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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하는 콘텐츠 설계하기 - 접근성을 기획하고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안내서
환대하는 콘텐츠 설계하기: 접근성을 기획하고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안내서 0. 개요 ‍ 최근 몇 년 사이에 문화예술계 내 접근성에 대한 관심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창작자와 연구자를 중심으로 접근성 공연에 대한 시도와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여러 공공 문화시설과 행사에서 ‘장애 예술’, ‘배리어프리’, ‘접근성’을 한 해의 주요 키워드로 내세웁니다. 접근성 매니저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 것도 근 몇 년 사이의 일입니다. 대부분의 예산이 대폭 삭감된 문화예술, 임팩트 영역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장애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약 16.5% 늘어난 것도 주목할 지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 긍정적이고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에서는 접근성이 너무 유행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성과지표를 채우기 위해 ‘배리어프리’라는 단어를 내세우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에 이러한 우려도 납득이 되는데요. 접근성에 대한 관심이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례와 고민을 잘 수집하고 체계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접근성 창작자들의 고민과 도전은 그 영역이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으나, 처음 시도하는 이들에게 접근성은 여전히 막막하고 어렵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금다른 주식회사를 운영하는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접근성 개선의 필요성부터 시작하여, 접근성의 개념과 다양한 측면, 그리고 실제 적용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순서와 내용 등을 폭넓게 다루고자 합니다. (각각의 접근성 장치, 요소에 대해 깊게 다루는 글은 아닙니다.) ‍ ‍ ‍ 1. 접근성, 왜 개선해야 할까? ‍ 최근 몇 년 사이에 주요 화두로 떠오른 접근성. 빠르게 수면 위로 올라온 이슈인 만큼 여전히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방법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왜’ 접근성을 개선해야 하는지 언어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접근성 작업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주장은 주로 A. 들어가는 리소스 대비 효율적이지 않다. B. 접근성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 대한 역차별이다. 라는 것입니다. 사실 주장 A는 문화예술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화예술 또한 수많은 시간 동안 정량적 지표에 대한 증명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가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주장 B는 그들이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을 배제하며 살아왔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왜 접근성을 개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장애인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접근성 매니저로 활동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공연장에 장애인 관객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전 안내 음성의 내용 변경(공연장 및 안내원 위치, 접근성 매니저 상주 여부, 긴급 상황 발생 시 대처 방법) 및 접근성 매니저 자리 설치를 요청했는데요. 공연장은 이에 대해 진행이 매끄럽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거나 별도의 자리를 설치하는 것이 안전 정책을 위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저희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몇 차례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도 설득되지 않던 이들을 설득한 것은 결국 ‘장애인 관객의 예매 내역’이었습니다. 실제 장애인 관객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니, 공연장이 정말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한 것이죠. ‍2023년 기준 국내에 등록된 장애인의 수는 전체 인구의 5.1%에 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접근성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노인, 아이, 임산부, 일시적 부상을 입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집니다. 인간이 다양한 만큼,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의 행복 추구 선택지는 비장애인보다 현저히 적고,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우울 정도가 3배 이상 차이 나는 주요한 원인입니다. (2020-2022 장애인 건강보건통계) ‍ ‍ ‍ 2. 접근성이란 무엇인가?_용어에 대한 이해 ‍ 접근성(Accessibility)은 모든 사람이 어떤 제품, 서비스, 환경을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특성을 의미합니다. 조금다른 주식회사는 원활한 작업을 위해 접근성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나눠 분류하고 있습니다. ‍ 정보 접근성 : 다양한 이용자가 정보에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용자에게 적합한 정보의 내용, 형식, 공지 기간, 전달 방법 등을 고려하여 정보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 접근성 : 다양한 이용자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용자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사전에 갖추어 의사소통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공간/물리적 접근성 : 이용자가 공간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용자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고려하여 물리적 환경을 점검하고 필요한 시설과 안내를 제공하여 공간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접근성 : 프로그램의 특성에 따라 이용자에게 필요한 접근성 요소를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이용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방법을 설계하여 프로그램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미학적 접근성 : 접근성이 기능적 역할뿐만 아니라 고유한 미적 요소를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움과 접근성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며 미학적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 이러한 접근성 개념을 이해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위 개념들이 실제로는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접근성 향상을 위해서는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각 상황과 대상에 맞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3. 누구를 위해 접근성을 개선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이들을 환대하고자 하는가? ‍ 접근성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대상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통해 모든 배리어를 허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이들을 뾰족하게 설정하는 일은 나아가 더욱 많은 이들을 위한 일이 될 것입니다. 휠체어 사용자를 고려한 경사로가 유아차 이용자나 짐을 운반하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처럼요. ‍ 접근성 개선의 주요 대상에는 시각, 청각, 지체, 발달 장애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이들뿐만 아니라, 고령화 사회에서 증가하는 노인 인구, 임산부 및 영유아 동반자, 언어적 소수자인 외국인이나 이주민,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취약계층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번 콘텐츠를 제작하며 만나고 싶은 이들은 누구인가요? 4. 자원과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것 ‍ 접근성 작업을 시작하는 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입니다. 이 질문을 들으면 저는 “일단 가지고 계신 자원과 상황을 모두 알려주세요.”라고 대답합니다. 접근성은 결국 사람을 만나기 위한 일이기 때문에 정해진 정답이나 끝이 없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상황과 자원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자원이란 단순히 예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데요. 인력, 시간, 기술적 역량, 그리고 조직의 의지까지 모든 것이 자원에 포함됩니다. 충분한 예산이 있더라도 접근성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가진 전문 인력이 없다면 효과적인 개선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제한된 예산과 시간 하에서도 의지와 전문성, 상상력을 가진 이들이 모여 협력한다면 놀라운 변화를 만들 수 있겠지요. ‍다음으로,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조직이나 프로젝트의 현재 접근성 수준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접근성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의 개선이 가장 시급한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공간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콘텐츠라면, 꼭 사전 답사를 통해 공간에 존재하는 배리어들을 꼼꼼하게 찾아야 합니다. 참여자를 모집하여 진행되는 행사라면, 현재 홍보물과 신청 방식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누구인지 짚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와 외부 전문가의 피드백을 수집하길 추천합니다. 특히 접근성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의 피드백은, 비당사자로서는 알 수 없는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합니다. 접근성 작업의 퀄리티는 결국 작은 섬세함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5. 범위와 예산을 결정하는 일 ‍ 자원과 상황을 진단한 후에는 구체적인 범위와 예산을 결정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현실적인 제약과 이상적인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 이만큼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이 정도면 아예 안 하는 것만 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는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괜찮습니다. 충분하지 못하다고 해서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정확하게 결정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배리어를 인지하고 인정한 뒤, 그 내용을 고객에게 명확하게 전달해 주세요. ‍범위와 예산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주요한 질문과 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어떤 정보를 어떠한 방식으로 언제 어디에 전달할 것인가? 정보 접근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대상이 원활하게 콘텐츠의 소식을 접하고 그 정보를 파악하게 하려면 어떠한 장치들이 필요할까요? 만약 시각장애인이 대상이라면, 주요한 시각 정보를 다른 방식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음성 포스터를 제작하거나, 주요한 시각 정보를 음성 안내 파일로 녹음하거나, 예매에 대한 안내 및 배리어·접근성 정보를 음성 혹은 텍스트로 안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정보들을 단순히 제작하고 배치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대상이 되는 이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잘 알리기 위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② 정보를 취득한 고객이 어떻게 신청하고, 필요한 접근성을 주최 측에 알릴 수 있을까? 위의 정보 접근성을 잘 세팅하였다면, 이후에는 대상이 원활하게 콘텐츠 참여를 신청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보통 많은 분이 기존의 예매 플랫폼 혹은 구글 독스를 통해 예매를 받는데요. 해당 플랫폼을 통해 예매할 수 없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를 대비하여 상단에 접근성 담당자의 연락처를 안내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신청 페이지 내에 관객에게 필요한 접근성 요소들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을 추가하여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행사 당일에 어떠한 방식으로 스태프와 소통할 수 있는지를 신청 플랫폼 내에 기재하거나, 예매 고객들에게 문자를 통해 각종 접근성 정보를 안내하는 등 다양한 의사소통 창구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③ 고객이 나의 공간에 무사히 찾아오고, 내 콘텐츠를 잘 즐길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리적인 공간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운영하신다면, 이제 위 과정들을 거쳐 찾아온 고객들이 어떻게 공간까지 찾아와 원활하게 공간을 이동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 유무, 주·정차 가능 유무, 경사로 설치 여부, 장애인 화장실 유무, 휠체어석 유무, 휠체어 보관 장소 확보, 수동 휠체어 확보, 이동 지원, 로비 내 필담 및 수어통역사 배치, 접근성 스태프 배치, 텍스트 안내 POP, 다양한 이들이 고려된 안내 방송, 편한 의자와 넓은 좌석, 담요와 인형, 비건 음식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장치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나의 대상과 상황에 잘 맞도록 해야 하고, 나아가 환대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세요. ‍ 더불어 실제 행사가 진행되는 때에도 다양한 이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을 고려한 자막해설과 수어통역,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대 혹은 공간에 대한 사전 음성해설, 행사 진행 중 음성해설, 주요 소품들을 만지고 경험할 수 있는 터치투어를 진행해 볼 수 있습니다. 아이나 발달장애인이 온다면 큰 소리, 밝거나 어두운 빛에 대해 사전에 잘 안내하고, 중간중간 소리를 내거나 입·퇴장이 가능하도록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④ 지금까지의 과정이 내 콘텐츠와 ‘잘’ 어우러질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위의 과정들을 준비할 때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내가 기획하는 접근성 요소가 어떻게 하면 내 콘텐츠와 ‘잘’ 어우러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접근성이 단순히 ‘서비스’의 영역을 넘어 ‘콘텐츠’의 일부가 되는 것은 다양한 대상이 콘텐츠에 몰입하는 데에 아주 중요합니다. 다만,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접근성 개선’이기에 미학적 접근성에 너무 집중하여 접근성 자체를 낮추는 경우는 유의해 주세요. ‍‍ 6. 접근성 작업 중 ‘더’ 고려하면 좋을 내용들 ‍ 지금까지 우리는 접근성의 개념, 필요성, 그리고 실제 적용 과정에서의 고민과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접근성 작업을 수행하면서 ‘더’ 고려하면 좋을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미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지만, 그럼에도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짚어보려고 합니다. ‍ 📌 당사자성에 대하여 위에 배리어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결국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사자성'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실행하더라도, 실제로 콘텐츠를 이용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분명히 놓치는 부분이 생깁니다. ‍따라서 계획 단계에서부터 그들의 경험, 필요, 그리고 제안을 경청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우리의 접근성 개선 노력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핵심 과정입니다. 나아가 실제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창작하는 과정부터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접근성 작업을 진행하며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순간에서 당사자와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 📌 기획진과 창작진 전체의 기본 역량 끌어올리기 아무리 접근성 담당자가 의지를 가졌더라도, 다른 이들이 접근성에 대한 이해나 의지가 없다면 그 퀄리티를 끌어올리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창작자 또는 기획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워크숍을 진행하길 추천합니다. 이러한 교육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공통된 이해도 형성: 모든 팀원이 접근성의 개념과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기술 습득: 각자의 역할에서 접근성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나눠볼 수 있습니다. 협업 강화: 서로 다른 부서나 역할 간의 이해도가 높아져 더 효과적인 협업이 가능해집니다. 창의적 해결책 도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이 모여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조직 문화 형성: 접근성에 대한 인식이 조직 전체에 퍼져 문화가 형성됩니다. ‍ 📌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고, 나만의 관점 만들기 마지막으로,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기존의 가이드라인과 사례들은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지만, 이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각각의 프로젝트, 각각의 공간, 각각의 고객층은 모두 고유한 특성과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여 관점과 접근 방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때로는 기존의 방식을 뒤집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할 수도 있겠죠.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고 그 맥락 안에서 접근성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분명 좋은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만의 관점을 만드는 일은, 제게는 접근성 기획자로서의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매번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나만의 재미난 방법들을 개발하여 숨 쉴 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지속 가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 📌 닫는 글 결론적으로, 접근성 개선 작업은 단순히 기술적인 과제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 사회를 더 포용적이고 평등하게 만들어가는 지속적인 여정입니다. 당사자성을 존중하고, 끊임없이 학습하며, 창의적인 관점을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모두가 문화와 예술을 동등하게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장 모든 것을 바꿔낼 수는 없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바꿔나가면 그 내용이 쌓여 큰 변화를 끌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때론 너무 지치고,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는 것 같고,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지만 우리의 경험 하나하나가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해요. 이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이 글이 접근성 작업을 처음 시도하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글 | 이충현 조금다른 주식회사를 운영 중인 문화기획자.결과물만이 아닌 과정을 잘 만들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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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버린 목소리… “내가 불쌍해야 좋은 거지?”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19화]
