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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탄소중립을 위한 녹색교통 육성, 잘 되고 있나요?
제목: 2050 탄소중립을 위한 녹색교통 육성, 잘 되고 있나요?   ◎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국제사회와 국내의 노력 지구기온 상승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심각해짐에 따라 국제사회는 파리기후협정(Paris Climate Agreement 2015)을 통해 지구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로 억제하는데 합의했다. 그에 따라 세계 각국은 국가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담은 2030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수립하고, 탄소중립 선언을 이어왔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년간 탄소중립을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이 ‘2050탄소중립’을 선언한 이후 기존 2018년 대비 26.3% 감축을 목표로 했던 NDC를 40%로 대폭 상향했다. 또한 탄소중립위원회를 통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수립했고, 지난 해 9월 2050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법정 절차 및 정책 수단을 담은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 제정·공포 되었다.   ◎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세계 최상위권. 한국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 크게 기여해온 국가로 기후변화에 있어 어깨가 무거운 국가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발표한 2017년 기준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순위는 세계 11위다(2020년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 또한 클라이밋워치(Climate Watch)에 따르면 한국이 2019년 세계에서 9번째 이산화탄소 배출국으로 나타났으며, UN기후변화협약(UNFCCC) 제 26차 당사국 총회에서 영국의 단체에 의해 발표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석탄발전으로 인한 1인당 온실가스 배출이 전 세계 2위로 나타났다. 지난 4월,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승인한 제6차 평가보고서(AR6 WG3)에 따르면 1.5℃ 제한 목표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감축해야 한다. 8년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절반에 가까운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제는 최종 사용의 전기화를 통해 이산화탄소의 직접배출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배출 없는 재생에너지 전력발전을 통해 에너지 생산과 사용 전 과정에서의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공격적 전환이 필요하다.   ◎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노력은 정부와 기업 단위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 정부의 법·정책 마련, 기업의 ESG와 함께 개인의 생활습관과 그에 따른 소비가 배출에 미치는 영향, 기업과 정부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2050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명 모두의 방식에 있어 대 전환이 필요하다.   ◎ 내가 바로 기후악당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2014년부터 2021년 중반까지 출퇴근을 비롯한 이동에 자가용을 이용했었다. 자가용 1km 이동시 대략 0.2kg의 이산화탄소 직접배출이 일어나는데, 나는 수년간 출퇴근 이동으로 하루 5.2kg, 연간 14t이상의 이산화탄소를 직접배출을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많은 죄책감을 느꼈다. 바로 내가 기후변화에 크게 기여해온 기후악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삶의 방식을 기후위기에 기여하는 방식이 아닌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많은 노력을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전기자전거도 장만했다.   ◎ 전기자전거 라이더로서 느낀 자전거 주류화를 위해 필요한 정책 그런데 전기자전거로 집(마포구)과 대학원(관악구)을 왕복하기 시작하면서 자전거 라이더로서의 생활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가용을 이용할 때와는 달리 자전거를 타며 수많은 불편함을 몸소 느끼며 왜 자전거가 아직 주류화 되지 못했는지, 주류화를 하려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자전거 활성화의 근거가 되는 법을 살펴보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약칭:탄소중립기본법)> 제32조(녹색교통의 활성화) 제6항에 따르면 정부가 자전거 이용 활성화 등 다양한 이동수단의 도입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이미 탄소중립을 위한 방안에 자전거 활성화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전기자전거 라이더로 생활하면서 느꼈던 많은 불편함들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자가용 이용자를 자전거로 유인 할 수 있는 힘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전거의 주류화를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리를 시작했다.   1. 기존 자전거도로 정비 - 자전거는 울퉁불퉁한 도로에 매우 취약하다. 정비되지 않은 도로는 서리가 내리거나 비가 왔을 때 더욱 미끄러워져 사고를 유발한다. 그러나 도로에 대해 자전거보다 덜 취약한 자동차를 위한 도로는 거의 잘 정비가 되어 있지만, 자전거도로는 그렇지 못한 곳이 많다. 나는 실제 자전거를 주행하면서 패인 도로의 위험성에 알게 되었는데, 기사나 인터넷 포털을 통해서도 이러한 패임으로 인한 사고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전북일보(https://www.jjan.kr/article/20210421730819)   2. 안전을 고려한 기존 자전거 도로 설계 -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나 골목의 경우 운전자가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에 도로반사경을 설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위험을 줄인다. 그러나 자전거도로의 경우 이러한 고려가 전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전거 진입로에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를 확인 할 수 있는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도 심어져 있다. 자전거 운전에 있어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경이다. 이를 통해 자동차 도로에 비해 자전거 도로에서는 조경 등 설계에 있어 사고위험에 대한 고려가 현저히 낮다고 볼 수 있다. 사진: 박현지 촬영/광흥창역 자전거도로 입구.마포대교쪽으로 좌회전을 할 때 시야를 가리는 조경으로 인해 충돌 위험 상황을 몇 번 경험했다.     3. 자전거 전용도로 확충 - 자전거로 이동 하는 것은 아무래도 자동차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예를 들어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는 한강이나 천 등에서는 속도가 잘 나오기 때문에 자동차 출퇴근 유인이 충분하다. 그러나 거주지나 회사가 자전거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자전거-인도 겸용도로, 자전거-자동차 겸용 도로에서는 항상 눈치를 봐야 하는 쪽이 자전거이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니라면 자동차 이동과 크게 시간차가 나게 되며 유인은 떨어진다.   4. 자전거 인프라 정비 상황에 대한 알림 기능 필요 - 자전거로 등교를 하다가 크게 난감한 적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한강대교 자전거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었을 때다. 무거운 전기자전거를 끌고 계단으로 올라가보려고 했지만 너무 위험해서 실패했다. 그래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마포대교에서 한강을 건넜는데,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려 리스크가 컸다. 두 번째는 지난 늦여름 폭우가 있은 며칠 후 등교를 하는데 자전거도로가 중간부터 뻘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살살 뻘 위를 지나가려고 했으나 와장창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 자전거도로에서 빠져나와서 일반 도로, 인도-자전거 겸용 도로를 통해 학교로 이동했다. 시간도, 옷도 모두 버린 날 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정부나 지자체가 자전거 인프라 비상 상황(점검, 공사 등) 정보를 어플리케이션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해준다면 미리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도로 상황에 대해 교통방송을 하듯, 자전거의 주류화를 위해서는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   사진: 박현지/ 폭우가 지난 후 한강자전거도로(여의도-동작 구간). 진흙으로 뒤덮여 있어 주행하기에 위험하다.   5. 위험한 문화: 자전거를 위협하는 자동차 - 자동차 중심의 문화 속에서 자전거는 아직 자동차 이용자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인 것 같다. 자전거 라이더는 자전거 우선도로에서도 자동차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종종 자전거에 바짝 따라붙거나, 크락션을 심하게 울리는 자동차들도 있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경험한 그런 종류의 차들에 대해 위협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자전거를 탈 때 그런 자동차를 만나면 정말 위협적이다. 자전거는 안전상 자동차보다 한 없이 취약하고, 크락션 소리도 50배쯤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 자전거 우선도로에서 만큼은 자동차도 자전거를 엄연한 교통수단으로 인정하는 문화, 위협하지 않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런 문화를 위해 공익광고 등 홍보가 필요하며, 바짝 붙어 위협을 가하는 차량에 대한 벌금 부과 등 법적 조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진: 박현지/자전거우선도로   6. 레저용 자전거와의 분리, 속도제한 - 자전거 이용자에게 자동차만큼 위협적인 것이 더 있었다. 바로 레저용 자전거들이다. 몇 번 아찔하게 마주친 적이 있었다. 레저용 자전거를 타는 단체가 자전거도로 중앙선을 넘어 앞, 뒤가 아닌 횡으로 넓게 펼쳐져 자전거를 타며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광경을 몇 번 보았다. 물론 나도 반대편에서 가고 있던 자전거였다. 자동차들이 자전거 우선도로를 고려하지 않고 도로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레저자전거 단체들도 본인들이 자전거도로의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자전거도로에는 분명 20km의 속도제한 표지판이 곳곳에 부착되어 있는데, 레저용 자전거의 속도는 20km를 훨씬 뛰어 넘는다. 사고 발생 시 큰 부상이 우려된다. 속도제한 준수를 위한 행정적 조치가 필요하며, 가능하다면 레저용 자전거와 일반 자전거가 분리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7. 자전거 보험 등 위험 관리제도 마련 - 자전거를 탄지 2개월로, 짧은 시간이었는데, 벌써 2번의 사고가 있었다. 첫 번째 사고는 사람 없는 주차 상태의 내 자전거를 오토바이가 받은 일이었고, 두 번째는 한강 자전거도로 주행 중 뒤따라오던 자전거가 내 자전거와 겹쳐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내 자전거를 받은 일이었다. 첫 번째 사고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과실로 그 운전자가 내 자전거 파손에 대한 손해 배상을 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두 번째 경우에서는 나와 자전거가 넘어지고, 뒤에서 받은 자전거와 사람도 넘어져 내가 다치고 내 자전거도 휠 보호대가 휘어져 파손이 되었는데, 해결할 방도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를 받은 자전거 운전자는 미성년자였고 자전거 보험 역시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사고의 경우 제도가 잘 되어 있어 접촉사고라 하더라도 해결이 되는데 자전거의 경우 자전거는 물론 사람이 다치더라도 사고처리를 할 방법이 없었다. 자전거 우선도로, 자전거 전용도로 등 이용자에게 최소한의 자전거 보험을 들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2050 탄소중립, 녹색교통 자전거 주류화를 위한 공론화와 정책이 필요하다. 탄소중립기본법이 담고 있듯, 탄소중립을 위해 자전거를 대체할 녹색교통인 자전거 이용 활성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르웨이 오슬로,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전체), 스웨스 루체른 등 친환경 녹색도시를 표방하는 선진국의 도시들은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자동차 이용자를 자전거로 이끌 유인이 충분히 존재하는가?   길지 않은 시간에 자전거로 인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면서, 내 가족에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라고 아직은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꿋꿋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자전거 친화적 환경이 갖춰질 수 있도록. 공론의 장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눠보고 싶다. 
탄소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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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재생 활동가의 안전한 삶을 위해
길을 걷다 보면 자주 만나는 우리 동네 리어카.  2021년 국립생태원은 공모를 통해 ‘폐지 줍는 어르신'이 아닌 ‘자원재생활동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의 관심 만큼 인식도 달라질거라는 바람입니다.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우리 동네 리어카에 일상관찰가는 작은 관심을 내어 그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춘천시 효자동 일대 7명의 자원재생활동가와 동행하며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바탕으로 ‘일상관찰가와 함께하는 리어카 공론장 - 우리 동네 리어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를 준비했습니다.   이 공론장에서 나눌 일상관찰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소중한 당신의 이야기도 댓글로 보태주세요 재활용 수집, 보관, 판매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위험들 1. 쉴 틈 없는 수집활동 자원재생활동가들의 하루는 고물상을 중심으로 수집, 보관, 판매로 나뉜다. 고물상은 판매처이지만 자원재생활동가들의 지원군이며 쉼터이기도 하다. 리어카를 대여해주고, 잠시 쉬면서 차라도 한 잔 마신다. 재활용을 수집하는 동안 쉴틈도, 마땅한 장소도 없이 움직여야 했던 자원재생활동가들은 고물상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래봐야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다. 중간에 마땅히 보관 장소나 휴식공간 없이 자원재생활동가들은 고물상까지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이동해야 한다. 재활용품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수시로 돌아다녀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만난 자원재생활동가들은 대부분 하루 종일, 매일 일을 했다. 많은 지역을 쉴틈 없이 돌아다녀야 하지만 수집활동에 비해서 얻는 수입은 턱없이 적었다. ‘관악구 재활용품 수거 어르신들의 생활실태와 개선방안’을 근거로 폐지 수거 노인들이 처해 있는 보편적인 실태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거 노인들 중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는 노인들이 46명(36.2%)이었다. 폐지가 가게나 가정에서 불규칙하게 여기저기서 배출되므로 수거구역을 하루 종일 계속 돌아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석 내용이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 명절 등을 제외하면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응답한 노인이 76명(60.8%)이었다. 노인빈곤이 심해져 폐지 수거 경쟁도 그에 따라 치열해지면서 하루라도 쉴 경우 생계에 위협이 오고 경쟁자들에게 수거 구역이나 단골가게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에 응답한 폐지 수거 노인 대다수(90.6%)의 한 달 수입은 40만원 이하였다. 가장 많은 수가 응답한 수입액은 46명(36.2%)이 응답한 10만~20만원이었다. 너무 낮은 수입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이들은 위험에도 노출돼 있었다. 교통사고 경험자만 19명(14.9%)이나 됐다. (재활용산업 먹이사슬의 끝에서 살아가는 ‘폐지 줍는 노인’)  2. 경쟁 그리고 관리되지 않는 갈등 재활용품은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이다. 암묵적으로 나눠진 구역에서 불안한 상태로 수집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경쟁자가 생길 경우 개인간 갈등과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활동 연수가 길수록, 알고 지내는 관계도 생기고 고정적인 제공처도 늘어난다. 상점 주인과 안면이 익은 사람이거나 주인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특정한 사람을 정해 재활용품을 가져가게끔 하는 것이다.  고정적 제공처가 있을 경우 규칙적인 수집 활동과 일정한 수입원 확보가 가능하지만, 반대로 쉬지 못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가야한다. 제공처에서 달가워하지 않을 뿐더러 하루라도 빼 먹으면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뺏기기 쉽다. 어떤 이들은 자원재생활동가들을 자신의 비용 절감에 이용한다. 마트, 아파트, 다세대 주택 등 대량으로 재활용품이 발생되는 곳에서는 건물 내부 청소를 하게끔 하고, 그 대가로 재활용품을 가져갈 수 있게 한다. 여기에서 피해가 발생한다 해도 자원재생활동가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다.  3. 무거운 리어카와 교통사고 자원재생활동가들의 운반수단은 대부분 리어카이다. 리어카의 무게는 보통 50~70kg이다. 리어카를 끌기 위해서는 리어카 자체의 무게뿐만 아니라 리어카에 싣는 재활용품의 무게까지도 감당해야 한다.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실으면 폐지 양만 200~300kg에 달하기도 하니, 300~400kg 내외를 끌고 다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두 리어카에 짐을 가득 채워서 다니는 건 아니지만, 수십 킬로그램에서 수백 킬로그램 내외를 끌고 아스팔트 위를 다니는 건 청년들에게도 버거운 일이다. 폐지가 허리 높이까지 쌓이자, 수레 운행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10㎝ 정도 되는 보도 턱에 걸려도 수레가 옆으로 기울며 폐지가 쏟아져 내렸다. 노끈을 이용해 세게 고정해도 소용없었다. 쏟아지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옆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기 일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차가 멀리 보여도 수레를 빨리 끌 자신이 없어 선뜻 건너기 어려웠다. 탑골공원 앞 사거리의 약 50m 길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목숨을 건다'라는 결심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됐다.(폐지 100㎏ 모아봐야 겨우 5000원… 노인들은 왜?) 인도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차도 위를 맨몸으로 리어카를 끌고 다닌다. 요즘엔 전기차가 많아져 소리를 못 듣고 깜짝 놀랄 때도 많다고 한다. 저녁이나 새벽에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사고의 위험이 크다. 대부분 제대로 된 안전장비 하나 없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폐지 수집 노인 19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 기간에 동대문구에서 가장 많은 3명이 사망했고 종로구와 관악구에서 각각 2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광주에서는 만취한 20대가 운전을 하다 앞서 가던 리어카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새벽에 폐지를 줍던 70대 여성이 사망했다. ('불안불안' 폐지 수집 노인들…그들이 도로 위 주행하는 이유?) 더 많은 사고는 좁은 골목길에서 차량과 마주 치거나 이동할 때 발생되는 접촉사고이다. 리어카의 무게 때문에 주차된 자동차나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끄는 일은 매우 어렵다. 사람이나 주차된 차와 부딪히게 되면 치료비나 수리비를 물어줘야 한다는 두려움도 크다.  자원재생활동가들의 위험을 줄이는 시도와 사례 1.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제정 2014년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재활용품 수집•관리인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2020년 1월 개정됐다. 이후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조례가 제정되어 현재까지 55개에 이른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조례를 기초로 소규모 단위의 안전장비 지급과 안전교육을 실시하는데 대표적으로 야광조끼와 리어카에 붙일 반사스티커를 지급하며, 지역에 따라서는 경량 리어카를 지급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이 얼마나 실효성있게 진행되었는지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그동안 무관심으로 방치되다시피 한 재생활동가들에게 제도적인 관심이 마련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2. 위험을 줄이는 다양한 아이디어 사회적 기업 ‘끌림'은 가볍고 안전한 리어카를 직접 개발하고, 그 위에 광고를 부착하여 발생하는 광고수익을 폐지수거 어르신에게 전달한다. 홈페이지를 보면 현재까지 전국 34개 지역구에서 운행되고 있으며 433명의 어르신께 안전한 끌림 경량 리어카를 무상으로 임대해 4억 7천만의 임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이들의 시도는 지역의 자원을 모아 노인들에게 분배한다는 점, 특히 고물상을 협력 주체로 삼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이다.  경량 리어카는 거점 고물상에 보관하여 운영하면서 경량 손수레에 이상이 생길 경우 끌림에서 수리를 담당한다. 끌림은 광고 수익의 70%를 폐지 수거 어르신에게 전달하고, 나머지 30%는 리어카 유지를 위한 관리비용과 청년 기업 운영비로 사용한다. 또한 한 번 실은 광고는 6개월 동안 이용하게 돼 경량 리어카를 담당하는 어르신은 42만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한다. (희망 리어카로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 기업, ‘끌림’) 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는 폐박스를 시중가보다 5~6배 이상 높은 가격으로 매입하고, 사들인 폐자원을 재활용해 캔버스 작품 등으로 재 탄생시켜 판매한다. 자원재생활동가들의 노동환경과 인식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초기에는 노인을 직접 고용하기 보다는 이용자로 만들었고 점차 고용을 늘려가고 있다. 상자를 공급할 재활용품 수집인들을 멤버쉽화 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러블리페이퍼가 업사이클하는 목적은 단순히 폐자원을 다시 한번 사용한다는 걸 떠나서 어르신들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꼭두새벽부터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담아 홀로 외롭게 일하던 어르신이 우리와 함께 즐겁게 일하게 된 변화를 말이다. (“폐지 줍는 어르신, 빈곤 노인보단 ‘자원재생 활동가’”)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아이디어 외에도 우리는 관찰을 통해 많은 아이디어들을 생각했다. 수입이 낮은 폐지 외에 다른 재활용품의 품목을 늘리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폐지 매입 가격은 kg당 약 70원이지만 투명페트병의 경우 kg당 약400원에 거래 되고 있다. 이동 거리가 많다는 문제에 대한 대안은 중간 판매거점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인데 쓰레기집하장에 도우미를 두고 활용품 중간 판매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수퍼빈 같은 분리수거 자판기 아이디어를 차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향하는 곳은 하나다.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재생활동가들은 바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웃이기때문이다.   자원재생활동가의 안전한 삶을 위해, 무엇을 시작할까? 처음에는 ‘자원재생활동가’라는 호칭이 조금 과한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 거리를 깨끗하게 하고 좋은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자원재생활동가들의 말에 의아함도 들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폐지수집 노인들이 우리나라 단독주택 지역에서 배출되는 폐지 재활용 중 약 60.3%에 해당하는 양의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원재생활동가라는 호칭은 마땅하다. "폐지 수집 노동이 사회적으로 재조명되는 계기를 마련한 연구라고 보입니다. 이분들의 노동이 온정적인 시선을 넘어서 사회적, 경제적 가치로 산출되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기여에 걸맞은 사회적 보장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GPS가 알려준 진실 “노인들의 폐지 수집은 사회적 기여였다”) 가난의 문법의 저자 소준철은 “한 개인의 삶은 국가, 산업, 혹은 같은 동네 주민인 우리들의 영향을 받아 이뤄어진다"고 말한다. 자원재생활동가 또한 우리 사회의 필수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이웃으로서 우리는 그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 받을 것인가. 우리는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     
