한일관계가 진전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국회, 시민사회의 동의 없이 이뤄진 대표적인 협상이었으니까요. 이번 한일정상회담도 이런 측면에서 우려되는 지점이 많은데요. 국내 구성원들을 충분히 설득하려는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평가가 엇갈리는 이번 한일정상회담 관련 주요 쟁점들을 정리해봤습니다.  1. 과거사 문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비롯해 역사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말씀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한일 공동선언의 표현 대신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말을 전했는데요.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는 정부를 대변한 것이 아닌 총리 개인의 의견이라며 선을 그었는데요. 과거사 관련 자신의 발언에 대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말로 명확히 이해해도 되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일본 총리 자격이 아니라 '사견(私見)'이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는 일본 내 극우파 지지기반층을 의식해 정부를 대변하진 않았으나 한국 내 여론을 의식해 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분석됩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여야 정치권, 일본 언론은 각각의 입장을 표명했는데요. 1) 시민단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일본 과거사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추구를 위해 610개 시민단체들의 결성체인데요.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입장문을 통해 "일본의 '호응'은 고사하고, 한마디의 사과 표명도 없는 '빈 손' 회담이었다. 다시 한번 윤석열정권 깡통외교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혹평했습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일제강제동원 관련해 기시다 총리의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게 된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발언을 두고는 ‘교활한 물 타기 발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는 한일 정상회담을 규탄하거나 환영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리기도 했는데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굴욕외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5가지 현안에 대한 입장이 분명히 정리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건너편에는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한일정상회담을 환영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는데요,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환영하고 그동안 얼어붙은 한일관계가 풀리기를 기대한다며, 일본과 군사동맹 구축을 통해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 여야 정치권 여야도 극명한 입장차이를 드러냈는데요. 국민의힘은 “한일관계가 진일보했다”고 호평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공허 그 자체”라고 평가 절하했습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양 정상은 지난 3월 합의했던 안보협력 분야와 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 정식출범을 앞두고 있는 한일미래파트너십기금 등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한일 간 우호적인 '셔틀외교'로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한일관계의 새 장이 열렸다"고 치켜세웠습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한일관계 정상화가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며,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오염수 방류 문제 외에도 반도체 공급망의 구축, 첨단산업에 관한 공동연구,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등 많은 생산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사에 대해선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없었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 전향적 해법을 제시했을 때 보다 진전된 입장표명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날로 심각해지는 북핵 위기 앞에서 이제 두 세대에 걸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보편적 인권 문제인 대한민국 역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굴욕외교를 계속하겠다며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입장이 충실히 반영됐다"며, 국민 앞에서 일본 입장을 대변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국민은 참으로 참담하고 허망하다"고 논평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에 식민침략에 대한 면죄부 발언을 줬다”며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강제동원 배상 재검토는 언급조차 없었다.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해서도 한마디 언급을 못 했고, 우리의 외교적·군사적 자주권을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종속시킨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한국정상회담은 “‘물잔은 너만 채우라’는 일본 측의 암묵적 요구에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셔틀 외교 복원이라고 자랑하지만 ‘빵셔틀 외교’ 같다는 국민 일각의 자조적 힐난에 귀기울여야 한다” 며 지적했습니다.  3) 일본 언론 일본 언론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입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호전되어 협력해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요. 다만 강제징용에 대한 니시다 총리의 발언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렸습니다.   대표 보수언론인 산케이 신문은 “징용에 대해서는 애초에 일본 측이 사과하거나 배상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많은 나라에서 시행한 노동동원에 불과하고 임금도 지급했다.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누명을 쓴 일본이야말로 피해자인데 총리의 발언은 가해자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주객이 전도된 잘못된 발언으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는데요. 반면, 대표 진보언론인  아사히 신문은 “과거사 문제는 국민 정서와 정체성과 관련된 민감한 주제다. 조약이나 협정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를 직시하는 자세를 계속해서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외에 요미우리 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유감 표명은 윤 대통령의 정치 결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국 내 반발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총리는 상대 입장을 배려하는 것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도쿄신문은 “‘마음이 아프다’는 총리의 표현은 그 어느 때보다 감정이 담긴 표현으로 한국 내에서 환영하는 목소리가 많다. 다만 우회적인 표현이 많았다. 보다 직접적으로 반성과 사죄를 보여줌으로써 자국 내 비판을 받을 각오로 대일관계 개선에 나선 윤 대통령의 기개에 부응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습니다.  2.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윤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했다”고 밝혔는데요. 