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아홉 살’… 돌봄청년 하라 씨와 함께한 1박 2일
낮은 빌딩들 사이 가파른 1차선 좁은 길을 버스가 올라갔다. 서울 성북구 ‘최고 높은 곳’에 강하라(31) 씨가 살고 있다. 아홉 살 지능의 아버지 강성종(60) 씨와 단둘이. 기자는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두 사람과 함께했다. 갈색 벽돌이 겹겹이 쌓인 양옥 주택.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철문 옆에서 나뭇가지를 치고 있던 강성종 씨를 만났다. 그는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반쯤 감긴 눈이 아이처럼 반짝였다. 하라 씨는 줄곧 아빠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성종 씨가 케이크를 포크로 찍는 순간 하라 씨가 입을 열었다. “아빠, 기자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어?” 하라 씨는 아빠에게 ‘매너’와 ‘주도성’을 가르치고 있다. 성종 씨는 기자가 사간 케이크를 입에 넣으며 멋쩍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우리 딸은 꼭 표현을 하라고 해요.” 지난 10일은 아빠 성종 씨의 생일이었다. 하라 씨에겐 1년에 한 번 때 맞춰 축하하는 것도 버겁다. 적게는 하루 12시간, 많게는 14시간씩 일을 하면, 밤 10시가 훌쩍 지난다. 지적장애인 아버지를 부양하고, 3000만 원이나 되는 빚을 갚으려면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작년에 너무 힘들어서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딸 연습’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빠를 돌보기 시작한 지 4년째였던 지난해. 하라 씨는 휴식이 절실했다. 일과 간병의 굴레는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때 만난 심리상담사가 은인이었다. 그는 하라 씨가 보호자의 역할만 하고 있다며, ‘딸 역할 해보기’를 권했다. 아빠를 통제하고 책임만 지는 게 아니라, 어리광도 부리고 부탁도 해보라는 거였다. 하라 씨가 아버지 돌봄을 전담한 건 2019년부터다. 그전까지는 성종 씨의 노모, 즉 하라 씨의 할머니가 아들과 손녀를 돌봤다. 할머니 건강이 악화되면서 요양을 위해 시골로 가셨고, 이듬해 돌아가셨다. 집에는 단출한 두 식구만 남았다. 처음엔 각자 생활비를 벌었다. 성종 씨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로, 하라 씨는 기타 레슨과 각종 아르바이트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어도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여유는 있었다. 아빠에게 집안일을 가르치고, 한글 공부도 시작했다. 그때는 ‘그래도’ 견딜 만했다. 불행은 예고 없이 닥쳐왔다. 지적장애인 성종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30여 년간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했다. 긴 세월 ‘막노동’에 몸이 버티지 못했다. 어깨와 무릎의 연골이 찢어졌다. 허리 디스크도 두 군데가 돌출됐다. 그때부터 지적장애인 아빠를 돌보는 건 온전히 하라 씨 몫이 됐다. “기자님, 여기부터가 진짜 영케어러의 일상이에요.” 영케어러(Young-carer).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이나 청년을 가리키는 말. 하라 씨는 ‘진짜 일상’을 보여주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자세를 고쳐 앉아 성종 씨를 마주 봤다. 오늘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연체된 보험료였다. 성종 씨가 5개월간 미납한 보험료는 82만 3770원. 하라 씨는 절반씩 부담하자고 제안했다. 돈 이야기에 성종 씨이 표정이 굳었다. “아빠가 지금까지 치료받는다고 병원비 많이 썼잖아. 그동안 낸 돈 일부 환급도 받고, 앞으로 나갈 치료비도 생각하면 (보험) 부활 시켜야 돼.” “돈 없어. 놔둬.” “보험 없앨 거야? 그럼 아빠 아프거나 다치면 수술도 못 받아. 100만 원 낼 거, 300만 원 내야 될 수도 있어. 자전거 타다 넘어지면 수술 못 받는다고. 아빠 나이 더 많아져서 보험 들려고 하면 보험료도 더 비싸져. 지금 빨리 반반 내자.” 부녀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하라 씨는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하려고 애썼다. 성종 씨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돈을 내냐는 식이었다. 하라 씨는 대안을 제시했다. 두 달치 미납금만 먼저 해결하자는 것. 성종 씨가 입으로 쩝 소리를 내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어떻게 하면 된다고?” 타협 뒤에는 해결할 숙제가 생겼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 계좌이체를 하는 것이다. 하라 씨는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직접 계좌이체 화면에 접속할 때까지 기다린다. 성종 씨의 손가락이 핸드폰 액정 위에서 방황했다. 서른 번 넘게 해 본 일이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오늘은 제 일정이 여유로워서 괜찮아요. 만약 제가 퇴근하고 밤 9시, 10시 돼서 들어왔는데 이런 일들을 밤에 또 해요, 그러면 일이 끝나지가 않는 거죠.” 성종 씨가 계좌이체를 하는 데 걸린 시간 30분. 아빠가 핸드폰을 쥐고 분투하는 동안, 하라 씨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성종 씨가 포기하려는 타이밍에 약간의 힌트를 주고 응원을 하는 요령도 생겼다. 출근하기도 전에 하라 씨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은 아빠를 헬스장에 바래다주고 레슨실로 가는 일정이 남아 있었다. 성종 씨는 오전에 10분 운동하고 왔다며 헬스장 가기를 거부했다. 하라 씨는 능숙하게 아빠를 회유(?)했다. 성종 씨가 운동하는 모습을 취재하면 좋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성종 씨는 그제야 나갈 채비를 했다. 한 손에는 그가 직접 내린 커피를 챙겼다. 헬스장에 있는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줄 선물이다. 부녀의 걷는 모습은 참 재미있다. 토끼와 거북이 같달까. 하라 씨가 잰걸음으로 빠르게 앞서 걸으면, 성종 씨는 뒤에서 느릿느릿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다. 하라 씨는 이동 중에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에게 이동 시간은 장애인가족지원센터, 기타 레슨생, 레슨실 사장님과 연락하는 시간이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한숨을 쉬며 성종 씨를 재촉하기도 한다. 역시나 한 쪽 귀에는 전화기를 대고서. 성종 씨는 딸의 한숨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등학교 동창들과 있었던 일화를 기자에게 들려줬다. 그는 지난 2월 서울 숭인동에 있는 진형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곳은 평생교육시설로, 학급 평균 연령이 67세에 달한다. 동년배들이 대학에 진학한 이야기, 87세 초고령 학생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된 일은 그의 자랑거리다. “아빠, 나 기자님이랑 레슨실 가 있을 테니까 운동 마치고 7시까지 레슨실로 와. 너무 일찍 오지 말고. 알았지?” 성종 씨는 운동에 흥미가 없는지 헬스장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5분 동안 자리를 세 번이나 옮겼다. 처음에는 트레드밀, 다음에는 상체, 다음에는 하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에는 장애인 재활을 돕는 트레이너 선생님이 있다고 해서 등록했다. 그것도 하라 씨의 역할이 컸다. 국제구호개발 단체인 월드비전에서 ‘자기계발비’ 지원을 받았다. 언덕배기 집에 살면서 고도비만에 관절까지 좋지 않은 아빠를 위한 일이었다. PT 20회를 끊고 남은 돈은 언어치료, 인지치료, 재활치료비로 쓰인다. 남은 돈은 이제 겨우 10만 원 남짓이다. 하라 씨가 헬스장으로, 여러 치료센터로 아빠를 보내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 아빠는 동묘 앞 벼룩시장을 즐겨 찾았다. 성종 씨는 고장 난 데스크톱, 노트북, 모니터, CD 등을 ‘바가지를 쓰고’ 비싼 값에 사온다. 그리고 작은 방에 숨겨둔다. 아빠의 ‘보물’을 찾아내 고장난 것을 골라 버리는 일은 하라 씨의 몫이다. 심지어 아빠가 밖에 나가서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라 씨는 그를 “어딘가에 꽂히면 완전히 몰두한다”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실종신고를 몇 번 하기도 했다. 지능이 7~9세 수준인 아빠가 밖에서 사고라도 당할까봐 늘 노심초사한다. 다행히 성종 씨는 지인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내가 미혼모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도 들고, 평범한 가정이 너무 부러운 시기도 있었고…. 그냥 그런 평범한 것들이 좀 부러웠던 거 같아요. 지금은 부러워하진 않아요. 소용이 없으니까.” 하라 씨는 헬스장에 아빠를 데려다 놓고 레슨실로 향했다. 지하철로 네 역 떨어진 곳에 있는 3층짜리 건물. 그곳에 하라 씨의 레슨실이 있다. 이날은 두 타임만 소화하면 퇴근할 수 있는, 비교적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저녁 6시를 조금 넘기자, 갑자기 레슨실 안으로 성종 씨가 들어왔다. 하라 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수강생에게 복습하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아빠를 데리고 나갔다. 레슨실 옆 빈 공간에서 성종 씨는 한글 공부를 했다. 3층에 있는 학원 아르바이트생에게 지도를 부탁한 것이다. 하라 씨의 일상은 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라 씨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돌아와 기타 레슨을 이어갔다. “저녁식사는 보통 3층에 계신 학원 사장님이랑 같이 해결해요. 제 사정을 생각해주시는 고마운 분이죠.” 하라 씨는 식비를 쓰지 않는다. 웬만하면 3층 학원 사장님이 끼니를 때울 때 숟가락 하나 더 올려 같이 먹는 식이다. 혹은 운영하는 블로그에 협찬을 해준 식당에서 해결한다. “사람들은 제가 ‘돈미새(돈에 미친 사람)’인 줄 알아요. 근데 상관없었어요. 저는 먹고살려고 하는 거니까.” 레슨이 끝났다. 레슨실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 밑반찬 세 개뿐인 조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성종 씨는 자연스레 식사를 시작했다. 하라 씨는 이날도 쉽게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 하라 씨는 또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 기타 레슨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어려웠다. 기타 레슨은 수능시험 직후, 학교 방학 기간, 새해, 졸업 시즌 등이 성수기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수입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성종 씨 돌봄 비용에 레슨실 월세와 관리비, 병원비, 공과금 등을 내면 남는 게 없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하라 씨를 ‘돈미새’로 만든 결정타는 다름 아닌 친척들이 날렸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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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15명 연루된 입시비리 사건, 입학생은 처벌 없다? [교수 엄마와 가짜 고대생]
불법 과외생은 ‘부정입학자’가 됐다. 현직 음대 교수한테 불법 성악 과외를 받았고, 그 교수한테 대입 실기시험도 치뤘다. 숙명여자대학교 성악과 부정입학자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숙명여대는 부정입학자들을 입학 취소하지 않았다. 입학취소 근거가 숙명여대 학칙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지난해 경찰 수사부터 올해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숙명여대가 부정입학자들 상대로 진행한 후속 조치는 없다. 교육부도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면” “모니터링할 예정”이라는 소극적인 입장. 교육부와 대학 본부의 방치에, 심사위원을 매수했던 ‘부정입학자’들만 멀쩡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 입시비리 사건의 최대 수혜자인 이들은 형사 처벌도 받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6월, 음대 입시비리 혐의로 17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17명 중 현직 교수인 ‘입시 브로커’를 포함해 대학 교수가 15명이다. 이들은 청탁을 받아 대학 입학 실기평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자신이 과외해준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걸로 드러났다.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학부모 2명도 함께 송치됐다. 이 중 한 명이 추○○ 안양대학교 음악과(성악 전공) 교수다. 추 교수는 숙명여대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본인의 과외생들에게 최고점을 주는 등 부정 입학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추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월까지 총 5885만 원의 현금을 챙겼다. 이번 음대 입시비리 사건에서 유일하게 구속 기소됐다.(관련기사 : <심사위원 매수해도… 숙대, 부정입학자들 취소 안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인 부정입학자들은 피의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최용문 변호사(법무법인 예율)는 부정입학자를 형사 처벌하기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정입학자도 같이 처벌이 되려면 ‘공동정범’(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하는 것)으로 인정돼야 해요. 그러려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요. 첫 번째로 실행자와 부정입학자가 같이 공모를 하고, 두 번째로 실행 행위를 분담해야 합니다.그런데 현실적으로 부정입학자들이 부정행위나 청탁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면, 수사기관에선 입증하기 곤란할 겁니다.” 지난 2020년부터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보도한 은행권 채용비리 사건에서도 부정입사자는 형사 책임을 지지 않았다. 채용비리로 논란이 됐던 은행들(우리·신한·국민·하나·대구·광주·부산은행) 중 형사 처벌을 받은 부정입사자는 단 한 명도 없다.(관련기사 : <8개월 취재, 보도로 부정입사자 23명 정리했습니다>) 실제 셜록이 보도한 ‘가짜 고대생’이 형사 책임을 진 게 이례적일 정도다. 이해슬(가명)은 ‘교수 엄마’의 권위로 대학원생 제자들을 동원해 만든 ‘가짜 스펙’을 이용해 고려대와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1심 법원은 올해 7월 업무방해 혐의로 이해슬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관련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딸 조민 씨의 경우 역시 이례적이다. 검찰은 조민 씨를 입시비리 주도자로 봤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보름 앞두고 조민 씨를 뒤늦게 기소했다. 올해 3월, 조민 씨는 서울대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려고 거짓 서류를 제출한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위 사례들처럼, 수사기관이 의지만 있다면 부정입학자의 공모 혐의를 밝혀내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실제 이번 음대 입시비리 사건에서도 부정입학자의 공모를 의심할 만한 증거는 이미 나왔다. 경찰은 불법 과외생이 교습비를 교수에게 직접 지급한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공개했다. 불법 과외생 A는 2022년 11월 25일 B 교수에게 교습비로 41만 원을 보냈다. 학생이 불법과외 사실을 알고 적극 관여한 걸로 볼 수 있는 증거. 그럼에도 경찰은 부정입학자들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보고 검찰로 송치하지 않았다. 교육부도 이번 음대 입시비리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 부정입학생 입학 취소 근거를 마련했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2조의4(입학허가의 취소)에선 ▲거짓 자료 제출 ▲대리 응시 ▲학칙으로 정하는 부정행위에 대한 입학허가를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이 중 학칙으로 정하는 부정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실효성을 높이고자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부정입사자에 대한 형사 처벌 근거는 마련하지 않았다. “입시 부정에 연루된 교원은 강하게 처벌하고, 예체능 실기고사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입시비리를 근절하겠습니다.”(오석환 교육부 차관, 2024. 6. 18.) 형사 처벌은 ‘입학사정관’에 한정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현행법은 입학사정관이 과외 교습 등을 통해 평가 대상 학생과 특수한 관계를 형성한 경우 그 사실을 대학의 장에게 알리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위반 시 이에 대한 처벌 근거가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교육부는 입학사정관이 해당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5년 이하 징역, 5000만 원 이하 벌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추 교수 역시 숙명여대 실기시험에서, 심사위원들이 써야 하는 ‘사실확인 및 서약서’를 거짓으로 작성했다. 추 교수는 “직계자녀, 친인척, 지인이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음악계도 부정입학자 형사 처벌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소재 사립대 성악과 소속 C 교수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사기관은 부정입학자들은 불법행위를 한 게 아니라고 보고 수사를 안 했을 수 있습니다. 교수들이나 학부모들이 입시비리에 관여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요.하지만 (입시 비리로) 혜택을 받은 건 부정입학자들이잖아요. 불법 과외를 하고 (대입 실기) 심사를 한 교수가 구속돼 (1심에서) 유죄를 받았는데, 그러면 확실하게 부정입학자로 인해 불법 행위를 저지른 걸로 볼 수 있죠.” 추 교수의 불법 과외를 받은 학생 2명은 숙명여대 성악과에 합격했다. 배진명(가명)은 2022학년도에, 홍진명(가명)은 2023학년도에 각각 합격했다. 당시 추 교수가 숙명여대 성악과 입시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이들에게 응시자 중 최고점을 각각 부여했다. ‘부정입학자’ 배진명은 2022년 2월 한 클래식 공연에 소프라노로 참여했다. 해당 공연을 주최한 공연기획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배진명의 프로필에는 “2022학년도 숙명여대 성악과 합격”이란 문구가 여전히 적혀 있다. 1심 법원은 올해 8월 학원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 추 교수에 대해 징역 3년과 추징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추 교수는 1심 판결의 양형에 불복해 항소했다. 추 교수의 항소심 선고기일은 이달 29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장차 예술계에서 재능을 꽃피우겠다는 희망과 열정을 가진 수많은 학생들과 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학부모들로서는, 피고인의 이와 같은 각 범으로 인하여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돈과 인맥 없이는 대학교 입학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또한 예술가로서 제대로 성장해 나가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극도의 불신과 회의감, 깊은 좌절감과 허탈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1심 판결문 양형이유) 훌륭한 실력을 갖추더라도 “돈과 인맥이 없어” 음대 입학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피해자들. 배진명과 홍진명과 같은 부정입학자들은 이들이 정당하게 누려야 했던 혜택과 기회를 가로챘다. 이 뒤바뀐 인생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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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촌초 회의 참석 이규태 회장… “남의 집 쳐들어온 것”[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6화]
"남의 집에 쳐들어온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누가 남의 집에 쳐들어 왔다는 걸까. 지난 15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행정사무감사(종합감사)에서 정효영 서울시교육청 교육행정국장이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을 겨냥해 한 말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13일 이규태 회장이 우촌초등학교(서울 성북구 소재) 운영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보도했다. 이 회장은 지난 3일 우촌초 교장이 주재한 부장급 긴급회의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안건은 사학수당 지급 문제. 학교가 사학수당을 교원 전원에게 주지 않겠다고 결정한 뒤, 내부 불만이 터져나온 터였다. 사학수당 지급 등 예산 집행은 학교장의 권한이다. 그런데 아무 권한도 없는 전 이사장 이규태 회장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회의 이후, 사학수당은 공익제보자인 이양기(58) 교사를 제외한 교원들에게 전부 지급됐다.(관련기사 : <‘횡령 혐의’ 이규태 전 이사장, 우촌초 운영 개입 의혹>) 서울시의회 이소라 의원(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이 회장의 우촌초 운영 부당개입 문제를 지적했다. “우촌초는 (이규태) 전 이사장의 손을 떠난 지 오래됐는데, 계속 학교에 출입하면서 운영 관련 부당개입을 한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 의원 말처럼, 이규태 회장은 우촌초 운영에 손댈 권한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이 회장은 2001년 우촌초를 인수한 후, 2010년까지 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하지만 2015년 회계 부정 등의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됐다. 심지어 이 회장은 2021년부터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와 관련해 교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다. “(이 회장의 우촌초 회의 참석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운영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이 회장은 학교) 주인이 아니라 그냥 ‘개인’입니다.”(정효영 서울시교육청 교육행정국장) 서울시교육청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정 국장은 “감사실에서 인지해 민원 조사에 들어간 상황”이라며, “단언컨대 교육청에서 (이 회장이 우촌초 운영에 개입하지) 못하게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촌초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운영하고 있다. 일광학원 이사회는 그동안 이 회장의 측근들로 구성돼 왔다. 하지만 2020년 서울시교육청은 이사회 임원 전원의 취임 승인을 취소했다. 일광학원은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9월 10일에야 일광학원의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정상화를 위해 지난 10월 일광학원 임시이사 8명을 선임했다. 학교 정상화에 속도를 높여야 할 시점에, 여전히 이 회장이 학교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과연 임시이사회가 의미 있게 운영될지 의문이라는 이 의원의 우려에, 정 국장은 “아직 학교 정상화 시작 단계이니 좀 더 지켜봐달라”며 “그런 일 없도록 철저히 지도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날 종합감사에는 우촌초 최은석 전 교장(55)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2019년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들 중 한 명. 최 전 교장은 공익제보 이후 학교에서 쫓겨나 지인의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광주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 지금은 인천으로 학교를 옮겨 일하고 있다. 우촌초는 서울시교육청과 소송 중이라는 핑계로, 2021년부터 계속 감사를 거부해왔다. 최 전 교장은 지난달 16~22일 성북강북지원청이 4년 만에 진행한 우촌초 종합감사에 대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이규태 회장 측근 위주로 (학교 행정실이) 구성돼 있기 때문에 종합감사도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촌초에는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로 이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직원들이 일부 근무하고 있다. 그들은 우촌초 행정업무와 학교법인 업무 담당자다. 최 전 교장은 우촌초 감사를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 우촌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공익제보자 또는 전임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시민감사관을 감사TF 구성원으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우촌초는 감사 자료 제출을 잘 안 하고 파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민감사관이나, 실제로 공익제보자 중 행정실에 근무했던 분들이 모든 일을 소상히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설세훈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은 “학교 운영과 관련해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실질적인 감사TF를 구성해 학교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답했다. 최 전 교장은 서울시의회에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바로 구조금 기한 연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는 공익제보자에게 3년간 구조금을 지급한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도 3년간 구조금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최 전 교장, 교직원 유현주 씨, 박선유 씨는 구조금이 끊겨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 전 교장은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유현주 씨와 박선유 씨는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 마트 캐셔, 택배 물류센터 일 등으로 5년째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저희가 (공익제보를 한 지) 5년 가까이 되고 있는데, 실제로 3년 동안 구조금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연장이 안 되기 때문에 서울시 조례가 개정돼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가 혹시나 또 생긴다면, 공익제보자를 위한 구조금 제도가 (복직) 소송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소라 의원은 “의회 안에서 함께 논의하고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최은석 전 교장 말고도, 행정사무감사에 출석 요구를 받은 증인은 두 명 더 있었다. 바로 이규태 회장과 우촌초 A 교장. 두 사람은 지난 4일 서울시의회에 ‘불출석’을 통보했다. “공익 제보된 내용으로 형사 재판중이므로 참석하여도 진술을 할 수 없기에 부득이 불출석합니다.”(이규태 회장 불출석 사유서) “2024. 8.경 학교장으로 부임하여 업무 파악 중에 있으며 특히 공익제보(2019년)건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하는 관계로 부득이 불출석합니다.”(우촌초 A 교장 불출석 사유서) ‘서울특별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 요구를 받은 증인이 출석하지 않거나 선서 또는 증언을 거부한 경우에는 300만 원 이상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 의원은 “(이 회장과 A 교장의 불출석 사유가) 정당한 사유라고 볼 수 없다”며 “이런 식으로 불출석 통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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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매수해도… 숙대, 부정입학자들 취소 안했다[교수 엄마와 가짜 고대생]