너무 비참해서 기사에 넣지 못한 초등학교 6학년의 멘트가 있다.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취재하던 지난 4월, 충북 청주시 유흥가에서 만난 열세 살 원복이(가명)의 이야기다. 당시 기사에서 밝힌 대로 원복이 부모님은 ‘사채왕’ 김상욱 일당에 속아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약 9억 원을 대출받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명의만 빌려줬다. 대출금 전부는 김상욱 일당이 가져갔으니까. 그 일로 원복이 부모님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본 적도 만진 적도 없는 9억 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학원에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된 원복이는 부모님이 일하는 유흥주점 끄트머리에 설치된 작은 텐트에서 밤을 보낸다. 부모님이 일을 마치는 새벽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관련기사 : 유흥주점 텐트에서 잠드는 아이.. “사채왕이 망친 삶”) 지난 4월 15일 새벽 2시, 여느 때처럼 원복이는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취재하는 나의 존재를 원복이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엄마, 저 아저씨 누구야? 왜 우리 뒤에서 따라오는 거야?”“서울에서 온 기자님이야. 엄마한테 취재할 게 있어서 왔어.” 원복이는 작게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저 기자님한테 불쌍하게 보여야 엄마한테 좋은 거지?” 당시 기사에 차마 넣을 수 없던 멘트와 원복이의 마음이 다시 생각난 건, 문해력이 의심되는 감사원의 짧은 통보문 때문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4월부터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새마을금고의 불법·부실 대출과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기획이다. 특히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 통폐합을 부른 ‘2023년 1500억 원대 불법대출’ 문제를 자세히 보도했다. 해당 불법대출의 규모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큰 것으로, 2023년 ‘뱅크런’ 사태의 시발점이기도 했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셜록 보도 직후인 지난 4월 23일, ‘행정안전부의 새마을금고 관리·감독 책임에 대한 감사를 촉구‘하는 공익감사 청구서를 감사원에 접수했다.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7월 9일, 감사원은 “행정안전부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지 않고 종결 처리한다“는 취지의 통보문을 보내왔다. 한 대목은 이렇다. “행정안정부와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상기감시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회피하는 조직적·지능적 비위에 대해서는 2024년부터 종전에 비해 감사체계를 강화하여 대응하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 새마을금고에 대한 감시 체계가 강화됐으니 감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게 왜 엉뚱한 답변인지, 민변과 참여연대가 공익감사를 청구한 4월 23일로 돌아가 살펴보자.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그날 감사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공익감사청구 이유를 밝혔다. “청구동새마을금고의 자산은 1800억 원입니다. 1500억 원이 불법 대출됐으면 사실상 자산의 거의 대부분을 사채왕(김상욱)에게 갖다 바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이 와중에도 (새마을금고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가진 행정안전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청구동새마을금고의 불법대출은 2023년 6월 이전에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는 그때 뭘 했는지, 혹시 직무유기는 없었는지 등을 살펴봐달라는 게 민변과 참여연대의 감사청구 취지다. 그런데 감사원은 “2024년부터 감사가 강화됐다“는, 핵심에서 벗어난 근거를 대며 감사를 거부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새마을금고의 불법대출은 전국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라며 “감사원은 스스로 본연의 책무를 버렸고, 행정안전부에게 책임 모면의 길을 열어줬다“고 반발했다. 이들의 지적대로 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불법·비리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에는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1500억 원대 불법 대출과 뱅크런 사태에 이어, 올 4월 총선 때는 양문석 후보(현 경기 안산시갑 국회의원)의 편법 대출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8일에도 대구 지역 새마을금고 지점 세 곳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역시 불법·부실 대출 의혹이 불거진 곳이다. 이쯤 되면 ‘비리의 온상 새마을금고‘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굴욕적인 지적이 거의 해마다 나왔다는 점이다. 아래의 기사 제목과 발행 날짜를 보자. “내부통제 어쩌나..뿔뿌리 금융이 비리백화점 된 이유” – <아주경제> 2023년 12월 6일정부, ‘비리온상’ 새마을금고 감독 강화한다지만… – <한국경제> 2022년 2월 27일새마을금고는 어쩌다 비리의 온상이 됐나 – <이데일리> 2020년 11월 10일 구글, 포털사이트에서 ‘새마음금고 비리‘를 검색하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관련 기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불법 대출부터 성추행, 임직원 비리, 횡령은 물론 ‘카드깡’ 내용도 나온다. 이중 위에서 언급한 2020년 11월 10일 자 <이데일리> 기사 한 대목을 보자. “서울의 한 (새마을)금고에서도 전·현직 임원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면서 담보에 대한 감정평가도 하지 않고 정상금리보다 0.6%포인트 가량 낮은 이율로 대출을 해줬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전국 1300개 새마을금고에서 일어난 이 같은 특혜 대출은 최근 3년간 700억 원을 넘어선다.” 이 기사는 새마을금고의 수백억 원대 특혜·불법 대출이 작년에만 벌어진 특별한 일이 아니란 걸 말해준다. 담보물 감정평가를 생략하거나 부풀리는 수법은 김상욱 일당이 했던 것과 동일하다. 이번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2013년으로 가보자. 2013년 6월 5일 자 YTN 보도의 제목은 ‘끊이지 않는 새마을금고 불법대출비리’. 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담보물 감정금액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백억여 원을 불법 대출한 새마을금고 간부가 구속됐습니다. 다른 새마을 금고에서는 간부가 수년간 고객 돈 수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는 등 새마을금고 비리가 끊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을 보면, 2023년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비리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담겼다. “이처럼 잊을 만하면 불법 대출과 고객 돈 횡령이 발생하고 있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새마을금고 중앙회 관계자는 재발 방지책이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일상 감사 상시 시스템을 고도화 시스템으로 개발해서 최근에 있는 감정사례라든가 공시지가에 의한 대비 과다감정이 되었다든가 그런 부분까지 같이 조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원이 최근 행정안전부에 대한 감사를 거부하면서 밝힌 이유와 흡사한 내용이 이미 2013년도 등장한 셈이다. 그럼에도 새마을금고의 불법과 비리는 이어졌고, 이번에도 행정안전부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새마을금고가 ‘비리의 온상’, ‘불법 백화점’이 된 배경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지적된다. 새마을금고는 제1금융권은 물론이고 상호금융기관 중에서도 유일하게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1960년대 서민들의 상호부조 형태로 출발한 새마을금고의 상위기관은 금융위원회가 아니라 금융과 거리가 먼 행정안전부(당시 총무처)다. 그때로부터 60년이 지나 새마을금고는 전국에 약 4000개 지점을 거느리고, 전체 예수금 295조 9000억 원(올해 5월 말 기준)을 가진 금융기관으로 성장했음에도 관리·감독 주체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러는 사이 새마을금고의 부정과 비리는 해마다 반복됐고, ‘사채왕’ 김상욱은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마치 개인 금고 이용하듯 돈을 빼갔다.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이 원복이 부모님이고, 더 큰 피해자는 기꺼이 비참함을 연기하겠다는 초등학교 6학년 원복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행정안전부에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감사원은 아예 감사를 포기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원복이는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왜 자기는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갈 수 없는지, 기자가 왜 자신을 따라오는지,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에게 보탬이 될까 싶어, 자신이 훨씬 비참하게 그려지길 바라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의 이런 상상력에 행정안전부는 정말 책임이 없을까? 감사원은 정말 행정안전부를 감사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제1금융권처럼, 아니 최소한 농협, 수협, 신협처럼만 새마을금고가 관리·감독이 됐어도 원복이 부모님은 불법대출 피해자가 되지 않았을 거다. 책임자들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별일 없이 살아가는 지금, 원복이 부모님은 오늘도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원복이는 올 여름도 유흥주점 텐트에서 보내는 중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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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오픈AI를 다시 여는 방법
창작자와 환경 모두를 위한 개방형 AI by 🧙‍♂️텍스 생성형 AI 구축에 필요한 큰 비용은 오픈AI를 폐쇄적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오픈AI는 GPT-2 발표 당시 논문과 모델을 모두 공개했고, 이는 여전히 오픈소스로 이용 가능합니다. GPT-3 역시 논문만큼은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챗GPT 서비스가 발표된 이후부터는 그 모습이 다릅니다. 공개된 GPT-4 테크니컬 리포트에는 모델과 데이터에 대한 디테일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GPT-4o에 이르러서는 모델에 관해 공개된 내용이 없습니다. 다른 회사들이 챗GPT를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큰 비용을 들여 얻은 시행착오를 공개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픈AI가 창작자의 이익보다 공정이용(fair use)을 주장하는 것은 지출을 줄이기 위한 의도 또한 있을 것입니다. 생성형 AI는 공개된 콘텐츠를 자유롭게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지만, 기존의 검색엔진과 다르게 원본 출처로 연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규모 데이터를 보유한 신문사나 커뮤니티를 보유한 기업들은 AI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수집을 막고 학습 데이터 판매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포스팅 및 기사는 로그인해야만 볼 수 있고 추가로 결제 장벽(Paywall) 또한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기업과 다르게 협상력이 없는 개별 창작자는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당한다고 느끼고 이러한 변화를 거부로 응답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네이버웹툰 도전 만화에서 AI 웹툰 보이콧이 있었으며, DeviantArt와 같은 주요 글로벌 창작자 커뮤니티들에서 No AI 태그 시스템에 도입하였습니다. 그 결과 점차 인터넷 공간은 폐쇄적으로 변해 갑니다. 생성형 AI를 구축하기 위한 레이스는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로 보입니다. 챗GPT를 만들고 싶은 경쟁자들은 오픈AI가 수행했던 학습 데이터 수집과 AI 학습의 모든 과정을 경쟁적으로 반복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모든 AI 플랫폼 기업들이 따라 하다 보니 엔비디아 GPU가 불티난 듯 팔리고, AI 학습을 위해서 발전소를 추가로 지어야 하고, 데이터 센터의 높은 에너지 소비로 인한 기후 위기 가속화까지 예상이 됩니다. 어찌 보면 오픈AI가 여전히 비영리 기업으로 남아서 모델을 공개했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데이터셋의 구성 및 학습된 모델이 모두 공개되어 있으면 모든 회사가 경쟁적으로 LLM 학습을 수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픈AI가 공개한 모델을 필요에 맞게 수정하고 미세조정하는 것은 전체 학습에 비해 매우 적은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현 상황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피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협력을 통하여 하나의 좋은 모델을 만들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국가의 정부가 해당 국가의 문화, 가치관 등이 담긴 소버린(sovereign) AI를 구축하길 원한다면, 정부는 개별 회사들의 AI 모델 구축을 위한 경쟁을 지켜보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AI 모델을 구축하도록 관련 기업 간의 협력을 유도해야 합니다. AI 모델의 규모가 커질수록 성능이 좋아진다는 신경망 스케일 법칙(neural scaling law)을 고려하면, 개별 기업의 중복 투자를 협력으로 전환하면 같은 비용으로 더 큰 모델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개별 기업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더 좋은 성능을 갖춘 생성형 AI를 구축할 수 있고, 국가 차원에서는 전력 인프라 투자의 비용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인터넷 공간이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막고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방형 AI 모델이 다른 폐쇄형 AI 모델보다 비용이나 성능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현재의 월드와이드웹(WWW, world wide web)이 인터넷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말이죠. AI 모델이 학습 데이터의 품질에 종속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를 위해서는 1) 창착자들의 참여를 끌어내서 개방된 데이터의 규모와 품질을 최대한 끌어내고 2) 공개된 데이터에 무임승차 하는 플레이어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선 콘텐츠의 저작권 및 라이선스 제도를 AI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하여 생성형 AI 시대에 약해진 창작자의 권리를 보완하고 참여를 끌어내야 합니다. 또한 무임승차를 막고 창작자의 권리 강화를 위해서 이상적으로는 명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은 데이터로 AI 모델 학습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메타와 오픈AI 모두 학습 데이터를 임의로 구축하여 학습에 사용하고 옵트아웃을 데이터 거버넌스로 하여 사용자가 제외를 요청할 때만 학습 데이터에서 제외해 줍니다. 이 모습은 공정이용보다는 무임승차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유튜브는 광고 수익 분배를 발판 삼아 양과 질 측면에서 모두 독보적인 동영상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창작자에게 유리한 데이터 거버넌스가 확립되고 개방형 생태계가 독보적인 학습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되면, 플레이어들은 그곳의 룰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즉, 기업들은 다시금 개방형 AI를 선택해야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더 읽어보기- 생성형 AI 가성비를 의심하는 골드만삭스/깃허브 코파일럿 소송에서 저작권법 쟁점 기각 (2024-07-21)- 원전으로 AI 전력 수급한다는 한국 정부 (2024-06-17)- 이 주의 논쟁 카드: 라마(LLaMA) 2 (2023-07-24)- [함께 읽는 FAccT 3]윤리, 법, 기술! 세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2023-06-19)- AI 웹툰 보이콧, 누구를 위한 AI인가 (2023-06-05)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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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라도 걸렸나" 직장 성범죄 피해자, 병가도 '불허' [회사에 괴물이 산다 8화]
[지난 이야기]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는 성범죄 피해자를 향해 2차가해를 일삼으며, 김한솔(가명) 씨의 정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결국 그는 17년이나 다닌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솔 씨는 지역의 노동 활동가들을 만나 퇴사 소식을 전한다. 그게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한 채. 한솔 씨가 겪은 일들을 알게 된 활동가들은 “비상식적인 일”이라 분노하며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한솔 씨는 5년 만에야 비로소 타인에게 진심으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 문제를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한솔 씨는 한번 더 힘을 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3월 28일 한솔 씨는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때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도 함께 넣었다.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는 지난달 3일 나왔다.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직장 내 불법촬영 성범죄 이후 회사의 관리자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한솔 씨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준 행위와, 계속된 병가 승인 거부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 그제서야 회사는 ‘문제의 관리자들’에게 감봉 1개월, 견책 등의 가벼운 징계를 내렸다. 산재 신청 결과는 24일 나왔다. 결과는 이번에도 ‘인정’. 당연하고도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개인이 아니라 노조 차원에서 나서니까 회사도 눈치를 보더라고요.” 민주노총 경남본부에서도 나섰다. 지난 4월 12일 군수와 이사장을 각각 만나 면담도 했다. 노조 활동가들이 이사장 면담을 진행하자, 인사 담당자가 한솔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빨리 병가 (신청) 올리세요.” 지난 5년간 수리되지 않았던 요구를 이제야 처리하겠다는 건가. 한솔 씨는 혹시 회사가 말을 바꿀까봐 그날 급히 병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번에는 신청서에 진단서만 첨부했다. 그동안 병가를 신청할 때는 구구절절 간곡하게 속사정을 설명한 사유서를 덧붙였었다. 어느 때보다 간단한 병가 신청서. 하지만 그날 바로 병가 승인이 떨어졌다. 회사는 2021년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표어를 공모했다. 직장 내 불법촬영 성범죄 사건으로부터 2년 하고도 반이 더 지난 때였다. 한솔 씨가 거듭 전보 신청을 하고, 그게 모두 좌절되면서 본격적인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해였다.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꼽힌 표어는. “성범죄는 한순간, 상처는 영원히” 사무실을 오르내리는 계단마다 표어가 게시됐다. 한솔 씨는 표어를 보며 내딛는 걸음마다 바닥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진심으로 피해자들의 상처를 공감한다면 이럴 수는 없는 거지.’ 직장 내 불법촬영 성범죄 사건의 범인 A는 2019년 7월 1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3일간 이어진 불법촬영만 범죄사실로 인정했다.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한솔 씨에게 전해준 “정기적으로 백업하고 다시 설치했다”는 내용은 빠져 있었다. 판사는 이번 범행으로 “피해 여성들이 엄청난 배신과 수치심 등을 경험하고, 피해 여성들 다수가 엄벌을 거듭 탄원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서도, “A가 자백한 점, 영상으로 여성들의 신상이 특정되지 않는 점, 부양할 처와 어린 세 자녀가 있다는 점 등”을 참작해 양형을 정했다. 검사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형량이 더 높아졌다.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 항소심 재판부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장 동료’ 관계라는 점에 주목해 “범행의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고통과 두려움을 고려하면 형이 “너무 가볍다고 인정된다”는 것. 2020년 1월,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160시간의 사회봉사 및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 그리고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혹은 장애인복지시설에 3년간 취업제한 조치도 이뤄졌다. 신상정보가 공개·고지되는 조치는 피했다. 재판 과정에서 A는 한솔 씨에게 장문의 사과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탄원서 작성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의 바람처럼 A는 실형을 피했다. 그는 멀쩡히 세상을 활보할 수도 있고, 취업제한 기관만 아니라면 조용히 새 직장을 구할 수도 있게 됐다. A가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아마 새 직장의 동료들은 아무도 모를 거다. 그가 회사 내 여자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직장 동료들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자라는 사실은. 죄를 지은 가해자를 향한 형벌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죄 없이 받고 있는 형벌은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끝도 없이 그들의 인생을 짓눌렀다. 사건 이후 한솔 씨를 더 힘들게 한 건 오히려 회사 내 관리자들이었다. 직원들을 입단속시키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원한 전보나 병가·휴직 등을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줌마가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는 말로, ‘겉보기에 멀쩡한데 왜 병가를 내느냐’는 말로, ‘병원 가는 날에만 병가를 허락하겠다’는 말로 2차가해를 일삼았다. “성폭력방지법,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 만큼 이에 따른 법적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임. 또한,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 및 피해자 보호 조치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군 등은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하도록 해야 함.” (<◯◯◯◯◯◯◯◯◯ 성폭력 피해 후 직장괴롭힘 진상조사 보고서> 민주노총 경남본부, 2024. 5. 22.) 한솔 씨는 지난 4월 처음으로 약 2달간 병가휴직을 인정받았다. 지역의 노동조합 활동가와 함께 사건을 공론화하면서 생긴 변화다. “너무 악랄하지 않아요? (회사는) 이제 나 혼자 (저항)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서 (병가휴직을) 승인한 거예요. 그동안 저는 회사에서 완전 그런 취급받았거든요. (옛날) 사대문에 대역죄인들 목 걸어놓는 거 있잖아요. ‘조직에 찍히면 이렇게 된다, 봐라.’ 그게 저였어요.” 한솔 씨는 병가휴직 연장을 신청했다. 회사에는 여전히 한솔 씨에게 ‘2차가해’를 서슴지 않았던 관리자들이 남아 있었고, 복귀 대책 역시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지난달 5일 한솔 씨의 병가휴직 연장 신청을 승인했다. 다만 한솔 씨는 1년간의 휴직을 신청했으나, 회사는 3개월만 인정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달 19일 회사에 사건 관련 대응 및 조치에 관한 질문지를 보냈다. 그리고 지난 2일부터 5일 사이 세 차례 전화로 답변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홍보팀 관계자는 “본인에게 답변할 권한이 없다”며, “(상부에) 전달은 하겠지만 답변을 주실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22일 현재까지 서면 답변도 오지 않은 상태다. 한솔 씨 회사는 경남 ◯◯군 산하의 지방공기업. 기관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 12조(감독 등) 1항에는 “군수는 공단의 사무를 관리·감독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군은 지난 5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산하기관이지만 개별 법인이고 독립된 기관이라 관리·감독은 (기관) 자체 인사위원회나 내부 규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며, “군청에서 ‘규정대로 이행해라’ 정도로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가휴직) 3개월은 금방 지나가버리겠죠. 걱정은, 복직해도 또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저는 지금도 가해자들 생각하면 손발이 굳거든요. 휴직이 인정됐어도, 나중에 회사로 돌아갈 거 생각하면 걱정이 되죠.” 인터뷰 내내 씁쓸한 미소를 짓던 한솔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기자와 인터뷰 중에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야기는 대체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로 시작해서 ‘이런 자신이 답답하다’고 책망하며 끝났다. 누구에게도 속사정을 말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함구령이 떨어졌고, 가족들 앞에서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성범죄 피해자, 그것도 불법촬영 카메라에 신체가 노출됐다는 사실은 가족들에게 전하는 것도 힘들었다.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관계자들은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에게만 ‘성 보호권’이 있다고 보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 “성에 대한 편협하고 잘못된 인식이 깔렸으니 성범죄 피해를 당한 중년 여성들이 피해를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자의 나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나이 많은 여자를 왜?”…외면과 상처에 시달리는 ‘중년여성 성범죄’> 김연주 기자, 2019. 6. 30.) 한솔 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남편에게만 속마음을 겨우 털어놨다. 당시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던 아이들에게는 말을 꺼낼 수 없었고, 다만 큰딸에게 공중화장실을 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부모님께는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겪은 일들을 말하지 못했다. 병원에 가는 것 역시 비밀에 부쳤다. 분노도, 원망도, 우울함도, 답답함도, 어디 하나 있는 대로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한솔 씨는 정서적으로 완전히 고립돼 있었다.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게 용서와 자비인데, 용서를 못하는 제 마음이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말 많이, 많이 기도했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용서를 청하지 않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거예요. 본인들은 잘못했다고 생각도 안 할 텐데, 저는 도저히 용서를 못하겠는 거예요.” 한솔 씨는 그날의 기억을 지워내고 싶었다. 회사의 말처럼 덮는다고 덮을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고도 절실히 기도했다. 하지만 괴물은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고, 삶의 의지마저 꺾어버렸다. “주홍글씨가 제 사원증에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 부적응자, 상사를 고발한 자, 회사를 욕보인 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회사가)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 되는데… 어떠한 경우에도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 지금 회사의 상황에서 과연 내가 복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괴물의 눈은 오늘도 그를 지켜보고 있다. <끝>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젠더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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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불법촬영 피해자에게 “아줌마가 뭘 그러냐” [회사에 괴물이 산다 7화]
