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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져도 ‘배째라’ 주인행세… 법도 행정도 ‘나 몰라라’ [유령타운의 비명 3화]
“이 일을 생각하면 삶의 의지가 사그라듭니다.”
메일은 이렇게 시작했다. ‘유령타운의 비명’ 첫 기사를 보도한 날, 새벽 1시 35분에 도착한 메일. 잠 못 이루는 밤, 또 다른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상가분양 피해자는 “유령타운의 수많은 비명 중 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써내려갔다.
“법원의 판결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해결이 안 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드네요. 사용할 수 없는 상가를 사용허가 내주고도 ‘나 몰라라’ 한 구청이 법적으로 자유로운 것도 이해가 안 가네요.”
메일은 이렇게 끝났다.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데….”
인천 연안부두 앞바다에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상가를 분양받은 340여 명의 꿈이 침몰했다.
“그냥 투자자, 투기꾼 사연이 아닙니다.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죠. 한 달에 이자를 몇 백만 원씩 내고, 노후자금을 다 날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겁니다.”(법무법인 휘명 박휘영 변호사)
‘국내 최대’, ‘축구장 4개 규모’를 자랑하던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분양대행업체에 따르면, 건물을 외형을 짓는 데만 약 1800억 원이 들었다. 하지만 12% 이상의 “투자수익율 대박”을 장담했던 초대형 상가 분양 사업은 완전히 붕괴됐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총 802개 호실 중 512개 호실이 분양됐다. 약 36%가 미분양 상태다. 2017년 기준 1.5평(전용면적 4.42㎡)짜리 1층 수산물판매 상가 분양가는 1억 2000만 원~1억 6000만 원 상당이다. 2층 이상 상가의 분양가는 2억 원대로 알려져 있다.
불 꺼진 건물, 텅 빈 상가, 비린내 없는 어시장, 고객 차량 대신 선적 대기 중고차만 가득한 주차장…. 피해는 고스란히 수분양자들에게 전가됐다. 피해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사람만 34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분양 계약을 체결한 2017~2018년부터 약 7년간 아무런 수익을 얻지 못했다. 매달 대출이자만 내며 버티고 있는 처지다.(관련기사 : ‘축구장 4배’ 유령타운… “어시장에 바닷물도 안 나왔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사례를 접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전국적으로 정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상가 분양 피해 사례입니다.”
건설업계 관계자, 부동산 전문 변호사, 금융권 관계자 모두 한목소리다. 그만큼 피해자가 셀 수 없이 속출하고 있다는 뜻. 상가분양 피해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 그만큼 심각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대책이 세워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단한 뉴스 검색만으로도, 전국에서 시행사 등을 상대로 처절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상가분양 피해자들의 소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도 마찬가지. 상가분양 피해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분양 당시 시행사 측이 만든 홍보 팸플릿 문구와 완전히 딴판이었다.
“인천구도심 재생사업 등 다양한 대규모 개발비전의 중심”“희소가치가 높은 공실률 없는 특수상가”“연 수익률 12.44%”
일부 분양대행업체는 수익률을 20%까지 부풀리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분양사무실에서, 인근에 있는 인천종합어시장 상가들이 인천국제수산물타운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이나 근거 없는 풍문에 불과했다. 시행사는 예상 수익률을 지나치게 부풀린 허위・과장광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 조치를 받았다.
시행사 대표는 2020년 8월부터 상가 활성화를 해보겠다며 피해자들에게 1층 상가를 임차했다. 약속한 무상임차기간 3개월이 지난 뒤, 피해자들의 통장에 찍힌 임대료는 두 달 치가 전부였다.
그곳에는 현재 한 수산물 판매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따. 시행사 대표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이중 임대계약을 체결한 판매업체다. 시행사 대표가 상가 주인행세를 하며 ‘점거’하고 있는 셈이다.(관련기사 : <수익률 뻥튀기에 월세 먹튀까지… 피해자 두 번 울렸다>)
임대료를 받지 못한 상가분양 피해자 68명은 법원에 카드 매출 가압류를 신청했다. 그러자 시행사 대표는 카드단말기를 자기 아들 사업자 명의 단말기로 몰래 바꿨다. 피해자들이 고소했지만 경찰 수사 결과는 2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이들은 시행사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시행사 대표에게, 밀린 임대료를 지급하고 건물을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건물의 준공 예정일은 2019년 10월이었다. 건물 사용승인은 5개월이나 지난 2020년 3월에야 떨어졌다. 하지만 장사는 불가능했다. 어시장에 꼭 필요한 바닷물(해수)이 나오지 않았다. 시설 공사는 2020년 12월에야 마무리됐다. 처음 약속한 준공 예정일에서 1년 2개월이 더 지나서였다.
