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8월 17일에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을 발표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지침을 고시로 마련한 것입니다. 7월 18일 서울 서이초에서 초임 교사가 사망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교사생존권을 위한 생활지도권 보장을 위해 발표된 이번 고시는 10일간의 행정예고를 거치고 9월 신학기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될 예정입니다.
이번 고시를 통해 교원과 학부모 간의 상담은 사전협의 후 실시되며, 근무시간·직무 범위 외의 상담은 교원이 거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업 방해 물품 분리 보관, 물리적 제지, 수업 방해 학생 분리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고, 학생이 불응 시에는 보고 조치하고, 학교의 장에게 징계를 요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원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휴대전화 등 수업 방해 물품을 분리 보관할 수 있고, 성찰을 위한 반성문 작성, 어지른 것을 치우는 청소 등의 과제를 부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것에서는 유의미한 조치라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는 교사생존권을 위한 생활지도권 보장이라는 가장 최소한의 조치일 뿐, 이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제도적·법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2의 서이초 교사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영국의 교사 시스템과 함께 그 대안책을 모색해 보겠습니다.(영국교사 김은영의 책 ‘영국교육은 무너지지 않았다.’ 참조)
출처: EBS 다큐프라임 ‘번아웃 키즈’ 4부 <교사의 탄생>
첫째, 이론 암기가 아닌 실습위주의 교사 양성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효과적인 교수학습 방법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학생들에 대한 학습지도와 생활지도 등 교사가 실질적으로 직면해서 해결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천차만별입니다. 경력이 없는 초임교사가 아직 학교에 적응도 못한 1학년 학생들의 담임이 된다면 교사가 겪는 교실 현장의 어려움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사 양성기관은 그것에 대한 충분한 준비를 해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2018년 5월에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번아웃 키즈’ 4부 <교사의 탄생>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교사 양성 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엄청난 양의 인터넷 강의를 듣고 암기 위주의 학습을 하고 있는 교대생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2023년 현재에도 이러한 모습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입니다. 이를 개선해 보겠다고 올해 초, 교육부는 ‘교육전문대학원’의 도입을 들고 나왔지만, 임용에 영향을 받는 사범대·교육대생들의 반발로 지금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학생들도 교사 양성기관의 교육 방식의 변화에는 동의했습니다. 윤세진(23) 경인교대 총학생회장은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이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기 어렵고, 현장 실습 기회도 많지 않아 교육 과정 내실화가 필요하다"며 "임용고시에만 매몰되지 않고 교대 학부 생활을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기간으로 보낼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장창기 공주대 전 사범대학장은 “캐나다의 경우 실습 시간이 400시간에 육박하지만 우리나라는 160시간에 불과하다. 실습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에서는 학부 이후 교사 양성 코스인 PGCE(Postgraduate Certificate in Education)코스를 두고 있는데, 철저히 실습 위주이고 실습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많이 탈락합니다. PGCE는 수업과 현장 실습을 병행하는데, 1년동안 두 개의 학교에서 하는 현장 실습 과정이 전체 교육 과정의 80%를 차지합니다. 수업도 토론과 발표 위주로 진행되고, 현직 교사인 분들을 초청해서 좋은 수업의 아이디어를 소개받고, 그것을 현장 실습 수업에서 어떻게 이용할지를 논의합니다. 일년에 4~5개의 에세이를 제출하는데 전부 ‘실습에 바탕을 둔’ 것으로, 책에서 읽은 교육 이론을 바탕으로 실습 때 체험한 것을 분석하는 식의 에세이를 씁니다. 또한 20년이 넘는 교사 경력을 가진 튜터(tutor)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이들이 학생들이 쓴 에세이를 채점합니다.
