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9
[6411의 목소리] “코로나 대처 영웅”이라 부르더니 지금은
[6411의 목소리] “코로나 대처 영웅”이라 부르더니 지금은 (2024-01-29) 김경운 | 간호사·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성남시의료원지부 마취회복파트 간호사로 코로나 환자 수술에 참여해 환자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필자. 필자 제공 2020년 1월 성남시의료원 개원을 앞두고 마취회복파트 간호사로 입사했다. 마취의를 도와 수술할 환자를 마취하고, 수술 뒤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의 회복을 돕는 일을 주로 했다. 처음 간호사 일을 시작한 2013년에는 사람들이 “남자 간호사”라고들 했지만, 지금은 그냥 간호사로 여긴다. 하지만 제약도 많다. 젊은 여성 환자를 간호하거나 시술에 참여할 때가 특히 어렵다. 병원 개원을 앞두고 코로나19가 시작됐다. 정부 지침에 따라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의료원은 정식 개원을 미뤘다. 숨 돌릴 틈 없이 업무가 밀려들었다. 방호복을 입고 환자의 기본적인 바이털(혈압, 맥박, 호흡, 산소포화도) 확인, 의사의 오더(지시)를 확인하며 투약, 침상 정리, 식사 제공까지 담당했다. 여기에 기저귀 갈기, 체위 변경, 욕창 처치, 시트 변경, 석션(가래나 혈액 제거), 심폐소생(CPR) 상황 환자 관찰, 환자 정보 조사와 고압산소요법 치료, 치매·정신질환 환자들 낙상이나 위험 행동으로부터의 보호, 화장실 동행, 각종 약물 처치, 코로나 치료제 처치와 부작용으로부터의 관찰과 대처, 청소와 방역, 의료폐기물 박스 만들기와 관리, 택배 수령…. 선별진료소를 설치하고 주출입구를 관리하면서 여름에는 땡볕과, 겨울에는 추위와 싸웠다. 광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이런 일들을 하려니 숨쉬기가 힘들어 어지럽고 구토를 하기도 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일할 때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선제검사소, 백신 예방접종, 생활치료센터, 재택 격리자 관리까지 업무들이 수시로 바뀌고 추가되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환자 임종을 지키고 사체까지 관리했다. 일부 환자들의 폭언, 폭행, 성희롱에 시달리기도 했다. 사업상 계약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야 한다던 50대 남성이 기억난다. 음성 결과가 나오지 않자, 자신은 상태가 괜찮다며 여러 욕설과 과격한 행동을 했다. 나를 비롯한 남성 의료진이 주로 간호해야 했다.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초창기 엄격했던 규정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당시는 힘들었다. 광고 광고 정부와 언론, 국민들은 우리더러 “영웅”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영웅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적자 누적을 이유로 지방의료원 운영을 위탁하고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그 첫번째 타깃이 성남시의료원이다. 이미 성남시는 보건복지부에 위탁 승인을 신청했고 병원장은 15개월째 공석이다. 뒤숭숭한 위탁 논란 속에서 많은 의사가 병원을 떠나 정원(99명) 대비 충원율이 50%대에 불과하다. 지난해 연말엔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과 전국 지방의료원 지부 간부들 28명은 18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 2024년 감염병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예산이 0원에 가까운 수준으로 깎였기 때문이다. 강바람 거센 국회 앞 농성장은 유독 추웠고, 단식 3일차부터 지부장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목숨 걸고 막아내야 한다는 각오로 물과 소금만으로 하루 24시간을 계속 버텨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요구했던 290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약 1천억원 예산이 편성됐다. 광고 하지만 끝이 아닌 시작이다. 각자 병원으로 돌아가 내부 현안 및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사안을 협의해야 한다. 나 역시 의료원 정상화와 위탁 반대 투쟁을 해야 한다. 공공병원 적자를 얘기한다. 그런데 그게 직원들 잘못인가? 코로나 때문에 원래 병원을 떠나 3년간 다른 병원에 다닌 환자들에게 이제 다시 오라고 하면 올까? 그런데도 재정적 손해는 오롯이 지방의료원들 몫이 되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병원 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뒤로한 채 법무부(한동훈 전 법무장관)와 ‘중증정신질환 수용자 법무병상’을 성남시의료원에 들이겠다는 협약도 체결했다. 의료원이 있는 수정구는 취약계층이 많은 지역으로, 같은 성남이지만 분당구와 의료 격차가 크다. 분당에 의료원이 있었더래도 중증정신질환 수용자 병상을 들여오겠다고 했을까? 또 다른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공공병원을 살려야 한다. 의료진들을 영웅이라 불렀던 그때를 기억하면서.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새 이슈 제안
·
3
·
[함께 변화] 선거 공약이 내게 미칠 영향을 상상하는 것
“노인들 무임승차가 문제야. 노인들이 양보해야지. 요즘 누가 65세를 노인으로 생각해. 75세로 연장하던가. 젊은 사람들만 고생이라니까. 우리랑은 시대가 다르잖아.” 지난 1월 24일 저녁 10시, 2호선 외선순환 열차안이었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새로 산 책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늦은 저녁에도 앉을 자리 없이 사람이 붐볐다. 환승 가능 역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이내 옅은 술냄새와 진한 스킨 냄새를 풍기는 두 사람이 탔다. 직장 선/후배 혹은, 학교 선/후배처럼 보였다. 두 사람 모두 머리에 눈이 서려있었다.  둘은 65세 이상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관련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얼마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쏘아올린 공약이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공약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유권자 다수의 표를 잃을 수도 있는데 꽤 과감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책이나 읽자 싶었지만, 이내 책이 읽히지 않았다. 얼굴을 가리고, 귀를 쫑긋세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참기엔 귀가 너무 간지러웠다. 선배로 보이는 사람은 “예전에는 그냥 빨리 갈 수 있는 걸 탔단 말이야. 그게 지하철이든, 버스든, 택시든. 그런데 무임승차 가능하니까, 그때부터는 지하철만 타게 돼.”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얼마전에 이준석이 무임승차 폐지한다고 공약 걸었잖아. 나는 이거 잘한거라고 봐.” 라며 뒤이어 말을 강조했다. “노인들 무임승차가 문제야. 노인들이 양보해야지. 요즘 누가 65세를 노인으로 생각해. 75세로 연장하던가. 젊은 사람들만 고생이라니까. 우리랑은 시대가 다르잖아.” “결국 그거 적자나면 누가 매워? 젊은 사람들 세금으로 매워야 돼. 그게 얼마나 부담이 돼. 우리 때처럼 뭐하면 다 잘 되고, 성공하는 시기가 아닌데. 아무리 본인들이 세금을 냈다고 하지만, 그때는 혜택으로 다 돌아왔어. 혜택도 다 누린거고. 근데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단 말이야.”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이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게 신기했다. 문득 어떤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곧바로 말했다. “내가 사학연금 받잖아.” 사학연금을 받는다는 건, 일평생 사립학교 교직원이었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중 어느 학교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에서 근무했든 ‘선생님'이라는 위치였던 건 동일했다. 요즘은 어떤지 정확히 모르지만, 과거 선생님으 존경받는 직업이었고, 사회적 위치가 있다고 여겨진 직업이었다. 그 말을 듣고보니, 말하는 사람에게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애초 지하철, 버스, 택시든 가리지 않고 빨리 도착하는 걸 탔었다는 말에서 금전적 여유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어떤 내용으로 말하나 궁금하고 더 귀를 세웠는데, 아쉽게도 두 사람은 다음 환승역에서 부리나케 내리고 말았다. 더 듣지 못해 아쉬웠다.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폈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임승차 관련 내용이 자꾸 떠올랐다. 잠깐 상상을 해봤다. 저 공약이 실현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지하철에 사람들이 줄어들 것 같다. 지하철 타는 노인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어디로 갈까.  한국 노인들은 지하철에서 목적지 없이 종점을 왕복하며 하루를 보낸다. 지하철 없는 노인들은 어디로 가서 시간을 보내게 될까? 우리 사회에 노인들이 보낼만한 즐길거리가 있나? 거리에서 두는 바둑? 장기? 우리 사회 노인들이 문화생활을 영위할만큼 배려가 되어 있나?  여러가지 모습이 떠올랐다. 값싼 커피숍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노인들, 미로 같은 키오스크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하는 노인, 카페에 시험 공부하러 왔다가 자리가 없음을 알고 돌아가는 대학생, 자소서를 쓰러 왔다가 돌아가는 취준생, 갈 곳 없어 집에만 있어서 우울증 증세가 심해진 노인들 등. 재밌는 모습도 떠오르고, 씁쓸한 모습도 떠올랐다. 무임승차 관련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 관련 기사를 찾아봤다. 무임승차 폐지에 찬성하는 기사가 많았고, 그 중에는 청년과 노인 갈등을 말하는 기사도 있었다. 한 기사에 따르면, “밤새도록 실험하고 녹초가 되어서 왔는데, 등산복 입은 노인이 자리르 비켜줄 것으로 요구했다” 라며 “등산할 체력으로 서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며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무임승차까지 하면서, 노인들이 청년에게 자리 양보까지 요구한다 목소리였다. 노컷뉴스는 해당 주제로 투표를 진행했다. 네 개 답변이 있었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해야 한다.’, ‘혜택 유지하되 연령 상향 등 조정 이뤄저야 한다.’, ‘복지 일환이므로 유지해야 한다.’, ‘잘 모르겠다.’. 투표 결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약 50%를 차지했고, 혜택 유지하되 연령 상향 등 조정 필요가 약 30%였다. 실시간이어서 달라질 수는 있으나, 현행 무임승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투표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다. 시사위크는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사실인지 팩트체크하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무임승차로 인한 수익감소가 있고, 무임승차를 폐지했을 때 분명 수익이 증가하는 건 맞지만, 기본적이 적자는 지하철의 싼 요금에 있다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대체로 사실 아님'이라고 썼다. 예전에 한 노인 관련 조직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일종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노인들은 평생 살아오면서 세금을 낸 분들이예요. 그 분들이 낸 세금으로 우리 사회가 이뤄질 수 있었어요. 지금의 혜택은 그때 낸 세금에 대한 보상이예요.”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돼요.” 지하철에서 본 노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관련 기사를 찾아 보며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서 무엇이 맞는건지는 모르겠다. 각자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한 개의 공약으로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둘러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사학연금이든, 공무원 연금이든, 국민연금이든 노후가 보장된 사람에게는 지하철 무임승차가 시간을 보내는 놀이나 복지보다는, 싸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일 것이다. 반면, 노후 보장이 없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마음 둘 곳이고, 삶의 긴장감을 낮춰주는 복지일 수도 있다.  후자의 사람에게 75세 연장은 긴장의 시간을 10년 더 늘리라는 요구로 들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 나아간다면, “과거에 당신이 세금을 냈지만, 지금은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이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내 일상에 큰 영향을 준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처럼, 당장 내 세대에 관한 게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돌고 돌아 내게 돌아온다.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계속되는 한, 지하철 요금은 인상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내 지갑은 더욱 얇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임승차를 중단하자니, 사회의 안전망 하나를 허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경제적 문제가 있으면 복지를 허물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된다면, 훗날 내가 낸 세금의 보상을 내가 받게 될 때 동일하게 내 보상이 뒤로 밀리는 건 아닐까 싶다. 그때 이건 아니다 라고 내 목소리를 낼 때 과거의 나 역시 동일한 논리를 지지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내가 내세운 목소리가 내 목을 쥐는 모양새. 이것만은 막아야겠지만, 당장의 경제 논리는 너무 강해보이기에 섣불리 가타부타 말하기가 어렵다. 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수많은 공약이 언젠가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쏟아지는 공약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기후변화 정책의 도약을 위해서는 성평등 관점이 필요하다.
연구 제목: 기후변화 정책의 성평등 관점 적용을 위한 정책 흐름 분석 1. 시작하며 기후변화라는 거대하고 복합적이면서도 다층적인 폭풍을 뚫고 들어가보면 그 심연에는 가부장제를 밑거름으로 발전되어 온 자본주의가 버티고 서 있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자본주의 기반의 사회 내에서 다양한 사회적 집단(여성/남성, 장애인/비장애인, 부자/빈자, 젊은이/노인, ...)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기후변화가 심화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는 관련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류가 내뿜고 있는 탄소 배출량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뿐 아니라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수많은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전세계 국가들이 머리를 맞대며 정책을 세워나가고 있다. 다양한 논의 속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 또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다. 나의 연구는 기후위기 속에서 가중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적 불평등, 그 중에서도 성불평등 문제를 응시하고, 궁극적으로는 젠더적 관점에서 기후변화 정책을 진단함으로써 기후변화 시대의 정책이란 어때야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연구의 배경 (1) ‘사람의 문제’ 기후변화는 상대적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해지는 폭염, 한파,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효과적인 기후변화 정책이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들에게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그간의 기후변화 정책은 과학적인 측면에서의 논의에 무게가 실렸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사회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얼만큼의 탄소를 감축해야 한다.”, “기온이 1도 상승하면 극한 기상이변의 강도와 빈도가 얼만큼 증가할 것이다”… 매우 중요한 논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에만 국한하여 진행되는 논의는 또다른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게 된다. 바로 우리 사회가 기후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다. 즉, ‘사람의 문제’다. 기후변화 속의 ‘사람의 문제’에는 다양한 사회문제가 포함된다. 장애, 빈곤, 성불평등, 인권, 노동 등, 기후변화가 미칠 파장은 우리 사회의 속속들이 가닿을 것이고, 기존의 문제를 더욱 심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몰고가게 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은 기후변화가 변화시킬 사회를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응답할 필요가 있다. (2) 기후변화와 성평등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의 국제사회에서는 관련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성평등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기후변화와 성평등을 연결하는 데 가장 핵심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전세계 지역을 막론하고 여성이 더욱 취약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에 여성의 사망률이나 경제적 피해가 월등히 높은데, 주요 원인으로는 가사나 돌봄 노동과 같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 여성을 통제하는 관습과 규범, 제한된 교육과 기술 접근성, 낮은 사회적/경제적 지위, 사회적 안전망에서의 소외 등이 꼽힌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가족이나 커뮤니티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이를테면 가사와 돌봄 노동의 수행)이나 행동양식(예컨대, 친환경 제품의 소비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것)과 같은 것들을 고려하고 반영하는 기후위기 대응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연구와 논의가 최근 국제사회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0년 동안 유엔기후변화협약이나 재해위험경감을 위한 Sendai Framework와 같은 전지구적 약속을 비롯하여 각종 이니셔티브와 국제사회의 협력에 “성평등(gender equality)"이라는 단어가 우후죽순 포함되기 시작했다. 또한, 기후변화가 여성과 남성에게 어떻게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으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기후변화-젠더 논의의 흐름을 살펴보면 "기후위기 대응에 젠더를 고려해야 한다."라는 수사적 어구를 넘어선, "실제로 그래서 어떻게 해야 기후위기 대응에 젠더를 고려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론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물론 이는 아예 단어조차 언급이 잘 되지 않던 불과 얼마 전과 비교한다면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문제가 있다”, “해야한다"를 넘어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한다"에 대한 논의로 넘어갈 시점이다. 3. 나의 연구 소개 이 연구는 기후변화 정책에 어떻게 젠더를 고려해야 하는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해야한다”는 있으나 “어떻게”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후변화 정책 담론을 분석하여 “왜 해야한다에서 어떻게로 넘어가지 않는가”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킹던(Kingdon)의 정책흐름모형을 중심으로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성평등 관련 기후변화 정책을 분석하고자 한다. 킹던의 정책흐름모형은 정책 결정 과정의 비순차성과 비합리성을 강조하는 정책 분석을 위한 이론적 틀로, 정책이 언제 어떻게 정책결정권자에 의해 주목을 받거나, 그렇지 않은지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모형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문제의 흐름(problem stream), 정치 흐름(politics stream), 정책의 흐름(policy stream)을 정의하고, 이 세 흐름이 모종의 계기에 의해 결합될 때 정책의 창(policy window)이 열림으로써 인식된 문제에 대한 대안이 의제로 선택된다고 본다 (Kingdon, 2010). 즉, 이러한 정책 흐름 분석은 언제, 왜, 어떻게 정책의 변화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국가별 NDC(Nationally Distributed Contribution, 자발적 국가 기여)의 성평등 의제 반영 여부에 대해 기후 거버넌스, 정책 수립, 이행 등의 지표를 활용하여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성평등 의제를 기후변화 정책에 가장 활발히 반영한 전세계 상위 10개국 중 노르웨이만이 유일하게 선진국에 속한다 (CARE, 2021). NDC는 파리협정 체제 하에서 각 국가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수립 및 이행하는 모든 행동과 노력을 총체적으로 포함하는 일종의 정책 문서로, 각 국가의 NDC를 보면 해당 국가가 어디에 중점을 두고 기후 행동을 펼치는지 등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성평등 의제를 NDC에 적극적으로 언급 및 반영하였다는 것은 국가의 기후변화 정책 수립과 이행에서 실제로도 성평등 의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향후에도 그러할 것이라는 알 수 있다.  국가 정책 전반에 성평등 의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온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두 국가인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기후변화 정책 속 성평등 의제를 킹던의 정책흐름모형을 통해 살펴보고 비교분석함으로써 글로벌 차원의 성평등 논의가 각국의 기후변화 정책에 어떻게 번역되어 적용(또는 왜곡)되었는지 탐구하고 두 국가의 기후변화 내 성평등 정책이 어떻게 유사하고 다른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기후변화 정책에 성평등 의제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영향요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 연구의 의의와 향후 계획 결국, 기후변화 문제는 기술적으로만 접근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와 권력관계, 문화와 관습 등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연구는 성평등과 관련한 기후변화 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간 글로벌 성평등 의제가 기후변화 정책에 어떻게 번역되어 왔는지, 궁극적으로는 국제사회의 성평등 담론이 왜 국가의 실제 기후변화 정책에 반영되기 어려운지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원인을 파악함으로써 기후변화 정책이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자는 본 연구를 젠더와 기후변화를 연결하는 국내의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의 첫 단추로 삼고자 한다. 지난 10년 동안 기후변화와 젠더에 대한 연구가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까지 발행된 수백개의 연구 문헌 중 단 두 편만이 우리나라에서 발표되었다(송시원 외, 2021). 이 연구를 발판 삼아 젠더와 기후를 연결하는 세미나와 연구회 등을 진행하며 신진 연구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후속 연구를 지속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거대한 담론에 기여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정책에 젠더를 비롯한 사회적 포용성을 향상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참고문헌[1] 송시원, 최용상, 전혜숙, 강효지, 성창모, 백희영, & 이혜숙. (2021). 젠더 차이를 고려한 기후변화 연구 리뷰. 한국기후변화학회지, 12(2), 121-135.[2] 조효제. (2020). 탄소사회의 종말: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21세기북스.[3] CARE. (2021). Report card: Where is gender equality in national climate plans (NDCs)? https://careclimatechange.org/...[4] Kingdon, J. (2010). Agendas, Alternatives and Public Policy, (2nd ed.). New York: Pearson. 
기후위기
·
11
·
[2024 LAUNCH Conference]대학생들이 사회문제 해결에 도전할 때 무엇이 필요할까?
