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촌초 제보자 복직 꿈 커진다… 재단 ‘최종 패소’[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1화]
“내가 교육청에 가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선생님들 복직시킬 겁니다.” 이양기 전 우촌초(서울 성북구 돈암동 소재) 교감의 목소리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기대와 의지, 그리고 여전한 경계심과 신중함. 해고된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 학교로 돌아갈 가능성이 열렸다. 지난달 28일 학교법인 일광학원 이사회 ‘임원취임승인취소’ 행정소송 2심이 선고됐다. 일광학원의 패소였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 8월,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 임원 모두의 취임 승인을 취소했다. 2006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무려 13년 이상 이사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광학원 이사회는 회의가 실제로 열리지 않았음에도 회의록을 허위 작성했고, 이사가 아닌 사람이 회의록에 대리 서명하는 방식으로 방만하게 운영돼왔다. 서울시교육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이사회 임원의 선임도, 그들이 내린 결정도 전부 무효라고 봤다. 일광학원은 서울시교육청의 임원 취임승인 취소 결정에 불복해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 싸움은 4년 넘게 이어졌다. 일광학원은 지난 10일 ‘상고 포기서’를 제출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2019년 우촌초 최은석 교장, 이양기 교감, 유현주, 박선유 등 6명의 교직원은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스마트스쿨 사업의 예산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리고, 미리 섭외한 업체가 입찰에서 선정되도록 사업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적발했다. 이 외에도 학교장 업무방해, 학교 예산 횡령 등 각종 비리가 밝혀졌다. 이규태 회장은 일광공영(현 아이지지와이코퍼레이션)을 설립한 ‘1세대’ 무기중개상이다. 그는 2015년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이 회장은 우촌초 교직원에게 스마트스쿨 비리를 ‘옥중 지시’한 의혹을 받는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사실 이 회장은 학교에 어떤 일이든 지시할 권한이 없다. 이 회장은 우촌초 인수자이자,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 이사장. 2015년 회계 부정으로 이미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된 상태였다. 이후 일광학원 이사회는 이 회장의 지인으로 채워졌다. 스마트스쿨 비리 폭로 이후, 일광학원 이사회는 공익제보자들에게 ‘보복성 징계’를 내려 전원 해고했다. 학교에 돌아간 제보자는 이양기 전 교감이 유일하다. 나머지 공익제보자들은 5년째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유일하게 복직한 이양기(58) 전 교감의 복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일광학원에서 해임된 후, 국민권익위원회는 신분보장조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일광학원은 ‘면직’ 카드를 꺼냈다. 다시 교원소청위원회에서 면직 취소 결정을 내렸으나, 일광학원은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2022년 6월 이양기 전 교감이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 2년 8개월이 걸렸다. 복직한 뒤에도 괴롭힘은 계속됐다. 학교 측은 과학전담교사를 맡은 이 전 교감에게 교무실 책상을 주지 않았다. 과학실에서 다른 교사가 수업을 하거나 방과후교실로 쓰이는 시간이 되면, 그는 늘 혼자 운동장을 돌았다. 누군가 그를 감시하고, “이양기 과학교사의 동향 추가 보고”라는 제목의 문서를 만들기도 했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교무실에 책상을 마련해달라고 했더니, 자리가 없어서 안 된다는 거죠. 학교 입장에서는 최대한 다른 선생님들하고 접촉을 줄여야 하고, 제가 오가는 게 보이면 불편하기도 하니까, 그냥 (과학실이 있는) 별관에만 머물도록 근무 공간도 정해준 거죠.” 이 전 교감은 복직 이후 겪은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장애가 생겼다. 설상가상 대상포진까지 발병했다. 결국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병가를 냈다. 지난 1월 병가를 마치고 복귀한 이 전 교감에게 학교 측은 징계 통지서를 내밀었다. 2023년 7월 작성된 ‘경고장’을 6개월이나 지나 통지한 것. 그는 ‘뒤늦은’ 징계 통지서를 근거로 사학수당 지급에서 제외됐다. 최은석 전 우촌초 교장(55)은 지난해부터 기간제 교사 일을 시작했다. 가족들은 서울에 남겨두고 일자리를 찾아 광주로 떠났다. 최근 경기 부천시로 학교를 다시 옮겼다. 최 전 교장은 교장직을 맡을 때부터 언젠가 평교사로 돌아갈 생각을 했지만 ‘이런 방식’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행정실장 직무대리였던 유현주 씨(46)의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징계를 받아 ‘해임’된 유 씨는 다른 학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이) 학교에 찾아와서, (공익제보는) 없었던 걸로 넘어가 줄 테니까 (스마트스쿨 사업) 하라고 해서, 제가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저를 해고하고 학교 못 나오게 하고, 그다음부터 고소・고발을 하고….” 공익제보 이후, 이 회장과 일광학원은 유 씨에게 10건 이상의 보복성 고소・고발과 소송을 퍼부었다. 유 씨는 경찰서로, 검찰청으로, 법원으로 정신없이 불려다녀야 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 유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5년째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다. “제 40대 인생은 이 회장과 싸우면서 의미 없이 없어져버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와서 포기할 수도 없고. 무조건 싸워야 하고, 무조건 직진인데, 정말 살 수 있게, 이기고 싶어요.” 심지어 유 씨는 집을 빼앗길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2021년 일광학원은 유 씨가 허위 공익신고를 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유 씨의 집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다. 소송은 약 3년 만에 유 씨의 승소로 끝났다. 조만간 가압류 취소 신청서를 접수해 집 소유권을 되찾을 예정이다. 유 씨는 얼마 전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소・고발 사건이 대부분 혐의 없음 또는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2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행정실에서 함께 근무했던 박선유 씨(46)도 보복성 징계 탓에 다른 학교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처지다.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일이 많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박 씨는 지난해 8월부터 택배 물류센터와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박 씨는 올해 초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일광학원에 고소당했다. 학교에 7200만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지난 6월 불송치 결정했으나, 일광학원은 다시 이의신청을 했다. 결국 지난달 검찰의 불기소처분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4년 만에 일광학원 측의 패소로 끝난 임원취임승인취소 행정소송. 서울시교육청은 일광학원 이사회 전체에 대한 임시이사 파견을 검토 중이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임시이사 선임을 결정하기까지 한두 달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임시이사들은 2~4년간 학교법인 이사회를 운영하며 학교 정상화를 추진하게 된다. 임시이사가 파견되면 공익제보자들이 복직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기존 이사회 임원 전원의 승인이 취소되면서 그들이 내린 결정도 없던 일이 됐다. 공익제보자들이 받은 보복성 징계 역시 무효화될 가능성이 크다. 공익제보자들은 행정소송 판결 소식에 ‘축배’를 들었다. 지난 4일 최은석, 이양기, 박선유 제보자를 만났다. 한층 밝아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복직에 대한 기대를 애써 감추려는 것처럼,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다. “신랑이 언제 복직하냐고 묻는 거예요. 내년 3월 신학기까지 복직 못하면 저도 학교로 돌아갈 마음은 접으려고요.”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일까. 박선유 씨는 언제 복직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지쳐 있었다. “앞으로 임시이사 선임이 정말 중요합니다. 복직 절차도 계속 알아보고 있어요. 하루빨리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이양기 전 교감은 공익제보자들 복직에 마지막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복직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법인 정상화 절차를 잘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두 가지. 이규태 회장을 포함한 12명은 스마트스쿨 비리 혐의로 2021년 12월 기소됐다. 1심 재판만 약 2년 9개월째 진행 중이다. 누구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지 낱낱이 밝혀지고, 그에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남은 하나는 공익제보자들이 학교로 돌아가는 일. 5년 동안 공익제보자들은 그날만을 기다렸다. 이양기 전 교감은 동료들의 복직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셜록은 지난 1월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 반론을 듣기 위해 우편∙전화∙문자 메시지∙방문 등 23차례나 접촉했지만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이 회장은 내내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보도가 시작되니 지난 4월 기자를 고소했다. 사유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이다. 고소 사건은 지난달 ‘불송치(혐의없음)’결정으로 마무리됐다.(관련기사 : <이규태 회장은 셜록의 입을 막지 못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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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찾았다’ 혈세 5천만원 받고 선배 논문 표절한 검사[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20화]
또 찾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세금으로 ‘공짜 유학’을 다녀와, 연구논문을 표절한 걸로 의심되는 검사를 또 발견했다. 인천지방검찰청 소속 최우혁 검사(사법연수원 40기)다. 최 검사가 네덜란드로 국외훈련을 다녀와 작성한 연구논문 총 56쪽 중 33쪽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표절률은 51%. 표절 대상이 된 저작물은 2013년 네덜란드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온 선배 검사의 논문이다. 최 검사가 1년간 네덜란드에 머무는 데 지원된 국외훈련비는 약 5243만 원이다. 지난 2022년 셜록은, 2019~2021년 발행된 검사 연구논문 84건의 표절 여부를 이미 한 차례 검증한 바 있다. 그중 표절 논문 5건을 발견해, 5명의 전·현직 검사 전원을 대상으로 국외훈련비 일부 환수까지 이끌어냈다. 논문 표절을 이유로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최초의 사례였다.(관련기사 : <[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지난달 셜록은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에 공개된 2022~2023년 발행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47건을 추가로 살펴봤다. 우선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를 통해 표절률을 조사하고, 이 중 표절 의심 논문 1건을 발견해 논문 내용을 한 문장 한 문장 직접 검증했다. 최우혁 검사는 2020년 12월 11일부터 다음 해 12월 10일까지 1년 동안 네덜란드 흐로닝언(Groningen)대학교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당시 최 검사는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 소속이었다. 최 검사는 국외훈련 이후 <네덜란드 검찰 조직과 기능에 대한 연구>라는 연구논문을 작성했다. 해당 논문은 2022년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제37집)>에 실렸다. 최 검사가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저작물은 선배 검사가 작성한 국외훈련 연구논문이다. 이○○ 검사(사법연수원 36기)는 2012년 12월 30일부터 약 1년 동안 네덜란드 라이덴대학교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이 검사는 <네덜란드의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관계>라는 제목의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작성했다. 셜록이 두 논문을 비교한 결과, 최 검사의 논문 총 56쪽(목차, 참고문헌 제외) 중 33쪽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전체 문장 421개(논문 요약 포함, 주석 제외) 중 표절로 의심되는 문장이 216개. 표절률은 약 51%다. 문장 두 개 중 하나는 베낀 꼴이다. 최 검사는 논문의 첫 장에 등장하는 ‘논문 요약’부터 베낀 걸로 보인다. 논문 요약에서 최 검사가 새로 쓴 문단은 단 한 문장밖에 없다. 나머지 문단은 아예 이 검사 논문과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검사가 ‘협상처벌(trasactie)’, ‘제재명령(strafebeschikking)’으로 번역한 단어를, 최 검사는 각각 ‘형사협상’과 ‘과형명령’으로 바꾼 정도였다. 본문은 거의 ‘복사-붙여넣기’ 수준이다. 최 검사는 ‘Ⅱ.네덜란드 수사절차 개요’에선 1.범죄의 구분과 2.수사절차 부분을, ‘Ⅲ. 네덜란드 검찰의 조직과 구성’에선 1.검찰제도의 연혁 및 개관과 2.검찰의 조직을, ‘Ⅳ.네덜란드 검찰의 권한과 기능’에선 1. 검찰의권한과 의무와 2. 사법경찰관에 대한 지휘·감독을, 선배 검사 논문에서 거의 ‘통째로’ 가져다 썼다. 문장 순서와 내용 구성 등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다. 최 검사가 한 일은, 선배 검사가 쓴 논문에 새로운 내용 일부를 덧붙이는 정도다. ‘맺음말’까지 절반 이상을 이 검사의 논문에서 가져다 썼다. 참고문헌과, 각주도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동일했다. 최 검사는 참고문헌 목록에 이 검사의 연구논문 제목을 밝혔지만, 문장과 구성의 유사도를 살펴볼 때 단순 참고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 검사가 해당 논문을 쓰기 위해 네덜란드에 1년 동안 체류하면서 쓴 국외훈련비(체재비+학자금)는 약 5243만 원(21대 국회 기동민 의원실 제공 자료). 국외훈련 기간 동안 급여도 지급받았다. 최 검사는 왕복항공료로만 약 689만 원을 썼다. 2018년부터 2021년 사이 같은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떠난 검사 5명 중 가장 큰 금액이다. 평균(약 297만 원)의 두 배가 넘는다. 최 검사가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떠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 국외훈련 공무원은 배우자와 자녀 몫을 포함한 왕복항공료를 지원받는다. 지난해 6월 개정된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 제18조(비용의 지급 등)에 따르면,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부여된 훈련과제와 관련이 없거나 다른 연구보고서·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하면 법무부 장관은 국외훈련비 일부를 환수할 수 있다. 환수 범위는 최대 20%. 셜록 보도 이후 일어난 변화다. 셜록은 지난 2022년부터 19편의 기사를 통해 ‘표절 검사’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셜록은 검사 5명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직접 신고했고, 이들 전원은 지난 6월 국외훈련비 일부를 환수당했다. 법무부는 상세내역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환수 비용은 최대 3800만 원으로 예상된다. 법무부 장관도 ‘표절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 이행을 약속한 바 있다. 이탄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2월 인사청문회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향해 ‘표절 검사’들에 대한 국외훈련비 환수 조치 계획에 대해 질의했다. 당시 박 장관은 “(국외훈련비) 일부를 회수하고 있다”면서, 아직 국외훈련비를 회수하지 않은 사례에 대해서도 환수 이행을 약속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최우혁 검사를 대상으로 한 국외훈련비 환수 여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관련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대상자의 사생활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달 26일 셜록의 질의에 답변한 내용이다. 당사자인 최우혁 검사의 입장은 어떨까. 지난 26일 최 검사와 연락이 닿았다. 최 검사는 “표절 논문을 쓴 걸 인정하냐” 묻는 기자의 질의에, “언론사를 직접 대응하지 못하는 (검찰) 내부 방침이 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셜록은 최 검사 역시 권익위에 부패행위로 신고할 계획이다. 한편, 셜록은 또 다른 ‘표절 검사’들을 찾기 위한 정보공개 소송도 이어가고 있다. 1심 법원은 지난 3월, 국외훈련 검사들의 학위 취득 현황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와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정보에 대한 공개 청구는 기각했다.(관련기사 : <법원 “혈세로 유학가서 학위 딴 검사들 모두 공개하라”>) 셜록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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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왕 일당 ‘110억 원대’ 범죄수익금 환수[사채왕과 새마을금고 20화]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범죄수익금 중 113억 원가량이 환수됐다. 김상욱과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검찰에 기소된 직후인 지난 5월, 범죄수익금 약 228억 원 중 113억 원이 환수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5일 경기북부경찰청 담당 수사관은 “김상욱과 전종남의 계좌, 현금, 부동산, 차량 등을 몰수했다”며 “김상욱과 전종남이 이미 사용한 범죄수익은 그들의 재산을 추징하는 방식으로 조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범죄수익 환수 방식은 두 가지다. 몰수보전은 범행으로 취득한 재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방법이다. 만약 범죄수익을 써버린 경우, 그만큼 범죄자의 재산을 동결해 추징보전 할 수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 간 통화 녹음파일 약 900개 등을 입수해, 2023년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의 뿌리에 김상욱 일당의 전국적인 사기 범죄가 있음을 보도한 바 있다. 김상욱은 전종남 등 공범들과 함께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1500억 원대 불법대출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대규모 ‘뱅크런’ 사태가 일어났고,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고 이웃 금고로 통합됐다. 김상욱 일당의 대표적인 ‘작업’ 현장은 경남 창원시 중고차매매단지 KC월드카프라자. 검찰은 이들이 KC월드카프라자 한 곳에서만 총 75회에 걸쳐 약 718억 5600만 원대 불법대출을 실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욱과 전종남이 KC월드카프라자 불법대출을 통해 취득한 범죄수익은 무려 228억 원 상당이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수법은 이렇다. 김상욱 일당은 우선 모집책을 통해 명의대여자를 구했다. 모집책은 명의대여자에게 “1년간 명의를 빌려주는 조건으로 매달 대출이자와 200만 원의 임대수익을 보장하겠다”며, 1년 뒤에는 부채도 말끔히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에게 속아 명의를 빌려준 피해자는 75명. 김상욱은 모집책을 통해 수집한 명의대여자들의 대출 관련 서류를 전종남에게 넘겼다. 전종남은 그 서류를 기반으로 미리 섭외한 감정평가사를 이용해 부동산 담보 감정평가액을 부풀려 대출을 실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피해자들은 서울 신설동에 있는 카페 하타○○까지 와서 대출 서류를 작성했다. 김상욱의 아들이 운영하는 카페다. 그곳에 전종남 등 당시 청구동새마을금고 직원들이 출장을 나와 ‘자필 서명’을 받았다. 약 10억 원의 대출을 받겠다는 서류였다. 김상욱 일당은 피해자의 통장에서 대출금 일부를 계좌 또는 현금으로 빼갔다. 피해자들은 하루아침에 대출 원금 약 10억 원에 연 11%가 넘는 이자까지 떠안게 됐다. 김상욱은 전종남과 대출 사기를 공모하는 과정에서 ‘금품’을 건넸다. 검찰에 따르면, 2022년 김상욱은 전종남에게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권리금 1300만 원을 대신 내줬다. 커피전문점은 전종남 아내 이름으로 운영됐다. 벤츠 차량도 사줬다. 경찰은 김상욱이 전종남에게 7회에 걸쳐 3억 400만 원가량의 뇌물을 제공한 사실을 파악했다. 피해자들은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아니면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 개인회생을 신청한 피해자도 있다. 김상욱 일당이 구속된 이후에도 새마을금고중앙회의 독촉장을 받고 있다.(관련기사 : <“저 혼자 죽으란 말입니까”… ‘공범’이 된 사기피해자>) 피해자들이 생의 낭떠러지에서 발버둥칠 때, 김상욱 일당은 시그니엘서울 레스토랑에서 비싼 밥을 사 먹고, 명품 옷을 사 입었다. 지난해 7월, 김상욱이 자신의 공범에게 전화로 한 얘기다. “회장님(김상욱 본인) 지금 신발하고 옷 다 에르메스거든. (…) 에르메스 가방 3억 원짜리 있는 거 아냐? 우리 와이프가 3억짜리 들고 있는 거야. 회장님(본인) 티셔츠도 에르메스야. 280만 원짜리.” 사채왕 일당은 대출금의 일부를 김상욱 본인, 아내, 모집책 등의 계좌로 송금하거나 현금으로 인출해 빼돌렸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감사 결과에 따르면, 김상욱은 불법 대출금 중 약 220억 원을 중개수수료를 명목으로 가져갔다. 전종남은 14회에 걸쳐 대출금 일부를 현금으로 인출해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 금액은 8억 8000만 원가량이다. 전종남 상무가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현금을 쇼핑백에 담아 직접 들고 나가는 장면이 포착된 바 있다. 김상욱과 전종남은 지난 4월 23일 구속됐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업무상 배임) 등 혐의를 받는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김상욱은 무죄를 주장하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전종남 역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나간 대출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대출이라고 항변했다. 경기북부경찰청은 KC월드카프라자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여죄를 수사 중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추가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김상욱과 전종남은 법원에 보석을 신청했다. 첫 공판이 열린 지난 7월 5일 김상욱의 변호인은 “건강상의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보석 신청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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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열아홉, 간이 녹았다 2화]
