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결론은 ‘무혐의’였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이 최근 이런 결론을 내렸다. 현행법상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 배우자를 처벌할 조항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법적으로 영부인은 공직자로 볼 수 없기에 처벌하지 못한다는 소리. 하지만 공직자도 아닌 영부인이 정부 예산을 쓰는 정책 사업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면? 명품가방을 받을 때는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이고, 환경부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는 또 민간인이 아닌 영부인이 되는 건가.
지난 6월 10일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씨. 그의 손에는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에코백이 들려 있었다.
‘바이바이 플라스틱 백(Bye Bye Plastic bags)’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던 에코백. ‘바이바이플라스틱(Bye Bye Plastic)’은 지난해 6월 환경부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한 캠페인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 에코백에 그려진 강아지 도안이 영부인 김건희 씨의 뜻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환경부는 셜록의 질의에 “(김건희) 여사가 강아지 도안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답변했다. 환경부의 강아지 도안 제작은 기획안 한 장도 없이 진행됐다.
이 강아지는 대통령 부부가 키우는 퍼스트 도그 ‘새롬이’를 빼닮았다. ‘새롬이’는 은퇴 안내견으로 2022년 12월 윤 대통령 부부에게 입양됐다.
환경부는 지난해 6월 시작한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을, 8월부터 범국민 실천 운동으로 확대했다. 17개 광역 지자체에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티셔츠를 18장씩 나눠주며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부된 티셔츠는 캠페인 취지를 살린 폐페트병 소재 티셔츠가 아닌 일반 면 소재 티셔츠였다.
셜록은 지자체별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결과보고서를 확인했다. 한 지자체가 올린 결과보고서는 6쪽의 분량을 오직 사진 11장으로만 채웠다. 사무실 내 다회용 컵 사용 사진,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업소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은 사진 등을 중복해서 보여줄 뿐이었다.
심지어 해당 지자체는 다회용기 업소 이용을 인증한다면서, 중국음식점에서 탕수육과 군만두를 먹는 사진을 첨부해 놓았다. 사진에는 술이 채워진 소줏잔도 함께 등장했다.
다른 지자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다른 지자체의 담당자는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티셔츠 근황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티셔츠 20벌 정도가 (환경부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그거(티셔츠)를 시장님이 입어도 되고 안 입어도 되고 그런 부분도 있지만은 우리 시장님은 안 입으시더라고요. (…) (티셔츠가) 그대로 있습니다 박스 안에.”(2024. 7. 2. 전화 인터뷰)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환경부의 정책 캠페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는 거기에 ‘강아지 도안’을 그려넣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렇게 진행된 캠페인은 어이없는 ‘중국집 인증샷’만을 남겼다.
결국 ‘또’ 대통령 부부의 자화자찬식 자기 홍보에 국가의 예산이 쓰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사건이 작년에 있었다.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윤 대통령 부부 모습이 담긴 색칠놀이 도안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한 사실이 알려져 ‘대통령 우상화 교육’ 논란이 불거졌다. 이 사실을 SNS에 최초로 공개한 시민단체 대표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를 당하며 논란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커졌다.(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이때 ‘색칠놀이’에 사용된 도안이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도안과도 연결된다.
논란이 됐던 색칠놀이 도안은 윤 대통령 부부가 2022년 12월 안내견 학교에서 리트리버 강아지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이날 은퇴 안내견 ‘새롬이’를 입양했다.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티셔츠에 도안으로 활용된 강아지와 꼭 닮았다.
강아지 도안뿐만 아니라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의 출발 자체가 김건희 씨의 뜻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환경부가 국내에서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을 시작한 시기 때문이다.
김 씨는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청년 환경운동가 위즌 자매를 만났다. 그들은 청소년 시절 환경단체 ‘바이바이 플라스틱백(Bye Bye Plastic Bags)’을 설립해 발리에서 비닐봉지를 없애는 운동을 펼쳐왔다. 위즌 자매의 노력 끝에, 현재 발리에서는 비닐봉지와 빨대, 스티로폼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당시 위즌 자매는 재활용 소재로 가방 및 패션 소품 등을 제작하는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영부인 김건희 씨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7개월 후, 환경부는 유엔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에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출범식을 개최했다.
출범식 날도 영부인 김건희 씨가 등장했다. 김건희 씨는 대학교 환경동아리 대학생들과 함께 폐페트병을 활용해 제작한 티셔츠를 입었다. 퍼스트 도그 ‘새롬이’를 빼닮은 강아지가 티셔츠에 그려져 있었다. 이날 퍼스트 도그 ‘새롬이’도 김건희 씨와 함께 자리했다.