하야시 요시야마 일본 외무상은 “한국 전문가 현지 시찰단 파견, 국장급 협의 등의 기회를 통해 오염수 해양 방류의 안전성에 대한 한국의 이해가 깊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시찰단이 오염수의 안전성을 평가하거나 확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 ‘보여주기식’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데요. 실제로 작년 3월 대만도 후쿠시마에 8명의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도쿄전력의 안내에 따라 설명을 듣는 수준에 머물렀고, 짧은 기간에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형식적’이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우리 시찰단도 현장 점검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실제 체류 기간도 이틀밖에 안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큰데요. 이 때문에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순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자칫 일본에 ‘오염수 방류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요. 지난 2019년 4월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가 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새로운 쟁점을 제기하며’ 다시 WTO에 제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데요. 그 새로운 쟁점이 이번 시찰단 파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분위기 속에서 일본이 이러한 조치를 바로 취하진 않겠지만 언제든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잠재적 현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정부는 2018년 WTO 1심에서 일본에 패소한 바 있습니다. 수입을 규제하는 잠정조치의 적법성을 놓고 다퉜는데, ‘합리적 기간 안에 특정 요건이 충족되면 수입 규제를 해제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WTO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따졌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일본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때문에 해당 부분을 두고 WTO 상소기구에서 다루게 되면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3. 한미일 공조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한미일 정상회담’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는데요. 이에 대해 북한의 핵무기 고도 발달과 안보 위협으로 ‘한미일 공조는 불가피하다는 입장’과 ‘동북아 신냉전 구도가 형성될 지도 모르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SNS를 통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며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되고 안전한 인도태평양’을 발전시키고자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울과 도쿄가 긴밀해질수록 미국의 미사일 방어 역량도 강해진다”며 “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져)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살피는 동맹의 능력을 키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반면, 중국의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한국과 일본을 ‘기묘한 침실 파트너’라고 비유하며 비판했습니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 요구에 한국과 일본이 부응한 것이라며 회담 성과를 깎아내렸는데요. “한일 양국이 갑자기 가까워진 것은 두 나라 우파 정당(국민의힘과 자민당)이 이념을 공유하기 때문”이라며, 윤석열 정부와 보수 진영이 권력을 잃으면 바뀔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가 개선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여러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인데요. 무엇보다 국내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대통령의 행보가 우려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임 1년이 다 돼가도록 야당 대표와 단 한 차례의 만남도 갖지 않는 모습, 국내 언론과의 소통은 원천 차단한 채,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만 지속하고 있는 점, 공론화 과정 없이 국가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강행하는 모습 등이 그렇습니다. 일본에게 보여준 것만큼, 국내 정치에서도 그러한 양보와 타협, 소통의 자세를 취해나가면 좋을텐데요.  여러분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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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정상회담 총평: 기억할 수 있는 건 모두 잊었다오
어제의 하늘 빛 오늘 또 푸르고 / 어제의 하늘 빛 오늘 또 밝아도 / 어제는 어제, 지난 건 꿈이라오 / 눈짓도 몸짓도 다정한 음성도 / 기억할 수 있는 건 모두 잊었다오  -임선경 작사, 최종혁 작곡, 윤시내 노래 <어제는 어제(1980)> 2023년 5월 7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수상과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 정상이 한국에 온 것은 12년만이다. 알려진 바로는 윤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한미 정상회담을 할 때 일본에 만나자고 의견을 보내서 시작된 회담이라고 한다. 뭐, 무엇이 되었건 안 만나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언론이 12년만의 셔틀외교라는 점에 대해 나름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 한일관계도 물론 좋아지는 게 나빠지는 것보다야 좋을 것이다. 문제는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좋아지느냐다. 마음 아픈 과거를 잊어야 미래로 간다? 불과 며칠 전 한국에서는 주어와 관련하여 영문법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있었는데, 내용은 이것이었다. "유럽은 지난 100년 동안 여러 번의 전쟁을 경험했지만 전쟁 중인 국가들은 미래를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았습니다,"라고 윤석열 대통령은 말했다. "저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100년 전 우리의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정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 설득력 면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Europe has experienced several wars for the past 100 years and despite that, warring countries have found ways to cooperate for the future,” he said. “I can’t accept the notion that because of what happened 100 years ago, something is absolutely impossible [to do] and that they [Japanese] must kneel [for forgiveness] because of our history 100 years ago. And this is an issue that requires decision. … In terms of persuasion, I believe I did my best.” (The Washington Post.2023.04.24.) 독일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수상이 유대인 사망자들의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일은 물론 참으로 역사적인 일이고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한 적은 없다. 혹 누군가가 일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손 쳐도 그것이 진짜 무릎을 꿇으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는 사람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있었던 한일회담에서도 별다를 것 없이 똑같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5월 7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겨레.2023.05.07.). 