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우리 아이들의 마음, 누가 보듬어줄까?" 전문상담교사 배치 확대의 절실함
아이들의 정신건강, 위기의 신호 요즘 우리 아이들의 표정이 예전 같지 않다. 학교 폭력, 입시 스트레스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아이들의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다. 2023년 통계를 보면 우울증, ADHD,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24세 이하 청소년들이 급증했다. 특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 우울증 비율이 치솟았다. 중고등학생 4명 중 1명이 우울감을 경험했고, 자살이 청소년 사망원인 1위라니 가슴이 먹먹하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전문상담교사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과연 우리 교육 현장에는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줄 전문가들이 충분히 배치되어 있을까? 전문상담교사의 역할과 필요성 전문상담교사는 학생들의 정서 및 행동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히 개입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하며, 학교 내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ADHD로 수업 중 산만했던 한 초등학생이 전문상담교사의 상담과 개입을 통해 주의력이 크게 개선된 경우가 있다. 이 학생은 초기에 수업 중 지속적으로 주의가 산만해지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였으나, 상담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고 점진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결과 학업 성취도와 학교 생활 태도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또 다른 사례로, 폭력적이던 학생이 상담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공격적인 행동을 조절하게 되면서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게 된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이 학생은 나중에 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학교 생활의 개선을 넘어 학생의 자존감 향상으로 이어졌고, 장기적으로 그 학생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문상담교사는 교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최근 실시된 '심리·정서·행동 위기학생에 대한 학교 현장 실태 조사'에 따르면, 93.5%의 교사가 정서 위기학생으로 인해 수업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해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79.8%의 교사가 이러한 학생들로 인해 교권 침해를 겪었다는 점이다. 전문상담교사는 이러한 위기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사전에 발견하고 개입함으로써, 수업 중 교사나 다른 학생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상담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문제 행동의 원인을 이해하며, 그에 대한 대처 방법을 학습하게 되면, 교사들은 더 안정된 환경에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현황 및 문제점 분석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전문상담교사의 필요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초중고교 전체에서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은 46.3%에 불과하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31.5%로 가장 낮은 배치율을 기록하고 있다. 중학교의 경우 55.5%, 고등학교는 63.1%로 상대적으로 높지만,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전문상담교사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낮은 배치율의 원인은 다양하다. 첫째,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 최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생 맞춤형 마음 건강 통합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모든 학교에서 학생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전문상담교사 배치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5학년도 전문상담교사 채용 예정 인원은 작년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155명(전년 대비 52.2% 감소)으로, 정부의 정책 방향과 실제 채용 계획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 둘째, 상담 시설의 인프라가 부족하다. 많은 학교에서 독립된 상담 공간인 위(Wee)클래스가 부족하여 학생들이 마음 편히 상담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위클래스가 설치되지 않은 학교는 전체의 30%에 달하며, 초등학교의 경우 40%가 넘는 학교가 위클래스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부 학부모들의 인식 부족도 문제다. 지난해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관심군으로 분류된 학생 중 21.2%가 전문기관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않았으며, 그중 83.5%는 학생 또는 학부모가 치료를 거부한 경우였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주변에서 치료를 권했다가 학부모가 '우리 애를 무시한다'며 민원을 넣고, 심지어 아동학대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배치율 증진의 필요성 및 효과 전문상담교사의 배치율 증진은 학생들의 정신 건강 개선과 전반적인 학교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생들의 정신 건강은 학업 성취도와 학교 적응에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학생들의 삶의 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첫째, 배치율 증진은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개선하는 데 직접적인 기여를 한다. 전문상담교사는 학생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제공하여 학생들이 정신적 안정을 찾도록 돕는다. 둘째,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학교 적응력을 향상시킨다. 예를 들어, ADHD 약물 치료를 중단한 후 학교 생활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던 한 학생이 Wee클래스 상담과 부모의 협조를 통해 문제 행동이 점차 개선된 사례가 있다. 이 학생은 상담을 통해 자신이 겪는 갈등의 원인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학업 성취도와 친구 관계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셋째, 학생들의 사회적 관계 개선과 리더십 발휘에도 도움을 준다. 거친 말을 사용하는 문제로 상담을 받은 한 초등학생이 상담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이해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한 사례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비용 절감에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정신 건강 문제가 조기에 발견되어 적절히 관리될 경우, 이를 방치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청소년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성인기에까지 지속되면,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전문상담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미리 예방하면, 사회적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전문상담교사 배치 확대의 중요성과 실천적 제안 전문상담교사의 배치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는 단순한 인력 충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지키고, 학업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중요한 사회적 투자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실천적 제안을 하고자 한다 : 정부와 교육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 확대: 전문상담교사 채용 인원을 늘리고, 상담 시설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학부모와의 협력 강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상담의 중요성 교육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여, 학생들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적 제도 개선: 상담 거부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학교와 학부모 간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법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의 웃음을 되찾고 싶다면,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줄 전문가가 필요하다. 전문상담교사야말로 그 적임자다. 이제 우리 사회가 나서야 할 때다.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전문상담교사 배치 확대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촉구한다. *본 글은 AI를 활용해 작성한 글입니다. 참고자료 - 강득구 의원실(2023). 정서행동위기 관심군 학생, 10명 중 3명꼴 방치...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은 46%에 그쳐. 국정감사 보도자료 42호. https://blog.naver.com/dulipap... - 교사노동조합연맹(2024).  ‘2024 심리·정서·행동 위기학생(약칭: 정서 위기학생)에 대한 학교 실태 설문조사’ 설문조사 결과발표. http://cntu.koreafree.co.kr/bo... - 한국교육개발원(2023). 교육통계분석자료집-유초중등교육통계편. 교육부. - 서울신문(2024). ‘금쪽이’ 도와주면 달라지는데… “매뉴얼 없이 교사 헌신에만 의존” [마음 성적표 F-지금 당장 아이를 구하라]. https://n.news.naver.com/artic... - 세계일보(2024). ‘금쪽이'에 고통받는 교실…학부모 거부 땐 심리치료 못해 [심층기획-정서위기학생에 시달리는 학교]. https://www.segye.com/newsView... - 폴리뉴스(2024). 학생 마음 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전문상담교사 채용 인원 획기적으로 늘려야. https://www.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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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복지법, 기본법에서 공제회법으로?
한국 사회에서 연구 노동은 지속불가능하다. 대표적으로 인문학의 철학 전공자 현황을 살펴보면, 2024년 기준 한국연구자정보(KRI)에 등록되어 있는 철학 전공자는 50대 약 900명, 30대 약 250명이다. 전공자 수가 20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위기를 나타내며 전공의 다양성 또한 심각하게 저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인문사회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추세이다. 일부 연구자들이 대학이나 한국연구재단 소속으로 강의나 사업에 참여를 하고 있으나 이는 매우 제한된 기회로 연구자들의 불안정성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인문사회기초연구 학문후속세대지원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유형의 경우 2024년 선정률 24.6%에 그쳤으며 B유형의 경우 선정률 약 30%로, 사업 시행 초기 선정률 약 60%에 비교해봤을 때 절반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이러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를 비롯한 일반연구지원, 저술출판지원사업, 명저번역지원사업 등 2024년 인문사회분야 신규과제 평균 선정률은 21.2%이다. 즉, 10명 중 8명은 1년 동안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연구자 안전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있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 특히 2021년 정청래 의원 대표 발의 ‘기초학술기본법안’, 2022년 강득구 의원 대표 발의 ‘기초학술기본법안’, 그리고 2023년 유기홍 의원 대표 발의 ‘인문사회학술기본법안’ 등, 실제 입법 절차까지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이처럼 기본법에 대한 논의는 다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연구자 복지법으로 기본법이 아닌 공제회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본법의 경우 법적 수혜 대상에 대한 법과 그 대상에 대한 기본법을 따로 제정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법의 경우 대표적으로 예술인 복지법을 들 수 있는데,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과 ‘예술인 복지법’, 크게 두 가지 법안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는 예술 활동의 의미와 예술인의 정의를 명시하고 있다. 즉, 기본법을 통한 안전망 구축은 두 단계로 법을 제정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예술인은 헌법 제22조 2항 “저작가·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와 같이 헌법적으로 그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공제회법의 경우 해당 법만을 제정하면 공제회를 설립할 수 있다. 다만 연구자 공제회법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연구자를 정의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둘째, 기본법의 경우 국가 예산에 의해 사업 방향과 규모가 정해지는 등 국가에 종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2023년 R&D 예산 삭감 사태를 통해 국가 주도의 사업이 가지는 위험성을 경험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제회법을 통해 법적 교원뿐만 아니라 사각지대에 놓인 불안정 연구자, 예비 연구자 등을 폭넓게 포괄하여 연구자의 생활 안정과 복지증진을 도모하고 고등교육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연구자 안전망을 구축하고자 한다. 연구자 공제회법은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약칭 건설근로자법을 뼈대로 한다. 그 이유는 건설근로자의 초단기 노동, 비연속 노동 등과 같은 근무 형태가 불안정 연구자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자 공제회법을 제정함에 있어서 쟁점 또한 존재하는데, 첫째, 사업주가 다양하다. 연구자의 경우 사용자가 학교, 기관, 정부 부처 등으로 강의에 따라, 사업에 따라 사용자가 다를 수 있다. 둘째, 연구자의 범위 또한 합의가 필요하다. 2023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 2023-02 “대학 밖 학술단체에 대한 현황조사와 불안정 연구자를 위한 지원 및 연구안전망구축 방안 연구”에서 제시한 연구자 공제회법 가안에 따르면, 제2조(정의) 2항 ““연구자”란 「학술진흥법」 제2조에 따른 국내의 연구자로서 연구 및 교육에 종사하는 자와 「고등교육법」 제29조2 및 제30조에 따른 대학원·대학원대학에 재학·수료 등을 하거나 한 자를 말한다”로 제시되어 있다. 「학술진흥법」 제2조에 따르면 교원 및 겸임교원, 평생교육시설 교원, 연구원, 과학자 및 예술가, 박사학위소지자 등인데, 여기에 「고등교육법」 제29조2 및 제30조에 따른 대학원생을 포함한 것이 연구자 공제회법 가안의 연구자의 범위이다. 이것이 사각지대에 있는 불안정 연구자 및 예비 연구자 등을 충분히 포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셋째, 연구자의 자격 증명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아래 연구자의 자격 예시 표와 같은 방식으로 연구자의 자격을 증명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즉, 재직증명서, 재학증명서, 연구실적, 강의실적 등으로 연구자의 자격을 등록 및 갱신할 필요가 있다. 다만 몇 편의 논문을 기준으로 할지, 몇 년을 기준으로 삼을지에 관하여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연구자의 자격 예시> 지위 상태 증명 전임 교원   재직증명서 박사학위 소지자 소속 O 재직증명서 소속 X 연구업적 5년 1편 강의 5년 3학점 대학원생 (박사학위 미소지자) 수료 연구업적 5년 1편 수료 5년 미만 강의 5년 3학점 재학 재학증명서   연구자 공제회법은 가안 제1조(목적)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이 법은 연구자의 고용안정과 직업능력의 개발·향상을 지원·촉진하고 연구자에게 퇴직공제금을 지급하는 등의 복지사업을 실시함으로써 연구자의 고용개선과 복지증진을 도모하고 고등교육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연구자 공제회법에서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연구자 공제회는 퇴직공제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연구자의 연구 생애 주기에 맞춰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논문 게재료 지원, 저금리 등록금 대출, 도서 구입비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연구자 공제회법 제정과 공제회 운영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항 또한 존재한다. 첫째, 공제회법은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 정도 이상의 인원을 갖춰야 한다. 둘째, 공제회는 연구자와 사업주, 국가의 재원 등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학의 참여를 유도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연구자 공제회법은 기본법보다 절차상으로는 간단하나 여전히 고려해야 하는 문제, 해결하는 문제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속한 연구자 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기본법보다 공제회법이 효과적이며 퇴직금을 쌓을 수 없는 불안정 연구자의 퇴직금 지급과 더불어 각종 복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의 최소 안전망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재 제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법안으로 연구자 공제회법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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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재단 카프 KAF _ 화가가 초등학교로 직접 찾아가는 미술 수업
지난 7월 15일 전북 무주군 괴목초등학교에서 독특한 수업을 진행했다. 덕유산 국립공원 내 적상산 기슭에 위치한 괴목초등학교는 전교생이 32명인 작은 학교지만, 아이들의 심성과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은 적상산 만치 큰 학교였다. 괴목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난 걸까.  좀더 거슬러 올라간 날, 괴목초등학교에는 묘한 복도가 생겼다. 복도 양쪽으로 원화 미술품들이 걸리고 낯선 초록 세계가 펼쳐졌다. 다채로운 색과 모양, 상상력의 여행지가 생겨났다. 한국미술재단에서 진행하는 <학교 안 작은 미술관> 사업이 그것이다. 이곳은 아이들이 일상을 벗어나 예술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한다. (참고 백아인 캠페이너/ 미술과 여백을 나누는 배움 <한국미술재단(KAF)>)  김현영(괴목초 5학년) 학생이 말한다.  “ 이곳을 지날 때면, 우리들은 뛰다가도 갑자기 차분해져요. 그림 하나 하나를 보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거 같아요. 집중력도 올라가고요.” 현영이 말대로 복도 곳곳에서 차분히 그림을 감상하는 아이들도 보인다. 또 현영이의 말에 놀라시는 심미정 교장 선생님.  “어머, 애들도 우리랑 똑같이 느끼는가 봐요. 애들이 더 차분해지고, 그림의 좋은 영향을 받는 거 같았거든요.”  놀라운 건 <학교 안 작은 미술관>으로 마법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된다는 거다. 화가가 직접 학교로 찾아와 미술수업을 한다. 한국미술재단에서 진행하는 <찾아가는 미술수업>은 아이들이 미술을 스스럼 없이 접하고, 커서도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길 바라는 뜻에서 시작됐다.  괴목초등학교에는 한국미술재단 소속 화가인 우상호 작가와 박재웅 작가가 찾아왔다. 전교생이 32명 뿐이라서, 하루 새 오전에는 병설 유치원 아이들과 저학년 아이들이, 오후에는 고학년 아이들이 수업을 받았다.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 한켠, 책상 위에 도화지를 펼치고, 종이 접시가 멋진 팔레트로 변하는 마법의 시간. 그림에 대해 물으면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기 바쁘다. “제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렸어요. 여기 이건 단풍나무예요. 단풍나무가 있는 집에서 살 거예요.”   집 옆에 서 있는 나무들을 가리키는 아이. “왜 단풍나무예요?” “저는 단풍나무가 좋아요.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하거든요.”  신기하다 했더니 신기할 게 없다. 괴목초등학교 맞은 편 ‘붉은 치마 산’이라는 적상산이 있고, 적상산은 단풍나무들로 즐비하니까.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며 자라는 구나, 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한 여름 푸른 적상산을 보면서도 아이들은 가을을 탄 붉은 적상산을 상상한다. 아이들이 화가들과 직접 소통하고, 자신의 그림을 선 보일 수 있는 자리라니!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자리가 아닌가. 여기에 더해 11월 20일~27일에는 전주에 위치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어린이 & 화가 행복한 그림전’이란 이름으로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제목 그대로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화가들의 그림이 함께 전시되는 행복한 그림전. 유명 화가의 그림 옆에 자신의 그림이 걸린다는 건 얼마나 기똥찬 경험일지! 아이들이 그것을 체험할 때 어떨까, 오히려 선생님들이 더 기대하는 눈치다.  벌써 눈에 띄게 창의적이고 상상력 짙은 미술 재원을 발견하기도 하나 보다. 우상호 작가가 짐짓 놀라운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신다. 이러한 미술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가 자신을 표현하고 즐거운 작업이란 걸 느끼게 되고, 화가들은 진짜 감상자인 아이들에게 영감을 받고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게도 된다고 한다.  한국미술재단 카프의 황의록 이사장은 이 미술 수업의 중요성을 미리 알고 오랫동안 기획하고 확대시켜 왔다.  “화가나 사람들에게 그림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물으면 백이면 백 초등학생 때 자신의 그림을 누가 칭찬해줬다거나, 선생님이 교실 뒤에 걸어줬다거나 하는 경험을 이야기 해요.  또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예요. 초등학교 때 그림을 못그렸다고 퉁을 받았다거나 하면 그 경험이 평생에 걸쳐 ‘나는 그림 못 그리는 사람이지’ 하며 그림을 싫어하게 된다는 겁니다.”  <어린 왕자>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을 그린 생텍쥐베리는 어른들이 그림을 못 알아보고 또 그게 무슨 뱀이냐는 핀잔을 듣자 그림을 그만 그리게 된다. 나중에 어린 왕자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림을 다시 그린다. 유년의 작은 칭찬, 작은 격려가 일생을 바꾸기도 하듯이, 스쳐가는 미술수업 경험이 아이들 평생기억 저장장치에 남을 지도 모른다.  황의록 이사장은 아이들이 그림을 사랑하게 하는 경험을 주자, 는 마음에서 이 미술수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가들도 반신반의했다고.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서로 가려고 할 정도로 영감을 얻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많이 배운다는 것이다.  이번 미술수업에 참여한 우상호 작가는 말한다.  “우리 사회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에게 미술 문화 접촉 경험을 증대시켜 주고 있다는 차원에서 몹시 중요하고 또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의 자유분방함에서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화가 박재웅 작가는 괴목초등학교에서의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이나 감성을 표현하는 자신감을 기르고, 자아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수업 후 20여 명의 전교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했는데 꼭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어요.“  교육은 미래를 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미술재단이 심는 미래는 아이들의 마음에 정해진 길로만 가라는 철심이 아니라, 자신 본연의 모습대로 자라나고 표현하도록 숨을 불어넣어주는 자연심이다.  괴목초등학교. 이름이 독특하다 했더니, 마을 곳곳에 괴상한 모양의 나무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이 나무들은 ‘이상(異常)’이 아니라 그 자연의 풍토 그대로 변치 않고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자란 나무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신성하고 자연스러운, 어느 나무와도 다른 개성있는 나무로 자랐다. 아이들도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상상력과 창의력, 꿈을 펼칠 수 있는 멋진 괴목이 되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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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 글씨 못읽던 명호의 비밀… 학교가 학교다워졌다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14화]
