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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악플, 그리고 국가
‘핼러윈데이’가 다가오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코스튬을 입은 시민들, 이태원 거리의 파티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2022년 10월 29일 이후, 한국의 ‘핼러윈데이’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아픈 상처가 되었다.
올해 10월 29일이면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다. 서울 한복판의 골목에서 ‘압사’로 158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참사로 친구를 잃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마지막 희생자까지 159명의 시민은 생명을 잃고, 목숨을 건진 수 백여 명의 시민은 ‘생존자’가 되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을 위해 거리에 서있다.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하지 않는 정부를 대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런 상황 속에서 참사를 둘러싼 왜곡과 2차 가해, 혐오와 맞서는 이들이 있다. 참사 피해자에게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언론, 이들을 조롱하고 힐난하는 악플, ‘혐오해도’ 된다고 신호를 보내는 정치인. 참사를 마주한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청년참여연대는 지난 10월 23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악플, 2차 가해를 저지른 인물, 언론을 대상으로 대응하는 유가족 A씨와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인이 감당하기엔 힘든 과정이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대응을 시작했다고 밝힌 A씨.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쏟아진 2차 가해 이야기를 드러내고자 한다.
“2차 가해하고도 죄책감 안 느껴… 처벌 선례 만들고 싶었다”
10.29 이태원 참사가 곧 1주기를 맞는다. A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
“다니던 회사를 휴직하고 정신과 치료받으면서 가족들과 지낸다. (이태원 참사 관련) 활동이 있을 때 가끔 나간다.”
–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관련하여 유튜브, 언론 기사의 댓글, 정치인들이 막말을 쏟아냈다. 피해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의 입장에서 무척 고통이 클 거 같다. 이와 관련하여 언론, 악플에 대응 중인데, 현재 어떤 상황인가?
“초반에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을 때, 비교적 젊은 형재·자매들이 언론 대응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공식 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언론사 연락을 받고, 인터뷰할 사람을 섭외하기도 했다. 일반 시민분들도 연락을 주셨는데, 2차 가해 기사나 악플 댓글도 제보해 주셨다. (초반에는) 일반인들 상대로 대응을 하기에는 악플이나 2차 가해 댓글 양이 많기도 하고, 다른 일들이 더 많았어서 취합 위주로 했다.
그러다 희생자분들 사연이 소개되면서, 신상이 공개된 몇몇 희생자분들이 있었다. 처음에 인터뷰를 할 때 댓글을 안 받고 올린다고 해서 응했던 것인데, 나중에 보니 댓글 창이 열려있었다. 거기서도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걸 보고 무척 화가 났다.
그 사람들은 본인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정작 모른다. (가해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정치인들이 언론에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2차 가해성 발언을 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처벌하는 판례를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 11월 초, 중반부터 대응했다. 주로 일베 사이트(일간 베스트)에 글을 쓴 악플러들을 고소했는데, 직접 찾아보고 취합했다. 그리고 변호사분이랑 같이 대리인 고소를 진행했다.”
–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한 인물들에 대한 적절한 처벌 조치가 이루어졌나?
“현재는 고소한 사람 중, 7~8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어떤 사건은 벌금 200만 원으로 최종 판결 나기도 하고, 어떤 건은 벌금 300만 원 형을 받았는데 피고가 항소를 했다.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람에 대한 형벌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한 건이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받았는데, 검찰이 항소하기도 했다. 벌금 500만 원보다 더 높은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 검찰이 항소한 거 같다. 현재 그 사건은 2심을 앞두고 있고, 다른 것들은 아직도 조사 진행 중이다. 어떤 분들은 반성문을 쓴다거나 합의를 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합의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어서 합의는 안 하고 있다.”
– 일반인이 ‘악플 고소’를 하는 과정은 까다롭고 어려웠을 거 같다. 이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나.