[지난 이야기] 김한솔(가명) 씨는 회사 여자화장실에서 불법촬영 피해를 입는다. 범인은 한솔 씨가 살뜰히 챙기던 ‘직속후배’ A.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던 한솔 씨에게 회사는 범인 A의 업무까지 떠넘기고, 휴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범죄 피해 현장에서 멀어지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의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솔 씨는 당시 불안, 불면, 배뇨불안 등 신체적·정신적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 그런 걱정이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아직 학교도 다니는데 혹시나 엄마가 정신병원 다니는 게 알려져서 마이너스로 작용하면 어떡하지, 싶어서 증상이 심할 때만 잠깐 병원 가서 수면제 처방받고… 그냥 버텼어요.” 심리적인 장벽이었다. ‘정신력이 약해서 정신과를 다닌다’는 손가락질과, ‘정신병원은 미친 사람들만 가는 데 아니야?’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솔 씨는 꾸준히 치료를 받는 대신,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간헐적으로 수면유도제만 처방받으며 견뎠다. “이사장님, 잠깐이라도 다른 사업소에 보내주시면 안 됩니까? 산에서 산토끼 똥을 치우라고 하면 치울 거고, (군립공원) 입장 티켓을 팔라고 하면 팔겠습니다. 시켜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하다가 여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근데 지금은 잠깐이라도 떠나 있고 싶습니다. 자꾸 그날 일이 생각납니다. 그 뒤로 화장실에 불을 켜고 갈 수가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회사의 최고 책임자인 이사장까지 찾아갔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A를 향한 배신감보다, 휴가도 전보도 안 된다고만 하는 회사를 향한 분노가 조금씩 더 크게 자라났다. 사건이 발생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한솔 씨는 약 열 번이나 전보를 요청했다. 특히 이사장이 교체되던 해인 2021년에 요청이 집중됐다. 전임 이사장에게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신임 이사장에게 인계하고 갈 테니 조금만 버텨달라”고 했다. 그해 11월 신임 이사장이 부임하자, 한솔 씨는 그에게 희망을 걸었다. “업무 파악이 되지 않아서 전보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네요.” 떠나갈 사람은 떠나갈 사람이라서, 새로 온 사람은 일을 잘 몰라서. 결국 안 된다는 말은 똑같았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회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직장 내 불법촬영 성범죄 사건 이후 남아 있던 문제들. 한솔 씨는 그 문제를 열심히 가리키며 얘기했지만, 회사는 되레 그런 한솔 씨를 가리키며 ‘문제’로 여긴 거였다. 계속 거부당하면서도 한솔 씨는 계속 전보를 요청했다. 그만큼 절실했고, 그만큼 위태로웠다. 그에게 2021년은 ‘이러다가 진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였다. 약을 안 먹으면 잠들 수 없고, 약에 취해 잠들면 악몽이 따라왔다. 해맑게 웃던 얼굴이 조금씩 음흉한 낯빛으로 변하는 A를 마주하거나, 뭔가로부터 도망치고 피해 다니는 꿈을 꿨다. 수면을 방해한 건 또 있었다. 한솔 씨는 ‘사건’ 이후로 집 밖에서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았다. 방광염이 생겼다. 참다 못해 화장실을 찾는 경우에는 깜깜하게 불을 끄고 들어갔다. 혹시나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을지 모르니,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밖에서는 화장실을 못 가는 게 문제였다면, 집에서는 너무 자주 가는 게 문제였다. 집을 벗어나면 또 화장실을 못 갈 거란 불안 때문일까. 집에서는 조금이라도 요의가 느껴지면 참을 수 없었다. 자다가도 자꾸 깨어나 화장실을 찾았다. 불안이 일상을 압도했다. 한계. 한솔 씨는 자신의 삶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몰려 있단 걸 알았다. 이대로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결국 2021년부터 정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됐다. 간헐적으로 수면제만 처방받아온 지 2년이나 지나서였다. 한솔 씨는 정신과 진단서를 가지고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다. “아니, 암이 걸린 것도 아니고, 팔다리가 부러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할 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병가 신청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거 아이가?” 반전은 없었다. 회사는 완고했다. 한솔 씨가 느끼는 고통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참혹한 심정이었다. “그때 진짜 직장을 떠나야 하나, 고민을 무척 많이 했어요. 계속 벽에 부딪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참고 버틴 건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죠.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되는데, 남편한테 외벌이 맡길 수는 없잖아요. 또, 마흔도 넘긴 나이에 전문직에만 있었으니까 나가면 경력단절이죠, 뭐. 내가 다른 데 어디를 또 갈 수 있겠어요?”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동안에도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었다. 요령 없이 참고 견딜 뿐이었다. 그러다 보면 볕 들 날 올 거라고 간절히 믿는 수밖에 없었다. 신앙의 힘을 빌려 겨우 마음을 지탱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고해성사도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면 또 용서 못하는 제 자신 때문에 너무 괴로워져요. 결국에는 자책이에요, 자책.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다고 하는데 왜 나만 그럴까, 회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만 계속 조직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회사에는 직원고충상담센터가 있었다. 한솔 씨는 지난해 2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신고글을 올렸다. 그런데 상담센터 위원들 중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4년간 한솔 씨가 휴가나 전보를 요구할 때마다 완강히 거부했던 관리자가 속해 있었다. 결국 한솔 씨는 자신의 신고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회사가 그의 말을 들어줄 거라는 일말의 기대도 사라졌다. 한솔 씨는 그때부터 자살을 떠올렸다. “직원들끼리는 속된 말로 ‘가둬놓고 직인다(죽인다)’고 했어요.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요구하는 게 그렇게 부당하고 힘든 요구였나.” 그 사이 회사에서 전보나 병가를 승인해준 일이 한 번도 없었던 게 아니다.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여섯 명이 전보발령·휴직·병가를 승인받았다는 사실이 기관 인사발령사항 공문을 통해 확인된다. 다만 이상하게도 한솔 씨는 그 장벽을 넘지 못했을 뿐이다. “계속 막연하게 희망을 품었던 거죠. 조금씩 나아지겠지, 이 순간을 참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요. 끝까지 현장에 있다가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었으니까, 그 꿈을 접기 힘들어서 계속 버텼던 것 같아요.” 불법촬영 사건이 일어나기 전, 한솔 씨는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제출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이어갈 여력이 없었다. 지금껏 가슴속에 품고 있던 꿈도 놔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진짜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죽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지난해 9월 한솔 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하루에 더 많은 약을 삼켜내야 했다. 귀에는 쿵쿵대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아린 통증도 동반됐다. 병원에서 검사도 받았지만 이상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한솔 씨는 무너지고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해하거나 괴롭히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쳤었는데, 이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결심을 당장 멈추고 싶지만, 나의 아픔을 외면한 채 눈과 귀를 닫고 병가도 반려하고, 휴직도 반려한 이사장과 팀장들, 인사팀의 카르텔에 대응할 방법도 없고,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는 지금, 더 버틸 힘이 없습니다. 다만 다시는 이런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산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10월 쓴 유서 일부) 모든 일이 시작된 회사 여자 화장실. 그곳에서 죽음을 맞겠다고. 유서를 품에 넣은 채 약을 한 움큼 털어넣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면 회사도 내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걸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진단서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음’ 이렇게라도 명시를 했어야 하나?” “저번에(어제) 운동 가서 산에서 그냥 돌아오지 않으면 이 심각성을 좀 알려나?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죽어야 끝이 나는 걸까?” (2023년 업무수첩에 남긴 메모 일부) 한솔 씨를 다시 살게 만든 건 가족들이었다. 가슴에 묻어야 할 상처,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을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진 않았다. 대신 한솔 씨는 퇴사를 결심했다. 17년간 다니던 회사. 그렇게라도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지난 2월 지역의 노동 활동가들을 만날 자리가 있었다. 한솔 씨네 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길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솔 씨 퇴사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한솔 씨) 연차에 퇴직한다는 게 흔치 않은데,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으셨던 건 아니죠? 왜 퇴사하시려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터닝포인트. 그 한마디에 사건의 새로운 막이 열렸다. 한솔 씨를 가로막은 거대한 장벽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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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의 가성비는?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4년 7월 넷째 주by 🤖아침 1. 생성형 AI 가성비를 의심하는 골드만삭스 지난달 골드만삭스에서 “생성형 AI: 지출은 너무 많고 혜택은 너무 적은가? (Gen AI: too much spend, too little benefit?)”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생성형 AI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기술인 데 비해 수익이나 생산성 측면의 이득이 얼마나 될지 회의적이라는 내용입니다. 보고서에서 인터뷰한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는 AI가 거시경제에 미칠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기술낙관론(기술 발전에 따른 비용 절감 및 성능 개선으로 생산성이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라는 관점)에 대해서도 “’AI 성능이 두 배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 … 격식 없는 대화에서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능력이 GPT 다음 버전에서 향상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상담원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꼭 개선되는 건 아니다“라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골드만삭스 연구총괄 짐 코벨로(Jim Covello)는 “오늘날 AI를 초기 인터넷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인터넷은 초창기에도 저비용 기술이었다”라며, 향후 몇 년 사이 인프라 비용으로만 1조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예측되는 생성형 AI의 투자 대비 수익률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냅니다. 투자를 합리화하려면 AI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AI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된 기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맥킨지에서 생성형 AI의 부가가치가 4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희망찬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 불과 1년 전인데요. 금융 분야의 큰손이자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AI의 경제적 효과를 낙관하던 골드만삭스에서 비교적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데서, AI를 둘러싼 거품이 조금씩 꺼지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2. 깃허브 코파일럿 소송에서 저작권법 쟁점 기각 생성형 AI 관련 주요 법적 쟁점 하나는 저작권이죠. 그 중에서도 이목을 끄는 사건으로 깃허브 코파일럿(GitHub Copilot) 관련 소송이 있습니다. 코딩 보조 툴 코파일럿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개발자들의 코드를 활용한 것이 불법이라는 취지로,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깃허브, 마이크로소프트, 오픈에이아이 세 기업을 상대로 2022년 미국에서 제기한 소송입니다. 최근 소송을 건 개발자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코파일럿에서 추천하는 코드가 원본 코드와 동일하지 않다고 보아 미국 저작권법(DMCA) 관련 쟁점을 전부 기각한 것입니다. 다만 코파일럿 측의 행위가 (오픈소스 코드를 재사용할 때 명시해야 하는) 원저작자·저작권 고지·라이선스 등을 생략하거나 오도하여 오픈소스 라이선스에 저촉되며, 깃허브 개인정보 처리방침 및 이용약관을 위반했다는 쟁점 두 가지는 아직 열려 있습니다. 아직 법적 회색 지대인 생성형 AI 저작권 이슈에서 코파일럿 소송은 상징적 판례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분쟁은 생길 것이고, 국가별 저작권법에 따라, 분쟁이 발생한 분야에 따라 그 양상은 조금씩 다르겠지요. 이 소송의 향방도 중요하지만, 일련의 저작권 분쟁에서 드러나는 큰 그림 또한 놓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기존에 공개·공공적으로 존재하던 데이터를 포획해서 특정 기업의 것으로 사유화하는 AI 산업의 속성 말입니다. 3. 국민의힘 인공지능법안에 관한 시민사회의 우려 한국에는 아직 인공지능 기술에 관련된 체계적 법이 없습니다. 현 정부에서 입법을 추진했지만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통과되지 않았는데요. 22대 국회가 시작한 지 두 달 사이 6개 AI 법안이 발의되는 등 입법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한편 시민사회에서는 현재 추진 중인 법안, 특히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린 정점식 의원 발의안이 인공지능의 위험을 줄이고 예방하는 일에 소홀하다고 우려합니다. 산업 진흥에만 초점을 맞추며, 위험성을 통제하고 피해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는 문제는 마치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14개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의견서는 EU 인공지능법 및 미국 AI 행정명령 등을 참고하여 앞선 여당 발의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주요 쟁점은 안전과 인권 규제의 부재, 고위험 인공지능 규제의 부재, 범용 인공지능 관련 내용 부재, 금지/처벌 조항 부재,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대통령 산하 국가인공지능위원회에 지나치게 집중된 거버넌스 구조 등입니다. 인공지능법에 어떤 내용이 담겨 통과되는지에 따라 향후 AI 산업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과 AI 기술이 맺는 관계의 양상이 달라지게 됩니다. 더 많은 이들이 시민으로서 관심을 갖고 해당 논의에 참여해야 할 이유입니다. 입법 과정에서 국회 및 시민단체가 진행하는 각종 토론회 및 공청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더 읽어보기 [요약] 한국 AI 규제 총정리 (🦜AI 윤리 레터, 2023-11-13) 4. 인권위의 인공지능 인권영향평가 도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공지능 인권영향평가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AI 시스템을 개발 및 활용할 때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점검하고 예방하기 위해 사용 가능한 체크리스트입니다. 아직 AI 관련 법규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각 영역에서 AI 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활발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이나 고위험 AI를 도입하는 민간 주체가 기술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위 도구를 제안한 것입니다. 산업 촉진 일변도인 행정부 방향성과 비교해, 인권위는 2022년 AI 인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제시하는 등 균형잡힌 접근을 강조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접근이 실제 정책으로도 반영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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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정리하는 2024년 상반기 이슈.zip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서 2024년도 하반기를 맞았습니다. 🤔여러분은 올해 상반기를 떠올리면 어떤 일이 생각나시나요? 올해 상반기에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캠페인즈가 10개의 상반기 주요 사건을 정리했습니다. 올해 상반기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바로 확인해 보세요! 설명 아래 토픽 링크를 클릭하면 타임라인과 주요 뉴스도 볼 수 있습니다. 🏠전세사기 2022년 1천 5백채의 집을 소유했던 김 모 씨가 사망한 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1천여명의 세입자들이 전세사기를 당한 이른바 ‘빌라왕’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후 전국 곳곳에서 전세사기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습니다. 피해자들은 정부와 국회에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으나 피해를 직접 구제하는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도 발생했습니다. 올해 5월엔 피해자 중 여덟번째 사망 사례가 나왔습니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 직전 5월 28일 피해자들이 요구해왔던 선구제 후구상안이 담긴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5월 29일 전세사기 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21대 국회에서 최종폐기 되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구제를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토픽 타임라인 살펴보기 🖥인공지능 오픈AI사의 챗GPT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이 삶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는데요.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데 쓰이는 그래픽카드 제조사 엔비디아가 주목받기도 했고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허위정보 등이 등장하며 인공지능 윤리와 관련된 논의도 이어졌습니다. 2024년 상반기에도 다양한 인공지능 관련 사건들이 있었는데요. 챗GPT를 개발했던 오픈AI는 2월 영상 생성 인공지능 ‘소라’를 공개했습니다. 이어 3월엔 UN에서 최초로 글로벌 인공지능 결의안이 채택됐죠. 5월엔 오픈AI가 기존의 챗GPT를 개선한 챗GPT-4o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6월엔 엔트로픽사의 클로드 3.5 소네트가 발표되어 챗GPT-4o를 능가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탄소배출을 급속화하고 있다는 비판과 윤리적 사용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동시에 등장했습니다. 👉‘인공지능’ 토픽 타임라인 살펴보기 🏥의대 증원 지난해 정부가 의대 증원 방침을 발표한 후 의사와 정부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정부의 방침에 집단 휴진을 결정하는 등 서로 한 치의 양보도 보이지 않았는데요. 지난해 시작된 갈등은 올해 더 심각한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정부는 2월 의대 증원 규모를 2천 명으로 확정했습니다. 증원 발표 후 의사 협회는 총파업을 예고했고, 전공의들은 정부 정책의 변화가 없을 시 집단 사직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와 의사의 갈등은 이어졌고, 정부가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등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자 전공의들은 예고한대로 사직서를 집단으로 제출했습니다. 결국 7월 전공의들의 사직서가 수리되면서 의료 공백이 현실화 됐고,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의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증원’ 토픽 타임라인 살펴보기 🙏채 상병 사망사건 2023년 7월 중부 지방 호우 피해 수색 작업 중 불어난 물살에 휩쓸려 해병대 채 모 상병이 사망했습니다. 이후 채 해병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수사단장이 항명수괴 혐의로 고발되는 등의 일이 있었고, 수사 외압 의혹이 일었죠. 2024년엔 책임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3월 호주대사로 임명되어 회피성 출국 의혹을 받다 대사직을 사퇴했고,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결과 발표가 취소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장관의 통화 사실이 알려지는 등 수사 외압과 관련한 논란이 더 커졌습니다. 5월엔 수사 외압 의혹 특검법이 발의되었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6월 다시 특검법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채상병’ 토픽 타임라인 살펴보기 🍎물가상승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과 함께 고물가 위기가 시민들의 지갑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식자재 가격의 상승과 공공서비스 요금의 상승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는데요. 장기화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적인 불안정성에 국내경기 침체가 이어진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올해 3월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3%를 넘기면서 시민들에게 힘든 상황이 이어졌는데요. 사과, 배 등 농산물 물가가 20% 이상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마트를 방문해 대파를 구매하며 소비자 물가와 동떨어진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 같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가상승’ 토픽 살펴보기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올해 4월 10일엔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윤석열 정부 3년차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들의 ‘정권심판론’과 여당 국민의힘의 ‘이조심판론’ 등 양당의 대립 구도가 중심이 됐습니다. 