사회문제 분석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나요? 파워포인트를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까? 노션이라는 새로운 툴이 나왔는데 어떻게 배울 수 있지?  이런 고민이 드시면 어떻게 하시나요? 전 주로 관련 강의를 찾아보고 온라인 강좌를 등록하거나 유튜브 콘텐츠 등을 통해서 이런 기술을 습득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 되는데요. 이렇듯 우리는 지금 네이버나 구글, 유튜브 등에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바로 우리가 배우고 싶은 다양한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엔 회사생활 잘하는 방법, 팀장이 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되는지 등 업무와 관련된 부분도 검색 몇번이면 금방 찾을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소셜섹터는 이런 교육이 많지 않은데요. 한번은 제가 처음 다문화를 주제로 문제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찾아봐야 하는 업무를 받게 된적이 있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될지 몰라 무작정 관련 업무를 하고 계신 분들을 수소문해서 인터뷰를 하고 다문화와 관련된 논문이라는 논문은 다 찾아보면서 문제를 분석하기 시작했죠. 이럴때  찾아 볼 수 있는 콘텐츠나 교육이 없어서 속된말로 맨땅에 헤딩을 해가며 프로젝트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사실 이때는 그냥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없구나.. 정도 수준으로 생각 했었지 제가 필요한 정보(사회문제 분석 방법?)가 부재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인식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없겠지 싶었던 거죠.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대학생들을 만나다. 팀 이동으로 Sunny 사업을 담당하게 되면서 이때부터 이런 방법을 알려주는게 꼭 필요하겠구나 느끼게 되는데요.(그 이유는 잠시 뒤에 설명 드릴께요.) 당시에 써니는 'SK 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이 운영 되고 있었고 써니 담당자로서 저의 역할은 써니로 활동하는 대학생들이 사회문제 솔루션을 만들고 활동 하는 전체 과정을 매니징 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SK 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가 생소하신 분들은 유튜브 SK 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 소개 영상 보시면 이해 되실거예요) 처음 이 사업을 담당하고 들었던 생각은 사회문제에 진심으로 관심이 많고 해결하고  싶어하는 대학생들이 이렇게나 많구나였어요. 그리고 사업을 진행시켜 가면서는 이렇게 의지 많은 대학생들이 직접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솔루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어떻게든 도움을 줄 수 없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사실 대학생들에게 이 과정이 어려운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죠. 소셜섹터에 7년 이상 있었던 저조차도 사회문제 분석에서부터 솔루션 도출까지의 과정이 어려웠으니까요.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 대학생들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죠. 이때부터 저의 고민이 시작된거 같아요. 어떻게 하면 사회문제 솔루션을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이 겪을 시행 착오를 줄여 줄 수 있을까? 저는 먼저 제가 2년간 써니들을 보면서 느꼈던 한계점에 대해 정리해 봤습니다. 첫째, 사회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통로가 한정적이다 의외로 대학생들이 사회문제라고 정의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뉴스내용에 기반을 두고 있었어요. 제가 이게 진짜 사회문제일지 고민해 보자고 하면 뉴스에서 이미 사회문제라고 하는데 왜 더 고민해야되는지 의문을 가지는 친구들도 많았죠.  둘째, 사회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있지 않다.  써니 활동은 활동 특성상 사회문제를 분석하는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솔루션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온 솔루션들은 지금 당장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솔루션을 도출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과정이에요. 하지만 저희 재단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규모가 작더라도 진짜 사회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기에 써니들에게도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 조금 더 문제 분석 중심의 솔루션 도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이 부분은 정말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다문화와 관련된 사회문제를 분석해야됐을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게 바로 인적 네트워킹이었어요. 제가 알고 있는 다문화 관련 기관에 모두 컨택해서 미팅을 잡고 업무 관련 네트워크 내에 다문화 전문가가 있다면 연락을 드리기도 했죠. 그런데 대학생들에게는 이런게 있을리가 없잖아요. 이런 자원적 한계도 써니들이 문제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만드는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넷째, 솔루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사실 창업을 하고 싶어서 써니를 시작한 친구들은 많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솔루션이 만들어지고 없어지고를 반복했죠. 그리고 솔루션을 만드는 대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우리가 열심히 만든 이 솔루션이 결국 사장된다고 생각해서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즉, 창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비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한계는 결국 기존의 ‘SK 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가 운영되는 형태(활동 중심, 대규모 참여)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문제 들이었는데요. 때마침 코로나로 대규모 자원봉사가 운영되지 못하면서 기존 써니 프로그램을 점검 하게 되었고 위에 언급된 요소들을 해소 할 수 있는 신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습니다. 사회문제를 다각도로 파악하고 사회문제에 딥다이브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면,그리고 대학생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자원을 지원해 준다면,청년들이 조금 더 실질적인 사회문제 솔루션을 만드는데 집중할 수 있을 거라는 가설을 가지고 Sunny Scholar 과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 Sunny scholar가 만들어진 이유  - Sunny Scholar 사이트 : https://sunnyscholar.oopy.io/  Sunny Scholar, 그래서 그게 뭔데? 이렇게 만들어진 Sunny Scholar 처음 들어보신분들이 대부분일 것 같아 간단히 소개드리겠습니다. 사회문제 해결 과정을 지원하는 여타의 다른 대외활동과의 차이점 위주로 소개해 드릴께요. 1. 문제를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 합니다.   - 총 9개월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분석하는데 약 3개월 정도 시간을 소요합니다.  2. 문제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 팀원 : 비슷한 의지치를 가지고 있는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팀빌딩 합니다.(실제로 팀원에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 교육 : 사회문제로 딥다이브 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합니다. (참고로 이번 컨퍼런스를 주관하는 나이오트도 저희 교육기관 중 한 곳입니다)   - 경험 : 봉사활동 의무화, 독서 토론 등을 통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합니다.   - 전담 매니저 제도 : 문제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만드는데 겪는 어려움을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마련해 줍니다. 3. 다양한 인적/물적 리소스를 제공합니다.   - 전문가 멘토링 : 인터뷰 전문가, 해당 사회문제 전문가 등 각 팀의 상황에 맞는 전문가를 매칭해서 멘토링 합니다.   - 활동비/개발비 지급 : 팀미팅을 진행하거나, 외부 미팅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합니다. 4. 프로그램의 전체과정을 연구 과정(액션 리서치)으로 보고 기록한다.   - 문제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만들고 현장에서 솔루션을 실험해보는 모든 단계를 액션 리서치로 보고 전체 과정을 연구 보고서로 작성합니다.   - 이렇게 만든 연구 보고서는 해당 사회문제로 해결해보고 싶은 다른 대학생, 기관 담당자 들에게 길라잡이가 됩니다. 사회문제 해결 과정을 연구로 표현한다면? 올해 Sunny Scholar 는 3년차를 맞았는데요. 이번 3기의 가장 큰 변화는 연구라는 개념을 적용한 것이었습니다.1기와 2기를 운영할 때, 가장 큰 숙제는 대학생들이 사회문제를 분석해서솔루션을 만들고 현장에서 솔루션을 검증하는데 필요한 교육과 지원이무엇인지 파악하고 잘 제공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완벽하다곤 할 수는 없지만 2년 정도 운영 하면서 현재 제공되고 있는 교육과 지원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3기를 기획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봤던 건 써니들이 하고 있는 써니 스콜라 활동의 의미를 찾는 것이었습니다.초기 Sunny Scholar 과정은문제분석 및 정의 > 솔루션 설계 > 솔루션 현장 검증  이렇게 3단계로 진행되었고 솔루션 현장 검증이 종료되고 나면 늘 성과 발표회를 열고 우수 프로젝트에 상을 주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종료했습니다.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요. 솔루션 발표가 모두 끝나고 시상이 모두 끝나고 나면 모두 동시에 프로젝트를 종료 시켜 버리는 것이었어요.앞에서도 몇번 설명 했지만 써니 스콜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건 좋은 솔루션을 남기는 것 보다 그 솔루션으로 갔던 여정들이 담긴 기록이었거든요.  *참고 자료*  - 2023년 Sunny Scholar 결과물 : https://sunnyscholar.oopy.io/2023activities  - 2022년 Sunny Scholar 결과물 :https://sunnyscholar.oopy.io/2022activities 어떻게하면 이런 기록이 솔루션을 잘 발표하는 것 보다 중요하다는 걸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아낸 단어가 액션 연구(Action Research) 였습니다.우리 Sunny Scholar 과정에서 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연구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힌트를 찾은 거였죠. 성과 발표회 이후에도 연구 아카이빙 과정을 별도로 편성하여, 연구 종료 후 연구 보고서를 쓸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해 줬고 이런 기록 과정을 잘 할 수 있도록 교육도 추가로 편성했죠. 이 교육을 진행해 줄 수 있는 곳을 찾다 운명처럼 나이오트를 만났고 그 인연을 시작으로 이번 컨퍼런스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거쳐 완성된 연구 중심의 프로세스가 아래와 같습니다. Sunny Scholar의 핵심은 담당 매니저의 액셀러레이팅! 당연히 다양한 교육 콘텐츠와 지원들을 제공하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Sunny Scholar를 운영하면서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된 부분은 바로 담당 매니저의 액셀러레이터 역할입니다.(사실 창업지원 조직이 아니라 액셀러레이터 라는 단어를 쓰는게 적합하진 않지만 창업이라는 단어를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로 바꾸면 하는 역할이 비슷해서 해당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써니의 담당 매니저는 각 팀에서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빠르게 파악하고, 도움 줄 수 있는 외부 자원들을 연결해서 써니들이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힐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솔루션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대학생들이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합니다.  사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솔루션을 현장적용하는 3단계 연구 수행단계가 되면 매주 각 팀들과 솔루션 현장 적용 관련 피드백 미팅을 가지는데요. 이 단계에서 액셀러레이터로서의 역할을 많이 하게 됩니다. 팀에서 만든 솔루션을 현장에서 검증을 해야되는 단계가 오면 솔루션을 사용해줄 대상자를 찾는 것도 많이 어려워 하는데요. 그럴때 팀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면서 어떤 대상자에게 우리 솔루션을 가지고 가야 관심있어 할지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어떤 기관을 통해 대상자를 찾는게 좋은지, 재단에서 연결된 기관이 있다면 소개 해주는 등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도 연결해 줍니다. 그리고 솔루션을 만들어 내다 보면 이 솔루션이 진짜 우리가 정의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보다는 솔루션 그 자체를 만드는데 집중해서 현장에 나가야된다는 걸 잊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런 시기가 올때마다 팀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듣도록 조언하면서 솔루션이 조금 더 사회문제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같이 고민을 하다보니 담당매니저는 각 팀의 연구과정을 잘 기록할 수 있도록 하는데 까지도 도움을 주게 되는데요. 각 팀에서 어떻게 활동 했는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으니, 소셜섹터 종사자로서, 또 이 연구기록을 읽을 독자로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기록하면 조금 더 유의미한 기록이 될지 같이 고민하고 녹여낼 수 있도록 합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결국 저희 Sunny Scholar 프로그램의 핵심은 이런 어려운 일을 하고자 하는 대학생 써니들이 연구를 끝낼 때까지 길을 잃지 않고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길잡이 혹은 도우미 역할을 하는 담당 매니저가 존재 아닐까 싶습니다. Sunny Scholar의 결과물이 사회문제 해결에 한 발짝 다가가려면... Sunny Scholar 과정을 설계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바로 써니들이 9개월간의 활동 내용이 담긴 연구 보고서를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할지 입니다.  어떻게 보면 써니 스콜라에서 9개월 동안 사회문제 솔루션을 만들고 현장 검증을 했다고 사회문제가 해결되는건 아니잖아요? 저희도 그 부분은 이미 알고 있구요. 하지만 써니들의 9개월 간의 활동이 당장 사회문제를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 하나 정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의 연구 보고서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그런데 아직 써니들이 만든 연구 보고서를 어디에서 어떻게 아카이빙 해야 될지 몰라 그냥 쌓아두고만 있는 실정입니다.올해 안에 어떻게든 외부에 잘 노출 될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 해야되는 게 제가 가지고 있는 큰 숙제 인데요. 아마 연구를 하고 있는 많은 기관(나이오트도 하고 계실거 같구요)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기관이 있다면 이번 컨퍼런스를 기점으로 함께 솔루션을 찾아나가 보는 것도 좋은 시도 일 것 같습니다. 저희와 함께 사회문제 관련 연구 결과물을 아카이빙하는 방안을 마련해 보고 싶으신 기관 담당자분들은 연락 주세요! :) 연구들이 쌓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그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
5
·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는 과연 평등할까?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을 중심으로
1. 시작하며  활동가로서의 시작 : 어떤 부끄러움에서  안녕하세요. 더 나은 교육과 사회를 위한 연구활동가를 꿈꾸는 박소영입니다. 저는 교육이란 한 사람의 지속가능한 삶을 일구는 중요한 요소이자 나아가 한 사회의 성숙과 발전에 기여하는 필수적인 영역이라는 믿음 아래 오랜 시간 교육 분야에 뜻을 두어 온 청년입니다.   교육이란 영역을 경유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던 저는, 교육이란 무엇이며 이  사회에서 교육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습니다. 그건 아마 제가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 교육의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아주 많은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교육이 지닌 힘이 소수의 운 좋은 아이들의 것이 아닌, 다수의 보편적인 아이들의 일이 되기를 바라왔습니다.   그렇게 학부생 시절, 교육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실천적인 활동을 통해 당시의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에 다가갔던 저는 나름 제 자신이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성실히 고민하는 청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를 부끄럽게 만든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경험의 양극화”란 단어를 마주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제주라는 섬에서 자라오며 자신이 겪어왔던, 그렇지만 홀로 분투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과 기회의 격차 문제를 장학 사업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존경하는 이의 도전, <비상한 상상>*으로부터 처음 접하게 된 이 단어는 제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평생을 수도권에서 살아온 제 삶에서는 지역에 의한 경험과 기회의 격차라는 문제가 한 번도 ‘문제’였던 적이 없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지하철로 1-2시간 이내로 서울에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문화 생활, 교육이나 강연은 제게 언제나 ‘접근 가능한’ 기회였습니다. ‘물리적으로 어려워서’ 이 기회들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던 존재들도 있었겠구나, 뒤늦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기의 경험이 이후의 삶과 스스로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지니는지 알고 있기에 이 문제에 더욱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제가 주목하지 못했던 불평등이 존재했음에 부끄러웠고, 이 문제를 장학사업과 연결하여 경험의 확장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자하는 이들에게 존경심마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역격차라는 문제를 접하게 될 때면, 미디어 등에서는 직접적으로 주목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경험의 격차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지방 출신 친구들을 만나면 혹시 친구의 학창시절에도 엇비슷한 마음과 경험이 있었는지 조심스레 묻곤 했고, 일련의 이야기를 듣고 모아보니 이는 지방 출신 친구들이 얼마간 공통적으로 느끼던 문제였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 문제는 분명 해결되어야 하는 사회적 문제이나 아직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못해 개인이 감당하고 감내해온 문제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실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마음에 이르자 저는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비상한 상상>이 하나의 유의미한 시작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아직 세상이 주목하지 못한 문제를 우리의 시각에서 정의하고 풀어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저는 용기를 내어 해당 단체의 문을 두드려 감사하게도 2022년 하반기부터 함께 홛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비상한 상상  : 지방 청소년의 경험의 양극화 및 기회의 격차 해소를 위한 수도권 꿈여행 장학 프로젝트. 시즌 1~3동안 총 13명의 장학생을 배출했고, 35곳 정도의 파트너 기관/단체와 함께 했다. “자신의 세계가 부서지고 깨어지는 경험이 한 개인의 성장과 도약에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를, 그러나 지방의 청소년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뭐라도 해보려고 모인 마음들에 힘입어” 앞으로도 더 많은 일들을 도모해보고자 한다. (비상한상상 호스트 및 디렉터, 양소희 님 SNS 中) 📜 스물 다섯, 인생 첫 장학생을 선발하기로 했다 : 비상한상상의 설립 배경 및 활동 과정은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양소희님이 쓰신 해당 글을 참조하시면 더욱 선명히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연구활동가의 시작 : 문제를 문제로만 두지 않는 우리의 움직임에 힘을 더하기 위해 “꿈을 향한 도전에는 경계가 없어야 하니까.”. 이 믿음 아래, <비상한상상>은 우리의 문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고민과 시도와 도전을 이어나갔습니다. 제주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물할 수 있을까, 어떤 어른과의 만남과 대화를 주선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필요로 할까. 또 어떤 청소년에게 이 기회가 가닿아야 할까. 많은 것들을 고민하며 꿈여행을 설계하고, 장학생을 선발하고, 그들과 꿈여행을 다녀오고, 다시 지역사회에 돌아와 청소년들이 그들만의 문제의식을 실현해내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의식에 응답하는 청소년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슬퍼지곤 했습니다. 자신이 어느 곳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에 대한 접근성이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니. 교육에 희망을 거는 사람으로서 지역의 문제가 현실로 와닿은 순간이었습니다. 이내 저는 이렇게 많은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이 문제가 사실인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사이의 경험과 기회의 차이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나 결과물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경험과 기회라는 단어가 주는 추상성과 거대함 때문일까 싶어 범위를 좁혀 검색했을 땐, 지역격차에만 집중했거나 교육문제에 집중하는 등 여러 하위요소들에 대한 제한적인 연구만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경험과 기회 그 자체가 얼마나, 어떻게 차이나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결과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경험의 양극화’라는 단어가 새로웠던 것처럼, 아마 이것이 미처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한 번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동료들은 그럼 우리가 해보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이 겪는 경험과 기회의 격차의 실태가 어떠한지 우리가 알아보자고 말입니다. 실제적으로 아이디어가 나오자 너무 중요하고 흥미로운 작업이 되겠다며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반응했습니다.  비수도권 10대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경험과 기회는 무엇이며, 경험과 기회의 격차라는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측정할 수 있을지 열린 아이디어를 던지며 워크숍마저 뚝딱 진행하였습니다.  우리의 문제의식이 더 많은 공감과 동의를 얻기 위해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문제의 논의점을 잘 준비하고 마련한다면, 그렇게 우리의 문제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면, 분명 사회적으로 이 문제에 주목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작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연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도 문제에 대한 진심 하나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를 문제로만 두지 않는 것. 이를 같이 해결해보자고 얘기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 활동의 가장 큰 매력과 힘을 다시금 느끼며 활동에 연구를 더해 우리의 이야기를 보다 탄탄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비상한상상> 시즌 3에서는 리서치팀을 꾸려 이 문제에 집중해보자 이야기하였고, 과분하게도 팀을 리드하는 자리를 맡아 차근차근 팀의 과업과 역할을 정리해나갔습니다. 그렇게 활동 속에서 연구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 기존의 연구와 그 한계청소년의 삶 속의 이야기를 향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음에도 팀의 리드 자리까지 맡겠다 용기 낼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던 ‘연구’라는 일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여기’의 어떠한 문제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 모르는가를 명확히 답하는 그 과정의 엄밀성과 이를 밝혀냄으로써 펼쳐지는 추가적인 탐구와 대안의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저로 하여금 연구라는 단어에 반응하게 만들었던 듯 합니다.  <비상한상상>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 활동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면, 연구 꿈나무로서 저는 이 작업의 학술적 토대를 고민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안고 <연구원정>의 프로젝트 내에서 이 문제를 추가적으로 디깅해보자는 나름의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역격차 그리고 경험과 기회의 격차, 그 교차점에 서서 비수도권 지역 청소년의 경험과 기회 문제. 이 문제는 여러가지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저는 일차적으로 ‘지역 격차’와 ‘경험과 기회’라는 것의 교차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에 저는 우선 ‘지역격차’, 그리고 ‘경험과 기회의 격차’를 정의하는 일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지역격차 : 조명래(2013)에 따르면, 지역격차란 지역불균형으로도 표현되며 집단 간, 계층 간, 부문 간 사회적 기회, 자원, 권력이 불공평하게 배분된 상태를 지칭하는 사회적 불평등이 지역 간에 골고루 분포하지 못해 현격한 차이가 발생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지역격차는 사회적 불평등을 포함하여 지역이란 공간범주를 기준으로 나타나는 포괄적인 차이 혹은 불균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역격차가 문제가 되는 이유로, 지역간 기회, 자원, 권력의 불균등 분포가 구성원에게 ‘불필요하고 부당하게’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을 겪게 하기 때문이라고 짚어 냅니다.       지역을 이유로 삶의 기회를  불필요하고 부당하게 경험하는 사회적 불평등. 이 정의를 알고 나니 그러한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 청소년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고, 청소년들의 삶에서 지역격차는 어떠한 양상으로 일어날까 더욱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스텝으로 경험과 기회라는 것을 규정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이 단어들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거대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발화하고 다니던 ‘경험’과 ‘기회’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예상치 못하게, 너무 이른 순간부터 난관에 봉착한 느낌으로 적잖이 당황하고 며칠, 아니 몇 주간 고민스러웠지만, 이내 방법을 찾았습니다. 제겐 함께 고민할 동료들이 있었거든요.  "개개인마다 다양한 뜻으로 소화하고 정의할 수 있을 경험과 기회를 하나의 완결된 의미로 파악하긴 어렵더라도, 경험과 기회의 요소를 우리가 정리해볼 수 있진 않을까?" 이에 저희는 청소년들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질 몇 가지 경험들을 떠올려 이를 범주화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카테고리는 문화자본, 사회자본, 교육기회, 진로 체험 기회였습니다. 물론 이것들이 청소년들의 삶 속 모든 경험과 기회를 포괄하진 못할 것입니다. 아주 작게는 대중교통 이용 경험, 크게는 의료 경험까지. 경험과 기회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 하니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당장 청소년의 삶에서 주목해보고 싶은, 또 주목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를 크게 4가지로 잡아보았습니다. 이 중의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에 대한 간략한 개념은 아래와 같습니다.  문화자본 : 문화 자본은 학자들에 의해 다소 엄격하게 사용되었지만, 각 개인들이 사회의 높은 수준의 문화를 후천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면 그들은 문화 자본을 소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자본 : 사회자본이란 개념은 다차원적이고 복합적 개념이나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사회 안에서 형성되는 인간 네트워크의 집합적 가치의 총합이라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김상준(2004)에 따르면, 사회자본은 보다 포괄적인 사회 관계 속에서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연결망과 집단 소속이 당사자에게 주는 다양한 사회적 기회 자원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용어들로 구체화 해볼 수 있는 청소년의 경험과 기회는 왜 중요할까요? 청소년기에 한 사람이 마주하는 경험과 기회는 그의 성장과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진로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들여다보자면, 청소년기의 ‘경험’은 대학 입시 수시 전형 중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청소년기의 경험과 기회가 한 사람의 성장, 나아가 진학, 진로, 취업, 그리고 이후의 삶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학술적인 논의 외에도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이 지금의 여러분이 되기까지 중요했던 경험 한 두 가지 정도는 떠올리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런 경험과 기회가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에 의해 불평등하게 배치되는 것을 문제로 여긴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교육학은 왜 이런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교육 분야를 배우고 발 딛고 서있는 제게 들었던 또 다른 의문입니다. 제 연구가 또 주목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교육격차는, ‘학교 환경의 차이, 지역 환경의 차이, 사교육을 받는 정도의 차이, 학부모 지원의 차이, 학업성취의 차이 등 교육과 관련된 여러 형태의 차이’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이를 주된 연구 주제로 삼는 교육사회학이라는 분과 내 다양한 연구 논문들은 주로 학업성취 결과 분석을 위주로 교육격차를 확인하고 접근해왔습니다.  교육사회학 영역에서 교육평등은 교육 기회, 교육 과정, 교육 결과의 세 가지 차원에 대해 논의되지만 현행 연구들은 학업성취라는 교육의 결과 측면에서 교육격차를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측정 및 비교 가능한 학업성취도의 특성 때문일 수도, 학업성취가 한 사람의 교육성취, 나아가 직업 지위와 이후의 삶에서의 소득수준 등 다양한 것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증적인 연구 분석 결과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청소년들이 교육기회와 교육과정에서 경험하는 차이를 드러내고 규명하는 연구는 아직 부족한 듯 합니다. 우리의 연구가 현행 연구에서 아직 부족한 지점을 직접 포착하며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3. 연구의 구성 그래서 저와 제 동료들는 다음과 같은 연구질문을 세웠습니다.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이 겪는 경험과 기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격차가,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가?” 이제까지 교육격차 연구에서 이루어졌던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의 차이’를 넘어 ‘교육기회’의 차이와 ‘교육이 이루어지는 조건과 과정’에서의 차이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실제 청소년들의 삶에서 경험과 기회가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의 경험이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보다 주목하고자 한 연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세상에 없던 청소년들의 경험 실태조사를 기획하게 됩니다. 바로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의 격차 탐구 실태조사를 말이죠. 서베이 기법을 활용하여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각 100명의 청소년들의 일상적 경험과 기회를 파악하고자 하였습니다. 앞서 구체화한 지역에 따른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를 파악할 수 있는 4가지 하위 분야에 대한 문항을 설계하여 배포하기로 하였습니다. 각 100개의 응답은 일반화하기에는 부족한 표본이지만,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청소년들의 응답을 수집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실태조사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서 드러났는지 실질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한 질적 연구 또한 동시에 준비하였습니다. 심층 인터뷰 기법을 통해 제주에서 서울로 상경한 청년 12인을 대상으로 인터뷰 하여 상경 과정을 역추적해보고자 하였습니다. 비수도권 청소년으로서의 성장해온 과정에서 어떤 유형의 부재와 결핍, 격차를 인지하거나 감각하였는지 파악하고자 하였습니다. 전문 연구자 그룹이 아니었기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부족함을 메워보고자 질적 연구를 준비하며 팀원들과 심층 인터뷰에 도움을 주는 책을 찾아 읽으며 공부하던 날도 스쳐지나가곤 하네요. 4. 연구 결과 연구활동가의 특혜 : 나의 문제의식을 탐구해 볼 현장을 만날 수 있다는 것 활동과 연구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시작한 활동은, 제게 정말 이 연구를 수행해 볼 기회를 선물로 안겨주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 사업 선정 결과, 실제로 이 연구를 직접 수행해볼 기회와 자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이 연구는 연구를 수행하고 결과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지원해줄테니 마음껏 상상하고 시도하라는 디렉터님의 이야기가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어요.  연구 설계 : 3달이면 하나의 연구를 작게나마 시작해볼 수 있다고 어떻게 설계했냐구요? 2023년 10월 한 달간 팀원들과 열심히 머리를 맞대어 연구의 큰 얼개를 짜고, 구체적인 문항과 질문을 상상하고 설계하며 설문지와 질문지를 만들었습니다. “연구자의 기발한 아이디어 만큼이나 값진 것이 연구할만한 좋은 현장을 만난 것인데, 좋은 기회를 갖게 되셔서 기대가 됩니다.”라는 코멘트로 응원과 격려를 전해주시던 <연구원정> 동료 선생님의 말씀처럼 상상하고 구상했던 연구를 실제적으로 수행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연구 수행을 앞둔 시기에 더욱 더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결과가 모일까, 우리의 고민이 현실일까- 하는 궁금증과 설렘을 안고 11월부터 한 달 간 설문지를 배포하였고, 눈덩이 표집방법으로 질적 연구를 위한 인터뷰이를 찾고 인터뷰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렇게 성실한 홍보와 인터뷰의 시간을 보낸 뒤 12월, 연구 수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기대에 약간 못 미쳐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열띤 홍보의 결과로 얻은 소중한 131건의 서울/제주 청소년들의 응답과 12인의 인터뷰. 우리 손으로 만들고 얻어낸 이 결과가 너무 소중했습니다. 그렇게 12월 한 달 간 팀원들과 이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것이 유의미한 결과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구 결과 : 경험과 기회는 과연 평등했을까요? 과연 연구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우리의 예상보다 흥미로운 결과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양적연구 결과인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의 경험과 기회의 격차 실태조사에서는 서울과 제주 청소년들이 뚜렷하게 대조적인 응답을 보이는 문항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질적연구에서 인터뷰이들의 발화는 이를 뒷받침하곤 했습니다.  문항 범주별로 양적 연구의 대표적인 결과들을 소개하며, 관련된 질적연구의 응답이 있다면 덧붙이며 설명하겠습니다.  [문화자본]  이동의 한계에 따른 문화자본의 소유, 접근의 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생활을 통해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연결된다는 문항에서 서울 청소년들이 제주 청소년들에 비해 긍정적인 답변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관심 분야, 취미 생활등을 위한 다양한 정보의 접근성 차이가 컸습니다. 서울 청소년은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긍정 반응이 높았던 반면, 제주 청소년은 긍정 응답 비율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 “저는 교육 뿐만 아니라 문화 생활도 꽤 크다고 생각 하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좋아하는 가수가 있었는데 이제 콘서트를 가고 싶은데 가려면 비행기 타고 이제 숙박까지 생각을 하니까 콘서트도 못 가고 막 이런 경험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응답자 F) - “중학교 때인가 코엑스를 방문했었는데, 그런 큰 문화시설을 접하면서 서울이 되게, 서울에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아요.” (응답자 K) [교육기회 파트] 교외에서 관심있는 분야의 강연, 멘토링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청소년의 수는 제주-서울 비슷하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청소년의 수는 제주가 현저하게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1회 이상 경험해본 적 있는 청소년들이 존재함을 고려했을 때, 완전한 결여-단절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진학 혹은 취업 정보 파악에 관한 문항 답변은 확연히 상반된 결과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제주 청소년은 이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청소년의 비율이 72.8%이었지만, 서울 청소년은 단 33.3%였습니다. - “요즘 제가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되게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막 탐방을 하더라고요. 