“사자명예훼손 같은 경우가 굉장히 까다롭다. 알아보니까 정말 까다로운 게, 친고죄 (사자명예훼손죄, 모욕죄)는 고인의 가족만 고소할 수 있다. 허위의 사실을 고의성을 가지고 제3자가 보는 곳에서 적시했을 때 처벌이 가능하다. 그래서 처벌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고소했는데 어떤 건이 1심에서는 최고로 높은 형벌을 받았다. 아직 진행 중이지만 높은 형벌을 받은 판례를 남겼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막말을 하고 2차 가해를 저지른 김미나 의원은 선고유예를 받았다. 정치인이면 본인의 말에 더 책임을 져야 하고, 잘못을 했을 때 더 중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면죄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꼈다. 이를 보며 국가, 정부, 법원이 가해자들에게, 정치인들이 하는 말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더욱 화가 난다.
악플을 취합하고 고소하는 과정은 (감정적으로도) 아주 어려웠다. 처음에는 악플 대응을 조용히 하고 싶었다. 글(악플)을 읽으면서 손이 떨리고 가슴도 뛰고 화가 났지만, 그것보다 희생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나를 욕하면 상관이 없는데, 아무런 대응을 하지도 못하는 고인을 욕하니까. 잘못을 일깨우고, 악플 고소에 대한 판례를 남기면 참사에 대한 2차 가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국가가 2차 가해자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2차 가해, 악플 공격이 왜 이렇게까지 심각할까.
“언론이 기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인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다른 유가족 분의 장례식장에 찾아와서 한 마디만 해달라고 하는 기자들이 많았다. 그들한테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었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유가족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끔 기사를 쓰는 것도 느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언론과 국가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주도했다고 생각한다. 악플러들을 고소해서 재판을 진행 중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론과 정부가 그들에게 색안경을 씌워서 그렇게 된 건 아닐까 싶다.
법원도 2차 가해 해결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법원이 사실상 한덕수 국무총리나 김미나 의원에게 2차 가해에 대한 면죄부를 줬다고 생각한다. 또, 참사 이후 분향소가 녹사평에 있었을 때, 분향소 옆에 신자유연대 단체가 노골적으로 2차 가해를 했다. 그런데 집회를 철수시키는 것에 대해 법원은 집회의 자유를 우선시했다. 유가족과 고인을 대놓고 모욕을 하는 집회를, 권리와 자유라고 존중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이렇게) 대놓고 국가가 2차 가해자들을 보호하니까.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국가가 2차 가해자다.”
– 참사를 왜곡하고 피해자, 유가족에게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혐오 표현 문제를 개선해나가기 위해 시민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
“처음에는 ‘놀러 가서 죽었는데 왜 난리냐’는 댓글들에 차분히 반박 댓글도 남겨보고 설득시키려고 해봤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대응을 하다가 점점 포기하게 됐다. 아무리 댓글뿐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상처받고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인이 어떤 일을 실천해야 할까 생각하면 어렵다.
작은 실천으로는, 악플이나 혐오 댓글에 ‘싫어요’를 눌러서 반대 의견을 표하는 것도 있다. 혐오 댓글에 ‘이런 욕은 잘못된 거다’라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다수가 생각하는게 맞겠지’라고 수동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묵살되고, 또 다른 욕들이 달리는 거 같다. 그래서 기사의 ‘좋아요’나 댓글만 읽는 것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나 생각이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진정한 애도와 추모를 위해 시민으로서 함께 연대하고 싶다. 더 많은 연대를 위해 남길 이야기는?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는 젊은 분들이 잘 안 온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 때문에 젊은 분들이 지금 다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있던 게 잘못된 건가’하는 생각으로 부모님에게도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 못 했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사실, 이태원에 있는 거나 핼러윈 축제가 잘못된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유가족)한테는 이번 핼러윈이 슬픈 날이겟지만, 당시 희생자분들에게는 1년에 한 번 뿐인 일상이었다. 핼러윈을 너무 슬프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즐기거나 안 즐기거나 본인의 마음이지만, 즐기더라도 죄책감 갖지 않고 몸과 마음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덧붙여, 언론에서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거리에서 이야기하면 ‘다 해결됐는데 왜 아직도 저래’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국가, 정부에서 수사를 끌어서 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되지 않았으니 거리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번 사례를 통해 보여준 언론의 태도는 플랫폼 기업의 ‘혐오산업’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자극적인 보도로 조회 수, 트래픽을 높여 기업 매출과 연관 지으려는 시도는 전형적인 언론의 패턴이다. 유가족 인터뷰 댓글창에 악플이 많이 달리자 댓글창을 폐쇄하길 요청했지만, 담당 기자는 주저했다고 한다. 당사자에게는 칼이 되어 꽂히는 악플이지만, 결국 기사의 성과와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구조적 혐오와 2차 가해 속에서 악플러 개인을 처벌하는 방식이 과연 유효할까. 어떻게 우리 사회가 혐오와 차별, 폭력에 대해 구조적, 기업적 책임을 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1,045
[함께 기억] 기꺼이 걸려 멈춰 설 수 있는 기억
*대체텍스트 있음
내 오른쪽 발등에는 ‘0416’이 새겨져 있다.