지난 5월 김선우(가명, 23) 씨는 한 통의 우편을 받았다. 발신자는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 앞서 제출한 ‘요양급여신청서’에 대한 회신이었다. 약 20개월 만에 돌아온 대답은 ‘불승인’이었다. 고등학생 때 반도체 공장에 취업하고, 1년 만에 간이 다 녹아버려 이식 수술을 받은 청년. 선우 씨의 기막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들처럼 대학을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차라리 돈을 빨리 벌고 싶었어요.” 선우 씨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심했다. 통학 거리, 학업 분위기, 대학 진학률은 등은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그가 염두에 둔 건 오직 하나. ‘취업률’이었다. 빨리 돈을 벌어서 가계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마이스터고등학교였다. 정식 명칭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로, 직업훈련을 통한 전문기술인 양성을 목표로 한다. 마이스터(Meister)는 ‘장인’이란 뜻. 학교에서 ‘장인’을 육성해 고졸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마이스터고는 높은 취업률을 자랑했다. 선우 씨가 입학하기 직전인 2017년에는 졸업자 119명 중 109명이 취업했다. 취업률 91.6%. 돈을 빨리 벌고 싶었던 선우 씨에게는 매력적인 수치였다. 그는 ‘고졸 장인’의 길을 택했다.그는 바람대로 경제활동을 일찍이 시작했다. 전교생 중 가장 먼저 회사로 출근한 ‘1호 취업생’.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해 10월에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임직원만 3038명(잡코리아 2023년 12월 기준)에 달하는 대기업. NICE평가정보가 제공하는 기업신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타 반도체소자 제조업’ 분야 매출로 우리나라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회사였다.선우 씨는 1년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4일간 교육을 받았다. 고가의 장비를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주의도 빼놓지 않았다.근무 형태는 새벽, 주간, 야간 4조 3교대. 6일 근무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다. 6일 중 하루 이상 연장근무는 필수였다. 그런 날은 작업장에 11시간 30분이나 머물렀다. 식사시간은 50분. 구내식당에서 빠르게 끼니를 때우고 라인으로 돌아오기도 빠듯했다. 이후에는 연장근무 전 30분 휴식을 취하는 게 전부였다.근로시간은 주 51시간 30분.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한도인 ‘주 52시간’를 넘지 않게끔 맞춰진 시간이다.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에 사람의 생체리듬을 맞춰 일했다. 연장근무를 하는 날이면 집에 돌아와 씻지도 못하고 뻗기 일쑤였다. 선우 씨가 맡은 건 칩 어태치(Chip Attach) 공정. 반도체칩에 전자기판을 연결하고 부착하는 등의 일이다. 이때 다량의 화학물질을 다루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솔더 페이스트(solder paste)였다. 여기에는 간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구리, 주석, 은 등이 포함된다. 그 때문에 작업장에는 늘 퀴퀴한 냄새와 타는 냄새, 아세톤 냄새로 가득했다. 선우 씨는 방진복과 얇은 덴탈마스크, 천코팅 장갑, 비닐장갑을 착용했다. 마스크는 입 모양이 다 보일 정도로 얇아 냄새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방진복이 화학물질로 오염되면 집에 가져가 세탁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었다. “블레이드라는 날카로운 날에 용액을 바르고 세척하는 작업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 주는 게 천장갑, 비닐장갑이니까 비닐 찢기고 (용액에) 손도 젖고 했죠.” 화학물질 가득한 작업장과 불규칙한 노동시간. 선우 씨는 취업한 지 약 1년 2개월 만에 몸이 망가졌다. 간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의료진마저 선우 씨가 살 수 있을 거라 장담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선우 씨와 ‘마지막 인사’까지 나눴다. 다행히 선우 씨는 2022년 1월 간 이식 수술을 받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나이는 만 열아홉 살이었다. (관련기사: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당시 병원은 급성간염을 동반한 독성간질환, 상세 불명의 무형성빈혈, 무과립구증을 진단했다. 적출된 간은 광범위한 출혈성 괴사 상태로, “완전히 녹아내려 형체가 없었다”. 손상 원인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수준.생사의 고비를 넘기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선우 씨는 회사 복귀 또는 퇴사라는 극단적인 갈림길 앞에 섰다. 몸이 좋지 않았던 선우 씨는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기자에게 “사직을 권고한 바 없다”고 해명했으나, 선우 씨 아버지가 기억하는 당시 상황은 달랐다.선우 씨가 죽음의 문턱에서 ‘병원 뺑뺑이’를 도는 동안 아버지는 회사에 병가 휴직을 신청했다. 사측으로부터 “6개월간 병가 휴직을 인정해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기억했다. 덕분에 선우 씨는 2022년 1월 1일부터 병가 상태로 치료를 받았다. 그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그해 5월, “회사로 복귀하라”는 통보를 들었다.당시 선우 씨는 상처 부위가 제대로 아물지 않아 재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에 의사 소견서 등을 보냈으나, “다른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회사가 무단결근 누적을 이유로 퇴사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산재를 신청하면서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무단결근에서 병가로 기록을 정정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완치라는 건 없고, 평생 면역억제제 먹으면서 살아야 돼요. 심지어 앞으로 재이식(수술)이 한 번이 될지, 두 번, 세 번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계속 걱정이 되죠. 경제활동도 차차 해야 되는데….”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격이었다. 2023년 12월 28일 선우 씨에게 정말 고비가 찾아왔다. 몸이 이식받은 간을 거부하며 공격하고 있다는 것. 선우 씨의 면역체계는, 이식받은 ‘타인의 간’을 외부에서 들어온 위험요소로 인식하고 공격했다. 면역억제제를 사용해 공격 정도를 낮추면 간 수치가 나빠졌다.간 이식 수술을 받은 지 3년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재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위기가 닥칠 거라곤 생각 못했다.선우 씨는 평생 3년마다 간을 새로 이식받으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다. 다행히 한 달간 입원 끝에 적절한 약물 배합을 찾아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불안은 늘 곁을 맴돌았다.지난 3년간 든 약값과 치료비만 2억 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돈이 들지는 미지수다. 선우 씨가 언제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그 또한 불투명하다.선우 씨는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약값 부담이라도 덜자는 심산이었다. 이때 근로계약서, 급여명세서, 출근부 등 기초적인 자료와 작업환경과 유해요인 관련자료 등을 회사에 요청했다. 하지만 사측은 모두 제공을 거부했다. 공단을 통해 받으라는 답변.‘녹아버린 간’도 문제였다. 어떤 요인이 간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는지 의학적으로 더 따져볼 길이 사라진 셈이었다.선우 씨는 자기 자신이 어떤 화학물질을 다루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가 사업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발간하는 반도체 작업환경 연구보고서 등과, 자신이 직접 몸으로 겪은 ‘경험’뿐이었다.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특수건강진단’을 받는다. 선우 씨도 2021년 4월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다.특수건강진단표에 기재된 취급물질로는 간 독성 및 손상을 유발하는 주석, 구리, 이소프로필알콜(IPA) 등 화학물질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 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는 주치의 평가 소견서를 덧붙였다. “제가 사용하던 용액에 ‘신체에 접촉하지 마세요’가 적혀 있었어요. 근데 회사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하니까….” 선우 씨와 주치의는 그의 간 손상 원인이 ‘일 때문’이라 의심했지만, 회사는 다른 것을 의심했다. 바로 ‘술’이었다.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공식’ 의견서에 이렇게 적었다.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회사는 선우 씨의 특수건강진단 결과 ‘절주 또는 금주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음을 근거로 들었다. 건강했던 20대 청년이 불과 1년 만에 간이 다 녹아버릴 정도가 되려면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셔야 할까. 선우 씨의 특수건강진단표에는 ‘일주일 1잔, 하루 4잔’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선우 씨는 빈혈 수치, 간장질환 수치 등은 모두 정상이었다. 발병 이후 초진 기록에도,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은 ‘주 1회 소주 1~2병’이라고 적혀 있다. “제가 산재 (신청) 준비하면서 대학병원에 상담을 받았어요.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20대 초반이 술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간이 이 정도로 상하지 않는다고. 외부 (원인의) 개입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절대 (이렇게까지) 상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회사가 하는 말이 너무 황당한 거예요.” 회사 관계자들은 선우 씨와 엄마 하영 씨 눈앞에서도 ‘술 때문’이란 주장을 입에 올렸다. 지난해 11월 직업환경연구원이 현장조사를 나갔을 때, 그때도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술을 많이 마셔서 아픈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선우 씨 가슴속의 상처를 후비는 말이었다. 그날 선우 씨는 연구원 2명과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작업장에 들어갔다. 하영 씨는 ‘영업상 기밀 보안’을 이유로 공장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선우 씨는 분위기에 압도됐다. 연구원들은 회사 관계자들에게만 질문할 뿐, 선우 씨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선우 씨에게 그날은 마치 “회사의 변명을 듣기 위한 자리”인 것 같았다. “회사 관계자가 ‘용액이 손에 직접 닿을 일이 없다’고 말하면, 연구원이 ‘그렇군요’ 하고 넘어가는 식이에요. 제가 직접 겪은 건데, 저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요. 실제로는 비닐장갑이 찢어지면 손에 직접 닿아서 젖고 하거든요. 그때 느꼈어요. (이 조사는) 내 말을 들으려고 온 게 아니고, 그냥 업무 하나를 처리하러 온 거구나.” 선우 씨는 그날 직감했다. ‘산재 승인이 안 되겠구나.’ 선우 씨는 그 뒤에 직업환경연구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현장 조사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적었다.산재 신청 이후 약 1년 8개월의 기다림 끝에 결과가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5월 ‘불승인’을 통보했다.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우선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질환은 확인되고, 개인적인 발병요인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하지만 위원 7인 중 6인은 “독성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의 노출이 없어 업무 관련성은 낮다”고 봤고, 1인은 “작업 중 간독성 물질이 일부 있으나, 독성이나 노출량을 고려할 때 상병을 유발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판단해 전원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소송으로 (산재 승인을) 다투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없잖아요.” 선우 씨는 지난 8월 산재 불승인 결과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 몇 년이 걸릴지, 어떤 판결이 나올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소송이 진행되는 그 긴 시간 동안 선우 씨와 가족들이 더 지치고 힘들어질 거란 사실만은 분명하다.하지만 그 불확실한 미래에 한 번 더 희망을 걸었다. 열아홉 나이에 녹아버린 간. 그의 간을 사라지게 한 원인을 찾는 일도, 그의 남은 인생도 아직은 포기할 수 없기에.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을 듣고자 지난달 19일부터 약 30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지난달 30일 기자는 인사팀 관계자, 안전팀 관계자, 임원급 관계자와 번갈아 소통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단에 이견이 없다”, “절차에 따랐고 오히려 선우 씨를 도우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덧붙여 “(셜록 보도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하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그리고 지난 2일 안전팀 관계자는 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김선우 씨에게) 사직을 권고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며, “회사는 ‘김선우 씨에게 헌혈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사내에 공지해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산재에 관한 사측의 의견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문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보험가입자의견서에 “해당 작업은 회사 창립 후 수십 년간 이어온 공정이며 그동안 동일 상병 혹은 유사 상병이 발생된 적 없다”고 주장했다.이어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며, 작업환경측정결과와 역학조사 결과 기록을 보면 유해인자에 대해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임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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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회장은 셜록의 입을 막지 못했다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0화]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을 만났다. 지난 30일 이 회장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에 관한 업무상횡령, 강요죄 등 혐의를 받고 있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을 나서는 이 회장에게 물었다. “회장님이 고소하신 내용 무혐의 나온 거 알고 계시죠? 스마트스쿨 비리 보도한 기자들 계속 고소하시는데, 이유가 뭔가요?”“….” “반론 취재에 응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까?”“….” 회장님은 침묵을 지켰다. 법원 건물을 나서자, 한 남자는 이 회장의 머리 위로 우산을 펼쳐 그늘을 만들었다. 회장님은 기자의 연이은 질문에도 오직 앞만 보고 걸었다. 회장님은 의전을 받으며 벤츠 마이바흐 차량에 탈 때까지, 기자의 질문에는 한 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이 회장이 늘 이렇게 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 회장은 지난 5월, 역시 서울북부지법에서 만난 나에게 경고했다. “(도를) 지나치지 마세요. 후회하지 마시고.” 그의 경고는 빈말이 아니었다. 이 회장은 나를 경찰에 고소했다. 사유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이다. 하지만 사건은 지난달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으로 끝났다. 고소장을 받은 지 4개월 만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이 회장의 악연(?)은 지난 1월 시작됐다. 셜록은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프로젝트를 통해 이 회장의 비리 의혹을 보도했다. 학교법인 일광학원을 설립하고 우촌초등학교를 인수한 이 회장. 그는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리고, 미리 섭외된 업체가 입찰되도록 ‘옥중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19년 교직원 6명이 서울시교육청에 비리를 제보하면서 사업은 무산됐다. 하지만 제보자들은 보복성 징계를 받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지난한 소송 끝에 유일하게 복직한 이양기 전 교감은, 복직 이후에도 크고 작은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 공익제보자들을 향한 불이익은 5년째 지속되는 중이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은 자신들에게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고소 공격’을 퍼부었다. 공익제보자들은 물론, 스마트스쿨 의혹을 보도한 방송사 기자들도 고소장을 피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은 서울시교육청 감사관도 고소한 바 있다. 이른바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법을 무기 삼아 휘두르는 모습.언론 보도에서 비일비재하게 접하는 소식이다. 내게도 법을 들먹이며 경고를 날리던 ‘회장님’, ‘대표님’들은 이규태 회장 말고 더 있었다. 지난 4월 보도한 ‘사채왕과 새마을금고’의 주인공 김상욱.(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지난 7월 그의 재판을 방청하러 갔다. 법정 밖에서 만난 그의 변호인은 말했다. “셜록 기자들, 고소했습니다!” 김상욱이 구속되기 전, 그는 셜록에게 “나도 피해자”라며 언성을 높이다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내왔다. 김상욱 일당의 ‘아지트’이자, 자기 아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찾아온다면 “건조물 침입 등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상가분양 피해 문제를 알린 ‘유령타운의 비명’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역시나 비슷한 일이 있었다.(관련기사 : <‘축구장 4배’ 유령타운… “어시장에 바닷물도 안 나왔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시행사 대표의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첫 번째 기사가 보도된 뒤, 시행사 대표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언론중재위원회나,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운운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규태 회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 반론을 듣기 위해 우편∙전화∙문자 메시지∙방문 등 23차례나 접촉했지만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이 회장은 내내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보도가 시작되니 명예훼손으로 나를 고소했다. 혹시라도 조사 결과 기소라도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고, 이번처럼 ‘혐의 없음’으로 끝난다 해도 이들에게는 손해볼 게 없는 장사다.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를 오고 가면서 ‘피의자’들이 받을 심리적인 압박만으로도 상대를 충분히 괴롭힐 수 있으니까. “일광학원은 공익제보자들에게 반복적인 부당징계를 내리고 민·형사고소를 진행했으며, 우촌초등학교를 감사한 서울특별시교육청 측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일광학원의 비리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집요한 보복행위를 반복해 왔다. 이번 고소 역시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행위 및 입막음 소송의 일환으로 판단된다.”(지난 7월 10일 참여연대 논평) 다시 8월 30일 서울북부지법 법정 앞. 이규태 회장은 재판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회장과 함께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우촌초 교직원이 말했다. “회장님, 어디로 가세요? 저 학교 갈 거니까 이렇게 같이 (가시죠).” 이 회장은 현재 일광학원이나 우촌초에 아무 직책이 없다. 2015년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되면서 이사장직을 박탈당했다. 공식적으로 학교와 아무 관련 없는 ‘외부인’인 이 회장이 여전히 우촌초에 드나드는 걸로 짐작할 수 있는 대화다. 이 회장은 드나드는 학교에, 정작 ‘들어가야 할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바로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다. 최은석 전 교장, 이양기 전 교감, 전 교직원 유현주, 박선유 씨. 이 중 지금 학교로 복직한 사람은 이양기 전 교감이 유일하다.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행정소송이 진행되는 등, 다른 이들도 복직을 바라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시사저널은 이규태 회장을 인터뷰하고, <[단독인터뷰] 사학비리로 낙인찍힌 ‘클라라 회장’…”혐의 벗을 근거 있다”> 기사를 보도했다. “2018년 11월 출소 후 언론과 공식 대면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해당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학교를 믿고 따르는 구성원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억울한 부분을 소명하고 싶습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누구를 향한 사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회장이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면, 그 말을 제일 먼저 들어야 할 사람은 분명히 정해져 있다. 아직도 온갖 소송과 재판으로 법원을 드나들며, 학교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공익제보자들. 오늘(4일)은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 스마트스쿨 비리를 폭로한 지 1947일째 되는 날이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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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열아홉, 간이 녹았다 1화]
크리스마스 캐럴 대신 아우성이 울려 퍼지는 병원 응급실. 그 틈에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김선우(가명) 씨가 있었다. 그는 엄마 이하영(가명) 씨에게 몸을 지탱한 채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고 있었다. “당장 간 이식하지 않으면 아드님 죽을 수도 있어요.” 졸음이 쏟아지는 순간에도 날카로운 의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몸이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2021년) 10월쯤이에요. 그때 부딪힌 적도 없는데 몸에 멍이 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제 성격이 워낙 덜렁대니까 그냥 어디 부딪혔겠지, 하고 넘어갔죠.” 선우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20년 10월,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집은 울산, 회사는 인천에 있었다. 그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화학물질 가득한 작업장. 3교대 근무. 열아홉 고등학생 선우 씨는 그해 모교의 ‘1호’ 취업생이라는 자부심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건 입사한 지 1년 만인 2021년 10월. 몸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으면 메스꺼워 구토가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다. 먹은 음식을 다 토해도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저 교대근무에 누적된 피로 탓이라고 여겼다. 코피를 쏟는 날도 있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지혈이 안 돼 회사 인근 이비인후과에서 코 혈관을 지졌다. 다음 달에도 코피가 쏟아졌다. 공장 안 화장실에 앉아, 반쯤 남은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다 뜯어 썼다. 그래도 코피가 멎지 않았다. 선우 씨를 찾는 파트장의 전화. “코피가 멈추지 않는다”고 대답했지만, 빨리 복귀하라는 말만 돌아왔다. 그렇게 두 시간이나 지났다. 그제야 코피는 간신히 멎었다.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마저 닦아내고 자리로 복귀했다. 잠이 쏟아졌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고 싶었다. “선우야, 너 얼굴이 좀 누런 것 같다.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결혼기념일을 맞아 울산 본가에 온 선우 씨에게 엄마 하영 씨가 말했다. 최근 한 달간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던 선우는 일 때문에 피곤할 뿐이라고 답했다. “엄마의 촉이라는 게 있잖아요. 오랜만에 아들이 집에 와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까 이상해요. 너무 노래. 근데 선우도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하지, 애 아빠는 둔감하니까 그런 거 잘 모르겠다고 하지…. 그때 같이 병원 가자고 못했던 게 제일 후회돼요.” 몸이 지쳐도 주기적으로 통장에 찍히는 급여를 보면 ‘그래도 할 만한 일’이라고 여겼다. 일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년이 넘은 스무 살짜리 사회초년생은 요령 없이 버틸 뿐이었다. 한 달이 지난 12월 23일, 교대근무를 하던 동료도 선우 씨를 걱정했다. 황달이 있는 것 같으니 병원을 가보라는 말. 그저 피곤해서 낯빛이 안 좋다고 하기에는 눈자위까지 너무 노랗게 변했다. 밤 10시를 넘긴 시간. 회사 주변에 그 시간에 문을 여는 병원은 없었다. 선우 씨는 두 달째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새벽조, 주간조, 야간조 어디에 투입되든 눈뜨는 게 힘겨웠다. 이튿날 오전 병원에 가려 했지만, 늘어진 잠으로 갈 수 없었다. 이튿날 오후 누렇게 뜬 얼굴로 출근했다. 상사는 선우 씨의 안색을 살피더니 병원에 가라고 조퇴를 시켜줬다. 뜻밖의 배려. 평소 같으면 ‘열이 없으면 감기에 걸려도 출근하라’던 상사였다. 선우 씨는 그제야 병원을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가까운 내과로 향했다. 의사는 황달을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며, 근처에 있는 인하대학교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피 검사를 마친 선우 씨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대학병원은 평일 오후에도 환자들로 북적였다. 순서가 되려면 3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때 간호사가 선우 씨 이름을 불렀다. 앞서 방문한 환자들을 뒤로하고 진료실로 먼저 들어갔다. “당장 입원 안 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바로 입원하세요.” 선우 씨는 그제야 심각성을 느꼈다. 의사는 일반인의 정상 간 수치(ALT)가 40IU/L 이하인데, 선우 씨의 간 수치가 2236U/L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혈소판도 말썽이었다. 당시 선우 씨의 혈소판 수치는 혈액 1㎕(마이크로리터)당 5000개. 정상인들의 혈소판 수치가 1㎕당 15~40만 개 사이인 것을 고려하면 현저히 부족한 수치였다. 코피가 한두 시간씩 멈추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엄마, 나 몸이 안 좋아서 병원 왔는데 당장 입원해야 될 것 같대.”“몸이 안 좋아? 입원해야 되는 거면 여기 내려와서 입원해도 되지 않아?” 전화로 다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은 현실감이 없었고, 졸음이 쏟아지는 것 말곤 통증도 없었다. 간 수치가 정상의 약 56배 이상 나왔다는 것도, 혈소판 수치가 80배 적게 나왔다는 것도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몸이 많이 좋지 않은가 보다 할 뿐이었다. 엄마의 말에 선우 씨는 비행기를 타고 울산 본가로 갔다. “이 몸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울산대학교병원 의사는 혈액검사 결과지를 보고 질겁했다. 