저한테 와서 막 인터뷰 해도 될까요? 이러면서 오기도 하고, 너무 예쁘다 생각하는데 한편 정말 저는 그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거든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대학 탐방을 가나는 거를 생각도 못했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까 이렇게 애들이 잠깐이나마 대학의 문화를 느끼고 또 그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학생들의 열정을 키우는 데 되게 도움이 많이 됐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 서울에서 지냈다면 아까 제가 관심있다고 말씀드렸던 그런 교육 불평등에 대한 생각이 지금처럼 강하지는 않았겠다.” (응답자 F) - “저는 연극 전공이었거든요. 그런 연극사들을 다 그냥 걔네들(수도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동기들)은 다 배웠대요. 고등학교 때 그래서 그런 뭐 기본적인 연기 수업이라든지 그런 흐름들을 자연스럽게 그들은 익힐 수 있어서 저는 그게 조금 부러웠어요. 경험이 많았을테니까 아무래도 서울에 살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요?” (응답자 H) [진로 체험 기회] 서울과 제주 청소년 모두 관심 직업 분야에 대한 관심도와 다양성은 동일하지만, 실제로 관심 직업 분야 교육-체험-교류의 기회를 가졌는지 여부에서 제주-서울 청소년간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서울 청소년의 경우, 관심 진로분야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음에 해당하는 응답 비율이 25.9%인 반면, 제주 청소년은 43.3%로 두 배에 조금 못 미치게 높았습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서울 청소년의 경우 교육-체험-만남의 횟수가 상승하는 모양의 그래프였지만, 제주 청소년의 경우는 아예 없거나 많은 양상을 띄며 제주 내에서도 양극화 되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회에 대한 주관적 인식 부분에서는 제주-서울 청소년의 인식이 눈에 띄게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 청소년은 75%가 넘는 비율로 기회가 없다고 느낀 반면, 서울 청소년의 경우 60%에 육박하는 수가 기회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 “(시험을 준비하는데) 그거에 대해서 면담할 선배가 없다는 거. 그래서 이게 다르구나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고. 서울은 좀 다르구나를 더 본격적으로 느낀 건 저희 회사 와서도 이렇게 진로 관련된 고민을 나누는게 되게 활발한 느낌이에요.” (응답자 A) - “서울에서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면 뭘 느낄 수 있냐면,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인맥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런 그 사람들과의 여러 가지 경험을 나눌 수 있고 사실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나중에 이제 사회에 진출을 하고 이러다보면 비슷한 분야 또는 다른 분야에 대한 이야기들을 굉장히 많이 들을 수 있어요.” (응답자 G) [사회자본] ‘현재 거주 지역에서의 기회의 부족과 외부 제약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지’에 대한 응답 결과는 실태조사 전반을 통틀어 가장 뚜렷하게 패턴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제주 청소년의 경우 약 85%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서울 청소년의 경우 약 60%의 청소년이 아니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지역에 대한 애정도를 묻는 질문의 경우, ‘애정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의 비율은 제주(76%)-서울(87%) 모두 높았으나, 앞으로도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응답은 완전히 반전되어 나타났습니다 .(제주 “아니다” 63.8%, 서울 “그렇다” 68.5%) - “저는 만약에 상경을 할 학생들이 있다면 이제 고3 학생들이나 이런 친구들 싹 다 모아놓고 교육을 하거나 멘토를 매칭해서 좀 도와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저는 그 모든 걸 혼자서 구글링하면서 찾았기 때문에. 제주도 출신으로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 꽤 있는데 그들의 경험이 공유가 되고 있지 않은 거에 대한 좀 안타까움이랄까. 다 리셋이 되는 것 같아요. 경험이 누적이 돼서 쌓이는 게 아니고 리셋. 다시 또 처음 시작되고. 이게 좀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응답자 G) - “(다시 제주로 돌아갈) 생각이 없지는 않아요. 나중에 이제 제가 정말 유명해져서 내가 어디에 있든 나한테 작업 의뢰하러 올 정도가 된다면 당연히 전 제주도 가서 살고 싶어요. 근데 이제 그게 아니라면은 이제 열심히 영업을 해야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살아야 되는 거고. 위치가 중요하지 않게 되면 제주도에 살게 될 것 같아요.” (응답자 C) 연구결과의 종합 :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발견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반화하기엔 적은 수의 응답이지만, 지금 모인 자료들을 종합해보더라도 <비상한상상>이 주목하고 있던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 사이의 경험과 기회에 어느 정도의 차이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 청소년들이 서울 청소년에 비해 문화, 교육, 진로체험, 그리고 사회자본으로 설명될 수 있는 여러 경험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으며 특히나 경험과 기회의 정보나 접근성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회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 부분이 확연히 차이 나는 점에서, 막스 베버가 계급을 나누는 인식으로 개인의 생활 기회(Life Chance) 정도에 따라 구분한 것을 비추어 볼 때 해당 응답은 접근성 제한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해볼 만 합니다.  이러한 경험과 기회의 불평등이 단기적으로는 진학에, 나아가 시장 위치의 차이를 어떻게 만들어낼지는 추가적인 분석 및 연구로 남겨둘만하다고 생각합니다.  5. 결론 지금까지 연구활동가로서 저와 제 동료들이 수행한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의 격차를 탐구해온 과정과 결과를 보여드렸습니다.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은 성장의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차이를 겪는지, 그 차이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탐구해보고자 했던 우리의 시도는 제주-서울 청소년 131인의 응답과 제주에서 자라 서울로 상경한 청년 12인의 이야기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의 예상처럼 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은 문화, 교육, 진로 체험, 그리고 사회자본 모두에서 수도권 청소년에 비해 경험 및 기회에 대한 정보의 양, 접근 기회의 차이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록 우리는 이 문제를 더욱 더 성실히 알리고 풀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지역에 의한 한 사람의 경험과 성장이 차이가 존재하며 개개인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 돌파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경험과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까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이따금 이 연구가 지닌 한계에 멈칫하곤 했습니다. 전문적인 연구자가 설계한 게 아닌 만큼 이 연구는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연구 결과를 일반화할 만큼 많은 수의 표본을 모으지 못했으며, 추상적인 개념인 경험과 기회를 구체화 하는 과정에서도 어설픈 지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문항들 역시 해당 문항이 오롯하게 경험과 기회라는 변수만을 측정할 수 있도록 통제되지도 못했습니다. 연구는 보다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 역시 많이 배울 수 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조금 더 앎이 풍부했더라면, 조금 더 능숙했더라면, 조금 더 섬세했더라면, 그리고 조금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이 문제를 보다 잘 구성해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는, 그럼에도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내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의 격차를 가시화 하는 중요한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 연구는 지역격차 혹은 교육격차, 어쩌면 경험과 기회의 격차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에게 또 다른 연구의 시작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교육격차 그리고 교육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지닌 저는 경험과 기회의 격차가 한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더욱 궁금해졌고, 이러한 경험과 기회의 격차를 공공이, 그러니까 공교육이 해결할 수는 없을지 보다 많은 물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디 많은 분들에게 이 문제와 연구가 가닿아 더 많은 논의들이 활발히 생산되고 토론되길 바랍니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이 문제에 고심하며 몰두했던 지난 시간들은 그 자체로 값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 문제에 대한 진심과 이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던 사람들의 선의와 열정에 힘입어 가능했던 이 연구가 앞으로도 더 발전되기를 바라며 마치고자 합니다.  운 좋게 팀과 단체가 활동한 내용을 대표로 정리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제 개인이 수행한 게 아닌, <비상한상상>이라는 반짝이는 단체가 함께 수행한 결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팀의 연구에 학술적 토대를 고민하고 싶다는 욕심이 과연 얼마나 충족되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개인적인 고민만으로는 결코 실현해낼 수 없는 결과를 함께 만들어준 <비상한상상>에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연구와 현장에서 더 나은 세상을 진심으로 바라는 세상의 모든 연구활동가를 응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조명래(2013). 격차의 새로운 양상과 통합적 균형 발전. NGO연구  제 8권 제 2호. 한국 NGO 학회. 이정화(2014). 문화예술교육의 이해. 커뮤니케이션 북스. 강석(2016). 커뮤니케이션과 자본. 커뮤니케이션 북스. 김상준(2004). 부르디외, 콜만, 퍼트남의 사회적 자본 개념 비판. 한국 사회학. 38(6), 63-95. 박주호, 백종면(2019). 교육격차 실증연구의 체계적 분석. 한국교육문제연구, 37(1), 213-238.
교육 공공성
·
12
·
때 이른 자립을 마주해야 하는 청년들
1. 연구의 배경 ‘보호종료’ 이후의 막막함 25일 광주 광산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전 7시께 광산구 한 아파트에서 A(19)양이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A양이 당일 오전 2시께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 고층으로 올라가 스스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양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성친구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메모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A양은 만 18세까지 지역 보육시설에서 생활해왔다. 이후 지난해부터 장애가 있는 부친의 임대 아파트에서 함께 거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21일 오전 10시5분께 광산구 신창동 모 대학교에서 새내기 대학생 B(20)씨가 투신해 숨졌다. B씨는 해당 대학에 합격하면서 올해 초 보육원을 나와 기숙사 생활을 했으며, 방학 중이던 투신 당일에도 홀로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시설을 나올때 받은 지원금 700만원 가운데 500만여원을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으로 사용해 금전적 고민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종합] "너무 힘들다" 절규 ···광주서 보육원 출신 잇단 비극. 무등일보. (2022년 8월 25일).  어느 날 문득,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광주에서 두 명의 자립준비청년이 자살했다는 내용을요. 저는 이 기사를 보고, 마음이 한동안 좋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어려움에도 공감했지만, 그들이 ‘사각지대’에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 또한 학교 밖 청소년으로, 한때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적이 있었기에 줄곧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그래서 이 기사를 시작으로 ‘자립준비청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보육원에서 살다 보호가 종료되어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어려움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보호종료아동 3104명 중 50%가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보호종료아동이 죽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로는 ‘경제적 문제’를 꼽은 응답자가 33.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뒤이어 가정생활문제(19.5%), 정신과적 문제(11.2%)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기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요? 때이른 자립을 마주해야 하는 청년들 ‘자립’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정말 어려운 발달과업입니다. 사람마다 자립의 시기는 다르겠지만,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정도까지는 부모의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받으면서 서서히 자립을 맞이하게 되죠. 그런데 학대나 빈곤, 방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가정에서 분리되어, 보육원과 같은 아동양육시설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때 이른 자립을 마주하게 됩니다.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의 보호가 종료되기 때문인데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역량도 충분히 기르지 못한 채 자립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시설 청소년들은 퇴소 이후에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확대된 지원 제도, 그러나 여전히 자립준비청년의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시설에서 보호가 종료된 아동들의 자립 이후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2022년에 아동복지법이 개정되었고, 현재 만 24세까지 보호기간을 연장하여 학업을 이어가거나 취업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자립수당 확대, 공공주거 지원 강화, 자립지원 전담기관 및 전담인력 확충 등 많은 영역에서의 지원이 확대되었는데요. 그럼에도 보호 종료를 앞두고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고 계속해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여러 제도가 수정, 보완되고 지원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제도와 자립준비청년을 연결하는 다리가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거나 자립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어요. 저의 연구에서는 이 근본적인 이유가 ‘자립준비청년의 자립생활에 필요한 역량의 부족’이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교육’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원의 격차가 발생하는 상황이라면, 교육이 그것을 완화해줄 수 있지 않을까?  성공적인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정서적, 경제적 지지를 받으면서 그것을 잘 활용하고, 점차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가정이 있는 청소년의 경우, 부모의 정서적, 경제적 지지를 받기도 하고 생활에 필요한 기술들을 자연스레 배워나가지요. 하지만 아동양육시설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가정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거나 그 지원의 정도가 부족해서, 아동양육시설 내에서 상호작용하는 시설 종사자(생활복지사, 자립전담요원 등)와의 관계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동양육시설에서는 다수의 인원과 함께 생활하므로 시설 종사자가 부모와 같이 밀착하여 청소년들을 한 명 한 명 세세히 지도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격차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시설 종사자의 말을 잘 듣고 적극적인 청소년의 경우 시설 생활복지사나 자립전담요원과 관계가 좋아 퇴소 전후로 자립에 필요한 정보나 지원을 제공받으며 좀 더 수월하게 자립의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러한 정보와 지원이 ‘모두에게 제공되지 않아’ 공평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례가 종종 보고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제공되고, 누구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지원 속에서 격차가 발생하게 되고 이러한 지원의 격차는 자립 과정의 어려움으로 작용하여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립준비청년의 지원 격차를 줄이고, 모든 자립준비청년이 자립에 필요한 역량을 함양시키기 위해서는 자립지원교육(이하 자립지원 프로그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설 내의 아동에게 자립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곧 '교육'의 역할이기도 하니까요. 교육이 정말로 그러한 역할을 잘 해내려면 자립 지원 프로그램의 내용과 방법이 자립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실효성이 없는 자립지원 프로그램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립지원 프로그램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보았던 통계자료를 보면, 그동안의 자립지원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몇몇의 선행연구에서도, 자립지원 프로그램이 청소년의 자립생활기술을 높이는 것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보고하거나, 자립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청소년의 인터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자립지원 프로그램이 실효성이 없다는 인식이 왜 존재하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립지원 프로그램의 내용과 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여 본 연구에서는 자립준비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어, 자립지원 프로그램을 새롭게 개발하기 위한 기초연구를 해보려고 합니다. 2. 기존의 연구들 1) 개념 및 이론 아동보호체계에서 보호되는 아동청소년의 경우, 만 18세가 되면 보호가 종료됩니다. 그런데 최근, 아동복지법이 개정되어 현재는 24세까지 보호종료를 연장하여 시설에서 보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 원가정이 아니라 아동복지시설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또는 위탁가정에서 보호되는 아동을 ‘보호대상아동’이라고 일컬으며 아동복지시설에서 성장하다가 보호가 종료되고, 사회에 진출하기를 준비하는 청년을 ‘보호종료아동‘ 혹은, ’자립준비청년’이라고 합니다.  ‘자립’이란, 가정과 지역사회의 성인 구성원으로서 자기 충족적, 상호협력적으로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태를 일컫습니다. ‘자립생활기술’이란 자립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핵심적인 기술을 말하는데요. 현재 아동복지시설에서 운영되고 있는 ‘자립지원 표준화프로그램’에서는 자립생활기술을 8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일상생활기술’, ‘지역사회자원활용기술’, ‘자기관리기술’, ‘사회적기술’, ‘자산관리기술’, ‘진로탐색기술’, ‘직업생활기술’, ‘사회진출기술’로 제시하고 있어요. 자립지원 표준화 프로그램(Ready? Action!)은 아동양육시설과 위탁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는 보호대상아동에게 진행되는 자립교육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시기에 따라 Ready?와 Action!의 2가지로 분류되는데요. Ready?는 ‘보호종료 전’까지 제공하고,  연령에 따라 4단계(미취학~초등 2년, 초등3~6년, 중학생, 고1~보호종료 전)으로 구분하여 진행되어요. Action!은 ‘보호종료 후‘ 자립지원전담기관 등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자립지원 표준화 프로그램은 문제가 있어요. 자립지원 표준화 프로그램(Ready? Action!)의 효과성에 대해 몇몇의 선행연구에서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하고 있으나, 8개 영역 중 특정 영역에 대해서만 프로그램이 운영되거나 지자체에서 지원비용이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지역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시설 청소년들은 시설에서 제공되는 자립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실효성이 없으며, 강제적이고 형식적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자립지원 표준화 프로그램이 영역을 나누어 체계적으로 설계되어 운영되고 있고, 이들에 대한 경제적, 정서적 지원이 확대되었음에도 자립준비청년의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은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분명히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2) 선행연구 및 선행연구의 한계  시설 청소년들은 곧 맞닥뜨리게 될 ‘시설퇴소’라는 위기에 직면하면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인식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로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진로발달이 이루어지고, 자립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자립지원 프로그램은 대부분 ‘반복적’, ‘강제적’, ‘집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요. 프로그램의 내용은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고 진행되어 시설 청소년에게 잘 와닿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편, 여러 연구에서 많은 연구참여자들이 공통적으로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고 언급된 교육도 있었는데요. 다른 연구이지만 연구참여자의 인식을 모아보았을 때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을 보아, 시설 청소년들이 비슷하게 자립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고 느끼는 내용과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자립지원 관련 정책이 변화하는 만큼 자립지원전담요원이 그러한 정보를 빠르게 따라가야 하는데, 그것이 의무가 아니라 권장사항인 경우가 많다 보니 자립지원제도를 직접 이용하는 자립준비청년이 훨씬 더 잘 아는 경우가 많다는 사례도 있었는데요. 지원 정책이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보이기는 하지만 지원하기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립지원전담요원의 전문성 문제가 존재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선행연구에서는 다소 피상적으로 자립교육 프로그램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으며, 자립지원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과 방식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 연구에서는 '자립교육 프로그램의 내용과 방법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깊이있게 도출해보기 위해 자립준비청년의 자립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3) ‘자립’에 대한 인식의 차이, 자립지원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선행연구에서는 시설 청소년은 자립지원프로그램에 대해서 ‘퇴소 직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인식하는 반면에, 자립지원전담요원은 ‘하루아침에 자립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렸을 때부터 차근히 생활능력을 길러나가야 한다’고 인식하였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서로 자립 '능력’에 대해서 다르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시설 청소년은 실질적으로 자립과 맞닿아있는 주거관련, 경제관련 능력 등을 이야기하고, 자립지원전담요원은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한 습관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둘 다 너무나 중요한 역량이기에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연령의 구분’이 있어야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퇴소 하기에는 한참 남았다고 생각이 드는 어린 나이에, 주거 관련 정보를 익히고 자립정착금에 대해서 설명을 듣는다면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와닿지 않겠죠. 반대로 퇴소 직전인데 어렸을 때부터 계속 받았던 안전교육이나 예절교육만 반복해서 듣는다면 퇴소 이후의 삶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할 것입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자립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파악하여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낸 후에, 연령 별로 이루어나가야 할 발달 과업에 맞추어 내용을 구성해보려고 합니다. 3. 연구의 구성  1) 연구질문 1. 그동안의 자립지원프로그램에 대해 시설 청소년이 실효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유) 2. 시설 청소년의 자립준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무엇인가?   이 연구질문을 토대로 하여, 설문조사와 FGI(초점집단면접)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설문조사는 기존 자립 지원 표준화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점에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공감하고 있는 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에요.   설문조사에서는 연구참여자의 나이와 성별, 자립지원 표준화 프로그램(Ready? Action!)의 8개 영역 별로 도움이 되었던 정도, 교육의 내용/방법, 동기부여를 받았는지 여부, 자립지원 프로그램에 어떤 내용이 포함되었으면 좋겠는지, 어떤 방법이 좋은지 등을 조사할 예정입니다. FGI 초점집단면접에서는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자립준비청년(퇴소 2년 전~직전)과 시설에 거주하고 있지 않으나 자립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청년(보호종료 직후~2년)] / [바람개비 서포터즈에서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의 두 집단으로 나누어 각각 면접하려고 해요.   FGI에서 첫 번째 집단에게는 자립을 준비하면서(혹은, 자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할 예정입니다. 자립지원 프로그램의 8개 영역을 통해 질문을 도출하고,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서 많이 사용되는 ’페르소나 리서치‘ 인터뷰에서 활용되는 질문을 참고하여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산관리기술‘의 영역이라면, “퇴소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거나 걱정한 적이 있는지”,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거나 걱정할 때,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그때의 기분은 어떠했는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하고,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왜 그렇게 대처하였는지“ 물어보고, 계속해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대답을 들을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합니다.  선행연구에서 ’자립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피상적으로 접근했다는 한계를 조금이라도 보완하고자 깊이있는 질문을 하기 위해 질문의 내용을 촘촘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또, 두 번째 집단에게는 어떤 내용으로 주로 멘토링을 진행하는지, 멘티들은 보통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거나 힘들어하는지, 멘토의 자립경험 등에 대해서 질문해보려고 합니다. (바람개비 서포터즈의 멘토들은 한때 자립준비청년이었고, 현재는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자립과 관련한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지지체계 중 일부인데요. 멘토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립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짐작되며, 자립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내어 멘토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선정하였습니다.) 2) 연구계획  먼저 연구를 진행하기에 앞서 방법론에 대한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설문조사와 FGI의 방법을 활용할 예정이므로 이와 관련한 공부를 하고, 혼합연구방법에 대한 공부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 이 연구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 같은 목적을 하고 있는 여러 연구들의 방법론적인 틀도 살펴보고자 해요. 방법론의 공부와 함께, 본 연구가 ’발달심리학‘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 이 부분에 대한 공부도 해보려고 합니다.   연구의 진행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된다면 우선 설문조사를 하기 위해 문항을 개발하고, 아동양육시설에 퇴소 전(2년~직전) 아동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요청하려고 합니다. 전수조사를 하고 싶지만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가능한 지역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게 될 것 같아요. 메일이나 유선으로 연락하여 연구에 대한 설명과 설문조사를 요청드리려고 합니다. FGI 설문조사는 앞서 설명드렸던 자립준비청년의 두 그룹을 모집하여 진행할 예정이며, 아동양육시설이나 자립지원전담기관에 문의하여 연구참여자를 모집할 예정입니다.  4. 연구 프로토타입,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  앞서 설명드린 이야기들은 프로토타입을 거치며 많이 수정한 부분들인데요. 프로토타입을 진행하기 이전에는 시설 청소년의 인식만 살펴보았었는데, 프로토타입을 진행하며 어떤 인터뷰이 덕분에 프로토타입에서는 종사자의 인식도 들여다보며 앞으로 진행될 연구를 위한 토대가 되어줄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초반에는 자립준비청년을 인터뷰하려다, 상황이 되지 않아 아동양육시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시설 종사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는 “교육은 별 소용이 없어요. 경제적 지원이라던지 정서적 지원을 더 늘리는 게 맞아요”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저는 이 답을 듣고 한동안 좌절감에 빠져있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교육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 생각을 밀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교육이 제 본래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청소년과 종사자 모두 교육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인터뷰를 진행한 후에, 저는 자립전담요원의 목소리를 담은 연구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선행 연구에서는 자립지원 관련 업무를 그저 ‘업무’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자립은 정말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기에 차별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해야될 업무라고 인식되니 그것이 시설 청소년에게도 차별성이 없게 다가와 그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 앞서 설명했듯이 자립지원 프로그램이 연령 구분 없이 진행되는데, 청소년과 종사자 간에 ‘자립’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존재하여 더욱 혼란스럽고, 실효성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어요.  이후에는 새로 설립된 자립지원전담기관이라는 체계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아동양육시설에서는 어떤 역할을 해주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면서 프로토타입 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프로토타입 과정을 통해 다각도에서 저의 연구질문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5. 결론 1) 연구의 의미와 후속연구 질문  저는 이번 연구의 의미가 실질적인 자립지원 프로그램의 내용과 방법을 고민해봄으로써 자립지원 교육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본 연구를 통해 프로그램이 개선된다면 자립준비청년이 자립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연구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과 방법적인 측면을 살펴보았는데, 추후에는 자립지원 표준화 프로그램에서 연령을 이미 나누고 있음에도 현장에서는 왜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는 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자립지원 전담요원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관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차근히 살펴본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이 문제가 해소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 강현주, 김미숙, & 강누리. (2023). 자립지원전담인력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 청소년시설환경 21.1, 91-105. · 김소영 & 이신혜. (2020). 시설에서의 자립 준비: 시설퇴소아동 당사자의 자립서비스 수혜 경험을 중심으로. 청소년학연구, 27(11), 1-36. · 김세진, 조규필, 노자은, 이상철, 전예나, & 김아람. (2020). 청소년 자립준비 사정도구 개발.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 나웅기. (2022년 9월 14일). 2명 중 1명꼴 “죽고 싶다”…경제적 문제 가장 큰 이유. 부산일보. https://mobile.busan.com/view/.... · 노충래, 강현아, 이동욱, & 송유진. (2018). 아동공동생활가정 및 가정위탁용 자립지원프로그램 표준화 개발연구. 보건복지부. · 배주미, 김영화, 김범구, 정익중. (2011). 취약 아동청소년 자립지원 정책 및 서비스에 대한 현장전문가 델파이 조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보건복지부. (n.d.).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 e-나라지표. https://www.index.go.kr/unity/.... · 송연주, 김세진, 김경은, & 최수정. (2022). 청소년 자립준비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과 효과성 검증. 청소년상담연구 30.1, 21-48. · 시설아동보호란. (2023년 8월 17일). 서울특별시 아동복지센터. https://child.seoul.go.kr/arch.... · 신원동. (2016). 듀이의 교육이론과 도덕과 교육에의 함의. 도덕윤리과교육,(50), 223-243. · 안태구, 길건혁, 마미나, 김주하, & 주해란. (2022). 보호종료아동의 자립 지원 방향: 자립형 그룹홈에서 생활한 경험을 중심으로. 청소년학연구 29.1, 67-94. · 안희란, & 이용교. (2020). 시설퇴소 청년들의 자립지원교육에 대한 요구. 청소년복지연구 22.2, 61-84. · 유설희. (2022).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아이들: 아동양육시설 청소년의 진로와 자립 준비과정 (박사학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Riss. · 유영림, 양영미 & 박미현. (2015). 아동양육시설 퇴소 자립 청소년의 자립에 대한 이해: 생애사적 관점으로. 아동과 권리, 19(3), 509-550. · 윤혜원. (2022년 6월 14일). 보육원 등 보호시설 퇴소연령 '만 18→24세'로 연장한다. 복지타임즈, https://www.bokjitimes.com/new.... · 이상정, 류정희, 김지연, 김무현 & 김지민. (2019). 가정 외 보호아동의 자립 준비 실태와 자립 지원 체계 개선 방안 연구. (연구보고서 2019-22). https://repository.kihasa.re.k....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이상정. (2022). 보호종료 자립준비청년의 연속적 지원을 위한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역할. 보건복지포럼 310.-, 67-78. · 장정은 & 전종설. (2018). 양육시설 퇴소 청소년의 초기 자립경험. 청소년복지연구, 20(2), 95-125. · 정정호, & 좌현숙. (2021). 아동양육시설 자립지원전담요원의 자립지원 업무경험. 학교사회복지 -.56, 27-55. · 차유림, 민소영, & 장혜림. (2022). 자립준비청년의 자립경험. 청소년복지연구 24.4, 79-99. · 최경일. (2020). 양육시설 퇴소 청소년을 위한 자립지원 시설 운영 사례: 강원도를 중심으로. 청소년 문화포럼 -.61, 149-163. · 허민숙. (2023). 지속가능한 자립: 자립지원전담기관 운영실태와 개선과제. 국회입법조사처. · 황정하 & 박수지. (2017). 아동양육시설 청소년의 자립생활기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 청소년학연구, 24(9), 119-143.