방과후 수업 출석부에는 학생 8명 이름이 적혔지만,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규수업과 학교 업무로 나도 많이 지친 탓이었을까. 텅 빈 교실과 주인 없는 책상을 보니 땡땡이 친 학생들에게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공업고등학교에서 무슨 방과후 수업이냐 싶겠지만, 우리 학교도 늦은 오후부터 관련 수업을 한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고에서는 국어 수업은 인기가 높다. 서울권의 명문 대학교에 가기 위해선 고전 읽기, 심화 국어 등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텅 빈 교실이 말해주듯, 내가 일하는 공고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내가 맡은 방과후 국어수업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이 꼭 들어야만 하는, 강제로 만들어진 수업이다. 사실 ‘방과후 수업’보다는 ‘기초학력반’이 정확한 표현이다. 상대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낮아 공고에 왔는데, 여기에서도 속칭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다니. 일부 짓궂은 학생들은 “띨띨이반”이라 놀리기도 한다. 자존감이 추락한 기초학력반 아이들은 어떻게든 수업을 빠지려 여러 방법을 동원하곤 한다. 7교시 내내 멀쩡하던 배를 움켜잡고 갑자기 병원에 간다거나, 집안에 제사가 있다며 수업을 빼달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교사들은 벌점을 부과하겠다는 엄포와 학부모 상담을 거론하며 수업 참여를 유도하지만, 기초학력반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방과후 수업을 공친 다음 날, 교무실에서 한 선생님이 큰 목소리로 동료교사들을 불러 모았다. “샘들, 이거 저희 반 명호(가명)가 만든 쿠키입니더. 드셔 보이소. 진짜 맛있습니더.” 달콤하고 쌉싸름한 커피향이 더해진 쿠키 냄새가 교무실에 퍼졌다. 쿠키는 맛이 꽤 좋았다. “명호가 요리를 엄청 좋아합니더. 잘 먹었다고 수업시간에 칭찬해주면 좋아할 거라예.” 얼마 뒤 명호가 속한 반에서 수업을 하며 담임선생님의 부탁을 이행했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명호 칭찬을 시작했다. “느그 반 담임 쌤이 교무실에서 쿠키를 돌렸는데, 그거 진짜 맛있더라!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으니까, 명호한테 물어보라 카시더라. 명호야, 그 쿠키 어디서 살 수 있노?” 이야기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이들은 큰 소리로 화답했다. “명호가 직접 만들었어요. 실력 장난 아니지요?”“샘, 명호가 매주 빵이랑 쿠키도 만들어와요. 우리 반 매주 빵 먹어요.” 명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명호에게 ‘칭찬 스티커’ 네 개를 붙여줬다.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이 이어졌다. 고등학생들이 이런 걸 좋아할까 싶지만, 칭찬을 많이 받아보지 못한 우리 학교 아이들은 ‘칭찬 스티커’를 정말 사랑한다. 스티커 50개를 모으면 교장 선생님이 직접 문화상품권으로 교환을 해준다. “느그들도 빵 값 내야지? 박수!” 명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일주일 후, 다시 방과후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도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2주 연속 수업을 못하면 담당 부서에서 문책이 나올 게 뻔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교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다시 속이 상했다. 교실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한쪽 구석에서 인기척이 났다. “샘, 오늘 수업 안 해요?”“명… 명호가?! 니 거(거기) 있었나? 불이라도 켜두지. 샘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고맙데이! 명호야!” 고함에 가까운 감사 표시에 명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명호 한 명을 앉혀놓고 국어수업 2시간을 진행했다.  그 다음주 방과후 수업, 이번에도 학생은 명호 한 명이었다. 출석부에 적힌 학생 중 절반은 아예 학교에 오지 않았고, 세 명은 조퇴를 했다. 다시 명호 한 명을 상대로 2시간 수업을 진행했다. 중학교 수준 정도의 국어수업, 명호가 잘 따라와서 기분이 좋았다. “명호야, 대화의 원리 배웠제? 그중에서 관용의 격률이 뭔지 기억나나?”“관용의 격률은 내 탓으로 돌리는 거요.”“명호야, 8번의 답은?”“3번요.” 나는 잠시 수업을 멈추고 명호를 바라보았다. 까만 옷에 까만 얼굴, 머리는 며칠을 감지 않았는지 기름기가 흘렀다. 과묵하고 동글동글한 모습이 담임선생님 말대로 푸바오처럼 귀여웠다. ‘학력이 많이 부족하지 않은 것 같은데, 명호는 왜 여기 앉아 있을까? 기초학력이 부족해 이 반에 편성된 아이가 맞긴 한데….’ 어떤 영역의 학습이 부족한지 확인해봤다. 명호는 쓰기가 ‘0점’이었다. 서술형 6문제 중 4문제 이상을 풀어야 하는데, 명호는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평소에 말이 없고 수업시간엔 엎드려 자는 일이 잦았지만, 명호는 읽기와 듣기는 잘 했다. 의도치 않게 1대1 수업이 된 상황, 이왕 이렇게 됐으니 명호에게 딱 맞는 공부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명호야, 니 샘이랑 이야기 좀 할래?” 나는 수업을 멈추고 명호와 마주 앉았다. 명호는 어떤 질문을 해도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명호야, 샘이 다음 시간부터 니만을 위한 국어수업을 할라 카는데, 어떤 수업을 해주꼬?”“….”“그럼 객관식으로 물어보꾸마.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문법, 문학, 맞춤법….”“맞춤법요.”“그래. 알았데이. 그럼 샘만 가지고 있는 맞춤법 문제 100개를 갖고 오께.” 표현을 잘 못하는 명호가 맞춤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으니, 나는 최선을 다해 수업 준비를 했다. 맞춤법 퀴즈도 만들고,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아이가 원하는 수업을 해서 만족도를 높여주고 싶었다. 대신 문제만 푸는 것이 아니라 명호가 직접 설명할 기회를 줘서, 어떻게든 말을 많이 하게 하는 수업을 구상했다. 느리지만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명호와 나는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명호야, 근데 오늘 수업 마치고 뭐하노? 샘이랑 밥 무까(먹을까)?”“저 요리학원 가는데요.”“맞다. 니 요리 잘하제? 저번에 쿠키도 진짜 맛있었다. 집에서도 요리 마이(많이) 하나? 엄마가 정말 좋아하시겠다.”“엄마는 집에 5일에 한 번만 오세요. 거의 저 혼자 해무요(해먹어요).” 명호는 어머니와 둘이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는 평일에는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에만 내려온다고 했다. 엄마는 서울로 떠날 때마다 3만 원 또는 5만 원을 두고 가시는데, 명호는 그 돈으로 5일을 산다고 했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학교 급식, 저녁은 사먹거나 돈이 떨어지면 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명호의 말에 마음이 무거웠다. “자, 그라믄 다시 수업하자. 명호야, 칠판에 적힌 글자 한번 크게 읽어볼래?”“….”“명호야, 빨리 읽어야지.” 명호는 읽지 않았다. 눈을 찡그려가며 칠판의 글자를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읽지 못했다. “자, 그라믄 이 글자 읽어보까?” 나는 글씨를 조금 더 크게 썼다. 명호는 눈을 찡그린 채 칠판의 글씨를 보려 애썼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명호야… 언제부터 글자가 잘 안 보였노?”“중학교 2학년부터요.”“안경은… 왜 안 맞췄노?“ 명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아마 명호는 그동안 모든 수업에서 칠판의 글씨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TV 화면으로 나오는 PPT 자료에선 글씨가 더 작아서 전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명호는 시력이 많이 나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불편했지만, 명호는 몸이 편한 방식으로 생활을 바꿨다. 어차피 잘 안 보이니 읽는 것을 포기하는 식으로 말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찾아온 시력 저하는 명호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곧 학습 포기로 이어졌다. 내 둘째 아들 역시 시력이 안 좋다. 5세 무렵 영유아 검진에서 심각한 난시와 약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의사는 “평생 잘 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수년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조금 나아졌지만, 나는 좀 더 일찍 발견하지 못한 걸 자책하며 오랫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명호에게 안경을 맞춰주고 싶었다. 교감 선생님, 방과후 부장님께 예산 편성을 요청했다. 다행히 학교는 예산을 마련해줬다. “잘생긴 선생님 얼굴이 그동안 흐릿하게 보있겠네! 샘이랑 내일 안경 맞추러 가제이.“ 명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점에 가서 명호는 꽤 오랜 시간 눈 검사를 받았다. 안경 없이 살면서 눈을 작게 뜨는 습관이 생겼고, 이는 시력을 더 저하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명호는 여러 안경테를 써봤지만, 어떤 것이 좋다고 명확히 표현하진 않았다. 나는 “니가 제일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라”고 제안했다. “저는 사실 저게 마음에 드는데요.” 한참을 망설이던 명호가 가리킨 안경테는 15만 원이 넘었다. 사실 명호는 처음부터 그걸로 선택을 마쳤지만, 학교 지원금이 10만 원이라서 내색하지 않았던 거다. “명호야, 개안타(괜찮다)! 샘 돈 많다! 그걸로 해라!“ 나는 한껏 허세를 부렸다. 그럼에도 명호는 다른 안경을 선택했다. 한동안 명호와 나는 실랑이를 벌였다. 괜히 미안해서 그런지 명호는 자꾸 싼 안경테를 고집했다. 결국 안경점 사장님이 나섰다. “자가(쟤가) 처음에 고른 게 아(아이)들한테 인기가 가장 많습니더. 샘이 사주시는 안경이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특별히 5만 원 할인해드리겠습니더.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들고 가이소.“ 안경을 맞추고 명호에게 얼만큼 세상이 밝아 보이느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처럼 1대1 방과후 수업을 이어갔다. 명호는 첫 수업을 제외하고 총 20차시에 해당되는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착실히 들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밖에서 명호를 기다리던 친구가 교실로 들어왔다. “샘요, 명호가 국어 샘하고 약속했다고 안경 맞추고 완전 달라졌어요. 잠도 안 자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나는 말없이 밖에서 명호를 기다려준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공고를 두고 “꼴등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폄훼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험한 세상에 꼴등을 위한 학교가 있다는 것이, 그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를 묵묵히 완주한 학생이 있다는 것이, 교실 밖에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친구를 기다려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명호는 1학기 마지막 국어과목 기초학력 평가에서 95점을 맞아 해당 학생 중에서 1등을 했다. 여전히 말하기와 쓰기는 어려워하지만, 예전보다 자신감도 생겼고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학교가 비로소 학교다운 역할을 한 기분이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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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재단 카프 KAF 2025 작가 공모, 어떻게 이루어지나(7/31마감)
'그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라는 신념으로 한국 화가들을 지원하고 초등학교 작은미술관 사업 등을 하는  한국미술재단 카프 KAF를 다시 찾았다.  미술과 여백을 나누는 배움 <한국미술재단(KAF)>으로 작년에는 초등학교 작은 미술관 설치를 찾아가 보았다면, 이번에는 작가 공모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과정은 어떠하고 작가들의 반응은 어떤지 직접 알기 위해서였다.  교대 근처, 허름해 보일 수도 있는 가구가게 위 2층 조촐한 전시장은 미술계의 커다란 나무를 키우는 심장이 되고 있다. 카프에서는 한국 국내 작가들을 엄선하여 평생 지원하며, 전시회, 세계 여행, 초등학교 작은미술관, 작가들과 아이들이 만나는 수업 등 크고 작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카프 소속 작가를 뽑는 과정은 어떠하고, 카프가 지원하는 소속작가들은 어떠한 감회를 가지고 있을까. 먼저 카프 소속작가인 최윤희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카프 소속작가로서 어떻게 변모하고 발전했는지를 소회를 들어 보았다. 이어  황의록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카프에서 소속작가를 선별하는 엄격한 심사 기준과 과정을 살펴보았다.   Q. 백아인 캠페이너 (이하 동일) : 안녕하세요, 최윤희 작가님, 늘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계신 것 같아요. 이번 전시회 작품들은 시원시원하면서도 아기자기하기도 한데, 작품에 대해 직접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최윤희 작가 (이하 동일) : 저는 마인드맵으로 오랫동안 작업을 했어요. 마인드맵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리는 건데, 저는 아크릴과 천을 사용해서 작품을 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어린시절을 통해서 이야기를 끌어냈고, 다음에는 여행을 통해서 이야기가 걸어나오게 했죠. 한국미술재단에서 세계여행을 떠나잖아요? 세계여행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 날씨를 통해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려냈어요. 이번에는 한국 고유의 색인 색동을 통해서 저의 이야기를 풀어냈죠.  Q. 소속 작가로서 장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A. 1년에 한번 카프 지원으로 세계 여행을 하는데요, 여행이 작가들에게 영감을 줘요. 실제로 작업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저도 작업이 많이 변했고요. 두 번째는 여기서 작가가 커나가면서 넓은 곳으로 나아가게 해 주는 것. 소속 작가 분들이 많이 그렇게 활동하고 있고요. 세 번째는 작은 미술관을 하면서 아이들한테 꿈도 심어주고, 작가들이 가서 수업도 하는 기회가 참 좋아요. 그게 카프의 매력이죠.  Q. 저도 작가들 스무 명 가량이 함께 세계여행을 간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아프리카 전시회 때 아프리카 여행 후 작가들의 작품들도 놀라웠고요. 올해는 동유럽 쪽을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최윤희 작가님이 보시기에 카프의 장점 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을 꼽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다 좋은데. (웃음) 두 가지 뽑으면 안 될까요? 세계여행과 작은 미술관 수업하는 것. 이것이 카프의 가장 큰 매력이겠죠. 세계여행은 도움이 되리란 걸 알았지만, 작은미술관 수업에 대해서는 저희 작가들도 잘 몰랐거든요. 어떻게 형성이 되고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지, 또 파급 효과가 얼마나 될지 예상하기 어려웠죠. 그런데 이제 60개 학교가 넘어가고, 작가들이 직접 찾아가서 아이들과 미술 수업을 해 보니까 얼마나 좋은지 실감하게 돼요. 아이들이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이 보이니까요. 아이들은 순수하게 그림을 보는 데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Q. 저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화가분들께 직접 수업을 듣는 진기한 경험이 궁금하네요. 또 화가 분들은 그 수업을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최윤희 작가님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나 소개해 주세요.  A. 하나 기억에 남는 게, 작품 중에 제가 모로코 스페인 갔을 때 영감을 받은 작품이 있었는데, 사각형 안에 모로코의 풍경을 집어넣었어요. 아이들이 그림을 보더니 저 큐빅 안에 모로코 풍경이 다 담겨 있대요. 그러면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걸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어요. 작가가 의도한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지만 못 알아차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딱 알아차려서 놀랐어요.  Q.최윤희 작가님은 한국미술재단을 어떤 계기로 알고 신청하셨나요? A. 제가 수원 레지던시에 있을 때, 카프 소속 작가 분을 알게 되었어요. 이탈리아 여행을 간다고 얘기를 해서 저도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 여행지가 모로코 스페인이라는 거예요. 원래 저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제가 꼭 여기를 가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왜 그 장소가 나를 부르는 느낌 있잖아요. (웃음) 그래서 신청서에 꼭 가야 하는 이유와 작품들을 냈는데, 그게 됐어요. 됐다고 연락이 왔는데 너무 기쁜 거예요. 그때는 소속 작가가 아니라서 자비로 여행을 갔죠. 그러고는 2020년도에 공모신청을 하고 블라인드 심사를 해서  뽑힌 거예요. 그러고 나서도 2년간 카프에서 전시를 통해 심사를 하거든요. 그때까지는 공모작가고, 2년 동안의 심사를 거친 뒤에야 진짜 소속 작가가 되죠. 심사 자체가 굉장히 엄격해요. 게다가 다 신작으로만 전시해야 하거든요. 진짜 열심히 해야 해요. Q. 소속작가가 된 전후의 변화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그 전에는 제가 가진 성격 자체가 딱딱했죠. 작품이 작가를 닮아가니까요. 그런데 여행을 통해서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그런 과정이 작품으로 나타나는 거죠. 아무래도 낯선 여행지에서 작가들과 20일을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교류가 많아요. 소속작가가 된 후 전시는 1년에 4, 5개전을 하는데, 단체전도 있고, 생애 첫 그림전도 있고, 연말에 하는 송년회전시도 있는데, 각자 개인전을 하든 2인전, 3인전을 하든 해야 하는 거죠. 소속작가니까.  Q. 그럼 쉼없이 계속 작품을 낳아야 하는군요.  A. 그게 제일 힘든 거죠. 그렇게 하니까 작품이 많이 나와요. 여긴 열심히 해야 해요. 살아남아야 하니까. 양적으로 질적으로 하는 거죠. 그게 카프가 작가들에게 바라는 것 중 하나겠죠. Q. 최윤희 작가님, 인터뷰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프가 얼마나 작가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게다가 인터뷰 내내 환한 미소를 띄며 이야기하셔서 카프 소속 작가란 행복한 작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A. 저도 원래 굉장히 떠는 편인데, 편안하게 해 주셔서 또 워낙 알리고 싶은 재단이다 보니 절로 말이 나왔던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한국미술재단은 그림 한 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 아래 그림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 공익법인입니다.”  - 한국미술재단 | ArtVerseKAF | 이어 한국미술재단의 황의록 이사장과 함께, 작가 공모 및 그 심사 과정을 면밀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백아인 캠페이너 (이하 동일) : 지난 번 <학교 안 작은 미술관> 설치 때도 세심하게 살피시고 아이들과 귀한 교류를 엮어내는 것, 서로 나눔하는 방법들을 고안해 내시는 걸 보고 감탄했습니다. (미술과 여백을 나누는 배움 <한국미술재단(KAF)>) 이번에 2025년 작가 공모를 하시던데, 소속 작가가 되는 과정이 굉장히 엄격하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황의록 이사장 (이하 동일) : 공정성을 위해 3년동안 4차례 심사를 합니다. 첫 심사가 제일 어려워요. 작가들이 10점의 작품포트폴리오로 응모하면, 작품만 가지고 심사를 합니다. 작가들이 포트폴리오 10매를 보내오면, 저희가 하는 작업은 작가 이름을 모두 코드화를 시킵니다. 예를 들어 최윤희라고 하면 안 되고, 작가1, 작가2 이렇게 심사하죠. 사인도 지우고, 사인이 없는 이미지 파일만 심사위원에게 보내 블라인드 리뷰를 하지요. Q. 심사위원은 어떻게 구성되나요?  A. 심사위원은 10명~13명이 위촉이 돼요. 미술계의 중견이상 화가, 미술관 관장, 콜렉터, 평론가 등. 다양한 시각을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분들을 위촉을 해요. 그런데 그 분들의 이름이나 신상을 일체 공표를 안 해서, 심사위원끼리도 서로 몰라요. 그러지는 않으려고 하겠지만, 한데 모이면 선배 후배 동향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 각자 집에서 심사를 합니다.  Q. 심사에 공정성을 세심하게 안배하시는군요. 심사위원들끼리도 서로 모르고, 각자 심사를 한다니, 심사 방법에 놀라게 됩니다. 심사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A. 심사 기준은 첫째 ‘작품성’ 입니다. 세계 어디에도 통할 만한 잠재력이 있나를 보죠. 둘째는 ‘대중성’ 이죠. 우리 재단은 ‘그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가 목표기 때문에, 평론가나 작가만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라 대중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대중성도 중요하게 봐요. 이러한 기준으로 앞서 말한 블라인드 리뷰를 해요. 마음에 들면 O.K.. 또는 NO. 이유는 묻지 않아요.  Q. 몇 명을 선발하는 건가요?  A. 몇 명을 정해놓고 뽑는 게 아니라 모든 심사를 통과한 사람을 뽑는 거기 때문에 여러 명이 뽑힐 수도 있고, 한 명도 안 뽑힐 수 있어요. 절대평가입니다. 1단계에서 심사위원의 70%가 O.K. 를 해야 통과가 돼요. 여기서 대부분이 탈락을 해요.  2단계는 ‘작가의 작업실 현장 심사’예요. 작가 작품을 꺼내놓고 실물을 보죠. 그럴 수 있는 이유가 한국인으로 한국 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만 돕는다고 공모에 선을 그었어요.그래서 작가들 작업실이 국내에 다 있어서, 작업실에 직접 가서 볼 수가 있죠.  이때도 심사기준이 있습니다. 첫째 ‘작품량’이 충분한가를 봐요. ‘양 속에 질이 있다’, 고 보기 때문이에요. 둘째, ‘진보가 있는가. 변화가 있는가’를 봅니다. 한 작품이 유명해지면 작가가 거기에 안주하기도 하니까요. 카프는 끊임없는 변화와 실험, 도전을 요구해요. 안 팔려도 좋으니까, ‘작가의 미래를 보여주고 자기를 드러내는 기회를 가져라, 가능성을 점쳐봐라’ 하는 의미입니다. 셋째, 미래 계획을 봐요. 이름만 작가이고 무늬만 작가인 사람이 많아요. 작가로서의 삶에 목숨을 거는 사람인가,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얘기를 들어보고, 세 가지가 만족스러우면 통과가 돼요.  Q. “양 속에 질이 있다” 거나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는 변화와 실험, 도전을 하라”는 부분이 특히 와닿습니다. 작가로서의 삶의 태도도 같이 심사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까지가 2차 심사라는 거지요? 3차, 4차 심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그렇죠. 블라인드 리뷰와 작업실 심사가 마무리되면, 세 번째 심사가 들어가요. 세 번째 심사는 ‘초대전을 통한 공개심사’예요. 작가에게 초대전시를 열어 줘요. 대외적으로는 초대전이지만 대내적으로는 심사전이에요. 이때 심사위원도 와서 심사하고, 관객들도 보고,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반응을 보죠. 대중성을 보는 것이기도 하죠.  공개심사가 통과가 되면 ‘공모작가’라는 타이틀을 주고, 2년 동안 소속 작가와 똑같이 지원을 해요. 똑같이 활동도 하고. 그런데 그게 심사예요. 정말로 작가가 말한 대로 사나, 성품도 보고요. 작가 자신의 재능을 통해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을 발굴하고자 해요. 그러면 도움도 받고 도움도 주니까 작가 자신도 당당하잖아요.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으면 어느새 사람은 고개를 숙여요. 작가도 작가 몫을 해야 당당해지지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제3자를 도와라, 그게 어린이들이고, 학교안 작은 미술관 기증이나 수업도 그렇게 이루어지지요. 그래서 남들도 생각하고 남을 도울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지켜보는 심사예요. Q. 한국미술재단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작가들은 어린이들에게 베풀 수 있고, 다시 그 어린이들이 미술을 사랑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로군요. 앞서 최윤희 작가님이 공모 작가로 2년간 쉴 새 없이 신작을 낳아야 했다고 하셨는데, 아마 3차 심사를 말씀하신 건가 봐요. 그럼, 마지막 4차 심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마지막 심사는 4차 심사로 소속작가들이 해요. 같이 가도 될까, 이 사람 작품은 자기 작품 세계가 있는가, 보죠. 카프는 작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크지만, 화가의 진짜 고민을 잘 몰라요.  안다 하더라도 풀어줄 방법을 모르죠. 작가는 작가만이 도울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작가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 받길 바라는 거죠. 소속작가들이 서로 자연스레 친해지도록 워크샵도 하고, 여행도 가고, 서로 영감을 주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도 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죠. 작가 심사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3명 이상만 돼도 안 뽑아요.  Q.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만으로도 카프 소속 작가가 되는 일이 어마어마한 일이란 걸 알겠어요. 소속 작가가 되면 받는 혜택이 어떤 게 있을까요? A. 통과하면 소속작가가 되고, 전시 및 세계 여행, 워크샵 등 평생 지원을 하는 거죠. 다만 ‘끊임없이 전시하고, 미공개 신작만 전시하라’, 는 방침이 있어요. 저희의 바람은, 소속작가라는 평생 동지를 만나고, 재단이 꿈꾸는 세상, ‘그림으로 따뜻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거죠. 작품 활동을 열심히 안 한다면, 면담 요청도 들어가고,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지만,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1년 유예기간을 줘요. 1년 지나고도 스스로 문제를 못 풀면 더이상 소속작가로 활동하기 어렵게 되지요.  Q. 심사 과정만 들어도 쉽지 않은 관문이네요. 한편으론 굉장히 탐나는 관문이기도 하고요. 놀라운 건 세심하게 공정성을 안배하신 부분, 심사위원들이 각자 블라인드 리뷰를 한다는 부분이에요. 게다가 단순히 한 번에 통과를 하는 게 아니라 여러 해 지켜 보면서 작가를 선별하고 적극적으로 평생 지원한다는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작가들에게 베품이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전국의 초등학생들에게 전파되어 선순환 되는 시스템 구축으로 가는 것도 감탄할 만하고요. 카프가 여러 가지로 많은 기준이 될 것 같습니다. 미술계 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카프처럼 좋은 재단이 많이 생기길 바랄 수밖에 없네요.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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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나의 선행연구 이야기> 교육-노동시장 넘나들기: 선취업 후진학자의 생애경로와 딜레마
