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불법촬영 피해자에게 “아줌마가 뭘 그러냐” [회사에 괴물이 산다 7화]
[지난 이야기] 김한솔(가명) 씨는 회사 여자화장실에서 불법촬영 피해를 입는다. 범인은 한솔 씨가 살뜰히 챙기던 ‘직속후배’ A.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던 한솔 씨에게 회사는 범인 A의 업무까지 떠넘기고, 휴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범죄 피해 현장에서 멀어지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의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솔 씨는 당시 불안, 불면, 배뇨불안 등 신체적·정신적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 그런 걱정이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아직 학교도 다니는데 혹시나 엄마가 정신병원 다니는 게 알려져서 마이너스로 작용하면 어떡하지, 싶어서 증상이 심할 때만 잠깐 병원 가서 수면제 처방받고… 그냥 버텼어요.” 심리적인 장벽이었다. ‘정신력이 약해서 정신과를 다닌다’는 손가락질과, ‘정신병원은 미친 사람들만 가는 데 아니야?’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솔 씨는 꾸준히 치료를 받는 대신,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간헐적으로 수면유도제만 처방받으며 견뎠다. “이사장님, 잠깐이라도 다른 사업소에 보내주시면 안 됩니까? 산에서 산토끼 똥을 치우라고 하면 치울 거고, (군립공원) 입장 티켓을 팔라고 하면 팔겠습니다. 시켜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하다가 여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근데 지금은 잠깐이라도 떠나 있고 싶습니다. 자꾸 그날 일이 생각납니다. 그 뒤로 화장실에 불을 켜고 갈 수가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회사의 최고 책임자인 이사장까지 찾아갔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A를 향한 배신감보다, 휴가도 전보도 안 된다고만 하는 회사를 향한 분노가 조금씩 더 크게 자라났다. 사건이 발생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한솔 씨는 약 열 번이나 전보를 요청했다. 특히 이사장이 교체되던 해인 2021년에 요청이 집중됐다. 전임 이사장에게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신임 이사장에게 인계하고 갈 테니 조금만 버텨달라”고 했다. 그해 11월 신임 이사장이 부임하자, 한솔 씨는 그에게 희망을 걸었다. “업무 파악이 되지 않아서 전보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네요.” 떠나갈 사람은 떠나갈 사람이라서, 새로 온 사람은 일을 잘 몰라서. 결국 안 된다는 말은 똑같았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회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직장 내 불법촬영 성범죄 사건 이후 남아 있던 문제들. 한솔 씨는 그 문제를 열심히 가리키며 얘기했지만, 회사는 되레 그런 한솔 씨를 가리키며 ‘문제’로 여긴 거였다. 계속 거부당하면서도 한솔 씨는 계속 전보를 요청했다. 그만큼 절실했고, 그만큼 위태로웠다. 그에게 2021년은 ‘이러다가 진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였다. 약을 안 먹으면 잠들 수 없고, 약에 취해 잠들면 악몽이 따라왔다. 해맑게 웃던 얼굴이 조금씩 음흉한 낯빛으로 변하는 A를 마주하거나, 뭔가로부터 도망치고 피해 다니는 꿈을 꿨다. 수면을 방해한 건 또 있었다. 한솔 씨는 ‘사건’ 이후로 집 밖에서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았다. 방광염이 생겼다. 참다 못해 화장실을 찾는 경우에는 깜깜하게 불을 끄고 들어갔다. 혹시나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을지 모르니,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밖에서는 화장실을 못 가는 게 문제였다면, 집에서는 너무 자주 가는 게 문제였다. 집을 벗어나면 또 화장실을 못 갈 거란 불안 때문일까. 집에서는 조금이라도 요의가 느껴지면 참을 수 없었다. 자다가도 자꾸 깨어나 화장실을 찾았다. 불안이 일상을 압도했다. 한계. 한솔 씨는 자신의 삶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몰려 있단 걸 알았다. 이대로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결국 2021년부터 정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됐다. 간헐적으로 수면제만 처방받아온 지 2년이나 지나서였다. 한솔 씨는 정신과 진단서를 가지고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다. “아니, 암이 걸린 것도 아니고, 팔다리가 부러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할 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병가 신청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거 아이가?” 반전은 없었다. 회사는 완고했다. 한솔 씨가 느끼는 고통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참혹한 심정이었다. “그때 진짜 직장을 떠나야 하나, 고민을 무척 많이 했어요. 계속 벽에 부딪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참고 버틴 건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죠.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되는데, 남편한테 외벌이 맡길 수는 없잖아요. 또, 마흔도 넘긴 나이에 전문직에만 있었으니까 나가면 경력단절이죠, 뭐. 내가 다른 데 어디를 또 갈 수 있겠어요?”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동안에도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었다. 요령 없이 참고 견딜 뿐이었다. 그러다 보면 볕 들 날 올 거라고 간절히 믿는 수밖에 없었다. 