‘음대 교수’는 드레스 대신 죄수복을 입었다. 곱슬곱슬 긴 머리도 하나로 대충 묶었다. 무대 앞 화려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난 7월 26일, 추○○ 안양대학교 음악과 교수(성악 전공)는 법원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추 씨의 최후진술은 그의 겉모습만큼 초라했다. “다시는 이런 일에 연루되지 않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음악계, 교육계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겠습니다.” 소위 ‘잘 나가던’ 음대 교수는 어쩌다 법정에 서서 업계를 떠나겠다는 선언을 한 걸까.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서는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추 교수는 2021년 5월경 한 ‘입시 브로커’와 손을 잡았다. ‘입시 브로커’ 역시 현직 교수인 윤○○ 국민대 성악과 조교수였다. 윤 교수는 2015년부터 서울 중구, 강남구, 서초구 등에 있는 음악 연습실을 빌려 불법적으로 성악 과외교습을 해왔다. 현행 학원법에 따르면, 대학에 소속된 교원은 학교의 학생이나 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 준비생에게 지식ㆍ기술ㆍ예능을 교습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윤 교수는 교수들에게 입시준비생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주로 대학 입시 심사위원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있는 교수들이 섭외됐다. 불법 성악과외 이름은 ‘마스터클래스’. 그들은 ‘마클’이라 줄여 불렀다. 윤 교수는 같은 해 5월 25일 ‘마클’ 학습자로 입시생 6명을 선정했다. 추 교수는 이들에게 성악 과외를 해주고, 수업마다 1인당 25만 원씩 받았다. 수업 한 번에 현금 150만 원을 챙길 수 있는 ‘고액 알바’. 추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월까지 총 5885만 원의 현금을 챙겼다. 추 교수는 불법 과외를 넘어 심사위원으로서 부정입학에도 관여했다. 같은 해 12월, 추 교수는 윤 교수로부터 이런 연락을 받았다. “배진명(가명)을 숙대(숙명여자대학교)에 보내려 합니다. 숙대에 도움 되는 플러스알파가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배진명은 추 교수의 ‘마클’ 수업을 받은 학생이었다. 다음 달, 윤 교수의 청탁은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배진명이) 숙대가 돼야 하는데, 제가 부탁드려요.“ 실기시험 응시생은 학교에서 정해준 과제곡을 준비해 불러야 한다. 그때부터 추 교수는 온전히 배진명만을 위한 맞춤형 과외를 진행했다. 추 교수가 목소리만 듣고도 배진명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각인시키는 연습이었다. 그사이 추 교수는 숙명여대로부터 성악과 입시 외부 심사위원 요청을 받았다. 추 교수와 배 양의 은밀한 불법 과외는 2022년 1월 7일부터 14일까지 총 5번 이뤄졌다. 배 양은 실기시험 직전까지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심사위원을 직접 만난 셈이다. 추 교수는 심사위원들이 써야 하는 ‘사실확인 및 서약서’를 거짓으로 작성했다. 추 교수는 “직계자녀, 친인척, 지인이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목소리 훈련만으로는 불안했던 걸까. 더 확실한 ‘마크’가 추 교수에게 넘어갔다. 숙명여대 실기시험 당일(2022년 1월 18일), 윤 교수는 배진명의 실기시험 평가 순번을 추 교수에게 전달했다. 덕분에 추 교수는 배진명의 목소리를 손쉽게 알아차렸다. 응시자가 133명이나 되는데도. 추 교수는 배진명에게 1등에 해당하는 최고점 93점을 부여했다. 배진명은 숙명여대 성악과에 최종 합격했다. 추 교수는 이듬해 숙명여대 입시에 또 관여했다. 이번에 합격시켜야 할(?) 입시생은 홍진명(가명). 홍 양을 상대로 한 불법과외는 2022년 9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총 6번 진행됐다. 추 교수와 윤 교수는 2023학년도 숙명여대 입시를 앞두고, 카카오톡으로 이런 취지의 대화를 주고 받았다. 추 교수 : “중대, 숙대 같이 17일 하루, 작년과 같이 가요ㅋ. 애들(부정청탁 입시생) 이름이 똑같네요.ㅎ”윤 교수 : “홍진명을 잘 평가해주세요.”추 교수 : “ㅋㅋㅋ 같은 이름 다 잘되길요.” 지난해 1월 17일, 추 교수는 숙명여대 성악과 입시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번에도 입시생 홍진명의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140명의 응시자 중 1등에 해당하는 최고점 90점을 그에게 부여했다. 홍진명도 숙명여대 성악과에 합격했다. 이들의 부정입학 스토리는 법원 판결로 모두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8월 28일 업무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추 교수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장차 예술계에서 재능을 꽃피우겠다는 희망과 열정을 가진 수많은 학생들과 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학부모들로서는, 피고인의 이와 같은 각 범으로 인하여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돈과 인맥 없이는 대학교 입학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또한 예술가로서 제대로 성장해 나가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극도의 불신과 회의감, 깊은 좌절감과 허탈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1심 판결문 양형이유) 추 교수는 재판 과정에서 본인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1심 판결의 양형에 불복해 항소했다. 추 교수는 안양대학교에 사직서도 제출했다. 현직 교수가 불법과외를 한 것도 모자라, 심사위원으로서 부정하게 대학에 입학시켜준 사건. 그렇다면 1심 판결 이후 숙명여대는 어떤 조치를 했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김준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시정)의 도움을 받아 숙명여대에 문의했다. ▲학부생 배진명, 홍진명을 대상으로 한 숙명여자대학교 입학취소처리심의위원회 구성 여부와 ▲숙명여자대학교 입학허가 취소 여부를 물었다. 숙명여대는 지난 9월 24일 아래와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우리대학은 이 사건과 관련된 입시자료 전부를 압수당한 상태로 사전에 관련 학생을 특정할 수 없었고, 학생 특정 및 사실 확인을 위해 검찰청 및 법원에 압수물 반환 청구를 한 바 있으나 불허된 상태입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실확인 절차를 위한 1심 판결등본 송부 신청 진행 중이며, 판결등본 및 해당 자료를 수령하는 대로 관련 법령 및 규정에 따라 관련 위원회 개최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숙명여대는 아직도 ‘부정입학자’ 배진명과 홍진명의 입학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추 교수의 1심 선고로부터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학교 당국은 판결문조차 보지 못했다. 심지어 셜록 기자도 어렵지 않게 입수한 판결문을.  사실 입학취소 결정에 법원 판결문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2조의4는 ‘학칙으로 정하는 부정행위’가 있을 경우도 입학허가 취소 사유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 부정입학자 입학취소는 학교 당국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숙명여대는 학칙 제32조2(입학취소)에 “평가자와의 사전 접촉 등 부정한 방법으로 전형과정에 개입하여 공정한 학생 선발 업무를 방해한 경우” 입학취소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해놓았다. 실례로 서울대학교는 ‘가짜 스펙’을 이용해 치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한 이해슬(가명)의 입학허가를 취소한 바 있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이뤄진 조치다. 셜록은 ‘교수 엄마’의 권위를 이용해 부정하게 입시 스펙을 쌓은 이해슬의 사례를 세 편의 기사로 보도했다.(관련기사 : <논문도 봉사도 ‘대타’… 가짜 고대생, 서울대도 속였다>) 상식적으로 비교하자면, ‘가짜 스펙’을 입시에 활용한 것보다 심사위원을 매수한 것이 훨씬 무겁게 여겨진다. 그럼에도 숙명여대는 ‘부정입학자’들을 입학 취소하지 않았다. 지난해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을 때도, 올해 7월 검찰이 추 교수를 구속기소 했을 때도, 그리고 올해 8월 1심 판결이 나왔을 때도, 숙명여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교육부는 어떨까? 셜록은 지난 9월 교육부 사교육ㆍ입시비리대응 담당관에게 물었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면, 그때는 저희도 대학 측에 공문 등을 공식적으로 보내서,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된 건지’ 또 ‘향후 어떻게 계획과 조치는 어떻게 할 건지’ 등을 제출하라고 해서 계속 (추후 조치를) 모니터링할 예정입니다.” 교육부 역시 아무것도 안 하는 중이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면” “모니터링 할 예정”이라는 입장. 추 교수는 이미 재판에서 범죄 사실을 모두 인정해, 증인 한 명 부르지 않았다.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했고 실형 판결까지 나온 마당에 무슨 ‘사실관계 확정’을 기다린단 말인가. 그리고 그걸 전제로 약속한 조치가 기껏 모니터링이라니, 강 건너 불구경 수준의 태도다. 교육부의 이런 미온적인 태도는 낯설지가 않다. 셜록이 보도한 ‘가짜 고대생’ 사례에서도 똑같았다.(관련기사 : <고려대·교육부 수수방관… 여전히 빛나는 ‘가짜’ 졸업장>) 당시 장관이 “엄중한 관리·감독”을 약속했는데도, 교육부는 지난 5년 동안 부정입학자 이해슬의 고려대 입학취소 여부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기자는 ‘입시 브로커’ 윤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달 31일, 국민대학교를 직접 찾아갔다. 하지만 윤 교수를 만날 수 없었다. 당일 학교에서 만난 관계자는 “윤 교수는 이번 학기 수업이 없는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학과 행정실에도 문의했다. 행정실 관계자는 “학과 사이트에 나와 있는 윤 교수 이메일로 문의하라”고 안내했다. 기자는 지난 8일 윤 교수 이메일로 서면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후 학교 본부에 문의한 결과, 지난 6월 윤 교수를 직위해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정입학자’들 쪽에도 접촉을 시도했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찾아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배진명은 2022년 2월 한 클래식 공연에 소프라노로 참여했다. 해당 공연을 주최한 공연기획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배진명의 프로필에는 “2022학년도 숙명여대 성악과 합격”이란 문구가 여전히 적혀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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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혐의’ 이규태 전 이사장, 우촌초 운영 개입 의혹[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5화]
“설립자는 영원히 가는 거 아닙니까?” 우촌초등학교 이양기 교사(58)는 12일 학교장과 면담 자리에서 황당한 말을 들었다. A 교장이 사학수당 지급을 논의하는 긴급 교직원 회의에,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 이사장’을 초청했다는 말이었다. 지난 3일, A 교장은 부장교사들을 대상으로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는 학교에서 열렸다. 4월, 7월, 10월마다 지급하는 사학수당을 교원 전원에게 주지 않겠다고 결정한 뒤, 내부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사학수당은 전년도 예산 편성 금액을 기준으로 교원들에게 지급한다.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 정관에 따르면, 학교 회계 집행 책임자는 학교장이다. 그런데 학교 예산 집행을 논의하는 자리에, 아무 권한도 없는 전 이사장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앉아 있었다.   우촌초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 부담금이 가장 비싼 곳. 2022년 기준 1년치 학부모 부담금은 1480만 원이다. 이규태 회장은 2001년 우촌초를 인수한 후, 2010년까지 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하지만 2015년 회계 부정 등의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된 뒤, 학교와 관련된 직책을 갖고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해 ‘외부인’일 뿐. 심지어 이 회장은 우촌초 교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다. 이런 사람이 사학수당 지급과 같은 학교 교비 운영을 논의하는 자리에 있었다. 이 회장의 ‘부당 개입’은 이미 크게 문제 된 적이 있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은 이 회장이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부풀리고, 미리 섭외한 업체가 입찰에서 선정되도록 ‘옥중 지시’를 내린 사실을 적발했다. 그해 5월 최은석 당시 교장, 이양기 교감, 유현주, 박선유 등 교직원 6명이 공익신고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것. 이외에도 학교장 업무방해, 학교 예산 횡령 등 각종 비리 혐의가 드러났다. 검찰은 2021년 이규태 회장과 학교 관계자 등 12명을 기소했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횡령 혐의’ 피의자 신분의 전 이사장을 학교 회의에 부른 사람. 지난 8월 새로 부임한 A 교장이다. 12일 이양기 교사와 A 교장의 대화다. 이양기 교사(이하 이) : “이번에 부장들 소집하셨다고 했잖아요. 그때 이규태 전 이사장을 초대하신 거잖아요.”A 교장(이하 A) : “(사학수당 미지급) 내용도 알지 못하고, 학교 설립자 분(이규태)이 계시니까 해명 좀 해주면 좋겠다고 설립자 분에게 내가 요청드린 거죠.” 이 : “권한 없으신 분이 와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A : “바로 (사학수당) 지급해야 되겠다고 제 뜻을 알려드렸던 거고, 그렇게 된 거죠. 설립자 분이신데 학교에 애착이 많은 분이신데.” 이 : “학교 이사장도 아니고 아무 직책이 없잖아요.”A : “설립자 분이시잖아요. 설립자는 영원히 가는 거 아닙니까? (…) 법에 (초대)하지 말라는 게 있습니까?” 이규태 회장의 부당개입 의혹이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현재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 8월 일광학원 임원 모두의 취임승인을 취소했다. 일광학원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은 지난 9월 10일 일광학원의 패소로 끝났다. 무려 4년 동안 이어진 싸움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일광학원 이사회 전원을 임시이사로 교체했다. 학교 정상화를 본격 추진해야 할 시점에, 이규태 회장은 여전히 우촌초 교직원들의 회의까지 참석하며 운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규태 회장은 제3자입니다. 심지어 교비 횡령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촌초) 사학수당 지급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한 건 부당개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김범준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실행위원) “학교 사무를 논의하는 자리에 아무 권한 없는 전 이사장이 참석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보입니다.”(홍민정 변호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자문변호사) 서울시교육청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감사관은 “현 이사들도 학교장 권한을 침해하면 안 되는 건데, 민간인이 침해하는 건 당연히 안 된다”고 밝혔다. 어떻게 대처할 거냐는 질문에는 “(현재) 임시이사들이 파견되고 정상화를 밟는 과정”이라면서도, “최근 (우촌초가) 종합감사는 받았지만, 민원조사에 응할지는 아직 불확실하기 때문에 민원조사에 응했을 때 (이 회장의 운영 개입 의혹도) 조사할 것”이라고 답했다. 우촌초는 서울시교육청과 소송 중이라는 핑계로, 2021년부터 계속 감사를 거부해왔다.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뒤, 지난달 16일부터 22일까지 3년 만에 우촌초 종합감사를 진행했다. 지난 5일 서울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이소라 서울시의원(비례대표)이 우촌초 감사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교육 현장이 비리의 공간이 되면 안 된다”며, 서울시교육청에 감사TF를 구성해 철저한 감사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애초에 이양기 교사가 A 교장을 찾아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규태 회장이 참석한 회의는) 사학수당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내부반발이 있어서, 그걸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회의 다음 날 전원 사학수당을 지급했습니다. 저는 제외됐고요.” 이 교사는 2019년 공익신고 이후 해임당했다. 그리고 국민권익위, 교원소청심사위, 법원까지 이어지는 약 2년 반 동안의 싸움 끝에 2022년 복직했다. 지난 1월 학교는 이 교사에게 ‘경고장’을 내밀었다. 경고장에 찍힌 날짜는 2023년 7월 7일. 이 교사에게 통지한 날짜는 6개월도 더 지난 올해 1월 26일이었다. 징계 사유는 “학교장에게 인사・수당 관련 반복 항의 등”. 소명 절차는 없었다. 학교 측은 징계를 통지한 시점인 지난 1월 26일 부로 이 교사에게 10개월간 사학수당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경고장에 찍힌 징계일인 2023년 7월 7일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지급되던 사학수당이, 징계 통지를 시점으로 갑작스럽게 끊겼다. 왜 하필 올해 1월이었을까. 공교롭게도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보도를 시작한 날이 1월 15일이다. 16일에는 이 교사가 복직 이후 겪은 지속적인 불이익에 대해 보도했고(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17일 셜록과 참여연대는 학교 법인 전・현직 이사장을 고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월 22일 학교 측에 “(경고) 처분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경고 처분을 취소하고 (이양기 교사에게) 미지급된 사학수당 전액을 지급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버텼다. 지난달 28일 국민권익위도 “이 사건(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신고로 인한 불이익조치라고 봄이 타당하다”며, 경고처분을 취소하고, 미지급한 사학수당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 교사가 이달 초 교장을 찾아간 것은 국민권익위 결정문을 전달하고, 학교 측에 결정 사항 이행에 관해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A 교장은 권익위 결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제가 (우촌초로) 오기 전 이뤄진 일에 대해 권한이 없다”고 회피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12일 우촌초 A 교장에게 입장을 물었다. 학교에 아무 권한이 없는 이규태 회장이 배석한 자리에서 교원 사학수당 지급을 논의했다는 의혹에 대해, “무슨 얘기요?”, “무슨 취재를 하신다고요?”라며 되물었다. 이어지는 질문에 “아니, 기자면 다예요? (이 회장이) 무슨 권한이 없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이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규태 회장에게도 13일 전화로 반론을 구했다. 이 회장은 첫 통화에서 기자 이름을 듣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바로 다시 전화를 걸자, “스토킹으로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 회장에게 우촌초 사학수당을 논의하는 회의에 무슨 자격으로 참석했냐고 묻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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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신 차별 배우는 현장실습”… 교육부장관 고발 [열아홉, 간이 녹았다 5화]
“스태츠칩팩코리아라는 반도체 후공정업체의 청년 노동자는 취업 1년 만에 간이 녹아 없어져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 화학물질 가득한 작업장, 고된 3교대 근무가 가져온 산재입니다.”(‘학습권 침해, 죽음의 현장실습’ 교육부장관을 고발한다! 기자회견문 일부) 1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 20명의 교사와 특성화고 졸업생, 유가족, 시민단체 대표 등이 모였다. 현장실습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고발했다. 이들은 교육부 장관에게 직무유기, 직권남용, 업무상 배임 혐의를 물었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방기했고 ▲참여 의무 없는 현장실습으로 직업계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하고 ▲결국 학생들에게 학습권, 건강권을 상실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과거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도 현장실습 제도에 우려를 표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5월 노동부와 교육부에 ‘파견형 현장실습 우선 중단’을 정책권고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월  ‘현장실습 제도’를 ILO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박은경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공동행동 공동대표는 현장실습 제도의 실상에 주목했다. 그는 “대중의 관심에 따라 현장실습제 대책을 마련할 뿐, 관심이 사그라들면 다시 현장실습 규제를 풀어 불법과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2005년 11월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엘리베이터 점검 작업을 하던 현장실습은 안전 장비도 없이 작업하다 4층에서 지하 1층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에 취업했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 역시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됐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뇌출혈 사고, 2012년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2014년 울산 금영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사고,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사망사건, 2016년 성남 토다이 사망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사망사건, 제주 생수업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5월에는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설비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황화수소 중독’을 의심했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관련기사 : <“마이스터고 붐” 밀어붙이는 정부… ‘다음 선우’ 없을까>) 교육부 장관 고발에는 사망한 현장실습생 유가족도 함께했다. 고(故) 김동준 군 어머니 강석경 씨는 기자회견을 위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왔다. 강 씨는 “사고 후 회사는 동준이 개인의 잘못과 불우한 가정사에 의한 개인적인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다행히 (직장 내에서 자행된) 괴롭힘이 밝혀졌고 산업재해 인정도 받았다”고 말했다. 김동준 군은 2014년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그는 괴롭힘과 중노동으로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강 씨는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었다. 동준 군은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꾸며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3학년 2학기, 꿈과 전혀 관련이 없는 육가공 공장에서 소시지를 포장했다. 열여덟의 나이에 사회에 나간 동준 군에게 선임들은 기합을 주었다. 머리 박기를 시키고, 쓰러지면 발로 머리를 밟았다. 업무 역시 살인적이었다. 잔업으로 밤 12시, 새벽 1시까지 야근을 하기 일쑤였고, 회식에 억지로 끌려다니다가 빠지면 기합을 받는 식이었다. 사망사고가 있기 전 김 군은 이러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이을재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공동행동 총무기획팀장은 “애완동물과를 전공한 학생이 통신사 전화상담센터에서 일을 하고, 원예과 학생이 선물제조공장에 가서 물건을 나누는 게 현장실습의 현실”이라며, 전공과 무관하게 학생들에 대한 ‘강제노동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준이가 경험한 현장실습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적응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둘째,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셋째, 모두가 꺼리는 일이 최약자인 그들에게 할당됐습니다. 명백히 현장실습은 교육이 아니고 가장 최악의 노동이었습니다.”