노인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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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줍는 노인과 자원재생활동가 사이에서
길을 걷다 보면 자주 만나는 우리 동네 리어카.  2021년 국립생태원은 공모를 통해 ‘폐지 줍는 어르신'이 아닌 ‘자원재생활동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의 관심 만큼 인식도 달라질거라는 바람입니다.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우리 동네 리어카에 일상관찰가는 작은 관심을 내어 그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춘천시 효자동 일대 7명의 자원재생활동가와 동행하며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바탕으로 ‘일상관찰가와 함께하는 리어카 공론장 - 우리 동네 리어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를 준비했습니다.  이 공론장에서 나눌 일상관찰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소중한 당신의 이야기도 댓글로 보태주세요. 1. 폐지줍는 노인 존재는 그것을 부르는 이름으로 규정되곤 합니다. 마치 내 이름이 나를 규정하듯이 말입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불리는 이름이, 명칭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도심에서는 보이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지 줍는 노인분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폐지”, “줍다”, “노인”이란 단어가 그분들의 인생을 규정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가난, 격차, 늙음 이란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를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1년 국립생태원이 폐지 줍는 노인들을 지칭하는 새로운 이름을 공모했는데요, 많은 이름 중 선택된 것이 바로 ‘자원재생활동가’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뭔가 굉장히 달라 보입니다. 이름만 달라졌을 뿐인데 이분들이 하시는 일도 왠지 달라보이는 건 기분 탓 일까요?   ‘우리 동네 리어카 프로젝트’에 참가한 일상관찰가들은 자원재생활동가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7명의 자원재생활동가와 동행하며 춘천시 효자동 일대를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이번 프로젝트 ‘일상관찰가와 함께하는 리어카 공론장 - 우리 동네 리어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의 과정과 그속에서 느꼈던 점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 재활용품 수집 노동의 열악한 환경 자원재생활동가들의 노동 강도는 중노동에 가깝지만 수익은 형편없는 정도라 생계를 위해서 쉴 틈 없이 일해야 합니다. 고정적인 수입처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없다면 더 많이 더 오래 돌아다녀야 합니다. 법정 노동시간은 자원재생활동가들에겐 없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참고로 운반 수단인 리어카의 무게는 보통 50~70kg 입니다. 여기에 300~400kg 내외 정도의 폐지를 담습니다. 한시간 정도를 리어카를 밀고 걸어 다니면 어깨와 다리, 허리에 통증이 밀려옵니다. 우리가 만났던 자원재생활동가들의 대부분은 건강이 염려되는 상태였지만 건강을 돌볼 만 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나 지원은 없거나 있어도 무용지물에 가까운 것들이었습니다. 체력적인 소모가 많은 노동강도에 비해 비용은 턱없이 낮은 상태고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찾는 것도 어렵지만 끊는 건 더 어려워 보입니다.   기사폐지 줍는 노인 건강 ‘적신호’...손상 유병률 일반인구의 10배 :  https://www.yna.co.kr/view/AKR... 또다른 문제는 자원재생활동가가 활동하는 환경입니다. 활동가들은 재활용품이 많이 나오는 저녁 시간에 주로 활동하는데 작은 골목에서 차를 만날 경우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심야 시간에는 ‘묻지마폭행’과 ‘음주 상태에서의 폭행' 등으로 피해를 보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원재생활동가의 안전을 지켜주는 건 고작 야광 조끼 한 벌입니다. 그것도 모두가 가질 수 없습니다. 지자체의 관심과 형편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 차에 피해를 줄 경우 보상금도 만만치 않지만 피해자가 될 경우도 걱정 뿐 입니다. 다친다는 건 일을 못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폐지줍던 노인 묻지마 폭행 40대 구속…출동 경찰도 폭행 : https://mobile.newsis.com/view... 폐지 줍는 할머니 묻지마 폭행 50대 구속…바닥에 내동댕이쳐 : https://www.yna.co.kr/view/AKR...   3. 고령노동과 재활용 수집노동의 관련성 재생활동가분들의 연령층은 원래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 노인입니다. 그렇다면 왜 노인들은 이 일을 해야 하는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3.2%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노인이 가난의 문법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회 구조에 기인합니다.  노동의 유연성이란 명분과 효율성을 이유로 은퇴 이후 일자리는 임시직, 비정규직 등을 제외하면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렵고, 원치 않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은 어쩔 수 없이 가장 힘든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가지 더 보태자면 한국의 경우 남자노인보다 상대적으로 학력, 경력이 적은 여자노인이 더 많이 가난에 빠집니다.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을 전전하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 재활용수집을 하게 되는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이중적 빈곤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재활용 수집 노동을 외면해서 안되는 이유는  여기에는 빈곤, 저임금, 젠더, 노인문제와 같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집약적으로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한국의 고령노동시장 무엇이 문제인가?(이철희, 2014) https://s-space.snu.ac.kr/bits...   4. 자원재생활동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대안적 방향 재활용품 수집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정부의 소극적 대응에 책임을 넘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개인이  잘못 산 대가라고도 합니다. 둘다 맞을 수도, 둘 다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한쪽의 시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폐지 줍는 노인은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구성원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인 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동시에 이들은 긍정적인 노동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충족되려면 무엇보다 이들이 하는 노동은 인정받아야 합니다. 자원재생활동가의 노동은 쓸모가 없는 노동도, 잉여의 노동도 아닙니다. 게다가 공짜 노동은 더더욱 아닙니다. 분명히 가치 있는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다만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남이 버린 것을 주워 돈을 번다는 왜곡된 시선과 편견으로 사회의 가장 바깥으로 밀려났을 뿐입니다. 이 세상이 굴러가는 이유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가 대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되는 일, 멋진 일은 누구나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듯 힘든 일, 고된 일은 누구나 하기 싫지만 누군가가 묵묵히 하고 있기에 세상은 굴러갈 수 있습니다. 저는 자원재생활동가도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 일을 대신 함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그 역할을 다하시는 분들. 법을 바꾸는 게 가장 쉽고, 그 다음으로 행동을 바꾸는 게 쉽고, 그 다음으로 생각을 바꾸는 게 쉽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을 바꾸는 게 가장 어렵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이들을 폐지 줍는 노인이 아니라 자원재생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멀리서 시작하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바로 '나의 말'에서부터 말이죠. 
노인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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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위기는 정말 '정당'의 위기일까?
  일반적으로 정당의 위기가 언급되는 때는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고 판단되는 정당의 입장이 표명되는 시점이다. 승리와 패배는 의석수라는 수치로 치환되고, 그렇다면 사실상 양당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나라의 경우 항상 위기론을 직면해야 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진보정당이나 대안정당에 치중된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특정 정당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드러내는 것, 더 나아가서는 그 미래감이 정당을 유지시키는 힘이라는 점에서 선거에서의 승패여부는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모든 정당이 내외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위기’를 더 큰 관점으로 조명해볼 수도 있다. 여당 국민의힘은 내부자들이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데다가 계속되는 내홍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고,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집적된 트러블이 검찰의 당사 압수수색으로 폭발했다. 그렇기에 여기서 거대양당과 대안정당이 각기 겪고 있는 ‘어려움’의 형태가 같은 층위에서 이해될 수는 없겠다. 다만 이런 어려움’들’이 초래된 이유는 결국 같은 지점으로 귀결되지 않는가 하는 고민은 있다.    유권자의 투표율이 얼마나 되든지 간에, 그 투표율은 의석수 확보 시점에서는 100이 된다. 그 안에서 득표 비율에 따라 자리 수가 나눠지고, 외부적 맥락에 대한 큰 고려 없이 정당의 위치는 확인된다. 특히 투표율이 문제시되는 것은 선거 당일 정도에 머무르고, 그 외의 상황에서는 별다르게 언급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정당이 위기를 감지하는 지점은 낮은 투표율이 아니라 낮은 득표율이다. 좀처럼 투표율이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서 ‘위기’의 프레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모집단으로서의 유권자가 경험하는 사회적 위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정당이 경험하는 어려움에 국한된다.    특히 앞서 이야기했듯이 투표가 모종의 기대와 신뢰를 표하는 것이라고 할 때, 낮은 투표율(하락세라고 하기에도 난감한)은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무력감과 냉소를 의미하게 된다.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자신들의 요구가 ‘정치질’ 속에서는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더 이상 대의될 수도 없을 것이라는 무망함은 결국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이렇게 사회적 요구가 다양해진 상황에서 협의의 정치경제에 몰두함으로써, 그 필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정당들의 행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이는 보수적으로 제도와 정책을 프레임화하면서 ‘주변’을 주변으로 밀어내는 과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언론 탓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노동자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젠더 중심의 보도가 많았다”는 서성룡 정의당 진주지역위원장의 발언(단디뉴스 2022.6.10)은 그들이 다기화되어 범람하는 의제들에 어떻게 급을 매기면서 외려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대정당의 맹목적인 사익추구, 대안정당과 진보정당 내부가 협소한 프레임을 두고 겪는 내홍. 이 ‘어려움’들은 어떻게 그들에게 ‘위기’로 인식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 사이에서 대안적인 요구와 활동이 계속해서 다양화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되고 있다는 점은 이 교착상태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지점이 될 것이다. 이는 더 이상 기존의 대의민주주의가 다양화된 의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테지만, 결국엔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될 수 있다.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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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hear the people sing?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캠페인즈에 글을 쓰기 전부터 정치에 관한 글은 많이 써왔다. 이번 시즌 주제가 정치라 잘됐다 싶었다.그런데 정치와 관련된 얘기를 하려하니 정치의 범위와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광범위했다. 그래서 이번글은 정말로 아무말이 될것 같지만 정말로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고싶다. 적확한 표현은 아닐 수 있겠으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political)."라는 문구에 힘입어서 써보겠다.  몫이 없는 이들의 몫을 찾는 과정 정치에 관한 글을 준비 중이라고 하니까, 국제정치를 전공한 친구가 위 문구를 알려줬다. 정치는  "몫이 없는 이들의 몫을 찾는 과정”이라고. 이 말은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가 한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 나라는 개인에 있어 정치는 무엇을까?라는 질문과 더불어 여러가지 이야기거리들이 떠올라 적어두었는데, 결국은 위 문구를 들었을 때 한마디로 정리가 되었던 것 같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라는 것이 몫이 없는 제3자들의 것에서 몫이 없는 것을 깨달은 나(당사자)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지 않을까싶다.  어릴적부터 한국사, 세계사, 근현대사를 정말 좋아했고, 꽤 잘했다(?). 나중에서야 역사는 강자들, 살아남은 자들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역사를 배울때는 민족(공동체)들의 흥망성쇠이자 정치 이야기를 엿볼수 있어서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왕과 귀족들의 역사에서도 몫이 없는 이들이 몫을 찾는 과정은 수없이 많았다. 다만 내가 보다 관심있는 역사와 정치는 민중의 역사와 정치이다. 특히 대학교 교양시간에 배운 서양사강의와 인권사강의를 통해 알게된 정치는 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고 앞으로의 삶을 선택해나가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주었다.  인민주권, 보통선거권(21세 이하 남성의)을 골자로했던 ‘1793년 프랑스 헌법’이라든지, 산업혁명기 아동과 여성의 노동착취를 막기 위해서 입법된 영국의 ‘공장법’이라든지 정말로 몫이 없어서 생명에 위협을 받는 이들이 몫을 찾아가는 과정은 현재를 사는 나와같은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숫자만 하나씩 밀려나가는 어제와 똑같은 지친 아침을  생각없이 체념한 듯이 맞이하고 있니 모두가 똑같은 표준의 시계 그대로 보며 맞춰나가며 이대로 너는 정말로 행복한 거니 매뉴얼대로 살아만 간다면 과연 꿈꿀 수 있을까 <비전, 유승준> 23년전 한 가수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를 일부 가져와봤다. 모두가 똑같은 표준의 시계에 그대로 보며 정해진 일정 속에, 매뉴얼 속에 나를 꾸겨 넣으면서 살아가는 삶이 정말로 행복한 삶이냐고 묻는다. 이 노래를 처음 접했던 10살의 꼬마는 32세에 이 가사를 다시 곱씹게 되었다. 그러고 나선 몫없는 이들이 몫을 찾아가는 과정(그 과정은 필수 투쟁이였고, 많은 피가 희생되었을)이 제3자들의 일에 그치는것이 아닌 나의 일이 되었다. 존재의 부정 29살이었던 2019년 한국사회에는 커다란 혼란이 있었는데 일명 ‘조국 사태’라고 불린다. 다른 내용은 차치하고, 조국 사태로 인해 내가 일하고 있는 시민사회영역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조국은 진보운동과 시민사회운동, 사회적경제 운동의 사상적 기반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던 인물이고 그 사상적 기반은 2020년 박원순 사태 때 완전히 박살나고 분해되었다. 일련의 사태를 겪고 난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많이 만나봤던 것은 아니였지만, 내가 느낀 것은 존재의 부정에 가까웠다. 정확히는 하나의 사건이 더 있었는데, 그것은 2021년 초에 발생한 정의당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다.  당시 내게는 운동의 거의 모든 근거와 기반이 무너진 것 같았고, 그 누구도 그 어떤 정당도 나라는 개인의 입장과 처한 상황에 공감해주거나 싸워주지 않는것 같았다. 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졌고, 보수나 진보나 다 똑같다는 정치 혐오만 가득해졌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했고, 소속되고 싶지도 않았다. 어떤 정치 집단도 믿을 수 없었고, 비빌 언덕은 사라져만 갔다. 몫없는 자들의 몫 찾기 2021년 정의당 사건은 마지막 한방에 가까웠고 조국 사태와 박원순 사태를 겪은 나는 한동안 무기력해져 있었다. 그러나 삶은 지속되어져야만 했고, 내 몫은 내가 찾고, 내가 쟁취해야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필요, 우리의 필요지만 누군가에게 채택되거나 주장되어지지 않는 필요들을 모으고 외치기 시작했다. 누구도 우리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해주거나 이해해주려하지 않았지만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람들과 자원들,생각들이 큰일을 하기에는 부족 할지라도 작디 작은 우리의 현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외부에 알리고 연대할 사람들을 더 모으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상으로부터 혁명,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말한 기나긴 혁명을 이뤄가는것을 시작해 나갔다. 이제까지는 누군가에 의해 정치적 도구로써 호명되어져왔다면, 이제는 스스로 내 이름을 부르는것, 나의 존재를 밝혀가며 몫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몫 찾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동료시민들의 지지와 연대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필요를 넘어 우리의 필요, 지역 공동체의 필요에 이르기까지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갈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충족되지 않는 삶의 영역을 시민들의 연대와 사업으로 해결해 나가는 협동조합 혹은 사회적경제의 방식은 조금 더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경제가 가진 정치적,문화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금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떠올랐던 노래들의 가사 말을 옮겨 적으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졸업, 브로콜리 너마저>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이 순간의 느낌 함께 하는거야 다시 만난 우리의<다만세, 소녀시대>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매일까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교실이데아, 서태지와 아이들> 커다란 날개를 달아 다시 태어나 허무하게 남겨진 어제를 벗어나높이 날고 싶다면 작은 망설임은 걷어 차버려끝없는 미지를 향해 내딛어야 해 새롭게 시작되는 오늘에 누구도 나를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는거야<비전, 유승준> 어쩌면 나의 정치는 노래 가사 말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을 아닐지? ?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20년 5월 8일 0.50%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21년 8월부터 오르기 시작해 2022년 10월 12일 3.00%가 되었습니다 (한국은행). 금리는 왜 이렇게 오르는 걸까요? 금리가 오르는 건 우리에게 무슨 영향을 줄까요? 금리가 오르면 은행 예금 이자와 대출 금리도 같이 오르게 됩니다. 이자가 오르면 기업이나 가계는 대출을 덜 받으려고 할 것이고, 저축을 더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업과 개인이 가지고 있던 현금은 은행으로 모이게 되고 시장에서 유통되는 현금은 줄어들게 됩니다. 어려운 말로 경제활동이 둔화된다고 표현하지요. 경제활동이 둔화되면 물건의 가격도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사용합니다. 또, 한국은행의 금리가 오르면 해외 자본이 한국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한국의 보유한 외화가 늘어나면서 환율도 떨어지게 됩니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품 가격은 상승하고 수입품 가격은 하락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래프에는 한국의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은 증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환율이 오르면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사용합니다. 금리 인상은 수요와 수출을 감소시키지만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가나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경기가 과열된 경우,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입니다. (경제학 개론 교과서 같은 설명이었습니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2021년 8월을 기준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한국은행이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왜 기준금리를 올리는지 알 수 있겠지요. 부동산, 주식 같은 투기 자본 과열, 식료품을 시작으로 한 물가 상승 같은 것 말이지요. 그러면,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투기 과열이나 물가상승을 그냥 두고 마냥 금리만 인상시킬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안 쓰는 것도 아주 큰 문제니까요. 그리고 물가하락으로 인해 소상공인, 농민들이 보는 피해를 생각하면 그것도 참 우려스러운 일이지요. 세상사에 안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만, 모든 일은 원인이자 결과인 측면이 있지요. 앞에서 이야기한 바를 가지고 생각해보면 금리 인상은 정책이기도 하지만 현상이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와 전쟁이라는 두 가지 인재(人災)로 인해 원자재, 식량, 에너지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점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아는 사실입니다. 2022년 10월 기준으로 한국 주변에 있는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금리 인상이라는 카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이유도 각국의 금리 인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국 정부가 금리 인상이라는 정책/현상에 대해 어떻게 이를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해법을 내놓을지 고민하고 있는 동한, 한국은 대통령의 욕설, 여당 전 대표의 성접대, 영부인의 표절, 국회 부의장인 한 여당 의원의 식민사관으로 떠들썩 하기만 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정부 관계자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실오라기 만큼의 책임감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작금의 경제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이가 있어야 할 것인데, 저는 그러한 언설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현 정부는 금리 인상이라는 현상을 두고, 어떤 정책적 노력을 기하고 있는지 지금까지는 알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뉴스를 찾아봐도 한국은행 총재의 인터뷰만 있을 뿐이고, 정부 관계자의 약속이나 설명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 부담 증가는 어떻게 할 것이며, 금리는 어디까지 올릴 생각인지, 환율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금리 인상으로 인해 수출입에는 얼마나 영향이 있을지, 그로 인해 국민 개개인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정부는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는 점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도 전쟁도, 한국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한국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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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민생’이 다치고 아프니까 : 민생입법과제에 장애인국가책임제법
