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캠퍼스 안과 밖에서 사라지는, 그러나 존재하는 목소리들

2022.09.19

1,682
13
목소리를 모으고, 대화의 장을 열고,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시민활동플랫폼
?작은공론장 ‘버터나이프크루 그 후, 우리가 나눠야할 성평등 이야기’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글을 읽고 아래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궁금하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9/23(금) 작은공론장에서 함께 논의 할 수 있습니다.


뿌리탐사 조혜원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버터나이프크루 4기에 선정되었던, 그리고 현재는 액션크루 <그럼에도 우리는>으로 활동 중인 뿌리탐사 팀의 조혜원이라고 합니다. 

처음 발제 요청을 받고 대학의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과연 내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버터나이프크루 폐지의 피해 당사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대학 페미니스트로서, 제가 왜 이 사업을 지원하게 되었고 또 버터나이프크루 폐지로 인해 느낀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폐지 수순이 대학 내에서 우리들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양상과 얼마나 닮았는지에 대해 발언하고자 합니다. 또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전혀 무관하지 않은 일인지에 대해 저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라지는 대학 내 여성단체들을 기록하자” 라고 처음 기획서를 제출하고 버터나이프크루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 “사라지는 단체”에 우리 또한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희 뿌리탐사 팀은 대학 내에서 사라지는 목소리들을 기록하고, 캠퍼스 내의 성평등을 추구하고자 버터나이프크루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내에서, 제도권 안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가 부재하다는 감각을 대학 생활 내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8월 12일 김현숙 장관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버터나이프크루 폐지의 이유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구성원에 여성이 지나치게 많고 내가 학교에서 본 평범한 2030세대와는 차이가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평범한 2030 세대란 무엇이지? 그렇다면 나는 평범하지 않은, 정상적이지 않은, 유별난 청년이라는 건가?’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학교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청년을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들의 목소리가 지금 지워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장관의 발언으로 인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캠퍼스에 있다는 것이 더욱 여실히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대학 내 성평등의 필요성과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대학 페미니스트들은 “존재함으로써 투쟁”을 지속해 왔습니다. 여성학 전공은커녕 교양 과목조차 제대로 개설되지 않은 학교들이 무구한 가운데, 학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이 사안에 대해 성차별적 요소를 짚고 그 대안을 세우는 것은 언제나 총여학생회, 대학 페미니즘 모임들, 그리고 여성주의 단체들이었습니다. 

교육부가 파악한 학내 성폭력 신고 건수는 대학가에 미투 운동이 영향을 끼쳤던 2018년도에 182건, 2019년도에 346건으로, 비대면 학사였던 2020년도에도 반년간 94건 접수될 정도로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1]은폐되는 사건들까지 고려하면 실제 그 수는 더욱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 내 여성주의 단체들은 꾸준히 학내 성차별적 문화와 성폭력전담기구의 지위 보장, 만연한 2차 피해 등에 대해 지적해 왔습니다. 대학 본부가 공동체 내의 성차별적 조직 문화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와중에, 학내 여성주의 단체들과 대학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캠퍼스 내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성평등 활동이자 남성중심적 대학문화에 대한 견제 기구였습니다. 이들은 대학 내 성폭력 문제뿐만이 아니라 캠퍼스 내의 성 차별적인 문화 개선과 전반적인 성 인지 감수성 확립을 위해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대학 본부에서 제공하는 형식적인 교육이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처럼 학생들이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2018년도, 서울을 중심으로 대학 내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연세대, 성균관대, 동국대와 같은 학교들은 “대학은 이미 성평등해졌고 총여학생회는 성별 갈등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폐지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잇따른 대학가의 총여학생회 폐지 현상과 학내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점점 대학 페미니스트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학내 공론장에서 배제되고 마치 우리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인 것처럼 너무도 쉽고, 빠르게 단체들을 없애려는 움직임들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학사를 거치며, 대학 내 유일하게 공론장의 기능을 수행하는 학내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라는 플랫폼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났습니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 자리에서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들이 과잉 대표되며 또 다른 단체를 없애고, 그럼으로써 또 공간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 4월, 여성주의 철학논문을 쓴 페미니스트 학자와 연대하였다는 이유로 총학생회로부터 제가 속해 있던 학내 인권위원회에서 위원장 해임이라는 처분을 받고 (해임 안건이 상정된 것이었으나 사실상 해임 처분과 마찬가지였기에 자진사퇴를 하였습니다) 단체 차원의 징계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사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기구의 설립목적과 기조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는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되었습니다.[2] 중앙대 성평위 같은 경우 총여학생회의 대체 기구가 최초로 폐지되는 사건이었기에 학생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습니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바로 에브리타임의 여론만으로 단시간에 처리된 소수자 지우기 현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학생사회는 제도권 안에 속해 있고자 하면 성평등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고, 제도권 밖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자들은 절대 그들의 테이블에 끼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우리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개인과 조직들이 사라질수록 그 피해와 위험은 고스란히 다시 우리의 몫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캠퍼스 밖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선 곳이 바로 “버터나이프크루” 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공간마저 안전하지 않으며, 애초에 공간을 떠나서 우리가 목소리 낼 수 있는 기회조차 이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캠퍼스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그런 사람들을 “평범하지 않은” 일부의 사람들로 타자화하는 시각은 이번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폐지한 정치권의 시선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정치권은 캠퍼스 안에서 우리들의 존재가 지워졌던 양상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있습니다. 마치 대학가에서 “이제 캠퍼스는 더 이상 성 차별적이지 않다” 라며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던 모습과 비슷합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발 빠르게 사업을 폐지시켜버리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사라졌던 수많은 대학 내 성평등 기구들과 목소리들이 생각 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과 관련한 재학생의 대자보에 전국의 대학 페미니즘 단체들이 온라인 규탄문 총공으로써 응답한 것이 유의미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3] 캠퍼스 안과 밖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주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번 버터나이프크루 폐지 반대 서명에 연대를 표해준 전국의 99개의 단체 중에는 대학 페미니즘 단체들도 상당수를 차지하였습니다. 지속되는 캠퍼스 내의 백래시,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다소 단절된 듯 보였던 대학 페미니스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왔음을, 그리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응답해 주었던 것입니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존재하는 것 자체로 투쟁이 되는 환경 속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많은 대학 페미니즘 단체들은 새로운 원동력을 찾았을 것입니다. 버터나이프크루 폐지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잡초들과 같이 언제든 목소리 내고 응답해주는 관계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 신중섭, “[2020국감]대학 성희롱·성폭력 3년새 2배 증가…서울대 5년간 170건”, 이데일리, 2020.10.22