이러한 1년 과정을 패스하게 되면 공립학교에 취직하여 다시 1년의 ‘NQT(Newly Qualified Teacher)’과정을 가집니다. 이 때는 일반 교사의 90% 시간표를 가르치고, 멘토 교사 및 코디네이터의 관리를 받습니다. 실습생 때보다는 독립적이지만 멘토는 여전히 수업을 점검합니다. 외부 강의로 말썽꾸러기 학생 다루기, 목소리 관리하기, 스트레스 관리하기, 현장학습 계획 시 필요한 절차 등을 배우고, 정식 수업 관찰은 1년에 9번을 받습니다. 멘토 교사와는 일주일에 1번 미팅을 하고, 멘토 교사는 일 년에 세 번의 정식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NQT과정의 최종 결정은 교장이 하는데, 교장은 멘토교사의 보고서와 함께 학생들의 노트를 걷어 보고, 학생들과 인터뷰도 하고, 수업도 관찰해서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이렇듯 영국에서는 예비교사 및 초임교사에 대한 실습위주의 실제적인 교육과 관리, 그리고 교사가 되어가는 과정에 도움을 주는 교사 양성 과정이 존재합니다. EBS 다큐프라임 ‘번아웃 키즈’ 4부 <교사의 탄생>에서 이미경 전 귀인초 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학교로 발령받았을 때 단 하루도 미리 준비하거나 하루만 있다가 수업하는 경우는 없어요. 3월 2일자로 임용되면 바로 수업을 들어가고 바로 학생을 만나야 하거든요. 첫 1년 교사 본인이 시행착오를 겪을 동안에 아이는 어떨지 생각하면 그렇게 가벼운 문제가 아니거든요. 교사가 배우는 동안 아이들은 과연 어떨까를 생각하면 교대 교육과정의 절충안이나 보완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둘째, 혼자가 아닌 함께 협력하는 교사 문화로 바뀌어야 합니다.
교사는 처음부터 ‘좋은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선임 교사가 경험을 공유해주고 서로 도와 주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과목 수업 뿐 아니라 학생 지도까지 대부분 담당 교사 한 사람의 몫입니다. 그로 인해 도움을 청하기도, 도움을 받기도 어색하고 꺼려하는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교사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학급에서 일어난 일은 대부분 담임 교사 혼자가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 놓여진 것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영국의 모든 교사들은 라인 매니저(line manager)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기 초가 되면 라인 매니저와 미팅을 해서 한 해 동안 교사로서 해야 할 일, 올해의 목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학교가 해주어야 할 일 등을 기록합니다. 또한 목표 달성을 위한 실천 방안을 세웁니다. 그리고 라인 매니저는 ‘언제쯤 수업을 관찰하는게 좋을지 상의를 통해 정한 날’에 수업을 관찰합니다. 시간 순으로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적고 관찰 기준표에 나온 ‘반드시 수업시간에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는지를 체크합니다. 수업 관찰이 끝나면 미팅을 해서 잘한 점을 칭찬해 주고 격려해 줍니다. 그리고 더 잘 할 수 있는 방안을 서로 토론을 통해 함께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전략을 세웁니다.
영국에서 전체 교사들이 모이는 정기 회의에 서빙을 하는 사람은 부교감이나 교감이고, 학교식당 대타로 서빙하는 사람도 교감이라고 합니다. 학생이 잘못해서 평교사의 지시를 안 따르면 주임교사로 책임이 넘어가고, 주임교사의 지시를 무시하면 교감에게로 넘어가서 더 큰 벌을 받게 됩니다. 주임교사는 주임으로서 동료 교사를 서포트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고, 모든 선생들이 맡고 있는 아이들이 다 자기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영국 학교에는 상급 교사들이 더 큰 권한을 가지는 동시에 함께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사 협력 문화를 현장에서 실현시키고 있는 한국 학교의 좋은 사례를 찾게 되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충북 청주의 수곡중학교인데, 2019년부터 한 명의 학년부장을 증원하여 교육과정부장과 생활교육부장 2명을 두는 ‘학년 2부장제’를 도입했습니다. 담임교사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학급의 문제가 일어나면 학년 생활교육부장과 담임, 그리고 해당 학생의 수업을 하는 교사와 함께 학생의 상태를 파악하고, 만약 학부모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경우에는 담임, 학년2부장, 해당 사건 관련 교사,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사, 학생 등으로 협의체가 구성되어 해결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학년 공동체가 함께 협력하는 유기적인 생활지도의 중요성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학교 공동체가 함께 함으로서 학급 학생의 생활지도에서는 외롭게 홀로 고군분투하는 담임 교사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뿐 아니라 학급경영이나 과목 수업에 있어서도 각 교사들이 가진 역량을 함께 나누고 교류하며 협력해 나간다면 교사의 전문성이 개발되고 확장되어 추락한 교권도 다시 회복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 12절)’
셋째, 교사만큼 중요한 학교의 인력풀이 갖춰져야 합니다.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는 선수는 한 명입니다. 하지만 그 한 명의 선수 뒤에는 그를 올림픽 무대에 세우기 위해 묵묵히 애써온 ‘팀’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가 교사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그를 위해 애써주는 '팀'이 필요합니다. 한국 학교에는 교사들을 서포트해주는 인력이 얼마나 있을까요? 한국의 교사들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잡다한 행정 업무와 학생 상담 그리고 교실 청소까지 과중한 업무를 맡고 있기에 정작 가르치는 교사의 임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영국 학교에는 교사들이 최대한 ‘가르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인력풀이 학교에 갖춰져 있습니다.