이미지 출처 : @pixabay 꽃동네를 아시나요 ‘건장한’ 몸으로 기독교 미션스쿨을 다닌 사람이라면, 아마 찾아간 적 있을 것이다, 장애인시설 ‘꽃동네’. 나는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 전교생과 버스를 타고 꽃동네에 갔다. 아무렴 ‘봉사’는 너무 ‘착한’ 말이었고,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학생으로서 너무 ‘나대는’ 짓인 것 같아 어떤 섬짓함을 속으로 삭였다. 비장애인인 내가 봉사자로서 장애인과 ‘대화’하고 식사를 돕고 잡일을 ‘체험’하도록 기획된 이 활동에 감사하기보단 오히려 죄스러워 고개가 숙여지는 마음이었다. 일과가 끝난 저녁엔 강당에 모여서 꽃동네의 철학과 정신에 대해 들었다. 이곳에서 평생 살다 돌아가신 어느 장애인의 나눔과 섬김을 수녀님의 입을 통해 강의받았다. 그러나 다양한 몸을 가진 꽃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곳에서 들을 수 없었다. 오직 꽃동네를 운영하는 수녀님들께서 우리를 강당에 모아 이곳의 좋음을 알려주셨으니, 내가 가진 정보는 꽤 불균등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꽃동네에 관하여 기억하는 어렴풋한 내용이다. 소화하지 못한 찜찜함을 남기고 꽃동네 ‘봉사’활동을 마쳤다. 그땐 시혜적인 만남이 배움은 아니란 생각뿐이어서 우리 학교의 방향성에만 툴툴대었다. 그런데 지난 8월 31일,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22대 민생입법과제’ 중 하나로 선정한 ‘장애인국가책임제법’을 살펴보다 장애계가 꽃동네를 비판하는 더 넓고 정확한 입장을 알게 됐다. “꽃동네는, 장애인수용시설로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위배된다.”   장애인국가책임제법에 포함된 세부 법안은 6가지이다. (더인디고 2022.9.1.) ▲(장애인 평생교육기관 설치, 장애인평생교육사 양성 등)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고등교육센터 설치 등)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청각장애인 정보 접근 확보 등) 장애인복지법 ▲(교통약자 서비스에 대한 운전자 교육 등)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의무화 등)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법 ▲(탈시설지원기관 설치 및 운영 등)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에서는 제안 이유로 "장애인에 대한 시설보호는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 채 획일화되고 집단적인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아무리 따뜻하고 '착한' 시설에 거주한다한들 장애인이 선택하여 탈시설하고 자립할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협약 제19조는 “이 협약의 당사국은 모든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짐을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협약 일반논평 5는 “백 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규모 시설도, 5~8명이 사는 작은 그룹홈도, 심지어는 혼자 사는 집도 시설 또는 시설화의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면 자립적 주거 형태로 볼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비마이너 2022.8.16.) 그런데 꽃동네를 비롯한 장애인수용시설은 거주자가 밖에 나갈 수 없는 시설 속에서 생활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다양한 선택과 개성의 주체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여 지역사회와 분리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러니 현실적인 대책과 지원체계를 마련한 탈시설을 정치의 중요한 과제로 삼을 필요 있다.   인간이 원래 다치고 아프니까 현재 필자의 시간은 새벽 4시 24분을 가리키고 있다. 사람들은 이 시간을 무엇으로 보내고 있을까. 누군가는 피곤한 단잠에 빠져서 고생할 내일을 까맣게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어깨가 들쑤셔 잠과 현실의 경계를 헤매고 있을지도, 그리고 누군가는 미친 우울감에 포효하며 이불을 쥐어뜯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뼈저린 신체의 고통으로 이젠 하루를 그만 나고 싶다고 신에게 애원할 것이다. 나이 든 가족을 둔 사람이라면 아마 지켜봐왔을 장면들이다.   다치고, 미치고, 아픈 우리는 각자의 몸에 맞는 ‘하자’를 갖고 산다. 신체적인 지병이 아니더라도 상시적인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시민이 더러 있다. 먹거리로, 수면부족으로, 성장에 대한 압박으로 병을 주는 시대에 무언가 앓고 있지 않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픈 것이다. 내 눈엔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은 건강함이야말로 기이한 ‘증상’이 되어버리는 독한 세상이다. 이처럼 다들 각자의 몸에 맞는 '비정상성'과 아픔을 갖고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장애와 시설의 감각을 모른 채, 자신을 비정상성으로부터 분리하고 '하자 없는' 몸인 듯이 살아간다. 나이가 들고 병이 깊어져 요양병원에 맡겨질 날이 찾아와서야, 간신히 아픈 몸의 감각과 시설에 갇히는 불안함을 떠올린다. 사실은 누구나 항시 병들 가질 가능성이 있는 개체다. 그 가능성을 지금의 나로부터 분리하고 탈시설과 장애의 문제를 멀리하는 것보다는, 모두를 위한 시의적인 과제로 다루는 것이 더 공익적일 것이다. 인간의 신체로는 살면서 여러 번 장애와의 교차점을 지난다. 온 평생 장애의 길을 달리는 사람과, 장애와의 교차점만을 스치는 사람은 분명 다른 감각에서 살겠지만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모든 인간이 이해하는 아픈 몸과 장애와 시설이 만나는 교차점만이, 장애와 비장애의 극명한 경계를 흐리고 장애를 사회 안으로 들여 이해해 나가는 열쇠가 된다. ‘장애인국가책임제’는 ‘민생’입법과제에 포함된 것이다. 이제 장애인의 권리 향상이 보편적인 서민들의 더 나은 삶(즉 민생)과 연결된다는 감수성에 이르렀다. 아픔은 우리가 함께하는 재료로 쓰이고, 이 감수성으로 옳음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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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금융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시민36입니다. 최근에 금리가 무척 올랐지요. 금리가 치솟은 가운데 서울 집값이 폭락해서 전세가 아닌 월세 매물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하는데요. 하긴, 오른 건 금리뿐만 아니라 식자재를 비롯한 모든 물가도 마찬가지지요. 이렇게 저의 월급 빼고 모든 물가가 오른 상황을 보면서 ‘금융공공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뜬금없나요. 하지만 고금리,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금융공공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랍니다. ‘금융공공성’이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저는 처음 들었을 때 알듯 하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애매한 느낌이었는데요. 금융과 공공성을 떼어놓고 보면 이해가 갈 수 있습니다. 금융은 말 그대로 돈, ‘자본’을 융통하고 흐름을 만드는 일을 일컫습니다.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은행과 증권뿐만 아니라 보험, 신탁과 같은 신용관리기금 등 돈의 흐름을 포괄하는 큰 범위입니다.  신한, KB국민, 하나은행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기업은 보통 민간기업입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금융이란, 모든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인데 기업은 철저히 이익에 의해 굴러갑니다. 득과 실을 계산하고,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삶과 금융이 기업의 ‘득’에 기여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금융공공성이 사라진다면, 사실 모두가 아는 결과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2006년의 미국의 거대한 금융위기를 야기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부동산 거품과 더불어 은행의 무책임한 채권발행에 무수한 미국 시민들이 막대한 손해를 본, ‘모기지 사건’이 등장하는데요. 미국의 주택시장을 지탱하는 채권은 사실상 부실 채권이었고, 이로 인해 부동산 거품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으나, 월가와 같은 금융권, 은행 당국이 손해 보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일반인에게 채권을 팔아넘깁니다. 이러한 부동산거품을 눈치챈 사람은 단 네 명의 인물이 주택시장의 주식이 하락할 것에 베팅하여 거액을 투자하고, 결국 승리합니다. 경제용어가 많이 나오지만, 감독의 친절한 설명으로 비교적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답니다. 명언도 많이 나오는 영화이니, 언제 한 번 관람해 보길 추천드려요 한국에서도 최근에 금융기업의 이익을 위해 허술한 관리, 이해당사자들과의 유착관계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었지요. 바로 론스타 사건입니다. 론스타 사건은 아주 복잡한 사안인데요, 간단히 요약해서 이야기해자면, 미국 투자기업과 한국 금융감독당국이 유착하여 막대한 국부가 유출된 사건입니다.  2003년 한국이 외환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당시 미국 기업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하고,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이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4.6조 원의 차익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인수 당시부터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 즉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대주주로서 적격성을 의심 받았고, 결국 론스타가 금융감독원을 속이고 그들과 유착하여 외환은행을 불법으로 지배해왔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론스타는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감시, 감독을 이유로 주식 매각결정을 유보하여 더 큰 이익을 보지 못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6조 원가량을 배상하라고 ISDS(Inverster-State Dispute Settlement, 투자자 - 국가분쟁)를 제기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22년 8월 31일, 한국정부가 패소하여 약 3000억원을 배상하게 됐습니다. 패소하게 된 주된 요인은, 론스타와 유착한 정부 관계자, 금융감독원들이 국민보다는 자신들과 론스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BBC NEWS코리아, 2022.09.01) 20년 전 론스타 사태에 책임있는 인물들 중, 현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김진표의원, 김광림의원 등 익숙한 이름들도 있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요.  기업의 논리가 아닌 ‘공공의 논리’ 이처럼 금융기관의 이해당사자 유착관계, 부패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칩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돈’이 오가는 문제기 때문에 금융당국은 기업의 논리가 아닌 공공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오프라인 은행점 폐쇄 문제만을 두고 생각해 볼까요? 영업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포를 무작위로 폐쇄하면, 긴급대출, 예금상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자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층, 장애인 등의 금융접근성이 낮아지게 됩니다.  금융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금융감독원은 더욱 철저하게 금융당국을 감시하며 불공정거래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2021년, 채용비리와 사모펀드 사태의 핵심 인사인 함영주 부회장이 셀프연임하는 사건이 있었지요. (매일노동뉴스, 2021.03.18) 이러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이사회, 지주 등 견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을까요? 금융공공성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의견을 제안해 주세요!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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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보육수당과 아동수당의 확대? 체감도와 소회
출산보육수당과 아동수당의 확대? 체감도와 소회 [들어가며] 지난 8월 31일 민주당은 22대 민생입법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이어 지난 9월 20일에는 이를 압축한 중점입법과제 7개를 선정했습니다. 7개 중점입법과제에는 (1)노동쟁의에 대한 사측의 소송을 제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 (2)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포함됐습니다. 기초연금 지급 대상 확대 혹은 최고 지급액 상향을 핵심으로 한 (3) '기초연금확대법', 장애인 탈시설 지원 및 교육권 보장을 위한 (4) '장애인국가책임제법', 금리폭리방지법·불법사채금지법·신속회생추진법을 반영한 (5) '가계부채대책 3법'도 선정됐습니다. 마지막으로 (6)'납품단가연동제법'과 (7)'출산보육수당·아동수당 확대법'도 7대 중점 입법과제라고 민주당은 밝혔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7)번 과제인 '출산보육수당·아동수당 확대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풀어가 보고자합니다. 비슷한 시기인 9월 25일 국민의 힘 성일종 정책위원장은 기자 간담회를 통해 민생 회복을 위한 10대 민생법안을 발표했습니다. 국민의 힘이 발표한 10대 민생법안을 살펴보면 비슷한 내용의 입법과제가 있는데요 2023년부터 육아전담 기간에 손실되는 소득 보전을 골자로 하는 부모급여의 도입입니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이전에 발표했던 내용과 유사할 것으로 보이고 아동수당법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를 마련할 예정으로 보입니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출산보육수당’·아동수당 확대법은 두가지 내용의 법안 개정이 붙어있는 것입니다. 아동수당의 확대는 영아수당(국민의 힘은 부모 급여라 부름)의 확대를 말하며 아동수당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고, 출산보육수당의 확대는 소득세법 제 12조 3호 머항(자녀보육수당)을 개정하겠다는 것입니다.  [about 출산보육수당] 소득세법 제12조 3호 머항은 자녀보육수당이라고도 하는데요, 근로자 또는 그 배우자의 출산이나 6세 이하(해당 과세기간 개시일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자녀의 보육과 관련하여 사용자로부터 받는 급여로서 월 10만원 이내의 금액(출산보육수당)은 비과세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과세의 한도를 18년간 유지해왔던 월 10만원에서 월 20만원으로 상향하겠다는 것이 개정의 핵심이며, 사실 이 내용은 지난 7월 양당에서 모두 동의하여 입법발의도 되었습니다.  [입법 발의자 국민의 힘 송언석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 [기사] 김승원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출산보육수당 비과세 혜택을 받은 인원은 47만215명, 금액은 328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2019년에도 48만1366명이 3557억원 혜택을 받았고, 2018년 역시 48만8184명이 3천414억원 혜택을 받았다고 합니다. 매년 3000억원대 비과세 혜택이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2020년 출산보육수당 비과세 혜택을 받은 근로자의 소속 기업 규모를 보면, 30인 이하가 20만3745명, 164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고 하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30인 이하 기업에 돌아가는 혜택이 금액 기준으로 전체의 절반 가량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사] 이와 같은 내용들을 놓고 보자면 30인 이하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모부가 출산을 하고 아이 양육을 하는데 지원이 필요했고 제일 많이 세제 혜택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과세 혜택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하게 된다면 가장 관심을 가질 집단도 위와 동일한 집단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기업에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20만원까지 출산보육수당을 주게 되면 그 부분이 노동자의 혜택이 되는지 조금 더 살펴봤습니다. 기존의 월 10만원의 출산보육수당을 연으로 환산하게 되면 연 120만원이 되고, 이게 20만원으로 증가하게 되면 연 240만원이됩니다. 그러면 기존에 비해서 120만원이라는 금액이 총급여액에서 줄어들게 됩니다. 총급여액이 줄어들게 되면 여러가지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데, 절세혜택을 주는데 있어서 총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나 많기 때문입니다. 주택임차차입금 원리금, 소기업소상공인 공제부금 소득공제,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 주택마련저축공제, 근로소득세액공제, 연금계좌세액공제 등은 모두 총급여액과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급여 비과세 항목 중 출산보육수당의 비과세 기준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린다는 것은 어떤 개인에게는 큰 변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공제율 및 세율을 결정하는 구간의 경계선에 있는 어떤 개인에게는 꽤 큰 절세혜택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 총급여액이 120만원이었던 사람의 과표구간이 4,600만원 ~ 8,800만원이어서 24%의 세율을 적용받았다고 했을 때, 총급여액이 120만원이 줄어들어 과표구간이 1,200만원 ~ 4,600만원 구간이 된다면 15%의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되는데 그러면 절세효과가 커집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봤을 때 출산보육수당의 비과세 기준이 20만원으로 상향되는 것은 민생 측면에서 꽤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about 아동수당] 이번에는 아동수당과 관련해서 조금 더 알아보았습니다.  매월 25일날 지급되는 아동수당은 출생신고와 더불어 함께 신청하는 출산혜택인데요, 매달 25일에 육아지원금(10만원)이 나오게 됩니다. 조건이나 소득기준은 없으며 2022년 아동수당을 받는 연령이 기존에 만 7세 미만까지 받을 수 있었던 부분이 만 8세 미만으로 수령기간이 확대되었습니다. 올해 5월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아동수당법 일부개정볍률안은 위 아동수당에 ‘다자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김 의원은 아동수당 수급 연령을 12세 미만까지 확대하고, 다자녀가구에는 기존 아동수당에 더해 둘째 자녀는 매월 5만 원, 셋째 자녀 이상부터는 매월 10만 원씩을 추가 지급해 모부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를 도모합니다.  [about 부모급여]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양육수당과 영아수당(부모급여) 입니다. 2021년도까지 태어난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출산혜택은 원래 양육수당으로 불렸습니다. 양육수당은 아이의 월령에 따라 20만원부터 10만원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11개월까지 20만원, 23개월까지 15만원, 86개월까지 10만원을 받게 됩니다. 이 양육수당이 2022년을 기점으로 영아수당이란 개념으로 일부 분리 되었습니다.  영아 수당(부모 급여)는 출생한 영아들이 받는 혜택으로 출생 후 생후 24개월 미만의 아기라면 매달 30만원을 받게 됩니다. 영아수당과 양육수당은 중복지급되지 않으며, 22년을 기점으로 그 전해에 태어났으면 양육수당을, 그 이후에 태어났으면 영아수당을 받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영아수당은 24개월 미만까지 지원되며 그 이후에는 양육수당으로 전환됩니다. 이 또한 아이가 보육기관에 다니면 보육료로 전환됩니다. [출처] 윤석열 정부는 이 영아 수당을 만 0세와 만 1세로 구분하여 2024년까지 지원을 확대해나갈 것이라 했습니다.  [나오며] 이 글을 작성하며 느끼게 된 내용을 간략하게 풀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위의 정리했던 바와 같이 좋은 정책들이 나오고 있는 와중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양인구비와 노인부양비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출처] 출생아 수와 합계 출산률도 매년 감소하고 있습니다.[출처] 사실은 통계청의 이런 연구조사 결과들이 위와 같은 정책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저는 이미 10년,15년전부터 예측되었던 인구절벽현상과 그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1인당 노인부양률의 증가에 대해 조금 더 빠르게 대처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0대 초반인 저는 20대때 N포 세대로 불렸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포기하는 것도 있었지만, 한국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있는 여성 차별적 문화와 관행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많은 이유 중에 일정 부분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문화에 편승하여 혜택을 누렸던 세대들이 이제 은퇴할 때가 되었는데, 은퇴 이후의 삶은 길고 소득수준은 감소할 수 밖에 없으니 이제서야 몇몇가지 출산, 육아 등을 지원하는 정책들을 만들어 살길을 찾으려 하는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지금이라도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정책을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과연 현재 결혼적령기와 출산적령기 속한 사람들이 이러한 지원 정책이 없어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만은 볼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정책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그 부분이 무엇인지 조금 더 관심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인구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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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확대, 근데 이제 연금정치를 곁들인.