신앙의 힘을 빌려 겨우 마음을 지탱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고해성사도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면 또 용서 못하는 제 자신 때문에 너무 괴로워져요. 결국에는 자책이에요, 자책.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다고 하는데 왜 나만 그럴까, 회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만 계속 조직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회사에는 직원고충상담센터가 있었다. 한솔 씨는 지난해 2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신고글을 올렸다. 그런데 상담센터 위원들 중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4년간 한솔 씨가 휴가나 전보를 요구할 때마다 완강히 거부했던 관리자가 속해 있었다. 결국 한솔 씨는 자신의 신고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회사가 그의 말을 들어줄 거라는 일말의 기대도 사라졌다. 한솔 씨는 그때부터 자살을 떠올렸다. “직원들끼리는 속된 말로 ‘가둬놓고 직인다(죽인다)’고 했어요.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요구하는 게 그렇게 부당하고 힘든 요구였나.” 그 사이 회사에서 전보나 병가를 승인해준 일이 한 번도 없었던 게 아니다.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여섯 명이 전보발령·휴직·병가를 승인받았다는 사실이 기관 인사발령사항 공문을 통해 확인된다. 다만 이상하게도 한솔 씨는 그 장벽을 넘지 못했을 뿐이다. “계속 막연하게 희망을 품었던 거죠. 조금씩 나아지겠지, 이 순간을 참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요. 끝까지 현장에 있다가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었으니까, 그 꿈을 접기 힘들어서 계속 버텼던 것 같아요.” 불법촬영 사건이 일어나기 전, 한솔 씨는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제출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이어갈 여력이 없었다. 지금껏 가슴속에 품고 있던 꿈도 놔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진짜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죽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지난해 9월 한솔 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하루에 더 많은 약을 삼켜내야 했다. 귀에는 쿵쿵대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아린 통증도 동반됐다. 병원에서 검사도 받았지만 이상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한솔 씨는 무너지고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해하거나 괴롭히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쳤었는데, 이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결심을 당장 멈추고 싶지만, 나의 아픔을 외면한 채 눈과 귀를 닫고 병가도 반려하고, 휴직도 반려한 이사장과 팀장들, 인사팀의 카르텔에 대응할 방법도 없고,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는 지금, 더 버틸 힘이 없습니다. 다만 다시는 이런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산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10월 쓴 유서 일부) 모든 일이 시작된 회사 여자 화장실. 그곳에서 죽음을 맞겠다고. 유서를 품에 넣은 채 약을 한 움큼 털어넣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면 회사도 내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걸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진단서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음’ 이렇게라도 명시를 했어야 하나?” “저번에(어제) 운동 가서 산에서 그냥 돌아오지 않으면 이 심각성을 좀 알려나?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죽어야 끝이 나는 걸까?” (2023년 업무수첩에 남긴 메모 일부) 한솔 씨를 다시 살게 만든 건 가족들이었다. 가슴에 묻어야 할 상처,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을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진 않았다. 대신 한솔 씨는 퇴사를 결심했다. 17년간 다니던 회사. 그렇게라도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지난 2월 지역의 노동 활동가들을 만날 자리가 있었다. 한솔 씨네 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길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솔 씨 퇴사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한솔 씨) 연차에 퇴직한다는 게 흔치 않은데,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으셨던 건 아니죠? 왜 퇴사하시려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터닝포인트. 그 한마디에 사건의 새로운 막이 열렸다. 한솔 씨를 가로막은 거대한 장벽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젠더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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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여자화장실에 카메라가… 범인은 ‘김 대리’였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6화]