 1. 선취업 후진학 학습 관련 선행연구  선취업 후진학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나고, 선취업 후진학 생태계라는 용어까지 등장할 만큼 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다수의 연구가 수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습자로서의 선취업 후진학자들에 대한 주목과 그들의 학습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는 부족하다. 선취업 후진학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실천현장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해당 개념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인 논의는 활발하지만, 정작 그 ‘주체’인 선취업 후진학자들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다.(김선태, 2011)   또한 선취업 후진학 체제에서 ‘학습자’에 관심을 가지는 일부 연구는 그 대상의 선택에 있어서도, 일정한 편향성을 보인다. 정책적 수사로서 보편적으로 붙여 사용하는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개념은 한 인간의 학습생애경로에서 본다면 사실 분절적인 개념이다. (1)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먼저 취업한 후에(선취업), (2) 재직 중에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후진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에 비추어볼 때, 선취업 후진학 선행연구 중 ‘학습자’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연구물은 대체로 (1)에 해당하는 ‘선취업자’에 한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선취업 비진학자나 특성화, 마이스터고 재학생 대상의 연구만으로 편중되어 있어, 평생학습자로서 선취업 후진학자는 학문적으로 소외되어있다는 것이다.    본 절에서는 선취업 후진학 선행연구 중 학습자와 학습경험에 주목하는 연구물을 살펴보고자 한다. 선취업 후진학 선행연구 중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첫째, 학습자의 학습요구나 만족도를 분석하는 연구(이동준,이영구, 2017; 박현용,황윤섭, 2017; 김은혜,마희영, 2014)와 둘째, 진로결정요인을 양적연구를 통해 밝혀내는 연구(유혜영, 2018; 문상균,최재성, 2017; 김홍기, 2016; 조규형, 2014; 노경란,허선주, 2012; 노경란,허선주, 2013, 이은경; 2017)가 있다.  먼저, 선취업 후진학자의 학습요구와 선호도, 만족도를 분석하는 연구이다. 박현용,황윤섭(2017)은 선취업 후진학 교육과정을 설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직자 특별전형 학과 재학생과 기업체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수요를 비교분석하였다. 김은혜,마희영(2014)은 재직자 특별전형 학습자의 학습동기와 교육만족도를 설문조사를 통해 밝혔으며, 이동준,이영구(2017)의 연구는 재직자의 개인별 특성과 후진학 전공 선호도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연구는 선취업 후진학자가 아닌 선취업자(일반 재직자)를 대상으로 전공 선호도 분석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제 학습자의 수요가 미스매칭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다음으로, 선취업 후진학자의 진로결정요인을 양적연구를 통해 밝힌 연구이다. 선취업한 특성화고 졸업자의 후진학 필요성 인식 결정요인을 분석한 노경란,허선주(2013)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고졸 취업자가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에는 고교시절 교육과 진로교육, 현재 근무 중인 직장의 영향을 받는다. 노경란과 허선주(2013)에 따르면, 특성화고 재학시절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낮을수록, 재학 중 간접적 진로준비행동이 적극적일수록, 취업한 일자리의 근로조건이 양호하고, 주관적 만족감이 낮을수록 대학 진학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 이를 통해 고교시절 진로준비라는 개인적 노력 외에 특성화고 교육의 질과 취업한 직장의 근로조건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할 때 후진학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희영과 김은혜(2013)의 연구에서 후진학 대학 결정 요인을 분석한 결과, 대학에 개설된 학과의 성격(36.0%), 집이나 직장과의 통학거리나 시간(28.8%), 대학의 명성(24.0%)을 고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유사한 연구로는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진학과 취업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탐색함으로써, 선취업 후진학자의 특성을 분석한 이은경(2017)의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2004년부터 일반계, 전문계 고등학교 3학년을 10년 이상 추적 조사한 KEEP자료를 활용하는 종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한편, 선취업 후진학자를 평생학습자로 정의하고 이들의 학습특성을 분석하는 연구는 김명진 외(2013)에 의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20-30대 고졸 선취업 후진학 집단의 평생학습 경험 특성을 연구한 김명진 외(2013)에 따르면, 선취업 후진학자들은 대졸 취업자와 고졸 취업자에 비해 교육에 대한 개방성이 높으며, 높은 자기의식과 학습의지, 자기주도적 학습성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김명진 외(2013)는 선취업 후진학 집단을 학습의 자기증식 차원에서 다양한 학습을 즐기며 잘 활용하고 있는 집단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이 연구의 분석은 선취업 후진학 학습자 집단의 특성을 도출하고자 대졸취업자와 선취업 비진학자라는 비교집단과의 비교를 통해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평생교육학 연구에서 선취업 후진학 학습자를 대상으로 그들은 누구인가를 밝히고자 한 첫 시도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설문조사 항목을 살펴보면 본 연구에서 ‘평생학습 경험’이란 평생교육 프로그램 필요도 및 참여의사로 한정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양한 후진학 경로(재직자특별전형, 사내대학, 원격대학 등)를 이행하는 과정 중에서의 학습특성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한계를 남긴다. 또한 연구결과로 제시되는 ‘학습의 자기증식 차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한 설명 없이 진술되고 있다는 점, 양적연구로 인해 학습의 주체인 선취업 후진학자들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세계와 학습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선취업 후진학 선행연구 중 학습자와 학습경험을 대상으로 한 연구물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선취업 비진학자로 미스매칭된 연구대상의 선정, 양적연구에 치우치진 접근은 연구대상인 선취업 후진학 학습자 주체가 주관적으로 보는 세계를 이해하고, 주관적 경험인 학습을 이해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를 노정한다. 본 연구가 생애사연구방법론을 통해 선취업 후진학자를 학습자로서 재조명하고 그들의 학습경험과 학습경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연구주제  대분류 연구주제  중분류 선행연구 선취업 후진학 학습자 연구 학습요구와 만족도 분석 김은혜·마희영(2014).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학습자의 학습동기와 교육만족도 분석. 상업교육연구 28(5), 1-19. 이동준·이영구(2017). 재직자의 개인별 특성에 따른 후진학 전공 선호도 분석 - 충남지역 중소기업 종사자를 중심으로. 기업경영리뷰 8(1) 박현용·황윤섭(2017). 선취업 후진학 과정 교육과정 설계에 관한 탐색적 연구 : 현재 수요와 향후 수요를 구분하여. 취업진로연구 7(2), 43-58. 선취업 후진학 학습자 연구진로결정요인 분석 김홍기(2016). 특성화고 학생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이유 : 인천지역 특성화고 학생 경험에 대한 탐색적 사례 연구. 석사학위논문.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노경란·허선주(2012). 특성화고 졸업 청년층의 취업결정요인. 고용직업능력개발개발연구 15(2), 25-49. 노경란·허선주(2013). 선취업한 특성화고 졸업자의 후진학 필요성 인식 결정요인. 직업능력개발연구 16(2), 155-178. 문상균·최재성(2017). 특성화고 출신 고졸 여성의 선취업 후진학 선택에 관한 분석. 여성연구 94(3), 79-108. 유혜영(2018). 특성화고 출신 취업자의 대학진학 준비경험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충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대전. 조규형(2014). 특성화 고등학교 졸업예정자의 취업 결정 요인.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선취업 후진학 학습자 연구학습자의 특성  이은경(2017). 선취업 후진학자의 특성 분석. 석사학위논문. 한국교원대학교  선취업 후진학 학습경험 학습경험의 특성 연구 김명진 외(2014). 20-30대 고졸 선취업후진학 집단의 평생학습 경험 특성. 평생학습사회 10(4), 139-165. 노경란·변정현(2016). 특성화고 졸업자의 입직 및 초기직장적응에 대한 질적연구, 상업계 특성화고 졸업 여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직업교육연구 35(1), 21-44. <표 1> 선취업 후진학 학습자 및 학습경험 관련 선행연구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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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이야기] 청소년인권 관점의 교사가 되지 못했어요
청소년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십대 시절, 어린 건 이용해볼만한 소재였다. 나이주의와 청소년혐오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서도 그걸 이용하려고 했으니 어찌 보면 영악한 편이었다. 열일곱 살이니까, 뒤로 물러서도 괜찮겠지. 이럴 땐 하고 싶은 걸 내세워도 괜찮겠지. 좀 시무룩해지면 내 말 들어주겠지? 아방하게 굴면 뭐라고 못하겠지. 적어도 스물 셋 넘은 어른들은 아이에게 약해서 난 좀 더 무책임할 수 있었다. 나이주의를 공부한 반골 십대가 자기 편하자고 나이주의를 역이용한 셈이었다. 정작 청소년 인권 활동가 동료들 사이에선 누굴 어리다고 특별대우 해주는 건 없었다. 걔넨 나이주의에 찬성하지 않았고, 열넷이고 스물셋이고 우린 모두 대등한 "야"였으니까. 그땐 또 소심하고 여성적인 내 특징을 내세워 뒤로 숨었던 적 많았다. 그래도 어린 게 무기일 순 없었으니 조금 덜 바보인 척 했다. 그러더니 엉겁결에 20대가 되었다. 또 덜컥 2년 전엔 중고등학교의 교사가 되어버렸다. 십대를 '아이'라거나 계도의 대상으로 여기지 못한 형편 없는 교사 말이다. 지금도 친구들과 부모님, 스승들, 그리고 청소년이 연령에 따라서 달리 보이지 않는다. 뭔가 다르다면, 경험의 축적이 다를 것이다. 그들은 나처럼 능수능란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를 못하겠지만 단순 경험의 차이일 뿐. 다 같은 사람인지라. 결국 나이가 아니라 상황과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당위적으로는 '아이'나 '어른'의 딱지를 떼고 서로 사람 취급하는 게 존중일 것이다. 난 열아홉 살 때까지도 서너 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린 걸로 묻어가겠다는 게으른 심보였다. 이런 날 너무 매정하고 대등하게 대해준 어느 연장자 덕분에, 무안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후론 예전처럼 나이빨로 설렁설렁 지낼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제대로 존중받았고, 온전한 사람으로서 엄격하게 평가당했다. 자기가 미숙하다는 통념을 지닌 십대들이 교사인 나에게 어리광을 부릴 때가 잦았다. 그들은 사람으로 구실하는 대신 청소년의 역할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상대역인 내가 더 큰 '어른'으로 굴어줘야 짝이 맞아보였다. 상황이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형성해온 것이다. '애들'은 스스로 지혜로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돌봄을 받기만 하며 미래를 유예하는 위치에 머물게 되어 있었다. 뻔히 있는 길을 편하게 갈 수 없는 난 당시에도 사잇길을 찾아서 고생을 자처했다. 이들이 '교사-아이'의 역할에 의문을 품는 과정에 동행해보자고. 갇힌 틀에서 나오는 건 그들 자신의 의무이겠지만, 교사인 내가 망치질 정도는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배움을 위한 타인의 역할은 조력과 촉진일 것이라며. 난 그럴싸한 교사로서 이렇게나 실격이었다. 넓고 무거운 등으로 필요한 권위를 짊어질 수도 있었는데, 그건 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난 교사 대 학생이 아닌 새로운 관계양식을 함께 맺어나가는 가르침만을 지향하고 있었다. 예전에 만난 연장자가 그랬던 것처럼, 대등하게 존중하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 가르침은 어느 정도 실패했다. 관계는 상호 맺는 건데 나 혼자 선구자처럼 새로운 관계양식을 보여준다는 건 일방적이고 모순적이었으니까. 더구나 학교는 교사의 권위와 학생의 수동성으로 굴러가기에 그로부터 벗어나는 건 근본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상대에게 의아함만 선사한 듯했고, 그들은 틀을 깨고자 하는 의지와 당위가 없었다. 모범생같은 두 눈, 교사의 말을 들으면 좋은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과 행동들... 그런 반응은 어느 정도 무력감을 불러일으켰다. 내 권위와 명령을 기다리는 어느 청소년들의 태도 앞에서 슬기로운 제3의 제안같은 걸 떠올리지 못했다. 내가 조각해온 존중의 형태를 낙관적으로 확산하고 싶었지만 교사로 지낸 기간 동안 희망을 다소 접었다. 그래도 존중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그대로다. 단지 나의 영향력은 좁은 곳에서 내밀하게 이뤄질 때야 온전할 수 있다고 다시금 확인했을 뿐이다. 이것은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내 뜻이, 여러 곳에서 자꾸만 접히는 것을 또 목격했던 실패 이야기다. 그래도 난...난, 다시 한번 내밀하고 찌릿한 소통을 찾으려고 한다. 내일도 나이가 많고 적은 이들의 눈을 보고 대화를 청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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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교육-노동시장 넘나들기: 선취업 후진학자의 생애경로와 딜레마
1. 들어가며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매일의 일상 속 작고 사소해보이는 선택은 물론이고, 진학이나 직업 선택, 결혼과 같은 커다란 결정을 내리면서 살아가죠. 만일 여러분이 열여섯살이 되던 해 내렸던 한번의 선택이 향후 당신의 삶의 경로를 크게 좌우한다면 어떨까요? 더 나아가 그 선택에 예상치 못한 차별과 배제가 내재되어 있다면 말이죠. 여기, 열여섯의 나이에 특성화고등학교로 진학을 선택했던 청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충분히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진학을 선택했지만, 특성화고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는 좁고 얕기만 합니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교육 체계 안에서 ‘일반적인’ 교육과정과 분리돼 배제와 소외를 경험할 뿐 아니라, 코로나 19의 여파로 무색해져버린 현장실습과 취업난, 진학난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특성화고는 학생 개인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등학교*를 일컫습니다. 그러나 공고한 학력주의 사회 속, 특성화고는 단순 고등학교라는 일반적 특성이 아니라,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정체성을 덧씌우는 조건으로 작동합니다. 사회 진출 이후에도, 이 청년들에게 따라붙는 이름표가 있습니다. 바로 ‘고졸’입니다. ‘대학에 못 간 사람’, ‘일반계 고등학교에 갈 내신 실력에 못 미쳐 특성화고를 선택한 사람’이라는 편견도 함께 따라오곤 하죠. 결국 청년들은 일터에서 ‘20대 초반에 대학 졸업장을 가져야만 나머지 인생이 좌우되는 현실’, ‘대학 학력이 없으면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사회에서 피부로 느끼며, (울며 겨자먹기로, 또는 전략적으로) 대학 진학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선취업 후진학자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선취업 후진학자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생애경로의 다양성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고졸 청년은 마치 성공하면 안 된다는 듯이 ‘고졸 성공신화’라는 이름으로 호명되곤 합니다. 대학 재학생들에게는 '왜 대학에 갔느냐'고 묻지 않으면서, 대한 비진학 청년과 선취업 후진학자에게는 ‘왜 (그동안) 대학에 안 갔느냐’고 묻습니다. 선취업 후진학 제도의 일환으로 추진된 평생교육단과대 사업에 대해, 이화여대, 동국대에서는 ‘학위장사’라며 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던 적도 있죠. 에브리타임(대학교 커뮤니티)에서는 ‘야간대’, ‘미융대(미래융합대)’ 애들과 우리(주간대)는 입갤(대학 입학 점수)부터가 다르다며 댓글마다 분리정책(Apartheid)이 펼쳐지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여집니다. 선취업 후진학 ‘제도’는 있지만, 여전히 이 제도 속에서 살아가기(go through)를 선택한 ‘사람’들의 ‘삶’은 녹록치 않습니다. 대학교 역시 아직은 비전통적 학습자에 대해 그리 친화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취업 후진학 전형을 운영하는 대학은 여전히 소수이고, 전공도, 교수진도 매우 한정적입니다. '가장 보통의 대학'을 찾아 대학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대학에서는 다른 형태의 차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대학 비진학 청년일 때에는 대학 진학 청년들에 비해 소수라는 이유로, 선취업 후진학자가 되어서는 일반적인 대학생에 비해 소수라는 이유로 관심과 담론에서 배제되어 왔던 것이죠.  그래서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는 선취업 후진학 제도에 대한 정책 타당성 연구가 아니라, 선취업 후진학자의 삶에 대한 경험적 연구입니다. 교육과 노동시장이라는 두 지대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이 청년들의 삶에는 어떤 딜레마(모순)가 놓여있을까요. 이 딜레마는 결코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네 교육이 처한 사회적 딜레마 그 자체라는 사실을 주지하면서 말이죠. * 본 연구에서 '선취업 후진학자'란 a. 특성화고등학교 또는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졸업자로서 b. 산업체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자가c. 지원할 수 있는 대학 특별전형인 '선취업 후진학 전형', '재직자 전형'을 통해 후학습을 경험한 성인학습자로 정의합니다.[문제 깊이읽기](Youtube) 씨리얼. 특성화고 학생들이 정부에 따질 수밖에 없는 이유. 2020. 11. 28. https://www.youtube.com/watch?... (Youtube) 씨리얼. 25년차 특성화고 선생님이 말하는 특성화고의 실체. 2020. 12. 11. https://www.youtube.com/watch?...(Aritcle) [특성화고, 교육과 노동의 중간 지대에서-3]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2021.11.07. https://chunchu.yonsei.ac.kr/n...(Aritcle) 갈 길을 잃은 특성화 고졸 취업생들. 2019.12.18. https://www.kueherald.co.kr/ne... [가설 들여다보기] 2. 연구 목적 그리하여,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는 비전통적 성인학습자인 선취업 후진학자의 삶과 학습경험을 이해함으로써, 생애경로로서 선취업 후진학의 의미와 모순점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생애경로’가 사회구조와 개인의 선택 속에서 교차적으로 만들어지는 시간의 연속체이듯이, 학습생애경로 역시 학습자 개개인의 자율적 선택과 학습자가 놓여있는 거시적 맥락(교육정책과 제도, 학습문화 및 사회문화적 이데올로기 등) 간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됩니다. 선취업 후진학자의 학습경험과 학습경로는 개인적 학습의 의미를 넘어서서, 체계화, 조직화된 교육정책과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취업 후진학자가 고등학교에서, 일터에서, 나아가 부푼 꿈을 가득 안고 진학한 대학에서 마주한  이중구속적 상황이 있다면, 그건 곧 사회구조와 교육제도 안에 담긴 모순율일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연구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선취업하고, 재직자 전형을 경유하여 고등교육체제로 이행(후진학)한 성인을 연구참여자로 삼으며, 이들의 학습경험에 관한 질적연구를 수행할 계획입니다. 본 연구가 질적연구를 통해 선취업 후진학자의 학습경로와 학습경험이라는 미시적 단위를 포착한다고 해서, 이것이 교육 체제와 선취업 후진학 제도라는 구조적·거시적 단위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선취업 후진학자가 살아온 생애경로와 지닌 학습경험의 틀이 제도적 맥락 위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필요에 의한 선취업 후진학 제도의 도입은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학습생애경로를 배태했고, 이는 개인에게 사회문화적으로 장려 혹은 배제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먼저 선취업 후진학 경로를 살아내는 선취업 후진학자의 학습경험과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교육 제도와 학습자의 경험이 교차되는 지점에서의 ‘사회적 모순’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구체적인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3. 연구 문제 첫째, 선취업 후진학자는 ‘어떻게’, 그리고 ‘왜’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학습경로에 진입하게 되는가?  이 질문은 선취업 후진학자가 자신의 학습생애경로를 선택하게 된 계기와 맥락, 그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삶의 특정한 목적을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① 특성화고등학교로의 이행단계 ② 선취업으로의 이행단계 ③ 후진학으로의 이행단계의 맥락을 시계열적으로 구분하여 묻고자 합니다. 이 질문의 해석과정에서 연구자는 연구참여자가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학습경로를 어떻게 의미화하고, 어떠한 목적을 위해 이행하고 있는가에 주목합니다.  둘째, 선취업 후진학자들이 마주하는 학습경로상의 모순과 학습경험의 딜레마는 무엇인가? 선취업 후진학 경로 안에서 경험한 학습경험의 특징과 어려움을 구조화합니다.  셋째, 선취업 후진학자들의 학습경험과 학습경로 속에 내재한 모순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결론적으로 선취업 후진학자의 학습경험이 작동하고 있는 구조성, ‘선취업 후진학’ 구조의 의미와 모순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계획입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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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는 과연 평등할까?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을 중심으로
1. 시작하며  활동가로서의 시작 : 어떤 부끄러움에서  안녕하세요. 더 나은 교육과 사회를 위한 연구활동가를 꿈꾸는 박소영입니다. 저는 교육이란 한 사람의 지속가능한 삶을 일구는 중요한 요소이자 나아가 한 사회의 성숙과 발전에 기여하는 필수적인 영역이라는 믿음 아래 오랜 시간 교육 분야에 뜻을 두어 온 청년입니다.   교육이란 영역을 경유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던 저는, 교육이란 무엇이며 이  사회에서 교육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습니다. 그건 아마 제가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 교육의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아주 많은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교육이 지닌 힘이 소수의 운 좋은 아이들의 것이 아닌, 다수의 보편적인 아이들의 일이 되기를 바라왔습니다.   그렇게 학부생 시절, 교육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실천적인 활동을 통해 당시의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에 다가갔던 저는 나름 제 자신이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성실히 고민하는 청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를 부끄럽게 만든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경험의 양극화”란 단어를 마주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제주라는 섬에서 자라오며 자신이 겪어왔던, 그렇지만 홀로 분투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과 기회의 격차 문제를 장학 사업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존경하는 이의 도전, <비상한 상상>*으로부터 처음 접하게 된 이 단어는 제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평생을 수도권에서 살아온 제 삶에서는 지역에 의한 경험과 기회의 격차라는 문제가 한 번도 ‘문제’였던 적이 없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지하철로 1-2시간 이내로 서울에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문화 생활, 교육이나 강연은 제게 언제나 ‘접근 가능한’ 기회였습니다. ‘물리적으로 어려워서’ 이 기회들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던 존재들도 있었겠구나, 뒤늦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기의 경험이 이후의 삶과 스스로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지니는지 알고 있기에 이 문제에 더욱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제가 주목하지 못했던 불평등이 존재했음에 부끄러웠고, 이 문제를 장학사업과 연결하여 경험의 확장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자하는 이들에게 존경심마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역격차라는 문제를 접하게 될 때면, 미디어 등에서는 직접적으로 주목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경험의 격차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지방 출신 친구들을 만나면 혹시 친구의 학창시절에도 엇비슷한 마음과 경험이 있었는지 조심스레 묻곤 했고, 일련의 이야기를 듣고 모아보니 이는 지방 출신 친구들이 얼마간 공통적으로 느끼던 문제였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 문제는 분명 해결되어야 하는 사회적 문제이나 아직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못해 개인이 감당하고 감내해온 문제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실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마음에 이르자 저는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비상한 상상>이 하나의 유의미한 시작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아직 세상이 주목하지 못한 문제를 우리의 시각에서 정의하고 풀어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저는 용기를 내어 해당 단체의 문을 두드려 감사하게도 2022년 하반기부터 함께 홛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비상한 상상  : 지방 청소년의 경험의 양극화 및 기회의 격차 해소를 위한 수도권 꿈여행 장학 프로젝트. 시즌 1~3동안 총 13명의 장학생을 배출했고, 35곳 정도의 파트너 기관/단체와 함께 했다. “자신의 세계가 부서지고 깨어지는 경험이 한 개인의 성장과 도약에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를, 그러나 지방의 청소년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뭐라도 해보려고 모인 마음들에 힘입어” 앞으로도 더 많은 일들을 도모해보고자 한다. (비상한상상 호스트 및 디렉터, 양소희 님 SNS 中) 📜 스물 다섯, 인생 첫 장학생을 선발하기로 했다 : 비상한상상의 설립 배경 및 활동 과정은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양소희님이 쓰신 해당 글을 참조하시면 더욱 선명히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연구활동가의 시작 : 문제를 문제로만 두지 않는 우리의 움직임에 힘을 더하기 위해 “꿈을 향한 도전에는 경계가 없어야 하니까.”. 이 믿음 아래, <비상한상상>은 우리의 문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고민과 시도와 도전을 이어나갔습니다. 제주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물할 수 있을까, 어떤 어른과의 만남과 대화를 주선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필요로 할까. 또 어떤 청소년에게 이 기회가 가닿아야 할까. 많은 것들을 고민하며 꿈여행을 설계하고, 장학생을 선발하고, 그들과 꿈여행을 다녀오고, 다시 지역사회에 돌아와 청소년들이 그들만의 문제의식을 실현해내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의식에 응답하는 청소년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슬퍼지곤 했습니다. 자신이 어느 곳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에 대한 접근성이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니. 교육에 희망을 거는 사람으로서 지역의 문제가 현실로 와닿은 순간이었습니다. 이내 저는 이렇게 많은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이 문제가 사실인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사이의 경험과 기회의 차이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나 결과물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경험과 기회라는 단어가 주는 추상성과 거대함 때문일까 싶어 범위를 좁혀 검색했을 땐, 지역격차에만 집중했거나 교육문제에 집중하는 등 여러 하위요소들에 대한 제한적인 연구만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경험과 기회 그 자체가 얼마나, 어떻게 차이나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결과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경험의 양극화’라는 단어가 새로웠던 것처럼, 아마 이것이 미처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한 번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동료들은 그럼 우리가 해보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이 겪는 경험과 기회의 격차의 실태가 어떠한지 우리가 알아보자고 말입니다. 실제적으로 아이디어가 나오자 너무 중요하고 흥미로운 작업이 되겠다며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반응했습니다.  비수도권 10대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경험과 기회는 무엇이며, 경험과 기회의 격차라는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측정할 수 있을지 열린 아이디어를 던지며 워크숍마저 뚝딱 진행하였습니다.  우리의 문제의식이 더 많은 공감과 동의를 얻기 위해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문제의 논의점을 잘 준비하고 마련한다면, 그렇게 우리의 문제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면, 분명 사회적으로 이 문제에 주목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작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연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도 문제에 대한 진심 하나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를 문제로만 두지 않는 것. 