 연금이 이슈입니다, 또! ? 9월 말 민주당은 정기국회에서 쌀값 정상화법,  노란봉투법 등과 함께 ‘7대 민생 법안’ 중 하나로 ‘기초연금 확대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재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30만원씩 지급되고 있는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에게 월 40만원으로 지급하는 방향으로 확대한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기초연금 확대,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기초연금의 확대가 필요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극악무도한 노인빈곤율에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 노인 빈곤율은 40.4%,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습니다. 최근 경제 위기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노인 인구의 삶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초연금 확대가 요청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국가 재정이 늘어나는 연금 지급액을 계속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문제입니다. 현행으로 유지하여도 모자랄 판에 지급액과 대상까지 확대하면 그 돈을 어디에서 가져오냐는 것이지요. 복지 vs 재정, 클래식한 논쟁입니다. 또다른 클래식, 세대 형평성 갈등도 첨예합니다. 노인세대와 청년을 포함한 미래 세대의 세대 간 형평성, 기초연금 수급자와 비수급자의 세대 내 형평성 문제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해관계와 기존의 제도들이 엉켜 복잡한 매듭을 만들고 있는 연금 문제,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들이 새롭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한국 정치에서 이러저러한 논리들이 때로는 여당의 입에서, 때로는 야당의 입에서 필요와 상황에 따라 입맛대로 사용되는 모습을 계속해서 봐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민주당의 기초연금 확대법 추진을 둘러싼 상황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이 기초연금 확대를 이야기하고, 국민의힘에서는 맹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무책임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어?      ...뭐?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연금 문제, 언제까지 이벤트로?    이런저런 자기부정과 번복을 거치고 10월 7일 현재, 여야는 하나되어(?) 이번 정기국회에서 기초연금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선심성 정책이라 공격하던 국민의힘이 노인들의 반응이 좋지 않자, 지난 2일 노인의 날에 갑자기 40만원 인상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거든요. 이 뻔한 소동(?)을 보고 있있자면 우습긴 하지만 뭐, 그래도 민생을 위한 거라는데 필요하지. 암암.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정말 민생을 위한 연금제도 개편과 개혁의 필요를 느끼신다면, 노인들이 힘드니 기초연금 확대하겠다는 말은 너무 쉽습니다.   여야가 함께 지속가능한 연금제도를 논의하라고 만들었지만 회의 한 번 열지 않은 연금개혁특위는 내버려둔채, 연금문제를 정당 정치 수단 또는 ‘효도 이벤트’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은 광경을 보자면 정말 이 선생님들이 연금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는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국민의 존엄한 삶과 권리 보장, 세대 간 정의로운 자원 분배의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중요한 연금 문제가 정치인의 혀끝에서 연금정치로 좌우되어서는 안될 겁니다.  어려운 문제는 어렵게 풀어야 한다   노인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실성있고 지속가능한 기초연금 제도 개정을 위해서는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세 가지만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실제로는 이것보다도 훨씬 복잡한 문제이지만요.)  한국 사회에서 기초연금의 성격과 그 정책적 지위를 명확하게 밝혀야합니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었거나 가입 기간이 짧은 노인들이 기초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소득 70%를 기준으로 지급 대상이 나뉘어진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소득재분배 성격을 가지는 것 같으면서도, 국민연금과 같이 보험료 납입에 관계없이 모두가 받는다는 점에서 기본소득과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민주당이 이번에 기초연금 확대법을 이야기하면서 제시한 100% 지급의 방향으로 갈 경우 기초연금은 그냥 노인 기본소득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민주당은 이번 확대가 기초연금의 취지에 어떤 방식으로 부합하는지, 제도 개정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합니다. 정책의 성격과 목적, 근거가 모호하면 국민을 설득할 수 없고 그렇다면 지금도 심각한 국민 사이에서의 연금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기초연금 확대에 대한 재원 마련은 서로를 공격할 때만 반짝 등장할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OECD가 한국의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을 지적하며 기초연금의 수혜 대상을 줄이고 선별 지원하되, 그 액수를 늘리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각 당은 국민들에게 기초연금의 재원 마련 방안을 구체적으로 소명하여야 합니다. 사실 애초에 이 방안을 마련해두고 기초 연금 확대 카드를 꺼내는 게 맞았습니다.  긴 시간의 조사연구를 통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해야 합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현재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연계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쏙 빼놓고 기초연금 이야기를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보험료의 문제로 잘못 건드렸다가 비난받을 게 뻔하니, (그나마) 말꺼내기 쉬운 기초연금부터 손보겠다는 건 근시안적입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간의 형평성, 확대시에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운영 문제, 국민연금 이탈 문제 등…간단하게 정리해보아도 함께 가지고 가야 할 문제가 이렇게 많습니다. 일단 기초 연금 확대해놓고 나중에 연금개혁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잘 맞아떨어지게 할 작정이라면 성공적일 리 없습니다. 제도 간의 장기적, 지속적인 양립가능성을 고민하지 않고 일단 가장 쉬운 문제부터 빨리빨리 가시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개혁 절차 전체에 비효율을 가져올 것입니다.  민생을 위한다면 민주부터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한 것은 모든 국민이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이야기는 죄다 빼먹은 채 업적 내세우기에 유리한 기초연금 확대부터 냅다 지르고 보는 건 연금정치이자 연금팔이일 뿐입니다. 연금을 팔아 지지를 결집하는 것은 오래된 정치 현상이자 전략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노인들의 삶의 불안정이 너무나도 심각해졌고, 경제는 위기인데다가 국가 부채는 어마어마하고,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설득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위태위태한 상황에 그동안 좀 ‘통했다’고 연금정치를 했다가는 우리 다같이 표류하고 말거에요.   연금개혁은 지난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합니다. 정말로 ‘미움받을 용기’의 문제인 것이지요. 그러나 어려운 문제는 어렵게 풀어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 중 가장 쉬운 문제부터 쉽게 푼다면 당장에 뿌듯할지언정 남겨둔 문제는 더욱 더 꼬여버립니다. 제가 이번 기초연금 확대의 가벼움을 걱정하는 이유입니다. 결국에 민주 정치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절차의 문제입니다. 국민에게 제도의 개정에 관한 사실을 투명성있게 알리고, 제도가 국민의 삶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정책 개발과 공적 합의에 참여하는 것 - 연금제도와 같은 문제야말로 민생을 위한다면 ‘민주’부터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기초연금 확대를 시작으로 앞으로 난항이 예상되는 공적연금개혁. 이 과정에서 우리의 정치가 국민을 ‘표’로 보는 이러한 연금정치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제발!)  ?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기초연금 확대, 섣부르다고 생각하시나요? 또는 신속한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기초연금 확대에서 어떤 것들을 더 고려해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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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통일교, 혐한(嫌韓) -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
2022년 7월 8일 오전 11시 30분경, 일본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大和西大寺駅) 근처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를 하던 아베 신조오(安倍晋三, 1954~2022)가 총으로 암살을 당했습니다. 이 뉴스가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총을 쏜 사람은 1980년생 야마카미 테츠야(山上徹也). 야마카미는 왜 아베 전 총리를 죽였을까요? 통일교는 또 무슨 이야기일까요? 야마카미 테츠야 야마카미 테츠야는 1980년생으로 부친과 모친, 형과 여동생이 있었다고 하고 유년기에는 꽤 유복한 집안의 자식이었다고 합니다. 테츠야가 네 살이던 1984년, 건설회사의 임원이던 부친이 투신자살을 한 후, 테츠야의 삼남매는 모친의 친정이 있던 나라시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해에는 모친이 건설회사의 임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테츠야는 성적도 우수하고 운동도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MBS.2022.07.11.).  이 집안의 불운은 테츠야의 부친이 자살한 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테츠야의 모친은 이후 불운한 일이 계속되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라고 불리던 종교단체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단체의 약칭이 바로 통일교입니다.  통일교 통일교는 문선명(文鮮明, 1920~2012)이라는 사람이 1954년에 만든 개신교계 신종교입니다. 한국의 컬트 기독교계는 나름대로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만들어진 종교에서 교주가 신통력을 보이지 못하거나 교주의 사망, 싸움 등으로 교단 안에서 갈등이 벌어지면 그 종교에서 교리를 살짝 바꿔가면서 새로운 종교가 생겨나는 식입니다. 통일교도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계 이단 종파는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이야기를 여기에서 다 할 수는 없고, 여기에서는 김성도(1882~1944)라는 여인부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김성도는 1923년 자신이 예수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하며 종교를 창시했는데, 이는 한국 이단 기독교계에서 지금도 이야기하는 직통계시의 시작입니다. 보통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죄의 존재로 보고 그 시작을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를 먹은 것으로 잡는데, 김성도는 선악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음란이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음란 때문에 신에게 죄를 짓게 되었고, 아담과 하와의 타락한 피를 물려받았는데, 이 타락한 피를 씻어내려면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피를 가진 사람의 피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교리를 피갈음(피가름)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한국 컬트 기독교를 이루는 상당히 중요한 교리 중 하나입니다. 하여튼 이 김성도라는 사람은 한국 컬트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의 중요한 축인 음란의 강조와 직통계시, 피가름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원산예수교회를 만든 유명화(劉明化)라는 여인도 예수가 자기 몸에 친히 임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한국 컬트 기독교계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 재림예수도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김성도와 유명화를 이어받은 사람이 원산신학산의 백남주(白南柱, 1901~1949)라는 사람인데 백남주는 구약, 신약 이후에 성약이라는 새 시대가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약, 신약 이후에 교주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시대 구분 또한 한국의 기독교계 컬트 종교에서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데, 이것은 백남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백남주의 생각은 이스라엘수도원의 김백문(金百文, 1917~1990)과 삼각산수도원의 정득은으로 이어집니다. 정득은은 자신의 피가 구원의 피라고 주장하며 김백문에게는 자기 손을 잘라 피를 먹이려 하였다고도 하고, 말년에는 피갈음을 실천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과 성관계를 하였는데, 그녀의 친딸이 1957년 세계일보에 이 사실을 폭로하기도 하였습니다 (기독교포털뉴스.2018.12.26.).  김백문과 정득은의 영향을 받았고 잠시 이들 밑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 통일교의 교주 문선명과 전도관의 교주 박태선(1917~1990)입니다. 이들의 성경해석에는 음란의 강조, 피갈음, 직통계시, 재림예수, 신약 이후의 새 시대 같은 주장이 모두 섞여 있는데 이것도 나름대로 역사를 가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도관이나 박태선이라고 하면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만, 신앙촌상회라는 이름은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통일교는 한국에서 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교세를 넓혀갔고, 일본에서도 상당히 큰 교세를 가진 종교였습니다. 통일교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신도들이 교주가 지정해주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1992년에는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에서 3만 쌍이 참가한 국제 합동 결혼식을 열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교주에 의한 한일 국제 결혼도 상당히 화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제 여동생은 통일교 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 뺑뺑이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통일교 신자인 한일 커플의 자녀들이 교환유학 형식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부했던 것이나 혼전순결을 지켜야한다며 학교에서 순결캔디를 나눠주었던 것 등을 이야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 때 저와 함께 중국 명나라 사상가인 이탁오의 저술을 읽었던 이시다 교수님이라는 분도 1980~90년대에 대학 안에 생긴 통일교 서클이 사람 수도 많고 매우 강력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이들이 종교 활동 때문에 단체로 수업을 들어오지 않는 일이 종종 있어 곤란했다는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통일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고 했던 일본 여성분도 기억이 납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 모리 마사코(森昌子)와 함께 “꽃의 중3 트리오(花の中三トリオ)”라 불리던 1세대 아이돌 사쿠라다 쥰코(桜田淳子, 1958~)가 통일교 신자로 유명합니다. 사쿠라다 쥰코는 서울에서 열린 합동결혼식에 참가하여 결혼을 하기도 했고, 문선명 사후 추모행사에 참여하여 공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에서 통일교는 항아리나 특이한 장식품을 신도들에게 비싼 값에 강매했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를 영감상법(霊感商法)이라고 합니다. 간혹 일본 만화나 드라마에서 사이비 종교에 빠져 비싼 항아리나 쓸모 없는 장식품을 사들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는 모두 과거 통일교에서 했던 방식을 따온 것이고, 실제 통일교 전파 이후의 일본 컬트 종교들(대표적으로 옴진리교 등)도 이런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야마카미의 모친이 통일교에 빠져 재산을 헌납했다는 것도 구체적으로는 이런 방법을 통한 것이었을 겁니다. 종교 2세 다시 야마카미 집안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테츠야의 모친은 테츠야의 형이 소아암을 앓은 것에 연이어서 남동생과 어머니가 사망한 것 때문에 상당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테츠야의 친척은 테츠야의 모친이 1991년경부터 통일교에 입교했다고 합니다. (スポニチ.2022.07.16.)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1990년대는 전세계가 세기말이라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한국 교회의 휴거소동, 지구 종말, Y2K 같은 것들 말이죠. 개인의 불행도 있었겠지만, 사회적인 공포 분위기도 어느 정도는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야마카미 테츠야의 모친은 야마카미가 성인이 되고 얼마 안 된 2002년, 통일교에 바친 1억 엔이 넘는 헌금 때문에 결국 파산을 하고 맙니다(読売新聞.2022.07.13.). 테츠야는 이런 이유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자위대(自衛隊)에 들어가 군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자살 미수 사건도 있었다고 하는데, 모친의 헌금으로 가세가 심하게 기울자 자신의 사망보험금이라도 타서 형과 여동생에게 생활비로 줄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KYODO.2022.07.15.). 테츠야는 2005년부터 자취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경제가 침체되어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던 시기였습니다. 실업률이 높았던 이 시기에 야마카미 테츠야라고 해서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아르바이트와 파견근로 같은 비정규직 노동을 전전하면서 인간관계도 점점 끊어져가던 중, 2015년에는 오랜 시간 투병을 해오던 형이 자살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読売新聞.2022.07.14.). 남자는 이런 일련의 불운이 모두 통일교와 통일교에 빠진 모친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자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부모의 종교 때문에 인생에 영향을 받는 자녀들을 종교2세(宗教2世)라고 합니다. 2세 신자(2世信者)라고 하기도 하고, 특히나 컬트 종교인 경우에는 컬트2세(カルト2世)라고 하기도 합니다. 테츠야의 모친은 장남의 사망 이후에도 활동에 부침은 있지만 통일교 활동을 지속해왔다고 하고, 테츠야는 이런 모친과 10년 넘게 연락을 끊었다고도 합니다. 테츠야는 이 과정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은 통일교를 만든 초대 교주 문선명과 그의 부인이자 2대 교주, 대모님이라 불린 한학자(韓鶴子, 1943~) 때문이다.”  야마카미 테츠야는 실제로 문선명이 이미 죽었으니, 한국에 가서 한학자를 살해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2019년부터 코로나 펜데믹이 터져 한국에 건너가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테츠야는 혼자 자료를 조사하며 생각의 나래를 펼쳐가던 중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문선명과 한학자를 일본에 데리고 온 것은 키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 56, 57대 총리)다. 그렇다면 키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오도 다 한통속이다!” (テレ朝.2022.07.12.) 키시 노부스케는 한국에서 2차대전 A급 전범 출신인 총리로 유명합니다. 통일교회 일본 본부는 키시 노부스케의 자택 근처에 만들어졌다고도 알려져 있으며, 키시 노부스케가 총리가 된 이후에는 수상관저였던 건물을 통일교회가 사용했다고도 합니다. 통일교회와 통일교회가 만든 국제승공연합의 초대회장이었던 쿠보키 오사미(久保木修己, 1931~1998)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키시 선생은 자주 통일교회나 승공연합 본부에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선생과 우리들에게는 공유할 수 있는 정신적 연대가 있었습니다.” 岸先生は、しばしば統一教会や勝共連合の本部に脚を運んで下さいました。先生と私たちには共有できる精神的連帯がありました “키시 선생께서 간절한 뜻을 내비쳐 주신 것이 승공(반공의 통일교 용어) 운동을 비약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다” 岸先生に懇意にしていただいたことが、勝共運動を飛躍させる大きなきっかけになった (이상 毎日新聞.2022.09.15.) 2021년 9월 12일, 통일교에서 만든 NGO단체인 우주평화연합(UPF)이 한국에서 연 희망전진대회라는 집회에서 아베 신조오 당시 총리가 영상 축전을 보낸 사실이 있습니다.  (NEWSポストセブン.2021.09.29.) 이 행사에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도 영상축전을 보낸 바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베 당시 총리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UPF와 함께 세계 각지의 분쟁 해결, 그 중에서도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향해 노력해 오신 한학자 총재를 비롯한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今日に至るまでUPFとともに世界各地の紛争の解決、とりわけ朝鮮半島の平和的統一に向けて努力されてきた韓鶴子総裁をはじめ、皆さまに敬意を表します 야마카미 테츠야는 온라인으로 공개된 이 영상을 보고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준비한 끝(?)에 2022년 7월 8일, 결국 살해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국장(國葬) 일본은 정치인에 대한 살해, 암살이 잊을만하면 일어나곤 합니다. 최근 3~40년의 일 중에서 제가 생각나는 것만 이야기해봐도 우선은 1988년, 나가사키시 시장 모토시마 히토시(本島等, 1922~2014)가 천황의 전쟁 책임을 이야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1990년 1월 18일, 우익단체 활동가 와카지마 카즈미(若島和美, 1949~)에게 총격을 당했다가 살아난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국회의원이었던 니와 효오스케(丹羽兵助, 1911~1990)가 나고야의 육상자위대 주둔지에 방문했을 때 목에 칼을 맞고 사망하였습니다. 1992년에는 자유민주당(자민당) 의원이면서도 한국,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카네마루 신(金丸信, 1914~1996)이 우익 단체 활동가에게 총을 맞는 일이 있었습니다. 