(김동준 군 어머니 강석경 씨 발언 일부) 경북기계공고 졸업생 이학선 씨 역시 현장실습 나간 공장에서 처음 ‘현실’을 배웠다. 그는 상사의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동료에게 회사와 한번 이야기 나눠보라고 위로했다. 그때 형은 “회사가 과장이랑 말단 중에 누구 편을 들 것 같냐”고 답했다. 이 씨가 마주한 현실은 그런 곳이었다. “직업계고 자체도 진짜 웃깁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들은 너희 대학 못 간다고 했습니다. 효력도 없는 서약서를 (고등학교) 입학 면접 때 썼다면서요. 심지어는 취업한 친구들이 수험표 받겠다고 수능 원서 접수하려는 것도 막았습니다.” 이 씨는 교사가 학생들을 ‘현장실습장’으로 내모는 경험을 했다. 일단 일터에 “욱여넣는 식”이었다. 그것도 안전이 보장되지도, 꿈과 연결되지도 않은 노동 현장이었다. 그는 “인생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하고 희망 대신 차별부터 배우는 곳이 현장실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희망 대신 체념을 가르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고발에 참여한 고(故) 이민호 군 아버지 이상영 씨도 이날 마이크를 잡았다. 민호 군은 2017년 11월 제주 생수 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적재기 프레스에 눌려 사망했다. 이상영 씨는 직업계 고등학교 학부모를 향해 말했다. 이 씨는 “직업계 고등학교 보내더라도 대학을 보내야 한다. 빚을 져서라도 보내야 자식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호소했다. 고발에 동참한 고(故) 홍수연 양 아버지 홍순성 씨도 한마디 덧붙였다. 수연 양은 2017년 1월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실습 나간 콜센터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수연 양의 이야기는 영화 <다음 소희>(2023)의 모티브가 됐다. 홍순성 씨는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가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그때만 ‘반짝’이고 만다”며, “여전히 불법이 만연한 현장에 ‘수연이’ 같은 아이들이 더 나올 확률이 높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약 50분 가량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건물로 향했다. 총 583명이 함께 나선 고발장을 접수했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했습니다. 삶에 직면하라는 말입니다. 내 앞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라는 겁니다. 현장실습은 악습입니다. 학생들한테 일자리 문제를 떠넘기고 열악한 노동을 강요하는 나쁜 관행입니다.그걸 참고 받아들이는 게 이제껏 우리한테 주어진 역할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게 교육이었습니다. 더 이상 참고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교육을 거부하겠습니다.”(경북기계공고 졸업생 이학선 씨 발언 일부)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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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없는 대통령의 말… “정치적 무책임 몸에 뱄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대통령실에서 약 140분간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견을 앞두고 회견 시간이나 분야·개수 등 제한 없이 모든 사안에 대해 답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 앞서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어진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26개의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실이 강조했던 것처럼 앞선 기자회견과 비교했을 때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질문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반전 없는 맹탕 회견’,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2년 6월 53%를 기록했던 지지율은 임기 절반 만에 17%(8일 기준)까지 하락했다. 지난 2년 반 대통령은 어떤 말을 했을까. 또 그의 말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6일 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이라영 문화평론가(이하 ‘이라영 작가’)를 만났다.  그는 <말을 부수는 말>,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타락한 저항>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권력의 말’을 해체하고 정확한 언어로 현실을 문제를 꼬집는 데 주목했다. “용산으로 대통령실 옮길 때 그랬잖아요.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이전한다고. 그런 핑계를 댔는데 이후에 거부권을 얼마나 남발했어요? 군사독재 이후로 이보다 더 제왕적 대통령이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실 이전을 공식화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앞세웠다. 그러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 이유에서 ‘소통 미흡’은 3순위 안에 번번이 들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묵살됐어요. 특히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요.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과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정치가 실종됐다는 거죠.” 이라영 작가는 참사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권력의 성격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묵살(默殺)의 ‘살(殺)’이 살인(殺人)의 ‘살(殺)’과 같다”며, “묵살은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의 행위이기도 한데, 이를 참사 유가족에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지적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지난달 25일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마주하는 질문들’ 포럼에 참석한 최성용 성공회대 연구원(국제문화연구학과 박사 수료)은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애도를 두고 ‘정치 편향적이다’라면서 분향소를 철거하거나 강제로 이전시킬 수 없죠. 우리가 어떤 리본을 하나 다는 것도 눈치를 봐야 되고, 리본 문구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이거는 애도가 아니죠. 권력 행위죠.” 그는 “참사 대신 사고라 명명하고, 희생자의 영정 사진과 위패가 없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정부의 애도는 다분히 형식적이었고 그 내용이 텅 비어 있었다”며, “참사 피해자의 존재를 없애고 침묵시켰다”고 비판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158명이 사망했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참사 74일 만에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 지자체, 소방 등 각 기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들의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전파 지연, 협조 부실, 구호 조치 지연 등이 참사 원인이라고 밝혔다. 책임자들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만 유죄를 받았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관련자들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권력자들이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말을 남용하면서 정치적 무책임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는 그냥 거대한 사법기관만 (남아) 있는 거죠. 사회 정의는 법적인 유무죄 안에 갇히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되면서, 윤리라는 세계가 없어져버렸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참사가 발생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의 무책임으로 결국 시민들이 희생된다”며, 사회의 고통을 방치하는 권력자들에게 “정치적 책임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는 또 있다. 지난달 1일 국군의 날에 열린 대규모 퍼레이드다. 그는 2년 연속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진행했다. 군은 이날 다양한 군 장비와 병력 등을 선보였다. “국군의 날이라고 퍼레이드를 하면서 정작 억울하게 죽은 군인에 대해서는 덮으려고 하고 밝히지도 않아요. 군 사기를 걱정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죠. 정부는 군 사기를 걱정하지 않아요. 권력의 안위를 걱정하는 거죠.” 윤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했다. 그는 ‘선제 타격’, ‘압도적 전쟁 준비’, ‘확전 각오’ 등 전시 상황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강조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이 결국 국민들에게 ‘집단적 불안’을 조장해 사회 부정의를 가렸다고 꼬집었다. “사회를 전시 분위기로 몰고 가면서 차별을 더 강화하고 있어요. ‘지금 전쟁 나게 생겼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어?’ 하면서 (다른 문제들을) 사소화시키는 거죠.” 권력자의 외면과 차별로 결국 ‘사과’가 사라진 세계가 도래했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단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참사나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서 이상한 ‘말’이 탄생한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데 사과를 해야 하는 자리에 섰어요. 그때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유감입니다’ 이렇게 말해요. 사과하기 싫으니까 에둘러서. 이게 그냥 공직자들의 언어가 돼버린 것 같아요.” 유감(遺憾)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이라영 작가는 권력자가 타인의 마음을 ‘섭섭’하게 만들어놓고, 자신이 도리어 유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 다름 아닌 ‘권력 집단’이라고 말했다. “언어는 그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쓰면 그냥 그 사회에 그냥 굳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점점 사람들이 ‘유감입니다’를 사과의 언어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정말 우리 사회의 언어를 망치고, 문해력을 교란시키는 주범이 누구인가 하면 결국 ‘권력집단’이에요.” 교육부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 소수자’ 용어를 삭제하고,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자’를 ‘근로자’로 변경했다. 이에 당시 인권위는 “우리 사회의 인권 담론을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는 노동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근로자는 조금 더 사용자의 입장에서 수동성이 부각됩니다. 이를 굳이 바꾸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노동자의 주체성, 독립성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거죠.” 말을 바꾼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바꾸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이를 활용해 차별을 강화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권력 집단의 말은 보수적이다. 그들이 활용했던 말과 언어를 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사회적 소수자, 피해자 등은 자신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끊임없이 찾는다. 기존의 문화에서는 너무 평범한 말이라고 해도, 차별이나 비하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는 권력의 위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 표현들을 경계해요. 예를 들면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하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젠더들의 관계가 모두 평등해야 성립할 수 있어요.그런데 ‘젠더 권력’, ‘젠더 폭력’, ‘젠더 차별’ 이렇게 사용하는 게 더 정확한 상황에서, 뭉뚱그려 ‘젠더 갈등’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면 말에 권력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거든요. 지역 ‘갈등’도 그렇고요. 저는 권력이 행하는 차별과 폭력을 순화해주고 싶지 않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우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표명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정부 아래 ‘여성혐오 범죄’가 어떻게 인정될 수 있겠냐고 탄식했다. 구조적 성차별 없다고 했으니 여성혐오는 검증될 수도, 인정될 수도 없다. 따라서 ‘여성혐오 범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잇달아 발생하는 교제폭력, 교제살인, 여성혐오 폭행 사건 등은 모두 개인화된다. 즉, 별난 가해자가 저지른 기행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17%라는 지지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민심을 얻지 못했다. 탄핵론에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라영 작가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이렇게 나와도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같은 분위기가 형성 안 되잖아요. 왜냐하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니까요. 이쪽을 끌어내리면 또 누구를 앉힐까. 잘 모르겠어요. 이게 사람들을 되게 절망적이고 무력한 시민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이라영 작가는 “정치가 고통을 외면하는 세상”에 돌파구는 결국 연대라고 강조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쉽게 묻힐 수 있어도, 여럿이라면 권력에 견줄 ‘힘’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이 품은 모방 욕구는 아름다움을 복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무엇을 복제할 것인가. 권력화된 아름다움인가 분배하는 아름다움인가.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동경이 나 이외의 타자와 동등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 <말을 부수는 말>(이라영, 한겨레출판, 2022) 중에서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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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마저… 아무도 ‘해고’ 신부에게 답하지 않았다[신부가 해고됐다 4화]
심기열(34, 야고보) 신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외로운 길이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제가 강에 뛰어들면 다 괜찮아질까요? 그동안 생각했던 사회 정의와 다른 모습입니다. 다들 너무 비겁해요. 누구 하나 도움을 안 줬습니다.” 심 신부는 2022년 12월 26일자로 면직됐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같은 해 4월부터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며 휴양 명령을 내렸다. 심 신부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고, 누군지 밝힐 수도 없다는 비밀(?) ‘자문단’의 판단이었다. 심 신부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종합병원,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어디에서도 교구가 주장하는 정신질환이나, 치료가 필요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심 신부의 노력에도, 교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면직 사유도 알려주지 않고 심 신부를 ‘해고’했다. 신학생 10년, 사제 생활 4년. 신의 아들이 되기 위해 14년간 걸어온 여정은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었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대구교구 안에서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다른 지역 교구에 제 사정을 말해봤지만 ‘타 교구 일에 간섭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천주교 내부에서 그 누구도 심 신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심 신부는 2023년 2월 법원에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암담했다. 1심, 2심 재판부 모두 사건을 ‘각하’했다. 종교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였다.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실체적인 심리・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심 신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자신이 교구 안에서 괴롭힘과 인권침해 행위를 당했다고 말이다. “(정신과 전문의 소견, 심리상담센터 검사 결과) 아무런 정신질환 병명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제가 거짓말하는 것으로 꾸며서 계속해서 정신질환 치료를 강요당했습니다.” 12일 만에 ‘초고속’으로 인권위의 회신이 왔다. ’각하’ 결정이었다. 인권위는 단 여섯 줄로 각하 이유를 설명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및 사인(私人)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 위원회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법 제30조 제1항과 제2항에는 ‘조사대상’을 구분하고 있다. ‘인권침해 행위’는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공직유관단체, 구금・보호시설 등에서 당한 경우에 조사한다는 게 제1항. 천주교 대구대교구처럼 단체, 재단, 사인 간의 ‘차별 행위’를 조사한다는 게 제2항의 요지다. 인권위는 국가기관에서 당한 피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1항을 비껴가고, 차별 행위가 아니라 인권침해 행위라는 이유로 제2항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국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인권 이슈에, 매우 엄격하게, 일을 안 하는 방향으로만 의사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인권위의 결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권위에 부족한 건 법령과 규정이 아니라, 인권침해 피해자를 돕겠다는 의지”라며, “인권위가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를 부정한 것”이라고 봤다. “권한과 법적 근거를 다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건, 인권침해 피해자가 어떤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는가, 어떻게 그 고통과 연대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태도입니다.” 오 사무국장이 인권위의 이번 결정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 법 제30조 제1항과 제2항’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의견을 표명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2014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CCTV 사찰 사건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2014년 4월부터 2개월간 원정 숙소의 CCTV 자료를 받아, 소속 선수들의 사생활을 감시해 논란이 됐다. ‘불법 사찰’ 논란이 커지자 인권위는 조사에 착수했다. 2015년 인권위는 해당 사안을 ‘인권침해’라 판단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롯데 자이언츠 CCTV 사건도 인권위가 조사에 나서지 않을 ‘명분’은 있었다. 심 신부 사례와 같이, 국가기관에 의한 피해도 아니고 차별행위도 아니라는 이유를 댈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시 인권위는 의견 표명을 결정했다. 인권위가 종교단체를 상대로 권고를 내린 사례도 여럿이다. 일례로, 2022년 인권위는 한 불교 종단이 음력 2월 초하루에 여성의 사찰 입장을 제한하는 관행을 ‘성차별’이라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해당 종단은 ‘전통’이라 주장했지만, 인권위는 “여성을 부정한 존재로 보아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남녀평등 이념을 실현하려는 헌법적 가치에 어긋나는 조치”라고 보고, 관행을 개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만약 인권위가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도, 의견 표명은 유의미한 일입니다.” 명숙 인권위바로잡기공동행동 활동가는 “사건 조사도 안 하고 진정 내용만 보고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바로 각하한 것으로 보인다”며, “인권위가 일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면직은 사제에게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면직된 신부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다시는 신부가 될 수 없다. 면직 처분은 자주 내려지지 않는다. 심 신부와 같은 대구대교구의 징계 사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동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감옥살이를 한 신부도,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도, 여성 도우미와 함께 술판을 벌였다는 신부도, 감금 혐의와 인권침해로 법정구속된 신부도 면직되지 않고 사제직을 유지했다. 심 신부는 면직 1년 전, 자신의 주임신부를 교구청에 고발한 적이 있다. 주임신부가 최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골프를 치러 다니고, 그 때문에 미사 일정을 변경하는 등 행동을 문제제기했다. ‘아동성추행’ 신부에게도 내려지지 않은 면직 처분이 심 신부에게만 내려진 이유를, ‘괘씸죄’가 아닐까 의심하는 이유다.(관련기사 : <아동성추행 신부도 안 잘렸는데… ‘괘씸죄’가 더 큰가>) 하지만 교구에도, 대한민국 법에도, 국가 인권기구에도 그의 억울함을 말할 길은 없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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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체험 명소’ 앞 5성급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지난 3일 일요일 오후 3시,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역으로 향했다. 목적지까지 가지 않는 지하철을 다섯 대 보냈다. 기다림은 35분간 이어졌다. 드디어 소요산행 열차가 도착했다. 한 손에 두꺼운 패딩 외투를 들고 올라탔다. 해 떨어진 산자락에는 한기가 휘감는다고 했다.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 출발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지행역에 하차하자 전화가 걸려왔다. 안김정애(65)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였다. “김 기자님, 역에 내리셨어요? 저 녹색 옷 입고 있는데, 보이십니까?” 내리쬐는 햇빛이 녹색 옷을 화사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보다 강렬한 디자인의 선글라스가 눈에 먼저 들어왔지만. 그는 몇 년 만에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인사했다. 손에는 전단지 수십 장을 들고 있었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발을 쉽게 떼지 못하는 땅. 이곳에 ‘옛 성병관리소’가 있다. 이는 1973년 박정희 정부 때 설립된 ‘낙검자(검사 탈락자) 수용소’다.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다가 성병에 감염된 여성들을 격리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옛 성병관리소’ 건물을 무너뜨리고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동두천시장과, 국가폭력의 역사를 사과도 없이 지워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시민단체. 시민들은 소요산 주차장에 천막과 텐트를 치고 농성장을 차렸다.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만들고 밤낮으로 돌아가며 지키고 있다. 안김정애 대표는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돌렸다. 성병관리소의 철거의 부당성을 제기하고, 동의하면 서명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한 중학생은 전단지를 몇 장 더 달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것이다. 안김 대표는 품에 있던 전단지를 선뜻 더 챙겨줬다. 시민들이 항상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 시간쯤 전단지 배포를 했지만, 대부분 전단지를 읽어보지도 않고 거절했다. 전단지를 받아가는 경우에도 얼굴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안김정애 대표는 거절당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손사래 치는 시민에게 ‘한번 읽어보시면 좋은데’라고 덧붙이거나, 전단지 받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내용을 설명했다. 능숙함 덕분인지 이내 그의 손에는 전단지가 몇 장 안 남았다. 안김정애 대표는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2014년 10월 ‘미군 위안부’ 피해자 122명과 함께 국가손해배상소송에 나섰다. 정부가 ‘외화벌이’ 수단으로 기지촌 여성들의 성매매를 조장했다며, 국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하라는 것이다. 1961년 윤락행위방지법을 제정하면서 집창촌 등에서의 성매매는 불법이 됐지만, 기지촌 반경 2㎞ 이내는 예외였다.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1969년 주한미군을 축소하겠다고 선언하자, 한국 정부는 ‘정화’ 사업에 돌입했다.  그 대상은 기지촌 여성들이었다. 정부는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의 명단을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하고, 정기적인 성병검진과 관리를 시행했다. 