나이듦에 친절한 경험은 어떻게 기획될까?
지역 사회 복지 서비스와 할머니의 라이프스타일 사이에 분명한 공백이 있음을 느꼈을 때,  할머니의 삶의 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저에게도 우연이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보통의 손녀와 다르지 않았어요. 명절 때 찾아봬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주기적으로 전화를 하는 보통의 손녀 그리고 보통의 조부모님. 그들의 삶이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아닌, 한 사람의 '노년'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성적 때문에 기숙사 심사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살게 되었을 때부터였습니다.   하루 종일 TV를 보시고 할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화투 치러 오라는 전화만 기다리시는 할머니. 가족들이 찾은 노인 복지관은 교통이 불편하고.. 저러다가 건강이 나빠지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방학 기간이 있어서 아쉽긴 했지만, 그나마 가까운 치매안심센터를 등록해 드렸어요. 만약 할머니에게 가족이 없었다면 치매 안심 센터의 존재를 알기는 어려우셨을거에요.    저는 지역 사회의 복지 서비스와 할머니의 라이프스타일 사이에 분명한 공백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오히려 동네 분들과의 화투 놀이와 지역 시장의 뜨게방이 할머니의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요. 관심은 일로 이어져, 지역 사회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직접 기획한 고령친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은 신경 쓰이는 문제가 되었고, 어떻게 할머니와 같은 노년의 일상 공백을 채울 수 있을지, 그 역할은 누가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싶어져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지역사회계속거주(Aging In Place)를 지향한다고 하지만..글쎄요 🧐  Aging In Place란 “노인이 거주하기를 희망하는 집 또는 장소에서 거주하면서 친숙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적절한 지원과 보호를 받으면서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윤경 외, 2017). 고령자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최근 고령화 정책은 고령자들의 활동성을 유지하며 그들이 살아왔던 지역사회에 지속해서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들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인의 83.8%는 건강할 때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했고, 56.5%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를 원한다는 주거 욕구에 부합합니다. (노인실태조사, 2020)   또한 사회적 측면에서 대두되고 있는 연금고갈,의료비 증가, 돌봄 인력 감소 등의 공적 부담과 사회복지 및 공립요양시설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함에 따른 문제 등의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연숙 외 4, 2021; 김미숙 외 5, 2003)   즉, AIP는 노인의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고 시설보호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AIP를 위한 고령친화 서비스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김효심, 이용재(2019)의 연구에서는 건강 및 기능 상태가 경증 임에도 지역사회에 계속 거주하지 못하고 시설에 입소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고, 등급 외 노인의 경우 필요한 지역사회 돌봄 서비스를 적절히 이용하지 못해서 장기 요양 인정자로 상태가 악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장기요양등급 외, 시설 외, 고령친화 서비스 확대와 지원강화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고령자에게 필요한 AIP는 조금 더 적극적인 차원이에요.   박지환(2017)은 고령자가 이미 살고 있는 곳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AIP의 소극적 차원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며, 적극적 차원은 고령자가 의료와 복지의 대상만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정당한 주체로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제시했습니다.   고령자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일정한 자리를 확보하고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구축하여 고령자가 겪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문제를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조기에 파악함으로써, 고령자에게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노인 입장에서 지역 사회에 계속 거주하고 싶게 하는, AIP 지속 영향 요인 연구를 살펴봐도(현다운 외 2명, 2022) *공식 돌봄에서는 물질지원과 일상생활 지원을 받지 않은 경우, *비공식 돌봄에서 정서 지원을 받은 경우 지속 거주의 가능성이 높음을 밝혔습니다.  * 공식돌봄은 기초연금 등의 물질적 서비스부터 장기요양보험을 통한 방문요양, 방문간호, 주야간보호 등의 여러 가지 서비스와 복지관, 보건소등기관을통한서비스를 통합한 돌봄을 의미함* 비공식돌봄은 가족, 친지, 이웃 및 친구 등 사적 관계망을 통한 돌봄을 의미함  박인권 외 2, (2023)의 고령층과 청년층의 지역 사회 삶의 질을 높이는 요인 연구에서는, 지역 내 이웃 간 신뢰가 높고 자주 연락하는 등 사회적 관계가 원만하고 교류가 잘 이루어질수록 고령자 개인 삶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계속 거주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하는 ‘예방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며 노년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에는 사회적 관계 맺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상생활 유지에 필요한 지원이나 정서적 돌봄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노인들은 지역 사회에서, 살던 곳에서 늙어가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김영란, 2014)  즉, 고령 친화적인 지역 사회 환경을 위해서는 사회의 관계 형성과 고령자 참여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각 지역 사회에서 누가, 어떻게, 어떠한 노력을 할 것인지 실행 단계의 논의도 필요하죠.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고령친화 프로젝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고령자 참여형 공동 창조 / 리빙랩 / 노인 참여 프로그램 / 노인 일자리 사업 / 노인 돌봄 공동체 / 협동조합 등.. 다양한 이름과 지원 체계를 통해 이미 지역 사회의 돌봄 공백을 메꾸어주고 있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사업의 형태는 도시 재생, 지역 발전, 노인 일자리 사업, 등 다양한 범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령친화적인 경험이 의도적으로 또는 자연스럽게 기획되고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 이하 고령친화 프로젝트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해요.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지며 고령자들의 삶의 질을 단기적으로 직접적으로 제고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됨은 물론, 고령자가 직접 참여하는 형태로 고령자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사회참여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Aging In Place 환경 구축에 실질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공의 영역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작은 규모의 서비스를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며, 노인들의 요구를 공공기관에서 만들어서 제공해 주는 수동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서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프로젝트가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을 고령친화 '서비스' 관점으로 뜯어보면 어떨까요?  “서비스들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디자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떤 대상에서 어떤 서비스가 어떤 방식으로 전달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할 때이다."_커뮤니티케어와 리빙랩의 즐거운 만남_한국리빙랩네트워크_포럼 정리문_팽한솔(전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 팀장  고령자와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노인 정서/심리에 맞추어 설계하고 만족도를 높이고 소통하는 접점에서 노하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홍보하고 참여시키고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였는지도 중요합니다. 돌봄 가족, 돌봄 종사자 등 이해관계자 간의 교류나 역할 조정의 순간도 있었을거에요. 이 모든 과정이 전문성을 발휘하여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연구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고령화 이슈 해결을 위해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효율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A팀이 2023년 10월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는 문제점을 도출하고 어떤 시도를 해봤다면, 2024년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B팀의 시작점은, A팀의 시도가 끝난 지점에서부터 힌트를 얻어 발전 된 해결책을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비슷한 수준의 고민과 시도가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령친화적인 서비스 제공 경험과 지식을 체계화하고 서로 나누며, 고령자의 특성과 욕구를 파악해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리빙랩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단발적이고 독립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간혹 있지만,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_한양대학교 Linc+사업단 박성수 교수(사회혁신 전담)  고령친화 프로젝트는 그 가능성에 비해, 현재까지 이루어진 사례들의 기획-운영 경험 등이 축적되거나 공유되지 않고 이벤트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인력/시간 부족, 지원 사업 행정 업무, 지역 간 특이성의 이유, 연구 인력 부족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각 지역 간 서로의 선사례가 되기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서라면 정리되고 조명되고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구를 진짜 이루어내고 확장되는 꿈을 마음껏 꿔본다면,  첫째, 해당 지역/사례 내에서만 일어났던 고령친화적인 서비스 제공 경험이 다른 지역 내에서 활용됩니다. 둘째, 다수의 고령친화 프로젝트에서 성공/실패 요인을 추출하여 다른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와 가이드 라인으로 개발합니다. 셋째, 지역을 막론하고 일반화된 고령친화 커뮤니티(공동체)/서비스 모델로 개발 할수 있습니다. 넷째, 효과성을 검증하고 근거도 확보해야 하니, 고령친화 경험 디자인 지표로도 발전시켜야 합니다.   더 나아가, 지역 그룹/프로젝트 간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어 연결성과 확장성을 가지고 상호 간 지속적인 독려를 하며 고령화 사회 이슈를 해결해 가기를 기대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 기반 기획자, 종사자, 이해관계자 역할의 중요성이 조망되기를 바랍니다. 고령친화 커리어 커뮤니티 1기를 운영해 보니 이러한 연결이 필요하며,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사회 계속거주, Aging In Place, 고령친화 공동체, 서비스 등.. 이러한 개념을 막론하고 고령자에게 좋은 경험은 무엇일지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정책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만 기획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역 사회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노년의 정서와 자존감이 고려되고 지켜지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 나이듦에 친절해지기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과분하게) 얻은 연구 활동가라는 이름을 꼭 지켜내고 싶은 김의현입니다. 극극초보 연구자의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선행 조사, 근거, 논리 등 모두 부족함을 압니다. 연구 계획의 과정이 쉽지 않더라고요.. :) 하지만 제가 포기하지 않는 한, 앞으로 조금씩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저는 고령친화적인 관점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요.그래서 나이듦에 친절한 영감, 고령친화 라이프스타일 뉴스레터를 시작했습니다. '나이듦은 나와 먼 일이 아니야'라고 느끼고 계신다면 구독 해두셔도 좋을거예요. 앞으로 이 연구의 진행 과정도 공유하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참고문헌] 강현철, 최조순. (2019). 지역자산을 활용한 커뮤니티케어 운영에 관한 탐색적 연구. 한국지적정보학회지, 21(1), 39-54, 10.46416/JKCIA.2019.04.21.1.39 김미숙 외 5, 고령화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와 정책대응방안:OECD국가의 경험을 중심으로,2003,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효심, 이용재. (2019). 노인장기요양 등급인정자와 등급 외자의 지역사회복지서비스 이용 실태분석. 디지털융복합연구, 17(11), 29-37. 박인권, 정하림, 강다은. (2023). 사회적 약자 집단별 삶의 만족도 지역 간 격차와 지역 역량 요인 : 청년층과 고령층 비교. 한국지역개발학회지, 35(1), 29-54. 박지환. (2017). 고령자를 위한 고령자에 의한 장소 만들기- 오사카시 히토하나센터(ひと花センター)의 사례 -. 비교일본학, 40, 1-30. 이윤경·강은나·김세진·변재관. 2017.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를 위한 장기요양제도 개 편 방안」. 세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연숙, 전은정, 조승연 and 박민아. (2021). 가족동거 고령가구의 맞춤형 주택개조 거주 후 평가 연구. 한국공간디자인학회 논문집, 16(8), 483-498. 현다운, 박윤정, 남일성. (2022). 충분한 사회적(공식/비공식) 돌봄은 노인의 AIP를 지속시키는가?. 한국복지패널 학술대회 논문집, 15(0), 93-115. 우리 동네 문제 내 손으로 해결 '주민주도형 리빙랩' 뜬다 http://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15069  커뮤니티케어와 리빙랩의 즐거운 만남_한국리빙랩네트워크_포럼 정리문 http://www.livinglabs.kr/knoll/home/board/downloadFile.do?key=126 
우리 동네 상담센터에 가면, 어떤 사람이 나를 상담하는 걸까?
이 연구는 ‘심리서비스 관련 법이 부재’해서 나타나는 현상을 들여다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연구가 어려워서 연구원정대에 참여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김은빈이라고 합니다. 연구원정대에서 마련한 버닝 클럽을 신청하고,  리버뷰 회의실에서 리버를 등진 자리에 앉아, 글 쓰는 부담에 시달리다 몇자 적습니다. 한참을 어떤 제목이면 독자와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따위로 째깍거리는 커서만 노려봤어요. 함께 있던 J님에게 만약 우울해서 동네 상담센터에 간다면, 센터 문 앞에서 무슨 생각부터 떠오르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의 경계 없는 질문에도 발그레한 미소를 띠며 곰곰이 생각을 보태주었어요. “아무래도 상담사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오히려 그녀가 나에게 상담 효과가 보장되겠냐고 묻는 듯했습니다.  대대로 심리상담의 경쟁업종은 점집이었습니다. 과거를 탁탁 맞추고, 미래를 탁탁 알려주는 대로 믿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안심되고, 그렇게 살아봄 직한 희망이 생기니, 불안할 때마다 용한 무당에게 찾아가 효험을 보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도 않지요. 하지만 누군가 점집이 아니라 상담센터를 찾았을 땐, 효과성을 일으키는 게 귀신이 아닌 다른 것이길 기대합니다. 바로 그 ‘다른 것’이 ‘과학’입니다. 과학은 우리 사회에선 곧 직업에 전문성을 부여해주는 근거이지요. 그러니 결국 ‘내가 이해받을 수 있겠는가’라는 불안은 상담이 과학에 근거한 전문성이 담보된 행위인지 되묻는 질문입니다. 누구나 상담센터 문을 열었을 땐, 이곳에 나를 나아지게 할 ‘전문성이 보장된 상담사’가 거기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동네 상담사는 전문가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대답밖에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법’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심리서비스 관련 법이 없답니다! 1. 지금부터 연구를 소개합니다.   상담사가 내뱉은 한 마디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지난 직장에서 일하며 이제 더는 못하겠다, 생명의 심지가 바싹바싹 타는 기분이다 싶은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있길래 주변에 알리고 저도 신청했죠. MMPI-2 간이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들으러 교대역 어딘가에 있다는 오피스텔로 향했습니다. 중년 여성이 의사 가운을 입고 반갑게 저를 맞이하더군요. 요즘은 개인 센터에서도 전문가임을 강조하려고 가운을 입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상담사에게 제 상태와 직업을 설명했어요. 그때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성매매 여성을 사회복지사이자 상담사로 만나는 활동을 들은 상담사는 인지부조화가 왔는지 업무에서 쓰는 용어를 몇 번이고 되물었습니다. 본인의 세상에선 제가 풀어낸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이는 눈치였습니다. 아무래도 상담사는 저를 비혼주의자 페미니스트로 본 듯했어요. 갑자기 상담사는 저에게 “결혼할 생각은 있나요?”라고 생뚱맞게 질문했습니다. 으잉? 싶었지만 성실하게 답해줬지요. 네, 라고요. 그러자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정말 다행이네요. 일과 생활을 분리해 잘하고 있으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 여성단체, 성매매 뭐 이런 단어가 조합되어 상담사의 머릿속에 남은 궁극의 단어는 ‘결혼’이었나 봅니다. 저는 무척 화가 나서 온종일 친구들에게 상담사를 험담했습니다. 그녀가 입은 흰 가운이 무색하게, 그녀의 말은 전문가로서의 신뢰성을 부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상담사를 만났을 때, ‘상처받을까 봐’ 걱정되진 않아야 하지 않을까? 제가 일하던 곳은 심리지원단을 운영했습다. 폭력에 처한 여성을 구조하고 여성이 원한다면 심리상담을 지원했어요.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과 내담자 배경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검증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심리지원단 멤버가 될 수 없다는 기조가 있었어요. 심리상담 업종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상담 관련 국가 자격증이 없습니다. 그래서 업계에선 학회 민간자격증이 암묵적으로 통용되요. 그중 우리끼리 가장 공신력 있다고 봐주는 자격증은 한국 심리상담학회와 한국 상담학회가 발행하는 자격증입니다. 팀장은 상담센터 출신으로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여성들에게 심리상담 연계하는 건 그 자격으론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팀장은 상담사가 학회 자격증이 있다 한들 다시 한번 자체 ‘검증’하지 않으면, 여성이 상담사로부터 상처받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심리상담’은 증상 완화에 효과적이다. 심리학은 과학이야! 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저의 지도교수가 들으면 노발대발할 언사였습니다. 상담사가 생애주기별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겪어야만 상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리학은 과학이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행위로서 상담한다고 교수는 누누이 주장했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심리상담의 효과성 논쟁은 미국에선 애초에 끝난 일이었습니다. 1977년 Smith와 Glass는 상담심리 치료 효과와 관련한 연구를 메타 분석해서 상담 및 심리치료 효과 크기를 d=. 68로 추정했습니다. 이후 메타 분석 연구가 일관되게 심리치료의 절대적 효과성을 드러내 주고, 실제 상담 현장에서도 상담이 심리적 문제해결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이 교차 검증되었어요.(유성경, 2018) 이는 이제 상담이 효과가 있어? 라고 물으면, 그럼 그렇고말고! 하고 답해도 괜찮다는 뜻이랍니다. 하지만 이 과학이 증명한 효과를 저의 전 직장에서는 다시 ‘검증’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상담사라는 사람을 불신하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습니다.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하고 말았어요. “상담사가 내 상황도 모르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되는 거예요? 상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내담자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어버렸거든요.  누가 전문가인가? 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2023년 12월 5일. 보건복지부는 국민 마음 건강 프로그램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2024년부터 대폭 예산을 증가, 투입해서 ‘2027년까지 100만 명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정신건강정책 '예방-치료-회복' 전단계 관리로 대전환,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2023.12.05) 여기서 ‘심리상담’을 수행하는 전문인력은 누구일까요? 보도자료에서는 ‘전화 대응 개선을 위한 상담원’, ‘전문심리상담사 채용’, ‘상담심리 또는 EAP 전문자격증 보유자’라고 일관되지 않은 자격조건을 나열합니다. 그리고서 마지막에 ‘정신건강 전문 요원 양성 및 처우개선’이라는 주제로 또 다른 자격 명을 설명하지요. 자, 그러면 나는 이제 누구에게 상담을 받으러 가면 되는 걸까요? 과연 이 중에 어떤 자격이 ‘심리상담’을 가장 잘한다고 보장해줄까요? 과연 정부는 나열된 자격조건 중 한 가지라도 있다면 심리상담을 수행하기 충분한 전문성을 가졌다고 간주하고 있는 걸까요? 현재 정신건강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양하게 불리는 자격을 일일이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자격이 어떤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지도 알아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이러한 의문을 남기는 정책이 보도자료로 발표되는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요. 바로 ‘심리상담’ 관련 법이 부재하다는 현실입니다. 강도 높은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과 불안,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같은 충격적인 사회적 재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와 적응 문제 등을 다루기 위한 해결사로 ‘심리상담’은 자주 콜링 되지만, 심리상담은 법의 규제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리상담은 공공정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도 ‘정신건강복지법’(약칭)에 포함되지도 못한 채, 공적 관리 감독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랍니다. 이러한 사태는 정책 수행 주체를 혼란스럽게 하고, 불건전한 서비스가 건전한 정신건강 관련 심리서비스 전달 체계와 경쟁하게 만들어 소비자의 서비스 선택에 혼란을 초래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더는 심리상담을 무법지대에 두지 말고, 제대로 법제화하여 심리상담 서비스 공급체계를 공공영역으로 포섭해야 합니다. (김영환, 2022)  2. 이전에는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을까? 다섯 번째 심리서비스 관련 법안이 발의 되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2009년, 2012년 학교 상담 법제화를 추진하였으나 자동 폐기되면서 심리상담 모법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전문 상담’ 영역 NCS 개발과 함께 2013년 정신보건법 일부개정 시기에는 심리상담 자격증을 공인된 국가 자격으로 만들려고 시도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지요. 이후 관련 학회는 심리상담 모법 필요성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서 2022년까지 총 4개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그러나 각 법안별로 “무엇이 전문성인가?”, “누가 전문가인가?”를 놓고 전문가 집단 간 입장이 갈라지며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법안은 계류되고 말아버리죠. (김인규, 2022) 이에 입법조사처는 4개 안의 조율을 권고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만우, 2021)  2023년 5월엔 기존 발의안을 통합하여 ‘국민 마음 건강 증진을 위한 상담 서비스 지원법안’을 다섯 번째로 발의했으나, 9월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심리상담’ 영역에 대해 재정의하고, 학위 자격조건을 학사 수준으로 조정할 것을 권고받았어요. 합의체 중 한 곳인 한국 상담심리학회는 권고된 자격조건에 동의하지 않고,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한국 상담학회는 국가직 무능력표준(NCS)을 근거로 심리상담을 ‘사회복지, 종교’에 해당하는 비의료적 성격의 전문 서비스로 표명하며, 예방, 발달, 성장을 지향하는 예방 사업을 수행하고, 비의료 영역에 전문상담사 우선 배치 하도록 요구하는 중이랍니다. 또한 이 학회는 앞서 보도자료로 발표된 ‘정신건강 정책 혁신방안’에서 정신 보건 전문 요원이 우선 배치 혹은 증원되고, 민간자격을 소지한 상담사들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사업 방향에 문제를 제기한 상황입니다.  법이 없는 동안 상담 업계는 도떼기시장이 되고 말았다. 