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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촌초 회의 참석 이규태 회장… “남의 집 쳐들어온 것”[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6화]
"남의 집에 쳐들어온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누가 남의 집에 쳐들어 왔다는 걸까. 지난 15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행정사무감사(종합감사)에서 정효영 서울시교육청 교육행정국장이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을 겨냥해 한 말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13일 이규태 회장이 우촌초등학교(서울 성북구 소재) 운영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보도했다. 이 회장은 지난 3일 우촌초 교장이 주재한 부장급 긴급회의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안건은 사학수당 지급 문제. 학교가 사학수당을 교원 전원에게 주지 않겠다고 결정한 뒤, 내부 불만이 터져나온 터였다. 사학수당 지급 등 예산 집행은 학교장의 권한이다. 그런데 아무 권한도 없는 전 이사장 이규태 회장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회의 이후, 사학수당은 공익제보자인 이양기(58) 교사를 제외한 교원들에게 전부 지급됐다.(관련기사 : <‘횡령 혐의’ 이규태 전 이사장, 우촌초 운영 개입 의혹>) 서울시의회 이소라 의원(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이 회장의 우촌초 운영 부당개입 문제를 지적했다. “우촌초는 (이규태) 전 이사장의 손을 떠난 지 오래됐는데, 계속 학교에 출입하면서 운영 관련 부당개입을 한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 의원 말처럼, 이규태 회장은 우촌초 운영에 손댈 권한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이 회장은 2001년 우촌초를 인수한 후, 2010년까지 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하지만 2015년 회계 부정 등의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됐다. 심지어 이 회장은 2021년부터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와 관련해 교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다. “(이 회장의 우촌초 회의 참석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운영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이 회장은 학교) 주인이 아니라 그냥 ‘개인’입니다.”(정효영 서울시교육청 교육행정국장) 서울시교육청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정 국장은 “감사실에서 인지해 민원 조사에 들어간 상황”이라며, “단언컨대 교육청에서 (이 회장이 우촌초 운영에 개입하지) 못하게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촌초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운영하고 있다. 일광학원 이사회는 그동안 이 회장의 측근들로 구성돼 왔다. 하지만 2020년 서울시교육청은 이사회 임원 전원의 취임 승인을 취소했다. 일광학원은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9월 10일에야 일광학원의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정상화를 위해 지난 10월 일광학원 임시이사 8명을 선임했다. 학교 정상화에 속도를 높여야 할 시점에, 여전히 이 회장이 학교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과연 임시이사회가 의미 있게 운영될지 의문이라는 이 의원의 우려에, 정 국장은 “아직 학교 정상화 시작 단계이니 좀 더 지켜봐달라”며 “그런 일 없도록 철저히 지도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날 종합감사에는 우촌초 최은석 전 교장(55)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2019년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들 중 한 명. 최 전 교장은 공익제보 이후 학교에서 쫓겨나 지인의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광주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 지금은 인천으로 학교를 옮겨 일하고 있다. 우촌초는 서울시교육청과 소송 중이라는 핑계로, 2021년부터 계속 감사를 거부해왔다. 최 전 교장은 지난달 16~22일 성북강북지원청이 4년 만에 진행한 우촌초 종합감사에 대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이규태 회장 측근 위주로 (학교 행정실이) 구성돼 있기 때문에 종합감사도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촌초에는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로 이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직원들이 일부 근무하고 있다. 그들은 우촌초 행정업무와 학교법인 업무 담당자다. 최 전 교장은 우촌초 감사를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 우촌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공익제보자 또는 전임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시민감사관을 감사TF 구성원으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우촌초는 감사 자료 제출을 잘 안 하고 파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민감사관이나, 실제로 공익제보자 중 행정실에 근무했던 분들이 모든 일을 소상히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설세훈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은 “학교 운영과 관련해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실질적인 감사TF를 구성해 학교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답했다. 최 전 교장은 서울시의회에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바로 구조금 기한 연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는 공익제보자에게 3년간 구조금을 지급한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도 3년간 구조금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최 전 교장, 교직원 유현주 씨, 박선유 씨는 구조금이 끊겨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 전 교장은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유현주 씨와 박선유 씨는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 마트 캐셔, 택배 물류센터 일 등으로 5년째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저희가 (공익제보를 한 지) 5년 가까이 되고 있는데, 실제로 3년 동안 구조금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연장이 안 되기 때문에 서울시 조례가 개정돼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가 혹시나 또 생긴다면, 공익제보자를 위한 구조금 제도가 (복직) 소송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소라 의원은 “의회 안에서 함께 논의하고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최은석 전 교장 말고도, 행정사무감사에 출석 요구를 받은 증인은 두 명 더 있었다. 바로 이규태 회장과 우촌초 A 교장. 두 사람은 지난 4일 서울시의회에 ‘불출석’을 통보했다. “공익 제보된 내용으로 형사 재판중이므로 참석하여도 진술을 할 수 없기에 부득이 불출석합니다.”(이규태 회장 불출석 사유서) “2024. 8.경 학교장으로 부임하여 업무 파악 중에 있으며 특히 공익제보(2019년)건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하는 관계로 부득이 불출석합니다.”(우촌초 A 교장 불출석 사유서) ‘서울특별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 요구를 받은 증인이 출석하지 않거나 선서 또는 증언을 거부한 경우에는 300만 원 이상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 의원은 “(이 회장과 A 교장의 불출석 사유가) 정당한 사유라고 볼 수 없다”며 “이런 식으로 불출석 통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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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제3 외국어로 수어는 어떠세요
제3 외국어로 수어는 어떠세요 (2024-11-18) 구본순 | 농·난청문화예술활동 강사 농·난청문화예술활동 강사들이 공공수어도서관에서 농·난청인들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 제공 강의실 문을 열고 농인이 들어온다. 나는 두 주먹을 가볍게 쥐고 가슴 앞에서 아래쪽으로 살짝 내린다. ‘안녕하세요’라는 수어(手語)다. 바로 이어 두 손을 약간 구부려 손끝이 양쪽 가슴에 향하도록 하고 상하로 엇갈리게 두어번 움직인다. ‘반갑다’는 인사다. 오늘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나만의 동화 쓰기’ 워크숍이 있는 날이다. 나는 농·청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청각장애인은 수어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청력에 손실이 있는 모든 사람을 일컫고, 농인(聾人)은 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여 의사소통하는 사람을 말한다. 2016년 2월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수어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로 인정되었다. 농인들도 모든 생활영역에서 자신의 모국어인 수어로 삶을 영위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예술교육이나 강의가 청인(聽人)에 의해 진행된다. 수어나 문자(속기록) 통역도 찾아보기 힘들고, 담당 기관에 통역을 요청해도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예산도 책정되지 않았고,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게다가 수어통역사가 투입된다 해도 해당 분야 전문가는 아니기에 강의의 내용과 뉘앙스를 온전히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한 요즘, 음성을 인식해 실시간 문자 자막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도 있지만, 수어에 익숙한 농인들은 빠르게 지나가는 한국어 자막을 다 이해하기 힘들다. 수어와 한국어는 언어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에게 한국어는 제2 외국어와 같다. 광고 나는 학창 시절부터 수어가 좋았다. 이미지로 그려지는 언어에 매력을 느꼈고 농인과 결혼했다. 농인들을 만나면서 치유의 에너지가 있는 예술을 나누고 싶었고, ‘풍경놀이터’라는 장애문화예술교육단체를 만들었다. 내가 경험한 예술을 농인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서 나는 음성 언어와 수어를 동시에 사용하여 강의를 진행한다. 입술 모양이나 불빛도 누군가에겐 언어가 될 수 있다. 나는 “여러분 수업 시작할게요. 저를 봐주세요” 말과 함께 강의실을 밝히고 있는 형광등 스위치를 껐다 켠다. 소리가 아닌 눈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농인들에게 빛을 깜박여 수업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와 ‘수업’과 ‘시작’이란 수어 표현을 조합해 말을 건다. 강의할 때는 한눈에 들어오는 시각적 정보를 사용하고, 장문이 아닌 쉽고 명료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핵심 내용을 전할 때는 위아래 입술을 꾹 다물고 손과 팔에 힘을 주어 수어로 말한다. 사례를 제시할 때는 마치 동화구연을 하는 사람 같다.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수어 동작을 크게 한다. 비언어적 표현인 ‘비수지 기호’(非手指記號, non-manual signals)는 의미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무섭다’를 말할 때는 양쪽 어깨를 구부린다. 의문문의 ‘물음표’는 눈썹을 올리고 눈을 크게 하고 턱을 당겨야 한다. 무표정으로 ‘즐겁다’를 할 때와 치아를 보이며 입꼬리를 위로 올려 ‘즐겁다’를 표현할 때, 감정의 정도는 다르게 표현된다. 수어는 온몸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투명한 언어다. 워크숍을 진행할 때면 사소한 활동 하나에도 강의실은 복작복작한다. 강사가 음성언어와 수어로 방법을 설명하고도, 수어통역사와 자원봉사자들은 부지런히 움직여 ‘지역방송’에 대응한다. 수강생별 맞춤형 수업이랄까. 글을 모르는 농인에게는 수어를 종이에 적어서 소통하고, 수어를 모르는 난청 어른에게는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다시 반복하여 말한다. 청각인지장애가 있는 이에게는 눈높이를 맞추어 쭈그리고 앉아 대화한다. 단일하지 않은 접근 과정이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내뱉지 않는다. 자신이 할 일을 다 하고 서로 기다려줄 뿐이다. 이런 수업 풍경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다. 얼른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고 이 광경을 찍어둔다. 서로를 존중하며 예술을 나누는 장면이 우리가 사는 일상 곳곳으로 스미면 좋겠다. 소리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다름을 기다릴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제2, 제3 외국어로 청인들이 ‘수어’를 배워나가서, 수어를 가늘고 얇게 아는 사람들이 가득했으면 한다. 더 커지고 더 깊어지는 예술의 ‘품’을 꿈꾼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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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의 빠른 배송 전쟁,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결말 (feat. 네이버 지금배송)
네이버가 내년 상반기 ‘지금배송’ 서비스 도입을 예고했다. 직관적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문 후 1시간 이내 도착을 담보하는 배송 시스템이다. 이는 사실상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의 경쟁을 예고한 것이며, 이로써 본격적으로 이커머스 업계의 ‘더 빨리 배송’ 전쟁이 시작되었다.  빠름이 강요되는 온라인 쇼핑 인터넷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2~3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지금까지의 평균이다. 이 공식은 이제 과거가 될 것이다. 이커머스 업계의 ‘빠른 배송 전쟁’이 임박한 이 순간,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왜 우리에게는 ‘빠른 배송’이 필요할까. ‘빠름’은 편리하다. 물건을 구매하고 당장 몇 시간 안에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현된다면 이는 단연 ‘혁신’처럼 느껴질 것이다. 빠른 배송이 가능한 상품의 종류는 확장될 것이고 우리는 점점 빠른 배송에 익숙해질 것이다. 신선식품, 음식, 다양한 공산품 외에 가전제품까지 빠른 배송의 영역으로 들어서니 이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구매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질 것이다.  필자 주변에서 쿠팡의 ‘와우 회원’으로서 ‘로켓배송’을 극찬하는 이들은 주로 부모나 직장인이다. 당장 내일 아이의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구매해야 할 때, 회사에서 급하게 어떤 물품을 주문해야 할 때 ‘빠른 배송’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편리한 로켓배송 서비스에, ‘쿠팡플레이’, ‘쿠팡이츠 무료배달 서비스’ 등 쿠팡이 와우회원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까지 덤으로 딸려오니 많은 이들이 쿠팡을 필요로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빠름’은 ‘필요’가 아니다. ‘선호’의 문제일 뿐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편리함 뒤에 숨겨진, 그러나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우리 아빠가 로켓배송 연료가 됐대’. 쿠팡CLS 택배노동자 故정슬기 씨의 어린 자녀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친에게 한 이야기다. 故정슬기 씨는 지난 5월, 쿠팡CLS의 하청 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택배기사로 쿠팡 물품을 전담배송했다. 고인은 평소 하루 평균 10시간 30분 주 6일 노동을 수행했다. 택배노동 일을 시작한지 14개월 만에 결국 과로사로 죽음을 맞이했다. 쿠팡은 ‘하청 대리점’ 문제이지, 계약과 업무 지시에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다. 이에 유족은 CLS직원의 업무지시에 ‘개처럼 뛰고 있다’는 고인의 카톡 내용을 공개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터질 때 하청 대리점의 문제라며 발빼는 것은 쿠팡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최근 MBC가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2024년 7월과 8월 2개월 동안에만 101명의 노동자가 119에 실려갔다. 폭염으로 열악한 쿠팡 물류센터 노동환경 속에서 실신, 어지럼증, 마비 경련, 호흡곤란, 온열질환 등. 1년간 출동기록을 살펴보면 256명의 노동자가 119에 실려갔고, 심정지 위급 환자만 7명이다. 공식 기록이 이정도면, 쿠팡이 입막음하며 기록되지 않은 과로로 쓰러지는 노동자의 수는 더욱 많을 것이다.  ‘쿠팡의 택배노동자가 로켓배송의 연료가 되었다’는 끔찍한 이야기는 현재진행중이다. 쿠팡이 아무리 부정해도 이것이 현실이다. 사실 많은 시민들은 이미 쿠팡의 열악한 택배노동 환경과 반복되는 과로사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편리를 추구하는 선택은 언제나 지표가 되고, 기업 경쟁은 이 구조를 과열시킨다.  이용자가 원하는 것은 ‘죄책감’ 대신 더 나은 선택지 최근 CJ 대한통운 또한 ‘주 7일 배송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쿠팡의 빠른 배송 시스템과 경쟁하기 위해 내놓은 절박한 전략이다. CJ 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은 극심한 과로사가 우려된다고, 이 방침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추가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당한 이야기다. 빠른 배송의 본보기인 쿠팡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와중에 ‘더 빨리’, ‘더 많은’ 배송 서비스가 출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빠른 배송’이 배달노동자의 과로사와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쿠팡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빠른 배송을 위한 인력을 늘리고 산재처리 등 노동자 지원에 투자를 하는 대신, 이용자에게 죄책감을 떠안기는 방향을 선택했다. 쿠팡과 경쟁하는 기업들은 쿠팡의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강요된 서비스 속에서 이용자의 선택은 점점 무거워지고, 요금은 오른다.  기업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전략을 세우지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우리 이용자의 몫이다. 쿠팡은 한국 사회에 전무한 시스템으로서의 로켓배송을 앞세웠다.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같은 시스템을 끼워넣고 유료회원 멤버십 가격을 4,89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했다. 네이버 또한 ‘지금배송’ 시스템 출시를 앞드고 유료회원 확보를 위해 오는 26일부터 ‘네이버플러스’ 가입자에게 넷플릭스 구독권을 제공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쿠팡과 같이 이용자 확보를 위한 출혈 경쟁 후, 가격 인상을 통해 손해를 메꾸려는 전략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빠른 게 능사가 아니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듯하면서 선택을 강요하고 야금야금 비용을 늘리는 것도 결코 이용자 혜택이 아니다. 이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편리할  뿐만 아니라 안전하고 인간적인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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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가제트와 실뜨기 하는 세계 - AI의 무기화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2020년 11월 말, 이란의 핵과학자 중 최고 권위자가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모센 파크리자데, 가족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그의 차 앞뒤로 경호차량이 수행했는데, 그의 집을 얼마 앞두지 않은 곳에서 갑작스러운 총격이 시작되었다. 총 15발의 실탄이 발사되었고, 그 중 3발이 정확히 그의 얼굴을 조준하여 발사되었다. 모센 파크리자데는 그렇게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어떤 범인도 발견되지 않았다. 총격이 발생한 지역 주변을 비추는 CCTV도 모두 먹통이어서 그 당시 정황에 대한 영상기록은 남지 않았다. 현장에서 발견된 것은 주차되어 있던 파란색 닛산 트럭과 그 트럭에 적재된 건축 자재 사이에 있던 원격 제어 로봇이었다. 이 로봇에는 저격용 기관총이 달려있었다. 이 트럭은 총격이 이루어진 후 자동으로 폭파되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자동으로 폭파되는 트럭 왜 익숙하지? 어릴 때 보던  중에 형사 가제트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팔이 길어지는 형사 가제트에게 미션 수행을 안내하는 쪽지가 비밀리에 도착하는데 그 쪽지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면 자동폭파된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사 깨닫게 된 것은 그 형사 가제트도 기계였다는 것이다.  2021년 아마존에서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인간-기계 팀: 세상을 혁신할 인간과 인공지능의 시너지 창출 방법(The Human-Machine Team: How to Create Synergy Between Human and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Y.S.준장’이라는 필명의 저자는 현직 유닛 8200의 사령관으로 알려졌다. 유닛 8200(Unit 8200)은 이스라엘 방위군의 정보기관의 이름이다.  유닛 8200의 주된 업무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인데, 감시하는 대상은 ‘대중’, 즉, 불특정 다수를 의미한다. 유닛 8200은 모든 통신을 감청하고 개인과 집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이런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우림(Urim) 기지’, 네게브 사막 한 가운데 있는 군사기지이다. 우림 기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신호정보 수집기지”로 알려져 있다.* *엔터니 로엔스틴 지음, 유강인 옮김, <팔레스타인 실험실>, 소소의 책,  p.125.  Y.S.준장은 그의 책에서 미래의 국가안보는 “인간과 기계가 완벽하게 한 몸을 이루어 ‘국가안보의 위협과 도전’을 해결하고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며, 인류를 위한 성장 엔진 노릇’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미래, 이미 그 미래는 올지도 모르는 미래가 아니라 곧 오게 될 미래로 호명되고 있다. 미래는 언제 도착하여 현재가 되는가?  모센 파크리자데의 죽음은 완벽한 기계와 인간의 결합인가 아닌가?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검색의 수고와 각종 다양한 문서의 초안작성을 요구할 수 있고, 인공지능이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초안을 몇 초만에 내어주는 세상에서 기계와 인간의 결합은 이미 진행되었고 ‘완벽성’을 기하는 것만 남은 것일까?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인간의 미래인가, 미래여야 하는가, 미래가 아닐 수도 있는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는 이 사건은 하나의 고정된 사건이 아니다. 계속해서 이루어져왔으며 이루어져갈 무엇으로써 경계를 흐리고 또 흐리는 무엇이다. 토머스 필벡(T. Philbeck)은 포스트 휴머니즘을 혼종적이고 유동적이며 중층적인 인간 정체성을 규명하여, 근대 휴머니즘을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틀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벡 토마스(2021), <인간과 포스트휴머니즘>,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모센 파크리자데는 원격 제어 로봇에 의해 사망했다. 이것은 기계에 의한 죽음인가, 인간에 의한 죽음인가? 모센 파크리자데의 죽음보다 조금 앞선 2020년 5월에는 리비아 내전 중 튀르키예가 공급한 AI 드론이 반군 세력을 추격하면서 도망치는 군인들을 자폭 공격하여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계 뒤의 인간이 기계를 제어하여 표적을 암살한 이 사건은 기계와 인간의 어떤 결합인가?  2024년 초, 우크라이나 118기계화여단은 새로운 인공지능 유도 드론의 시험비행을 진행했다. 테스트 대상은 러시아 병사였고 즉시 사망했다. 이 드론은 인간에 의해 조종되지 않았다. 스스로 표적을 찾고 표적을 향해 이동했으며 그 표적을 살해하기 위해 자폭했다.  2023년 1월, 미국 국방부는자율무기체계를 “한 번 작동하면 운영자의 추가 개입 없이 표적을 스스로 선정하고 교전할 수 있는 무기체계”로 정의하면서 자율무기가 인간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놓았다.