선거 결과 더불어민주당 175석, 조국혁신당이 12석 등 야당이 180석 이상을 확보했고, 여당 국민의힘은 108석을 차지했습니다. ‘제3지대’를 추구한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각각 3석, 1석을 차지했고, 녹색정의당은 당선인을 배출하지 못하며 원외 정당으로 밀려나게 됐습니다. 👉‘2024총선’ 토픽 타임라인 살펴보기 🙅디지털 성범죄 2019년 추적단불꽃이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불린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후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2020년 성착취 방의 개설자였던 ‘박사’ 조주빈이 검거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더 많은 곳에서 드러났습니다. 올해 5월엔 MBC를 통해 서울대 집단 성범죄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MBC는 가해자가 동문이었던 피해자들의 소셜미디어 프로필 사진을 이용해 허위 딥페이크 영상 등을 제작해 유포했다고 밝혔습니다. 보도 과정에선 경찰의 수사 실패로 피해자들이 추적단불꽃의 원은지 활동가에게 제보했고, 원 활동가가 가해자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과정도 드러났습니다. 비슷한 시기 BBC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버닝썬 사건을 재조명하며, 구하라 씨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 사건이 다시 조명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성범죄’ 토픽 타임라인 살펴보기 🛢포항 영일만 석유 매장 국정브리핑 ‘한국은 석유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라는 표현 한 번쯤 들어보셨죠? 하지만 올해 6월 대통령실은 ‘한국에서도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3일 취임 첫 국정브리핑을 통해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후 근거자료가 되는 물리탐사 결과에 대한 의혹이 연달아 등장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으로 표현된 액트지오사가 영업세 등 세금을 내지 않아 법인 자격정지 상태였음이 알려졌고,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가 영일만 일대 탐사 사업을 ‘가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철수했다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이후 석유공사의 사업 진행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포항석유’ 토픽 타임라인 살펴보기 🧑‍🤝‍🧑인구위기 한국의 합계 출산율이 매우 낮고,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는 지적은 200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같은 지적이 한국 사회에 이어지고 있는데요. 지난해 통계청은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 발표했고, 한국의 인구위기가 현실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잇달아 나왔습니다. 한국의 인구위기 문제는 2024년 더 심각한 상황을 맞았는데요. 올해 통계청은 2023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이라 발표했습니다. 역대 최저 합계출산율을 다시 갱신한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며 저출생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국토교통부도 인구대응 협의체를 발족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인구위기 대응책은 뚜렷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인구위기’ 토픽 타임라인 살펴보기 🎗아리셀참사 6월 24일 오전 화성시에 위치한 배터리 제조 업체 ‘아리셀’의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공장은 리튬 1차 전지를 다루는 공장이었고, 현장엔 포장 작업을 위해 다수의 이주노동자가 출근했습니다. 이 화재로 총 23명이 사망했고, 이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참사 후 아리셀의 공장에서 이미 유사한 화재 사건이 수차례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안전사고에 대비한 교육, 매뉴얼 부족 등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참사 발생 한 달여가 지났음에도 진상규명을 포함한 유가족과 아리셀의 교섭은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아리셀에 성실한 교섭을 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아리셀참사’ 토픽 타임라인 살펴보기 캠페이너 여러분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상반기 이슈는 무엇이었나요? 10개의 이슈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코멘트를 통해 알려주세요. 시민 활동 플랫폼 캠페인즈에선 더 많은 시민의 목소리가 모이는 활동들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캠페인즈에서 이뤄질 활동을 기대해주세요! 디지털 시민 광장 캠페인즈는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앞으로도 시민의 힘으로 만드는 더 많은, 더 다양한 활동이 진행될 수 있도록 캠페인즈를 후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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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여자화장실에 카메라가… 범인은 ‘김 대리’였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6화]
“과장님! 저희 어떡해요? 화장실 변기에… 카메라가 있어요!” 다급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사무실로 뛰어 들어온 인턴 사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김한솔(가명, 여) 씨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의 손이 파들거렸다. 한솔 씨는 손을 맞잡고 화장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세면대 하나, 그리고 커튼 뒤로 놓은 변기 하나가 전부인 단출한 화장실. 자세를 낮춰 변기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비데 노즐 옆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변좌를 들어올리니 그 실체가 드러났다. 악취 나는 화장실에 그보다 더 구린 것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초소형 카메라 렌즈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매일같이 화장실 가도 변기(변좌) 아래를 들여다볼 일이 있겠어요?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데, 그날은 날짜도 못 잊어요.” 2019년 1월 29일. 한솔 씨는 지금도 카메라를 목격한 순간을 떠올리면 털이 쭈뼛 선다. 사무실 여자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카메라가 발견됐다. 매일같이 화장실을 오가던 여직원들은 사색이 됐다. 은밀한 신체가 촬영됐다는 수치심, 영상들이 어디선가 공유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무엇보다 범인이 자신들과 동고동락하던 동료일지 모른다는 공포에 압도됐다. 함께 밥을 먹던 유 대리일까. 눈을 마주칠 때면 미소 짓던 한 차장일까. 별 이유 없이 꾸중만 하던 백 부장일 수도 있고, 퇴근 후 가끔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성 대리일 수도 있다. 회사 안에 ‘몰카범’이 있다니…. 피해자들은 인두겁을 쓴 끔찍한 괴물 앞에서 미련하게 웃고만 있었을 ‘나’를 자책했다. 왜 카메라를 진작 발견하지 못했을까. 왜 그 괴물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괴물을 향한 분노의 화살은 피해자들의 가슴에 자책으로 돌아와 박혔다. 한솔 씨는 우는 여직원들을 달랬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 또한 불법촬영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후배 동료들을 다독여야 하는 과장이기도 했다. 공포에 질려 손발이 떨려도 당장 챙겨야 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동료들을 달래며 경찰에 신고했다. “누가 신고했어! 이게 신고할 일이에요?” 이내 불호령이 떨어졌다. 관리자들은 인상을 팍 구겼다. 한솔 씨가 다니는 회사는 경남의 한 지방공기업. 회사는 가장 먼저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함구령’. 사건이 회사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범인을 색출하기보다 오히려 경찰에 ‘누설’한 이를 몰아세웠다. 공공기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오겠냐는 식. 겁에 질린 여직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공기업으로서 회사의 명성과 ‘윗사람’들의 안위만을 걱정했다. “나중에 경찰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카메라 용량이 작으니까 주기적으로 백업하고, (다시 카메라를) 갖다두면서 녹화했다고.” 경찰 조사 결과, 한솔 씨는 불법촬영 피해자로 특정됐다. 촬영 기간에 그가 당직 섰던 날이 포함돼 있었다. 그날 출근한 여직원은 한솔 씨가 유일했으니, 이는 곧 그날 촬영물에는 오직 한솔 씨의 모습만이 찍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도 없이 드나들던 화장실이란 곳이, 바라보기도 힘들 만큼 두려운 장소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끔찍한 기억은 차라리 어둠 속에 밀어넣어야 했다. 한솔 씨는 그날 이후 공중화장실 불을 켤 수 없었다. ‘혹시나’ 또 불법촬영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에, 화장실을 깜깜하게 해두고 사용해야 했다. 한솔 씨는 2007년 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2011년 7월 발령받은 사무소에서 ‘직속후배’ A(남)를 만났다. 동문을 만나기 어려운 사회에서,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 출신이라는 점만으로도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한솔 씨는 A를 살뜰히 챙겼다. 다른 기관 직원들을 만날 때면 A를 동행해 소개했고, 그의 아이들에게 입힐 옷을 물려주기도 했다. 그 각별한 후배는 ‘그 사건’ 이후로 종적을 감췄다. “A는 화장실에서 카메라가 발견된 날부터 못 만났어요. 보통 11시 50분 되면 오전 업무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그날은 안 오더라고요. 퇴근 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는 게 의아하기는 했는데, 당시에는 (불법촬영) 카메라가 나왔다는 것만으로 충격이 너무 크니까… 그냥 다른 생각은 못했죠.” ‘그 사건’이 터진 순간부터 갑자기 얼굴을 비치지 않던 A. 당시 회사에서는 오후 6시 이후 순환당직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는 홀로 당직을 서는 날 여자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한솔 씨가 살뜰히 챙기던 직속후배 A가, 범인이었다. ‘A가 나를 보고 짓던 미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언제부터 촬영됐을지 모를 영상에 내 모습은 얼마나 등장할까. 혹시 사무실 직원들끼리 영상을 공유한 건 아닐까. 촬영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놈을 살뜰하게 챙기던 나를 보면서, 그놈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시 여자화장실을 이용하던 직원들과 소형 카메라를 목격한 직원까지 총 9명이 경찰서에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경찰은 “영상이 공유되고 불법 사이트에 업로드된 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한솔 씨는 믿지 못했다. 그 영상들은 그저 ‘혼자 보기 위해’ 촬영된 걸까. 정말 그 영상들을 혼자 가지고만 있었을까. 수사의 한계는 아닐까. 그러나 경찰은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유포는 없었다고. “몰래카메라 범죄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피해자에 대한 낙인효과의 심각성이 높아서 유포와 배포가 자유로워 온라인 공간의 불특정 다수에게 포르노로 소비될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피해자는 일상적 생활이 어려워진다.” (김은지, 「불법촬영범죄에서 온정적 성차별주의와 노출수준 및 관계유형에 따른 피해자 비난과 처벌판단」, 대구가톨릭대학교대학원, 2020년) A는 그날부터 종적을 감췄고, 회사의 바람대로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돼갔다.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았고, 직원들끼리도 언급을 금기시했다. 그 침묵이 피해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약 130명에 달하는 직원들 중 “성비는 8:2 정도”로 남성이 훨씬 많았다. 한솔 씨는 생각했다. 그래서 ‘여직원’들이 느낄 공포나 수치심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한솔 씨는 여성 관리자인 B를 찾아갔다. 그동안 특별한 교류는 없던 사람이지만, 그래도 여성 피해자들의 심정에 공감해줄 수 있는 상사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카메라가 설치된 화장실을 사용하던 불법촬영 피해자니까. “범인이 매일같이 마주치던 같은 부서 직원이잖아요. 다들 충격이 큰데, 여직원들 3일 정도라도 휴가를 좀 다녀올 수는 없을까요?” 긴장 때문에 한솔 씨 손이 떨렸다. 그 손으로 B의 손을 붙잡으며 부탁했다. 절실한 심정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B의 반응은 냉담했다. 다른 여직원들의 휴가는 인정해도 한솔 씨에겐 휴가를 줄 수 없다는 것. 이유는 황당했다. 첫째는 회사에서 사라진 범인 A의 업무를 맡을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그리고 둘째는 한솔 씨가 ‘아줌마’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솔 씨는 40대 중반이었다. ‘아줌마가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는 말. 모욕감을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의 신체가 누군가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충격은 피해여성 누구에게나 같았다. ‘아줌마’라서 견뎌야 하는 것도, 견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상심은 더 컸다. 각별한 후배였던 A에 대한 배신감은 불면, 그리고 악몽으로 이어졌다. 벌겋게 충혈된 눈을 감으면 A의 불쾌한 미소가 떠올랐고, 또 그놈의 더러운 카메라에 노출됐을 제 몸이 떠올랐다. 회사는 ‘피해자’인 한솔 씨를 외면했다. 그 경험은 한솔 씨의 행동까지 지배했다.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는 가족들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여직원들이 3일간 휴가를 다녀오는 동안, 한솔 씨의 업무는 더 쌓여갔다. 회사는 피해자 한솔 씨에게 가해자 A의 업무를 떠넘겼다. 당장 일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 한솔 씨는 휴가는커녕 야근에 허덕였다. 사건 발생 바로 다음 달인 2월 한 달간, 그가 초과노동을 한 날은 휴일근무를 포함해 11일이나 됐다. 특히 한솔 씨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2인 1조로 움직이는 일이었다. 외부 시설물을 관리하는 동안 남성 직원과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단둘이 차를 타고 이동했고, 시설물을 둘러보는 일, 끼니를 때우는 일 역시 함께했다. 물론 그들은 불법촬영 사건의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한번 무너진 동료에 대한 신뢰는 단숨에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즉 남녀고용평등법은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해야 한다(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2항). 또한, 조사 기간 동안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피해자에 대해 근무 장소의 변경, 유급 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제3항). 그러나 회사는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고, 피해자 보호조치가 필요한 시기에 한솔 씨를 피해 현장으로 여전히 출근하게 했다. 한솔 씨는 사건 발생 4일 만에 휴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는 휴가를 주는 대신 가해자의 업무까지 이중으로 맡겼다. 피해자 한솔 씨에게 사무실은 범인과 함께 있던 공간, 화장실은 ‘범죄’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멀어지지 못하고 매일같이 출근해야 한다는 건, 한솔 씨에게 큰 고통이었다. 사무실에서 떨어져 있기라도 해야 그 끔찍한 기억을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보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회사 안에서 두드려볼 수 있는 창구는 모두 찾아갔다. 면담을 요청하고, 자신이 느낀 모멸감과 절박한 심정을 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몸처럼 움직였다. 소문이 새어나갈 것을 우려하며 입단속하고, 대체인력이 없다거나 결정 권한이 없다는 식의 답변만 늘어놨다. 서로 다른 변명으로 한솔 씨의 호소를 외면했다. 그 즈음이었다. 난생 처음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아간 게.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젠더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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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불평등과 부의 상관 관계를 좇아 - 『불평등을 넘어』 [신동주의 도서 추천]
경제를 얘기함에 있어 ‘불평등’은 빠질 수 없는 주제 중 하나이다.  혹자는 경제 성장 속에서 불평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무시하기도 하지만, 진보 경제학자들은 ‘경제 성장’의 강박과 통념을 넘어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방법을 찾기 위해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 앤서니 B. 앳킨슨 ⒸNiccolò Caranti <불평등을 넘어>의 저자 앤서니 B. 앳킨슨도 불평등을 연구한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경제 불평등에 관심 있는 자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유명한 사것이다. 매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으며, ‘21세기 자본’을 쓴 피케티 연구에 큰 영향을 준 학자이기도 하다. ▲ 평생을 부의 분배와 불평등 관계 분석에 바친 앳킨슨의 역작 『불평등을 넘어』 ⓒ성찰과성장 불평등 지수 중 하나인 ‘앳킨슨 지수’도 그가 만든 것이다. 앳킨슨 지수는 ‘균등분배의 전제 하에서 지금의 사회후생수준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평균소득이 얼마인가를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그것과 한 나라의 1인당 평균소득을 비교하여 그 비율을 따져보는 것’이다(출처: 기획재정부 시사경제용어사전). ▲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연구, ‘불평등’ Ⓒ성찰과성장 <불평등을 넘어>는 앳킨슨의 저서 중 거의 유일하게 번역된 책이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쓴 마지막 대중서이다. 2015년에 번역된 이 책은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현실을 잘 분석했다. 불평등을 나타내기 위한 데이터는 2013년도에서 멈춰있지만, 최신 데이터를 추가한다고 해서 그래프의 추이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2015년이나 2024년이나 소득이 한쪽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득은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금융소득, 임대소득 등을 포함한 것이다. <불평등을 넘어>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책의 1/3을 할애하여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15가지의 제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안들 중 눈에 띄는 것을 조금 언급해보자면, ‘경쟁 정책에 분배적인 측면을 도입하고, 노동조합을 보장하는 법적 체계를 만들며, 다양한 사회적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경제협의회를 만들 것’, ‘기업과 부동산에 대한 투자지분을 보유하며 국부펀드를 운영하는 공공 투자기관을 설립할 것’, ‘최근 시세로 평가된 부동산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비례적인 재산세 또는 누진적인 재산세를 시행할 것’, ‘기존 사회적 보호제도를 보완하는 나라별 참여소득을 도입할 것’이 있다. ▲ 앳킨스가 제안한 대안 중 하나. ‘나라별 참여소득을 도입할 것’. Ⓒ성찰과성장 상위 계층이 싫어할만한 내용만 잔뜩 있다. 이 제안들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러한 소득재분배 정책들은 ‘경제적인 생산을 줄이고 결국 하위 계층의 소득까지 줄일 것’이라고 말이다. 부유한 이들의 돈이 ‘생산’으로 흘러들어 간다면야, 이 주장이 틀리지 않을 수 있다. 부유층이 벌어들인 돈을 기업에 투자하고, 투자 받은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고, 새로 고용된 사람들이 임금을 받고, 그 임금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면 말이다.  이를 한 단어로 ‘낙수효과’라고 한다. 낙수효과의 논리가 맞다면, 부유한 이들의 돈을 빼앗는 소득재분배 정책들은 결국 하위 계층의 소득을 줄이게 될 것이다. ▲ 일부 경제학자는 ‘낙수효과’ 이상에 빠져 있다 Ⓒ성찰과성장 그런데 부유한 이들 중 정말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생산적인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부동산과 금융상품의 시세 차익으로 돈을 벌려는 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산적인 기업에 투자를 한다고 할 지라도 ‘고용없는 성장’과 저임금의 불완전한 일자리만 증가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처럼, 부유층의 투자가 하위계층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논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정치’다. 부유한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하위 계층보다 매우 크다.부유층은 자신의 소득과 자산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로비하고, 언론을 주무르며, 자신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 경제적 불평등은 권력의 불평등으로 나타난다. Ⓒ성찰과성장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생산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부유층의 소득과 자산이 증가한다는 것은 그외 사람들(즉, 중하위 계층)의 소득과 자산이 감소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어떻게 될까? 부유한 이들의 정치력은 더욱 커지고 불평등의 악순환은 지속될 것이다. 이것이 경제적 불평등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열심히 일하느라 정치에 관심을 가질 시간과 힘이 없는 우리 모르게 그들은 돈을 통해 정치력을 강화한다.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마치 우리들을 위한 정책인 것처럼 속여 여론을 만들고 정책을 통과시키려 한다(최근 나타난 종부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 움직임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종부세 관련 기사 Ⓒ다음 뉴스 갈무리 그래서 부유하지 않고 평범한 우리는 ‘불평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부유한 이들에게 당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하더라도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 경제 불평등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다. Ⓒ성찰과성장 정치 얘기를 하다 보니 길어졌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 불평등과 정치의 연관관계에 대해 얘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위 계급이 말하는 불평등과 관련된 논리 비판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일반적인 경제 신문에서 주장하는 논리들을 비판하는 힘을 기르고 싶은 이들에게 <불평등을 넘어> 일독을 추천한다. 작성: 신동주편집: 박배민기획: 성찰과성장 - 민주주의 학습 놀이터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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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특별법 2년차,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2024년 7월 18일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는 전국적으로 2만건에 육박한다. 또한, 2023년 2월 28일부터 올해 5월까지 공식적으로 8명이 전세사기 때문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사기로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한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전세사기는 사적 계약의 문제이며, 국가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던 정부와 정치권은 전세사기 희생자가 속출하자 부랴부랴 특별법을 논의한 끝에 2023년 5월 25일에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하지만, 2023년 6월 1일부터 시행된 특별법은 제정 당시부터 우려한대로 실질적인 문제해결에는 한계가 크다는 점을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어떤 한계가 있었을까?   1. 