이를 같이 해결해보자고 얘기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 활동의 가장 큰 매력과 힘을 다시금 느끼며 활동에 연구를 더해 우리의 이야기를 보다 탄탄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비상한상상> 시즌 3에서는 리서치팀을 꾸려 이 문제에 집중해보자 이야기하였고, 과분하게도 팀을 리드하는 자리를 맡아 차근차근 팀의 과업과 역할을 정리해나갔습니다. 그렇게 활동 속에서 연구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 기존의 연구와 그 한계청소년의 삶 속의 이야기를 향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음에도 팀의 리드 자리까지 맡겠다 용기 낼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던 ‘연구’라는 일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여기’의 어떠한 문제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 모르는가를 명확히 답하는 그 과정의 엄밀성과 이를 밝혀냄으로써 펼쳐지는 추가적인 탐구와 대안의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저로 하여금 연구라는 단어에 반응하게 만들었던 듯 합니다.  <비상한상상>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 활동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면, 연구 꿈나무로서 저는 이 작업의 학술적 토대를 고민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안고 <연구원정>의 프로젝트 내에서 이 문제를 추가적으로 디깅해보자는 나름의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역격차 그리고 경험과 기회의 격차, 그 교차점에 서서 비수도권 지역 청소년의 경험과 기회 문제. 이 문제는 여러가지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저는 일차적으로 ‘지역 격차’와 ‘경험과 기회’라는 것의 교차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에 저는 우선 ‘지역격차’, 그리고 ‘경험과 기회의 격차’를 정의하는 일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지역격차 : 조명래(2013)에 따르면, 지역격차란 지역불균형으로도 표현되며 집단 간, 계층 간, 부문 간 사회적 기회, 자원, 권력이 불공평하게 배분된 상태를 지칭하는 사회적 불평등이 지역 간에 골고루 분포하지 못해 현격한 차이가 발생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지역격차는 사회적 불평등을 포함하여 지역이란 공간범주를 기준으로 나타나는 포괄적인 차이 혹은 불균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역격차가 문제가 되는 이유로, 지역간 기회, 자원, 권력의 불균등 분포가 구성원에게 ‘불필요하고 부당하게’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을 겪게 하기 때문이라고 짚어 냅니다.       지역을 이유로 삶의 기회를  불필요하고 부당하게 경험하는 사회적 불평등. 이 정의를 알고 나니 그러한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 청소년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고, 청소년들의 삶에서 지역격차는 어떠한 양상으로 일어날까 더욱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스텝으로 경험과 기회라는 것을 규정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이 단어들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거대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발화하고 다니던 ‘경험’과 ‘기회’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예상치 못하게, 너무 이른 순간부터 난관에 봉착한 느낌으로 적잖이 당황하고 며칠, 아니 몇 주간 고민스러웠지만, 이내 방법을 찾았습니다. 제겐 함께 고민할 동료들이 있었거든요.  "개개인마다 다양한 뜻으로 소화하고 정의할 수 있을 경험과 기회를 하나의 완결된 의미로 파악하긴 어렵더라도, 경험과 기회의 요소를 우리가 정리해볼 수 있진 않을까?" 이에 저희는 청소년들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질 몇 가지 경험들을 떠올려 이를 범주화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카테고리는 문화자본, 사회자본, 교육기회, 진로 체험 기회였습니다. 물론 이것들이 청소년들의 삶 속 모든 경험과 기회를 포괄하진 못할 것입니다. 아주 작게는 대중교통 이용 경험, 크게는 의료 경험까지. 경험과 기회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 하니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당장 청소년의 삶에서 주목해보고 싶은, 또 주목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를 크게 4가지로 잡아보았습니다. 이 중의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에 대한 간략한 개념은 아래와 같습니다.  문화자본 : 문화 자본은 학자들에 의해 다소 엄격하게 사용되었지만, 각 개인들이 사회의 높은 수준의 문화를 후천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면 그들은 문화 자본을 소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자본 : 사회자본이란 개념은 다차원적이고 복합적 개념이나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사회 안에서 형성되는 인간 네트워크의 집합적 가치의 총합이라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김상준(2004)에 따르면, 사회자본은 보다 포괄적인 사회 관계 속에서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연결망과 집단 소속이 당사자에게 주는 다양한 사회적 기회 자원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용어들로 구체화 해볼 수 있는 청소년의 경험과 기회는 왜 중요할까요? 청소년기에 한 사람이 마주하는 경험과 기회는 그의 성장과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진로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들여다보자면, 청소년기의 ‘경험’은 대학 입시 수시 전형 중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청소년기의 경험과 기회가 한 사람의 성장, 나아가 진학, 진로, 취업, 그리고 이후의 삶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학술적인 논의 외에도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이 지금의 여러분이 되기까지 중요했던 경험 한 두 가지 정도는 떠올리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런 경험과 기회가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에 의해 불평등하게 배치되는 것을 문제로 여긴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교육학은 왜 이런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교육 분야를 배우고 발 딛고 서있는 제게 들었던 또 다른 의문입니다. 제 연구가 또 주목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교육격차는, ‘학교 환경의 차이, 지역 환경의 차이, 사교육을 받는 정도의 차이, 학부모 지원의 차이, 학업성취의 차이 등 교육과 관련된 여러 형태의 차이’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이를 주된 연구 주제로 삼는 교육사회학이라는 분과 내 다양한 연구 논문들은 주로 학업성취 결과 분석을 위주로 교육격차를 확인하고 접근해왔습니다.  교육사회학 영역에서 교육평등은 교육 기회, 교육 과정, 교육 결과의 세 가지 차원에 대해 논의되지만 현행 연구들은 학업성취라는 교육의 결과 측면에서 교육격차를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측정 및 비교 가능한 학업성취도의 특성 때문일 수도, 학업성취가 한 사람의 교육성취, 나아가 직업 지위와 이후의 삶에서의 소득수준 등 다양한 것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증적인 연구 분석 결과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청소년들이 교육기회와 교육과정에서 경험하는 차이를 드러내고 규명하는 연구는 아직 부족한 듯 합니다. 우리의 연구가 현행 연구에서 아직 부족한 지점을 직접 포착하며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3. 연구의 구성 그래서 저와 제 동료들는 다음과 같은 연구질문을 세웠습니다.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이 겪는 경험과 기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격차가,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가?” 이제까지 교육격차 연구에서 이루어졌던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의 차이’를 넘어 ‘교육기회’의 차이와 ‘교육이 이루어지는 조건과 과정’에서의 차이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실제 청소년들의 삶에서 경험과 기회가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의 경험이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보다 주목하고자 한 연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세상에 없던 청소년들의 경험 실태조사를 기획하게 됩니다. 바로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의 격차 탐구 실태조사를 말이죠. 서베이 기법을 활용하여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각 100명의 청소년들의 일상적 경험과 기회를 파악하고자 하였습니다. 앞서 구체화한 지역에 따른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를 파악할 수 있는 4가지 하위 분야에 대한 문항을 설계하여 배포하기로 하였습니다. 각 100개의 응답은 일반화하기에는 부족한 표본이지만,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청소년들의 응답을 수집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실태조사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서 드러났는지 실질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한 질적 연구 또한 동시에 준비하였습니다. 심층 인터뷰 기법을 통해 제주에서 서울로 상경한 청년 12인을 대상으로 인터뷰 하여 상경 과정을 역추적해보고자 하였습니다. 비수도권 청소년으로서의 성장해온 과정에서 어떤 유형의 부재와 결핍, 격차를 인지하거나 감각하였는지 파악하고자 하였습니다. 전문 연구자 그룹이 아니었기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부족함을 메워보고자 질적 연구를 준비하며 팀원들과 심층 인터뷰에 도움을 주는 책을 찾아 읽으며 공부하던 날도 스쳐지나가곤 하네요. 4. 연구 결과 연구활동가의 특혜 : 나의 문제의식을 탐구해 볼 현장을 만날 수 있다는 것 활동과 연구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시작한 활동은, 제게 정말 이 연구를 수행해 볼 기회를 선물로 안겨주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 사업 선정 결과, 실제로 이 연구를 직접 수행해볼 기회와 자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이 연구는 연구를 수행하고 결과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지원해줄테니 마음껏 상상하고 시도하라는 디렉터님의 이야기가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어요.  연구 설계 : 3달이면 하나의 연구를 작게나마 시작해볼 수 있다고 어떻게 설계했냐구요? 2023년 10월 한 달간 팀원들과 열심히 머리를 맞대어 연구의 큰 얼개를 짜고, 구체적인 문항과 질문을 상상하고 설계하며 설문지와 질문지를 만들었습니다. “연구자의 기발한 아이디어 만큼이나 값진 것이 연구할만한 좋은 현장을 만난 것인데, 좋은 기회를 갖게 되셔서 기대가 됩니다.”라는 코멘트로 응원과 격려를 전해주시던 <연구원정> 동료 선생님의 말씀처럼 상상하고 구상했던 연구를 실제적으로 수행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연구 수행을 앞둔 시기에 더욱 더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결과가 모일까, 우리의 고민이 현실일까- 하는 궁금증과 설렘을 안고 11월부터 한 달 간 설문지를 배포하였고, 눈덩이 표집방법으로 질적 연구를 위한 인터뷰이를 찾고 인터뷰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렇게 성실한 홍보와 인터뷰의 시간을 보낸 뒤 12월, 연구 수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기대에 약간 못 미쳐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열띤 홍보의 결과로 얻은 소중한 131건의 서울/제주 청소년들의 응답과 12인의 인터뷰. 우리 손으로 만들고 얻어낸 이 결과가 너무 소중했습니다. 그렇게 12월 한 달 간 팀원들과 이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것이 유의미한 결과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구 결과 : 경험과 기회는 과연 평등했을까요? 과연 연구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우리의 예상보다 흥미로운 결과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양적연구 결과인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의 경험과 기회의 격차 실태조사에서는 서울과 제주 청소년들이 뚜렷하게 대조적인 응답을 보이는 문항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질적연구에서 인터뷰이들의 발화는 이를 뒷받침하곤 했습니다.  문항 범주별로 양적 연구의 대표적인 결과들을 소개하며, 관련된 질적연구의 응답이 있다면 덧붙이며 설명하겠습니다.  [문화자본]  이동의 한계에 따른 문화자본의 소유, 접근의 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생활을 통해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연결된다는 문항에서 서울 청소년들이 제주 청소년들에 비해 긍정적인 답변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관심 분야, 취미 생활등을 위한 다양한 정보의 접근성 차이가 컸습니다. 서울 청소년은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긍정 반응이 높았던 반면, 제주 청소년은 긍정 응답 비율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 “저는 교육 뿐만 아니라 문화 생활도 꽤 크다고 생각 하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좋아하는 가수가 있었는데 이제 콘서트를 가고 싶은데 가려면 비행기 타고 이제 숙박까지 생각을 하니까 콘서트도 못 가고 막 이런 경험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응답자 F) - “중학교 때인가 코엑스를 방문했었는데, 그런 큰 문화시설을 접하면서 서울이 되게, 서울에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아요.” (응답자 K) [교육기회 파트] 교외에서 관심있는 분야의 강연, 멘토링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청소년의 수는 제주-서울 비슷하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청소년의 수는 제주가 현저하게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1회 이상 경험해본 적 있는 청소년들이 존재함을 고려했을 때, 완전한 결여-단절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진학 혹은 취업 정보 파악에 관한 문항 답변은 확연히 상반된 결과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제주 청소년은 이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청소년의 비율이 72.8%이었지만, 서울 청소년은 단 33.3%였습니다. - “요즘 제가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되게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막 탐방을 하더라고요. 저한테 와서 막 인터뷰 해도 될까요? 이러면서 오기도 하고, 너무 예쁘다 생각하는데 한편 정말 저는 그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거든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대학 탐방을 가나는 거를 생각도 못했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까 이렇게 애들이 잠깐이나마 대학의 문화를 느끼고 또 그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학생들의 열정을 키우는 데 되게 도움이 많이 됐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 서울에서 지냈다면 아까 제가 관심있다고 말씀드렸던 그런 교육 불평등에 대한 생각이 지금처럼 강하지는 않았겠다.” (응답자 F) - “저는 연극 전공이었거든요. 그런 연극사들을 다 그냥 걔네들(수도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동기들)은 다 배웠대요. 고등학교 때 그래서 그런 뭐 기본적인 연기 수업이라든지 그런 흐름들을 자연스럽게 그들은 익힐 수 있어서 저는 그게 조금 부러웠어요. 경험이 많았을테니까 아무래도 서울에 살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요?” (응답자 H) [진로 체험 기회] 서울과 제주 청소년 모두 관심 직업 분야에 대한 관심도와 다양성은 동일하지만, 실제로 관심 직업 분야 교육-체험-교류의 기회를 가졌는지 여부에서 제주-서울 청소년간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서울 청소년의 경우, 관심 진로분야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음에 해당하는 응답 비율이 25.9%인 반면, 제주 청소년은 43.3%로 두 배에 조금 못 미치게 높았습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서울 청소년의 경우 교육-체험-만남의 횟수가 상승하는 모양의 그래프였지만, 제주 청소년의 경우는 아예 없거나 많은 양상을 띄며 제주 내에서도 양극화 되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회에 대한 주관적 인식 부분에서는 제주-서울 청소년의 인식이 눈에 띄게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 청소년은 75%가 넘는 비율로 기회가 없다고 느낀 반면, 서울 청소년의 경우 60%에 육박하는 수가 기회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 “(시험을 준비하는데) 그거에 대해서 면담할 선배가 없다는 거. 그래서 이게 다르구나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고. 서울은 좀 다르구나를 더 본격적으로 느낀 건 저희 회사 와서도 이렇게 진로 관련된 고민을 나누는게 되게 활발한 느낌이에요.” (응답자 A) - “서울에서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면 뭘 느낄 수 있냐면,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인맥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런 그 사람들과의 여러 가지 경험을 나눌 수 있고 사실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나중에 이제 사회에 진출을 하고 이러다보면 비슷한 분야 또는 다른 분야에 대한 이야기들을 굉장히 많이 들을 수 있어요.” (응답자 G) [사회자본] ‘현재 거주 지역에서의 기회의 부족과 외부 제약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지’에 대한 응답 결과는 실태조사 전반을 통틀어 가장 뚜렷하게 패턴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제주 청소년의 경우 약 85%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서울 청소년의 경우 약 60%의 청소년이 아니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지역에 대한 애정도를 묻는 질문의 경우, ‘애정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의 비율은 제주(76%)-서울(87%) 모두 높았으나, 앞으로도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응답은 완전히 반전되어 나타났습니다 .(제주 “아니다” 63.8%, 서울 “그렇다” 68.5%) - “저는 만약에 상경을 할 학생들이 있다면 이제 고3 학생들이나 이런 친구들 싹 다 모아놓고 교육을 하거나 멘토를 매칭해서 좀 도와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저는 그 모든 걸 혼자서 구글링하면서 찾았기 때문에. 제주도 출신으로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 꽤 있는데 그들의 경험이 공유가 되고 있지 않은 거에 대한 좀 안타까움이랄까. 다 리셋이 되는 것 같아요. 경험이 누적이 돼서 쌓이는 게 아니고 리셋. 다시 또 처음 시작되고. 이게 좀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응답자 G) - “(다시 제주로 돌아갈) 생각이 없지는 않아요. 나중에 이제 제가 정말 유명해져서 내가 어디에 있든 나한테 작업 의뢰하러 올 정도가 된다면 당연히 전 제주도 가서 살고 싶어요. 근데 이제 그게 아니라면은 이제 열심히 영업을 해야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살아야 되는 거고. 위치가 중요하지 않게 되면 제주도에 살게 될 것 같아요.” (응답자 C) 연구결과의 종합 :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발견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반화하기엔 적은 수의 응답이지만, 지금 모인 자료들을 종합해보더라도 <비상한상상>이 주목하고 있던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 사이의 경험과 기회에 어느 정도의 차이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 청소년들이 서울 청소년에 비해 문화, 교육, 진로체험, 그리고 사회자본으로 설명될 수 있는 여러 경험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으며 특히나 경험과 기회의 정보나 접근성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회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 부분이 확연히 차이 나는 점에서, 막스 베버가 계급을 나누는 인식으로 개인의 생활 기회(Life Chance) 정도에 따라 구분한 것을 비추어 볼 때 해당 응답은 접근성 제한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해볼 만 합니다.  이러한 경험과 기회의 불평등이 단기적으로는 진학에, 나아가 시장 위치의 차이를 어떻게 만들어낼지는 추가적인 분석 및 연구로 남겨둘만하다고 생각합니다.  5. 결론 지금까지 연구활동가로서 저와 제 동료들이 수행한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의 격차를 탐구해온 과정과 결과를 보여드렸습니다.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은 성장의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차이를 겪는지, 그 차이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탐구해보고자 했던 우리의 시도는 제주-서울 청소년 131인의 응답과 제주에서 자라 서울로 상경한 청년 12인의 이야기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의 예상처럼 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은 문화, 교육, 진로 체험, 그리고 사회자본 모두에서 수도권 청소년에 비해 경험 및 기회에 대한 정보의 양, 접근 기회의 차이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록 우리는 이 문제를 더욱 더 성실히 알리고 풀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지역에 의한 한 사람의 경험과 성장이 차이가 존재하며 개개인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 돌파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경험과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까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이따금 이 연구가 지닌 한계에 멈칫하곤 했습니다. 전문적인 연구자가 설계한 게 아닌 만큼 이 연구는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연구 결과를 일반화할 만큼 많은 수의 표본을 모으지 못했으며, 추상적인 개념인 경험과 기회를 구체화 하는 과정에서도 어설픈 지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문항들 역시 해당 문항이 오롯하게 경험과 기회라는 변수만을 측정할 수 있도록 통제되지도 못했습니다. 연구는 보다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 역시 많이 배울 수 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조금 더 앎이 풍부했더라면, 조금 더 능숙했더라면, 조금 더 섬세했더라면, 그리고 조금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이 문제를 보다 잘 구성해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는, 그럼에도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내 청소년들의 경험과 기회의 격차를 가시화 하는 중요한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 연구는 지역격차 혹은 교육격차, 어쩌면 경험과 기회의 격차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에게 또 다른 연구의 시작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교육격차 그리고 교육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지닌 저는 경험과 기회의 격차가 한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더욱 궁금해졌고, 이러한 경험과 기회의 격차를 공공이, 그러니까 공교육이 해결할 수는 없을지 보다 많은 물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디 많은 분들에게 이 문제와 연구가 가닿아 더 많은 논의들이 활발히 생산되고 토론되길 바랍니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이 문제에 고심하며 몰두했던 지난 시간들은 그 자체로 값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 문제에 대한 진심과 이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던 사람들의 선의와 열정에 힘입어 가능했던 이 연구가 앞으로도 더 발전되기를 바라며 마치고자 합니다.  운 좋게 팀과 단체가 활동한 내용을 대표로 정리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제 개인이 수행한 게 아닌, <비상한상상>이라는 반짝이는 단체가 함께 수행한 결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팀의 연구에 학술적 토대를 고민하고 싶다는 욕심이 과연 얼마나 충족되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개인적인 고민만으로는 결코 실현해낼 수 없는 결과를 함께 만들어준 <비상한상상>에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연구와 현장에서 더 나은 세상을 진심으로 바라는 세상의 모든 연구활동가를 응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조명래(2013). 격차의 새로운 양상과 통합적 균형 발전. NGO연구  제 8권 제 2호. 한국 NGO 학회. 이정화(2014). 문화예술교육의 이해. 커뮤니케이션 북스. 강석(2016). 커뮤니케이션과 자본. 커뮤니케이션 북스. 김상준(2004). 부르디외, 콜만, 퍼트남의 사회적 자본 개념 비판. 한국 사회학. 38(6), 63-95. 박주호, 백종면(2019). 교육격차 실증연구의 체계적 분석. 한국교육문제연구, 37(1), 2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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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수학...쥐어짜기 수학 교육의 한계
