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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의 시간, '존버'하는 우리를 위해
2016년에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미투 공론화, 2020년 N번방, 그리고 작년 여성가족부 폐지 논의까지 우리는 수많은 백래시를 목격하고 경험해왔습니다.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사업으로 4년째 이어왔던 버터나이크 크루 역시 작년 여름 일방적인 통보로 하루아침에 활동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죠.
하지만 버터나이프 크루 참여팀들과 협력 파트너인 빠띠는 사업 중단 이후에도 ‘그럼에도 우리는’이라는 이름으로 성평등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그 의미를 돌아보며 백래시의 시대에 멈추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서로의 경험을 꺼내고 연결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초청 패널과, 프로젝트 참여 크루와, 시민들이 백래시를 주제로 함께 꺼낸 경험과 대안의 목소리는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이 글은 지난 1월 진행한 ‘2023 그럼에도 우리는 성평등페스타 - 우리는 멈추지 않아’ 토크콘서트의 내용을 요약해 정리한 글 입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윤가현 : 안녕하세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윤가현이라고 합니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 저랑 이름이 같은 가현이들을 만나 여성의 아르바이트 노동과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가현이들>, 그리고 2016년 강남역 사건 이후 만든 ‘불꽃페미액션’이라는 페미니스트 단체를 4년 동안 기록한 <바운더리>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슬기 : 안녕하세요. 저는 백래시가 가장 극심했던 작년과 재작년 서울신문에서 젠더 담당 기자로 일했던 이슬기라고 합니다. ‘일했던’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가 지난달에 퇴직을 했거든요. ‘전' 기자라는 타이틀로나마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나임윤경 : 저도 반갑습니다. 저는 사실 오늘 여기 도착해서 ‘내가 잘 온 건가’ 살짝 생각했어요. 일단 패널 평균 연령을 좀 많이 높여놓은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나잇값을 좀 해야 될 텐데 어떤 얘기를 해야 나이 값을 할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달 : 저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담롱’이라는 팀에서 함께하고 있는 수달이라고 합니다. 담롱은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될 수 있도록’이라는 슬로건으로 소수자 의제를 다루는 인터뷰 영상들을 만들고 있어요. 이번 <그럼에도 우리는> 활동에서도 지역 커뮤니티를 찾아가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Q. 여는 질문으로, 각자 생각하는 '백래시는 OOO다'라는 짧은 한 마디를 부탁드릴게요!
수달 : 저희 팀원들한테 한번 물어봤어요. “애들아 백래시가 뭘까?” 하나로 모인 답변은 “정.말. 싫.다."였어요(웃음). 맞지 않을까요? 저희가 이렇게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단어로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당연히 너무 지긋지긋하다, 너무 싫다, 너무 짜증 난다,라는 의미였다고 해석해봅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답변은,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 스스로를 주저하게 하고, 서로 연결되지 못 하게 하는 것이라고 들렸고, 되게 공감이 됐어요.
윤가현 : 저는 ‘우리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가 백래시라고 불러줄 수 있는 이유도 운동의 주체인 우리가 있기 때문이고, 저는 노동 운동이든 페미니즘 운동이든 운동이라는 건 파도와 같아서 어떤 ‘벽’에 부딪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척 견고하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백래시의 주체들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가 또 굉장히 노골적인 인간들이잖아요. ‘너네가 뭔데 갑자기?’라거나, ‘왜 너 뭐 돼?’라고 생각할 만한.
이슬기 : 방금 감독님 얘기 들으면서 백래시를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시는 것에 저는 어떤 감탄(?)이 들었어요. 저는 기자 생활 10년 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직접적인 역풍 혹은 공격을 받는다는 느낌을 백래시 기간에 처음 느꼈거든요. 사실은 저도 의연한 마음으로 백래시를 맞이하고 싶지만, 제게 지난 2년간 백래시는 집요하고 조직적인 공격에 가까운 무언가라고 느꼈어요. 그전에는 오히려 저는 좀 백래시에 대해 ‘성차별적인 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관성’ 정도로 치부했거든요. 사건 사고의 피해자분들을 숱하게 보면서도 ‘그럼에도 내 일'이라는 생각을 크게 못했는데, (여가부 관련 사건들과) 유독 깊이 붙어있으면서 힘든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나임윤경 :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공공기관에서 잠깐 일을 했는데요. 거기서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고 하는 제목의 굉장히 좋은(!) 영상을 만든 적이 있어요. 그게 이슈가 돼서 국회의원과 변호사들이 달라붙어서 명예훼손이라고 욕하는 일도 있었는데, 그런 과정을 느끼면서 들었던 생각은 백래시라는 게 되게 “최근 일인 것처럼 이슈가 되지만 옛날부터 했던 문제제기들을 한결같이 외면하고 있다가, 페미니스트 영향력이 확대되니까 화들짝 놀라고 있는 현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각자의 자리에서 느낀 경험들이 다른 듯 비슷한 게 인상적이네요. 백래시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 혹은 어려움은 뭘까요?