간 이식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수치였다. 의사의 말에 하영 씨는 눈앞이 노래졌다. 그렇다고 당장 입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사는 “아직 우리 병원은 간 이식을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며,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권했다. 하영 씨는 옆에서 눈을 껌뻑이며 졸음을 참는 아들을 차에 태웠다. 한시가 급했다. 하지만 도로는 북새통을 이뤘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거의 다 왔어, 선우야. 조금만 버텨. 괜찮지?” 평소 4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꽉 막힌 도로 위에 두 시간을 넘게 갇혀 있었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은 아들을 보면 조급해졌다. 초행길, 꽉 막힌 도로, 옆자리에는 쓰러져가는 아들까지. 운전대를 잡은 하영 씨의 손이 덜덜 떨렸다. 혹여나 아들이 눈을 감으면 다시 깨어나지 못할까봐…. 부산에 진입해 가장 가까운 소방서를 찾았다. 하영 씨는 ‘미친듯이’ 뛰어 들어가 소리를 질렀다.  “제발 우리 애 좀 도와주세요!” 엄마의 외침에 구조대원들은 선우 씨를 구급차에 태웠다. 사이렌을 울리니 꽉 막혀 있던 도로에도 숨통이 트였다. 하영 씨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당시는 코로나19 위기대응 수위가 높던 때.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찾아가도 대기 환자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잘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휴가를 낸 의사들도 많았다. 하영 씨의 속이 타들어 갔다. 선우 씨는 구급차를 타고 세 번째로 찾아간 병원에서 겨우 병상에 누웠다. 그마저도 치료가 아닌 ‘응급조치’였다. 하영 씨는 서울로 가야 아들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2021년 12월 27일 새벽 6시, 선우 씨를 사설 구급차에 태웠다. 서울에 있는 ‘빅5’ 병원 중 하나인 A 병원으로 향했다. “예약 안 하셨으면 진료받기 어려우세요. 오늘은 돌아가시고 예약하신 날 방문해주세요.” 기대와 달리 병원의 대처는 냉담했다. 하영 씨는 속이 뒤집혔다. ‘절차’대로 하라는 말. 혈액검사 결과지를 들이밀어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병원 인근 숙소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남는 방도 없었다. 택시에 선우 씨를 태우고 또 이동했다. 겨우 찾은 모텔 방에 아들을 눕혔다. 하영 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이른바 ‘잘사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아는 병원 없냐, 아는 의사 없냐, 제발 도와달라. 당장 아들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못할 일이 없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모자는 이튿날 ‘절차’대로 예약 진료를 받았다. 당장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 하지만 이번에는 남은 병실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병원에서는 해가 바뀌고 1월 10일이나 돼야 자리가 생길 거라고 했다. 서울 외곽까지 범위를 넓혀봐도, 선우 씨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은 없었다. 수소문한 끝에 한 곳을 찾아냈다. 경기 부천시에 있는 병원이었다. 선우 씨는 그곳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혈소판을 수혈받고, 코피가 흐르면 ‘땜질’을 했다. 치료가 아니라 ‘조치’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2021년 마지막 날, 드디어 대학병원 특실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지옥 같던 ‘병원 뺑뺑이’는 8일 만에 막을 내렸다. 병원에서 맞는 새해. 그래도 이제는 치료에만 전념하면 좋아질 거라 여겼다. 하영 씨는 ‘이젠 다 잘될’ 거라며, 아들의 걱정까지 떠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님, 지금 선우 씨가 너무 위험해요. 피가 안 멈추고 간 수치가 너무 안 좋아요. 바로 병원으로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불안한 일상은 금세 무너졌다. 가족들은 울산의 집에서 서울의 병원까지, 350㎞ 거리를 단숨에 달려갔다. 당시 선우 씨는 간 이식 대기자 ‘0순위’였다. 장기 기증자가 나타나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이식받는 사람. 그만큼 상태는 위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장기 기증자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선우 씨는 간성혼수에 빠졌다. 혼수상태에 빠진 채 열흘이 지나자 주치의가 말했다. 염증 수치가 높아져 다른 장기에 영향을 주고 있으니 위독하다고. 몸에서 간을 먼저 떼어내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거예요.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포기해요. 그(간을 떼어낸 뒤) 4일 동안 기증자가 안 나타나면 우리 애는 그대로 죽는다는데. 도저히 안 된다고, 죽어도 못한다고 싸웠죠.” 병원에서는 선우 씨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주치의는 잠든 선우 씨에게 ‘마지막 배웅’을 하라며, 가족들에게 면회 기회를 주곤 했다. 하영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간절히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매일 병원 가까운 절로 향했다.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을 기증해줄) 뇌사자가 나타나기를 기도하는 게… 누군가 죽어야 우리 선우가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엄마니까 그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죠. 그게 스스로도 너무 괴로운 거예요.” 입원 20일 만에 기증자가 나타났다. 밤까지 기도를 올리던 하영 씨는 한달음에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 그를 반기는 건 병원의 낯선 공기였다. 의료진은 선우 씨의 이식 수술을 두고 찬반 토론을 했다. 의료진 10명 중 수술을 반대하는 사람은 8명. 수술 성공 확률이 30%로 너무 낮다는 이유였다. 생존 가능성이 더 높은 다른 대기자에게 이식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엄마 하영 씨의 귀까지 전해졌다. 그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가족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했다. 수술에 호의적인 의료진 두 명이 “그래도 아직 스물한 살이고 젊은데, 회복이 빠를 수 있으니 한번 해보자”고 밀어붙였다. 가족들의 호소와 의료진들의 설득 덕분에 선우 씨는 2022년 1월 19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 수술대에 올랐다. 10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선우 씨의 간이 몸 밖으로 나왔다. 의료진은 “간이 완전히 녹아내려 형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조직검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손상됐다. 간이 녹아버린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 사실은 훗날 선우 씨 가족에게 또 한 번의 절망을 안겨주게 된다. 수술이 끝나고 긴 잠에서 깬 선우 씨. 수술 전 약 2주 동안의 기억이 사라졌다. 간 손상이 심해 뇌의 인지기능도 떨어졌다. 배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십자 모양의 수술 자국이 남았다. 커다란 흉터는 통증만큼이나 큰 충격이었다. “제 청춘을 빼앗긴 기분이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하필 내가 아파야 하는 걸까. 저는 그냥 취업을 빨리 하고 싶었던 건데.”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을 알고 있던 선우 씨는 일찍 철이 들었다. 빨리 돈을 벌어 부모님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어서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등급생 중 ‘1호’로 서둘러 취업했다. 첫 월급을 받은 때부터 매달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 그 보람은 선우 씨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선우 씨는 수술 4개월 뒤인 2022년 5월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퇴사한 과정에 대해서는 선우 씨와 사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선우 씨는 “사직서와 같은 문서에 서명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고, 회사는 “사직을 권고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 당장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는데, 돈이 계속 나가니까 죄송하고 눈치 보이죠. 생활에 제약도 많고, 친구들처럼 놀지도 못하고. 회복하더라도 약값은 계속 평생 나가니까 그것 때문에 산재 신청을 한 건데, 만장일치로 기각됐더라고요.” 그해 9월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답변을 듣기까지 1년 하고도 8개월이 더 걸렸다. 결과는 ‘불승인’. 2024년 5월에 나온 답이다. “산재 승인 안 되면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판정위원) 전원 불승인이라고 하니까 화가 나는 거예요. 제가 사업장에 문제가 있다고 (근로복지공단에) 말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제 의견은 하나도 반영이 안 돼 있고, 그냥 회사가 하는 말만 있더라고요.” 반도체 공장에 들어간 열아홉 고등학생 선우 씨는 1년 만에 간이 녹아내렸다. 평생 약을 복용해도 언제 또 건강이 악화될지, 재수술을 몇 번이나 하게 될지 알 수 없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반도체 소년’. 그는 가혹한 세상에 홀로 내던져졌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을 듣고자 지난달 19일부터 약 30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지난달 30일 인사팀 직원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사건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추후 연락 줄 것을 요청했지만, 3시간 뒤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안내드리기 어렵다, (산재와 관련한 일은) 근로복지공단 쪽에 문의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시 총무팀을 통해 연결된 안전팀 관계자는 “연중 2회 안전교육을 수행하고 있다”는 등 약 40분간 안전관리 방침에 대해 설명했지만, “자신이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비보도를 요청했다. 또 한 번 인사팀 임원급 관계자에게 연락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단에 이견이 없다”며, “회사는 절차에 따랐을 뿐 특별히 근로자(김선우 씨)와 분쟁적인 이슈는 없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지난 2일 안전팀 관계자는 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김선우 씨에게) 사직을 권고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며, “회사는 ‘김선우 씨에게 헌혈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사내에 공지해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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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손실에도 뒷짐만… ‘검은물’ 담합 손놓은 기관들
감사원이 29일 ‘검은물’ 담합 사태 관련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에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기관은 4곳. 한국농어촌공사, 평택시, 충북개발공사, 경상북도개발공사(손해 비용 순)다. 이들 기관은 ‘검은물’ 담합 업체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라는 조달청의 안내에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로 인한 추정 손해 비용은 약 4억 2698만 원이다. 지난해 7월 경기 시흥시 주민들의 공익감사청구 이후 13개월 만에 나온 결과. 하지만 감사원은 후속조치로 각 기관에 ‘주의’ 조치를 내리는 데 그쳤다. 이로써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제기한 형사고발 사건의 수사 결과가 더 중요해졌다. 사건의 시작은 시흥 은계지구였다. 경기 시흥시 은계지구에서는 2018년 4월부터 수돗물에 검은색 이물질이 나온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입주 5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조사 결과, 검출된 이물질은 상수도관 내부에 코팅된 플라스틱 계열의 물질(액상에폭시 등)로 드러났다. 문제의 상수도관을 납품한 회사는 이미 4년 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업체였다. 공정위는 2020년 3월, 13개의 상수도관 업체가 사전에 담합해 서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이윤을 배분한 사실을 밝혀냈다. 업체들의 ‘검은 담합’으로 인해 검증되지 않은 상수도관이 각지에 공급된 것이다. 실제 담합 업체들은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물품(상수도관) 품질에 차이가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사전에 납품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담합 업체 중 한 곳의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영업추진업체들은 수요기관을 통해 누가 입찰 참여사로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거나, 적어도 자신들은 입찰 참여자에 포함되도록 수요기관에 영업을 하는 것입니다.”(공정위 의결서 2019입담1496 발췌) ‘검은물’ 피해로 고통받은 시흥시 주민들은 지난해 7월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접수했다. 담합 업체에 대한 마땅한 조치를 취하거나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LH 등 공공기관 ▲조달청 ▲시흥시 등 지자체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조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공익감사청구에 대해 일부 감사실시를 결정했다. 감사원이 감사를 결정한 사항은 ‘한국농어촌공사 등 6개 기관이 조달청으로부터 안내 공문을 받고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경위’였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그중 4개 기관(한국농어촌공사, 평택시, 충북개발공사, 경상북도개발공사)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문제를 확인했다. 조달청이 각 기관에 안내를 통보한 시점(2020년 9월)에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거나, 이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기관은 감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4개 기관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발생한 추정 손해 비용은 총 4억 2698만 원. 한국농어촌공사 약 3억 4167만 원, 평택시 약 4733만 원, 충북개발공사 약 3080만 원, 경상북도개발공사 약 717만 원이다. 감사원은 해당 기관들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유에 대해 “(각 기관별) 소송 담당자가 소송제기 업무를 소홀히 하거나 인사이동 시 사무인계·인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관리자도 소송제기 업무의 지도·감독을 철저하지 않은 데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감사원은 문제가 된 4개 기관 소속 담당자 6명에게 각각 주의 조치만 내렸다. “(각 기관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라는 조달청의 안내 공문을 받고도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될 때까지 업무를 소홀히 하여 손해보전에 필요한 채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소송제기 업무 등을 철저히 하고 관련자들에게는 주의를 촉구하시기 바랍니다.”(감사보고서 중) 공익감사청구 대표자인 서성민 변호사는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2020년 3년 (공정위 발표 이후) 대대적인 언론보도를 통해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상수도관 업체들의 입찰 담합 사실 및 불량 상수도관 납품 가능성을 인지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수돗물 이물질 민원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않은 것은 위법 부당한 사무 처리입니다.감사원이 이 부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줄 것을 바랐지만, 미흡한 조사와 아쉬운 결과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길은 열려 있다.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가 직접 형사고발에 나섰기 때문. 셜록은 서 변호사와 함께 지난해 9월 LH 등 기관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과, 불량 상수도관 납품업체 임직원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관련기사 : <[액션] ‘검은물’에 숨은 검은 의혹… 셜록이 검찰에 고발>) 사건을 담당한 강남경찰서는 올해 6월 28일 임직원 및 공무원들에 대해 각하 처분을 하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검사 선현숙)은 지난달 12일 강남경찰서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서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과 강남경찰서의 수사에 대응하면서 앞으로 그 결과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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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캠페인에 쓴 ‘강아지 도안’, 김건희 뜻이었다
내부 결론은 ‘무혐의’였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이 최근 이런 결론을 내렸다. 현행법상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 배우자를 처벌할 조항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법적으로 영부인은 공직자로 볼 수 없기에 처벌하지 못한다는 소리. 하지만 공직자도 아닌 영부인이 정부 예산을 쓰는 정책 사업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면? 명품가방을 받을 때는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이고, 환경부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는 또 민간인이 아닌 영부인이 되는 건가. 지난 6월 10일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씨. 그의 손에는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에코백이 들려 있었다. ‘바이바이 플라스틱 백(Bye Bye Plastic bags)’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던 에코백. ‘바이바이플라스틱(Bye Bye Plastic)’은 지난해 6월 환경부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한 캠페인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 에코백에 그려진 강아지 도안이 영부인 김건희 씨의 뜻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환경부는 셜록의 질의에 “(김건희) 여사가 강아지 도안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답변했다. 환경부의 강아지 도안 제작은 기획안 한 장도 없이 진행됐다. 이 강아지는 대통령 부부가 키우는 퍼스트 도그 ‘새롬이’를 빼닮았다. ‘새롬이’는 은퇴 안내견으로 2022년 12월 윤 대통령 부부에게 입양됐다. 환경부는 지난해 6월 시작한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을, 8월부터 범국민 실천 운동으로 확대했다. 17개 광역 지자체에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티셔츠를 18장씩 나눠주며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부된 티셔츠는 캠페인 취지를 살린 폐페트병 소재 티셔츠가 아닌 일반 면 소재 티셔츠였다. 셜록은 지자체별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결과보고서를 확인했다. 한 지자체가 올린 결과보고서는 6쪽의 분량을 오직 사진 11장으로만 채웠다. 사무실 내 다회용 컵 사용 사진,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업소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은 사진 등을 중복해서 보여줄 뿐이었다. 심지어 해당 지자체는 다회용기 업소 이용을 인증한다면서, 중국음식점에서 탕수육과 군만두를 먹는 사진을 첨부해 놓았다. 사진에는 술이 채워진 소줏잔도 함께 등장했다. 다른 지자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다른 지자체의 담당자는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티셔츠 근황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티셔츠 20벌 정도가 (환경부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그거(티셔츠)를 시장님이 입어도 되고 안 입어도 되고 그런 부분도 있지만은 우리 시장님은 안 입으시더라고요. (…) (티셔츠가) 그대로 있습니다 박스 안에.”(2024. 7. 2. 전화 인터뷰)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환경부의 정책 캠페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는 거기에 ‘강아지 도안’을 그려넣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렇게 진행된 캠페인은 어이없는 ‘중국집 인증샷’만을 남겼다. 결국 ‘또’ 대통령 부부의 자화자찬식 자기 홍보에 국가의 예산이 쓰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사건이 작년에 있었다.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윤 대통령 부부 모습이 담긴 색칠놀이 도안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한 사실이 알려져 ‘대통령 우상화 교육’ 논란이 불거졌다. 이 사실을 SNS에 최초로 공개한 시민단체 대표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를 당하며 논란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커졌다.(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이때 ‘색칠놀이’에 사용된 도안이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도안과도 연결된다. 논란이 됐던 색칠놀이 도안은 윤 대통령 부부가 2022년 12월 안내견 학교에서 리트리버 강아지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이날 은퇴 안내견 ‘새롬이’를 입양했다.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티셔츠에 도안으로 활용된 강아지와 꼭 닮았다. 강아지 도안뿐만 아니라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의 출발 자체가 김건희 씨의 뜻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환경부가 국내에서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을 시작한 시기 때문이다. 김 씨는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청년 환경운동가 위즌 자매를 만났다. 그들은 청소년 시절 환경단체 ‘바이바이 플라스틱백(Bye Bye Plastic Bags)’을 설립해 발리에서 비닐봉지를 없애는 운동을 펼쳐왔다. 위즌 자매의 노력 끝에, 현재 발리에서는 비닐봉지와 빨대, 스티로폼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당시 위즌 자매는 재활용 소재로 가방 및 패션 소품 등을 제작하는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영부인 김건희 씨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7개월 후, 환경부는 유엔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에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출범식을 개최했다. 출범식 날도 영부인 김건희 씨가 등장했다. 김건희 씨는 대학교 환경동아리 대학생들과 함께 폐페트병을 활용해 제작한 티셔츠를 입었다. 퍼스트 도그 ‘새롬이’를 빼닮은 강아지가 티셔츠에 그려져 있었다. 이날 퍼스트 도그 ‘새롬이’도 김건희 씨와 함께 자리했다. 공무원 해외 출장 내역을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는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https://btis.mpm.go.kr)을 살펴봤다. 하지만 출범식이 열린 2023년 6월을 기준으로 1년 안에, 환경부 공무원들이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을 위해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다녀온 기록은 없었다. 김건희 씨는 해외순방 등 공적 활동 당시 바이바이플라스틱 에코백과 티셔츠를 여러 차례 활용하며, 친환경적 이미지를 홍보했다. 김건희 씨는 강릉 경포해변 정화 활동(2023. 7. 3.) 때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같은 날 김건희 씨는 이 티셔츠를 입은 채 강릉 중앙·성남시장도 방문했다.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제인 구달 박사를 만났을 때(2023. 7. 7.)도 김건희 씨는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에코백을 들고 등장했다. 이날도 역시 퍼스트 도그 ‘새롬이’가 함께 자리했다. 영부인 김건희 씨는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티셔츠를 제인 구달 박사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용산어린이정원 내 ‘어린이 환경·생태교육관’에는 이날 찍은 제인 구달 박사와 김건희 씨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관련기사 : <마당엔 윤석열 실내엔 김건희… 1년만에 가본 용산정원>) 리투아니아·폴란드 순방길(2023. 7. 10.)에서도 김건희 씨는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에코백을 들고 나타났다. 폴란드 대통령 배우자와 친교 만남(2023. 7. 13.)에서는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에코백을 선물로 전달하기도 했다. 셜록은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예산 내역을 알아봤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경기 안양시만안구, 더불어민주당)의 도움을 받았다. 환경부가 강득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출범식 및 실천운동 홍보물은 자원순환정책 통합 홍보 사업을 통해 추진됐다. 2023년 자원순환정책 광고‧홍보 대행 예산은 약 5억 4천만 원. 이중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홍보를 위한 15편의 TV 광고 및 유튜브 영상 제작(1억 8887만 원) 등에 총 2억 8000만 원가량이 사용됐다. 특히, 캠페인 출범식(2023. 6. 5.)에 사용된 비용은 약 9660만 원. 캠페인 출범식용 티셔츠 구매 비용만 약 700만 원을 썼다. 티셔츠 한 장에 4만 1500원꼴. 환경부는 ‘블랙야크’에서 폐페트병을 활용해 만들어진 티셔츠 175장을 구매해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용 티셔츠를 제작했다. 환경부는 강아지 도안 티셔츠 제작 경위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BBPB(Bye Bye Plastic Bags) 캠페인에서 영감을 얻어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기 위해 친근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제작했다”고 밝히면서도, “(강아지 도안 티셔츠 제작을 위한) 별도 기획안은 없다“고 설명했다. 셜록은 바이바이플라스틱 티셔츠의 강아지 도안이 퍼스트 도그 ‘새롬이’를 모티브로 제작된 건지 환경부에 추가로 질의했다. 환경부는 지난 19일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평소 환경 문제와 동물복지 등에 관심이 많은 (김건희) 여사가 강아지 도안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전문작가의 재능기부를 통해 제작되었으며, 도안은 재능기부를 통해 제작되었으므로 지출된 예산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환경부는 강아지 도안이 영부인 김건희 씨의 뜻에 따른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이희호 여사, 김윤옥 여사, 김정숙 여사 등 역대 영부인들과 심지어 미쉘 오바마, 펑리위안 등 해외 영부인들의 활동을 함께 언급하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강득구 의원은 “환경부의 바이바이 플라스틱 사업은 김건희 여사가 국정에 관여한 증거”라며 “김 여사가 대통령실을 통해 정부 정책사업에 실제로 개입했음에도 명품백 수수가 직무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한 것은 전혀 현실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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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할머니가 공고에 보낸 ‘꼴찌를 위한 장학금’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15화]