* ‘최소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사실은 기본값이며 그 인간의도를 벗어난 기계의 행동이 최대화될 수 있으니, 그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이 ‘최소화(minimize)’라는 것은 마치 어떤 안전장치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으나 결국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귀결될 더 많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DoD Directive 3000.09 Autonomy in Weapon Systems  2024년 9월, 서울에서 인공지능의 책임있는 군사적 이용에 대한 고위급회의(REsponsible AI in the Military domain Summit 2024)라는 것이 열렸다. REAIM 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 회의는 한국 정부가 주최한 행사로 네덜란드, 싱가포르, 케냐, 영국이 공동주최국으로 참여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가는지 듣고자 동료들과 함께 공개된 회의들에 참여했다. AI가 국제 안보 환경, 특히 분쟁 역학과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에 대한 논의들이 오고갔고, AI의 군사적인 이용이 가져올 혜택과 위험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지만 복잡하고 고도화된 기술영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받았던 인상은 비교적 간단하다. 윤리에 대한 규제를 얼른 만들고 기술의 진보에 집중하자.  한국과 케냐 등 공동주최국의 국방부장관들과 군수산업체 록히드마틴의 데이터 AI 최고책임자, 국내 군수산업체 한화시스템 우주연구소의 부소장은 라운드테이블에서 인공지능의 군사적이용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모두가 인공지능이 가져올 전장의 변화가 자국의 군인들의 피해를 줄여줄 것이며, 자원의 낭비를 줄여줄 것이고, 예측능력을 높여 국가안보에 기여할 것이라는 방향성에서 이야기했다. 유일하게 미래학 교수 한 사람이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하는 것 같았지만 그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긴 이야기 끝에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 해결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고.  Y.S.준장은 인간과 기계의 완벽한 결합으로 더 단단해질 국가안보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그리하여 더욱 단단해질 그 국가안보란 대체 무엇인가? 그 국가안보를 이유로 이미 수없이 많은 존재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에서 만들고자 하는 ‘이후(post)의 세계’는  무엇인가? 내가 참여했던 REAIM 세션 중 하나에서는 인공지능의 편견에 대해 우려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대안은 ‘교육’이었다. 즉, 인공지능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어떤 데이터를 인공지능에게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므로 그 인공지능을 다루는 인간들의 편견을 다루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토론 시간에 나는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교육’은 마술봉이 아니라고(Education is not a magicstick, we all know that).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교육’에 모든 것을 떠넘기지 않으면 인공지능의 군사적 이용에 속도를 낼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인류는 또 한 번의 멍청한 무책임의 순간들을 목도하고 있다. AI 유도 드론을 두고 어떤 이들은 오펜하이머 모멘트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펜하이머는 그래서 인류에게 무엇을 남겼지? 그는 정말 멈출 수 없었을까? 그도 멈출 수 있는 순간이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인류는 또 한 번 멈출 수 있음에도 멈추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실험실이라고 불린다. 매일 수백수천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그 곳을 실험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계에 나는 살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완벽한 결합을 꿈꾸며 부수적 피해를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도나 해러웨이의 문장들을 선물하고 싶다.* 우리는 보편성과 개별성이 아니라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연결을 가지고 세계들을 결합하고 변형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도나 해러웨이는 이 지구위 존재들의 삶을 ‘실뜨기’라고 보았다. 서로 얽혀있는 직물, 하나가 풀리면 같이 풀려나가는 직물. 그렇기에 “인간들은 함께 비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풀리는 직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혼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울 수 없고, 그래서 사유할 수 없다.” 비통함이 사라지는 세계, 이제는 이 실뜨기에 기계를 초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기계와 함께 실뜨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인간다움은 무엇으로 이야기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깊이 사유하지 않고 너무 빨리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서 보고 싶은 세계는 대체 무엇인가?  *도나 해러웨이 지음, 최유미 옮김(2021),  <트러블과 함께하기>, 마농지     / 문아영  2012년 9월, 평화와 교육, 평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피스모모(PEACEMOMO)를 동료들과 함께 창립했다. 사회혁신의 궁극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 그치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본과 소비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나빠지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하는 사람, 실천적 사유에 관심이 많으며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고 북한산이 보이는 집에서 새촘, 우아, 레오, 라라,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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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금까지 이런 안보위기는 없었다🕊️
폴라리스 항해도 vol. 120 북한과의 갈등을 실제로 일상에서 피부로 느낀적은 올해가 처음일 것입니다. 그 전에는 뉴스 보도로만 접했다면, 요즘은 오물풍선 낙하를 알리는 재난안내문자를 받고 흠칫 놀라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꽤 오랫동안 한반도에 공기처럼 퍼진 불안에 익숙했는데, 최근 들어 이 불안이 국가 원수들의 입에서 실체적인 위협으로 발화될 때 저는 공포를 느낍니다. 보수, 진보 그 누구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 남북 관계, 과연 해결책은 있을까요. 북한은 실질적으로 관계 단절을 선포했습니다. 최근 한국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구축하며 북한 억제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죠. 사실상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미국의 공조를 받는 ‘힘에 의한 평화’ 밖에 없다는 의견이 팽배하고요. 이조차도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게다가 북한의 도발을 제어할 국제적 규범은 유명무실해졌고요. 한국이 자체적으로 정세 악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북과의 대화일텐데, 현재 한반도 평화 안보와 관련된 대화 창구가 모두 교착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너무 회의적인 이야기만 했나요? 그래서 이번 레터에서는 북한과의 관계가 최근에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살펴봅니다. 찬찬히 원인들을 들여다보면, 남북관계에 대한 실마리까진 아니더라도 뾰족한 고민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요? 현 안보상황에 무력하게 느껴지더라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마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레터를 읽으면서 구독자님에게 평화란 어떤 의미인지 천천히 떠올려도 좋겠습니다. 화해 협력과 평화 정착을 바탕으로 두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통일 기반을 조성한다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기 위한 역대 민주 정부의 해법은 물거품이 되었다.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고 다시 출발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시사IN> #1 북한이 달라졌다 남북 관계는 일정 주기가 있는 것처럼 갈등과 회복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여느 때보다도 남북 간 긴장이 높은 것 같습니다. 오물 풍선, 대남방송, 경의•동해선 도로 및 철도 일부 폭파, 반복되는 미사일 발사만 보더라도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심지어는 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이 이뤄지기도 했고요. 대체 무엇이 달라졌기에 남북 관계의 긴장이 극에 치닫게 됐을까요? 과거를 되짚어보면, 북한의 도발 행위는 특정 시기에 예측 가능한 정도로 이뤄져 왔습니다. 한미 군사훈련이나 한국과 미국의 굵직한 선거 직전 같은 때죠. 목적은 늘 뚜렷해 보였습니다. 한반도 내 미군 주둔과 한미연합훈련에 항의하는 것, 선거 시기에 존재감을 드러내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것. 즉, 제재에 반발하고 존재감을 과시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것입니다. 지난 1년은 달랐습니다. 작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을 ‘전쟁 중인 두 교전국’으로 칭했고, 지난 10월에는 ‘공화국 헌법에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으로 개정‘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을 통해 밝혔습니다. 게다가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며 북한이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죠. 전문가들은 북한의 생존 전략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이전의 북한은 제한적으로나마 외부와 접촉하며 협상에 나서려 했습니다. 주기적인 도발을 통해 요구사항을 드러내 온 것부터 결국 ‘대외관계’를 기반해 자국 목표를 일부 실현하려 했던 것이죠. 이제는 외부와의 협상보다는 ‘자력으로’ 국가를 번영시키고자 합니다. 국제 질서에서 배제되더라도 독자적인 국가 운영력과 군사력을 갖추려는 것입니다. 노선을 튼 결정적 계기는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입니다. 당시 회담은 폐쇄적인 대외전략을 취해 온 북한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이어 외부와 대화하려는 시도였는데요. 협상에 실패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도력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는 겁니다. 이런 형세에서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까지 했습니다. 서방이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제재하고 있기에, 파병은 북한의 입장에서도 ‘도박’이라는 평가가 많은데요. 왜 우리는 이 파병에 특히 주목하는 걸까요?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 #2 파병이 진짜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다? 북한의 러-우 전쟁 파병은 국제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동시에 한반도 안보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제공하는 위험한 행보입니다. 유엔 헌장이라는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이기도 한데요. 게다가 지금은 서방국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금융, 수출, 에너지 등 많은 영역에서 강력한 대러시아 제재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을 결정한 것은 국제사회를 적으로 돌리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먼저 북한의 내부 상황을 보겠습니다.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습니다. 체제와 정권의 정당성이 흔들리고 있죠. 이런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치 자금이 필요한데요. 군사 1만 명 파병의 대가로 북한이 받게 될 돈은 1년 기준 약 2.4억 달러(약 3280억 원)로 추정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파병 군인들의 월급을 활용해 단기간이나마 주민들을 만족시킬 물자를 들여올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북한에게 파병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자, 체제 안정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돈’은 부차적인 목적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북한이 추후 필요한 군사기술을 지원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파병을 택했다는 건데요. 트럼프와의 하노이 북-미 회담이 빈손으로 끝나면서 다른 방식으로 생존할 길을 찾은게 러시아와의 밀착이란 겁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북-러 관계가 혈맹으로 진화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김정은은 지금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어질 가능성이 전혀 안 보이니 이번 러시아 파병으로 에너지·식량 문제 해결과 첨단 군사기술 획득, 실전 경험 습득 등을 통한 군사동맹 강화 등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당장의 군사력 강화보다는 ‘전략적인 진영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북한이 한국과의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파병을 택했다는 시선도 있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한반도 안보에 빨간 불이 켜진 건 사실입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전쟁시 군사 지원’을 명시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개입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 된건데요.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안보 정책을 펼쳤던 정부의 노선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해보입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상황에 또다른 불확실성으로 무장한 트럼프 2기 행정부도 맞이하게 됐습니다. 트럼프 2기의 등장은 우리 안보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까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 ⓒReuters #3 트럼프 2.0과 김정은 미국 대통령 선거의 승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돌아갔습니다. 취임식은 내년 1월 20일. 각국 정상들이 앞다퉈 트럼프 당선인에게 신속하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식 전, 이달 중순으로 트럼프와의 만남을 성사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고요. 다시 돌아온 트럼프 2기.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해온 외교는 구멍이 뚫릴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트럼프라는 변수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한미 관계에서 떠오르는 쟁점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입니다. 미국은 분담금을 협상의 지랫대로 삼아 안보와 경제 이슈까지 엮을 수도 있고요. 북한의 경우, 트럼프는 유세 현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분을 드러내며 두 사람의 관계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북한의 입장 또한 미국과의 대화를 꺼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전문가들은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있습니다. 이에 한국이 트럼프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관계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자, 그러면 한국은 어떤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까요? BBC 코리아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재집권 시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크게 3가지의 시나리오를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1. 북미 비핵화 협상은 가능한가: 아직까지는 가능성 낮음 5년 전과 달라진 점은 트럼프에게 북한은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대선 공약에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방증합니다. 북한 또한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러-우 전쟁 파병, 화성-19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핵 기술을 고도화시켰고, 핵을 보유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죠. 현재 미국에서도 ‘비핵화’보다 ‘비확산’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인가: 한국과 주변국들의 역할이 중요 트럼프가 바이든이 체결한 다자 군사협력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연 트럼프는 바이든과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북한 핵 확장억제의 노선을 따라갈지 (그렇게 된다면 협상에서 한국에게 핵우산 비용을 더 청구할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북한 핵동결,’ 사실상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을 하는 방향으로 기울지는 두고봐야 알 수 있습니다. ‘비핵화냐, 핵우산이냐, 혹은 핵 동결이냐’의 문제는 바이든 정권때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비핵화를 지속적으로 고수하고 있고요. 만약 트럼프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다면 결국 한국도 자체적인 핵무장을 해야하지 않나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더 이상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게 핵무장 찬성론의 골자입니다. 3. 핵무장이 방법일까? 다만, 현실적으로 핵무장은 ‘시기상조’ 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가능하려면 원자력협정 개정, 핵확산방지조약 탈퇴 등 거쳐야하는 관문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편,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이 북미대화에 끼어들어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최근 11월 1일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담기기도 했고요. 현재 한미 동맹관계는 아직까지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로도 읽힙니다.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제 3의 진영을 만들자는 일본 이시바 총리의 ‘아시아판 나토’ 전략도 있습니다. 아시아에도 집단안보체를 결성해 중국과 북한의 무력 공격 위협에 대응하자는 것인데, 어찌됐건 이 모든 전략들의 향방은 미국의 태도 변화에 좌지우지 되겠습니다. 최근 ‘핵균형’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 부쩍 자주 들립니다. 이 논리가 성립되려면 먼저 평화란 무엇인지, 국제사회가 합의한 평화의 기준과 정의를 살펴보아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이론과 현실과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에디터레터에서 평화에 대해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 ⓒPixabay 에디터가 남긴 편지전쟁은 평화의 반대일까요, 평화의 수단일까요? 국제정치학의 오랜 난제라지만,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 죽어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질문은 기만으로 들립니다. 전쟁을 통해 이루는 평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평화냐고 묻게 됩니다.하지만 평화협상도, 국제사회의 제재도 힘을 잃은 지금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죠.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군사학의 고전을 펴낸 베게티우스의 말입니다. 강대강. 힘대힘. 공포의 균형. 그게 정말 우리가 가야 할 길일까요? 평화란 무엇인지 생각할수록 답답해졌습니다. 그래서 올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니혼히단쿄(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에 대한 글을 찾아 나섰습니다. 혹시 여기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하나씩 읽었습니다. 그중 가장 울림이 있었던, 칼럼의 일부를 공유합니다.“이스라엘의 국가 폭력에 대한 비판이 하마스의 테러리즘을 정당화한다는 작금의 논리는 제로섬게임의 규칙일 뿐이다. 냉전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어느 한 편에 대한 비판이 다른 한 편을 정당화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제로섬게임은 냉전의 게임 규칙이 됐다.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북한의 붉은 세습왕조에 대한 비판이 남한의 국가 폭력을 정당화한다거나 남한의 개발독재에 대한 비판이 북한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는 식의 진영 논리가 그렇다. 지성사의 관점에서 볼 때, 냉전의 가장 큰 폐해는 우리의 의식 세계를 제로섬게임의 규칙에 가두어 두었다는 데 있다.“칼럼의 필자는 노벨 평화상이 ‘임자를 찾았다‘고 하면서도, 니혼히단쿄의 ‘기억 정책’(원폭 희생자와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자를 연결하는 것)이 어디로 튈 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본 우익이 아우슈비츠의 유대인과 원폭 희생자를 동일시해 침략과 가해의 역사를 지우려 하듯이, 복잡하게 얽힌 전쟁의 피해자를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일은 많은 맥락을 소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의식이 제로섬게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과거를 반성하는 일도, 현재를 인지하는 일도, 미래의 평화를 그리는 일도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전쟁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제로섬게임이 지배하는 의식 세계에 존재합니다.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정말 전쟁을 대비해야 할까요? 2024. 11. 18.에디터 모래🏖️ 드림 만든 사람들: 콜리🥦, 부기🐢, 산호🐠,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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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자의 일 - AI디지털교과서 도입?!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출현은 지식의 습득과 전수를 기본 줄기로 하던 전통적 학습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은 1980년 이전의 규칙 기반 시스템, 그 이후 신경망과 딥러닝의 시기를 거쳐 2010년부터는 대규모 언어 모델에 따른 생성형 AI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AI 디지털 교과서’는 2025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 학습 지원 도구’이자 ‘똑똑한 보조교사’로 기능할 것이라 말한다. 인공지능이 학생의 학습 상황을 분석해서 교사에게 알려주면, 교사는 학생의 특성을 고려하여 맞춤지도를 할 수 있고, 학생은 자신의 흥미에 맞는 콘텐츠를 선택하여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현장 교원들의 반발이 크다. 