윤 대통령은 이런 류의 이야기를 2023년 들어서 계속 반복하고 있다. 과거를 이야기하면 미래로 못 나아가는 걸까? 좋다 싫다 이전에 이해가 안 간다. 기시다 수상은 식민지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私自身、当時、厳しい環境のもとで多数の方々が大変苦しい、そして悲しい思いをされたことに心が痛む思いです 저 스스로는, 당시 엄혹한 환경 하에서 다수의 분들이 매우 힘들고, 그리고 슬픈 생각을 하셨다는 점에 마음이 아픕니다. 일본에서는 이 발언이 꽤 화제가 되었다. 이런 걸 사과이며 역사 인식의 진일보라고 칭찬해주는 한국의 보수언론이나 일본의 진보언론도 문제지만, 일본의 우익, 극우 언론에서는 기시다 수상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로타니 카츠미(室谷克実)라는 저널리스트는 “내년 한국 총선거나 2027 대선에서 보수파가 지면 한국은 완전히 좌익정권이 된다. 보수파인 윤 정권을 도와야 한다. 이번 서비스는 한국의 여론을 대상으로써는 나쁘지 않다”라 평했고 (夕刊フジ.2023.05.08.) 자민당의 시게키 토시미츠(茂木敏充) 간사장은 “한국측의 적극적인 대응에 맞추어,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라 평했다 (産経新聞.2023.05.08.). 혹 기시다 수상의 발언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아무리 기를 쓴 들, 일본 안에서 이런 평가가 나온다면 이것을 진정한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이 발언을 두고 “본질을 회피하는 발언”이며  “식민지 시기 있었던 사실에 대한 인정과 책임, 사죄는 없었다”고 평가하고 “일본 정부의 이전 입장을 확인하는 정도”라고 평가했다 (경향신문.2023.05.07.). ‘마음이 아프다’는 이미 고인이 된 아베 신조를 포함해 일본의 전 총리들이 계속 해오던 말이다.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역시 이 발언에 대해 “외교적인 자리에 나와서 개인적으로 가슴 아프다고 하는 건 책임 회피를 위한 ‘물타기’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경향신문.2023.05.07.)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도 "기시다 총리 개인적으로는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더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냉정히 보면 '사죄와 반성'이 한마디도 안 나왔다"고 평가하면서 "(기시다 총리가) 사견임을 전제로 얘기했단 점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뉴스1.2023.05.07.) 그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곧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에 참석하면서 원폭 위령비에 참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일본과 관련해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뉴스가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다. 그렇게 안전하면 방류하지 말고 갖고 있으면 될텐데 왜 이렇게 기를 쓰고 방류를 하려는 걸까? 이와 관련해 며칠 전, 일본 외무성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량이 한국 고리 원전보다 더 적다는 동영상을 만들었고, 일본의 고노 다로(河野太郎) 디지털상 겸 소비자담당상은 직접 영어로 후쿠시마 원전이 고리원전보다 안전하다고 설명하는 홍보 동영상을 찍었다. 이 와중에 한국 시찰단이 후쿠시마 원전에 가겠다는 결정이 이번 회담에서 나왔다.  기시다 후미오 수상: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대한 한국 전문가 현장시찰단의 파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본의 총리로서 자국민 그리고 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형식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을 (말씀드립니다.) (YTN.2023.05.08.) 이를 두고 외교적 성과라고 자찬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찰단은 검증단과 다르다. 실제로 효력을 지닌 조치가 없다면 그냥 보고 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에 대해선 양국 모두 아무 말이 없고, 그저 “나쁜 일은 안 합니다” 같은 수준의 말만 하고 있다. 앞으로 실무진에서 어떤 회의를 하겠다는 말도 없다. 황당한 일이다.   최지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말을 들어보면, 검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하는 것이고 우리는 시찰만 하고 오는 것으로 읽힌다”고 평가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일본의 원자력 오염수 방류를 정당화하는 행위로 시찰단이 오용되고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향신문.2023.05.07.)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도 8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다른 시각을 수용해서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자세도 아니고, 그냥 한번 둘러보는 걸 허용하겠다는 식이라 (일본에) 면죄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 말하고, 일본측에서 시찰 가능한 날짜(5/23~24)를 지정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날짜까지 적시한 건 그 날짜에 가능한 사람을 이미 내부적으로 구성해놨다는 의미고, 대개 정부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 문제를 우려하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에게도 가능성을 타진했을까? 만약 했다 해도 기껏 한두명 형식적으로 넣었든지, 저건 지금 짜고 치는 것”이라고.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2023.05.08.) 미국의 승리?  이번 회담을 두고 블룸버그 통신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The second meeting in two months between leaders of Japan and South Korea after years without a formal summit marks another win for the Biden administration, which has sought to unite the allies to cooperate against North Korea and undercut China’s growing power. 수년 만에 공식 정상회담 없이 두 달 만에 열린 한일 정상의 두 번째 만남은 동맹국들의 대북 공조와 중국의 커지는 힘을 약화시키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또 다른 승리를 의미한다. (Bloomberg.2023.05.07.) 국제 사회의 역학관계가 변화하면서 점점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의 줄에 설 것을 강요받는 분위기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두 나라간의 군사 충돌을 이야기하면서 그 때 한국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논하기도 한다. 개인의 일이건 국가의 일이건 미래야 알 수 없는 것이니 대비를 안 할 수야 없을 것이고,이런저런시나리오를상상해보는것도괜찮다고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약소국이 굳이 편짜기를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한미 정상회담의 후속편이다. 미국도 일본도 중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미국도 여전히 첨예한 사안에 대해선 중국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고, 두 나라 모두 외교 실무진은 물론 국회의원, 시민단체 차원의 교류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통 큰 외교는 도박이다. 그것도 세끗 짜리 패를 손에 들고 상대의 손에 광땡이 없기를 바라는 식의 도박이다. 무슨 가치인지 명확히 설명도 못하는 가치 외교는 이제 그만하자.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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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