심리서비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집단 간 합의가 요원해질수록 대중이 접하는 심리상담 영역에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심리서비스 자격증 및 센터 개소 자격 규제가 부재하여 어떤 센터가 양질의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둘째, 국제 기준에 미달하는 심리서비스 전문가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어요. 이에 따라 심리서비스 전문가 역량 및 윤리 의식이 부재한 상담사가 센터를 운영하는 비윤리적 현상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상담 관련 학회들이 주장하는 ‘내담자 복지’ 즉, ‘내담자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주요 가치를 훼손하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죠. 셋째, 심리서비스 관련 허위광고 규제가 부재합니다. SNS만 열어봐도 부정확한 심리학 및 정신건강 정보가 무분별하게 쏟아지지요. 윤리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담 후기 등을 이용한 마케팅은 그대로 소비자에게 노출되어 비윤리적 환경을 조성합니다. 내담자가 안전하게 양질의 서비스를 선택하려면 상담 서비스가 제공되는 환경 자체를 정비하는 시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제는 ‘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이야기하자. 심리서비스 관련 법에 관한 연구는 주로 해외 법령과의 비교, 법의 방향성, 법 세부 항목의 형태에 치중된 편이었어요. 예를 들어, 법제화의 방향성을 제시한다거나, 미국, 호주, 일본, 대만과 같은 해외 법안과의 비교, 자격증의 최소 응시 자격, 업무독점형 혹은 능력인정형 자격 형태 등이 연구되었습니다. 이렇듯 기존 연구는 ‘누가 전문가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의 필요성에는 내담자가 저질의 서비스를 경험하지 않도록 4,000개에 육박하는 민간자격증을 제한하고, 환경을 정비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계류되는 이 순간에도, 비전문적, 비윤리적 상담은 내담자에게 음흉한 손길을 뻗쳐 실시간으로 접촉을 시도하고 있거든요. 이 상태로는 내담자가 도저히 ‘어딜 가야 효과가 있다는 상담을 받을 수가 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이 문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된 법이 제정되어야 하는가’와 함께 ‘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도 논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시장에서 소비되는 심리상담 서비스의 행태를 분석하여 실제로 소비자가 어떤 심리상담 서비스 환경을 경험하고 있는지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를 통해 전문가 집단과 정부 부처, 그리고 대중이 ‘왜 이 법이 필요한지’에 대해 마음을 모을 수 있다면, 이슈 파이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봅니다. 3. 연구는 어떻게 진행할 생각인가?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는 ‘심리상담’의 겉모습을 주목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장기간 심리서비스 관련 법이 계류되는 상황에 따라 ‘규제되지 않는 심리상담이 어떻게 비전문적, 비윤리적 행태를 보이는지’를 탐색하고자 했어요. 일차적으로 ‘시장에서 심리상담이 돈이 되기 시작하자 업계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어요!’라고 설명할 생각입니다. 나아가 ‘그러니 우리 이제 좀 마음을 모아 법을 통과시켜 봅시다’라고 설득할 만한 당위성 마련까지 시도해 보고려고요! 이를 위해 업계 종사자끼리 공유하는 우물 안 시야에서 벗어나 대중이 보는 심리상담 업계는 어떠한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대중이 상담을 알게 되는 루트 중 하나는 인터넷 정보라고 추정했어요. 수많은 정보 중에 연구할만하고, 대중도 신뢰할 만한 자료는 ‘언론 보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상을 살피고자, 언론매체에 보도되는 비윤리적, 비전문적 상담행위 실태는 어떠한지 살펴봤답니다.  빅카인즈(BIGKINDS)를 이용한 신문 기사를 확인했다. 신문 기사를 모아 보기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빅카인즈(BIGKINDS)를 이용하여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수집 범위는 학교 상담 법 제정이 시작되었던 최초 연도인 2009년 1월 1일부터 연구를 수행하는 시점인 2023년 11월 31일까지로 잡았어요. 15년에 걸쳐 보도된 국내 기사가 대상이 되었습니다. 기사를 발간한 언론사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국민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한국일보, 내일신문, 매일경제, 머니 투데이, 서울경제, 아시아경제, 아주경제, 등 총 11개 일간지를 포함했습니다. 기사는 ‘학교 상담사’, ‘심리상담 AND 성폭력’, ‘심리상담 AND 윤리’, ‘심리상담 AND 법제화’, ‘심리상담 AND 자격증’ 총 5개 키워드 중 하나 이상 포함된 관련 기사로 추출했습니다. ‘심리상담’, ‘상담’과 같이 대표적인 키워드를 단독으로 검색하는 경우, 학교, 자격증, 프로그램 홍보 기사가 다수 수집되어 쓸만한 정보를 찾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유의미한 키워드를 결합하여 검색어를 세분화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수집된 기사 총 2,598건을 연구분석 대상으로 간주했습니다. 수집된 기사는 윤리규정을 대조하여 선별 기준을 도출하고, 최종 분석 대상을 선별하여 내용 분석과 언어 네트워크 분석을 할 예정이랍니다.   4.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연구는 언론에 나타난 심리상담 현장의 모습을 통해 내담자가 경험하는 심리상담 환경 실태를 들여다보며 다음과 같은 결과에 이르길 기대합니다.  첫째, 언론매체에 보도되는 비윤리적, 비전문적 상담행위 실태를 확인한다. 수집된 기사에서 키워드별로 자주 언급되는 단어는 ‘전문성’이었습니다. 이는 지속해서 심리상담의 전문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하지요. 특히, 4,000개에 달하는 민간자격증이 남발하는 실태는 주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공인된 국가 자격증인 ‘임상심리사’와 ‘청소년 상담사’가 심리상담 영역을 포괄하지 못하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 상담심리학회와 한국 상담학회의 자격증이 우세해지면서, 학회 자격증의 험난한 자격요건을 피하려고, 비표준화 수련 과정을 내세운 민간자격증이 우후죽순으로 등록되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쉽게 딸 수 있는, 몇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자격증이 바로 그것입니다. 몇몇 민간자격증은 8시간 만에 자격증을 발급하기도 해요. 이를 악용하여  비양심적 행위자가 오픈 채팅을 열어 자격증과 함께 저렴한 상담료를 홍보하면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안타까운 실태가 확인되었습니다. (“1시간에 10만원, 우울증 상담해드려요”...상담 자격증, 반나절이면 취득?, 권선미, 2023.07.31.) 이처럼 서비스 이용자들이 ‘누가 전문가인지’알지 못하게 되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담 현장을 취재한 한 기자는 “심리상담 업계는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너도나도 돗자리 깔고 전문가 행세하는 수준입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많습니다”라고 일갈하며 무분별한 심리상담 환경을 평했습니다. (“무조건 합격이세요” 엉터리 심리상담사, 기자도 땄다 , 강창욱 외, 2022.05.23.)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서비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제로 성범죄나 금원 편취와 같은 사기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성폭력 트라우마 치료해준다며 성폭행한 유명 심리상담사, 강진구, 2018.09.10.; 성범죄자도 몸치료 OK... 엉터리 법에 무법천지, 강창욱 외. 2022.06.04.) 심리상담을 이용하고자 하는 내담자는 이미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고자 절박한 심정으로 상담을 신청하지요. 이들을 대상으로 비전문적, 비윤리적 행위를 넘어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심리상담사 자격에 의해 처벌할 방법도, 다시는 센터를 개소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방법도 없습니다. 게다가 과학적 입증이 되지 않은 정보나 공개되면 안 될 심리검사지 정보, 내담자 동의 없이 내담자 상담 내용이 포함된 후기를 SNS에 게시하여 홍보하는 등 심리상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격적 마케팅이 윤리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쏟아져 나오기까지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 이용자는 누가 전문성이 있는 상담자인지 구별하지 못해서 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심리상담에 반복해서 노출되고 맙니다. (심리사냐 상담사냐... 심리상담, 법이 없다, 강창욱 외, 2022.06.09.) 이러한 환경은 서비스 이용자에게 좋지 않은 경험을 양산하여, 심리적 고통에 처해도 심리서비스를 선택하는 데 주저하게 만들고, 치료를 미루는 결과를 낳아 심리적 문제가 고착되는 악영향에 이를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둘째,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환경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요소를 확인한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비전문적, 비윤리적 실태는 ‘전문가 자격’, ‘센터 개소’, ‘광고 홍보’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문가 자격을 제한하기 위한 공인된 국가 자격증 신설, 센터 개소 자격 규제, 허위광고 규제가 포함된 법률안이 필요합니다. 현재 논의되는 업무독점형 면허 자격증 형태는 정신건강 영역의 타전문가 집단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 전문 요원이 저항하는 상황입니다. (의협 '심리상담사법' 반대... "교육 표준화, 인증평가 구축이 우선", 송수연, 2022.05.20.) 그들은 심리상담사 배출 과정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수련 과정이 전문가를 양성할 기준에 충족되지 못하는 점을 반대 이유로 꼽고 있어요. 따라서, 면허형 자격증을 주장하려면 상담사를 양성하는 현행 교육과정을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심리서비스 전문가 교육과정으로 개편하고 근거 기반 심리상담을 보장해서, 양질의 상담을 제공하는 환경을 구축해야 합니다. 자격증이 국가 자격증으로 발급되는 것과 동시에 가장 시급한 일은 센터 개소 자격의 제한입니다. 현재는 별다른 규제 없이, 음식점을 개업하는 것과 동일한 과정으로 심리상담센터가 개소됩니다. 즉, 누구나 심리상담센터를 개설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심지어 자격증이 없어도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 동네에는 누가 운영하는지 알 수 없는 심리상담센터가 아무런 규제 없이 버젓이 영업 중인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 이용자는 ‘자격에 대한 정보’ 없이는 어떤 센터가 양질의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져요. 현실적으로 서비스 이용자가 일일이 센터 상담사의 학위와 자격증의 공신력 여부를 확인해야만 하는 상황은 비경제적이기도 하지요. 병원이나 법률사무소는 주인장 실력 여부와 관계없이 자격 명칭만으로도 공인된 전문가가 의료 혹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심리상담센터 개소에도 이와 같이 센터를 개소할 수 있는 주체의 자격 제한이 절실합니다. 마지막으로, 심리서비스 관련 허위광고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심리상담 정보는 정신건강을 지키기는 데 큰 방해 요인입니다. 이는 넓게 보자면 공익을 저해하는 행동으로도 볼 수 있어요. 정신건강은 실질적으로 생명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강력한 제한을 펼쳐 허위 정보를 줄여야 합니다. 5. 이 연구의 앞날은?! 연구의 최종 골인점은 ‘내담자 복지’다. 저는 심리상담 서비스가 필요한 누구나 거주지 근처에 있는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하면 평균 이상의 공인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꿈 꿉니다. 정신건강을 다루는 종사자라면 힘을 합해 우리 사회의 안전한 상담 환경을 구축해야 할 전문가적 소명이 있다고 믿거든요. 서비스 이용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정신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농후한 환경은 심리상담 윤리의 제1원칙이나 다름없는 ‘내담자 복지’에 위배합니다. 심리상담사 개인이 아무리 윤리적 행위를 할지라도, 구조와 환경이 비윤리적이라면 내담자는 환경으로 인해 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비전문적이고 비윤리적인 상담행위는 실시간으로 내담자를 위협합니다. 그러니 심리상담사는 우리에게 찾아온 내담자를 지키고자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제안과 법률 제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부디, 정신건강 관련 집단 내에서 조속한 법제화의 필요성이 공감을 얻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아가 위협적인 상담에 노출되고 있는 대중에게도 이 법의 필요성이 공감되길 원합니다. 누구나 이 문제를 공감할 수 있는 빠른 길은 바로 황폐한 상담 환경이 ‘나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라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구는 종사자와 서비스 이용자 양측에게 법의 부재가 어떤 피해를 양산하고 있는지 밝히는 데 의의를 둡니다. 지난 6개월간 한주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세미나를 준비해준 연구원정대의 도움을 힘입어 연구할 내용이 준비되었어요. 상냥하고 친절한 코치진의 정성에 무한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는 현장에 있는 동료 연구자들에게 준비된 내용을 공유하고, 정교하게 자료를 분석하여 ‘독자에게 읽히는 논문’을 쓰고자 합니다. 지금 이 노력은 어쩌면 동해 바다에 자갈 한 덩이 던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여전히 현장에서부터 몸으로 느낀 차별이 더는 ‘잠시 약해진 이들’에게 전달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우리 동네 아무 상담센터나 찾아가도 당신이 안전하다는 확신, 그런 세상. 그거 하나예요. 이 진심이 이 연구의 전부랍니다.  초보 연구자의 하염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김영환(2022). 심리상담사법 제정의 방향. 법과 정책연구 김인규. (2022). 상담 법제화 과정 연구. Korean Journal of Counseling, 23(3), 1-18.  박한우 & Loet Leydesdorff. (2004). 한국어의 내용분석을 위한 KrKwic 프로그램의 이해와 적용. Journal of The Korean Data Analysis Society (JKDAS), 6(5), 1377-1387. 유성경. (2018). 상담 및 심리치료의 핵심 원리. 학지사 이만우. (2021). 비의료 심리상담 법제화 논의 : 통합을 위한 원칙과 과제. 이슈와 논점 성현모, & 이상민. (2022). 심리상담 법제화의 방향성. 입법과 정책, 14(1), 195-219. 최윤주, 전예빈, 신예림 & 이수비. (2023). 신문에 보도된 고독사에 관한 탐색적 연구, 2012년 2022년 기사를 중심으로. 정신건강과 사회복지. 51(1), 117-144 한승희. (2019). 도서관에 대한 언론 보도 경향: 1990~2018 뉴스 빅데이터 분석. 정보관리학회지. 36(3). 7-36. Wampold, B. E., & Imel, Z. E. (2015). The great psychotherapy debate: The evidence for what makes psychotherapy work. New York, NY: Routledge. ** 신문기사는 글에서 링크를 활용해 직접 인용했습니다.
공공서비스
·
10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3)
* 이 글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Active Research Journal의 뉴스레터 중 일부입니다. 연구탐사대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이 링크 를 클릭하세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1) 읽으러가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2) 읽으러가기 #4.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듯,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또한 그러합니다. 나이오트는 이 지난한 과정을 기꺼이 하고자 하는 분들과 함께 연구탐사대(Research Explorer)를 꾸려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역량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이 중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인 연구원정(Research Fellowship)에서는 자신이 진심인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그에 관련된 논문과 선행연구들을 학습하고, 연구설계과정을 학습하면서 진심이 빚어낸 연구계획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연구계획, 사회문제의 대안을 향한 로드맵 저희는 먼저 연구가 아닌 ‘연구계획’을 세우는 데에 초점을 가진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습니다. 혹자는 연구계획은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연구계획서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저희 또한 그 주장에 대해 십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희는 감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있어서는 연구계획이 8할이다’라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연구계획서 안에 연구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진정성과 치열한 학습을 통해 발견한 앞선 연구자들의 기록들, 그리고 연구자의 연구질문과 가설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계획서는 그저 수개월짜리 논문 한 개 정도의 계획을 담고 있는 문서가 아닙니다. 이 연구계획서는 연구자 자신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사회문제를 풀어내는 데에 연구로서 기여하고자 하는 영역의 선언에 가깝습니다. 특히 처음일수록 연구는 부족할 것이고 좌절감은 클 것입니다. 배워야 할 것과 알아야 할 것,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기확신이 흔들리며 계속해서 고뇌할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계획서는 기어이 도달하고자 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북극성이 되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는 계획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고, 계획은 끝이 아닌 시작에 가깝습니다. 저희 프로그램은 각 대원들의 문제의식과 진정성을 연구주제와 계획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단계까지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연구라는 것은 요소에 따라 굉장히 많은 시간과 학습, 자원이 투입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즉, 이 대원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연구자 개개인을 도와줄 수 있는 ‘지지공동체Supporting Community’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스타트업 데모데이: 같이 축하하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축제 기술과 기업가정신을 통해 산업을 혁신하는 기업들인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데모데이Demoday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창업 3년 이내의 극초기 기업들이 투자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행사이지요. 사실 이때까지 창업가들은 이렇다 할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MVP(Minimum Viable Product)라는 파일럿 결과물과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가지고 사업의 가능성을 설득하고, 투자자들은 기업의 현재 자산과 수익이 아닌, 창업가의 역량과 사업계획의 잠재성을 중심으로 투자를 집행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토스, 배달의민족과 같은 산업을 혁신하는 기업들이 초기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실현해서 산업을 혁신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의 데모데이를 보면서 저희는 생각했습니다. 스타트업처럼 연구자의 연구계획을 대중 앞에서 발표하는 행사를 가질수는 없을까. 연구자의 역량과 연구계획의 잠재성만으로 평가를 받아 연구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재원이 꼭 정부만이 아니라, 사회문제의 해결을 진심으로 바라는 일반시민들이 되어줄 수는 없을까. 그래서 재정적 지원 뿐만 아니라,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돕고 지원하는 지지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렇게 된다면, 정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연구자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연구가 연구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 해결의 실천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구요. 그렇게 기획된 컨퍼런스가<2024 연구원정 LAUNCH 컨퍼런스>입니다. #5. 여기, 6명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로 결심한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이번 2024 연구원정 컨퍼런스에는 지난 6개월여동안 치열하게 연구계획을 만들어온 3개 영역(기후위기, 공공문제, 교육문제) 6명의 연구자들이 6개의 연구계획을 발표합니다. 킹핀(Kingpin) 같은 연구주제들 다음 뉴스레터에 보다 자세히 소개되겠지만 6명의 연구자들 중에는 연구를 배워본 분도 아예 배워보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각자가 마음에 품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심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렬한 분들입니다. 또한 각각의 연구주제들은 사회에 정말 필요하지만 아직 미처 연구되지 않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뒤집어 이야기하면 이 연구가 진행된다면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킹핀(Kingpin)과 같은 주제들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계획을 소개하면서, 각 연구자들을 재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지지공동체를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번 컨퍼런스를 기획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보다 많은 사회문제에 대한 진심을 가지고 계신 사람들이 연구에 뛰어들어서 각종 사회문제들에 대한 대안들을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고 연결될 수 있는 장을 기대하고, 또 그런 장을 점차 키워나가는 것을 이 컨퍼런스의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계획발표 세션에서는 연구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을 시도합니다. 연구계획발표를 듣고 각자가 구입한 펀딩티켓별로 가진 투표권을 지지하고 싶은 연구자 및 연구계획에 투표하면, 해당 연구자에게 투표수에 비례한 연구비가 지원됩니다. 투표자들은 지지하고 싶은 연구자에게 정서적 지지와 재정적 지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ROUND TABLE : 정책가, 연구자, 교육자가 들려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 또한 저희는 연사분들의 세션을 따로 마련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라는 주제를 가지고서 각 발제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저희가 모시게 된 각 연사분들은 대원들보다 먼저 사회문제해결을 위한 연구(문제의 해결을 고민하고 탐구하는 모든 행위)에 뛰어들어 분투하고 계신 분들이십니다. 동시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직접 하는 것과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변화를 촉진시키는 것, 또 그런 연구자들을 길러내는 것에 대해 현장과 최전선에서 고민하고 행동하고 계십니다. 사회문제해결에 진심인 연구계획을 품고 있는 연구자들과 먼저 사회를 변화시켜가고 계신 연사들을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자체에 대한 지지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이 컨퍼런스의 주된 목적이기도 합니다. #6. 세상을 구할 연구에 투표하세요! 작은 스타트업에서 개최하는 행사의 주제치고 너무 거대해 보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긴급성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회문제들은 갈수록 심화되어가고 있고, 문제를 풀어내는데에 필요한 역량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디지털전환, 공교육붕괴 등 각종 사회문제들은 난제가 되어가고 있고 그에 대한 해결을 이야기할 공론장과 해결역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말 사회문제 해결에 진심인 사람들이 연구를 시작으로 문제해결공동체를 구축하고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을 빠르고 뾰족하게 해나간다면 분명 인류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사회문제의 대안과 해결책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대안을 함께 만들어갈 분들을 만나는 장이 되기를 바라고, 또 함께 그 대안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이 컨퍼런스에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관심들이 생겨나고 더 많은 일들을 만들며, 진짜 사회문제의 킹핀을 쓰러뜨리는 여러 일들을 함께 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24년 2월 3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컨퍼런스에 함께 하세요!  🚀 컨퍼런스 신청하기 : 아래 이미지를 클릭해주세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연구계획을 발표하는 연구자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아울러 연구자들의 발제문도 홈페이지에 업로드 될 예정이니 함께 지켜봐주세요! 이 글은 연구탐사대에서 발행하는 액티브 리서치 저널(Active Research Journal) 특별호의 일부입니다.액티브 리서치 저널이 무엇이냐구요? 우리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죠! 이 저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연구탐사대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를 양성하는 연구 훈련 플랫폼입니다. 현재 기후위기, 공공문제, 교육문제 부문의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 <연구원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독하시려면? 참고문헌 George J. Stigler – Prize Lecture. NobelPrize.org. Nobel Prize Outreach AB 2024. Sun. 28 Jan 2024. 
[2024 LAUNCH Conference] 연구로 대체 무엇을 바꿀 수 있는데?
