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내년 상반기 ‘지금배송’ 서비스 도입을 예고했다. 직관적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문 후 1시간 이내 도착을 담보하는 배송 시스템이다. 이는 사실상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의 경쟁을 예고한 것이며, 이로써 본격적으로 이커머스 업계의 ‘더 빨리 배송’ 전쟁이 시작되었다.
빠름이 강요되는 온라인 쇼핑
인터넷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2~3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지금까지의 평균이다. 이 공식은 이제 과거가 될 것이다. 이커머스 업계의 ‘빠른 배송 전쟁’이 임박한 이 순간,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왜 우리에게는 ‘빠른 배송’이 필요할까.
‘빠름’은 편리하다. 물건을 구매하고 당장 몇 시간 안에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현된다면 이는 단연 ‘혁신’처럼 느껴질 것이다. 빠른 배송이 가능한 상품의 종류는 확장될 것이고 우리는 점점 빠른 배송에 익숙해질 것이다. 신선식품, 음식, 다양한 공산품 외에 가전제품까지 빠른 배송의 영역으로 들어서니 이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구매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질 것이다.
필자 주변에서 쿠팡의 ‘와우 회원’으로서 ‘로켓배송’을 극찬하는 이들은 주로 부모나 직장인이다. 당장 내일 아이의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구매해야 할 때, 회사에서 급하게 어떤 물품을 주문해야 할 때 ‘빠른 배송’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편리한 로켓배송 서비스에, ‘쿠팡플레이’, ‘쿠팡이츠 무료배달 서비스’ 등 쿠팡이 와우회원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까지 덤으로 딸려오니 많은 이들이 쿠팡을 필요로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빠름’은 ‘필요’가 아니다. ‘선호’의 문제일 뿐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편리함 뒤에 숨겨진, 그러나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우리 아빠가 로켓배송 연료가 됐대’. 쿠팡CLS 택배노동자 故정슬기 씨의 어린 자녀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친에게 한 이야기다. 故정슬기 씨는 지난 5월, 쿠팡CLS의 하청 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택배기사로 쿠팡 물품을 전담배송했다. 고인은 평소 하루 평균 10시간 30분 주 6일 노동을 수행했다. 택배노동 일을 시작한지 14개월 만에 결국 과로사로 죽음을 맞이했다. 쿠팡은 ‘하청 대리점’ 문제이지, 계약과 업무 지시에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다. 이에 유족은 CLS직원의 업무지시에 ‘개처럼 뛰고 있다’는 고인의 카톡 내용을 공개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터질 때 하청 대리점의 문제라며 발빼는 것은 쿠팡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최근 MBC가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2024년 7월과 8월 2개월 동안에만 101명의 노동자가 119에 실려갔다. 폭염으로 열악한 쿠팡 물류센터 노동환경 속에서 실신, 어지럼증, 마비 경련, 호흡곤란, 온열질환 등. 1년간 출동기록을 살펴보면 256명의 노동자가 119에 실려갔고, 심정지 위급 환자만 7명이다. 공식 기록이 이정도면, 쿠팡이 입막음하며 기록되지 않은 과로로 쓰러지는 노동자의 수는 더욱 많을 것이다.
‘쿠팡의 택배노동자가 로켓배송의 연료가 되었다’는 끔찍한 이야기는 현재진행중이다. 쿠팡이 아무리 부정해도 이것이 현실이다. 사실 많은 시민들은 이미 쿠팡의 열악한 택배노동 환경과 반복되는 과로사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편리를 추구하는 선택은 언제나 지표가 되고, 기업 경쟁은 이 구조를 과열시킨다.
이용자가 원하는 것은 ‘죄책감’ 대신 더 나은 선택지
최근 CJ 대한통운 또한 ‘주 7일 배송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쿠팡의 빠른 배송 시스템과 경쟁하기 위해 내놓은 절박한 전략이다. CJ 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은 극심한 과로사가 우려된다고, 이 방침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추가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당한 이야기다. 빠른 배송의 본보기인 쿠팡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와중에 ‘더 빨리’, ‘더 많은’ 배송 서비스가 출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빠른 배송’이 배달노동자의 과로사와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쿠팡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빠른 배송을 위한 인력을 늘리고 산재처리 등 노동자 지원에 투자를 하는 대신, 이용자에게 죄책감을 떠안기는 방향을 선택했다. 쿠팡과 경쟁하는 기업들은 쿠팡의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강요된 서비스 속에서 이용자의 선택은 점점 무거워지고, 요금은 오른다.
기업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전략을 세우지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우리 이용자의 몫이다. 쿠팡은 한국 사회에 전무한 시스템으로서의 로켓배송을 앞세웠다.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같은 시스템을 끼워넣고 유료회원 멤버십 가격을 4,89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했다. 네이버 또한 ‘지금배송’ 시스템 출시를 앞드고 유료회원 확보를 위해 오는 26일부터 ‘네이버플러스’ 가입자에게 넷플릭스 구독권을 제공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쿠팡과 같이 이용자 확보를 위한 출혈 경쟁 후, 가격 인상을 통해 손해를 메꾸려는 전략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빠른 게 능사가 아니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듯하면서 선택을 강요하고 야금야금 비용을 늘리는 것도 결코 이용자 혜택이 아니다. 이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편리할 뿐만 아니라 안전하고 인간적인 서비스다.
코멘트
8사실상 그렇게 긴박하게 필요한 것은 없는데 서로가 너무 빠른 것에만 익숙해져서 점점 더 여유가 없는 거 같아 아쉽습니다
빠름은 필수가 아니라 선호라는 점에 동의해요. 돈으로 편리함을 사는 데 대해 사람들이 인지하면 좋겠어요. 준비물, 회사 필요 물품 등 말씀 주셨는데, 그것을 직접 사러갈 만한 넉넉한 시간과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시간과 여유는 포기하고 돈으로 배송기사를 사고 있잖아요. 그런 데 대한 인지가 사회 전체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네이버가 새롭게 내놓은 서비스도 결국 혁신이 아니라 노동자 쥐어짜기의 다른 방식이라고 보여지네요. 이게 플랫폼 노동의 결말인 건가 싶기도 합니다. 결국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은 보장되지 않고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노동자를 더 착취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느낌이네요.
편의를 위해서 인권을 뭉개버리는 형세입니다. 물건을 만들고 배송하는 곳의 인간은 없고 오직 포장지 속 물건만 중요한 시대가 되어버렸네요.
소비자의 편리함이 노동자의 고통(심지어 죽음)이 되도록 만드는 기업에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배송'이라는 단어도 두렵게 느껴집니다. 기술이 발전돼서 배송속도가 빨라진 게 아닌, 그냥 노동자들이 더 빨리 더 많이 일해서, 소위 '몸을 갈아' 빠른 배송을 하게 된 거네요.
맞습니다. '빠른 배송'이라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특히 "빠름은 필요가 아닌 선호의 문제"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2-3일 배송도 충분히 빠른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더 빠른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죠. 결국 이 경쟁 구도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소비자들에게는 비용 부담을 전가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진정한 혁신은 속도 경쟁이 아닌, 노동자와 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서비스를 만드는 것 아닐까요?
빠른 배송이 정말 편리하긴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도 무시할 수 없어요. 쿠팡과 네이버가 경쟁하는 가운데, 결국 이용자들이 원하는 건 편리하면서도 안전하고 공정한 서비스겠죠. 더 빠른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니까, 이제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