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함께 기억] 기꺼이 걸려 멈춰 설 수 있는 기억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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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일으키는 것들로 사랑을 잃지 않는 세상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사회적참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한 아홉 캠페이너의 기억을 소개합니다.

*대체텍스트 있음


내 오른쪽 발등에는 ‘0416’이 새겨져 있다.

재작년 발등뼈 골절로 병원을 찾았다. 물리치료사가 치료기를 연결하다가 내 발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마디를 남겼다.

“제가 안산에서 왔거든요.”

부어오른 오른발, 발등에는 0416이라는 숫자의 노란색 타투가 새겨져 있다.


목정원 작가는 동시대인의 가장 적합한 정의가 ‘함께 죽음을 지켜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죽음에 대한 기억을 설명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물리치료사는 4개의 숫자만 보고도 ‘세월호’를 떠올렸고, 나 또한 안산을 듣고 동일한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함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다. 그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침몰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아무도 배에 남은 304명의 안부는 알려주지 않았다. TV 속 세월호는 선박이 아닌 생명이었다. 생명이 물 속에 잠기고 있는 순간을 등교하면서 밥 먹으면서 잠에 들면서까지 목격했다. 시시각각 나오는 오보와 거짓정보에 감정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울부짖는 유족의 곁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잔잔한 일상 속에서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소극적인 목격자, 딱 그만큼만 되고 싶었다. 진도로 가서 유족을 위로하고, 영정사진 앞에 좋아하던 간식을 건네며 함께 목격한 시민들에게 애도를 제안하는 그런 동시대인이 되고자 했을 뿐이었다. 팽목항의 매서운 파도에도 온기를 느끼던 몸은 광화문에 도착하자마자 매캐한 물에 젖어버렸다. 국화꽃은 경찰버스 바퀴에 짓밟혔다. 시민을 향한 편지는 내 손을 떠나자마자 거친 욕설과 함께 갈기갈기 찢겼다.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그 시절의 나는, 그저 사람들과 각자의 고통을 서로 수무하고 싶었다. 같이 기억의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는 괴상하리만큼 적극적으로 추모를 막아섰다. 

벽에 테두리만 남겨진 채 찢어진 두 장의 대자보


2022년 10월 29일, 나는 평화로운 강릉 바다 앞이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밤바다를 마주한 채로 이태원 소식을 들었다. 정신없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정을 넘겨서까지 전부의 목소리를 확인한 후 복잡하고도 괴로운 안도를 느꼈다. 그제서야 내 앞의 바다가 다시 보였다. 

곧바로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이는 지워진 기억을 의미했다. 잊혀지도록 강요받은 기억이 떠오르자 시간은 그 4월 16일로 되돌아갔다. 길 한복판에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생명,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을 의심받는 남은 사람들, 치유하려는 움직임을 의심하는 사회, 감히 평화를 느낀 내게 몰려오는 자책감. 

여전히 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늘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향으로 걷겠다며 '0416'을 새긴 내 발은 안산에 이어 이태원으로 향했다. 10.29 참사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쪽지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수없이 적혀있다. 참사가 늘어날 때마다 '우연히' 생존한 스스로에게 죄의 무게를 실어야만 했던 것이다. 

충분한 애도를 망각하고 있었다. 사회는 추모의 방법이 최대한 간결하고 일상에 거슬리지 않게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사회적 참사의 추모란, 갑작스러운 상실을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시선과 이 죽음들로부터 사회구조를 재해석하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서로의 동시대인이자 비극의 목격자인 우리는 '이 슬픔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적극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 필수 교과목이 된 생존수영과 환승역마다 배치된 질서유지 전담 인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멈춤이 필요하다. 왜 변화가 시작되었는지 되새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시 죄 없는 사과만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존경하는 친구가 내게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었다. 슈톨퍼슈타인은 걸림돌을 뜻한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군터 뎀니히는 작은 황동판에 나치 희생자의 이름과 사망일을 새기고, 희생자들이 생활하던 유럽 길거리 곳곳에 설치했다. 이 걸림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쁜 걸음을 방해하고, 평온한 일상에서 비극의 기억을 되살린다.

우리에게는 잠시 멈춰 서서 지난 참사를 되돌아 보는 충분한 추모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기꺼이 걸림돌에 걸릴 준비가 되었다.

독일 구벤 도시 길거리에 설치된 슈톨퍼슈타인. 붉은색 벽돌 길에 작은 황동판 세 개가 나란히 박혀있다. (출처 : Christian Michel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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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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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은 경찰버스 바퀴에 짓밟혔다." 한 문장이 가슴을 치네요. 국화꽃이 경찰버스에 짓밟히지 않는 사회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더이상 시민들이 국화꽃을 들고 거리로 나서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읽으면서 각자가 기억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그 마음은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매해 4월 16일마다 넬의 지구가 태양을 네 번을 찾아 듣는데요. 끝없는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와 왜 그래야만 했는지 묻는 가사를 들으면 여러 장면이 겹쳐 보이더리고요. 앞으로는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될 때 즈음에도 찾아듣게 될 것 같고요. 같은 가사를 방송이나 라디오, 다른 곳에서 들을 때마다 걸림돌에 걸리는 기분이었어요. 각자의 걸림돌, 기억의 돌에 담긴 마음이 모여서 변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잠시 멈춰 서서 지난 참사를 되돌아 보는 충분한 추모의 시간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네요. 추모하기 위한 권리를 찾으려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사수하려고 충분히 추모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호 세대'라고 불릴만한 분들이 현 시점에서 그때와는 또 다른 삶들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일 것 같습니다.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을지 궁금했는데, 이 글에서 단초를 찾아보게 됩니다.


저는 한국사회가 지금보다 더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회, 안전한 사회가 되면 좋겠고, 세월호 참사를 겪은 분들, 이태원 참사를 겪은 분들이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꺼이'라는 단어에 자리하고 있는 유구한 용기와 애정이 묵직하게 다가와요. 저는 그저 눈과 마음으로 더듬어 매만져왔던 안타까움과 참담함을 두 발로 온전히 견뎌내며 주저없이 현장으로 사람으로 향한 정옥다예 캠페이너가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감상을 활자로 옮기고 나면 감정이 고스란히 글자에 전이된 듯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과정은 참으로 지난하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기에, 이 글을 쓰는 동안 너무 아프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저도 기꺼이 함께 걸려 멈춰 설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