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 일곱번 ‘반성문’ 다시쓰기… 직장 내 괴롭힘 인정 [회사에 괴물이 산다 11화]
[지난 이야기] 보육교사 이정윤(가명)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계속 사표를 쓰라고 강요당한다. 확인서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반성문’도 강요당했다. 하나의 사건으로 3주간 일곱 번 다시 쓴 적도 있다. 이정윤의 정신건강은 극도로 나빠졌다. 스스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우울증으로 휴직을 요청했던 그에게 원장은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해고 사유는 크게 두 가지. ▲병가 기간이 끝나고도 출근하지 않고 무단결근을 했다는 것. 그리고 ▲적응장애와 우울증이 있어서 영유아를 돌보는 업무를 맡기기에 부적절하다는 것. 그런데 이유가 서로 충돌한다. 이정윤의 정신질병이 심각하지 않다고 간주해서 병가 연장을 반려해놓고, 또 동시에 그의 정신질병이 심각해서 보육 업무를 맡길 수 없다는 논리라니. “두 번째 그렇게 하고(자살충동) 나서 남편이 너무 슬퍼하는 걸 봤죠.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저는 반대로 생각해보지는 못했어요. 만약에 반대로 남편이 그렇게 죽어버렸다면…. 내가 너무 큰 상처를 준 거더라고요. 그럼 내가 마음을 한번 바꿔보자, 죽으려고 했던 그 에너지를 살려고 하는 용기로 한번 바꿔보자, 생각했어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조용히 죽는 길이 아니라 시끄럽게 사는 길을 택했다. ‘경기도 마을노무사’ 제도와 김요한 노무사(노무법인 노동을잇다)의 도움이 컸다. 함미영의 존재는 말할 것도 없다. 용기 내어 사실확인서를 써준 전 동료 교직원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을 수가 없다. 2023년 10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원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지속적인 퇴사 강요 중 부적절한 표현 ▲부당한 확인서·시말서 작성을 여러 차례 강요 ▲민감한 개인정보(노조 가입 사실)의 공표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 과태료도 부과됐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과태료 부과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2019년 이후 접수된 3만 9316건 중, 과태료 부과는 고작 1.3%(501건)에 불과하다. 지난 14일 고용노동부가 밝힌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처리 결과 현황’에 따른 수치다. 산재도 승인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2월 1일, 이정윤의 적응장애 등을 ‘업무상질병’으로 판정했다. 약 한 달 뒤인 3월 11일에는 부당해고도 인정됐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해고금지 기간인 산재요양 기간 중 발생한 해고”이므로 “위법하며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세 기관 모두 이정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어린이집 측은 세 가지 결정에 모두 불복했다. 직장 내 괴롭힘 과태료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부당해고 인정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는 등, 이의제기 절차에 들어갔다. 7월 5일 중앙노동위원회 날. 이정윤은 걱정이 컸다. 현장에서 원장을 만나면 어떡하나. 그 상황의 스트레스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물론 그날도 미리 진정제를 먹고, 공황발작에 대비해 응급약을 챙겼지만…. 심판위원들 앞에 이정윤이 자리했다. 그리고 바로 뒷자리에 남편이 앉았다. 혹시라도 이정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장 손을 뻗어 구할 수 있도록. 다행히 원장은 나오지 않았다. 이정윤은 미리 준비해간 한 장 반짜리 최후진술서를 직접 또박또박 읽었다. 눈물이 조금 나고 손이 약간 떨렸지만 참을 만했다. “‘힘들었던 일터로 왜 돌아가려 하느냐?’ 제가 요즘 받는 질문입니다. 제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타의에 의한, 그것도 부당함에 의한 퇴사로 제가 사랑했던 일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현장으로 돌아가서 제가 사랑하는 일을 계속 할 것입니다. 가진 힘이 작다고 해서 포기하라고 강요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윤 중앙노동위원회 최후진술 2024. 7. 5.) 판정 결과는 ‘초심유지’. 부당해고가 다시 한 번 인정됐다. 네 번째 승리다. 사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보육교사의 비율은 상당히 높다. 그중 이정윤과 같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결국 인정받는 경우가 흔치 않을 뿐이다. 2021년 직장갑질119 등이 진행한 ‘2021 보육교사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71.5%(246명)가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를 묻는 질문에는 78.0%(192명)가 ‘원장 등 어린이집 대표’라고 답했다.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61.4%(121명)가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의료적 진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 36.6%(126명)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보육교사 해고 사건 경험이 많은 김요한 노무사는 이정윤이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갑갑하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많은 현장에서 본 “상투적인 수법”이란 거다. “보육교사가 근로조건이나 법 위반 문제를 지적하면, (사용자가) 그 교사를 몰아내기 위해 쓰는 레퍼토리거든요. 교사들에게 ‘이 중에 누구랑 같이 일하기 싫은지 적어내라’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형성하는 건 아주 오래된 얘기예요.”(김요한 노무사 전화인터뷰 2024. 6. 25.) 김 노무사는 “재원은 다 공적으로 운영되는데, 운영은 (원장) 개인에게 위탁을 줘서 마음껏 사적 전횡을 휘두를 수 있게 한다”는 제도적 문제도 지적했다. 엄연히 ‘국공립’ 어린이집이지만 위탁운영자일 뿐인 원장 개인이 인사 등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는 비판이다. “제가 살아 있는 건 사실 남편 덕분이에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우울증은 이정윤을 소파 하나만 한 세계에 가둬버렸다. 특히 집에서 어린이집이 가깝기 때문에, 혹시나 외출을 했다가 학부모나 동료교사나, 최악의 경우 원장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웠다. 뭘 잘못해서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남편은 생업도 미루고 늘 이정윤의 곁을 지켰다. 남편은 그를 달래서 차에 태우고, 공원으로 카페로 데리고 나갔다. 일부러 집에서 적당히 멀고, 사람도 그리 붐비지 않는 카페만 찾아 다녔다. 지난 6월 21일 기자가 이정윤을 만난 경기 용인시의 한 카페도 그런 곳이었다. 평일 낮 대형 카페의 2층은 역시 한적했다. 인터뷰 도중 이정윤의 눈길이 때때로 계단 쪽을 향했다. 누군가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릴 때였다. 그때마다 그는 목소리를 약간 낮추고, 올라오는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약속장소를 정할 때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만약에 카페에 갔는데 누구를 만나기라도 하면…. 저는 원장을 보거나 어떤 괴롭힘 상황에서만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비슷한 사람을 보거나 비슷한 상황이 되면 이게 이렇게(공황발작이) 딱 되더라고요.”(이정윤 전화 인터뷰 2024. 6. 15.) 지금도 이정윤은 시간마다 상황마다 다른 약들을 챙겨 먹어야 한다. 기자를 만난 날도 미리 진정제를 먹고 왔다. 인터뷰 중에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 그때의 고통이 다시 살아날까봐. “사실 공황장애라는 게 뭔지 잘 몰랐어요. 근데 겪어보니, 이게 제가 통제한다고 통제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괴롭힘과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어떤 스위치가 탁 켜지면 그게(공황발작이) 딱 오더라고요. 굉장히 무섭더라고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아직도 고통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산재 요양기간은 10월까지 다시 연장된 상태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됐다. 산재도, 부당해고도 인정됐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과, 노동위원회가 이정윤이 당한 피해와 고통을 인정하고 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어린이집의 복직 통보는 아직. 이제 남은 건 그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일뿐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뭘 걱정하는지도 잘 안다. 가끔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자고 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보자고 했던 이유도 다 이정윤의 ‘마음건강’을 가장 먼저 걱정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정윤에게는 어린이집으로 꼭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결국 (어린이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내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가긴 가야죠. 나중에 그런 걸(이직이나 퇴사) 하더라도, 내 첫 번째 발걸음은 내 원래 일터로 돌아가는 거여야 해요.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가 그게 어디든 집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결국엔 제가 (어린이집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예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어디서부터인가 언제부터인가 뭔가 잘못돼서 길이 어긋났다면 일단은 처음에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먼저다. 그런 다음 새로운 길로 갈지언정. 그게 바로 잘못돼 있던 모든 것들을 끝맺는 마지막이자, 동시에 새로운 것들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카페 앞마당에 들꽃들이 피어 있다. 꽃무리를 향해 이정윤의 눈길이 간다. 발길도 자연스레 그쪽을 향한다. 어느새 손길을 뻗어 조심스레 꽃을 만진다. “원래 꽃을 참 좋아해요.” 그의 아담한 손이 눈에 들어온다. 일터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동료들과 신뢰를 나누고, 가족들과 편안한 일상을 누리는 날은 언제쯤 올까. 그 손에 돌려받아야 할 것이 아직 많다. 지난달 1일 A 원장은 기자와 한 통화에서,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듣길 바란다며 “상처 받은 분들이 많은데 조용히 극복하고 지내려 하니 시끄러워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틀 뒤 C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이정윤이 원장과 부원장을 상대로 낸 공동감금과 공동강요 혐의 고소건이 ‘불송치’로 종결됐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이정윤 측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C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산재 승인 ▲부당해고 인정 등 세 가지 결정을 모두 반박했다. 우선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결정에 대해 “면피성 행정”이라 비판하고, “괴롭힘이라 할 만한 사안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개원 초기) 운영상 조금의 미숙함은 있을지언정 직장 내 괴롭힘은 있기 어려운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산재 판정 과정에서도 어린이집 측은 “(이정윤의 주장은)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거나 매우 과장된 것”(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 판정서 인용)이란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산재 승인에 대해 C 변호사는 “사용자(어린이집) 측에서 (부당함을)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주장했고, 부당해고 인정에 대해서는 “해고의 실질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되진 않으나 다만 절차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는 있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해당 어린이집의 ‘진짜 주인’인 광주시 측 생각은 어떨까. 광주시청 국공립어린이집 담당자는 지난 6월 28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어린이집과 이정윤) 양쪽에 자료를 다 요구해둔 상태”라며, “자료를 입수한 뒤 각각 면담을 통해서 방향을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해당 어린이집의 위탁 만료일은 오는 10월 31일로, 재위탁 심사를 앞두고 있다. 담당자는 “(위탁)계약 해지 사유라 판단되면 계약해지나 재계약 불가도 가능하지만, 어쨌든 그건 따져봐야 할 문제”라며, “(법적) 결정이나 판결을 기다리면서 확인하는 중”이라 답했다. <끝> 취재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노동권
·
2
·
갑질 당하고 우울증까지… 회사는 ‘해고’를 통보했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10화]
[지난 이야기] 보육교사 이정윤(가명)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초과근무 문제 등 ‘바른말’을 했다가 미운털이 박힌다. 원장은 그가 ‘불편하다’며 계속 퇴사를 강요한다. 전 교사들에게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이정윤을 압박하기도 했다. ‘퇴사를 결정짓지 않으면 퇴근 못한다’고 잡아둔 날도 있었다. 이정윤은 공황발작이 시작됐다. 예전에 이정윤이 일하던 어린이집 원장은 그를 위해 추천서를 써줬다. 추천서 속에서 이정윤은 “밝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할 줄 알고”, “부모님과 소통할 때에도 배려와 공감의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하며, “유아의 개인적 발달과 어린이집 교육방향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이 일하기 불편한 사람’, ‘장점이 없는 사람’, ‘동료들도 모두 싫어하는 사람’이란 비난을 듣고 있다. 이 극단적인 온도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22년 2월 말, 원장은 보직 변경을 통보했다. 담임교사에서 보조교사로. 이정윤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고 그 사실을 원장에게 알렸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에 이정윤은 깜짝 놀랐다. 이정윤이 노조에 가입했다고, 원장이 지역 어린이집 원장단체 회장에게 알렸다는 거다. 이정윤은 한 달 전 보육교사 노조에 가입했다. 계속된 퇴사 압박을 혼자 버텨내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 개인정보보호법은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등을 민감정보로 규정하고, 정보주체 동의 없이 이를 처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보조교사 생활은 한 달간 이어졌다. 그리고 3월 말 이정윤은 다시 담임교사가 됐다.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원장과 합의했기 때문이다. 저를 향해 많은 교사들이 말했습니다. “어린이집은 원장이 사장이다. 직원을 자르는 것은 사장 마음이다.” “어린이집 교사가 노조 가입이라니, 빨갱이다.” “선생님(이정윤) 때문에 다른 교사들이 불편하다.” 어느새 저는 어린이집에 있어서는 안 될 ‘악의 축’이 돼 있었습니다.(이정윤 중앙노동위원회 최후진술 2024. 7. 5.) 2022년 8월 22일, 원장이 이정윤과 또 다른 동료교사 한 사람을 교무실로 불렀다. 이번에는 사표가 아니라 경위서를 쓰라는 지시였다. 두 사람은 6월에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두 달이 넘게 지나서 경위서를 쓰라고 한 거였다. 다음 날 이정윤은 경위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2주쯤 더 지난 9월 6일. 원장은 다시 이정윤을 불러 문서 한 장을 내밀었다. ‘확인서’라는 제목의 문서. 이미 경위서를 썼던 그 일, 약 3개월 전 말다툼에 관한 거였다. 이미 원장이 문구를 써둔 확인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원장과 부원장은 서명을 하지 않으면 교무실에서 나갈 수 없다며 강요했다. 고함을 치고 책상을 두드리는 태도에 이정윤은 공포를 느꼈고, 결국 마지못해 서명을 했다. “이걸 받지 못하고는 선생님들 나갈 수가 없어요. 이 자리에서. 아니, 선생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쓰셔야 된다고요! 이거는 쓰실 수밖에 없어요.”(부원장 B 대화 녹취록 2022. 9. 6.)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경위서를 다시 써오라는 지시. 이번엔 ‘확인서’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정윤은 그날 확인서를 제출했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다시 써야 했다. 원장과 부원장은 고쳐 써야 할 곳, 삭제해야 할 곳을 직접 ‘첨삭’했다. 다시, 다시, 다시. 제출과 반려를 매일 반복했다. 8월 23일, 9월 6일, 9월 7일, 9월 8일, 9월 13일, 9월 14일, 무려 6차에 걸쳐 확인서(경위서)를 제출했다. 원장이 미리 문구를 써둔 확인서에 서명도 했으니, 하나의 사건으로 모두 일곱 번의 확인서를 제출한 셈이다. 원장이 요구한 건 경위서도 확인서도 아닌, 사실상 ‘반성문’과 다름없었다. ‘반성문 다시 쓰기’는 그 뒤에 또 있었다. 9월 16일, 이정윤이 돌보던 아이가 콧등이 쓸리는 일이 있었다. 연고를 바르고 나니 아이의 코는 이상 없는 상태로 돌아왔다. 부모에게도 알렸지만 괜찮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런데 사흘 뒤에 문제가 생겼다. 원장이 이정윤을 불러 호통을 치고, 이번에도 확인서를 쓰라고 지시했다. 역시나 계속해서 반려되고, 계속해서 다시 써야 했다. 9월 20일, 9월 21일, 9월 23일, 9월 27일, 10월 5일. 5차에 걸쳐 확인서를 다시 써서 제출했다. 같은 일은 다음 달에 또 일어났다. 11월 4일 원장은 이정윤을 불러 ‘시말서’를 쓰게 했다. 이번에는 하루 전 현장학습에서 짜증을 내며 “아이 씨”라고 상스러운 말을 했다는 게 이유. 이정윤은 그런 말은 안 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원장과 부원장은 ‘동료교사들이 들었다’며 이정윤을 몰아세웠다. 그날 이정윤은 1차 시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원장은, 원장 본인이 직접 문구를 쓴 시말서를 이정윤에게 내밀며, 서명하라고 했다. 억울하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상스러운 말을) 안 했다는 걸 증명해보라”고 다그치고, “교회 다닌다며? 정말 양심이라는 게 있어?”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번에도 역시 ‘서명하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다’고 윽박질렀다. “오늘 이거 지금 사인 안 하면 선생님(이정윤) 못 가.”“(서명)할 수 없으면 그냥 오늘 여기 계속 있는 거야. 집에 가지 말자, 우리.” (부원장 B 대화 녹취록 2022. 11. 4.) 실랑이는 약 두 시간이나 이어졌다. 날카로운 음성과 책상 두드리는 소리. 이정윤에게 또 공황발작이 시작됐다. 손발이 떨리고 꼬였다.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원장 : “그게 불미스러운 행동이 아니야? 어디다 대고서는 거짓말하고 있어?”이 : “거짓말 안 했습니다.”원장 : “어디다 대고 어거지 하고 있어!”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2. 11. 4.) 이정윤은 보육교사 노조의 지부장, 함미영에게 SOS를 쳤다. 함미영은 바로 어린이집으로 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 그 뒤에야 이정윤은 교무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날 밤, 이정윤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내가 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죽고 싶어서 죽는 게 아니에요. 그때는 아무 생각 안 들어요. 그저 너무 지치니까 이제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다…. 제 존재를 계속 부정당했잖아요. 결국 ‘내가 사회 부적응자인가? 정말 내가 문제 있는 건가?’ 하면서 자신을 놓게 되더라고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반성문 다시 쓰기’가 또 시작됐다. 11월 11일 2차, 11월 21일 3차, 11월 25일 4차까지 제출했다. 2차부터는 시말서가 아니라 ‘확인서’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대법원은 “시말서가 단순히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죄문 또는 반성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두6605 판결). 이정윤의 정신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도무지 잠을 자지 못하니, 일상을 버틸 수가 없었다. “사람이 잠을 너무 못 자니까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여요. 집 안에 있는데 웬 남자들이 서 있어요. 그림자가 보여요. 저희 집이 2층인데, 창문에 블라인드를 다 해놨거든요. 가끔 남편이 환기도 시키고 빛도 들어오게 한다고 블라인드를 걷으면, 제가 ‘여보, 저기(창 밖에) 원장이 서 있어!’ 그런 얘기를 자꾸 했어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2023년 3월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물류센터에서 새벽일을 하던 함미영이 ‘마지막 인사’ 메시지를 받은 바로 그날. 그날도 이정윤은 ‘내가 없어지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충남 계룡시의 한 보육교사가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유가족은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정윤은 숨진 보육교사가 꼭 자기 같았다. 이정윤은 사선에 서 있었다. 한 발짝 차이로 삶과 죽음이 나뉜 그날 밤. 함미영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이정윤의 집으로 출동해 그의 안전을 확보했다. 살아서 견딜 수도, 죽어서 끝낼 수도 없는 고통. 결국 입원을 결정했다. 이정윤은 2023년 3월 6일부터 17일까지 12일간 녹색병원에 입원했다. 병명은 적응장애와 ‘상세불명 기원의’ 위장염 및 결장염. 온갖 검사를 다 해봤지만 신체적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정윤은 이른바 ‘반성문’ 사건으로 처음 죽음을 떠올린 2022년 11월부터 녹색병원으로 옮겨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때부터 담당의사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의사) 선생님이 저랑 상담을 하시더니, 제 남편하고 통화하고 싶대요. 나중에 들었더니, (의사가) 폐쇄병동(보호병동) (입원을 권하는) 얘기를 했대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입원해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약을 먹고 잠드는 일밖에 없었다. 죽음조차 떠올릴 수 없는 지독한 무기력. 이정윤은 ‘적응장애’를 진단받았다. “일상생활 기능장애 동반되어 업무 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사료”된다는 소견이 붙었다. 이어 ‘중증의 우울에피소드’ 진단이 더해졌다. 진단서에 적힌 치료기간은 계속 길어졌다. 3월 초 병원에 입원하면서 처음으로 냈던 무급 병가(휴직)를 두 차례 연장해야 했다. “우울증에 걸리면 ‘뭘 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없거든요. 아무것도 안 해요. 살림도 안 하고 운동도 안 하고 밥도 안 먹고 소파에 누워만 있어요. 제 생활반경이 딱 거실 소파밖에 안 됐어요. 가끔 속에서 천불이 나면 아이스크림을 정말 미친 사람처럼 퍼먹는 거야. 다른 식사는 아예 안 하고, 먹는 건 딱 아이스크림 하나였어요.”(이정윤 전화 인터뷰 2024. 6. 15.) 세 번째 휴직 연장을 요청한 때가 2023년 7월 4일. 다시 한번 “중증의 우울에피소드”를 진단받은 날이었다. 하지만 원장은 휴직을 승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건을 붙였다. “녹색병원이 아닌 다른 종합병원에서 ‘취업치료가 어렵다’는 진단서를 발급해서 전달 주시면 (…)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원장 A 문자메시지 2023. 7. 5.) 당시 이정윤은 이미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상태였다. 그는 녹색병원도 종합병원이라며, 산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휴직처리 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 이상 답변은 없었다. 그리고 같은 달 31일. 이정윤은 어린이집이 보낸 서류 한 장을 받아들었다. 해고통지서였다. 취재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노동권