시티즌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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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중 쉬는시간 OR 조기퇴근,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지난 3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의 내용 중에는 다른 이슈(최대69시간 근로라던가, 근로시간저축계좌제라던가...)에 묻힌 감이 있지만, 아르바이트, 시간제노동자 등 하루 근로시간이 짧은 노동자에게 직접 화두가 될 내용이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54조에서는 하루 4시간 일할 때 30분 이상, 8시간 일할 때 1시간 이상 ‘근무시간 중’에 휴게시간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하루 4시간 일하는 경우 휴게시간 30분이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의견에 따라 근무시간 중 30분 휴식 대신 30분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입법 개선안이 제시되었습니다. 관련하여 2022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근로시간 4시간인 근로자 일 끝나면 휴게 없이 바로 퇴근해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4시간 근로의 경우 노동강도가 세지 않은 분야에서는 사용자와 근로자 합의로 휴게시간을 선택하는 방안 ▴정부기관 청소근로자는 노사 합의로 계속근로 4시간 내에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방안 ▴청사관리 규정에 청소근로자 휴게실 면적을 규정해 청사 설계 시부터 반영하도록 하는 방안 등에 대해 제도개선 검토를 내용으로 합니다. (2022.1.4. 국민권익위원회) 마트에서 주말에 단시간으로 일 했을 때 30분 휴게시간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쉴 곳도 할 것도 마땅치 않아서 푸트코트에 앉아 멍때렸던 기억이 납니다. 판촉 일 특성상 혼자 일하는 것이었고 연락처를 세워 놓고 쉬러 가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혹시나 고객이 제가 쉬는 동안 구매를 원하면 푸트코트에 앉아 있다가 달려가서 결제했습니다. 실제로 전화가 오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언제나 전화가 올 수 있다는 긴장 상태에 있다 보니 ‘이럴 거면 안 쉬고 말지’하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그런데 물류센터에서 일한 날을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물건을 들고, 또 옮기느라 흐물거리는 팔다리에 휴게시간 30분은 있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휴게공간까지 왔다 갔다 하면 30분 중 절반이 날아가기 때문에 일용직노동자가 계단에 주욱 앉아 –숙련자들은 어디선가 상자를 구해서 깔고 앉기도-있던 장관에 관해서도 할 말이 있지만?)  한편, 시간제근로자가 아닐 때는 어떻게 될까요? 하루에 8시간 일하는 직장인의 경우 통상 휴게시간 1시간은 점심시간입니다. (고용노동부는 4시간 이상 8시간 미만으로 일하며 30분 휴게를 보장받는 노동자에 관한 방안만 발표했습니다. 2022년 국민권익위의 발표 내용도 단시간근로자에 한정하는 내용입니다.) 정책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8시간 일하는 노동자를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현행과 같이 일률적으로 점심시간 1시간을 보장하는 방안, 30분 휴게에 선택권을 두는 위의 안을 일부 절충하여 30분은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시간으로 하고 30분만 근로시간 중 휴게로 보장하는 방안, 휴게시간 전체를 조기퇴근 으로 전환해 일하는 가운데 전혀 쉬지 않는 선택권도 가능하게 하는 방안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쉼’이 보장되지 않으면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는 말,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는 말에 백번 동의하면서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쉼에는 ‘차라리 퇴근을...!’이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렇지만 노동강도가 높은 현장에서 그 쉼이 보장되지 않았을 때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생각하면 휴게시간 보장은 생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선택권이라는 허울만 남아 실제로 쉼을 선택하려는 사람도 조직문화나 분위기 때문에 다 같이 쉼 없이 일해야 하는 ‘무휴식 무선택권’의 상황이 오지는 않을지 염려가 됩니다.  ?'휴게시간 선택권 강화' 개선안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노동자의 휴식은 선택의 문제일까요? 선택할 수 있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할까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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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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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퍼레이드는 안된다는 서울광장,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곳인가?
서울시가 지난 5월 3일 오전,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습니다. 결정은 서울시 열린광장운영 시민위원회를 통해 이뤄졌고요. 서울시는 어떤 이유로 불허결정을 내렸을까요? 이에 대해서 백아인 캠페이너님이 ‘서울시, 퀴어축제조직위 서울광장 사용 불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를 통해 잘 설명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오늘은 서울광장과 서울특별시 열린광장운영 시민위원회의 목적과 역할이 무엇인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무대로서 서울광장, 그 관계와 역사를 살펴볼게요.  글을 읽고 서울시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럼에도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개최를 응원하신다면, 댓글로 여러분의 의견을, 응원의 목소리를 표현해주세요. 여러분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닿아 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모르니까요.? 서울퀴어문화축제란?  서울퀴어문화축제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어우러져 즐기는 장을 만드는 것”을 비전으로 삼아 매해 여름 서울에서 개최되는 복합/공개/문화행사입니다. 축제의 주요 행사로는 서울퀴어퍼레이드, 한국퀴어영화제가 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집니다.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 서울시가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열리는 행사 중 하나인 셈이죠. (국내의 퀴어문화축제가 서울에서만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2022년까지 전국의 총 9개 지역(서울, 대구, 부산, 제주, 경남, 광주, 전주, 인천, 춘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어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역사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퀴어축제입니다. 2000년에 ‘퀴어문화축제-무지개2000’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대학로를 주 무대로 거리퍼레이드를 열었고, 연세대학교에서 공연과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이후 ‘퀴어문화축제-무지개OOOO', '퀴어문화축제'라는 명칭을 거쳐 2018년 현재의 ‘서울퀴어문화축제’로 명칭을 변경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했습니다. 축제 개막식과 퀴어퍼레이드의 무대가 서울광장이었다는 뜻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 비대면 축제를 했던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말이죠. 서울광장과 서울퀴어문화축제, 단 한번도 쉽지 않았던 여정  2015 : 서울광장 사용 허가 2016 : 서울광장 사용 허가 2017 : 서울광장 사용 허가 2018 : 서울광장 사용 허가 2019 : 서울광장 사용 허가 2020 : 온라인-비대면 축제 2021 : 온라인-비대면 축제 2022 : 서울광장 사용 조건부 허가 2023 서울광장 사용 불허 2015년부터 2019년, 서울광장 '사용수리를 연기'한 서울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광장 사용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이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2019년 서울시 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서울시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회에 걸쳐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사용신고 처리를 부당한 이유로 지연시켰음을 지적했습니다. 