만약 검진에 합격하지 못하거나, 단속 기간에 최근 일자의 성병검진 확인 도장이 없거나, 성병검진증을 소지하지 않았을 때, 미군이 성병에 걸려 그 대상으로 지목한 경우 모두 ‘성병 관리소’로 끌려갔다. 관리소에 수용된 이들은 모두 ‘페니실린 606호’ 주사를 맞았다. 당시 만병통치약이라고 불리던 항생제다. 문제는 쇼크와 마비, 유산 등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당시 미군 ‘위안부’가 된 이들은 10대에 유입되어 수십 년간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10대에는 외국인 구경도 못했던 시절, 티비도 없고 문화도 없던 시절에 (…) 웬 아저씨들이 나를 데리고 갔다. 그 시절에는 판잣집이었는데 쪽방 같은 미닫이문에 허름한 침대, 허름한 테이블 탁자와 재떨이가 있는 곳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2015.10.15. <미군 위안부의 숨겨진 진실> 토론집 일부) 대법원은 2022년 9월 미군 위안부에 관해 “정부 주도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안김정애 대표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대통령실, 법무부 등 정부 기관에 공문을 보냈다.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그러나 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농성장은 지행역에서 차로 약 15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안김 대표는 농성장으로 이동하기 전, 동두천에 거주하는 지인을 만나 서명을 받았다. 공익감사청구에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기자를 공대위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에도 서명을 먼저 받았다. ‘선 서명, 후 통성명’ 방식이었다. 인사는 서명을 받은 후에 나눌 수 있었다. 그의 진심은 농성장에 도착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농성장에 도착한 건 오후 6시가 조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해가 저물어가자 그는 기자의 손을 이끌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보고 와야 한다고. 그는 농성장 옆 가게 쪽으로 향했다. ‘실버밴드’가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드렸다. 그 옆으로는 트로트 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등산객들이 보였다. 다행히 우리가 향한 곳은 그 가게가 아니었다. 그 가게를 훌쩍 지나서 발견한 작은 ‘개구멍’ 앞이었다. 그는 무릎까지 오는 수풀을 헤치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나마 지난 여름에 길을 만들어준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잰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조금씩 트로트 반주가 들리지 않을 때쯤이었다. 눈앞이 탁 트이더니 양 옆으로 하얀 건물이 드러났다. 페인트 칠이 다 벗겨진 낡은 감시 초소와 성병관리소였다. 꿈에서도 본 적 없는 스산한 건물이었다. 깨진 유리창과 창살 사이로 미군 ‘위안부’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미군들은 이곳을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다. 쇠창살에 매달려 구조를 요청하는 여성들이 꼭 동물원 원숭이 같다는 이유다. 성병관리소 건물 외곽에 둘러진 철조망이 더욱 분위기를 음산하게 했다. 1996년 폐쇄된 이후 사학재단 소유로 30년 가까이 방치된 건물은 ‘흉가 체험 명소’가 됐다. 시민단체와 동두천시가 갈등을 빚기 시작한 건 지난해 2월 동두천시에서 해당 부지를 매입하면서부터다. 시는 소요산 관광지 사업을 확대하겠다며 건물을 철거하고 호텔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주말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없던 게 또 생겨 있네.” 접근은 나날이 어려워진다. 최희신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2020년 오랜 시간 방치된 성병관리소 내부를 청소하기도 했다. 청소년들의 일탈 장소이자 흉가 체험 명소가 된 성병관리소를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등록하자고 당시 시의회와 시장에게도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시장이 바뀌고 시가 부지를 매입하더니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옆에 위치한 주차장에는 그날의 흔적이 남아 있다. 깨진 보도블럭과 잘려나간 나무들이 있었다. 새벽 5시 30분이었다. 포클레인은 그날 언덕을 넘어 그 아래에 있는 성병관리소를 무너뜨릴 계획이었다. 천막농성을 하던 사람들이 포클레인 앞을 가로막았다. 그제야 기계가 멈춰섰다. 이후로 농성장은 더 바삐 돌아갔다. 텐트를 세 군데 설치하고 각각 지킴이들이 지킨다. 기자는 지난 3일 소요산 대형버스주차장 거점을 지켰다. 안김 대표는 이날로 ‘여섯 번째’ 지킴이를 한다. 서울에서 2시간 걸리는 거리를 달려 이곳으로 온다. 매주 한 번은 지킴이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농성장을 ‘집’ 삼아 생활하는 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거점 맞은편에는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걸어놓은 현수막들도 있었다. 이들은 ‘성병관리소’가 오히려 동두천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건물이 철거되고 관광지역으로 거듭나면 경제가 부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오후 7시부터는 문화제가 진행됐다. 이날은 재즈트리오와 민요 공연이 준비돼 있었다. 이들은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갈등) 소식을 듣고 대화를 통해 같이 발전해나갈 방향을 모색했으면 좋겠는데, (대화가) 차단돼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 연주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는 모두 자발적으로 진행됐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공대위의 자부심이다. 지나가던 등산객들도 잠깐 발길을 멈추고 공연을 보다가 떠나갔다. 해가 지면 어둠이 깔리지만 대신 응원하는 시민들이 곁을 지키러 온다. 월요일을 앞둔 이날도 일곱 명의 시민이 천막을 지키다가 떠났다. 초등학생부터 학교 교감선생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대신 이들이 찾아온 계기는 딱 하나다. 뉴스를 보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국민청원 동의가 5만 명 넘은 적 있어요. 그것도 다 저희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해주셨더라고요.” 국회 국민동의 청원 안건은 청원서 공개 이후 30일 이내 5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돼 심의를 받는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반대’ 국민청원은 지난 9월부터 한 달간 5만 2585명이 동의하면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회부됐다. “폭력의 역사를 왜 지워요. 아직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겪은 끔찍한 기억과 후유증을 안고 사는 피해자분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안김정애 대표는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기보다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자행했던 폭력을 지우는 순간, 또 다시 반복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공대위 회원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성병관리소를 시도지정(등록)유산으로 보존하고, 역사문화평화공원으로 활용해 후대가 기억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전기를 사용할 수 없으니 하루가 일찍 마무리됐다. 임성용 시인은 ‘5성급’ 텐트로 기자를 안내했다. 농성장에서 보낸 69일의 노하우가 담긴 가장 안락한 공간이었다.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도 불안이 밀려왔다. 밤새 포클레인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머릿속으로 대안을 세우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뛰쳐 나간다. 그러면 나는 취재를 해야 될까, 아니면 공대위와 함께 그 앞을 막아서야 할까. 그리고 또 하나. 취객이 와서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다고도 했다. 길거리에서의 생활은 불안정하다.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변수를 생각하고 대안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에 들지 못한 건 머릿속이 시끄럽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텐트가 있는 곳은 주차장. 얇은 텐트 너머로 자동차가 주차장 옆 도로를 달리거나 주차장으로 들어올 때면 눈앞이 번쩍인다는 거다. 잠에 들까 싶으면, 오가는 차 때문에 한밤에도 눈앞이 대낮처럼 밝아질 때가 있었다. 하필이면 이날 비가 쏟아졌다. 자정 무렵부터 약 두 시간 가량 쏟아진 빗소리에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농성장 지킴이들은 다행히 지난 추석에 폭우를 겪으면서 한 차례 비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다. 공대위 회원들은 텐트 아래 두꺼운 돗자리를 깔아 등이 젖는 것을 대비했다. 그 덕분에 비교적 푹신한 바닥에서 빗물을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텐트 위에 쳐진 비닐이었다. 비를 확실히 막기 위해 설치한 비닐에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소음을 만들어냈다. 안에서 듣기에는 폭우가 내리는 줄 알고 나와보니, 겨우 가랑비가 토닥거리고 있었다. 황당하기는 했어도 육안으로 확인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금방이라도 비닐을 찢을 것 같은 빗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텐트 밖 사람의 말소리가 들릴 때나 차들이 쌩쌩 내달릴 때면 곧잘 잠에서 깨면서도, 자꾸 눈이 감겼다. 날이 밝아오자 푸석한 얼굴을 한 공대위 회원들이 천막 아래 모여들었다. 가져온 패딩 외투를 이때 꺼내 입었다. 산길 위에 텐트를 친 임성용 시인과, 반대편 주차장을 지킨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도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각각의 거점에서 밤을 보낸다. 그 길이 뚫리면 바로 건물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용 대표는 동두천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면서 퇴근하면 농성장을 지킨다. 거의 매일같이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자전거를 타고 먼저 일터로 향했다. 농성장에는 아침마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그는 교사다. 학교로 출근하기 전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 소요산을 찾는다. 오늘만이 아니다. 매일 아침 텀블러에 따뜻한 마음을 담아 온다. 그는 바로 전날 문화제에서도 얼굴을 보고, 가장 늦게까지 농성장을 지키다가 떠났다. 그에게 농성장은 도와주고 싶은 곳, 챙겨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저희 농성이 꽤 오래 갈 수도 있어요. 그래도 겨울에 눈 내리면 썰매 끌고 나와야죠. 주차장이 약간 언덕이라서 썰매 타기 좋거든요.” 지난 4일로 농성은 69일째 이어졌다. 농성장을 떠나면서 최희신 공대위 집행위원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눈도, 비도 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 이런 이들을 가로막으려고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길 위에 사람이 산다. “장소가 없어지면 기억이 없어집니다. 기억이 없어지면 치유의 길은 없어집니다. (…) 독일 사람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냥 없애버리고 거기다 호텔 지었으면 독일 국민들이 더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요? 여론이 보존하자, 다른 방식(문화공원조성 등)으로 보존하자 그것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 올 수 있게 하는 어떤 힘이 될 것이다, 라고 바라는 마음들이 모아졌으면 좋겠습니다.”(2024. 10. 10. 기억 위로 미사 최재영 신부 메시지) ※ 공대위는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기 위해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신흥재단이 소유하고 있던 옛 성병관리소 부지를 시가 매입하는 과정에서 부정은 없었는지 조사해 달라는 취지다. 공익감사 청구는 성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방법은 다소 번거롭다. 감사원은 여전히 ‘오프라인 자필 서명’을 요구한다. 공익감사청구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래 링크에 첨부된 파일을 출력한 후 성명, 휴대전화번호, 생년월일, 직업, 주소 등 빈칸을 채워 셜록 주소로 보내면 된다. ▶️ 공익 감사 청구 참여하기 ‘진실탐사그룹 셜록’ 주소: (04513) 서울 중구 서소문로 116 유원빌딩 1316호 진실탐사그룹 셜록 앞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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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감사거부” 우촌초에 ‘모른다’만 반복한 교육감[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4화]
“미처 못 챙겼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몰랐습니다.“ “아예 몰랐습니다.” “몰랐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이렇게 모르겠다는 걸까. 4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 출석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의 답변이다. 이소라 서울시의원(비례대표)은 행정사무감사에서,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운영하는 우촌초등학교에서 발생한 비리에 관해 질의했다. 하지만 정근식 교육감에게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부모 부담금이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1년 치 학부모 부담금은 1480만 원(2022년 기준). 우촌초는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로 얼룩진 과거를 갖고 있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은 전 이사장인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부풀리고, 미리 섭외한 업체가 입찰에서 선정되도록 사업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적발했다. 그해 5월 최은석 교장, 이양기 교감, 유현주, 박현주 등 교직원 6명이 공익신고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외에도 학교장 업무방해, 학교 예산 횡령 등 각종 비리가 밝혀졌다. 학교 측은 제보자들을 학교 밖으로 내쫓고, 무더기 고소·고발에 소송까지 걸었다. 긴 법정 싸움 끝에 현재 학교로 돌아간 교직원은 이양기 전 교감이 유일하다. 2020년 8월 서울시교육청은 학교법인 일광학원 임원 모두의 취임승인을 취소했다. 하지만 일광학원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지난 9월 10일 일광학원의 패소로 끝났다. 무려 4년 동안 이어진 싸움이었다. 우촌초는 그동안 감사를 거부해왔다. 서울시교육청과 행정소송 중이라는 핑계로 교문을 굳게 닫고 열어주지 않았다. 2021년 이후 해마다 실시하는 종합감사는 물론, ▲리조트 회원권 구매 건 ▲학교회계 약 48억 원 지출 건 ▲학부모 불법찬조금 모금 의혹 건 등 감사를 전부 거부했다. 우촌초와 서울시교육청의 ‘악연’은 이처럼 뿌리 깊다. 정근식 교육감을 대신해 이소라 의원의 질의에 답변한 감사관이 “대화가 안 된다”고 말할 정도다. 이소라 의원 : “셜록 보도에 따르면, 전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주무관이 ‘관할 교육청에 감사 거부 이렇게까지 하는 곳은 처음이다'(라고 말했고), 교육청 대리 변호사도 ‘감사 거부할 거면 학교가 아니라 학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 “교육청 내부에 현존하는 (감사 거부가) 가장 심한 학교입니다. 교육청과 대화가 안 되는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행정사무감사장에서 “모른다”는 답변만 다섯 번 연속 반복한 교육감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정 교육감은 보궐선거를 통해 지난달 17일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행정사무감사가 가지는 의미가 너무 크다.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은 의회의 ‘존재의 이유’. 1년에 한 번 서울 시정 구석구석을 시민의 눈으로 살피고 따지는 행정사무감사는 서울시의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지금 우촌초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3년간 하지 못한 감사 문제 ▲공익신고자 복직 문제 ▲보복성 소송 철회 문제 등, 모두 정 교육감과 서울시교육청이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정 교육감의 태도에 실망감을 숨기기 힘들다. 행정사무감사 전 시의회가 교육청에 요청하는 자료들을 통해서도 사전에 충분히 질의 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은 정 교육감 개인의 ‘면접고사’가 아니지 않은가. 정 교육감 혼자 행정사무감사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면, 다섯 번의 “모른다” 속에서 우리는 서울시교육청의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촌초는 2021년 이후 서울시교육청의 모든 감사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서울시교육청은 그에 대한 법적 조치는 따로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이소라 의원의 질의에,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이 대신 답했다. “(일광학원에 대한) 법적 조처를 검토했지만, 성북강북지원청에서 감사 거부를 이유로 형사고발한 사건이 무혐의로 처분됐습니다. 그런 사례로 비춰서 무리하게 법적 조처를 취하는 걸 조심하고 (학교 측에 감사에 응하라고) 요구를 했었습니다.”(감사관)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후, 성북강북교육지원청은 지난달 16~22일 우촌초 종합감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종합감사는 2021년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우촌초 학교 업무 전반을 두루 살펴보는 목적의 감사다. 3년간 하지 못한 감사를 일주일 만에 해야 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감사를 기대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 의원은 “교육 현장이 비리의 공간이 되면 안 된다”며, 서울시교육청에 감사TF를 구성해 철저한 감사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은 “종합감사에서 의문점을 발견하면 추가 감사를 할 수 있다”며, “성북강북교육지원청과 상의해 만반을 준비를 하겠다”고 답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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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성추행 신부도 안 잘렸는데… ‘괘씸죄’가 더 큰가[신부가 해고됐다 3화]
지금부터 몇 사람의 신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들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먼저 A 신부는 2014년 자신이 근무하던 성당에서 만 9세 미성년 신자를 두 차례 추행했다. 미성년 신자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며, 성당 사제관으로 데려가 범행을 저질렀다. A 신부는 미성년 신자의 입을 막기 위해 간식이나 선물 등을 따로 챙겨주는 등 거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2021년 4월 법원은 A 신부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당시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A 신부에게 5년 정직 처분을 내렸다. 현재 A 신부는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상태다. 하지만 사제직은 유지되고 있다. 교구는 2026년 4월에 정직 처분이 종료되면 A 신부를 은퇴시키겠다고 밝혀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은퇴하는 경우, 사제 신분이 유지돼 사실상 명예퇴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5월 1일 대구신문 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다음은 “나도 여자 좋아해”라는 말로 유명한 B 신부 이야기다. 2023년 2월 21일 대구MBC가 보도한 내용. 2018년 9월 대구교구 산하 사회복지법인 대표 B 신부가 신입 여직원들을 성추행했다. B 신부는 법인 교육관 식당 옆자리에 앉은 20대 여직원의 신체를 만졌다. 해당 직원이 놀라서 밖으로 나가자, 다시 불러 양팔로 껴안고 술을 따라줬다. 또 다른 20대 여직원도 성추행했다. 그러면서 “나도 여자 좋아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B 신부는 지난해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사건 보도 이후, 대구교구는 B 신부를 대기발령 처분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취재 결과, B 신부는 최근 한 공동사제관 관장으로 부임했다. ‘여성 도우미’를 데리고 술판을 벌였다는 논란을 일으킨 C 신부도 있다. 2019년 7월 10일 대구MBC는 대구교구에 속한 경산성당 주임신부가 경산시 한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 3명을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2018년 해당 술자리 참석자는 인터뷰에서 “신부님이 아가씨 2명 끼고 돈 5만 원 붙이고 놀고 (하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C 신부는 “앉아서 있었을 뿐”이라 반론했다. 논란의 주임신부 역시 사제직을 잃지 않았다. 셜록은 C 신부가 다른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것을 확인했다. 2016년 대구교구가 ‘대구희망원’을 운영하던 당시, 시설 내 생활인을 상대로 체벌, 폭행, 폭언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내부규정을 어긴 생활인을 길게는 47일까지 ‘심리안정실’에 불법으로 감금하기도 했다. 당시 총괄원장이던 D 신부는 2017년 7월 감금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신부로서 두 번째 구속된 사례였다. D 신부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 역시 사제 신분을 빼앗기지 않았다. 대구교구는 D 신부가 구속되자 ‘안식년’ 처분을 내렸다. 김 신부가 풀려나자, 징계하지 않고 오히려 본당 주임으로 임명해 시민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2018년 1월 뉴스민의 보도다. 셜록이 확인한 결과, 현재 D 신부는 원로사목자로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네 신부들의 공통점은 모두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 중 단 한 명도 사제복을 벗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신부들을 그대로 두고, 이 사람에겐 ‘면직’ 처분이 내려졌다. 바로 심기열 신부(34)다. 면직은 사제에게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다시는 성직자로 살아갈 수 없는 최후의 형벌.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해고된다고 해도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신부는 면직되면 지구상 어디에서도 다시는 신부가 될 수 없다. 심 신부는 2022년 12월 면직 통보를 받았다. 그는 면직 1년 전, 자신의 주임신부를 업무태만으로 교구청에 고발했다. 주임신부가 최소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자주 골프를 치러 다니고, 그 때문에 미사 일정을 변경하고, 사제관을 벗어나 외박을 하거나, 당구 약속으로 주일(일요일)에도 본당을 비우는 행동을 문제제기했다. 하지만 교구는 주임신부가 아니라 심 신부에게 ‘휴양’ 결정을 내렸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 즉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몰아갔다. 심 신부를 직접 만나본 적도 없고,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은 의문의 ‘자문단’이 내린 결정이었다. 심 신부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없음을 증명하며 싸워야 했다. 그 시간이 무려 8개월. 그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심리상담센터 등에서 거듭 검사와 진료를 받았지만, 교구가 주장하는 정신질환이나 치료가 필요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교구는 심 신부가 ‘시키는 대로’ 지정된 정신과의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지 않았다며, 이를 ‘불순명’이라 간주해 면직했다. 순명(順命)은 명령에 복종함을 뜻한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심 신부는 2023년 2월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교구의 내부 문건과 교구 관계자의 법정 증언 녹취록 등이 확인됐다. 교구 성직자국장은 법원에서, 이른바 ‘골프신부’를 고발한 심 신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임신부에 대한 고발 내용을, 아주 부정적인 고발 내용으로 일관했고, 아주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보통 젊은 보좌신부가 주교님과 본당 신부, 또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거든요.”(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성직자국장은 23년간 교구에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면직 처분은 세 건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나는 여자 문제가 있는 사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돈 문제, 마지막 하나는 심기열 신부 사례였다. 성직자국장의 증언처럼, 면직 처분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기사 서두에 나열한 것처럼, 아동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3년간 감옥살이를 한 A 신부도,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해 재판에 넘겨진 B 신부도, 여성 도우미와 함께 술판을 벌였다는 C 신부도, 감금 혐의와 인권침해로 법정구속된 D 신부도 사제직을 유지했다. 아동성추행이라니. 교구는 사제의 자격은커녕 인간의 자격마저 의심되는 신부도 너그럽게(?) 품어줬다. 다른 신부들 역시 면직 처분을 받지 않았다. 대구대교구의 면직 기준이 무엇인지, 교구 성직자국장에게 물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다시 사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참사회의를 거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죠.” 성직자국장은 “사제직을 포기할 정도가 아닌 경우 자숙 기간을 갖게 하고 다시 기회를 준다”며, “면직은 다시 사제로 살기에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를 경우에 내려진다”고 설명했다. “심 신부에 대해 정직의 벌이 마땅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면직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어차피 심 신부의 고소가 이어질 것이므로 정직보다는 바로 면직을 내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정직을 내렸다가 면직이 이루어지려면 그 절차상 근거를 대기가 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대구교구는 사제의 인사를 논의하는 참사회의에서 심 신부의 ‘면직’을 전략적으로 모의했다. ‘면직’이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두고, 무엇 무엇을 문제 삼고 어떤 절차로 처리할지 그 명분을 찾고 방식을 논의한 정황이 있다.(관련기사 : <‘신부 해고’ 교구 회의록 입수 “바로 면직부터 내리자”>) 몇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취재 과정에서 교구 성직자국장은 기자에게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한 바 있다. 혹시 교구가 밝히지 못한 면직 처분의 진짜 이유가 ‘괘씸죄’는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고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신부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왜 심 신부에게는 돌아가지 않았을까. 과연 심 신부에게 그들보다 “치명적인 잘못”이 있다고 봐야 하는 걸까.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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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암, 아이는 자폐… 희망은 소급될 수 없나요[반도체 아이들의 가려진 아픔]