·
3
·
“나가라는데 왜 버텨”… ‘싫은 사람’ 설문 후 퇴사 강요 [회사에 괴물이 산다 9화]
띵똥-.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울린다. ‘이 시간에 누구지?’ 그날 밤 함미영은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보육교사 노동조합의 ‘전’ 지부장. 잠시 어린이집 일을 쉬던 그는 이따금 물류센터에서 야간 알바를 했다. 3월 초, 이른 봄의 밤공기는 아직도 차가웠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창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 갑자기 울린 스마트폰 알림. 불길함이 확 끼쳤다. 이 시간에 오는 연락은 ‘한가한’ 일일 리가 없다. 바로 전화기를 꺼내들어 메시지를 읽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다 내려놓고 싶습니다. … 안녕히 계세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보육교사 이정윤(48, 가명). 종종 함미영에게 어린이집에서 ‘당한’ 일들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던 사람. 메시지를 보고 함미영은 깜짝 놀랐다. 이정윤이 가끔 탄식처럼 내뱉던 ‘극단적인’ 말들이 떠올랐다. 설마. 함미영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함미영은 바로 112를 눌렀다. 이정윤의 집으로 출동해달라 부탁했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눈을 뜬 채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경기 광주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 이정윤의 일터다. 2019년 12월 개원한 이 어린이집에는 14명의 보육교사가 소속돼 있다(2024년 4월 기준). 이정윤과 같은 ‘개원멤버’들의 고생이 컸다. 개원 전 15일가량은 무보수로 일했다. 개원 업무와 어린이집 평가인증(평가제) 준비, ‘열린어린이집’ 준비까지 겹쳐 업무량은 살인적으로 늘었다. 어린이날 행사, 산타 행사, 물놀이 행사 등 어린이집 행사도 유난히 많았다. 법으로 정해진 하루 한 시간의 휴게시간을 제대로 못 쓰는 건 당연(?)했다. 대개는 저녁도 먹지 않고 야근을 했다. 밥 먹는 시간을 아껴서 조금이라도 더 일찍 집에 가려고. 하지만 너무 늦게까지 일이 이어지면, 사발면에 김밥을 먹으면서 일했다. 그도 아니면 일거리를 집에 가져가서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평일에 못다 한 일은 휴일에 나와서 끝내야 했다. 교사들은 지쳐갔다. 가족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교사들끼리는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정작 원장 앞에서는 말 한마디 하기 어려웠다. 이정윤은 달랐다. 입바른 소리는 늘 그의 몫이었다. ‘업무량을 줄여달라, 초과근무 수당을 달라’ 요구하는 그를, 원장은 눈엣가시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원장님이 이정윤 교사를 심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일하는 동료교사들은 부당함에 대한 요구를 하는 이정윤 교사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원장님과의 갈등을 보면서 이정윤 교사를 피하게 되고 (…) 다른 교사들의 경우 원장의 부당함에 뒷담화를 할지언정 원장의 눈에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동료교직원 문원정(가명) 사실확인서 중) 그 사이 시청도 업무 과중과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 문제를 알아차렸다. 2020년 6월 현장방문에서 문제가 지적됐고, 1년 뒤 지도점검에서 또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그에 따라 2021년 7월 어린이집은 약 1년 전부터 누적된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분 약 400만 원을 뒤늦게 지급해야 했다. 초과근무 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개원 초기 수당은 포함되지 못했다. 원장의 ‘불편한 심기’가 누구를 향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다른 교사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였다. 어린이집의 공기는 묘하게 변해갔다. 동료들 역시 이정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서 힘들다’는 불만은 어느새 ‘이정윤 하나 때문에 어린이집이 시끄러워진다’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이정윤은 ‘모두의 적’이 됐다. “열악한 업무환경에 대해 함께 불만을 이야기했던 교사들은 원장님이 제게 가하는 행위를 보며 입을 다물었고 방관자가 됐습니다. (…) 공포의 학습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나를 따돌린 적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원장 눈 밖에 날 사람과 가까이 했다간 자신도 낙인찍힐 것 같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압니다.”(이정윤 중앙노동위원회 최후진술 2024. 7. 5.) 어느 날부터 원장은 ‘퇴사’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편하게 계속 간다? 그러면 선생님(이정윤)하고 같이 못 갈 거고(고용할 수 없다는 뜻). 선생님에 대해서 뭐가 장점인지. 선생님이… 선생님이랑 같이 근무할 뭘 줘야 말이지? 어? 선생님이 뭘 잘했어요? 뭘 잘했어? 선생님이?”(원장 A 대화 녹취록 2020. 12. 16.) 사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건 2020년 12월이었다. 내년도 반 배정을 위한 교사 면담. 원장은 그에게 퇴사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불편하다, 장점을 알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어떤 핑계를 갖다 붙여도, 그저 ‘네가 마음에 안 드니까 눈치껏 알아서 나가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원장의 말은 이정윤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정윤은 작은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매일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부터, 하루 종일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모두 기록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무능한 사람이 아니야,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다. 그리고 원장과의 대화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원장의 퇴사 강요는 이때부터 약 14개월 동안, 녹음된 것만 해도 여덟 번이나 된다. 원장이 퇴사를 강요하면, 이정윤이 이유를 반문하며 항변하고, 마치 돌림노래처럼 반복됐다. 불 같은 압박, 아니면 얼음 같은 냉대였다. 이정윤은 ‘투명인간’이 됐다. 출퇴근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물론, 업무 보고에도 원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매일 모멸감이 쌓여갔다. “싫다고 이제. 같이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그런데 왜 버티고 있냐고? 왜?” (원장 A 대화 녹취록 2021. 11. 30.) 한 해가 지나, 다시 연말. 2021년 12월 원장은 새로운 근거(?)를 내밀었다. 다른 교사들에게 ‘짝꿍교사(공동담임)를 같이 맡고 싶지 않은 사람’ 이름을 쓰라는 설문조사를 한 거다. 결과는 뻔했다. 원장은 설문조사 결과 이정윤의 이름이 나왔다며 또 퇴사를 요구했다. “이정윤 교사는 운영자인 원장님 입장에서는 불편한 교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원장님과 갈등이 생겨서 힘들어하는 이정윤 교사에게 몇몇 동료교사들이, 보육현장은 변하지 않으니 원장님 운영방침에 따르거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동료교직원 임은주(가명) 사실확인서 중) 무슨 ‘마피아게임’인가. 동료들의 손가락총에 따라 한 사람의 일자리를 뺏다니. 사실 해고할 명분이 확실하다면, 굳이 이정윤에게 사표를 쓰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 원장이 교사 설문조사 결과까지 들고 나온 건, 오히려 그만큼 해고의 명분이 없다는 반증이다. 원장 : “(원을) 운영하는 건 나야! (…)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지!”이정윤(이하 이) : “근데 제가 왜 퇴사해야 되는지 이유를 명확히 얘기 안 해주시는데….”원장 : “아이, 진짜 이 사람이!”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8.) 퇴사가 아니면 보직 변경을 선택하라고 했다. 보직 변경은 담임교사에서 보조교사로 ‘강등’되는 걸 뜻했다. 급여상 불이익을 보는 건 당연. 이정윤은 퇴사도 보직 변경도 원치 않는다는 뜻을 계속 밝혔다. 원장은 점점 언성을 높이고, 손으로 책상을 내려치기도 했다. “그때 너무 비참했거든요. 어떻게 내가 싫다고 사람들한테 그런 설문조사를 받을 수 있지?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저렇게 함부로 할 수 있지? 정말 매일매일이 지옥이었어요. 괴롭힘 당하고 (공황 발작이 나타나면) 약을 털어 먹어요. 그런데 그걸 또 다 토해요. 그러면 빨리 (구토를 멈추는) 다른 약을 또 먹고…. 아이들한테 그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혹시라도 옷을 버릴까봐 (출근할 때) 항상 여벌옷을 갖고 다녔어요. 토하면서 (용쓰다가) 소변이라도 나올까봐 속옷까지 다 챙겨서…. 정말 비참하다….”(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이정윤은 2021년 6월부터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불면증과 공황장애 증상 때문이었다. 처음 ‘정신과’를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 아냐? 왜 혼자 못 이겨내?’ 하는 편견이 있었다. 그 고통이 자신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거듭된 퇴사 강요와 따돌림을 겪으면서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혼자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었다. 일터를 떠날 수도 없었다. 약을 먹으며 ‘지옥’ 같은 날들을 견디는 수밖에. 새해가 다가올수록 원장의 퇴사 압박은 강도를 더해갔다. 아마도 새 학년도가 시작되기 전에 이정윤을 정리(?)하고 그 자리에 새 교사를 채용하기 위함인 듯했다. “선생님(이정윤)이 운영자야? 어디 이야기를 하면 하나하나 듣는 게 아니고 하나하나 따져! (…) 항상 거기다 대고 꼬박꼬박 말대답 하고! 말대꾸 하고! 거기다가 꼬박꼬박 납득이 안 된다고 그러고! (…) 주임선생님. 들어와 봐요.”(원장 A 대화 녹취록 2021. 12. 30.) 원장은 동료교사까지 불러놓고 그 앞에서 계속 이정윤을 압박했다. 이정윤은 울음이 터졌다. “언제까지 그러실 건데요. 저 원장님 볼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해요. 제가 (집에서) 잠이나 자는 줄 아세요? (…) 저는 저대로 살아야 되는데 어떡해요, 원장님. 도대체 뭘 얼마나 제가 잘못했다고. 하루아침에 지금 나가라는 거잖아요.”(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30.) 다음 날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2021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원장은 막 퇴근하려는 이정윤을 교무실에 앉혀놓고 또 한 번 퇴사를 강요했다. 책상을 두드리고 고함을 쳤다. 원장 : “선생님(이정윤)이 (의사)결정자야? 선생님이 원장이야! 왜 이렇게 버릇없어!” (…)이 : “제가 퇴사할 만한 어떤 중대한 잘못을….”원장 : “내가 얘기, 이 씨.”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31.) 압박이 계속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이정윤에게 ‘뭔가’가 느껴졌다. “저는 먼저 알아요. 딱 (공황발작) 증상이 올 때 전기처럼 뭔가 오는 느낌이 있어요. 저는 경련으로 먼저 오거든요. 손발이 이렇게 뒤틀린다고 해야 되나, 막 꼬여요. 제 의지하고 상관없이 손이 꼬이고 몸이 막 덜덜덜 떨리거든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또 울음이 터졌다. 공황 증상도 시작됐다. 이정윤은 퇴근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이 : “원장님 저… 가고 싶어요. 저 지금 토할 것 같다고요. 지금 숨이 안 쉬어진다구요. 그만하세요, 좀, 원장님.”원장 : “물 한잔 마시러 갔다 와.”이 :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원장님, 됐어요. 저 갈 거예요. (…) 저 퇴근하고 싶어요. 저 퇴근할거예요. 저, 지금, 지금….”원장 : “난 결정짓고 가야 되겠어!” (원장 A-이정윤 대화 녹취록 2021. 12. 31.) 이정윤은 교무실을 뛰쳐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함께 바로 정신과 병원으로 향했다. 취재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노동권
·
1
·
파킨슨병 산재 또 승소… ‘법정고문’은 7년으로 족하다 [그녀의 우산 8화]
파킨슨병 진단을 숙명으로 인정하기엔 서른세 살은 너무 젊었다. 뇌신경계 파괴로 몸이 굳어가는 와중에 생각은 자꾸 20대 첫 직장 시절로 돌아갔다. 신호영(가명, 48세) 씨는 그때 그 공장에서 LED 제품을 만들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어렴풋이 생각했다. ‘혀마저 굳어가는 내 병은 그 공장에서 얻은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아닐까….’ 법원은 그 추측이 맞다고 다시 한 번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구회근 재판장)는 지난 7월 25일,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이 신호영 씨에게 내린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산재가 아니라는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뒤집은 또 한 번의 판결. 산재 신청 이후 7년 만이다. LED 생산 공장에 취업한 지 22년, 파킨슨병 진단받은 지 15년 만의 일이다. 신호영 씨는 어느덧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누구보다 이 소식을 기다렸을 호영 씨에게 7월 31일 전화를 걸었다. 앉는 것도 힘들어 거의 누워 생활한다는 신 씨 대신 그의 모친 김정혜(가명, 72세) 씨가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도 공단이 상고 안 할까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한 번 데인 적이 있으니까….” 근로복지공단이 다시 상고를 결정한다는 건, 사건이 대법원까지 간다는 의미다. 큰 기대가 없다는 다소 힘 빠지는 반응. 가만 들여다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2심 재판부의 판결은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사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신 씨의 발병 원인과 업무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 역시 신호영 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판결의 핵심 요지를 보자. “비록 의학적으로는 현재까지 이 사건 상병(파킨슨병)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 원고가 이 사건 각 사업장에서 근무할 당시에 다수의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직간접적-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 내지 촉진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서울행정법원 2020구단51146 일부) 이 판결이 나온 때는 2023년 6월 7일, 싸움은 이때 끝나야 마땅했다. 판결 당시 이미 신 씨의 투병 생활은 16년째로, 거동이 어려운 상태였다. 그와 가족에게 산재 인정과 요양급여는 시급한 문제였다. 다른 하나는 근로복지공단도 1심 판결을 받아들여 ‘항소를 포기하겠다’고 법무부에 밝혔었다는 점이다. 법정 다툼을 멈추고 신 씨의 산업재해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법무부가 ‘항소를 진행하라’고 지휘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현 국민의힘 대표인 한동훈이었다. 공단이 ‘항소 포기’를 밝히면 법무부도 이를 받아들이는 게 관례였다. 2021년과 2022년, 공단의 ‘항소 포기’ 의견에 법무부가 항소 이행을 지시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이수진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2023년에만 신 씨를 포함해 ‘반대 사례’가 네 건이나 나왔다. 어쨌든 공단은 자기 의지와 반대로 항소를 했다. 그것도 항소 기한 마감 날 늦은 오후에 말이다. 아들 신 씨를 간병하는 모친 김정혜 씨는 당시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항소도 마감 날짜에, 마감 시간에 딱 맞춰가지고 했는데, 얼마나 잔인합니까. 안쓰러운 사람들한테 (기계적으로) 항소한다는 건 진짜 피해자들을 죽이는 일이죠! (이름이 근로’복지’공단이라면서) 무슨 이런 ‘복지’가 있어요!” (김정혜 씨 인터뷰 2023. 10. 17.) 의지도 의미도 없는 항소. 공단 측은 항소이유서도 4개월 후인 10월 23일에야 접수했다. 신 씨의 안타까운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김정혜 씨는 “근로복지공단이 불쌍한 산재 피해자를 도와주지 못할망정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난해 10월 인터뷰에서 말했다. 당시 기준으로도, 산재 판정을 기다린 지 이미 6년째. 간병인을 들일 여력이 안 돼 일흔 넘은 노모가 간병을 도맡고 있었다. 신 씨가 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때는 2017년. 공단의 불승인 결정 → 행정소송 제기 → 1심 승소까지 6년이나 걸렸다. 이번 2심 판결까지 따지면 7년 세월이다.(관련기사 : 법원은 산재 인정, 공단은 불복 항소… “죽어야 끝날 일인가”) 공단이 2심 판결마저 불복해 대법원으로 사건을 끌고 가면? 해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투병 중인 신 씨와 가족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다. “몸이 성한 사람도 10년 가까이 재판을 하면 힘든데, 몸 아프고 생계도 막막한 사람들은 재판이 길어지면 어떻겠어요? 환자도 힘들고, 돌보는 나도 힘에 부치죠.” 김정혜 씨가 2심 승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다. 기자는 신호영 씨에게 심정을 직접 듣고 싶었으나 그의 건강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작년 10월에 만났을 때도 신 씨는 인터뷰 도중에 잠들기도 했다. 요즘은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고, 혀마저 굳어가고 있다.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워 옆으로 고꾸라지는 일도 잦다. 넘어진 아들을 일으켜 세우는 건 모친 김정혜 씨의 몫이다. “옆으로 넘어져도 혼자 못 일어나요. 그러다 질식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제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죠.” 법원의 1·2심 판결은 신 씨에게만이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세계 1위권의 첨단산업을 보유한 한국사회에 주는 의미가 크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의 말을 보자. “산재는 보통 피해자가 상병과 작업장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되는데, 어떤 유해물질이 있는 작업환경에서 일했는지 노동자들은 잘 모르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이번 판결은 첨단산업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헌법상의 의무를 다한 판결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이종란 노무사 전화 인터뷰 2024년 7월 31일) 이어 이 노무사는 그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직업병 관련 연구가 없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고, 그 발전 속도가 빨라 취급 물질이 빈번하게 바뀌고 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와 안전관리 매뉴얼이 신설되는 등 조사부터 예방책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노무사의 평가대로 최근 법원의 판결은 산업발전 상황을 따라가는 모양새다. 대법원은 이미 판례로 첨단산업분야의 산재 판정 방향을 잡아놨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 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7년 8월 29일 선고 2015두3867) 공은 다시 근로복지공단으로 넘어갔다. 신 씨 모친 김정혜 씨는 이런 당부를 했다. “이번에는 소송이 끝이 나서 겨우 버티고 있는 지금 상황이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냥 딱 ‘남들처럼만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해요. 돈 걱정 없이 치료에 전념하는 거, 간병인 몇 시간이라도 불러서 마음 편히 있는 거, 고등학교 올라간 손주 학원도 보내고 싶고, 며느리도 좀 숨 돌렸으면 좋겠고…” 산재 다툼만 7년. 이 싸움은 이쯤에서 끝날까 아니면 더 연장될까. 근로복지공단은 아직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또 잔뜩 희망고문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상고를 신청할 수도 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노동권
·
1
·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 씨 가석방으로 출소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19화]