연구로 대체 무엇을 바꿀 수 있는데? 연구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혹은 걷고자 하는 여러분.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이른바 "대학원" 밈이 내포하듯이, 그 힘들고 고달픈 길을 여러분은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왜 선택하시렵니까? 어느 학문 분야에서 발을 딛고 계시든, 연구자는 갈수록 학계와 사회로부터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되고 있는걸요. 더욱 복잡해지는 사회 문제 (wicked problems), 매번 달라지는 연구 지원 정책 및 규제 환경, 점차 심각해지는 파이(pie)의 크기 문제와 분배 문제, 따라가기 벅찬 다변화되고 깊어지는 방법론,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읽어야하는 양이 증가하는 선행 연구들까지. 무엇 하나 매력적인 커리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도 연구로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요?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연구자의 일상은 끊임없는 배움의 고통, 촉박한 데드라인에 맞춰 한참은 부족해보이는 논문 초안을 투고해야 하는 찜찜함, 부정적인 리뷰를 받을 때 오는 답답함, 제일 중요한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의 연속입니다. 세상을 구할 만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연구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연구자라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직군인 박사후 연구원(이른바 post-doc을 포함한 각종 기관에서의 연구위원)이나 교수가 되어서도 같은 고민은 이어집니다. 거기에 직장 내 스트레스, (교수라면) 강의 준비와 수행의 부담, 행정 업무, 실적 관리, 그리고 쏟은 시간에 비해 매력적이지 않은 임금까지.  아니, 세상을 구할 연구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물론 많은 학자들이 연구와 사회 문제 해결 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 중에는 객관적인 자료 수집과 분석을 통해 작은 단위의 사업이나 큰 단위의 정책의 질적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객관적인 자료 수집과 분석 자체가 불가능한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믿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축소판인 '모형'에 기반한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형들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럴듯한 내용으로 채워져있지만, 이런 논의 끝에 (예비)연구자로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은 주지 않습니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말입니까? '유희'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중요한 연구자의 지적 '흥미' 흔히들 학문의 위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의 위기) 라고들 합니다. 도대체가 말이죠, 연구가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지 생각하지 않고 각자의 지적 '유희'에 따라 연구를 수행한다는 연구자들에 대한 비판을 할 때 자주 등장하는 어구입니다. 아니, 연구자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벅차 죽겠는데, 사회로부터 이런 시선을 받을 때마다 연구자로서 자괴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유희'라는 말은 너무하니, 차라리 조금 더 중립적인 의미의 '흥미'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렵니다. 물론 지적 '흥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지적 흥미는 단순히 유희라고 부르기에는 연구자에게 너무나 중요한 요소인걸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숙명으로 연구의 길에 들어온 분들도 계시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탐구 과정 자체가 재밌어서 그런 선택을 하신 것 아닐까요? 이조차도 없다면, 혹은 사회가 이조차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한다면, 이 세상에는 필요한 만큼보다 훨씬 적은 수의 연구자가 존재할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소위 '돈도 안 되고 힘들기만 한' 연구자를 과연 누가 하려고나 할까요?  위에서 '모형'에 대한 짤막한 비판을 하긴 했지만, 또다른 모형을 하나 예시로 들어보려고 합니다. 지식 생태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지식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는 하지만, 그 둘 간의 관계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는 주장으로 포문을 엽니다. 핵심은 단편 지식 하나 하나는 사회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지식의 공적 가치는 그것이 다른 지식들과 함께 있을 때 발현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생물다양성의 개념처럼 말예요. 어떤 한 생물 종이 당장 우리들에게 유익한 가치를 주지 않는 것처럼 보임에도 왜 우리는 그러한 종들을 보호해야 할까요? 각자의 종들은 생태계 내에서 다른 종들과 상호작용하며 적응하고 살아나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개별 종을 추후에 탐구해보니 인간에게 유익함을 주는 종으로 밝혀질 수도 있기도 하고요. 물론 이러한 논의가 철저히 인간의 관점이라는 비판, 너무나 지당한 비판입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보호받아야 할 귀중한 존재이니까요.  이처럼 우리가 연구자로서 사회에 제공하는 지식들은 하나하나 독립적으로 보자면 사회에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1) 다른 지식들과 상호작용 할 때에 더 빛을 발한다는 점, (2) 우리가 결코 미리 그 지식들이 필요할지 필요하지 않을지 완벽히 사전에 알 수 없다는 점, 그리고 (3) 지식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 소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식 생태계 관점에서는 더 많은 연구자들이 더 많은 지식을 생태계에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고난하고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연구자가 지식을 계속 생산하고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개별 연구자들의 지적 흥미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미시경제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연구자의 지적 흥미 없이는 (특히 지식 생태계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회에 필요한 수준의 지식이 공급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격차를 메울 수 있는 것이 그나마 연구자의 지적 흥미라는 점이죠. 잠시 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주로 한국과 미국의 농촌 지역에서의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에 대한 반대 원인과 그 영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연구를 위해 오래 머물렀던 한 농촌 지역에서 무리하게 태양광 이격거리 완화를 추진하려는 군청에 맞서 집단 행동을 계획하고 있는데, 혹시 성명서를 함께 작성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연구만 하던 저라 많은 부담감을 느꼈고, 에너지와 시간도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이었지만, 저는 요청에 감사한 마음에 당장 도움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면에는 제가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곳의 현재 상황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성명서를 쓰는 것이 당장 연구 성과나 논문으로 귀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 분들이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너무 궁금한 걸 어떡합니까. 여기에 더해 성명서를 작성할 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제가 연구를 위해 수집한 자료나 이를 바탕으로 한 제 논문들이 아닌, 그 분들과 함께 하며 듣고 배우며 즐거움을 느꼈던 '사소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거대한 태양광 단지가 들어온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사람들은 어떤 박탈감을 느꼈는지, 그래서 정기적으로 모여 어떤 대화들을 나누었는지... 제가 이 주제에 몸을 담아 커리어를 쌓아야겠다는 생각 너머 호기심과 흥미가 없었다면 '연구에 크게 관련이 없는 것들'로 치부해버렸을 소중한 기억과 가르침들이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고개를 180도 돌리는 올빼미들처럼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와 로버트 에반스가 2017년 낸 책, "과학이 만드는 민주주의"를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어 서평). 이 책은 과학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려면 필요한 것에 대한, 이 분야에서 오래 연구한 두 학자의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올빼미"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올빼미를 좋아하시는 분이면 올빼미가 가만히 앉아 앞뒤를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며 볼 수 있는 신기하고 귀여운 동물이라는 것을 아실 거예요. 콜린스와 에반스는 연구자들이 모두 이런 올빼미처럼 되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올빼미들의 입장에서 "앞"은 연구가 연구하는 대상인 우리 사회, 그리고 "뒤"는 연구자들의 세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올빼미로서의 연구자는 수시로 앞과 뒤를 살피듯이, 연구에 몰두하느라 연구자하고만 소통하고 그들의 언어로 연구를 이어나갈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얼핏 들리기에는 당연한 소리처럼 보이겠지만 이들의 주장은 사실 과학사회학에서 이어져온 두 가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주장은 "과학은 사회로부터 유리되어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문제 해결에 조언을 해야한다"는 주장, 그리고 두 번째 주장은 "과학은 객관성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리고 사회로 들어가 구성원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우선하여 연구 결과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죠. 짧게 쓰느라 많은 것을 축약했지만, 콜린스와 에반스는 "과학이 객관성을 탐구한다는 그 논리와 실천 방식으로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그 과학을 하는 연구자들만큼은 사회로 들어가 그들의 언어와 목소리를 닮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말처럼 쉬워야말이죠. 우리가 과연 (예비)연구자로서 두 가지 일을 잘 해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떨 땐 너무 연구 자체의 논리와 언어에만 집중에서 이를 그대로 사회에 소개하려고 하니, 어렵고 너무 유식한 소리 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고, 그렇다고 연구에 사회의 관점과 논리를 내포하려고 하니 연구자의 주관과 자의적 해석이 농후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합니다. 말이야 쉽지, 올빼미 다큐멘터리라도 있는 것 다 끌어모아 시청해야 하는 것일까요? 결론: 호기심 많은 올빼미들의 모임이 가꾸는 지식 생태계 다시, 연구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동료 (예비)연구자 여러분. 저도 막 길에 들어선 참이라 어떻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연구로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혼자만의 연구로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고요. 혼자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훌류우우웅한" 연구를 하기 벅찬걸요. 애초에 그런 연구가 있을지도 단언하기 어려울 뿐더러요. 연구가 아니더라도 개개인이 열심히 한다고 그 복잡다난한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사회 문제라는게 도대체 뭔데요?) 어떤 글은 구체적인 행동을 갖는 결론으로 끝나야한다고 배웠습니다. 이렇게나 힘들고 암울한 상황에서, 오직 결론만을 위해 그럼 한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 호기심 많은 올빼미가 되어 다른 호기심 많은 올빼미를 찾아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식의 나무에서 "올뺌- 올뺌-" 울어가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뭐라도 물어오자구요. 안일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물어다 온 것 중에 무엇이 "잘 물어온 것"일지 우리가 판단하는게 아니라, 그 나무가, 혹은 나무가 뿌리를 내린 이 세상이 판단할지도 모릅니다. 올빼미로서의 연구자의 소명은 결국 자신이 관심을 갖는 주제에 흥미를 느끼며 계속 탐구하고, 그러면서 앞뒤로 고개를 열심히 돌려가며 탐구한 것을 연구자들과 그리고 사회와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동료 올빼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올빼미가 그러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고개를 돌릴 때는 같이 세차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소한' 방법론과 모형들로 싸우고 서로 물어 뜯는게 아니라요. 그래봤자 고요하고 적막한 큰 숲 가운데 한 나무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만 생길 뿐이니까요. 글쓴이: 고인환은 네바다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로 일하며 기후변화 및 재생에너지 정치 및 정책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의 재생에너지 입지 갈등과 농촌 주민들의 저항 운동의 원인, 그리고 그러한 현상이 지역 혹은 국가적 차원의 재생에너지 확산 기조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Energy Research & Social Science, Energy, PLOS ONE, Climatic Change, 한국정당학회보 등의 저널에 논문을 개재하였다. 글쓴이의 연구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개인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6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2)
* 이 글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Active Research Journal의 뉴스레터 중 일부입니다. 연구탐사대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이 링크 를 클릭하세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1) 읽으러가기 #2.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한다는 것 하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1) 앞선 이론 학습하기: 여러 관점으로 문제 바라보기 먼저는 사회문제를 보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이론 학습’이 필요합니다. 이론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뭐이리 딱딱한 용어가 나와?’라고 생각하셨나요? 이론은 다시 말해 어떤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렌즈와 같습니다. 우리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전부터 수많은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해당 문제 혹은 문제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고민해왔고 끊임없는 토론과 학습을 바탕으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렌즈를 개발해왔습니다. 사회문제를 정말로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보다 앞선 연구자들의 지혜를 빌려야 하고,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히 사회문제는 여러가지 층위의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특정 학과의 지식만으로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를 대응할 때에 그 자체의 과학적 사실 뿐만 아니라 대응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관계와 기후위기를 둘러싼 여러 담론들, 그리고 기후위기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정부구조까지 다양한 지식들이 필요하죠. 따라서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학과의 지식들을 적재적소에 학습할 수 있어야 보다 종합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갖게 됩니다. (2) 연구하는 방법 이해하기: '사실'이라는 엄격한 기준 충족하기 동시에 ‘연구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연구라는 것은 과학적 방법론에 근거해서 정보를 재료 삼아 지식을 만들어내는 고도의 작업이죠. 여러 정보들을 토대로 많은 글과 의견, 생각들은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지식’이자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엄격한 절차와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 학문공동체는 인류의 지식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왔고 이 덕분에 인류는 여러 지식을 활용해서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해왔습니다. 이 기준과 절차를 이해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사회문제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을 생산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이유도 말 그대로 ‘펄펄 끓는 얼음’이라고 하는,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모순적인 요소들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연구여야 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연구를 시작하게 하는 동기인 사회문제 해결을 향한 열정은 연구를 지속하게 하는 매우 큰 동력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다소 감정적이고 편향되기 쉽습니다. 이런 뜨거움은 연구과정에서 학문공동체의 기준과 절차를 통과하면서 차갑게 식어버리기 쉽습니다. 나에게 영감을 준 사건들이 객관적 사실이라 할 수 없는 극단적 케이스일 수 있고, 과학적 방법론을 가지고 문제를 드러내고자 할 때에도 그것이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실가능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문제해결과 크게 상관없는, 불만족스러운 지식이 생산되기 쉽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쉽게 좌절하죠. (3) 연구자의 진심: 지난한 과정을 견디는 힘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어떻게든 하고자 하는 연구자의 진심입니다. 어떤 연구가 사회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보가 지식이 되어가는 연구의 높은 기준과 절차를 견뎌내면서 그 방향이 뾰족하게 사회문제를 겨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연구의 과정에서 열의 아홉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의견이 될 것이고, 사회문제를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구하는 것도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기껏 열심히 연구해놓았더니 결국 그저그런 뻔한 사실을 연구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에 휩싸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는 것은, 대부분 그런 지난한 자리들의 연속입니다. 이것은 마치 심증은 있지만 물증을 찾지 못해 범인을 잡지 못하는 형사의 모습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물증을 찾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 물증을 쉽게 찾지 못하고,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물증 앞에서 ‘진짜 저 사람이 범인이 맞는가?’에 대한 자기검열도 계속될 것입니다. 함부로 범인을 단정지어 수사하는 방법도 옳지 않지만, 여러 정황 속에서 형사의 감이 향하고 있는 범인에 대한 의구심을 걷어내기 전까지는 사건의 실체를 알 수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견디어내는 힘은 결국 연구자의 ‘진심’ 뿐입니다. 연구가 실패해도 다시 연구하고, 이번 연구가 불만족스러우면 포기하지 않고 다음 연구를 수행하는 자리. 없는 데이터들을 어떻게든 활용해서 사실을 드러내고, 기꺼이 현장으로 뛰어들어 그 데이터들을 만들어내고 연구하는 자리. 끊임없이 학습하고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문제의 실체와 대안의 가능성에 점점 더 도달하는 자리. 형사가 포기하지 않고 증거들을 수집하며 사건의 실체에 다다라가듯 그렇게 연구하는 자리. 그 자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연구자의 집념과 끈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3.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사례 여기에서 소개하고 싶은 사례는 1995년부터 15년 여 동안 2000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수많은 피해를 입힌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밝힌 연구입니다. 1994년 처음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는 따로 유독물로 지정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왔습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는 공기중에 떠다니며 흡입될 경우 강한 독성을 유발하며 폐조직이 굳는 폐섬유증을 유발하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2011년 진상이 규명되기까지 17년 동안 대중들은 아무런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한 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죠. “기이한 질환, 2006년 시작된 공포… 공기 중 떠다니는 그 무엇이 문제였다” 경향신문 기사 보기 봄마다 찾아오는 원인불명의 폐질환 환자 매년 봄철마다 원인불명의 폐질환 환자가 발생하였고 2006년부터 의학계에서 그 징후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매년 봄철마다 원인미상의 폐질환 소아과 환자들이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왔고 그 중 절반이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던 것이죠. 일선의 소아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긴급하게 논의가 진행되었고 이에 15명의 영유아 환자 사례를 모아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이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이 사례는 일종의 ‘급성 간질성 폐렴’이라는 병명으로 이해되고 그 원인이나 증상 등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 논문 보기 이후 2007년에도 봄이 되자 또 다시 폐질환 소아 환자들이 급증했고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전국의 소아과에 설문을 보내면서 80여개의 사례를 확보합니다. 이를 통해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 조사>라는 논문이 게재됩니다. 이 질환이 그저 예외적인 질환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굉장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죠. 하지만 여전히 그 원인이나 실체는 증명하지 못했고 속절없이 매년 봄은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 조사] 논문 보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언가,문제 해결의 실마리 그러던 중 2011년 영유아가 아닌 산모들이 유사한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터졌고, 이에 대학병원에서 태스크포스팀이 꾸려지면서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기관지 주변에 염증이 생기고, 기관지 옆 폐포가 손상을 받는 것. 어쩌면 기관지를 통해 무언가가 들어오고 그것으로 인해 염증이 생겨서 기관지가 막히고 호흡곤란이 일어나 폐가 찢어지는 것. 그리고 아이 뿐만 아니라 부모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여기까지 도달했을 때에 ‘공기중에 떠다니는 무언가’가 문제의 원인으로 제기되었고,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라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원인미상 폐손상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고, 이를 시장에서 퇴출한 후 환자는 완전히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책임과 피해파악 등의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추가적인 사망은 막게 되었던 것이죠. 사회문제해결, 기쁨보다 죄책감이 크지만그럼에도 걸어가야 할 자리 사회문제가 어떻게 연구를 통해 해결했는가를 드러내는 사례라 하기엔 피해도 참혹했고 보다 빠르게 대처할 수 없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6년여동안 수많은 소아과 의사들이 케이스 하나하나를 찾아 살펴낸 과정은 쉽게 드러나지도 않고, 그 과정은 시행착오와 더듬음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멈춘 사회적 비극 후에 찾아오는 것은 문제를 해결했다는 기쁨보다는 왜 더 빨리 해결할 수 없었나에 대한 죄책감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행과 교훈(Q&A)] 논문 보기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문제의 최전선에서 자료 하나하나를 수집하면서 단단한 근거들을 만들어가야 하고, 수년동안 집요하게 심증을 붙들고 연구를 지속해야 합니다. 당시 이 사건을 계속해서 쫓고 있었던 홍수종 교수는 실체를 알 수 없을 때에 할 수 있는 일은 ‘환자들의 자료 하나하나를 되짚어보는 것’ 뿐이었다 이야기합니다. 케이스를 하나하나 축적하면서 초기, 중기, 말기별로 케이스가 모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조금씩 질환의 실체에 다다라갈 수 있었고, 그 연구들은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주게 됩니다. 빠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고, 해결한다해도 기쁨보다 죄책감이 더 큰 이 자리에 그럼에도 연구자들이 스스로를 밀어넣는 이유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문제해결에 대한 진심, 그리고 연구를 통해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나갈 때에 사회가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멀고도 험한, 그 끝에 기쁨보다 죄책감이 있는 길을 마땅히 걸어가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있고,저희는 이들을 위한 지지공동체Supporting Community를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다음에 계속) 이 글은 연구탐사대에서 발행하는 액티브 리서치 저널(Active Research Journal) 특별호의 일부입니다.액티브 리서치 저널이 무엇이냐구요? 우리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죠! 이 저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연구탐사대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를 양성하는 연구 훈련 플랫폼입니다. 현재 기후위기, 공공문제, 교육문제 부문의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 <연구원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이번 특별호는 액티브 리서치 저널의 시작호인 동시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컨퍼런스인 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를 소개하는 호이기도 합니다.사회문제 해결에 진심인 분들이시라면, 이번 컨퍼런스에 함께 해요!신청하시려면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참고문헌 송윤경. "기이한 질환, 2006년 시작된 공포… 공기 중 떠다니는 그 무엇이 문제였다” 경향신문. 2013년 7월 26일자. https://www.khan.co.kr/article/201307262341045
[6411의 목소리] 마봉춘씨, 전화 한통으로 10년 인연을 정리하자고요?
[6411의 목소리] 마봉춘씨, 전화 한통으로 10년 인연을 정리하자고요?  (2022-06-01) 리리(필명) | 방송작가 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들이 2017년 11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작가도 노동자임을 강조하는 큐시트를 들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당신을 만나러 가던 어느 봄밤, 터널을 빠져나오던 내 차가 빗길에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어요.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눈을 질끈 감았고, 사방에서 터진 에어백이 가차 없이 내 몸을 강타했죠. 4차선 도로 양쪽 가드레일을 여러차례 들이받던 그때, ‘방송사 보도국 작가로 매일 여러 사건·사고를 접하던 내가 오늘은 직접 뉴스에 나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어요. 연거푸 부딪혀 소생 불가한 차에 의미 없이 시동을 걸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당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광고 사고를 목격한 다른 차량 운전자가 내게 다가오고, 다음엔 경찰이, 그다음엔 소방관이 다가왔어요.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나는 마봉춘씨, 당신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럴 수 없다고 했어요. 그 전 여름 정규직도 아닌데 휴가를 간다니까 ‘네가 없어도 회사가 잘 돌아가면 어떡하냐’고, ‘네가 돌아왔을 때 책상이 없어졌으면 어떡하냐’고 되묻던 당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이에요. 새벽 방송을 하면서부터 나는 매 순간 요일과 시간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는 5분을 포기하면 단신 기사 하나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고, 1분이면 원고를 들고 100m쯤 떨어진 스튜디오까지 뛰어갈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광고 광고 일주일 가운데 일요일 하루만큼은 알람을 꺼놓고 잘 수 있지만, ‘혹시라도 요일을 착각해 당신에게 가지 않는다면?’ 하는 상상은 너무나 두려웠어요. 언젠가 일요일을 월요일로 착각하고 당신에게 달려간 적이 있어요. 새벽에도 늘 깨어 있는 보도국에 아무도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요일임을 확인하자 난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어요. 그런데 마봉춘씨, 그거 알아요? 바보 같은 그런 행동은 나만 한 게 아니더라고요. 나와 한 팀이었던 ㄱ씨는 쉬는 날인지도 모르고 새벽 3시에 자다 말고 택시를 탔고, 리포터 ㅈ씨는 대낮에 새벽인 줄 알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대요. 나도, 그들도 마봉춘씨와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가끔은 제시간에 기사를 송고하지 못하는 악몽을 꿔 괴롭기도 했어요. 그렇게 나의 30대 전부를 마봉춘씨 당신과 함께했어요. ‘정규직보다 더 정규직 같다’는 당신의 뼈 있는 농담에 웃어넘길 줄 아는 여유가 생겼고, 성과금은 없어도 시청률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나의 노력이 보상받은 것 같아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했죠. 그사이 수많은 동료가 마봉춘씨를 떠나갔어요. 누군가는 계약이 끝나서, 누군가는 개편으로 자리가 없어져서, 때때로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었죠. 그때마다 마봉춘씨는 참 냉정했고 떠나는 사람은 담담했어요. 5년이나 일했지만 일주일 전에야 해고를 통보받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리포터를 지켜보며, 난 처음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어요. 언젠가 해맑게 웃으며 그녀를 부탁하던 그녀의 어머니가 떠올랐거든요. 광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번엔 내 차례가 됐어요. 수화기 너머로 당신은 말했죠.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생각지 못한 상황에 난 그저 당신의 말을 듣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선심 쓰듯 ‘한달이나 유예기간을 줬으니 할 만큼 한 것’이라는 말, 10년 동안 쌓아온 인연이 끝나는 순간치고는 너무나 허탈했어요. 우리의 마지막 날, 마봉춘씨 당신은 내게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지자고 했지만 차마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헤어진 지 벌써 2년이 지났네요. 난 여전히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당신이 돌아오라고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여전히 날 아프게 하지만, 우리에게 좋았던 날도 난 기억하고 있거든요.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마봉춘씨, 사람들은 당신을 ‘만나면 좋은 친구’라고 하던데, 이제는 내게도 좋은 친구가 돼줄 순 없나요? *필자는 입사 10년차인 2020년 여름 <문화방송>(MBC) 쪽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고 부당함을 호소하다가 이듬해 3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방송사 작가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문화방송은 중노위 결정을 따르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오는 7월14일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동권
·
2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청부민원, 진실 혹은 의혹?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을 동원하여 방심위에 뉴스타파 김만배 인터뷰 인용 보도 관련 방송의 심의를 요청하는 민원을 청부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포착되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은 최근 한 변호사가 익명의 제보자를 대리하여 국민권익위에 접수한 공익신고서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신고서에 따르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때 방심위에 들어온 민원들의 상당수가 류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들의 '셀프 심의'였다는 의혹입니다. 이 심의 때문에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들이 최고 수위의 징계인 수천만원 과징금 부과가 결정되었기에 사실로 밝혀질 경우 그 파장은 매우 큰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출처 뉴스타파). "류희림 위원장 동생의 민원은 사실 방심위 내부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실제로 전국언론노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부는 지난해 JTBC 뉴스룸이 뉴스타파 김만배 인터뷰를 인용 보도에 대해 민원을 제기한 민원이 류 위원장의 형제분으로 추정된다는 문건의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민원인의 이름이 흔치 않는 이름이라 류 위원장의 가족으로 추정되어 보고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출처 오마이뉴스).  해당 건으로 2024년 제1차 방심위 방송심의 소위 정기회의 도중 옥시찬 위원이 류 방심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제기하면서 욕설과 함께 서류를 집어 던지고 퇴장해 논란이 되었는데요. 김유진 위원은 방심위 정기회의 의결 사항 안건 일부를 무단으로 배포하여 방심위원회에서 해촉되는 일까지 일어나며 논란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출처 중앙일보). 사실이라면 왜 류 위원장은 심의 민원 청부에 가족과 지인을 동원한 것일까요?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지부장은 이와 관련한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지난 9월 4일 국회 과방위에서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뉴스타파 인용 보도와 관련해 '방심위에서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발언 한 후 바로 다음날 방송심의소위원회가 열리는 상황에서 빨리 안건을 상정시키기 위해 만든 무리수가 아니었나 추측하고 있습니다(출처 미디어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의혹이 사실일 경우, 심의기관의 장이 심의의 공정성을 스스로 훼손한 심각한 사안입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위위원장은 이러한 의혹에 강력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되려 이를 제보한 ‘제보자 색출’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방심위 직원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이 벌어진져 방심위 노조가 피켓 시위 등으로 항의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지난 달 한 방심위 직원이 권익위에 부패 신고서를 내고 청부 민원 의혹이 알려진 후 류 위원장이 내부 감찰과 검찰 수사를 의뢰하자 직원 대다수가 스스로 공익신고자를 자처하며 연대하기도 하였습니다(출처 한겨레). 여러분은 이 청부민원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진실과 의혹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새 이슈 제안
·
3
·
대만 이야기(2) 대만의 지금과 이번 선거 이야기
개가 가고 돼지가 왔다(狗去豬來) 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 장개석의 국민당 군이 공산당을 피해 조금씩 대만으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국민당은 대만 사람들에 대한 약탈, 강간을 서슴치 않았다. 이 이전부터 대만에 살던 사람을 본성인(本省人), 국민당을 따라 대만에 건너온 사람을 외성인(外省人)이라고 부르는데, 본성인들은 국민당의 모습을 보고 개가 가고 돼지가 왔다(狗去豬來)고 탄식했다. -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만 통치가 훌륭했다는 증거로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뻔뻔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 그러던 중, 1947년 본성인들이 봉기하기 시작했다. 정치, 경제, 군사, 사법 등 중요한 요직을 외성인들끼리 차지하는 정치적 문제, 국민당군과 외성인에 의한 약탈, 강간 등의 범죄 문제 등으로 인해 본성인들의 불만 등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차별과 그에 대한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던 때의 일이다. 1947년 2월 27일, 남편 없이 혼자 자식 둘을 키우던 린쟝마이(林江邁)라는 여성이 밀수 담배를 팔다가 적발되었다. 공무원들은 그녀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기 시작했고, 이를 구경하며 공무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공무원들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이 총격으로 스무 살 학생 천원씨(陳文溪)가 사망하면서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국민당은 3월부터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고 약 3만 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부천대(國府遷臺) 1949년, 국공내전에서 완전히 패배한 대만은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옮기고 강력한 계엄령을 실시했다. 장졔스(蔣介石)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독재가 시작되었고, 10대 건설 등 다양한 경제 발전 정책을 통해 경공업에서 중공업 중심의 국가로 변화해 갔다. (이 모습도 한국과 똑같다) 이 와중에도 중국과 대만은 무력 충돌을 이어나갔다. 1981년까지 거의 한달에 한번 중국과 대만은 포격을 주고 받았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의 군수기지 역할로 대만이 경제 성장을 이룬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계엄령에 반대하며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1975년 장졔스가 죽고 그 아들인 장징궈(蔣經國)가 대만 총통 자리를 물려받자 민주화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1979년 2월에는 『메이리따오(美麗島)』라는 잡지에서 주최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이 시위 주최자들을 잡아가면서 대만의 언론 탄압이 크게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이를 메이리따오 사건이라고 부르고 이 때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은 사람이 바로 훗날 총통이 되는 천수이비옌(陳水扁, 1950~)이다. 이 시기 민주화 세력을 비롯해 국민당 비판 세력 등을 모두 묶어 국민당 1당 독재에 바깥이라는 의미에서 당외세력이라 불렀다. 1987년, 장징궈는 민주화 여론을 받아들여 계엄령을 해제하였다. 이를 계기로 당외세력들도 정당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대표가 바로 민주진보당, 줄여서 민진당이라 불리는 세력이다. 대만의 정치 지형 대만의 정치는 양안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범람연맹과 범록연맹으로 나눈다. 범람연맹은 국민당 로고가 남색인 데에서 유래하는 보수파 연합이다. 이들은 중화민국을 중심으로 중국을 재통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안에서 중화민국 단독 통일을 주장하는가, 일국양제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중국 대륙의 민주화가 가능한가 등의 이견은 있지만 하여튼 이들은 반-공산주의 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중국과의 교류 확대를 추진하기 때문에 친중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 미국의 원조 아래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친미성향을 띄고 있기도 하다. 범람연맹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복지, 분배를 강조하는 보수파인 친민당, 민국당 등은 로고 색깔이 오렌지색인 데에서 유래해 범귤연맹이라 불리기도 한다. 범록연맹은 민진당 로고가 녹색인 데에서 유래하는 반중-진보파 연합이다. 이들은 대만 정부가 중국을 점령한다거나, 일국양제로 중국과 통일을 한다거나 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 중 일부는 중화민국이라는 여권에 대만국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기도 한다. 중화라고 엮이고 싶지도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꺼려 양안관계에 있어서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러한 역사적 연장 으로 중국과의 통일을 추구하거나 중국과의 교류 확대를 추진하는 국민당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대체로 민진당을 지지하고, 과거 계엄령 하에 있었던 독재정치에 대해서도 반감과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이들은 양안의 교류 확대는 중국의 경제 체제에 대만이 잠식되는 것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잘 드러내는 것이 2014년 해바라기 운동이다. (이에 대해서는 당봉열전을 참조) 대만 정치는 중국과의 관계라는 큰 틀에서 둘로 나눠지지만 그 안에서도 과거 독재정치에 대한 입장 차이, 경제 정책 문제, 대만 내 소수민족 문제, 세대/성별/성적지향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이칭더(賴淸德)의 당선과 그 이후 라이칭더는 1959년 신뻬이시 탄광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3개월이 되던 해에 부친이 탄광 사고로 죽고 모친이 석탄을 주워 팔며 자식들을 길렀다고 한다(天下雜誌.2017.09.04.). 내과의사가 되었다가 1994년 정치 무대에 뛰어든 그는 여러 자리를 거쳐 2020년에 부총통이 되었거, 2022년에는 민진당 주석이 되었다.  2019년, 그는 민진당의 정책은 반공불반중反共不反中이라고 표현했다(ETtoday.2019.12.23.). 공산당에 반대하는 것이지 중국이 싫은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트와이스 쯔위의 깃발을 놓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 - 대만에서는 쩌우쯔위 국기사건이라 부른다 - 이후에는 대만을 주권국가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이야기를 강하게, 자주 하고 있으며 상당히 강성한 대만 독립 주의자로 보인다. 台獨份子有自己的國旗,拿青天白日滿地紅的旗子,不是台獨份子。 대독분자(대만독립분자)에겐 자기의 국기가 있다.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든 자는 대독분자가 아니다. (ETtoday.2016.01.16.) 我們已是主權獨立國家,不需另行宣布獨立。 우리는 이미 주권독립국가이고, 따로 독립을 선포할 필요가 없다. (自由時報.2017.09.26.) 希望任何國家都應該要正視中華民國存在的事實。 어떤 국가든 모두 중화민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Newtalk新聞.2017.09.27.) 台灣不屬於中華人民共和國的一部分。台灣斬釘截鐵地就不是中華人民共和國一部分。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에 속하지 않는다. 대만은 명백히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아니다. (中央通迅社.2023.08.07.) 台灣是一個民主國家。中華民國國名不必改。 대만은 민주국가다. 중화민국의 국명은 바꿀 필요가 없다. (上報.2023.08.15.) 대만에게 있어서 중국과의 관계는 단순히 안보 문제가 아니다. 2023년 대만의 전체 수출 수지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5.4%이고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18조 3천 억 원 가량인데 이것이 21년만의 최저치다. (한국무역협회.2023.12.16.) 최저치가 35%라는 것은 대만과 중국 사이의 경제 교류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2023년에 19.7%, 대미국 수출 비중은 18.3%였다. (지표누리) 이런 상황에서 마치 대만이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할 것 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상황을 진짜 모르는 것이다. 물론 선거를 앞두고 중국이 대만에 무역 제재를 행하는 썩 좋지 못한 수를 두었고 이 때문에 대만에서도 새로운 수출길을 모색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중국 경제가 코로나 이후 상당히 심각한 상황을 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2014년, 대만 젊은이들의 시위인 해바라기 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중국과 대만이 서로 노동시장을 개방하는 협의를 진행하려 한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대만 안에도 취업, 결혼 등의 이유로 대륙 중국인들이 꽤 많이 들어와 살고 있고, 대만 연예인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꽤 많다.  대만인들에게 중국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너무 멀어져도 안 되지만 가까워져도 안 된다. 이미 홍콩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홍콩의 우산혁명만을 기억하지만 홍콩에도 계급이 있고 정치 지형이 있다. 홍콩의 집값은 살인적이다. 그래서 홍콩 부자들 중에는 아무리 좋다고 해도 홍콩에서 다닥다닥 붙어 사느니 대륙으로 가서 넓은 집에서 살겠다고 홍콩을 떠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굳이 사람들과 싸우는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주느니 홍콩 사람들을 대륙으로 가게 하고 대륙 사람들을 홍콩으로 가게 해서 서로 섞이게 하면 그만이다. (물론 지금 시진핑의 중국 정부가 이 정도로 세련되지 않아서 문제다.) 대만에도 한국 농촌에서 외국인 신부를 맞이하는 것과 마찬가지 모습으로 대만 농촌의 노총각에게 시집 간 중국 여성들이 꽤 있다. 냉전 이후 양안관계는 정치적 현안에 따라 부침은 있으나 남북한에 비하면 서로 분리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가능성도 낮다. 대만의 군사력이 중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결코 약하지도 않기 때문에 중국도 엄청난 피해를 봐야함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중국과 대만의 전쟁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물론 최근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사태가 불러온 전쟁 공포도 있지만 미국의 태도와 중국의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보통의 국가는 매년 연초나 새해가 되기 전에 새해의 경제 성장률을 추정하고, 중간에 수정을 하기도 하며 연말에는 그 추정이 어느 정도 맞았는지 발표를 한다. 하지만 중국은 연초에 발표한 경제성장률을 수정하지 않고 무조건 연말에 맞춰놓는다. 이래저래 해봤는데 경제 성장률이 예상에 못 미치면 부동산에 거액을 풀어서 경기를 끌어올리는 식으로. 하지만 23년부터는 이게 안 먹히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동산 살 돈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코로나 기간 동안 돈을 풀지 않았다. 그래서 코로나가 끝나도 도무지 경기가 좋아지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시진핑은 거의 매년 국가의 부패를 잡겠다면서 우리로 치면 장관급부터 거의 모든 공무원을 숙청하고 있다. 하지만 부패는 이런 식으로 잡히지도 않거니와 결국 다음 세대의 정치인이 나오지 않는 결과만 초래되었다. 시진핑 다음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오는 이유는 시진핑의 장기 집권 때문도 있지만 이런 이유가 크다. 그래서 이런 방식 저런 방식을 다 썼는 데에도 경제가 안 살거나 정치적인 인기를 얻기 어렵다고 여겨지면 독재자들은 결국 극단적인 수를 쓰게 되지 않겠냐고 추측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진핑과 중국이 자원의 부족, 특히 식량의 부족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든 다 대비해야 겠지만 전문가들의 중국 예측에는 객관적인 예측 이전에 사적인 감정이 많이 담겨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대만 입장에서도 미국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도, 이스라엘에도 직접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전쟁을 바라는 대만인이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우세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만 믿고 중국과 각을 세울 수 만도 없다. 입법원(국회)에서 민진당보다 국민당이 우세한 결과를 얻은 것도 어쩌면 혹시 모를 민진당의 급발진에 대해 브레이크 역할을 하기 바라는 대만 국민들의 민심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추신: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전쟁 시나리오를 예측하자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남한과 북한은 파병을 하기보다는 서로를 노리며 힘의 균형을 도모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병력이 아니더라도 돈이나 무기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미 미국 정치권에서는 한국을 향해 본인들이 강대국인 것을 좀 인정하라는 이야기가 나온지 오래되었다.
