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나이프크루’와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니라 ‘강화’되어야 한다
?작은공론장 ‘버터나이프크루 그 후, 우리가 나눠야할 성평등 이야기’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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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김현수)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
‘여성가족부 폐지’, 성평등을 볼모 삼은 무책임한 7글자 공약과 ‘버터나이프크루’
지난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코로나19로 가시화된 불평등의 심화, 미투운동으로 여성들이 드러낸 성차별·성폭력의 현실 등 시급하고 무거운 과제들 속에서 치러졌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한 차별과 혐오, 증오선동의 장이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당시 후보)과 국민의힘은 어떤 논리나 근거도 없이 페이스북에 단 7글자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1] 그에 더해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이제는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느냐”며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놓인 차별의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비전을 보여주기는커녕 여성인권을 볼모로 정치에 혐오를 이용하고 조장했다.
6.1 지방선거를 앞둔 5월, 국민의힘 당시 원내대표였던 권성동 의원은 여성가족부 폐지안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이 개정안에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정책 대상에서 ‘여성’을 삭제하려는 의도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림 1 ] 권성동 정부조직법 개정안
한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에 동의한다는 답변만 무한반복 했다. 장관 후보자가 해당 부처 폐지를 주장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부처를 왜 폐지해야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취임 후 한 달 기자간담회에서도 “정책 환경이 변화했고 여가부가 가진 여러 한계를 고려할 때 여가부 폐지는 명확하다”는 등 모호한 근거를 대며 ‘폐지’라는 단어만 계속해서 반복했다. 김 장관이 취임 이후 했어야 할 일은 공약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여성가족부 강화 방안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삶보다는 권력자의 말 지키기에 자신의 역할을 끼워 맞춘 장관의 행보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삶, 나아가 국가 성평등 정책을 위협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권성동 의원의 전화 한 통으로 중단된 여성가족부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해당 사업이 “남녀갈등을 증폭시킨다”거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여당 정치인들의 말은 성평등 문화 확산 필요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하며, 사실상 ‘표 장사’를 위해 혐오의 언어에 편승해 ‘여성’과 ‘성평등’을 정책에서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것일 뿐이다.
여성가족부의 ‘역사적 소명’인 성차별 해소·성평등 실현은 여전히 중요한 시대적 과제이자 헌법적 가치
세계경제포럼(WEF)의 2021년 세계성별격차보고서(The Global Gender Gap Report)에 의하면 한국의 성격차 지수는 156개국 중 102위다. 또한 성별임금격차는 OECD국가 중 가장 크다(31.5%, 2020).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은 10%(2021년 기준), 기업(상장법인) 여성임원 비율은 5.2%(2021년 1분기 기준)로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고, 채용·배치·승진·임금에서 차별받거나 폭력을 경험하는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는 구조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일상 곳곳에서 일어난다. 이미 수많은 통계가 증명해주듯이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고용률이 낮고 훨씬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기업은 여성이라 뽑지 않고, 가사노동, 육아 등 돌봄은 여성에게 전가되어왔다. 여성의 고용률이 낮거나,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 임원에 여성이 적은 이유는 여성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는 성별고정관념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러한 성차별 현실을 직시하고 구조적 해결에 힘쓰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대한민국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제사회 또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UN CSW),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등을 통해 성차별 해소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적극적 성차별 해소는 대한민국 정부의 책무이자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다. 1995년 유엔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한국을 포함한 189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던 <베이징여성행동강령>은 ‘적절한 예산과 인력을 보장받는 여성 정책 전담기구를 설치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이미 27년 전 국제사회가 합의한 보편규범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2021년 유엔은 제65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 합의문에서 (E/CN.6/2021/L.3) ; “국가기구는 성평등 증진의 주요 촉진자이다. 회원국은 북경행동강령 이행에 있어 ① 성평등 전담 기구 강화 ② 성주류화 정책 증진과 성평등 발전 ③ 젠더 통계의 수집, 배포, 활용을 위한 노력의 배가 등 3가지 활동을 추진한다.” 라고 각 회원국에 권고한 바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 6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이사국 당선을 홍보하며 국제사회 공동목표인 지속가능발전 이행과 평화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올해 말 유엔인권이사회 차기 이사국(2023-2025) 선거를 위해 제출하는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자발적 서약(voluntary pledges)’에서는 여성인권증진에 대한 국내 성과와 계획을 자랑스럽게 국제사회에 내보인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사회의 인권 논의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정부가 윤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먼저 내놓은 여성인권 관련 계획이 아이러니하게도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국가 성평등 정책을 전담할 ‘독립부처’ 필요,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를 강화해야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되기 전, 성평등 정책 추진기구로 1983년 국무총리 산하 여성정책심의위원회, 1990년 정무장관(제2)실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몇 차례 직제개정을 거치며 오랫동안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무장관(제2)실은 여성정책의 ‘수행’이라는 면에서 주어진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에 어느 한 부서이기보다 조정기능을 갖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함으로써 성주류화를 실천할 수 있는 정책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1998년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여성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기획 및 조정의 사무를 관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위원회는 조직·기능·인력·예산 등에 한계가 있어 성평등 정책을 전담하는 독립부처로서 집행기능과 조정기능을 가진 여성부가 출범했다. 이처럼 ‘전담 독립부처’의 필요성은 여성가족부 설립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이미 증명된 지 오래다.