‘간병살인’ 청년으로 알려진 강도영(가명) 씨가 만기 약 9개월을 앞두고 7월 30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강 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홀로 돌보다 생활고에 시달려 끝내 부친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지난 2021년 5월 구속됐다. 강 씨는 살인 고의가 없었다며 유기치사를 주장했으나, 1심-2심 재판부는 모두 존속살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강도영 씨의 사연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2021년 11월부터 진행한 프로젝트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관련 기사 보기 – “쌀 사먹게 2만원만.. 22세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강 씨의 부친 고 강영식(가명. 당시 56세) 씨는 지난 2020년 9월 목욕탕에서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강영식 씨는 응급 수술을 받고 의식을 찾았지만, 사지 마비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콧줄을 통한 경관급식으로 식사를 했고, 대소변 처리 역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강영식 씨는 뇌출혈 전문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약 8개월 치료를 받았으나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다. 간병비 포함 치료비 약 2000만 원이 아들 강도영 씨에게 청구됐다. 입대를 위해 대학 휴학 상태였던 강 씨(당시 22세)에겐 돈이 없었다. 강 씨의 삼촌이 직장에서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아 치료비를 댔다. 강영식 씨는 계속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아들 강도영은 더는 돈을 구할 수 없었다. 강도영 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어머니와 헤어졌다. 엄마의 거주지는 물론 생사도 모른다. 강 씨는 2022년 4월 23일 아버지를 퇴원시켜 집에서 홀로 돌봤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살던 집의 월세는 아버지 입원 직후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도시가스, 인터넷, 휴대폰이 요금 미납으로 차례대로 끊겼다. 강 씨는 “쌀 사먹게 2만 원만 빌려달라”는 문자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내는 처지가 됐다. 결국 강 씨는 5월 초부터 아버지를 안방에 방치했다. 아버지의 시신은 5월 7일 안방에서 발견됐다. 강도영 씨는 집에서 체포돼 구속됐다. <셜록> 보도 이후 많은 시민이 돌봄과 간병 살인, 특히 ‘영 케어러(young carer)’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강도영 구명운동’에 나섰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개 사과를 하고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 케어러 실태조사에 나서는 등 관련 대책 정비에 나서기도 했다. [관련 기사 보기 – ‘강도영 선처 6천명 탄원.. 총리, 장관, 대선후보도 관심] 구속된 강도영 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힌 시민도 많았다. 특히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은 2021년 11월부터 월 1회 강 씨를 면회하며 심리, 생활지원을 해왔다.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 전 국회의원은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강도영 씨를 수차례 직접 만나는 등 강 씨가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 제1호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데 힘을 보탰다. “강도영 씨의 사연을 처음 접했을 때 ‘타인의 도움이 없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 오빠 전태일도 22세 때 사망했는데, 오빠 생각도 많이 났다. 오빠가 외로웠을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강도영 씨가 사회에서 잘 적응해 살 수 있도록 계속 힘을 보탤 생각이다.” 전순옥 전 의원이 지난 7월 말 <셜록>과의 통화에서 한 이야기다. 출소한 강도영 씨는 고향 대구광역시의 한 친구 집에서 머물고 있다. 곧 살아갈 집을 마련해 독립할 예정이다. <셜록> 역시 강도영 씨의 생활을 지원할 예정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풍자 유튜버 고소? 명품백 받은 죄인부터 잡아가라” [우상의 정원 17화]
“탄핵이 필요한 거죠” 대통령 풍자 노래를 만들었다가 고소당한 가수를 만나러 가는 길. 지난 16일, 그의 작업실이 있는 서울 마포구로 향했다. 4층 상가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회색 현관문 앞 초인종을 누르자, 그가 나왔다. 가수 백자(본명 백재길, 52세)다. 백자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의 멤버이자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일명 ‘촛불가수’로도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백자는 작업방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2평 크기의 작업방은 컴퓨터 책상으로 이미 절반은 차 보였다. 그 옆으로 마이크와 통기타가 세워져 있었다. 벽 곳곳에는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책장에는 유튜브 ‘실버 버튼’도 전시돼 있었다. 유튜브 본사가 10만 이상 구독자를 보유하는 채널에게 주는 상. 백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수 백자tv’의 구독자 약 18만 명이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유튜브 수익 창출이 안 되고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진보 유튜버들 대부분이 그런 상황이에요. KTV 쪽에서 진보 유튜버들을 상대로 계속 유튜브에 신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윤석열 정부가 ‘길들이기’를 하는 거라고 봅니다.” 백자는 한국정책방송원(KTV)으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했다. 한국정책방송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으로 ‘KTV국민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두 번째다. KTV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민간인을 고소한 사례는. KTV는 지난 2월 8일, 한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제목은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직원이 부릅니다. 변진섭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윤석열 대통령이 드리는 설 명절 인사!>. 영상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직원, 그리고 대통령실 합창단 ‘따뜻한 손’이 가수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로부터 5일 뒤. 가수 백자는 이 영상을 가져와 풍자 영상을 만들었다. 제목은 <대통령실이 부릅니다. ‘탄핵이 필요한 거죠~’>. 그는 본인 유튜브 채널에 해당 영상을 올렸다. 풍자 영상은 백자의 윤석열 대통령 성대모사로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백자 더빙) : “그러나 저러나 우리 이 실장도 감옥에 가셔야지.”이관섭 비서실장 : “저는 뭐 상황 봐서.” 이후 백자는 개사한 노래를 더빙으로 불렀다. 원곡 가사에서 ‘사랑’을 ‘탄핵’이나 ‘특검’으로 바꿔, ‘윤석열의 탄핵이 필요한 거죠’와 ‘김건희의 특검이 필요한 거죠’로 불렀다. 영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와 관련해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디올백 받고서 입 닫을 때’ 등의 가사도 언급했다. “앞서 가신 장모님과 뒤에서 따라 들어갈 마누라 마누라 짐 싸~한동훈 똘마니도~ 구속이 필요한 거죠 (짐 싸)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디올백 받고서 입 닫을 때그 순간이 바로 김건희의 특검이 필요한 거죠나라는 망해도 맨날 지각 술이나 처먹고 나뒹굴 때그 순간이 바로 윤석열의 탄핵이 필요한 거죠탄핵이 필요한 거죠 탄핵이다!” “당시에 명품백 논란이 불거졌는데 김건희가 사과를 안 했거든요. 사과는 안 하면서 대통령이 대통령실 직원들이랑 나와서 춤추고 노래 부르니까 열 받는 거죠. 풍자 만화를 그리시는 ‘오뎅’ 작가님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해서 쓰신 가사를 재밌게 봤거든요. 여기에다가 앞뒤에 ‘탄핵’ 가사를 더 붙여서 더빙으로 노래를 불러본 거죠.” 당시 설 인사 메시지로 대통령실이 공개한 합창 영상은 논란이 되기에 충분했다. 영부인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 논란이 한창 뜨거웠던 시기와 겹치기 때문. 예능 프로그램 ‘SNL코리아’ 시즌5(쿠팡플레이)에서는 합창 모습을 재연하며 풍자하기도 했다. 노래를 같이 부르던 한 출연자(권혁수)가 혼자 튀는 모습을 보이자 경호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입을 틀어막고 그를 끌고 나갔다. 윤 대통령은 과거 대선후보 시절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치 풍자는) SNL의 권리”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정치 풍자는 ‘SNL만의’ 권리라는 뜻이었을까. 백자의 풍자 영상에 대해 KTV는 발 빠르게 조치했다. 백자가 올린 풍자 영상을 유튜브에 곧바로 신고했다. 영상 공개 2일 만이다. 사유는 저작권 침해. 그에 따라 해당 영상은 2월 16일 삭제됐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KTV는 형사고소까지 강행했다. 올해 3월 가수 백자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세종남부경찰서에 고소했다. “윤석열이 대선주자로 언급되던 시기(2020년)에 ‘춘장 트롯’이라는 풍자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KTV뿐만 아니라 어디 기관로부터도 풍자 노래를 갖고 신고를 당한 적은 없습니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민간인을 상대로 (풍자를 이유로) 형사 고소했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었고요. 당연히 대통령실 합창 영상은 공적 영상이라고 생각하고 풍자 영상을 만들었던 거죠. (이번 형사고소는) KTV의 과잉 충성 아니면, 의도적으로 저를 괴롭히고 싶었던 거라고 봅니다.” KTV가 2007년 설립 이후 저작권법 위반으로 민간인을 형사고소한 사례는 현재까지 총 두 건. 모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다. KTV는 가수 백자를 고소하기에 앞서, 지난해 11월경 유튜버 ‘건진사이다’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고소했다. ‘건진사이다’는 주로 영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풍자 영상을 올렸다.(관련기사 : 김건희 저격 고소당한 유튜버 “채널 폐쇄 목적 확실”) 가수 백자는 정보공개를 통해 고소장을 받아냈다.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고소취지와 사건 경위 정도였다. 고소인과 고소인의 법률대리인에 대한 정보는 모두 가려져 있었다. “피고소인(가수 백자)은 고소인(KTV)이 제작하여 유튜브 채널에 게재한 영상을 복제 가공하여 피고소인의 유튜브 채널에 게재함으로써 저작권법을 위반하여 고소인의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고소장 고소이유 요지) 고소장 전문 15장 중 10장은 아예 ‘백지’였다. 유튜버 ‘건진사이다’가 받은 고소장과 비슷했다. ‘건진사이다’의 경우 고소장 전체 15쪽 중 12쪽이 아예 생략된 채 전달됐다. 영상 제목에 쓴 영부인 김건희 씨 이름마저 다 가렸다. “처음에는 경찰청에서 저에 대해 통신조회를 했다고 문자가 왔어요. 기분이 몹시 나쁘더라고요. ‘완전히 나를 감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요. 당시만 해도 왜 통신조회를 했는지 예상을 전혀 못 했죠. 이후에 KTV에서 고소한 걸 보고 ‘이것 때문에 알아본 거구나’ 알게 된 거죠.” 가수 백자와 ‘우리나라’는 1999년부터 민중가요 가수로 활동해왔다. 2009년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 ‘다시 광화문에서’라는 노래를 부르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촛불행동 주최로 열리는 ‘촛불대행진’에도 적극 참여해 ‘촛불가수’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지난 13일 열린 ‘제98차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촛불대행진’ 현장에서는, KTV로부터 고소당한 풍자 노래를 직접 불렀다. “윤석열 정부 이후 이번 사건까지 포함해서 세 번째 경찰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저는 정말로 (이런 행태가) 국가적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중대 범죄도 아닌데 경찰들에게도 시간 낭비, 인력 낭비하는 겁니다. 사실 진짜 죄 지은 놈들을 잡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몰래 명품백 받고 이런 죄인들을 잡아가야죠.” 사실 윤석열 정부의 ‘입막음’ 논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먼저, ‘윤석열차’ 논란이다. 지난 2022년 한국만화진흥원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 작품 속 달리는 열차 정면에는 윤석열 대통령 얼굴이 그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풍자했다는 해석이 나오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주최 측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가상연설 영상’이 긴급차단 되기도 했다. 논란이 된 영상은 지난해 11월 23일 틱톡에 올라온 <가상으로 꾸며본 윤대통 양심고백연설>이라는 제목의 영상.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지난 2월 23일 통신소위 임시회의를 긴급하게 열고 해당 풍자 영상에 대해 통신사에 접속 차단을 요구했다. ‘입틀막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강성희 당시 국회의원(진보당, 전주을)은 지난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경호처 경호원들에 의해 사지가 들리고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갔다. 카이스트 졸업생 신민기 씨도 학위수여식에서 R&D(연구개발) 예산 관련 구호를 외치다가 경호원들에게 제압을 당했다. 역시 입이 틀어막히고 사지가 들린 채 퇴장당했다. “‘입틀막’에 이은 ‘유틀막’(유튜브 입틀막) 아닌가요. 윤석열 정부에서 다 같은 한 맥락으로 사건들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는 ‘절대 듣지 않겠다’ 그런 거죠. ‘꼴도 보기 싫다’ 이런 것 같아요.” 백자는 8월 1일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제가 올린 대통령실 합창 풍자 영상을 오픈 소스로 열어놨거든요. 다른 유튜버들이 이 영상에서 (가사가 뜨는) 자막을 그대로 쓰면서 음성만 다시 새롭게 부르는 등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상들은 KTV가 문제를 안 삼았는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KTV가 저를 본보기로 삼아서 본때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KTV의 ‘유틀막’은 가수 백자만 겪은 일이 아니다. 그동안 KTV는 개인 유튜버들을 유튜브에 꾸준히 신고해왔다. 양문석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안산시갑) 자료에 따르면, KTV는 지난해부터 올해 4월 총선 직전까지 개인 유튜버를 대상으로 총 55건의 삭제 신고를 했다. 이중 약 70%인 38건이 영부인 김건희 씨 관련 영상. 나머지 17건은 윤석열 대통령 관련 영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 관련 유튜브 영상 삭제 요청은 특정 시기에 집중됐다. 하종대 한국정책방송원 전 원장이 취임한 2022년 10월부터 올해 1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던 것. 하 전 원장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캠프 출신이다. 특히, 유튜브 영상 삭제 요청이 올해 총선 직전까지만 이뤄진 사실이 밝혀지면서, ‘KTV 총선 개입’ 의혹도 제기됐다. KTV가 지난해부터 올해 4월 총선 직전까지 총 55건의 영상 삭제 요청과 2건의 형사고소를 진행했던 것. 총선 이후로는 단 한 건의 영상도 삭제 요청을 하지 않았다. 이에 양문석 의원실은 “선거 개입을 위한 부정적 여론 차단 즉 여론조작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양 의원실은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윤석열 대통령이 ‘기소당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절단난다’는 발언을 한 것처럼, 유튜버들을 고소로 위협하고 비판과 풍자를 차단하려 했다. 이는 ‘입틀막’ 시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셜록은 KTV에 반론을 요청했다. KTV는 지난 22일 답변을 보내왔지만, 가수 백자 고소장에 적힌 고소이유 요지, 즉 “백자가 저작권법을 위반해 KTV의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을 반복했을 뿐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정치개혁
·
1
·
칠판 글씨 못읽던 명호의 비밀… 학교가 학교다워졌다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14화]
방과후 수업 출석부에는 학생 8명 이름이 적혔지만,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규수업과 학교 업무로 나도 많이 지친 탓이었을까. 텅 빈 교실과 주인 없는 책상을 보니 땡땡이 친 학생들에게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공업고등학교에서 무슨 방과후 수업이냐 싶겠지만, 우리 학교도 늦은 오후부터 관련 수업을 한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고에서는 국어 수업은 인기가 높다. 서울권의 명문 대학교에 가기 위해선 고전 읽기, 심화 국어 등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텅 빈 교실이 말해주듯, 내가 일하는 공고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내가 맡은 방과후 국어수업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이 꼭 들어야만 하는, 강제로 만들어진 수업이다. 사실 ‘방과후 수업’보다는 ‘기초학력반’이 정확한 표현이다. 상대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낮아 공고에 왔는데, 여기에서도 속칭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다니. 일부 짓궂은 학생들은 “띨띨이반”이라 놀리기도 한다. 자존감이 추락한 기초학력반 아이들은 어떻게든 수업을 빠지려 여러 방법을 동원하곤 한다. 7교시 내내 멀쩡하던 배를 움켜잡고 갑자기 병원에 간다거나, 집안에 제사가 있다며 수업을 빼달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교사들은 벌점을 부과하겠다는 엄포와 학부모 상담을 거론하며 수업 참여를 유도하지만, 기초학력반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방과후 수업을 공친 다음 날, 교무실에서 한 선생님이 큰 목소리로 동료교사들을 불러 모았다. “샘들, 이거 저희 반 명호(가명)가 만든 쿠키입니더. 드셔 보이소. 진짜 맛있습니더.” 달콤하고 쌉싸름한 커피향이 더해진 쿠키 냄새가 교무실에 퍼졌다. 쿠키는 맛이 꽤 좋았다. “명호가 요리를 엄청 좋아합니더. 잘 먹었다고 수업시간에 칭찬해주면 좋아할 거라예.” 얼마 뒤 명호가 속한 반에서 수업을 하며 담임선생님의 부탁을 이행했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명호 칭찬을 시작했다. “느그 반 담임 쌤이 교무실에서 쿠키를 돌렸는데, 그거 진짜 맛있더라!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으니까, 명호한테 물어보라 카시더라. 명호야, 그 쿠키 어디서 살 수 있노?” 이야기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이들은 큰 소리로 화답했다. “명호가 직접 만들었어요. 실력 장난 아니지요?”“샘, 명호가 매주 빵이랑 쿠키도 만들어와요. 우리 반 매주 빵 먹어요.” 명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명호에게 ‘칭찬 스티커’ 네 개를 붙여줬다.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이 이어졌다. 고등학생들이 이런 걸 좋아할까 싶지만, 칭찬을 많이 받아보지 못한 우리 학교 아이들은 ‘칭찬 스티커’를 정말 사랑한다. 스티커 50개를 모으면 교장 선생님이 직접 문화상품권으로 교환을 해준다. “느그들도 빵 값 내야지? 박수!” 명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일주일 후, 다시 방과후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도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2주 연속 수업을 못하면 담당 부서에서 문책이 나올 게 뻔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교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다시 속이 상했다. 교실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한쪽 구석에서 인기척이 났다. “샘, 오늘 수업 안 해요?”“명… 명호가?! 니 거(거기) 있었나? 불이라도 켜두지. 샘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고맙데이! 명호야!” 고함에 가까운 감사 표시에 명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명호 한 명을 앉혀놓고 국어수업 2시간을 진행했다.  그 다음주 방과후 수업, 이번에도 학생은 명호 한 명이었다. 출석부에 적힌 학생 중 절반은 아예 학교에 오지 않았고, 세 명은 조퇴를 했다. 다시 명호 한 명을 상대로 2시간 수업을 진행했다. 중학교 수준 정도의 국어수업, 명호가 잘 따라와서 기분이 좋았다. “명호야, 대화의 원리 배웠제? 그중에서 관용의 격률이 뭔지 기억나나?”“관용의 격률은 내 탓으로 돌리는 거요.”“명호야, 8번의 답은?”“3번요.” 나는 잠시 수업을 멈추고 명호를 바라보았다. 까만 옷에 까만 얼굴, 머리는 며칠을 감지 않았는지 기름기가 흘렀다. 과묵하고 동글동글한 모습이 담임선생님 말대로 푸바오처럼 귀여웠다. ‘학력이 많이 부족하지 않은 것 같은데, 명호는 왜 여기 앉아 있을까? 기초학력이 부족해 이 반에 편성된 아이가 맞긴 한데….’ 어떤 영역의 학습이 부족한지 확인해봤다. 명호는 쓰기가 ‘0점’이었다. 서술형 6문제 중 4문제 이상을 풀어야 하는데, 명호는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평소에 말이 없고 수업시간엔 엎드려 자는 일이 잦았지만, 명호는 읽기와 듣기는 잘 했다. 의도치 않게 1대1 수업이 된 상황, 이왕 이렇게 됐으니 명호에게 딱 맞는 공부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명호야, 니 샘이랑 이야기 좀 할래?” 나는 수업을 멈추고 명호와 마주 앉았다. 명호는 어떤 질문을 해도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명호야, 샘이 다음 시간부터 니만을 위한 국어수업을 할라 카는데, 어떤 수업을 해주꼬?”“….”“그럼 객관식으로 물어보꾸마.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문법, 문학, 맞춤법….”“맞춤법요.”“그래. 알았데이. 그럼 샘만 가지고 있는 맞춤법 문제 100개를 갖고 오께.” 표현을 잘 못하는 명호가 맞춤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으니, 나는 최선을 다해 수업 준비를 했다. 맞춤법 퀴즈도 만들고,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아이가 원하는 수업을 해서 만족도를 높여주고 싶었다. 대신 문제만 푸는 것이 아니라 명호가 직접 설명할 기회를 줘서, 어떻게든 말을 많이 하게 하는 수업을 구상했다. 느리지만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명호와 나는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명호야, 근데 오늘 수업 마치고 뭐하노? 샘이랑 밥 무까(먹을까)?”“저 요리학원 가는데요.”“맞다. 니 요리 잘하제? 저번에 쿠키도 진짜 맛있었다. 집에서도 요리 마이(많이) 하나? 엄마가 정말 좋아하시겠다.”“엄마는 집에 5일에 한 번만 오세요. 거의 저 혼자 해무요(해먹어요).” 명호는 어머니와 둘이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는 평일에는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에만 내려온다고 했다. 엄마는 서울로 떠날 때마다 3만 원 또는 5만 원을 두고 가시는데, 명호는 그 돈으로 5일을 산다고 했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학교 급식, 저녁은 사먹거나 돈이 떨어지면 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명호의 말에 마음이 무거웠다. “자, 그라믄 다시 수업하자. 명호야, 칠판에 적힌 글자 한번 크게 읽어볼래?”“….”“명호야, 빨리 읽어야지.” 명호는 읽지 않았다. 눈을 찡그려가며 칠판의 글자를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읽지 못했다. “자, 그라믄 이 글자 읽어보까?” 나는 글씨를 조금 더 크게 썼다. 명호는 눈을 찡그린 채 칠판의 글씨를 보려 애썼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명호야… 언제부터 글자가 잘 안 보였노?”“중학교 2학년부터요.”“안경은… 왜 안 맞췄노?“ 명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아마 명호는 그동안 모든 수업에서 칠판의 글씨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TV 화면으로 나오는 PPT 자료에선 글씨가 더 작아서 전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명호는 시력이 많이 나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불편했지만, 명호는 몸이 편한 방식으로 생활을 바꿨다. 어차피 잘 안 보이니 읽는 것을 포기하는 식으로 말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찾아온 시력 저하는 명호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곧 학습 포기로 이어졌다. 내 둘째 아들 역시 시력이 안 좋다. 5세 무렵 영유아 검진에서 심각한 난시와 약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의사는 “평생 잘 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수년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조금 나아졌지만, 나는 좀 더 일찍 발견하지 못한 걸 자책하며 오랫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명호에게 안경을 맞춰주고 싶었다. 교감 선생님, 방과후 부장님께 예산 편성을 요청했다. 다행히 학교는 예산을 마련해줬다. “잘생긴 선생님 얼굴이 그동안 흐릿하게 보있겠네! 샘이랑 내일 안경 맞추러 가제이.“ 명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점에 가서 명호는 꽤 오랜 시간 눈 검사를 받았다. 안경 없이 살면서 눈을 작게 뜨는 습관이 생겼고, 이는 시력을 더 저하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명호는 여러 안경테를 써봤지만, 어떤 것이 좋다고 명확히 표현하진 않았다. 나는 “니가 제일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라”고 제안했다. “저는 사실 저게 마음에 드는데요.” 한참을 망설이던 명호가 가리킨 안경테는 15만 원이 넘었다. 사실 명호는 처음부터 그걸로 선택을 마쳤지만, 학교 지원금이 10만 원이라서 내색하지 않았던 거다. “명호야, 개안타(괜찮다)! 샘 돈 많다! 그걸로 해라!“ 나는 한껏 허세를 부렸다. 그럼에도 명호는 다른 안경을 선택했다. 한동안 명호와 나는 실랑이를 벌였다. 괜히 미안해서 그런지 명호는 자꾸 싼 안경테를 고집했다. 결국 안경점 사장님이 나섰다. “자가(쟤가) 처음에 고른 게 아(아이)들한테 인기가 가장 많습니더. 샘이 사주시는 안경이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특별히 5만 원 할인해드리겠습니더.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들고 가이소.“ 안경을 맞추고 명호에게 얼만큼 세상이 밝아 보이느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처럼 1대1 방과후 수업을 이어갔다. 명호는 첫 수업을 제외하고 총 20차시에 해당되는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착실히 들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밖에서 명호를 기다리던 친구가 교실로 들어왔다. “샘요, 명호가 국어 샘하고 약속했다고 안경 맞추고 완전 달라졌어요. 잠도 안 자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나는 말없이 밖에서 명호를 기다려준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공고를 두고 “꼴등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폄훼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험한 세상에 꼴등을 위한 학교가 있다는 것이, 그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를 묵묵히 완주한 학생이 있다는 것이, 교실 밖에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친구를 기다려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명호는 1학기 마지막 국어과목 기초학력 평가에서 95점을 맞아 해당 학생 중에서 1등을 했다. 여전히 말하기와 쓰기는 어려워하지만, 예전보다 자신감도 생겼고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학교가 비로소 학교다운 역할을 한 기분이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교육 공공성