“과장님! 저희 어떡해요? 화장실 변기에… 카메라가 있어요!” 다급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사무실로 뛰어 들어온 인턴 사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김한솔(가명, 여) 씨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의 손이 파들거렸다. 한솔 씨는 손을 맞잡고 화장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세면대 하나, 그리고 커튼 뒤로 놓은 변기 하나가 전부인 단출한 화장실. 자세를 낮춰 변기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비데 노즐 옆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변좌를 들어올리니 그 실체가 드러났다. 악취 나는 화장실에 그보다 더 구린 것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초소형 카메라 렌즈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매일같이 화장실 가도 변기(변좌) 아래를 들여다볼 일이 있겠어요?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데, 그날은 날짜도 못 잊어요.” 2019년 1월 29일. 한솔 씨는 지금도 카메라를 목격한 순간을 떠올리면 털이 쭈뼛 선다. 사무실 여자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카메라가 발견됐다. 매일같이 화장실을 오가던 여직원들은 사색이 됐다. 은밀한 신체가 촬영됐다는 수치심, 영상들이 어디선가 공유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무엇보다 범인이 자신들과 동고동락하던 동료일지 모른다는 공포에 압도됐다. 함께 밥을 먹던 유 대리일까. 눈을 마주칠 때면 미소 짓던 한 차장일까. 별 이유 없이 꾸중만 하던 백 부장일 수도 있고, 퇴근 후 가끔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성 대리일 수도 있다. 회사 안에 ‘몰카범’이 있다니…. 피해자들은 인두겁을 쓴 끔찍한 괴물 앞에서 미련하게 웃고만 있었을 ‘나’를 자책했다. 왜 카메라를 진작 발견하지 못했을까. 왜 그 괴물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괴물을 향한 분노의 화살은 피해자들의 가슴에 자책으로 돌아와 박혔다. 한솔 씨는 우는 여직원들을 달랬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 또한 불법촬영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후배 동료들을 다독여야 하는 과장이기도 했다. 공포에 질려 손발이 떨려도 당장 챙겨야 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동료들을 달래며 경찰에 신고했다. “누가 신고했어! 이게 신고할 일이에요?” 이내 불호령이 떨어졌다. 관리자들은 인상을 팍 구겼다. 한솔 씨가 다니는 회사는 경남의 한 지방공기업. 회사는 가장 먼저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함구령’. 사건이 회사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범인을 색출하기보다 오히려 경찰에 ‘누설’한 이를 몰아세웠다. 공공기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오겠냐는 식. 겁에 질린 여직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공기업으로서 회사의 명성과 ‘윗사람’들의 안위만을 걱정했다. “나중에 경찰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카메라 용량이 작으니까 주기적으로 백업하고, (다시 카메라를) 갖다두면서 녹화했다고.” 경찰 조사 결과, 한솔 씨는 불법촬영 피해자로 특정됐다. 촬영 기간에 그가 당직 섰던 날이 포함돼 있었다. 그날 출근한 여직원은 한솔 씨가 유일했으니, 이는 곧 그날 촬영물에는 오직 한솔 씨의 모습만이 찍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도 없이 드나들던 화장실이란 곳이, 바라보기도 힘들 만큼 두려운 장소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끔찍한 기억은 차라리 어둠 속에 밀어넣어야 했다. 한솔 씨는 그날 이후 공중화장실 불을 켤 수 없었다. ‘혹시나’ 또 불법촬영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에, 화장실을 깜깜하게 해두고 사용해야 했다. 한솔 씨는 2007년 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2011년 7월 발령받은 사무소에서 ‘직속후배’ A(남)를 만났다. 동문을 만나기 어려운 사회에서,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 출신이라는 점만으로도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한솔 씨는 A를 살뜰히 챙겼다. 다른 기관 직원들을 만날 때면 A를 동행해 소개했고, 그의 아이들에게 입힐 옷을 물려주기도 했다. 그 각별한 후배는 ‘그 사건’ 이후로 종적을 감췄다. “A는 화장실에서 카메라가 발견된 날부터 못 만났어요. 보통 11시 50분 되면 오전 업무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그날은 안 오더라고요. 퇴근 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는 게 의아하기는 했는데, 당시에는 (불법촬영) 카메라가 나왔다는 것만으로 충격이 너무 크니까… 그냥 다른 생각은 못했죠.” ‘그 사건’이 터진 순간부터 갑자기 얼굴을 비치지 않던 A. 당시 회사에서는 오후 6시 이후 순환당직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는 홀로 당직을 서는 날 여자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한솔 씨가 살뜰히 챙기던 직속후배 A가, 범인이었다. ‘A가 나를 보고 짓던 미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언제부터 촬영됐을지 모를 영상에 내 모습은 얼마나 등장할까. 혹시 사무실 직원들끼리 영상을 공유한 건 아닐까. 촬영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놈을 살뜰하게 챙기던 나를 보면서, 그놈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시 여자화장실을 이용하던 직원들과 소형 카메라를 목격한 직원까지 총 9명이 경찰서에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경찰은 “영상이 공유되고 불법 사이트에 업로드된 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한솔 씨는 믿지 못했다. 