서울시 인권위원회는 이를 성소수자 차별행위로 보고 서울시장에게 재발방지를 위한 지도와 감독을 권고했어요. (경향신문, 2019.10.23) 인권위가 이러한 판단을 내린 것은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이하 서울광장 조례)에 명시된 예외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15년 부터 서울광장에서 평화롭게 행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서울특별시 열린광장운영 시민위원회의(이하 시민위원회)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죠.  서울광장 사용은 신고제가 원칙입니다. 서울광장 조례 6조에 따르면 서울시장은 사용신고에 대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원칙적으로 사용신고를 수리해야합니다. 조례에 명시된 사용신고 수리 예외의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광장의 조성 목적에 위배되거나 다른 법령 등에 따라 이용이 제한되는 경우   시민의 신체ㆍ생명 등에 침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동일 목적의 행사를 위해 7일 이상 연속적으로 광장을 사용하고, 다른 행사와 중복될 경우.  그리고 해당조항은 또한 “시장은 광장 사용신고자의 성별ㆍ장애ㆍ정치적 이념ㆍ종교 등을 이유로 광장 사용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시합니다. 이처럼 서울시가 서울광장 사용신고 수리를 미루는 대표적인 방식은 예외규정을 적용해 시민위원회에 서울광장 수리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서울광장 조례 제7조에 따라 서울시장은 광장사용신고를 접수받은 경우 원칙적으로 48시간 안에 신고수리여부를 통지해야합니다. 다만, 위에서 적은 6조 각 호의 해당될 때에만 위원회의 심의를 거칠 수 있는 것이죠. 시민위원회의 심의가 진행되는동안 신고수리 통보는 자연스레 지연됩니다. 서울시는 타당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사용신고의 수리를 미루고, 시민위원회의 심의에 수리여부를 판단하게 한 것이죠. 그리고 시민위원회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차례 모두  ‘서울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의 서울광장 사용이 조례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신고처리의 지연은 행사개최에 분명히 영향을 줍니다. 서울광장은 사용 90일 전부터 광장사용 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2개월이나 수리를 미루면 행사개최 한 달 전 개최지가 확정되는 것인데, 공간 활용계획을 사전에 세울 수 없으니 차질이 생길 수 밖에요. *용어 설명 서울특별시 열린광장운영 시민위원회  서울특별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1조에 따르면 시민위원회는 서울광장ㆍ청계광장 및 광화문광장의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두는 기관입니다. 이에 따라 시민위원회는 구체적으로 세 광장의 운영에 관한 기본계획 및 연간계획에 관항 사항, 광장 운영의 전반적인 기준결정에 관한 사항, 그 밖에 광장의 사용 및 운용과 관련하여 시장 및 위원장이 부의하는 중요사항을 심의합니다.  위원회는 학식과 경륜을 갖춘 학계·전문가·시민 6명과, 서울특별시의회 시의원 4명, 서울시 행정국장과 균형발전기획관 2명의 공무원 총 12명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출처: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2022년, 서울광장 사용 ‘조건부 허가’를 내린 서울시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퀴어문화축제와 퀴어퍼레이드는 온라인-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2022년 드디어 2년만에 오프라인으로 퀴어문화축제가 다시 개최되었죠. 그런데 이때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에 대해 ‘조건부 허가’를 내립니다. 2022년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7월 12일부터 7월 17일까지 6일간 서울광장을 사용하겠다고 신청했지만, 서울시는 7월 16일 하루에 대해서만 광장사용을 허락했습니다. 축제반대 집단과의 충돌 가능성을 이유로 들면서요. 동시에 ‘과도한 신체노출이나 유해한 음란물을 전시하거나 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겁니다. (한겨레 21, 2022.06.17) 2023년,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서울시 그리고 올해,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기에 이릅니다. 대신,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예정 되었던 7월 1일에 서울광장에서는 CTS문화재단의 청소년·청년을 위한 회복콘서트가 열릴 것이고요. 서울광장 조례 6조에 따라 사용일이 중복된 사용신고에 대해서는 ’어린이 및 청소년 관련 행사’를 우선수리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조례에 따른 적법한 조정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반발했습니다. (불허 결정의 구체적인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캠페인즈 내 백아인 캠페이너님의 ‘서울시, 퀴어축제조직위 서울광장 사용 불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를 참고해 주세요!) 서울광장, 누구를 위한 곳인가? 서울광장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공익적 행사 및 집회와 시위의 진행 등’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전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사용을 시민위원회에 회부하여 수리를 미룬 것은, 사실 서울시가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공익적 행사 및 집회와 시위’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봤음을 드러냅니다. 수리가 원칙인 서울광장 사용신청에 대해 위원회에 신고수리를 심의하게 한 것 자체가 사용신고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봤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신고수리의 예외는 광장 조성 목적에 위배되거나, 시민의 신체 및 생명 등에 침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 적용됩니다. 서울시는 과연 퀴어문화축제와 퀴어퍼레이드를 무엇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요? 또한 같은 날짜에 ‘기독교 단체’가 ‘청소년과 청년’을 위해 ‘회복’콘서트를 한다는 것에 대해 서울광장 사용 허가를 내준 것 또한 미심쩍은 부분이 많습니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 관계자는 “서울시 예산을 지원받아 CTS 기독교 TV 쪽이 신청했다는 정보도 입수했다”고도 했는데요. 서울시는 이에 “기독교 단체가 신청한 건 맞지만 서울시 예산 지원 여부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기존에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제재를 받은 적 있던 기독교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그들이 말하는 ‘회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더구나, 조례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난데없이 ‘청소년’을 들먹여 활용한 것은 비겁해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할 요량으로 이루어진 행사처럼 보이기 참 쉬운 구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데…?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7월 1일 예정대로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개최를 강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방법을 찾겠다고요. 하지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과연 서울광장에서 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당국의 결정은 ‘불허’이니 오히려 서울광장에서의 축제는  요원해 보이죠. 올해 여름에 우리는 서울광장에 무지개 깃발이 나부끼고,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울도심을 행진하며 무지개빛의 퍼레이드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요? 2023년은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시작된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그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로 여겨졌던 이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등장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는 장이었습니다. 30여년간 차별과 혐오에 맞서 발전해온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현재 다시 커다란 벽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지와 연대, 힘과 응원을 보태는 것은 그 벽에 문을 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서울광장에서 보고 싶은 풍경은 무엇인가요? 천만명이 사는 이 거대도시 서울은 과연 어떤 곳이어야 할까요??️‍? (댓글로 여러분의 의견을 마구 나눠주세요!)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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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어린이날 연휴, 배민라이더의 파업