공무원 해외 출장 내역을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는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https://btis.mpm.go.kr)을 살펴봤다. 하지만 출범식이 열린 2023년 6월을 기준으로 1년 안에, 환경부 공무원들이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을 위해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다녀온 기록은 없었다.
김건희 씨는 해외순방 등 공적 활동 당시 바이바이플라스틱 에코백과 티셔츠를 여러 차례 활용하며, 친환경적 이미지를 홍보했다.
김건희 씨는 강릉 경포해변 정화 활동(2023. 7. 3.) 때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같은 날 김건희 씨는 이 티셔츠를 입은 채 강릉 중앙·성남시장도 방문했다.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제인 구달 박사를 만났을 때(2023. 7. 7.)도 김건희 씨는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에코백을 들고 등장했다. 이날도 역시 퍼스트 도그 ‘새롬이’가 함께 자리했다.
영부인 김건희 씨는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티셔츠를 제인 구달 박사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용산어린이정원 내 ‘어린이 환경·생태교육관’에는 이날 찍은 제인 구달 박사와 김건희 씨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관련기사 : <마당엔 윤석열 실내엔 김건희… 1년만에 가본 용산정원>)
리투아니아·폴란드 순방길(2023. 7. 10.)에서도 김건희 씨는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에코백을 들고 나타났다. 폴란드 대통령 배우자와 친교 만남(2023. 7. 13.)에서는 강아지 도안이 그려진 에코백을 선물로 전달하기도 했다.
셜록은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예산 내역을 알아봤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경기 안양시만안구, 더불어민주당)의 도움을 받았다.
환경부가 강득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출범식 및 실천운동 홍보물은 자원순환정책 통합 홍보 사업을 통해 추진됐다. 2023년 자원순환정책 광고‧홍보 대행 예산은 약 5억 4천만 원.
이중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 홍보를 위한 15편의 TV 광고 및 유튜브 영상 제작(1억 8887만 원) 등에 총 2억 8000만 원가량이 사용됐다.
특히, 캠페인 출범식(2023. 6. 5.)에 사용된 비용은 약 9660만 원. 캠페인 출범식용 티셔츠 구매 비용만 약 700만 원을 썼다. 티셔츠 한 장에 4만 1500원꼴. 환경부는 ‘블랙야크’에서 폐페트병을 활용해 만들어진 티셔츠 175장을 구매해 바이바이플라스틱 캠페인용 티셔츠를 제작했다.
환경부는 강아지 도안 티셔츠 제작 경위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BBPB(Bye Bye Plastic Bags) 캠페인에서 영감을 얻어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기 위해 친근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제작했다”고 밝히면서도, “(강아지 도안 티셔츠 제작을 위한) 별도 기획안은 없다“고 설명했다.
셜록은 바이바이플라스틱 티셔츠의 강아지 도안이 퍼스트 도그 ‘새롬이’를 모티브로 제작된 건지 환경부에 추가로 질의했다. 환경부는 지난 19일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평소 환경 문제와 동물복지 등에 관심이 많은 (김건희) 여사가 강아지 도안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전문작가의 재능기부를 통해 제작되었으며, 도안은 재능기부를 통해 제작되었으므로 지출된 예산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환경부는 강아지 도안이 영부인 김건희 씨의 뜻에 따른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이희호 여사, 김윤옥 여사, 김정숙 여사 등 역대 영부인들과 심지어 미쉘 오바마, 펑리위안 등 해외 영부인들의 활동을 함께 언급하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강득구 의원은 “환경부의 바이바이 플라스틱 사업은 김건희 여사가 국정에 관여한 증거”라며 “김 여사가 대통령실을 통해 정부 정책사업에 실제로 개입했음에도 명품백 수수가 직무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한 것은 전혀 현실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코멘트
3국정운영이 가족사업은 아닌데, 해명하는게 당당해서 이렇게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따로 있는건지 헷갈리네요.
이런 일이 하도 많이 일어나니 이제 무뎌지는 기분이네요. 공무원들이 제출한 서류 속 사진만 봐도 '위에서 시키니까 한 일'이라는 게 눈에 보입니다. 그들에겐 몇 푼 안 되는 돈이겠지만 다 시민들이 낸 세금인데 이렇게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네요.
몇 백만원짜리 사업을 해도 시안을 제출하는게 정부 사업인데...한숨만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