교원들은 AI 디지털 교과서 사업을 중단하거나 최소한 적용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AI 디지털 교과서가 교육부의 설명과는 달리 학습자의 집중력, 사고력 등 학습 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모든 학생이 디지털 단말기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기기 의존 현상, 눈 건강 악화, 디지털 중독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사용료 과금으로 인한 비용 발생, 개인정보 유출 등 보안 문제, 학습자원의 상업화 문제 역시 반대 의견의 논거 중 하나이다. ‘불안 세대(The Anxious Generation)’를 쓴 조너선 하이트는 이른 나이부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정신 건강 문제와 현실 세계에 대한 부적응으로 인하여 사회적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6세 이전에는 스마트 폰과 소셜 미디어의 사용을 금지’하자고 제안한다.  지금은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자는 교육부와 이에 반대하는 교원들 간의 주장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도입을 강행한다는 교육부의 정책 추진 의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문제에 대한 지적이 첨예하고 맞서고 있는데, 이 문제가 이렇듯 ‘도입 vs 반대’ 의견 중 하나로 간명하게 정리될 수 있을까, 또 그 방식은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이 있다. 이 문제를 사고할 때 단순하게 도입과 반대를 넘어 ‘교과서’라는 제도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AI 디지털 교과서라는 구체물을 놓고 대립 양상을 보이지만, 사실 이 문제는 교육에서 기술을 활용할 때 그 기준과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오래된 논쟁 중 하나이다.  이런 까닭에 생성형 AI가 선을 보인 이후 인공지능의 교육적 활용과 이에 따른 교사의 역할 변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교육에서 디지털 기술은 학습자 맞춤형 학습, 효율적인 학습 관리, 다양한 학습 콘텐츠 제공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동시에 윤리적 문제, 디지털 격차 심화,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 등 생각할 거리가 많다.  이 문제를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만 조명하면 정작 필요한 AI 디지털 기술의 교육적 활용 방안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사라진다. AI는 개별 학습자의 맞춤형 학습을 돕는 도구로 작동하면서 학습자의 수준, 학습 스타일, 학습 속도 등을 분석하여 개인에게 최적화된 학습 경로를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고 학습자의 학습 동기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AI는 학습 데이터를 분석하여 학습자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개별 학습 진도를 관리하며,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나아가 AI는 다양한 형태의 학습 콘텐츠를 생성하고 제공하며,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학습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 이런 장점이 있다는 것을 현장 교원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현장 교원들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을 찾아보자. 1) AI 디지털의 교육적 활용이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반드시 ‘교과서’라는 제도적 변화여야 하는가? 2) 전국의 동일 학령기 학생들이 특정 과목에서 ‘일제히’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렇게 질문을 정리해 보니, ‘교과서’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한 대립은 심화할 것 같다. 교과서와 ‘수업보조자료’는 그 역할과 위상이 다르다. 교과서는 전국의 모든 학생이 일제히 사용하는 것이며 수업보조자료는 개별 교사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사용한다. 그러므로 AI 디지털 교재의 명칭을 교과서에서 수업보조자료로 변경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교과서가 아니라면 모든 교실에서 같은 교재를, 일시에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자료의 성격을 바꾸면 비용 부담 문제, 획일적 적용에서 오는 문제, 개인정보 유출 문제, 디지털 중독 문제, 단말기 사용으로 인한 신체·정서적 문제 등을 훨씬 덜 걱정해도 된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AI 시대 교사전문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함양할 것인가의 문제다.  단순히 AI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기 위한 대규모 연수는 AI 시대에 바람직하지 않다. 교사는 정보화시대의 명암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디지털 사용에 따른 윤리, 과몰입 및 격차 해소 방안에 대하여 이해해야 한다. 본인의 교과에 첨단 기술을 접목시킬 때 장점과 문제점, 그리고 효과적 활용 방안과 문제점 해소 방안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이것을 중앙 정부 차원에서 공통 매뉴얼로 만들어 보급할 일은 아니다. 교사들의 창조성을 믿는다면 백 개의 교실에서 백 가지의 AI 디지털 활용 방안이 나올 것이다. 물론 특정 학습 주제는 여전히 서책에 담긴 내용으로만 수업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전통적 수업방식에 맞고 어떤 내용은 첨단 기술과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했을 때 효과적인지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들이다.  AI 디지털은 교육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바로 이점 때문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AI 기술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함양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 디지털 교과서를 일제히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바탕으로 AI와 인간이 상호 작용하며 함께 성장하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 함영기 전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중학교에서 사춘기 아이들을, 대학에서 예비교사를 가르쳤다. 정년을 맞아 일터를 떠난 후에는 읽고, 쓰고, 걷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자유의지를 지난 창조적 주체 간의 상호작용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사, 책을 들다>를 비롯하여 몇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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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미칠 노동, 노동조합의 변화에 대하여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유용함? 두려움? 몇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최근 AI는 우리에게 참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기업에서도 정부에서도 학교에서도 AI를 활용하겠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나에게 AI는 유용한 도구이자, 한편으로는 두렵게 느껴지는 존재이다. 챗GPT, Gemini같은 생성형 AI에게 질문을 하면 대량의 데이터를 통해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요약‧정리해 준다. 어떤 자료를 더 보면 좋을지에 대해서 추천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왜 나는 두려움을 느낄까? 일단 AI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AI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챗GPT는 우리 눈에는 검색창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생성형 AI가 ‘어떻게’ 사고하여 이런 답을 내놓았는지에 대한 과정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질문하느냐, 질문자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달리 답변을 내놓는다니 신기하면서도 두려움이 남는다. 모른다는 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모르기 때문에 배제되지는 않을까, 모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치지는 않을까, 모르기 때문에 낙오되지는 않을까, 모르기 때문에 틀리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또 하나의 두려움은 AI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낼지 변화가 제대로 예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변화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더 막막하다.   AI가 노동에 미칠 영향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들을 ‘몰라도 되도록’ 조직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분업화이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자본은 노동과정 전반을 분업화했다. 분업화는 생산력을 높이는데 굉장히 유용한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을 직접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드는 과정이었다. 실제 자동차를 조립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찾아보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면 자동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부품이 필요한지, 그 부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동과정이 필요한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자신이 하는 공정 전후 과정 정도만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AI는 노동 현장에서 업무의 효율을 높여주는 등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을 더 ‘모르는 존재’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미 기술의 발전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을 통해 통제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우버는 승차율, 취소율, 앱 로그인 시간, 완료된 여정, 고객 평가 등을 모니터링하고 개별 우버 기사에게 “당신은 상위 10%입니다.” 등의 메시지를 보낸다. 노동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시스템이 자신의 노동과정 전반을 일상적으로 관리하고 기록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알고리즘은 그 데이터를 가지고 인간의 노동을 통제하며 평가한다. 그런데 노동자는 어떤 과정과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평가했는지에 대해서 알기 어렵다. 또한 알고리즘이 내린 평가에 대해 반론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플랫폼 사는 노동자들의 자유와 선택이 보장된다며 플랫폼 노동자들을 ‘자영업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업무에서 배제되어 해고되기도 하고, 경쟁에 내몰려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이기도 한다. 이에 맞서 플랫폼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에 대한 정보 제공 및 통제 권한을 노동자에게 부여할 것,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관련 규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AI는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컴퓨터가 스스로 알고리즘을 학습한다는 의미에서 기존 알고리즘과도 차이가 있다. 최근 배달의 민족은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했다고 발표하면서 “정교한 AI 배차 추천 기술을 활용해 라이더가 안전하면서도 빠른 배달을 할 수 있도록 최적의 배달을 매칭해준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AI가 포용적이거나 균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구체적 조건을 고려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AI는 기존의 대량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사람들의 요청에 다양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자체에 구조적 차별로 인한 편향이 있더라도 이것을 편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차별과 혐오를 그대로 답습하고 더 확대할 수도 있다. 즉, AI는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주류적 인식을 ‘정답’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배달의 민족이 자랑하는 것과 달리 AI가 오히려 한정된 시간에 어떻게 수익을 높이는 방식으로 효율적으로 배달 횟수를 늘릴 것이냐에 집중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더 높일 가능성이 크다. 효율성과 이윤 확대가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AI의 발전과 노동조합의 고민 현재 곳곳에서 인간의 노동을 AI로 대체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콜센터 상담노동이다. 콜센터 사용자들은 최근 고객민원대응에 AI 기술을 도입하고, 노동자들의 상담 내용 및 목소리를 데이터화해서 AI를 훈련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콜센터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또한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상담 내용 및 목소리로 AI 훈련을 진행하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동의 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있다. 한편, AI 도입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AI 안내로 겨우 상담노동자를 만나게 된 고객들 중 화가 나 있는 고객들이 예전보다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을 거스르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도 있고, 기술의 발전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사회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인간의 삶,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대비가 필요하다. 현재 수준에서는 AI의 발전이 일자리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새로운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는 입장부터 상당수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하지만 공통점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며, 비대면 업무, 매뉴얼화하기 쉬운 업무부터 대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가 급속도로 그리고 파괴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변화의 과정을 통제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노동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시간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자신의 성취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사용자도 아닌 AI에 의해 노동자의 일상과 삶이 통제되고 관리될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반평화적이며 불평등한 인식이 재생산되고, 저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은 노동조합에게도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노동조합이 일터에서 AI 도입 과정 및 보완 과정 등에 개입하지 못할 경우, 노동자들의 일상 전반이 더 많은 이윤 확보와 효율성 증대라는 목표 아래 지금보다 더 관리되고 통제되도록,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배제되도록 AI가 작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AI 역시 무오류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집단적 관리와 개입이 필요하다. AI의 오류가 인간의 안전에도 중대한 위협을 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AI가 제시한 ‘정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배제된 입장과 사람은 없는지, 다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게 너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AI 시스템에 개입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힘과 역량을 키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비판적 인식을 확장하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 AI의 발전 때문만은 아니지만 노동조합 역시 이러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는 다양한 대상과 주제를 가지고 교육을 진행한다. 대상에 따라 구체적 교육의 목표에는 차이가 있지만, 노동조합의 교육 전반이 추구하는 방향은 있다. 공식적으로 정리된 바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노동조합 교육이 추구하는 바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신에게 가해진 부당함에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서는 현재 사회가 가지는 다양한 모순을 넘어 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추동해 가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에 있다. 또한 개인들의 힘을 모아 집단적 힘을 긍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역량을 성장시키는 것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동적 존재이자 하나의 부품과 같이 여겨지던 노동자들이 사회의 주체이자 자기 삶의 주체임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AI 발전은 노동조합에게 이러한 고민을 더 다듬고 확장할 과제 역시 부여하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대량의 정보를 처리하는 AI가 발전하는 시대에 지식 습득에만 주목하는 교육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잘못된 정보 속에서 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용기, 누구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 보람 세상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보람’입니다. 노동자들의 힘을 믿고 노동자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어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육 업무를 전담으로 한 지는 10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방향성을 잃지 않고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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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학년도 수능] 존버 : 의대 진학의 법칙
목차 들어가며 본론 성적이 높지 않아도, 기다리면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 고졸이라는 낙인, 독일에선 없다 나가며 들어가며 “2025학년도 수능에는 전년도보다 1만 8,082명 많은 52만 2,670명이 지원했다. 재학생은 전년 대비 1만 4,131명 증가한 34만 777명(65.2%)이었고, 졸업생은 2,042명 늘어난 16만 1,784명(31.0%)이었다. 검정고시 등 기타 지원자는 1,909명 증가해 2만 109명(3.8%)을 기록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오늘(14일) 진행됐다. 많은 전문가가 수험생이 늘어난 것의 이유로 의대 증원을 꼽고 있다. 이에 따라 의대를 진학하고자 하는 N수생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1년에 한 번 치루는 시험에 의해 나머지 인생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입시에 대한 사람들의 언어는 다양하다. 혹자는 정직•끈기•성실 등의 지표가 대학이라고 주장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정직하게 공부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끈기가 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한지. 필자는 대학을 위해 재수를 했고, 현역 때 붙은 대학에 입학했다. 여전히, 재수를 했던 1년을, 엄마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여긴 반전이 있는데, 이것은 독자와 나만의 비밀이다🤫. 실은 현역 때, 그 정도 성적이 되지 않았는데 운이 좋게 붙었다. 마치 컵에 큰 돌멩이로 가득 채워도 ‘다 차 있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재수 기간 1년간, 필자는 그 빈 곳에 모래를 채워 진정한 ‘다 차 있음’을 만들었다. 열심히 공부했던 재수가 끝나고 엄마에게 친구의 3수 소식을 전했다. 돌아오는 엄마의 말은 “재수할 때보다 더 놀았나 보다”. 그날 대판 싸웠다. 수능 성적이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사회가 ‘괴상’하지 않은가? 대학을 졸업한 지 몇십 년이 지나고 여전히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사회가 ‘기괴’하지 않은가?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든 국민이 동의할 터. 정권을 잡는 사람마다 뜯어고치는 입시 제도. 그렇다면 우리와 멀-리 떨어진 독일은 어떨까. 성적이 높지 않아도, 기다리면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 최근 의대 정원과 관련하여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종종 나오는 말이 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대거 의사 되면… 의료 사고가 많아지면 어떡해? 내 몸은 누가 책임져!” 그렇다면 본질적인 물음은 다음과 같다. 의사는 똑똑해야 하는가? 이어지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얼마큼 똑똑해야 하는가? 상위 0.01%?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의대생들의 과제량과 공부량이 많다고들 하지만, 필자와 같은 비의대생들은 아무리 들어도 ‘아 많구나’ 정도로 받아들일 뿐이다. 수능이 똑똑함의 지표가 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물론 지성이 영향이 있겠으나 그것만이 지표가 될 수는 없다. 예로부터 의사에 대한 선호도는 ‘전문직 선호’ ‘높은 연봉’ 등에서 나왔기에 천재•영재와는 거리가 있기도 하다. 독일은 기다리면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 한국에는 ‘수능’이, 독일에는 ‘아비투어(Abitur)’가 존재한다. 아비투어는 독일 고등학교의 졸업시험으로, 전과목 논술시험이면서도 절대평가 등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아비투어를 통해, 대입 전 자신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줄세우기식으로 진행되는 수능과는 다르게, 자신의 현 상태를 파악하고 대학에서 수학이 가능한 본질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수학능력검정시험과는 형태와 목적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도 ‘의학’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다. 한국처럼, 독일 대학도 아비투어 성적을 반영한다. 다른 건 아비투어 반영 비율에 있다. 수능의 정시 제도는 수능의 점수를 100% 반영하여 대학에 입학한다. 반면 독일의 대학은 아비투어 성적을 20% 내외로 반영한다. 이외에 ‘대기 연한’과 내신 그리고 대학의 자체 선발이 반영된다. 대기 연한은 ‘얼마나 그 학생이 특정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했는지’이다. 첫 입시에서 떨어지더라도 다른 대학에 가지 않고 계속 그 대학 그 학과에 가고 싶은 학생들만을 위한, 대기 명단이 존재한다. 오래 기다린 학생들의 햇수를 반영하여 입학 학생들을 선발한다. 대체로 2년 정도 기다리면 대부분 선발된다고 한다(의대의 경우 선호도가 높아 일반 학과에 비해 길어질 수 있다). 대기 기간 동안 선수 과목들을 듣거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대기 제도를 통해서 우리는, 독일이 ‘시험 성적’만으로 의과대 학생을 선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기다릴 정도로 의학을 공부하고 싶은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대학 입학 성적이 낮은 의사는 의료 사고를 더 많이 내는가? 의사는 똑똑해야 하는가? (현재 독일 내부에서 아비투어 반영 비율과 대기 연한 변경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 놀랍게도 독일의 무상 등록금은 ‘학생들의 운동’으로 얻어진 결과다.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행정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 2009년 거리에 나온 학생들의 구호 “Reiche Eltern fur ALLE(모두를 위한 부자 부모님)”, “suche reiche Eltern(부자 부모님을 찾아요)”. 