배달 노동자들의 파업 확대   5월 5일 금요일 어린이날, 주말까지 연휴가 이어져 나들이와 여행을 기대하던 가족들은 호우 예보로 대부분 집에 머물게 됐다. 이때 주로 활용하는 것이 음식배달서비스일 터인데, 배달유통시장을 거머쥐고 있는 배달의민족(이하 배민) 소속 배민라이더들이 현재 배민 본사 앞에서 파업을 진행하면서 서비스가 다소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은 “배달의민족(우아한청년들)과 단체교섭 최종 결렬에 따라 5일 파업을 결정했다”고 4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세계일보 2023.4.29). 민주노총 소속 라이더유니온도 10일 연쇄파업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한국경제 2023.5.5) 배달노동자들의 전반적인 파업 및 항의가 확대 및 강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의 파업 결정 과정에서 노동조합원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한 결과 약 80%의 조합원이 참여하였고 88.1%가 파업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Money S 2023.5.5). 라이더들은 작년 8월부터 4월 초까지 15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고, 결국 최종 교섭까지 결렬되면서 파업에 돌입하게 됐다(ZDNET Korea 2023.4.28).  배민라이더 파업의 배경과 요구안  파업의 주요 요구안은 9년째 동결되어 있는 3천 원의 배달료를 최저임금과 물가상승에 맞춰 4천 원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소비자와 자영업자의 배달료 인상 없는, 수수료(기본배달료) 1000원 인상을 요구”한다면서, “배민은 겉으로는 상생을 외치지만 4200억이라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배민의 작년 매출액은 2조 4049억으로 전년 대비 47% 증가, 영업이익은 4271억으로 흑자전환),  배달노동자들의 복지와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은 전혀 없었음을 비판했다.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은 앞선 배달료 동결과 함께 아래의 개선방안을 요구했다.  배달료 지방차별 중단(배민은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수수료를 더 떼어가고 있다. 수도권 3000원, 대구 2700원, 영호남지역 2600원.) 알뜰배달(단건배달과 묶음배달 서비스를 합친 시스템) 도입으로 인한 배달노동자들의 배달료 수입 감소 대처 배달에 따른 고정 인센티브 지급(배민은 이에 대해 교섭 과정에서 라이더가 주 100건의 배달업무를 할 경우 5만원을, 150건을 달성하면 15만원을 추가지급하는 인센티브 요금체계를 제안하기도 했다(ZDNET Korea 2023.4.28)) 전업라이더 중심성 강화       누리꾼들은 혹 배달료 인상이 소비자에 전가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배민라이더는 배민이 배달료에서 떼어가는 수수료를 줄이고, “지역마다 차등을 둔 배달비를 통일하고 라이더들에게 돌아가는 배달비를 더 늘려달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결코 이것이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배달비에는 음식점 업주와 소비자, 배민이 가져가는 수수료, 배달노동자들의 임금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 더해 배민 소속 배민라이더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는 것은 단건배달인 배민1 서비스인데 원래 이 시스템은 음식점에 중개수수료를 1000원의 정액제로 받았으나, 현재는 음식값의 6.8%를 받는 정률제로 개편하면서 음식점주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늘어났다. 이렇게 단건배달비를 올리면서 배민의 영업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반면 배달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임금은 기나긴 교섭 과정을 지났지만 단 한 번도 상승하지 않았다.   그러나 배민은 배달노동자들에게 더 강한 노동강도를 요구하고 위험한 근로환경을 조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배민라이더들은 ‘픽업 알림’을 받는데 이는 “배민라이더가 배차받은 배달 물량을 제대로 받으러 가는지…확인하는 절차”(노컷뉴스 2023. 5.5)다. 이 알림은 이미 배달노동자들이 이동하는 중에 있을 때도 울린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때 5분 안에 알림확인을 하지 않으면 콜(call)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알림에 답하기 위해 급제동을 하거나 위험하더라도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여 갓길에 오토바이를 세울 수밖에 없다. 특히 여러 번 콜이 취소될 경우 배달노동자들은 플랫폼으로부터 경고를 받거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쉽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배민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영업방식이 은폐되어 있다면, 비난의 화살은 위험하고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플랫폼중개기업이 아니라 교통법규를 수시로 무시하는 ‘도로의 무법자’, 속칭 ‘딸배’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의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6개월 간 배달 종사자 10명 중 4.3명은 교통사고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사고 원인으로는 ‘촉박한 배달시간에 따른 무리한 운전’이 42.8%로 가장 많았다”(노컷뉴스 2023.5.5). 그러나 배달의민족 측에서는 “배차가 이뤄진 후에 15분 이상 지났을 때 라이더의 이상 여부 등 안전을 확인하려는 절차”라면서 현장을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고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듯한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배달노동자들의 현실   이번 배민라이더 파업을 조사하면서 여러 기사를 열람한 결과 대부분의 배달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연령대가 노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중년이거나 젊은 청년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들과 같은 노동시장의 취약계층이 선택할 수 있는 소득확보의 경로는 매우 한정되어 있고, 배달 플랫폼 노동을 포함한 일자리들은 매우 위험하고 부당한 노동환경을 노동자가 감내하도록 요구한다.  코로나19 특수로 배달 산업이 호황을 누렸던 맥락 속 배달노동자들이 경험했던 노동강도에 대한 몰이해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하면서, 그동안에 한국사회에 존재했던 배달노동에 대한 평가절하와 함께 당시 배달노동자들이 얻었던 높은 수입 사이의 괴리(이를테면 ‘그만큼 벌면 이 정도(노동강도와 위험)는 감수해야지’ 하는 식의)는 이번 파업을 두고 누리꾼들의 상반된 반응을 유발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위드코로나가 점진적으로 시행되면서 격리되어 있던 일상이 열렸고, 배달산업의 성장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배달노동자들이 맞닥뜨린 위험과 부당한 근로조건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정체를 겪고 있더라도 이미 한국 사회에 플랫폼 기반의 배달산업은 노동시장의 거대한 한 축을 차지하게 됐기 때문에 배달노동자들의 안전과 노동환경, 배달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과 이해는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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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퀴어축제조직위 서울광장 사용 불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23년 5월 3일 서울시가 올해 퀴어문화축제를 위한 서울퀴어축제조직위원회(퀴어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습니다. 