·
6
·
김건희 저격 고소당한 유튜버 “채널 폐쇄 목적 확실” [우상의 정원 16화]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지역번호 ‘044’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떴다. 유튜브 채널 ‘건진사이다’ 운영자 ‘조장’ 이필승(가명) 씨는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상대는 세종남부경찰서. 전화를 받자, 담당 수사관은 “고소장이 접수됐으니 조사받으러 나오라”고 말했다. 이 씨는 “고소인이 누구인지” 물었다. 최소한 누가 고소했는지는 확인해야 했으니까. 믿기 어려운 대답이 돌아왔다. 이 씨는 다시 되물었다. “고소인이 누구라고요? 한국정책방송원이요?” 한국정책방송원(KTV)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영방송사로 ‘KTV국민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KTV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이 씨가 제작한 영상 총 18건을 유튜브에 신고했다. 저작권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신고에 따라 영상 대부분은 삭제 조치됐다. 이 씨는 고소인의 신분을 들은 순간 직감했다. ‘올 것이 왔구나.’ 이번엔 형사고소였다. KTV는 지난해 11월 건진사이다 운영자 이 씨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고소했다. 최초였다. KTV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민간인을 형사고소한 것은 2007년 설립 이래 처음. KTV가 왜 직접 형사고소까지 나섰을까. 이 씨는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대통령 배우자가 때로는 윤석열 대통령보다 더 화제성이 있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 배우자가 (제가 만드는 영상을) 민감하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씨의 지적대로, KTV가 신고한 이 씨 영상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와 관련된 영상이라는 것. KTV의 신고로 삭제된 일부 영상의 제목(일시)을 보자. <차마 끝까지 보기 힘든 김건희 방사능급 발암 가식 웃음>(2023.07.18)<양평테마곡 “사기를 쳤다”>(2023.07.26)<김건희 활동 재개하자마자 대형사고! 여..여사님>(2023.07.28)<김건희 리투아니아 도착하자마자 맹활약! 턱건희 떳다>(2023.07.28)<김건희 과거 조는 모습들>(2023.08.20)<삐삐머리로 전향한 김건희, 간만에 등장… 그런데…>(2023.08.26) 모두 김건희 씨와 관련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대통령 배우자의 공적 활동 영상을 활용해 풍자 영상을 만들었던 것. 대체로 2분 미만의 영상을 만들었다. 심지어 대통령실에서 직접 홍보하고 있는 자료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유튜브 채널인 ‘윤석열’에선 대통령의 국정 활동을 홍보하는 영상을 올려놓는데, 이 씨는 원본 영상에서 일부만 발췌해 활용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영상 및 사진 뉴스’에 게시돼 있는 자료와도 겹친다. “대통령 내외의 행사 모습을 정부의 저작물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KTV 채널에만 나오는 영상도 아니고, YTN, 연합뉴스, JTBC 등 뉴스에서 똑같이 보도되는 현장이니 저작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다 갖다가 쓴 게 아니라 일부를 부분적으로 발췌해서 재해석한 겁니다.” KTV의 이번 형사고소를 대리한 법률대리인은 최지우 변호사(법무법인 자유)다. 최 변호사는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실 행정관 출신으로, 김건희 씨가 연루된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 등을 대리하고 있다. 최 변호사는 김건희 씨를 대신해 입장문을 내고 언론사와 인터뷰를 진행해 ‘김건희 변호사’로 통한다. 최근 검찰이 대통령 부속청사에서 김건희 씨를 출장 조사한 일로 불거진 ‘황제 조사’ 논란 때도, 최 변호사가 김건희 씨를 대신해 입장문을 발표했다. 경찰 조사에 앞서, 이 씨는 정보공개를 통해 고소장을 받아냈다. 하지만 알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일부였다. 첫 페이지에 쓰여 있는 고소인과 고소인의 법률대리인 정보는 모두 가려져 있었다. 고소장 여백에 쓰인 법률사무소 이름만 공개돼 있었다. 고소장 전체 15쪽 중 12쪽은 아예 생략된 채 전달됐다. 심지어 영상 제목에 쓴 대통령 배우자 이름마저 다 가려졌다. “이번 사건은 사인 간의 다툼이 아니라 정부와 개인 사이에서 벌어진 문제이지 않습니까. 개인과 공공기관의 ‘저작재산권’ 중에 무엇이 더 우선돼야 하겠습니까.” 이 씨는 지난 1월 피의자 신분으로 수서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그는 그제서야 세부 내용을 알게 됐다. KTV가 문제로 삼은 영상은 총 16건. 지난해 6월부터 11월 사이 제작된 일반 동영상 및 숏츠에서 김건희 씨가 등장하는 영상들이었다. “유튜브 매체 특성상 휘발성이 짙지 않습니까. 빠르게 넘어가는 영상을 갖고 저작권법을 적용한 다음에 ‘너 몇 초 동안 위반했어’ 이렇게 따지는 것 자체가, 법적인 걸 떠나서 행정력 낭비라고 느껴지는 거죠. (변화한)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정부입니다.” 이 씨는 KTV의 목적이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건진사이다 채널은 지난해 8월 KTV의 연속 신고로 인해 3주 동안 채널이 정지된 적 있다. 신고당한 영상은 모두 삭제 조치됐다. “KTV가 유튜브 규정을 악용해 채널 건진사이다를 폐쇄시키려고 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굳이 4회에 걸쳐 영상을 신고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 신고(8월 25일)에서는 영상을 3개만, 두 번째 신고(8월 30일)에서는 ‘3회’에 걸쳐 5개씩 총 15개를 신고했습니다. 한 번에 신고할 수도 있는데, 굳이 3회에 나눠서 신고한 것부터가 의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에 따르면, 저작권 침해 등으로 위반 신고를 당한 횟수가 90일 동안 3회 이상 누적되면, 채널은 영구적으로 폐쇄될 수 있다. KTV는 형사고소 이후에도 신고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2월경 건진사이다 영상 1건을 유튜브에 추가 신고해 삭제 조치했다. 이 씨는 지난해 9월 KTV 관계자 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건진사이다 채널을 폐쇄하려는 목적을 갖고 여러 차례에 걸쳐 유튜브에 신고한다는 것. 하지만 경찰은 KTV 관계자들을 검찰로 넘기지 않고 사건을 종결 처리해버렸다. KTV의 신고 남발은 이 씨만 겪은 일이 아니다. 실제 KTV는 개인 유튜버들을 저작권 위반으로 유튜브에 꾸준히 신고해왔다. 양문석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안산시갑) 자료에 따르면, KTV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1년 동안 개인 유튜버를 대상으로 삭제 신고한 영상만 총 47건이다. 이중 약 80%인 38건이 모두 김건희 씨와 관련된 영상. 나머지 9건이 윤석열 대통령 관련 영상이었다. KTV가 신고한 영상 대부분은 삭제 조치됐다. 그렇다면 KTV가 제작한 영부인 김건희 영상을 사용한 모든 유튜버들이 제재를 받았을까? 단적으로 살펴보면, 영부인 김건희 팬클럽 운영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삼삼오오’는 예외였다. KTV는 ‘삼삼오오’가 무단으로 저작물을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유튜브 신고 등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KTV는 “저작권 및 공공저작물 관련 법령에 근거하여 관련 법령을 위반한 경우에만 그 심각성을 고려해 제재 조치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윤홍기 오픈넷 연구원은 KTV의 민간인 형사고소 사건을 두고 이렇게 분석했다. “당사자인 김건희 여사가 아니라, 영상 제작자인 KTV가 나서서 저작권법으로 고소를 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들에겐 피고소인들이 유죄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 걸로 보입니다. 형사고소가 들어가면, 수사기관에서 알아서 수사를 할 테고 영장 청구 등 강제 수사도 진행될 수도 있으니까요. 피고소인들에게 위축 효과가 생기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셜록은 KTV에 반론을 요청했다. KTV는 지난 22일 이번 민간인 형사고소 건에 대해서 “KTV의 저작물을 무단사용 외에 개·변조 정도가 심하고 악의적이라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 침해, 저작물의 공정 이용 위반 등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면서 “저작권법을 위반할 경우 민간인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형사고소 등 법적 조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형사고소를 취하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지만, “향후 수사 과정, 기소 등 법률적 진행 상황을 살펴보면서 검토하겠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수서경찰서는 피의자 조사 일주일 만에 이 씨를 검찰로 송치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지난 1월 보완 수사를 명령하며 사건을 다시 경찰로 이송시켰다. 수서경찰서는 6월 14일 이 씨를 검찰로 재송치했다. “경찰 조사받고 사건이 빛의 속도로 넘어가더라고요. 조금 의아하긴 했습니다. (…)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검찰이 (피의자가) 유튜버들이니까 괘씸하게 보고, ‘범죄 혐의가 악의적이고 재범의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족들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될 수 없습니다.” KTV 홈페이지에는 이런 방침이 안내돼 있다. “KTV의 공공저작물은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확대 개방하겠습니다.”(고객 서비스 이행표준) 실제 공공저작물의 경우 누구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저작권법에도 이미 명시돼 있는 권리다. 저작권법 제24조의2(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상 만든 저작물일 경우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8조에서도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ㆍ비평ㆍ교육ㆍ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명시해놓았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한국정책방송원(KTV)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으로 공공기관으로 볼 수 있고, 이에 따라 KTV에서 송출하는 영상은 공공저작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 변호사는 “건진사이다의 풍자 영상은 KTV가 직접 만든 영상이라는 오인(‘동일성유지권’ 침해)을 불러일으킨 게 아니라서 저작인격권 침해로도 보기 어렵다”면서 “개인이 만든 패러디, 풍자물에 대해 국가기관이 형사고소까지 제기한 건 정치적인 압박 목적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문석 의원은 ‘KTV 총선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양문석 의원실은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KTV의 윤석열 대통령 부부 관련 유튜브 영상 삭제 요청은 윤석열 대선캠프 출신인 하종대 원장 취임 후 2023년 내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2023년부터 총선 직전까지 김건희 여사 관련 영상 38여 건을 포함해 총 55건의 삭제 요청과 2건의 형사 고소가 있었으나, 총선 이후에는 삭제 요청이 단 한 건도 없었다”면서 “이런 점에서 선거 개입을 위한 부정적 여론 차단 즉 여론조작 시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 이후 KTV가 형사고소 한 민간인은 또 있다. 가수 백자다. 이 씨에 이은 두 번째 사례. 그의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이어진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정치개혁
·
5
·
감사원이 버린 목소리… “내가 불쌍해야 좋은 거지?”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19화]
너무 비참해서 기사에 넣지 못한 초등학교 6학년의 멘트가 있다.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취재하던 지난 4월, 충북 청주시 유흥가에서 만난 열세 살 원복이(가명)의 이야기다. 당시 기사에서 밝힌 대로 원복이 부모님은 ‘사채왕’ 김상욱 일당에 속아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약 9억 원을 대출받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명의만 빌려줬다. 대출금 전부는 김상욱 일당이 가져갔으니까. 그 일로 원복이 부모님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본 적도 만진 적도 없는 9억 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학원에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된 원복이는 부모님이 일하는 유흥주점 끄트머리에 설치된 작은 텐트에서 밤을 보낸다. 부모님이 일을 마치는 새벽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관련기사 : 유흥주점 텐트에서 잠드는 아이.. “사채왕이 망친 삶”) 지난 4월 15일 새벽 2시, 여느 때처럼 원복이는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취재하는 나의 존재를 원복이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엄마, 저 아저씨 누구야? 왜 우리 뒤에서 따라오는 거야?”“서울에서 온 기자님이야. 엄마한테 취재할 게 있어서 왔어.” 원복이는 작게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저 기자님한테 불쌍하게 보여야 엄마한테 좋은 거지?” 당시 기사에 차마 넣을 수 없던 멘트와 원복이의 마음이 다시 생각난 건, 문해력이 의심되는 감사원의 짧은 통보문 때문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4월부터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새마을금고의 불법·부실 대출과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기획이다. 특히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 통폐합을 부른 ‘2023년 1500억 원대 불법대출’ 문제를 자세히 보도했다. 해당 불법대출의 규모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큰 것으로, 2023년 ‘뱅크런’ 사태의 시발점이기도 했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셜록 보도 직후인 지난 4월 23일, ‘행정안전부의 새마을금고 관리·감독 책임에 대한 감사를 촉구‘하는 공익감사 청구서를 감사원에 접수했다.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7월 9일, 감사원은 “행정안전부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지 않고 종결 처리한다“는 취지의 통보문을 보내왔다. 한 대목은 이렇다. “행정안정부와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상기감시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회피하는 조직적·지능적 비위에 대해서는 2024년부터 종전에 비해 감사체계를 강화하여 대응하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 새마을금고에 대한 감시 체계가 강화됐으니 감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게 왜 엉뚱한 답변인지, 민변과 참여연대가 공익감사를 청구한 4월 23일로 돌아가 살펴보자.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그날 감사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공익감사청구 이유를 밝혔다. “청구동새마을금고의 자산은 1800억 원입니다. 1500억 원이 불법 대출됐으면 사실상 자산의 거의 대부분을 사채왕(김상욱)에게 갖다 바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이 와중에도 (새마을금고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가진 행정안전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청구동새마을금고의 불법대출은 2023년 6월 이전에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는 그때 뭘 했는지, 혹시 직무유기는 없었는지 등을 살펴봐달라는 게 민변과 참여연대의 감사청구 취지다. 그런데 감사원은 “2024년부터 감사가 강화됐다“는, 핵심에서 벗어난 근거를 대며 감사를 거부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새마을금고의 불법대출은 전국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라며 “감사원은 스스로 본연의 책무를 버렸고, 행정안전부에게 책임 모면의 길을 열어줬다“고 반발했다. 이들의 지적대로 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불법·비리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에는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1500억 원대 불법 대출과 뱅크런 사태에 이어, 올 4월 총선 때는 양문석 후보(현 경기 안산시갑 국회의원)의 편법 대출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8일에도 대구 지역 새마을금고 지점 세 곳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역시 불법·부실 대출 의혹이 불거진 곳이다. 이쯤 되면 ‘비리의 온상 새마을금고‘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굴욕적인 지적이 거의 해마다 나왔다는 점이다. 아래의 기사 제목과 발행 날짜를 보자. “내부통제 어쩌나..뿔뿌리 금융이 비리백화점 된 이유” – <아주경제> 2023년 12월 6일정부, ‘비리온상’ 새마을금고 감독 강화한다지만… – <한국경제> 2022년 2월 27일새마을금고는 어쩌다 비리의 온상이 됐나 – <이데일리> 2020년 11월 10일 구글, 포털사이트에서 ‘새마음금고 비리‘를 검색하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관련 기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불법 대출부터 성추행, 임직원 비리, 횡령은 물론 ‘카드깡’ 내용도 나온다. 이중 위에서 언급한 2020년 11월 10일 자 <이데일리> 기사 한 대목을 보자. “서울의 한 (새마을)금고에서도 전·현직 임원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면서 담보에 대한 감정평가도 하지 않고 정상금리보다 0.6%포인트 가량 낮은 이율로 대출을 해줬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전국 1300개 새마을금고에서 일어난 이 같은 특혜 대출은 최근 3년간 700억 원을 넘어선다.” 이 기사는 새마을금고의 수백억 원대 특혜·불법 대출이 작년에만 벌어진 특별한 일이 아니란 걸 말해준다. 담보물 감정평가를 생략하거나 부풀리는 수법은 김상욱 일당이 했던 것과 동일하다. 이번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2013년으로 가보자. 2013년 6월 5일 자 YTN 보도의 제목은 ‘끊이지 않는 새마을금고 불법대출비리’. 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담보물 감정금액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백억여 원을 불법 대출한 새마을금고 간부가 구속됐습니다. 다른 새마을 금고에서는 간부가 수년간 고객 돈 수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는 등 새마을금고 비리가 끊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을 보면, 2023년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비리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담겼다. “이처럼 잊을 만하면 불법 대출과 고객 돈 횡령이 발생하고 있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새마을금고 중앙회 관계자는 재발 방지책이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일상 감사 상시 시스템을 고도화 시스템으로 개발해서 최근에 있는 감정사례라든가 공시지가에 의한 대비 과다감정이 되었다든가 그런 부분까지 같이 조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원이 최근 행정안전부에 대한 감사를 거부하면서 밝힌 이유와 흡사한 내용이 이미 2013년도 등장한 셈이다. 그럼에도 새마을금고의 불법과 비리는 이어졌고, 이번에도 행정안전부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새마을금고가 ‘비리의 온상’, ‘불법 백화점’이 된 배경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지적된다. 새마을금고는 제1금융권은 물론이고 상호금융기관 중에서도 유일하게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1960년대 서민들의 상호부조 형태로 출발한 새마을금고의 상위기관은 금융위원회가 아니라 금융과 거리가 먼 행정안전부(당시 총무처)다. 그때로부터 60년이 지나 새마을금고는 전국에 약 4000개 지점을 거느리고, 전체 예수금 295조 9000억 원(올해 5월 말 기준)을 가진 금융기관으로 성장했음에도 관리·감독 주체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러는 사이 새마을금고의 부정과 비리는 해마다 반복됐고, ‘사채왕’ 김상욱은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마치 개인 금고 이용하듯 돈을 빼갔다.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이 원복이 부모님이고, 더 큰 피해자는 기꺼이 비참함을 연기하겠다는 초등학교 6학년 원복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행정안전부에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감사원은 아예 감사를 포기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원복이는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왜 자기는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갈 수 없는지, 기자가 왜 자신을 따라오는지,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에게 보탬이 될까 싶어, 자신이 훨씬 비참하게 그려지길 바라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의 이런 상상력에 행정안전부는 정말 책임이 없을까? 감사원은 정말 행정안전부를 감사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제1금융권처럼, 아니 최소한 농협, 수협, 신협처럼만 새마을금고가 관리·감독이 됐어도 원복이 부모님은 불법대출 피해자가 되지 않았을 거다. 책임자들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별일 없이 살아가는 지금, 원복이 부모님은 오늘도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원복이는 올 여름도 유흥주점 텐트에서 보내는 중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부정부패