공고 기초학력반 국어수업 이야기를 다룬 지난 글 <칠판 글씨 못읽던 명호의 비밀… 학교가 학교다워졌다>공개 이후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60대 중반의 할머니입니다. 밥이라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명호 학생에게 매달 용돈을 조금씩 보내주면 어떨까 해서 연락드립니다.” 매주 3~5만 원으로 주중 5일을 혼자 지낸다는 명호(17세, 가명)가 돈 걱정하지 않고 밥이라도 잘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공고생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공고 이야기를 단편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대학생부터, 인터뷰를 요청하는 방송사까지, 그중에는 도움을 가장한 부적절한 접근도 있었다. 학교와 학생들에게 괜한 문제를 야기할 만한 접촉은 피하려 노력해왔다.‘세상에 공짜는 없다. 근데, 진심으로 명호를 응원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아니지… 이상한 사람이면 명호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수업을 앞둔 쉬는 시간 10분, 나는 고심 끝에 ‘차단‘을 결심했다. 살면서 여러 번 겪어봤다. 갑자기 찾아온 큰 행운을 덥석 쥔 후, 실은 그것이 불운의 씨앗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 게다가 돈과 학생 문제는 더욱 신중해야 했다.수업 시작종과 함께 나는 행운의 메일을 머리에서 지웠다. 마침 명호가 속한 반의 2학기 첫 국어수업이었다.“자자, 활동지 피라(펴라).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오늘은 각자의 방학을 소개하는 수업을 할라 칸다. 먼저 샘 방학부터 소개할 테이까 화면 봐라잉.”올해 여름방학은 2주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겨울에 대규모 공사가 예정돼 있어서 여름방학을 줄이고 겨울방학을 늘리기로 했다.나는 ‘선생님의 여름방학‘이라는 제목으로 만든 PPT 자료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두 아들과 함께 한 등산, 자전거여행, 바다로 떠난 피서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엔 포항 구룡포 오징어축제에서 맨손으로 잡은 1미터짜리 방어 사진을 보여줬다. “와, 샘~ 대박이네요! 진짜 좋은 아빤데요.” 나는 의기양양하게 학생들을 바라봤다. 이어 학생들에게 활동지를 나눠줬다. <나의 방학을 소개해 봅시다>1. 가장 의미 있던 일2. 아쉬움이 남는 일3. 2학기 각오위의 세 가지 질문 중 한 가지 이상은 반드시 발표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진짜로 말하기 싫은 사람은 “패스“를 외치면 특별히 한 번 봐드립니다. 아이들은 활동지를 작성했다. 가족과의 해외여행, 친구들과 다녀온 계곡, 학원에서 보낸 하루 등 아이들은 다양한 방학 이야기를 글과 말로 풀어냈다. 명호 차례가 다가왔다. 하지만 명호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이름을 크게 부르며 명호를 깨웠다.“우리 명호! 방학 잘 보냈나? 살이 좀 찐 것 같은디, 어데 여행은 댕기(다녀)왔나?”명호의 활동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명호도 발표 함 해야 안 되긋나? 왜 아무것도 안 적었노?”명호는 겨울잠에서 덜 깬 곰마냥 눈을 비비며 말했다.“집에만 있었으니까요.”지난 글에서 말한 대로, 명호는 쓰기와 말하기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태로 공고에 입학했다. 그런 탓에 지난 1학기 동안 나에게 국어과목 기초학력 수업을 들었다.이 과정에서 명호의 시력이 칠판에 적힌 글씨를 못 볼 정도로 나쁘다는 것과, 그럼에도 안경을 맞출 수 없었던 형편이 드러났다. 학교는 명호에게 안경을 맞춰줬고, 집중적인 기초학력 수업을 통해 명호의 쓰기와 말하기 능력은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2학기 시작하자마자 아무것도 적지 않은 텅 빈 활동지와 어떤 발표도 하지 않으려는 무기력한 명호를 보니, 맥이 풀리고 말았다.“명호야, 샘이 세 가지를 물었다 아이가. 뭐라도 말해야 하지 않긋나.”“저는 밖에 나가는 거 안 좋아해요. 만날 집에만 있어서 살 쪘어요.”뒤늦게야 내 질문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명호는 마음껏 집밖에 나갈 수 없는 처지였다. 주말에만 집에 온다는 엄마는 명호와 여가를 즐길 형편이 아니었다. 명호에겐 자랑할 만한 아버지가 곁에 없었다.평일을 원룸에서 혼자 보내는 명호에게 방학은 멈춤의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칠판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며, 졸음을 쫓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지 않아도 되는 시간 말이다.사정을 알아보니 명호는 늦게까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 새벽에 잠들어, 해가 중천일 때 눈을 떴다. 어른이 없는 집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밖에 나가면 돈을 써야 하니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움직이는 시간이 적으니 칼로리는 몸에 쌓였고,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체중은 더욱 불었다. 여름방학 딱 2주, 명호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나는 황급히 다음 순서인 정호(가명)에게 발표를 넘겼다. 정호는 이 지역의 ‘강남’이라 불리는 곳에 사는 학생이다. 비교적 집안 형편도 좋다. 공고에 왔지만 내신 관리를 잘 해서 대학에 가는 게 정호의 목표다.“샘요, 저는 2번이랑 3번 같이 발표할라 카는데요, 2번은 학원 간다고 놀러를 못 가서 아쉽고요, 3번은 2학기에는 수행 평가를 더 열심히 해서 꼭 좋은 대학을 갈라 캐요.”정호의 방학은 학기 중 일과보다 치열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가를 돌며 촘촘한 일정을 소화했다.“샘요. 학기 중에는 체육, 미술, 음악 같은 과목이라도 있어서 숨 좀 쉴 수 있는데, 방학 중에는 만날 국영수만 하니까 진짜 죽을 거 같았어요.”나는 정호와 명호를 번갈아 바라봤다. 정호는 공고라는 낙인을 지우거나 혹은 공고의 한계를 넘기 위해 방학을 활용했지만, 명호는 그 시간 동안 자기만의 굴에 갇혀버리고 말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린 후 잠시 명호를 불렀다. “이놈아, 밖에 나가서 좀 뛰지 그랬노? 방학 중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잠만 잤나?”“자고 일어나서 밥 챙기 먹고 그랬는데요.”사실 명호의 말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지난 3월 우리가 처음 만난 때로 돌아간 듯, 명호는 다시 중얼거리며 말을 얼버무렸다. 1학기 내내 지도했던 발음 교육은 전혀 쓸모가 없게 되었다.정호와 명호 사이, 방학의 격차. 방학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방치한 건 아닌지 마음이 복잡했다. 교무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다시 메일함을 열었다. 명호의 ‘키다리를 할머니’를 자처한 분은 메일의 끄트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필요하시면 명호 어머니와도 의논하시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있으면 달라지는 것 없이 명호의 삶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물 듯했다. 명호 어머니에게 연락해 키다리 할머니의 뜻을 전했다. 명호 어머니는 많이 망설였지만, 아들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명호를 찾아갔다.“명호야, 누가 니 장학금 준다 카는데 받을래, 안 받을래?”“누가요?”‘꼴등‘을 해서 공고에 온 자신에게 누가 장학을 주겠느냐는 얼굴이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비록 기초학력반이지만, 1학기 내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 국어과목에서 1등을 했으니 장학금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명호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었다.“카니까 명호야, 받을라카나 말라카나(받을 거니 말 거니). 어머니는 니 의견에 따르신다 카시던데, 니는 우짤래?”“전 괜찮아요.”“괜찮다는 말은 또 뭔 말이고! 받기 싫다는 말이가? 그라믄 치아뿌든지.”명호는 다른 사람의 호의에 쉽게 긍정의 표시를 못했다. 어떤 제안이든 “나쁘지 않아요”, “괜찮아요”, “그래도 될 걸요”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말했다.“줘도 돼요. 샘.” 어법에 맞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었지만, 어쨌든 긍정하는 대답이었다. 나는 메일을 보낸 분께 전화를 걸었다. 그분의 설명은 이랬다.“쓰신 글 잘 봤습니다. 아무리 학생이어도 밥값 포함해서 3~5만 원으로 한 주를 사는 건 너무 적은 거 같아서요. 먼저 생활이 돼야 공부를 할 거 아닙니까. 제가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은데, 얼마가 좋을까요?”“제가 어떻게 금액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꺼. 주시는 대로 절대로 허투로 안 쓰겠십니더.”나의 말에 키다리 할머니가 답했다.“5만 원씩 매주 보태주고 싶은데, 어떨까요? 잠깐 말고, 형편 되는 대로 한 1년은 주고 싶어요.”매주 5만 원, 월로 따지면 최소 20만 원이었다. 연으로 환산하면 약 240만 원. 보통 우리 학교는 장학금으로 학생 1인당 30~50만 원을 준다. 전교 1등에게 주는 장학금도 100만 원 넘는 경우는 흔치 않다.“그렇게 큰 돈을 저희가 어떻게 염치없이 받겠습니꺼? 조금만 주셔도 괜찮습니더.”마음속으로는 우리 명호를 위해서 큰 결심을 내려주셔서 감사하고,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냉큼 말해버리고 싶었지만, 생각도 하기 전에 저 말이 먼저 나오고 말았다. 혹시나 금액이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사실, 명호가 졸업할 때까지 한 500만 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잘 의논해보시고 다시 연락 주세요. 꼭 밥값으로 쓰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선생님들이 제일 잘 아실 테니, 지원 방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학교 의견에 따르겠습니다.”500만 원이면 명호가 3학년에 취업을 나갈 때까지 매월 20만 원씩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전화를 끊고 교감선생님께 달려가 상황을 설명했다.학교는 키다리 할머니의 장학금을 정식으로 받아 잘 관리해, 매월 20만 원씩 명호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돈만 지급하는 게 아니라 명호가 스스로 소비 계획을 세우게 돕고, 학교는 여러 상담으로 학습과 생활이 잘 유지되도록 살필 예정이다. 사회적 자원과 관심이 1등 혹은 명문 학교로만 향하는 세상에서, 공고에 ‘꼴찌를 위한 장학금‘이 탄생하다니. 나와 여러 교사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 학교에는 공부 자체를 힘들어 하거나 공부에 집중할 여건이 안 되는 학생이 많다. 그런데도 꼴찌를 위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다는 반성도 나왔다.개학한 뒤 명호는 조금씩 규칙적인 생활을 몸에 익히고 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만 머물지 않아도 되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며 나름의 사회생활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에선 따뜻한 밥도 먹을 수 있다.살면서 한 번도 장학금을 받아보지 못한, 공고에 와서도 ‘나머지 공부’를 했던 명호는 9월부터 우리 학교의 장학생이 된다. 한 번이 아니라 졸업할 때까지 돌봄과 지원을 받는 장학생 말이다.얼굴 모르는 키다리 할머니 덕분에 명호에겐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고,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있다. 키다리 할머니가 보낸 메일의 한 대목을 요즘 자주 생각한다. “밥이라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학교 관련 뉴스에서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한 지가 언젠지 까마득하다. 대한민국 학교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건 저런 돌봄과 연민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소송 져도 ‘배째라’ 주인행세… 법도 행정도 ‘나 몰라라’ [유령타운의 비명 3화]
“이 일을 생각하면 삶의 의지가 사그라듭니다.” 메일은 이렇게 시작했다. ‘유령타운의 비명’ 첫 기사를 보도한 날, 새벽 1시 35분에 도착한 메일. 잠 못 이루는 밤, 또 다른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상가분양 피해자는 “유령타운의 수많은 비명 중 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써내려갔다. “법원의 판결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해결이 안 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드네요. 사용할 수 없는 상가를 사용허가 내주고도 ‘나 몰라라’ 한 구청이 법적으로 자유로운 것도 이해가 안 가네요.” 메일은 이렇게 끝났다.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데….” 인천 연안부두 앞바다에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상가를 분양받은 340여 명의 꿈이 침몰했다. “그냥 투자자, 투기꾼 사연이 아닙니다.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죠. 한 달에 이자를 몇 백만 원씩 내고, 노후자금을 다 날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겁니다.”(법무법인 휘명 박휘영 변호사) ‘국내 최대’, ‘축구장 4개 규모’를 자랑하던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분양대행업체에 따르면, 건물을 외형을 짓는 데만 약 1800억 원이 들었다. 하지만 12% 이상의 “투자수익율 대박”을 장담했던 초대형 상가 분양 사업은 완전히 붕괴됐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총 802개 호실 중 512개 호실이 분양됐다. 약 36%가 미분양 상태다. 2017년 기준 1.5평(전용면적 4.42㎡)짜리 1층 수산물판매 상가 분양가는 1억 2000만 원~1억 6000만 원 상당이다. 2층 이상 상가의 분양가는 2억 원대로 알려져 있다. 불 꺼진 건물, 텅 빈 상가, 비린내 없는 어시장, 고객 차량 대신 선적 대기 중고차만 가득한 주차장…. 피해는 고스란히 수분양자들에게 전가됐다. 피해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사람만 34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분양 계약을 체결한 2017~2018년부터 약 7년간 아무런 수익을 얻지 못했다. 매달 대출이자만 내며 버티고 있는 처지다.(관련기사 : ‘축구장 4배’ 유령타운… “어시장에 바닷물도 안 나왔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사례를 접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전국적으로 정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상가 분양 피해 사례입니다.” 건설업계 관계자, 부동산 전문 변호사, 금융권 관계자 모두 한목소리다. 그만큼 피해자가 셀 수 없이 속출하고 있다는 뜻. 상가분양 피해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 그만큼 심각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대책이 세워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단한 뉴스 검색만으로도, 전국에서 시행사 등을 상대로 처절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상가분양 피해자들의 소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도 마찬가지. 상가분양 피해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분양 당시 시행사 측이 만든 홍보 팸플릿 문구와 완전히 딴판이었다. “인천구도심 재생사업 등 다양한 대규모 개발비전의 중심”“희소가치가 높은 공실률 없는 특수상가”“연 수익률 12.44%” 일부 분양대행업체는 수익률을 20%까지 부풀리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분양사무실에서, 인근에 있는 인천종합어시장 상가들이 인천국제수산물타운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이나 근거 없는 풍문에 불과했다. 시행사는 예상 수익률을 지나치게 부풀린 허위・과장광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 조치를 받았다. 시행사 대표는 2020년 8월부터 상가 활성화를 해보겠다며 피해자들에게 1층 상가를 임차했다. 약속한 무상임차기간 3개월이 지난 뒤, 피해자들의 통장에 찍힌 임대료는 두 달 치가 전부였다. 그곳에는 현재 한 수산물 판매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따. 시행사 대표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이중 임대계약을 체결한 판매업체다. 시행사 대표가 상가 주인행세를 하며 ‘점거’하고 있는 셈이다.(관련기사 : <수익률 뻥튀기에 월세 먹튀까지… 피해자 두 번 울렸다>) 임대료를 받지 못한 상가분양 피해자 68명은 법원에 카드 매출 가압류를 신청했다. 그러자 시행사 대표는 카드단말기를 자기 아들 사업자 명의 단말기로 몰래 바꿨다. 피해자들이 고소했지만 경찰 수사 결과는 2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이들은 시행사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시행사 대표에게, 밀린 임대료를 지급하고 건물을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건물의 준공 예정일은 2019년 10월이었다. 건물 사용승인은 5개월이나 지난 2020년 3월에야 떨어졌다. 하지만 장사는 불가능했다. 어시장에 꼭 필요한 바닷물(해수)이 나오지 않았다. 시설 공사는 2020년 12월에야 마무리됐다. 처음 약속한 준공 예정일에서 1년 2개월이 더 지나서였다. 시행사를 상대로 ‘분양대금반환소송’이 제기됐다. 이번에도 법원은 분양대금과 위약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피해자들은 두 차례 소송에서 승소했다. 경찰에 형사고소도 했다. 하지만 법이 이렇게 무력한 것이었나. 현실을 그대로였다. 시행사 측은 돈이 없다며 버틸 뿐. 피해자들의 손에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처벌받지도 책임지지도 않았다. 시행사 대표는 오히려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큰소리치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행정은 ‘계약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팔짱을 끼고 있고, 법원의 판결문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시행사 대표에게 사기죄 등 형사 책임을 묻기는 ‘애매하다’고 말했다. “허위・과장광고는 시행사업에서 통상적인 ‘룰(rule)’입니다. 수분양자가 의사결정 기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봐야 하는데, 시행사업에서 유명 카페 입점 ‘예정’ 등이라는 식으로 광고했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사기죄를 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법무법인 청율인 김영환 변호사) 시행사 대표가 상가분양 피해자들에게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고 상가를 ‘무단 점거’ 하고 있는 점 역시 형사처벌은 어려울 수 있다. 수사기관에서 해당 사건을 ‘사인 간의 분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사기로 고소한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 반려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시행사 대표가 처음부터 임대료 등을 편취하고 상가를 무상으로 사용할 의도가 있었다면 사기죄 등을 검토할 수 있으나, 이런 점을 입증하기 쉽지 않습니다.”(법무법인 율샘 김도윤 변호사)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에서 시행사의 자본금 비율은 현저히 낮다. 시행사는 금융기관에서 PF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지어 올린다. 금융기관은 사업성과 수익률을 꼼꼼히 평가해서 대출을 실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동네에 오래된 인천종합어시장이 있잖아요. 아파트단지 근처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잖아요. 누가 차 타고 거기(인천국제수산물타운)까지 나가겠어요.” 인근 지역 부동산 중개인의 말이다. 부동산 중개인도 다 알고 있는 불리한 입지조건을 금융기관에서 얼마나 철저히 검토했는지 의문이다. 시행사가 PF 사업을 기획하고, 금융기관은 돈을 빌려주고, 시행사는 수분양자들에게 분양대금을 받아 대출을 갚는다. 결국 피해의 1차적인 종착지는 수분양자 개인들이 된다. 한 사람당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부실PF 폭탄은 수분양자 개개인들의 삶부터 망가뜨리고, 금융기관과 지역경제까지 연쇄 폭발을 조준한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사업을 승인한 인천 중구청도 이 상황을 책임지지 않는다. 중구청 관계자는 “건축 용도가 알맞으면 토지 소유주가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대로 건축 허가를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어시장에 바닷물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준공이 난 점에 대해서는 “건축법상 정하고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입점 등에 관한 사항은 계약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또 대규모 공실 사태에 대해서는 “손님이 없어서 공실이 된 건 소비자 선택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업을 계획한 시행사, 대출을 내준 금융기관, 사업을 승인한 행정관청이 서로 책임 없다는 말을 주고받는 사이, 수분양자들의 인생은 극단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동안 상가분양 피해는 대부분 ‘개인 투자 실패’로만 여겨져왔다. 하지만 개인들만 눈 뜨고 코 베이는 상가분양의 판을 안전하게 바꾸자는 목소리가 최근 국회에 닿았다. 지난 6월 16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분양사기 피해복구 및 방지 입법을 위한 ‘대국민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분양사업에 관한 정보 제공 의무 명시 ▲신탁사와 감리사의 손해배상책임 규정 신설 ▲장기 공사 중단・분양대금 미반환・소유권이전 등기 미이행 사태 발생 시 정산절차 및 내용 신설 ▲신탁사와 분양사업자에 대한 감독 및 처벌 조항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용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남양주시병)은 이날 토론회에서 지적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상가분양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분양주체들은 법의 허점, 처벌이 낮은 점, 수분양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점들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를 원천 차단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분양 주체들이 얻은 막대한 이익은 적어도 수분양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합니다.”(법무법인 우면 김한수 변호사, ‘분양사기 피해복구 및 방지 입법을 위한 토론회’, 2024. 6. 16.) 지난달 12일과 16일 시행사 대표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신 역시 없었다. 지난 13일 1화 기사가 보도된 뒤 시행사 대표는 전화를 걸어왔다. 시행사 대표는 “(2020년) 당시 수산물타운 1층을 전부 임차하겠다는 업체가 있어서 수분양자들에게 임대 동의서를 받았지만, 업체 입점이 무산되면서 자신이 임차해 상가를 오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분양자들에게 임차료를 지급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영업이 잘되고 향후에 여건이 됐을 때 수분양자들에게 임대료를 드리면 되는 것”이라며 “현재 영업 중인 수산물 판매업체는 이중 임대차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공동 사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시행사 대표는 임차료 지급 및 건물 인도에 대한 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은 이유로 “능력이 안 되는데 지불하라면 할 수 있겠나”라며, “기자님이 (현재 영업 중인) 수산물 판매업체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와서 영업해보라”고 말했다. 수산물 판매업체 카드 채권 강제집행을 피하고자 자기 아들 사업자 명의의 카드단말기로 바꾼 행위에 대해서는 “제가 죄를 지었으면 벌 받으면 되는 것”이라며, “소송 걸었던 60여 개 점포 때문에 다른 점포도 다 문을 닫아야 하는 거냐, 어쩔 수 없이 별도 법인을 설립해서 공동사업 형태로 묶어 영업한 것”이라고 밝혔다. 역시 패소한 분양대금 반환 소송 결과를 이행하지 않는 이유에 관해서는 “돈이 없어서 못 주고 있다”고 답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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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산재’ 기어코 대법원까지 끌고간 대한민국[그녀의 우산 9화]