기존 전세사기 특별법의 한계 첫째, 까다로운 피해자 인정요건으로 배제되는 사람들이 다수 발생했다. 특히,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야 한다는 요건, 임대인의 사기성을 입증해야한다는 요건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와 기타 사유로 피해자로 결정되지 않은 경우까지 합치면 전체 25,000건 중 5,000건이 넘는 경우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둘째, 지원대책이 ‘빚으로 빚을 돌려막고, 빚으로 집을 떠안는’ 대책 일색인 것도 모자라서 피해자 인정요건 이외 별개의 요건이 존재해 대책 이용이 까다롭다. 현재 특별법에서는 다양한 금융대책과 경공매 대책을 지원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피해자가 더 많은 대출을 받아 각자 피해주택의 소유권을 직접 떠안을 것을 유도한다. 그마저도 피해자 인정에 더해 각 대책별 요건이 따로 존재해 실제 이용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셋째, 피해자의 보증금을 직접 회수하는 대책 자체가 없다. 상술한 것처럼 특별법에는 피해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대출과 집을 떠안는 대책만 있을 뿐, 보증금은 피해자가 경공매를 통해 알아서 회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몇 년간 진행되는 경공매를 통해 회수도 불확실한 보증금만 기다릴 여력이 없다. 그저 보증금의 일부라도 돌려받고 새로운 환경으로 이주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기를 바랄 뿐이다.   2. 지난 국회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주요내용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아도 쓸데없는 기존 특별법 대신 피해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방안을 담아 법안을 개정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그래서 작년 12월 27일에는 야당 주도로 특별법 개정안이 마련되었고, 올해 상반기에 해당 법안처리를 두고 국회에서 논의가 이어졌다. 특별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피해자의 보증금을 국가에서 먼저 매입해서 피해자에게 돌려주고 그 비용은 시간을 들여 회수하는 소위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포함되었다. 보증금 전액을 모두 돌려받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보증금의 30% 수준은 먼저 돌려받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마중물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일부 반영되었다. 둘째, 강제퇴거 방지 방안이 포함되었다. 임시적인 경공매 유예 조치가 아니라, 주택에 설정된 선순위 근저당채권을 공공기관이 매입하여 장기간 경공매를 보류해서 임차인의 강제퇴거시점을 늦추는 것과 임차인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 명도소송 및 강제집행을 당하는 신탁사기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담겨있다. 셋째, 피해주택의 시설관리 방치문제에 대해 지자체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포함되었다. 특히, 방치된 시설에 대한 지자체의 실태조사, 공공의 피해주택 위탁관리 방안, 관리비 비용지원 방안이 포함되는 등 집주인이 아니라도 최소한의 안전 조치를 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되었다. 특히, 최근 인천 미추홀구 한 주택에서는 폭우가 심해지면서 외벽이 붕괴하고, 그 여파로 도시가스 배관에 문제가 생기면서 건물 전체의 가스 사용이 중단된 일이 있었다. (언론보도) 관할 지자체에서는 사유재산 관리에 관리할 법적 근거가 미비해서 개입을 꺼리고 있는데,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특별법 개정이 시급하다.   3.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경과 작년 12월에 국회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특별법 개정안은 올해 4월 총선 시기와 맞물려 아주 더딘 속도로 처리되었다. 정부와 여당의 법안처리 거부와 노골적인 방해 때문에 법제사법위 심사, 본회의 처리가 한없이 지연되면서 총선 시기에 임박해서는 아예 논의 테이블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는 총선을 맞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세사기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중요한 문제임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먼저,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면서 전세사기가 그저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의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임을 전달했다. (피해자 연속기고) 또한, 전세사기에 대해 잘못 알려진 내용과 복잡한 내용을 정확하고 쉽게 설명하면서 시민들의 이해도를 높였다. (링크) 마지막으로, 각 정당에 전세사기 문제해결을 위한 공개질의 캠페인을 통해 총선을 앞둔 6개 정당 중 4개 정당의 주거공약을 확인하고, 향후 특별법 개정 및 주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캠페인 링크) 총선이 끝난 이후, 정치권에서는 선거결과에 대한 해석과 21대 국회 잔여일정에 대한 이견으로 어지러운 가운데, 5월 1일에는 대구에서 8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전세사기 피해자는 ‘저도 잘 살고 싶었습니다.’, ‘제발 살려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가정의 달인 5월이 되자마자 전해진 소식에 전국의 피해자 모두가 슬퍼했고, 조속한 특별법 개정안 통과와 기존 대책 개선을 외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21대 국회 내에 처리가 불투명했던 특별법 개정안은 5월 2일에 본회의 회부 부의안이 의결되었고, 5월 28일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당의 불참 속에 야당 단독으로 의결되었다. 하지만, 5월 27일 본회의 하루 전,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구제 대책발표와 함께 거부권 행사를 공언하는 기사가 쏟아졌고, 실제로 본회의 다음날이자 21대 국회 마지막 날인 5월 29일에는 대통령실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반년 이상 애써서 마련한 특별법 개정안은 곧바로 폐기되었다. 정부에서 제시한 거부권 행사 사유는 보증금 채권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 막대한 재정소모가 예상된다는 점, 사기피해에 국가가 개입하는 선례를 남길수 없다는 점 등이 언급되었으나 수만명의 전세사기 피해자가 방치되는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피해자 모두가 깊은 좌절감에 휩싸였다. 6월부터는 새로운 국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면서 각 정당에서도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피해자대책위도 자체적인 간담회를 열고, 특별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21대 국회에서는 어려웠던 정부와 몇차례 간담회도 진행하며 조속한 피해구제를 위해 협의하고 있다.  4. 특별법 개정, 가장 중요한 원칙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및 구체적인 피해구제 방식 등을 두고서는 피해자와 정부 및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이견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전세사기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피해자가 보증금을 최대한 회수하고, 사각지대는 없애고, 최대한 빠르게 대책이 적용되어야함을 명심한다면 구체적인 특별법 개정 방식은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6월부터 시행된 특별법 상의 경공매 유예조치가 끝나는 세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경공매에서 낙찰된 세대가 늘어날수록 임차인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강제로 내쫓기는 피해자가 늘어난다. 피해주택 시설관리가 되지 않아 심각한 안전 문제가 우려되는데도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관련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 조속한 특별법 개정을 위해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꾸준히 힘을 모아줘야 하는 이유다. 특별법 시행 만 1년을 지나 2년차를 맞은 이제는 반쪽짜리 특별법에 그치지 말고, 빠른 시일 내에 피해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특별법으로 개정해야한다! [참고] 특별법 제정/개정 타임라인 23.03.30 심상정 의원 특별법안 대표발의 23.04.03 조오섭 의원 특별법안 대표발의 23.04.18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발족 & 세 분의 피해자 합동추모제 23.04.19 대통령실, 경매 중지 지시 23.04.23 당정청, 전세사기 정책협의결과 발표 23.04.27 특별법 정부여당안 발의 23.05.08 국회 앞 대책위 캠프 설치 & 농성 돌입 (~05/26) 23.05.25 특별법 본회의 통과 23.06.01 특별법 공포 및 시행 23.10.14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 집회 23.12.01 특별법 제정/시행 6개월 (특별법 제정 당시 약속한 보완입법 시기 도달) 23.12.05 국토교통부 특별법 현황보고 23.12.21 야당 단일 특별법 개정안 도출 23.12.27 국회 국토교통위 안건조정위에서 특별법 개정안 통과 & 법사위 회부 24.02.24 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추모문화제 24.02.27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직회부 의결 24.04.10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24.05.02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부의안 의결 24.05.14 8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행진 (서울) 24.05.18 8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제 (대구) 24.05.27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 발표 24.05.28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야당 단독처리) 24.05.29 대통령실,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 법안 폐기 (21대 국회 폐원) 24.05.30 제 22대 국회 개원
주거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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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삶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삶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2024-07-22) 정운덕 | 사회복지사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쪽방촌 지역 바닥에 물을 뿌리고 있다. 필자 제공 나는 서울특별시립 영등포쪽방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다. 상담소는 쪽방 주민들을 대상으로 정서안정지원사업, 생활안정지원사업, 신용 회복, 병원 연계 등의 활동을 한다. 쪽방이란 두평 남짓한 방을 일컫는다. 쪽방촌은 쪽방으로 이루어진 동네로 서울에 다섯 군데가 있다. 동자동(서울역), 남대문, 창신동, 돈의동, 영등포에 자리 잡고 있다. 거주민의 약 40%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고 홀몸 노인과 장애인이 약 45% 정도를 차지한다. 월세는 보증금이 없는 조건으로 25만원에서 30만원까지 각기 다르다. 쪽방에는 화장실이 없다. 공중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세면장이 없는 경우가 많아 몸을 씻으려면 쪽방 주변에 있는 이동식 목욕 차량을 이용하거나, 상담소에 설치된 샤워실을 이용해야 한다. 한미약품에서 후원하고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동행목욕탕 사업을 통해 지정된 인근 목욕탕에서 매달 2회(여름철 매달 4회) 목욕을 할 수 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보통 쪽방상담소라고 하면 고민과 문제가 있는 주민들이 스스로 기관을 방문할 거라고 짐작하지만 그렇지 않다. 직원들이 주민들을 찾아 나선다. 쪽방 주민들은 1인 가구가 많고, 노령자거나 우울증,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분들이라 건강에 취약하다. 그래서 우리 상담소 직원들은 매일 쪽방촌을 찾아 400여명의 안부를 묻는다. 상담소에 들어와 얼마 동안 상담소 간호사님을 따라 매일 두 시간 동안 쪽방 거리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이름과 집 위치를 외웠다. 하루 2만보는 기본이었다. 그렇게 한분 한분 만나며 이름을 외우고, 성향과 성격을 알게 됐다. 개인에 따라 대화하는 방식과 행동이 달라진다. 주민들과 관계 맺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삶의 한 부분이 되어준다. 쪽방은 위생 상태가 좋지 않다. 바퀴벌레를 비롯해 많은 벌레가 들끓는다. 먹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집에 벌레가 생기기 시작한다. 상담소에서 위생이 좋지 않은 집을 청소하고 정리한다. 사회적 고립도 심각하다. 많은 사람이 쪽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 지역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집 문을 닫고 고립을 자처한다. 상담소는 우리동네돌봄단을 운영해 인근 주민이 쪽방 주민을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쪽방 주민이 인근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사회적 고립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다. 나는 돌봄 매니저로 이 사업을 맡고 있으며 주민들의 상태를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다. 광고 쪽방은 화재 위험이 크다. 건물 대부분이 목재로 돼 있고 낡다 보니 전기가 합선되거나 집 안에서 담배를 피워 불이 날 때가 있다. 쪽방은 건물 간격이 워낙 좁아 한 곳에서 불이 나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상담소는 날마다 주민의 안부를 확인하며 화재 위험이 있는지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전기와 가스를 점검할 수 있게 한다. 상담소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시화전, 목공, 요리 등 자기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주민들을 프로그램에 오게 하는 것은 기획자의 첫번째 임무다. 많은 주민이 자기 삶의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나이 먹고 이거 해서 뭐 해”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실패의 경험은 다시 도전하기를 두렵게 만든다. 우리에게는 삶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럿이 정답게 모여 아스팔트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가스버너에 고기를 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사이를 지나가면 내게 “고기 한점 먹고 가”라며 따뜻한 마음을 건넨다. 주민들 집을 방문할 때면 고생한다며 음료를 하나씩 주기도 한다. 쪽방에는 일곱살 된 어린아이도 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음료수를 주곤 한다. 그럼 아이는 웃으며 좋아한다. 나는 이 아이가 앞으로도 웃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일한다. 사회복지사는 환대받는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곳에 가치를 두고 있다. 주저앉은 사람을 일어날 수 있게 돕는 일. 그것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때때로 무너지곤 하지만 어둠 속 작은 촛불처럼 내 주변을 밝히고 싶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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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미얀마 군사독재 우리 세대가 끝내야 합니다
미얀마 군사독재 우리 세대가 끝내야 합니다 (2024-07-15) 미모뚜 | 미얀마 민족통합정부 한국대표부 노무관 필자가 쿠데타를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 제공 제 이름은 미모뚜입니다. 저는 파주 샬롬의 집 이주노동자 센터에서 미얀마어 통역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 National Unity Government) 한국대표부의 노무관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미얀마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또한 파주 미얀마 공동체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저는 만달레이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 뒤 여행사에서 매니저로 일하다가 2009년 5월에 결혼해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2021년 2월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사실 이전까지 정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제가 한살 때 돌아가셨고 1962년 버마 쿠데타 때 독재자에게 반기를 든 정치인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친할아버지는 1988년 8888 항쟁 때 군부의 총격을 받은 사람들을 치료해준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그 후로도 독재 정치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여러번 투옥됐습니다. 광고 2021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제게 두 할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과 1988년 때 우리 가족이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1988년 8월9일, 우리 도시에서 총격이 시작됐을 때 아버지는 삼촌들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 애타게 기다리던 시절, 어떤 의사도 총상을 치료해주지 않자 할아버지를 찾아와 치료해달라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피 흘리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할아버지는 총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군인들이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삼촌들은 뒷문으로 나가 도망쳤습니다. 이후 군인들은 밤마다 자정이 되면 남자들을 잡으러 우리 집에 왔습니다. 집에 남은 가족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침 일찍 나를 깨웠습니다. 빨리 도망가라는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총을 든 군인들이 군용 차량 세대로 우리 집을 둘러싸고 강제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우리 가족 모두, 심지어 아이들까지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우리 집에 온 것입니다. 석달 동안 수배 생활을 하던 중 군부는 할아버지를 체포하지 않겠다며 단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고 접촉해왔습니다. 여러번 약속을 받아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당신이 겪은 고문에 대해 이야기해준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군사독재를 끝내야 한다는 각오로 혁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군부가 쿠데타를 강행한 뒤 미얀마 국민 대부분은 시민 불복종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시민군과 군부 간의 내전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쿠데타 이후 최소 4만7천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독재자는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며 살해하는 등 잔혹한 행위를 계속 자행하고 있습니다. 종교 시설과 교육 시설은 물론이고 병원까지 9만여채의 시설이 불타버렸습니다. 사가잉주, 마궤주, 만달레이주, 친주, 라카인주 등이 주요 피해 지역입니다. 올해만 약 150여명의 어린이가 살해당했으며, 어린이의 절반 이상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3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군대의 공습으로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민이 됐습니다. 미얀마에서는 13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식량 부족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부는 강제로 젊은이들을 징병하고 있습니다. 매일 100여명에서 400여명의 젊은이가 강제 징병을 피해 타이(태국) 매솟으로 망명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광고 광고 군부는 갈수록 쇠퇴하고 있습니다. 정의가 승리하고 미얀마 정치 상황이 안정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미얀마 땅에서 폭정이 근절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독재는 우리 세대가 끝내야 합니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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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35년째 옷 만들었는데…내 노동을 증명할 수 없다
35년째 옷 만들었는데…내 노동을 증명할 수 없다 (2024-07-01) 전소영 | 재봉사·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 대의원 ‘2024 봉제인 5대 요구 실현’을 촉구하는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 결의대회가 6월1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개최됐다. 필자 제공 6월1일 뜨거운 오후였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 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노랑과 파랑의 피켓에는 굵고 큰 글씨로 △4대보험 일부지원 요구 △공정임금·공정단가 전수조사 △봉제인 실업수당 지급 △사업자·노동자·정부 3자 상설합의기구 설치 △봉제종사자 노동이력증빙제 도입 등 봉제인 5대 요구가 적혀 있다. 나도 그렇고, 이날 모인 200여명의 봉제인들 대부분은 생애 첫 집회다. 손가락에는 늘 잡던 쪽가위와 원단 대신에 피켓을 들고, 매일 듣는 라디오와 ‘미싱’ 소리 대신에 사회자의 구호에 맞춰서 봉제인의 5대 요구안을 서울시를 향해 목청껏 외쳤다. 초여름 햇볕에 달구어진 아스팔트 바닥만큼 마음속에서 뜨거운 뭉클함이 올라왔다. 옆자리의 동료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광고 내가 일하는 곳을 ‘우리 회사’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숙녀복 바지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봉제공장이다. 원단 재단은 재단사가 하고, 옷의 형태가 나오기까지 미싱기계로 꿰매는 일은 재봉사가 하는데, 재봉사인 나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저녁 7시 퇴근한다. 점심시간 40분을 제외하고는 휴식시간이 없다.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잠깐씩 하는 스트레칭 정도가 유일한 휴식이랄까. 급여는 일당제다. 봉제 일은 월급제, 일당제, 옷을 만드는 개수대로 받는 개수임금제가 있다. 대부분이 일당제 아니면 개수임금제다. ‘우리 회사’에 다니지 않는 내게 누군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옷 만드는 일을 한다고 답한다. 그들 대부분은 ‘기술자라서 너무 좋겠다. 노년에도 건강하면 할 수 있으니’라고 하는데…. 봉제 일 자체는 멋진 프로페셔널 평생기술직이겠으나 프로는 페이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하지 않는가. 현재의 봉제 현장은 1970년대와 다를 바 없는 임금체계와 공임으로 전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 열악한 환경 탓에 신규 인력이 유입되지 않아 50대인 내가 막내뻘이며 봉제계의 아이돌이다. 광고 광고 ‘우리 회사’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한 전문기술직도 아니지만 나는 계속 노동하고 있다. 미싱 모터가 돌아가며 한땀 한땀 박히는 바늘땀만큼 마음을 다해 옷을 잇고, 소복이 쌓인 원단의 먼지같이 깊은 세월 연마한 기술로 35년째 매일 옷을 짓는다. 패션 대한민국의 위상은 주문한 원단이 오전에 공장에 도착하면 그날 오후 6시까지 제작을 마쳐 출고까지 하는 시스템으로 가능했다. 여기에 공헌했다는 자부심을 갖기에는 민망하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옷을 입고 경기를 뛰는 국가대표 선수를 볼 때는 저절로 환호와 박수가 나오고, 멋진 연예인들이 내가 만든 옷을 입으면 가슴이 설레고 어깨가 으쓱해진다. 거리에서 평범한 이들이 내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마주할 때의 기쁨도 남다르다. 광고 그런데 나의 노동 이력은 증명할 방법이 없다. 코로나19로 생활이 어려울 때도 분명 직장을 다녔고, 수십년에 이르는 긴 노동 이력에도 불구하고 재직증명서 한장 뗄 수 없다. 4대보험 미가입자에게 직장인 대출을 해주는 은행은 어디에도 없었다. 허탈하고 참담했다. 비록 실낱같았지만 내 직업의 자부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고, 그때 처음으로 전업을 염두에 두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한 업계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일해온 사실을 증빙할 수 없어서 국가의 긴급지원은커녕 은행의 직장인 대출도 받기 어려운 현실이 과연 정상인가. 봉제인 모두가 잘못된 현실을 알고 있지만, 바꿀 방법을 몰라 묵묵히 참고 견뎌냈다. 