시행사를 상대로 ‘분양대금반환소송’이 제기됐다. 이번에도 법원은 분양대금과 위약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피해자들은 두 차례 소송에서 승소했다. 경찰에 형사고소도 했다. 하지만 법이 이렇게 무력한 것이었나. 현실을 그대로였다. 시행사 측은 돈이 없다며 버틸 뿐. 피해자들의 손에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처벌받지도 책임지지도 않았다. 시행사 대표는 오히려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큰소리치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행정은 ‘계약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팔짱을 끼고 있고, 법원의 판결문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시행사 대표에게 사기죄 등 형사 책임을 묻기는 ‘애매하다’고 말했다.
“허위・과장광고는 시행사업에서 통상적인 ‘룰(rule)’입니다. 수분양자가 의사결정 기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봐야 하는데, 시행사업에서 유명 카페 입점 ‘예정’ 등이라는 식으로 광고했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사기죄를 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법무법인 청율인 김영환 변호사)
시행사 대표가 상가분양 피해자들에게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고 상가를 ‘무단 점거’ 하고 있는 점 역시 형사처벌은 어려울 수 있다. 수사기관에서 해당 사건을 ‘사인 간의 분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사기로 고소한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 반려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시행사 대표가 처음부터 임대료 등을 편취하고 상가를 무상으로 사용할 의도가 있었다면 사기죄 등을 검토할 수 있으나, 이런 점을 입증하기 쉽지 않습니다.”(법무법인 율샘 김도윤 변호사)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에서 시행사의 자본금 비율은 현저히 낮다. 시행사는 금융기관에서 PF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지어 올린다. 금융기관은 사업성과 수익률을 꼼꼼히 평가해서 대출을 실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동네에 오래된 인천종합어시장이 있잖아요. 아파트단지 근처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잖아요. 누가 차 타고 거기(인천국제수산물타운)까지 나가겠어요.”
인근 지역 부동산 중개인의 말이다. 부동산 중개인도 다 알고 있는 불리한 입지조건을 금융기관에서 얼마나 철저히 검토했는지 의문이다.
시행사가 PF 사업을 기획하고, 금융기관은 돈을 빌려주고, 시행사는 수분양자들에게 분양대금을 받아 대출을 갚는다. 결국 피해의 1차적인 종착지는 수분양자 개인들이 된다. 한 사람당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부실PF 폭탄은 수분양자 개개인들의 삶부터 망가뜨리고, 금융기관과 지역경제까지 연쇄 폭발을 조준한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사업을 승인한 인천 중구청도 이 상황을 책임지지 않는다. 중구청 관계자는 “건축 용도가 알맞으면 토지 소유주가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대로 건축 허가를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어시장에 바닷물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준공이 난 점에 대해서는 “건축법상 정하고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입점 등에 관한 사항은 계약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또 대규모 공실 사태에 대해서는 “손님이 없어서 공실이 된 건 소비자 선택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업을 계획한 시행사, 대출을 내준 금융기관, 사업을 승인한 행정관청이 서로 책임 없다는 말을 주고받는 사이, 수분양자들의 인생은 극단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동안 상가분양 피해는 대부분 ‘개인 투자 실패’로만 여겨져왔다. 하지만 개인들만 눈 뜨고 코 베이는 상가분양의 판을 안전하게 바꾸자는 목소리가 최근 국회에 닿았다. 지난 6월 16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분양사기 피해복구 및 방지 입법을 위한 ‘대국민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분양사업에 관한 정보 제공 의무 명시 ▲신탁사와 감리사의 손해배상책임 규정 신설 ▲장기 공사 중단・분양대금 미반환・소유권이전 등기 미이행 사태 발생 시 정산절차 및 내용 신설 ▲신탁사와 분양사업자에 대한 감독 및 처벌 조항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용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남양주시병)은 이날 토론회에서 지적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상가분양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분양주체들은 법의 허점, 처벌이 낮은 점, 수분양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점들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를 원천 차단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분양 주체들이 얻은 막대한 이익은 적어도 수분양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합니다.”(법무법인 우면 김한수 변호사, ‘분양사기 피해복구 및 방지 입법을 위한 토론회’, 2024. 6. 16.)
지난달 12일과 16일 시행사 대표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신 역시 없었다.