끝내 대법원까지 간다. 16년간의 투병. 이제 온몸이 굳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신호영(가명, 48) 씨의 사정은 얼마나 고려됐을까. 두 차례 패소 판결에도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은 뜻을 꺾지 않았다. 공단은 지난 13일 법원에 상고했다. 결국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겠다는 것. 신 씨의 파킨슨병에 대해 ‘일터에서 생긴 병’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법원은 앞서 두 차례 공단이 신 씨에게 내린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소송을 시작한 지 4년째, 산재 승인을 신청한 지는 7년째다. 희망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금세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신 씨에게 이번 여름도 그랬다. 그는 과거 LED 개발과 생산 업무를 하다가 파킨슨병을 얻어 16년간 투병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두 번째 승소 판결은 지난달 25일 있었다. 거듭되는 법원의 전향적인 판단. 여기에 마음 편히 웃지 못하는 사람은 있었다. 다름 아닌 신 씨의 모친 김정혜(가명, 72) 씨였다. “대법원까지 안 갈까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한 번 데인 적이 있으니까….” ‘한 번 데인 적’이 있다는 건, 공단이 1심 패소 이후 사건을 고등법원까지 끌고 간 일을 말한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번에도 공단은 상고 기한인 2주일에 거의 맞춰 13일 만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공단이 2019년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린 것까지 포함하면 세 차례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셈. 사건을 담당한 문은영 변호사는 지난 14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소든 상고든 무조건 하는 게 아니라, 이유가 명확하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원고(신 씨)가 1심, 2심을 다 이겼는데, (공단이) 대법원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예측하기가 어렵네요.” 공단 측 입장이 궁금했다. 지난 14일 문자메시지로 받은 답변. “유기화합물과 파킨슨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특히 LED제조업, 반도체 등에서 파킨슨병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선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규범적 법리적 추가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됨.” 공단은 계속해서 이러한 주장을 펼쳐왔다. 하지만 법원은 ‘발병원인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은 질병 전반에 대해 상당인과관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명확한 인과관계가 아직 밝혀지지 못했어도 상당성이 있다면 산재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긴 세월 재판에 정신적으로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제 몸도 병이 많이 진행되어 저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 상태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간병하고 계신데, 연세가 많으시다보니 어머니도 한계점에 이르신 것 같습니다. 실 같은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붙잡고 버티고 있는 저의 삶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신호영 씨는 지난 13일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더 이상 산재 소송을 지연시키지 말아달라는 호소. 산재 신청 → 공단의 불승인 결정 → 신 씨, 행정소송 제기 → 1심 신 씨 승소 → 공단 항소 → 2심 신 씨 승소 → 공단 상고까지, 이미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는 ‘근로자를 위한 신속한 보상’이라는 법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공단은 거듭 항소와 상고를 결정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 이번에 공단이 밝힌 입장 가운데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법무부의 지휘를 받아” 상고를 제기했다는 부분이다. 1심 패소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결정했던 배경에도 ‘법무부의 지휘’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공단 관계자는 항소 결정의 배경에 대해 “행정소송의 최종 결정 권한을 지닌 법무부로부터 ‘의학적 판단을 다시 받아보자’며 항소를 제기해보라는 권고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관련기사 : <법원은 산재 인정, 공단은 불복 항소… “죽어야 끝날 일인가”>) “고객의 눈높이에 맞게 공정, 적시,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여 더 넓고, 더 두터운, 더 누리고,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나누는 일하는 모든 사람의 행복파트너가 되도록 전 임직원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에서는 공단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2017년 시작된 산재 싸움. 그리고 2020년부터 이미 4년간 진행돼온 산재 소송. 공단의 상고 결정은 과연 신 씨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의 행복파트너”로서 “공정, 적시,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한 일이었을까. 하루하루 지날수록 신 씨의 건강 상태는 그만큼 악화되고 있다. 그가 처음 소송에 나설 때만 해도 거동이 조금 불편했을 뿐, 소통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수십 년간 같이 살아온 어머니조차 그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대법원까지 간 산재 소송.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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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뻥튀기에 월세 먹튀까지… 피해자 두 번 울렸다 [유령타운의 비명 2화]
똑똑한 눈이 달려서 자기 자리를 알아서 찾아간다는 돈. 그 종착지는 언제나 건물주의 주머니였다. 서울 동대문・남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며 30대를 보낸 김용균(48) 씨의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 ‘건물주 되는 게 어렵다면, 점포 주인이라도 되자!’ 김 씨는 자영업을 접고 발전소 협력업체에서 석탄관리 일을 하면서도 ‘점포 주인’이란 꿈을 접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부동산경매 학원에 다닌 것도 그 때문이다. 저금리 시대에 서울 아파트 값이 폭등하는 등 너도나도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던 2017년. 직장 동료가 “상가 분양을 알아본다”며 김 씨에게 함께 임장(현장방문)을 가자고 제안했다. 마침 아파트형 공장, 지식산업센터 등 상가 분양이 유행을 타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분양사무실이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사업지는 인천 서쪽 끄트머리, 중구 연안부두에 위치했다. 소월미도로 가는 항구 근처 공단 밀집 지역이다. 축구장 4개 크기로 지어진다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4개동 802개 호실의 대규모 상가였다. “압도적인 빅 체인지가 시작된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희소가치가 높은 공실률 없는 특수상가”“인천구도심 재생사업 등 다양한 대규모 개발비전의 중심”“연 수익률 12.44%” 분양사무실에 놓인 홍보 팸플릿 문구가 김 씨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1.5평(전용면적 4.42㎡)짜리 점포 분양가는 1억 2000만 원. 홍보물에 나온 수익률을 적용하면, 월세로만 100만 원 이상 기대됐다. ‘홍보물이 다소 과장됐더라도, 월세 70~80만 원은 받을 수 있겠는데?’ 김 씨는 “꽤 괜찮은 노후 대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쉽게 뛰어들 일은 아니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부지에서 약 800m 떨어진 인천종합어시장이 마음에 걸렸다. 김 씨는 다시 한번 발품을 팔아 인천종합어시장으로 향했다. 1977년에 지어진 어시장은 500개 호실로 규모는 컸으나 낡고 오래돼 이용이 불편했다. 특히 주차 시설이 좋지 않았다. 김 씨는 회를 사먹으며 직접 상인들을 인터뷰했다. 인천종합어시장의 월세는 최소 180만 원. “우리야 장사 잘되고, 월세 낮으면 얼마든지 가게를 옮길 마음이 있지!” 김 씨는 직접 만든 명함을 상인들에게 건넸다. 그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이 준공되면 다른 곳보다 월세를 싸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쯤 했으면, 현장조사는 끝. 김 씨는 2017년 11월 상가 분양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김 씨는 분양금 1억 2000만 원 중 4900만 원은 대출로 충당했다. 수산물타운 준공이 끝나면, 드디어 월세 내던 사람에서 받는 사람으로 전환. 꿈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동대문시장에서 도매 경험이 없었다면 상가 분양을 안 받았을 텐데… 이제 와서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802개 호실 중에서 512개만 분양됐다. 미분양률은 약 36%.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상가 대부분은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텅 빈 상태다. 상인도 없고 손님도 없고 물고기도 없으니, 그야말로 이름만 ‘수산물타운’인 셈이다.(관련기사 : ‘축구장 4배’ 유령타운… “어시장에 바닷물도 안 나왔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임차인 구해달라고 해도 저희가 중개를 안 해요. 이미 분양 단계부터 망한 자리예요.” 지난 6월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에 오래된 인천종합어시장이 있잖아요. 아파트단지 근처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잖아요. 누가 차 타고 거기(인천국제수산물타운)까지 나가겠어요.” 김용균의 현장조사와 예측이 크게 빗나간 상황. 인천종합어시장은 지은 지 50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재개발 계획은 정해진 바가 없다. 설령 재개발한다 해도 그쪽 상인들이 모두 인천국제수산물타운으로 이전한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 김 씨가 분양사무실에서 들었던 “예상 수익률 12%”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시행사는 예상 수익률을 지나치게 부풀려 2017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 조치’를 받았다. 한마디로 허위・과장광고였다. 건물의 준공 예정일은 2019년 10월이었다. 하지만 건물 사용승인은 5개월이 더 지난 2020년 3월 27일에야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도 장사는 불가능했다. 어시장에 바닷물(해수)이 나오지 않았다. 바닷물 공급 펌프에 모터가 설치되지 않은 채 준공이 떨어진 거였다. 시설 공사는 2020년 12월에야 마무리됐다. 처음 약속한 준공 예정일에서 1년 하고도 2개월이 더 지나서였다. 김용균 씨는 임차인을 못 구해 골머리를 앓았다. 월세 수입은커녕 매달 대출금 이자만 내고 있다. 이른 시일 내 시장 정상화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때 시행사 대표가 김 씨에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분양받은 상가를 저한테 임대해주십시오. 제가 상가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해보겠습니다.” 임대 조건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4만 원. 첫 3개월 무상임차 단서가 있었지만, 김 씨에겐 거부할 일이 아니었다. 김 씨는 임대차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임대차 기간은 2020년 8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시행사 대표는 법인 ‘인천연안수산시장농축산복합’을 만들어 4개 동 1층 수분양자들에게 점포를 빌렸다. 월세만 들어온다면 점포 주인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월세요? 지금까지 밀린 거 다 필요 없으니까, 시행사 대표가 빨리 (상가에서) 나가면 좋겠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김 씨가 분양받은 상가가 있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 A동으로 가봤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유일한 수산물 판매업체가 영업 중이었다. 손님은 나 한 명이었다. 점심 때 한 번, 다른 날 저녁 때 또 한 번 방문했지만 사정은 똑같았다. 어쨌든 영업 중이니 분명 임대료를 낼 터. 하지만 여기에도 꼼수가 있었다. 수산물 판매업체는 시행사 대표와 임의로 이중 임대차계약을 맺고 들어왔다. 김 씨를 비롯해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2개월 치 임대료밖에 받지 못했다. 시행사 대표에게 임대료를 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상가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 등이 전부였다. 김 씨를 포함 상가분양 피해자 68명은 법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2021년 9월 시행사 대표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밀린 임대료를 지급하고 상가를 비워달라는 요구다. “(시행사 대표는) 이 사건 각 상가를 해당 원고들(상가분양 피해자)에게 인도할 의무를 부담하는 외에 미납 차임 및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 또는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있으므로 (…)” (건물 인도 소송 1심 판결문, 2022. 10. 14.)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지난 5월 결국 승소했다. 대법원까지 2년 4개월이나 걸린 긴 싸움이었다. 하지만 시행사 대표는 여전히 임대료를 주지 않고 있다. A동 1층 수산물 판매업체는 지금도 영업 중이다. 허위・과장광고에 당한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시행사 대표에게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시행사 대표가 ‘알 박기’ 식으로 버티는 동안, 그의 아들은 시행사 명의 A동 4층 상가에 대형 카페를 차려 장사를 하고 있다.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법원에 수산물 판매업체 카드 매출채권 가압류를 신청했다. 법원은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시행사 대표는 수산물 판매업체의 카드 단말기를 자기 아들 사업자 명의 기계로 바꿔치기했다.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시행사 대표와 그의 아들을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2022년 고소했다. 강제집행면탈이란, 강제집행을 피하고자 고의로 재산을 숨기는 등 행위를 말한다. 경찰 수사 결과는 2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이렇게, 상가주인이 되겠다는 김 씨의 꿈은 인천 연안부두 바닷가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아이들과 우리 부부 노후를 생각해서 시작한 일인데, 제 공부가 부족했나 봅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해결이 난망한 ‘부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 현장이다. 대규모 미분양과 공실 사태, 물고기와 비린내 없는 축구장 4개 규모의 ‘유령타운’이 그걸 증명한다. 시행사는 2020년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미분양 상가 등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약 480억 원을 대출받았다. 건축 과정에서 받은 PF 대금을 갚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출금은 2022년 3월부터 연체됐다. 시행사는 지방세 등 6억 원가량을 체납했다. 시행사 소유의 일부 상가는 압류된 상태다. 하지만 시행사 대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김 씨 등이 제기한 소송 외에도, 분양대금반환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가 더 있다. 그 소송 역시 시행사 측이 패소했지만, 위약금은커녕 분양대금 원금조차 갚지 않고 버티고 있다. 현행법상 분양 과정에서 허위・과장광고에 대한 형사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연안부두 국제수산물타운 소유자 모임’ 커뮤니티에 가입한 피해자만 340여 명. 피해자는 이들만이 아니다. 세금 체납은 공공의 피해로 이어진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담보로 수백억 원의 돈을 댄 금융권 역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인천 중구청은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구청 관계자는 “손님이 없어 공실 상가가 된 건 소비자 선택의 영역이다, 관에서 공실 상가에 대해 지원하거나 해결해줄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12일과 16일 시행사 대표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준공 인허가 과정의 문제와 예상 수익률 과대광고 등에 관해 묻고자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신 역시 없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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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4배’ 유령타운… “어시장에 바닷물도 안 나왔다” [유령타운의 비명 1화]
서해 바다 위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차를 달렸다. 도착한 곳은 인천 연안부두에 위치한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인천 중구 항동). 차를 몰고 A동 지하주차장에 진입했다. 지하 1층은 주차공간이 좁았다. 한 층 더 내려갔다. 곳곳에 주차 자리가 비어 있었다. 수상한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번호판이 없는 외제차였다. 틀림없이 이런 차가 더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더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3층 주차장에 진입하자 마주친 건 빨간색 포르쉐 스포츠카. 역시 번호판은 없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국인 여성이 스포츠카 옆에서 얄궂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두 남성은 그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 중이었다. 차를 돌려 빠져나가기 위해 주차장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얼마 못 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혔다. 주차장 통로까지 번호판 없는 차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었다. ‘수산물타운’ 주차장에서 목격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의아한 장면의 연속. “어디 찾아오셨어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경계하며 물었다. 수산물타운에 왔다고 답하자, 남성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여기 차 못 돌려요. 후진해서 나가세요.” 번호판 없는 외제차들은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중고차로 보였다. ‘수산물타운’ 주차장에 횟감을 사러온 손님들의 차량 대신 선적 대기 중고차로 짐작되는 차량만 가득한 상황. ‘국내 최대’를 자랑하던 인천국제수산물타운에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음이 틀림없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축구장 4개 크기, 연면적 5만 7550㎡ 규모의 초대형 상가다. 지하 3층, 지상 4층으로 규모로 4개동, 전체 802개 호실로 구성됐다. 분양대행업체에 따르면, 건물 외형을 지어올리는 데만 약 1800억 원이 들었다. 그날 저녁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찾아간 이유는 지난 5월 도착한 제보 메일 한 통 때문이다. “억울함과 허탈한 마음에 용기 내어 글을 작성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건물 준공이 완료됐지만 4년째 대부분 공실로 수분양자(상가를 분양받은 사람)의 고통만 남겨졌습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그곳 이름을 넣어보니, 몇 년 전 발행된 기사들이 먼저 뜬다. <인천 항동에 들어서는 초대형 수산물 테마파크><국내 최대 어시장… 수익률 ‘살아있네’> 각동 1층에는 수산물 도・소매점, 2층에는 활어 전문 식당, 3~4층에는 노래방, 카페, 스크린골프장, 찜질방, 공연장 등이 생긴다는 소식이었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장밋빛 미래’를 노래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보자 서희성(42) 씨가 이야기한 현실은 장밋빛이 아니라 잿빛이었다. “국내 최대 어시장”의 실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찾아갔다. 소월미도로 가는 항구 근처 공단지역. 인근에는 물류회사 간판이 붙은 컨테이너가 쌓여 있었다. ‘축구장 4개 규모’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건물을 한 바퀴 돌아봤다. 이상했다.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A, B, C, D동으로 구분된 건물 내부 역시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B동 1층으로 들어갔다. 565평(1864.69㎡)이나 되는 상가 내부는 깜깜했다. 퀴퀴한 먼지 냄새가 풍겼다. 천장에는 “행사코너”, “제철코너” 등이 적힌 간판이 매달려 있었다. 수조와 수산물 판매대 위에는 먼지만 가득했다. 수조 뒤에는 에어컨 실외기 10대 정도가 놓여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는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사람도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D동으로 가봤다. 어두운 내부로 들어가자, 바로 왼쪽에 분양홍보관 사무실 위치를 알리는 가판대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은 아예 장사를 했던 흔적조차 없었다. 상가 1층 바닥에는 구획을 나누는 흰색 선만 그려져 있었다. C동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1층에는 생선회를 떠와서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꾸며져 있었다. 캠핑용 의자와 고기 불판 설치가 가능한 식탁을 갖춘 텐트 약 20개도 보였다. 캠핑 분위기로 한껏 꾸몄으나, 여기에도 역시 손님은 없었다. 2층부터 4층까지 올라가 봤다. “주인 직접 임대, 010-XXXX-XXXX” 불 꺼진 텅 빈 상가 유리창마다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날 인천국제수산물타운에서 광어, 우럭보다 더 자주 만난 건 이런 안내문이었다. 마지막으로 A동을 찾았다. 드디어 도다리, 아나고 등 물고기가 보였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유일한 수산물 판매업체가 1층에서 영업 중이었다. 손님은 나 한 명이었다. 날짜를 바꿔 점심 시간에도 가보고, 저녁 시간에도 가봤다. 하지만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제보자의 말 그대로였다. 불 꺼진 건물, 텅 빈 상가, 비린내 없는 어시장, 선적 대기 중고차만 가득한 주차장.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거의 ‘유령타운’이었다. “시행사가 처음부터 판을 잘못 깔았어요!” 제보자 서 씨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만든 시행사 대표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건축 사업은 2017년 본격 시작됐다. 서 씨는 이때 지인 소개로 1.5평(전용면적 4.42㎡) 수산물 판매대 자리 한 칸을 약 1억 6000만 원에 계약했다. 이중 8500만 원은 은행 대출로 충당했다. 시행사는 연 수익률을 ‘12%’라 광고했다. 일부 분양대행업체는 수익률을 20%까지 부풀리기도 했다. 2017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허위・과장광고로 보고 경고 조치를 했지만 광고는 달라지지 않았다. “공실률 없는 특수상가 프리미엄”이라는 광고가 무색하게도,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터졌다. 미분양률은 약 36%. 서 씨가 확보한 채권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시행사 소유 미분양 호실은 총 290개다. 전체 802개 호실 중 512개만 분양됐을 뿐이다(2024년 6월 기준). 건물의 준공 예정일은 2019년 10월이었다. 준공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행사는 4개월 뒤인 2020년 2월부터 상가 입점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그조차 말뿐이었다. 건물 사용승인은 2020년 3월 27일에야 떨어졌다. 준공 예정일로부터 5개월이나 지난 뒤였다. 인천 중구청의 건물 사용승인 후에도 장사는 불가능했다. 바로 옆이 바다인데도, 어시장에는 바닷물(해수)이 나오지 않았다. 바닷물 없는 어시장이라니. 알고 보니, 바닷물을 공급하는 펌프에 모터가 설치되지 않은 채 준공이 떨어졌다. 