하지만 이런 시간을 뒤로하고 6월1일 드디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서울봉제인지회라는 단체가 먼저 방법을 제안하고, 참여할 기회를 마련했다. 처음으로 집회를 하면서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졌다. 모두가 전태일다리까지 행진하고 우리의 요구를 적은 리본을 달았다. 봉제인 모두 이런 행사는 처음이라서 신기하고 재밌어하며 뿌듯해했다. 우리의 목소리에 서울시가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 서울시에는 올해 제정된 패션봉제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가 있다. 봉제인을 배제하고 패션봉제산업을 어떻게 육성한다는 말인가. 봉제인이 자긍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고, 작업 환경이 개선되기를 꿈꾸며, 오늘 아침도 출근길 첫발을 내디딘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 '6411의 목소리'는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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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극우화 방지 특강 👩‍🏫 한국 필수 시청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7 요즘 들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인권과 다양성의 시초 같던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했고, 하루아침에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먹고 살기 팍팍할 때마다 극우가 새로운 대안처럼 떠올랐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무섭게 세를 넓혀가는 중입니다. 오늘은 극우 막는 처방전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나려 해요. 떠들썩하게 선거를 치른 나라로 갑니다! 여권은 넣어두고 호기심만 챙겨 주세요. 각국 선거 결과 브리핑을 듣고 유럽에서 극우가 약진한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극우화 특징도 준비되어 있으니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북부 지역에 살면서 이민자들을 실은 버스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봐야 했어요. 치안이 불안정해서 무서웠죠. 그래서 지역에서 활동하며 보안 정책을 펼치는 국민연합 의원들을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프랑스 국민연합(극우 정당) 선거캠프에 참여한 아나엘 씨 #1 2024 세계 선거의 해, 키워드는? 무려 42억 명. 2024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소로 향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어느 국가 하나 빠짐없이 내외 정세 긴장을 겪는 지금, 그 상황을 집약하여 보여줄 주요 선거들이 올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입니다. 4.10 총선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강화됐고, 민주당 주도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특검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보수 여당과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예상보다 약진했고, 제3당이자 좌파 정당인 정의당이 원내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우경화된 선거 결과라 할 수 있죠. 대형 분쟁국들에서도 선거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란히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푸틴은 무려 5선째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개입한 이란도 조기 대선을 치릅니다. 라이시 전 대통령이 급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히잡 시위로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에 반기를 든 국민들의 선택은 온건 정책을 약속한 마수드 페제스키안이었습니다. 자국은 물론, 타국의 선거 결과에 따라 앞으로 두 분쟁의 향방이 어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더 서쪽으로 이동해보겠습니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선 뚜렷한 극우화 추세가 확인됐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주요국 극우 정당들이 눈에 띄게 많은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지난 대선에도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르펜이 이끄는 RN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EU에 쌓인 회원국들의 불만이 드러난 결과인데요. 현재 유럽 전역은 경제난과 이주자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공동체 EU가 요구하는 명분과 협력에서 벗어나 자국의 독자적인 이익을 우선시하고자 하는 거죠. 브렉시트로 그 첫발을 당긴 영국도 올해 조기 총선을 치렀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통과된 ‘르완다 정책’은 주변 국가들의 반이주 정서를 들쑤시기도 했죠. 영국은 14년 만에 노동당이 정권교체를 이뤘습니다. 노동당은 친기업적 행보, 불법 이주자 대응 강화 등 기존의 좌파 색깔을 지운 ‘우클릭 공약’으로 민심을 얻었습니다.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 나이젤 패라지도 선전했습니다. 영국이 상당히 극우화되고 있음을 실감하시겠죠. 대서양을 건너면 11월 대선을 치르는 미국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극적인 총격 사건을 겪으며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는데요. 바이든 현 대통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후보 퇴진 요구가 나올 정도로 지지율이 저조합니다. 바이든 임기 동안 경제가 회복됐다곤 하나 민생이 실감할 정도는 아니며, 그에 따라 이주자에 대한 불만과 경계는 강화됐습니다. 바이든은 젊은 진보 유권자들의 민심을 크게 잃었습니다. 비인륜적일 정도의 이스라엘 지원과 흑인, 성소수자 등 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주요한 원인입니다. 바이든은 극우화된 유권자의 마음도 돌리지 못했고, 지지층이 기대한 극우화 방지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선거 소개에 극우화란 단어가 유독 많이 나온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극우화의 원인, 유럽과 우리나라의 극우화, 극우화를 방지하는 선거제도에 대해 차례로 논해보겠습니다. 🧭글 보러가기 #2 극우는 ‘이것’을 먹고 자랐다 ‘유럽이 우경화된다’는 말, 익숙하게 들으셨을 겁니다. 시리아발 난민 위기, 브렉시트를 지나며 꾸준히 언급된 주제이지요. 민주주의와 선진성의 표상이었던 유럽의 변화가 심상치 않은 건 확실해 보입니다. 이번 꼭지에서는 ‘유럽의 우경화’라는 현상이 나타난 배경과 국제 사회에 가져올 영향을 함께 보겠습니다. 극우가 약진하는 원인은 대개 세 가지로 꼽힙니다. 고물가, 경제난, 그리고 이민 정책입니다. 유럽과 중동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전쟁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에너지난을 가져왔죠. 여기에 강력한 환경 규제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농가 부채는 증가했고, 농민들은 트랙터 시위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두드러진 갈등은 ‘난민’입니다. 소도시와 지방을 중심으로 난민이 수용되면서 주민들의 반감은 커졌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우호적이었지만, 경제난이 길어지자 난민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여론이 우세했습니다. 물론 외부의 변화가 전부는 아닙니다. 기존 집권 세력이 추진해 온 ‘정치적 목표’에 더 집착한 나머지 국민을 설득하거나 민생을 수습하는 일에 소홀했고, 극우는 이런 빈틈을 파고든 것이죠. 프랑스ㆍ영국ㆍ이란에서 잇따라 치러진 선거에서도 “민생을 실패한 정부는 필패한다”는 메시지가 증명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극우 정당은 이민과 국경 통제와 생필품 부가가치세 폐지 등의 정책으로 민심을 달랬고 유권자는 응답했습니다. 극우는 혼란한 세상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극우는 단순히 우파 가장자리가 아닙니다. 인류가 오랜 시간 발전시킨 인권·자유·평화의 가치를 경시하는 세력입니다. 이에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각자도생이 거세질 거라는 우려가 큽니다. 함께 해결해야 하는 기후, 전쟁과 난민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겠죠. 여성 인권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선 만 명이 넘는 여성은 극우 집권으로 임신 중지권이 타격받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답니다. 자유주의의 승리를 상징하는 공간인 유럽에서 고립주의를 지지한다면, 서구를 비롯해 한국에 가져올 악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 보러가기 #3 한국의 ‘뿌리 깊은’ 극우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볼까요. 올해 총선에서는 범야권이 192석을 차지하며 보수당이 참패했지만, 윤석열 정부와 2030 남성 유권자들의 우경화는 확연히 두드러집니다. 대통령은 공적 발언에서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며 정치적 반대자와 반국가 세력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극우 성향 인물을 공공기관장이나 중앙부처 장관으로 임명하기도 했죠. ‘외부’ 요소가 침범해 ’내부‘를 위협한다. 극우가 사람들의 분노를 동원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레임입니다. 사회적 긴장에서 비롯된 불안을 이권을 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거죠. 여기서 외부 요소는 극우 세력이 규정한 표준 시민을 벗어나는 존재라면 모두 포함됩니다. 동성애, 페미니스트 등에 대한 혐오 행동과 담론이 크게 퍼진 이유입니다. 앞서 보았듯 유럽의 극우는 이민자를 외부의 존재로 낙인찍었는데요. 한국 극우의 뿌리엔 반공이 있습니다. 이념 전쟁이 남긴 분단 체제에서 정부가 수립된 만큼 반북·반공의 뿌리가 깊죠. 한국 극우의 특징은 또 있습니다. 보수와 극우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보수 정부가 극우 성향을 드러낸 건 이번 정부만이 아닙니다. 보수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있어요. 민주화 백래시로 등장한 극우 단체가 ‘빨갱이 척결’ ‘동성애는 악마‘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울 때, 보수는 이들과 구분되면서 진보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만한 정치적 의제를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보수 엘리트들은 극우 정치를 간혹 우려하고 때론 거리를 유지하지만, 결국은 용인하고 엄호하죠. 충성심 높은 유권자를 확보해 보수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최근 극우의 새로운 지지층인 2030 남성은 안티페미니즘을 축으로 강하게 결집합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모은 건 새로 등장한 극우 정당이 아닌 보수정당이었습니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간판 공약으로 제시하고 구조적인 성차별을 부정하는 등 극우 남성들에게 적극 어필했죠.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많은 국가의 젊은 세대에서 정치적인 성별 격차가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만큼 격차가 뚜렷한 곳은 없다고 짚었는데요. 대통령은 한국의 성평등 수준이 대부분의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은 묻어둔 채, ‘급격한’ 성평등 추진에 불만을 품은 젊은 남성들을 공략했다고 설명합니다. 극우가 한국 사회에 내린 깊은 뿌리, 그리고 극우와 보수가 하나 되어 자연스럽게 세력을 과시하고 있는 현 상황을 진단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마도 ‘극우에게 동의하지 않는 다수의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겠죠.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희망은 있습니다. 다음 글을 읽으며 그 실마리를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글 보러가기 #4 “어떻게 극우를 막을 것인가” 우리를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에 던져진 질문일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좌나 우가 아닌 ‘극단’입니다. 일부 극단적인 세력이 결집하여 만든 후보, 정당을 국민의 대표로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민의를 반영한다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극단적인 정당, 정치, 이념, 인물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앞서 언급한 유럽 의회 선거, 기억하시나요? 프랑스의 극우 정당인 RN이 대승을 거뒀는데요. 하지만 프랑스의 총선 결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RN이 유럽 의회 선거에서 대승하고 나서,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조기 총선을 선언했죠. 이 총선에서 좌파연합이 RN을 크게 밀어냈습니다. 마크롱의 일방적인 연금개혁과 우경화된 난민법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집권당과 극우 정당의 대안으로 떠오른 좌파연합은 프랑스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프랑스 헌법은 가장 뻔하지만, 가장 명확한 해법인 ‘선거 제도’에 민주주의를 맡겼습니다. 일종의 안전장치를 걸어둔 셈인데요. 물론 이번 조기 총선은 프랑스 국민들의 시민의식, 극단을 막겠다는 정치권의 의지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심에는 ‘제도’가 있습니다. 선거 제도의 힘과 영향력을 다시금 확인한 선거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프랑스 결선투표제, 조금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요. A 후보가 당선되려면 우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의 표를 얻어야 합니다. 1차에서 이미 당선이 확실시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후보가 출마하는 1차 투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겠죠. 이후에는 1차 때 12.5% 이상 득표한 후보들끼리 결선, 즉 2차 투표를 진행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흔히 ‘소신’ 투표라고 부르는, 나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투표가 프랑스에선 가능합니다. 결선투표제의 가장 큰 효용은 극단주의의 집권을 막는다는 데 있습니다. 극단적인 소수의견의 과대 대표를 방지하는 것이죠. 유권자들이 광범위하게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는, 결선투표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좌파연합인 NFP(신인민전선)에서 134명, 범여권에서 82명이 사퇴한 덕분에 RN과 맞붙은 280여 선거구 중 200개 이상에서 1대1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결선에서 RN 후보들이 대거 낙선한 이유입니다. 극단을 막기 위한 차악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시민들은 투표장에 나서 선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원 배지를 사수하는 것보다 극단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정치인들의 의지도 인상 깊습니다. 전통적으로 적대적 관계에 가까운 정치 세력이 극우 차단이라는 명분으로 뜻을 모았으니까요. 대의민주주의의 존속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이어서 우리의 선거제도도 다시금 정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프랑스 총선으로 배웠습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정치가 실패했기에 사회가 붕괴한 걸까요, 사회가 실패했기에 정치가 붕괴한 걸까요? 이번 호 딥다이브를 준비한 에디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사실 전 개인적으론 제도로 수습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단 생각이 들 만큼 인간과 사회에 대한 희망을 크게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더 이상 간극을 좁힐 수 없을 것만 같은 여성혐오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의 연속, 인면수심의 범죄, 약자에 대한 동정 대신 조롱과 착취, 부패… 겨우 제도로 이런 인간들을 중화할 수 있을까?건강한 생각은 아니죠.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에디터로서 갖춰야 할 균형 있는 견해도 아닙니다. 그래서 버나드 크릭의 『정치를 옹호함』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크릭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란 다양한 집단의 이해와 이익을 적절히 조정·합의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정치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한 측의 승리만을 위한 지저분한 알력 다툼도, 선전전도 아니란 겁니다. 우리는 정치 없는 정치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합의와 조정보다는 내 몫이, 내 어떤 지위나 주장도 훼손되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풍경. 현재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이며, 이번 호 레터 주제 ‘극우화’의 가장 문제적인 측면입니다. 극우화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보수적 사상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정치 없음’입니다. 인내, 타협, 양보, 사고의 전환,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합의, 그리고 전진. 지금의 정치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정치의 정수…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정치를 되찾아오기 위해서겠지요. 사실 에디터 레터 초반에 언급한 저의 절망의 원인들도 사법적 좌절, 정치적 효능감의 상실, 어긋나는 행정이란 제도적 측면에 걸쳐 있으니까요. 저는 제도가 곧 한 사회의 정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라 생각합니다. 여성과 경제적, 정치적 약자들이 동등한 정치 주체가 아니니까, 내가 소속된 집단을 완벽히 이해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대표자가 선출되지 않으니까.기능하지 못하는 제도를, 동등하게 정치하지 못하게 하는 이 제도를 어떻게 손볼 것인가. 어떤 제도로 어떻게 정치를 되찾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모두가 내 몫을 조금도 빼앗기지 않으려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에, 합의와 조정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여유를 부여할 수 있을까?폴라리스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엔 어떤 답이 준비돼 있나요? 2024. 07. 22 에디터 푸릇🌿 드림  만든 사람들: 푸릇🌿, 해안🌊, 모래🏖️, 반달🌙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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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레퍼런서가 되는 커뮤니티, 창고살롱
서로에게 레퍼런서가 되는 커뮤니티, 창고살롱 W플랜트 창고살롱지기 소영 & 혜영 ‍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답을 찾으시나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을 물색해 보신 적이 있지 않나요? 무엇을 어떻게 하며 나로서 살 것인가가 평생 화두인 필자는 비슷한 인생의 단계를 지나고 있는 여성들의 삶과 생각이 궁금했어요. 그러다 ‘창고살롱’이란 브랜드를 만났죠.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만들고 싶은 여성들의 온라인 멤버십 커뮤니티. 영감을 주는 콘텐츠, 든든하고 멋진 동료, 따뜻하고 진솔한 대화가 가득한 모임. 창고살롱의 살롱지기 두 분을 Table Talk 인터뷰 기회를 빌려 만나보았습니다. | 작년 초, ‘창고살롱’이란 매력적인 네이밍에 이끌려 참가 신청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답니다. 창고살롱 탄생기와 네이밍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2020년 초, ‘엄마인 나’와 ‘일하는 나’ 사이에서 고민이 많던 창업가 교육 동기 두 명이 커피 한잔하던 자리에서 시작됐어요. ‘엄마가 되면서 내 커리어는 끝났다’, ‘선배 워킹맘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고민을 나누다, 우리와 같은 여성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육아 고민이 아닌 ‘엄마의 일’을 함께 고민할 커뮤니티는 당시 거의 없었으니까요. ‘창고살롱’이란 이름은 이 작당 모의가 시작된 성수동 ‘대림창고’에서 이름을 따 왔어요. 한때 버려졌던 공간이 힙한 장소로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아이, 가족 등 누군가에게 나의 시간과 수고를 내어 주느라 자아를 잠시 보관해 둔 ‘나만의 창고’란 의미에서요. 여기에 다른 이들과의 지적인 교류를 통해 에너지를 주고받는 곳이란 점에서 ‘살롱’을 덧붙인 거죠. 코로나 19로 재택 감금에 시달리던 중 일단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첫 온라인 모임을 가졌어요. 8명의 여성이 아이가 잠든 밤 캔맥주 하나씩 들고 모니터 앞에 모였죠. 영화와 책을 소재로 일과 삶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타인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꽉 찬 2시간을 보냈어요. 5회차에 걸친 파일럿 모임을 통해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연결되어 서로 배우며 든든한 위로를 나누는 이 시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바램을 확인했지요. 같은 해 말 첫 정규 시즌을 오픈, 현재 시즌 7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 | 살롱지기 두 분의 창고살롱 이전 스토리와 조인하게 된 배경도 궁금해요. (혜영) 대기업에서 재무와 브랜드전략 일을 했어요. 10년 넘게 워커홀릭으로 지내다 육아로 5년의 경력 공백을 경험했어요. 갑자기 일과 소속이 사라지자 마치 광야에 홀로 선 느낌이었죠. 엄마로서 유연한 시간 활용이 가능하면서도 어느 정도 돈도 벌고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그림책 공부, 테솔 등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러다 구글의 창업 프로그램 ‘엄마를 위한 캠퍼스’와 경력 보유 여성과 소셜 섹터 커리어를 연결하는 ‘임팩트커리어 W’에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들을 만나게 됐어요. 엄마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은, 생계 수단을 넘어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었죠. 이를 계기로 소셜벤처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여성과 일에 대한 인터뷰집을  만드는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진저티프로젝트는 비영리조직에서 함께 일하던 경력 보유 여성 세 명의 스터디그룹으로 시작된 조직이에요. 기존 사회 구조에서 잘 작동하지 않던 문제들을 다양한 각도와 시선에서 고민하고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죠. 책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도 미래 일 고민이 많은 6명의 대학생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여성 레퍼런스를 인터뷰한 대화집이에요. 경력 공백 이후 제 일의 여정은 어떤 스펙이나 자격보다는 사람 사이 연결에서 새로운 기회와 방법이 시작되더라고요. 정답같이 뻔한 롤모델만 추구하기보다, 더 많고 다양한 레퍼런스 서사를 구체화·확산하기 위해 사업화에 이르게 되었죠. (소영) 저는 조인하게 된 계기가 조금 달라요.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이전에 이미 15년의 조직 생활을 경험해서인지, 엄마가 되고 난 후 일에 대한 미련이나 상실감이 그리 크지는 않았어요. 되려 주위에서 교육자이자 리더로서 제 커리어에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양육·가사 아웃소싱을 권하더라고요. 이 시대가, 사람을 키워내고 관계를 돌보는 일도 중요하긴 하지만 커리어는 굉장히 멋진, 놓기 아까운 것이어서 가정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압박을 가하고 있단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제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단계들을 놓치지 싶지 않더라고요. ‘엄마’의 자리에 집중하면서 속도를 조금 늦추더라도 내 커리어를 기반으로 가치 있게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건강한 구조를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던 차, ‘19년 성수동에서 열린 한 런치 세미나에서 혜영 님을 만났어요. ‘일과 여성’이라는 공통의 키워드에서 연결됨을 느껴 메일을 썼고 창고살롱에도 참여하게 됐죠. 처음에는 한 명의 수혜자로 재미있게 출석만 하다가 혜영 님이 창업 멤버들과 헤어지며 창고살롱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서 네 번째 시즌부터 살롱지기로 조인하게 됐어요. ‍‍ | 참여자들을 ‘레퍼런서’라 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의 서사가 레퍼런스가 되는 곳" 창고살롱의 슬로건이에요.  레퍼런스(reference)는 타동사로 ~을 참고하다 혹은 인용한다는 뜻이 있잖아요. 