2002년에는 사이비 종교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던 민주당 의원 이시이 코오키(石井紘基, 1940~2002)가 우익단체 활동가에게 칼을 맞고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06년에는 민주당 의원 카토오 코오이치(加藤紘一, 1939~2016)가 코이즈미 쥰이치로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자, 우익단체가 카토오 의원의 자택에 방화를 저지르기도 했고, 2007년에는 나가사키 시장 이토오 잇쵸오(伊藤一長, 1945~2009)가 불명확한 이유로 조직폭력배의 총을 맞고 숨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5년 이후로 전현직 총리가 살해되는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본에서 전현직 총리에 대하여 국장을 치르는 것은 1967년, (어떤 의미로든) 전후 일본의 복구자로 평가받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가 마지막이었는데, 아베 신조오의 사망 이후 일본 정치권에서는 아베 전 총리에 대해 국장을 치러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등장하였습니다. 사건 직후인 7월 14일, 키시다 후미오(岸田文雄) 현 총리가 국장 이야기를 처음 꺼냈고, 7월 22일에는 정부가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고 아베 신조오 국장의(故安倍晋三国葬儀)라는 이름으로 9월 27일에 장례 의례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JiJiCom.2022.07.22.). 국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며칠 후, NHK가 7월 16일부터 3일간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을 실시했습니다. 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9%가 긍정적인 답변을, 38%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NHK.2022.07.19.). 그런데 범인의 입에서 통일교라는 이름이 나온 후, 교도통신이 7월 30일부터 3일간 실시한 설문에서는 국장에 찬성한다고 하는 사람은 17.9%, 반대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29.8%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와 더불어 국회와 통일교의 연관성에 대해 국회가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함께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여기에서 80.6%는 해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東京新聞.2022.08.02.).  국장이 끝난 지금도 일본에서는 국장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설전이 오가고 있습니다. 10월 2일에는 무려 세 곳에서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는데요, 결과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를 국가 의례로 행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JNN의 조사 (TBS.2022.10.02.) 아사히신문의 조사 (朝日新聞.2022.10.02.) 요미우리, NNN 공동조사 (読売新聞.2022.10.02.) 매우 긍정적 12% 굳이 말하자면 긍정적 30% 굳이 말하자면 부정적 29% 매우 부정적 25% 긍정적 35% 부정적 59% 긍정 평가 41% 부정 평가 54% 아베 전 총리와 통일교 사이의 관계가 밝혀지면 밝혀질 수록 국장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국장이 끝난 지금도 아베 전 총리의 장례를 국장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언론에서는 인기 없는 국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통일교와 상관 없이, 국장이라는 행사 자체에 대한 반감 때문에 국장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장례 의식을 주관하고 이를 공휴일이나 임시 휴일로 삼는 것은 사상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변호사 모임이나 종교단체들, 아베 전 총리의 정책에 대해 반대해 왔거나 반감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 LGBT 단체, 여성단체, 반전주의자 모임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장 뜨거운 주제는 역시 통일교(일본에서는 통일교회統一教会)입니다. 아베 전 총리가 죽고 두 달이 넘어 세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아베 전 총리와 통일교의 관계에 대한 기사, 그리고 통일교라는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사는 매일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사건 때 유병언이라는 개인에게 집중했던 것처럼, 컬트 종교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은 주제인 것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반한/반중 기조(일부에서는 주체적인 일본 을 만들고자 하는 태도라고도 표현)를 이끌어온 일본의 여당 자유민주당이 오랜 기간 한국의 컬트 종교와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특히 극우/우익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아주 이전부터 기독교의 교세가 강하지 않은 일본에서 통일교가 이렇게까지 빠르고 넓게 교세를 넓히는 데에는 정치의 도움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일부에서는 한국 로비라고도 불렀는데요, 실제로 종교 피해자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싸워온 한 변호사는 90년대에 자민당 의원의 비서 중 대부분(이 사람의 말에 따르면 100명 가까운 사람)이 통일교 신자였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日刊ゲンダイ.2022.07.13.). 종교관련 저널리스트 스즈키 에이토(鈴木エイト)는 구체적인 숫자와 리스트까지 제시했는데, 자민당 의원중 중의원 78명, 참의원 20명이 통일교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으며, 입헌민주당에도 6명, 일본유신의 회(日本維新の会)에도 5명, 국민민주당에도 2명의 의원이 통일교와 관련이 있는데, 이 중 34명은 내각에 참여하거나 당의 고위 간부였던 사람이라고도 밝혔습니다 (日刊ゲンダイ.2022.07.16.). 잠시나마 외국에 살았던 사람의 우려 제가 공부를 위해 잠시 일본에 거처할 때의 일입니다. 전세계 어딜 가나 게이들은 데이팅 어플을 통해 연애 상대나 친구를 찾는 일이 흔한 풍경이므로, 저도 일본에서 사람 구경이나 할까 하고 데이팅 어플을 켜면 1~2주에 한번 정도는 꼭 “독도는 누구 땅이라고 생각하냐?”라던가, “문재인에 대한 너의 생각을 듣고 싶다”라는 식의 메시지가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이 날아오고는 했습니다. 마침 그 때는 북한의 핵 발사도 계속 되고 있었고, 남한도 탄핵정국이 막 끝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초기의 일이라, 일본의 뉴스나 와이드쇼에서는 매일 한반도 때리기 식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서 “나는 김정은은 싫어합니다!”라고 말하고 간다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는 한반도의 두 지도자 때문에 일본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일도 많았더랬지요.  처음 한두 달은 그런 사람들과 열심히 토론도 하고 싸움도 했었습니다만, 나중에는 그것도 지쳐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도 없이 “나는 평창올림픽을 안 볼 겁니다”라고 말하고 홱 돌아 사라진 같은 과의 선배나, 미군기지도 없는 후쿠오카에서 북핵 대피 훈련 사이렌을 요란스레 울리며 공습 대피 훈련을 하던 날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에서 무슨 이슈가 터지거나 한일관계에 관한 뉴스가 인터넷 기사에 뜨는 날에는 “아 오늘은 또 누가 무슨 일을 벌어질까” 하고 걱정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 그리고 대형 서점에 가면 혐한/혐중 코너가 있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대놓고 ‘혐한/혐중’이라고 표시된 곳이 있지만,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혐한/혐중 서가를 만들어 둔 곳들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지금도 일본에 사시는 분들 중에 일부는 통일교나 아베에 대한 평가를 듣겠다고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하고 야마카미 테츠야가 잡히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 NHK에서는 범죄자가 한국인이나 재일조선인, 중국인일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야마카미가 잡힌 후 이 기사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야마카미 테츠야를 일부 한국인들이 ‘제2의 안중근’ 등으로 영웅시하고 있다는 인터넷 언론 기사. FlatPlat.2022.07.09.) (중국에서 야마카미 테츠야의 피규어가 팔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본 인터넷 언론 기사. 東京スポーツ.2022.07.15.) 야마카미 테츠야의 신원이 밝혀진 후에도 많은 인터넷 황색 언론들은 한동안 야마카미 테츠야가 일본국적이지만 한국, 중국과 혈연적인 관계가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라던가 한국과 중국에서 그가 영웅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적어도 메이저 언론사에서는 야마카미 테츠야가 한국계나 중국계라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한국의 컬트 종교 통일교’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같은 이야기가 재편집되어가면서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아베의 국장이 끝난 이후, 한국이나 통일교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그러들었다는 느낌은 들고 있지만,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저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과 한국, 중국계 거주민들에 대한 안녕을 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혹시 한국은? 한국의 언론과 방송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외국인 차별에 기생하면서 반 외국인 정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몇몇 기사, 제주도 대부분이 중국인 손에 넘어갔다거나, 가짜 난민이다, 난민을 받지 말자 운운하며 시위까지 불사하던 어떤 사람들, 자기 동네에 이슬람 사원이 생기는 것을 막겠다며 혐오 발언을 내뱉던 어떤 동네, 과거 제국주의 열강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꼭 그 나라의 일반인을 데려와 앉혀놓고 의견을 묻는 역사 프로그램들… 지금 한국 안에 사는 외국인들이, 제가 외국에 살 때 느꼈던 불안감이나 우려를 한국에서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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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파업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는 스스로 옥쇄를 만들고 자기 발로 들어가 50일 넘게 파업했다. 결국 노사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2022년 8월 26일, 대우조선은 파업을 이유로 노조에 47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었다(연합뉴스TV 2022.10.3). 6월에는 하이트진로도 화물연대 파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화물운수노조 기사를 상대로 27억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월에는 CJ 대한통운이 파업을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20억 원의 손배소를… 노조의 파업으로 사용자 측이 손해를 입었으니 그에 대한 배상을 파업 당사자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표면적으로 손해를 메우는 것 이외에도 다른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노조의 파업을 단순히 부당한 것, 불법인 것으로 몰아가고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금액을 뒤집어 씌움으로써 노동자/노조에 대한 기업의 막강한 지배력을 선보이는 것이다. “모든 조합원들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고 노조를 탈퇴하는 경우에는 소 취하를 계속 해주는” 방식(연합뉴스TV 2022.10.3). 그리고 그동안 이 과시는 법원의 판결에 의해 적극적으로 뒷받침되어 왔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최근 이와 같은 사용자, 그러니까 기업의 “손배소 제기와 가압류 집행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다. 여기에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201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알 수 있다. 쌍용자동차는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에게 손배소 소송을 걸었고, 법원이 이에 47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한 시민은 이에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는 의미로 한 언론사에 4만 7천 원이 담긴 노란봉투를 보냈고, 뒤이어 많은 독자들이 이에 합류했다. 아름다운재단이 맡게 된 이 모금 행렬은 14억 7천만 원을 달성했다. 사실 이 노란봉투법은 2015년에 처음 발의된 이후로 두 번, 19대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되었지만 연달아 폐기되었고,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건으로 인해 다시 한 번 화두에 올랐다.     당연히 경영계와 노동계의 반응은 상이하다. 경영계를 감싸는 여당 또한 여기에 함께 반발하고 있고, 윤석열 대통령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불법파업이라고 단언했다(매일노동뉴스 2022.7.20).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불법파업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란봉투법이 제정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노조 파업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잃는 것”이라며 난색을 표한다.    노동계는 이것이 노동3권(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에 보장된 세 가지의 기본권으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있다(네이버지식백과))을 보장하기 위한 안전망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현행 노조법상 ‘사용자’는 하청업체의 경영진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는 결국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인 기업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하므로, 요구를 전달할 수 있는 통로는 ‘파업’이 유일한 것이 현실이다(MBC뉴스 2022.10.1). 원청과 원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노란봉투법이 제정된다면, ‘사용자’에는 하청업체 뿐만 아니라 원청 또한 포함되어 원청은 스스로 파업에 대해서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고 발뺌할 수 없고, 법의 적용으로 무분별한 손배소 제기 등을 제한당한다. 경영계는 ‘불법’파업에 대한 유일한 대응수단이 손배소라고 주장하고, 또한 “회사의 손해배상소송 청구는 실제로 법적인 책임을 물어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의미보다는 노조의 쟁의행위가 불법으로 번지지 않도록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고 있지만, 애초에 교섭 당사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파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정부 중재 없이 기업이 불법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보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손배소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주장(MoneyS 2022.10.2)도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중재에 나서지 않는가?    이미 노동3권을 보장받기 위한 합법파업에의 경로는 노동자들에게 너무나도 복잡하다. “쟁의행위는 그 목적, 방법 및 절차에 있어서 법령이나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해선 안” 되고, 이 “파업 목적은 근로조건 향상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임금/근로조건 사항을 놓고 충실한 협상을 했는데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때에만 파업할 수 있다.”(매일노동뉴스 2022.7.20). 그렇다면 지금껏 우리가 이야기했던 노조의 파업은 모두 불법파업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다시 근원적 차원으로 되돌아가서,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어떻게 ‘충실’하게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렇게 법이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중재란 과연 어떤 방식이 되어야 하는가?   해우법률사무소 권영국 변호사는 “큰 손실을 끼쳐서 불법이라는 표현도 하는데, 원래 파업/쟁의행위라는 것은 업무의 정상적 행위로 손실을 수인하는 것이고, 손실이 많이 난다고 불법은 아닌데 그런 식으로 몰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윤효원도 이러한 관행에 대해 “쟁의행위에 형법이나 민법을 적용해 사실상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매일노동뉴스 2022.10.3). 정부는 중재가 아닌 “쟁의행위를…진압”(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김기덕 변호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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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우대조치와 평등을 위한 경영
적극적 우대조치와 평등을 위한 경영 [시장의 투명성과 CSR 경영] 유소년 시절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편은 아니었던 저는 대학 입시 당시 경영학과 가면 돈 많이 번다더라 얘기를 듣고 여러 선택지를 뒤로하고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경영학은 시장의 흐름, 분위기, 경향 등을 다루는 학문이더라구요. 경영사례연구 등을 통해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인 구매자와 자본, 노동 등의 역동을 분석하고 더 나은 경영활동을 위해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함양했습니다. 주류 경영학에 대한 여러 비판점은 뒤로하고 오늘은 제가 경영학을 공부하며 13년 가량 관찰해온 ‘시장의 투명성’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대학 입시를 하던 2008년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인해 세계경제가 휘청거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의 경제 위기는 끊임없이 자본을 욕망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특히, 정치,경제,사회학 분야) 경제위기 시점을 전후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에 대해 보다 더 강조했습니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의 많은 기업에서도 CSR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CSR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시장의 투명성’ 때문입니다. 더 설명하자면, 시장을 움직인 큰 축인 구매자(고객)들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복잡합니다. 늘상 구매해 마시던 우유의 회사가 갑질이라든지, 성비위라든지 등의 여러 도덕적이지 못한 행보를 보이면 그 회사의 우유뿐 아니라 다른 유제품까지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구매자들입니다. 시장의 주인들은 상당히 정직하고 상상 이상으로 투명하죠. 아울러 한 기업이 성장함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은 꽤 큽니다. 국가는 기업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인프라(물적, 법적 지원 등)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가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죠. 기업은 결코 자기 혼자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고객인 시민과 국가의 눈치를 봐가면서 기업활동을 해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시장의 투명성’은 2019년 미국의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이끌어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이해관계자에 대한 근본적인 약속을 공유한다. 우리는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직원들에게 투자하고, 공급자들과 공정하게 거래하고,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를 지원하는데 노력을 다한다”(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2019)  이 성명서는 1970년도부터 지금까지 시장을 지배해왔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의 문장을 철학적으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듣고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  [시장의 투명성과 ESG 경영] 그리고 이제 ‘시장의 투명성’은 ESG[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경영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ESG 경영은 투명한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경영활동에 따른 환경, 지역사회, 고객 등 경제,사회적 영향을 내재화하여 기업의 재무적, 비재무적 가치를 동시에 제고하고자하는 경영활동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활성화 되어있지는 않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ESG 경영에 대한 경영성과 척도가 이미 만들어져있고,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이 척도를 가지고 투자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주인들인 시민들은 이제 ESG 경영을 하지 않는 기업들을 좋은 기업이라고 평가하지 않는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시장의 투명성’은 곧 시장의 주인들의 도덕적 추구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도덕적 추구는 꽤 많은 변화를 이끌어오고있습니다. [사회취약계층과 적극적 우대조치] 이제는 적극적 우대조치와 관련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와 혜택을 누리 못하는 ‘사회 취약 계층’이 있습니다. 사회취약계층은 아래의 크게 세가지의 입장으로 정의 내려져 있습니다.  (1)소득을 고려하여 빈곤계층을 취약계층으로 정의 (2)취업과 관련하여 통상적인 조건에서 취업이 어려운 계층(청년, 장애인, 노령자 등)을 취약계층으로 정의 (3)인적 속성을 바탕으로 여성, 여성가구주, 고령층, 저학력층, 장애인, 소수인종자, 이민자, 북한이탈주민, 교도소 출소(예정)자 등의 인구학적 집단을 취약계층으로 정의 세 입장의 취약계층에 대한 정의는 부분적으로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지만, 공통적으로 경제적, 신체적 또는 기타 조건으로 인하여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 참여의 기회가 제한되고, 나아가 국가의 개입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혜택을 제공받을 기회로부터 배제되기 쉬운 계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 청년, 장애인, 북한 이탈 주민, 다문화가족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일반인들과 동등하게 사회적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취업, 교육, 사회적 거래 등에 있어서 차별을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차별을 적극적으로 시정하기 위한 조치로서 논의되어 온 것이 바로 ‘적극적 우대조치’입니다.  한국에서의 적극적 우대조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 4호에서 “다만,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ㆍ개정 및 정책의 수립ㆍ집행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이하 "차별행위"라 한다)로 보지 아니한다.”에 따라 명문화 되어있습니다.  [적극적 우대조치와 평등을 위한 경영] 적극적 우대조치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기업 등으로부터 사회 취약 계층이 받고 있는 정치, 경제, 교육, 고용 등의 영역에서의 구조적 차별과 집단적 불이익을 제도적으로 돕기 위한 수단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적극적 우대조치가 필요한 사회 취약 계층에 대해 시장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ESG 경영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적극적 우대조치가 필요한 시민들을 지원하고 고용하고 훈련하여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기업활동을 하는 경영이 지금보다는 더 보편화되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배제된 존재들을 다시 포용해나가는 이런 기업활동이 ‘시장의 투명성’의 결과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회취약계층을 (잠재적)고객으로 삼지 않는 기업은 시장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게요.  사실 대기업들은 이런 부분들을 반영한 성과 지표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매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만들어서 공개합니다. 볼 때마다 답답한 것 중 하나는 여성 임원의 비율 부분입니다. 산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대기업에서는 여성 임원의 비율이 1%도 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현재까지는 기업의 자체적 평가에 그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기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그 비중이 더 커지게 되어서, 신경쓰지 않으면, 책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즉 ‘시장의 투명성’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인식으로 전환되어져가길 바랍니다. 적극적으로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2019 : https://www.businessroundtable...  취약계층 정의 : 고용정보원 연구보고서 [여성 노동시장 취약계층 분석]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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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광화문으로, 기후정의행동에 함께 가요!