나임윤경 : 사실 저는 오늘 여기 앉아계신 분들하고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가, 페미니즘의 언어가 조금 어렵지 않나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여기 앉아 계신 분께 마이크를 넘겨서 “구조적 성차별이 뭐예요?”라고 설명을 부탁드리면, 느낌으로는 아는데 실체가 무엇인지, 성차별을 당한 당사자들은 감각적으로 그걸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거든요. 백래시는 그 이해를 잘못하면서 너무 겁을 먹고 혹은 겁 먹은 척하고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제 직업상 좀 더 설득적인 언어를 개발해내고 대중적으로 유포하는 일에 백래시를 해체하는 작업을 지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달 : 바로 그 겁 먹은 분들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저희 담롱 팀에서도 페미니즘이나 여성노동 같은 주제로 영상을 올리면 여전히 좌표가 찍히고 악플이 달려요. 좌표 찍는 방법도 악의적이에요. 영상을 캡쳐해서 저희 메시지는 쏙 빼고 입맛대로 편집을 해서 그걸 이미지로 이어붙인 다음에 커뮤니티 등지에 뿌리면 그분들이 찾아오셔서 이제 열심히 댓글을 달아요.
이슬기 : 수달 님 말씀과 저도 조금 비슷한데, 개인적으로는 기자로서 악플에 되게 초연한 편이거든요. 근데 저희 부모님이 초연하지 않아서, 요새도 대댓글을 많이 달고 계세요. 이 기자 나쁜 사람 아니라고(웃음). 저희 부모님은 진짜로 상처를 받으셔서, 그때 정말 이런 식의 공격이 정말 효과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수달 : ‘페미니즘 정치' 관련한 인터뷰 영상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런 걸 올리면 진짜 페미니즘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이 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좌표 찍어 욕하는 분들이 사서 검색을 해서 들어오시더라고요. ‘페미니즘 정책’이라는 키워드 영상에 남성 시청자의 비율이 70%인데, 유입 경로나 검색 키워드를 보면 대부분이 ‘페미니즘 참교육’ ‘페미' 이런 것들이에요. 다양한 검색어를 조합해서 굳이굳이 찾아오여서 굳이굳이 댓글을 남기시더라고요.
이슬기 : 비슷하게, 여성 페미니스트 인터뷰를 기사화했을 때 착한 반응들을 찾아보기가 어렵거든요. 그건 그냥 인터뷰이에게 몹쓸 짓이 아닌가. 제가 오히려 대놓고 욕 먹을 판만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실제로 그런 악플을 받고 저한테 댓글창을 내려달라고 해 주셨던 분도 계셨고요. 제가 받는 아픔에는 스스로 조금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면, 익숙하지 않은 분이 그런 일을 겪는 것을 제가 보호할 수 없고, 그분의 행보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주저함이 있죠. 요청을 주저하거나, 저도 모르게 “그럼 익명으로 하실래요?”하기도 하죠. 익명 인터뷰는 힘이 없는 걸 아는데도. 자꾸 이런 식으로 제가 작아지는 그 모습이 백래시의 효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을 해 가야 되니까 그런 면이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윤가현 : <바운더리>라는 영화 편집할 때 한창 편집이 너무 하기 싫어서 여초 카페를 들락거린 적이 있거든요. 거기 익명 게시판에 어떤 여자가 둘이서 얼굴도 모르고 닉네임도 모르는데 만나서 동반 자살을 하려다 실패했다라는 기사가 나가고, 카페가 완전 난리가 난 거예요. 그 익명 게시판을 닫아야 된다, 자살이나 죽고 싶다라는 단어 금지화시켜야 된다 등등 되게 많은 논의가 오가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제가 들었던 고민은, ‘너무 많이 죽는다.’ 20대 여성이 너무 많이 자살을 한다는 거였어요. 여성들이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죽기까지 하는 것, 그게 저한테는 가장 두려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여전히 정책이 나아진다고 그 여성들이 죽는 걸 붙잡을 있을까, 그런 고민들은 있습니다.
