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참사를 기억하는 법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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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입니다

조금은 잊혀진 참사

1994년 10월 21일. 이 날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현재 굳건이 강남과 강북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한 날이다. 오전 7시 느닷없이 서울시 성동구외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조금 이른 아침이었지만, 출근과 등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총 49명이 한강으로 추락, 32명이 사망했다. 건설사의 부실공사, 감리담당 공무원의 부실 감사, 정부의 안전검사 미흡으로 벌어진 참사다. 

참사는 또다시 이어졌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지상 5층, 지하 4층 짜리 건물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이로 인해 502명의 사망자, 937명의 부상자, 6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해당 인명 피해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무너진 삼풍 백화점. 출처 : 위키백과

원인은 성수대교와 비슷하다. 이 역시 건설사의 부실 공사, 안전 불감증, 공무원 비리가 엮여서 발생한 사고였다. 완공 이후 무리한 증축이 이루어졌고, 백화점은 벽면 균열과 천장 내려앉음 등 붕괴 조짐을 알고 서도 영업을 중단하지 않고, 응급 조치로만 대응했다.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아 발생한 참사였다.

참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

30년 가까이 된 참사 이외에도 생생히 기억나는 참사도 있다.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2022년 10월 29일의 이태원 참사다.

이태원 참사 당시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이태원 할로윈 참사, 1995년 삼풍 붕괴 유령을 소환하다”라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우리나라가 삼풍 백화점 붕괴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지적, 붕괴 원인, 이태원 참사 상황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출처 : 이태원 참사 현장.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기사는 삼풍 백화점 붕괴를 “현대화 열망 속에 건설업자, 공무원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안전불감증과 공무원 무책임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이태원 참사가 참사 조짐이 보이고 알았음에도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삼풍 백화점 붕괴와 같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인명 피해를 낸 참사에서 전혀 배운 게 없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실제 이태원 참사의 경우, 참사 이전에 사람들이 압사할 것 같다고 말하는 신고전화가 11건 이상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이 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코로나로 외부활동이 제한됐던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 제한 조치가 풀렸을 때 어느정도 폭발력을 가질지 분명 예측하고 판단하고 대비했었어야 한다.

참사가 발생한 이후,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또다시 발생한다.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단순 희생자를 기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당시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었고, 왜 그 문제를 보지 못했는지 혹은 알고도 외면했는지, 그 문제가 다시금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 참사가 기록되지 않으면,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처럼 참사의 유령만 계속 떠돌 뿐이다.

참사를 기억하는 법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대표적인 건 추모시설을 건립하는 것이다. 추모시설을 통해 당시 우리가 어떤 참사를 겪었는지 상기하고, 다시는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고, 치유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참사 피해자 유족들은 고인을 추모하고, 다시는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참사의 유족이 아닌 사람들의 경우, 집 값을 떨어트리는 혐오시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혐오시설이라는 인식 외에도, 공간 부지 마련과 사업비 문제, 행정 절차의 지연 등으로 건립이 안 되기도 한다. 서울시 광화문 광정에 있던, ‘세월호 기억공간'도 행정적인 이유로 철거된 상태다. 다시금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유족들의 외침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듯해서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어려운 건 아니다. 해외에서도 오랜기간 논의를 거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9∙11 테러 추모를 위해 세운 9∙11 추모 광장과 메모리얼 파크다.

출처 :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 Museum

 9∙11테러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쌍둥이 빌딩에 두 개의 비행기가 자폭 테러를 한 사건을 말한다. 전 세계가 경악한 사건이다. 두 대의 비행기가 연이어 빌딩에 돌진하고, 쌍둥이 빌딩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게 전세계로 생중계 됐다. 2,996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이중 민간인은 2,977명, 테러 주범인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19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는 25,000명 이상이다.

2006년 3월 13일부터 착공을 시작한 이곳은 2011년 9월 11일 꼬박 10년만에 추모관이 만들어졌고, 2014년에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테러로 기억되는 9∙11테러 마저도 추모관 완공에 10년이 걸린 걸 보면, 어느 나라나 비극을 온전히 추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 수 있다.