[2] 임재우, “‘페미니즘’ 이유로…중앙대 성평등위, ‘에타’ 익명글 9일만에 폐지”, 한겨레, 2021.10.19

[3] 장나래, “’우리 학교부터 바꾸자’ ‘인하대 대자보’ 뒤 ‘총공전’이 열렸다”, 한겨레, 2022.08.04

공유하기

이슈

성평등

구독자 231명

여학생휴게실이 졸속으로 사라진 경험이 있어요.
전체 학생들의 여론을 묻지 않고, 학생회들끼리 결정한 사항이었어요. 이후에 학내 언론기구가 여휴 폐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는 여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거든요. 그때 "여휴가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생들의 의견으로 둔갑한 것이, 버나크와 여가부 폐지에 대한 일부 커뮤니티에서의 주장이 국회의원의 목소리로 정치화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남성중심적인 과정을 깰 수 있는 더 많은 여성들과 목소리가 있다면 좋겠고, 일부 커뮤니티의 혐오를 선동하는 의견이 과잉 대표되고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학교 그리고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빵과장미 비회원

제가 대학생일 때랑 너무 달라진 게 없는 학생사회의 성평등 문제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다른 한편에는 그 자리를 계속 지켜주고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혐오 세력으로부터 우리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대의 힘으로 서로에게 기댈 수 있기를 바라면. 우리 지치지 말아요. 이기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누구를 위한 교육이고 누구를 위한 대학인지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수자에게 대학을 보내주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식의 대응을 보여주는 대학과 총학생회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두가 마땅한 것을 마땅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혜원 비회원

점점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졸업하면 그만" 이라는 감성이 대학사회에 만연해지는것 같아요. 그치만 우리가 있는 공간에서 분명히 존재하는 문제임을 모두가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기위해 목소리 내고 배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특정 누군가만 이야기하는것이 아닌, 교수와 교직원, 학생 모두 성인지감수성을 갖춰야한다고 생각해요. 성평등이 디폴트가 되는 대학사회를 꿈꾸며??

지속되는 활동이 더 나은 현실을 만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기록하는 작업이라니 멋져요!! 대학의 많은 분들이 백래시들 속에서 분투 중이실 터인데, 동료들과 스스로를 지키며 함께 으쌰하시길! 연대합니다.

 

"캠퍼스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그런 사람들을 “평범하지 않은” 일부의 사람들로 타자화하는 시각" --> 이 시각으로 인해 '캠퍼스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본인들조차 혼란스럽고 중심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제 경험담입니다! ㅠㅠ) 정부가 나서서 이런 시각을 부추기니 참담합니다.

예전에는 성평등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질 곳으로 캠퍼스를 생각했었는데...아이러니하고 참 착잡하기도 하네요. "존재하는" 목소리를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10여년 전부터 들려오던 총여 폐지의 목소리, 잊혀져가는 대학가 미투, 대학가에서 반-여성주의 정서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라지는 대학 내 페미니즘 단체를 기록하자"는 포부로 시작한 사업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고 동시에 활동의 의의를 다시금 확인합니다. 곧 있을 공론장에서 더 많은 이야기 들려주세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라는 말이 공감되네요. 이런 이야기들이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멀리 퍼지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사회가 점점 더 다양한 논의를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화살이 대학 내 페미니즘 단체에게 쏠리는 것 같구요. 안전하게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합니다.

대학 내의 다양한 성평등 활동들이 응원 받고, 또 잘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