프랑스에 살면서 관찰하고 느꼈던 이웃의 모습을 떠 올려 본다. 아이들은 늘 공부보다 놀기에 바빴다. 동네에는 개구장이 아이들이 많았고, 노인들은 길에 서서 이웃들과 하루종일 수다를 떨었다. 직장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몰려다니며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 떠들곤 했다. 출근했다고 한 잔, 점심먹고 한 잔, 달콤한 각설탕을 찍어 먹는 에스프레소는 그야말로 수다에 꼭 필요한 존재였다. 각설탕이 나왔으니 각설하고….  프랑스는 수학 잘하기로 소문난 나라다. 지금까지 총 64명의 필즈상 수상자 중 프랑스인이 받은 메달은 총 14개다. 물론 숫자로만 따지면 미국이 21개로 당연히 제일 많다. 하지만 미국의 인구가 5배나 많으므로 (미국 3억3천만, 프랑스 6천7백만), 인구 대비로 따지면 프랑스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야말로 원탑이다. 수학이나 물리교과서에 나오는 프랑스 수학자의 이름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미스터리 같은 통계도 있다. 바로 수학영재를 뽑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의 수상자 명단이다. 여기서는 중국이 단연 원탑이다. 러시아와 미국도 강하다. 우리나라 역시 강하다. 우리나라는 2012, 2017, 2019년 참가자 전원이 금메달을 받은 나라로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수학 강국이다. (이쯤에서 미국의 올림피아드 메달이 아시아계 학생들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살짝).  그럼 뭐가 미스터리인가? 바로 프랑스다. 눈을 씻고 봐도 프랑스의 수학올림피아드 성적은 상위권에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이 금메달을 168개나 가져갔고, 미국이 137개, 그리고 1988년에나 되서야 참여하기 시작한 대한민국도 86개의 금메달이 있는데,  자그마치 1967년부터 참여해온 수학 원조의 국가, 프랑스의 금메달은 고작 26개에 지나지 않는다. 가히 OECD 최하위 수학 성적의 나라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통계인가. 이 두 개의 통계를 연관지어 뭘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애들 쥐어짜는 수학교육 방식이 고등학교때까지는 어찌 어찌 잘 작동하지만, 그 이후 학문의 세계에서는 안 통한다는 점만 얘기하고 싶다. 덧) 여러번 언급했지만 물리에 관해서도 비슷한 통계가 있다. 일본은 물리 올림피아드 노-메달 국가로 유명하다.  반면 우리는 물리 올림피아드 최상위 국가로, 수년째 올림피아드 금메달을 휩쓸고 있다. 노벨상 수상 실적은 정반대다.  잠정적인 결론: 애들 쥐어 짜지 말자. 고등학교때까지 놀게 내버려두고, 대학 들어 온 다음부터 쥐어짜자... 작성자: 박인규(서울시립대학교 물리학과)출처본 글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ESC에서 운영 중인 과학기술인 커뮤니티 '숲사이(원문링크) '에 등록된 정보입니다.ESC: https://www.esckorea.org/숲사이: https://soopsci.com/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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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다. -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인권, 노동권, 정치기본권이 필요하다.
서울 S 초등학교 교사가 숨을 거둔 지 100일이 지났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여겼던 1학년 담임이자 1년 차 신규교사였던 그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모든 자원이 집중된 부유한 도심지의 학교 안에서 고인의 고통을 덜어줄 지원체계가 전혀 없었던 것일까? 7월 18일 이후 부조리한 교육 현장을 바꾸지 못했음을 성찰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학교의 벽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커다란 벽은 개개인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애도의 공간이 되었다. 무수한 포스트잇을 마주한 채 눈물짓는 이들 옆에서 필자 또한 오랫동안 쌓아온 체념과 무기력증을 성찰했다.   그들은 거리에서 모였다가 검은 점으로 흩어졌고 또다시 움직여 커다란 검은 물결을 일으켰다. 고인이 온전히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힘겨운 고통에 다가가며,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고, 시민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무려 7명의 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지난 10일, 경찰은 고인의 사망 경위 수사 과정에서 범죄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고인의 죽음은 개인의 극단적 선택으로만 볼 수 없다. 이는 분명히 사회적 고통에서 비롯된, 사회적 타살이었다. 취약한 위치에 놓인 교사가 노동 현장에서 고립되었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일자리와 삶의 질이 양극화된 현실 속에서 노동은 소득의 유일한 수단이다. 직업 서열이 경제적 사회적 계급을 결정하고 불평등한 상호 관계 속에서 개인의 자존감과 더불어 삶의 존엄성이 수시로 침해받기가 쉽다. 동시에 개인의 풍부한 삶의 경험은 노동 현장에서 끊임없이 ‘성과 및 결과’로만 평가받는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에서 생존과 노동은 너무나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노동자가 사회적 안전망 및 돌봄의 공백 속에 위치할 때, 그가 겪는 소외와 고통은 정량적인 수치로만 납작하게 표시될 뿐이다. 동시에 정부와 국가는 이 고통을 개인의 책임에서 비롯된 특수한 사례로 여기려고만 한다. 게다가 개인이 노력을 통해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슈퍼맨’ 서사까지 더해지면 어느새 정부와 국가의 사회적 책임이 없는 것 또한 당연해진다.   교사의 죽음을 초래한 원인에 대한 분석이 토론장 바깥으로 쉽게 밀려나 버렸다. 언론은 교사를 향한 무분별한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고발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교육부도 비도덕적인 학생과 양육자의 가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안을 급하게 추진했다. 학생과 양육자의 의무와 책임 강화를 명시한 법제도, 교사의 교권 강화라는 명목으로 학생 인권 침해를 조장하는 생활지도 고시안, 교권 관련 법률지원 및 치유 상담 지원 제도 등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토론장 속에서 정작 학교 교육 당사자의 목소리는 소외되고 심지어 배제되고 있었다. 특히, 지난 8월 8일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 마련을 위한 포럼’과 8월 10일 ‘교권회복 및 보호를 위한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 공동주최 토론회’에서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발제자와 청중의 입에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악의적인 비난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 속에서 그 누구도 발언을 제지하지 않고 구성원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목격했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 발제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현장 교사를 교육부 직원이 물리적으로 제지하고 포럼장에서 끌고 나갔다.* 정부와 교육부는 학교현장 ‘교육’이 삶 대신 죽음을 양산하는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교육 당사자인 학생 및 현장 노동자와 함께 원론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할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 그로 인해 그들의 공론장은 비민주적이었으며 폭력적인 인권 침해가 난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논의를 되돌려 원점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양육자와 학생의 악성 민원을 양산하는 사회적 구조부터 성찰해야 한다. 개인에게 감당하지 못할 사회적 책임을 사회에게 묻기보다는, 다른 개인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것으로 모든 갈등과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는 의도가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무한 경쟁 사회에서 개인은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토론과 숙의를 힘겹게 여기기 쉽다. 외부적 개입이나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겪을 위험과 손해를 감당하는 것조차 극도로 꺼릴 수밖에 없다. 양육자도 교사도, 학생이 원하는 좋은 삶과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눌 여유를 전혀 갖지 못한다. 성적보다는 타인에게 존중받는 일, 더 나아가 교우관계, 학교 내의 다양한 소통에 신경을 쓸 여력조차 없다. 좋은 삶을 위한 연대보다는 나 자신만, 우리 가족만 잘살면 된다는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를 선택하는 것이 더 높은 지위와 소득을 획득하는데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민주국가 교육과정의 목표에서 교육은 가정, 경제, 문화적 배경과 관계없이 개인이 사회관계를 맺으며 일상적인 연대를 통해서 민주시민 역량을 체득하고 실천해나가는 현장이다. 하지만 교육 구성원들이 지향하고 바라는 ‘교육’의 모습은 너무나 양극화되어있다. 권력 위계로 기울어진 논의를 평등하게 바꾸려면, 더욱 다양한 위치성을 지닌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촘촘하게 듣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개인은 사회적 관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개인이 정부 및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면서 각자도생의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사회적 연대를 통해 문제 해결하는 대신에 적극적 또는 극단적 자기 계발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여유를 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오로지 생존을 보장하는 물질적 기반(높은 성적, 학벌, 전문직, 부동산 획득 등)을 축적하는데 골몰할 수밖에 없다. 공교육은 개인의 성취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비 능력적 요인(가족 배경, 사회적 경제적 계급 등)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차별 기제를 은폐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 스스로 ‘사회적 존재’임을 부정하게 하며 불평등한 생산(노동) 관계에 침묵하게 만든다. 기존 체제 강화를 통한 소득 안정을 확보하고자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을 보장하는 것에만 매달리게 만든다.   먼저, 개인이 평생에 걸쳐 촘촘하게 겪는 ‘평가 집착적인’, ‘고부담’ 시험 문화에 대한 사회적인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혈연,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은 무한 경쟁 행위의 주체로 동원된 지 오래되었다. 차별과 불평등이 공기처럼 퍼진 한국 사회 안에서 ‘수능(대학입시) 제도’는 신분제적인 직업 위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공신력을 발휘한다. (실제 수능 날 오전에는 교통 체계를 비롯한 모든 일상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믿기 힘든 광경이 벌어진다.) 일 년에 한 번 치러지는 수능과 대입을 위해 가족의 배경과 자원이 장기간에 걸쳐 총동원되고, 경쟁 속에서 개인의 실패가 곧 가족의 불명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온갖 갈등과 사건, 폭력과 불평등에 연루되면서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교사도 존엄한 삶을 보장받는 것은 너무나 불가능하다. 1986년 1월 15일 새벽, 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 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여성 청소년이 외친 이 말은 1989년 5월 28일에 결성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선언문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그리고 교사들은 학교 교육 현장의 민주화를 위한 일상적 연대와 역량 강화를 지향하였고, 학생과 양육자, 모든 노동자가 힘을 모아서 비폭력 저항으로 국가의 비인간적인 억압과 차별에 대한 치열하게 맞섰다.   경쟁은 능력주의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능력주의는 개인이 노력해 만들어 낸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재화(지위)를 보상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는 사회의 신념체계이다. 이 논리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경쟁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시험/평가 절차의 공정함’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특히 경쟁의 공정성은 현재 사회구조와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요구된다. 이로 인해 더더욱 학생과 교육 노동자가 겪는 차별과 취약한 현실은 당사자의 목소리로 제대로 나오지 못한다. 게다가 계급 차별을 없애는 복지와 소득 재분배조차 공정하지 못하다고(역차별이라고) 여긴다. 이뿐만 아니라 인권 침해와 차별을 겪고 있는 당사자가 자신과 동료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품고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점으로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의 재난 대응 시스템은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사람들은 소외 및 낙오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신자유주의와 긴밀하게 결탁하여 대기업, 초국적(글로벌)기업, 플랫폼 기업 등이 코로나19라는 기후 재난을 이윤 축적의 기회로 전유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조력하였다. 비정규직,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의 고용 유연화를 통해서 말이다. 정부와 국가 또한 경제 성장이라는 명목하에 험난하고 위험한 노동 환경에 노동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차별에 침묵하며 노동을 착취했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부정적인 편견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발언을 통해 구성원 간의 분열을 유도한다. 실제 현 정부는 고용 불안과 돌봄 공백에 있어 취약한 약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노골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동시에 돌봄, 복지, 의료, 교육, 교통, 에너지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민영화를 강행하고 있다.   교사 또한 능력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할 의지를 갖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학교는 교육 본연의 목적으로부터 소외되고 수단화되어, 혈연가족의 계급 세습을 위한 진학과 취업 기능에 충실할 뿐이다. 게다가 교육개혁을 외치는 윤석열 정부는 저출생과 학령기 인구 감소를 빌미로 한 교육예산 축소로 교원정원을 감축할 계획을 발표했다. 교원평가체제를 전환하여 승진·인사·임금과 연계한 직무성과급제로의 개편으로 불안정 교육노동과 교원구조조정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감축은 지방교육자치 통제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지난 10일에 발표한 ‘2028년 대입제도 개편안’은 통합형, 융합형 수능 과목 체계 개편과 수능 심화 수학 개설, 고교 내신을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꾸고 상대평가를 병기하는 등의 큰 변화를 예고했다. 사교육 확대와 경쟁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난 개혁(아닌 개악)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계와 현장 교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학교 현장에 대혼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둘러싼 복잡하고 여러 단계의 논의가 소거된 채 정부는 ‘교권 회복과 공교육 정상화’요구를 ‘생활지도 고시안’ 발표로 입막음하려 했다. 이는 불평등한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교사의 (학생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권위 세우기 시도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고시안 예시를 들면 학생 소지품 압수, 문제행동 학생 교실 분리 등 학생 인권 침해를 교사의 ‘정당한 교육 행위’로 정당화하고 있다. 듣기와 상호소통의 책임이 간과된 권위와 권리인 ‘교육할 권리’와 ‘학습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동료 시민인 학생과 양육자와의 연대를 외면하면서, 인권 침해적인 ‘낙인’을 발행할 권리를 당연하게 여길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교권’이란 용어에 차마 담기지 못한 중요한 생명의 존엄과 보편적 권리의 가치를 한없이 상상하고 염원할 수는 없을까?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학생과 양육자를 ‘능력’이 부족하다는 탓을 들어 제2의 ‘김용균’처럼 살아갈 가능성을 용인하는 일을 지속할 수 없다. 정부와 국가가 ‘기본적 시민권을 실현할 권리’와 더불어 ‘소득’, ‘노동권’, ‘정치기본권’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도록 투쟁하려면, 교사 스스로도 ‘교권’의 위계성과 특권을 해체해야 한다. 학교가 오로지 특권층이 전유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모두가 ‘실질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경험하는 시공간’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교사의 비통한 죽음은 불평등과 부정의, 그리고 정부와 국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맥락 안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척박하고 위태로운 기반에서 독박 돌봄 노동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교사의 노동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논의에서 계속 멈춰있을 수 없다. 물질 만능주의, 능력주의, 개발(추출)주의, 생태 학살이 만연한 폭력적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을 꿈꾸는, 동료 노동자와 시민의 신념과 권리와 자유를 지키는 논의로 크게 확장되어야 할 때이다. (끝)   각주 *<학생인권조례가 일진회 구성 권리? 교육부 포럼 ‘황당’ 발제- [현장] “거짓말 마라 항의한 여교사, 교육부 직원들에게 끌려 나가>, 오마이뉴스,(2023.08.09.) ** 최덕현 (교육노동자 현장실천) ‘윤석열 정권의 교육개악, 어디로 향할 것인가’ (2023.10.27.) *** 희음 (멸종반란 한국), 이 토론문을 읽고 조언해준 말 (2023.10.26.)   참고문헌 1. 김진 (교육노동자 현장실천) ‘사회적 타살, 윤석열식 해법은 틀렸다!’ (2023.9.4.) 2. 이경숙(2020), <시험/평가체제 속 인간과 교육받을 권리>, 《능력주의와 불평등》, 교육공동체 벗, pp.34~62 3. 정용주(2020), <현수는 개인의 능력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능력주의와 불평등》, 교육공동체 벗, pp.6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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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넘어, 함께 배우는 통합교육
사진: Pixabay의 Ofoto Ray 웹툰작가 주호민 사건으로 빚어진 통합교육 논쟁 올해 뜨거운 여름, 7월 주호민 웹툰작가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과 이 사건에 이어 주호민 작가가 아들의 담당 교사인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면서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논란 중에서도 자폐 아동을 일반학교에서 분리해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기에 ‘통합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통합교육(inclusive education)이란 장애를 가진 학생과 일반 학생이 한 반에서 함께 공부하도록 하는 교육체제를 말합니다. 전문가들은 자폐 아동이 돌발행동을 했다고 해서 특수학교로 격리하자고 주장하는 건 차별이라고 말합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교실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특수교육법이 보장하는 권리입니다. 또한 비장애인 학생도 통합교육을 통해 장애 인권 감수성을 배워 장애인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함께 살아갈 방법을 알게 되기에 선진국에서는 모두 통합교육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통합학급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에서 장애학생이 다른 학생을 상대로 도전행동(장애학생 본인 및 주변 사람의 심리, 신체, 건강에 현저한 위험을 주거나 학교생활을 현저하게 방해하는 행동)에 대해 무방비로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교실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이에 대한 특수교사의 교권과 다른 비장애학생의 학습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통합교육의 실태는? 이러한 통합교육의 문제가 대두됨으로 인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8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8개 학부모·교원·시민단체와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사회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대부분 장애가 있는 학생 개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특수교사 개인에게 시스템 부재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만, 이는 명백하게 교육현장의 지원시스템의 문제다. 부족한 예산을 당장 편성해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통합교육에 필요한 교육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8월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발달장애 통합교육 현장갈등 중재에 관한 현장증언과 개선방안’ 긴급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간담회는 발달장애 통합교육의 정착을 위해 학교 현장에서 필요한 사안을 논의 하는 자리였습니다.  패널로 참석한 푸른솔중학교 이수현 교사는 "발달장애인 등 특수교육대상학생과 일반학생이 함께 하는 통합교육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수많은 장애학생이 이에 따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통합교육 현장의 가장 큰 문제로 부족한 특수교사 인력을 꼽았습니다. 통합학급에서 의미있는 수업과 학생 참여가 이뤄지려면 특수교육대상자의 수준·특성에 맞는 교사인력을 반드시 배치해야 하는데 현재 특수교사의 수 자체가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특수교육대상자의 활동지원사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합니다. "부족한 활동지원사를 사회복무요원이나 자원봉사 인력으로 채우고 있으나 전문성·책임감이 없는 임시인력은 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며 제대로 훈련된 지원인력을 모든 학급에 적어도 1명씩 의무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특수교육대상자가 있는 통합반의 교사가 기초학력보조교사·특수교사와 협력수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열악하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전국특수교사노동조합은 특수교사 2,957명을 대상으로 ‘안전하고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위한 제도와 정책 제안’ 설문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특수교사들은 도전행동, 교육활동 침해로 폭행을 당하고도 별다른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응답자의 88.8%는 도전행동으로 부상을 입었고, 부상을 입은 응답자의 96.5%가 치료비를 지원받지 못했으며, 75.6%는 도전행동을 중재하기 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통합교육이 실시 된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전반에 걸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특수교육법에 따르면 학생 4명당 담당교사 1명이 배치돼야 하는데,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80% 이상을 채워본 적이 없습니다.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이 배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예산과 인력의 투입 없이 통합교육의 책임을 특수교사의 개인 역량에만 맡기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통합교육의 모습은? 특수교육대상자가 일반학교에서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않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통합교육이 아직 우리 교육계에서는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은 특수교육 대상자의 70% 정도만 통합교육을 받고 있는 반면 선진국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대부분이 같은 교실에서 배우게 하는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진국들의 통합교육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애인 천국’으로 불리는 캐나다는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한 팀이 별도로 운영됩니다. 아이와의 면담, 설문을 통해 학습, 심리, 정서, 사회성 등 각 분야에 걸쳐 종합적인 검사를 실시합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의 수준을 파악해 맞춤형 교육 과정을 만듭니다. 이에 대한 교육비용은 교육청에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2016 미국 교육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 장애 학생의 94.7%가 일반 학급에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일반 학급에서 장애 학생들이 별도의 특수교육을 받는 방식인 ‘인테그레이션’(Integration)과 교실 안에서 모든 학생이 개인 수준에 맞는 개별화 교육을 받는 방식인 ‘인클루젼’(Inclusion) 등 두 가지 모델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모델 중 조기의 통합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장애학생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프랑스는 장애아동들도 장애 정도에 맞춰 최대한 가능한 범위에서 비장애 아동과 함께 일반 학교에서 수업을 받도록 하는 ‘포용교육’을 목표로 합니다. 장애 학생이 일반 학교에 등록한 경우 학생들을 위한 개별 맞춤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장애인 학교생활 도우미가 교사를 도와 필기와 식사 등을 돕기도 합니다.  독일의 통합교육은 단순히 비장애 학생과 같은 공간에 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실 내 모든 학생이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모든 학생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준별 학습과 맞춤형 교육 등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들이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학급 내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모든 학생들이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함께 논의하고 결정합니다. (참고: 장애학생 95%가 일반교 다니는 미국… 1대1 맞춤지원 캐나다            [차별 없는 그날까지] 장애아동 통합교육, 해외 사례에서 답을 찾자) 차별과 편견을 넘어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실을 꿈꾸며 인간의 차이는 저마다의 강점이 있고, 가치가 있기에 무능력이나 결핍이 아닌 개인의 고유한 다양성으로 인간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장애가 장애가 아닌 강점으로 존중받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우리의 교육현장에도 접목되어서 장애 학생들의 강점을 발견하고 성장시켜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장애인의 문제가 다만 가족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사회가 아닌 우리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임을 깨닫고,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차별과 편견을 넘어 다양성을 인정하는 우리의 교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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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공성이란?
