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집 근처에서 타 매체 선배 기자를 만났다. 30년 가까이 법조기자로 일해온 베테랑인 그는 근황부터 물었다.
마침 그때는, 표절 논문을 쓴 검사 5명에게서 약 2800만 원을 환수했다는 사실을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확인한 때였다.
이 소식을 공유하자, 선배 기자는 무심한 듯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 개인을 상대로 세금 환수까지 이끌어낸 건 대단한 일인데?”
선배 기자의 칭찬을 들으니, ‘표절 검사’를 추적할 의지가 다시 타올랐다.
오랜만에 ‘표절 검사’들의 근황부터 알아봤다. ‘한국법조인대관’을 살폈다. ‘표절률 1위’ 검사의 근황이 눈에 띄었다. 박건영 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지난해 대형 로펌으로 이직했다. 박 검사는 현재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박 검사는 타인의 논문을 무단으로 인용한 문장으로 거의 논문 전체를 채워 표절률 93%(셜록 집계)를 기록했다. 그가 1년간 미국에 머물면서 쓴 국외훈련비만 약 4,894만 원이다.(관련기사 : <미국에서 혈세 5천만원 쓴 검사님, 논문은 ‘표절률 93%’>)
‘김앤장 법률사무소’ 홈페이지 내 박 전 검사의 프로필엔, 검사 시절 다녀온 국외훈련 학력(University of the Pacific, Visiting Scholar)을 스펙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홈페이지만 봐서는, 국외훈련을 다녀와 표절 논문을 썼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 수 없을 듯했다.
부실 논문으로 비판을 받았던 검사도 검찰을 떠났다. 오○○ 검사는 과거 학술대회에서 자신이 작성한 발표문을 국외훈련 연구논문에 ‘재활용’했다. 오 검사도 2024년 검사 옷을 벗고,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셜록이 고발한 ‘표절 검사’ 다섯 명 중 한 명만 검찰에 남아 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본인들이 저지른 잘못은 자연스레 잊힐 거라 생각하는 걸까? 징계도 받지 않아놓고선 말이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를 ‘자부’하는 법조인들의 세계에선 표절 논문 정도는 문제 되지 않는 걸까. 검찰을 떠나 대형 로펌 변호사로 옷을 갈아입는 사례들을 보니, 책 <불멸의 신성가족>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신성가족의 가장 큰 상징인 ‘거룩’은 처음부터 ‘구별’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맑스는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을 겪어온 비판적 비판주의는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 데 성공했다“고 그들을 묘사합니다. 저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가족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바로 이 신성가족을 떠올립니다.”(김두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불멸의 신성가족> 중)
셜록의 ‘표절 검사’ 추적은 2022년 12월 시작됐다. 애초 큰 기대는 없었다. 검사들의 국외훈련 연구논문은 누구나 쉽게 검증할 수 있게끔 법무연수원 사이트에 이미 공개돼 있으니까.
하지만 표절 검증 결과로 나온 숫자는 놀라웠다. 표절률 ‘93%’, ‘86%’, ‘80%’, ‘42%’. 검사들의 성적표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치였다.
기자를 분노케 하는 숫자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표절 검사’들에게 지원된 세금 액수다. 셜록이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84건(2019~2021년 발행)에서 발굴한 표절 논문 작성 전·현직 검사는 5명(박건영, 김형걸, 진현일, 최지현, 오○○). 이들 다섯 명에게 지원된 국외훈련비 총액은 무려 1억 9040만 원이다.
전체 예산으로 따지면, 지원 규모는 더 크다. 7년간(2016년~2022년) 국외훈련 대상자로 선발된 검사 총 497명에게 지원된 세금은 약 303억 원. 검사 한 명당 평균 6100만 원의 세금을 지원받는 꼴이다.
사실 국외훈련 제도는 공무원들에게 주어진 특혜다. 내 돈 들이지 않고 세금으로 갈 수 있는 ‘공짜 유학’이니까. 그리고 국외훈련은 가족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자녀 입시를 위한 조기교육과 스펙 쌓기의 기회로 인식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검찰은 오히려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 법무연수원은 지난 2022년 셜록의 질문에 “논문 표절 여부 판단의 경우 단순히 표절률 정도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 주제와 논문의 형태 등 여러 가지 요인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떠올랐다. 피고인들에겐 엄격하지만, 검찰 스스로에겐 관대한 태도. 실제 일부 ‘표절 검사’들 중에선, 타인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무단으로 게재한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구형해 ‘사법 정의’를 실현하기도 했다. 타인의 저작권 침해 혐의는 유죄, 검찰의 연구논문 표절 문제는 ‘무죄’라는 논리.