학교로 들어가기 전 김희수(가명, 46세) 씨는 밀짚 챙모자를 챙겨 썼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 민지유(가명, 15세)을 데리러 온 하굣길. 시간은 오후 3시를 가리켰다. 오늘은 희수 씨가 병원에 가는 날이다. “애가 혼자 못 다니니까 항상 보호자 동행하에 등하교해요.“ 희수 씨는 1층 복도 끝 ‘도담반’으로 걸어갔다. 지유는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었다. 희수 씨는 문 밖에 서서 여러 번 지유의 이름을 불렀다. “지유야, 가자!” 지유를 기다리던 희수 씨는 힘에 부치는지 잠시 기둥 벽에 몸을 기댔다. 한참 기다린 끝에, 지유가 걸어 나왔다. 한눈에도 지유는 또래보다 체격이 커 보였다. 키는 170cm 정도. 지유는 신발장에서 신발부터 꺼내, 발을 집어넣었다. 희수 씨가 지유를 불렀다. “지유야, 선생님께 인사부터 해야지.” 지유는 시선을 맞추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 지유는 교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엄마 희수 씨는 한 번 더 지유를 불러세웠다. “기자님한테도 인사했어, 지유야? 처음 뵀으니까 인사해야지.” 지유의 시선은 다시 땅바닥으로 향했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곤 학교 밖으로 뛰어나갔다. 지난 9월 26일 경기 화성시의 한 중학교에서 지유 양의 가족을 만났다. 희수 씨는 대장암 4기 환자다. 2021년 12월 먼저 난소암을 발견해 수술을 받았다. 다음 해 1월에는 대장암(구불결장암)을 진단받았다. 대장에서 발병한 암이 난소로 전이된 거였다. 지유에게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고,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4년 지유는 만 세 살 나이에 자폐증을 진단받았다. 지유는 특수학급(종일반)에서 공부한다. 평일에는 학교를 마치면 언어·인지치료가 이어진다. 평소에는 복지관과 사설 치료센터로 가 수업을 받는데, 이날은 엄마 희수 씨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제가 ‘병원 간다’고 말해도, 지유는 잘 몰랐거든요. 한 달에 한 번씩 항암치료를 하면 며칠씩 집을 못 가요. 제가 집에 없는데 지유가 자꾸 찾으니까… 이제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병원으로 가는 거예요.제가 환자복 입고 나오는 걸 보여주면, 지유도 엄마가 아프다는 걸 깨닫지 않을까 싶어서요. ‘엄마 병원 가’, ‘엄마 배 아파’, ‘엄마 주사 맞아’ 이걸 반복해서 알려주는 거죠.” 오후 3시 30분경, 경기 수원시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암병원에 도착했다. 이날은 X-ray, 심전도 검사와 같은 간단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희수 씨는 3박 4일 동안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는다. 희수 씨가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러 간 사이, 지유는 의자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지유는 희수 씨 핸드폰으로 영상을 봤다. 화면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등장해 동요 ‘아빠 힘내세요’를 불렀다. 유튜브 검색 리스트를 보니, ‘모여라 딩동댕’, ‘짱구는 못 말려’, ‘뽀로로’ 등 어린이 프로그램 제목이 줄지어 있었다. “지유한테 핸드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안 알려줬거든요. 그런데 어느 정도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아요. (지유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직 말하는 게 어려워서 그런 걸까. 지유는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나란히 대기 의자에 앉아 엄마 손을 포개어 잡았다. 엄마의 등을 오른손으로 쓸어내리며 엄마 어깨에 얼굴을 기대기도 했다. 말로 표현하진 못해도 마치 엄마를 위로하려는 듯했다. “지유는 거리낌이 없어요. (엄마 아빠한테) 막 비비고 그래요.(웃음)” 엄마 김희수 씨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였다. 1997년 기흥사업장에 입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0세. 약 19년을 일하고 2016년 명예퇴직했다. 희수 씨는 ‘3라인’에서 오퍼레이터(8년)와 현장관리자(4년)로 약 12년을, LED 생산라인에서 현장관리자로 약 7년을 일했다. 2009년 당시 삼성반도체는 기흥사업장 ‘3라인’을 LED 생산라인으로 전환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2014년)의 모티브가 된 실제 주인공 고 황유미 씨 역시 삼성 반도체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만 21세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졌다. 희수 씨는 근무 당시 화학물질을 다뤘다. 재작업을 위해 웨이퍼(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에서 감광액(PR)을 벗겨내는 일을 했다. 감광액은 빛에 노출되면 화학적 성질이 변해 웨이퍼에 원하는 회로 패턴을 보일 수 있게 하는 화학물질이다. 희수 씨는 일할 때 감광액이 방진복에 묻고, 자주 매캐한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있다. “PR은 뚜껑을 따는 순간 냄새가 확 올라와요. 악취는 아니지만 그 특유의 화학물질 냄새가 있어요. 또 방진복에 튀면 안 지워지는 그런 물질이니까 되도록 안 만져야 하는데, 뚜껑이 안 열리면 억지로 따야 하잖아요. 다리 사이에 병 끼고 이렇게(손으로 뚜껑을 힘껏 따서) 여는 거죠. 그 과정에서 묻기도 하고 그랬던 거죠.” 희수 씨는 2009년 지유를 임신했다. 회사에서 나눠준 임부용 방진복을 입고, LED 생산라인의 ‘EDS 공정’에서 일했다. ‘EDS 공정’은 공정이 완료된 웨이퍼를 테스트해서 불량을 선별하는 과정이다. 해당 공정에서 설비 세척 용도로 사용하는 유해화학물질(에틸렌글리콜)에 노동자가 노출될 수 있다는 역학조사 결과가 있다.(반도체 노동자 김○○ 산재 역학조사 보고서, 2016년) 에틸렌글리콜은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상 ‘건강손상자녀 관련 유해인자’에 포함된 물질이다. 미국과 대만에서 생식독성 피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물질이기도 하다. 이미 학계에선 발달장애가 업무상 유해요인 노출로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Parental Occupational Exposure and Neurodevelopmental Disorders in Offspring: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Maryam Bemanalizadeh, 2022년) 해당 연구는 유기용제(시너·솔벤트 등) 노출 시 자녀의 발달장애 발생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반도체 칩이 오픈돼 있는 상태에서 현미경으로 불량이 있는지 없는지 검사해야 되는 거니깐요. 장갑을 꼈지만 직접 만진다거나 무언가를 덜거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장비 문을 닫고 (측정용) 레이저를 쏴도 빛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100대 넘는 설비들이 다 붙어 있는 데여서 미로처럼 골목 골목을 엄청나게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설비이다 보니 소음이 너무 커서 귀마개를 해야 할 정도입니다. 물론, 현장에서 귀마개는 쓰지 않았죠.” 희수 씨는 이런 업무를 출산 30일 전까지 했다. 육아휴직도 90일만 쓰고 바로 복귀했다. 지유의 발달지연은 서서히 발견됐다. 아이는 생후 23개월까지 아예 말을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수 씨는 자신의 업무와 자녀의 아픈 몸을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지유가 ‘엄마’ 소리를 안 했어요. 그래서 주위에 ‘엄마’ 소리 듣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당시만 해도 아이가 아픈 걸 회사 안에서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주위에서 ‘치료실 다녀라’ 조언이라도 해줬으면, 더 어렸을 때부터 다니는 건데… 참 많이 아쉬워요.” 희수 씨는 2016년 일을 그만두고, 퇴사자 모임을 꾸렸다. 1990년대부터 함께 일한 여직원 네 명의 모임이었다. 주로 안부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씩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느슨한’ 모임을 이어왔다. 그러던 지난해, 이들은 그동안 서로 ‘말하지 못한 비밀’을 알게 됐다. 네 명의 자녀가 모두 선천적인 질병이나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세 명의 자녀에겐 지적장애가 있었고, 한 명의 자녀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었다. “네 명 모두 3라인에서 일했단 말이에요. 작년에 저희 아이가 특수학급에 간다는 사실을 말했더니, 다른 언니도 아이가 복지카드를 받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하나둘 아이 이야기를 하다가, 모두 애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희수 씨는 아이의 아픔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이가 아픈 게 회사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다가 ‘왜 유독 우리 애들만 아플까?’라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죠. ‘우리 (태아산재 신청) 한번 참여해볼래? 우리 일이잖아. 우리 아이의 일이잖아.’ 이렇게 된 거예요.“ 삼성 반도체 공장을 떠난 지 7년 만에, 희수 씨는 삼성지원보상위원회에 ‘자녀질환’ 보상을 신청하려 했다. 하지만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지원보상위원회는 자녀질환 지원 대상 질병을 선천성 기형, 희귀질환 정도로 한정하고 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발달장애 특성상 성장 도중 뒤늦게 발견되는 특징 때문. 이에 따라 질병분류도 ‘선천성 기형 코드’(Q코드)가 아니라 ‘정신 및 행동 장애 코드’(F코드)로 분류된다. 더 큰 문제는 ‘태아산재’ 신청도 난망하다는 점이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상법)은 임신 중 업무상 유해환경에 의해 태어난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건강질환에 대한 산재보상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적용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태아산재 법안이 시행된 ‘2023년 1월 12일 이후 태어난 아이들에게만’ 적용된다. 이 때문에 태아산재법은 한시적으로 소급 적용을 인정했다. 기간은 1년. 법 시행일 1년 전인 2022년 1월 11일부터 2023년 1월 11일 사이 태아산재를 신청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희수 씨가 딸 지유의 태아산재를 의심하기 시작했을 당시(2023년)엔, 이미 소급적용 기한마저 지나 있었다. 희수 씨처럼 뒤늦게 태아산재 가능성을 인지한 경우에는 아예 산재 신청조차 못하는 것.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 소속 조승규 노무사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태아산재 소급 적용을 인정한 1년은 과거 피해자들에게 너무나도 짧은 시간입니다. 태아산재에 대해서 현재도 전혀 모르는 분들도 많고, 알더라도 산재 신청을 하기까지 가족 내에서 고민과 준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그간 산재 신청을 할 수 없었던 과거 피해자에게 신청기간의 제한을 둘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독일과 같이 그간 억울하게 신청하지 못했던 과거 피해자들이 모두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을 열어둬야 합니다.” 지난 3월 22일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반도체 출신 노동자 3명이 신청한 태아산재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반도체 직무에서 태아산재를 인정받은 첫 번째 사례였다.(관련기사 : <“이름없는 재해”… 삼성 반도체 태아산재 최초 인정>) 엄마 희수 씨는 본인의 산재를 인정받기 위한 싸움도 준비 중이다. 엄마는 암, 아이는 자폐. 업무상 유해환경에 의해 모녀가 둘 다 아픈 ‘이중산재’다.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성 암’으로 백혈병 등 혈액암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이외에 다른 암들도 발생하고 있다. 반올림이 지원한 ‘직업성 암’ 피해 사례는 다양하다. 이중 유방암(16명), 폐암(6명), 난소암(3명), 췌장암(1명) 등이 산재로 인정됐다.(2024. 10. 24. 기준) “배가 아프고 생리통이 있을 때 항상 이를 악무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파서 이를 악물고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어요. 큰 수술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아플 때마다 이를 악물었는데, 그게 미련하게 참고 이겨내고 있었던 거구나 싶더라고요…. 배가 아프고 열이 나면 119를 불러야 했는데, 혼자 가라앉히려고 진통제 먹고….“ 오후 4시 30분경, 희수 씨와 지유는 병원 1층 로비에서 인사를 나눴다. 지유는 손을 짧게 흔들고 뒤돌아 아빠 손을 잡았다. 그리고 뚜벅뚜벅 병원 밖을 향해 걸어갔다. ”‘아이가 엄마 말을 제대로 이해 못하니까, 천진난만하니까, 오히려 그게 나쁘지 않다. 엄마의 병에 대해서 슬퍼하고 속상해 하지 않고…. 보호자가 있어야 아이가 생활이 되는데, 아빠, 고모, 이모, 사촌언니, 복지관 선생님들이 있으니까, 아이 혼자 있지는 않겠구나…. 그래, 지금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요.궁극적으로 지유가 혼자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제가 (병을) 이겨낼 거지만, 상황이 그렇게 안 된다고 해도, 최대한 제가 이렇게 걸어다니고 할 수 있을 때 (아이한테 지원을) 해주고 싶어요.” 엄마 희수 씨만 병원 안에 남았다. 희수 씨는 멀어지는 지유의 뒷모습이 희미해질 때까지 바라봤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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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해고’ 교구 회의록 입수 “바로 면직부터 내리자”[신부가 해고됐다 2화]
“안될 놈은 싹부터 잘라야 합니다.” 심기열 신부(34)의 아버지 심장욱(64) 씨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교구는 언제부터 심기열을 ‘안될 놈’으로 생각했던 걸까. 총대리주교가 심 신부에게 “억압된 감정”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부터? 정체 모를 ‘자문단’이 심 신부에게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진단했을 때부터? 아니면, 심 신부가 주임신부의 업무태만을 고발했을 때부터 시작된 걸까. 심기열은 2022년 4월 ‘휴양 결정’을 통보받았다. 교구는 자신들이 지정한 정신과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심 신부는 자신의 ‘멀쩡함’을 증명하기 위해 8개월간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교구에서 처음 지정한 의원보다 더 규모가 큰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았다. 교구에서 주장하는 편집성 성격장애나,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 질환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구는 2022년 12월 그를 ‘면직’했다. 인사발령 공문에 면직 사유는 단 한 줄도 없었다. 심기열에게 따로 연락하는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소송을 걸어서 싸우는 것도 신앙인으로서 너무 부끄러워요. 주교님, 신부님들을 정말 어렵게 생각하고 존경했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 사건 터지면서 실망이 컸습니다.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어서 신앙을 찾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안에서는… 실망이 너무 컸어요.” 심기열의 가족 모두가 천주교 신자다. 어머니 조성옥(64) 씨는 어렵게 신부가 된 아들이 갑자기 정신질환자로 낙인 찍혀 면직된 상황에서 수치심 따위는 이겨낼 수 있었다. 심기열은 2023년 2월 교구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도대체 왜 자신이 사제복을 벗어야 하는지, 면직 사유라도 알고 싶었다. 소송 과정에서 심기열은 몰랐던, 면직 결정 과정 속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면직 1년 전인 2021년 12월 22일 심기열 신부는 교구청에서 주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면담했다. A 성당의 주임신부인 ‘골프 신부’를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주임(신부)은 오전에 골프를 친다고 미사를 빠지거나 오후로 변경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임신부가) 변하겠다고 이야기하고서 변하지 않았다.”(심기열 신부와 1차 만남 대화록, 2021. 12. 22.) 심 신부는 주임신부가 잦은 골프 약속으로 미사 일정을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심 신부는 기자에게 “사제관을 벗어나 외박을 하기도 하고, 주일(일요일)에도 당구 치러 본당을 비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매달 첫 목요일에 골프모임이 있어서 간 적이 있지만, 자주 가지는 않았다. 골프는 한 달에 4번 이상 가지 않았다.”(심기열 신부와 1차 만남 대화록, 2021. 12. 22.) 주임신부는 적어도 한 달에 네 번은 골프를 치러 나갔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날 면담 이후, 주임신부에게 내려진 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자문단은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이 있다고 판단했다. “자문단이 편집성 성격장애 진단을 내렸다는데, 어떻게 본인 없이 병 진단이 가능합니까?” 진찰은 없었고, 진단만 있었다. 교구는 자문단이 정신과 전문의, 심리전문가 등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문단 구성원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심 신부는 진찰도 없이 자신을 정신질환자라고 진단한 ‘비밀’ 자문단이 정말 전문가가 맞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자문단의 명단은 그 활동을 위해서 비밀을 유지해야 하기에 밝힐 수 없다. 그리고 그 명단을 공개하면 심 신부와 부친이 그들을 괴롭힐 것 아닌가!”(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셜록은 심 신부의 휴양 결정에 근거가 된 자문단의 자문 내용 문서를 직접 확인했다. 역시 자문단 구성원의 이름이나 소속은 적혀 있지 않았다. 교구는 A4용지 반 장, 약 20줄에 불과한 이 문서 내용을 근거로,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 치료를 받으라’는 휴양 결정을 내렸다. 문서에는 심 신부가 “교회법과 규정을 따지는 것”을 지적하며, 이를 “정신병 수준”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어릴 때 가정으로부터” 시작됐을 거라고 추정했다. “정당화 시키기 위해 주교님과 면담, 교회법, 규정 등을 따짐.”“정신병 수준. 주교님 앞에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현실감 없는 것으로 현실 사회 적응이 어려움.”“이 정도 수준이면 어릴 때, 가정으로부터 원인이 시작될 확률 높음. 뿌리가 깊음.” (2022. 1. 6. 성직자국 자문단 자문 내용) 심 신부는 소송 과정에서 스스로 ‘신체감정신청’을 요청했다. 이미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았지만, 정신의학과 전문의를 통해 편집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이 있는지 다시 감정을 받겠다고 한 것. 하지만 교구 측은 “감정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면직의 이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사제인 원고(심기열)가 가톨릭교회의 핵심 교리인 ‘순명(順命)’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 면직처분을 하게 된 것입니다.”(신체감정신청 및 증인신청에 대한 교구 측 의견서) 순명이란, 명령에 복종함을 뜻한다. 즉 정신질환 때문이 아니라,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서’ 심 신부를 면직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말장난 같은 부분이 있다. 교구가 심 신부에게 내린 명령이 바로 ‘너는 정신질환이 있으니 치료를 받으라’는 거였다. 심 신부가 ‘나는 정신질환이 없다’며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그게 교구가 말하는 ‘불순명’이 됐다. 이것을 ‘정신질환이 아니라 불순명 때문에 면직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비판한다. “가톨릭에서 ‘순명’은 진리에 대한 순명을 의미합니다. 성서에 나온 개념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내부 규칙이자 관행이죠.교구, 수도회 소속 구성원은 자신이 몸 담은 조직 최고 책임자의 말에 무조건 따르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상관 없이 ‘순명’해야 합니다. 개인이 조직 최고 책임자의 명령을 거역할 힘이 없으니까, 쫒겨나지 않으려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거죠.” 만약 심 신부가 정신질환이 없음에도, 교구가 명령한 대로 교구가 지정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순명’했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을까? 셜록은 대구대교구가 심 신부에 대한 인사조치를 논의한 ‘참사회의’ 회의록을 입수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교구가 ‘면직’이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두고 그 명분을 찾고 방식을 논의한 정황이 있다. 무엇 무엇을 문제 삼고, 어떤 절차로 ‘조용히’ 처리할지 전략적으로 모의한 흔적. “심 신부의 정신과적인 문제와 별도로 심 신부가 교구장에게 불순명하는 점, 심 신부의 사목자로서 부적합한 점을 문제 삼아야 한다.”(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교구 스스로도 ‘정직을 거쳐 면직까지 가려면 근거를 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러니 ‘(정직 없이) 바로 면직부터 내려야 한다’고 결정했다. “심 신부에 대해 정직의 벌이 마땅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면직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어차피 심 신부의 고소가 이어질 것이므로 정직보다는 바로 면직을 내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정직을 내렸다가 면직이 이루어지려면 그 절차상 근거를 대기가 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면직 처분은 흔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대구대교구의 다른 징계 사례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아동성추행으로 징역 3년형 받은 신부,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 노래방 여성 도우미와 술판을 벌인 신부도 모두 ‘정직’ 처분에 그쳤다. 이런 신부들을 모두 제치고, 심 신부는 ‘면직’됐다. 정말 심 신부의 잘못이 그들의 잘못보다 더 무거운 걸까. 어쩌면 심 신부가 ‘골프 신부’를 고발한 순간부터 답이 정해진 게임은 아니었을까. 취재 과정에서 교구 성직자국장은 기자에게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교구는 심 신부의 면직 사유가 ‘불순명’이라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교회법에도 없고, 대한민국 법에도 없는 ‘괘씸죄’는 아니었을까. 교구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도 면직 사유로 붙였다. 심 신부가 신분을 속였다는 것이다. “신학원 교수신부의 제보에 의하면, 심 신부는 현재 경북대학교 대학원에 자신의 신분을 사제가 아닌 부제로 소개하며 편입하여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 교구에 관련 보고도 없이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은 심 신부 스스로 사제직을 계속할 뜻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심기열 야고보 신부가 보인 처신과 태도에 있어서의 ‘교구사제로서의 부적합성’과 ‘교회법과 사제생활지침 관련 위반사항’, 2022. 12. 23.) 심 신부는 휴양 기간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 입학했다. 정신질환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심 신부의 대학원 입학원서에는 “직업 : 신부”, “직장 : 천주교 대구대교구’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심 신부는 종교역사를 연구해 지난 2월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구는 심 신부가 대학원에 간 것은 ‘스스로 사제직을 계속할 뜻이 없다는 것’이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데 이어, 신분을 속였다는 ‘카더라’ 식 주장을 면직 사유로 덧붙였다. “교회법에 사제는 늘 공부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휴양 기간에 대학원에 입학했다고 면직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학원 교수님들도 제게 ‘신부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2년간 이어진 소송전. 1·2심 재판부는 모두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종교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며 사건을 판단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도 지난 16일 각하 결정을 반복했다. “소송을 걸기까지 용기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소송 전에는 그냥 그런대로 살면 된다고, 억울하지만 성공해서 복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저 같은 사람이 또 생길 수 있는 거잖아요.” 심 신부가 자신이 몸 담았던 교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심 신부는 2심 재판부의 각하 소식을 듣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판결로 교구는 또 마음에 안 드는 신부를 정신질환자로 몰아가거나, 면직을 시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자신들의 판단에 잘못이 없었다고 더 당당하게 살지 않을까요. 교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럼 저는, 이제 어디 가서 말할 수 있는 건가요.” 김근수 소장 역시 심 신부가 어디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구제받기 어려운 처치일 거라고 설명했다. 사제로서도 시민으로서도, 종교 안팎 어디에도 심 신부는 하소연할 곳이 없다. “교회 법원 구성원들이 전부 교구장에게 순명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교회법원에서 다퉈도 (심 신부 측) 승산은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사회법은 종교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소송을 각하하기 때문에, 심 신부는 하소연 할 데가 사실상 없는 거죠.”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A 성당에서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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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테러리스트 취급” 케이블타이 진압, 인권위 진정