며칠 전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파격적인 소식을 전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창업주 이본 쉬나드 회장이 자신들과 가족이 보유한 약 30억 달러(한화로 4조 2천억원)의 파타고니아 지분 전부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단과 비영리단체에 기부했기 때문인데요. 쉬나드 회장은 “지구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며 기후위기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을 강조했습니다.(한겨레, 22.09.16.)   파타고니아 사례와 같이 한국에도 최근 환경과 사회를 고려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듯합니다. 지난 2020년 환경부의 ‘생활폐기물 탈 플라스틱 대책’에 따라 카페와 음식점이 일회용품 배출의 적극적인 대안을 찾고 있고(위클리서울, 22.04.05.), 대기업들도 앞다투며 식물성 식품 개발에 힘쓰는 추세입니다.(한겨레, 22.08.08.)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2021년 상장기업 ESG 평가 등급’에 따르면 풀무원, 네이버 등 대기업들이 통합 A+ 등급을 받았으며, 환경 분야에 대해 “기업의 환경경영 수준 향상 및 평가 참여”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구를 걱정하는 기업의 분위기에 따라 우리는 안심하고 소비를 지속하면 되는 것일까요? 최근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위장환경주의』의 저자 카트린 하르트만은 “사회에서 폐해에 맞서 항의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더 이상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라고 말합니다. 다른 방식의 요구보다 소비자의 목소리로 하여 기업의 제품 생산 및 유통 과정을 더욱 친환경적으로 바뀌는 식의 변화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르트만은 이러한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 또는 ‘소비자 민주주의’는 결국 기후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 구조 속에 포함된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편입시킨다”며 “저항과 비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이런 것들을 소비 가능한 제품으로 만들어버리고” 그에 따라 시민들은 자주적인 행동이 아니라 수동적인 반응으로서 소비를 지속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 라즈 파텔은 윤리적 소비의 한계로 “사람이 단지 혼자일뿐이라는 생각을 강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따금 윤리적 소비는 거대한 사회 문제 앞에서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실천으로서 소개되곤 하지만, 사실 시민들에게는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곧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고 여러 시민의 행동은 큰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소비자 한 명으로 남는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파텔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순간뿐인 소비만이 아니라 시민의 역할로서 나설 때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누구와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다가오는 9월 24일, 광화문 일대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진행됩니다. 3년 전 기후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을 요구하기 위해 모인 수천 명의 시민들이 다시금 한 자리에 모여 목소리를 내기로 했습니다. 올해 기후정의행동은 180여개의 다양한 시민단체와 시민개인이 주최합니다. 또한 이번 기후정의행동은 정부와 기업에 탄소중립을 요구하며 같은 선상에서 그간의 사회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착취 되어온 자연, 여성, 장애인, 이주민, 지역주민, 농어민의 권리를 외치기도 합니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 기후위기를 불러온 기존의 구조를 더는 두고 보지 않고 사회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제안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거세질 기후위기가 걱정되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기쁜 마음으로 제안합니다. 우리 곧 있을 9월 24일 광화문으로 기후정의행진에 같이 가요! 기후위기 시대 속에서 나 혼자 고민하지 말고, 누군가 대신하길 기다리지 말고, 서로의 손을 잡고 스스로 목소리 내며 함께 나아가보아요! 기후위기 시대를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기후 시민’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럼 모두 그때 보아요. :)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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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갈등'과 '반페미니즘'에 기생하는 정치
'젠더갈등'과 '반페미니즘'에 기생하는 정치 ?작은공론장 ‘버터나이프크루 그 후, 우리가 나눠야할 성평등 이야기’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글을 읽고 아래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궁금하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9/23(금) 작은공론장에서 함께 논의 할 수 있습니다. 황연주(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 1) 현황 : 에펨코리아 게시글 "버터 나이프 크루" 검색 결과 일부 및 국민의힘 정치인 SNS 게시글 [2021. 7. 16] 여가부 청년 성평등 추진단 '버터 나이프 크루 3기' 모집 "세금을 그냥 가져다 버리네 크루당 600만원 여가부 해체" 조회수 61,322 추천수 406 댓글 99개 [2022. 6. 30] 여가부, 젠더갈등해소 '버터나이프크루 4기' 출범 "(여가부 보도자료 첨부) 뭔 XX 죄다 페미 젠더 XX XX이네.. 먹버 맞는듯 ㅋ" 조회수 31,547 추천수 327 댓글 100개 [2022. 7. 1] 여가부 버터나이프크루 멤버 페미위키에 대해 알아보자조회수 18,834 추천수 133 댓글 35개 [2022. 7. 1] 문성호 대변인 SNS"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여가부의 <버터나이프크루>는 전 정부 때부터 예산이 편성되어 있어 부득이 추진되었으며, 내년부터 폐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답변 받았습니다. 이에 알려드립니다.“ [2022. 7. 1] 박민영 대변인 SNS“전 정부 때부터 확정되어 예산이 편성된 사업으로 부득이 추진되었으며, 내년부터 폐지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4기 활동 역시 대내적 활동에 국한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대외적으로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유 불문, 공약 기조와 어긋나는 결정이었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정부, 용산 관계자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피드백이 빠르게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2. 7. 3] 이선옥작가: 성차별을 주도하는 여성가족부: 버터나이프크루 프로젝트의 예조회수 15,154 추천수 199 댓글 28 [2022. 7. 4] 권성동 페북 up! "버터나이프 크루 X까라. 여가부 폐지한다.“(권성동 의원 SNS 캡쳐) “제가 필리핀 특사로 파견되었을 때,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 크루’가 출범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분으로부터 우려를 전달받았습니다. 이에 저는 여가부 장관과 통화하여 해당 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전달했습니다.” 조회수 28,816 추천수 238 댓글 143 [2022. 7. 5] 문성호 대변인 SNS“여성가족부로부터 ‘2022 청년 성평등 문화추진단(버터나이프 크루 4기)’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받았습니다. 동 사업의 젠더갈등 해소 효과성, 성별 불균형 등의 문제가 제기된 바, 이와 관련하여 사업 추진에 대해 전면 재검토가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저희가 잘못하면 꾸준히 비판해주십시오. 하나하나 고쳐나가겠습니다.” 2) 문제의식 ① 정책 결정(폐기) 과정 〈버터나이프크루〉 정책 폐기 과정을 살펴보면 ‘남초’ 커뮤니티(에펨코리아)에서 시작된 ‘논란’을 국민의힘 청년 대변인(문성호, 박민영)이 수용하고 이들의 주장을 권성동 의원이 수용하여 여성가족부 장관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남초 커뮤니티 게시글들은 해당 프로젝트가 왜 문제인지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페미니즘/젠더/성평등 정책에 대한 감정적 반감에 기인하고 있다. 남초 커뮤니티는 화를 낼 뿐, 이 정책이 왜 폐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청년 대변인들과 권성동 의원이 제시하고 있다.   박민영 대변인은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에 예산이 편성되고 수행되는 것에 “공약 기조와 어긋나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성평등 문화추진단 사업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기조와 어긋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정한 양성평등’ 공약으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웠던 점, 구조적 성차별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성평등 정책은 모두 폐기 대상이기에, ‘어긋난다’는 박민영 대변인의 말은 맞다. 그러나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주장, 여성가족부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드는 근거들이 모두 틀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틀린 주장이다. “지원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되었다”, “과도한 페미니즘이 남녀갈등을 조장한다”는 권성동 의원의 말은 페미니즘에 대한 몰이해와 왜곡이 그대로 들어나는 표현이다. ‘남녀갈등’ 혹은 ‘젠더갈등’이라는 표현은 젠더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지우고 여성과 남성을 대립하는 존재로 두는 게으르고 잘못된 표현이다. 성평등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가치이자 국제 규범으로 자리 잡은 인권의 문제이다. 그리고 단 한번도 국가 정책이나 입법에서 ‘과도한 페미니즘’을 한 적이 없다.  성평등/페미니즘은 사회적 부정의(injustice)에 대항하여 평등을 지향하는 가치이다.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성차별과 성폭력에 저항하는 목소리와 페미니즘을 낙인 찍는 것은 가부장제 남성중심 질서에서의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권성동 의원과 국민의힘이 안티페미니즘/성차별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며, ‘젠더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 또한 권성동 의원과 국민의힘 세력이다.  ② 〈버터나이프크루〉 ‘그 후’? 반복되는 성평등/페미니즘 지우기  권성동 의원의 발언이나, 청년 대변인들의 남초커뮤니티 여론 수렴이나,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이나, ‘젠더갈등’을 운운하며 정책을 폐기하는 결정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헌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일부 보수 혐오세력은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 프레임을 내세웠다. 이들은 성평등 개헌을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개헌”으로 규정짓고 반대하는데, 이때의 성평등은 개인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 외의 성평등을 주장하는 근거들, 즉 성불평등과 여성권익 향상, 일과 가정의 양립 등의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평등’의 개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이 말하는 양성평등이란 남성과 여성의 혼인으로 이루어진 가정, 즉 전통적 이성애 가족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남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가정 내의 폭력 및 차별들, 가부장제 하에서의 성역할로 인한 지속하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 등의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은 말끔하게 지워버린 채 “성평등=동성애” 공식을 만들어 현실을 왜곡했다. “성평등=동성애 (옹호)” 공식은 나아가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정책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으로 발전한다.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성평등 정책을 비판하며 성별영향분석평가법을 폐지하고 여가부를 해체하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2017년 이후 평등 없는 양성평등을 외치던 보수 혐오 세력이 정부와 입법 기관을 흔들어 놓았던 것처럼 지금의 안티 페미니즘 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연대, 양성평등연대, 성평화연대 등 ‘평등’과 ‘평화’를 이야기하며 ‘젠더갈등’이 있는 사회가 문제라고 하지만 정작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들은 하지 않는다. 한축으로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를 외치는 동안 여성들과 여성운동이 만들어온 (양성평등기본법에 근거한) 양성‘평등’ 정책을 훼손시키며 평등 없는 평등을 외치고 있다. 한국성평화연대나 ㈜신남성연대는 남성과 여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며 ‘올바른’과 ‘건강한’을 외치고 있다. 차별의 구조에서 이 구조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구조의 해체와 반차별을 이야기하는 집단들을 ‘나쁜’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을 ‘바른/건강한’ 집단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동시에 ‘반페미’를 외치고 있다. ‘페미니즘=남성혐오’로 등치시키는 몰이해와 혐오놀이가 만나 ‘꼴페미’를 척결시키겠다는 ㈜신남성연대의 활동은 결국 남성의 인권을 위한 활동도, 평등도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돈’만 남는다. 이에 기생하여 권력을 창출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국민의힘 일부 세력들과 이를 남성 유권자 결집에 이용한 것이 이준석 대표이다.  2021년 5월 집게 손가락이 남성혐오를 상징한다며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를 중심으로 사기업과 공공기관에 대한 공격이 이어졌다. 언론은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논란’을 그대로 받아써주며 사건을 키웠다. 경찰청, 국방부, 전쟁기념관 등 정부 주요 부처와 공공기관 등은 논란을 피하고자 이들의 주장을 들어주었다. 그 결과 남초 커뮤니티들은 더 활발하게 페미니즘에 대한 근거 없는 또는 날조된 주장을 펼쳤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혐오 발화를 그대로 써주며 ‘젠더갈등’이라며 이름 붙이는 언론과 더불어 정치권은 이 논란에 편승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남초 커뮤니티의 ‘논란’을 수렴하는 동시에 4.7재보궐선거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성평등 정책 질의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성평등 정책에 대한 반대의사를 내비쳤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선거 패배의 원인을 ‘과도한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면서(권성동 의원이 썼던 그 워딩) 더불어민주당의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 없는) 성평등 정책 기조를 흔들고 공론장을 어지럽혔다. 젠더정책을 ‘여성우대정책’으로, 페미니즘을 ‘남성혐오’로 규정하며 여성도, 남성도, 청년도, 그 누구도 수혜자가 될 수 없는 경쟁 구도를 만들어냈다.  이준석 전 대표가 만들어 놓은 ‘이대남’ 전략과 반페미니즘 공세의 토대에서 박민영 대변인, 문성호 대변인, 최인호 구의원과 같이 남성 청년의 얼굴을 한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이 ‘활약’할 수 있었다. 이들의 의견은 ‘청년의 의견’으로 권성동 의원을 거쳐 〈버터나이프크루〉 폐기까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 일련의 흐름 속에서 국민의힘만의 문제일까? 이준석 식 공정을 받고 여성과 페미니즘을 지워버린 데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책임도 없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5년 전 대선에서 성평등 추진체계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이 공약을 5년 동안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리고 성평등/페미니즘과 거리두기를 하며 남성들의 눈치를 보았다. 김남국 의원 또한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와 같은 남초 커뮤니티에 인증글을 남기는 등 선거 유세를 펼쳤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9년 초 남성들의 민심을 듣겠다고 표창원 의원이 간담회를 주최하였고 그 자리에서 “성차별이 없는데 현 정권은 여성 중심 정책만 펼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차별과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대한 진단 없이, 모든 정책에서 성평등 관점을 담보할 생각이나 노력 없이, 여성가족부에게 외주 맡기 듯 여성/성평등 문제를 맡긴 결과 차별과 불공정의 문제로 신음하는 어떤 청년도 구제해주지 못하고 ‘젠더갈등’에 기생하여 공론장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데 일조했다.  정치의 역할은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실질적 성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정부/공당/정치가 ‘젠더갈등’과 ‘반페미니즘’에 기생해 갈등을 증폭시켰고, 제 역할을 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의 파급력과 승인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지지 집단을 결집시키기 위해 사용한 전략이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고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의 정치는 갈등을 조장하고-20대 남성의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하고-권력 창출,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이대남'에게도 '이대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갈라치기 정치를 퇴출시키기 위해, 실질적 성평등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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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나이프크루’와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니라 ‘강화’되어야 한다