·
2
·
"암이라도 걸렸나" 직장 성범죄 피해자, 병가도 '불허' [회사에 괴물이 산다 8화]
[지난 이야기]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는 성범죄 피해자를 향해 2차가해를 일삼으며, 김한솔(가명) 씨의 정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결국 그는 17년이나 다닌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솔 씨는 지역의 노동 활동가들을 만나 퇴사 소식을 전한다. 그게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한 채. 한솔 씨가 겪은 일들을 알게 된 활동가들은 “비상식적인 일”이라 분노하며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한솔 씨는 5년 만에야 비로소 타인에게 진심으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 문제를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한솔 씨는 한번 더 힘을 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3월 28일 한솔 씨는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때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도 함께 넣었다.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는 지난달 3일 나왔다.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직장 내 불법촬영 성범죄 이후 회사의 관리자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한솔 씨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준 행위와, 계속된 병가 승인 거부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 그제서야 회사는 ‘문제의 관리자들’에게 감봉 1개월, 견책 등의 가벼운 징계를 내렸다. 산재 신청 결과는 24일 나왔다. 결과는 이번에도 ‘인정’. 당연하고도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개인이 아니라 노조 차원에서 나서니까 회사도 눈치를 보더라고요.” 민주노총 경남본부에서도 나섰다. 지난 4월 12일 군수와 이사장을 각각 만나 면담도 했다. 노조 활동가들이 이사장 면담을 진행하자, 인사 담당자가 한솔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빨리 병가 (신청) 올리세요.” 지난 5년간 수리되지 않았던 요구를 이제야 처리하겠다는 건가. 한솔 씨는 혹시 회사가 말을 바꿀까봐 그날 급히 병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번에는 신청서에 진단서만 첨부했다. 그동안 병가를 신청할 때는 구구절절 간곡하게 속사정을 설명한 사유서를 덧붙였었다. 어느 때보다 간단한 병가 신청서. 하지만 그날 바로 병가 승인이 떨어졌다. 회사는 2021년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표어를 공모했다. 직장 내 불법촬영 성범죄 사건으로부터 2년 하고도 반이 더 지난 때였다. 한솔 씨가 거듭 전보 신청을 하고, 그게 모두 좌절되면서 본격적인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해였다.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꼽힌 표어는. “성범죄는 한순간, 상처는 영원히” 사무실을 오르내리는 계단마다 표어가 게시됐다. 한솔 씨는 표어를 보며 내딛는 걸음마다 바닥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진심으로 피해자들의 상처를 공감한다면 이럴 수는 없는 거지.’ 직장 내 불법촬영 성범죄 사건의 범인 A는 2019년 7월 1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3일간 이어진 불법촬영만 범죄사실로 인정했다.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한솔 씨에게 전해준 “정기적으로 백업하고 다시 설치했다”는 내용은 빠져 있었다. 판사는 이번 범행으로 “피해 여성들이 엄청난 배신과 수치심 등을 경험하고, 피해 여성들 다수가 엄벌을 거듭 탄원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서도, “A가 자백한 점, 영상으로 여성들의 신상이 특정되지 않는 점, 부양할 처와 어린 세 자녀가 있다는 점 등”을 참작해 양형을 정했다. 검사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형량이 더 높아졌다.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 항소심 재판부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장 동료’ 관계라는 점에 주목해 “범행의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고통과 두려움을 고려하면 형이 “너무 가볍다고 인정된다”는 것. 2020년 1월,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160시간의 사회봉사 및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 그리고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혹은 장애인복지시설에 3년간 취업제한 조치도 이뤄졌다. 신상정보가 공개·고지되는 조치는 피했다. 재판 과정에서 A는 한솔 씨에게 장문의 사과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탄원서 작성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의 바람처럼 A는 실형을 피했다. 그는 멀쩡히 세상을 활보할 수도 있고, 취업제한 기관만 아니라면 조용히 새 직장을 구할 수도 있게 됐다. A가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아마 새 직장의 동료들은 아무도 모를 거다. 그가 회사 내 여자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직장 동료들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자라는 사실은. 죄를 지은 가해자를 향한 형벌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죄 없이 받고 있는 형벌은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끝도 없이 그들의 인생을 짓눌렀다. 사건 이후 한솔 씨를 더 힘들게 한 건 오히려 회사 내 관리자들이었다. 직원들을 입단속시키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원한 전보나 병가·휴직 등을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줌마가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는 말로, ‘겉보기에 멀쩡한데 왜 병가를 내느냐’는 말로, ‘병원 가는 날에만 병가를 허락하겠다’는 말로 2차가해를 일삼았다. “성폭력방지법,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 만큼 이에 따른 법적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임. 또한,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 및 피해자 보호 조치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군 등은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하도록 해야 함.” (<◯◯◯◯◯◯◯◯◯ 성폭력 피해 후 직장괴롭힘 진상조사 보고서> 민주노총 경남본부, 2024. 5. 22.) 한솔 씨는 지난 4월 처음으로 약 2달간 병가휴직을 인정받았다. 지역의 노동조합 활동가와 함께 사건을 공론화하면서 생긴 변화다. “너무 악랄하지 않아요? (회사는) 이제 나 혼자 (저항)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서 (병가휴직을) 승인한 거예요. 그동안 저는 회사에서 완전 그런 취급받았거든요. (옛날) 사대문에 대역죄인들 목 걸어놓는 거 있잖아요. ‘조직에 찍히면 이렇게 된다, 봐라.’ 그게 저였어요.” 한솔 씨는 병가휴직 연장을 신청했다. 회사에는 여전히 한솔 씨에게 ‘2차가해’를 서슴지 않았던 관리자들이 남아 있었고, 복귀 대책 역시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지난달 5일 한솔 씨의 병가휴직 연장 신청을 승인했다. 다만 한솔 씨는 1년간의 휴직을 신청했으나, 회사는 3개월만 인정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달 19일 회사에 사건 관련 대응 및 조치에 관한 질문지를 보냈다. 그리고 지난 2일부터 5일 사이 세 차례 전화로 답변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홍보팀 관계자는 “본인에게 답변할 권한이 없다”며, “(상부에) 전달은 하겠지만 답변을 주실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22일 현재까지 서면 답변도 오지 않은 상태다. 한솔 씨 회사는 경남 ◯◯군 산하의 지방공기업. 기관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 12조(감독 등) 1항에는 “군수는 공단의 사무를 관리·감독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군은 지난 5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산하기관이지만 개별 법인이고 독립된 기관이라 관리·감독은 (기관) 자체 인사위원회나 내부 규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며, “군청에서 ‘규정대로 이행해라’ 정도로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가휴직) 3개월은 금방 지나가버리겠죠. 걱정은, 복직해도 또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저는 지금도 가해자들 생각하면 손발이 굳거든요. 휴직이 인정됐어도, 나중에 회사로 돌아갈 거 생각하면 걱정이 되죠.” 인터뷰 내내 씁쓸한 미소를 짓던 한솔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기자와 인터뷰 중에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야기는 대체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로 시작해서 ‘이런 자신이 답답하다’고 책망하며 끝났다. 누구에게도 속사정을 말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함구령이 떨어졌고, 가족들 앞에서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성범죄 피해자, 그것도 불법촬영 카메라에 신체가 노출됐다는 사실은 가족들에게 전하는 것도 힘들었다.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관계자들은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에게만 ‘성 보호권’이 있다고 보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 “성에 대한 편협하고 잘못된 인식이 깔렸으니 성범죄 피해를 당한 중년 여성들이 피해를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자의 나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나이 많은 여자를 왜?”…외면과 상처에 시달리는 ‘중년여성 성범죄’> 김연주 기자, 2019. 6. 30.) 한솔 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남편에게만 속마음을 겨우 털어놨다. 당시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던 아이들에게는 말을 꺼낼 수 없었고, 다만 큰딸에게 공중화장실을 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부모님께는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겪은 일들을 말하지 못했다. 병원에 가는 것 역시 비밀에 부쳤다. 분노도, 원망도, 우울함도, 답답함도, 어디 하나 있는 대로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한솔 씨는 정서적으로 완전히 고립돼 있었다.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게 용서와 자비인데, 용서를 못하는 제 마음이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말 많이, 많이 기도했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용서를 청하지 않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거예요. 본인들은 잘못했다고 생각도 안 할 텐데, 저는 도저히 용서를 못하겠는 거예요.” 한솔 씨는 그날의 기억을 지워내고 싶었다. 회사의 말처럼 덮는다고 덮을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고도 절실히 기도했다. 하지만 괴물은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고, 삶의 의지마저 꺾어버렸다. “주홍글씨가 제 사원증에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 부적응자, 상사를 고발한 자, 회사를 욕보인 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회사가)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 되는데… 어떠한 경우에도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 지금 회사의 상황에서 과연 내가 복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괴물의 눈은 오늘도 그를 지켜보고 있다. <끝>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젠더폭력
·
2
·
화장실 불법촬영 피해자에게 “아줌마가 뭘 그러냐” [회사에 괴물이 산다 7화]
[지난 이야기] 김한솔(가명) 씨는 회사 여자화장실에서 불법촬영 피해를 입는다. 범인은 한솔 씨가 살뜰히 챙기던 ‘직속후배’ A.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던 한솔 씨에게 회사는 범인 A의 업무까지 떠넘기고, 휴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범죄 피해 현장에서 멀어지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의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솔 씨는 당시 불안, 불면, 배뇨불안 등 신체적·정신적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 그런 걱정이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아직 학교도 다니는데 혹시나 엄마가 정신병원 다니는 게 알려져서 마이너스로 작용하면 어떡하지, 싶어서 증상이 심할 때만 잠깐 병원 가서 수면제 처방받고… 그냥 버텼어요.” 심리적인 장벽이었다. ‘정신력이 약해서 정신과를 다닌다’는 손가락질과, ‘정신병원은 미친 사람들만 가는 데 아니야?’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솔 씨는 꾸준히 치료를 받는 대신,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간헐적으로 수면유도제만 처방받으며 견뎠다. “이사장님, 잠깐이라도 다른 사업소에 보내주시면 안 됩니까? 산에서 산토끼 똥을 치우라고 하면 치울 거고, (군립공원) 입장 티켓을 팔라고 하면 팔겠습니다. 시켜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하다가 여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근데 지금은 잠깐이라도 떠나 있고 싶습니다. 자꾸 그날 일이 생각납니다. 그 뒤로 화장실에 불을 켜고 갈 수가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회사의 최고 책임자인 이사장까지 찾아갔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A를 향한 배신감보다, 휴가도 전보도 안 된다고만 하는 회사를 향한 분노가 조금씩 더 크게 자라났다. 사건이 발생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한솔 씨는 약 열 번이나 전보를 요청했다. 특히 이사장이 교체되던 해인 2021년에 요청이 집중됐다. 전임 이사장에게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신임 이사장에게 인계하고 갈 테니 조금만 버텨달라”고 했다. 그해 11월 신임 이사장이 부임하자, 한솔 씨는 그에게 희망을 걸었다. “업무 파악이 되지 않아서 전보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네요.” 떠나갈 사람은 떠나갈 사람이라서, 새로 온 사람은 일을 잘 몰라서. 결국 안 된다는 말은 똑같았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회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직장 내 불법촬영 성범죄 사건 이후 남아 있던 문제들. 한솔 씨는 그 문제를 열심히 가리키며 얘기했지만, 회사는 되레 그런 한솔 씨를 가리키며 ‘문제’로 여긴 거였다. 계속 거부당하면서도 한솔 씨는 계속 전보를 요청했다. 그만큼 절실했고, 그만큼 위태로웠다. 그에게 2021년은 ‘이러다가 진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였다. 약을 안 먹으면 잠들 수 없고, 약에 취해 잠들면 악몽이 따라왔다. 해맑게 웃던 얼굴이 조금씩 음흉한 낯빛으로 변하는 A를 마주하거나, 뭔가로부터 도망치고 피해 다니는 꿈을 꿨다. 수면을 방해한 건 또 있었다. 한솔 씨는 ‘사건’ 이후로 집 밖에서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았다. 방광염이 생겼다. 참다 못해 화장실을 찾는 경우에는 깜깜하게 불을 끄고 들어갔다. 혹시나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을지 모르니,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밖에서는 화장실을 못 가는 게 문제였다면, 집에서는 너무 자주 가는 게 문제였다. 집을 벗어나면 또 화장실을 못 갈 거란 불안 때문일까. 집에서는 조금이라도 요의가 느껴지면 참을 수 없었다. 자다가도 자꾸 깨어나 화장실을 찾았다. 불안이 일상을 압도했다. 한계. 한솔 씨는 자신의 삶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몰려 있단 걸 알았다. 이대로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결국 2021년부터 정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됐다. 간헐적으로 수면제만 처방받아온 지 2년이나 지나서였다. 한솔 씨는 정신과 진단서를 가지고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다. “아니, 암이 걸린 것도 아니고, 팔다리가 부러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할 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병가 신청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거 아이가?” 반전은 없었다. 회사는 완고했다. 한솔 씨가 느끼는 고통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참혹한 심정이었다. “그때 진짜 직장을 떠나야 하나, 고민을 무척 많이 했어요. 계속 벽에 부딪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참고 버틴 건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죠.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되는데, 남편한테 외벌이 맡길 수는 없잖아요. 또, 마흔도 넘긴 나이에 전문직에만 있었으니까 나가면 경력단절이죠, 뭐. 내가 다른 데 어디를 또 갈 수 있겠어요?”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동안에도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었다. 요령 없이 참고 견딜 뿐이었다. 그러다 보면 볕 들 날 올 거라고 간절히 믿는 수밖에 없었다. 신앙의 힘을 빌려 겨우 마음을 지탱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고해성사도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면 또 용서 못하는 제 자신 때문에 너무 괴로워져요. 결국에는 자책이에요, 자책.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다고 하는데 왜 나만 그럴까, 회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만 계속 조직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회사에는 직원고충상담센터가 있었다. 한솔 씨는 지난해 2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신고글을 올렸다. 그런데 상담센터 위원들 중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4년간 한솔 씨가 휴가나 전보를 요구할 때마다 완강히 거부했던 관리자가 속해 있었다. 결국 한솔 씨는 자신의 신고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회사가 그의 말을 들어줄 거라는 일말의 기대도 사라졌다. 한솔 씨는 그때부터 자살을 떠올렸다. “직원들끼리는 속된 말로 ‘가둬놓고 직인다(죽인다)’고 했어요.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요구하는 게 그렇게 부당하고 힘든 요구였나.” 그 사이 회사에서 전보나 병가를 승인해준 일이 한 번도 없었던 게 아니다.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여섯 명이 전보발령·휴직·병가를 승인받았다는 사실이 기관 인사발령사항 공문을 통해 확인된다. 다만 이상하게도 한솔 씨는 그 장벽을 넘지 못했을 뿐이다. “계속 막연하게 희망을 품었던 거죠. 조금씩 나아지겠지, 이 순간을 참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요. 끝까지 현장에 있다가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었으니까, 그 꿈을 접기 힘들어서 계속 버텼던 것 같아요.” 불법촬영 사건이 일어나기 전, 한솔 씨는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제출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이어갈 여력이 없었다. 지금껏 가슴속에 품고 있던 꿈도 놔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진짜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죽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지난해 9월 한솔 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하루에 더 많은 약을 삼켜내야 했다. 귀에는 쿵쿵대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아린 통증도 동반됐다. 병원에서 검사도 받았지만 이상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한솔 씨는 무너지고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해하거나 괴롭히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쳤었는데, 이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결심을 당장 멈추고 싶지만, 나의 아픔을 외면한 채 눈과 귀를 닫고 병가도 반려하고, 휴직도 반려한 이사장과 팀장들, 인사팀의 카르텔에 대응할 방법도 없고,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는 지금, 더 버틸 힘이 없습니다. 다만 다시는 이런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산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10월 쓴 유서 일부) 모든 일이 시작된 회사 여자 화장실. 그곳에서 죽음을 맞겠다고. 유서를 품에 넣은 채 약을 한 움큼 털어넣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면 회사도 내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걸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진단서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음’ 이렇게라도 명시를 했어야 하나?” “저번에(어제) 운동 가서 산에서 그냥 돌아오지 않으면 이 심각성을 좀 알려나?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죽어야 끝이 나는 걸까?” (2023년 업무수첩에 남긴 메모 일부) 한솔 씨를 다시 살게 만든 건 가족들이었다. 가슴에 묻어야 할 상처,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을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진 않았다. 대신 한솔 씨는 퇴사를 결심했다. 17년간 다니던 회사. 그렇게라도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지난 2월 지역의 노동 활동가들을 만날 자리가 있었다. 한솔 씨네 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길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솔 씨 퇴사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한솔 씨) 연차에 퇴직한다는 게 흔치 않은데,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으셨던 건 아니죠? 왜 퇴사하시려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터닝포인트. 그 한마디에 사건의 새로운 막이 열렸다. 한솔 씨를 가로막은 거대한 장벽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젠더폭력