해수 공급 펌프는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서 씨는 2020년 5월 인천 중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중구청에서 건축사무소의 감리 의견을 듣고 (건물 사용) 최종 승인을 해주는 것 아닌가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아직도 해수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시장의 제일 중요한 해수가 안 나오면 어떻게 장사를 하나요? 현재(2020년 5월)까지 4개 동 1층의 총 500여 개 점포 중 장사를 하는 곳은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사용승인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천 중구청은 “해수 사용 등에 대해서는 건축법상 정하고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입점 등에 관한 사항은 계약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해수 펌프 등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모든 시설 공사는 2020년 12월에야 마무리됐다. 처음 약속한 준공 예정일에서 1년 하고도 2개월이 더 지나서였다.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그동안 임차인을 구할 수도 없었고, 직접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대출을 끼고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1년 2개월간 아무 수입 없이 이자만 낸 셈이다. 수익률을 부풀린 허위・과장광고와 대규모 미분양 사태에 이어, 바닷물도 공급되지 않는 등 1년 2개월이나 지연된 공사. 그러는 동안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성패를 좌우할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렸다. 서 씨는 2020년 8월 시행사에 분양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확정 입점 예정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입점할 수 없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제가 (시행사 대표에게) 위약금도 필요 없으니까, 계약 취소하고 원금만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법대로 하라’고 하더라구요.” 서 씨는 한 달 뒤 시행사를 상대로 분양대금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분양대금 약 1억 6000만 원과 위약금 1600만 원 상당을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서 씨는 시행사가 확정입점 예정일, 상가의 규모, 주차장 크기, 공실률 등을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서 씨의 손을 들어줬다. 시행사가 서 씨에게 분양대금과 위약금을 전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시행사는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법원 최종 승소까지 걸린 시간만 2년 3개월. 그런데 서 씨는 끝내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법대로 하라고 해서 법으로 이겼는데, 이번엔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라구요.” 시행사는 2020년 미분양 상가 등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약 480억 원을 대출받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건축 과정에서 받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금을 갚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출금 상환마저 2022년 3월부터 연체됐다. 시행사는 지방세 등 약 6억 원의 세금도 체납했다. 시행사 소유의 280개 호실 상가 중 일부는 압류된 상태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유령타운을 넘어 이제 ‘시한폭탄’이 돼가는 중이다. 폭탄이 터지면 수분양자들은 물론, 금융권과 지역경제가 줄줄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서 씨는 해마다 대출 연장 기한이 돌아올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대출금 8900만 원을 갚을 방법은 없는데, 시행사는 분양대금을 돌려줄 계획도 없어 보인다. “시행사 대표는 이런 말도 하더라구요. ‘어머니뻘 되는 나이 지긋한 수분양자도 (시행사에게) 상가 다시 가져라고 울고 그러는데, 당신(서 씨) 분양대금을 어떻게 돌려주느냐’고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피해자는 한두 명이 아니다. ‘연안부두 국제수산물타운 소유자 모임’ 커뮤니티에 가입한 피해자만 340여 명. 상가에서 들어오는 수익은 한 푼도 없지만 대출이자는 꼬박꼬박 갚아야 한다. 분양계약을 파기하고 대금을 돌려받고자 해도 시행사는 ‘마음대로 하라’며 배짱을 부리고 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늪에 발목이 빠져 있는 상황.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네 곳의 업체가 분양을 대행했다. 한 분양대행업체 대표는 “우리 회사에서만 약 900억 원의 분양 실적을 올렸다“고 말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이 언제쯤 정상화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시행사 대표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기도 “애매한” 것이 현실이다. 피해자는 수백 명, 피해금액은 수백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아무도 처벌받지도 책임지지도 않았다. 지난달 12일과 16일 시행사 대표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준공 인허가 과정의 문제와 예상 수익률 과대광고 등에 관해 묻고자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신 역시 없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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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그림’ 구속영장 치던 그 시절… 윤석열 풍자 가수도? [우상의 정원 18화]
풍자와 패러디는 그에겐 빼놓을 수 없는 도구였다. “이번에 KTV가 저작권법으로 고소했지만, 사실…. 건희야(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네가 한 거잖아. 직접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맞다이(맞상대) 떠야지. 뒤에 숨지 말고!“ 대통령 풍자 노래를 만들었다가 고소당한 가수 백자(본명 백재길, 52세)는 이번엔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패러디했다. 지난 1일, KTV 고소 규탄 기자회견 중 나온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정책방송원(KTV)은 지난 3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가수 백자를 형사고소했다. 대통령실이 올해 설 명절 메시지로 가수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라는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백자가 “탄핵이 필요한 거죠”로 개사해 부른 걸 문제 삼았다.(관련기사 : “풍자 유튜버 고소? 명품백 받은 죄인부터 잡아가라”) 백자가 유튜브 계정 ‘가수 백자tv’에 올린 풍자 영상은 KTV의 신고로 게시 3일 만에 삭제됐다. 이번 KTV 민간인 고소 사건에 대통령 부부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보는 이유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저작물 무단 이용을 문제 삼는 거지만, 사실 뒤에선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보기 때문.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를 해서 저를 괴롭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별건으로 또 다른 (형사 사건이) 들어올 수도 있겠죠. 예를 들어 제가 활동했던 다른 건을 갖고 국가보안법 문제를 건다거나… 윤석열 정부에선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2024. 7. 16. 백자 인터뷰)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다. KTV 민간인 고소 사건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있었던 한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2010년 ‘G20 쥐 그림 사건’이다. 그해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다. 서울 곳곳에는 회의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부착됐다. 2010년 10월 31일 자정. 대학강사 박정수 씨는 그날 분필 대신 스프레이를 잡았다.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 틀을 대고, 검은색 스프레이를 뿌렸다. G20 포스터에는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청사초롱이 그려져 있었다. 박 씨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포스터 오른쪽 편에 쥐 그림을 그려 넣었다. 마치 쥐가 청사초롱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박 씨와 일행들은 서울 곳곳에서 22개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경찰에 붙잡혔다. 훈방 조치 정도로 끝날 법한 ‘낙서’ 사건. 하지만 수사기관은 오히려 사건을 키웠다. ‘공안 검사’를 등장시켰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2부가 사건을 맡았다. ‘불순한 의도’를 밝히겠다는 취지였다. 수사기관이 주목한 건, 이들이 그린 동물이 토끼나 호랑이가 아닌 ‘쥐’라는 점이었다. 쥐 그림이 누군가를 연상시킨다는 것. 바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다. 해프닝에 가까운 풍자 낙서가 무려 ‘공안사건’으로 비화된 상황. 당시 박 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의 입장을 이렇게 항변했다. “쥐라고 하는 형상에는 꼭 그렇게 단순하게 특정인만 결부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 사회의 거대한 권세라든가 많은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이나 우리의 건강한 시민의식을 갉아먹는 그런 어떤 병균을 옮기는 그런 모든 사람들, 어떤 영혼의 상징적 표현이다. (…) 제 등 뒤에서 등을 떠민 배후를 묻는다면 이 시대의 무거운 공기가 아닐까 생각한다.”(2010. 11. 17.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인터뷰 중) 강제수사도 동원했다. 서울남대문경찰서는 박 씨와 동료를 긴급체포했다. 그리고 공동손괴 혐의로 구속영장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수사기관은 박 씨 주변부까지 수사망(?)을 넓혔다. 배후세력을 찾겠다는 거였다. 그가 학술연구모임인 ‘수유+너머’ 회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검경은 쥐 그림을 그렸거나 지켜봤던 회원 5명 전원을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결국 박 씨는 유죄를 확정받았다. 2011년 1심 법원은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씨에 대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벌금 200만 원의 원심이 확정됐다. “이 사건 공용물건을 훼손한 범죄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피고인 박 씨가 G20 행사를 방해할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한 방법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점,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해학적인 의미로 해석되어 예술적 표현의 일종으로도 보여질 수도 있는 점 (…) 여러 양형조건을 참작하여 피고인에 대해 벌금형을 선택하여 판결한다.”(1심 판결문 양형이유) KTV 민간인 고소 사건에서 ‘G20 쥐 그림’ 사건이 떠오른 건 이 때문이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해프닝에 가까운 사건에, 수사기관은 온 힘을 다해 강제수사란 칼날을 휘두르고, 결국 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낸 전력이 있어서다. 가수 백자의 법률대리인 김종귀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두 사건의 유사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쥐 그림’ 사건을 피상적으로 접하신 분들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벌금형을 받았다고 생각하실 수가 있는데, 공용물건 손상죄로 유죄 판결이 난 것입니다. KTV (민간인 고소) 사건에서도 대통령실이나 KTV가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걸고 싶었겠죠. 하지만 (해당 혐의로는) 유죄가 안 나올 것 같으니까, 저작권법이라는 걸 이용해서 (민간인을) 고소했다는 점에서 이명박 ‘쥐 그림’ 사건과 동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2024. 8. 1. 기자회견) 윤홍기 사단법인 오픈넷 연구원도 “이번 KTV의 민간인 고소는 대통령의 심기 경호와 정부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기 위해 시민들을 형사 절차로 겁박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반민주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풍자물에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이제는 공공기관이 나서서 일단 저작권 침해를 무리하게 주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KTV는 가수 백자를 고소하기에 앞서, 지난해 11월 유튜버 ‘건진사이다’ 채널을 운영하는 ‘조장’ 이필승(가명) 씨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조장 이 씨는 주로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공적 활동 영상을 활용해 풍자 영상을 만들어왔다.(관련기사 : 김건희 저격 고소당한 유튜버 “채널 폐쇄 목적 확실”) KTV가 민간인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한 건, 2007년 설립 이래 이때가 처음이다. 사건을 담당한 수서경찰서는 피의자 조사 일주일 만에 이 씨를 검찰로 송치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받고 사건이 빛의 속도로 넘어가더라고요. 조금 의아하긴 했습니다. (…)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검찰이 (피의자가) 유튜버들이니까 괘씸하게 보고, ‘범죄 혐의가 악의적이고 재범의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족들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될 수 없습니다.”(2024. 7. 15. 건진사이다 인터뷰) 이 씨에 대한 KTV의 형사고소를 대리한 법률대리인이 최지우 변호사(법무법인 자유)라는 사실도 ‘숨은 의도’에 대한 의심에 힘을 더한다. 최 변호사는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실 행정관 출신으로, 현재 영부인 김건희 씨가 연루된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 등을 대리하고 있다. 백자 역시 스스로 같은 절차를 밝을 거라 예상한다. “검찰도 여론이 부담스러우니 (기소 여부를) 쉽게 결정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일단 압수수색을 같은 걸 해서 대통령 부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여사님의 뜻을 따라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죠.”(2024. 7. 16. 백자 인터뷰) 셜록은 KTV에 반론을 요청했다. KTV는 지난달 22일 “‘가수 백자tv’와 ‘건진사이다’ 채널은 KTV의 저작물의 무단사용 외 개·변조의 정도가 심하고 악의적으로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 등을 침해해 저작권법으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추가 질의는 이메일로 이어졌다. KTV는 가수 백자 형사고소 사건에서 선임한 법률대리인에 대해서도 답변했다. KTV는 착수금 495만 원에 법무법인 동백과 위임계약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동백은 언론사 뉴스토마토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 민사소송에서도 원고 KTV를 대리하고 있다. KTV는 정부법무공단을 선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법무공단은 국가로펌으로 다양한 유형의 국가소송을 하기 때문에 수임제안을 하였으나 업무분야에 ‘형사고소’는 수임하지 않아 계약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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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 일곱번 ‘반성문’ 다시쓰기… 직장 내 괴롭힘 인정 [회사에 괴물이 산다 11화]
[지난 이야기] 보육교사 이정윤(가명)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계속 사표를 쓰라고 강요당한다. 확인서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반성문’도 강요당했다. 하나의 사건으로 3주간 일곱 번 다시 쓴 적도 있다. 이정윤의 정신건강은 극도로 나빠졌다. 스스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우울증으로 휴직을 요청했던 그에게 원장은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해고 사유는 크게 두 가지. ▲병가 기간이 끝나고도 출근하지 않고 무단결근을 했다는 것. 그리고 ▲적응장애와 우울증이 있어서 영유아를 돌보는 업무를 맡기기에 부적절하다는 것. 그런데 이유가 서로 충돌한다. 이정윤의 정신질병이 심각하지 않다고 간주해서 병가 연장을 반려해놓고, 또 동시에 그의 정신질병이 심각해서 보육 업무를 맡길 수 없다는 논리라니. “두 번째 그렇게 하고(자살충동) 나서 남편이 너무 슬퍼하는 걸 봤죠.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저는 반대로 생각해보지는 못했어요. 만약에 반대로 남편이 그렇게 죽어버렸다면…. 내가 너무 큰 상처를 준 거더라고요. 그럼 내가 마음을 한번 바꿔보자, 죽으려고 했던 그 에너지를 살려고 하는 용기로 한번 바꿔보자, 생각했어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조용히 죽는 길이 아니라 시끄럽게 사는 길을 택했다. ‘경기도 마을노무사’ 제도와 김요한 노무사(노무법인 노동을잇다)의 도움이 컸다. 함미영의 존재는 말할 것도 없다. 용기 내어 사실확인서를 써준 전 동료 교직원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을 수가 없다. 2023년 10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원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지속적인 퇴사 강요 중 부적절한 표현 ▲부당한 확인서·시말서 작성을 여러 차례 강요 ▲민감한 개인정보(노조 가입 사실)의 공표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 과태료도 부과됐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과태료 부과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2019년 이후 접수된 3만 9316건 중, 과태료 부과는 고작 1.3%(501건)에 불과하다. 지난 14일 고용노동부가 밝힌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처리 결과 현황’에 따른 수치다. 산재도 승인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2월 1일, 이정윤의 적응장애 등을 ‘업무상질병’으로 판정했다. 약 한 달 뒤인 3월 11일에는 부당해고도 인정됐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해고금지 기간인 산재요양 기간 중 발생한 해고”이므로 “위법하며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세 기관 모두 이정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어린이집 측은 세 가지 결정에 모두 불복했다. 직장 내 괴롭힘 과태료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부당해고 인정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는 등, 이의제기 절차에 들어갔다. 7월 5일 중앙노동위원회 날. 이정윤은 걱정이 컸다. 현장에서 원장을 만나면 어떡하나. 그 상황의 스트레스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물론 그날도 미리 진정제를 먹고, 공황발작에 대비해 응급약을 챙겼지만…. 심판위원들 앞에 이정윤이 자리했다. 그리고 바로 뒷자리에 남편이 앉았다. 혹시라도 이정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장 손을 뻗어 구할 수 있도록. 다행히 원장은 나오지 않았다. 이정윤은 미리 준비해간 한 장 반짜리 최후진술서를 직접 또박또박 읽었다. 눈물이 조금 나고 손이 약간 떨렸지만 참을 만했다. “‘힘들었던 일터로 왜 돌아가려 하느냐?’ 제가 요즘 받는 질문입니다. 제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타의에 의한, 그것도 부당함에 의한 퇴사로 제가 사랑했던 일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현장으로 돌아가서 제가 사랑하는 일을 계속 할 것입니다. 가진 힘이 작다고 해서 포기하라고 강요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윤 중앙노동위원회 최후진술 2024. 7. 5.) 판정 결과는 ‘초심유지’. 부당해고가 다시 한 번 인정됐다. 네 번째 승리다. 사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보육교사의 비율은 상당히 높다. 그중 이정윤과 같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결국 인정받는 경우가 흔치 않을 뿐이다. 2021년 직장갑질119 등이 진행한 ‘2021 보육교사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71.5%(246명)가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를 묻는 질문에는 78.0%(192명)가 ‘원장 등 어린이집 대표’라고 답했다.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61.4%(121명)가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의료적 진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 36.6%(126명)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보육교사 해고 사건 경험이 많은 김요한 노무사는 이정윤이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갑갑하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많은 현장에서 본 “상투적인 수법”이란 거다. “보육교사가 근로조건이나 법 위반 문제를 지적하면, (사용자가) 그 교사를 몰아내기 위해 쓰는 레퍼토리거든요. 교사들에게 ‘이 중에 누구랑 같이 일하기 싫은지 적어내라’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형성하는 건 아주 오래된 얘기예요.”(김요한 노무사 전화인터뷰 2024. 6. 25.) 김 노무사는 “재원은 다 공적으로 운영되는데, 운영은 (원장) 개인에게 위탁을 줘서 마음껏 사적 전횡을 휘두를 수 있게 한다”는 제도적 문제도 지적했다. 엄연히 ‘국공립’ 어린이집이지만 위탁운영자일 뿐인 원장 개인이 인사 등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는 비판이다. “제가 살아 있는 건 사실 남편 덕분이에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우울증은 이정윤을 소파 하나만 한 세계에 가둬버렸다. 특히 집에서 어린이집이 가깝기 때문에, 혹시나 외출을 했다가 학부모나 동료교사나, 최악의 경우 원장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웠다. 뭘 잘못해서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남편은 생업도 미루고 늘 이정윤의 곁을 지켰다. 남편은 그를 달래서 차에 태우고, 공원으로 카페로 데리고 나갔다. 일부러 집에서 적당히 멀고, 사람도 그리 붐비지 않는 카페만 찾아 다녔다. 지난 6월 21일 기자가 이정윤을 만난 경기 용인시의 한 카페도 그런 곳이었다. 평일 낮 대형 카페의 2층은 역시 한적했다. 인터뷰 도중 이정윤의 눈길이 때때로 계단 쪽을 향했다. 누군가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릴 때였다. 그때마다 그는 목소리를 약간 낮추고, 올라오는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약속장소를 정할 때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만약에 카페에 갔는데 누구를 만나기라도 하면…. 저는 원장을 보거나 어떤 괴롭힘 상황에서만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비슷한 사람을 보거나 비슷한 상황이 되면 이게 이렇게(공황발작이) 딱 되더라고요.”(이정윤 전화 인터뷰 2024. 6. 15.) 지금도 이정윤은 시간마다 상황마다 다른 약들을 챙겨 먹어야 한다. 기자를 만난 날도 미리 진정제를 먹고 왔다. 인터뷰 중에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 그때의 고통이 다시 살아날까봐. “사실 공황장애라는 게 뭔지 잘 몰랐어요. 근데 겪어보니, 이게 제가 통제한다고 통제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괴롭힘과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어떤 스위치가 탁 켜지면 그게(공황발작이) 딱 오더라고요. 굉장히 무섭더라고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아직도 고통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산재 요양기간은 10월까지 다시 연장된 상태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됐다. 산재도, 부당해고도 인정됐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과, 노동위원회가 이정윤이 당한 피해와 고통을 인정하고 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어린이집의 복직 통보는 아직. 이제 남은 건 그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일뿐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뭘 걱정하는지도 잘 안다. 가끔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자고 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보자고 했던 이유도 다 이정윤의 ‘마음건강’을 가장 먼저 걱정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정윤에게는 어린이집으로 꼭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결국 (어린이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내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가긴 가야죠. 나중에 그런 걸(이직이나 퇴사) 하더라도, 내 첫 번째 발걸음은 내 원래 일터로 돌아가는 거여야 해요.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가 그게 어디든 집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결국엔 제가 (어린이집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예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어디서부터인가 언제부터인가 뭔가 잘못돼서 길이 어긋났다면 일단은 처음에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먼저다. 그런 다음 새로운 길로 갈지언정. 그게 바로 잘못돼 있던 모든 것들을 끝맺는 마지막이자, 동시에 새로운 것들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카페 앞마당에 들꽃들이 피어 있다. 꽃무리를 향해 이정윤의 눈길이 간다. 발길도 자연스레 그쪽을 향한다. 어느새 손길을 뻗어 조심스레 꽃을 만진다. “원래 꽃을 참 좋아해요.” 그의 아담한 손이 눈에 들어온다. 일터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동료들과 신뢰를 나누고, 가족들과 편안한 일상을 누리는 날은 언제쯤 올까. 그 손에 돌려받아야 할 것이 아직 많다. 지난달 1일 A 원장은 기자와 한 통화에서,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듣길 바란다며 “상처 받은 분들이 많은데 조용히 극복하고 지내려 하니 시끄러워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틀 뒤 C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이정윤이 원장과 부원장을 상대로 낸 공동감금과 공동강요 혐의 고소건이 ‘불송치’로 종결됐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이정윤 측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C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산재 승인 ▲부당해고 인정 등 세 가지 결정을 모두 반박했다. 우선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결정에 대해 “면피성 행정”이라 비판하고, “괴롭힘이라 할 만한 사안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개원 초기) 운영상 조금의 미숙함은 있을지언정 직장 내 괴롭힘은 있기 어려운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산재 판정 과정에서도 어린이집 측은 “(이정윤의 주장은)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거나 매우 과장된 것”(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 판정서 인용)이란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산재 승인에 대해 C 변호사는 “사용자(어린이집) 측에서 (부당함을)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주장했고, 부당해고 인정에 대해서는 “해고의 실질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되진 않으나 다만 절차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는 있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해당 어린이집의 ‘진짜 주인’인 광주시 측 생각은 어떨까. 광주시청 국공립어린이집 담당자는 지난 6월 28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어린이집과 이정윤) 양쪽에 자료를 다 요구해둔 상태”라며, “자료를 입수한 뒤 각각 면담을 통해서 방향을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해당 어린이집의 위탁 만료일은 오는 10월 31일로, 재위탁 심사를 앞두고 있다. 담당자는 “(위탁)계약 해지 사유라 판단되면 계약해지나 재계약 불가도 가능하지만, 어쨌든 그건 따져봐야 할 문제”라며, “(법적) 결정이나 판결을 기다리면서 확인하는 중”이라 답했다. <끝> 취재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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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당하고 우울증까지… 회사는 ‘해고’를 통보했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10화]