1 교육 공공성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최근의 용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공공성”이라는 말을 할 때엔 늘 평등이나 공정함이 침해받는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이다. 주택, 의료, 금융, 기업, 정보 등 여러 단어 뒤에 ‘공공성’을 붙여 사용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공공성이 대체 뭘까? 교육 공공성은 사교육이 줄어들고 공교육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달성되는 것일까? 공공성, 공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사적인 것, 개인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공과 사의 경계선이 어디인가에 대한 논의는 매우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유럽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사회를 공, 가정을 사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자국인 성인 남성만이 공의 주체이고 구성원이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공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정치사는 공의 구성원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공은 공개적인 것, 사는 은밀한 것, 공개적이지 않은 것 - 주로 감정, 욕망 - 을 의미했다. 그래서 국가는 물론 가정 안에서도 공과 사가 공존하였는데, 대체로 사를 나쁜 것으로 여겼다. ‘공평무사’라던가 ‘멸사봉공’ 같은 단어가 그 어감을 잘 보여준다. ‘사’, 즉 개인적인 감정과 욕망이 그 상황에 적절하면 그 사는 옳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사는 틀린 것이다. 그 상황에 적절한 감정, 슬퍼할 일을 슬퍼하고 기뻐할 일을 기뻐하는 것, 이것은 사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유교에서 공과 사가 완전히 구분되는 공간이라는 건 없다. 인간은 매 시간, 매 공간에서 늘 공과 사의 영역을 함께 가져가며 사는 존재고, 모든 순간 속에서 각자의 몸을 통해 내가 어떤 감정과 욕망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그 감정과 욕망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이 문제의식은 개인의 윤리적 고민에서부터 시작해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종종 들은 바 있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다. 나와 가정의 욕망, 감정, 기호가 내가 속한 사회를 넘어 이 우주의 문제와 연결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한국 지폐에 실린 두 인물도 이 문제와 관련이 깊다. 퇴계 이황은 사단칠정론을 통해 인간의 감정이 충분히 공적으로 윤리적일 수 있음을 논증한 사람이고 율곡 이이는 인심도심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충분히 공적으로 윤리적일 수 있음을 논증한 사람이다.) 2 자, 내가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공’과 ‘사’라는 개념이 그만큼 모호하고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개념을 명확히 설명/상상하는 게 어려울 때엔 일단 국어사전을 펴보는 게 좋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젼』에선 공공성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 아, 너무 소략하다! 옥스포드 사전에선 공(public)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보통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 2 대중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일반적으로 정부에 의해 제공되는 것 3 정부와 관련이 있는 것.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 4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 5 대체로 열려있는 것. 대중이 보거나 들을 수 있게 제공되는 것 6 많은 사람들이 보거나 존재할 수 있는 곳 이렇게 생각해보면 공공성이라는 것은 ‘국가/사회가 하는 일‘이나 ’국가/사회에서 하는 일‘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보편적인 것’, ‘공익적인 것’,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공공성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을 하는 이유는 어떤 대상이 공공성의 속성을 훼손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 공공성에 대해서도 쉽게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1 교육공공성에 관심을 갖는 첫번째 이유는 국가나 사회가 주축이 되는 교육, 즉 공교육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을 다수가 공유할 수 없게 되었다, 즉 교육이라는 것 자체를 소수가 독점하게 되는 불공정한 상황이 되었다고 느낀다고 볼 수도 있다. 2 교육에 참여하는 과정, 입시나 성적으로 대표되는 교육의 결과, 그리고 교육 안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과의 관계,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교육의 공익, 보편, 균형, 공정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즉 교육의 공공성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3 20 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정치 철학자 중 한 명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에서 공(public)과 사(private)를 근대와 엮어서 설명하였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하는 일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노동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과 관련이 있는 행동이다. 작업은 인간이 하는 일들 중에서 생명과는 관계가 없는 행동들을 말한다. 행위는 인간이 하는 일들 중에서 인간 관계와 관련이 있는 것들을 말한다. 노동은 신체와 생명, 작업은 세속성(worldliness), 행위은 사람들(men)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고대 유럽에서는 국가가 곧 공이었고 공공영역이었고, 개인과 가정은 사적인 영역이었다. 정치는 공, 경제는 사로 쉽게 구분이 가능했다. 그런데 근데 이후에는 공과 사 사이에 사회(society)라는 것이 등장했다. 사회는 시장(market)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노동과 작업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친다. 시장 안에서의 노동과 작업은 지시하는 사람, 혹은 정해진 규율에 순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시장 안에서 순응에 의해 행하는 노동과 작업을 행동(behavior)이라고 하는데, 근대에는 사람들과의 행위를 순응에 의한 행동이 대체했다고 설명한다. 시장에 의한 사회가 중시되면서 국가도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으로 변모해갔는데 사회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악이 되어버린 국가는 자신의 살 길을 새롭게 찾아냈으니 그것이 바로 민족국가(nation-state)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학문도 이에 맞춰 변화했다. 정치학이 누렸던 지위를 경제학이 가져갔는데 경제학의 중요한 특징은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설명에 따르면 과학이란 인과관계를 추구하는 지적 활동이다. 사회 영역 전반에서 인과관계를 찾는 것이 근대의 사회과학이고, 보편적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것들을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것이 근대 사회과학의 특징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설명한다. 즉 사회과학은 사람들의 순응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이다. 근대는 사회의 탄생으로 인해 공공영역이 쇠퇴한 시대다. 비록 소수의 인정받은 사람(자국인 자유민 성인 남성)만이 참여하긴 했지만 토론과 숙의가 가능했던 정치가 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되었던 시대다. 또 공리주의라는 이름으로 개인이 추구하는 욕망의 총합이 공익으로 불리게 된 시대다. 개개인의 정치적, 윤리적 행동을 효율 극대화, 이익 극대화로 보게 된 시대다. 이것이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근대이고, 『인간의 조건』 전반부의 내용이다. (참고로 한나 아렌트는 수학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통계학으로 대표되는 사회학, 경제학에 대한 반감이 아렌트의 저작 여기저기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리고 이런 아렌트의 생각을 발전시킨 사람이 위르겐 하버마스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과 정치에 주목했다면, 하버마스는 아렌트의 생각을 일부 수정하면서 공론과 소통에 주목하였다.) 물론 아렌트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공공성에 대한 정의와 그 실현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 공공성의 실현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첫째, 교육의 공공성이란 교육의 주체를 민간에만 맡겨 놓지 않는 것, 교육의 공익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것, 교육 참여의 기회와 그 방식에 대해 고민 하는 것, 교육 그리고 교육 참여, 교육의 결과에 있어서 누군가가 배제되고 있는지를 살펴 보는 것이다. 둘째, 교육과 시장 경제 논리를 일정 정도 분리해야 한다. 교육을 시장 혹은 효율성에서 분리시키고 확장성과 공정성, 공익성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공교육-사교육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셋째, 교육의 공익성을 단순히 다수가 혜택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공익성은 각자가 교육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참여한다면 또 참여하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넷째, 교육에 있어서 순응을 강조해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반성하고 교육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임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다섯째, 인간은 이익이나 효율만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여섯째, 우리 모두가 잠시 효율이나 이익을 내려놓고, 짧건 길건 각자의 의견을 표현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것을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오은영 박사는 종종 양육의 목표란 자녀의 독립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교육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목표는 훌륭한 학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훌륭한 선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받은 모두가 그리고 교육에 참여하는 모두가 다음 세대를 위한 훌륭한 선생이 되는 것 그것이 교육에 목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교육 문제에 대한 토론은 물론 교육에 참여 하는 것 교육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그리고 교육 그 자체 있어서 깊은 고민을 가지고 참여하는 공론의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에 대해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언제나 길고 지루하면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것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한나 아렌트, 이진우 번역, 『인간의 조건』, 한길사, 2019 Hannah Arendt, 『The Human Condi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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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육과 기회가 제한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까?
* 이 글은 총 4회에 걸쳐 지역 간 교육 불평등에 대한 경험과 기회의 측정을 위한 현상과 논의, 그리고 학계의 연구들에 대해 살펴보는 '교육문제 이슈 탐사 리포트' 시리즈의 1편입니다.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이 겪는 경험과 기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격차가,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가?” “애들이 저를 공부 못하는 애로 보는데, 그래서 나 의사하고 싶어 이러면 의외인 것같이 ‘너가?’ (예전에 의사가 꿈일 때 친구들한테 얘기해 본 거야?) [고개를 끄덕끄덕] (근데 친구들 반응이 그랬어?) [끄덕끄덕]” (F양·17세 - 2그룹) “되게 흔한 직업을 선택하는 친구도 있어요. (흔한 직업?) [망설임 없이 바로] 변호사요. 변호사, 판사, 의사, 이런 거.” (G양·14세 - 1그룹) “청소년들에겐 이제 꿈도 하나의 지위표식” 같은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두 청소년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한 명은 또래 사이에서 ‘의사’라는 꿈을 갖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한 편, 또 다른 한 명은 도리어 의사를 ‘되게 흔한 직업’ 중 하나로 인식합니다. 둘은 어떤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갖게 된 걸까요? 2020년 2월 ‘한국사회학’에 게재된 ‘불평등한 미래: 청소년의 꿈, 지위표식이 되다’라는 논문에서 연구진은 양육자의 직업 및 소득에 따라 구분한 그룹에 따라 꿈에 대해 물었을 때에 그 인식의 차이가 나타났다는 점을 포착합니다. 지역 불평등은 성인 뿐만 아니라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도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격차를 비롯한 지역 간 불균형에 있어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에서 2021년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0명 중 9명이 지역 불평등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50%에 가까운 사람들이 ‘매우 심각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죠. (한국일보 2021년 6월 17일자 기사) 일자리, 교통체계, 인프라 등의 핵심적인 생활 여건 상의 격차로 인해 지역 간의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면서 소외감과 차별대우를 느끼는 점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교육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가지는 경험과 교육의 격차는 분명한 불평등과 불균형으로 나타날 것이고 이 또한 중대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 할 수 있죠. 암암리에 청소년들의 경험에 의해 교육에 있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차이를 체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역 간 교육불평등을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기회의 측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경험과 기회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쉽게 풀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청소년들 사이에 경험과 교육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근거가 필요하고, 수치화된 데이터가 있어야 그에 맞는 원인과 대책마련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구체적으로 측정해야 한다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남겨져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급상의 격차에 따라 꿈의 인식 자체가 차이났다는 ‘불평등한 미래: 청소년의 꿈, 지위표식이 되다’라는 논문은 그 자체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교육과 기회의 차이를 ‘꿈과 진로’라는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 것이거든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교육 불평등을 가시화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의 정의와 측정에 대해 깊게 살펴봅니다. 이번 탐사 리포트에서는 총 4회에 걸쳐 지역 간 교육 불평등에 대한 경험과 기회의 측정을 위한 현상과 논의, 그리고 학계의 연구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탐사 리포트를 관통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청소년들이 겪는 경험과 기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격차가,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가?“ 이번 탐사 리포트는 교육문제 이슈를 그저 ‘문제 포착’에 그치지 않고 해당 내용들을 보다 깊이 있게 진단하고 그에 대한 연구자들의 논의까지 살펴보는 보고서입니다. 또한 동시에 해당 주제는 <연구원정 : 교육문제>에 참여하고 있는 대원분이 실제 대안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있는 연구주제이기도 합니다. 연구원정 프로그램 알아보기 : https://naioth.net 참고 문헌 전현진. “꿈마저 현실에 맞춰 꾸는 10대들”. 경향신문. 2020. 5. 2.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5020600075#c2b 구정태. “ 성인남녀 절반 "인프라 풍부한 수도권으로 이사 원해". 한국일보. 2021. 6. 17.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61414260002046 김석호 외.(2017).한국 청년세대의 꿈-자본 측정.문화와 사회,(),289-331. 김수정, 차영화, 최샛별. (2020). 불평등한 미래: 청소년의 ‘꿈’, 지위표식이 되다. 한국사회학, 54(1), 101-138 * 본 콘텐츠는 <연구원정 : 교육문제> 1기 박소영 대원의 연구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으로 보고 싶으시다면? (클릭!)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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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여백을 나누는 배움 <한국미술재단(KAF)>
전국 초등학교에 광풍이 불었다. 선생님들의 집단 우울증과도 같은 현상, 만연한 학교 폭력, 부당한 민원을 넣는 학부모 등 학교 전체가 시름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초등학교에 마음 교육의 밀알을 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미술재단 (Korea Art Foundation)>이 그것이다. 마침 나눔을 싣고 떠나는 황의록 이사장(아주대학교 명예교수)과 함께 경북 성주군 성주초등학교로 여백을 찾아 떠났다.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초등학교 복도, 그리고 또 다른 복도에 설치된 학교 안 작은미술관평범한 복도를 따라가다보면 예술과 상상의 세계로 통하는 길을 만나게 된다(사진: 백아인) 학교 안 작은 미술관  한국미술재단에서는 기부를 통해 한국 국내 미술작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여러 활동 중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 하나가 전국 초등학교에 작은 미술 공간을 만드는 일로, <학교 안 작은 미술관>기증사업이다. “학교 안 작은 미술관”은 아이들이 자주 오가는 복도 한켠에 미술작품을 전시, 아이들이 마치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듯한 상상의 길목이 되어준다. 상상과 예술의 공간을 새로이 창조해 내는 일이다. “아이들에게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원화 작품을 수시로 보면서, 또 나중에 자신의 작품이 유명 화가들 작품과 한 공간에 걸리는 걸 보며 공감 능력을 높이고, 마음의 확장을 얻길 바랐습니다.”  간단한 일은 아니다. 시도 교육청의 알림을 통해 직접 학교와 소통하고, 국내 화가들로부터 작품 지원을 받는다. 또 설치 전액을 자비와 후원을 받아 제공하는 방식이다. 한편으론 작품들을 직접 싣고 가 설치하고 조명까지 조율하는 세심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미술재단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예술에 관심 있는 각 시도 교육청에서, 또 예술에 관심 있는 교장 및 담당선생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전국 600개 초등학교에 <학교 안 작은 미술관>을 세우는 게 목표였습니다. 처음에 한국미술재단에서 모두 지원을 하니까, 당연히 많은 신청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무료 지원임에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시도 교육청이나 학교들조차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무료로 지원한다고 하니 오히려 의구심부터 갖는 사람이 많았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값비싼 원화를 훼손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한 몫 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제껏 훼손된 원화가 단 한 점도 없습니다. 후속으로 미술작가가 그 학교에 가서 미술수업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미술 감상 예절을 가르치는 시간도 갖습니다.   우리는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한다는 정답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고, 아이들이 작품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을 귀히 여깁니다.”  미술 작가들도 처음엔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미술수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데 편견 없는 진짜배기 감상자인 아이들을 만나고 오면  오히려 영감을 받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게 되어 이제는 작가들이 제 발로 가고 싶어한다고. 황의록 이사장은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직을 은퇴한 뒤, 무려 30년 후를 생각하며 이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시작한 지 9년, 약 60개 초등학교에 ”학교 안 작은 미술관“을 제공했다. 이 작품들은 1년마다 서로 순환되어 아이들이 매년 새로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림들은 다양하다. 극사실주의 작품부터 추상화까지. 얼마 전엔 BTS의 RM이 광고하는 데 배경이 된  조미화 작가의 작품도 그 속에 끼어 있다.  예술이 주는 심성과 공감의 배움 교장 선생님 중에 한국미술재단과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보인다. 성주초등학교의 조재국 교장도 이 일의 중요성을 느끼고 신청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심성과 공감능력을 키우는 데 예술 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마침 저희 성주초등학교에서도 미술이 중요하다 생각해서 한쪽 복도를 <해와 달 갤러리>로 꾸미고 있었는데, 이런 좋은 사업이 있다고 해서 신청했습니다.“  한국미술재단에서 제공하는 전폭적인 지원이지만, 학교 내 공간을 확정하고 원화 관리 등 일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성주초등학교에서도 좋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어디에 전시를 하면 좋을 지 많은 회의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어려움에도 이 지원 사업이 미래에 대한 밀알을 심는 일이란 것에 대개 동의한다.  예술하는 마음 아이들은 그림을 보면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림을 통해 과연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자신이 그림에서 발견해내는 게 뭔지 스스로 배우는 것이다. 즉 느끼고 공감하는 삶의 여백을 배운다. 또한 자신을 예술로서 표현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건강한 방법도 배우게 된다.  아이들에게 <학교 안 작은 미술관>은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또하나의 창이다. 한국미술재단과 선생님들이 바라는 것도 결국 그러한 ‘이해’와 ‘공감’이다.   아이들은 그림을 보자마자 벌써 “이 그림이 맘에 들어요.” 툭 내뱉는다. 그 속에는 예술이 주는 정서적 교감이 들어 있다. 그리고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얻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매년 한국미술재단은 아이들의 그림과 유명 작가의 그림을 한 곳에 전시하는 일을 추진합니다. 자신의 작품이 큰 미술관에 그것도 유명 화가의 작품과 함께 걸리는 걸 보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을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분명 이 사회에 뜻깊은 열매로 다가오리라는 걸 한국미술재단은 믿고 있다. 언젠가 30년 후 아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다는 것, 훌륭한 작품들이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었다는 걸 모르는 사이에 체득하게 될 것이다. 희망하자면 우리의 미래가 점차 서로 교감하는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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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은 노란버스로, 갑자기 왜?