재작년 발등뼈 골절로 병원을 찾았다. 물리치료사가 치료기를 연결하다가 내 발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마디를 남겼다.
“제가 안산에서 왔거든요.”
목정원 작가는 동시대인의 가장 적합한 정의가 ‘함께 죽음을 지켜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죽음에 대한 기억을 설명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물리치료사는 4개의 숫자만 보고도 ‘세월호’를 떠올렸고, 나 또한 안산을 듣고 동일한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함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다. 그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침몰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아무도 배에 남은 304명의 안부는 알려주지 않았다. TV 속 세월호는 선박이 아닌 생명이었다. 생명이 물 속에 잠기고 있는 순간을 등교하면서 밥 먹으면서 잠에 들면서까지 목격했다. 시시각각 나오는 오보와 거짓정보에 감정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울부짖는 유족의 곁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잔잔한 일상 속에서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소극적인 목격자, 딱 그만큼만 되고 싶었다. 진도로 가서 유족을 위로하고, 영정사진 앞에 좋아하던 간식을 건네며 함께 목격한 시민들에게 애도를 제안하는 그런 동시대인이 되고자 했을 뿐이었다. 팽목항의 매서운 파도에도 온기를 느끼던 몸은 광화문에 도착하자마자 매캐한 물에 젖어버렸다. 국화꽃은 경찰버스 바퀴에 짓밟혔다. 시민을 향한 편지는 내 손을 떠나자마자 거친 욕설과 함께 갈기갈기 찢겼다.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그 시절의 나는, 그저 사람들과 각자의 고통을 서로 수무하고 싶었다. 같이 기억의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는 괴상하리만큼 적극적으로 추모를 막아섰다.
2022년 10월 29일, 나는 평화로운 강릉 바다 앞이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밤바다를 마주한 채로 이태원 소식을 들었다. 정신없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정을 넘겨서까지 전부의 목소리를 확인한 후 복잡하고도 괴로운 안도를 느꼈다. 그제서야 내 앞의 바다가 다시 보였다.
곧바로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이는 지워진 기억을 의미했다. 잊혀지도록 강요받은 기억이 떠오르자 시간은 그 4월 16일로 되돌아갔다. 길 한복판에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생명,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을 의심받는 남은 사람들, 치유하려는 움직임을 의심하는 사회, 감히 평화를 느낀 내게 몰려오는 자책감.
여전히 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늘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향으로 걷겠다며 '0416'을 새긴 내 발은 안산에 이어 이태원으로 향했다. 10.29 참사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쪽지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수없이 적혀있다. 참사가 늘어날 때마다 '우연히' 생존한 스스로에게 죄의 무게를 실어야만 했던 것이다.
충분한 애도를 망각하고 있었다. 사회는 추모의 방법이 최대한 간결하고 일상에 거슬리지 않게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사회적 참사의 추모란, 갑작스러운 상실을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시선과 이 죽음들로부터 사회구조를 재해석하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서로의 동시대인이자 비극의 목격자인 우리는 '이 슬픔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적극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 필수 교과목이 된 생존수영과 환승역마다 배치된 질서유지 전담 인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멈춤이 필요하다. 왜 변화가 시작되었는지 되새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시 죄 없는 사과만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존경하는 친구가 내게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었다. 슈톨퍼슈타인은 걸림돌을 뜻한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군터 뎀니히는 작은 황동판에 나치 희생자의 이름과 사망일을 새기고, 희생자들이 생활하던 유럽 길거리 곳곳에 설치했다. 이 걸림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쁜 걸음을 방해하고, 평온한 일상에서 비극의 기억을 되살린다.