처음부터 대학 등록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인 - 아마 전 세계인들 - 이 생각하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돈을 내고 교육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교육은 국민의 기본 권리다’라는 주장이 등장하며, 1970년 최초로 등록금 제도가 폐지되었다. 이후 35년간 무상 등록금이 이어졌지만, 대학의 재정 약화 등의 이유로 등록금 제도 부활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주장했다. “suche reiche Eltern”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 전국 27만 명 이상의 대학생들이 모였다. 그들은 도로와 철도, 법원, 의회를 점거했으며 다니는 대학의 강의실도 점거했다. 다소 격한 시위가 벌어졌지만, 놀랍게도 시민들은 학생들의 편에 선다. 학교 본부와 교수들은 점거가 끝날 때까지 계속 강의하며 그들의 운동에 함께했다. 학생들의 부모와 시민들, 동네 주민들 등 기성세대들도 동참했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맘껏 공부할 수 있어야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기조 하에. 대학 교육을 청년들의 자기계발로 바라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가의 인재 양성의 측면으로 바라본 결과였다. 청년이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레 기성세대는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독일 전역은 청년들의 목소리로 물들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맞추어 ‘등록금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결국 2013년, 독일 대학 등록금 제도는 폐지되었다. 물론 여전히 교육복지의 측면에서 일부 금액을 지불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기후동행카드의 충전 금액’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된다. 흙수저 → 플라스틱수저 → 나무수저 → 철수저 → 동수저 → 은수저 → 금수저 → 다이아몬드수저 2010년대부터 대두된 수저 계급론은 ‘그’가 아닌 ‘그의 부모’를 판단한다.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뒷받침해 줄 수 있느냐, 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현대판 신분제도. 필자는 이와 같은 담론에 실증을 느끼면서도, ‘나는 왜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의 피켓을 들고나간 독일의 학생들처럼 하지 못할까’ 부끄럽기도 하다. 고졸이라는 낙인, 독일에선 없다 한국과 달리, 독일 고등학생들은 ‘대학’만을 바라보고 공부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1) 3년제 직업학교(전문대)에 진학하거나 2) 아비투어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3) 바로 직장을 찾는다.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6.2%로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반면 2000년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33.3%로, OECD 국가 중 대학 진학률이 낮은 국가였다. 2021년에는 대학 진학률이 55.8 OECD 평균(86%)과 떨어진 편에 속한다. 제조업 기반의 독일 경제를 위 현장의 기술직을 양성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더욱이 궁금증은 커진다. 독일 대학엔 등록금이 없다. 그리고 대학 입학 혹은 졸업에 얽매지도 않는다. 경제적 부담이 줄어 대학 입학이 수월해졌음에도,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임금 수준에 있다. 독일은 학력과 상관없이 개인이 습득한 기술에 의해 임금이 좌우된다. 3년제 직업학교(전문대) 졸업자와 대학 졸업자의 상대적 임금지수는 153과 158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115와 145로, 이는 OECD 평균인 122와 146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전문 기술에 대한 국가적 우대가 임금으로 이어졌고, 대학과 상관없이 스스로 진로를 찾는 것까지 나아간 것. 이명박 정부 시절 시작된 ‘직업계고 제도’는 어떻게 되었나.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독일은 중학교 때부터 직업 훈련 및 체험 - 일종의 인턴쉽 - 을 필수적으로 진행한다. 비슷한 목적으로 시행된 직업계고 제도는 2024년 지금 거의 방치된 수준이다. 2021년 기준 학력이 고졸 이하인 신입사원 연봉은 평균 2,363만 원이며 대졸은 3,031만 원으로, 약 700만 원의 차이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대졸자들보다 먼저 입학하기에 호봉이 높아질수록 그 차이는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졸 이하 전체 직원의 평균 연봉은 3,400만 원이고 대졸은 4,500만 원으로, 1,000만 원 차이가 난다. 한국은 되려 그들에게 ‘고졸’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나가며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 2025학년도 수능의 필적확인란 문구다. 필자가 본 수능의 경우,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였다. 수능 당일 첫 과목인 국어 시험지를 받고, 필적확인란을 제일 먼저 확인했다. 눈물이 났다. 분노의 눈물이. 고등학교 3년 내내 읽고 싶은 책을 뒤로 하고 국어책에 조각난 소설을 읽은 결과는 ‘수능’이었다. 포항의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일주일 미뤄졌을 땐 절망밖에 없었다. ‘나의 해방이 일주일 멀어지다니!’ 그리고 해방을 앞두고 읽은 저 글귀. 큰 바다와 넓은 하늘을 가졌지만, 고등학교 내내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체육 시간이라 보지 못했다. 방학 때에도 학교 자습에 참여해 바다와는 이별한 지 오래였다. ‘수능 이후 나는 해방될 수 있을까? 줄에 묶인 코끼리처럼 줄이 풀려도 그 자리에 주저앉을까?’ 수능과는 전혀 관련 없는 생각들이 많아졌고, 그렇게 불수능에게 패배했다(실은 졌잘싸, 라고 생각한다. 아니, 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잘 싸웠다.). 독일의 교육제도를 봤지만 그렇다고 독일을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작금의 교육제도를 개정하라고 적극 요청하는 것도 아니다. 교육제도를 둘러싼 사회 환경 전반의 문제가 있음을 말하며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 달라고 요청한다. 더 이상 대학 앞에 무너지는 학생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얼마 전 대학에서 강의 중, 교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남아있다. “여러분,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시라고. 지금의 제도는 이전에는 없었어요. 이것도 바뀐 거라니까. 그니까 또 바뀔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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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연필로 쓰기 - 문학동네
백전노장의 검은 아직 날카롭다.  날이 추워졌다. 이런 환절기에 감기가 들다니. 주말 하루이틀 약 좀 먹으면 떨어질 줄 알았더니 조금 좋아진 듯하다가 검도 한 번 다녀오고 그 기운이 심해져 컨디션이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결국 깨면 밥 먹고 약 먹고, 깨면 밥 먹고 약 먹고 시간을 보내다 e북 리더기를 꺼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 책이 『연필로 쓰기』. 생각해 보면 e북 리더기를 사고 가장 먼저 리디에서 e북으로 샀던 책이 이 책이었는데 아직까지 다 읽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이래놓고 그의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되나.  김훈 작가에 대해서는 여러 추억이 있다. 딱 작년 이맘때쯤 같은데.  전역 전 12월에 휴가를 나와서는 또 감기에 걸려서 골골대고 있을 때. 그때 읽은 책도 김훈 작가의 책이었다, 『칼의 노래』. 왜 그 책을 다시 읽고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던 시기였고 그중 하나가 아버지의 책장을 언제나 지키던 『칼의 노래』였던 거 같다.  김훈 작가의 책은 아플 때 먹는 약인가? 지금도 이 글을 한참이나 콜록거리며 쓰고 있다. 음, 막상 콜록거리며 쓰고 있다고 하니 약은 아닌 거 같다. 그보다는 쓰러져도 일어날 수 밖에 없게 되는, 전염되는 무사의 투혼인가. 『연필로 쓰기』는 19년에 나온 김훈 작가의 산문집이다. 애초에 소설가 김훈 이전에 에세이스트 김훈이 존재했고, 소설가 김훈의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자전거 사랑꾼 김훈의 이야기는 좋아했던 독자들도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가끔씩 나타나는 소설가의 산문집마냥 엄청 놀라운 글은 아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의 글에는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 한국 전쟁 시기에 포대에 담겨 대피했고,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로 죽은 동기가 있는 나이, 그는 벌써 일흔을 넘겼다. 이제 지울 수 없는 기운이 쫓아다닌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의 산문집에는 죽음의 기운이 늘 도사리고 있다. 자연, 삶, 가족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는 하지만 자신이 홀홀거리는 할아버지라는 점도 언제나 꼬리처럼 따라 나온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이런 백전노장의 자세로 글을 풀어내고 있음에도 문장에는 언제나 힘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달관한 듯 글을 쓰는 나보다도 훨씬 더. 나는 그런 그의 글을 사랑했다. 힘있게 써내려가는 문장, 강한 삐침으로 마무리된 붓글씨와 같은 문장, 단어 하나하나가 단단하게 휘둘러지는 문장. 솟구칠 때 고래는 머리로 아침햇살을 들이받았고, 잠길 때 고래 꼬리가 바다를 때려 물보라가 일었다. 솟구치고 또 잠기면서 고래떼는 달려오고 또 달려갔다. - 연필로 쓰기 중 일부 발췌  왜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을까. 나는 고래라는 동물이 힘과 생동감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꼬리로 파도를 내려치고 또 가르며 물살을 만드는 고래, 하늘 끝에 닿을 듯 뛰어오르곤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고래, 그러고보니 예전 창덕궁 근처 카페에 들렀을 때 고래 엽서를 사고 싶어하는 나를 보고 카페 주인이 '고래는 왜 좋아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고래만큼 생동감 넘치는 동물을 보지 못해서, 내가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치 작가가 대신 해준 것처럼. 그의 글에서 생동감을 느꼈다. 힘을 느꼈다.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떠들면 끝이 없으니 한 이야기로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작가는 냉면을 먹으며 먼 이북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냉면 면을 길게 늘어놓으며 먼 이북부터 한국의 남단 끝까지, 부산까지 면을 길게 늘어 놓는다. 늘어 놓은 면을 넓게 돌리며 이제는 청와대로, 그리고는 평양의 집무실로 잇는다. 거기서 한강 둔치 어딘가, 김훈에게 잇고 축을 넘어 백석 시인과 고구려까지 면은 이어진다.  그는 하나의 단어로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문장가다. 책이 쓰여졌던 시절이 한참 북한과 분위기가 좋았던 시절이라 그럴까, 아니면 그가 초대 대통령부터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을 봐온 사람이라 그럴까. 이번 산문집에서 그의 시선은 집 앞 마당부터 이북까지 꽤나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온함, 어리숙함, 낯선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이미 그런 감각을 느낄 경력의 작가도 아니지만 시선이 퍽 담담하고 익숙해서, 마치 예전부터 이런 꿈같은 이야기를 늘 풀어내는 사람의 말처럼 덤덤히 이야기를 듣게 된다. 현실을 소설처럼, 소설을 현실처럼 쓴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이 나온 후로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백전노장의 검무를 잠시 엿봤다. 좋은 문장이 무엇인가. 아직 모르지만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을 아는가? 나는 김훈이라 답할 것이다.  김훈 작가의 글에는 요즘에는 느끼기 힘든 정취와 멋이 있다. 단문, 단문, 토막으로 조리된 문장에는 특유의 육향이 진하게 배어 있고, 이 것들이 담긴 문단을 맛보면 매료될 수밖에 없는 작가 특유의 피니쉬를 느끼게 된다.  내가 그를 처음 안 계기는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법한 『칼의 노래』, 『현의 노래』와 같은 소설보다도 '몽당연필을 든 무사'라는 별명의 계기가 된 그 인터뷰 때문이었다. 그게 05년도 인터뷰였으니 벌써 20년인가.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는 게 삶의 전부라는 그의 이야기에 어린 나는 왜 감동했는지. 당시에는 대다수가 노트에 글을 쓰는 시대였음에도 말이다.  연필로 쓰기, 내가 그 인내와 고통을 맛보게 된 때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5년이었다. 군에 입대한 나는 문명이라는 것으로부터 단절되었고 핸드폰이 없던 시기의 저계급 병사들이 으레 그렇듯 병사 권력의 상징이었던 사지방에서 눈을 돌린 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게 바로 연필로 쓰기였다.  이후로 또 10년, 더 이상 연필로 노트에 글을 쓰지는 않는다. 당시 썼던 공군 병사 수첩. 동기, 후배들에게 받아 쓴 것까지 총 7권 정도 분량의 소설과 수필은 진급, 전속, 전역을 이어가는 와중에 소실되었고, 결국 데이터로만 남아 블로그에 지금은 숨겨놓은 비밀 글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를 알게 된 후로 20년, 사이 좋아했던 것들도 많았고 개중에 관심이 떨어진 것들도 많았는데 아직까지도 좋아한다는 걸 보면 예사 사랑이 아님을 스스로도 느끼고는 한다. 아니, 사랑이라기보다는 20년 전에는 그 별명 자체가 좋았고, 10년 전에는 삶의 방식이 좋았고, 지금은 그의 글을 존경하고 있으니 늘 다른 방향으로 사랑하고 있는 거려나. 안녕하세요! 서평을 가끔씩 올리는 카레맛곰돌이입니다. 이번에 가져온 서평은 제가 과거 이태원참사 캠페인 당시 쓴 서평과는 조금 궤가 다른 서평인데요. 앞으로도 사회 현상과 관련된 서평, 그게 아니어도 모두가 읽을만한 평범한 서평도 많이 가져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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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매수해도… 숙대, 부정입학자들 취소 안했다[교수 엄마와 가짜 고대생]
‘음대 교수’는 드레스 대신 죄수복을 입었다. 곱슬곱슬 긴 머리도 하나로 대충 묶었다. 무대 앞 화려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난 7월 26일, 추○○ 안양대학교 음악과 교수(성악 전공)는 법원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추 씨의 최후진술은 그의 겉모습만큼 초라했다. “다시는 이런 일에 연루되지 않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음악계, 교육계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겠습니다.” 소위 ‘잘 나가던’ 음대 교수는 어쩌다 법정에 서서 업계를 떠나겠다는 선언을 한 걸까.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서는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추 교수는 2021년 5월경 한 ‘입시 브로커’와 손을 잡았다. ‘입시 브로커’ 역시 현직 교수인 윤○○ 국민대 성악과 조교수였다. 윤 교수는 2015년부터 서울 중구, 강남구, 서초구 등에 있는 음악 연습실을 빌려 불법적으로 성악 과외교습을 해왔다. 현행 학원법에 따르면, 대학에 소속된 교원은 학교의 학생이나 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 준비생에게 지식ㆍ기술ㆍ예능을 교습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윤 교수는 교수들에게 입시준비생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주로 대학 입시 심사위원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있는 교수들이 섭외됐다. 불법 성악과외 이름은 ‘마스터클래스’. 그들은 ‘마클’이라 줄여 불렀다. 윤 교수는 같은 해 5월 25일 ‘마클’ 학습자로 입시생 6명을 선정했다. 추 교수는 이들에게 성악 과외를 해주고, 수업마다 1인당 25만 원씩 받았다. 수업 한 번에 현금 150만 원을 챙길 수 있는 ‘고액 알바’. 추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월까지 총 5885만 원의 현금을 챙겼다. 추 교수는 불법 과외를 넘어 심사위원으로서 부정입학에도 관여했다. 같은 해 12월, 추 교수는 윤 교수로부터 이런 연락을 받았다. “배진명(가명)을 숙대(숙명여자대학교)에 보내려 합니다. 숙대에 도움 되는 플러스알파가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배진명은 추 교수의 ‘마클’ 수업을 받은 학생이었다. 다음 달, 윤 교수의 청탁은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배진명이) 숙대가 돼야 하는데, 제가 부탁드려요.“ 실기시험 응시생은 학교에서 정해준 과제곡을 준비해 불러야 한다. 그때부터 추 교수는 온전히 배진명만을 위한 맞춤형 과외를 진행했다. 추 교수가 목소리만 듣고도 배진명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각인시키는 연습이었다. 그사이 추 교수는 숙명여대로부터 성악과 입시 외부 심사위원 요청을 받았다. 추 교수와 배 양의 은밀한 불법 과외는 2022년 1월 7일부터 14일까지 총 5번 이뤄졌다. 배 양은 실기시험 직전까지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심사위원을 직접 만난 셈이다. 추 교수는 심사위원들이 써야 하는 ‘사실확인 및 서약서’를 거짓으로 작성했다. 추 교수는 “직계자녀, 친인척, 지인이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목소리 훈련만으로는 불안했던 걸까. 더 확실한 ‘마크’가 추 교수에게 넘어갔다. 숙명여대 실기시험 당일(2022년 1월 18일), 윤 교수는 배진명의 실기시험 평가 순번을 추 교수에게 전달했다. 덕분에 추 교수는 배진명의 목소리를 손쉽게 알아차렸다. 응시자가 133명이나 되는데도. 추 교수는 배진명에게 1등에 해당하는 최고점 93점을 부여했다. 배진명은 숙명여대 성악과에 최종 합격했다. 추 교수는 이듬해 숙명여대 입시에 또 관여했다. 이번에 합격시켜야 할(?) 입시생은 홍진명(가명). 홍 양을 상대로 한 불법과외는 2022년 9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총 6번 진행됐다. 추 교수와 윤 교수는 2023학년도 숙명여대 입시를 앞두고, 메신저로 이런 취지의 대화를 주고 받았다. 추 교수 : “중대, 숙대 같이 17일 하루, 작년과 같이 가요ㅋ. 애들(부정청탁 입시생) 이름이 똑같네요.ㅎ”윤 교수 : “홍진명을 잘 평가해주세요.”추 교수 : “ㅋㅋㅋ 같은 이름 다 잘되길요.” 지난해 1월 17일, 추 교수는 숙명여대 성악과 입시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번에도 입시생 홍진명의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140명의 응시자 중 1등에 해당하는 최고점 90점을 그에게 부여했다. 홍진명도 숙명여대 성악과에 합격했다. 이들의 부정입학 스토리는 법원 판결로 모두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8월 28일 업무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추 교수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장차 예술계에서 재능을 꽃피우겠다는 희망과 열정을 가진 수많은 학생들과 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학부모들로서는, 피고인의 이와 같은 각 범으로 인하여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돈과 인맥 없이는 대학교 입학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또한 예술가로서 제대로 성장해 나가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극도의 불신과 회의감, 깊은 좌절감과 허탈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1심 판결문 양형이유) 추 교수는 재판 과정에서 본인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1심 판결의 양형에 불복해 항소했다. 추 교수는 안양대학교에 사직서도 제출했다. 현직 교수가 불법과외를 한 것도 모자라, 심사위원으로서 부정하게 대학에 입학시켜준 사건. 그렇다면 1심 판결 이후 숙명여대는 어떤 조치를 했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김준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시정)의 도움을 받아 숙명여대에 문의했다. ▲학부생 배진명, 홍진명을 대상으로 한 숙명여자대학교 입학취소처리심의위원회 구성 여부와 ▲숙명여자대학교 입학허가 취소 여부를 물었다. 숙명여대는 지난 9월 24일 아래와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우리대학은 이 사건과 관련된 입시자료 전부를 압수당한 상태로 사전에 관련 학생을 특정할 수 없었고, 학생 특정 및 사실 확인을 위해 검찰청 및 법원에 압수물 반환 청구를 한 바 있으나 불허된 상태입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실확인 절차를 위한 1심 판결등본 송부 신청 진행 중이며, 판결등본 및 해당 자료를 수령하는 대로 관련 법령 및 규정에 따라 관련 위원회 개최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숙명여대는 아직도 ‘부정입학자’ 배진명과 홍진명의 입학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추 교수의 1심 선고로부터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학교 당국은 판결문조차 보지 못했다. 심지어 셜록 기자도 어렵지 않게 입수한 판결문을.  사실 입학취소 결정에 법원 판결문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2조의4는 ‘학칙으로 정하는 부정행위’가 있을 경우도 입학허가 취소 사유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 부정입학자 입학취소는 학교 당국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숙명여대는 학칙 제32조2(입학취소)에 “평가자와의 사전 접촉 등 부정한 방법으로 전형과정에 개입하여 공정한 학생 선발 업무를 방해한 경우” 입학취소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해놓았다. 실례로 서울대학교는 ‘가짜 스펙’을 이용해 치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한 이해슬(가명)의 입학허가를 취소한 바 있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이뤄진 조치다. 셜록은 ‘교수 엄마’의 권위를 이용해 부정하게 입시 스펙을 쌓은 이해슬의 사례를 세 편의 기사로 보도했다.(관련기사 : <논문도 봉사도 ‘대타’… 가짜 고대생, 서울대도 속였다>) 상식적으로 비교하자면, ‘가짜 스펙’을 입시에 활용한 것보다 심사위원을 매수한 것이 훨씬 무겁게 여겨진다. 그럼에도 숙명여대는 ‘부정입학자’들을 입학 취소하지 않았다. 지난해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을 때도, 올해 7월 검찰이 추 교수를 구속기소 했을 때도, 그리고 올해 8월 1심 판결이 나왔을 때도, 숙명여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교육부는 어떨까? 셜록은 지난 9월 교육부 사교육ㆍ입시비리대응 담당관에게 물었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면, 그때는 저희도 대학 측에 공문 등을 공식적으로 보내서,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된 건지’ 또 ‘향후 어떻게 계획과 조치는 어떻게 할 건지’ 등을 제출하라고 해서 계속 (추후 조치를) 모니터링할 예정입니다.” 교육부 역시 아무것도 안 하는 중이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면” “모니터링 할 예정”이라는 입장. 추 교수는 이미 재판에서 범죄 사실을 모두 인정해, 증인 한 명 부르지 않았다.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했고 실형 판결까지 나온 마당에 무슨 ‘사실관계 확정’을 기다린단 말인가. 그리고 그걸 전제로 약속한 조치가 기껏 모니터링이라니, 강 건너 불구경 수준의 태도다. 교육부의 이런 미온적인 태도는 낯설지가 않다. 셜록이 보도한 ‘가짜 고대생’ 사례에서도 똑같았다.(관련기사 : <고려대·교육부 수수방관… 여전히 빛나는 ‘가짜’ 졸업장>) 당시 장관이 “엄중한 관리·감독”을 약속했는데도, 교육부는 지난 5년 동안 부정입학자 이해슬의 고려대 입학취소 여부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기자는 ‘입시 브로커’ 윤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달 31일, 국민대학교를 직접 찾아갔다. 하지만 윤 교수를 만날 수 없었다. 당일 학교에서 만난 관계자는 “윤 교수는 이번 학기 수업이 없는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학과 행정실에도 문의했다. 행정실 관계자는 “학과 사이트에 나와 있는 윤 교수 이메일로 문의하라”고 안내했다. 기자는 지난 8일 윤 교수 이메일로 서면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후 학교 본부에 문의한 결과, 지난 6월 윤 교수를 직위해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정입학자’들 쪽에도 접촉을 시도했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찾아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배진명은 2022년 2월 한 클래식 공연에 소프라노로 참여했다. 해당 공연을 주최한 공연기획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배진명의 프로필에는 “2022학년도 숙명여대 성악과 합격”이란 문구가 여전히 적혀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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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돕는 AI?