·
2
·
회사 여자화장실에 카메라가… 범인은 ‘김 대리’였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6화]
“과장님! 저희 어떡해요? 화장실 변기에… 카메라가 있어요!” 다급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사무실로 뛰어 들어온 인턴 사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김한솔(가명, 여) 씨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의 손이 파들거렸다. 한솔 씨는 손을 맞잡고 화장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세면대 하나, 그리고 커튼 뒤로 놓은 변기 하나가 전부인 단출한 화장실. 자세를 낮춰 변기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비데 노즐 옆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변좌를 들어올리니 그 실체가 드러났다. 악취 나는 화장실에 그보다 더 구린 것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초소형 카메라 렌즈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매일같이 화장실 가도 변기(변좌) 아래를 들여다볼 일이 있겠어요?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데, 그날은 날짜도 못 잊어요.” 2019년 1월 29일. 한솔 씨는 지금도 카메라를 목격한 순간을 떠올리면 털이 쭈뼛 선다. 사무실 여자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카메라가 발견됐다. 매일같이 화장실을 오가던 여직원들은 사색이 됐다. 은밀한 신체가 촬영됐다는 수치심, 영상들이 어디선가 공유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무엇보다 범인이 자신들과 동고동락하던 동료일지 모른다는 공포에 압도됐다. 함께 밥을 먹던 유 대리일까. 눈을 마주칠 때면 미소 짓던 한 차장일까. 별 이유 없이 꾸중만 하던 백 부장일 수도 있고, 퇴근 후 가끔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성 대리일 수도 있다. 회사 안에 ‘몰카범’이 있다니…. 피해자들은 인두겁을 쓴 끔찍한 괴물 앞에서 미련하게 웃고만 있었을 ‘나’를 자책했다. 왜 카메라를 진작 발견하지 못했을까. 왜 그 괴물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괴물을 향한 분노의 화살은 피해자들의 가슴에 자책으로 돌아와 박혔다. 한솔 씨는 우는 여직원들을 달랬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 또한 불법촬영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후배 동료들을 다독여야 하는 과장이기도 했다. 공포에 질려 손발이 떨려도 당장 챙겨야 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동료들을 달래며 경찰에 신고했다. “누가 신고했어! 이게 신고할 일이에요?” 이내 불호령이 떨어졌다. 관리자들은 인상을 팍 구겼다. 한솔 씨가 다니는 회사는 경남의 한 지방공기업. 회사는 가장 먼저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함구령’. 사건이 회사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범인을 색출하기보다 오히려 경찰에 ‘누설’한 이를 몰아세웠다. 공공기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오겠냐는 식. 겁에 질린 여직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공기업으로서 회사의 명성과 ‘윗사람’들의 안위만을 걱정했다. “나중에 경찰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카메라 용량이 작으니까 주기적으로 백업하고, (다시 카메라를) 갖다두면서 녹화했다고.” 경찰 조사 결과, 한솔 씨는 불법촬영 피해자로 특정됐다. 촬영 기간에 그가 당직 섰던 날이 포함돼 있었다. 그날 출근한 여직원은 한솔 씨가 유일했으니, 이는 곧 그날 촬영물에는 오직 한솔 씨의 모습만이 찍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도 없이 드나들던 화장실이란 곳이, 바라보기도 힘들 만큼 두려운 장소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끔찍한 기억은 차라리 어둠 속에 밀어넣어야 했다. 한솔 씨는 그날 이후 공중화장실 불을 켤 수 없었다. ‘혹시나’ 또 불법촬영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에, 화장실을 깜깜하게 해두고 사용해야 했다. 한솔 씨는 2007년 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2011년 7월 발령받은 사무소에서 ‘직속후배’ A(남)를 만났다. 동문을 만나기 어려운 사회에서,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 출신이라는 점만으로도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한솔 씨는 A를 살뜰히 챙겼다. 다른 기관 직원들을 만날 때면 A를 동행해 소개했고, 그의 아이들에게 입힐 옷을 물려주기도 했다. 그 각별한 후배는 ‘그 사건’ 이후로 종적을 감췄다. “A는 화장실에서 카메라가 발견된 날부터 못 만났어요. 보통 11시 50분 되면 오전 업무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그날은 안 오더라고요. 퇴근 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는 게 의아하기는 했는데, 당시에는 (불법촬영) 카메라가 나왔다는 것만으로 충격이 너무 크니까… 그냥 다른 생각은 못했죠.” ‘그 사건’이 터진 순간부터 갑자기 얼굴을 비치지 않던 A. 당시 회사에서는 오후 6시 이후 순환당직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는 홀로 당직을 서는 날 여자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한솔 씨가 살뜰히 챙기던 직속후배 A가, 범인이었다. ‘A가 나를 보고 짓던 미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언제부터 촬영됐을지 모를 영상에 내 모습은 얼마나 등장할까. 혹시 사무실 직원들끼리 영상을 공유한 건 아닐까. 촬영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놈을 살뜰하게 챙기던 나를 보면서, 그놈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시 여자화장실을 이용하던 직원들과 소형 카메라를 목격한 직원까지 총 9명이 경찰서에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경찰은 “영상이 공유되고 불법 사이트에 업로드된 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한솔 씨는 믿지 못했다. 그 영상들은 그저 ‘혼자 보기 위해’ 촬영된 걸까. 정말 그 영상들을 혼자 가지고만 있었을까. 수사의 한계는 아닐까. 그러나 경찰은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유포는 없었다고. “몰래카메라 범죄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피해자에 대한 낙인효과의 심각성이 높아서 유포와 배포가 자유로워 온라인 공간의 불특정 다수에게 포르노로 소비될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피해자는 일상적 생활이 어려워진다.” (김은지, 「불법촬영범죄에서 온정적 성차별주의와 노출수준 및 관계유형에 따른 피해자 비난과 처벌판단」, 대구가톨릭대학교대학원, 2020년) A는 그날부터 종적을 감췄고, 회사의 바람대로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돼갔다.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았고, 직원들끼리도 언급을 금기시했다. 그 침묵이 피해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약 130명에 달하는 직원들 중 “성비는 8:2 정도”로 남성이 훨씬 많았다. 한솔 씨는 생각했다. 그래서 ‘여직원’들이 느낄 공포나 수치심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한솔 씨는 여성 관리자인 B를 찾아갔다. 그동안 특별한 교류는 없던 사람이지만, 그래도 여성 피해자들의 심정에 공감해줄 수 있는 상사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카메라가 설치된 화장실을 사용하던 불법촬영 피해자니까. “범인이 매일같이 마주치던 같은 부서 직원이잖아요. 다들 충격이 큰데, 여직원들 3일 정도라도 휴가를 좀 다녀올 수는 없을까요?” 긴장 때문에 한솔 씨 손이 떨렸다. 그 손으로 B의 손을 붙잡으며 부탁했다. 절실한 심정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B의 반응은 냉담했다. 다른 여직원들의 휴가는 인정해도 한솔 씨에겐 휴가를 줄 수 없다는 것. 이유는 황당했다. 첫째는 회사에서 사라진 범인 A의 업무를 맡을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그리고 둘째는 한솔 씨가 ‘아줌마’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솔 씨는 40대 중반이었다. ‘아줌마가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는 말. 모욕감을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의 신체가 누군가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충격은 피해여성 누구에게나 같았다. ‘아줌마’라서 견뎌야 하는 것도, 견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상심은 더 컸다. 각별한 후배였던 A에 대한 배신감은 불면, 그리고 악몽으로 이어졌다. 벌겋게 충혈된 눈을 감으면 A의 불쾌한 미소가 떠올랐고, 또 그놈의 더러운 카메라에 노출됐을 제 몸이 떠올랐다. 회사는 ‘피해자’인 한솔 씨를 외면했다. 그 경험은 한솔 씨의 행동까지 지배했다.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는 가족들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여직원들이 3일간 휴가를 다녀오는 동안, 한솔 씨의 업무는 더 쌓여갔다. 회사는 피해자 한솔 씨에게 가해자 A의 업무를 떠넘겼다. 당장 일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 한솔 씨는 휴가는커녕 야근에 허덕였다. 사건 발생 바로 다음 달인 2월 한 달간, 그가 초과노동을 한 날은 휴일근무를 포함해 11일이나 됐다. 특히 한솔 씨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2인 1조로 움직이는 일이었다. 외부 시설물을 관리하는 동안 남성 직원과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단둘이 차를 타고 이동했고, 시설물을 둘러보는 일, 끼니를 때우는 일 역시 함께했다. 물론 그들은 불법촬영 사건의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한번 무너진 동료에 대한 신뢰는 단숨에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즉 남녀고용평등법은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해야 한다(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2항). 또한, 조사 기간 동안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피해자에 대해 근무 장소의 변경, 유급 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제3항). 그러나 회사는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고, 피해자 보호조치가 필요한 시기에 한솔 씨를 피해 현장으로 여전히 출근하게 했다. 한솔 씨는 사건 발생 4일 만에 휴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는 휴가를 주는 대신 가해자의 업무까지 이중으로 맡겼다. 피해자 한솔 씨에게 사무실은 범인과 함께 있던 공간, 화장실은 ‘범죄’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멀어지지 못하고 매일같이 출근해야 한다는 건, 한솔 씨에게 큰 고통이었다. 사무실에서 떨어져 있기라도 해야 그 끔찍한 기억을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보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회사 안에서 두드려볼 수 있는 창구는 모두 찾아갔다. 면담을 요청하고, 자신이 느낀 모멸감과 절박한 심정을 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몸처럼 움직였다. 소문이 새어나갈 것을 우려하며 입단속하고, 대체인력이 없다거나 결정 권한이 없다는 식의 답변만 늘어놨다. 서로 다른 변명으로 한솔 씨의 호소를 외면했다. 그 즈음이었다. 난생 처음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아간 게.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젠더폭력
·
2
·
김홍빈 세 번째 기일… ‘대한민국’의 자리는 여기 없다 [대한민국 ‘생존비’ 청구소송 5화]
추위에 떠는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떨리는 그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줄은. “구조 요청! 혼자 있어, 혼자. 엄청 추워요. 주마(등강기)가 필요해, 주마. 주마 두 개 정도 필요해.” (2021. 7. 19. 김홍빈 대장 마지막 구조요청) 한 방송국은 김홍빈 대장의 등반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김홍빈 원정대의 도전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김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이다. 하지만 김 대장은 하산길에 찾아온 불행을 막지 못했다. 2021년 7월 19일, 그는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 중 실종됐다. 김 대장과 함께했던 원정대원들은 그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다. 원정대는 함께 식사할 때 사용하던 알루미늄 접시로 김 대장을 위한 추모판을 만들었다. 김 대장과 한솥밥을 나눠 먹던 그 접시다. 추모판에 “김홍빈 Broad Peak에 영원히 잠들다”라는 문구를 새겼다. 김 대장을 브로드피크에 남겨두고 떠나지만, 그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원정대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K2 추모탑(k2 Memorial)에 추모판을 설치했다. 밥도 지어 올렸다. 한 대원은 절을 올리며, 절규에 가까운 통곡을 했다. 지난 13일 진행된 ‘고(故) 김홍빈 대장 3주기 추념식’에서 이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추념식에서 상영된 영상 ‘故 김홍빈 대장의 삶’에선, 김 대장의 마지막 등반 모습과 함께 떠났던 대원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영상 속 김홍빈 원정대의 울음소리가 추념식이 열린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3년 전인 2021년 7월 18일. 김 대장이 ‘최초’의 기록을 만든 그날. 기자 역시 TV에서 김홍빈 원정대의 소식을 접했다. 원정대는 브로드피크 등반을 통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돼주고 싶다”고 약속했다. 김 대장이 브로드피크 등정에 성공했을 때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로 신문과 방송에서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분위기는 뒤집혔다. 뉴스는 그의 실종 사실로 도배됐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김 대장의 무사귀환을 기원했지만, 그 염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대장은 결국 히말라야에서 잠들었다. 기자가 기억하는 김 대장 소식도 거기서 끝이었다. 김 대장의 실종을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그쯤에서 잊고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원정대에게 닥칠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도 동상을 입어보고, 주변에는 (등산하다 동상으로) 손가락 잘린 후배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홍빈이 손은 보기가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 아직도 홍빈이 카톡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활짝 웃고 찍은 사진이 앞에 (카톡 프로필) 표지로 돼 있습니다. 그걸 지금도 한번씩 들여다봅니다.” (산악인 최○○, 2024. 7. 13. 김홍빈 3주기 추념식) 김홍빈 대장의 마지막 원정으로부터 2년 뒤인 지난해 7월. 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故 김홍빈 대장 구조비 소송.. 정부, 승소하고도 항소” 내용은 이랬다. 원고 대한민국이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비용을 내놓으라며 김홍빈 원정대를 상대로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대한민국이 청구한 구조비용만 약 6800만 원. 김홍빈 대장을 살리지도 못한 실패한 구조작전 비용을, 생사의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원정대원들에게 고스란히 지운 상황. 1심 법원은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원들에게 비용 일부(약 3600만 원)를 나눠서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원고 대한민국은 구조비용 전액을 돌려받아야 한다며 지난해 7월 항소했다. 기자의 머리를 스치는 의문은 한 가지였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건 당연한 책임인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가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구조비 청구 소송을 다룬 많은 기사들 사이에, 한 가지 없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바로 원정대원들의 목소리.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들어야만 했다. 김홍빈 원정대의 시작과 끝을 모두 지켜본 목격자들이자, 원고 대한민국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당사자들이니까. 이들만이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 길로 원정대원들부터 찾아 나섰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에서 시작된 사건을 취재하는 건 역시 쉽지 않았다. 광주광역시산악연맹도, 유가족도 기자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지쳐 보였다. 한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시작된 구조비 소송. 정부 측을 비판하는 국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여유는 사라지고 경계만 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대장의 이름 뒤에 ‘구조비용’이란 단어가 따라붙는 상황 자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거라 짐작한다. 그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됐지만, 그래서 더욱 기사를 써야만 했다. 유가족과 산악연맹, 그리고 피고 당사자들까지 모두 말을 아끼고 몸을 사리게 만든 건 모두 ‘소송’ 때문이니까. 그리고 그 소송을 제기한 대한민국 때문이니까. 또 다른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선 김홍빈 원정대의 소송을 선례로 남겨선 안 된다는 목표가 생겼다. 오랜 취재와 설득 끝에, 지난 6월 첫 보도를 시작했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항소심 결심재판을 앞두곤, “원고 대한민국의 소송비용 청구를 기각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도 직접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셜록 보도 이후, 일명 ‘김홍빈 대장법’도 발의됐다. 지난달 10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광주 광산구을)은 국민이 국위선양을 하다가 해외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국가의 비용 부담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영사조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산을 보면 김홍빈 대장님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영원히 산이 됐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 김 대장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구상권과 관련된 소송이 조금 문제가 있는 상태입니다. (일명 ‘김홍빈 대장법’을) 민형배 의원님이 대표로 발의하시고 저는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려서, 제도적인 부분에서 재발을 방지하는 일을 국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024. 7. 13. 김홍빈 3주기 추념식) 지난 토요일(13일)에 광주에서 열린 김홍빈 대장 3주기 추념식도 다녀왔다. 이날 추념식에서, 김 대장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던 김홍빈 원정대 대원 세 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정인복(가명), 유현철(가명), 정민식(가명)이다. 2021년 사고 당시엔 코로나19 격리 방침에 따라 김 대장의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했던 그들이다. “(실종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김홍빈 대장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까지도 말입니다.” (산악인 정인복 2024. 3. 19. 인터뷰) 원정대원들은 추념식 날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모든 참석자들이 다 떠난 뒤에도 이들은 체육관에 머물렀다. 김홍빈 대장과 함께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례식에도 오지 못했다는 한이 남아서일까. 그들은 마치 스스로를 상주(喪主)로 여기는 듯했다. 김 대장의 얼굴이 실린 현수막도, 그의 업적이 기록된 책자도 이들이 직접 나서 손수 정리했다. 김 대장의 마지막 순간을 추모판에 기록했던 것처럼, 추념식의 마지막 뒷정리도 모두 이들 손에 의해 이뤄졌다. 김홍빈 대장에게 훈장을 주고, ‘스포츠 영웅’으로 헌액하고, 현충원에 위패를 봉안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갔을까. 어째서 지금은 김홍빈 대장을 잃은 원정대원들에게 구조비용을 물어내라는 대한민국만 남아 있는 걸까. 추념식 현장, 김홍빈 대장의 얼굴 앞에 걸린 태극기가 괜시리 원망스럽다. 김홍빈 대장도 잃고 구조비용 수천만 원도 짊어진 원정대원들. 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 동료를 잃은 슬픔조차 회복하지 못한 이들에게…. 오늘(19일)은 김홍빈 대장의 세 번째 기일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국가폭력
·
4
·