초중고 시절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갔을 때 탑승했던 전세버스가 기억나실 겁니다. 이때 타는 버스를 두고 통학버스라고 부르진 않았죠. 하지만, 앞으로 통학버스와 소풍버스의 차이가 없어질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죠. 작년 11월 제주교육청의 유권해석 요청으로 법제처는 「도로교통법」 제 2조(정의), 제 52조(어린이통학버스의 신고)에 따라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어린이 이동]은 도로교통법상 어린이 통학 등에 해당된다고 해석했습니다.(어린이 : 13세 미만) 경찰청도 현장체험학습 등 비정기적인 운행 차량도 황색 도색과 구조 변경 등 조건을 갖춰 신고할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제52조에 따르면, 어린이 통학버스로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는 행전안전부령으로 정하는 자동차로 한정하고. 노란 도색, 표지, 보험 가입, 소유관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나옵니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앞으로의 현장체험학습은 통학에 해당되니 노란 도색을 하고 여러 조건을 갖춘 관할 경찰서에 신고된 차량을 운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현장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요? 초등학교는 위 법령에 따라 일반 전세버스가 아닌 노란 버스를 운행해야 하는 상황이나 적합한 대형버스가 매우 적어 난처한 상황입니다.(*13세 이상인 경우 일반 전세버스를 타고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전국전세버스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위 법령에 위반되지 않고 사용 가능한 어린이 통학버스는 총 6,955대입니다. 이 중 현장체험학습 이동에 적합한 대형버스는 2,431대라고 합니다. 이는, 1~6월 초등학교 체험학습 운행 차량으로 5만여 대 가깝게 계약되었던 것에 비해 매우 적은 대수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현장 체험학습이 가을로 몰려 버스 대절조차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울산에는 26개의 전세버스 운송회사가 있지만 노란 버스는 1대도 없어 울산 초등학교에선 지역 내에서 노란 버스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나머지 4,000여 대의 버스를 법령 준수를 위해 개조하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세버스업계는 개조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 개조를 하면 학교 현장체험학습 용도 이외엔 일반 전세버스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체형에 맞게 벨트도 바꾸기 때문입니다. 개조 비용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체험학습을 진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현장 교사들 입장이 난처해 보입니다. 일부 학교가 체험학습을 취소하면서 학교와 사전 계약했던 체험학습 업체도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잡아둔 9월 예약이 없던 일이 됐고, 체험활동 프로그램 준비에 사용한 금액을 날릴 처지라고 합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각 교육청이 차량을 구하지 못해 수학여행을 취소할 경우 2학기에 발생할 위약금이 총 800억 수준이라고 추산했습니다. 위 혼란에 대해 교육부는 8월 25일,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방안이 도출될 때까지  단속 대신 계도 홍보하겠다는 경찰청의 입장을 시도교육청에 안내했습니다. 어떤 법령이든 현장에 곧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기관은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최소화할 방안이 도출될 때까지”라는 문구를 보면 정책을 시행할 생각만 했지 후폭풍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혼란을 보면 현 정부와 행정부가 어떤 식으로 일을 하고, 해왔는지 보입니다. 청사진 없이 일을 벌이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약방문 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왜 갑자기 이러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보도를 찾아봤습니다. 이번 일의 시작이 법제처의 유권해석부터라고 짚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법제처가 유권해석한 내용이 적절하다면 3년 전, 5년 전에는 왜 조용했을까요? 올해가 되어서 갑자기 어린이 교통안전 확보가 중요해진 것일까요? 제 의문은 아직 시원하게 풀리진 않았습니다. 행정부의 이런  일 처리 과정을 보는 것이 착잡하고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은 노란 버스 사태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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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살아야 교육이 산다.
교육부가 8월 17일에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을 발표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지침을 고시로 마련한 것입니다. 7월 18일 서울 서이초에서 초임 교사가 사망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교사생존권을 위한 생활지도권 보장을 위해 발표된 이번 고시는 10일간의 행정예고를 거치고 9월 신학기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될 예정입니다.  이번 고시를 통해 교원과 학부모 간의 상담은 사전협의 후 실시되며, 근무시간·직무 범위 외의 상담은 교원이 거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업 방해 물품 분리 보관, 물리적 제지, 수업 방해 학생 분리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고, 학생이 불응 시에는 보고 조치하고, 학교의 장에게 징계를 요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원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휴대전화 등 수업 방해 물품을 분리 보관할 수 있고, 성찰을 위한 반성문 작성, 어지른 것을 치우는 청소 등의 과제를 부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것에서는 유의미한 조치라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는 교사생존권을 위한 생활지도권 보장이라는 가장 최소한의 조치일 뿐, 이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제도적·법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2의 서이초 교사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영국의 교사 시스템과 함께 그 대안책을 모색해 보겠습니다.(영국교사 김은영의 책 ‘영국교육은 무너지지 않았다.’ 참조) 첫째, 이론 암기가 아닌 실습위주의 교사 양성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효과적인 교수학습 방법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학생들에 대한 학습지도와 생활지도 등 교사가 실질적으로 직면해서 해결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천차만별입니다. 경력이 없는 초임교사가 아직 학교에 적응도 못한 1학년 학생들의 담임이 된다면 교사가 겪는 교실 현장의 어려움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사 양성기관은 그것에 대한 충분한 준비를 해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2018년 5월에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번아웃 키즈’ 4부 <교사의 탄생>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교사 양성 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엄청난 양의 인터넷 강의를 듣고 암기 위주의 학습을 하고 있는 교대생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2023년 현재에도 이러한 모습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입니다. 이를 개선해 보겠다고 올해 초, 교육부는 ‘교육전문대학원’의 도입을 들고 나왔지만, 임용에 영향을 받는 사범대·교육대생들의 반발로 지금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학생들도 교사 양성기관의 교육 방식의 변화에는 동의했습니다. 윤세진(23) 경인교대 총학생회장은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이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기 어렵고, 현장 실습 기회도 많지 않아 교육 과정 내실화가 필요하다"며 "임용고시에만 매몰되지 않고 교대 학부 생활을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기간으로 보낼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장창기 공주대 전 사범대학장은 “캐나다의 경우 실습 시간이 400시간에 육박하지만 우리나라는 160시간에 불과하다. 실습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에서는 학부 이후 교사 양성 코스인  PGCE(Postgraduate Certificate in Education)코스를 두고 있는데, 철저히 실습 위주이고 실습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많이 탈락합니다. PGCE는 수업과 현장 실습을 병행하는데, 1년동안 두 개의 학교에서 하는 현장 실습 과정이 전체 교육 과정의 80%를 차지합니다. 수업도 토론과 발표 위주로 진행되고, 현직 교사인 분들을 초청해서 좋은 수업의 아이디어를 소개받고, 그것을 현장 실습 수업에서 어떻게 이용할지를 논의합니다. 일년에 4~5개의 에세이를 제출하는데 전부 ‘실습에 바탕을 둔’ 것으로, 책에서 읽은 교육 이론을 바탕으로 실습 때 체험한 것을 분석하는 식의 에세이를 씁니다. 또한 20년이 넘는 교사 경력을 가진 튜터(tutor)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이들이 학생들이 쓴 에세이를 채점합니다.  이러한 1년 과정을 패스하게 되면 공립학교에 취직하여 다시 1년의 ‘NQT(Newly Qualified Teacher)’과정을 가집니다. 이 때는 일반 교사의 90% 시간표를 가르치고, 멘토 교사 및 코디네이터의 관리를 받습니다. 실습생 때보다는 독립적이지만 멘토는 여전히 수업을 점검합니다. 외부 강의로 말썽꾸러기 학생 다루기, 목소리 관리하기, 스트레스 관리하기, 현장학습 계획 시 필요한 절차 등을 배우고, 정식 수업 관찰은 1년에 9번을 받습니다. 멘토 교사와는 일주일에 1번 미팅을 하고, 멘토 교사는 일 년에 세 번의 정식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NQT과정의 최종 결정은 교장이 하는데, 교장은 멘토교사의 보고서와 함께 학생들의 노트를 걷어 보고, 학생들과 인터뷰도 하고, 수업도 관찰해서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이렇듯 영국에서는 예비교사 및 초임교사에 대한 실습위주의 실제적인 교육과 관리, 그리고 교사가 되어가는 과정에 도움을 주는 교사 양성 과정이 존재합니다. EBS 다큐프라임 ‘번아웃 키즈’ 4부 <교사의 탄생>에서 이미경 전 귀인초 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학교로 발령받았을 때 단 하루도 미리 준비하거나 하루만 있다가 수업하는 경우는 없어요. 3월 2일자로 임용되면 바로 수업을 들어가고 바로 학생을 만나야 하거든요. 첫 1년 교사 본인이 시행착오를 겪을 동안에 아이는 어떨지 생각하면 그렇게 가벼운 문제가 아니거든요. 교사가 배우는 동안 아이들은 과연 어떨까를 생각하면 교대 교육과정의 절충안이나 보완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둘째, 혼자가 아닌 함께 협력하는 교사 문화로 바뀌어야 합니다.   교사는 처음부터 ‘좋은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선임 교사가 경험을 공유해주고 서로 도와 주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과목 수업 뿐 아니라 학생 지도까지 대부분 담당 교사 한 사람의 몫입니다. 그로 인해 도움을 청하기도, 도움을 받기도 어색하고 꺼려하는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교사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학급에서 일어난 일은 대부분 담임 교사 혼자가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 놓여진 것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영국의 모든 교사들은 라인 매니저(line manager)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기 초가 되면 라인 매니저와 미팅을 해서 한 해 동안 교사로서 해야 할 일, 올해의 목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학교가 해주어야 할 일 등을 기록합니다. 또한 목표 달성을 위한 실천 방안을 세웁니다.  그리고 라인 매니저는 ‘언제쯤 수업을 관찰하는게 좋을지 상의를 통해 정한 날’에 수업을 관찰합니다. 시간 순으로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적고 관찰 기준표에 나온 ‘반드시 수업시간에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는지를 체크합니다. 수업 관찰이 끝나면 미팅을 해서 잘한 점을 칭찬해 주고 격려해 줍니다. 그리고 더 잘 할 수 있는 방안을 서로 토론을 통해 함께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전략을 세웁니다. 영국에서 전체 교사들이 모이는 정기 회의에 서빙을 하는 사람은 부교감이나 교감이고, 학교식당 대타로 서빙하는 사람도 교감이라고 합니다. 학생이 잘못해서 평교사의 지시를 안 따르면 주임교사로 책임이 넘어가고, 주임교사의 지시를 무시하면 교감에게로 넘어가서 더 큰 벌을 받게 됩니다. 주임교사는 주임으로서 동료 교사를 서포트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고, 모든 선생들이 맡고 있는 아이들이 다 자기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영국 학교에는 상급 교사들이 더 큰 권한을 가지는 동시에 함께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사 협력 문화를 현장에서 실현시키고 있는 한국 학교의 좋은 사례를 찾게 되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충북 청주의 수곡중학교인데, 2019년부터 한 명의 학년부장을 증원하여 교육과정부장과 생활교육부장 2명을 두는 ‘학년 2부장제’를 도입했습니다. 담임교사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학급의 문제가 일어나면 학년 생활교육부장과 담임, 그리고 해당 학생의 수업을 하는 교사와 함께 학생의 상태를 파악하고, 만약 학부모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경우에는 담임, 학년2부장, 해당 사건 관련 교사,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사, 학생 등으로 협의체가 구성되어 해결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학년 공동체가 함께 협력하는 유기적인 생활지도의 중요성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학교 공동체가 함께 함으로서 학급 학생의 생활지도에서는 외롭게 홀로 고군분투하는 담임 교사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뿐 아니라 학급경영이나 과목 수업에 있어서도 각 교사들이 가진 역량을 함께 나누고 교류하며 협력해 나간다면 교사의 전문성이 개발되고 확장되어 추락한 교권도 다시 회복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 12절)’  사진: Unsplash의Dav Doh 셋째, 교사만큼 중요한 학교의 인력풀이 갖춰져야 합니다.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는 선수는 한 명입니다. 하지만 그 한 명의 선수 뒤에는 그를 올림픽 무대에 세우기 위해 묵묵히 애써온 ‘팀’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가 교사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그를 위해 애써주는 '팀'이 필요합니다. 한국 학교에는 교사들을 서포트해주는 인력이 얼마나 있을까요? 한국의 교사들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잡다한 행정 업무와 학생 상담 그리고 교실 청소까지 과중한 업무를 맡고 있기에 정작 가르치는 교사의 임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영국 학교에는 교사들이 최대한 ‘가르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인력풀이 학교에 갖춰져 있습니다.  커버 교사: 교사들이 수업을 못할 시에 커버 수업만 전담, 학교에 상주, 현장학습이 많아 교사가 자주 자리를 비우기에 꼭 필요한 인력 학생 생활/행동 지도 담당자: 수업을 방해해서 교실에서 내보내진 학생들이 가는 silent room, quiet work room에 당번을 서는 상급 교사 또는 학교에 상주하는 전문 상담가 학교내 시설 보수 담당자 학교 식당 관계자 과학 실습 지원 인력 미술 수업 지원 인력 요리 수업 지원 인력  드라마/연극 수업 지원 인력 컴퓨터 ICT 풀타임 관리자  도서관 담당자 교장의 비서: 학교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교장, 웬만한 회사 사장보다 스케쥴이 빡빡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인력 재무담당자: 재무과의 총책임자는 교감과 같은 위치 12, 13학년 행정 업무 담당자 복사, 인쇄 담당자 데이터 관리자: 데이터 분석을 매우 철저히 하는 영국 학교에 꼭 필요한 인력  기술학교 가는 학생들 담당자 Pastoral manager(부모처럼 학생들을 담당하는 주임교사)를 지원해 주는 인력  보조교사: 수업 시간에 자폐증, 소아 당뇨, 간질, ADHD, 아스퍼거스 장애 등을 가진 학생을 도와 주는 인력 특히 보조교사는 주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분들이  많은데, 월급이 많지 않아도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엄마에게는 인기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폐증, 소아 당뇨, 간질, ADHD, 아스퍼거스 장애, 상담 기술 등 정기적인 교육을 받습니다. 담당한 아이들을 케어할뿐 아니라 수업이 원할하게 진행되도록 교사를 돕는 일을 합니다. 보조교사는 학기 초에 담당하고 있는 학생과 간단한 미팅을 하면서 지난 학기에 정한 목표를 잘 달성했는지, 다음 학기 목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전반적인 학교 생활은 어떤지 기록·관리합니다.  우리나라도 장애학생의 통합교육을 하고 있고, 게다가 요즘에는 느린 학습자 또는 경계선 지능 아동이 한 학급에 있을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기에 이러한 학생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보조교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느린학습자에 대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느린학습자는 새로운 지식과 기존 지식을 연계하는 전략 연습이 필요하고, 일반 아동에 비해 추가적인 반복과 충분한 연습 시간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하기에  정부가 '보조교사'라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교사들은 절대 제대로 된 수업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교사가 신바람나게 가르치는 교실을 꿈꾸며 교권이 무너져 가고 있는 이 시대, 우리의 교육 현장은 교사가 교실에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교사가 살아야 교육이 살 수 있습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교사들을 살려야 합니다. 교사의 질을 향상시키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바람 나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많아져야지 우리의 교육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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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선생님과 아이들을 부탁해
2023년 7월 18일 서울서이초등학교에서 교내 교보재 준비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만24세 선생님.  왜 이 죽음이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하고 분노를 느끼게 할까요? 무엇이 선생님을 죽음으로 몰았을까요? 왜 하필 학교에서일까요? 이제껏 선생님 자살 사건들이 심심찮게 있었음에도 공론화되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인 우울증 등의 이유로 은폐되었기 때문이죠. 이번 서이초 자살 사건은 달랐어요. 선생님이 목숨을 끊은 장소가 학교 교내였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학교”란 공간을 보여주고 그 속에 생활하고 일하는 선생님과 관리자, 아이들, 학부모들간의 복잡한 뭉치들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파고들어 밝혀내야 할 뭉치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여기서 정치적으로 이 사건을 해석 이용하기보다, 학교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학교 안에서 선생님이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고, 학생들도 학생으로서 배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학교가 선생님에게나 학생에게나 안전한 장소가 될까요? 신규로 들어온 선생님이 초등학교 1학년 반 담임을 맡으며 한 해를 무사히 마치고 새로운 1학년을 또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 해에 비해 스트레스는 극심했습니다. 자살하기 전에 쓴 선생님의 일기장 속엔 “업무폭탄”과 학부모와의 상담 갈등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를 아시나요?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학부모가 아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권 이전에 사생활 침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 부모의 불만사항은 교사로서의 업무와 수업 중에도 피말리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요. 일본드라마 : 몬스터 페어런츠(2008.7-9 일본KTV 방영) 일본에서도 2006년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어요. 과도한 잔업 업무와 학부모의 불합리한 요구에 스트레스를 받은 23살 1년차 신규 선생님이 자살한 것이죠.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면서 2007년 일본교육계에서는 “몬스터 페어런츠” (괴물 부모)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드라마화 되기도 했습니다.(시사저널 2023.07.30) 일본 교육계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대 지금의 학부형 세대는 과거 80년대 학력 위주의 학창시절을 지나며 학교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습니다. 선생님들의 폭력과 인권 침해 및 촌지 등 불합리를 무수히 보고 겪은 세대로 교육계에 대한 신뢰가 얕지요. 한편으로는 ’학벌만능주의’의 시대 속에서 ‘전인간적 교육’보다는 공부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묻지마 고학력 세대’이기도 하죠.  이 세대가 학부모가 되고 자식을 한두 명만 키워 기르다 보니, 자식에 대한 애착도 크고, 앞선 세대의 교육관을 신뢰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동시에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투영하여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통제하고 소유하려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부모들 중 심한 경우에는 학교에 불합리한 요구를 당당히 할 뿐 아니라, 선생님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고, 인권이란 이름으로 자기 아이 감싸기에 치중하는 몬스터 페어런츠가 되고 맙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좋은 것이 아닌, 자신의 아이에게만 유리하게 학교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데, 그 예로, 특정 아이와 다른 반이 되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거나, 자신의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달받길 원한다거나, 심지어 우리 애만 소풍 때 도시락을 못 쌀 거 같으니 선생님이 대신 싸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몬스터페어런츠의실례들참조).  우리는 여기서 합리적인 요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합리적인 것은 내 아이만이 아닌 모든 아이들을 위한 것일 경우가 많습니다. 몬스터 페어런츠란,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불합리한 권리 주장을 하는 부모를 말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하루에도 몇십통씩 악성 민원을 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민원을 상대하느라 업무나 수업에 집중할 수 없고, 부모의 부당한 행위 때문에, 정작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이들입니다.(초코샘 네이버 블로그 2023.07.23)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업무 폭탄” 부분입니다.  교재를 준비하고, 수업을 준비하고, 그밖에 잔업을 몽땅 처리해야 하는 업무 과잉이 교사에게 끼치는 정신적 압박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때로 우울증과 극단적인 선택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시사저널 2023.07.30)  “업무폭탄”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또다른 문제를 낳는데, 정작 선생님의 본업인 ‘가르치기’를 위해 수업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점입니다. 수업 준비가 안 되면 수업이 질적으로 저하됩니다. 수업의 질적 저하로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불신하게 되고, 다시 컴플레인이 생기고, 선생님은 또 수업에 집중할 수 없게 되어 악순환이 무한루프를 탑니다.  이 두 가지는 서이초 선생님의 일기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두 가지 원인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좀더 사안을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을 믿어 주세요  서이초 신규 교사의 자살 사건을 접한 많은 선생님들이 고개를 갸우뚱한 부분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특히나 다루기 힘든 학년으로 경험 많은 선생님도 어려워하는데, 갓 선생님이 된 젊은 선생님에게 맡겼다는 부분에서였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아직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치원에서는 아이 하나 하나의 발달에 주목하고 학부모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우리 아이가 여러 아이들 중 하나라는 사회화 과정을 배웁니다. 사회의 규율을 처음으로 맞딱드리고 교육받는 장소입니다. 다른 한편, 학부모도 학부모가 처음이라서 유치원 때와 같이 자신의 아이에게 집중캐어가 있기를 기대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도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학부모들은 조금 떨어져서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또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격이 맞지 않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도록 기다려주고 도와 주어야겠지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못할 일도 아닙니다. 