Q. 가볍지 않지만 비관적이지도 않은, 대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면 어떨까 싶어요. 백래시의 범람 속에서도 성평등 활동이 계속 연결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이슬기 : 앞서 기사나 영상에 선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는데, 또 없지는 않아요. 이전에 어디 강연을 갔다가 마치고 나오는데 어떤 분이, “기자님 기사 잘 보고 있다”라고 하시면서 “근데 댓글이 엉망진창이던데 거기에 힘을 못 보태드려서 죄송하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좀 많이 놀랐어요. 저도 짠하고 서로 짠한데, 한편으로 그런 기운들이 이 백래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윤가현 : 저는 가끔 지역에 가서 영화 상영을 하는데, 할아버지나 할머니 분들이 무료상영이라고 하니까 무조건 와서 보시거든요. 근데 이 영화에는 막 찌찌도 나오고, 여자들끼리 손 잡고 행진하고 이러는데 보시다가 이거 뭐야 소리지르고 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 되게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놀랐던 건, 솔직함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는 거였어요. 페미니스트랑 동성애랑 무슨 상관이냐 이런 되게 정직한 질문을 해 주시기도 하고, 예전부터 여성들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오고 있다는 걸 나누기도 하고, 이런 시간 속에서 저도 약간 페미니스트로서 편견 없는 마음을 좀 가져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꺾이지 않는 마음을 좀 더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스스로…
수달 : 페미니스트 커뮤니티나 성평등 활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저희 지역에 내려가서도 많이 드렸거든요. 청주, 대구, 지리산에서 받은 대답들을 모아봤는데, 놀랍게도 대답들이 너무 비슷한 거예요. ‘할 수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그리고 우리는 우정으로 뭉치는 게 즐거운 공동체’라는 것. 때로는 여가부 폐지 반대나 여성혐오 반대 시위에도 나가고, 때론 지역사회의 성폭력 문제에 대한 공동체적 해결방안도 고민하다가, 또 어떤 때는 망한 섹스썰 파티를 하고, 내 최애가 얼마나 빠는지 얘기를 하고, 연말 파티를 하고, 잔디밭에서 보물 찾기를 하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런 일상화된 활동이 늘 같이 가는 게 지치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마음인 것 같아요. 힘든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즐거운 일도 하고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길티 플레져도 꺼내서 한번 얘기해보고 우리에게 너무 엄격하지 않고 그래야겠다!는 생각.
윤가현 : 한 가지,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그냥 그 마음만으로도 관심만으로도 저는 운동이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뭘 해야지 막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지금은 좀 쉬어도 되고 언제든 돌아와도 괜찮으니, 강박으로 함께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슬기 : 저도 좀 비슷한데, 페미니스트로 살면서는 약간 성공은 좀 작게 느껴지고 실패만 크게 와 닿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 많이 좋아진 줄 알았는데 신당역 사건을 겪었을 때의 어떤 처참함. 엄청난 실패인 건 맞지만, 그 사이에 저희가 조금씩 이루어 온 것들이 있거든요. 버터나이프크루 보면서도 같은 마음이에요. 제가 여가부 출입할 때 버나크에 대해서 기사를 많이 썼고 계속해서 마음이 동화되어 아픈 것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보니까 17개 팀 중에서 13개 팀이 꾸준히 이어왔다는 것, ‘중꺾마'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이 첫 번째 마음이고요. 두 번째는 페미니스트는 자기 자신한테 좀 후했으면 좋겠어요. 성공을 열심히 자세히 바라봐주는 일도 하셨으면 좋겠다. 그건 이제 저한테도 같이 드리는 말씀입니다.
청중과의 일문일답.
Q. (나임윤경 교수님께) 좀 더 설득적인 언어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가장 다듬기 어렵다 싶은 개념이나 표현이 있는지?
나임윤경 : 저의 요즘 강의 기법은 제가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지지난 학기에 가족과 젠더라는 수업을 했었는데, 그때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를 소개했어요. 봉태규 씨하고 정유미 씨가 썸타는 장면인데, 정말 썸 타는 장면인데 제가 거기서 성적 억압과 통제라는 개념을 끄집어내기를 바랐어요. 왜 저 사람은 저런 질문을 하고, 저 사람은 저런 대답을 할까, 그냥 볼 때는 보다가 제가 질문을 계속하니까 그 영상들이 달리 보이는 거죠. 모든 사람은 단순히 썸 타고 연애하는 거지만, 그거 알아보는데 90분이 걸렸어요. 굉장히 어렵지만, 이렇게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경험이었어요.
