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정치를 꿈꾸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노인들 무임승차가 문제야. 노인들이 양보해야지. 요즘 누가 65세를 노인으로 생각해. 75세로 연장하던가. 젊은 사람들만 고생이라니까. 우리랑은 시대가 다르잖아.”
지난 1월 24일 저녁 10시, 2호선 외선순환 열차안이었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새로 산 책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늦은 저녁에도 앉을 자리 없이 사람이 붐볐다. 환승 가능 역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이내 옅은 술냄새와 진한 스킨 냄새를 풍기는 두 사람이 탔다. 직장 선/후배 혹은, 학교 선/후배처럼 보였다. 두 사람 모두 머리에 눈이 서려있었다.
둘은 65세 이상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관련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얼마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쏘아올린 공약이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공약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유권자 다수의 표를 잃을 수도 있는데 꽤 과감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책이나 읽자 싶었지만, 이내 책이 읽히지 않았다. 얼굴을 가리고, 귀를 쫑긋세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참기엔 귀가 너무 간지러웠다.
선배로 보이는 사람은 “예전에는 그냥 빨리 갈 수 있는 걸 탔단 말이야. 그게 지하철이든, 버스든, 택시든. 그런데 무임승차 가능하니까, 그때부터는 지하철만 타게 돼.”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얼마전에 이준석이 무임승차 폐지한다고 공약 걸었잖아. 나는 이거 잘한거라고 봐.” 라며 뒤이어 말을 강조했다. “노인들 무임승차가 문제야. 노인들이 양보해야지. 요즘 누가 65세를 노인으로 생각해. 75세로 연장하던가. 젊은 사람들만 고생이라니까. 우리랑은 시대가 다르잖아.”
“결국 그거 적자나면 누가 매워? 젊은 사람들 세금으로 매워야 돼. 그게 얼마나 부담이 돼. 우리 때처럼 뭐하면 다 잘 되고, 성공하는 시기가 아닌데. 아무리 본인들이 세금을 냈다고 하지만, 그때는 혜택으로 다 돌아왔어. 혜택도 다 누린거고. 근데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단 말이야.”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이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게 신기했다. 문득 어떤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곧바로 말했다.
“내가 사학연금 받잖아.”
사학연금을 받는다는 건, 일평생 사립학교 교직원이었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중 어느 학교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에서 근무했든 ‘선생님'이라는 위치였던 건 동일했다. 요즘은 어떤지 정확히 모르지만, 과거 선생님으 존경받는 직업이었고, 사회적 위치가 있다고 여겨진 직업이었다. 그 말을 듣고보니, 말하는 사람에게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애초 지하철, 버스, 택시든 가리지 않고 빨리 도착하는 걸 탔었다는 말에서 금전적 여유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어떤 내용으로 말하나 궁금하고 더 귀를 세웠는데, 아쉽게도 두 사람은 다음 환승역에서 부리나케 내리고 말았다. 더 듣지 못해 아쉬웠다.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폈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임승차 관련 내용이 자꾸 떠올랐다.
잠깐 상상을 해봤다. 저 공약이 실현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지하철에 사람들이 줄어들 것 같다. 지하철 타는 노인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어디로 갈까.
한국 노인들은 지하철에서 목적지 없이 종점을 왕복하며 하루를 보낸다. 지하철 없는 노인들은 어디로 가서 시간을 보내게 될까? 우리 사회에 노인들이 보낼만한 즐길거리가 있나? 거리에서 두는 바둑? 장기? 우리 사회 노인들이 문화생활을 영위할만큼 배려가 되어 있나?
출처 : Unsplash
여러가지 모습이 떠올랐다. 값싼 커피숍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노인들, 미로 같은 키오스크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하는 노인, 카페에 시험 공부하러 왔다가 자리가 없음을 알고 돌아가는 대학생, 자소서를 쓰러 왔다가 돌아가는 취준생, 갈 곳 없어 집에만 있어서 우울증 증세가 심해진 노인들 등. 재밌는 모습도 떠오르고, 씁쓸한 모습도 떠올랐다.
무임승차 관련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 관련 기사를 찾아봤다. 무임승차 폐지에 찬성하는 기사가 많았고, 그 중에는 청년과 노인 갈등을 말하는 기사도 있었다. 한 기사에 따르면, “밤새도록 실험하고 녹초가 되어서 왔는데, 등산복 입은 노인이 자리르 비켜줄 것으로 요구했다” 라며 “등산할 체력으로 서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며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무임승차까지 하면서, 노인들이 청년에게 자리 양보까지 요구한다 목소리였다.