민주적 숙의를 돕는 ‘하버마스 머신’ by 🥨채원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합니다. 특히 이런 공론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로는 독일의 정치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있습니다. 그는 ‘여론에 근접하는 어떤 것이 형성될 수 있는 사회적 삶의 영역’으로서의 공론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공론장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또 이러한 합리적인 토론이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직접 광장에 모여 여러 사회적 안건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이 실현 가능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이상주의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제약을 감안하지 않는다고 해도, 점점 양극화되고 부족화되는 현대의 소셜미디어 환경을 생각한다면, 나와 관점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건강하고 생산적인 토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제법 이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때때로 충돌하는, 다양한 의견을 잘 들어주고, 끈질기게 갈등을 중재하며, 결국에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토론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최근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AI가 민주적 숙의에서 사람들이 공통점을 찾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는 논문에서는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토론을 중재할 수 있는 AI 모델, ‘하버마스 머신’을 소개합니다. 하버마스 머신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토론 중 토론자들이 공유하는 공통점을 찾아 ‘그룹 성명서’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성된 그룹 성명서가 최대한 많은 토론자들의 지지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논문은 오천여명이 참여한 실험을 통해 하버마스 머신이 작성한 그룹 성명서와 인간 토론 중재자가 작성한 그룹 성명서를 비교하며, 토론자들이 하버마스 머신이 작성한 성명서를 일관적으로 선호했다고 밝힙니다. 또한, 추가적으로 실시한 외부 심사에서도 하버마스 머신의 성명서가 품질, 명료성, 정보성, 공정성 측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본 논문은 AI를 사용한 민주적 집단적 심의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검색어 자동 완성이나 기계 번역, 요약 등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언어 모델은 점차 복잡하고 고도화된 영역으로 활용 범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요약이나 번역 등 각각의 기능을 따로 사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언어 모델이 갖고 있는 여러 기능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의 노트북 LM은 복잡한 학술 논문을 단순히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팟캐스트의 형태로 변환하는 기능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버마스 머신은 복잡한 글을 특정 목적(많은 사람들의 지지)을 위해 요약하여 토론을 돕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기술로는 실현하기 어려웠던 가능성을 실현합니다. 물론 하버마스 머신이 민주주의가 대면한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하버마스가 주장한 공론장을 실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이 민주주의라는 공공선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기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또 이 기술로 달성할 수 있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언어 모델이 잘 하는 것과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 사이의 공통 분모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를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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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혐의’ 이규태 전 이사장, 우촌초 운영 개입 의혹[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5화]
“설립자는 영원히 가는 거 아닙니까?” 우촌초등학교 이양기 교사(58)는 12일 학교장과 면담 자리에서 황당한 말을 들었다. A 교장이 사학수당 지급을 논의하는 긴급 교직원 회의에,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 이사장’을 초청했다는 말이었다. 지난 3일, A 교장은 부장교사들을 대상으로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는 학교에서 열렸다. 4월, 7월, 10월마다 지급하는 사학수당을 교원 전원에게 주지 않겠다고 결정한 뒤, 내부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사학수당은 전년도 예산 편성 금액을 기준으로 교원들에게 지급한다.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 정관에 따르면, 학교 회계 집행 책임자는 학교장이다. 그런데 학교 예산 집행을 논의하는 자리에, 아무 권한도 없는 전 이사장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앉아 있었다.   우촌초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 부담금이 가장 비싼 곳. 2022년 기준 1년치 학부모 부담금은 1480만 원이다. 이규태 회장은 2001년 우촌초를 인수한 후, 2010년까지 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하지만 2015년 회계 부정 등의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된 뒤, 학교와 관련된 직책을 갖고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해 ‘외부인’일 뿐. 심지어 이 회장은 우촌초 교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다. 이런 사람이 사학수당 지급과 같은 학교 교비 운영을 논의하는 자리에 있었다. 이 회장의 ‘부당 개입’은 이미 크게 문제 된 적이 있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은 이 회장이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부풀리고, 미리 섭외한 업체가 입찰에서 선정되도록 ‘옥중 지시’를 내린 사실을 적발했다. 그해 5월 최은석 당시 교장, 이양기 교감, 유현주, 박선유 등 교직원 6명이 공익신고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것. 이외에도 학교장 업무방해, 학교 예산 횡령 등 각종 비리 혐의가 드러났다. 검찰은 2021년 이규태 회장과 학교 관계자 등 12명을 기소했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횡령 혐의’ 피의자 신분의 전 이사장을 학교 회의에 부른 사람. 지난 8월 새로 부임한 A 교장이다. 12일 이양기 교사와 A 교장의 대화다. 이양기 교사(이하 이) : “이번에 부장들 소집하셨다고 했잖아요. 그때 이규태 전 이사장을 초대하신 거잖아요.”A 교장(이하 A) : “(사학수당 미지급) 내용도 알지 못하고, 학교 설립자 분(이규태)이 계시니까 해명 좀 해주면 좋겠다고 설립자 분에게 내가 요청드린 거죠.” 이 : “권한 없으신 분이 와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A : “바로 (사학수당) 지급해야 되겠다고 제 뜻을 알려드렸던 거고, 그렇게 된 거죠. 설립자 분이신데 학교에 애착이 많은 분이신데.” 이 : “학교 이사장도 아니고 아무 직책이 없잖아요.”A : “설립자 분이시잖아요. 설립자는 영원히 가는 거 아닙니까? (…) 법에 (초대)하지 말라는 게 있습니까?” 이규태 회장의 부당개입 의혹이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현재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 8월 일광학원 임원 모두의 취임승인을 취소했다. 일광학원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은 지난 9월 10일 일광학원의 패소로 끝났다. 무려 4년 동안 이어진 싸움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일광학원 이사회 전원을 임시이사로 교체했다. 학교 정상화를 본격 추진해야 할 시점에, 이규태 회장은 여전히 우촌초 교직원들의 회의까지 참석하며 운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규태 회장은 제3자입니다. 심지어 교비 횡령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촌초) 사학수당 지급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한 건 부당개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김범준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실행위원) “학교 사무를 논의하는 자리에 아무 권한 없는 전 이사장이 참석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보입니다.”(홍민정 변호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자문변호사) 서울시교육청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감사관은 “현 이사들도 학교장 권한을 침해하면 안 되는 건데, 민간인이 침해하는 건 당연히 안 된다”고 밝혔다. 어떻게 대처할 거냐는 질문에는 “(현재) 임시이사들이 파견되고 정상화를 밟는 과정”이라면서도, “최근 (우촌초가) 종합감사는 받았지만, 민원조사에 응할지는 아직 불확실하기 때문에 민원조사에 응했을 때 (이 회장의 운영 개입 의혹도) 조사할 것”이라고 답했다. 우촌초는 서울시교육청과 소송 중이라는 핑계로, 2021년부터 계속 감사를 거부해왔다.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뒤, 지난달 16일부터 22일까지 3년 만에 우촌초 종합감사를 진행했다. 지난 5일 서울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이소라 서울시의원(비례대표)이 우촌초 감사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교육 현장이 비리의 공간이 되면 안 된다”며, 서울시교육청에 감사TF를 구성해 철저한 감사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애초에 이양기 교사가 A 교장을 찾아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규태 회장이 참석한 회의는) 사학수당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내부반발이 있어서, 그걸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회의 다음 날 전원 사학수당을 지급했습니다. 저는 제외됐고요.” 이 교사는 2019년 공익신고 이후 해임당했다. 그리고 국민권익위, 교원소청심사위, 법원까지 이어지는 약 2년 반 동안의 싸움 끝에 2022년 복직했다. 지난 1월 학교는 이 교사에게 ‘경고장’을 내밀었다. 경고장에 찍힌 날짜는 2023년 7월 7일. 이 교사에게 통지한 날짜는 6개월도 더 지난 올해 1월 26일이었다. 징계 사유는 “학교장에게 인사・수당 관련 반복 항의 등”. 소명 절차는 없었다. 학교 측은 징계를 통지한 시점인 지난 1월 26일 부로 이 교사에게 10개월간 사학수당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경고장에 찍힌 징계일인 2023년 7월 7일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지급되던 사학수당이, 징계 통지를 시점으로 갑작스럽게 끊겼다. 왜 하필 올해 1월이었을까. 공교롭게도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보도를 시작한 날이 1월 15일이다. 16일에는 이 교사가 복직 이후 겪은 지속적인 불이익에 대해 보도했고(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17일 셜록과 참여연대는 학교 법인 전・현직 이사장을 고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월 22일 학교 측에 “(경고) 처분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경고 처분을 취소하고 (이양기 교사에게) 미지급된 사학수당 전액을 지급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버텼다. 지난달 28일 국민권익위도 “이 사건(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신고로 인한 불이익조치라고 봄이 타당하다”며, 경고처분을 취소하고, 미지급한 사학수당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 교사가 이달 초 교장을 찾아간 것은 국민권익위 결정문을 전달하고, 학교 측에 결정 사항 이행에 관해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A 교장은 권익위 결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제가 (우촌초로) 오기 전 이뤄진 일에 대해 권한이 없다”고 회피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12일 우촌초 A 교장에게 입장을 물었다. 학교에 아무 권한이 없는 이규태 회장이 배석한 자리에서 교원 사학수당 지급을 논의했다는 의혹에 대해, “무슨 얘기요?”, “무슨 취재를 하신다고요?”라며 되물었다. 이어지는 질문에 “아니, 기자면 다예요? (이 회장이) 무슨 권한이 없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이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규태 회장에게도 13일 전화로 반론을 구했다. 이 회장은 첫 통화에서 기자 이름을 듣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바로 다시 전화를 걸자, “스토킹으로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 회장에게 우촌초 사학수당을 논의하는 회의에 무슨 자격으로 참석했냐고 묻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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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 금액에서 사라진 사천 원] 영화 티켓값, 왜 자꾸 올라갈까요?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탈루 의혹 지난 17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국정감사가 이어졌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강유정 의원은 관객이 실제로 구매한 영화 티켓값과 영화관 통합전산망에 넘겨지는 가격 차이가 최대 4,000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필자 또한 영화관 티켓 구매 시, 인터넷 혹은 키오스크를 통해 카드로 결제한다. 필자의 경우, 지금껏, 당연히, 영화 티켓이 영수증 겸용이라고 생각해 왔다. 한편 ,올해 7월 “구매 금액과 영수증 금액이 다르다.”라는 주장이 나왔다. 지류 영화 티켓은 영수증이 아니며, 영수증은 영화관 직원에게 별도로 요청해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주장에 따르면 통신사 할인을 받고 8,500원에 결제했으나, 요청한 영수증에 적힌 금액은 7,000원이었다. 문제는 실제 예매권 가액(7000원)을 기준으로 영화발전기금(3%)과 부가세(10%)를 책정하고 있기 때문에, 차액만큼 기금과 세금이 부과되지 못하고 있다. 결제한 금액과 영수증의 금액이 다른 것. 그 차액은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영화관은 사양산업일까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3년 9월 영화관 전체 매출액은 653억 원이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9월 전체 평균 매출액의 52.9% 수준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코로나 시기를 제외한다면 2008년 이후 최저 매출액을 기록했다. 국내 극장 영화 관람객 수는 2019년 2억 2천 명에서 2023년 1억 2백만 명으로 하락하였다. 지난 2022년 국내 멀티플렉스 3사인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CGV는 2D 영화 성인 티켓값을 기준으로 주중에는 1만 4천 원, 주말에는 1만 5천 원으로 상향했다. 이는 빠르게 성장하는 OTT 플랫폼과 비교하여 극장 방문을 부담스럽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중학교 시절 조조 영화로 5천 원의 행복을 경험했지만, 이제는 조조 + 통신사 할인을 받더라도 1만 원이 넘어간다. 이에 어떤 영화든지 1만 원 값은 해야 한다는 인식과 더해지며, ‘요즘 영화는 재미가 없다’까지 이어진다. 킬링타임용 영화는 5천 원으로 납득이 되지만 1만 원이 넘는 심지어는 1만 5천 원의 가격으로는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맞서 멀티플렉스 3사는 다양한 상품들을 내놓았다. 롯데시네마는 ‘수퍼플렉스관’을 선보이며 일반 영화관보다 3배 넓고 3D 입체 사운드 음향 기술을 적용했다. 메 박스는 ‘돌비 애트모스관’을 개시하며 4K 레이저 영상기가 적용되고 3차원 공간에 소리의 움직임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CGV 또한 ‘아이맥스’, ‘스크린X관’, ‘4DX관’ 등 다양한 특별관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스낵류도 이전과는 다르게 늘어났다. 팝콘 이외에도 오징어, 핫도그, 떡볶이, 라볶이 등 다양한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다. 심지어는 - 극장에서 먹을 수 없지만 - 집에 가져가서 먹을 수 있는 팝콘도 판매하고 있다. 또한 영화 이외의 즐길 거리도 늘어났다. 영화와 관련된 굿즈샵, 영화의 내용을 담은 포토부스, 푸드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공간이 그에 해당한다. 관객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한 관객당 지불하는 금액을 늘리려는 시도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티켓 수익분배의 방식 티켓의 수익분배 방식을 알아보기 전에 생소한 단어부터 먼저 살펴보자.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 영화 티켓 하단을 꼼꼼히 살펴보자. 결제 금액 하단에 작은 글씨로 ‘영화발전기금 3%’가 보인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24조에 따르면 영화발전기금의 조성을 위해 부과금을 징수한다. 부과금 징수 대상은 예외를 제외한 모든 영화상영관이다. 부과금 징수 금액은 영화상영관 입장권 가액의 100분의 3 즉, 3%에 해당한다. 이때 입장 가액은 각 영화관에서 회차, 연령, 좌석 등으로 구분한 실제 입장권 금액으로 측정하고 있기에 언제 어디서 누가 영화를 봤냐에 따라 그 금액은 달라진다. 부과금 징수 목적 : 영화발전기금의 조성 부과금 징수 대상 : 예외를 제외한 모든 영화상영관 부과금 징수 금액 : 영화상영관 입장권 가액의 3% 이렇게 부과된 금액은 ‘한국 영화 지속 성장 생태계 조성’ ‘한국 영화 미래가치 확장 환경 조성’ ‘보편적 영화 문화 가치 확산’의 목적을 가진 영화발전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티켓 수익 분배 구조를 살펴보자. 우선 객단가의 3%를 영화발전기금으로, 10%는 부가세로 제외된다. 이후 남은 금액의 50%는 극장의 수입이고 나머지 50%에서 배급사의 배급수수료 10%를 제외한다. 남은 금액은 투자사와 제작사가 나누어 갖게 된다(업계 평균은 투자사 60%, 제작사 40%라고 함).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티켓값은 10,000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중 300원은 영화발전기금으로, 1,000원은 부가세로 구성된다. 이를 제외한 남은 금액은 8,700원. 그중 50%인 4,350원은 극장의 수입이 된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의 10%인 435원은 배급수수료로 배급사의 수입이다. 이를 제외한 금액은 총 3,915원. 그중 60%인 2,349원은 투자사가, 40%는 제작사가 나누어 갖는다(해당 비율은 계산하기 쉽게 조절하였음). 영화 티켓값으로 지불한 금액 =/=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전달되는 금액 사례 1. 영화 <베테랑2>를 통신사 할인을 받아 11,000원에 결제했다. 이후 받은 영수증에는 7,000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사례 2. 영화 <원더랜드>를 보기 위해 KT 통신사 할인을 받아 결제했다. 원가 15,000원에서 할인가 4,000원을 뺀 결제금액은 11,000원이다. 이후 받은 영수증에는 10,500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사례 3. CGV 범계점에서 14,000원 영화 티켓을 SKT 멤버십 앱을 통해 할인을 받아 8,500원에 결제했다. 현장에서 요청한 영수증에서는 7,000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은 전국영화관 입장권 발권 정보를 실시간으로 집계 처리하는 시스템(서비스 플랫폼)으로, 신속하고 다양한 박스오피스 정보와 각종 영화산업 통계정보를 제공하여 한국영화산업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영화산업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이용하고 있다. 즉 전산망의 관리 주체는 영진위. 티켓 발권에서 시작해서 영화관을 거쳐 통합센터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다. 통합전산망에서는 총관객 수와 매출액, 지역별 점유율, 국적별 점유율 등 다양한 데이터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발전기금과 세금을 징수할 때 기준이 되는 금액이 바로 이 통전망에 등록된 금액이다. 통전망을 운영하는 영진위의 위원장은 “실제 지불한 금액과 차이가 나는 것은 있으나… 그것까지는 우리가 관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불어 영화관과 배급사 간의 수익을 분배할 때도 통전망에 등록된 금액으로 나눈다. 그렇다면 영화관에서 결제된 금액은 그 즉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 영진위의 관리의 누락? 의도적인 세금 탈루? 강유정 의원 : 영진위, 입장가액 무엇으로 하십니까? 한상준 위원장 : 저희는 전송되어 오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가액들이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한 기사들은 보았습니다만은, 그부분까지는 저희가 알지 못합니다. 강유정 의원 : 통합전산망 운영 주체는 누굽니까? 한상준 위원장 : 영화진흥위원회입니다. 강유정 의원 : 입장권 가액은 뭡니까? 한상준 위원장 : 입장권 가액은 실제로… 강유정 의원 : 별도 정의 없죠? 한상준 위원장 : 네 없습니다. 강유정 의원이 영진위와 극장에 차액 발생 원인에 대한 자료를 각각 요구하였으나, 기업 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다며 답변 제출을 거부하였다. 앞선 대화에서도 보았듯이, 영진위원장은 통전망으로 보내는 영화 티켓 금액과 결제된 금액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영진위는 통합전산망을 운영하는 주체이다. 통합전산망은 영화산업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통합전산망에 들어오는 입장 가액이 실제 관객이 결제한 금액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면, 그 간격이 어디에서 발생하고 있는 찾는 역할이, 영진위가 하는 역할일 테다. 국정감사에서 한상준 위원장은 ‘기사들은 보았습니다만, 그 부분까지는 저희가 알지 못합니다.’라는 말 속에서 이미 책임을 다하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또한 이것은 단순 책임 회피의 문제가 아니다. 강유정 의원인 이것이 ‘구조의 문제’임을 주장했다. 영화 흥행 지수를 ‘관객 수’로 책정한다는 근거를 주장했다. 미국과 같은 해외의 나라들은 관객 수가 아닌 매출액으로 책정한다. 이 점은 우리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영화 홍보에 항상 뜨는 문구. ‘관객자 수 백만 돌파!’ ‘천만 돌파!’ ‘천만 영화’ 등등. 한편,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 역대 흥행 영화 순위를 살펴보면, 1위는 <스타워즈:깨어난 포스> 9억 3,666만 달러다. 2위는 <어벤져스:엔드게임>으로 8억 5,837만 달러를 달성했다. 이처럼 한국은 ‘관객 수’로 책정하지만, 미국은 ‘매출액’으로 책정한다. 이와 같은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결제한 금액과 통전망에 올라가는 금액의 차액인 4,000원이 지속적으로 새어 나가고 있었다면, 관객 수와 매출액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관객 수로 책정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극장의 관객이 줄어도, 흑자로 전환! 2024년 7월 4일, 영화인연대는멀티플렉스 3사인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CGV가 깜깜이 정산을 하고 있다며 공정거래 위원회에 신고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영화 티켓의 가격은 상승했지만, 객단가(통전망에 등록되는 금액, 영수증 금액)는 오히려 떨어져 제작사 등에 돌아오는 몫이 줄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발기금의 경우 그림자 세금이라며 이후의 명확한 계획도 없이 폐지했다. 3%의 영발기금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수준이 못 될뿐더러, 독립 영화나 대학생 등의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시드머니로 사용된다. 통신과 카드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할인의 경우, 기업 간 계약이 제각각이기에 카드정산이 복잡하다. 더불어 카드 정산금은 극장으로 바로 입금되기 때문에 극장으로 얼마나 입금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이 불가능하다. 극장과 통신사, 카드사는 '영업비밀'이라는 말 뒤에 숨어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는 것. 영화진흥위원회는 이와 같은 소비의 불투명성을 해소하기 위해 조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숨겨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루빨리 통신사와 극장 그리고 영진위와의 적극적인 해명과 활동이 진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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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온기를 전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온기를 전하고 싶어요 (2024-11-11) 간가혜 | 상호문화교육강 “저는 이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저는 결혼 이주민이에요. 