Q. (수달 님께) 버터나이프크 참여 크로로서 느꼈을 막막함이 크셨을 것 같은데, 사업 중단 소식을 듣고 당사자로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수달 : 제일 큰 마음은, 황당했죠. 왜 황당했냐면 여당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에 글을 써요. 그리고 그다음 날 사업이 없어진대요. 그게 하루 사이에 일어난 것도 너무 황당한 일이지만 저희로서는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에 발대식을 했거든요. 여가부 장관이 와서 잘 해보라 축사까지 하고, 저희도 처음 만나서 네트워킹 파티도 하고 한바탕 킥오프를 했는데, 이럴 거면 발대식에 장관은 왜 왔나, 그 자리에 무슨 자리인지는 알고 왔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취재 요청이 오고 어쩌다 어떻게 됐냐 물어보시는데 저희도 경황이 없고, 입장도 정리해야 되고. 근데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 전에 입장을 정리해야 되고, 상식적이지 못한 건 저쪽인데 왜 우리가 피곤한 건지 하는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 다른 팀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좀 걱정되는 면도 있었고요. 아예 못 하게 되려나, 하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저는 불안과 분노도 물론 있지만, 버터나이프크루가 엎어졌지만, 우리가 우리 프로젝트는 엎지 않고 결국에는 새로운 이름으로 마무리했다는 걸 꼭 기억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Q. (윤가현 감독님께) 바운더리라는 작품에서 선 받는 행동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고 그게 강력하게 선을 넘으면 그만큼 강력한 백래시를 경험할 거라 생각하는데, 두려움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는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윤가현 : 제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월경페스티벌에서 가슴을 까고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거든요. 그런데 페이스북이 음란물로 규정하고 막무가내로 내렸어요. 열 받아서 페이스북 코리아 앞에서 그냥 가슴을 까버리는 그런 활동을 하고 제가 그 현장에서 촬영을 했었어요. 그때 제 친구가 그랬어요. “큰일 났다. 다 잡혀가면 알바를 못 가.” 그런 종류의 두려움도 있었고, 또 하나는 집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는데 그 뉴스가 나오는 거예요. 남이 나한테 욕을 한다거나 모르는 사람 댓글로 욕을 하는 건 별 상관없는데, 모자이크가 쳐진 뉴스 장면을 아빠와 남동생과 함께 보며 밥을 먹는다 이런 건 상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도 두려움이 많고, 마음 속으로 어쩌라고를 말하는 연습을 하거든요. 마음속으로 누가 뭐라고 얘기하면 어쩌라고요 이렇게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연습도 되게 많이 하고 그래요. 사실 두려움이 없진 않죠. 저희도 다 똑같이 두렵죠.
Q. 마지막으로 간단한 소감 한 마디 부탁드려요.
이슬기 : 오늘 이 행사에 전 기자라는 타이틀로나마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요.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저는 백래시로 인해서 퇴사한 것은 아니에요(웃음). 근데 이제 일반지 호흡이 아닌 좀 다른 플랫폼으로 페미니즘 활동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퇴사하게 됐고 앞으로 활동도 많이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나임윤경 : 사실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한국 사회 같은 곳에서는 늘 성차별 성폭력의 문제가 내가 겪지 않아도 내가 겪은 것만큼 힘들고 참 어렵죠. 그런데 우리 아까 다 모두 어려움을 얘기를 했지만, 차별받는 사람들의 힘은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해서 무한히 꿈꾸는 거잖아요. 정말 차별 없고 폭력 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마음껏 키우고 정말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바로 피해자인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있잖아요.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피해자 정체성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물론 분노하고 슬퍼하고 노여워하되 그 상상력을 계속 서로에게 독려하면서 정말 정말 더 나은 삶을 페미니스트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오늘 이 공간을 나가셨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윤가현 : 스스로의 멘탈 관리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끔 저는 스스로 나 페미니스트인데 이래도 될까라는 말을 진짜 많이 하거든요.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어요. 저 같이 페미니스트도도 있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도 조금 덜 두렵게 사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여러분들도 그냥 좀 자신 있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우리가 오래 갈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수달 : 담롱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만든 영상 시리즈의 이름이 ‘여기선 안 된다 말했지만’이에요. 여기선 안 된다 말했지만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만든 영상이고, 그게 오늘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하는 얘기보다 훨씬 좋은 이야기를 지역에서 실천하고 계신 분들의 입으로 들을 수 있으니, 꼭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저희 담롱도 지역을 왔다갔다하는 게 고되지만, 사실 사이드 프로젝트거든요. 내가 왜 무슨 부귀영화들을 누리려고 이런 걸 하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냥 이게 다 재밌게 살려고 하는 짓이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해요. 재밌게 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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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기부제, 지역문제 해결의 첫 시작이 될 수 있을까요?
설날 속 '10만원 내고, 13만원 받아가세요'
설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이나 그 외 친척을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죠. 저 역시도 기차를 타고 순천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순천역에서 내리자 놀라운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10만원 내고, 13만원 받아가세요"라는 현수막을 든 사람들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고향사랑기부금’이라는 내용이 적힌 팜플렛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고향에 기부를 하면 세액공제를 받고 답례품까지 받을 수 있기에 오히려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우리들의 고향에 기부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찾아보니 뉴스에서 설날을 맞아 귀향객들에게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얼마 전에는 손흥민, 나영석 등 유명한 사람들이 고향사랑기부금으로 고향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있기도 했었죠.(손흥민·BTS도 동참한 ‘고향사랑기부’…나도 귀성길에? - 중앙일보)
고향사랑기부제이란 정확히 무엇이고, 왜 실시하게 되었을까요?