[지난 이야기] 보육교사 이정윤(가명)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초과근무 문제 등 ‘바른말’을 했다가 미운털이 박힌다. 원장은 그가 ‘불편하다’며 계속 퇴사를 강요한다. 전 교사들에게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이정윤을 압박하기도 했다. ‘퇴사를 결정짓지 않으면 퇴근 못한다’고 잡아둔 날도 있었다. 이정윤은 공황발작이 시작됐다. 예전에 이정윤이 일하던 어린이집 원장은 그를 위해 추천서를 써줬다. 추천서 속에서 이정윤은 “밝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할 줄 알고”, “부모님과 소통할 때에도 배려와 공감의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하며, “유아의 개인적 발달과 어린이집 교육방향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이 일하기 불편한 사람’, ‘장점이 없는 사람’, ‘동료들도 모두 싫어하는 사람’이란 비난을 듣고 있다. 이 극단적인 온도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22년 2월 말, 원장은 보직 변경을 통보했다. 담임교사에서 보조교사로. 이정윤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고 그 사실을 원장에게 알렸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에 이정윤은 깜짝 놀랐다. 이정윤이 노조에 가입했다고, 원장이 지역 어린이집 원장단체 회장에게 알렸다는 거다. 이정윤은 한 달 전 보육교사 노조에 가입했다. 계속된 퇴사 압박을 혼자 버텨내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 개인정보보호법은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등을 민감정보로 규정하고, 정보주체 동의 없이 이를 처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보조교사 생활은 한 달간 이어졌다. 그리고 3월 말 이정윤은 다시 담임교사가 됐다.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원장과 합의했기 때문이다. 저를 향해 많은 교사들이 말했습니다. “어린이집은 원장이 사장이다. 직원을 자르는 것은 사장 마음이다.” “어린이집 교사가 노조 가입이라니, 빨갱이다.” “선생님(이정윤) 때문에 다른 교사들이 불편하다.” 어느새 저는 어린이집에 있어서는 안 될 ‘악의 축’이 돼 있었습니다.(이정윤 중앙노동위원회 최후진술 2024. 7. 5.) 2022년 8월 22일, 원장이 이정윤과 또 다른 동료교사 한 사람을 교무실로 불렀다. 이번에는 사표가 아니라 경위서를 쓰라는 지시였다. 두 사람은 6월에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두 달이 넘게 지나서 경위서를 쓰라고 한 거였다. 다음 날 이정윤은 경위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2주쯤 더 지난 9월 6일. 원장은 다시 이정윤을 불러 문서 한 장을 내밀었다. ‘확인서’라는 제목의 문서. 이미 경위서를 썼던 그 일, 약 3개월 전 말다툼에 관한 거였다. 이미 원장이 문구를 써둔 확인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원장과 부원장은 서명을 하지 않으면 교무실에서 나갈 수 없다며 강요했다. 고함을 치고 책상을 두드리는 태도에 이정윤은 공포를 느꼈고, 결국 마지못해 서명을 했다. “이걸 받지 못하고는 선생님들 나갈 수가 없어요. 이 자리에서. 아니, 선생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쓰셔야 된다고요! 이거는 쓰실 수밖에 없어요.”(부원장 B 대화 녹취록 2022. 9. 6.)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경위서를 다시 써오라는 지시. 이번엔 ‘확인서’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정윤은 그날 확인서를 제출했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다시 써야 했다. 원장과 부원장은 고쳐 써야 할 곳, 삭제해야 할 곳을 직접 ‘첨삭’했다. 다시, 다시, 다시. 제출과 반려를 매일 반복했다. 8월 23일, 9월 6일, 9월 7일, 9월 8일, 9월 13일, 9월 14일, 무려 6차에 걸쳐 확인서(경위서)를 제출했다. 원장이 미리 문구를 써둔 확인서에 서명도 했으니, 하나의 사건으로 모두 일곱 번의 확인서를 제출한 셈이다. 원장이 요구한 건 경위서도 확인서도 아닌, 사실상 ‘반성문’과 다름없었다. ‘반성문 다시 쓰기’는 그 뒤에 또 있었다. 9월 16일, 이정윤이 돌보던 아이가 콧등이 쓸리는 일이 있었다. 연고를 바르고 나니 아이의 코는 이상 없는 상태로 돌아왔다. 부모에게도 알렸지만 괜찮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런데 사흘 뒤에 문제가 생겼다. 원장이 이정윤을 불러 호통을 치고, 이번에도 확인서를 쓰라고 지시했다. 역시나 계속해서 반려되고, 계속해서 다시 써야 했다. 9월 20일, 9월 21일, 9월 23일, 9월 27일, 10월 5일. 5차에 걸쳐 확인서를 다시 써서 제출했다. 같은 일은 다음 달에 또 일어났다. 11월 4일 원장은 이정윤을 불러 ‘시말서’를 쓰게 했다. 이번에는 하루 전 현장학습에서 짜증을 내며 “아이 씨”라고 상스러운 말을 했다는 게 이유. 이정윤은 그런 말은 안 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원장과 부원장은 ‘동료교사들이 들었다’며 이정윤을 몰아세웠다. 그날 이정윤은 1차 시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원장은, 원장 본인이 직접 문구를 쓴 시말서를 이정윤에게 내밀며, 서명하라고 했다. 억울하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상스러운 말을) 안 했다는 걸 증명해보라”고 다그치고, “교회 다닌다며? 정말 양심이라는 게 있어?”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번에도 역시 ‘서명하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다’고 윽박질렀다. “오늘 이거 지금 사인 안 하면 선생님(이정윤) 못 가.”“(서명)할 수 없으면 그냥 오늘 여기 계속 있는 거야. 집에 가지 말자, 우리.” (부원장 B 대화 녹취록 2022. 11. 4.) 실랑이는 약 두 시간이나 이어졌다. 날카로운 음성과 책상 두드리는 소리. 이정윤에게 또 공황발작이 시작됐다. 손발이 떨리고 꼬였다.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원장 : “그게 불미스러운 행동이 아니야? 어디다 대고서는 거짓말하고 있어?”이 : “거짓말 안 했습니다.”원장 : “어디다 대고 어거지 하고 있어!”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2. 11. 4.) 이정윤은 보육교사 노조의 지부장, 함미영에게 SOS를 쳤다. 함미영은 바로 어린이집으로 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 그 뒤에야 이정윤은 교무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날 밤, 이정윤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내가 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죽고 싶어서 죽는 게 아니에요. 그때는 아무 생각 안 들어요. 그저 너무 지치니까 이제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다…. 제 존재를 계속 부정당했잖아요. 결국 ‘내가 사회 부적응자인가? 정말 내가 문제 있는 건가?’ 하면서 자신을 놓게 되더라고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반성문 다시 쓰기’가 또 시작됐다. 11월 11일 2차, 11월 21일 3차, 11월 25일 4차까지 제출했다. 2차부터는 시말서가 아니라 ‘확인서’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대법원은 “시말서가 단순히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죄문 또는 반성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두6605 판결). 이정윤의 정신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도무지 잠을 자지 못하니, 일상을 버틸 수가 없었다. “사람이 잠을 너무 못 자니까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여요. 집 안에 있는데 웬 남자들이 서 있어요. 그림자가 보여요. 저희 집이 2층인데, 창문에 블라인드를 다 해놨거든요. 가끔 남편이 환기도 시키고 빛도 들어오게 한다고 블라인드를 걷으면, 제가 ‘여보, 저기(창 밖에) 원장이 서 있어!’ 그런 얘기를 자꾸 했어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2023년 3월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물류센터에서 새벽일을 하던 함미영이 ‘마지막 인사’ 메시지를 받은 바로 그날. 그날도 이정윤은 ‘내가 없어지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충남 계룡시의 한 보육교사가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유가족은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정윤은 숨진 보육교사가 꼭 자기 같았다. 이정윤은 사선에 서 있었다. 한 발짝 차이로 삶과 죽음이 나뉜 그날 밤. 함미영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이정윤의 집으로 출동해 그의 안전을 확보했다. 살아서 견딜 수도, 죽어서 끝낼 수도 없는 고통. 결국 입원을 결정했다. 이정윤은 2023년 3월 6일부터 17일까지 12일간 녹색병원에 입원했다. 병명은 적응장애와 ‘상세불명 기원의’ 위장염 및 결장염. 온갖 검사를 다 해봤지만 신체적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정윤은 이른바 ‘반성문’ 사건으로 처음 죽음을 떠올린 2022년 11월부터 녹색병원으로 옮겨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때부터 담당의사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의사) 선생님이 저랑 상담을 하시더니, 제 남편하고 통화하고 싶대요. 나중에 들었더니, (의사가) 폐쇄병동(보호병동) (입원을 권하는) 얘기를 했대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입원해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약을 먹고 잠드는 일밖에 없었다. 죽음조차 떠올릴 수 없는 지독한 무기력. 이정윤은 ‘적응장애’를 진단받았다. “일상생활 기능장애 동반되어 업무 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사료”된다는 소견이 붙었다. 이어 ‘중증의 우울에피소드’ 진단이 더해졌다. 진단서에 적힌 치료기간은 계속 길어졌다. 3월 초 병원에 입원하면서 처음으로 냈던 무급 병가(휴직)를 두 차례 연장해야 했다. “우울증에 걸리면 ‘뭘 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없거든요. 아무것도 안 해요. 살림도 안 하고 운동도 안 하고 밥도 안 먹고 소파에 누워만 있어요. 제 생활반경이 딱 거실 소파밖에 안 됐어요. 가끔 속에서 천불이 나면 아이스크림을 정말 미친 사람처럼 퍼먹는 거야. 다른 식사는 아예 안 하고, 먹는 건 딱 아이스크림 하나였어요.”(이정윤 전화 인터뷰 2024. 6. 15.) 세 번째 휴직 연장을 요청한 때가 2023년 7월 4일. 다시 한번 “중증의 우울에피소드”를 진단받은 날이었다. 하지만 원장은 휴직을 승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건을 붙였다. “녹색병원이 아닌 다른 종합병원에서 ‘취업치료가 어렵다’는 진단서를 발급해서 전달 주시면 (…)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원장 A 문자메시지 2023. 7. 5.) 당시 이정윤은 이미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상태였다. 그는 녹색병원도 종합병원이라며, 산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휴직처리 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 이상 답변은 없었다. 그리고 같은 달 31일. 이정윤은 어린이집이 보낸 서류 한 장을 받아들었다. 해고통지서였다. 취재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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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라는데 왜 버텨”… ‘싫은 사람’ 설문 후 퇴사 강요 [회사에 괴물이 산다 9화]
띵똥-.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울린다. ‘이 시간에 누구지?’ 그날 밤 함미영은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보육교사 노동조합의 ‘전’ 지부장. 잠시 어린이집 일을 쉬던 그는 이따금 물류센터에서 야간 알바를 했다. 3월 초, 이른 봄의 밤공기는 아직도 차가웠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창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 갑자기 울린 스마트폰 알림. 불길함이 확 끼쳤다. 이 시간에 오는 연락은 ‘한가한’ 일일 리가 없다. 바로 전화기를 꺼내들어 메시지를 읽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다 내려놓고 싶습니다. … 안녕히 계세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보육교사 이정윤(48, 가명). 종종 함미영에게 어린이집에서 ‘당한’ 일들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던 사람. 메시지를 보고 함미영은 깜짝 놀랐다. 이정윤이 가끔 탄식처럼 내뱉던 ‘극단적인’ 말들이 떠올랐다. 설마. 함미영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함미영은 바로 112를 눌렀다. 이정윤의 집으로 출동해달라 부탁했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눈을 뜬 채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경기 광주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 이정윤의 일터다. 2019년 12월 개원한 이 어린이집에는 14명의 보육교사가 소속돼 있다(2024년 4월 기준). 이정윤과 같은 ‘개원멤버’들의 고생이 컸다. 개원 전 15일가량은 무보수로 일했다. 개원 업무와 어린이집 평가인증(평가제) 준비, ‘열린어린이집’ 준비까지 겹쳐 업무량은 살인적으로 늘었다. 어린이날 행사, 산타 행사, 물놀이 행사 등 어린이집 행사도 유난히 많았다. 법으로 정해진 하루 한 시간의 휴게시간을 제대로 못 쓰는 건 당연(?)했다. 대개는 저녁도 먹지 않고 야근을 했다. 밥 먹는 시간을 아껴서 조금이라도 더 일찍 집에 가려고. 하지만 너무 늦게까지 일이 이어지면, 사발면에 김밥을 먹으면서 일했다. 그도 아니면 일거리를 집에 가져가서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평일에 못다 한 일은 휴일에 나와서 끝내야 했다. 교사들은 지쳐갔다. 가족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교사들끼리는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정작 원장 앞에서는 말 한마디 하기 어려웠다. 이정윤은 달랐다. 입바른 소리는 늘 그의 몫이었다. ‘업무량을 줄여달라, 초과근무 수당을 달라’ 요구하는 그를, 원장은 눈엣가시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원장님이 이정윤 교사를 심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일하는 동료교사들은 부당함에 대한 요구를 하는 이정윤 교사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원장님과의 갈등을 보면서 이정윤 교사를 피하게 되고 (…) 다른 교사들의 경우 원장의 부당함에 뒷담화를 할지언정 원장의 눈에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동료교직원 문원정(가명) 사실확인서 중) 그 사이 시청도 업무 과중과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 문제를 알아차렸다. 2020년 6월 현장방문에서 문제가 지적됐고, 1년 뒤 지도점검에서 또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그에 따라 2021년 7월 어린이집은 약 1년 전부터 누적된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분 약 400만 원을 뒤늦게 지급해야 했다. 초과근무 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개원 초기 수당은 포함되지 못했다. 원장의 ‘불편한 심기’가 누구를 향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다른 교사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였다. 어린이집의 공기는 묘하게 변해갔다. 동료들 역시 이정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서 힘들다’는 불만은 어느새 ‘이정윤 하나 때문에 어린이집이 시끄러워진다’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이정윤은 ‘모두의 적’이 됐다. “열악한 업무환경에 대해 함께 불만을 이야기했던 교사들은 원장님이 제게 가하는 행위를 보며 입을 다물었고 방관자가 됐습니다. (…) 공포의 학습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나를 따돌린 적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원장 눈 밖에 날 사람과 가까이 했다간 자신도 낙인찍힐 것 같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압니다.”(이정윤 중앙노동위원회 최후진술 2024. 7. 5.) 어느 날부터 원장은 ‘퇴사’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편하게 계속 간다? 그러면 선생님(이정윤)하고 같이 못 갈 거고(고용할 수 없다는 뜻). 선생님에 대해서 뭐가 장점인지. 선생님이… 선생님이랑 같이 근무할 뭘 줘야 말이지? 어? 선생님이 뭘 잘했어요? 뭘 잘했어? 선생님이?”(원장 A 대화 녹취록 2020. 12. 16.) 사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건 2020년 12월이었다. 내년도 반 배정을 위한 교사 면담. 원장은 그에게 퇴사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불편하다, 장점을 알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어떤 핑계를 갖다 붙여도, 그저 ‘네가 마음에 안 드니까 눈치껏 알아서 나가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원장의 말은 이정윤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정윤은 작은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매일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부터, 하루 종일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모두 기록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무능한 사람이 아니야,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다. 그리고 원장과의 대화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원장의 퇴사 강요는 이때부터 약 14개월 동안, 녹음된 것만 해도 여덟 번이나 된다. 원장이 퇴사를 강요하면, 이정윤이 이유를 반문하며 항변하고, 마치 돌림노래처럼 반복됐다. 불 같은 압박, 아니면 얼음 같은 냉대였다. 이정윤은 ‘투명인간’이 됐다. 출퇴근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물론, 업무 보고에도 원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매일 모멸감이 쌓여갔다. “싫다고 이제. 같이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그런데 왜 버티고 있냐고? 왜?” (원장 A 대화 녹취록 2021. 11. 30.) 한 해가 지나, 다시 연말. 2021년 12월 원장은 새로운 근거(?)를 내밀었다. 다른 교사들에게 ‘짝꿍교사(공동담임)를 같이 맡고 싶지 않은 사람’ 이름을 쓰라는 설문조사를 한 거다. 결과는 뻔했다. 원장은 설문조사 결과 이정윤의 이름이 나왔다며 또 퇴사를 요구했다. “이정윤 교사는 운영자인 원장님 입장에서는 불편한 교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원장님과 갈등이 생겨서 힘들어하는 이정윤 교사에게 몇몇 동료교사들이, 보육현장은 변하지 않으니 원장님 운영방침에 따르거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동료교직원 임은주(가명) 사실확인서 중) 무슨 ‘마피아게임’인가. 동료들의 손가락총에 따라 한 사람의 일자리를 뺏다니. 사실 해고할 명분이 확실하다면, 굳이 이정윤에게 사표를 쓰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 원장이 교사 설문조사 결과까지 들고 나온 건, 오히려 그만큼 해고의 명분이 없다는 반증이다. 원장 : “(원을) 운영하는 건 나야! (…)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지!”이정윤(이하 이) : “근데 제가 왜 퇴사해야 되는지 이유를 명확히 얘기 안 해주시는데….”원장 : “아이, 진짜 이 사람이!”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8.) 퇴사가 아니면 보직 변경을 선택하라고 했다. 보직 변경은 담임교사에서 보조교사로 ‘강등’되는 걸 뜻했다. 급여상 불이익을 보는 건 당연. 이정윤은 퇴사도 보직 변경도 원치 않는다는 뜻을 계속 밝혔다. 원장은 점점 언성을 높이고, 손으로 책상을 내려치기도 했다. “그때 너무 비참했거든요. 어떻게 내가 싫다고 사람들한테 그런 설문조사를 받을 수 있지?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저렇게 함부로 할 수 있지? 정말 매일매일이 지옥이었어요. 괴롭힘 당하고 (공황 발작이 나타나면) 약을 털어 먹어요. 그런데 그걸 또 다 토해요. 그러면 빨리 (구토를 멈추는) 다른 약을 또 먹고…. 아이들한테 그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혹시라도 옷을 버릴까봐 (출근할 때) 항상 여벌옷을 갖고 다녔어요. 토하면서 (용쓰다가) 소변이라도 나올까봐 속옷까지 다 챙겨서…. 정말 비참하다….”(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이정윤은 2021년 6월부터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불면증과 공황장애 증상 때문이었다. 처음 ‘정신과’를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 아냐? 왜 혼자 못 이겨내?’ 하는 편견이 있었다. 그 고통이 자신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거듭된 퇴사 강요와 따돌림을 겪으면서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혼자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었다. 일터를 떠날 수도 없었다. 약을 먹으며 ‘지옥’ 같은 날들을 견디는 수밖에. 새해가 다가올수록 원장의 퇴사 압박은 강도를 더해갔다. 아마도 새 학년도가 시작되기 전에 이정윤을 정리(?)하고 그 자리에 새 교사를 채용하기 위함인 듯했다. “선생님(이정윤)이 운영자야? 어디 이야기를 하면 하나하나 듣는 게 아니고 하나하나 따져! (…) 항상 거기다 대고 꼬박꼬박 말대답 하고! 말대꾸 하고! 거기다가 꼬박꼬박 납득이 안 된다고 그러고! (…) 주임선생님. 들어와 봐요.”(원장 A 대화 녹취록 2021. 12. 30.) 원장은 동료교사까지 불러놓고 그 앞에서 계속 이정윤을 압박했다. 이정윤은 울음이 터졌다. “언제까지 그러실 건데요. 저 원장님 볼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해요. 제가 (집에서) 잠이나 자는 줄 아세요? (…) 저는 저대로 살아야 되는데 어떡해요, 원장님. 도대체 뭘 얼마나 제가 잘못했다고. 하루아침에 지금 나가라는 거잖아요.”(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30.) 다음 날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2021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원장은 막 퇴근하려는 이정윤을 교무실에 앉혀놓고 또 한 번 퇴사를 강요했다. 책상을 두드리고 고함을 쳤다. 원장 : “선생님(이정윤)이 (의사)결정자야? 선생님이 원장이야! 왜 이렇게 버릇없어!” (…)이 : “제가 퇴사할 만한 어떤 중대한 잘못을….”원장 : “내가 얘기, 이 씨.”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31.) 압박이 계속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이정윤에게 ‘뭔가’가 느껴졌다. “저는 먼저 알아요. 딱 (공황발작) 증상이 올 때 전기처럼 뭔가 오는 느낌이 있어요. 저는 경련으로 먼저 오거든요. 손발이 이렇게 뒤틀린다고 해야 되나, 막 꼬여요. 제 의지하고 상관없이 손이 꼬이고 몸이 막 덜덜덜 떨리거든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또 울음이 터졌다. 공황 증상도 시작됐다. 이정윤은 퇴근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이 : “원장님 저… 가고 싶어요. 저 지금 토할 것 같다고요. 지금 숨이 안 쉬어진다구요. 그만하세요, 좀, 원장님.”원장 : “물 한잔 마시러 갔다 와.”이 :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원장님, 됐어요. 저 갈 거예요. (…) 저 퇴근하고 싶어요. 저 퇴근할거예요. 저, 지금, 지금….”원장 : “난 결정짓고 가야 되겠어!”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31.) 이정윤은 교무실을 뛰쳐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함께 바로 정신과 병원으로 향했다. 취재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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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산재 또 승소… ‘법정고문’은 7년으로 족하다 [그녀의 우산 8화]