지난 13일 1화 기사가 보도된 뒤 시행사 대표는 전화를 걸어왔다. 시행사 대표는 “(2020년) 당시 수산물타운 1층을 전부 임차하겠다는 업체가 있어서 수분양자들에게 임대 동의서를 받았지만, 업체 입점이 무산되면서 자신이 임차해 상가를 오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분양자들에게 임차료를 지급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영업이 잘되고 향후에 여건이 됐을 때 수분양자들에게 임대료를 드리면 되는 것”이라며 “현재 영업 중인 수산물 판매업체는 이중 임대차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공동 사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시행사 대표는 임차료 지급 및 건물 인도에 대한 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은 이유로 “능력이 안 되는데 지불하라면 할 수 있겠나”라며, “기자님이 (현재 영업 중인) 수산물 판매업체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와서 영업해보라”고 말했다.
수산물 판매업체 카드 채권 강제집행을 피하고자 자기 아들 사업자 명의의 카드단말기로 바꾼 행위에 대해서는 “제가 죄를 지었으면 벌 받으면 되는 것”이라며, “소송 걸었던 60여 개 점포 때문에 다른 점포도 다 문을 닫아야 하는 거냐, 어쩔 수 없이 별도 법인을 설립해서 공동사업 형태로 묶어 영업한 것”이라고 밝혔다.
역시 패소한 분양대금 반환 소송 결과를 이행하지 않는 이유에 관해서는 “돈이 없어서 못 주고 있다”고 답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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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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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살인 청년’ 강도영 씨 가석방으로 출소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19화]
‘간병살인’ 청년으로 알려진 강도영(가명) 씨가 만기 약 9개월을 앞두고 7월 30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강 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홀로 돌보다 생활고에 시달려 끝내 부친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지난 2021년 5월 구속됐다. 강 씨는 살인 고의가 없었다며 유기치사를 주장했으나, 1심-2심 재판부는 모두 존속살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강도영 씨의 사연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2021년 11월부터 진행한 프로젝트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관련 기사 보기 – “쌀 사먹게 2만원만.. 22세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강 씨의 부친 고 강영식(가명. 당시 56세) 씨는 지난 2020년 9월 목욕탕에서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강영식 씨는 응급 수술을 받고 의식을 찾았지만, 사지 마비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콧줄을 통한 경관급식으로 식사를 했고, 대소변 처리 역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강영식 씨는 뇌출혈 전문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약 8개월 치료를 받았으나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다. 간병비 포함 치료비 약 2000만 원이 아들 강도영 씨에게 청구됐다. 입대를 위해 대학 휴학 상태였던 강 씨(당시 22세)에겐 돈이 없었다. 강 씨의 삼촌이 직장에서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아 치료비를 댔다.
강영식 씨는 계속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아들 강도영은 더는 돈을 구할 수 없었다. 강도영 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어머니와 헤어졌다. 엄마의 거주지는 물론 생사도 모른다. 강 씨는 2022년 4월 23일 아버지를 퇴원시켜 집에서 홀로 돌봤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살던 집의 월세는 아버지 입원 직후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도시가스, 인터넷, 휴대폰이 요금 미납으로 차례대로 끊겼다. 강 씨는 “쌀 사먹게 2만 원만 빌려달라”는 문자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내는 처지가 됐다.
결국 강 씨는 5월 초부터 아버지를 안방에 방치했다. 아버지의 시신은 5월 7일 안방에서 발견됐다. 강도영 씨는 집에서 체포돼 구속됐다.
<셜록> 보도 이후 많은 시민이 돌봄과 간병 살인, 특히 ‘영 케어러(young carer)’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강도영 구명운동’에 나섰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개 사과를 하고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 케어러 실태조사에 나서는 등 관련 대책 정비에 나서기도 했다.
[관련 기사 보기 – ‘강도영 선처 6천명 탄원.. 총리, 장관, 대선후보도 관심]
구속된 강도영 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힌 시민도 많았다. 특히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은 2021년 11월부터 월 1회 강 씨를 면회하며 심리, 생활지원을 해왔다.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 전 국회의원은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강도영 씨를 수차례 직접 만나는 등 강 씨가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 제1호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데 힘을 보탰다.
“강도영 씨의 사연을 처음 접했을 때 ‘타인의 도움이 없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 오빠 전태일도 22세 때 사망했는데, 오빠 생각도 많이 났다. 오빠가 외로웠을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강도영 씨가 사회에서 잘 적응해 살 수 있도록 계속 힘을 보탤 생각이다.”
전순옥 전 의원이 지난 7월 말 <셜록>과의 통화에서 한 이야기다. 출소한 강도영 씨는 고향 대구광역시의 한 친구 집에서 머물고 있다. 곧 살아갈 집을 마련해 독립할 예정이다.
<셜록> 역시 강도영 씨의 생활을 지원할 예정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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