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4세대 여돌, 알맹이 없는 새로움과 주체성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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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눈치채는 밝은 눈
사진 - 4세대 신인 걸그룹 메이브
사진 - 4세대 신인 걸그룹 메이브


온갖 군데 아이돌이다. 굳이 찾아야 보일까. 검색하지 않아도 여러 앱에서 유저들이 옮겨 오는 아이돌 영상 때문에 머리가 시끄럽다. 하루는 릴스를 넘기다가 생각했다. 뉴진스와 르세라핌이 매체를 점령한 세상에서, 여자들이 자신을 긍정할 수가 있겠느냐고. 그들의 어림과 아름다움, 'fearless'라는 당당함까지 평범한 사람들과 가까운 건 없다. 아이돌 즉 우상이라는 의미답게 그들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준다. 너무 완벽한 아이돌이 사방 천지인 세상이라, 모자란 나 자신도 사랑해주기는 더욱 팍팍하지 않겠는가.

유료로 팬덤에 가입한 팬들에겐 아이돌의 더 내밀하고 자연스러운 면을 보여준다. 가까워지고 싶고, 닮고 싶고, 그러나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애타는 팬들의 관심이 아이돌을 밝힌다. 감질맛이 날 따름이다.

여자 아이돌에게 여성 팬(일명 여덕)이 많다는 건 이미 자명한 사실이다. 4세대 걸그룹 아이브의 싱글 3집 ‘After LIKE’ 앨범 구매자의 73.6%가 여성이다. 뉴진스의 ‘New Jeans’ 앨범 구매자 중 여성 비율은 82%가 넘는다. 20대 여성(29.3%)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10대 여성(27.5%)이 그 뒤를 잇는다. (시사저널, 2022.10.08.)

이렇게 많은 여덕들이 여돌을 동경하고 좋아하는데, 나라고 싫을 리 있겠는가. 필자는 르세라핌의 데뷔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The World Is My Oyster'를 보고, 이 다섯멤버가 멋있어서 호감이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4세대 여돌들이 내세우는 새로움, 주체성이란 메세지가 공허해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여러분도 공감할 수 있을까?




1. 새로움?

개성 강한 걸그룹들이 여성들의 워너비로 자리매김 했다. 범람하는 4세대 여돌이 각자의 생존전략을 찾았는지,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다. 대세 걸그룹들이 각자 다른 '멋쁨'으로 덕후몰이를 하는 중이다.


뉴진스는 데뷔곡 "Attention"과 "Hype Boy"로 인기를 끌었다. 서양, 백인, 상류층, 10대 소녀가 연상되는 뮤직비디오로, 서구에 대한 동경을 유발하는 전략이 다소 진하게 묻어난다.

데뷔곡 세 번째 타이틀 "Cookie"는, 좀 다사다난한 사연이 있다. 가사 중에 미성년자 멤버들을 성적대상화했다는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소속사 어도어는 반박입장문을 내어 "건강함"과 "새로움"을 보여주려 했다며 호소했다. 입장문 말미엔 비판하는 팬들에게 "억지 주장"이라며, "미성년자에 대한 보호를 방패로 자신들의 목적을 포장한다"고 매섭게 겨냥했다. (엑스포츠뉴스, 2022.08.27.)

다음 컴백 타이틀곡인 "OMG"의 뮤직비디오는, 트위터의 비판적인 돌덕을 정신질환자로 묘사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또 한 번 논란이 일었다.

필자는 "Cookie"의 미성년자 성적 대상화 논란에, 결론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소속사를 비판하기에 앞서, 따져볼 논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입장문에 따르면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곡이라고 하지만, 나는 설령 그것에 성적대상화 의도가 있었더라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소녀들은 성적인 폭력에 가장 취약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맥락을 따지길 바란다. 미성년자는 무성적 존재가 아니고, 보호주의적 잣대에 반대하여 성적 표현을 할 수 있다. 갑을관계에 있는 소속사와 소속 아티스트가 성적인 컨셉트를 평등하게 합의했는지가 중요하다(이 역시 첨예한 문제다). 그러니 소속사가 미성년자를 이용해 성적대상화를 의도했다는 주장은 너무 거칠다. 개별 주체로서의 아이돌 멤버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기에, 섣부르다.)