한국에 온 지 거의 13년이 됐지요. 제 인생의 3분의 1보다 긴 시간이에요. 모든 여성이 그렇듯 결혼은 제 인생의 제일 크고 중요한 결정이었어요. 한국과 대만은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다른 부분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래서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어도 생활하다 보면 오해가 생기곤 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아 매일 대만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큰일이 생기지 않으면 대만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한국 생활에 적응된 거겠죠. 이렇게 변한 것은 마법 같은 여정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광고 인연이란 참 신기해요. 저와 제 남편은 여행 중에 만났어요. 그때는 제가 대학생이었고 남편은 저와 인터넷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함께 하는 사이였죠. 어느 날 남편이 대만에 여행하러 왔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만나기 시작했어요. 대학 졸업을 반년 앞두었을 때 친정아버지가 남편 생일에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어요. 대만 문화에 따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석달 안에 결혼하지 않으면 3년을 기다렸다가 결혼해야 했어요. 남편은 당시 서른살이었어요. 우리는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간단히 혼인 신고만 했지요. 저는 미신을 믿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때는 제게 닥친 일들이 다 운명처럼 밀려왔어요. 남편의 존재는 아버지를 대신해 제 인생을 채워줄 것 같았어요. 결혼 후 한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활이 시작됐어요. 제 인생도 다르게 펼쳐졌죠. 한국에서 인생 2막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족들을 만났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했어요. 시댁은 부산 동래에 있어요. 동래는 참 아름다워요. 특히 시댁 옆에 공원이 있어서 봄에는 공원 길 양쪽에 벚꽃이 활짝 피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세상 모든 고민을 새하얗게 물들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육아는 간단한 게 아니에요. 특히 외국어는 영어만 할 수 있었던 내가 모국에서 숨쉬기처럼 간단한 일들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어요. 신생아처럼 뭐든지 다 도움이 필요했지요. 그런데 저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남편은 출근해야 했어요. 다행히 시부모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처음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수 없었지만, 시어머님이 저를 대신해 애를 봐주고 제가 대학에 있는 어학원에 등록해 공부할 수 있게 시간을 만들어 주셨어요.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따듯한 밥이 늘 차려져 있었죠. 광고 광고 시아버지는 한국 생활에 어려워하는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항상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으셨죠. 제가 외출한다고 하면 혼자서 길을 찾을 수 있겠냐고 용돈이 부족하지 않으냐고 걱정하셨죠. 힘든 일은 제가 하지 못하게 하고 무얼 하더라도 진심으로 저를 칭찬하고 인정해주셨어요. 부산에서 5년 동안 살았어요. 좋은 친구도 많이 만났죠. 저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에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많은 분이 시부모님과 같이 생활하기 싫다고 해요. 저는 운이 좋았어요. 시부모님과 생활했던 5년은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죠. 새로운 신분, 새로운 문화, 새로운 언어, 심지어 종종 외국인이라 오해받는 일이 생겨 슬플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시부모님은 제 상처들을 치유해줬어요. 깊고 오래된 상처들도 말이에요. 결혼은 삶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에요. 저한테도 마찬가지죠. 저는 한국에 와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저도 따듯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세상의 따듯함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요? 한국 사람들이 이주민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면 오해도 줄어들겠죠? 그러면 이 세상도 좋아지겠죠? 7년 전 남편 직장 때문에 파주로 이사했어요. 대만 친구의 권유로 파주시 무지개작은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엄마와 책 놀이’라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죠. 파주시 가족센터에서 교육받아 지금은 다문화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한 출판사의 도움으로 ‘누가 산을 베어 먹었니?’라는 대만 전래동화를 소재로 한 그림책을 내기도 했죠. 그동안의 모든 것을 감사하며 열심히 살고 있어요. 만약에 누군가 지금 나한테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하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할 거예요. 빛과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온기를 전하고 싶어요.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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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신 차별 배우는 현장실습”… 교육부장관 고발 [열아홉, 간이 녹았다 5화]
“스태츠칩팩코리아라는 반도체 후공정업체의 청년 노동자는 취업 1년 만에 간이 녹아 없어져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 화학물질 가득한 작업장, 고된 3교대 근무가 가져온 산재입니다.”(‘학습권 침해, 죽음의 현장실습’ 교육부장관을 고발한다! 기자회견문 일부) 1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 20명의 교사와 특성화고 졸업생, 유가족, 시민단체 대표 등이 모였다. 현장실습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고발했다. 이들은 교육부 장관에게 직무유기, 직권남용, 업무상 배임 혐의를 물었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방기했고 ▲참여 의무 없는 현장실습으로 직업계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하고 ▲결국 학생들에게 학습권, 건강권을 상실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과거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도 현장실습 제도에 우려를 표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5월 노동부와 교육부에 ‘파견형 현장실습 우선 중단’을 정책권고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월  ‘현장실습 제도’를 ILO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박은경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공동행동 공동대표는 현장실습 제도의 실상에 주목했다. 그는 “대중의 관심에 따라 현장실습제 대책을 마련할 뿐, 관심이 사그라들면 다시 현장실습 규제를 풀어 불법과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2005년 11월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엘리베이터 점검 작업을 하던 현장실습은 안전 장비도 없이 작업하다 4층에서 지하 1층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에 취업했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 역시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됐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뇌출혈 사고, 2012년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2014년 울산 금영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사고,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사망사건, 2016년 성남 토다이 사망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사망사건, 제주 생수업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5월에는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설비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황화수소 중독’을 의심했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관련기사 : <“마이스터고 붐” 밀어붙이는 정부… ‘다음 선우’ 없을까>) 교육부 장관 고발에는 사망한 현장실습생 유가족도 함께했다. 고(故) 김동준 군 어머니 강석경 씨는 기자회견을 위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왔다. 강 씨는 “사고 후 회사는 동준이 개인의 잘못과 불우한 가정사에 의한 개인적인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다행히 (직장 내에서 자행된) 괴롭힘이 밝혀졌고 산업재해 인정도 받았다”고 말했다. 김동준 군은 2014년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그는 괴롭힘과 중노동으로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강 씨는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었다. 동준 군은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꾸며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3학년 2학기, 꿈과 전혀 관련이 없는 육가공 공장에서 소시지를 포장했다. 열여덟의 나이에 사회에 나간 동준 군에게 선임들은 기합을 주었다. 머리 박기를 시키고, 쓰러지면 발로 머리를 밟았다. 업무 역시 살인적이었다. 잔업으로 밤 12시, 새벽 1시까지 야근을 하기 일쑤였고, 회식에 억지로 끌려다니다가 빠지면 기합을 받는 식이었다. 사망사고가 있기 전 김 군은 이러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이을재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공동행동 총무기획팀장은 “애완동물과를 전공한 학생이 통신사 전화상담센터에서 일을 하고, 원예과 학생이 선물제조공장에 가서 물건을 나누는 게 현장실습의 현실”이라며, 전공과 무관하게 학생들에 대한 ‘강제노동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준이가 경험한 현장실습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적응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둘째,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셋째, 모두가 꺼리는 일이 최약자인 그들에게 할당됐습니다. 명백히 현장실습은 교육이 아니고 가장 최악의 노동이었습니다.”(김동준 군 어머니 강석경 씨 발언 일부) 경북기계공고 졸업생 이학선 씨 역시 현장실습 나간 공장에서 처음 ‘현실’을 배웠다. 그는 상사의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동료에게 회사와 한번 이야기 나눠보라고 위로했다. 그때 형은 “회사가 과장이랑 말단 중에 누구 편을 들 것 같냐”고 답했다. 이 씨가 마주한 현실은 그런 곳이었다. “직업계고 자체도 진짜 웃깁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들은 너희 대학 못 간다고 했습니다. 효력도 없는 서약서를 (고등학교) 입학 면접 때 썼다면서요. 심지어는 취업한 친구들이 수험표 받겠다고 수능 원서 접수하려는 것도 막았습니다.” 이 씨는 교사가 학생들을 ‘현장실습장’으로 내모는 경험을 했다. 일단 일터에 “욱여넣는 식”이었다. 그것도 안전이 보장되지도, 꿈과 연결되지도 않은 노동 현장이었다. 그는 “인생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하고 희망 대신 차별부터 배우는 곳이 현장실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희망 대신 체념을 가르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고발에 참여한 고(故) 이민호 군 아버지 이상영 씨도 이날 마이크를 잡았다. 민호 군은 2017년 11월 제주 생수 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적재기 프레스에 눌려 사망했다. 이상영 씨는 직업계 고등학교 학부모를 향해 말했다. 이 씨는 “직업계 고등학교 보내더라도 대학을 보내야 한다. 빚을 져서라도 보내야 자식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호소했다. 고발에 동참한 고(故) 홍수연 양 아버지 홍순성 씨도 한마디 덧붙였다. 수연 양은 2017년 1월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실습 나간 콜센터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수연 양의 이야기는 영화 <다음 소희>(2023)의 모티브가 됐다. 홍순성 씨는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가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그때만 ‘반짝’이고 만다”며, “여전히 불법이 만연한 현장에 ‘수연이’ 같은 아이들이 더 나올 확률이 높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약 50분 가량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건물로 향했다. 총 583명이 함께 나선 고발장을 접수했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했습니다. 삶에 직면하라는 말입니다. 내 앞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라는 겁니다. 현장실습은 악습입니다. 학생들한테 일자리 문제를 떠넘기고 열악한 노동을 강요하는 나쁜 관행입니다.그걸 참고 받아들이는 게 이제껏 우리한테 주어진 역할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게 교육이었습니다. 더 이상 참고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교육을 거부하겠습니다.”(경북기계공고 졸업생 이학선 씨 발언 일부)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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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시대, AI 규제는 어디로?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4년 11월 둘째 주by 💂🏻죠셉 도널드 트럼프가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공화당이 이미 과반수를 확보한 상원뿐만 아니라 (11월 10일 기준) 하원 장악까지도 매우 유력한 상황에서 트럼프 집권 2기의 각종 정책은 이전보다 더 거침없이 실행될 것이라 예상되는데요. 오늘 브리프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향후 AI 정책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갈무리해 보겠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레거시 바이든 정부의 AI 정책은 2023년 10월 AI 행정명령(AI Executive Order)을 통해 구체화 됐습니다. 법적 구속력을 가진 연방 차원의 AI 규제로서 헬스케어부터 지적 재산권까지 다양한 영역을 다루며, AI 모델의 훈련과 테스트 과정의 공개 및 딥페이크 콘텐츠 워터마크 표식 등 투명성과 안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AI 안전 연구소(AISI)의 설립 등 전체적으로 사회적 영향과 윤리성을 고려한 AI 개발을 기조로 해온 것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지난달 바이든이 서명한 최초의 AI 국가안보 각서(Memorandum)의 경우 국가 안보 기관들의 AI 사용이 누군가의 안전 혹은 권리를 침해할 때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가령 미국 보훈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가 산하 병원에서 진단 목적으로 AI를 사용하길 원한다면 해당 기술이 특정 인종에 편향된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증명해야만 합니다. 어떻게 바뀔까: 주요 쟁점 혁신이 최고?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현 정부의 지나친 AI 규제가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수행 중이던 2020년 연방정부 대상으로 전달한 가이드는 ‘혁신과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를 피하고 AI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줄일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바이든의 AI 정책을 되돌릴 것’이라는 트럼프의 공약은 규제의 철폐 혹은 최소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트럼프 최측근들의 다양한 입장은 변수입니다. 가령 규제의 완전 철폐를 주장하는 마크 엔드리슨 (미국 최대 규모 벤처캐피털인 a16z의 수장), 기술의 빠른 발전에 대한 우려를 표해온 터커 칼슨(대표적 친트럼프 방송인), 빅테크 독점을 무너뜨리려는 J.D. 밴스 (부통령 유력), 그리고 기술 발전을 옹호하면서도 AI로 인한 존재론적 위험을 경고하는 일론 머스크 등이 있죠. 새 행정명령이 언제 어떻게 발표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바이든의 AI 정책이 백지화되더라도 별도의 가이드가 제공되기 전까지는 기존 연방 기관들은 자율성을 발휘해 바이든 정부 시절의 AI 거버넌스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앞서 언급한 다양한 입장의 인물들이 모두 동의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테크 크루즈 상원 의원 등을 중심으로 바이든 정부 AI 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NIST(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AI 안전 기준이 형평성과 공정성(equity and fairness)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좌편향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는데요. X에서 퇴출당한 이후 ‘표현의 자유’를 지속적으로 언급해 온 트럼프의 AI 정책은 정치적 올바름을 반영해 온 기존의 정책과 반대 방향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심지어 행정명령을 통해 ‘정치적으로 편향’된 알고리즘의 수정을 강제할 수 있다는 예측까지 보입니다. 주 단위 AI 정책의 심화 가능성 캘리포니아의 경우 기업이 AI 훈련 데이터와 방법 등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다양한 AI 안전 법안을 제정했으며, 이외에도 AI 기술로 인한 성우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테네시주, 그리고 고위험으로 분류되는 AI 시스템의 경우 예상 가능한 알고리즘 차별 위험(foreseeable risks of algorithmic discrimination)을 공개하도록 주법을 제정한 콜로라도 등, 이미 주 단위로 다양한 AI 규제 프레임워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바이든의 행정 명령을 백지화하면 이미 주 단위로 진행되고 있는 AI 정책이 더욱 파편화되어 복잡성이 증대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불확실한 오픈 소스 AI의 향방 예측이 특히 어려운 영역입니다. 오픈 소스는 미국이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들이 이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자국 중심 경제 성장을 공공연하게 주장해 온 트럼프의 방향성과 상충합니다. 하지만 부통령 임명이 유력한 J.D. 밴스는 소수 빅테크의 독점을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오픈 소스 AI를 옹호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며 당선에도 일조한 것으로 평가되는 일론 머스크의 프로젝트인 xAI에서 개발하는 AI 모델 Grok이 오픈 소스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향방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윤리적 AI와 이를 위한 규제 프레임워크는 당파성을 초월한 전 지구적 과제입니다. 전속력으로 돌진하려는 기업들과 정부, 학계, 시민사회 사이 균형을 맞춰가는 일은 트럼프가 아닌 누가 당선되었어도 어려운 과제였겠죠. 그런데 기사를 검색하던 중 지난 7월, 트럼프의  측근들이 당선 전부터 이미 맨하탄 프로젝트의 자율 무기 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행정 명령을 퇴고 중이었다는 워싱턴 포스트 기사가 눈에 띕니다. 다가올 미래의 서막이 아니길 간절히 바랍니다. AI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홍보해 온 앤트로픽이 팔란티어, 아마존 AWS와 함께 군용 AI 개발을 시작한다는 뉴스가 보도된 이번 주였기에 더더욱이요. 🦜더 읽어보기- ai-정책-행정명령으로-먼저-깃발-꽂는-미국 (2023-11-08)- ai-행정명령에-담긴-불균형한-목소리 (2023-11-13)- 캘리포니아 주지사: ‘규제는 필요하나, 이 법안은 아니다.’ (2024-10-07)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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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RIGHT? NEW WRITE! 지금은 뉴라이트를 바꿔 써야 할 때 (2)
*앞선 <NEW-RIGHT? NEW WRITE! 지금은 뉴라이트를 바꿔 써야 할 때 (1)> 이어 연재되는 글입니다.   3. 뉴라이트는 어떻게 이어져왔나  ‘뉴라이트 운동’이 처음 급부상한 때는 2000년대 초반이다.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하는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2005년 11월 7일 창립되었다. 이후 뉴라이트는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제시하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대안처럼 포장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뉴라이트는 전국에 지부를 창립하며 세를 넓혀갔는데, 2006년 당시 지부 창립 대회에는 이명박(당시 전 서울시장), 박근혜(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참석했다. 기업 경영자 출신으로 정치 기반이 약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런 경제 논리로 무장한 뉴라이트 성향 인사와 이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국무총리 산하 기념사업회로 대한민국 건국을 1948년으로 본다)를 출범시키고 건국 60년 기념식을 열며 뉴라이트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한나라당은 광복절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건국절을 신설하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이에 학계와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비판이 이어지자, 한나라당은 개정안을 철회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며 교과서 국정화까지 시도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일견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을 뿐, 경제·문화·언론 등 사회 전반에서 세력을 다지고 영향력을 키웠다. 이른바 ‘태극기 집회’의 확산, 한국자유회의 창립, ‘반일 종족주의’ 발간 등이 이 시기에 있었다. ‘반일 종족주의’ 발간과 같은 해인 2019년 연세대학교 류석춘 사회학과 교수는 강의 중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류 교수는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고, 함께 기소된 “'정대협이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군에 강제동원됐다고 증언하도록 교육했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류 교수는 이에 대한 반성은커녕, 본인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경희대학교 최정수 철학과 교수가 같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자 응원하는 글을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로 뉴라이트는 노골적으로 정부 기구들의 중요 직책 중 25개를 차지하고 국민을 상대로 이념 전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 나온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우리 부모님, 후보자 부모님은 일제 치하 국적이 다 일본이냐”는 질문에 “일본이지, 그걸 모르십니까”라고 비꼬며, “일제시대 때 국적이 한국이냐. 상식적인 얘기를 해야지,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4. ‘주장’을 ‘정설’로 만드는 과정, 역사 교과서  뉴라이트는 일부 개인 또는 단체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정치권에서 이를 인용하거나 광범위하게 설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정당한 역사적 해석으로 만들고 ‘정설’로 만들고자 하는 데까지 그 목표가 있다. 정설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대표적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뉴라이트 교과서 만들기’다.    우리나라는 유신독재 이전까지 민간이 만든 역사 교과서가 검정기준을 통과하면 인정하는 검정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었다. 정권 비판을 원천 봉쇄하고 유신독재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제로 되돌렸다. 