케이블타이에 결박당한 청년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백륭(22) 씨 등 청년 4명은 29일 국방부와 대통령경호처, 용산경찰서에게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들을 대리해 진정인으로 나섰다. 청년들은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서울 중구 인권위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건희(윤석열·김건희 부부)는 국민들의 명령으로 발의돼 국회가 가결시킨 법안 24가지를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중에는 자신들의 수사 개입 의혹, 비리 의혹, 주가조작 의혹 등을 밝혀낼 특검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국민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20대 청년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청년들은 지난 4일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찾았다. 이들은 국방부 후문을 통과하자마자 저지당했다. 바닥에 얼굴이 짓눌리고,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압박되기도 했다. 심지어 양손이 뒤로 꺾여 케이블타이에 묶였다. 한 여성은 진압 과정에서 옷이 벗겨져 속옷이 그대로 노출되기도 하고, 또 다른 여성은 다리에 멍이 들었다. 이들 역시 케이블타이로 손목이 묶인 상태로 용산경찰서로 끌려갔다.(관련기사 : <소총 멘 군인이 케이블타이로 결박… “계엄군 떠올라”>) 당시 국방부 후문은 서울경찰청 202경비단과 국방부 근무지원단 50군사경찰대 소속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케이블타이로 청년들의 손목을 결박한 건 군사경찰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제압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의문이다. 국방부는 “군사기지 내 인원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을 보호함에 있어 급박한 상황으로 판단, 초병이 휴대 중인 케이블타이를 사용하여 최소한의 범위에서 침입한 인원을 제압하였다”고 해명했다. “저희 대학생들은 총, 폭탄은 고사하고 작은 칼 하나 들고 가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구호 한마디 적힌 플래카드 한 장을 들고 맨몸으로 찾아갔습니다.” 대통령실 진입을 시도했던 청년은 총 4명. 맨몸의 청년들에게 각 서너 명의 병력들이 달라붙었다. 한쪽에는 소총을 메고, 검은 제복에 방탄 조끼를 입은 군인들이었다. 학생들이 현수막을 펼치거나 구호를 외친 것도 아니었다. 국방부 영내에 뛰어들었다는 이유로 아스팔트에 얼굴이 짓눌리고, 팔이 뒤로 꺾이고, 손목이 케이블타이에 묶였다. 최석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변호사는 “맨몸으로 들어가 아무 폭력행위도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물리적으로 제압한 상황이 의문스럽다”며, 특히 “어떠한 장구로 사람들을 무조건 묶어도 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두 번째 문제는 ‘케이블타이’가 군사경찰장비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군사경찰장구가 명시돼 있다. 여기에는 수갑, 포승, 경찰봉, 전자충격기, 전자충격총, 방패, 헬멧 등 보호장구 및 고무탄총 등이 포함된다. 다만 케이블타이는 찾아볼 수 없다. 국방부는 “케이블타이는 군사경찰로서가 아닌 초병으로서 사용하였으며, 초병이 휴대하고 있는 세부장비는 작전보안상 공개할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답변했다.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는 “수단이 과도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케이블타이는 일할 때 사용되는 것이지 상식적으로 사람한테 쓰이지는 않는다”며, “후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 병력의 수가 (청년들보다) 더 많았을 텐데, 상식적이지 않은 도구로 사람을 묶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002년 헌법재판소는 “과도한 계구(戒具)사용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反)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계구란 ‘피고인이나 죄인이 도주, 폭행, 소요 또는 자살을 할 우려가 있을 때에 이를 억제하기 위하여 쓰는 기구’를 통틀어 말한다. 지난 29일 인권위 기자회견에는, 당사자인 백륭 씨, 조서영 씨 등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 5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한 국방부와 대통령경호처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백륭 씨는 “국회의원, 카이스트 졸업생, 의사는 ‘입틀막’ 하더니 면담을 요청하러 간 청년들은 케이블타이로 꽁꽁 묶어 테러리스트인 양 취급하는 게 너무나 분노스러웠다“면서, “누가 이 국가의 주인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기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조서영 씨는 경찰서 유치장 내부에서 겪은 인권침해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대학생들이 유치장에 있을 때 가족들 면회 요구를 가로막히고, 부당연행에 항의하며 단식할 때 조롱당했다” 며, “국민으로서, 나라의 주인으로서 대통령에게 면담 요청을 하러 간 대학생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연행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고 분노했다. 피해 당사자의 발언 이후에 이들은 손목을 묶은 케이블타이를 가위로 끊어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약 20분 가량 이어진 기자회견이 끝나고, 백 씨는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편, 이들은 지난 18일 대통령경호처와 군사경찰을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또 용산경찰서를 상대로 폭행, 독직폭행,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에 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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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교육부 수수방관… 여전히 빛나는 ‘가짜’ 졸업장[교수 엄마와 가짜 고대생]
‘가짜 고대생’의 대학 졸업장은 무사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조치하라”는 교육부의 방침에도 고려대학교는 입학취소 조치를 5년간 미루고 있다. 교육부도 할 말 없다. “엄중히 관리·감독할 예정”이란 장담이 무색하게, 입학취소 여부를 확인도 안 하고 세월만 보냈다. 교수 엄마의 제자들이 만들어준 ‘가짜 스펙’으로 대학에 부정하게 입학한 이해슬(가명). 교육부와 고려대가 약 5년 동안 나란히 손 놓고 있는 사이, ‘가짜 고대생’의 입학허가 취소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부는 “입학허가 취소 권한은 학교의 장에 있다”며 학교로 책임을 미뤘고, 고려대는 “법원의 확정판결 이후 조치를 취하겠다”며 또 미루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루기’가 부정입학자에 대한 후속조치를 막고 있다. 교육부는 2019년 3월 특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수희(가명)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의 딸 입학비리 관련 특별조사였다. 조사 결과, 엄마 이 교수가 ‘치과의사 딸 만들기’를 위해 대학원생들을 동원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교수는 고등학생 딸 이해슬(가명)이 참가하는 학술대회용 연구보고서 및 발표자료(PPT)를 대학원생들에게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해슬은 그 덕에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았고, 그 스펙을 활용해 2014년 고려대 생명과학부에 입학했다. 교육부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고려대에 행정상 조치를 요구했다. “2014학년도 이해슬 학생의 입시 전형자료 활용 조사결과를 통보하오니, 참고하여 향후 수사결과에 따라 후속조치를 하기 바람” 유은혜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렇게 엄포를 놓았다. “특별조사 결과, 법령 등 위반이 확인된 사실에 대해서는 관련자와 관련 기관에 조속히 처분조치가 이행될 수 있도록 엄중히 관리·감독할 예정이다.” 하지만 교육부 특별조사로부터 약 5년이 흐른 현재, 고려대는 아직도 해슬의 입학취소를 결정하지 않았다.(관련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해당자(이해슬)에 대한 입학허가 취소/미취소는 심의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안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근거로 본교 학칙과 규정에 의거하여 처리할 예정입니다.”(2024. 8. 29. 고려대 입학처 답변) 왜 아직까지 해슬의 입학취소 결정을 못하는 걸까. 고려대의 설명은 이렇다. “2019년 교육부 특별조사 발표 당시, 서류 보존기한(5년)이 지나 해슬의 입시자료(2014학년도 입학)가 없었습니다. 없는 자료를 근거로 판단할 수 없으니, 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려서 그 결과에 따르겠다는 입장입니다.”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예슬의 입시자료가 폐기돼 부정행위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예슬의 부정행위는 고교 시절 수상 스펙을 만들면서 일어난 일. 입시자료에 기재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과정상의 부정’은 교육부 조사와, 경찰·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통해 이미 확인됐다. 고려대가 새삼 부정행위를 다시 판단할 이유도 부족하고, ‘폐기된 입시자료’를 이유 삼아 그걸 미룰 명분도 약해 보인다. 검찰은 2019년 5월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이 교수를 재판에 넘겼다. 딸 해슬도 함께 기소됐다. 1심 법원은 지난 7월, 이 교수에게 징역 3년 6개월, 딸 해슬에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고인 이해슬은 피고인 이수희 교수로부터 위 자기소개서 및 첨부서류들을 넘겨받아 이를 2013.09.05경 ‘2014학년도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과학인재특별전형에 입학자료로 제출하여 최종합격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위계로써 고려대학교 소속 교수인 피해자 한○○, 정○○ 등 1차 서류전형 심사위원들의 입학심사 업무를 방해하였다.”(1심 판결문 중) 해슬이 고려대에 입학한 뒤, 엄마 이 교수는 딸의 치의학전문대학원(치전원) 진학 준비에 자신의 제자들을 또 다시 활용했다. 대학원생들은 이 교수의 지시에 따라 해슬을 위해 SCI급 논문을 대신 써줬다. 이 교수는 이들에게 실험결과 수치를 조작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들은 해슬의 봉사활동까지 대신 해줬다. 해슬은 단독저자로 ‘대필 논문’을 국제학회지에 투고했다. 교신저자는 F 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 F 교수는 이 교수의 성균관대 약대 동문이다. 해슬은 2018년 서울대학교 치전원에 합격했다.(관련기사 : <논문도 봉사도 ‘대타’… 가짜 고대생, 서울대도 속였다>) 2019년 교육부의 특별조사 결과 발표 직후, 이 교수 모녀와 관련된 세 대학 중 두 곳은 발 빠르게 후속조치를 이행했다. 교육부는 그해 3월 이미 성균관대에 이 교수 중징계(파면)를 요구했고, 서울대 치전원도 같은 해 8월 딸 해슬에 대해 입학취소를 결정했다.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어야 한다”는 고려대와 달리, 성균관대와 서울대는 모두 교육부 특별조사 결과 발표와 검찰의 기소를 전후해 조치했다. 심지어 지난 7월 1심 유죄 판결이 난 이후에도 고려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장관까지 나서 “엄중한 관리·감독”을 약속했던 교육부는 뭘 했을까? 교육부 인재선발제도관 담당자 A는 지난 22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고등교육법에 따라 입학허가 취소 권한은 ‘대학의 장’에게 있다”면서, “최종적으로 대학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자가 “그동안 고려대 쪽에 이해슬 입학허가 취소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는지” 묻자, A는 이렇게 답했다. “민원이 들어왔다고 해서 교육부가 (사례별로) 각각 대학에 이 학생의 입학이 취소됐는지 여부를 따로 확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장관은 “엄중한 관리·감독”을 약속했는데도, 막상 교육부는 지난 5년간 이해슬에 대한 입학취소 여부를 확인한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운 나쁘게(?)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성공으로 끝날 뻔한 교수 엄마의 ‘치과의사 딸 만들기.’ 올바른 의료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온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 박지용 대표는 교육부의 소극적 조치를 이렇게 비판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후속조치를 하라는) 교육부 권고에도 고려대가 지난 5년 동안 불응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교육부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후속조치를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려대 또한 (이해슬의 입학취소 결정 문제를) 관료주의적으로 대응하는 듯해 아쉽습니다. 1심 판결만 약 5년 걸린 사건을, 3심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법원의 판결에 책임을 넘기겠다는 것은, 스승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고 봅니다.” 고려대가 그동안 입학취소 결정을 내린 적이 없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고려대에는 2022년 이후 두 건의 입학취소 사례가 있다. 먼저,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조민 씨 사례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딸 조민 씨는 2022년 2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입학이 취소됐다. 당사자 조민 씨가 아닌, 모친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유죄 판결을 받은 데 따른 조치였다. 셜록이 지난 2022년 ‘유나와 예지 이야기’로 보도한 미성년 부당 저자 최지희(가명)도 고려대 의과대학 입학이 취소됐다. 최지희는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아버지를 이용해, 아버지 동료 교수의 SCI급 논문 두 편에 부당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관련기사 : <셜록 보도 ‘논문 부정’ 고려대 의대생.. 결국 ‘입학취소’>) 이들에게 입학취소 결정이 내려질 때도, 이해슬은 ‘고려대 졸업장’을 그대로 지킬 수 있었다. ‘가짜 스펙’으로 얼룩진 졸업장을 가지고 그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의 가짜 졸업장을 고려대와 교육부는 언제까지 두고만 보고 있을까. 기자는 지난 9월 이 전 교수와는 잠깐 통화를 나눴다. 이 전 교수는 “기자”라는 소개에 “지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후 10월 21일까지 12번에 거쳐 전화를 걸었지만, 이 전 교수는 받지 않았다. 이 전 교수는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 전 교수 딸 해슬에게도 접촉했다. 지난 16일 입시비리 사건 관련 항소심 담당 법률대리인을 통해 인터뷰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해슬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도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지난 17일, 모녀의 주소지로 찾아갔을 때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셜록은 대필 논문의 교신저자 고려대 생명과학부 F 교수도 찾아갔다. 지난 17일, 고려대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다. 기자는 F 교수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반론을 받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해슬이 대학원생들의 ‘대필 논문’을 단독저자로 투고하는 데 역할을 한 교신저자 F 교수는 징계를 받았을까? 고려대는 2019년 9월 교내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 결과를 교육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고려대 커뮤니케이션팀(홍보팀)은 F 교수의 징계 여부에 대해서는 “특정 교원에 대한 개인정보라 답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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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이라 불러야겠습니다
이제 그 남자를 새 별명으로 불러야겠습니다. 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으로. 김상욱과 그 일당 김재민 전 무궁화신탁 대리는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다섯 명을 모두 고소했습니다.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의 발단이 된 김상욱 일당의 불법대출 사건. 약 2000개의 녹음파일과 문건들을 입수한 셜록은 지난 4월부터 20편의 기사로 사건의 전말을 밝혔습니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김상욱 일당은 ‘명의만 빌려주면 수천만 원을 주겠다’, ‘수백만 원씩 월세 수익을 보장하겠다’ 등 감언이설로 속여, 그들 명의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수억 원의 대출을 내게 했습니다. 새마을금고 내부에선 전종남 당시 상무가 대출 실행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연히(?) 그 돈은 명의자들의 통장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대출금은 김상욱 일당과 브로커들이 모두 뽑아가고, 명의자들에게는 한번 만져보지도 못한 수억 원의 빚만 남았습니다. “누가 피해자입니까? 저도 피해자입니다. 기자님, 누가 제 전화번호 알려줬습니까? 저는 1500억 원 불법 대출한 적도 없고요. 정확하게 어떤 라인을 타고 (연락을 해)왔는가 얘기를 해주세요.” ‘사채왕’ 김상욱은 반론을 요구하는 셜록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도 ‘피해자’라고. 전화를 끊어버린 그에게 재차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허위주장과 모함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하며, 만약 그들이 ‘아지트’처럼 쓰던 서울 신설동 카페 등으로 취재진이 찾아온다면 “건조물 침입 등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내가 피해자다’라는 말.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말입니다. 진짜 피해자들은 오히려 가족들이 알까봐, 자신도 공범으로 처벌받을까봐 전전긍긍 속앓이만 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수억 원의 빚더미만 남기고 인생을 박살내버린 주범은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라고 합니다. 김상욱이 공범 김재민과 한 통화에서 그토록 칭찬하던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는, 지난 4월 셜록의 보도가 시작되자 SNS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거액의 돈을 요구하던 공갈범의 거짓 진술만을 근거로 한 허위보도로, 형사고소, 민사소송 제기할 예정이고, 보도 내용의 사실여부에 관하여 상대방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고 사실인 양 퍼뜨리는 자격 없는 언론매체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는 정말 김상욱과 김재민을 대리해 셜록을 고소했습니다. 셜록 기자 다섯 명의 이름을 모두 고소장에 적어서. 셜록 기자들이 김상욱 일당에게 ▲개인정보보호법위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명예훼손 ▲모욕의 죄를 저질렀다고 줄줄이 늘어놨습니다. 새마을금고의 조사와,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피해자들의 공통된 진술과, 무엇보다 범죄를 자백(?)한 김상욱 본인의 녹음파일 속 목소리가 모두 같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오직 김상욱만은 자신이 피해자이고, 아무 죄가 없고,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나는 무죄다” 사채왕 측, 법정서 20분간 억울함 호소>) 고소장을 접수했으니, 이제 경찰이 셜록 기자들을 괴롭혀줄 거라 기대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권력을 이용한 사적 복수라. 영리하다고 할까요, 교활하다고 할까요. 김상욱이 고소장에 적어놓은 ‘명예훼손’이란 네 글자를 보니 참 기가 찹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인생을 훼손하고, 시민의 상식을 훼손하고, 사회의 정의를 훼손한 자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억울함을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가소로운지. 애당초 그들에게, 훼손당할 명예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이 지금껏 무슨 명예로운 일을 했는지. 훼손될 명예조차 없는 이들이 명예훼손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네모난 동그라미’ 같은 형용모순입니다. 차라리 솔직히 말하는 건 어떨까요. 당신들이 당한 것은 명예훼손이 아니라 ‘범죄수익 훼손’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고, 금융기관을 속이고, 검은 돈을 주머니에 쓸어담는 짓을 더 이상 못 하게 된 것이 너무 아깝고 분하다고. 김상욱과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 등은 지난 4월 셜록이 보도를 시작한 뒤 구속됐습니다. 그들의 여죄는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2024년 10월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창원 외 다른 피해 지역과 200억 원대 추가 불법대출 및 공범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습니다. 2022년 7월부터 2023년 3월까지 경남 창원과 경기 평택, 충남 당진 등 10여 곳에서 중고차 매매단지 등 106개 건물과 토지의 담보 가치를 부풀려 불법대출을 일으킨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경찰이 확인한 불법대출 933억 원 중 106억 원은 김상욱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전종남 전 상무는 고급 외제차 등 약 3억 4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 챙겼다는 겁니다. 경찰은 나머지 대출금액도 명의를 제공한 피해자(경찰은 ‘허위 매수인’이라 표현했습니다)들에게 가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그 돈도 공범인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셜록 기자들에게는 아직도 피해자들의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 역시 명의를 대여해주는 것으로 불법행위에 가담한 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빚은 빚대로 떠안고 벌은 벌대로 받게 된 그들은, 여전히 살 길을 찾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저 혼자 죽으란 말입니까”… ‘공범’이 된 사기피해자>) 그 와중에 김상욱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리고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를 시켜, 언론사 셜록과 다섯 명의 셜록 기자들을 모두 고소했습니다. 예전에도 셜록을 고소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사람들은 많았고 실제로 고소를 한 사람도 있었지만, 셜록의 모든 기자들을 한꺼번에 고소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지난 5월에 작성된 고소장을 10월에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고소장에 줄줄이 적힌 기자들의 이름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영화 <내부자들>(2015년)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정치깡패 출신 공익제보자 안상구(이병헌)가 검사 우장훈(조승우)에게 묻는 말입니다.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 셜록이 하는 일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입니다. 정의란 말이 좀 거창하다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염치’나 ‘양심’, ‘선함’과 같은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 마음. 옳은 것을 가까이 하고 그른 것을 물리치는 당연한 마음, 마땅히 사람답게 살려는 마음을 지키는 게 셜록의 일입니다.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는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셜록은 바쁩니다. ‘바른 말’ 했다가 정신질환자로 몰려 해고된 신부 이야기(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교수 엄마’가 만들어준 거짓 스펙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가짜 대학생 이야기(관련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간이 녹아버린 스무 살 청년 이야기(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로 셜록의 지면은 매일 뜨겁습니다. 고소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월급 걱정도 하지 말고 셜록의 일을 더 오래, 더 잘 하라고 마음 모아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셜록의 친구(유료독자) ‘왓슨’. 셜록이 전하는 모든 이야기에는 셜록의 땀과 왓슨의 정성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또 셜록의 기사를 퍼뜨리며 함께 분노하고 감동하고 공감해준 수많은 시민들이 셜록이 가는 길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이병헌 배우가 이렇게 물었죠? 정의가 남아 있긴 하냐고. 저희는 압니다. 왓슨과 시민들이 셜록에게 보여준 그 ‘달달한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오늘도, 셜록은 셜록의 일을 합니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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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고 붐” 밀어붙이는 정부… ‘다음 선우’ 없을까 [열아홉, 간이 녹았다 4화]