선례를 만들고 싶었다. 세금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와 작성한 연구논문에서 표절 문제가 드러나면, 어떤 망신을 당하게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표절 검사’의 실명과 표절률, 지원받은 국외훈련비 액수, 그리고 그 ‘가짜 스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까지 만천하에 알렸다.
나아가, ‘공짜 유학’인 줄 알고 펑펑 썼을 세금까지 ‘토해내게’ 하는 걸 목표로 뒀다. 그래야 다시는 혈세 갖고 외유성 연수를 다녀오는 일이 안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셜록은 2023년 1월 ‘표절 검사’ 5명을 권익위에 직접 신고했다.
권익위는 지난해 6월 ‘표절 검사’들에 대한 국외훈련비 환수 사실을 셜록에게 통보했다. ‘논문 표절’을 이유로 검사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최초의 사례였다.(관련기사 : <[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최초’를 만들기 위한 셜록의 수고를 국가기관도 인정해줬다. 권익위 보상심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4일 결정문을 통해 “신고자 셜록의 ‘국외훈련 연구논문 표절’ 신고로 2800만 원의 직접적인 공공기관 수입의 회복이나 중대를 가져온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셜록도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김예찬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지난해 7월, 셜록이 이끌어낸 검사 국외훈련비 최초 환수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앞으로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셜록처럼 (공무원 국외훈련) 검증 절차에 직접 나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가 된 듯합니다.”
김 활동가의 말처럼, 이번 ‘최초’는 셜록이 직접 신고 주체로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민 누구나 세금 도둑을 감시할 자격이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으니까. 그리고 포상까지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렸으니까.
아직 남은 과제도 있다. 징계다. 셜록의 첫 보도 이후 약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에 대한 징계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징계처분 공고에서, 셜록이 밝혀낸 ‘표절 검사’ 5명의 이름은 아직도 찾을 수 없다.
검찰 내부의 자정 노력 역시 중요하다. 셜록 보도 이후, 법무부에선 검사 국외훈련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법무부는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을 개정해 그동안 ‘공무원인재개발법 시행령’에 적시됐던 국외훈련비 환수 규정을 명확하게 명시했다. 또 법무부는 국외훈련 논문심사에 필요한 ‘기관전용 표절검사서비스’를 1400만 원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표절 검사’ 문제를 근절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가장 기본 원칙인 ‘투명한 정보 공개’는 아직도 먼 얘기다.
법무연수원 사이트엔 여전히 검사 국외훈련 연구논문이 절반도 공개돼 있지 않다. 2016년부터 2021년 사이 국외훈련을 떠난 검사들의 연구논문은 449건인 반면, 같은 기간 법무연수원 사이트에 공개된 연구논문 개수는 184건이다. 비율로 계산하면, 연구논문의 약 41%만 공개하고 있는 것.
공개되지 않은 연구논문에는 얼마나 더 많은 문제가 숨어 있을지 현재로선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셜록은 또 다른 ‘표절 검사’들을 찾기 위한 정보공개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1심 법원은 지난 3월, 국외훈련 검사들의 학위 취득 현황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와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정보에 대한 공개 청구는 기각했다. 셜록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했다.
장장 2년이 넘게 걸린 셜록의 ‘표절 검사’ 추적기 1탄은 여기까지다. 처음 기획을 시작할 때 목표는 크지 않았다. ‘표절 검사’를 특정해 세상에 알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멈추지 않은 셜록의 추적 보도가 일을 크게 만들었다. 검사들을 상대로 국외훈련비 환수라는 ‘최초’까지 만들어냈다. 모두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 덕에 가능했던 일이다.
2025년의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셜록의 목표는 그리 크지 않다. 일단 ‘표절 검사’ 프로젝트 2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추적은 이미 시작됐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코멘트
2제대로 알 수 있도록 캐내고 밝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캐내지 않으셨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저따위 짓거리 하고 또 하고 또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서 세금 축냈을 것입니다. 저따위들 에게 간다면 세금 절대 못 줍니다. 안 줍니다. 못 냅니다.
밝혀주셔서 감사합니다.
"표절로 공짜 유학 즐기고, 로펌으로 점프? 진짜 엘리트란 이런 건가요? 🤷♂️ 국민 세금은 ATM이 아닙니다. #표절아웃 #세금은소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