우리에게는 잠시 멈춰 서서 지난 참사를 되돌아 보는 충분한 추모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기꺼이 걸림돌에 걸릴 준비가 되었다.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1,004
사회적 참사 재발방지와 생명안전기본법
(사)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장(단원고2-9 진윤희엄마)김순길
나는 왜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안했나?
우리는 10년 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반복되는 참사가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전국 곳곳에서 소중한 생명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국가만을 믿고 평범하게 살고 있던 나에게 세월호 참사로 우리 가족의 행복이었던딸 아이를 보낸 후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수학여행 잘 다녀오겠다고 웃으며 문 밖을 나섰던 아이가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이 되어 내 품에 안겨야만 했는지.. 왜?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동안 세월호 부모들은 분노와 울분에 몸부림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거리에 나섰고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긴 시간 동안 활동해오면서 우리 피해 가족들은 수많은 혐오와 모독하는 발언들로 또 다시 2차 가해를 입었습니다.
특혜논란, 자식팔아먹는, 세금도둑, 정치집단, 가난한동네, 종북몰이 등으로 피해자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했고 칼보다 더 날카로운 말들로 피해자 인권을 침해당해왔습니다.
정부는 생명존중의 가치를 우선으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피해자들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고통 받은 피해자들이 더 이상 거리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온전하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하여 구조적인 원인을 들여다보고 참사에 대한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조사해야 합니다. 또한, 그에 맞는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이 만든 ‘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가족협의회’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설립했고 가족들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10여년 간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사회로 향하는 길은 아직 멀기만 한 것 같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그리고 길을 가다가 일상 생활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위험한 사회가 안전한 사회가 되는 길은 무엇이 있을까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고민했습니다.
또한, 죄를 짓고도 생명에 대한 무게만큼의 처벌이 아닌 법이 제대로 없다는 이유로 처벌에서 빠져나가는 자들을 무겁게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들자고 많은 시간 노력했습니다.
우리 세월호 피해 가족들도 생명과 가치가 존중되는 법, 시민의 안전이 보장되는 법인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해 시민동행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위험사회라는 것을 온 국민이 인식한 참사가 세월호 참사라는 것이 생명안전 기본법을 만드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의 대처 방안만 담고 있을 뿐 생명안전의 가치는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합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제정이 되어 우리가 겪은 참사를 누군가는 겪지 않기를 바라고 시민의 안전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며 재발방지를 위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누구나 안전한 일상에서 생활하고 일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안전기본법은 왜 필요한가?
생명안전 기본법은 시민 모두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재난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 사고가 나지 않도록 예방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 하고 수습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며 사고 원인과 대응의 문제점을 조사 개선하여 유사문제의 재발방지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태원참사 159명, 세월호참사 304명, 가습기살균제참사 1825명이 목숨을 잃었고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붕괴참사, 대구지하철화재참사,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등 대형재난도 계속 발생합니다. 이런 참사가 지속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안전을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부와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참사는 운 나쁜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참사를 겪은 우리 모두가 확인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 이유로 지속되는 재난참사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 생명안전 기본법에는 안전권, 피해자의권리보장, 안전 약자 보호,독립적 조사 기구, 위험에 대해 알권리,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권, 안전 영향 평가제도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저에게 생명안전기본법은 내 아이, 내 가족, 내 이웃, 우리 모두입니다.
너, 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반드시 국회를 통과해서 국민의 생명과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가 생명안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는 참혹한 현장을 온 국민은 목격했고, 국가의 부재를 확인한 유가족과 시민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를 향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쳤습니다.
우리 유가족과 시민들은 수많은 경찰병력에 에워싸이고 차벽에 막히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맞으며 싸워야 했습니다.
선량한 시민들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말도 안 되는 살인행위들이었고, 결국엔 물대포에 맞은 한분이 죽음을 맞이하는 결과를 초래 했습니다.