이에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 포럼’은 2008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냈다. 2019년 강의실에서 “위안부는 매춘”이라고 망언했던 류석춘 연세대 교수와 ‘반일 종족주의’ 대표 필자 이영훈 교수 등이 중심이 됐다. 이 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 전 대통령의 건국과 국부 역할 등을 집중적으로 서술했다. 하지만 이 교과서는 검정받지 못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모여 만든 ‘한국현대사학회’(2011년 한국 교과서 포럼 인사들을 주축으로 만든 단체로 성신여자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소> 내 <한국현대사학회>로 위치되어 있다)에서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를 냈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였다. 이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며 거센 논란이 일었다. 역사학자들은 이 교과서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축소·왜곡하고,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친일·반공·독재를 미화했다고 비판했지만, 뉴라이트는 그런 주장이 반일·친북·좌편향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률은 0%대에 그쳤다. 이후 2015년 10월 박근혜 정권은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2017년부터 국정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또 한 번 논란이 일었는데, 이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가 탄핵되며 물거품이 됐다.  그런데 지난 8월 30일, 또다시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이 반영된 교과서가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다. 한국학력평가원에서 발간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친일·독재 미화와 일본군 ‘위안부’ 서술 축소 등 편향적 서술과 자격 요건 조작으로 물의를 빚고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며 학계 전문가와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현직 역사 교사 13명에게 의뢰해, 이 교과서에 대한 긴급 예비 검증을 실시했다. 검증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으니 교과서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 요건은 충족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3일간에 이루어진 긴급 검증만으로도 날림·불량 교과서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사태의 심각함을 강조하면서, ‘사실관계에서만 무려 300여 건이 넘는 오류가 있으며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는지 의문이 들 만큼 수준 이하의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지적된 오류는 연도나 단체명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의 오류, 일관성 없는 용어 사용, 음력과 양력 표기 오류, 명백한 오타, 부적절한 사진·도표·자료 인용, 의도적인 유도성 질문, 부정확한 서술,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 오류까지 그대로 옮긴 베껴 쓰기 등이었다. 아래는 수많은 오류 중 몇 가지 예시이다. 위의 내용은 민족문제연구소 2024년 9월 5일 '[보도자료]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문제 많다'에서 발췌했습니다.  위 자료의 3단계 논술하기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총칼을 들고 일어난 의병의 애국정신은 존경하지만, 열악한 조건으로 일본군과 싸워 이기는 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라는 예시 하나만 제시하고 ‘내가 선택한 국권 수호 운동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생각해보자’라며 그것만이 합리적인 대안처럼 오해할 소지가 많은 내용이다. 이러한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의 날림·불량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교육부 검정기준 자체의 ‘뉴라이트화’와 사실관계 오류이다. 이를 일제강점기와 현대사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내용은 민족문제연구소 2024년 9월 5일 '[보도자료]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문제 많다'에서 발췌했습니다.  2009 개정 이전의 집필 기준은 ②“일제의 경제정책에 따라 경제상의 지표에 변화가 보였으나, 이는 식민지 수탈정책의 일환이었음에 유의한다.”라고 하여, 일제강점기 사회경제적 변화를 식민지수탈론의 입장에서 설명하라는 지침이었다. 그런데 2009 개정에서 추가로 마련한 ⑥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사회경제적 변동 및 교통·통신의 발달과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의식주 생활에 변화가 나타났음을 서술한다.”라고 하여, 근대적 변화에 기술내용의 초점을 맞추도록 하였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는 집필 기준 ⑥을 활용하여 식민지근대화의 문제를 마음껏 기술하였다. 또한 2022 개정에서는 ‘수탈’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가치중립적인 ‘변화’라는 용어로 대체하였다. 변화는 어느 시대에나 있는 통시대적이며 비역사적인 용어이다. 일제강점기를 파악하는 핵심 키워드는 변화가 아니라 ‘수탈’이다. 징병·징용 및 일본군‘위안부’ 등 강제동원이라는 ‘인적 수탈’과 각종 물자의 공납 공출이라는 ‘물적 수탈’이 일제강점기 식민통치를 파악하는 핵심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모두 빠진 평가 기준이라는 것이다.   2022 개정은 2009 개정에 있는 식민지수탈론의 흔적마저 삭제함으로써 일제강점기를 식민지근대화론의 입장에서 서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이번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가 식민지근대화론의 입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자제한 까닭은 ‘친일 미화 교과서’라는 사회적 비난을 모면함으로써 일단 검정을 통과하고 보자는 속셈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정된다.   핵심적인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검정기준 자체가 달라지면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단계적으로 역사가 왜곡되고 일제강점기 수탈과 친일행위가 미화가 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또한 박근혜 정권 당시의 교학사 교과서가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실제 교육 현장에서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는다고 해도,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 내용이 정당성을 받아 인용되고 활용될 여지도 충분하다. 역사 지우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5. 지금 필요한 건 뉴라이트(New-write)!  뉴라이트는 기존의 상식과 통념의 선에 있던 역사조차 반대하며, 이를 역행하고 왜곡된 역사관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퍼뜨리고 있다. 단편적으로 지금과 같이 뉴라이트 사관을 가진 자들이 역사 관련 주요 기관의 핵심에 자리 잡고, 수많은 문제를 가진 역사 교과서가 청소년들의 수업 시간에 활용된다고 생각해보자. 단순히 1-2년이 아닌 한 세대의 역사관이 왜곡되고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역사를 알지 못하고 뉴라이트 역사관이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 건강한 토론과 비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는 ‘해석’의 영역에 들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자유’라는 이름으로 마음대로 읽히고 써지면 안되는 영역의 학문이다. 적어도 실존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마음대로 편집하거나, 민중들이 이끌어온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가치 함부로 폄훼하고 특정 인물의 죄과를 덮어 우상화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 해석이 아닐 것이다.  사다리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 역사가의 말처럼 역사관이 어떻게 올바로 기록되고, 해석되어야 하는지 직접 탐구해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뉴라이트 역사관이 어떠한 시선으로 역사를 재단하고 있는지, 그 의도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부터, 특정 역사적 사건에 투영되어 있는 그들의 왜곡 논리의 쟁점을 올바른 역사관의 입장에서 다시 써보고자 한다. 우리의 이러한 역사 연구는 올바로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는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아래는 광복회가 지난 8월 발표한 ‘9대 뉴라이트 정의’다. 이를 세부 쟁점으로 삼아 탐구해보고자 한다.  <광복회 9대 뉴라이트 정의 ‘식민지배 합법화’ 꾀하는 일련의 지식인이나 단체 등> 1.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 2. 1948년을 ‘건국절’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 3.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 4.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고 ‘임의단체’로 깎아내리는 자나 단체 5. 식민사관이나 식민지 근대화론을 은연 중 주장하는 자나 단체 6. 일제강점기 곡물 수탈을 ‘수출’이라고 미화하는 자나 단체 7. 위안부나 징용을 ‘자발적이었다’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 8.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할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 9. 뉴라이트에 협조, 동조, 협력하는 자나 단체    서울-인천 7개 대학의 대학생들이 모여 뉴라이트를 반박하는 연구 모임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연구를 진행해 <NEW-RIGHT? NEW WRITE! : 뉴라이트를 바꿔 쓰다> 역사 워크북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워크북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뉴라이트의 논리를 보고, 올바른 역사를 생각할 수 있게 꾸린 활동 위주의 책입니다. 발간된 워크북의 내용도 캠페인즈에 앞으로 업로드 해보고자 합니다. 더해서 다가오는 11월 23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워크북 발간을 기념하는 '사다리 북 페스타'가 개최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광복회가 선정한 뉴라이트 9가지 기준 중 가장 논쟁이 많을 것 같은 주제는 어떤 것인가요? 그 이유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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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당선, 빌 게이츠의 비전, 대런 아세모글루의 제안
기후 위기 해결에 기후 기술(Tech)은 필수 기술은 대개 영리 기업이 주도해서 만든다. 오픈AI 처럼 비영리 단체가 만드는 경우도 있겠으나, 이는 극히 드문 사례다. 무엇보다 비영리를 표방한 오픈AI 조차 영리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비영리의 구조로는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개선을 위한 사용자 확보가 쉽지 않다. 안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영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영리 조직이 만들어 내는 기술은 반드시 필요하다. 가끔보면 영리는 무조건 적이고, 없어져야 하고, 그들이 만드는 기술조차 무조건적인 허상이다라고 보는 극단적인 시각들도 있던데 나는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현대 환경 문제 해결에는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적 환경 문제는 탄소 배출이다. 탄소 배출 제로(Ø)를 의미하는 넷제로가 국제사회 목표 중 하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넷제로 달성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량 중 50%는 현대에 없는 기술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기후 기술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린피스나 세계자연기금(WWF),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가 그런 기술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애초 그런 기술 개발이 그들의 역할도 아니다. 그들의 역할은 기업을 감시하고, 그들이 만드는 환경 오염을 고발하고, 시민들의 인식을 깨우고, 기업 변화에 동참하도록 촉구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후 스타트업의 기술이나 투자 동향 등에 관심을 두고 보는 편이다. 어떤 기업이 어떤 기술을 개발했고, 어느 투자자 혹은 투자 기관으로부터 어느정도 금액을 투자 받았는지, 그 투자사의 포트폴리오는 뭔지, 왜 그렇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는지, 투심 보고서는 없는지 등을 본다. 글로벌과 국내 모두 보는 편이다. 그렇다고 기술 낙관론자도 아니다 빌 게이츠, “탄소만 제로(Ø)로 만들면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기술 낙관론자 혹은 찬양론자는 아니다. 기술이 구원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술 낙관론자들에게 노아의 방주와 방향키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기술이라는 배에 사람들을 태우고 스스로가 방향키를 쥔 선장이 되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빌 게이츠(Bill Gates)다. 그가 기술적 업적을 이룬 것은 맞다. 또한, 그가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가 만든 윈도우와 익스플로어로 인류는 전에 없던 정보 교류를 할 수 있었다. 현재의 메타, 틱톡, 유튜브도 결국 그의 혁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글을 쓰고, 인터넷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그 혁신의 수혜자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인하지 않는다. 이런 혁신으로 인해 빌 게이츠는 막대한 부자가 됐다. 10년 연속 세계 최고 부자 순위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모두가 그의 말에 주목했다. 다음엔 뭘까. 다음엔 뭘까. 이러한 호기심과 기대감, 또 그가 가진 막대한 부는 그의 말에 권위를 부여했다. 그가 여름에 추천하는 책은 바로 번역되어 출판되거나 베스트 셀러가 된다. 그의 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2020년 10월 <How To Avoid A Climate Disater>를 발간했다. 한국에선 2021년 2월에 곧장 번역 출간됐다. 그는 책을 통해 각각 산업이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을 소개하며 그것이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그 배출량을 제로(Ø)로 만드는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 기술들을 개발하면 탄소 배출량을 제로(Ø)로 만들 수 있고,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제시한 기술들은 대략 이렇다. ◼︎ 탄소 배출 없이 생산된 수소, 전자 연료, 차세대 바이오 연료 ◼︎ 제로 탄소 시멘트, 제로 탄소 철강, 제로 탄소 플라스틱 ◼︎ 차세대 핵분열, 핵융합 ◼︎ 탄소포집, 인공 고기, 가뭄과 홍수에 강한 식물・작물 그는 탄소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는 데는 정부 정책, 첨단 기술, 혁신적인 신제품, 그리고 수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제품을 전달하는 민간 시장의 능력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해야 하는, 보다 거시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¹고 말했다. 그는 몇몇 사고로 시장의 혁신과 능력 개발 기회를 저버리는 것을 비판한다. 대표적으로 원전이다. 그는 “원자력은 자동차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원자력은 그 어떤 화석연료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을 죽인다. 이와 같이 우리가 자동차의 문제점들을 개선한 것처럼 원자력발전소도 문제를 하나씩 분석한 다음, 혁신으로 해결하며 개선해야 한다.”¹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스리마일섬(Three Mile Island), 소련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치명적인 문제를 드러낸 것은 맞지만,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을 자체를 중단시켰다며 혁신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 혁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죽어가던 스리미일섬의 원전을 살렸다. 마이크로소프트, 스리마일섬 원전 재가동에 2조 1천 억 원 투자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 SMR 기공 시작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2028년부터 20년간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16억 달러(약 2조 1천억 원)이다. 계약 이유는 급증하는 AI 데이터센터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8년부터 원전으로 생산된 에너지를 공급받을 예정이다. 콘스텔레이션 에너지는 미국 스리마일 섬에 원전 1호기를 보유하고 있다. 원래 2호기까지 있었으나, 1979년 3월 미국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해 2호기 가동이 중단됐다. 당시 주민 10만 명이 긴급 대피해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후 1호기는 계속 가동을 하다가, 2019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가동이 중단됐고, 이번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계약으로 재가동 하게 됐다. 빌 게이츠의 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친원전주의자다. 그는 2008년에 원자력 발전 회사인 테라파워라를 설립했고, 현재 이사회 의장(ChairMan of The Board)으로 활동 중이다. 테라파워는 지난 6월 18일,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에서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4세대의 첫 삽을 떴다. 빌 게이츠는 해당 기공식에서 “안전하고 풍부한 탄소제로 에너지를 향한 큰 발걸음"이라며 "미국 에너지 미래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공을 시작한 SMR의 완공과 가동 목표는 2030년이다. 테라파워는 “완공되면 최대 500MW(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는 최대 40만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략량”이라고 설명했다. 위험한 빌 게이츠의 프레임, 탄소 배출만 봐라 위험한 빌 게이츠 의제, 탄소만 제로(Ø)면 된다 위험한 빌 게이츠의 비전,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 탄소 배출 제로(Ø)사회 빌 게이츠가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프레임은 ‘탄소 배출’에 한정되어 있다. 광대한 기후위기 문제 중 탄소 배출만 보이는 프레임을 가진 것이다. 제한된 프레임에서는 제한된 의제만 나온다. 그가 제시한 기술과 행보에서 탄소 제로(Ø)를 강조하는 이유다. 그에게 환경 문제는 탄소 배출만 제로(Ø)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와 테라파워가 스리마일 원전과 SMR을 통해 안정적으로 무탄소 에너지를 공급받고, 공급한다면 빌 게이츠의 말에 더욱 힘과 권위가 생길 것이다. 자신이 제시한 프레임 안에서 기후위기의 원인인 문제를 해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전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전력난을 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탄소 제로(Ø) 프레임과 그의 솔루션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의 프레임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를 기반으로 그가 말했던 무탄소 철강과 시멘트, 플라스틱 개발에 더욱 앞장설 것이다. 위험하다. 빌 게이츠의 주장은 공장 연기만 없으면 환경문제는 해결된 거다라는 말과 같다. 공장에서 나오는 오폐수, 그로 인한 수질 오염, 수중 생물 사망, 토지 오염, 인근 숲 생태계 파괴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굴뚝 연기가 나지 않으니, 그 연기가 나지 않는 공장은 무수히 지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공장과 그 공장에서 만드는 생산품에 사용되는 물질 발자국과 그 과정에서 파괴되는 생태계는 그대로 둔채 말이다. 빌 게이츠의 비전은 공공선이 아니다 빌 게이츠의 프레임과 의제가 위험한 이유는 탄소만 제로(Ø)면 철강, 시멘트, 플라스틱, 바이오 연료, 인공 고기 등을 무한정 생산하고 소비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른 원인들을 지워버린다. 탄소만 제로(Ø)면 계속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활을 멈추지 않아도 되니 인류에게 도움이 된는 일종의 공공선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하는 것이 인류에게 좋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빌 게이츠의 비전은 공공선이 아니다. 빌 게이츠가 원전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 건 인류의 전력난이 아니라, 그저 AI 발전에 필요한 전력 공급 문제일 뿐이다. 그저 자신의 이상과 비전인 무탄소에 국한하여 기후문제를 기술 혁신에만 의존해 해결하고, 그 기술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전을 끌어들인 것 뿐이다. 이처럼 빌 게이츠 같은 기술 낙관론자들은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추진한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기술과 혁신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전제로, 막대한 자본을 들여 어떻게든 기술을 개발하려고 한다. 또한, 그 기술의 실증을 성공시켜 자신의 말의 권위를 부여하고,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이러한 인식을 확장시킨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프레임과 그 의제만 해결하면 된다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빌 게이츠가 책, <팩트풀니스(FACTFULNESS)>를 미국 대학교 졸업생 전원에게 선물한 건 이미 유명하다. 책은 우리의 인식과 다르게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빌 게이츠는 팩트풀니스 리뷰에서 “팩트풀니스는 환상적인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Factfulness is a fantastic book, and I hope a lot of people read it)”고 말했다. 팩트풀니스는 편협한 근거만을 취사 선택해 세상이 더 좋아지고 있는 왜곡된 시야를 만든다고 비판받는 책이다. 그는 팩트풀니스 뿐만 아니라,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역시 전 세계 모든 대학생이 볼 수 있도록 eBook을 무료로 공개했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기후재앙을 피하는 데는 기술과 정책에 엄청난 혁신이 필요하며, 젊은 사람들이 특별한 역할을 해야 한다” 라며 “제로 배출은 인간이 한 일 중 가장 어렵겠지만, 나는 낙관적이다. 젊은이들이 이 문제에 동참한다면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다”*며 책 선물 이유를 말했다. 두 선물을 보고 개인적으로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탄소 제로(Ø) 기술이 필요하고, 그 기술은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에 기술해 놨으니, 이 기술들을 개발해 <팩트풀니스>의 주장처럼 세상을 더 좋게 만들자”고 말하는 듯이 들렸다. 이런 행보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고, 영리, 비영리,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빌 게이츠에게 매료 됐다. 국내 환경단체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  “협소한 비전은 위험하다. 더 많은 담론을 만들고 네러티브를 바꿔야 한다.” 202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우리가 하나의 아이디어나 협소한 비전에 고착되어 있다면, 많은 경우에 이것은 선택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보다 이것은 의제 설정력과 사회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아이디어와 비전을 우리에게 부과했기 때문이다.”² 라고 말했다. 또한, “이 상황을 고치려면 내러티브를 바꾸어야 한다. 즉 현재의 비전을 분석해 이것이 유발하는 비용을 드러내고 테크놀로지의 미래에 대해 지금과 다른 대안을 보여주는 데 더 많은 담론과 관심을 할애해야 한다.”