- 커버 교사: 교사들이 수업을 못할 시에 커버 수업만 전담, 학교에 상주, 현장학습이 많아 교사가 자주 자리를 비우기에 꼭 필요한 인력
- 학생 생활/행동 지도 담당자: 수업을 방해해서 교실에서 내보내진 학생들이 가는 silent room, quiet work room에 당번을 서는 상급 교사 또는 학교에 상주하는 전문 상담가
- 학교내 시설 보수 담당자
- 학교 식당 관계자
- 과학 실습 지원 인력
- 미술 수업 지원 인력
- 요리 수업 지원 인력
- 드라마/연극 수업 지원 인력
- 컴퓨터 ICT 풀타임 관리자
- 도서관 담당자
- 교장의 비서: 학교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교장, 웬만한 회사 사장보다 스케쥴이 빡빡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인력
- 재무담당자: 재무과의 총책임자는 교감과 같은 위치
- 12, 13학년 행정 업무 담당자
- 복사, 인쇄 담당자
- 데이터 관리자: 데이터 분석을 매우 철저히 하는 영국 학교에 꼭 필요한 인력
- 기술학교 가는 학생들 담당자
- Pastoral manager(부모처럼 학생들을 담당하는 주임교사)를 지원해 주는 인력
- 보조교사: 수업 시간에 자폐증, 소아 당뇨, 간질, ADHD, 아스퍼거스 장애 등을 가진 학생을 도와 주는 인력
특히 보조교사는 주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분들이 많은데, 월급이 많지 않아도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엄마에게는 인기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폐증, 소아 당뇨, 간질, ADHD, 아스퍼거스 장애, 상담 기술 등 정기적인 교육을 받습니다. 담당한 아이들을 케어할뿐 아니라 수업이 원할하게 진행되도록 교사를 돕는 일을 합니다. 보조교사는 학기 초에 담당하고 있는 학생과 간단한 미팅을 하면서 지난 학기에 정한 목표를 잘 달성했는지, 다음 학기 목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전반적인 학교 생활은 어떤지 기록·관리합니다.
우리나라도 장애학생의 통합교육을 하고 있고, 게다가 요즘에는 느린 학습자 또는 경계선 지능 아동이 한 학급에 있을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기에 이러한 학생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보조교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느린학습자에 대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느린학습자는 새로운 지식과 기존 지식을 연계하는 전략 연습이 필요하고, 일반 아동에 비해 추가적인 반복과 충분한 연습 시간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하기에 정부가 '보조교사'라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교사들은 절대 제대로 된 수업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교사가 신바람나게 가르치는 교실을 꿈꾸며
교권이 무너져 가고 있는 이 시대, 우리의 교육 현장은 교사가 교실에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교사가 살아야 교육이 살 수 있습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교사들을 살려야 합니다. 교사의 질을 향상시키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바람 나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많아져야지 우리의 교육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코멘트
5선생님들이 암기위주 시험만 치르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고 계셨던 거군요... 혼자 문제를 감당해야 했을 선생님들의 노고가 얼마나 크셨을지ㅠㅠ 보조 교사와 같은 여러 시스템이 도입되어서, 혼자 고군분투 해야만 하는 선생님이 안 계시게 되면 좋겠습니다.
언제 이런날이 올까요?
그래도 기대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