이후의 정권이 바뀌면서 집회현장들에서 물대포와 캡사이신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국가의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 오송지하차도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언제 어느 때든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전사고는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기후위기등 위험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 사회에서 안전한 사회,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로 가기위한 노력들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하는대로 재난 참사들을 지워버리고 참사들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방해하는 행위들을 방치하는 것은 또 다른 재난참사를 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재난 참사로 인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위험과 안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과 누구의 잘못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구조적인 원인에 주목하고 안전의 주체에 피해자와 시민들이 참여를 확장하는 노력들을 해야 합니다.
1,210
참사를 기억하는 법
조금은 잊혀진 참사
1994년 10월 21일. 이 날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현재 굳건이 강남과 강북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한 날이다. 오전 7시 느닷없이 서울시 성동구외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조금 이른 아침이었지만, 출근과 등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총 49명이 한강으로 추락, 32명이 사망했다. 건설사의 부실공사, 감리담당 공무원의 부실 감사, 정부의 안전검사 미흡으로 벌어진 참사다.
참사는 또다시 이어졌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지상 5층, 지하 4층 짜리 건물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이로 인해 502명의 사망자, 937명의 부상자, 6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해당 인명 피해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원인은 성수대교와 비슷하다. 이 역시 건설사의 부실 공사, 안전 불감증, 공무원 비리가 엮여서 발생한 사고였다. 완공 이후 무리한 증축이 이루어졌고, 백화점은 벽면 균열과 천장 내려앉음 등 붕괴 조짐을 알고 서도 영업을 중단하지 않고, 응급 조치로만 대응했다.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아 발생한 참사였다.
참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
30년 가까이 된 참사 이외에도 생생히 기억나는 참사도 있다.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2022년 10월 29일의 이태원 참사다.
이태원 참사 당시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이태원 할로윈 참사, 1995년 삼풍 붕괴 유령을 소환하다”라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우리나라가 삼풍 백화점 붕괴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지적, 붕괴 원인, 이태원 참사 상황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기사는 삼풍 백화점 붕괴를 “현대화 열망 속에 건설업자, 공무원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안전불감증과 공무원 무책임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이태원 참사가 참사 조짐이 보이고 알았음에도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삼풍 백화점 붕괴와 같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인명 피해를 낸 참사에서 전혀 배운 게 없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실제 이태원 참사의 경우, 참사 이전에 사람들이 압사할 것 같다고 말하는 신고전화가 11건 이상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이 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코로나로 외부활동이 제한됐던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 제한 조치가 풀렸을 때 어느정도 폭발력을 가질지 분명 예측하고 판단하고 대비했었어야 한다.
참사가 발생한 이후,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또다시 발생한다.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단순 희생자를 기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당시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었고, 왜 그 문제를 보지 못했는지 혹은 알고도 외면했는지, 그 문제가 다시금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 참사가 기록되지 않으면,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처럼 참사의 유령만 계속 떠돌 뿐이다.
참사를 기억하는 법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대표적인 건 추모시설을 건립하는 것이다. 추모시설을 통해 당시 우리가 어떤 참사를 겪었는지 상기하고, 다시는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고, 치유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참사 피해자 유족들은 고인을 추모하고, 다시는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참사의 유족이 아닌 사람들의 경우, 집 값을 떨어트리는 혐오시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혐오시설이라는 인식 외에도, 공간 부지 마련과 사업비 문제, 행정 절차의 지연 등으로 건립이 안 되기도 한다. 서울시 광화문 광정에 있던, ‘세월호 기억공간'도 행정적인 이유로 철거된 상태다. 다시금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유족들의 외침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듯해서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어려운 건 아니다. 해외에서도 오랜기간 논의를 거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9∙11 테러 추모를 위해 세운 9∙11 추모 광장과 메모리얼 파크다.
9∙11테러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쌍둥이 빌딩에 두 개의 비행기가 자폭 테러를 한 사건을 말한다. 전 세계가 경악한 사건이다. 두 대의 비행기가 연이어 빌딩에 돌진하고, 쌍둥이 빌딩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게 전세계로 생중계 됐다. 2,996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이중 민간인은 2,977명, 테러 주범인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19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는 25,000명 이상이다.