이번 결정으로 퀴어문화축제는 2015년 이래 코로나19 시기에 중단된 것을 제외하면 올해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열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란? 성소수자로서 삶에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공개문화행사입니다. 광장 부스에서 참여 단체들이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다채로운 성소수자 이슈를 접할 수 있습니다. 수만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신나는 공연 행사를 즐기며 퍼레이드를 위한 흥을 충전할 수도 있습니다. 2000년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시작으로 대구, 부산 제주, 전주, 인천, 광주, 경남, 청주 등 여러 지역에서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아시아에서도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성소수자인권 존중이란 상징성을 갖는 중요한 축제이기도 합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햇볕으로 세상의 편견과 차별, 혐오로 인해 음지에 숨고 자신의 존재 자체에 고통을 겪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있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이러한 어두움 속의 축축한 이면을 햇빛에 널려 뽀송하게 말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 역시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지닌다는 점을 알립니다. 퍼레이드를 통해 성소수자인 자신이 자랑스럽고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퀴어문화축제는 단지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일까요?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만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며 사회에 만연한 차별 이슈를 걷어내고 적극적으로 삶과 세상의 변화에 동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성소수자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자긍심의 무지개를 띄우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퀴어문화축제 비단 대한민국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퀴어문화축제는 미국의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에서 비롯된 성소수자 운동입니다. 스톤월 항쟁이란, 1969년 6월 28일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술집 스톤월 인(Stonewall Inn)을 경찰이 급습하는 과정에서 동성애자 집단이 자발적으로 동성애자 반대운동에 맞서 일으킨 항쟁으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대치되지 않고 동등한 입장이란 걸 주장했습니다. 이 항쟁이 자극제가 되어 현재까지 미국 로스앤젤러스와 시카고,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등의 수많은 도시에서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인의 축제로 뻗어가고 있습니다. 왜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는가 서울광장 이용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이루어집니다. 적법한 절차와 요건을 갖추면 사용료를 납부하고 서울시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서울광장 사용을 위해 ‘퀴어문화축제’와 기독교단체 CTS문화재단의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 두 건이 행사 개최 90일 전인 4.3(월), 동시에 광장 사용(6.30~7.1)을 신청하였습니다. 중복신고건에 대하여는 신고 단위들 간 조정절차가 진행되고 조율이 되지 않는 경우에만 광장 운영위에 안건으로 상정됩니다.   서울시는 “관련 조례에 따라 일정 조정을 위해 각 단체에 유선으로 사전 협의·조정하였으나, 두 단체 모두 일정 변경이 어렵다고 회신해 옴에 따라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에 상정함을 양 단체에 통보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5.3(수)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를 개최한 결과,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제6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청소년·청년을 위한 회복콘서트’ 사용신청을 최종 수리, 결정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서울시 설명자료.2023.5.4.) 하지만 퀴어조직위 측은 서울시가 편향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반발했습니다. “해당 조례에 따르면 ‘신고순위가 동일한 경우에는 그 신고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조정한다’는 문구가 있는데, 조정회의도 열리지 않았고 바로 광장운영위에 안건을 상정하겠다고 통보했”으므로, “조례에 어긋나는 방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2023.5.4.) 한채윤 퀴어조직위 이사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정회의도 열리지 않았고 서울시가 별도 안내도 해주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익명의 조직위 관계자도 한겨레신문에 “서울시 예산을 지원받아 CTS기독교TV 쪽이 신청했다는 정보도 입수했다”고 말했습니다.(한겨례신문 2023.5.3.) 다만 서울시는 앞서 언급한 설명자료를 통해 “CTS문화재단에 ‘청소년·청년을 위한 회복콘서트’를 위해 예산 지원한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1. 집회의 자유를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불허’하다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제6조 사용수리 2항에 따르면 두 행사의 광장 사용일이 중복될 경우 “신고자들과 협의를 통해 조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당사자인 퀴어조직위가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제대로 된 조정회의 없이 광장운영위 안건으로 상정됐습니다. 광장운영위는 과반의 참석으로 개의되고 과반의 찬성으로 의결됩니다. 12명으로 구성된 광장운영위가 규정에 따라 7명 출석으로 열린다면 그중 4명의 반대만으로도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서울광장에서 열릴 수 없게 됩니다.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불허’는 단지 성소수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절차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결국 집회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불허입니다. 이것은 곧 어떤 집회도 서울광장에서 적합한 절차를 무시당한 채 거부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혐오 문화를 부추기다 성소수자 역시 서울시민입니다. 그들이 발언할 권리, 그들이 집회할 권리는 인권에 닿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인권의식에도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뿐만아니라, 퀴어문화축제는 그동안 편파적이고 차별적이며 주관적인 핑계로 인해, 지속적으로 광장운영위에 안건으로 상정되었습니다. 게다가 신고한 행사 기간이 축소되어 허가되는 등 매해 차별적 행정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껏 코로나19시기를 제외하고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시민분들과 시민사회단체, 여러 국가의 대사관, 기업 등의 단위들이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캠페인에 참여하였기 때문입니다. 서울퀴어퍼레이드는 다름을 인정하고 차별받지 않을 평등과 자유를 의미합니다. 자존감과 자긍심을 기치로 합니다. 