괜한 부모 등쌀에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학생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미국의 경우, 카운슬러와 관리자 등의 협력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입학 시 수십페이지가 되는 학교 메뉴얼과 규율에 동의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자유나 권리는 그에 마땅한 의무가 함께할 때만이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학생의 사생활 보호로 핸드폰을 보는 게 허여된다면, 그것이 적어도 다른 학생들의 교육권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가능합니다.  학생 인권을 말하는 것은 단지 “내 아이가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학생으로서 자신의 의무와 그에 따른 자유를 누리도록 하고 인격체로서 대우받기 위함이지, 아무때나 누구나를(심지어 선생님마저) 자신의 방해자로 설정하고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이미 전제가 되어야 하지요. 사회는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시스템적인 노력 이번 사건의 핵심은 선생님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수업 외 과중한 업무, 학부모와의 상담 등 선생님이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관리자나 카운셀러가 함께 문제에 대해 대응하는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선생님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현재 눈 앞의 문제를 봉합하기 위해 단순히 선생님 권한 강화로 가면, 일견 좋아 보이지만, 종국에는 선생님 혼자 짐지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일로 인한 스트레스, 병가는 산업재해에 들어갈 것입니다. 선생님 혼자 책임감에 밀려 벼랑끝으로 몰리는 현 제도는 선생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학부모 대응 매뉴얼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한국 역시 현실에 맞는 매뉴얼이 시급합니다.  미국의 경우 학교에 상주하는 카운셀러와 교장이 선생님과 반드시 함께 협력하여 학부모 민원을 처리합니다. 폭력 사건이 있거나 하면 일단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킵니다. 분리는 인권 침해가 아니라, 피해자 보호이기도 합니다. 가해자나 벌을 받아야 하는 아이는 일단 교장실로 분리됩니다. 그리고 보조교사로 선생님 대신 각계 전문가가 와서 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한 달에 한번 수업 대신 업무만 하는 업무일(working day)이 있는 학교도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가 절대적으로 옳고 우리 실정에도 딱 맞는다고 말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참고할 수는 있을 겁니다.  사회문화적 노력  2020년대의 가장 큰 화두는 생명권일 겁니다. 보호받지 못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국가행정시스템에서 국민들은 말그대로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각자도생”이 당연시되고 있는 씁쓸한 상황입니다. 이것은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국가 시스템이 개인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국가에 대한 불신과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개인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개인이 아닙니다. 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여야가 정치적 도구로 이 문제를 볼 게 아니라, 서로 협력하여 선생님과 아이, 학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학부모나 폭력사건 등에 대해 카운셀러가 교장과 교사와 함께 협력하여 대응할 수 있게 해 주고, 선생님들 간에도 남의 문제라고 생각지 않고 같이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야 할 때입니다.  여기에 학부모는 조금 떨어져서 아이와 선생님들을 기다려 줄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야 선생님 한 명이지만, 선생님은 아이들과 연결된 대가족 전체를 대응해야 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고충과 아이의 사회화를 좀더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맡길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법적인 부분이 현실과 닿아 있지 않다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적으로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고, 선생님의 고충을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척하면, 또 학교를 믿지 않으면, 학교는 누구에게나 그저 감옥일 뿐입니다.  학교를, 선생님과 아이들을 부탁합니다. 그것은 우리 미래에 대한 부탁이고, 우리 현재에 대한 부탁입니다. 무엇보다 나 역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건 아닌가,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겠습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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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문제학생 지도 방법
미국 미국의 공립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학생의 문제 행위로 인해 수업에서 방해를 받은 적 있다고 응답한 교사는 32%였습니다(초등학교 33.5%, 중학교 36.5%, 고등학교 27.3% 여기에서 말하는 문제행위는 소음, 난폭한 놀이, 싸움 등). 학생의 지각이나 수업 방해 행위를 경함한 교사는 37.4%였습니다(초등학교 33.7%, 중학교 34.1%, 고등학교 45.4%). (NCES)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닌데 이런 학생들은 어떻게 지도할까요? 미국 공립학교의 경우 각 주마다 학교구(school district)가 있고 학교구 별로 학생 행동 강령(Code of Student Conduct, Code of Student Behavior)을 만듭니다. 각 학교는 이를 책자로 만들어 학사일정과 함께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이를 어기면 어떤 조치/처벌을 받게 되는지를 알려줍니다. 텍사스 주의 경우 학생이 문제 행위를 했을 경우, 학교구의 교구장이나 지명된 사람이 문제 행위를 조사하고 문제 행위를 일으킨 학생에게 사건을 설명할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학생에게 알맞은 처벌이나 지도를 부여하는데, 만약 학생이 처벌에 불응할 경우 교직원들과 학생 대표들을 모아서 청문회(hearing)를 실시합니다. 처벌의 종류는 경고, 권한 제한, 특수 과제 부여, 반환, 기숙사 계약 해지, 성적증명/학위 보류, 수강 취소 및 재입학 금지, 학생 보조금/대출 손실 혹은 자격 상실, 정학, 퇴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Texas state, Code of Student Conduct) 참고로 체벌의 경우 미국은 주마다 다른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2023년 현재, 학생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지 않는 주는 알라바마, 아칸소, 플로리다, 조지아, 인디아나, 캔서스, 켄터키, 미주리,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텍사스, 와이오밍 등 13개 주입니다. 루이지애나, 오클라호마, 미시시피, 테네시 등에서는 체벌이 가능한 경우를 따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남부입니다.) 학생에 대한 체벌을 가장 먼저 금지한 주는 메사추세스(1971)이고 가장 최근에 금지한 주는 아이다호(2023)입니다.  일본의 교육학자 카타야마 노리코(片山紀子)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학생 징계는 다음과 같은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첫째, 징계가 응보적인(retributive) 경향에서 피해 회복적인(restorative)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학이나 퇴학, 체벌 위주던 징계가 가해학생이 피해학생 사이에서 사과, 변상, 행동 변화 약속 등을 위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둘째, 따돌림이나 괴롭힘, 특히 그것이 성이나 인종, 종교, 계층, 장애여부와 관련이 있을 경우에는 그것이 비록 말이나 제스쳐 같이 물리적인 폭력이 없더라도 강하게 징계를 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셋째, 학생 징계를 한두 명이 결정하지 않고 학교나 교육 공무원 이외에 정신과 의사, 상담사, 사회복지사 등 점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상 アメリカの生徒懲戒制度に見る近年の傾向 ―社会経済的に不利な立場にある子どもを視野に 에서 발췌) 일본 일본의 경우 1879년, 1890년, 1900년, 1941년, 1947년에 학교에서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표했지만 1980년대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교내 체벌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이후의 일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지도사(指導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사의 체벌이나 훈계로 인해 학생이 자살하는 것을 말하는데 ‘지도사 부모 모임(『指導死』親の会)’도 있습니다. (東京新聞.2016.03.16. <반복되는 지도사 히로시마 중3 자살 공표로부터 1주일>) 일본 문부과학성(文部科学省)은 2007년에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에 대한 지도방법을 통지했습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서는 각 학교에게 왕따, 폭력 등에 관한 대응 기준을 명확히 하여 보호자나 지역 주민들에게 공적으로 알리도록 하고, 범죄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바로 경찰에 통보하도록 했습니다. 이 통지에서는 체벌을 금지하고 퇴학, 정학, 경고 이외에 방과후에 교실에 남게 하거나 과제, 청소활동 부여, 수업 참여 제외 등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징계를 부여하도록 했습니다. (問題行動を起こす児童生徒に対する指導について) 3년 뒤에는 학교교육법(学校教育法)을 제정해 이를 법률화하였습니다. (学校教育法) 각 학교는 이를 바탕으로 학생 지도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습니다. 후쿠야마 시립 시세이 중학교(福山市立至誠中学校)의 경우 세 단계로 나누어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1단계 - 잘못을 한 본인에 대한 훈계, 사실이나 반성, 선서와 관련된 문장 작성 및 보호자 연락 2단계 - 보호자와의 면담 3단계 - 징계 (개실 반성지도, 수업반성지도, 봉사활동 등) 징계 기간 중에는 등교는 하지만 원래 있던 교실이 아니라 따로 마련된 별실에서 주어진 징계를 행합니다. 그리고 학생의 행동에 대한 일기를 써서 학교와 보호자가 함께 볼 수 있게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福山市立至誠中学校ー生徒指導規定) 중국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교육법(中华人民共和国教育法)> 28조에서 학교와 교사는 학생을 관리하고 처분을 실시할 수 있다는 권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2020년에 만들어진 <초중등교육 징계규칙(中小学教育惩戒规则)>에 따르면 비교적 경미한 사항에 대해서는 ‘지목하여 비판’, ‘사과, 구두 혹은 서면 검증’, ‘추가교육 혹은 봉사활동 부여’, ‘1시간 동안 교실에 서있기’, ‘방과후 지도’를 시행할 수 있고(8조), 이보다 무거운 사항에 대해서는 ‘학교 도덕 교육 업무 담당자의 지도’, ‘학교 내 봉사활동 수행’, ‘특별 학칙/교육 수여’, ‘소풍이나 견학 같은 단체활동 제한’ 등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9조). 학교 규정, 규율을 심각하게 위반하거나 여러 번의 교육이나 처벌로도 개선되지 않는 경우에는 ‘휴교’, ‘법치부교장(法治副校长), 법치지도원(法治辅导员)의 훈계’, ‘사회복지사나 전문가의 심리 상담, 행동 개입’을 시행할 수 있고 고등학생인 경우에는 제적을 시킬 수 있으며 부모나 관련 부서와 협력해 특별학교교육으로 전환시키기도 합니다. 중국의 경우 1949년과 1986년에 교내 체벌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지만 아직 완전히 근절되진 않았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학교와 교사가 내릴 수 있는 징계의 기준과 내용을 명확히 설정하고 있는 편이고, 일본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징계의 내용에 대해서 중국은 가벼운 징계건 무거운 징계건 공개적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특징입니다. 또 중국의 경우에는 징계 내용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한편, 일본의 경우에는 범법이 아니라면 기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권(敎權)? 한국에서는 교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권을 영어로는 뭐라고 번역해야 할까요? 티쳐스 라이트(teacher’s right)라고 해야 할까요? 티쳐스 어더리티(teacher’s authority)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같은 한자 문화권의 경우를 보자면, 일본어로 교권(쿄-켄)은 ‘교사의 권력’을 뜻하고, 중국어로 교권(쟈오취엔)은 ‘교육 받을 권리’를 뜻합니다. 한국어 ‘교권’에 해당하는 말을 다른 나라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보통 한국에서 교권이라고 말할 때엔 ‘징계’나 ‘체벌’에 대한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특히 학생의 보호자들)의 경우에는 ‘징계=체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 징계의 권리를 교사 개인에게 줄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도 상당히 많은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그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 안에서 교사의 폭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기합을 받다가 죽거나 체벌로 인해 중상을 입는 학생들 이야기도 간간히 뉴스에 나왔었지요. 거기에 계속해서 오가는 촌지와 그로 인한 편애에 관한 뉴스. 꼭 뉴스가 아니어도 학창 시절에 직간접적으로 이런 경험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차원에서 교사의 징계권 부여에 많은 사람들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도 이런 차원에서 생긴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모욕이나 폭력을 당하는 교사 이야기도 뉴스에 많이 나옵니다. 최근에도 연이어 비극적인 뉴스들이 나왔지요. 기본적으로 학교/수업이라는 공간은 1차적으로 학생과 교사의 공간입니다. 교사가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마치 교실이 교사와 학생의 헤게모니 싸움 공간인 것처럼 묘사하면서 학생의 권리가 너무 늘어나서 교사가 차별을 받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하지만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행하는 부당한 대우도, 교사가 학생에게 행하는 부당한 대우도 사실은 ‘교사 vs 학생’이라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늙어 죽는 그 날까지 똑같은 논쟁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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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문항 배제? 무엇이 중한디..???
대통령의 한마디에 들썩이는 한국교육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공교육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라는 한 마디에 온 나라가 들썩 들썩…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교과과정에 없는 초고난도 ‘킬러문항’을 수능에서 없앤다는 것이었는데요. 수능을 5개월 앞두고 이러한 수능 출제 사항의 변경은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나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혼란을 야기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급기야는 이런 문제로 이규민 교육과정평가원장이 6월 모의 평가에 출제된 킬러 문항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임하게 되었고요.   교육은 한 인간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백년지대계’라고 해서 먼 장래까지 내다보고 세우는 큰 계획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대통령 한 사람의 말 한마디로 인하여 교육시스템 전체가 휘청거리는 한국 교육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권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백년지대계의 교육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2022년 7월에 설치된 교육정책 합의체인 국가교육위원회는 아직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교육 문제의 핵심되는 대입문제는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바뀌면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입 시험의 근본적인 문제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인 대입문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으면 결코 사교육비 경감이나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킬러문항만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입제도의 근본적인 개혁 아니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몇년 전,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었던 영상이 있습니다. 현재 구독자 571만명의 ‘영국남자’라는 유튜브 채널인데요. 이 채널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영국학생 13학년(고3) 학생들 12명에게 수능 영어 문제를 10분동안 풀어 보게 했습니다. 우리의 수능 시험문제를 풀어 본 영국 학생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어요.  “지문이 말이 안된다.”  “이 시험을 누가 쓴 거에요? 얘기 좀 하고 싶네요.” “제가 영어를 진짜 아는지 혼란스럽게 만드네요.” “진짜 어렵다.” “저는 그냥 펜이 가는데로 찍을게요.” “이게 어떻게 외국어 시험이지?” “다시는 안하고 싶어요.” “정신적 충격이 상당해요. 스트레스를 왜 받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진짜 영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절대 안 만나고 싶어요.” “구글 번역기에 돌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이런 시험은 어떻게 공부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보기들 차이가 너무 적어서 모두가 정답일 것 같아서 더 어려워요.” “영어를 매일 쓰는 저희도 쩔쩔매고 있는데…” “지금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냥 읽는 거에요.” 그리고 그 채널의 다른 콘텐츠에서는 수능 영어 문제 다섯개를 뽑아 영국학교의 영어 선생님 4명에게 풀어 보게 했습니다. 한 문제당 50초의 시간을 주고요. 한국 학생들이 수능 시험 문항을 다 풀기 위해서는 약 1분 안에 한 문항을 풀어야 하니까요. 대부분 선생님들이 거의 모든 문항에서 정답을 맞추지 못했었어요.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합니다.    “헐 대박! 너무 어렵네요.” “이걸 어떻게 읽는 거야? 50초 안에? 장난해?” “여기 나오는 말 표현이랑, 어휘 자체가 터무니없네요.” “이런 단어를 누가 사용해? 심지어 단어를 읽지도 못하겠다구요!” “근데 이걸 뭐라고 발음해요?” “심지어 제가 모르는 단어들도 있어요.” “이런 건 누가 쓰는 거죠?” “이런 지문은 어디서 구하는 거죠?”  “아무도 일상 대화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잖아요.”  “1950년대 이후론 아무도 ‘상정’이란 걸 하지 않는다구요.” “이거 하는 학생분들 진짜 영어가 싫어지겠다. 너무 지루해” “이거 진짜 진짜 어려워요.”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말이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시험을 영국 학생들한테 제2외국어 시험으로 준다는 건 아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이건 아무래도 아주 특정한 영어 능력을 테스트하는 거라고 봐요. 엄청 빠르게 지문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요.” “이런 시험이 도움이 될 몇 가지 상황이 생각나긴 해요. 그치만 많지는 않아요. 이 정도의 시간적 압박 속에서 읽고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요. 동시통역사 정도?”  “정말 빨리 훑어 읽는 걸 잘한다고 하면, 아마 쓱 훑어 읽고는 바로, 그래 맞아. 이게 답이다. 할 수 있겠지요. 근데 사실 그런게 어떤 능력을 증명하냐는 거죠. “ “암기학습이라면, 그게 과연 아이들에게 필요한 걸까요? 시험 문제는 풀수 있겠죠. 그런데 5시간 뒤나 혹은 1년 뒤에 다시 그 질문을 받는다면, 아이들이 그 때도 알고 있을까요? 아님 단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배운 걸까요?”  “내 머리 속에 계속 맴도는 질문은 도대체 왜냐는 거에요. 이게 왜 필요하냐는 거지. 시간 제한은 전혀 도움이 안돼요.” “제가 한국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니지 않지만, 저도 지금 그 압박감이 느껴져요! 정말이지 진짜 놀랍네요.”  “모두가 자신의 잠재능력을 실현하기 위해선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건 알잖아요. 근데 학생분들이 안쓰럽네요. 진심으로요.”  “이거 진짜 그냥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던지고 싶어요. 여러분들 정말 고생하시네요. 한국에 있는 학생분들, 여러분들은 정말 열심히 해오셨어요.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되든 축하드려요. 왜냐하면 전 이거 못하거든요. 진짜 못하겠어요.” 수능 시험이 대학에서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입학생을 뽑기 위한 테스트로 전락해서 진짜 우리 학생들에게 주어야 할 배움의 기쁨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영어권의 학생들이나 교사들도 풀기 힘든 시험을 치기 위해서 비싼 사교육비를 쏟아 붓고, 밤낮으로 머리를 싸매고 자신과의 싸움과 시험의 압박감을 견디고 참으며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는 우리의 불쌍하고 안쓰러운 학생들이 생각나 참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정말 우리 학생들을 위한 교육인지, 시험을 위한 교육인지 다시 되짚어 봐야 합니다.  왜 우리는 수능을 포기하지 못하나? 그런데 왜 이런 비합리적이고 반윤리적인 시험을 우리 사회는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수능이 허울 좋은 공정한 테스트라는 착각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우리 나라의 수능과도 비슷한 SAT(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라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미국에서는 대학 입시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문제의식이 있고, SAT 의무화를 폐지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왜냐하면 SAT가 줄곧 ‘부유한 백인’이 유리하다는 결과를 일관되게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비판교육학 분야의 연구자로, 교육과 불평등에 관한 연구·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워싱턴대학교의 웨인 아우 교수는 “SAT는 자본의 차이를 측정하는 시험”이라며 “높은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의 자녀가 표준화된 시험을 더 잘 준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특권층을 위한 시험은 공정한 시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최근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은 신입생 선발에 SAT 점수를 더 이상 보지 않기로 결정했고, 학생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하여 SAT 점수 제출 의무화를 폐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SAT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수능이 공정하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그것은 미국에서 생각하는 ‘공정함’과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공정함’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생각하는 ‘공정함’은 학생의 소득·인종·부모 학력에 영향받지 않고, 학생 자체의 능력과 가능성 등으로 평가받는 것을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공정한 것으로 보는 거죠. 그래서 그들은 ‘고등학교 2년 간의 학교 성적, 활동내역, 에세이 등의 포트폴리오로 학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회· 경제적 배경이 좋지 않은 학생들도 소득·인종·부모 학력에 관계없이 그들의 남다른 잠재력이나 가능성이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공정함’은 그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발생되는 차별에 눈감아 버립니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의 능력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개인의 성공을 만들어 내는 사회나 시험은 결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점수로 줄세우기를 하는 수능은 공평(equality)한 것이지, 공정(equity)한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공평하다는 시험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가 되어 가고 있고, 그리하여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극도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까요? 나만 잘산다고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습니다. 옆에서 굶주린 자들이 있고, 죽어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나만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공정한 교육으로 한 사람의 경험, 생각, 성실도는 저마다 그 분량이 다릅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를 열등하게 태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개인에게만 지게 만드는 사회가 정말 공정한 사회일까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하지만 정말로 오직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그들이 스스로 해내도록 도와 준 부모와 교사의 노력은 뭔가? 타고난 재능과 자질은 그들이 오직 노력으로만 성공하도록 했을까? 우연히 얻은 재능을 개발하고 보상해 줄 수 있는 사회에 태어난 행운은?’ 이라고 말하면서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공동선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킬러 문항’ 사태를 통해 교육의 본질적 문제를 다시 한번 짚고 나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 세대를 위해서 반드시 교육 안에서의 참다운 ‘공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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