2006년 3월 13일부터 착공을 시작한 이곳은 2011년 9월 11일 꼬박 10년만에 추모관이 만들어졌고, 2014년에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테러로 기억되는 9∙11테러 마저도 추모관 완공에 10년이 걸린 걸 보면, 어느 나라나 비극을 온전히 추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 수 있다.
9∙11 메모리얼 파크에는 2개의 사각형 모양의 폭포가 있다. 그 폭포를 둘러싼 테두리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각인 되어 있다. 단순히 희생자만 있는 게 아니다. 희생자와 생전에 가까웠던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알파벳순이나 임의로 이름을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물어 희생자의 이름을 생전에 알던 동료, 친구, 가족의 이름과 나란히 새긴 것이다. 건축을 맡은 아리드는 이를 ‘의미 있는 이웃들'이라는 개념으로 말했다.
이렇게 조성 된 메모리얼 파크와 박물관은 가족 투어, 현장 학습, 공공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방문객들로 하여금 어떤 사건이 있었고, 거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기억하는 공간이 됐다. 혐오하는 사람도 없고, 혐오 시설이라는 인식도 없고, 집 값이 떨어졌다는 소식도 없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안전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하게 되었으며, 공항 반입 가능 물품 등을 더욱 철저히 감시하기 시작했다. 테러 이전에 허용되던 조그만 과도를 제한하는 등 물품 하나 하나를 신경쓰고,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깐깐하게 심사했다. 그 결과 뉴욕JFK 공항은 입국 심사가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나 중진국이 아니다. 어엿한 선진국이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당시, 미국은 이미 선진국이었다. 그럼에도 테러가 발생했다는 건, 선진국이라고 하여 테러나 참사가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건, 참사를 받아들이고 다루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슬픔과 악몽, 위험과 재난,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벌어진 참사에 의미를 담는 모습이 선진국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모습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 입장하게 되면 방문자들은 이런 문장을 맞이한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시간의 흐름 속 단 한 순간도 당신을 지울 수 없다)”
참사로 희생 된 사람들의 이름은 그 유족들에게 잊혀질 수 없고, 지울 수 없다. 당장의 유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참사가 있었다는 것과 그로 인한 희생자가 있었다는 것, 우리는 다시는 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고, 시스템을 정비하고, 변해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다가온다. 희생된 모든 사람들을 다시금 추모하면서, 부디 우리 사회가 그때의 참사를 다시 기억하고, 사회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출처 : 9∙11 MEMORIAL &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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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의 기억을 담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의 기억을 담습니다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10·29 이태원참사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참사현장은 유가족들에게 트라우마 그 자체입니다. 참사의 공간은 애도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참사 이후, 많은 시민들이 참사현장을 찾고 있어요. 이태원역 1번 출구부터 해밀턴호텔 옆 골목을 따라 가벽까지 추모포스트잇과 추모물품이 가득했습니다. 지역 주민과 자원활동가는 작년 12월 말부터 2만 5천여 점의 조화를 비롯해 추모물품을 정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2월 23일, 유족과 지역주민, 지역상인, 시민대책회의가 함께 ‘희생자의 온전한 추모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장 및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연 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가 공간을 관리해왔습니다.
수많은 메시지를 모두 수거하고 분류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2023년 3월 11일부터 문화연대는 피해자권리위원회와 함께 시민들이 참여하는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활동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찾아온 한 참여자는 야외 공간에 놓인 추모물들은 금방 훼손되기 쉽상인데, “조금만 방심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같은 추모 기록을 조금이라도 붙잡기 위한” 우리 활동에 딱 맞는 이름이라고 후기를 남기기도 했지요.
△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 이후, 많은 시민들이 참사현장을 찾아 추모메시지와 추모물품을 남겨주었다.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는 크게 추모메시지 수거 작업, 추모메시지 분류 및 보존 작업, 현장 정비 활동, 추모메시지 공론화 활동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현장을 찾아 추모메시지를 수거해요. 많은 시민들이 남겨준 추모메시지를 보존하려는 게 첫번째 목적이고요. 가득 찬 벽에 새로운 추모메시지가 붙을 수 있게 여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게 두번째 목적입니다. 아카이빙 작업 시엔 몇 가지 규칙을 따라, 메시지를 1차 분류합니다. 그리고 장기보존을 위해 메시지를 고정하고, 제습제와 함께 서류상자에 보관합니다. 현장 정비 활동 시엔 음식, 술, 꽃 등 추모물품을 수거하고 주변을 청소합니다. 또, 추모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필요 물품(포스트잇, 펜, 테이프 등)도 마련해두죠.