‘버터나이프크루’와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니라 ‘강화’되어야 한다 ?작은공론장 ‘버터나이프크루 그 후, 우리가 나눠야할 성평등 이야기’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글을 읽고 아래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궁금하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9/23(금) 작은공론장에서 함께 논의 할 수 있습니다. 도구(김현수)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 ‘여성가족부 폐지’, 성평등을 볼모 삼은 무책임한 7글자 공약과 ‘버터나이프크루’ 지난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코로나19로 가시화된 불평등의 심화, 미투운동으로 여성들이 드러낸 성차별·성폭력의 현실 등 시급하고 무거운 과제들 속에서 치러졌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한 차별과 혐오, 증오선동의 장이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당시 후보)과 국민의힘은 어떤 논리나 근거도 없이 페이스북에 단 7글자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1] 그에 더해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이제는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느냐”며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놓인 차별의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비전을 보여주기는커녕 여성인권을 볼모로 정치에 혐오를 이용하고 조장했다. 6.1 지방선거를 앞둔 5월, 국민의힘 당시 원내대표였던 권성동 의원은 여성가족부 폐지안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이 개정안에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정책 대상에서 ‘여성’을 삭제하려는 의도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림 1 ] 권성동 정부조직법 개정안  한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에 동의한다는 답변만 무한반복 했다. 장관 후보자가 해당 부처 폐지를 주장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부처를 왜 폐지해야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취임 후 한 달 기자간담회에서도 “정책 환경이 변화했고 여가부가 가진 여러 한계를 고려할 때 여가부 폐지는 명확하다”는 등 모호한 근거를 대며 ‘폐지’라는 단어만 계속해서 반복했다. 김 장관이 취임 이후 했어야 할 일은 공약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여성가족부 강화 방안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삶보다는 권력자의 말 지키기에 자신의 역할을 끼워 맞춘 장관의 행보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삶, 나아가 국가 성평등 정책을 위협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권성동 의원의 전화 한 통으로 중단된 여성가족부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해당 사업이 “남녀갈등을 증폭시킨다”거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여당 정치인들의 말은 성평등 문화 확산 필요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하며, 사실상 ‘표 장사’를 위해 혐오의 언어에 편승해 ‘여성’과 ‘성평등’을 정책에서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것일 뿐이다. 여성가족부의 ‘역사적 소명’인 성차별 해소·성평등 실현은 여전히 중요한 시대적 과제이자 헌법적 가치 세계경제포럼(WEF)의 2021년 세계성별격차보고서(The Global Gender Gap Report)에 의하면 한국의 성격차 지수는 156개국 중 102위다. 또한 성별임금격차는 OECD국가 중 가장 크다(31.5%, 2020).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은 10%(2021년 기준), 기업(상장법인) 여성임원 비율은 5.2%(2021년 1분기 기준)로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고, 채용·배치·승진·임금에서 차별받거나 폭력을 경험하는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는 구조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일상 곳곳에서 일어난다. 이미 수많은 통계가 증명해주듯이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고용률이 낮고 훨씬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기업은 여성이라 뽑지 않고, 가사노동, 육아 등 돌봄은 여성에게 전가되어왔다. 여성의 고용률이 낮거나,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 임원에 여성이 적은 이유는 여성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는 성별고정관념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러한 성차별 현실을 직시하고 구조적 해결에 힘쓰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대한민국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제사회 또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UN CSW),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등을 통해 성차별 해소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적극적 성차별 해소는 대한민국 정부의 책무이자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다. 1995년 유엔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한국을 포함한 189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던 <베이징여성행동강령>은 ‘적절한 예산과 인력을 보장받는 여성 정책 전담기구를 설치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이미 27년 전 국제사회가 합의한 보편규범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2021년 유엔은 제65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 합의문에서 (E/CN.6/2021/L.3) ; “국가기구는 성평등 증진의 주요 촉진자이다. 회원국은 북경행동강령 이행에 있어 ① 성평등 전담 기구 강화 ② 성주류화 정책 증진과 성평등 발전 ③ 젠더 통계의 수집, 배포, 활용을 위한 노력의 배가 등 3가지 활동을 추진한다.” 라고 각 회원국에 권고한 바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 6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이사국 당선을 홍보하며 국제사회 공동목표인 지속가능발전 이행과 평화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올해 말 유엔인권이사회 차기 이사국(2023-2025) 선거를 위해 제출하는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자발적 서약(voluntary pledges)’에서는 여성인권증진에 대한 국내 성과와 계획을 자랑스럽게 국제사회에 내보인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사회의 인권 논의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정부가 윤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먼저 내놓은 여성인권 관련 계획이 아이러니하게도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국가 성평등 정책을 전담할 ‘독립부처’ 필요,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를 강화해야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되기 전, 성평등 정책 추진기구로 1983년 국무총리 산하 여성정책심의위원회, 1990년 정무장관(제2)실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몇 차례 직제개정을 거치며 오랫동안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무장관(제2)실은 여성정책의 ‘수행’이라는 면에서 주어진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에 어느 한 부서이기보다 조정기능을 갖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함으로써 성주류화를 실천할 수 있는 정책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1998년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여성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기획 및 조정의 사무를 관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위원회는 조직·기능·인력·예산 등에 한계가 있어 성평등 정책을 전담하는 독립부처로서 집행기능과 조정기능을 가진 여성부가 출범했다. 이처럼 ‘전담 독립부처’의 필요성은 여성가족부 설립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이미 증명된 지 오래다.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전담기구가 독립부처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입법권과 집행권이 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권이 주어지고, 각 부처별로 추진하고 있는 성평등 정책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총괄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가족부가 독립부처로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도 이를 전담으로 소관하는 상임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성평등 정책 전담 독립부처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러한 국가 성평등 정책 실현을 위한 중요한 권한과 기능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차별적인 한국 사회구조와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가가 시행하는 수많은 법과 정책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별에 따라 법과 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집단이 배제되거나 차별받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을 하는 여성가족부는 ‘독립부처’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적은 예산과 인력(정부예산 중 0.24%(2022), 279명(2021))으로 운영되고 있다. 부처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이 한계를 어떤 방식으로 보강할 것인지, 현재 여성가족부에서 미약한 수준인 성평등 정책 기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비전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성평등 전담부처인 여성가족부 강화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에 성평등 정책 담당 부서 설치 등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버터나이프크루’와 ‘여성가족부’는 폐지가 아니라 강화되어야 한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 제도와 정책뿐만 아니라 성평등한 사회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활동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펑등’이라는 헌법적 책무를 가진 국가는 그 활동들이 지속되고 강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의 토론을 통해 앞으로도 성평등 실현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강화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역할이 활발히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1] 이후 대선 공약집에 ‘여성가족부 폐지’ 내용을 담았으나, 부처 폐지 근거로 1) 특성에 따른 격차 해소 요구가 큰 데 반해 중요한 사건들에서 논란만 증폭시키는 등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 2) 정책 중심이 아닌 대상 중심 조직의 특성으로 사업 중복과 타 부처 업무 사각지대 형성 3) 근본적으로 평등,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청소년 안전에 대한 교육과 문화 확산 필요를 제시했음. 그러나 제시된 세 가지 이유는 부처 폐지의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역할을 구체화하고 강화해야 해결 가능한 요소들임. *자료출처 “여성시민사회단체 공동입장문 - 여성가족부 폐지 안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성평등정책 전담 독립부처를 중심으로 총괄·조정 기능 강화한 성평등 추진체계 구축하라!!”,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2022.3.2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여성가족부폐지공약’ 대응 범여성계 공동선언 - 구조적 성차별은 엄연한 현실이다. 더욱 강력한 성평등정책 전담 부처를 마련하라!”,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2022.3.30.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대한 입장 -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여가부 폐지 찬성 답변만 무한반복한 인사청문회가 말이 되는가? -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 입장 철회하라!”, 2022.5.12. “여성가족부 장관 취임 한 달, 근거와 내용도 없는 부처 폐지 입장만 반복 여성가족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은 부처 폐지가 아니라 강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202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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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안과 밖에서 사라지는, 그러나 존재하는 목소리들
?작은공론장 ‘버터나이프크루 그 후, 우리가 나눠야할 성평등 이야기’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글을 읽고 아래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궁금하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9/23(금) 작은공론장에서 함께 논의 할 수 있습니다. 뿌리탐사 조혜원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버터나이프크루 4기에 선정되었던, 그리고 현재는 액션크루 <그럼에도 우리는>으로 활동 중인 뿌리탐사 팀의 조혜원이라고 합니다.  처음 발제 요청을 받고 대학의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과연 내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버터나이프크루 폐지의 피해 당사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대학 페미니스트로서, 제가 왜 이 사업을 지원하게 되었고 또 버터나이프크루 폐지로 인해 느낀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폐지 수순이 대학 내에서 우리들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양상과 얼마나 닮았는지에 대해 발언하고자 합니다. 또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전혀 무관하지 않은 일인지에 대해 저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라지는 대학 내 여성단체들을 기록하자” 라고 처음 기획서를 제출하고 버터나이프크루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 “사라지는 단체”에 우리 또한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희 뿌리탐사 팀은 대학 내에서 사라지는 목소리들을 기록하고, 캠퍼스 내의 성평등을 추구하고자 버터나이프크루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내에서, 제도권 안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가 부재하다는 감각을 대학 생활 내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8월 12일 김현숙 장관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버터나이프크루 폐지의 이유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구성원에 여성이 지나치게 많고 내가 학교에서 본 평범한 2030세대와는 차이가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평범한 2030 세대란 무엇이지? 그렇다면 나는 평범하지 않은, 정상적이지 않은, 유별난 청년이라는 건가?’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학교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청년을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들의 목소리가 지금 지워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장관의 발언으로 인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캠퍼스에 있다는 것이 더욱 여실히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대학 내 성평등의 필요성과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대학 페미니스트들은 “존재함으로써 투쟁”을 지속해 왔습니다. 여성학 전공은커녕 교양 과목조차 제대로 개설되지 않은 학교들이 무구한 가운데, 학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이 사안에 대해 성차별적 요소를 짚고 그 대안을 세우는 것은 언제나 총여학생회, 대학 페미니즘 모임들, 그리고 여성주의 단체들이었습니다.  교육부가 파악한 학내 성폭력 신고 건수는 대학가에 미투 운동이 영향을 끼쳤던 2018년도에 182건, 2019년도에 346건으로, 비대면 학사였던 2020년도에도 반년간 94건 접수될 정도로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1]은폐되는 사건들까지 고려하면 실제 그 수는 더욱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 내 여성주의 단체들은 꾸준히 학내 성차별적 문화와 성폭력전담기구의 지위 보장, 만연한 2차 피해 등에 대해 지적해 왔습니다. 대학 본부가 공동체 내의 성차별적 조직 문화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와중에, 학내 여성주의 단체들과 대학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캠퍼스 내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성평등 활동이자 남성중심적 대학문화에 대한 견제 기구였습니다. 이들은 대학 내 성폭력 문제뿐만이 아니라 캠퍼스 내의 성 차별적인 문화 개선과 전반적인 성 인지 감수성 확립을 위해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대학 본부에서 제공하는 형식적인 교육이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처럼 학생들이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2018년도, 서울을 중심으로 대학 내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연세대, 성균관대, 동국대와 같은 학교들은 “대학은 이미 성평등해졌고 총여학생회는 성별 갈등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폐지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잇따른 대학가의 총여학생회 폐지 현상과 학내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점점 대학 페미니스트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학내 공론장에서 배제되고 마치 우리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인 것처럼 너무도 쉽고, 빠르게 단체들을 없애려는 움직임들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학사를 거치며, 대학 내 유일하게 공론장의 기능을 수행하는 학내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라는 플랫폼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났습니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 자리에서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들이 과잉 대표되며 또 다른 단체를 없애고, 그럼으로써 또 공간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 4월, 여성주의 철학논문을 쓴 페미니스트 학자와 연대하였다는 이유로 총학생회로부터 제가 속해 있던 학내 인권위원회에서 위원장 해임이라는 처분을 받고 (해임 안건이 상정된 것이었으나 사실상 해임 처분과 마찬가지였기에 자진사퇴를 하였습니다) 단체 차원의 징계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사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기구의 설립목적과 기조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는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되었습니다.[2] 중앙대 성평위 같은 경우 총여학생회의 대체 기구가 최초로 폐지되는 사건이었기에 학생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습니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바로 에브리타임의 여론만으로 단시간에 처리된 소수자 지우기 현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학생사회는 제도권 안에 속해 있고자 하면 성평등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고, 제도권 밖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자들은 절대 그들의 테이블에 끼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우리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개인과 조직들이 사라질수록 그 피해와 위험은 고스란히 다시 우리의 몫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캠퍼스 밖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선 곳이 바로 “버터나이프크루” 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공간마저 안전하지 않으며, 애초에 공간을 떠나서 우리가 목소리 낼 수 있는 기회조차 이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캠퍼스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그런 사람들을 “평범하지 않은” 일부의 사람들로 타자화하는 시각은 이번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폐지한 정치권의 시선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정치권은 캠퍼스 안에서 우리들의 존재가 지워졌던 양상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있습니다. 마치 대학가에서 “이제 캠퍼스는 더 이상 성 차별적이지 않다” 라며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던 모습과 비슷합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발 빠르게 사업을 폐지시켜버리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사라졌던 수많은 대학 내 성평등 기구들과 목소리들이 생각 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과 관련한 재학생의 대자보에 전국의 대학 페미니즘 단체들이 온라인 규탄문 총공으로써 응답한 것이 유의미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3] 캠퍼스 안과 밖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주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번 버터나이프크루 폐지 반대 서명에 연대를 표해준 전국의 99개의 단체 중에는 대학 페미니즘 단체들도 상당수를 차지하였습니다. 지속되는 캠퍼스 내의 백래시,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다소 단절된 듯 보였던 대학 페미니스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왔음을, 그리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응답해 주었던 것입니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존재하는 것 자체로 투쟁이 되는 환경 속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많은 대학 페미니즘 단체들은 새로운 원동력을 찾았을 것입니다. 버터나이프크루 폐지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잡초들과 같이 언제든 목소리 내고 응답해주는 관계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 신중섭, “[2020국감]대학 성희롱·성폭력 3년새 2배 증가…서울대 5년간 170건”, 이데일리, 2020.10.22 [2] 임재우, “‘페미니즘’ 이유로…중앙대 성평등위, ‘에타’ 익명글 9일만에 폐지”, 한겨레, 2021.10.19 [3] 장나래, “’우리 학교부터 바꾸자’ ‘인하대 대자보’ 뒤 ‘총공전’이 열렸다”, 한겨레, 2022.08.04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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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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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페미니즘(볼드모트) 소환하기
