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제>가 실린 윤시내 3집. 사진출처 알라딘)
어제의 하늘 빛 오늘 또 푸르고 / 어제의 하늘 빛 오늘 또 밝아도 / 어제는 어제, 지난 건 꿈이라오 / 눈짓도 몸짓도 다정한 음성도 / 기억할 수 있는 건 모두 잊었다오 -임선경 작사, 최종혁 작곡, 윤시내 노래 <어제는 어제(1980)>
2023년 5월 7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수상과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 정상이 한국에 온 것은 12년만이다. 알려진 바로는 윤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한미 정상회담을 할 때 일본에 만나자고 의견을 보내서 시작된 회담이라고 한다. 뭐, 무엇이 되었건 안 만나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언론이 12년만의 셔틀외교라는 점에 대해 나름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 한일관계도 물론 좋아지는 게 나빠지는 것보다야 좋을 것이다. 문제는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좋아지느냐다.
마음 아픈 과거를 잊어야 미래로 간다?
불과 며칠 전 한국에서는 주어와 관련하여 영문법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있었는데, 내용은 이것이었다.
"유럽은 지난 100년 동안 여러 번의 전쟁을 경험했지만 전쟁 중인 국가들은 미래를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았습니다,"라고 윤석열 대통령은 말했다. "저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100년 전 우리의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정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 설득력 면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Europe has experienced several wars for the past 100 years and despite that, warring countries have found ways to cooperate for the future,” he said. “I can’t accept the notion that because of what happened 100 years ago, something is absolutely impossible [to do] and that they [Japanese] must kneel [for forgiveness] because of our history 100 years ago. And this is an issue that requires decision. … In terms of persuasion, I believe I did my best.” (The Washington Post.2023.04.24.)
(사진출처 한국일보.2023.04.18.)
독일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수상이 유대인 사망자들의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일은 물론 참으로 역사적인 일이고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한 적은 없다. 혹 누군가가 일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손 쳐도 그것이 진짜 무릎을 꿇으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는 사람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있었던 한일회담에서도 별다를 것 없이 똑같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5월 7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겨레.2023.05.07.). 윤 대통령은 이런 류의 이야기를 2023년 들어서 계속 반복하고 있다. 과거를 이야기하면 미래로 못 나아가는 걸까? 좋다 싫다 이전에 이해가 안 간다.
기시다 수상은 식민지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私自身、当時、厳しい環境のもとで多数の方々が大変苦しい、そして悲しい思いをされたことに心が痛む思いです
저 스스로는, 당시 엄혹한 환경 하에서 다수의 분들이 매우 힘들고, 그리고 슬픈 생각을 하셨다는 점에 마음이 아픕니다.
일본에서는 이 발언이 꽤 화제가 되었다. 이런 걸 사과이며 역사 인식의 진일보라고 칭찬해주는 한국의 보수언론이나 일본의 진보언론도 문제지만, 일본의 우익, 극우 언론에서는 기시다 수상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로타니 카츠미(室谷克実)라는 저널리스트는 “내년 한국 총선거나 2027 대선에서 보수파가 지면 한국은 완전히 좌익정권이 된다. 보수파인 윤 정권을 도와야 한다. 이번 서비스는 한국의 여론을 대상으로써는 나쁘지 않다”라 평했고 (夕刊フジ.2023.05.08.) 자민당의 시게키 토시미츠(茂木敏充) 간사장은 “한국측의 적극적인 대응에 맞추어,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라 평했다 (産経新聞.2023.05.08.). 혹 기시다 수상의 발언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아무리 기를 쓴 들, 일본 안에서 이런 평가가 나온다면 이것을 진정한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이 발언을 두고 “본질을 회피하는 발언”이며 “식민지 시기 있었던 사실에 대한 인정과 책임, 사죄는 없었다”고 평가하고 “일본 정부의 이전 입장을 확인하는 정도”라고 평가했다 (경향신문.2023.05.07.). ‘마음이 아프다’는 이미 고인이 된 아베 신조를 포함해 일본의 전 총리들이 계속 해오던 말이다.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역시 이 발언에 대해 “외교적인 자리에 나와서 개인적으로 가슴 아프다고 하는 건 책임 회피를 위한 ‘물타기’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경향신문.2023.05.07.)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도 "기시다 총리 개인적으로는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더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냉정히 보면 '사죄와 반성'이 한마디도 안 나왔다"고 평가하면서 "(기시다 총리가) 사견임을 전제로 얘기했단 점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뉴스1.2023.05.07.)
그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곧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에 참석하면서 원폭 위령비에 참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2023년 4월 12일에 올라온 일본 외무성의 유튜브 동영상.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이 다른 나라 원전보다 삼중수소를 덜 배출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한국의 고리원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상출처 일본 외무성. Why is the discharge of ALPS treated water safe?)
일본과 관련해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뉴스가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다. 그렇게 안전하면 방류하지 말고 갖고 있으면 될텐데 왜 이렇게 기를 쓰고 방류를 하려는 걸까? 이와 관련해 며칠 전, 일본 외무성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량이 한국 고리 원전보다 더 적다는 동영상을 만들었고, 일본의 고노 다로(河野太郎) 디지털상 겸 소비자담당상은 직접 영어로 후쿠시마 원전이 고리원전보다 안전하다고 설명하는 홍보 동영상을 찍었다. 이 와중에 한국 시찰단이 후쿠시마 원전에 가겠다는 결정이 이번 회담에서 나왔다.