237번의 ‘진심’… 씁쓸함과 온기가 교차한 그날 대법원 [이시우, 향년 12세 6화]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로 살다보면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재판 있을 때마다 찾아와줘서 감사해요, 기자님.” 그러면 나는 “회사에서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 덕분”이라며 겸손하게 답하는 식이었다. 일주일 전 대법원에 갔을 때는 김정빈(가명) 씨가 내 손을 맞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자긍심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느껴졌다. 정빈 씨 손을 잡고 “어머님께서 고생 많으셨다, 다음 재판에 또 오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시우, 향년 12세’ 프로젝트는 제보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2월 계모와 친부의 학대와 방임으로 열두 살 시우가 숨을 거둔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 안타까운 죽음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사건 발생 이후 약 반년 동안 무려 650여 건(네이버 기준)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정치권도 움직였다. 국회는 사건 이후 반년 사이 4개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런 관심이라면 이제라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안전한 울타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내가 이시우 군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한 때는, 시우의 1주기 기일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언론의 뜨거운 취재 열기도, 정치권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라는 시우의 친모 김정빈(가명) 씨의 말. 그의 곁에는 소수의 그 지인들만 남아 그를 지키고 있었다. 아직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도, 어딘가에서 학대받고 있을 또 다른 아이들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채로.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피해자는 영유아가 많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3년간(2020~2022년) 아동학대로 사망에 이른 아동 총 133명 중 102명이 영유아였다. 그에 반해 시우는 열두 살이었다. 이웃 주민,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그 고통을 털어놓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시우는 주변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고통을 감내했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도 숨죽여 아파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도 세상에는 괜찮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시우를 ‘계모로부터 학대당하다 사망한 안타까운 초등학생’이 아닌, ‘우리 사회에 아동권리의 경종을 울린 고마운 아이’로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도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정빈 씨를 만난 지난 1월 31일. 그의 곁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다섯 명의 시민들이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온라인 카페를 통해 맺은 인연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서울고등법원 정문에 모여 피켓을 들었다. 시우 사진이 프린트된 판넬에는 ‘부디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부탁드린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추위에 손끝이 붉어지도록 서 있던 이들은 한 시간가량 시위를 마치고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언 손을 녹였다.(관련기사 : ‘향년 12세’ 시우의 첫번째 기일… 엄마는 법원 앞에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7월 11일에도 정빈 씨 곁을 지켰다. 그날 법정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빈 자리도 몇 군데 남지 않았고, 인파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지난해 이시우 군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으니 그만큼 기자들도 대법원의 판결에 관심을 가지리라 생각했다. 그들보다 기사를 잘 쓰고 싶다는 긴장감도 생겼다. 순간 법정에 환호성이 일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9년간 법적 다툼을 이어오던 노동자들이 승리한 것. 이들은 부둥켜안고, 밝은 표정으로 법정을 나섰다. 그러자 썰물처럼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쓸려 나갔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사람들만 법정 안에 남았다. 정빈 씨는 방청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다가 맨 앞 줄로 이동했다. 정빈 씨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기도했다. 바라는 건 딱 하나. 가해자들이 다시 재판을 받게 하는 것. 앞선 항소심에서 계모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 친부에 대해 상습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열두 살의 나이에 고통스럽게 죽어간 시우 군을 떠올리면 천벌도 부족하다는 게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원심 판결 중 피고인 A(계모)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전향적인 판결이었다. 그동안 피고인들에게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 ‘아동학대살해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만 적용받았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아동학대살해죄 여부를 다시 다툴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A가 “지속적이고 중한 학대행위가 다시 가해질 경우 피해아동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내지 위험이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살해죄에서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판'이 뒤집혔다.(관련기사 : “살해의 미필적 고의 있다” 대법원, 시우군 사건 ‘반전’) 그 순간 정빈 씨는 힘이 빠졌는지 허리를 반쯤 굽혔다. 손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고 쉬지 않고 1인시위를 해온 지난날이 떠올랐을까. 한 번 더 가해자에게 죄를 물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시우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와 한 발짝 떨어진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섯 걸음쯤 내디딘 정빈 씨는 나와 눈이 맞주쳤다. 붉어진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다. 여태 표정을 지우고 울음을 참아내던 정빈 씨가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감정들을 이제야 쏟아냈다. 그는 그날 법정을 찾아준 이들과 모두 포옹을 나눴다. 정빈 씨가 다가가 손만 잡아도, 어떤 이는 눈물을 훔쳤다. 뭉클했다. 다만 부끄러웠던 건 재판이 시작하기 전에 걸었던 기대 때문이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던 인파들. 그 틈에 나 말고도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대법원 선고를 취재하러 온 기자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빈 씨도 그런 기대를 했을까. 예상은 빗나갔다. 기자는 나뿐이었다. 사건 초기 반년간 650여 건의 기사가 쏟아진 것을 기억한다. 그에 반해 대법원 판결 이후 일주일간 발행된 기사는 세 건에 불과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쓴 거다. 사건 초기 뜨거웠던 취재 열기는 금세 식어버리고 말았다.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열 명 남짓한 이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이들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다.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간 2월 19일부터 7월 11일까지 총 237건의 진정서, 엄벌진정서, 엄벌탄원서가 접수됐다. “시우가 내 아들과 동갑”이라서, “우리 아이 같아서”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손을 맞잡은 이들을 ‘나’라도 지켜주고 싶었다. 사건 이후 약 18개월이 지났지만 가해자에 대한 형사 재판은 진행 중이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소송 역시 진행 중이다. 겨울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29일간 등교하지 않았던 시우. 시우는 겨울방학이 끝나고 약 일주일 뒤 사망했다. 하지만 학교와 교육청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관련기사 : 아이가 죽고 ‘죄인’이 된 엄마, 국가에도 책임 묻는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돌아온 아이. 정빈 씨는 시우의 죽음 이후, 아이를 먼저 데려오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죄인이 된 엄마는 죽어서 시우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 ‘엄마가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기 위해 1인시위를 하고 법원을 찾아다닌다. 아이를 잃고 18개월이 지난 지금도 피 말리는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아동학대 근절
·
7
·
사후조치 했다고 새마을금고 면죄부? “엉뚱한 소리!”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18화]
감사원이 1500억 원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에 대해 행정안전부의 관리·감독 책임을 묻는 공익감사를 종결했다. 행안부가 ‘사후조치’를 했으니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반쪽 검토 결과”라며 감사원의 종결처리 결정을 규탄했다. 이들은 지난 4월 23일 감사원에 행안부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사채왕’ 김상욱(52) 일당의 1500억 원대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 대출이 발생했을 당시 행안부가 관리·감독 책임을 다했는지 조사해달라는 취지였다.(관련기사 : “사채왕 김상욱 하나에 휘둘리는 이게 나라입니까!”) 감사원은 감사 청구 취지에서 벗어난 답변을 내놨다. 감사원은 행안부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새마을금고중앙회 내규를 개정하는 등 사후조치를 했기 때문에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감사원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 이번 종결처리는 감사원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답변으로 행안부가 책임을 회피하도록 해준 것”이라며 “감사원은 시민사회가 제기한 사안에 대해 분명하게 감사를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그야말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1500억 원에 달하는 불법대출이 적발된 후에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발 방지 대책을 강화했다고 해서 그 전에 관리·감독의 부실로 인한 사건까지 책임이 면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참여연대 실행위원인 서성민 변호사도 “과거부터 있던 명확한 문제에 대해 관리・감독을 했는지 감사를 요청했는데, 감사원은 쟁점을 회피하는 식의 어이 없는 답변을 했다”고 비판했다. “종남이(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 ‘회장님(김상욱 본인 지칭) 새마을금고가 솔직히 규정이 어디 있습니까? 씨X. (대출) 나가면 다 나가는 거지.’” (2023. 6. 19. 김상욱 통화녹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의 통화 음성파일 900여 건을 입수했다. 음성파일에는 김상욱이 청구동새마을금고를 마치 자신의 ‘개인 금고’처럼 사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관련기사 : “청구동새마을금고는 사채왕 김상욱의 개인 금고다”) 김상욱은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 상무와 짜고 불법대출을 실행했다. 그 여파로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고 인근 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이들 일당은 피해자를 속여 명의를 빌린 뒤, 상가 매매를 담보로 최대한도의 대출을 받았다. 심지어 감정평가사를 미리 섭외해 부동산 담보 가치를 부풀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행안부는 1500억 원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발생한 뒤 2023년 10월 새마을금고중앙회 내규를 개정했다. 70억 원 이상 PF대출에 대해서 중앙회의 사전검토를 거치도록 했다. 감정가격 과다 평가 방지를 위해 온라인 탁상감정서비스를 도입했고, 특정 법인에 연간 30%를 초과해 감정평가를 맡길 수 없도록 조치했다. “1500억 원 불법대출 사건은 대부분 2023년 6월 이전에 발생했다. 이런 반쪽짜리 검토 결과로 이번 공익감사 청구사항을 종결처리 해버리는 것은 행안부에게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감사원 스스로도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다.”(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불법대출을 비롯한 새마을금고 관련 사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새마을금고와 행안부에 적절한 감사를 한 적은 없었다.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으로 다수의 금융소비자 피해가 발생했고, 심지어 비슷한 양상의 범죄가 전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드러난 중대한 상황에 대하여 이번에야말로 행안부에게 과거의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감사원의 종결처리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들은 “감사원이 자체적으로라도 시민사회가 요청한 감사청구 내용에 대해 왜곡이나 책임 회피 없이 분명하게 감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대출의 주범인 김상욱과 전종남은 지난 5월 23일 구속기소 됐다. 이들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김상욱은 “대출 과정에서 수수료만 일부 받았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고, 전종남 역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대출”이었다고 항변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부정부패
·
3
·
“살해의 미필적 고의 있다” 대법원, 시우군 사건 ‘반전’ [이시우, 향년 12세 5화]
“원심 판결 중 피고인 계모 A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11일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2심 법원에 돌려보냈다. 계모 A에게 적용되지 않았던 아동학대살해죄 인정 여부를 다시 다툴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지난해 2월 발생했다. 계모와 친부의 학대로 열두 살 시우가 죽었다. 계모는 알루미늄 봉과 플라스틱 옷걸이 등으로 장기간에 걸쳐 아이의 온몸을 수차례 때렸다. 그리고 약 16시간 가량 커튼 끈으로 책상 의자에 결박해놓기도 했다. 그날 새벽 통증으로 잠 못 자고 신음하던 시우는 이튿날 숨졌다. 사망 당시 시우의 체중은 고작 29.5kg. 초등학교 6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었지만, 몸무게는 초등학교 2학년 남아 평균(31kg)에도 못 미쳤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여러 둔력 손상’이었다. 시우의 머리, 몸통, 팔, 다리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었다. 200회 넘는 학대 흔적이 아이 몸에 남았지만,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정생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결과를 감내하면서까지 살인을 감행하였다고 볼 수 있으려면 그만큼 강렬한 범행 유발 동기가 존재하여야 한다. (…) 피고인(A)이 자신의 친자녀와 격리되어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을 돌보지 못하는 결과를 감수하면서 피해자(시우)를 살해할 만큼 피해자를 미워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인천지방법원 2023고합159 판결문) A가 시우를 죽여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았고, 시우의 사망 결과를 예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관련기사 : ‘향년 12세’ 시우의 첫번째 기일… 엄마는 법원 앞에 있다) 6개월 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A는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형이 선고됐다. “살인죄조차 적용되지 않는 재판 결과가 너무 암담해요. 시우가 불쌍해서 자꾸 눈물이 나는 거예요.” (김정빈 씨, 지난 2월 2일 항소심 선고 후)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매주 1인시위를 이어가던 김정빈 씨는 재판정을 나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가 바란 건 단 하나. 가해자들을 엄중 처벌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법원 앞에서도 피켓을 들었다. “재판장님, 이 세상 전부인 제 아들 이시우. 어디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은 제 인생의 유일한 이유이며 의미였고 희망이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제가 그 어떤 고통도 대신하고 싶습니다. 부디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부탁드립니다.” (피켓 내용 일부) 그녀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반전은 대법원에서 일어났다. 대법원은 지난 11일 A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은 “쟁점 공소사실 중 살해의 미필적 고의에 관한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A에 대한 아동학대’살해’죄를 다시 다툴 여지가 있다는 것. “학대행위가 지속·반복적으로 가하여진 경우 그로 인해 피해아동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어 생활기능의 장애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피해아동의 나이·발달정도나 취약해진 건간상태를 고려할 때 중한 학대행위를 다시 가할 경우 피해아동이 사망에 이를 위험이 있다고 인식 또는 예견 가능한 상황이었는지 (…) 범행 전후의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인에게 아동학대살해의 범의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 2024도2940 판결문) 아동의 경우 “골격이나 근육, 장기 등이 발달과정에 있어 손상에 취약하고, 심리적·인지적으로 미성숙하여 자신의 건강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보호자에 의존적인” 특성이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아동의 취약성을 고려하여 ‘미필적 고의’를 폭넓게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시우는 학대를 당할 무렵 일기장에 자살하겠다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재한 바 있다. 이는 당시 시우가 “신체적·정신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A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폭력을 가했다. 플라스틱 옷걸이, 선반받침용 봉으로 아동의 팔과 엉덩이를 때릴 뿐만 아니라, 연필이나 가위, 젓가락, 컴퍼스로 아동의 다리와 몸통을 200회 넘게 긁거나 찔렀다. 특히 사망하기 하루 전 A는 시우가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봤고, 심야에 통증으로 아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대로 방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A가 “지속적이고 중한 학대행위가 다시 가해질 경우 피해아동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내지 위험이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살해죄에서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닌 아동학대’살해’죄로 봐야 하지 않냐는 게 대법원 판결의 핵심. “만약 이번에 대법원에서 (아동학대)살해죄가 무죄로 나왔으면 일부 아동학대 가해자한테는 꼼수가 될 수 있는 사례가 됐을 겁니다. 아이를 한 번에 죽이는 게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아이를 쇠약하게 만들었는데, 아이가 어느 날 죽는다면 살인의 고의를 피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법률자문을 맡은 김승유 변호사(흰여울 법률사무소)는 이번 판결이 “좋은 판례”가 될 거라고 말했다. 김정빈 씨는 대법원의 판결을 들은 뒤에야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이날 재판정에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국민아동학대근절협회 관계자들이 있었다. 정빈 씨는 열 명 남짓한 이들과 한 사람씩 포옹했다. 약 18개월가량 이어진 가해자들과의 법정 싸움에서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킨 이들이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안도와 설움이 뒤섞인 현장. 정빈 씨는 시우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에게 다시 한 번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정빈 씨는 이번 판결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다행’이 계모 A에 대한 죄를 다시 묻는 것이라면, ‘불행’은 친부 B에 관한 것이었다. 검찰의 공소 사실을 보면, 학대 행위와 정도 및 횟수의 차이만 있을 뿐 B도 아이의 죽음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는 상습아동학대 및 상습아동유기·방임 혐의만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제 다시 한번 파기환송심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들은 또 한 번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아동학대 근절
·
4
·
“외교적 해결 없이 자국민에게 소송… 지혜롭지 못해” [대한민국 생존비 청구소송 4화]