고향사랑기부제란 무엇일까요?
고향사랑기부제란 ‘개인이 고향에 기부하고 지자체는 이를 모아서 주민복리에 사용하고 지자체는 지역의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고향이란 꼭 내가 태어난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명목상의 의미로 기부자 본인의 주민등록등본 상 거주지를 제외한 지역자치단체 모두가 해당됩니다. 점차 지방소멸의 위기가 심해지고,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 관계인구(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지역에 관계를 가지고 참여하는 인구)를 통해 지방정부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올해 도입되었습니다. 즉,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고향)에 기부를 함으로써 지역에 재원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지게 되는 효과가 있는 거죠.
고향사랑기부제로 지역에 기부를 할 경우 10만원까지는 100% 새액공제를 받고,기부를 받은 지역에서는 기부금액의 30% 에 해당하는 답례품을 지급하기에 10만원을 내고 13만원을 받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거죠(10만원 새액공제 + 3만원 답례품).
실제로 일본에서 2008년에 동일한 제도를 도입했고, 현재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자리잡아 정부에서의 재원지원보다 더 큰 세금을 벌어들인 지역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고향사랑기부제를 실시한 첫 해에는 81억엔(약 820억 원)만이 모였지만 점차 기부금의 금액이 늘어나며 8320억엔(약 8조원)이 현재는 고향사랑기부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제도를 활성화시켰을까요?
국내에서도 일본의 성공 사례를 보며 지방소멸과 지방 재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현재 고향사랑기부제로 기부를 했을 때 10만원까지는 100% 세액공제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작년 9월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약 80%의 사람들이 제도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답변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이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었을까요?
우선, 다양한 종류의 답례품이 있습니다. 총 40만개가 넘는 답례품이 준비되고 있기에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답례품을 선택해 지역에 기부’를 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지역별로 특산품을 강조하면서 우리 지역에 기부를 하면 어떤 혜택을 얻는지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때문에 시민들은 내가 마치 쇼핑하듯이 기부를 할 지역을 선택하게 되죠. 놀랍게도 단순한 물건 이외에도 템플스테이와 같은 지역의 관광상품도 혜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민간 플랫폼을 통해 지자체의 종류와 역할을 한 눈에 보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부이기에 내가 어디에 기부를 했을 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 기부를 했을 때의 효능감을 알려줄뿐만 아니라 기부의 편의성까지 담보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 대한 소개부터 다양한 기부 금액별 조합방식까지 알려주면서 시민들은 편하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도 ‘고향사랑e음'이라는 플랫폼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성공한 사례를 보며 비슷하게 시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직 제도의 성공에 대해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제도가 가지고 있는 시장성은 점점 더 커지겠다 생각합니다.
고향사랑기부제, 이 시장은 점점 더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한번 상상해봅시다. 아이유가 티비에 나와서 고흥의 유자를 칭찬하면서 고흥에 기부를 하면 겨울마다 유자차를 보내준다고 하면 어떨까요? BTS가 이천의 쌀이 맛있다고 하면서 이천에 기부를 하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가장 싱싱한 쌀을 받아볼 수 있다고 SNS에 올리면 어떨까요? 인구가 줄어들면서 지역소멸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의 관심과 충분한 재원이 필요합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첫 번째 시도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불과 몇 시간 전에 놀라운 뉴스 <'이런 실수…‘고향사랑기부금’ 낸 손흥민, 세액공제 못 받나'.>를 봤습니다. 2023년부터 새액공제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곧 올해부터 새액공제를 할 수 있도록 진행한다고 후속 뉴스가 발표되었죠.... 여러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발걸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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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썩들썩떠들썩] '함께 만드는 고령화 대응 방안' 공론장 운영 결과 보고서
2022년 11월에 진행된 '들썩들썩떠들썩 -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축제 : 위기의 시대, 우리가 살아남는 법 1) 함께 만드는 고령화 대응 방안'을 기억하시나요? 그날의 공론장 결과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빠띠는, 우리 곁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많은 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살아남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들썩들썩떠들썩을 기획하고 진행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첫 번째 들썩들썩떠들썩의 주제는 '위기의 시대, 우리가 살아남는 법 1) 함께 만드는 고령화 대응 방안'이었는데요. 갈수록 심해지는 고령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대안을 살펴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최대한 많은 시민의 참여를 위해, 빠띠는 프로그램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형태의 공론장으로 설계했습니다. 온라인 사전토론을 진행하여 참가하는 시민에게 프로그램 관련 정보를 미리 제공하고, 오프라인 행사에 참가하지 못하는 시민에게는 댓글과 투표 등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오프라인 행사에서도, 시민이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첨예한 이슈/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두 전문가의 입장을 듣고 토론/투표하는 ‘정책배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 중인 여러 사례를 듣고 공감하는 이야기에 투표하는 ‘정책마켓’ 등의 형태로 구성했습니다.