여기에 '~하는 사람'의 접미사 'er'을 붙였죠. 누군가의 고유한 일과 삶의 여정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고하는 사람을 뜻하죠.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 레퍼런서가 될 수 있는 거고요. 나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지속 가능하게 일하고 싶은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 같은 롤모델이 아닌 다양한 레퍼런스라고 <롤모델보다 레퍼런스> 도서를 만들며 생각했거든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구불구불한 길을 걷게 되겠죠. 결혼, 출산뿐 아니라 가족 돌봄, 질병, 번아웃 등으로 커리어를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경로를 재설정해야 하기도 하죠.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 홀로 고민하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각기 다른 상황 속에 비슷한 욕구를 가진 동료들과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연결되어 커리어와 일상에 대한 고민을 건강한 방법으로 나누는 거예요. 한 사람의 서사가 다른 누군가에게 레퍼런스가 되어 길을 모색하는 여정을 함께 하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레퍼런서’가 되어주면서요. | 특별한 느낌을 주는 브랜드 로고와 색감이 인상적인데요, 로고 개발 스토리도 들려주세요. 서비스 론칭 후 로고와 브랜딩에 관심을 많이 표현해주셨어요. 전직 브랜드 마케터로서 무척 감사한 일이었죠. 브랜딩 작업을 할 때, 더 많고 다양한 여성 레퍼런서를 발견하고 서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바람이 슬로건과 로고 디자인에서 메시지로 전달되길 바랐어요. 로고 디자인은 엔터 업계와 소셜벤처에서 일하고 있던 남태리 디자이너와 작업했어요. 창업가의 브랜딩답게 린(lean) 하게 진행했는데, 창고살롱 탄생 배경과 의미, 지향하는 가치를 상세하게 정리해 전달한 후 일주일 동안 세 번의 시안 리뷰를 거쳐 최종안을 결정했죠. 창고살롱 로고는 여성 생애 주기와 커리어에서 마주하는 많은 벽에 문과 길을 내고 가능성을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표현하고 있어요. 살롱 대화를 상징하는 큰따옴표를 문고리 삼아 문을 여는 거죠. 안전한 곳에서의 솔직하고 내밀한 대화를 통해 나의 스토리를 발견하고 다른 멤버에게 레퍼런스가 되어 서로에게 문고리가 되어줄 수 있는 곳을 시각화하고자 했어요. 브랜드 컬러는 주로 밤에 온라인에서 만나는 창고살롱의 분위기를 담아 한밤중 나에게 빛을 비추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과 경험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표현하기 위해 그린 톤을 적용해 다크 그린을 ‘밤 컬러’이자 메인 컬러로 정했죠. 실내조명과 햇빛을 시각화하고자 밤 컬러와 대비되는 페이디드 형광 오렌지를 ‘낮 컬러’로 적용했어요. ‍ | 커뮤니티 운영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요? 창고살롱은 줌(Zoom)으로 주 1회 만나는 온라인 밋업과 커뮤니케이션 툴 슬랙(Slack)을 통한 상시 소통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클로즈드(closed) 방식으로 운영되어 멤버들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각 시즌 정규 프로그램은 책과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스토리 살롱’과 연사의 발표와 질의응답으로 진행되는 ‘레퍼런서 살롱’, 그리고 창고살롱 밖 게스트의 이야기를 나누는 ‘스페셜 살롱’ 등으로 구성돼요. 레퍼런서 살롱 연사는 셀럽이 아닌 나와 비슷한 평범한 주변 인물을 섭외해 그의 고유한 일과 삶 서사가 한 가지 주제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어요. 발표 후에는 ‘레퍼런서가 레퍼런서에게'라는 질문과 소감 나눔 시간을 갖는데 one way 강연이 아닌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소통의 자리가 되도록 발표와 대화 비중을 1:1로 맞추고 있지요. 일방적인 성공사례 소개나 how to 방법론을 전달하기보다, 자기 생각을 언어로 정리하고 표현해 자극을 주고받으며 각자가 얻어갈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라거든요. 이 외에 구성원의 자발적 주도로 운영되는 ‘소모임 살롱’이 있어요. 창고살롱에 참여하는 레퍼런서라면 북클럽, 워크숍, 리추얼 등 멤버들과 나누고 싶은 것, 함께 시도해 보고 싶은 어떤 것이든 개설할 수 있어요. 다양한 실험을 무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로, ‘나만의 얼라이 그룹(allies group)’을 지향하며 자체 확산 중이에요. 스토리살롱 전·후 간단한 과제가 있는데, 공지와 과제 제출 외 소통은 슬랙을 통해서 이루어져요. 각 주제와 질문에 대한 생각, 진심 어린 후기와 멤버들의 취향과 관점이 담겨있는 콘텐츠 추천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슬랙에 차곡차곡 쌓이죠. | 4년차를 맞이한 현재까지의 성과를 자평하자면? 시즌별 참여 가능 인원은 50명 이내로 정해두고 있어요. 레퍼런서 멤버 수로 외적 성장을 말하긴 어려운 구조에요. 재가입 비율은 대략 55%에 이상이고요. 신규 멤버도 꾸준히 유입되는 가운데, 시즌을 거듭하며 구성원 간 연결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껴요. 꾸준히 참여하는 분들의 피드백을 보면, ‘이곳이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만남. 시공간을 초월한 다채로운 레퍼런서들과의 진짜 연결을 통해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변화를 경험했다’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창고살롱에 참여하며 이직, 커리어 전환 등 방향성의 변화를 경험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 긴 호흡에서 서로의 서사를 공유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인 것 같아요. 육아휴직 중 가입한 분들 중 둘째 생각을 하시는 멤버가 많아진 것도 재밌는 부분이에요. 매체에서 소비되는 워킹맘은 힘들고 소진된 민폐 캐릭터일 때가 많잖아요. 창고살롱에서는 서로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과 지속 가능한 방법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성과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어요. 프로젝트 그룹을 자생적으로 형성하며 그 안에서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오프 시즌 소모임 살롱에서 시작된 굿즈 프로젝트가 그 예죠. #당신의해시태그 소모임살롱에 참여한 멤버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세 명이 모여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다양한 살롱에서 나눈 대화 속 레퍼런서의 말들을 모아 엽서와 스티커 등 창고살롱 굿즈를 만들었어요. 외부에서 받은 약간의 자금으로 시작해 판매까지 이르는 과정을 기록해 남기기도 했지요. 이 외에 창고살롱 레퍼런서가 필진으로 참여하는 유료 뉴스레터, ‘레퍼런서의 글’도 런칭했어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멤버들이 모여 유료 콘텐츠 서비스를 실험해 옮겨본 거죠. 작은 도전이지만 함께 실행해보는 과정에서 얻은 배움과 자신감은 큰 수확이었던 것 같아요. ‍ | 좀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으로 대상을 확장할 계획도 있으실까요? 여성의 일과 삶이라는 주제에 유료 가입이라는 구조라, 아무래도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분들이 주로 모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멤버 구성을 보면 30~40대 유자녀 기혼 여성 중 워킹맘 또는 일을 구상 중이거나 찾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처한 상황이 달라도 공통적으로 일과 삶 두 가지 모두 잘 해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도 느꼈어요. 창고살롱 2년 차에 싱글맘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 자리에 모인 싱글맘들의 스토리도 각기 다양했는데 그분들의 일과 삶에 대한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또 각자의 다름 속에 서로 어떤 불편함 없이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저도 새롭게 배우는 시간이었죠. 아이들이 기관에 가 있는 시간을 활용하고 싶은 여성들의 낮 살롱에 대한 요청도 꾸준히 있었는데, 정작 오픈해도 모집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왜 그런가 여쭤보니, 일을 온전히 쉬고 있거나 가정주부인 경우 멤버십 비용이 부담되는 거였어요. 이해가 되더라구요.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투자하기에 큰 비용으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막상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면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주부나 휴직자들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굉장히 좋은 결과물도 많이 내시는데, 이 타깃 그룹을 위해 민간/공공 기관과 B2B 형태의 일도 많이 벌여야겠다는 인사이트를 얻었죠.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더 많은 분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고 싶어요. 이외에도 기업의 육아휴직 전후 임직원, 조직 생활 이후 삶을 고민하는 4050 중장년층이 잠재 수요자로 확인되고 있고, 딸 키우는 아빠나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편과 같이 가족과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개인인 동시에 조직과 사회에 직접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존재들에게 확장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 | 사회상의 변화가 워낙 빠르다 보니 한때 새롭게 느껴지던 것들도 금세 유효기간이 다하곤 하죠. 이에 따른 운영상의 고민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시즌을 거듭하며 오프 시즌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요. (웃음) 처음 사업 구상 시점과 달리 예상치 못한 팬데믹 때문에 방구석 창업으로 플랜이 바뀌면서 온라인 커뮤니티가 되었는데 이제 또 포스트 코비드 시대죠. 당시는 밤 살롱이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구멍이었는데, 일상에 복귀하고 오프라인 세상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부담이겠다 싶었죠. 무리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방식과 거리가 있으니, 시그니처 살롱과 소모임 살롱을 분리해 회차 간 간격을 충분하게 확보하도록 변화를 주었어요. 또 오프라인 밋업에 대한 니즈가 많아져 지난 시즌부터 연말 파티 등 오프라인 밋업도 추가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 입주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한 결정이었죠. 소셜 생태계 현장에 들어가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연결을 확장한다면 창고살롱 레퍼런서들에게도 더 많은 경험과 기회를 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여전히 해외나 지역에 거주하는 멤버들도 많아서 온라인 외에는 참여가 어려운 분들도 계세요. 온·오프 통합으로 가되, 오프라인 밋업 시 줌으로 현장 생중계를 하거나 별도 온라인 밋업을 추가로 진행하는 등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 ‍ | 두 분이 창고살롱과 함께하며 경험한 변화, 그리고 꿈꾸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요? (혜영) 사적인 경력단절 경험과 지속 가능한 일과 삶에 대한 열망이 비즈니스의 주제가 되다 보니 이후 삶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해 매 시즌 주제가 정해지고 있어요. 어쩌면 일과 삶의 분리가 안 되는 제게 딱 맞는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 방식인 것도 같아요. 창고살롱을 시작할 당시는 포기했던 것들에 대한 억울함에 한 번 해보겠다는 마음이 컸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차 편안해지며 시야가 확장되는 것을 느껴요. 커리어와 가정이 제로섬 게임이 아닌 것을 알게 됐거든요. 삶의 단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역할과 가치에 무게감의 조정이 일어나고 시간의 단차가 생기는 것뿐이죠. 비록 사회는 아직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장기적 바람은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노년까지 현역으로 일하는 거예요. 노바디(nobody)였던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시즌1 멤버 모집 공지를 올리자마자 첫 번째로 가입해주신 지리산 산청의 레퍼런서 은진님이 계세요. 이분이 ‘돈 주고 친구를 샀다’란 제목으로 창고살롱 내돈내산 후기를 브런치에 써주셨었어요. 내향적인 이방인 성향이라 항상 외로웠는데 창고살롱에서 편견 없는 따뜻한 관심에 처음으로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쓰셨더라고요. 이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혜영 님, 노년살롱까지 하셔야죠.’ 이후 실버살롱이 장기 목표가 된 것 같아요. (소영) 혜영 님이 뚫고 나가는 과정 속에 변화를 경험했다면, 저는 느린 속도로 완만하게 삶의 전환을 받아들여 온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레퍼런서의 다양한 스토리와 실험을 바탕으로 저희 뒤에 오는 여성들이 불안해하고 버거워하는 대신 소중한 이 시간을 좀 더 행복하고 충실하게 살아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창고살롱이 여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요. 대화와 공감도 중요하지만 현실로 이어져야 진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높은 기준이나 조바심은 조금 내려놓고 ‘자신을 진짜 살게 하는 것’을 찾도록 돕는 거울 같은 역할,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과 방법론을 탐색해 지금 나의 현장에서 시도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 리턴십(returnship) 등 실행을 돕는 프로그램을 구체화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우리의 비전을 정리하자면 #지속_가능함, #실험의_다양성과_스케일업, #현실적이고_직접적인_실행, #1인1커뮤니티, #노년살롱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창고살롱이 점차 1인1커뮤니티 체제로 활발하게 굴러가게 되면 더 다양한 주제와 실험이 가능해질 테고 저희도 즐겁게 참여만 하면 되겠죠. (웃음) ‘소모임 only’로 진행됐던 시즌3.5에는 총 75건의 소모임이 개설됐었어요. 불가능한 계획은 아닐 것 같아요. 지속 가능한 여성의 일과 삶이란 워딩은 우아해 보이지만, 현실은 상시 머릿속에 캘린더가 몇 개씩 돌아가야 하는 백조 같은 것이죠. 이게 아닌 것 같은 고민의 순간들에 서로의 레퍼런스를 공유해 나다운 길을 찾고 함께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글 | 김지선 ‍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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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빈 세 번째 기일… ‘대한민국’의 자리는 여기 없다 [대한민국 ‘생존비’ 청구소송 5화]
추위에 떠는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떨리는 그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줄은. “구조 요청! 혼자 있어, 혼자. 엄청 추워요. 주마(등강기)가 필요해, 주마. 주마 두 개 정도 필요해.” (2021. 7. 19. 김홍빈 대장 마지막 구조요청) 한 방송국은 김홍빈 대장의 등반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김홍빈 원정대의 도전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김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이다. 하지만 김 대장은 하산길에 찾아온 불행을 막지 못했다. 2021년 7월 19일, 그는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 중 실종됐다. 김 대장과 함께했던 원정대원들은 그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다. 원정대는 함께 식사할 때 사용하던 알루미늄 접시로 김 대장을 위한 추모판을 만들었다. 김 대장과 한솥밥을 나눠 먹던 그 접시다. 추모판에 “김홍빈 Broad Peak에 영원히 잠들다”라는 문구를 새겼다. 김 대장을 브로드피크에 남겨두고 떠나지만, 그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원정대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K2 추모탑(k2 Memorial)에 추모판을 설치했다. 밥도 지어 올렸다. 한 대원은 절을 올리며, 절규에 가까운 통곡을 했다. 지난 13일 진행된 ‘고(故) 김홍빈 대장 3주기 추념식’에서 이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추념식에서 상영된 영상 ‘故 김홍빈 대장의 삶’에선, 김 대장의 마지막 등반 모습과 함께 떠났던 대원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영상 속 김홍빈 원정대의 울음소리가 추념식이 열린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3년 전인 2021년 7월 18일. 김 대장이 ‘최초’의 기록을 만든 그날. 기자 역시 TV에서 김홍빈 원정대의 소식을 접했다. 원정대는 브로드피크 등반을 통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돼주고 싶다”고 약속했다. 김 대장이 브로드피크 등정에 성공했을 때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로 신문과 방송에서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분위기는 뒤집혔다. 뉴스는 그의 실종 사실로 도배됐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김 대장의 무사귀환을 기원했지만, 그 염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대장은 결국 히말라야에서 잠들었다. 기자가 기억하는 김 대장 소식도 거기서 끝이었다. 김 대장의 실종을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그쯤에서 잊고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원정대에게 닥칠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도 동상을 입어보고, 주변에는 (등산하다 동상으로) 손가락 잘린 후배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홍빈이 손은 보기가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 아직도 홍빈이 카톡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활짝 웃고 찍은 사진이 앞에 (카톡 프로필) 표지로 돼 있습니다. 그걸 지금도 한번씩 들여다봅니다.” (산악인 최○○, 2024. 7. 13. 김홍빈 3주기 추념식) 김홍빈 대장의 마지막 원정으로부터 2년 뒤인 지난해 7월. 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故 김홍빈 대장 구조비 소송.. 정부, 승소하고도 항소” 내용은 이랬다. 원고 대한민국이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비용을 내놓으라며 김홍빈 원정대를 상대로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대한민국이 청구한 구조비용만 약 6800만 원. 김홍빈 대장을 살리지도 못한 실패한 구조작전 비용을, 생사의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원정대원들에게 고스란히 지운 상황. 1심 법원은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원들에게 비용 일부(약 3600만 원)를 나눠서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원고 대한민국은 구조비용 전액을 돌려받아야 한다며 지난해 7월 항소했다. 기자의 머리를 스치는 의문은 한 가지였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건 당연한 책임인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가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구조비 청구 소송을 다룬 많은 기사들 사이에, 한 가지 없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바로 원정대원들의 목소리.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들어야만 했다. 김홍빈 원정대의 시작과 끝을 모두 지켜본 목격자들이자, 원고 대한민국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당사자들이니까. 이들만이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 길로 원정대원들부터 찾아 나섰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에서 시작된 사건을 취재하는 건 역시 쉽지 않았다. 광주광역시산악연맹도, 유가족도 기자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지쳐 보였다. 한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시작된 구조비 소송. 정부 측을 비판하는 국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여유는 사라지고 경계만 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대장의 이름 뒤에 ‘구조비용’이란 단어가 따라붙는 상황 자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거라 짐작한다. 그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됐지만, 그래서 더욱 기사를 써야만 했다. 유가족과 산악연맹, 그리고 피고 당사자들까지 모두 말을 아끼고 몸을 사리게 만든 건 모두 ‘소송’ 때문이니까. 그리고 그 소송을 제기한 대한민국 때문이니까. 또 다른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선 김홍빈 원정대의 소송을 선례로 남겨선 안 된다는 목표가 생겼다. 오랜 취재와 설득 끝에, 지난 6월 첫 보도를 시작했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항소심 결심재판을 앞두곤, “원고 대한민국의 소송비용 청구를 기각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도 직접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셜록 보도 이후, 일명 ‘김홍빈 대장법’도 발의됐다. 지난달 10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광주 광산구을)은 국민이 국위선양을 하다가 해외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국가의 비용 부담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영사조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산을 보면 김홍빈 대장님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영원히 산이 됐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 김 대장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구상권과 관련된 소송이 조금 문제가 있는 상태입니다. (일명 ‘김홍빈 대장법’을) 민형배 의원님이 대표로 발의하시고 저는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려서, 제도적인 부분에서 재발을 방지하는 일을 국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024. 7. 13. 김홍빈 3주기 추념식) 지난 토요일(13일)에 광주에서 열린 김홍빈 대장 3주기 추념식도 다녀왔다. 이날 추념식에서, 김 대장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던 김홍빈 원정대 대원 세 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정인복(가명), 유현철(가명), 정민식(가명)이다. 2021년 사고 당시엔 코로나19 격리 방침에 따라 김 대장의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했던 그들이다. “(실종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김홍빈 대장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까지도 말입니다.” (산악인 정인복 2024. 3. 19. 인터뷰) 원정대원들은 추념식 날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모든 참석자들이 다 떠난 뒤에도 이들은 체육관에 머물렀다. 김홍빈 대장과 함께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례식에도 오지 못했다는 한이 남아서일까. 그들은 마치 스스로를 상주(喪主)로 여기는 듯했다. 김 대장의 얼굴이 실린 현수막도, 그의 업적이 기록된 책자도 이들이 직접 나서 손수 정리했다. 김 대장의 마지막 순간을 추모판에 기록했던 것처럼, 추념식의 마지막 뒷정리도 모두 이들 손에 의해 이뤄졌다. 김홍빈 대장에게 훈장을 주고, ‘스포츠 영웅’으로 헌액하고, 현충원에 위패를 봉안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갔을까. 어째서 지금은 김홍빈 대장을 잃은 원정대원들에게 구조비용을 물어내라는 대한민국만 남아 있는 걸까. 추념식 현장, 김홍빈 대장의 얼굴 앞에 걸린 태극기가 괜시리 원망스럽다. 김홍빈 대장도 잃고 구조비용 수천만 원도 짊어진 원정대원들. 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 동료를 잃은 슬픔조차 회복하지 못한 이들에게…. 오늘(19일)은 김홍빈 대장의 세 번째 기일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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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번의 ‘진심’… 씁쓸함과 온기가 교차한 그날 대법원 [이시우, 향년 12세 6화]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로 살다보면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재판 있을 때마다 찾아와줘서 감사해요, 기자님.” 그러면 나는 “회사에서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 덕분”이라며 겸손하게 답하는 식이었다. 일주일 전 대법원에 갔을 때는 김정빈(가명) 씨가 내 손을 맞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자긍심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느껴졌다. 