인천공항에서 차로 약 15분 떨어진 인천국제공항 물류단지. 잿빛 건물 틈으로 대형 화물차들이 바삐 움직였다. 5차로를 사이에 두고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장들. 바로 그곳에 스태츠칩팩코리아가 있었다. 오후 2시를 넘기자 공장 정문에 택시 세 대가 멈춰 섰다. 스무 살 남짓한 젊은 노동자들이 여럿 내렸다. 이들은 부리나케 달려가 개찰구를 통과했다. 안쪽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앳된 얼굴이었다. 김선우(가명, 23) 씨도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서 근무했다. 그는 2020년 10월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의 ‘1호’ 취업생이었다.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몸에 이상이 생겼다. 간이 녹아내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만 열아홉이었다.(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얘가 그냥 인문계(고등학교)를 갔으면… 대학을 갔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엄마 이하영(가명) 씨는 선우 씨가 아픈 게 꼭 엄마인 자기 탓 같았다.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한다던 선우 씨를 말리지 못한 것도, 울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인천에서 일한다는 선우 씨를 붙잡지 못한 것도, 안색이 좋지 않았을 때 병원으로 바로 가지 못한 것도. 선우 씨는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재를 신청한 것. ‘일’을 하다가 아프게 됐단 걸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앞으로 들 치료비 걱정도 덜 수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1년 8개월 만에 산재 ‘불승인’ 결정을 통보했다. 그는 지난 8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산재 승인을 다시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솔직히 알리고 싶기도 한데, 학교에서도 안 들을 것 같아서요. 취업 담당 선생님 말고는 안 알렸어요. (…) 다른 분들은 뭐 없죠. 졸업하면 끝인데.” 선우 씨는 취업 담당 교사 외에는, 아파서 퇴사했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는 “학교가 취업률을 더 신경 쓸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후배들을 거기(스태츠칩팩코리아)에 보내는 것 같더라고요.” 선우 씨가 졸업한 고등학교 홈페이지에는 졸업생 취업 현황이 공개돼 있다. 최근 5년간 90% 이상의 취업률을 자랑했다. 10월 집계된 취업 현황에 따르면 올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취업한 3학년 학생은 8명이다. 지난해에는 6명이 취업하고, 2명이 현장실습을 나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회사는 전국 수많은 직업계 고등학교, 대학교와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2021년에는 “전국 특성화고등학교 출신 학생 500명 이상 채용”을 홍보했다. 선우 씨는 마이스터고등학교를 다녔다. 정식 명칭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로, 직업훈련을 통한 전문기술인 양성을 목표로 했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3학년 2학기가 되면 학교와 협약을 맺은 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간다. 선우 씨도 2020년 10월 ‘실습생’으로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출근했다. 학교에서 교사의 소개로 구한 일자리. 검증된 회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이제 취업률 올리니까 그냥 아무 곳에 나가서, 선생님들은 이제 일일이 확인하지 않거든요. 근데 저희는 이제 중요하잖아요. 저희는 3년이 걸린 거니까.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제 선별해서 갖다줬다고는 하는데 저희가 알아보면 아, 이거는 아닌 거 같은데, 싶은 회사가 많은 거죠.”(면접참여자 H, 김혜진 외 2인,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 중) 현장실습생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병을 얻었다는 소식은 흔한 뉴스가 됐다. 올해만 해도, 지난 5월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설비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황화수소 중독’을 의심했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삼성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출신 이승환 씨 이야기도 화제가 됐다. 그는 2021년 10월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케이엠텍’에서 일했다. 케이엠텍은 삼성의 1차 하청 업체로 갤럭시 휴대전화 등을 조립하는 곳이다. 그는 이듬해 1월 영진전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업무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해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승환 씨는 이후 7차례 항암 치료를 받았다. 올해 3월에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도 받았다. 통증으로 잠 못 드는 날이 늘었고, 이식 후 염증반응으로 온몸이 까맣게 변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4월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와 질병간의 인과관계는 피해노동자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케이엠텍은 회사 내부 자료를 승환 씨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선우 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산재 신청을 하기에 앞서 회사에 작업환경 관련 정보를 요청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자료를 주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내부 자료를 요청하라고 답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현장실습생 F : “학교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교육은 딱히 잘 못 받았던 것 같아요.”현장실습생 D : “얘기해줬을 수도 있는데 기억 안 나요.”현장실습생 C : “딱히 얘기해 준 게 없는 것 같아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3단체, <특성화고 학생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노동세계진입연구> 중) 현장실습을 앞둔 학생들을 상대로 한 노동안전 교육은 여전히 미흡하다. 일터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실습생 B : “바닥 미끄러우니 유리 조심하고, 뜨거운 거 조심하고… 그 정도밖에 없어요.”현장실습생 A : “그냥 몸에 안 좋다는 것만. 그래서 토시랑 마스크 끼라고. 그거 할 때는 꼭 마스크 끼라고 하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3단체, <특성화고 학생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노동세계진입연구> 중) 사회는 실습생에게 친절하지 않다. 선우 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라고 경고할 뿐이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 (…) 아니, 그 새끼들 공장 나갔던 것들이 다 처돌아와. 몇 달 더 버티라니까. 아유, 우리 반이 바닥 찍을 것 같아. 니는 괜찮지? 사고 안 쳤지? 소희야, 버텨야 된다이?”(영화 <다음 소희> 대사 중)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퇴사는 쉽지 않다. 직업계고 3학년 학생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에 거의 의무적으로 참여한다. 법률상 의무는 없지만 관행처럼 굳어졌다. 심지어 현장실습 중 돌아오는 학생에게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저희 학교만 해도, 업체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은 학생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반성문을 쓰게 하고 징계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그 학생의 실습 기회는 가장 마지막에 주어졌습니다.”(김종하, 2017 인권논문 수상집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현실과 개선방향> 중) “선생님들은 현장실습 보냈다고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알아서 버티라고만 하고. 무책임해요. (실습 중에 학교로) 돌아오면 욕하고. (…) 선생님들이 안 좋아했어요. 실적이 떨어지니까.(면접참여자 D)”(김혜진 외 2인,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 중) 왜 현장실습생들은 안전하지 않은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을까. 현장실습제도는 산업체 인력 공급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직업계고 학생들에 대해 재학 중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강제했다. 이후 여러 정권을 거치며 실습 기간은 2개월에서 1년까지 늘어났다. 실습생의 인권침해 문제와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자, 2006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제도에 제약이 생겼다. 수업 일수와 취업 보장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실습을 나갈 수 있게 된 것. 규제는 2년이 지나지 않아 풀렸다. 이명박 정부는 청년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고졸시대’의 포문을 열고자 했다. 그는 현장 중심 직업교육을 강조하며, 특성화고 취업률 목표를 60%로 잡았다. 취업률은 학교 평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때부터 학교의 취업률 경쟁은 시작됐다. 감사원은 2015년 고등학교 직업교육 활성화 분야에 관해 이렇게 지적했다. “일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취업률을 높이고자 전공과 무관하거나 현장실습이 제한된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거나 현장실습 협약과 배치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등 현장실습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감사결과보고서-산업인력 양성 교육실책 추진 실태(2015)> 중)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뇌출혈 사고 이후, 2012년 울산 금영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사고, 2014년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사망사건, 2016년 성남 토다이 사망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사망사건, 제주 생수업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교육부는 2018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시도교육청 평가 기준에서 ‘직업계고 취업률’을 폐지한다는 대안이었다. 이어 조기취업 형태의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이 폐지되고,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만 허용됐다. 취업 시기 역시 3학년 2학기가 종료된 겨울방학부터 가능했다. 다만, ‘현장실습 선도기업’인 경우, 3학년 2학기 수업 중 3분의 2 이상을 이수하면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실습 선도기업’은 현장실습을 운영하는 기업 중 교육청 심의를 통해 우수한 실습 여건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은 기업이다. 이후에도 사건·사고는 이어졌다. 2021년 여수 요트 선착장 실습생 사망사고, 2024년 전주 페이퍼 사망사고로 현장실습생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선도기업’이라는 꼼수로 여전히 ‘값싼 노동력’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월 ‘현장실습 제도’를 ILO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도제 제도나 직업훈련 참여 최저 연령은 16세인 것으로 보이며 현장실습생은 노동에 진입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을 초과하고 있다”며 “실습생에 대한 안전과 훈련 감독 부재의 상황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현장실습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8월 중등직업교육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제2의 마이스터고 붐’을 조성하겠다며, 첨단산업 중심 마이스터고를 육성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은 정말 많은 유해화학물질이 집약적으로 사용되는 산업입니다. 새로운 공정과 새로운 물질이 끊임없이 사용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이윤추구 논리가 안전보다 늘 우선돼 왔습니다. (…) 10대의 몸은 성인의 몸보다 유해물질에 민감합니다. 따라서 10대 후반부터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을 정부가 적극 육성하는 게 걱정될 수밖에 없죠.”(이종란 노무사, 2024. 10. 23.) 이종란 노무사는 고 황유미 씨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근무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발병한 것이다. 유미 씨는 산재를 신청한 지 7년 만에 인정받았다. 이를 계기로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역학조사가 실시됐다. 이때 반도체 산업노동자들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김선우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1년 2개월 만에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질환으로 간 이식을 받았다. 산재 신청 결과는 불승인. 행정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 그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실습생으로 열아홉의 나이에 공장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2014년 CJ 현장실습생 김동준 군 사망사건을 소재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쓴 은유 작가는 책에 이렇게 썼다. “청소년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과 문화에서는 누구의 노동도 안전하지 못하다.” 오늘도 다음 소희, 다음 동준, 다음 선우가 공장으로 출근한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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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신부가 해고됐다 1화]
그는 짐가방을 꺼내놨다. 무언가 하얀 속지로 정성스럽게 싸여 있었다. 거기서 꺼내든 곱게 개어진 옷 한 벌. 검은 사제복이었다. 목덜미 라벨에는 ‘심기열’ 이름 세 글자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심기열(34)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였다. 그는 더 이상 사제복을 입을 수 없다. 교구는 심기열에게 명확한 근거 없이 정신질환이 있다고 판단했다. 면직 통보를 할 때는 한마디 설명도 없었다. 심기열은 하루 아침에 사제직을 빼앗겼다. 사제로 보낸 4년의 시간을 고이 접어, 검은 사제복과 함께 가방 속에 보관해야 했다. 그는 2022년 3월 업무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총대리주교. “심기열 신부가 어떤 억압된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전문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2022. 3. 15.) 심 신부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의심된다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교구는 ‘자문단’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대구대교구 홈페이지상 조직도에는 없지만, 정신과 의사와 심리전문가로 구성된 대주교 인가 조직이라고 덧붙였다. “자문단이 편집성 성격장애 진단을 내렸다는데, 어떻게 본인 없이 병 진단이 가능합니까?” 심 신부는 교구청을 찾아갔다. 당사자 면담도 없이 편집성 성격장애가 의심된다고 판단한 자문단의 명단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교구는 정신과 진료를 권하는 것 말고는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 자문단은 무급으로 자문을 주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 부담스럽다고 했다. 교구는 한 발 물러섰다. 당장 정신과적 치료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문제가 생기면 그때 조치하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교구는 일방적인 ‘조치’를 결정했다. “2022년 4월 8일부로 신부님의 ‘휴양’이 결정되었습니다.” 심 신부에게 휴양 결정이 내려졌다. 휴양은 질병, 사고 등으로 요양이 필요한 신부에게 내려지는 결정이다. 대구대교구 사제생활지침서에 따르면, 휴양을 원하는 사제는 총대리와 상의하고 교구장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휴양 기간은 의사의 소견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만 심 신부 본인의 신청도 없이, 의사의 진단도 없이 내려진 일방적 통지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심기열은 그 배경에 A 성당 주임신부와의 갈등이 영향을 줬을 거라고 짐작했다. “A 성당 주임신부는 외박, 외출이 잦고 본당에 잘 없었습니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 목요일은 골프를 치러 가서 미사 일정을 항상 바꿔야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미사가 없으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토요일에 나타났습니다. 주일(일요일)에도 당구 치러 간다고 본당을 비우곤 했습니다.” 휴양 통보가 있기 약 5개월 전인 2021년 12월, 심 신부는 A 성당 주임신부를 ‘업무태만’으로 교구에 고발한 바 있다. 이 문제로 심 신부는 주임신부와 함께 교구청 관계자들을 면담했다. “주임신부에 대한 고발 내용을, 아주 부정적인 고발 내용으로 일관했고, 아주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보통 젊은 보좌신부가 주교님과 본당 신부, 또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거든요.”(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이후 교구청 총대리주교가 심 신부에게 “억압된 감정”이 있다며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메일을 보낸 거였다. 교구는 심 신부가 고발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심 신부를 B 성당으로 인사이동 시켰다. 그리고 뒤이어 내려진 휴양명령. 사실상 징계 처분이었다. 교구는 휴양명령에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 신학대 입학 인성검사 당시에 보인 부정적 결과가 현재 악화됐다는 것. 교구는 당시 기준으로도 이미 14년 전인 2008년 진행된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지원생 인성검사’ 결과를 근거 삼았다. 당시 인성검사 결과에는 “지나치게 자신을 좋게 보이고자 하는 상태”라며, “유연성과 융통성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을 뿐, 정신질환의 가능성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심기열은 인성검사에서 B등급(정상범위)을 받아 정상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했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신학교 입학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구는 14년 전 인성검사에 들어 있던 몇 줄의 부정 평가를 근거로, 심 신부의 상태가 악화돼 거짓말을 하고 다른 구성원들과 갈등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신학교 입학 당시의 인성검사 결과에서 조금의 개선도 없이 더 심각해진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천주교 대구대교구 ‘휴양에 관련된 결정사항 통지’, 2022. 4. 4.) 두 번째 이유는 심 신부에게 더 모욕적이었다. 바로,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했다는 것. B 성당 주임신부는 심 신부가 한 50대 여성 신자의 승용차를 자주 얻어 타는 등, ‘지나치게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적인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져 있던 때였다. 심 신부는 성당 안에만 있는 게 갑갑해, 종종 가까운 카페를 찾아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다. B 성당에서 걸어서 20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주경희(가명, 당시 51세) 씨였다. 주 씨는 심 신부의 첫 부임지 성당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신자다. “심기열 신부님과 저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도 아니고요, 손끝 하나 댄 적 없습니다.”(주경희 증언,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2023. 10. 12.) B 성당 주임신부의 증언 말고 다른 증거는 없었다. 그러면서 교구는 심 신부에게 보낸 휴양명령 통지서에서, 두 사람을 ‘부적절한’ 관계로 몰아갔다. “너무 어이없었습니다. 신부 옷을 벗기려면 적어도 돈 문제가 있거나, 여자 문제가 있어야 해서 그런 프레임을 씌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휴양 기간 중 치료를 명령했다. 천주교 신자가 운영하는 C 정신과의원을 지정해, 그곳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분기별 치료 상황과 생활에 대한 보고서 제출도 요구했다. 심 신부는 억울했다. 자신에게 정신질환은 없다고 ‘증명’해야 했다. 심 신부는 교구에서 지정한 C 의원보다 규모가 큰 경북 포항시 소재 종합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2022년 4~5월 두 차례 심리검사를 받았다.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구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구에서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소견서’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정신질환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제출했는데, 교구는 계속 C 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어서 치료상황 보고서는 내지 않았지만, 미사 드리는 생활에 관한 보고서는 전부 제출했습니다.” 이후 교구는 심 신부에게 한 곳의 병원을 더 지정해줬다. 2022년 12월 20일까지 C 의원 또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중 한 곳에서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심 신부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병원은 심 신부의 아토피 피부염 증상에 정신심리적 영향이 있다고 봤지만, 교구에서 말하는 ‘편집성 성격장애’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은 없었다. “제가 행복하기 위해 종교 안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이 행복한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괴롭힘을 당하면서 어느 순간 점점 지옥이 됐습니다.” 약 8개월에 걸친 ‘해명의 시간’은 심 신부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50대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한 적이 없다고, 치료를 받아야 할 정신질환 같은 건 없다고 외롭게 싸운 시간이다. “제가 죽으면 이런 일이 다 끝날까, 생각했습니다. 누구 하나 도움을 안 주더라고요.” 교구는 심 신부의 처절한 해명마저 외면했다. 2022년 성탄절 다음 날인 12월 26일, 심기열 신부에 면직이 통보됐다. 인사 발령 공지 어디에도 사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심기열(야고보) 신부 / 계시는 곳 ‘휴양’ / 가시는 곳 ‘면직’ / 비고 12월 31일부” 일방적인 면직 통보 후 3일이 지난 12월 29일. 심 신부는 업무 시스템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사용자 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기열은 20대를 전부 바쳐 얻은 사제직을 허무하게 잃었다.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대체 왜 면직이 됐는지. 심 신부는 지난해 2월 교구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심 신부의 면직 사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불순명(不順命)’. 교구에서 시키는 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면담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였다. 심 신부가 ‘교구에서 시키는 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교구가 지정한 정신과 의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것, 그리고 치료상황을 보고하지 않은 것밖에 없었다. 그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교구에서 요구하는 걸 지속적으로 행하지 않은 모습들이 지속되다 보니 사제직을 계속하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참사 위원회에서 판단한 것 같습니다.”(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성직자국장은 23년간 교구에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면직 처분은 세 건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나는 여자 문제가 있는 사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돈 문제, 마지막 하나는 심기열 신부 사례였다. 그의 말처럼 대구대교구에서 면직 처분을 내린 것은 흔치 않았다. 교구 징계 사례를 살펴봤다. 아동성추행으로 징역 3년 형을 받은 신부가 있었다. 사제의 자격이 아니라 인간의 자격도 없는 범죄를 저지른 이 신부도, 면직이 아닌 ‘정직’ 처분에 그쳤다. 교구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도 면직되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를 불러 술판을 벌인 신부도 정직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정직이 끝나자 한 성당의 주임신부로 복귀했다. 이런 신부들을 모두 제치고, 심 신부는 ‘면직’됐다. 지난 8일 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에게 ‘면직 기준’을 물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다시 사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참사회의를 거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죠.” 성직자국장은 심기열 신부에 대해서는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했다. 심기열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8일 1심 재판부는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6일 2심 재판부 역시 소송을 각하했다. 종교단체의 내부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다.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실체적인 심리・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법원은 자율권이란 명분 아래, 이 문제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있다. 그럼 종교단체 내부에서 누군가를 이유 없이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행위도 용인돼야 하는 걸까. 신의 뜻으로도, 인간의 법으로도 심기열을 구할 수 없다면, 그는 이제 누구에게 기도하고 무엇에 기대야 하는 걸까. “인권을 짓밟는 행위가 옳은 건가, 싶은 거죠. 인간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하잖아요. 근데 정작 그 사람들은 존엄한 마음이 없습니다. 해볼 때까지 해봐야죠.”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B 성당에서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당구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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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도 봉사도 ‘대타’… 가짜 고대생, 서울대도 속였다 [교수 엄마와 가짜 고대]