“파키스탄 정부가 ‘구조헬기 띄운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한국 정부는 (김홍빈 원정대에) 구상권 청구를 하고… 매우 지혜롭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2024. 7. 1. 문현철 교수 인터뷰) 대한민국이 자국민에게 구조비용을 청구한 이 ‘지혜롭지 못한 소송’은 언제쯤 끝날까. 원고 대한민국이 ‘김홍빈 원정대’를 상대로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제기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김홍빈 원정대는 현재 항소심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 고(故) 김홍빈 대장은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이다. 2021년 7월 19일,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하던 중 실종됐다. 그리고 약 10개월 뒤. 원고 대한민국은 김홍빈 원정대에 소송을 걸었다.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 비용을 내놓으라는 것. 김홍빈 대장을 살리지도 못한 실패한 구조작전 비용은, 생사의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원정대원들에게 고스란히 지워졌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전문가는 이 소송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1일, 문현철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재외국민보호 분야의 전문가다. 한국재난관리학회(KAD) 부회장인 문 교수는, 외교부 재외국민보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2019년 12월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업무 체계의 개선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논문을 쓰기도 했다. 해당 논문에선 아직 시행 전이던 영사조력법의 주요 쟁점들과 하위 행정입법(시행령, 시행규칙)의 구체화 필요성에 대해 짚었다. 먼저, 문 교수는 김홍빈 원정대에 제기된 구조비용 청구 소송에서 아쉬운 지점부터 짚었다. “한국 정부가 파키스탄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구조비용 문제를 잘 해결)해냈다면, 조금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을 겁니다. 그런데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 외교부가 무관심했든지 아니면 (김 대장에 대한) 구조 활동이 정부와 명확한 협의 없이 성급하게 진행됐든지, 크게 두 가지 가능성으로 보입니다. 하여튼 (구조비용 청구 소송이 제기된 현 상황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게 비법률적인 판단입니다.” 대한민국의 청구 금액은 약 6800만 원.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원 3명, 촬영감독 2명 총 6명(광주광역시산악연맹 포함)은 2022년 5월 원고 대한민국이 보낸 소장을 받아들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21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소관청은 외교부, 법률상 대표자는 당시 법무부 장관 한동훈이다. 1심 법원은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원들에게 비용 일부(약 3600만 원)를 나눠서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원고 대한민국은 구조비용 전액을 돌려받아야 한다며 지난해 7월 항소했다. 원고 대한민국이 소송을 제기한 법적 근거는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영사조력법). 법의 취지를 살려 ‘재외국민보호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김홍빈 원정대’는 “재외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영사조력법에 의해 오히려 소송을 당했다. 쟁점은 영사조력법 제19조. 이 조항에 따르면, 재외국민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의문이 따라붙는다. 애초 영사조력법 제19조가 ‘국가가 국민 개인에게 비용을 청구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 재외국민보호는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의무다. 아무리 법적 근거가 있다 해도, 김홍빈 원정대를 상대로 소송을 선택한 한국 정부의 판단을 ‘최선’이라 볼 수 있을까. 문 교수는 “인도주의적 외교력을 통해 해결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인도주의적 휴머니티(인간애)로 상호 협조하자’고 파키스탄 정부에 먼저 제안을 하는 거죠. 휴머니티는 인류의 보편적인 공감 가치예요. 휴머니티에 공감대가 있는 파키스탄 정부가 (김홍빈 원정대 구조 활동을) 도와주면, 향후 한국에 와 있는 파키스탄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한국 정부가 도와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장 훌륭한 모습은 외교력으로 해결해내는 것이죠. 휴머니티를 서로 공감하는 두 나라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문 교수는 정부의 외교력이 발휘된 대표적인 모범 사례 하나를 꼽았다. 지난해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일어난 군벌 간 무력충돌 사태에서 이뤄진 ‘한일 간 공조’ 사례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4월 수단 현지 교민들을 철수시키는 ‘프라미스 작전’ 때 수단에 체류 중이던 일부 일본인들의 탈출을 도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수단 거주 일본인 대피 과정에서 한국의 협력이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국의 외교적 도움은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에는 이스라엘에 군용 대형 수송기를 보내 우리 국민 163명과 일본인 51명을 긴급 대피시켰다. 당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현지에 체류 중인 교민들이 고립됐었다. 김홍빈 원정대 사례에선 왜 이런 외교력이 발휘되지 못했을까? 문 교수는 우선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 “외교부의 예산이나 인력이 상당히 부족합니다. 외교부 1년 예산은 중앙행정기관의 청 단위보다 적은 약 2조 30000만 원가량입니다. 산림청 예산보다 조금 많습니다. 이중 재외국민보호 사업 예산은 100억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금액으로 전 세계 190개 재외공관을 운영하고, 3000만 명의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외교부가 휴머니티를 해피엔딩으로 만들 만한 여력이 없는 겁니다.“ 문 교수는 위에서 언급한 논문에서도, 재외국민보호가 더 치밀해지기 위한 첫 번째 대안으로 “외교부의 예산 증액, 재외공관의 증설, 외교관 영사의 증원”을 꼽았다. “영사조력의 범위를 주재국의 행정청의 처분 등에 대한 영사조력 등에 대하여도 필요하며, 구체화 세분화 하는 과정에서 외교부의 실무적 고충과 국민적 공감대를 동시에 고려하는 등 더욱 구체화 하는 세부적인 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논문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업무 체계의 개선에 관한 연구>, 문현철, 2019) 하지만 김홍빈 원정대를 상대로 제기된 구조비용 청구 소송은 이미 벌어진 일. 지금 상황에서 또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 문 교수는 “우리 정부도 (일반 국민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권 청구를 취하하는 조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종수 숭실대학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구조비용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조정절차’를 강조했다. 정 교수는 “민사 분쟁은 판결보다도 조정을 잘 해주는 게 법원의 역할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원은 유럽에 비해 조정을 잘 안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김홍빈 원정대 구조비 청구 소송의 경우도 (원고와 피고) 서로 조정을 해서 해결하는 게 국격에도 좋을 듯하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 제12-1부(재판장 성지호)는 지난 9일 피고 김홍빈 원정대 측이 원고 대한민국에 구조비용의 60%를 지급하는 것으로 조정하는 화해권고결정을 했다. 원고 대한민국이 청구한 구조비용은 6800만 원. 60%는 약 4080만 원으로, 1심에서 인정된 금액(약 3600만 원)보다 약 480만 원 많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에서 원고 대한민국 측 법률대리인을 향해 이렇게 강조했다. “원고 대리인은 원고 대한민국을 잘 설득하세요.” 재판부는 지난달 11일 진행된 항소심 두 번째 변론기일 때도 화해권고를 제안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조정성립은 원고 대한민국과 피고 김홍빈 원정대의 합의에 따라 향후 결정될 예정이다. 김홍빈 원정대를 향한 정부의 소송은 계속해서 논란을 낳고 있다. 김홍빈 대장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주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위패를 모신 것도 대한민국 정부였다. 국위를 선양한 ‘스포츠 영웅'(2021년 대한체육회 선정)으로 치켜세울 때는 언제고, 구조비용을 받겠다고 국가가 소송까지 제기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일명 ‘김홍빈 대장법’도 발의됐다. 지난달 10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광주 광산구을)은 국민이 국위선양을 하다가 해외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국가의 비용부담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영사조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대장의 유해는 아직 히말라야에 묻혀 있다. 7월 19일. 일주일 뒤면 김홍빈 대장의 세 번째 기일이 돌아온다. 오는 13일엔 김홍빈 대장 3주기 추념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홍빈의 조국 대한민국은 그의 영정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국가폭력
·
3
·
참여연대 “이규태 회장, 셜록 기자 고소는 입막음용”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9화]
“일광학원 전 이사장(이규태 회장) 측은 지속적인 반론 취재 요청에도 응하고 있지 않다가 기자를 고소했다. 이는 언론에 대한 압박이자 입막음이다.” (참여연대 보도자료, 2024. 7. 10.)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를 고소한 사건에 대해, 참여연대가 ‘불송치 처분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 회장은 ‘우촌초등학교의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행위를 지시하고, 이를 고발한 공익제보자들을 5년간 괴롭히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이를 보도한 셜록 기자와 프레시안 기자를 지난 4월 고소했다. 사유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이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입막음용 소송의 일환”이라며, 불송치 처분 의견서를 9일 서대문경찰서에 제출했다. 이 회장은 서울 성북구 소재 사립초등학교인 우촌초 인수자이자,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 이사장이다.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로 유명하다. 2022년 기준 학부모 부담금은 연간 1468만 원에 달한다. 2019년 우촌초 최은석 교장, 이양기 교감 등 6명의 교직원은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회장이 스마트스쿨 사업의 예산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리고, 미리 섭외한 업체가 입찰에서 선정되록 사업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적발했다. 이외에도 학교장 업무방해, 학교예산 횡령 등 각종 비리가 밝혀졌다. 이 회장과 일광학원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들은 2022년 참여연대 ‘올해의 공익제보자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일광학원 측은 공익제보자들에게 반복적인 징계를 내리고, 고소와 소송을 진행했다. 공익제보자들은 5년째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의 보복성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해고 이후 아직 학교로 복직하지 못한 이들도 있고, 힘든 법적 다툼 끝에 복직한 교직원은 또 지속적인 따돌림과 불이익에 시달려야 했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셜록은 지난 1월부터 공익제보자들을 향한 이 회장과 일광학원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보도해왔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이 회장과 일광학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23차례나 반론 취재를 시도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무응답’이었다. “형법 제310조는 “(명예훼손)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그 보도 내용 역시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우촌초등학교 스마트스쿨 비리 관련 공익제보자들이 받고 있는 부당한 불이익조치에 관한 것이었기에, 이 보도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임이 분명하다.”(참여연대 보도자료, 2024. 7. 10.) 참여연대는 이 회장의 고소 사건이 명예훼손에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사는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와 공익제보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취재원과의 인터뷰, 관련 소송 공소장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된 점을 근거로 삼았다. 또한 공익제보자 보호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작성됐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이 회장의 고소장 접수에 앞서, 지난 2월 일광학원은 셜록의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한 바 있다. 일광학원 측은 ▲3000만 원의 손해배상 ▲해당 기사의 열람·검색 차단 ▲정정보도문 게재를 요구했다. 1차 조정기일에는 일광학원 측이 출석하지 않았고, 2차 조정기일 결과 ‘조정 불성립’으로 마무리됐다. “일광학원 비리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집요한 보복행위를 반복해왔다. 이번 고소 역시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행위 및 입막음 소송의 일환으로 판단된다.” (참여연대 보도자료, 2024. 7. 10.) 이 회장과 일광학원이 언론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은 2019년 우촌초 스마트스쿨 비리를 처음 보도한 방송사 기자들을 고소하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한 바 있다. 심지어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에게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광학원의 패소로 끝났다. 참여연대는 “일광학원 및 전 이사장과 관련된 취재 및 보도가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두 기자에게 불송치처분을 내려줄 것”을 서대문경찰서에 요청했다. 한편, 셜록과 참여연대는 지난 1월 17일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 이사장 2명을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부정부패
·
2
·
[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19화]
그들만의 꿀단지로 여겨진 검사들의 ‘공짜유학’.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국외훈련 후 표절 논문을 제출한 검사들이 훈련비 일부를 환수당했다. ‘논문 표절’을 이유로 검사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최초의 사례. 셜록이 ‘표절 검사’들을 상대로 ‘혈세 환수 대작전’을 시작한 지 무려 1년 6개월 만이다. 셜록이 신고한 5명의 전·현직 검사 전원이 훈련비 일부를 환수당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지난달 27일, 국외훈련 연구논문 표절 의심 검사 5명에 대해 “법무부 담당 부서에서 관련법령과 규정에 따라 국외훈련비를 환수했다”는 처리 결과를 통보했다. 환수 비용은 최대 3800만 원으로 예상된다. 셜록이 지난 2022년 12월 첫 보도 이후, 이듬해 1월 직접 권익위에 신고한 데 따른 것이다.(관련기사 : https://www.neosherlock.com/ar...)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이 시행된 2010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5일까지, 법무부가 표절 문제로 환수한 검사 국외훈련비는 ‘0원’이다. 법무부는 2022년 12월 5일 국민신문고 답변을 통해 “현재까지 연구보고서, 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하여 훈련비를 환수한 사례는 없다”고 답한 바 있다. 권익위는 환수 조치 사실을 통보함과 동시에, “법무부가 2023년 6월 26일자로 ‘검사 국외훈련 운영 규정’을 개정해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 근거를 명시했다”는 내용도 밝혔다. 다만, 법무부가 검사 국외훈련비를 언제, 얼마나 회수했는지 등 상세내역을 공개하진 않았다.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와 운영규정 개정 모두, 셜록의 보도 이후 일어난 일이다.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이번 권익위 조사 결과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검사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검찰 조직에 경종을 울려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더구나 독립언론의 노력에 의해 (검사 국외훈련비) 예산 환수조치가 이뤄진 건 의미가 매우 큽니다.” 김예찬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도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대안언론 셜록이 이끌어낸 변화라는 점에 의미를 뒀다. “이전에 국회의원 정책연구보고서 표절 문제는 환수까지 못 가고 의원들이 자진 반납하는 방향으로 풀렸습니다. (이번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 건은) 공무원 국외훈련비 환수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셜록처럼 (공무원 국외훈련) 검증 절차에 직접 나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가 된 듯합니다.” 권익위가 밝힌 국외훈련비 환수 대상자엔 셜록이 지목한 전·현직 검사 5명이 모두 포함됐다. 셜록은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에 공개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84건(2019~2021년 발행)에서 부정·부실 의심 논문 5건을 확인해 보도했다. 박건영 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타인의 논문을 무단으로 인용한 문장으로 거의 논문 전체를 채워 ‘표절률 1위(93%)’를 기록했다. 김형걸 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같은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온 선배 검사의 논문을 베낀 걸로 보인다. 진현일 전 검사(사법연수원 32기)는 연구논문 총 92쪽 중 73쪽, 약 80%의 페이지를 표절로 의심되는 문장으로 채웠다. 그는 이직한 로펌 ‘법무법인 세종’ 홈페이지 프로필에 표절 의심 연구논문을 아직도 홍보하고 있다. 최지현 전 검사(사법연수원 36기)는 본인의 석사학위 논문을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가져와 연구논문의 약 80%를 채웠다. 그는 현재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다. 부실 논문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사례도 있다. 오○○ 검사는 과거 학술대회에서 자신이 작성한 발표문을 국외훈련 연구논문에 ‘재활용’했다. 이들 5명에게 총 1억 9040만 원의 국외훈련비가 지원됐다. 모두 국민들의 세금이다. 법무부가 규정에 따라 ‘표절 검사’ 5명의 국외훈련비를 환수했다면, 그 비용은 최대 약 3808만 원에 달할 걸로 예상된다. 공무원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국외훈련비의 지급 등)연구보고서의 내용이 부여된 훈련과제와 관련이 없거나 다른 연구보고서ㆍ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지급한 훈련비의 100분의 20 범위에서 환수할 수 있다. 셜록이 ‘표절 검사’들로부터 세금 환수를 이끌어낸 여정은 지난했다. 시작은 사소한 궁금증이었다. ‘검사들도 일반 공무원들처럼 세금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있지 않을까?’ 2022년 당시 논란이 됐던 공무원들의 장기 해외연수 결과보고서 표절 문제를 보고 떠오른 문제의식이었다. 공무원 국외훈련 제도를 알아봤다. 예상대로 검사들도 수혜 대상에 포함됐다. 법무부는 “검찰의 발전과 훈련대상 검사의 자기계발”을 위해 검사 국외훈련 제도를 진행하고 있었다. 국외훈련비용은 모두 세금으로 지원됐다. 매년 검사 국외훈련비(항공운임, 학비, 생활준비금 등)에 투입되는 예산만 평균 약 43억 원. 검사 한 명당 평균 6100만 원의 세금을 지원받았다. 국가가 보내주는 ‘공짜 유학’이었다. 다음 단계는 표절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였다. 검사들이 작성한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에 먼저 돌려봤다. 큰 기대는 없었다. 이미 연구논문은 누구나 쉽게 검증할 수 있게끔 인터넷 사이트에 전체 공개돼 있으니까. 심지어 법무부는 ‘연구결과 심사위원회’를 통해 논문을 심사까지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임을 ‘자부’하는 검사들이 작성한 논문이 아니던가. 하지만 ‘카피킬러’ 검사 결과로 나온 숫자는 실로 놀라웠다. ‘93%’, ‘86%’, ‘80%’…. 검사들의 성적표라고는 믿기 어려운 표절률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검증 절차에 들어갔다. 표절 의심 연구논문과, 표절 대상이 된 원자료를 나란히 놓고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했다. 형광펜을 꺼내 들고, 똑같은 문장에 색을 칠해봤다. 표절 의심 문장과 같은 색깔로 표시한 결과, 한눈에도 심각성이 느껴졌다. 어떤 경우는 한 페이지 안에 형광펜이 칠해지지 않은 문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느 날은 하루 만에 형광펜 하나가 다 닳아버리기도 했다. 세금으로 지원되는 검사들의 ‘공짜유학’. 그만큼 국가가 관리와 감독에 책임을 다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표절로 밝혀지면 국외훈련비를 환수할 수 있다는 규정대로 말이다. 셜록은 2022년 12월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18편의 기사가 보도됐다.(관련기사 : https://www.neosherlock.com/ar...) 셜록은 이번에도 보도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셜록이 밝혀낸 표절 의심 검사 5명을 권익위에 부패행위로 직접 신고했다. 이어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베낀 검사 3명(박건영, 김형걸, 진현일)에 대해서는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공익침해행위로 추가 신고했다. 하지만 초기 권익위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권익위는 지난해 7월, 공익침해행위 신고에 대해 “한국저작권보호원 검토 결과, 표절로 볼 수 있다”고 밝히면서도, “행정 조치 권한은 법무부에 있다”며 아무 처분도 결정하지 않았다. 국회도 나섰다. 지난해 10월 이탄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향해 ‘표절 검사’들에 대한 조치와 국외훈련비 환수 계획에 대해 질의했다. 한 장관은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면서, 표절 의심 검사들에 대한 국외훈련비 환수 조치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한 장관은 “(표절 의심 검사로 지적받은) 상당수가 퇴직 검사”라며,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지 검토 중에 있다”고 답했다. 권익위가 ‘표절 검사’들에 대한 국외훈련비 환수 사실을 셜록에게 통보한 건 지난달 27일. 한 전 장관의 응답으로부터 약 8개월이 지난 뒤다. 아직 남은 과제도 있다. 징계다. 연구논문이 표절로 밝혀져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이상 ‘표절 검사’들에 대한 징계는 당연한 수순. ‘검사징계법’에 따르면, 검찰총장은 검사가 징계 사유에 해당되는 비위를 저질렀을 경우 징계위원회에 징계심의를 청구해야 한다. 권익위는 이번 조사 결과에서 ‘표절 검사’ 5명에 대한 신분상 조치로 “법무부가 대검찰청에 사건 내용을 송부했다”고 밝혔다. 셜록은 대검찰청에 ‘표절 검사’ 5명에 대한 감찰과 징계 여부에 대해 물었다. 대검찰청은 지난 2일 “비공개 대상인 감찰에 대한 사안으로 외부에 공개될 경우 감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어 답변이 어렵다”고 답했다. 셜록은 또 다른 ‘표절 검사’들을 찾기 위한 정보공개 소송도 이어가고 있다.(관련기사 : https://www.neosherlock.com/ar...) 1심 법원은 지난 3월, 국외훈련 검사들의 학위 취득 현황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와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정보에 대한 공개 청구는 기각했다. 셜록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표절 검사’들을 향한 셜록의 ‘혈세 환수 대작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징계가 이뤄지는지 끝까지 감시하고, 또 다른 ‘표절 검사’들에 대한 추적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사법개혁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