들썩들썩떠들썩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운영 결과 보고서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왜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는지, 어떻게 준비하고 운영했는지, 현장에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등 빠띠의 모든 노하우가 담겨 있습니다.
들썩들썩떠들썩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대화가 피어나도록,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주제와 내용으로 여러분을 찾아뵈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시민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면서 함께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는 ‘좋은 사회적 대화의 모델’을 만들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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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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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바깥의’ 다문화청년들
* 다문화란 여러 나라의 생활양식을 뜻하며, 다양한 문화와 인종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 안에서 서로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며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다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정책에 적용함에 있어서 결혼이주자 또는 재한외국인에 국한되는 등 좁은 의미로써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최근 보다 넓은 의미의 용어인 ‘문화다양성’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정책과 실태조사 등에서는 여전히 ‘다문화’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용어의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문화다양성이라는 용어 대신 다문화라는 용어를 선택해 표기하고자 한다.
** 다문화청년의 정의와 구분은 다양하지만, 본 글에서는 다문화청년들의 부모의 국적과 다문화청년들의 출생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유형을 구분했다.
한국은 상당한 수의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국제결혼의 증가 등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다문화사회라고 부르고 있다. 코로나19의 전파를 막기 위해 각국이 국경에 높은 장벽을 세우고 전체적인 이동을 통제하게 되면서 이주민의 증가추세가 잠시 주춤하는 현상을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에서의 이주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의 한국과 비교했을 때 크게 변화했다. 통계청(2020)에 따르면 다문화간 혼인은 2019년 기준 24,721건으로 전년대비 4.0% 증가했으며, 다문화 출생은 17,939명으로 전년대비 0.8% 감소했지만, 전체 출생에 있어서 다문화 출생의 비중은 6.0%로 전년 대비 0.4%p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통계에서 보이듯 한국 사회에서의 다문화가정은 증가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다문화 출생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교육통계서비스(KESS)에서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초등학생의 4%, 중학생의 2%, 고등학생의 1%가 학교에 다니는 다문화가정 학생이라고 밝혔다. 2014년 기준 초등학생 1.8%, 중학생 0.7%, 고등학생 0.4%에 다르던 비율에 비해 6년만에 급격하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한국사회의 전체 학생수가 2019년 기준 1,411,027명이었던 것에 반해, 2020년 기준 1,337,312명, 2021년 기준 1,299,965명으로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전체 다문화배경 학생은 2017년 기준 109,387명이었던 것에서 2019년 기준 137,225명으로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에는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학생이 가장 많지만, 이 세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기인 2024년부터는 다문화 2세대 청년층이 급격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문화 배경을 가진 아동과 청소년이 이제는 20대 초기에 진입하게 되면서 한국사회에 내에서 노동자로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한국의 국가 정책과 연구들은 대부분 결혼이주민과 다문화가족의 구성원에 주목하고 있었다. 반면 다문화 학생 담론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온 다문화청년들에 대한 주목은 부족했고(김진희 외; 2021), 다문화가정에 대한 유일한 실태조사라고 할 수 있는 다문화가정실태조사에서도 다문화청년들은 배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다문화청년 당사자들은 ‘뚝 끊기는 느낌’이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경향신문; 2021). 다문화청년들은 정책 바깥에 서있는 존재들이 된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들에 대한 공약을 찾아보긴 어렵고, 그나마 있는 다문화 공약들도 결혼이주여성, 즉 한국인을 낳아주고 길러주는 대상들에게 치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자란 다문화배경 청년임과 동시에 다문화 시민 2세대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실태는 더욱 확인하기 어려우며,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문화가정실태조사로부터 짐작하는 수준에 그친다. 다문화와 관련된 실태에서 큰 블랙박스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노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할 수 없는 현 상황을 일각에서는 ‘다문화 20대 청년들의 실종’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종된 다문화배경 청년들을 어떻게 찾고 파악할 수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게 되는 다문화청년들은 국내 출생이든, 중도 입국이든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순수 한국인’ 청년들과 다를 바 없이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생계를 이어가게 된다. 