△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추모메시지를 수거하는 자원활동가들
△ 2023년 10월 현재까지 수거한 메시지는 십수만장에 달한다.
기록보존활동에는 연구자, 시인, 음악가, 대학생, 다큐멘터리 감독, 문화공간 운영자, 고등학교 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평소 다른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발하게 활동해왔던 참여자도 있지만, 이 활동을 통해 참사가 주는 무력감을 이겨낸 참여자도 있어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나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참여자 뿐만 아니라, 주변 상인과 지나가는 시민도 이 공간에 책임감을 느끼며 함께 공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참사 현장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 상인은 자원활동가들이 찾을 때마다, 분류 작업할 공간을 내어주고 마실 음료도 선물해주셔요. 바람이 드셌던 어느 날에는 참사 현장을 지나가던 한 시민이 흩날리는 포스트잇을 모아 서울시청 앞 시민분향소까지 손수 가져다준 일도 있었어요. 국가의 방기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추모메시지와 사회적 애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는 참사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와 구조자, 그리고 희생자의 유가족과 지인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들이 방문하여 포스트잇에 추모의 말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추모메시지에는 추모와 애도를 비롯해 미안함, 자책감, 무력감,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뒤엉켜있어요. 희생자와 참사 현장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기도 하지요. 추모메시지를 작성한 사람들은 희생자가 겪었을 고통과 유가족의 상실에 공감하며, 타인의 삶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희생자의 사라진 미래를 안타까워하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반성하기고 국가의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잊지 않겠노라고 되뇌이고,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에 나서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메시지를 살펴보면,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관용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비롯해 "미안하다"는 말이 참 많습니다. 정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사과하지 않고, 정작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난 이들에게 사과하고 있죠. 왜 살아남은 우리만 사과해야 하는 걸까, 이런 메시지를 볼 때마다 슬픔과 동시에 분노를 느껴요.
아래에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구조자가 작성한 메시지를 소개합니다. 이 메시지들엔 참사 현장의 풍경을 비롯해 희생자의 마지막 기억과 생존자의 트라우마, 다짐이 담겨있어요. 특히 구조자들의 메시지에서 재난대응시스템의 공백, 그리고 이들이 느꼈던 무력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 지인을 비롯하여 희생자의 지인들이 그들을 호명하는 메시지는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울립니다. 여기에는 생전에 함께하며 느꼈던 행복감과 희생자가 떠나며 겪게 된 상실감, 슬픔 등 세상 모든 진한 감정들이 녹아 있습니다. 비록 일부 미디어와 시민들이 희생자를 비난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운다 할지라도, 희생자들 역시 우리와 같은 공동체에서 살아왔던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추모메시지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작성된 메시지도 2할 이상이나 됩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국, 일본, 중국,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추모현장을 찾아 주고 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태원이 다양성을 품고 있는 공간이었음을, 그리고 외국인 희생자도 이곳에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지요.
안전사회를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록해야 합니다
사회적 애도를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은, 정리되지 않은 추모메시지만큼 쌓여 있습니다. 책임자들은 형식적인 사과만 늘어놓고 있으며,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지만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지요.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록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함께 기억할지의 문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참사현장에 발걸음한 시민들이 남겨준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안전사회를 위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길 바랍니다.
글쓴이 _ 문화연대 박이현 활동가 | 앞산의 불을 끄는 일만큼, 너른 삶의 터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 활동가. 잠든 감각을 깨우고, 마음과 마음을 잇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씨앗을 심고 있다.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비롯해,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다양한 문화/예술 실천을 도모하는 한편 청소노동자의 스포츠권을 위해 운동으로 노동운동하고 있다.
이태원 기억 담기 | 매달 2회씩 정기적으로 모여 이태원역 1번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추모메시지를 수거하고, 이를 아카이빙 및 공론화하는 활동을 진행하는 시민 모임. http://bit.ly/remember_1029에서 참가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