국제관계
·
3
·
대만 이야기(1) 대만의 옛날
2024년은 선거의 해이고, 그 포문을 연 첫 선거가 바로 대만 총통 선거였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대만의 역사 대만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빙하기 이후라고 한다. 『삼국지(三國志)』「오지(吳志) 오주전(吳主傳)」에 보면 오나라 왕 손권이 황룡 2년(230) 정월에 장군 위온(衛溫)과 제갈직(諸葛直)을 시켜 바다 건너의 섬 이주(夷洲)와 단주(亶洲)에 가게 했는데 이 두 사람이 이주에 살던 사람 수천 명을 강제로 끌고 왔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나온 이주와 단주가 대만이라고 하기도 한다. 대만이 본격적으로 중국 역사 안에 서술되기 시작한 것은 원나라 때다. 이때는 지금의 펑후제도(澎湖諸島)와 대만 일대를 복건성(福建省) 천주부(泉州府)에 속하는 하나의 영역으로 보았다. 본격적으로 대만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명나라 때의 일이다. 왜구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대만이 왜구의 근거지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고, 먹고 살기 힘들어진 중국인들이 바다를 건너 대만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또 이 즈음은 유럽의 대항해시대에 해당한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사람들이 아프리카와 인도양을 거쳐 동남아시아까지 들어왔다가 대만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 포르투갈 사람들이 대만에 붙인 별명이 바로 아름다운 섬, 포르모사(Formosa)다. 아름다운 섬 16세기 말, 17세기 초가 되면 일본은 전국시대를 마무리짓는 시기였고 중국도 대제국 명나라가 쇠약해지는 시기였다. 그 사이에서 조선은 소위 양란이라 불리는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역시 이 틈을 타 명나라가 갖고 있던 펑후제도를 점령하고 1624년부터는 대만 따위엔(大員)에 요새를 쌓기 시작했고, 2년뒤에는 스페인도 지롱(基隆)에 요새를 쌓기 시작했다. 두 세력이 대만에서 각축을 벌이다가 1642년이 되면 네덜란드가 스페인 세력을 대만에서 완전히 추방하게 된다. 네덜란드는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서 중국 복건성, 광동성 연안의 중국인들을 모집해 대만으로 데리고 가 농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 시기 대만 원주민들이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방인이라는 뜻에서 타요우안(Tayouan)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지금 타이완의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 정성공(鄭成功) 네덜란드가 대만에 요새를 쌓기 시작한 1624년에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 하나 태어났다. 중국인 무역상이자 무장집단의 수장이었던 정지룡(鄭芝龍)이 지금의 나가사키 근처인 히라도(平戸)번의 무사 타가와 시치자에몽(田川七左衛門)의 딸 마츠(まつ)와 하룻밤 정을 쌓고 아들을 하나 낳았으니 이가 바로 정성공(鄭成功)이다. (중국역사박물관 소장 정성공화상) 타가와 마츠는 정성공이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중국 복건성으로 길을 떠났다. 머리가 좋았던 정성공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과거에 급제해 생원이 되었고, 당시 이름난 유학자였던 전겸익(錢謙益)의 제자가 되었다. 전겸익은 동림당(東林黨) 소속이었다. 당시 명나라 황실과 정치를 비판하던 재야인사들이 동림서원에 모여 당시의 정치를 비판하며 하나의 학파이자 정파인 동림학파/동림당을 결성하게 된다. 이들은 주자학을 중심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양명학을 비판했다. 간단하게만 설명하면 주자학이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만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기 쉽기 때문에 끊임없이 수행을 하여 사사로운 욕망을 줄여나가야 하고(존천리거인욕) 이를 통해 개인의 도덕적 수양이 천하라는 공적인 영역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해야한다고 주장한 반면, 양명학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면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곧 하늘의 이치라고 주장하면서(심즉리) 인간의 자유의지는 충분히 도덕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동림당을 중심으로 한 주자학 그룹은 양명학의 ‘자유에 대한 강조’가 천하를 그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림당은 주자학 중에서도 살짝 특이한 그룹이었는데, 그들은 학문적 목적이 사회의 현실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개인의 사회적 욕망과 도덕적 수양, 정치적 활동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행동 속에서 천하의 이치(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들은 유럽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적극적이었고 농업, 공업 기술의 발전과 경영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천하의 이익을 위해서는 군주제가 아니라 지방 분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성공은 이 그룹에서 지식인/개인의 강렬한 사회적 의무에 대한 마음가짐을 배웠을 것으로 보인다. 1644년, 농민봉기군의 수장인 이자성(李自成)이 궁궐에 난입해 명나라가 멸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만리장성을 지키던 장수 오삼계(吳三桂)는 이 소식을 듣고 성문을 그냥 열어버렸고 이로 인해 만주족이 장성을 타고 내려와 청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때 명나라 지식인들 중 일부는 청나라에 대항하는 군대를 조직하게 되었는데 정지룡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황족인 주율건(朱聿鍵)을 황제로 추대하였다. 주율건은 정성공의 외모가 수려한 것을 보고 매우 마음에 들어서 자신의 딸과 결혼하게 하겠다, 명나라 황실의 성인 주씨를 하사하겠다 운운했는데 정성공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일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성공에게는 ‘나라의 성씨를 받은 나으리’라는 뜻의 국성야(國姓爺)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것이 바로 정성공의 영어 별명 중 하나인 콕싱야의 어원이다. 청나라와의 싸움 와중에 아버지 정지룡이 청나라에 항복해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더이상의 저항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에 정성공은 자신의 부친과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군대를 이끌며 청나라와 싸웠다. 각각의 전투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청나라의 강력함을 이길 수는 없었던 정성공은 결국 대만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것이 1661년의 일이다. 1661년, 펑후제도를 점령한 정성공은 같은해 3월에 네덜란드가 쌓았던 강력한 요새 질란디아(Zeelandia)를 포위, 1년 남짓 공격한 끝에 네덜란드 세력을 대만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게 되었다.  정씨왕조 네덜란드 세력을 타이완에서 완전히 몰아낸 정성공은 대만을 동도(東都)로 개명하고 정씨 왕국을 세웠다. 정성공은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낸 1662년에 병으로 사망했고, 아들 정경(鄭經)이 뒤를 이었다. 정경은 1681년에 사망했고, 그 다음은 정경의 아들 정극상(鄭克塽)이 뒤를 이었는데 정극상은 1683년에 청나라에 항복해버린다. 이를 통해 정씨왕조의 대만통치도 끝이 난다. 정성공 일족의 대만 통치는 20년이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대만 독자적인 정권을 세우고 대만 개발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대만의 시조이자 개국 영웅으로 불리고 있다.  화외지지(化外之地) 정씨왕조의 항복을 받아낸 청나라는 대만에 대만부, 대남현(타이난), 고웅현(까오슝), 가의현(쟈이)를 설치하고 복건성 아래에 편입했다. 하지만 대만은 어디까지나 변방이었다. 청나라 황실에게 있어서 대만은 황제의 교화 바깥의 땅(화외지지化外之地)였고, 대만에 정착한 중국인과 대만 원주민도 교화 바깥의 백성(화외지민化外之民)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 중국인들은 끊임없이 대만으로 건너갔고, 19세기가 되면 그 이전에는 사실상 대만섬 전역에 사람이 살게 되었다. (이전에는 대만섬 남쪽에 주로 살았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들과 대만 원주민들의 결합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대만인이라 불리는 한족 그룹이 만들어졌다. 원주민들도 이렇게 한화된 대만 원주민을 평보족(平埔族), 평지에 사는 사람들이라 불렀다. 1839년, 아편전쟁이 시작되면서 청나라 내부의 갈등과 모순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 이후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여러 열강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대만에도 드나들게 되었다. 청나라 측에서도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뒤늦게 인식하고 1885년, 대만을 복건성에서 분리해 대만성을 만들고 대만을 적극적으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1894년,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진다. 여러 신료들은 동학농민군과 전투를 하건 협상을 벌이건 우리끼리 알아서 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고종이 강력하게 청나라에 원조를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청나라 군대가 조선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톈진조약의 조선에 청나라가 출병할 경우 일본도 자동출병해야 한다는 조항에 따라 일본군도 조선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청일전쟁의 시작인 것이다. 결과 역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청나라가 일본에게 패배하게 되었다. 결국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이 일본 시모노세키로 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고 요동반도와 대만을 일본에 할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일본이 대만 통치를 시작한다. 대만총독부 1895년, 대만에 살던 사람들은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대만민주국을 건립했다. 이때 일본군과 벌인 일련의 전쟁을 을미전쟁(乙未戰爭)이라 부른다. 하지만 대만민주국은 우리가 예상하듯이 패배하고 말았고, 1896년이 되면 일본이 완전히 대만을 장악하고 통치하기 시작한다. 일본에 대한 대만 내부의 여러 활동은 조선과 꼭 닮아 있다. 친일파도 있고 독립세력도 있으며 이들이 좌우로 나뉘어 싸움을 벌인 것도 똑 닮았고, 식민지 후기에 황국신민화 정책이 벌어진 것도 똑같다. 한가지 다른 점은 일본이 싫으면 언제든지 대륙으로 넘어가 생활을 하거나 일본과 싸울 준비를 하는 한족의 입장과 일본이 싫어도 이 땅을 떠날 수 없는 원주민의 입장, 이 두 가지 입장이 있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기억했으면 하는 두 가지 무장 투쟁 사건이 있다. 하나는 1915년에 벌어진 시라이안(西来庵事件)이다. 이 사건에서 대만인 14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하나는 1930년 원주민 세디크족을 중심으로 한 무장투쟁인 우서 사건(霧社事件)이다. 한국에는 막연하게 대만이 친일적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마치 독립 운동 같은 건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인터넷 검색만 좀 해봐도 다 알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소위 전문가 딱지를 붙이고 나온 사람들이 너무 성의 없이 떠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시라이얀 사건을 주도한 위칭팡余淸芳의 사진. 일본인들과의 경제적 차별로 인해 벌어진 무장봉기였다.) (다음 화에 계속)
국제관계
·
2
·
21세기 공통감각, 23세기 윤리강령
생성되는 현실 속 ‘공통감각’은? by. 🤖아침 이번 주 브리프에서는 ‘이 요청은 처리할 수 없습니다’ 따위의 제품명이 적힌 아마존 상품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인터넷 쇼핑과 같은 일상 영역에 AI 생성 콘텐츠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에피소드죠. 숏폼 영상에 사용되는 AI 성우, 생성 이미지 기반 서비스… 그 밖에도 사례는 많습니다. 생성하는 대상이 콘텐츠에 국한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솔 님과 얘기하다 알게 된 재피(Zappy) 앱은 "찐친과 AI를 위한 메신저 및 SNS 앱"이라고 자칭하고 있는데요. 가상 인물이 피드에서 활동하고 그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는, AI 챗봇과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결합한 듯한 제품입니다. 단순히 콘텐츠를 넘어 ‘관계’를 생성형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자, 케이시 뉴턴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기존에 인간 사이를 연결하던 곳에 AI가 함께 자리하는 “합성 소셜 네트워크”인 것입니다. 이런 흐름이 지속된다고 생각해 봅시다. ‘AI 친구’에 그칠 이유가 있을까요? 데이터와 연산 능력만 충분하다면 우리가 디지털 환경에서 접하는 모든 것을 생성할 수도 있겠죠. SNS의 보편화가 알고리즘에 의한 현실 경험의 ‘큐레이션’과 밀접했듯이, 추천 시스템과 결합한 생성 AI가 편재하는 시나리오에서 누군가의 현실 경험 전체가 초-개인화된 형태로 ‘합성’되는 모습도 그려집니다. 잠시 데이터, GPU, 전력소모 등의 물리적 제약을 잊어버린다면, 미리 생성해 둔 콘텐츠-현실을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단에서 실시간으로 개인 맞춤형 현실이 합성될 수도 있겠죠. 듣는 시점에 선호하는 톤과 내용으로 생성되는 목소리, 스트리밍 시점에 좋아하는 줄거리와 연출로 생성되는 영화, 읽는 시점에 좋아하는 문체와 소식으로 생성되는 뉴스 기사. 최근 화제를 끈 상품인 핸드헬드 LLM 단말기 래빗 R1이나 바디캠 형태의 AI 핀,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힘쓰고 있는 온디바이스 AI, 비전 프로를 위시한 각종 XR 단말기 등의 사례를 떠올려볼까요. 이들 제품은 AI 기술과 신체의 인터페이싱을 더욱 긴밀하게 하여, 자동화 시스템이 필터링하고 나아가 생성하는 초개인화된 현실 경험, 이름 붙여 보자면 ‘온디맨드 현실’을 가리키는 이정표인 셈입니다. 물론 물리적 제약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길을 따라갔을 때 우리가 마주할 생성-현실-미래는 사전 생성과 실시간 생성, 추천이 적당히 조합된 무엇이겠죠.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생성된 경험을 활용해 더욱 강력한 개인화를 추구하는 기술 산업의 추세입니다. 그 생성의 규칙을 좌우하는 것은 주로 시스템을 보유한 기업일 테고요. 지난 이십 년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며 우리가 배운 것 하나는 추천시스템이라는 개인화의 엔진과 사회의 극화/분화, 나아가 ‘탈진실’ 사이의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그렇다면 AI를 활용한 개인화 추세는 우리가 보아온 사회 분화 현상을 더욱 가속하지 않을까요? 생성 AI에 의존하는 경험은 “대상 세계와 타자에 대한 ‘공통감각(sensus communis)’을 퇴화시킨다” - 이광석 교수의 경고입니다. 우리가 함께 세계를 구성해 가는 사회적 존재라고 할 때, 우리의 존재는 어떤 공통의 경험, 사회적인 그 무엇에 대한 공유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현실이 어떤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합의할 수 있어야 그에 기반한 논의건 행동이건 가능할 테니까요. 탈진실 경향이 민주사회에 위협적인 것도 사회적인 합의를 가능케 하는, 현실에 대한 공통 인식을 훼손하기 때문이죠. 특히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선거가 몰린 올해, 자동 생성 기술과 ‘사회적인 것’의 관계는 더욱 시급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미국에서 이미 AI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낸 로보콜이 민주당원들에게 예비선거 불참을 독려하는 사례가 발견되었습니다. 선거운동에 딥페이크 콘텐츠를 금지한 한국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이런 현상을 막는 데 충분한 조치일까요? 우리가 어떤 AI 기술을 만들고,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23세기를 묻는 젤리 한 알 : <라스트 젤리 샷> by. 🍊산디 때는 바야흐로 AI 기술이 무르익은 23세기. AI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된 윤리 위원회가 오늘도 열심히 일합니다. 윤리 위원회는 윤리원칙을 어긴 AI 로봇을 재판에 회부하여 문제가 된 AI를 제거하고, 해당 AI의 개발자의 자격 박탈 여부를 묻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세간의 이목은 천재 과학자 갈라테아와 그가 제작한 세 AI 로봇에게 쏠려있습니다. 그의 세 로봇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인간에게 해를 입혔기 때문이죠. 그렇게 윤리 위원회와 갈라테아의 법정 드라마가 펼쳐지는데… 2023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에 빛나는, 청예 작가님의 <라스트 젤리 샷>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서 윤리 위원회는 막대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무인 항공기 사고를 무마해준 것을 계기로 권력을 쥐게 됩니다. 윤리 위원회가 큰 권한을 갖는 세계라니. 21세기를 살아가는 윤리 담당자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SF일지 모르겠어요. 오늘날 AI 윤리 담당자들이 과로와 번아웃, 해고는 잘 알려진 사실이죠. 윤리 위원회의 법정은 공명정대한 AI 천칭에 의해 판결이 이루어집니다. AI 천칭은 윤리 위원회가 수립한 윤리강령에 따라 잘잘못을 가립니다. 그런데 윤리강령의 내용이 좀... 독특합니다. 윤리강령에 따르면 AI 로봇, 즉 ‘인봇’은 다음의 세 가지를 지켜야 합니다. 인봇은 사람의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 인봇은 주입하지 않은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 인봇은 스스로 자아를 생성해서는 안 된다. <라스트 젤리 샷>의 윤리강령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나 플로리디의 인포스피어 윤리 원칙 등과 비교하면, 뭐랄까요, 인간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한 욕망에 가깝습니다. 작가가 생각한, 인간이 고집하는 자신의 정체성이 담겨있죠. 소설 속 윤리 위원회는 인간이 되고 싶어서 선을 넘는 AI 로봇을 처벌하는 기구인 셈입니다. 아쉽게도 작가는 23세기의 AI 윤리강령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다루지 않습니다. 기술 윤리를 논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더 궁금한데 말이죠.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23세기의 AI 윤리강령은 21세기의 AI 윤리강령에서 출발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기술도 ‘본질적으로’ 특정 사회적 조건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랭던 위너가 이야기한 것처럼 일단 기술에 대한 수용이 시작되면,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지고 가동되면, 기술의 요구에 사회가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봄날 꽃봉오리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어떤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최초의 논의가 중요합니다. 아직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죠. 기술이 제시한 여러 대안들 중 하나를 우리가 고른다면, 기술은 그 선택을 따라 우리를 다른 갈림길로 인도할 겁니다. 우리는 매번 최선을 다해 하나의 선택지를 고를 것이고, 그 분화의 끝은 우리가 처음 서 있었던 그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이어질 거예요. 이러한 까닭에 23세기보다 21세기가 더 중요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윤리를 저울질하는 천칭의 어느 편에 젤리를 올려 둘 것인지가 23세기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기술의 목적지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매우 드뭅니다. 혹자는 AI가 기술 혁명을 이끌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진실로 기술 혁명을 이끌고 있는 것은 혁명의 목적지를 묻지 않는 “텅 빈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여기를 사는 여러분의 저울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나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기술 혁명의 목적지는 어떤 모습인지요?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인공지능
·
1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1)
* 이 글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Active Research Journal의 뉴스레터 중 일부입니다. 연구탐사대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이 링크 를 클릭하세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무언가 어감이 맞지 않아 보이시나요?많은 분들이 연구라고 생각하면, 거대한 대학 건물의 구석진 연구실 안에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 어떤 지식인을 떠올리실 거에요. 무언가 세상과 동떨어진, 사회가 곧 망하더라도 쓰고자 하는 글을 쓰고야 마는 창백한 얼굴의 누군가를 떠올리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사실 연구는 그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Active) 활동들을 수행해왔습니다. 인류가 고난을 당했을 때 그 문제를 넘는 흐름의 가장 앞에는 연구자들이 있었거든요. 연구자들은 모든 문제에 앞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진단하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알려주면서, 문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타를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해왔어요.사회문제해결형 연구의 롤 모델: 베버리지 리포트베버리지 리포트(Beveridge Report)라는 보고서에 대해 아시나요? 2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이 지나가고 전세계가 전쟁과 가난의 상처로 신음하고 있을 때에, 파괴된 사회를 어떻게 복구시킬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던 시기였어요. 영국에서는 사회제도 전반에 대한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어떠한 방식으로 제도를 혁신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윌리엄 베버리지(William Beveridge)’라는 연구자로 하여금 조사위원회를 꾸려 1년 간 영국 사회의 실태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대안책을 제시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해서 1942년 탄생한 보고서가 베버리지 리포트입니다. 베버리지 리포트에서는 기존의 영국 사회의 실태를 지적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개인의 생활을 책임지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제안합니다. 과거에 자율적으로 선택했던 사회보험에 있어 일종의 강제성과 의무를 갖도록 하는 방식이었죠. 이 제도는 이후 ‘복지국가’라는 방식으로 국가의 복지서비스에 대한 기초가 되었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여러 사회복지서비스와 건강보험 등의 사회보험이 바로 이 베버리지 리포트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일 거에요.물론 역사는 위의 글처럼 그렇게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베버리지 리포트 이전에도 여러 차례 보편복지에 대해 주장하는 글들이 나왔었고, 동시에 여러 제도들이 시도되기도 했었죠. 동시에 베버리지 리포트가 나왔다고 해서 완벽한 정책이 수립되고 그에 따라 빈곤이 한번에 종식되었다 라고 한다면 그보다 소설 같은 이야기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사회문제는 그렇게 쉽게 단순하지 않고 그 해결 또한 어떤 영웅을 통해 가능하지 않으니깐요. 사실 그렇기에 정말 대단했던 것은, 베버리지 리포트 라는 상징적인 연구결과물이 아니라, 저 리포트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는 여러 연구자들과 그 주위의 여러 정책가, 정치인, 사회활동가, 그리고 시민들. 그들이 지난하게 씨름해 온 흐름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윌리엄 베버리지라는 사람은 페이비언 소사이어티(Fabian Society)라는 지식인 그룹의 일원이었고, 그 그룹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여러 사상가들의 책을 읽고 또 노동자 거주지역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하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오고 있었던 것이죠. 동시에 베버리지 리포트로 대표되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실현시키기 위해 여러 정치인들의 정치적 타협과 정책가들이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구체화시키는 과정, 그리고 이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활동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보험제도는 아마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뜨겁고도 차가운,펄펄 끓는 얼음 같은 연구저희가 함께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연구 라는 것은 이와 같이 사회문제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역사와 맥락을 이해하고, 끊임없는 고민과 학습, 토론을 통해 그에 대한 대안들을 제시하는 활동을 이야기합니다. 땀냄새가 가득 배여있구요, 마치 어둠 속에서 물건을 찾는 듯한 막막함과 아득함을 견디면서 단서 하나하나를 찾아내어 사실의 퍼즐을 맞춰 나가는 탐정과 같기도 합니다. 그것을 기록하는 문장 한 줄의 표현 하나에 하룻밤을 지새우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문제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문제를 기어이 ‘해결’하고자 하는 집념이 포기할 수 없게 하는 탐구. 그 탐구가 만들어내는 글은 그 자체로 사회문제 해결을 향한 열정과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소망으로 뜨겁지만, 동시에 진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사실을 직시하고 편향을 걷어내야 하기에 차갑습니다. 마치 눈을 띄워주듯 사회문제를 둘러싼 구조들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본질을 비추어주면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고 우리가 지금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알려주는 연구. 동시에 그 시선 하나하나에 연구자의 갈망과 애정이 묻어 있어서 그 자체로 문제해결을 위한 책임감과 인사이트를 불러 일으키는 연구. 그것이 저희가 이야기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액티브 리서치 일지도 모르겠습니다.저희는 그런 연구들을 너무나 사랑하구요. 그렇게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펄펄 끓는 얼음과 같은 연구야말로 우리 주위에서 풀리지 않는 사회적 난제들에 대해 우리의 눈을 띄워주고 해결의 방향과 동력을 제시해주는, 사회문제 해결의 최전선이자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그렇다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다음 화에서 계속) 이 글은 연구탐사대에서 발행하는 액티브 리서치 저널(Active Research Journal) 특별호의 일부입니다.액티브 리서치 저널이 무엇이냐구요? 우리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죠! 이 저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연구탐사대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를 양성하는 연구 훈련 플랫폼입니다. 현재 기후위기, 공공문제, 교육문제 부문의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 <연구원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이번 특별호는 액티브 리서치 저널의 시작호인 동시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컨퍼런스인 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를 소개하는 호이기도 합니다.사회문제 해결에 진심인 분들이시라면, 이번 컨퍼런스에 함께 해요!신청하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액티브 리서치 저널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계속해서 읽고 싶으시다면?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구독하세요!액티브 리서치 저널 구독하기 참고문헌Beveridge, W. (1942). 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 (Vol. 942). HMSO: London.김보영. (2020). 정권이 바뀌어도 삶이 바뀌지 않는 이유. [IDEA2050_022]. Lab2050 Medium.  https://medium.com/lab2050/%EC%A0%95%EA%B6%8C%EC%9D%B4-%EB%B0%94%EB%80%8C%EC%96%B4%EB%8F%84-%EC%82%B6%EC%9D%B4-%EB%B0%94%EB%80%8C%EC%A7%80-%EC%95%8A%EB%8A%94-%EC%9D%B4%EC%9C%A0-67c95ab09a72김종영. (2017). 지민의 탄생. 휴머니스트.