정빈 씨 손을 잡고 “어머님께서 고생 많으셨다, 다음 재판에 또 오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시우, 향년 12세’ 프로젝트는 제보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2월 계모와 친부의 학대와 방임으로 열두 살 시우가 숨을 거둔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 안타까운 죽음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사건 발생 이후 약 반년 동안 무려 650여 건(네이버 기준)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정치권도 움직였다. 국회는 사건 이후 반년 사이 4개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런 관심이라면 이제라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안전한 울타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내가 이시우 군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한 때는, 시우의 1주기 기일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언론의 뜨거운 취재 열기도, 정치권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라는 시우의 친모 김정빈(가명) 씨의 말. 그의 곁에는 소수의 그 지인들만 남아 그를 지키고 있었다. 아직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도, 어딘가에서 학대받고 있을 또 다른 아이들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채로.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피해자는 영유아가 많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3년간(2020~2022년) 아동학대로 사망에 이른 아동 총 133명 중 102명이 영유아였다. 그에 반해 시우는 열두 살이었다. 이웃 주민,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그 고통을 털어놓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시우는 주변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고통을 감내했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도 숨죽여 아파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도 세상에는 괜찮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시우를 ‘계모로부터 학대당하다 사망한 안타까운 초등학생’이 아닌, ‘우리 사회에 아동권리의 경종을 울린 고마운 아이’로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도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정빈 씨를 만난 지난 1월 31일. 그의 곁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다섯 명의 시민들이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온라인 카페를 통해 맺은 인연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서울고등법원 정문에 모여 피켓을 들었다. 시우 사진이 프린트된 판넬에는 ‘부디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부탁드린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추위에 손끝이 붉어지도록 서 있던 이들은 한 시간가량 시위를 마치고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언 손을 녹였다.(관련기사 : ‘향년 12세’ 시우의 첫번째 기일… 엄마는 법원 앞에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7월 11일에도 정빈 씨 곁을 지켰다. 그날 법정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빈 자리도 몇 군데 남지 않았고, 인파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지난해 이시우 군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으니 그만큼 기자들도 대법원의 판결에 관심을 가지리라 생각했다. 그들보다 기사를 잘 쓰고 싶다는 긴장감도 생겼다. 순간 법정에 환호성이 일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9년간 법적 다툼을 이어오던 노동자들이 승리한 것. 이들은 부둥켜안고, 밝은 표정으로 법정을 나섰다. 그러자 썰물처럼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쓸려 나갔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사람들만 법정 안에 남았다. 정빈 씨는 방청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다가 맨 앞 줄로 이동했다. 정빈 씨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기도했다. 바라는 건 딱 하나. 가해자들이 다시 재판을 받게 하는 것. 앞선 항소심에서 계모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 친부에 대해 상습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열두 살의 나이에 고통스럽게 죽어간 시우 군을 떠올리면 천벌도 부족하다는 게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원심 판결 중 피고인 A(계모)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전향적인 판결이었다. 그동안 피고인들에게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 ‘아동학대살해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만 적용받았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아동학대살해죄 여부를 다시 다툴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A가 “지속적이고 중한 학대행위가 다시 가해질 경우 피해아동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내지 위험이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살해죄에서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판'이 뒤집혔다.(관련기사 : “살해의 미필적 고의 있다” 대법원, 시우군 사건 ‘반전’) 그 순간 정빈 씨는 힘이 빠졌는지 허리를 반쯤 굽혔다. 손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고 쉬지 않고 1인시위를 해온 지난날이 떠올랐을까. 한 번 더 가해자에게 죄를 물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시우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와 한 발짝 떨어진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섯 걸음쯤 내디딘 정빈 씨는 나와 눈이 맞주쳤다. 붉어진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다. 여태 표정을 지우고 울음을 참아내던 정빈 씨가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감정들을 이제야 쏟아냈다. 그는 그날 법정을 찾아준 이들과 모두 포옹을 나눴다. 정빈 씨가 다가가 손만 잡아도, 어떤 이는 눈물을 훔쳤다. 뭉클했다. 다만 부끄러웠던 건 재판이 시작하기 전에 걸었던 기대 때문이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던 인파들. 그 틈에 나 말고도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대법원 선고를 취재하러 온 기자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빈 씨도 그런 기대를 했을까. 예상은 빗나갔다. 기자는 나뿐이었다. 사건 초기 반년간 650여 건의 기사가 쏟아진 것을 기억한다. 그에 반해 대법원 판결 이후 일주일간 발행된 기사는 세 건에 불과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쓴 거다. 사건 초기 뜨거웠던 취재 열기는 금세 식어버리고 말았다.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열 명 남짓한 이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이들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다.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간 2월 19일부터 7월 11일까지 총 237건의 진정서, 엄벌진정서, 엄벌탄원서가 접수됐다. “시우가 내 아들과 동갑”이라서, “우리 아이 같아서”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손을 맞잡은 이들을 ‘나’라도 지켜주고 싶었다. 사건 이후 약 18개월이 지났지만 가해자에 대한 형사 재판은 진행 중이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소송 역시 진행 중이다. 겨울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29일간 등교하지 않았던 시우. 시우는 겨울방학이 끝나고 약 일주일 뒤 사망했다. 하지만 학교와 교육청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관련기사 : 아이가 죽고 ‘죄인’이 된 엄마, 국가에도 책임 묻는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돌아온 아이. 정빈 씨는 시우의 죽음 이후, 아이를 먼저 데려오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죄인이 된 엄마는 죽어서 시우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 ‘엄마가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기 위해 1인시위를 하고 법원을 찾아다닌다. 아이를 잃고 18개월이 지난 지금도 피 말리는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아동학대 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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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렉카 해결방안① : 수익 창출 중지
서니조의 ‘사이버 렉카 해결방안' ① 수익 창출 중지 ② 젠더 기반 폭력 근절 ③ 표현의 자유 다시 생각하기 유튜브가 유튜버 ‘쯔양’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 유튜버 ‘구제역’, ‘카라큘라’, ‘전국진’ 채널의 수익 창출을 중지했습니다. 구제역, 카라큘라, 전국진은 쯔양의 과거 사생활 폭로를 미끼로 그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서로 논의하고, 실제로 쯔양에게 접근해 돈을 요구한 정황이 알려졌습니다. 유튜브 관계자는 이들이 “크리에이터의 책임에 관한 정책을 위반”해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 참여가 정지됐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실제로 유튜브 이용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유튜브 정책’ 내용 중엔 크리에이터가 유튜브 안팎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크리에이터의 책임으로 명시한 내용이 있습니다. 유튜브가 이런 가이드라인을 실제로 적용해, 문제의 유튜버들이 유튜브로 수익을 내지 못하도록 만든 사례인 것입니다. 사이버 렉카의 적 ‘수익 중단’ 유튜브가 취한 ‘수익 중단’이라는 제재는 사이버 렉카(cyber wreck-car)의 프로세스 체인(process chain) 중 하나를 끊는 것입니다. 사이버 렉카의 행동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주목과 관심 끌기] → [조회수 높이기] → [수익 얻기].  사이버 렉카는 간단히 말해 이슈를 쫓아다니는 이들 입니다. 이들은 왜 이슈를 쫓아다닐까요? 돈 때문입니다. 주목을 끌거나 조회수를 높이는 것에 관심있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것 자체가 돈이 됩니다. 미국의 학자·저술가인 마이클 골드하버(Michael H. Goldhaber)가 말한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라는 개념을 되짚어 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그 작동원리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에 예민합니다. 광고비 때문입니다. 시청률은 해당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광고 효과를 높이려는 광고주들은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을 찾습니다. 또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의 광고 비용이 더 비쌉니다. 시청률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즉,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것 자체가 돈이 되는 세상입니다. 주목 경제라는 개념은 단순히 ‘사람은 돈이 된다’는 설명에 그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목(attention)이 제한된 자원(an intrinsically scarce resource)’이라는 점입니다.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주목은 중요 자원이 됩니다. 골드하버가 말한 방식대로 설명한다면, 당신이 캠페인즈에서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은 사이버 렉카를 다룬 시사프로그램이나 학술지 논문이 아닌 이 글에 당신의 주목을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을 더 써서 시사프로그램도, 논문도 다 볼 수 있겠지만 시간은 물론 주목 또한 제한돼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디지털 환경에선 시사프로그램이나 논문 말고도 그외 각종 여러분의 주목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네이버, 유튜브, 넷플릭스와 경쟁해야 합니다. 이때 콘텐츠 제작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값싸고 유해한 것이 바로 선정적· 폭력적이며, 타인과 외부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부추기고, 사실을 왜곡하여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입니다. 어떻게든 주목 경쟁에서 살아남아 든든한 조회수, 구독자수를 가지게 되면 이를 바탕으로 광고를 붙이거나 후원을 받아 돈을 벌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유튜브가 할 수 있는 주요한 제재가 수익 창출 중단인 것입니다. 사이버 렉카 문제는 플랫폼이 나선다고 다 해결되진 않지만, 플랫폼이 나서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플랫폼은 콘텐츠가 생산·유통·소비되는 각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주체이면서, 그중에서도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최종 창구이기 때문에 더욱 더 높은 책임성이 요구됩니다.  유튜브는 2017년 8월 일명 ‘노란 딱지(yellow dollar sign)’ 정책을 도입하여 문제적 영상에 대해 수익 창출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욕설, 폭력적이거나 충격적인 콘텐츠, 혐오 또는 증오성 콘텐츠 등이 수익 제한된다고 가이드라인에 명시돼 있습니다.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사이버 렉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플랫폼도 거대한 사이버 렉카라면? 사실 유튜브가 지금까지 선제적으로 사이버 렉카 문제에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2022년 2월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였던 BJ잼미의 극단적 선택에 특정 사이버 렉카의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뒤로 별다른 조치는 없었고, ‘가로세로연구소’라는 유튜브 채널 또한 유명인의 사생활을 폭로하거나 사고 현장을 찾아가 충격적 영상을 전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는 지적이 계속됐으나 2022년 1월 1주일 간 다른 이유로 영상 업로드 중단 조치를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연예인들을 저격하는 방식으로 이슈를 만드는 사이버 렉카들의 경우에도, 최근 ‘탈덕수용소’ 사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유튜브의 모회사 구글(정확히는 유튜브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 Inc.)의 자회사 구글)이 이들에 대한 신원 확인을 거부하면서 한국 연예인과 기획사에서 제대로 법적대응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유튜브가 나서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돈 때문일 것입니다. 유튜브가 ‘노란 딱지’를 도입한 것은 2017년 ‘애드포칼립스(Adpocalypse)’ 이후입니다. 광고를 뜻하는 ‘ad’와 세계의 종말을 뜻하는 ‘apocalypse’의 합성어인 이 표현은, 주요 광고주들이 유튜브에서 대거 광고를 빼냈던 일련의 사건들을 말합니다.  2017년 3월, 미국의 통신 회사인 AT&T와 Verizon, 제약 회사인 GSK, 펩시, 월마트, 존슨앤존슨 등이 유튜브에서 광고를 철수하게 됩니다. 이들의 광고가 테러리즘이나 증오를 부추기는 동영상에 게재된 데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이때 구글은 광고주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광고를 집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광고주 친화적 콘텐츠를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노란 딱지’를 도입하게 됩니다. [주목과 관심 끌기] → [조회수 높이기] → [수익 얻기] 라는 사슬에서 유튜브도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를 하나의 거대 플랫폼이라고 본다면 ‘유튜브’도 이 사회에 입점해있는 하나의 채널일 뿐입니다. 유튜브의 프로세스 체인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있다면, 사회라는 플랫폼 속 책임자가 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사이버 레카 개인에게는 해당 사안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고 콘텐츠로 얻은 이익을 전부 회수하는 것이 대처방안이 될 수 있고, 유튜브에 대해서는 콘텐츠 관리 책임을 물어 벌금을 부과하거나(독일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법 집행 개선을 위한 법률(NetzDG)’의 사례) 광고주와 협력하여 또 다른 애드포칼립스 국면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경을 뛰어넘는 플랫폼인 유튜브를 제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거대 사이버 렉카가 될 수도 있는 유튜브에 어떤 제재가 필요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2019년 노란 딱지가 정쟁으로 소비되고 만 적이 있습니다. ‘보수 유튜버에만 노란 딱지를 붙인다’는 이야기를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주장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사이버 렉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만큼, 이를 정쟁으로 소비하기 보다는 돈·광고비와 조회수의 기형적 공생관계에 대해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주목으로 돈을 버는 행위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사이버 렉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의 클릭베이트(Clickbait), 낚시성 기사는 사이버 렉카와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슈로 돈을 버는 일이 지금 우리 사회에 얼마나 해로운지, 사회 전반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우리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고나린. (2024, July 17). 사이버렉카 ‘혐오 비즈니스’…유튜브는 수수방관? 한겨레. 금준경. (2022, February 10). 독일법 있으면 ‘사이버렉카’ 유튜버 잡을 수 있을까. 미디어오늘. 남해인, & 신은빈. (2024, July 15). ’쯔양 사태’로 드러난 “사이버 레커” 민낯…처벌 “벌금 몇백만 원.” 뉴스1. 박재영. (2024, June 28). 유튜버 한탕주의 가짜뉴스 뿌리 뽑겠다. 매일경제. 이가혁. (2019, October 24). [팩트체크] “유튜브 노란 딱지” 보수 유튜버만 죽인다? JTBC.  이선명. (2024, July 3). [단독] BTS·뉴진스 조롱 확산에도 하이브 법적대응 연거푸 ‘물거품.’ 스포츠경향. Goldhaber, M. H. (1997). The attention economy and the Net. First Monday. Solon, O. (2017, March 25). Google’s bad week: YouTube loses millions as advertising row reaches US. The Guardian.
디지털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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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조치 했다고 새마을금고 면죄부? “엉뚱한 소리!”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18화]
감사원이 1500억 원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에 대해 행정안전부의 관리·감독 책임을 묻는 공익감사를 종결했다. 행안부가 ‘사후조치’를 했으니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반쪽 검토 결과”라며 감사원의 종결처리 결정을 규탄했다. 이들은 지난 4월 23일 감사원에 행안부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사채왕’ 김상욱(52) 일당의 1500억 원대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 대출이 발생했을 당시 행안부가 관리·감독 책임을 다했는지 조사해달라는 취지였다.(관련기사 : “사채왕 김상욱 하나에 휘둘리는 이게 나라입니까!”) 감사원은 감사 청구 취지에서 벗어난 답변을 내놨다. 감사원은 행안부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새마을금고중앙회 내규를 개정하는 등 사후조치를 했기 때문에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감사원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 이번 종결처리는 감사원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답변으로 행안부가 책임을 회피하도록 해준 것”이라며 “감사원은 시민사회가 제기한 사안에 대해 분명하게 감사를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그야말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1500억 원에 달하는 불법대출이 적발된 후에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발 방지 대책을 강화했다고 해서 그 전에 관리·감독의 부실로 인한 사건까지 책임이 면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참여연대 실행위원인 서성민 변호사도 “과거부터 있던 명확한 문제에 대해 관리・감독을 했는지 감사를 요청했는데, 감사원은 쟁점을 회피하는 식의 어이 없는 답변을 했다”고 비판했다. “종남이(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 ‘회장님(김상욱 본인 지칭) 새마을금고가 솔직히 규정이 어디 있습니까? 씨X. (대출) 나가면 다 나가는 거지.’” (2023. 6. 19. 김상욱 통화녹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의 통화 음성파일 900여 건을 입수했다. 음성파일에는 김상욱이 청구동새마을금고를 마치 자신의 ‘개인 금고’처럼 사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관련기사 : “청구동새마을금고는 사채왕 김상욱의 개인 금고다”) 김상욱은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 상무와 짜고 불법대출을 실행했다. 그 여파로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고 인근 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이들 일당은 피해자를 속여 명의를 빌린 뒤, 상가 매매를 담보로 최대한도의 대출을 받았다. 심지어 감정평가사를 미리 섭외해 부동산 담보 가치를 부풀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행안부는 1500억 원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발생한 뒤 2023년 10월 새마을금고중앙회 내규를 개정했다. 70억 원 이상 PF대출에 대해서 중앙회의 사전검토를 거치도록 했다. 감정가격 과다 평가 방지를 위해 온라인 탁상감정서비스를 도입했고, 특정 법인에 연간 30%를 초과해 감정평가를 맡길 수 없도록 조치했다. “1500억 원 불법대출 사건은 대부분 2023년 6월 이전에 발생했다. 이런 반쪽짜리 검토 결과로 이번 공익감사 청구사항을 종결처리 해버리는 것은 행안부에게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감사원 스스로도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다.”(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불법대출을 비롯한 새마을금고 관련 사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새마을금고와 행안부에 적절한 감사를 한 적은 없었다.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으로 다수의 금융소비자 피해가 발생했고, 심지어 비슷한 양상의 범죄가 전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드러난 중대한 상황에 대하여 이번에야말로 행안부에게 과거의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감사원의 종결처리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들은 “감사원이 자체적으로라도 시민사회가 요청한 감사청구 내용에 대해 왜곡이나 책임 회피 없이 분명하게 감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대출의 주범인 김상욱과 전종남은 지난 5월 23일 구속기소 됐다. 이들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김상욱은 “대출 과정에서 수수료만 일부 받았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고, 전종남 역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대출”이었다고 항변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부정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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