그렇기에 다문화청년들의 삶에 있어서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노동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국 사회의 점차 다수로 자리 잡아갈 다문화청년들의 삶의 상당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다문화청년들이 노동을 통해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리잡고, 시민으로서 참여의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에 있어서 어떤 과정을 밟고 있으며 노동시장 내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지에 대한 실태 파악과 지원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참고문헌
김진희, 김자영, 권진희. (2021). 다문화배경 청년의 학습생활과 교육 요구에 대한 질적 분석. 평생학습사회, 17(2), 6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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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윤석열 퇴진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한국사회 전반이 무력감에 빠졌다. 우리 모두는 8년 전 세월호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당시의 무력감이 반복되면서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 전반의 무기력 속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오는 집회가 있다. 바로 ‘윤석열 퇴진’ 집회다. 윤석열 정권의 무능함을 규탄하고자 하는, 그들이 가진 선의를 의심치 않는다. 다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퇴진운동은 결과적으로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문제해결 불능의 사회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사회적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공수교대 하듯 정권교체만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
우리 사회는 이미 2016년 촛불 이후 대통령 탄핵,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집권을 경험했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참사 반복의 시대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 교훈이다. 그렇다면 이태원 참사 이후 필요한 사회적 반성과 성찰은 ‘대통령 퇴진’이라는 구호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왜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을 지경으로 망가졌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 시점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 퇴진 집회는 가장 게으른 방식의 운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이전 윤석열 퇴진 운동
기본적으로 현 윤석열 퇴진운동은 이태원 참사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집회에, 참사 이후 추모메세지가 결합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 이전의 윤석열 퇴진운동을 살펴보아야, 현 시점 퇴진운동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윤석열 퇴진 운동은 2022년 8월 6일 1차 집회를 시작으로, 거의 매주 촛불집회를 진행 중이다. 초기에는 1천 명 규모로 출발했던 집회가 11월 19일에는 40만 명이 모일 정도로(모두 집회측 추산 인원으로 계산) 규모가 커진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규모의 확장이 그 운동의 정당성을 증명하진 않는다. 보다 더 주요하게 봐야할 것은 집회의 성격이다.
아직까지도 윤석열 퇴진운동의 핵심 구호 중 하나는 ‘김건희 특검’이다. 심지어 이태원 참사 이후 집회의 한 웹포스터에는 "이태원참사 진실규명 특검하라, 우리가 이재명이다. 검찰표적수사 중단하라"가 메인 문구인 버전도 있다.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의혹, 이력 허위 기재 논란에서 출발해서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의 검찰수사 중단으로 귀결되는 집회구호가 이태원 참사 추모메세지과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집회에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결합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한 목소리를 연결해내는 큰 줄기의 핵심내용이 그 집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현 윤석열 퇴진 운동의 가장 큰 줄기는 무엇인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인가? 아니면 김건희 특검과 이재명 수사 중단인가?
현 윤석열 퇴진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촛불승리전환행동이라는 단체를 살펴보자. 아래는 촛불승리전환행동의 출범선언문 일부이다.
"2016년 광화문 촛불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적폐정권을 퇴출시켰고 2019년 서초동 촛불은 검찰개혁을 촉구하며 타올랐습니다. (...) 2022년 대선은 정치검찰의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한 촛불항쟁의 과정이었습니다. 촛불혁명 제1차 3단계였습니다. 대선 결과 검찰 파시즘 체제가 도래(...) 3단계로 이어졌던 제1차 촛불혁명은 종료되었으며 이제 제2차 촛불혁명의 막이 올랐습니다.(...) 촛불혁명의 단계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동일합니다."
요약하자면, 촛불승리전환행동은 ‘촛불혁명’을 좌초시킨 검찰세력과 싸우는 ‘2차 촛불혁명’이 필요하다는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고, 여기에 기반해서 윤석열 퇴진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집회에서 부르고 공연을 했던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노래 가사는 더 노골적이다.