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전담기구가 독립부처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입법권과 집행권이 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권이 주어지고, 각 부처별로 추진하고 있는 성평등 정책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총괄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가족부가 독립부처로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도 이를 전담으로 소관하는 상임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성평등 정책 전담 독립부처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러한 국가 성평등 정책 실현을 위한 중요한 권한과 기능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차별적인 한국 사회구조와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가가 시행하는 수많은 법과 정책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별에 따라 법과 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집단이 배제되거나 차별받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을 하는 여성가족부는 ‘독립부처’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적은 예산과 인력(정부예산 중 0.24%(2022), 279명(2021))으로 운영되고 있다. 부처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이 한계를 어떤 방식으로 보강할 것인지, 현재 여성가족부에서 미약한 수준인 성평등 정책 기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비전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성평등 전담부처인 여성가족부 강화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에 성평등 정책 담당 부서 설치 등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버터나이프크루’와 ‘여성가족부’는 폐지가 아니라 강화되어야 한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 제도와 정책뿐만 아니라 성평등한 사회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활동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펑등’이라는 헌법적 책무를 가진 국가는 그 활동들이 지속되고 강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의 토론을 통해 앞으로도 성평등 실현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강화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역할이 활발히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1] 이후 대선 공약집에 ‘여성가족부 폐지’ 내용을 담았으나, 부처 폐지 근거로 1) 특성에 따른 격차 해소 요구가 큰 데 반해 중요한 사건들에서 논란만 증폭시키는 등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 2) 정책 중심이 아닌 대상 중심 조직의 특성으로 사업 중복과 타 부처 업무 사각지대 형성 3) 근본적으로 평등,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청소년 안전에 대한 교육과 문화 확산 필요를 제시했음. 그러나 제시된 세 가지 이유는 부처 폐지의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역할을 구체화하고 강화해야 해결 가능한 요소들임.
*자료출처
“여성시민사회단체 공동입장문 - 여성가족부 폐지 안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성평등정책 전담 독립부처를 중심으로 총괄·조정 기능 강화한 성평등 추진체계 구축하라!!”,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2022.3.2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여성가족부폐지공약’ 대응 범여성계 공동선언 - 구조적 성차별은 엄연한 현실이다. 더욱 강력한 성평등정책 전담 부처를 마련하라!”,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2022.3.30.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대한 입장 -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여가부 폐지 찬성 답변만 무한반복한 인사청문회가 말이 되는가? -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 입장 철회하라!”, 2022.5.12.
“여성가족부 장관 취임 한 달, 근거와 내용도 없는 부처 폐지 입장만 반복 여성가족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은 부처 폐지가 아니라 강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2022.6.17.
코멘트
13없애겠다고 하는 선언이 너무 쉽게 나온 것에 비해 -없어질 위험에 처한 것들을 온전히 담기 위해서는 매번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모든 과정이 완벽할 수는 없다하여도 부처가 있음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은 쉽게 포기할 수 없겠지요. 여성을 위한 정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은 여가부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가부를 이루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의 연결도 강화할 수 있는 방법들도 고민해야겠습니다.
매일 황당한 정치권의 발언들이 올라오는 것만큼이나 염려되는 것은, '여가부 폐지'가 밈을 넘어 정말 존속을 이야기해야할만큼, 그것이 점차 용인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려운 마음이지만, 또 지치지 않고 낼 수 있는 목소리들을 생각해보게 되네요.
다른 것도 아니고 정부조직 개편을 이렇게 날림으로 한다는건..... 정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부처를 건드리려 하다니..
크게 기대도 없지만 그래도 또 참담하네요..;;
여성가족부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여성가족부를 해체하고 성평등부로 만들지요. 그런거라면 동의해드리려 합니다.
저도 징징이님이 말씀하신 것에 동의해요. 오히려 그렇다면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없애자는 분위기로 가는 방향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특히 지금처럼 사람들의 갈등이 더 커지는 상황에서는요.
성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심지어 국가단위가 나서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언제까지나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만들 수는 없겠죠...공감하고 갑니다.
말씀처럼, "특성에 따른 격차 해소 요구가 큰 데 반해 중요한 사건들에서 논란만 증폭시키는 등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이라면 차라리 여성가족부를 강화하고 개선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싶네요....
최근의 뉴스들을 보면 참담하기만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요. 기본적인 권리이자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많이 무너지고 있네요. 앞으로도 성평등을 위해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여성가족부를 둘러싼 최근 동향을 하나하나 짚어주셔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성해주신대로 그간의 통계와 자료가 증명해도 '성차별'이라는 말에 전혀 다른 논리를 얹고 있으니 논의가 발전되지 않는 것 같아요.. 답답합니다..
"여성가족부의 ‘역사적 소명’인 성차별 해소·성평등 실현은 여전히 중요한 시대적 과제이자 헌법적 가치"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국가 성평등 정책을 전담할 ‘독립부처’ 필요,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를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에도 심히 공감이 됩니다.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말도 안되는 공약을 폐기하고, 성평등 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확대하고 심화 해야 할 것입니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해당 업무를 다른 부처에 나눠주면 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중요한 일은 전문가에게 맞기면서 전문성을 가진 부처를 없애라는건 해당 의제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 같습니다. 우선순위 운운하는건 좀...비겁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