²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책을 통해 사회적 의제와 비전의 설정을 사회적 권력이 가진 사람들이 주도했고, 그 비전 아래 발전한 테크놀로지는 소수의 권력자들의 배만 불렸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의제를 더욱 확장시키고 넓히기 위해 다른 힘있는 집단과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의 권력자들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굉장한 부를 소유하고, 그 부를 기반으로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사회적 사안에 큰 발언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² 그들이 자신들이 가진 ‘하나의 아이디어’를 네트워크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확장시켰고, 그것을 비전으로 만들어 국민들을 하나의 프레임에 가두고 설득 권력을 발휘해 반박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수 권력자가 만들고, 확장시키고, 설득시킨 프레임과 의제로 개발된 기술과 혁신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았으며, 그렇게 해서 배가 부른 건 그 프레임과 의제를 만든 소수 권력자들 뿐이었다고 말한다.  현대 AI의 발전 역시 이런 양상으로 간다는 게 그들의 경고다. 소수 권력자가 만든 프레임과 의제에 의문을 갖지 않으면, 불평등과 환경 문제의 악화를 불러오기 때문에, 소수가 만든 프레임과 의제, 비전에 매료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프레임과 그 프레임 안에서 보여지는 세상이 전부이고, 자신들이 만들려고 하는 기술만이 유일한 대안인냥 말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밀어 붙이고 싶은 프레임과 대안일 뿐.  실상 인류에게는 그들의 프레임과 대안을 넘어서는 무수히 많은 다른 선택지가 있으니, 선택지들을 두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담론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비전, 위험한 사회, 위험한 시민 2024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오는 2025년부터는 트럼프가 다시 미국의 대통령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특이한 점은 실리콘 밸리였다. 실리콘 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는 민주당 텃밭 지역으로, 이 지역 기업의 수장들 역시 전통적으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실리콘 밸리의 다수 억만 장자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고 ‘실리콘 밸리 vs 실리콘 밸리’ 혹은 ‘오픈AI・MS・아마존 vs 메타・애플・구글’ 이라며 대선을 바라보기도 했다. 민주당 해리스 지지자들은 AI 속도 규제를, 공화당 트럼프 지지자들은 AI 혁신에 속도를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실리콘 밸리 억만 장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이 신기했다. 이는 곧 내부 직원의 반발과 소비자 반발을 동시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7년 우버(Uber)의 창업자이자 CEO였던 트레이스 칼라닉(Travis Kalanick)이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에 합류했다가 20만 명의 소비자가 탈퇴하고 우버 직원들이 반발해 사퇴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실질적 위험에도 실리콘 밸리의 일부 거물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건 AI 발전 규제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AI 규제 철폐를 주장했고, 이것이 일부 실리콘 밸리 억만 장자들의 이해관계에 더 맞았던 것이다. AI 발전에 얼마나 사활을 걸고 있고, 얼마나 큰 기대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승리는 모두가 알듯이 트럼프이고, 향후 AI 규제는 제한 없이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여파는 국내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쟁에서 뒤쳐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아마 이에 대한 담론을 준비할 새도 없이 속도가 붙을 것 같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비전에 사회가 단단히 홀려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그 비전은 기업계와 테크 분야의 지배층이 자신의 부와 정치 권력, 사회적 지위를 한층 더 높이려는 계획을 밀어붙이는 데 도움이 된다. (권력과 진보/ p.50) 지배층은 자신에게 좋은 것이 곧 공공선에도 최선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의 고결한 경로가 모종의 고통을 유발한다 해도 진보를 위해 충분히 치를 가치가 있는 비용이라고까지 믿게 될 수도 있다. 고통을 겪고 비용을 떠맡게 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권력과 진보/ p.50) AI가 인류에게 어떤 혜택과 폐해를 가져올지 아직 그 누구도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폐해는 일부 사람들이 지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짊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산업혁명의 혜택으로 경제가 발전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인류 경제가 더욱 획기적으로 커지고 전에 없던 생활을 누리는 것은 맞지만, 그 비용인 불평등과 기후위기 역시 함께 겪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더욱 많은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 소수 빅테크와 경영진, 자본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서, 그들이 하는 것이 공공선이라는 비전에 이끌려 가는 게 아니라. AI를 비롯한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되어야 하는지 이야기 해야 한다. “이기적이고 협소한 비전으로 갈지 더 포용적인 무언가로 갈지도 “선택”이다.”² 개인적으로 기술 낙관론자들이 만들어 가는 비전은 위험한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이 아닌 힘있는 한 사람이 원하는 비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비전을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그런 비전을 설파하는 소수에게 더 많은 발언권과 권위,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회는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런 비전과 사회를 멀뚱히 서서 지켜만 보는 시민은 더더욱 위험한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비전과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지극히 힘과 권력이 없는 시민일 뿐이다. 대런 아세모글루의 제안처럼 일부 기술 낙관론자들의 프레임과 의제, 비전에서 벗어나 더 많은 대안에 대한 담론을 활발히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게 트럼프 시기에 빅테크를 마주할 시민들의 의제라고 생각한다. 1)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빌 게이츠/ 김영사/ 2021) p.19, 126 2) <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생각의 힘/ 2023) p.51, 111, 151 * 전문을 다소 축소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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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없는 대통령의 말… “정치적 무책임 몸에 뱄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대통령실에서 약 140분간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견을 앞두고 회견 시간이나 분야·개수 등 제한 없이 모든 사안에 대해 답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 앞서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어진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26개의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실이 강조했던 것처럼 앞선 기자회견과 비교했을 때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질문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반전 없는 맹탕 회견’,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2년 6월 53%를 기록했던 지지율은 임기 절반 만에 17%(8일 기준)까지 하락했다. 지난 2년 반 대통령은 어떤 말을 했을까. 또 그의 말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6일 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이라영 문화평론가(이하 ‘이라영 작가’)를 만났다.  그는 <말을 부수는 말>,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타락한 저항>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권력의 말’을 해체하고 정확한 언어로 현실을 문제를 꼬집는 데 주목했다. “용산으로 대통령실 옮길 때 그랬잖아요.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이전한다고. 그런 핑계를 댔는데 이후에 거부권을 얼마나 남발했어요? 군사독재 이후로 이보다 더 제왕적 대통령이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실 이전을 공식화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앞세웠다. 그러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 이유에서 ‘소통 미흡’은 3순위 안에 번번이 들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묵살됐어요. 특히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요.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과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정치가 실종됐다는 거죠.” 이라영 작가는 참사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권력의 성격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묵살(默殺)의 ‘살(殺)’이 살인(殺人)의 ‘살(殺)’과 같다”며, “묵살은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의 행위이기도 한데, 이를 참사 유가족에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지적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지난달 25일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마주하는 질문들’ 포럼에 참석한 최성용 성공회대 연구원(국제문화연구학과 박사 수료)은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애도를 두고 ‘정치 편향적이다’라면서 분향소를 철거하거나 강제로 이전시킬 수 없죠. 우리가 어떤 리본을 하나 다는 것도 눈치를 봐야 되고, 리본 문구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이거는 애도가 아니죠. 권력 행위죠.” 그는 “참사 대신 사고라 명명하고, 희생자의 영정 사진과 위패가 없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정부의 애도는 다분히 형식적이었고 그 내용이 텅 비어 있었다”며, “참사 피해자의 존재를 없애고 침묵시켰다”고 비판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158명이 사망했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참사 74일 만에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 지자체, 소방 등 각 기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들의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전파 지연, 협조 부실, 구호 조치 지연 등이 참사 원인이라고 밝혔다. 책임자들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만 유죄를 받았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관련자들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권력자들이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말을 남용하면서 정치적 무책임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는 그냥 거대한 사법기관만 (남아) 있는 거죠. 사회 정의는 법적인 유무죄 안에 갇히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되면서, 윤리라는 세계가 없어져버렸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참사가 발생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의 무책임으로 결국 시민들이 희생된다”며, 사회의 고통을 방치하는 권력자들에게 “정치적 책임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는 또 있다. 지난달 1일 국군의 날에 열린 대규모 퍼레이드다. 그는 2년 연속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진행했다. 군은 이날 다양한 군 장비와 병력 등을 선보였다. “국군의 날이라고 퍼레이드를 하면서 정작 억울하게 죽은 군인에 대해서는 덮으려고 하고 밝히지도 않아요. 군 사기를 걱정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죠. 정부는 군 사기를 걱정하지 않아요. 권력의 안위를 걱정하는 거죠.” 윤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했다. 그는 ‘선제 타격’, ‘압도적 전쟁 준비’, ‘확전 각오’ 등 전시 상황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강조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이 결국 국민들에게 ‘집단적 불안’을 조장해 사회 부정의를 가렸다고 꼬집었다. “사회를 전시 분위기로 몰고 가면서 차별을 더 강화하고 있어요. ‘지금 전쟁 나게 생겼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어?’ 하면서 (다른 문제들을) 사소화시키는 거죠.” 권력자의 외면과 차별로 결국 ‘사과’가 사라진 세계가 도래했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단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참사나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서 이상한 ‘말’이 탄생한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데 사과를 해야 하는 자리에 섰어요. 그때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유감입니다’ 이렇게 말해요. 사과하기 싫으니까 에둘러서. 이게 그냥 공직자들의 언어가 돼버린 것 같아요.” 유감(遺憾)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이라영 작가는 권력자가 타인의 마음을 ‘섭섭’하게 만들어놓고, 자신이 도리어 유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 다름 아닌 ‘권력 집단’이라고 말했다. “언어는 그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쓰면 그냥 그 사회에 그냥 굳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점점 사람들이 ‘유감입니다’를 사과의 언어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정말 우리 사회의 언어를 망치고, 문해력을 교란시키는 주범이 누구인가 하면 결국 ‘권력집단’이에요.” 교육부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 소수자’ 용어를 삭제하고,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자’를 ‘근로자’로 변경했다. 이에 당시 인권위는 “우리 사회의 인권 담론을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는 노동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근로자는 조금 더 사용자의 입장에서 수동성이 부각됩니다. 이를 굳이 바꾸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노동자의 주체성, 독립성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거죠.” 말을 바꾼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바꾸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이를 활용해 차별을 강화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권력 집단의 말은 보수적이다. 그들이 활용했던 말과 언어를 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사회적 소수자, 피해자 등은 자신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끊임없이 찾는다. 기존의 문화에서는 너무 평범한 말이라고 해도, 차별이나 비하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는 권력의 위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 표현들을 경계해요. 예를 들면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하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젠더들의 관계가 모두 평등해야 성립할 수 있어요.그런데 ‘젠더 권력’, ‘젠더 폭력’, ‘젠더 차별’ 이렇게 사용하는 게 더 정확한 상황에서, 뭉뚱그려 ‘젠더 갈등’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면 말에 권력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거든요. 지역 ‘갈등’도 그렇고요. 저는 권력이 행하는 차별과 폭력을 순화해주고 싶지 않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우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표명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정부 아래 ‘여성혐오 범죄’가 어떻게 인정될 수 있겠냐고 탄식했다. 구조적 성차별 없다고 했으니 여성혐오는 검증될 수도, 인정될 수도 없다. 따라서 ‘여성혐오 범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잇달아 발생하는 교제폭력, 교제살인, 여성혐오 폭행 사건 등은 모두 개인화된다. 즉, 별난 가해자가 저지른 기행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17%라는 지지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민심을 얻지 못했다. 탄핵론에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라영 작가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이렇게 나와도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같은 분위기가 형성 안 되잖아요. 왜냐하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니까요. 이쪽을 끌어내리면 또 누구를 앉힐까. 잘 모르겠어요. 이게 사람들을 되게 절망적이고 무력한 시민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이라영 작가는 “정치가 고통을 외면하는 세상”에 돌파구는 결국 연대라고 강조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쉽게 묻힐 수 있어도, 여럿이라면 권력에 견줄 ‘힘’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이 품은 모방 욕구는 아름다움을 복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무엇을 복제할 것인가. 권력화된 아름다움인가 분배하는 아름다움인가.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동경이 나 이외의 타자와 동등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 <말을 부수는 말>(이라영, 한겨레출판, 2022) 중에서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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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결합 된 미래, 알 수 없음을 준비할 시간 - 11월 더슬래시 편집인의 글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오케이 구글, 오늘 날씨 어때?” 하루를 시작하며, 거실에 놓여있는 기기에 말을 겁니다. 출근길에는 실시간으로 추천되는 뉴스를 보고, 오후에는 AI 자동 번역 기능을 이용해 중국 쇼핑몰 소비자 센터에 배송 문의를 합니다. 운전할 때는 자동 주행 기능을 켜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현란하게 오가던 발을 쉬기도 합니다. 작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AI 기술이 삶의 여러 영역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발견합니다.   인공지능을 수년간 연구해 온 노스사우스웨일스대 토비 월시 교수는 책 <생각하는 기계(2018)>에서 인공지능의 시작을 놀랍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식논리학의 토대를 닦은 기원적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간이 사고하고 추론하는 방식을 가시화하려는 노력이 인공지능의 근간이라는 의미에서 말이죠. 월시 교수는 이러한 논리학의 노력이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에 와서 ‘계산의 형식(기호)’으로 표현되면서, 컴퓨터가 ‘생각’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를 제공했다고 말합니다.    생각을 기계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해 온 역사, 그리고 생각을 ‘계산’하기 위해 무던히 시도했던 역사의 줄기에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급속도로 다가온 기술, 그래서 온통 미지의 영역이며, 심지어는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인상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려 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공지능과 결합 된 미래들에는 ‘알 수 없음’이 강하게 존재합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가능성이 너무 넓고 무한해서 그 결과 값이 무엇일지 전혀 예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1월의 더슬래시는 AI와 결합된 미래, 그 ‘알 수 없음’을 준비할 시간을 다룹니다. 보람, 함영기, 문아영님이 필진으로 참여해주셨어요. 먼저 노동조합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보람님은 AI가 노동 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와 관리’의 측면에서 짚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분업화를 통해 노동자들을 ‘몰라도 되는’ 존재로 제한하고,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삼았던 시절을 소환합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당신은 상위 10%입니다.” 등의 방식으로 평가받는 현실을 들며, 인공지능은 노동자를 더 ‘모르는 존재’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았는지, 평가에 반론하거나 불평등한 인식에 저항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로요. 그래서 AI로 더욱 좁아지고 불평등해질 노동의 미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힘을 비판적 교육을 통해 쌓아갈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누구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요.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정책을 담당했던 함영기님은 교육과 기술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최근 교육부는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는 도입하겠다며,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 학습 지원 도구’이자 ‘똑똑한 보조교사’로 기능할 것이라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함영기님은 이를 “교육에서 기술을 활용할 때 그 기준과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오래된 논쟁 중 하나”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AI 교과서를 도입하냐 마냐를 놓고 대립하기보다 넓고 길게 고민할 시간을 벌자고 이야기합니다. 윤리적 문제는 없을지,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지는 않을지, 교육의 본질을 잃지는 않을지 ‘알 수 없는 것’이 많다고요.    문아영님은 2024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인공지능의 책임있는 군사적 이용에 대한 고위급회의(REAIM 2024)’에 참여했던 경험을 나누며, AI가 무기와 결합하는 세계에서 안보란 무엇이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수많은 죽음을 ‘부수적 피해’로 치환하며 비통함을 지우는 시대에 ‘인간다움은 무엇으로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음의 폭풍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토비 월시에 따르면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점차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꾸어 버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긍정적일 수도 아주 비극적일 수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 수 없음’이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 말입니다. 애써 알 수 없음을 알아갈 시간, 그래서 극적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멈출 수는 없더라도, 찬찬히 기억하고 차분히 결정할 여유를 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가연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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