기시다 후미오 수상: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대한 한국 전문가 현장시찰단의 파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본의 총리로서 자국민 그리고 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형식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을 (말씀드립니다.) (YTN.2023.05.08.)
이를 두고 외교적 성과라고 자찬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찰단은 검증단과 다르다. 실제로 효력을 지닌 조치가 없다면 그냥 보고 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에 대해선 양국 모두 아무 말이 없고, 그저 “나쁜 일은 안 합니다” 같은 수준의 말만 하고 있다. 앞으로 실무진에서 어떤 회의를 하겠다는 말도 없다. 황당한 일이다.
최지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말을 들어보면, 검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하는 것이고 우리는 시찰만 하고 오는 것으로 읽힌다”고 평가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일본의 원자력 오염수 방류를 정당화하는 행위로 시찰단이 오용되고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향신문.2023.05.07.)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도 8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다른 시각을 수용해서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자세도 아니고, 그냥 한번 둘러보는 걸 허용하겠다는 식이라 (일본에) 면죄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 말하고, 일본측에서 시찰 가능한 날짜(5/23~24)를 지정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날짜까지 적시한 건 그 날짜에 가능한 사람을 이미 내부적으로 구성해놨다는 의미고, 대개 정부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 문제를 우려하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에게도 가능성을 타진했을까? 만약 했다 해도 기껏 한두명 형식적으로 넣었든지, 저건 지금 짜고 치는 것”이라고.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2023.05.08.)
미국의 승리?
이번 회담을 두고 블룸버그 통신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The second meeting in two months between leaders of Japan and South Korea after years without a formal summit marks another win for the Biden administration, which has sought to unite the allies to cooperate against North Korea and undercut China’s growing power.
수년 만에 공식 정상회담 없이 두 달 만에 열린 한일 정상의 두 번째 만남은 동맹국들의 대북 공조와 중국의 커지는 힘을 약화시키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또 다른 승리를 의미한다. (Bloomberg.2023.05.07.)
국제 사회의 역학관계가 변화하면서 점점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의 줄에 설 것을 강요받는 분위기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두 나라간의 군사 충돌을 이야기하면서 그 때 한국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논하기도 한다. 개인의 일이건 국가의 일이건 미래야 알 수 없는 것이니 대비를 안 할 수야 없을 것이고,이런저런시나리오를상상해보는것도괜찮다고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약소국이 굳이 편짜기를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한미 정상회담의 후속편이다. 미국도 일본도 중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미국도 여전히 첨예한 사안에 대해선 중국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고, 두 나라 모두 외교 실무진은 물론 국회의원, 시민단체 차원의 교류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통 큰 외교는 도박이다. 그것도 세끗 짜리 패를 손에 들고 상대의 손에 광땡이 없기를 바라는 식의 도박이다. 무슨 가치인지 명확히 설명도 못하는 가치 외교는 이제 그만하자.
코멘트
10모든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빠르게 흘러가고만 있네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판단은 중요한 법인데.. 외교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더라도... 지금의 모양새는 적극적으로 알아서 지뢰를 찾아 밟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왔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영업사원이라면 질책해야하지 않을까요. 누구도 이번 회담의 성과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번 회담은 정말 여러 고민을 들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개탄스럽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불가능한 일들만...식민지배의 뼈아픈 경험이 있는 나라의 대통령이 저지르고 왔다는 생각만 듭니다...참...말을 잇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계속 우리는 그에 대해 논해야겠지요...힘든 정권이네요...국내외로 .....
역사인식도 제대로 없는 대통령 어디 내놓기 부끄럽습니다.
기억할 수 있는 건 모두 잊었다오..
그러나 역사를 잊는 과오는 없길 바랍니다.
박지원 의원의 말을 빌려, 안녕하세요, 오염수 하고 다녀만 오면 안되는데 큰일이네요. 일본이 방가능으로 사기를 계속 치고있네요.. 참...
한미정상회담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한일정상회담으로 윤석열 정부 외교의 결과는 한국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외교로는 한일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해봐야 친일을 옹호하는 한국 극우세력이 환호하는 정도일 뿐이겠죠.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국민은 윤석열 정부를 불신하거나 일본을 혐오하는 감정이 커질 겁니다.(적어주신 것처럼 일본 극우세력이 기시다 총리를 비판하고 있으니 일본에서도 한국에 대한 감정이 좋아지진 않은 것 같네요)
이번 한일정상회담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는 '미국의 하수인'으로 정리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미국과 우호적인 국가들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내주면서 중국을 배척하는 외교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서 더욱 불안하네요. 한국에는 어떠한 이익도 없고, 미국의 이익이 절대다수인 사드배치로 경제에 직격탄을 맞은 경험이 윤석열 정부에서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 과거를 잊자는 사람이 전 정권 이야기는 왜 이렇게 맨날 할까요….
양국의 관계 안정화를 위해 노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