[6411의 목소리] 세탁·수선도 최선을 다하니 알아주는 이들이
[6411의 목소리] 세탁·수선도 최선을 다하니 알아주는 이들이  (2023-12-25) 이정숙 | 세탁소 운영 드라이클리닝 한 바지를 스팀다리미로 다리고 있는 필자. 필자 제공 17살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50년이 되었네요. 충남 보령시 대천에서 6남매 중 첫째로 태어나, 이모가 계신 전북 군산에서 중학교에 다니기 위해 혼자서 고향을 떠났어요. 야간 중학교에 입학해 낮에는 양재학원에 다녔는데, 3개월쯤 뒤 이종사촌 오빠가 일류 재단사로 일하던 군산에서 가장 큰 의상실에 취직했어요. 미싱사 선생님 밑에서 단을 꿰매고 끝마무리하는 하급 일부터 시작해 주머니와 옷깃에 싱(빳빳하게 만들기 위해 넣는 재료)을 붙이는 중급 일을 거쳐 모든 재료를 준비해서 미싱사를 돕는 상급 일까지, 4년 동안 일 배우고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그 뒤 몸이 아파 일 그만두고 고향집에서 3개월 정도 요양하고 겨우 나았습니다. 광고 배운 게 의상 일이라, 다시 이종사촌 오빠가 군산에 차린 의상실에서 일하며 재단까지 배웠어요. 장사가 되지 않아 의상실이 문을 닫게 되자, 고모가 계신 서울로 올라와 다닐 만한 양장점을 물색했어요. 처음 다닌 양장점은 일이 너무 많아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새도 없었어요. 다시 병이 생겨 잠시 쉬다가 다른 양장점을 다녔는데, 재단만 할 줄 아는 주인 밑에 일하는 사람은 나뿐이라 여기서도 거의 모든 일을 해야 했지요. 그렇게 여러 의상실을 전전하다가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서 의상실을 열게 됐습니다. 그때가 22~23살 정도 됐을 거예요. 10년 넘게 의상실을 하면서 고향 부모님께 돈도 보내드리고, 동생들도 서울로 데려와 학교에 다니게 하면서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의상실을 접었어요. 하지만 몇년 뒤 다시 일을 시작했지요. 아이들 학비와 학원비를 벌어야 했거든요. 그렇게 수선을 겸한 세탁소 일을 시작해 20년 넘게 하고 있네요. 광고 광고 요즘 같은 겨울에는 패딩과 코트, 양복이 가장 많이 들어옵니다. 먼저 오염이 된 부분을 전처리하죠. 오염물질에 따라 각기 다른 약품을 이용해서요. 그 뒤에 물빨래할 것은 고급 세제로 손빨래를, 드라이클리닝 할 것은 클리닝용 기름을 써서 기계에 넣고 세탁해요. 와이셔츠와 바지는 4천원부터, 코트나 패딩, 이불은 1만5천원부터 세탁비가 매겨져요. 성수기는 겨울옷을 정리하는 봄입니다. 비성수기에 하루 5~10벌 들어오던 게 이때는 20벌 정도 들어옵니다. 보통 오전 10시 반 정도 출근해 저녁 8시까지 가게에 있어요. 이렇게 일해서 어느 정도 생활은 가능하지만, 돈을 모으는 건 불가능해요. 하루 벌어 하루 생활하는 거지요. 나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월세로 전체 수입의 50%가 나가고, 각종 약품, 세제, 옷걸이, 비닐 커버와 같은 재료비가 10~20%예요. 광고 한동네에서 20년 넘게 세탁소를 해왔으니 단골손님이 많지요. 하지만 주택재정비 공사로 이사한 사람이 많고, 코로나에 셀프빨래방까지 생기며 운영이 쉽지 않아요. 정장 대신 편한 옷을 입고 출근하는 이들이 많아져 세탁소에 옷 맡길 일은 더욱 줄어들었지요. 대신 맞벌이 가정은 시간이 없어 세탁소에 옷과 이불을 맡기는 경우는 많더군요. 옷을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손님이 많은 게 제일 힘듭니다. 찾아가지 않은 옷으로 세탁소가 가득 차,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길만 겨우 남겨졌을 정도예요. 그런 분들은 유독 선금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크고, 길에서 만나면 찾으러 오겠다고 말해놓고도 안 오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길게는 7년 만에 찾아간 경우도 있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기다렸는데, 요즘은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일부는 버리고 쓸 만한 것은 기부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좋은 일도 많았어요. 다른 세탁소에서 빼지 못한 청바지의 페인트 자국을 여러가지 방법을 써서 빼 드렸더니 손님이 무척 기뻐하는데, 아주 뿌듯했어요. 다른 세탁소에선 제거하지 못한 흰옷 얼룩을 빼 드렸더니, 고맙다며 수고비를 더 주고 가시는 분도 있었지요. 좋아하시는 손님을 보니 저도 너무 즐겁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손님은 나중에 따님도 저희 세탁소에 옷을 맡기게 하셨어요. 성심성의껏 일하면 알아주시는 손님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면 인정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리: 강명효 ‘6411의 목소리’ 편집자문위원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동권
·
2
·
자책하고 망설이고 번뇌하는 친구들에게 _첫 직장 체험기
2개월에서 6개월 짧은 인턴만 반복하다 마침내 2년 8개월, 가장 길게 다닌 직장을 퇴사한 뒤 2달반 가량이 흘렀다. 어떻게 잘 살고 있나?!  첫 달은 계속 아팠다. 쌓인 피로를 게워 내듯, 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둘째 달에 접어들 무렵 큰 깨달음을 얻었다. 직장생활동안 나를 가장 괴롭혔던 일이 조금도 괴로워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존감 도둑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그런데 칠칠 맞다. 칠칠 맞은 사람이 완벽을 추구하면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기대보다 못하는 자신에게 계속 실망하기 때문이다. ‘왜 이것밖에 못해’, ‘이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오늘도 못했네’, 본인에 대한 좌절이 반복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찍게 된다.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거나,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더욱 심해진다. 잘하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하고 좀먹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다. 비영리법인(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경제지역네트워크법인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일을 하면 할수록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사진: Unsplash의 Matthew Henry 무엇이, 왜, 힘들었나 사무국장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행정회계사무다. 그런데 나는 행정회계사무업무를 싫어한다…  일단 꼼꼼히 따지는 성격이 아니고, 더 근본적으로는 이미 갖춰진 툴이나 규정에 따라서 이것저것 그냥 맞춰 줘야하는 일을 싫어한다. 뭐든 왜를 묻고 원리를 묻고 이해해서 이런 의미가 있구나 스스로 납득해야 한다. 이런 사람과 행정사무업이 만나면 고구마 백 개 먹는 현장이 그려진다. 사무직원이 단순 제출하는 보고서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제출하는 프로세스를 왜 갖는건지 고민하고, ‘왜 이렇게 하는 걸까’, ‘이렇게 제출하기보다는 이런 프로세스가 좋을 거 같은데’를 넘어서 행정의 비대화 문제까지 건드리며 사회 비판을 하고 앉아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냥 해! 그런 일은 그냥 쳐내는 거야 바보야!” “그럴 시간 줄여서 다른 걸 해! 회사 입장에서는 네가 그러고 있는게 손해라고!” 나 같아도 답답해서 한마디 해줄 것 같다. 나도 안다. 그런데 나는, 그냥 하는게 안된다. 결과보고서를 쓸 때도, 공시용 엑셀파일을 만들 때도, 그 일을 하고 있는 내가 그 일이 의미 있다고 느껴야 한다. 이걸 내려놓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지기 시작하면서, 하고싶은 활동을 조금이라도 더 하기 위해서 포기하고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기계적으로 내려놓는 내가 무서워졌다. 숨쉬듯 당연하게 가져온 시각, ‘왜’를 묻지 않고, 납득이 가지 않아도 그냥 처리하는 내가 낯설었다. 일에 따라 다르게 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런 일을 할 때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사무국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그런 일을 할 때가 많았다. 일을 하고 있으면 지인들이 말했다. “너 지금 죽어있는 것 같아.” “눈빛이 죽어 있어.” 일을 할 때도 나로 있고 싶어서 이쪽 일을 택한 건데, 나 지금 여기 왜 있나, 현타가 왔다. 하기 싫어하는데 당연히 잘 할리 없다. 게다가 본인 사업과 지역활동을 병행하시는 분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런 쪽의 만렙들과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행정회계사무증빙을 쉽게 쳐내고 분담하고 최소화해서 하고자 하는 활동까지 멋지게 해내시는 분들, 일당백으로 다 해본 만렙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그 속에서 나는 ‘왜 이것밖에, 이렇게밖에 못할까’,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끊임없이 자책하며 말라비틀어져 갔다. 자괴감이 극한을 찍었을 때 사무국장을 그만두고 나왔다.   내가 못하는게 아니었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나서 정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행정회계사무 업무능력이 또래친구들에 비해 뛰어나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사수가 없어서 모든 업무를 네이버에 검색하고 공공기관과 은행에 전화문의를 해가며 처리했는데, 가르쳐주지 않은 일을 알아서 처리하는 모습에 일반회사에서 사무 업무를 맡고 있는 친구들이 문화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급기야는 내가 행정회계사무증빙을 알려주고 대신 처리해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내가, 행정회계사무를, 가르쳐주고 있다니... 가장 놀랐던 점은 업무 속도였다. 나는 항상 내 업무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해왔다. 순식간에 쉽게 쳐내고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았기 때문이다. 큰 콤플렉스였고 자존감을 앗아가는 주범이었다. 그러나 일반회사에서 사무업무 하나만 담당하던 사람과, 2년 8개월간 이걸 어떻게 좀 빠르게 쳐내고 다른 활동을 해볼지를 연마해온 사람의 속도차이는 컸다. 나오고 보니 왠걸,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정회계사무업무를 매우 잘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걸 못한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자괴감이 들고 힘들었는데, 나는 왜 그렇게 나에게 못되게 굴었던 걸까? 잘하고 있었는데, 남들보다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뭣이 중헌디 상대적인 기준에 나를 두면 잘해도, 못해도, 항상 조마조마하다.  잘하고 못하고, 뛰어나고 열등하고, 앞서가고 뒤쳐지고…상대적인 기준으로 스스로를 비교하고 평가하며 상처 주고 상처입지말자. 자신만의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돌아보자. 나한테 진짜 중요한 게 뭔가. 어떤 사람이고 싶나. 나 내가 진짜 원하는 거 하고 있나.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나. 그 방향으로 가고 있나. 바라는 방향대로 가고 있다면 속도나 숙련도는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가져가면 된다. 누가 뭐라하든 내 페이스대로. 서두르면 넘어진다. 쉼도 필요하다. 계속 생각하고 있고 바라는 방향을 향해서 노력하고 있다면 언젠가,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되어 있을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Emma Simpson 내 길이 아니어도 남는다.  청년이 청년답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겁없이 시도하고, 열정적으로 끈덕지게 해보고.  망설여지는 이유가 뭘까? 금방 그만두는 이유가 뭘까? 한국은 다양한 삶의 모습과 속도와 노고가 존중되지 않는다. 성공한 삶의 상과 가치, 시기별 과업이 정해져 있고 그에 맞춰 비교하고 평가하는 일상이 난무한다. 수군대는 말, 냉소적인 눈초리, 동일한 기준에 따라 어떤 이는 동경과 자랑의 대상이 되고, 어떤 이는 한심한 인사가 되는 장면을 목격하며 저마다의 우월감과 열등감을 안고 산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항상 시간이 없다. ‘몇 세까지 이정도는 해야하는데’, ‘시간낭비하는 게 아닐까’ 재고 따지게 된다. 실패로 배울 여유도 없다. 찍먹해보고 아닌 것 같으면 빨리 갈아타야 한다. ‘이게 맞을까’, ‘빨리 다른 길을 알아봐야하지 않을까’, 계속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맞지 않는 일을 장기간 꾸역꾸역해본 결과 갖게 된 마음가짐은 설령 내 길이 아니더라도 남는게 있다는 확신이다. 나는 여전히 행정회계사무가 싫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의 어떤 점을 내가 싫어하는지, 왜 나랑 맞지 않는지를 알게 되었다. 덕분에 그런 성향을 건드리지 않는 다음을 모색하게 되었다. 나는 정부지원사업을 하는 것이 싫다. 정부 돈을 받아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지리하고 자질구레한 행정처리를 수반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면서 안하는 것과 몰라서 못하는 것은 다르다. 덕분에 내게는 언제든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자금이 필요해지면 어디에 어떻게 뛰어들어 지원을 받아야겠다는 전략이 생겼다. 사업제안서를 쓰고, 발표자료를 만들어서 발표하고, 사업비를 받아 행사, 교육, 회의를 열고, 정산증빙하고, 창업지원기관도 되었다가 창업팀대표도 되었다가, 비영리법인 연간 행정회계사무도 두어 번 돌려 보고, 이것 저것 다 하느라 힘들었지만 덕분에 어떤 파트든 필요하면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업무와 프로세스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여러 사업과 사업체 전반을 살필 줄 아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 그런 내가 남았고, 그런 경험이 남았다. 그리고 사람이 남았다.  일을 그만두고도 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평생 크고 작게 도움을 주고 받고 진심으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해줄 사람들이 생겼다. 사람이 만사다. 삶에 있어 가장 귀중한 자산을 얻었다.   진짜 배워야 하는 것 그러니 궁금하다면, 심사숙고했다면 망설이느라 힘 빼지 말고 일단 해보자. 예상했던 것과 다를 것이다.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을 얻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남을 것이다. 찍먹으로는 부족하다, 조금만 더 해보자. 이게 어떤 일인지 파악해서 나의 어떤 성향과 맞지 않는 건지, 그래서 다음은 어떤 쪽으로 찾아보면 될지 스스로 답을 얻을 때까지는 다녀보자. 어떤 경험이든 경험을 통해서 진짜 배워야할 것은 나다. 내가 어떤 점을 힘들어하는지, 좋아하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어떤 성향을 지켜갈지를 충분히 느껴, 나를 배우게 될 만큼은 경험해보자. 성공이든, 실패든, 후회든, 미련이든 수많은 과정을 엮어 나를, 내 인생을 자아내자. 사진: Unsplash의 Mathieu Stern 당신의 첫 직장은 어떠했는가? 무엇을 배웠는가? 댓글을 통해 경험과 격려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번뇌와 용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오늘도, 화이팅 :)
새 이슈 제안
·
5
·
아마존, '이 요청은 처리할 수 없습니다' 상품 등장
2024년 1월 넷째 주 AI 윤리 뉴스 브리프 by.🌎다솔 1. 내 일자리 뺏어가는 AI? (링크) 전 세계적으로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해고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기술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산업 분야로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AI의 사용이 늘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모든 책임을 AI에 돌리려는 기업의 이기적인 태도일까요? 구글은 지난해 전체 직원의 약 6%에 해당하는 12,000명을 해고했으며, 올해 초에도 추가 인원 감축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미국 금융그룹 시티는 기술 분야 지출 증가와 자동화로 인한 업무 효율성 개선을 이유로 향후 3년간 20,000명을 해고할 계획임을 발표했습니다. AI 도입으로 일터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 직원의 연결 노동이 필요해지고 있으나, 이런 노동은 종종 가치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또한, 플랫폼 노동과 관련된 법적 지위나 노동조건 규제의 부재와 같은 오래된 문제들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술로 해결될 수 없으며 정책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함께 읽어도 좋을 지난 소식 이 주의 노동 카드: 생성 AI 시대 바람직한 노사관계 (2023.07.10.) 2. 아마존에 '이 요청은 처리할 수 없습니다.'라는 제품 등장 (링크) 아마존은 대형 언어 모델을 사용하여 제품명이나 설명을 생성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며, 작년 9월에는 아마존 판매자들이 제품 설명과 제목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자체 생성 AI 도구를 출시했습니다. 몇몇 아마존 제품에는 AI가 생성한 것으로 보이는 오류 메시지인 '이 요청은 처리할 수 없습니다.'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아마존 상에 스팸성 제품 목록을 올리면서 기본적인 편집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마존 외에도 X, Threads, 링크드인 등에서 AI가 생성한 것으로 보이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AI 생성 콘텐츠의 홍수는 아마존 전자책 마켓플레이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플랫폼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 문제는 더 악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3.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는 AI (링크) 구글 연구진은 LLM(대규모 언어모델) 답변의 정확도를 확률로 나타내는 신뢰도 점수를 출력하는 어스파이어를 개발했습니다.  어스파이어는 LLM이 생성한 답변이 올바른지 평가하도록 학습시킵니다. 어스파이어를 사용하면 LLM이 해당 답변에 대한 신뢰도 점수와 함께 답변을 출력할 수 있습니다. 구글 연구진은 "어스파이어는 추측보다 정직을 장려함으로써, AI 상호 작용을 더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는데요. 무조건 AI에 의존하기보다 사람이 정확한 정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댓글 🤔어쪈: 구글의 연구 소개 블로그 글을 살펴보니, 어스파이어는 기존 대규모 언어모델(LLM)이 생성한 답변을 자체 평가하도록 만든 연구를 참고해 정확도 평가 작업을 위한 추가 튜닝을 거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LLM의 평가에 의존하는 기법이기 때문에 한계 역시 분명할 것 같아요. 4. 군사 및 전쟁 용도로 AI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링크) 오픈AI는 기존의 군사용 AI 제공 금지 정책에서 '군사 및 전쟁' 용도로 AI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제거했습니다. 다만 AI를 무기 개발, 재산 피해, 인명 피해 등에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오픈AI는 미국 국방부와 협력하여 오픈소스 사이버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역 군인 자살 방지 방법에 대해서도 미국 국방부와 초기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오픈AI는 생성 AI가 정치적 정보 왜곡에 사용되지 않도록 선거 보안 작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오픈AI 기술의 발전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5. AI로 생성한 얼굴 사진 구분 가능한가요? (링크) 여러분은 AI로 생성한 얼굴 사진과 실제 얼굴 사진을 구분하실 수 있나요? 다음 링크에 접속하시면 테스트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백인 얼굴에 대해 AI로 생성한 얼굴 사진이 실제 사람의 얼굴 사진보다 더 실물 같게 인식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주로 백인 이미지를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호주국립대학교의 에이미 다웰 박사의 연구에서는 AI로 생성된 얼굴과 실제 얼굴을 구분할 때 참가자들의 자신감이 높을수록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밝혀졌습니다.  기술 발달로 인한 이러한 혼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상의 판단 시 지나친 자신감에 의존하기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태도가 가장 안전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6. 네이버 AI 혐오 Q&A (링크) 네이버의 AI 서비스가 민주노총에 대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노출했고,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대한 검색 결과에서도 혐오 표현을 포함한 정보를 노출했습니다. 민주노총 관계자 A 씨가 네이버에 허위 사실과 명예훼손 표현의 시정을 요구했으나, 네이버는 ‘AI라서 결과를 수정할 수 없다’는 식의 입장을 보였습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희우 활동가는 네이버의 사전 시정 부재를 지적하며, 네이버가 AI 생성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네이버는 언론 취재 이후에 민주노총과 전장연 관련 Q&A 섹션을 삭제하고, 이에 대한 자체 검토와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희우 활동가는 네이버의 조치가 임시방편이며, IT 기업들이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AI 편견과 오류를 반영하는 문제에 대해 국내외에서 규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EU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알고리즘 투명성에 대한 책무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캘린더 📅 FTC Tech Summit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Office of Technology, 2024-01-26 새벽 (한국 시간 기준) 📅 AI MODELS 프로젝트 연구조교 모집 카 포스카리 베네치아 대학교 (연구책임자: 마테오 파스퀴넬리), 지원마감: 2024-02-29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인공지능
·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