출처 : 노컷뉴스 투표 후 캡쳐
노컷뉴스는 해당 주제로 투표를 진행했다. 네 개 답변이 있었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해야 한다.’, ‘혜택 유지하되 연령 상향 등 조정 이뤄저야 한다.’, ‘복지 일환이므로 유지해야 한다.’, ‘잘 모르겠다.’.
투표 결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약 50%를 차지했고, 혜택 유지하되 연령 상향 등 조정 필요가 약 30%였다. 실시간이어서 달라질 수는 있으나, 현행 무임승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투표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다.
시사위크는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사실인지 팩트체크하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무임승차로 인한 수익감소가 있고, 무임승차를 폐지했을 때 분명 수익이 증가하는 건 맞지만, 기본적이 적자는 지하철의 싼 요금에 있다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대체로 사실 아님'이라고 썼다.
예전에 한 노인 관련 조직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일종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노인들은 평생 살아오면서 세금을 낸 분들이예요. 그 분들이 낸 세금으로 우리 사회가 이뤄질 수 있었어요. 지금의 혜택은 그때 낸 세금에 대한 보상이예요.”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돼요.”
지하철에서 본 노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관련 기사를 찾아 보며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서 무엇이 맞는건지는 모르겠다. 각자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한 개의 공약으로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둘러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사학연금이든, 공무원 연금이든, 국민연금이든 노후가 보장된 사람에게는 지하철 무임승차가 시간을 보내는 놀이나 복지보다는, 싸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일 것이다. 반면, 노후 보장이 없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마음 둘 곳이고, 삶의 긴장감을 낮춰주는 복지일 수도 있다.
후자의 사람에게 75세 연장은 긴장의 시간을 10년 더 늘리라는 요구로 들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 나아간다면, “과거에 당신이 세금을 냈지만, 지금은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이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내 일상에 큰 영향을 준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처럼, 당장 내 세대에 관한 게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돌고 돌아 내게 돌아온다.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계속되는 한, 지하철 요금은 인상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내 지갑은 더욱 얇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임승차를 중단하자니, 사회의 안전망 하나를 허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경제적 문제가 있으면 복지를 허물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된다면, 훗날 내가 낸 세금의 보상을 내가 받게 될 때 동일하게 내 보상이 뒤로 밀리는 건 아닐까 싶다. 그때 이건 아니다 라고 내 목소리를 낼 때 과거의 나 역시 동일한 논리를 지지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내가 내세운 목소리가 내 목을 쥐는 모양새. 이것만은 막아야겠지만, 당장의 경제 논리는 너무 강해보이기에 섣불리 가타부타 말하기가 어렵다.
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수많은 공약이 언젠가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쏟아지는 공약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코멘트
6전 지방에 살아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지만
무임승차는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인들이 그나마 활발하게 움직일 작은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 지하철 무료승차에 대해서는 제 안에서도 찬반 양론이 존재합니다. 노인들을 위한 복지, 특히 공공인프라를 편히 이용하며 '이동'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이어서 좋은데요, 지하철이 없는 곳들이 많으니 특정 지역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복지 같아서 불완전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나 요즘 뉴스를 보면 "노인vs청년" 구도처럼 이 사안을 다루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청년도 힘드니까 노인 복지도 줄여! 이런 느낌으로요.
(곧)30대 초반인 입장에서 복지에 대한 생각은 복잡합니다. 언제나 '나도 언젠가 노인이 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의 복지 구조가 유지된다면 지금의 나도, 내 미래 세대도 힘들다'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기업에게 근로 인원 수 대신 소득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연구자분들이 이미 연구하고, 활동하고 계시죠.
복지가 아닌 선거 정책에 대한 생각도.. 여러 생각이 드네요. 제가 분명 정치 고관여층(관심을 많이 가지고 상대적으로 많이 아는)임에도 후보들이나 정당의 선거 공약집을 보면 보는데 공이 많이 들고 복잡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온라인으로 잘 정리된 공약은 고연령층이 보기 힘들죠. 어떤 정책들인지 파악하기도 어렵고 우선순위도 정하기 어려운데, 일반 시민 입장에서 그 장기적 영향력까지 파악하는 것은 본인 분야가 아니면 쉽지 않겠죠. 그래서 각자의 전문성과 관점이 담긴 이야기가 섞이는 공론장의 힘을 믿습니다.
시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