“항상 이렇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상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부터 포스터, 실험까지 ㅠㅠ 정말 감사합니다.”(2016. 11. 28.) 무엇이 “이렇게” 감사한 걸까. 누가 그렇게 “항상” 도와주신 걸까. ‘가짜 고대생’ 이해린(가명)이 ‘교수 엄마’의 제자인 대학원생 A에게 이메일로 답변한 말이다. 사실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고려대학교 합격부터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입학까지, ‘숨은 조력자’들이 만들어준 ‘가짜 스펙’을 활용한 거니까. 거기다 ‘운 나쁘게’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치과의사까지 될 뻔했으니 말이다. 지난 7월, 교수 엄마 이수희(가명)와 딸 해린은 법원에서 나란히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입시비리 사건의 주인공 해린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법원의 유죄 판결에도 해린의 고려대 입학취소 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학교 당국을 통해 최초로 확인한 사실이다. 이수희 당시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딸 해린의 대학 입시를 위해 대학원생 제자들을 동원했다. 그들이 만들어준 ‘대필’ 보고서로 해린은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았고, 덕분에 2014년 고려대 생명과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려대 입학은 1차 목표에 불과했다. 이 교수의 최종 목표는 ‘의사 만들기’. 본게임(?)은 해린이 고려대에 입학한 뒤에 시작됐다. 해린이 대학교 3학년이던 2016년. 이때부터 해린은 의학 및 치의학 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대입 때처럼 이번에도 교수 엄마가 나섰다. ‘2016년 학부생 연구프로그램’(교육부·한국과학창의재단 주관)에 선정된 연구과제를 해린의 ‘가짜 스펙’을 만드는 데 활용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본인이 지도하던 병태생리학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에게 지시했다.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을 진행한 다음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대학원생들의 연구과제와는 전혀 관련 없는 실험이었다. “대학원생들은 모두 피고인 이해린을 위한 실험이라고 알고 있었다. 2016.4경 있었던 예비실험은 대학원생 C가 한 것으로 기억되며, 피고인 이해린이 관여한 바는 전혀 없다. 피고인 이해린은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단 2번만 이 사건 연구실에 방문하였을 뿐 함께 실험을 한 적이 전혀 없다. 첫 번째 방문 때에는 이 사건 연구실 및 실험 도구 등을 설명해주었고, 두 번째 방문 때에는 실험을 참관하였을 뿐이다.”(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B 진술) 심지어 이 교수는 조작도 강행했다. 실험결과 측정된 수치가 가설에 부합하지 않거나, 가설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확연한 차이를 얻지 못했다고 보고, 대학원생들에게 실험 결과 수치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저버린지 오래였다. “대학원생들이 각자의 실험을 한 이후에 결과 그래프를 인쇄하여 교수님께 가져다 드렸고, 그러면 교수님은 임의의 숫자를 테이블에 직접 기재하시거나 그래프의 모양을 새로 그리셨고 이렇게 다시 그래프를 그려오라고 했다. 모든 실험을 대학원생들이 나누어 하였기에 데이터의 조작사실을 이후에 확인했고, 이에 그러한 문제점을 기록해 놓기 위해 왼쪽에는 대학원생들이 갖고 있는 raw data를, 오른쪽에는 교수님의 지시 하에 변경된 수치를 정리한 ‘스트레스 실험 총 정리’ 파일을 만들었다.”(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B진술) 해린은 심지어 보고서를 쓸 시기에는 한국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2016년 9월부터 교환학생으로 캐나다 밴쿠버에 체류 중이었다. 2017년 1월에야 귀국했다. 조작까지 감행된 대필 보고서. 해린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손에 쥔 대필 보고서를 그대로 한국과학창의재단에 제출했다. 이 교수는 해당 재단으로부터 총 800만 원의 지원금을 타먹기도 했다. 이때 이 교수는 고려대 차준미(가명)와 이화여대 안서윤(가명)의 이름을 공동연구자로 함께 넣었다. 이들도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지 않은 것은 해린과 마찬가지. 특히 안서윤은 고등학생 시절 해린과 함께 ‘대필’ 보고서로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은 적도 있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들은 이들을 위해 ‘연구노트’도 대필했다. 이해린·차준미·안서윤이 직접 작성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대학원생 세 명이 돌아가면서 서로 다른 글씨체로 연구노트를 작성했다.  결국, 해린은 2016년 12월 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부터 ‘우수연구과제상’을 수상했다. 해린은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 결과를 요약한 학술대회용 포스터를 대한면역학회에도 제출했다. 이 역시 대학원생들이 대신 작성했다. 하지만 해린은 대한면역학회가 주관한 ‘포스터 발표’ 현장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포스터 발표는 연구 내용을 여러 패널에 부착 및 게시해 발표하는 방법을 뜻한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 D와 E가 ‘대리 발표’를 했다. 규정대로라면 그들은 학회에 등록되지 않아 학회장 출입조차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대한면역학회는 2016년 11월, 문제의 포스터에 ‘우수발표상’을 수여했다. 2017년 6월에는 고려대 주최 포스터 대회에서도 ‘우수포스터상’을 수상했다. 교수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이번엔 논문이었다. 이 교수는 대학원생 제자들에게 앞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논문 제목은 <Melatonin protects mice against stress-induced inflammation through enhancement of M2 macrophage polarization>(스트레스 생쥐 모델에서 멜라토닌이 M2 대식세포 분극화에 미치는 영향). 2017년 1월, 해린은 ‘대필’ 논문을 SCI(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급 국제면역약리학회지(International Immunopharmacology)에 투고했다. 해린이 단독저자였다. 교신저자는 고려대 생명과학부 F 교수. 교신저자는 논문의 최종본을 작성하고 승인해 학술지에 투고하는 사람을 말한다. 교신저자인 F 교수는 엄마 이수희 교수의 성균관대 약대 동문이다. F 교수는 수사기관에 출석해 이렇게 증언했다. “논문에 본인(F 교수 자신)이 작성한 부분은 없다. 피고인 이해린이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을 하고, 이 사건 논문을 써낼 수준이나 경험, 경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피고인 이수희 교수가 많은 부분을 대신 처리해주겠거니 추측만 하였다.” 이 교수는 딸 해린의 스펙을 다방면으로 꼼꼼하게 챙겼다. 이 교수는 대학원생들이 해린의 봉사활동도 대신하게끔 지시했다. 대학원생 G는 해린을 대신해 시각장애인 점자도서 타이핑 봉사활동을 했다. 이 교수는 사례비로 대학원생 G에게 50만 원을 줬다. 해린은 이 결과물을 그대로 한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제출해 54시간 봉사활동을 인정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들은 해린의 자기소개서도 손봐줘야 했다. 해린의 고려대 입시 때와 똑같았다. 결국, 해린은 2018년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당시 합격생 중 SCI급 논문 제출자는 해린 포함 2명뿐이었다. 하지만 해린의 ‘대필 인생’은 영원할 수 없었다. 교육부는 2019년 3월 특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2019년 5월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이 교수를 구속기소했다. 딸 해린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 결과는 올해 7월 나왔다. 검찰의 기소로부터 약 5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9단독(판사 김택형)는 이수희 교수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딸 이해린에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최근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교육부는 2019년, 성균관대학교에 이 교수에 대한 중징계(파면)을 요구했다.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도 비슷한 시기 해린에 대해 입학취소를 결정했다. 같은 해 대한면역학회는 과거 해린에게 수여한 ‘우수발표상’을 취소했다. 고려대만 아직 이해린의 입학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다른 대학들과 학회는 이미 5년 전 이들 모녀에 대해 조치를 했는데도, 법원이 유죄 판결까지 내렸는데도 말이다. 고려대는 지난 8월 셜록에게 서면 답변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해당자(이해린)에 대한 입학허가 취소/미취소는 심의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안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근거로 본교 학칙과 규정에 의거하여 처리할 예정입니다.” 지난 15일, 기자는 고려대 입학처에 “지난 8월 서면 답변 이후 변동사항이 생겼는지” 문의했다. 입학처 담당자는 “서면 답변과 달라진 건 없다”고 답했다.(관련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이 전 교수 모녀는 오히려 소송전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이 전 교수는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학술지원대상자 선정을 제외하는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이다. 딸 해린은 서울대를 상대로 입학취소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걸었다. 이어 대한면역학회를 대상으로는 수상취소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각 소송의 1심 결과, 이들 모녀가 모두 패소했다. 해린이 “항상 이렇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했던 대학원생 A. 이 전 교수의 ‘갑질’ 때문에 엉터리 실험을 하고,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거짓 논문까지 작성해야 했던 그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해린의 인사처럼 그렇게 훈훈했을까. “처음부터 피고인 이수희 교수가 연구계획을 수립하여 지시를 하고 그 이후 실험 수행, 연구보고서 작성, 포스터 작성 등 일체의 과정이 대학원생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A 진술) 기자는 지난 9월 이 전 교수와는 잠깐 통화를 나눴다. 이 전 교수는 “기자”라는 소개에 “지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후 10월 21일 현재까지 12번에 거쳐 전화를 걸었지만, 이 전 교수는 받지 않았다. 기자는 다른 번호로도 이 전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 15일 해린의 고려대 입학취소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입장을 문자메시지로 물었다. 하지만 이 전 교수는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 전 교수 딸 해린에게도 접촉했다. 지난 16일 입시비리 사건 관련 항소심 담당 법률대리인을 통해 인터뷰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해린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도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지난 17일, 모녀의 주소지로 찾아갔을 때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셜록은 대필 논문의 교신저자 고려대 생명과학부 F 교수를 찾아갔다. 지난 17일, 고려대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다. 기자는 F 교수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반론을 받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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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교수 엄마와 가짜 고대생]
서울 서초동 회색빛 빌딩 숲. 그사이 빛바랜 외벽의 아파트 단지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재건축”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는 아파트 입구를 지나,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일터에 가 있을 평일 낮. 집에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의 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예상과 다르게 집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여성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누구세요?”“따님 이해린(가명) 씨가 사는 곳 맞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여성의 목소리는 조금 더 커졌다. “누구세요!?”“(이전에) 전화로 연락드렸던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김보경 기자입니다.” 기자라고 소개하자, 이번엔 여성의 대답이 달라졌다. “아닙니다!”“이수희(가명) 선생님 댁 아닌가요? 이수희 선생님이시죠? 잠깐만 대화 나눌 수 있을까요?”“아닙니다!” 애타게 불렀지만, 여성의 대답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17일 오후의 일이다. 기자가 집까지 찾아가 만나려 한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만든 ‘가짜 스펙’으로 딸 이해린(가명)을 의사로 만들려 한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이수희(가명). 교수 엄마의 엇나간 모정(?) 이야기는 약 10년 전부터 시작한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2013년 7월 ‘제4회 국제청소년학술대회(ICY)’를 열었다. 9개국 청소년 500여 명이 참가하는 큰 규모의 대회였다. 당시 해린은 양재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해린은 고등학생 안서윤(가명)과 함께 팀을 꾸려 학술대회에 참여했다. 내로라하는 전국 각지의 우수 학생들이 모여도 해린은 기죽을 필요가 없었다.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결과물이 알아서 나오는 마법. 엄마 이수희 교수가 해린의 뒤를 ‘든든히’ 지켰다. 이 교수는 노골적으로 지시했다. 본인이 지도하던 병태생리학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에게 ‘스트레스 비교 동물실험’ 최종보고서와 대회 발표용 PPT 자료를 만들라고. 사실상 대필이었다. 막상 해린과 서윤이 연구실에 방문한 횟수는 ‘단 한 번’에 불과했다. “이수희 교수의 지시에 따라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PPT 자료를 만들었다. 당시 또 다른 대학원생 B가 위 실험을 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원생들이 진행한 위 실험으로 이해린은 삼성 휴먼테크 논문대상(2012년 12월)에도 출전했었다.” (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A 진술) 이 교수가 직접 나선 적도 있다. 딸 대신 연구일지를 작성했다. ‘친구’ 서윤의 엄마도 딸을 대신해 연구일지를 만드는 데 합심했다. 해린과 서윤은 직접 쓰지도 않은 최종보고서와 연구일지를 한국교육개발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았다. 대필 보고서를 제출한 고등학생들이 ‘우수청소년학자’로 불리다니. 고등학생 해린은 끝까지 대범했다. 대회 심사위원들도, 학교도 감쪽같이 속였다. 해린의 동아리를 담당하던 양재고 교사 C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해린이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스트레스와 호르몬 관련 실험을 한다고 찾아왔고, 해당 실험과 관련하여 그 어떠한 활동도 양재고에서는 전혀 진행된 바 없으며, 나중에 이해린이 최종 보고서를 갖고 와서 수정 의견 정도 준 적이 있었을 뿐이고, 이해린이 국제청소년학술대회에 참여하는지도 몰랐고, 해당 대회에 제출된 ‘연구일지’ 표지에 지도교사 C라고 수기로 기재되어 있으나 자신의 글씨도 아니다.” (양재고 영재과학동아리 담당교사 C, 수사기관 진술) ‘교수 엄마’와 그의 제자들은 대필 보고서와 연구일지를 합작했다. 심지어 학교 담당교사 서명까지 조작한 상황. ‘비장의 무기’는 대학 입시 때도 빛을 발했다. 이 교수는 ‘우수청소년학자상’ 내역을 포함해 해린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작성했다. 그러곤 또 다시 대학원생 제자들을 소환했다. 이들에게 해린의 자기소개서를 수정·보완하게 지시했다. 이번에도 통했다. 해린은 2014학년도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과학인재특별전형에 최종 합격했다. 당시 고려대 안암캠퍼스 수시모집 전체 경쟁률은 22:1(정원내 기준)이었다. 그러나 고려대 입학은 이 교수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그의 더 큰 목표는 ‘의사 만들기’. 해린이 고려대에 입학한 뒤에도, 제자들을 향한 이 교수의 ‘대필’ 지시는 이어졌다. 오히려 더 과감해졌다. 대학원생 제자들에게, 딸 대신 SCI(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급 연구논문을 쓰게 했다. 자기소개서도 마찬가지였다. 효과는 확실했다. 해린은 2018학년도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치전원)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하지만 해린의 ‘대필 인생’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한 대학원생의 제보로 교육부는 특별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2019년 5월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이 교수를 재판에 넘겼다. 딸 해린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1심 재판 결과는 기소로부터 약 5년 만에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9단독(판사 김택형)는 올해 7월 18일 이 교수에게 징역 3년 6개월, 딸 이해린에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이 교수는 법정구속은 피했다. “피고인들의 입시비리 관련 범행은 해당 교육기관이 원하는 인재를 공정한 절차에 의하여 선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기관의 업무를 방해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허탈감과 실망을 야기하고, 우리 사회가 입시 관련 시스템에 대하여 갖고 있었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게 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그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 (1심 판결 양형이유 중) 2019년 5월 이 교수는 구속기소됐다. 교육부는 그해 3월 이미 성균관대에 이 교수 중징계(파면)를 요구했고, 서울대 치전원도 그해 8월 딸 해린에 대해 입학취소를 결정했다. 이 교수가 구속기소된 때를 전후로 몇 달 사이, 모녀와 관련된 세 대학 중 두 곳은 발 빠르게 그들에 대한 조치를 단행했다. 그렇다면 남은 한 곳은 어떨까? 바로 해린이 ‘대필 보고서’를 활용한 가짜 스펙으로 입학에 성공한, 고려대 말이다. 셜록은 지난 8월 교육부 인재선발제도과에 질의했다. 이해린의 고려대 입학허가가 취소됐는지 물었다. “고등교육법 제34조의6에 따라 대학의 장은 해당 학교에 입학을 허가한 학생이 입학전형에 위조 또는 변조 등 거짓 자료를 제출하거나 다른 사람을 대리 응시하게 하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정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그 입학의 허가를 취소하여야 합니다. 이에 고려대학교 학부생 입학허가 취소 절차 및 특정 학생의 입학허가 취소 여부는 해당 학교에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원칙적으로 부정행위가 있을 경우 대학교에서 부정입학자의 입학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는 답변. 하지만 교육부가 그 결과를 파악하고 있지는 못했다. 셜록은 이번엔 고려대에 문의했다. ▲학부생 이해린을 대상으로 한 고려대학교 입학취소처리심의위원회 구성 여부와 ▲이해린 입학허가 취소 여부에 대해 물었다. 고려대의 답변은 아래와 같다. “해당자에 대한 입학허가 취소/미취소는 심의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안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근거로 본교 학칙과 규정에 의거하여 처리할 예정입니다.” 고려대는 아직 ‘부정입학자’ 이해린의 입학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다른 대학들이 이들 모녀에 대한 조치를 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1심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도. 셜록은 지난달 10일 이수희 전 교수의 반론을 듣고자 전화를 걸었다. 이 전 교수는 “기자”라는 소개에 “지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달 18일 현재까지 11번에 걸쳐 전화를 걸었지만, 이 전 교수는 계속 받지 않았다. 기자는 다른 번호로도 이 전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 15일 해린의 고려대 입학취소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입장을 문자메시지로 물었다. 하지만 이 전 교수는 전화와 문자메시지 모두 응답하지 않고 있다. 딸 이해린 측에도 접촉을 시도했다. 지난 16일 항소심 담당 법률대리인을 통해 인터뷰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해린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도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기사 서두에 이야기한 대로, 모녀의 주소지로 찾아갔을 때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장본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특혜입학 문제로 이화여대 체육학과 입학이 취소됐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딸 조민도 입시 비리로 고려대와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취소됐다. 셜록이 지난 2022년 ‘유나와 예지 이야기’로 보도한 미성년 부당 저자 최지희(가명)도 고려대 입학이 취소됐다. 하지만 교수 엄마의 부당한 도움으로 고려대에 입학한 해린은 예외다. 그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엄연한 ‘고려대 졸업생’이다. 성실히 노력하며 공정하게 경쟁해온 모든 사람들을 조롱하고, 온 세상을 속여서 손에 넣은 ‘가짜 고대생’ 타이틀. ‘자유’, ‘정의’, ‘진리’를 표방한다는 고려대는 언제까지 그의 ‘불의한’ 인생을 두고 볼 건가. 한편, 해린과 함께 대필 보고서로 ‘우수청소년학자상’을 수상한 고등학생 안서윤은 어떻게 됐을까.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준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시정) 도움을 받았다. 안서윤은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다만 그는 정시전형으로 입학해, 문제의 수상 내역을 입학자료로 활용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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