?작은공론장 ‘버터나이프크루 그 후, 우리가 나눠야할 성평등 이야기’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글을 읽고 아래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궁금하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9/23(금) 작은공론장에서 함께 논의 할 수 있습니다 버터나이프크루 페미리(Femi-ly)의 경험을 통하여 by. 팡세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은 SNS로 지인이 링크를 보내주면서 소개해서 알게되었고, 그 때 페미니즘이 나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로 다가오면서 스트릿아트에 담아 시도해 볼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것을 대구인 나의 고향에서 이야기 하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해 생활 곳곳에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대구에서는 일상에서의 대화가 부족했다. 대구에서 페미니즘이란 마치 볼드모트처럼 감히 그 단어를 꺼내선 안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페미니즘에서 내게 가장 컸던 것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이였기 때문에, 예술을 통해 그것을 나누고 싶었다. - 서울/수도권과 대구/지방의 문화적 격차/한계 (원인, WHY) 수도권에 몰리는 문화 예술 현상과 지방의 청년 이탈문제들이 오랜시간 지속되어왔다. 대구는 타 지방에 비해 미술대학이 많이 있는데, (대구에 있는 6개 미술대학, 경북대, 계명대,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대구예술대, 영남대) 대구 내에서 이 청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고,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수도권에 많이 특화되어있다. 특히나 디자이너, 미디어 아트 등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갤러리나 문화공간, 회사 등은 수도권에 몰려있다. 나는 대구 출신으로, 13년도 서울에 올라와 그래피티 작업을 시작했다. 홍대를 중심으로 전자음악과 미디어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시도를 동시에 배웠다. 처음 그래피티 씬은 남성중심 연대문화가 강하게 깔려있었고, 이방인의 경험과 여성으로써 예술을 하기위해선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했다. 학업으로 인해 서울에서 6개월, 대구에서 6개월을 보냈는데 수도권ㅡ지역간 분위기의 갭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대구에서도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대구를 가면 그저 뉴스에나 나올법한 하나의 사건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금방 휘발되었고, 비교적 열려있다는 예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희한하게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들이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다.   - 페미리가 이 격차/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한 것들 (어떻게, HOW) 페미리(Femi-ly)는 페미니즘을 통해 모인 가족이란 뜻으로, 대구 지역에서 여성인권 예술행동과 연대를 도모하는 팀 이다. 페미리 멤버는 대구-서울을 오가는 나와, 서울-수원을 오가는 예람, 대구에서 미술활동을 하는 현진 이렇게 세명이 멤버이다. 충남 천안 출신의 예람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3개월 동안 할례 반대 운동과 올바른 성교육 의식을 장려하는 <와이걸즈> 활동으로 펀딩을 진행했다. 현진은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퍼포먼스로 처음 알게되었다. 그 후 페미니즘의 의식을 담은 개인전을 열어서 찾아가 이야기 나눴었다. 대구의 문화예술 인프라를 잘 이해하고 있는 분이었다. 대형 스트릿아트 벽화를 대구 시내에 작업하는 것을 임파워링 라이브 행사로 기획하기 위해, 먼저 대구 곳곳의 뜻이 맞는 창작자들을 모으고 교류했다. 특히 대구의 인디씬에서 공간 운영자이자 기획자로 활동해온 독립서점지기들을 인터뷰해 대구의 문화예술씬 안에서 페미니즘 담론이나 기획의 필요성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함께 이야기를 나눈 서점들에서 페미니즘 문구와 로고를 스텐실로 오리고 락카를 뿌려 완성하는 워크샵을 진행하고, 추후 제작한 임파워링 포스터와 스티커를 배치하였다. 이후 반나절 정도 벽화를 작업하면서 완성 시간에 맞춰, 파티를 열었다. 길을 거니는 누구나 참여하고 구경할 수 있는 자리였고, 여성의 힘과 자신감을 표현하는 대구 여성 댄서들의 공연과 로컬 디제이의 음악이 함께 했다. - 앞으로의 과제 버나크 덕분에 페미리 활동이 가능했고, 페미리 활동 이후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구역 앞 랜드마크 벽화가 세워지고 주말이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증샷을 남겨 올리기도 한다. 페미리 프로젝트가 끝나고 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벽화라는것이 문화예술로 소비되니 페미니즘이라는 장식을 보다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서 그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여가부 라는 국가부처가 있고, 그곳에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개인이 진행할 때보다 여러모로 작품활동이 보호받고 있다는 마음가짐, 그 힘이 가장컸다. 지역은 아직 지속적인 교류와 인프라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 이 이야기의 자리처럼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공유될 수록 우리의 경험은 폭넓어지고 서로간의 든든한 힘이 될 것 이다. 나는 그래피티 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평등에 사랑 대하여 계속 이야기 나눌 것 이다.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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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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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겁’, 따분해진 전쟁… 다시 겁먹기를 바라며
“무서워”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침략당했을 때, 뉴스를 보고 “무서워”라고 했다. 나의 어머니가 그랬고, 친언니가 그랬고, 카톡을 하던 친구가 그랬다. 적어도 그 직후에는, “안타까워”라는 표현은 듣지 못했다. 현장 사람들의 절박함과 거리를 두는 ‘안타까움’보다는 당장의 ‘무서움’이 앞섰던 것이다. 러시아 씩이나 되는 강대국이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건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줄만큼 두려운 사안이었으니.   지금까지도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온라인 집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책방이음) 민간 단위의 반전 운동이 미처 나의 정보가 닿지 못하는 곳에서도 형형히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한지 반 년이 넘은 현재의 소식이다. 한편,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지는 어느덧 일 년 반이 됐다. 홍콩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폭력을 우리는 공중파 뉴스에서 목격해왔다. 헤드라인 위에 ‘전쟁’과 ‘인권침해’, ‘민간인 학살’… 이라 적힌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제는 좀 태연해 보인다. 전반적으로 ‘무심해진’ 분위기가 퍼져있다. 관심이 미비해진 건 이 소식에 ‘질려’있기 때문이다. 홍콩도, 미얀마도, 물리고 식상해진 소식이 되어버렸다.   고립은 비밀리에 벌어지지 않았다. 온 세상이 알고 있는 비극이 고립된다는 것, 이런 '앎'은 때로는 몰랐을 시절만큼도 못한 비관을 발 딛게 한다. 아무도 모를 때는, 적어도 누군가 알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으나 앎 속에서 고립되면 희망의 경로를 뚫기 어렵다. 이미 알았고, 따분해졌으므로, 절망적인 걸까? 나는 여기에 앎의 일각이 아닌 전체를 재구성하자는 생각을 던져본다. 지금은 대상과 거리를 전제하고 상황을 ‘관조’하는 앎이 전체인 양 퍼져있다. 그러나 얼음은 만져야 차갑고, 송곳엔 찔려야 아프다. 즉 거리를 좁혀 대상과 닿을수록 기존에 관조하던 ‘앎’의 일부는 소용이 없어진다. 피부로 깨달은 두꺼운 ‘앎’으로 대체될 뿐이다. 이에 반년 전 내 귀에 “무서워”라 들렸던 사람들의 진심을 다시 꺼낸다. “쯧쯧. 어떡해.”가 아니고, “불쌍하다.”가 아니고, “안타까워”도 아닌 “무서워”라는 실감 나는 겁을. 겁 먹던 자들은 전쟁을 하는 수 없이 멈춰야 한단 걸 피부로 알았다.   우리가 다시 겁먹기를 바란다 겁은 나약하다. 겁은 수동적이고 공격하지 않는다. 겁은 오히려 울고 도망치기에 바쁘다. 그리하여 당한 쪽이 ‘이기길’ 바란다거나 정권을 혁명적으로 갈아엎기를 응원하자고 제안하지는 않겠다. 그것도 승리의 한 방식이지만, 여기서는 겁과 슬픔과 공감으로 이뤄진 해방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왜냐하면 전쟁 현장에 있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은 자국의 승패와 무관하게 자주 패배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다쳐서 돌아오고, 터전이 훼손되고, 이웃공동체가 망가진다. 승전국의 승리는 수많은 시민의 승리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해 용맹하게 희생하는 ‘위인’보다, 무서워서 줄행랑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죽고 죽이는 게 무섭고 우리 동네가 무너져서 슬픈 이들의 나약함이 바로 전쟁 없는 다음 사회의 가능성을 쥐고 있다.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저 보통의 두려움을 환기해보자. 비극의 식상함에서 벗어나자. 겁을 먹음으로써 당신도, 나도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자.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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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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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앞에서: 스러져가는 문화재들을 위하여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잖아요?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잖아요?” “자본주의 시대에 알맞는 선택이죠.” 우리는 일상에서도 자본주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실제 사용되는 예를 가지고 자본주의가 무슨 의미인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돈이 가장 중요한 세상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본도 그냥 많은 돈이라는 의미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는 말 그대로 자본이 중심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자본은 뭘까요? 자본은 그냥 돈을 뜻하는 말은 아닐 겁니다. 돈이란 어떤 물건의 가치를 알기 쉽게 표현해주는 수치이기도 하고, 물건을 교환을 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고, 물건을 언제든지 바꾸기 위해 저장해두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돈이 자본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양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통해서 불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게 돈과 자본의 차이고, 이를 한자 단어로 표현하자면 증식(增植)되는 돈이야말로 자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본주의란 돈의 증식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 구성 방식, 돈의 증식을 위해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믿는 생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노동을 통하지 않고, 돈이 저절로 불어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주식 투자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부동산 매매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만, 중요한 건 결국 사람들이 특정 물건을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이 판단하면 돈이 돈을 버는 현상이 생겨납니다. 과거에는 물물교환이 중심이었겠지만, 대부분의 아시아-유럽의 국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한 가지 물건을 기준으로 놓고 거래를 하였습니다. 조선 땅에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까지도 쌀이 그 기준이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금, 은, 구리, 철 같은 금속이 거래의 기준으로 쓰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화폐의 형태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죠. 금속으로 만든 화폐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금속 화폐를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시작했고, 화폐가 곧 부(富)의 실체이고 가치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가치와 가격을 마구 섞어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격과 가치가 구분되지 않고 섞이기 시작하면서 자본이 등장했습니다. 자본이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나는 자본이다’라고 말하고 등장한 것은 아니고, 자본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꽤 최근의 일이지만, 인간들은 이미 기원년 전후가 되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본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신분이냐, 계급이냐, 계층이냐’의 차이는 있지만서도, 개인이 어떤 형태로든 자본을 소유하고, 노동 혹은 노동력의 대가를 화폐로 지불하는 체제 하에서, 자본의 증식을 가장 핵심적인 동기로 삼는 사고방식, 혹은 그러한 사회구조를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노동에 기생하는 형태를 띌 수 밖에 없습니다(착취라고 말하면 거품 물고 뒤집어지는 분들이 계실까봐 기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신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노동 혹은 노동력을 주고 받은 화폐를 끌어모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이 증식될 도리가 없거든요! 왕릉뷰 아파트와 DDP 이야기를 잠시 조선왕릉으로 돌려볼까 합니다. 서울, 경기 지역에 두루 분포되어 있는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조선왕릉 40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단순히 왕의 무덤이라서가 아닙니다.  전문용어로는 천인상관(天人相關)이라고도 합니다만, 천지(天地) 질서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우주,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유교적 자연 이념에 기반하여, 무덤의 구조는 물론, 무덤의 위치까지 매우 세밀하게 구성해, 산과 강으로 대표되는 자연과 마을, 도시로 대표되는 인간 사회, 죽음과 조상, 뿌리라는 경건함과 태어나고 먹고 마시고 싸고 섹스하다가 죽는 세속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그 배치 방식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사상의 표현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네스코에서 조선 왕릉 40기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할 때에는 그 완전성과 진정성에도 매우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도시개발이 몇몇 유적의 경관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대체로는 엄격한 법률로 개발을 제한하고 있으며, 모든 유적이 본래의 기능과 경건함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완전성과 진정성을 평가받은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문화재보호법> 등의 실정법으로 이러한 유산을 광범위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효율적으로 보존 계획을 세우고 관리하고 있다는 점, 일관성 있게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매우 큰 평가를 받았습니다. (유네스코-조선왕릉)  그런데 이제는 이런 것도 자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인조의 부친 원종(元宗. 추존왕으로,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이라고도 함)과 인조의 모친 인헌왕후(仁獻王后)의 구씨(具氏) 능인 장릉(章陵) 앞에 아파트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불법으로 지어진 것이라면 그것도 문제지만, 이것이 법에 합당하다고 하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한국 정부의 문화재 정책이나, 한국의 문화재 관련 법률, 혹은 문화재 담당 기관이 문화재를 지키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파트 건축이 합법이건 불법이건, 아파트 시공으로 인해 세계적인 문화재가 훼손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주택 보급률은 103.6%였습니다. 한국의 전체 가구수를 100으로 치면, 주택이 103채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주택 문제는 주택 보급의 불공정에 있는 것이지, 주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아파트에 목을 매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자본의 요술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요. 또,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DDP)라는 대표적인 사례도 하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DDP가 있던 자리에 원래는 동대문 운동장 있었습니다. 1925년 건설되어 한국 스포츠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유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2006년 서울특별시장으로 당선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노후를 이유로 동대문 운동장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DDP를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도 한국 근현대 스포츠의 대표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는 동대문 운동장을 이렇게 헐어 버리는 것이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겠냐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런 말을 전부 무시하고 2007년 드디어 동대문운동장을 싹 밀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을 밀고 났더니 거기에서 조선시대 유적이 발견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최대의 군사 훈련 시설이었던 하도감과 민가, 수로, 가마 유적이 대규모로 발굴된 것입니다. 에초에 일제가 동대문 운동장을 지을 때에도 한양도성을 밀어버리고 지은 탓에 수많은 비판을 받았는데요,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하면서 이 때 파묻어 버렸던 과거의 유적이 그대로 드러나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치적을 반드시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 하나를 가지고, 그곳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적을 그대로 떠서 여기저기 나누어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유적은 원래 자리에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시골에 있는 집을 헐어서 그걸 서울에 지으면 우리는 그것을 시골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런 이치입니다. 1998년 경춘선 가평역을 지을 때의 일입니다. 역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고조선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우루루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5년에 걸친 공사 끝에,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만들고, 고조선 시대의 움집과 움무덤터를 그대로 놔두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보존 하였습니다. 또 2005년 부산광역시 4호선 수안역을 공사 할 때에는 임진왜란의 두번째 전투인 동래성 전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동래성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원역을 공사할 때 동래읍성 전시관을 만들어 유물과 유적을 보존하였습니다.  자신의 임기 내에 눈에 보이는 치적을 남기기 위해 DDP를 짓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유적을 싹 밀어버린 오세훈 서울시장의 결단! 그건 실용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어떤 분들은 옛날 무덤, 옛날 집터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넌 지금 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사느냐고 되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나 명동성당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제 삶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면 제 일상에는 큰 지장이 생깁니다. 당장 노트북이 고장나면 제 삶에는 큰 지장이 생깁니다. 실용이라는 것도 분명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은 실용 속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열차 속에서, 평범한 빌라나 아파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오히려 가끔은 존중하고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여자들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성대하고 아름답게 차린 전통 제사상보다, 모두가 함께 차린 단촐한 식사가 더 위대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진솔하고 담백한 한 마디가 더 많은 감동을 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시대의 양식을 따라 만든 드레스나 턱시도, 궁중의 예복을 입고 전통 예법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땀에 젖은 노동자의 모습이 도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가 장릉을 가리며 건설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는지, 조선의 유적을 여기저기 옮겨놓고 지을만큼 DDP가 중요한 건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프랑스나 영국의 박물관은 여기저기에서 훔쳐온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미국과 일본 여기저기에도 한국의 유물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이 장물들을 돌려주지 않겠겠다면서,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곤 합니다. 낯짝이 두껍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이제 한국의 유물은 돌려받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겠다고 할 때, 외국에서 장릉 앞 아파트와 DDP를 거론하면서, 너희는 너희 문화재를 지킬 역량이 없는 나라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요? 오히려 장릉 앞 아파트와 DDP가 실용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요? 외국인들이, 혹은 후대의 사람들이 굳이 장릉 앞에 아파트를 건설해야만 하는 당위, 디자인 플라자를 유적지를 옮겨가면서까지 반드시 동대문에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우리는 뭐라고 답을 해야할까요? ‘너희 대한민국은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욕망, 자본주의 사회이므로 자본의 증식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지켜야 한다면서 나머지는 깔아뭉개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국민들, 자기 치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환경도 전통도 자기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을 가진 나라가 아니냐’고 말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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