출처 :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 Museum

9∙11 메모리얼 파크에는 2개의 사각형 모양의 폭포가 있다. 그 폭포를 둘러싼 테두리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각인 되어 있다. 단순히 희생자만 있는 게 아니다. 희생자와 생전에 가까웠던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알파벳순이나 임의로 이름을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물어 희생자의 이름을 생전에 알던 동료, 친구, 가족의 이름과 나란히 새긴 것이다. 건축을 맡은 아리드는 이를 ‘의미 있는 이웃들'이라는 개념으로 말했다.

이렇게 조성 된 메모리얼 파크와 박물관은 가족 투어, 현장 학습, 공공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방문객들로 하여금 어떤 사건이 있었고, 거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기억하는 공간이 됐다. 혐오하는 사람도 없고, 혐오 시설이라는 인식도 없고, 집 값이 떨어졌다는 소식도 없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안전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하게 되었으며, 공항 반입 가능 물품 등을 더욱 철저히 감시하기 시작했다. 테러 이전에 허용되던 조그만 과도를 제한하는 등 물품 하나 하나를 신경쓰고,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깐깐하게 심사했다. 그 결과 뉴욕JFK 공항은 입국 심사가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나 중진국이 아니다. 어엿한 선진국이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당시, 미국은 이미 선진국이었다. 그럼에도 테러가 발생했다는 건, 선진국이라고 하여 테러나 참사가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건, 참사를 받아들이고 다루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슬픔과 악몽, 위험과 재난,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벌어진 참사에 의미를 담는 모습이 선진국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모습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 입장하게 되면 방문자들은 이런 문장을 맞이한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시간의 흐름 속 단 한 순간도 당신을 지울 수 없다)”

참사로 희생 된 사람들의 이름은 그 유족들에게 잊혀질 수 없고, 지울 수 없다. 당장의 유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참사가 있었다는 것과 그로 인한 희생자가 있었다는 것, 우리는 다시는 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고, 시스템을 정비하고, 변해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다가온다. 희생된 모든 사람들을 다시금 추모하면서, 부디 우리 사회가 그때의 참사를 다시 기억하고, 사회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출처 : 9∙11 MEMORIAL &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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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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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파크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거기에 희생자와 그를 아꼈던 사람들의 이름이 같이 새겨진 것은 몰랐던 사실이네요. 정말 닮고 싶은 추모 방식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치유가 될 수 있는 추모가 우리 나라에도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 단 한 순간도 당신을 지울 수 없다". 울림이 있네요. 10.29 이태원참사를 기억하겠습니다.

슬픈 기억은 잊지 않되 슬픈 감정에 빠지지 않기

(사고 당사자가)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며 안전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사고가 계속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안전이 중요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간 마련 되었던 기억의 공간을 떠올리면 한마음 한뜻으로 추모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철거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던 풍경이 생각납니다. 기억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건 유가족 뿐만이 아닐 겁니다. 시민 모두 함께 기억해야 한다는 의식과 그에 대한 지원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추모 시설도 혐오 시설로 생각한다니 너무 슬픈 현상이네요.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정말 그 근처에 추모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 잊고,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요..
추모시설에 대한 내용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연극 <먼 데서 오는 여자>의 대사 하나가 떠올랐어요. "추모하고 애도하고 기억하는 게 아니라, 추모하고 애도하고 기억하게 해달라고 싸우다가 10년이 흘렀습니다."
이 나라는 참사를 사회적 참사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이태원참사를 사회적 참사로 기억할 수 있도록 관련 조치들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 상처를 함께 치유하기 위해서, 잘 기억하고 기억을 나누고 남기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기억해야할 참사가 매년 하나씩 늘어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마음 놓고 추모하기 어렵네요. 정부의 공인을 받은 참사만 추모가 가능한건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