그것을 CTS라는 기독교단체와 맞불을 놓으려는 것은, 마치 퀴어문화와 기독교의 쟁투처럼 여겨지게 하는 효과를 줍니다. 이것은 서로가 혐오와 불신을 갖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퀴어냐, 기독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공존을 위해 향해나가야 할 ‘신뢰와 화합의 문화’입니다. 인권과 다름의 인정, 화합의 본질을 찾아 서울시의 서울퀴어축제 서울광장 사용 불허는, 그 점에서 다시 인권과 화합의 본질을 생각하게 합니다. 과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 진정으로 청소년과 소수자를 위한 세상을 향해 무엇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지 다시 묻는 자리가 됩니다. 집회를 어떻게 가능하게 하고 불가능하게 하는가가 그 사회의 의식과 사회상을 말해 줍니다. 여러분은 서울시의 퀴어축제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 불허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댓글로 말해주세요.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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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토의로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한 노력, 숙의!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우리는 일상에서 이것인지 저것인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자주 겪게 됩니다. 이것도 장단이 있고, 저것도 장단이 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이것과 저것의 장점을 합친 것 등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을텐데,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시도들은 저것의 편이 되고, 저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시도들은은 이것의 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박쥐로, 때로는 회색분자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복잡다단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이분법은 대체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문제로 인한 갈등 상황을 끝없이 재생산 할 뿐입니다. 복잡다단한 사회는 다층적인 균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층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해야 합니다. 다양한 숙의 과정들을 통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공론을 형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촉진하는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전의 글에서 공론장에 ‘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썼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 그 이야기를 좀더 해보려 합니다. 토론과 토의와 숙의의 개념의 구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보고자 합니다.  토론debate,  토의discussion, 숙의deliberation토론(debate)은  특정한 주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 의견 교환을 통해 어느 쪽의 주장이 옳고 그른 지를 따져 각각 자기 쪽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상대방 또는 청중을 설득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토론의 주체와 청중들은 토론 과정에서 주제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점에서, 토론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토론은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나누어 대립 관계에서 논쟁을 벌이기 때문에 경쟁적이고, 서로에게 공격적으로 대하기 쉽습니다. 타협, 협의, 조정이 없는 승패에 의한 결정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토론만 강조된다면 적대의 이분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함정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토의(discussion)는 의견 교환을 통해 어떤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여 의견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 목적입니다. 토의는 [1]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것 자체'와, [2] '협의, 조정, 타협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들의 간극을 좁혀 하나의 안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단계적으로 구별하여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1] 다음에,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3]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토의는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이며, 노력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토의는 상호 협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토의는 옳음을 관철하는데 있어서는 항상 부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의는 때로 기계적인 타협에 의한 정당화로 형식화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숙의(deliberation)는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함”을 의미하며, 토론과 토의를 포괄합니다. 숙의를 다양한 주체의 다양한 논의를 모아 사회의 문제를 민주적으로 풀어가는 것으로 본다면, "시민, 이해당사자, 활동가, 전문가, 국가 등에 의한 깊이 숙고하는 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숙의에 대한 강조는 토론이 부족/종족주의 혹은 진영론의 재생산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성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숙의는 어떤 면에서 토의discussion의 고도화를 의미하며,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한 제도 변형이라는 정치체제로서의 논의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종합적으로 본다면, "숙의는 토론과 토의를 병행하여 공론을 형성하고 민주적 의사결정으로 나아가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고 제도화로 나아가는 프로세스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일 것입니다. 숙의, 공론장, 민주주의일상에서 토론과 토의는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구분 없이 혼용해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엄격하게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기기 위한 토론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의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주체들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 될 수 있고, 생산적으로 논의되어 더 나은 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하는 숙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공론장에는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토의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주체들의 토론과 토의가 모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지성, 집단지성이 형성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에너지가 대의민주주의 정치를 통한 제도변화의 노력들이 형식화 되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숙의가 이루어지는 공론장에서 개개인들이 서로 더 많이 배우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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