그러나 논란이 억울할지라도, 팬들을 뮤직비디오에서 정신질환자로 낙인한 건 시대에서 굉장히 퇴보한 선택이었다. 사실, 뉴진스에 대한 그동안의 비판은 여덕의 페미니즘에서 기인한 것이다. 소속사는 커진 비판들을 어느 지점에서 수용해야 하고 때로는 반려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대신 비판하는 덕후들을 '프로불편러'로 무시해버리는 간편한 태도를 취했다. 페미니즘이면 불손한 '목적'이 있고 '억지 주장'이라는 식은, 새로움을 밀고 나가던 뉴진스의 행보와는 상반되게 김 새는 꼴이다. 뉴진스가 4세대 여자 아이돌의 대표주자라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럽다.




2. 주체성?

여덕을 사로잡기 위한 색다른 콘셉트가 잇다르면서, 걸그룹 선정성 논란은 근 5년간 꽤 줄었다. 요즘에서야 섹시 콘셉트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럼에도 매 컴백마다 여돌들을 괴롭히는 구설수가 있다면, 몸매다. 걸그룹에 대한 몸매평가(몸평)가 끊이지 않는다. (몸평을 재확산하지 않기 위해 구체적인 사례는 들지 않겠다.)

어떤 소비층이 몸평 여론을 형성하는지 구체적인 통계는 없으나 분명한 해로움은 있다. 걸그룹을 몸평할수록, 여돌을 좋아하는 여덕들에게도 몸평의 압박을 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매체를 통해 여돌을 향한 비난을 읽으면, 가슴 한켠에서 분노하는 한편, 위기의식을 느끼며 다시 꾸미도록 내몰린 여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제 외모코르셋은 언급하기도 입 아픈 단어가 되어버렸는데, 탈코(탈코르셋)가 발전하긴커녕 그것을 과거의 산물로 만들고 시대는 역행한다. 여돌의 젠더수행과 관음하는 이들의 몸평이, 주체적인 여성의 가면을 쓰고 아닌 척 은밀하게 백래시를 공모한다.

4세대 걸그룹이 자부하는 여성성이란 예전처럼 애교있고, 수동적이고, 섹시한 모습인 건 아니다. 오히려 여성의 주체성을 내세웠다는 마케팅이 지천을 도사린다. 하지만 여전히 걸그룹을 통해 여성은 더 아름답고 보기 좋은 상품으로서 가치있어진다. 계속해 마르고 예뻐야 하는 젊은 여자들이, 잠깐 인터넷을 켜면 블랙핑크의 광고베너를 본다. 어딜 가나 블핑이 보이는 세상에서 어떻게 여자들이 자신의 몸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나는 아이돌 산업에 약간은 회의적인 편이다. 아이돌은 근본적으로 모순적인 존재라 그닥 달갑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행보가 적어도 덜 해롭게 계속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아이돌로부터 실제로 위로받고, 힘을 내고, 살아갈 동력을 갖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여돌은 가끔 여자들을 개인적으로 구원해준다. 나는 아이돌 산업이 초래하거나 악화시키는 구조적인 문제와 별개로 이런 개인적인 구원을 소중히 하고 싶다. 아이돌이 스타로서 여전히 존재하되, 점점 '덜' 유독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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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비회원

저는 한국의 아이돌 산업이 공공의료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컨셉의 다양화는 이루어졌지만, 미적 기준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마르고 선호하는 얼굴상이 있다는 점에서 아주 획일적이지요. 

아이돌로 대표되는 미적 기준의 영향으로  피부과, 성형외과 등의 의료영역이 돈을 쓸어담으니 지역병원에는 의사가 없어지는 문제 등.. 

장황하게 이야기했는데, 결국 한국의 아이돌 문화 산업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도 연관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돌의 주체성, 또는 어떤 정치적 효과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들이 이젠 너무 많고, 아이돌을 좋아하거나 응원하는 내 행동들도, 저런 이야기들 속에 빨려들어가곤 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그만 좀 해'라는 말을 하고 싶은 순간들이 정말 많은데요. 너무 말잔치 같아서. 

저도 여자아이돌을 좋아하는데요,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업화 된 여성성을 좋아하는 내가 정말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많습니다... 글에 적혀있는 것처럼 이전과는 달리 애교 있고, 수동적이고, 섹시한 모습인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마케팅의 전략이니 예의주시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만큼이라도 발전한 게 어디냐...! 해야 하는 것인지. 늘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문화에서 아이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면 진짜 할말도 많고 생각도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