"지랄하고 자빠졌네겨우 영점 칠삼프로 이겨놓고마치 점령군이라도 된 것처럼"(...)"조국 온 가족을 도륙해놓고정치검사 측근인사 승진했네"
기본적으로 현 정세를 20대 대선의 연장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대선은 졌지만, 결과를 다시 뒤집을 수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고, 조국 전 장관 사태를 언급하는 가사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결국 윤석열 정권을 물리치고, 이재명 당 대표와 조국 전 장관을 ‘복권’시키는 것이 정의라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 아무리 민주당과 무관한 집회라고 주장한다고 치더라도, 선명하게 민주당과 이재명 당대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긴 힘들다. 결국 조국 전 장관 사태 이후 발생한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 대립의 연장선에서 태극기 집회와 현 윤석열 퇴진 집회가 존재하고 있으며, 제도권 양당 정치가 거리까지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퇴진운동의 근거 또한 부실하다. ‘김건희 특검’이라는 구호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동일한 선상에서 언급될 수 있는가? 대통령과 혼인신고도 하기 전의 주가조작 사건이 대통령 퇴진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고려 없는 퇴진운동은 ‘이재명 방탄 집회’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윤석열 퇴진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대통령 퇴진 요구 자체가 문제적인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기 용산참사와 쌍용차 파업이라는 국가폭력 이후 퇴진운동이 전개되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세월호로 출발한 전 사회적 변화의 요구가 퇴진운동으로 수렴되었다. 하지만 현 윤석열 퇴진 운동은 출발 지점부터 현재까지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요구만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가 결합되었지만, 그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는 사회적 반성과 성찰의 과정이 생략된 퇴진 운동이기 때문이다.
최고 신고 시각에 대한 보도 이후, 국가 책임을 묻고 행정책임자 파면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이라는 구호가 나오기까지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정치와 언론, 시민사회 일부는 세월호 당시 사회적 경험을 과도하게 이태원 참사에 투영하고 있다. ‘막을 수 있었다, 국가는 없었다’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국가부재에 대한 질문은 세월호 당시 담론을 그대로 가져온 셈이고, 국정조사-시민사회 연대체 구성-촛불집회-퇴진 구호 등장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프로세스가 단 기간에 완성된 것 또한 세월호에 대한 학습효과라 볼 수 있다.
문제는 대중들의 정서가 이와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참사부터 퇴진까지 일직선으로 로드맵을 구상하고 추진해나가고 있는데, 대중들은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세월호를 통해 경험했다. 이 괴리감을 해소하기 위해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의 대화가 필요하고, 이를 사회적 담론으로 정립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대화와 토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너무나 일찍 생략(포기)해버렸다.
‘퇴진은 추모’가 아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책임여부 혹은 퇴진에 대한 동의여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적어도 지금 이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애도의 정치-추모의 정치화는 퇴진 구호와 달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국가책임을 묻는 것이 정권에 대한 책임 요구로 축소되거나 수렴될 수 없다. 정권교체만으로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 대해 일부 진보적 운동 단체에서는 체제전환을 이유로, 윤석열 퇴진을 외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되묻고 싶다. ‘윤석열 퇴진’이라는 구호가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과 내용으로 체제전환 시킬 수 있는가? 오히려 대통령 퇴진 구호는 체제전환의 요구를 가리고 있다. 윤석열 퇴진 구호는 불평등-기후위기-차별의 문제들이 아니라(혹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재명-윤석열 두 개인 간의 정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대선, 지긋지긋한 양당정치의 구도를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퇴진한다고 자본주의가 극복되는 것도 아니며,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사회의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정권교체는 ‘도로 민주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도로 민주당’이 정말 ‘혁명’이고 ‘해방’인가?
운동은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를 제시하고, 대중들을 설득하며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왜 그 노력을 ‘김건희 특검’을 외치는 세력과 함께 해야 하는가? 검찰과 싸우기 위해 모인 세력이 아니라, 현 체제에서 가장 고통 받고 아픈 사람들 곁에서 함께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사회운동 세력이 함께해야 할 곳은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옆이다.
추모행동으로 출발하자는 의미
사회적 추모는 단순히 슬퍼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추모를 통해 행동하자는 의미이고, 이 행동에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퇴진운동을 전개하게 될 수도 있다. 다만 윤석열 퇴진(민주당 재집권)을 위해 ‘추모’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본말전도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아직은 짐작할 수 없지만, 함께 슬퍼하고 감정을 공유해나가면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복되는 참사의 시대는, 사회가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회적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지금의 청년세대는, IMF부터 세월호 그리고 10.29 이태원참사까지 각자도생이 유일한 생존방법이라는 것을 살아온 삶 전부를 통해 학습하고 있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그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개인으로 파편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은 첫째는 반성과 성찰이고, 둘째는 고립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메시지는 단순히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잘못을 확인하고 대안을 찾아나갈 수 있는 사회라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또한 언제든 자신이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내재된 사회구성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통해 사회의 존재의미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윤석열 정부는 이를 포기하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정치적 행동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출발해 국가에 대한 불신을 종식시키기 위해선, 새로운 사회 모델을 탐색하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제는 안전하다, 이제는 사회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연결해내는 사회를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퇴진운동을 넘어서야 하는 가장 큰 핵심적 이유다. 게으른 퇴진운동을 넘어 국가담론에 대해 말하자. 누가 대통령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느냐이다.
*12월 17일에 있었던 있었던 민교협 토론회 <이태원 참사의 성격과 한국 정치>에서 발표한 발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