파킨슨병 진단을 숙명으로 인정하기엔 서른세 살은 너무 젊었다. 뇌신경계 파괴로 몸이 굳어가는 와중에 생각은 자꾸 20대 첫 직장 시절로 돌아갔다. 신호영(가명, 48세) 씨는 그때 그 공장에서 LED 제품을 만들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어렴풋이 생각했다. ‘혀마저 굳어가는 내 병은 그 공장에서 얻은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아닐까….’ 법원은 그 추측이 맞다고 다시 한 번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구회근 재판장)는 지난 7월 25일,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이 신호영 씨에게 내린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산재가 아니라는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뒤집은 또 한 번의 판결. 산재 신청 이후 7년 만이다. LED 생산 공장에 취업한 지 22년, 파킨슨병 진단받은 지 15년 만의 일이다. 신호영 씨는 어느덧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누구보다 이 소식을 기다렸을 호영 씨에게 7월 31일 전화를 걸었다. 앉는 것도 힘들어 거의 누워 생활한다는 신 씨 대신 그의 모친 김정혜(가명, 72세) 씨가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도 공단이 상고 안 할까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한 번 데인 적이 있으니까….” 근로복지공단이 다시 상고를 결정한다는 건, 사건이 대법원까지 간다는 의미다. 큰 기대가 없다는 다소 힘 빠지는 반응. 가만 들여다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2심 재판부의 판결은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사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신 씨의 발병 원인과 업무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 역시 신호영 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판결의 핵심 요지를 보자. “비록 의학적으로는 현재까지 이 사건 상병(파킨슨병)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 원고가 이 사건 각 사업장에서 근무할 당시에 다수의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직간접적-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 내지 촉진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서울행정법원 2020구단51146 일부) 이 판결이 나온 때는 2023년 6월 7일, 싸움은 이때 끝나야 마땅했다. 판결 당시 이미 신 씨의 투병 생활은 16년째로, 거동이 어려운 상태였다. 그와 가족에게 산재 인정과 요양급여는 시급한 문제였다. 다른 하나는 근로복지공단도 1심 판결을 받아들여 ‘항소를 포기하겠다’고 법무부에 밝혔었다는 점이다. 법정 다툼을 멈추고 신 씨의 산업재해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법무부가 ‘항소를 진행하라’고 지휘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현 국민의힘 대표인 한동훈이었다. 공단이 ‘항소 포기’를 밝히면 법무부도 이를 받아들이는 게 관례였다. 2021년과 2022년, 공단의 ‘항소 포기’ 의견에 법무부가 항소 이행을 지시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이수진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2023년에만 신 씨를 포함해 ‘반대 사례’가 네 건이나 나왔다. 어쨌든 공단은 자기 의지와 반대로 항소를 했다. 그것도 항소 기한 마감 날 늦은 오후에 말이다. 아들 신 씨를 간병하는 모친 김정혜 씨는 당시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항소도 마감 날짜에, 마감 시간에 딱 맞춰가지고 했는데, 얼마나 잔인합니까. 안쓰러운 사람들한테 (기계적으로) 항소한다는 건 진짜 피해자들을 죽이는 일이죠! (이름이 근로’복지’공단이라면서) 무슨 이런 ‘복지’가 있어요!” (김정혜 씨 인터뷰 2023. 10. 17.) 의지도 의미도 없는 항소. 공단 측은 항소이유서도 4개월 후인 10월 23일에야 접수했다. 신 씨의 안타까운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김정혜 씨는 “근로복지공단이 불쌍한 산재 피해자를 도와주지 못할망정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난해 10월 인터뷰에서 말했다. 당시 기준으로도, 산재 판정을 기다린 지 이미 6년째. 간병인을 들일 여력이 안 돼 일흔 넘은 노모가 간병을 도맡고 있었다. 신 씨가 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때는 2017년. 공단의 불승인 결정 → 행정소송 제기 → 1심 승소까지 6년이나 걸렸다. 이번 2심 판결까지 따지면 7년 세월이다.(관련기사 : 법원은 산재 인정, 공단은 불복 항소… “죽어야 끝날 일인가”) 공단이 2심 판결마저 불복해 대법원으로 사건을 끌고 가면? 해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투병 중인 신 씨와 가족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다. “몸이 성한 사람도 10년 가까이 재판을 하면 힘든데, 몸 아프고 생계도 막막한 사람들은 재판이 길어지면 어떻겠어요? 환자도 힘들고, 돌보는 나도 힘에 부치죠.” 김정혜 씨가 2심 승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다. 기자는 신호영 씨에게 심정을 직접 듣고 싶었으나 그의 건강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작년 10월에 만났을 때도 신 씨는 인터뷰 도중에 잠들기도 했다. 요즘은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고, 혀마저 굳어가고 있다.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워 옆으로 고꾸라지는 일도 잦다. 넘어진 아들을 일으켜 세우는 건 모친 김정혜 씨의 몫이다. “옆으로 넘어져도 혼자 못 일어나요. 그러다 질식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제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죠.” 법원의 1·2심 판결은 신 씨에게만이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세계 1위권의 첨단산업을 보유한 한국사회에 주는 의미가 크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의 말을 보자. “산재는 보통 피해자가 상병과 작업장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되는데, 어떤 유해물질이 있는 작업환경에서 일했는지 노동자들은 잘 모르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이번 판결은 첨단산업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헌법상의 의무를 다한 판결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이종란 노무사 전화 인터뷰 2024년 7월 31일) 이어 이 노무사는 그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직업병 관련 연구가 없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고, 그 발전 속도가 빨라 취급 물질이 빈번하게 바뀌고 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와 안전관리 매뉴얼이 신설되는 등 조사부터 예방책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노무사의 평가대로 최근 법원의 판결은 산업발전 상황을 따라가는 모양새다. 대법원은 이미 판례로 첨단산업분야의 산재 판정 방향을 잡아놨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 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7년 8월 29일 선고 2015두3867) 공은 다시 근로복지공단으로 넘어갔다. 신 씨 모친 김정혜 씨는 이런 당부를 했다. “이번에는 소송이 끝이 나서 겨우 버티고 있는 지금 상황이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냥 딱 ‘남들처럼만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해요. 돈 걱정 없이 치료에 전념하는 거, 간병인 몇 시간이라도 불러서 마음 편히 있는 거, 고등학교 올라간 손주 학원도 보내고 싶고, 며느리도 좀 숨 돌렸으면 좋겠고…” 산재 다툼만 7년. 이 싸움은 이쯤에서 끝날까 아니면 더 연장될까. 근로복지공단은 아직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또 잔뜩 희망고문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상고를 신청할 수도 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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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살인 청년’ 강도영 씨 가석방으로 출소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19화]
‘간병살인’ 청년으로 알려진 강도영(가명) 씨가 만기 약 9개월을 앞두고 7월 30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강 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홀로 돌보다 생활고에 시달려 끝내 부친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지난 2021년 5월 구속됐다. 강 씨는 살인 고의가 없었다며 유기치사를 주장했으나, 1심-2심 재판부는 모두 존속살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강도영 씨의 사연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2021년 11월부터 진행한 프로젝트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관련 기사 보기 – “쌀 사먹게 2만원만.. 22세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강 씨의 부친 고 강영식(가명. 당시 56세) 씨는 지난 2020년 9월 목욕탕에서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강영식 씨는 응급 수술을 받고 의식을 찾았지만, 사지 마비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콧줄을 통한 경관급식으로 식사를 했고, 대소변 처리 역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강영식 씨는 뇌출혈 전문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약 8개월 치료를 받았으나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다. 간병비 포함 치료비 약 2000만 원이 아들 강도영 씨에게 청구됐다. 입대를 위해 대학 휴학 상태였던 강 씨(당시 22세)에겐 돈이 없었다. 강 씨의 삼촌이 직장에서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아 치료비를 댔다. 강영식 씨는 계속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아들 강도영은 더는 돈을 구할 수 없었다. 강도영 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어머니와 헤어졌다. 엄마의 거주지는 물론 생사도 모른다. 강 씨는 2022년 4월 23일 아버지를 퇴원시켜 집에서 홀로 돌봤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살던 집의 월세는 아버지 입원 직후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도시가스, 인터넷, 휴대폰이 요금 미납으로 차례대로 끊겼다. 강 씨는 “쌀 사먹게 2만 원만 빌려달라”는 문자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내는 처지가 됐다. 결국 강 씨는 5월 초부터 아버지를 안방에 방치했다. 아버지의 시신은 5월 7일 안방에서 발견됐다. 강도영 씨는 집에서 체포돼 구속됐다. <셜록> 보도 이후 많은 시민이 돌봄과 간병 살인, 특히 ‘영 케어러(young carer)’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강도영 구명운동’에 나섰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개 사과를 하고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 케어러 실태조사에 나서는 등 관련 대책 정비에 나서기도 했다. [관련 기사 보기 – ‘강도영 선처 6천명 탄원.. 총리, 장관, 대선후보도 관심] 구속된 강도영 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힌 시민도 많았다. 특히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은 2021년 11월부터 월 1회 강 씨를 면회하며 심리, 생활지원을 해왔다.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 전 국회의원은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강도영 씨를 수차례 직접 만나는 등 강 씨가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 제1호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데 힘을 보탰다. “강도영 씨의 사연을 처음 접했을 때 ‘타인의 도움이 없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 오빠 전태일도 22세 때 사망했는데, 오빠 생각도 많이 났다. 오빠가 외로웠을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강도영 씨가 사회에서 잘 적응해 살 수 있도록 계속 힘을 보탤 생각이다.” 전순옥 전 의원이 지난 7월 말 <셜록>과의 통화에서 한 이야기다. 출소한 강도영 씨는 고향 대구광역시의 한 친구 집에서 머물고 있다. 곧 살아갈 집을 마련해 독립할 예정이다. <셜록> 역시 강도영 씨의 생활을 지원할 예정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풍자 유튜버 고소? 명품백 받은 죄인부터 잡아가라” [우상의 정원 17화]
“탄핵이 필요한 거죠” 대통령 풍자 노래를 만들었다가 고소당한 가수를 만나러 가는 길. 지난 16일, 그의 작업실이 있는 서울 마포구로 향했다. 4층 상가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회색 현관문 앞 초인종을 누르자, 그가 나왔다. 가수 백자(본명 백재길, 52세)다. 백자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의 멤버이자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일명 ‘촛불가수’로도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백자는 작업방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2평 크기의 작업방은 컴퓨터 책상으로 이미 절반은 차 보였다. 그 옆으로 마이크와 통기타가 세워져 있었다. 벽 곳곳에는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책장에는 유튜브 ‘실버 버튼’도 전시돼 있었다. 유튜브 본사가 10만 이상 구독자를 보유하는 채널에게 주는 상. 백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수 백자tv’의 구독자 약 18만 명이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유튜브 수익 창출이 안 되고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진보 유튜버들 대부분이 그런 상황이에요. KTV 쪽에서 진보 유튜버들을 상대로 계속 유튜브에 신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윤석열 정부가 ‘길들이기’를 하는 거라고 봅니다.” 백자는 한국정책방송원(KTV)으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했다. 한국정책방송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으로 ‘KTV국민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두 번째다. KTV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민간인을 고소한 사례는. KTV는 지난 2월 8일, 한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제목은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직원이 부릅니다. 변진섭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윤석열 대통령이 드리는 설 명절 인사!>. 영상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직원, 그리고 대통령실 합창단 ‘따뜻한 손’이 가수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로부터 5일 뒤. 가수 백자는 이 영상을 가져와 풍자 영상을 만들었다. 제목은 <대통령실이 부릅니다. ‘탄핵이 필요한 거죠~’>. 그는 본인 유튜브 채널에 해당 영상을 올렸다. 풍자 영상은 백자의 윤석열 대통령 성대모사로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백자 더빙) : “그러나 저러나 우리 이 실장도 감옥에 가셔야지.”이관섭 비서실장 : “저는 뭐 상황 봐서.” 이후 백자는 개사한 노래를 더빙으로 불렀다. 원곡 가사에서 ‘사랑’을 ‘탄핵’이나 ‘특검’으로 바꿔, ‘윤석열의 탄핵이 필요한 거죠’와 ‘김건희의 특검이 필요한 거죠’로 불렀다. 영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와 관련해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디올백 받고서 입 닫을 때’ 등의 가사도 언급했다. “앞서 가신 장모님과 뒤에서 따라 들어갈 마누라 마누라 짐 싸~한동훈 똘마니도~ 구속이 필요한 거죠 (짐 싸)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디올백 받고서 입 닫을 때그 순간이 바로 김건희의 특검이 필요한 거죠나라는 망해도 맨날 지각 술이나 처먹고 나뒹굴 때그 순간이 바로 윤석열의 탄핵이 필요한 거죠탄핵이 필요한 거죠 탄핵이다!” “당시에 명품백 논란이 불거졌는데 김건희가 사과를 안 했거든요. 사과는 안 하면서 대통령이 대통령실 직원들이랑 나와서 춤추고 노래 부르니까 열 받는 거죠. 풍자 만화를 그리시는 ‘오뎅’ 작가님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해서 쓰신 가사를 재밌게 봤거든요. 여기에다가 앞뒤에 ‘탄핵’ 가사를 더 붙여서 더빙으로 노래를 불러본 거죠.” 당시 설 인사 메시지로 대통령실이 공개한 합창 영상은 논란이 되기에 충분했다. 영부인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 논란이 한창 뜨거웠던 시기와 겹치기 때문. 예능 프로그램 ‘SNL코리아’ 시즌5(쿠팡플레이)에서는 합창 모습을 재연하며 풍자하기도 했다. 노래를 같이 부르던 한 출연자(권혁수)가 혼자 튀는 모습을 보이자 경호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입을 틀어막고 그를 끌고 나갔다. 윤 대통령은 과거 대선후보 시절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치 풍자는) SNL의 권리”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정치 풍자는 ‘SNL만의’ 권리라는 뜻이었을까. 백자의 풍자 영상에 대해 KTV는 발 빠르게 조치했다. 백자가 올린 풍자 영상을 유튜브에 곧바로 신고했다. 영상 공개 2일 만이다. 사유는 저작권 침해. 그에 따라 해당 영상은 2월 16일 삭제됐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KTV는 형사고소까지 강행했다. 올해 3월 가수 백자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세종남부경찰서에 고소했다. “윤석열이 대선주자로 언급되던 시기(2020년)에 ‘춘장 트롯’이라는 풍자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KTV뿐만 아니라 어디 기관로부터도 풍자 노래를 갖고 신고를 당한 적은 없습니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민간인을 상대로 (풍자를 이유로) 형사 고소했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었고요. 당연히 대통령실 합창 영상은 공적 영상이라고 생각하고 풍자 영상을 만들었던 거죠. (이번 형사고소는) KTV의 과잉 충성 아니면, 의도적으로 저를 괴롭히고 싶었던 거라고 봅니다.” KTV가 2007년 설립 이후 저작권법 위반으로 민간인을 형사고소한 사례는 현재까지 총 두 건. 모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다. KTV는 가수 백자를 고소하기에 앞서, 지난해 11월경 유튜버 ‘건진사이다’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고소했다. ‘건진사이다’는 주로 영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풍자 영상을 올렸다.(관련기사 : 김건희 저격 고소당한 유튜버 “채널 폐쇄 목적 확실”) 가수 백자는 정보공개를 통해 고소장을 받아냈다.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고소취지와 사건 경위 정도였다. 고소인과 고소인의 법률대리인에 대한 정보는 모두 가려져 있었다. “피고소인(가수 백자)은 고소인(KTV)이 제작하여 유튜브 채널에 게재한 영상을 복제 가공하여 피고소인의 유튜브 채널에 게재함으로써 저작권법을 위반하여 고소인의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고소장 고소이유 요지) 고소장 전문 15장 중 10장은 아예 ‘백지’였다. 유튜버 ‘건진사이다’가 받은 고소장과 비슷했다. ‘건진사이다’의 경우 고소장 전체 15쪽 중 12쪽이 아예 생략된 채 전달됐다. 영상 제목에 쓴 영부인 김건희 씨 이름마저 다 가렸다. “처음에는 경찰청에서 저에 대해 통신조회를 했다고 문자가 왔어요. 기분이 몹시 나쁘더라고요. ‘완전히 나를 감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요. 당시만 해도 왜 통신조회를 했는지 예상을 전혀 못 했죠. 이후에 KTV에서 고소한 걸 보고 ‘이것 때문에 알아본 거구나’ 알게 된 거죠.” 가수 백자와 ‘우리나라’는 1999년부터 민중가요 가수로 활동해왔다. 2009년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 ‘다시 광화문에서’라는 노래를 부르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촛불행동 주최로 열리는 ‘촛불대행진’에도 적극 참여해 ‘촛불가수’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지난 13일 열린 ‘제98차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촛불대행진’ 현장에서는, KTV로부터 고소당한 풍자 노래를 직접 불렀다. “윤석열 정부 이후 이번 사건까지 포함해서 세 번째 경찰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저는 정말로 (이런 행태가) 국가적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중대 범죄도 아닌데 경찰들에게도 시간 낭비, 인력 낭비하는 겁니다. 사실 진짜 죄 지은 놈들을 잡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몰래 명품백 받고 이런 죄인들을 잡아가야죠.” 사실 윤석열 정부의 ‘입막음’ 논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먼저, ‘윤석열차’ 논란이다. 지난 2022년 한국만화진흥원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 작품 속 달리는 열차 정면에는 윤석열 대통령 얼굴이 그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풍자했다는 해석이 나오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주최 측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가상연설 영상’이 긴급차단 되기도 했다. 논란이 된 영상은 지난해 11월 23일 틱톡에 올라온 <가상으로 꾸며본 윤대통 양심고백연설>이라는 제목의 영상.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지난 2월 23일 통신소위 임시회의를 긴급하게 열고 해당 풍자 영상에 대해 통신사에 접속 차단을 요구했다. ‘입틀막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강성희 당시 국회의원(진보당, 전주을)은 지난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경호처 경호원들에 의해 사지가 들리고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갔다. 카이스트 졸업생 신민기 씨도 학위수여식에서 R&D(연구개발) 예산 관련 구호를 외치다가 경호원들에게 제압을 당했다. 역시 입이 틀어막히고 사지가 들린 채 퇴장당했다. “‘입틀막’에 이은 ‘유틀막’(유튜브 입틀막) 아닌가요. 윤석열 정부에서 다 같은 한 맥락으로 사건들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는 ‘절대 듣지 않겠다’ 그런 거죠. ‘꼴도 보기 싫다’ 이런 것 같아요.” 백자는 8월 1일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제가 올린 대통령실 합창 풍자 영상을 오픈 소스로 열어놨거든요. 다른 유튜버들이 이 영상에서 (가사가 뜨는) 자막을 그대로 쓰면서 음성만 다시 새롭게 부르는 등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상들은 KTV가 문제를 안 삼았는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KTV가 저를 본보기로 삼아서 본때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KTV의 ‘유틀막’은 가수 백자만 겪은 일이 아니다. 그동안 KTV는 개인 유튜버들을 유튜브에 꾸준히 신고해왔다. 양문석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안산시갑) 자료에 따르면, KTV는 지난해부터 올해 4월 총선 직전까지 개인 유튜버를 대상으로 총 55건의 삭제 신고를 했다. 이중 약 70%인 38건이 영부인 김건희 씨 관련 영상. 나머지 17건은 윤석열 대통령 관련 영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 관련 유튜브 영상 삭제 요청은 특정 시기에 집중됐다. 하종대 한국정책방송원 전 원장이 취임한 2022년 10월부터 올해 1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던 것. 하 전 원장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캠프 출신이다. 특히, 유튜브 영상 삭제 요청이 올해 총선 직전까지만 이뤄진 사실이 밝혀지면서, ‘KTV 총선 개입’ 의혹도 제기됐다. KTV가 지난해부터 올해 4월 총선 직전까지 총 55건의 영상 삭제 요청과 2건의 형사고소를 진행했던 것. 총선 이후로는 단 한 건의 영상도 삭제 요청을 하지 않았다. 이에 양문석 의원실은 “선거 개입을 위한 부정적 여론 차단 즉 여론조작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양 의원실은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윤석열 대통령이 ‘기소당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절단난다’는 발언을 한 것처럼, 유튜버들을 고소로 위협하고 비판과 풍자를 차단하려 했다. 이는 ‘입틀막’ 시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셜록은 KTV에 반론을 요청했다. KTV는 지난 22일 답변을 보내왔지만, 가수 백자 고소장에 적힌 고소이유 요지, 즉 “백자가 저작권법을 위반해 KTV의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을 반복했을 뿐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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