그 영상들은 그저 ‘혼자 보기 위해’ 촬영된 걸까. 정말 그 영상들을 혼자 가지고만 있었을까. 수사의 한계는 아닐까. 그러나 경찰은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유포는 없었다고. “몰래카메라 범죄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피해자에 대한 낙인효과의 심각성이 높아서 유포와 배포가 자유로워 온라인 공간의 불특정 다수에게 포르노로 소비될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피해자는 일상적 생활이 어려워진다.” (김은지, 「불법촬영범죄에서 온정적 성차별주의와 노출수준 및 관계유형에 따른 피해자 비난과 처벌판단」, 대구가톨릭대학교대학원, 2020년) A는 그날부터 종적을 감췄고, 회사의 바람대로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돼갔다.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았고, 직원들끼리도 언급을 금기시했다. 그 침묵이 피해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약 130명에 달하는 직원들 중 “성비는 8:2 정도”로 남성이 훨씬 많았다. 한솔 씨는 생각했다. 그래서 ‘여직원’들이 느낄 공포나 수치심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한솔 씨는 여성 관리자인 B를 찾아갔다. 그동안 특별한 교류는 없던 사람이지만, 그래도 여성 피해자들의 심정에 공감해줄 수 있는 상사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카메라가 설치된 화장실을 사용하던 불법촬영 피해자니까. “범인이 매일같이 마주치던 같은 부서 직원이잖아요. 다들 충격이 큰데, 여직원들 3일 정도라도 휴가를 좀 다녀올 수는 없을까요?” 긴장 때문에 한솔 씨 손이 떨렸다. 그 손으로 B의 손을 붙잡으며 부탁했다. 절실한 심정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B의 반응은 냉담했다. 다른 여직원들의 휴가는 인정해도 한솔 씨에겐 휴가를 줄 수 없다는 것. 이유는 황당했다. 첫째는 회사에서 사라진 범인 A의 업무를 맡을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그리고 둘째는 한솔 씨가 ‘아줌마’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솔 씨는 40대 중반이었다. ‘아줌마가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는 말. 모욕감을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의 신체가 누군가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충격은 피해여성 누구에게나 같았다. ‘아줌마’라서 견뎌야 하는 것도, 견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상심은 더 컸다. 각별한 후배였던 A에 대한 배신감은 불면, 그리고 악몽으로 이어졌다. 벌겋게 충혈된 눈을 감으면 A의 불쾌한 미소가 떠올랐고, 또 그놈의 더러운 카메라에 노출됐을 제 몸이 떠올랐다. 회사는 ‘피해자’인 한솔 씨를 외면했다. 그 경험은 한솔 씨의 행동까지 지배했다.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는 가족들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여직원들이 3일간 휴가를 다녀오는 동안, 한솔 씨의 업무는 더 쌓여갔다. 회사는 피해자 한솔 씨에게 가해자 A의 업무를 떠넘겼다. 당장 일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 한솔 씨는 휴가는커녕 야근에 허덕였다. 사건 발생 바로 다음 달인 2월 한 달간, 그가 초과노동을 한 날은 휴일근무를 포함해 11일이나 됐다. 특히 한솔 씨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2인 1조로 움직이는 일이었다. 외부 시설물을 관리하는 동안 남성 직원과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단둘이 차를 타고 이동했고, 시설물을 둘러보는 일, 끼니를 때우는 일 역시 함께했다. 물론 그들은 불법촬영 사건의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한번 무너진 동료에 대한 신뢰는 단숨에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즉 남녀고용평등법은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해야 한다(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2항). 또한, 조사 기간 동안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피해자에 대해 근무 장소의 변경, 유급 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제3항). 그러나 회사는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고, 피해자 보호조치가 필요한 시기에 한솔 씨를 피해 현장으로 여전히 출근하게 했다. 한솔 씨는 사건 발생 4일 만에 휴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는 휴가를 주는 대신 가해자의 업무까지 이중으로 맡겼다. 피해자 한솔 씨에게 사무실은 범인과 함께 있던 공간, 화장실은 ‘범죄’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멀어지지 못하고 매일같이 출근해야 한다는 건, 한솔 씨에게 큰 고통이었다. 사무실에서 떨어져 있기라도 해야 그 끔찍한 기억을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보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회사 안에서 두드려볼 수 있는 창구는 모두 찾아갔다. 면담을 요청하고, 자신이 느낀 모멸감과 절박한 심정을 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몸처럼 움직였다. 소문이 새어나갈 것을 우려하며 입단속하고, 대체인력이 없다거나 결정 권한이 없다는 식의 답변만 늘어놨다. 서로 다른 변명으로 한솔 씨의 호소를 외면했다. 그 즈음이었다. 난생 처음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아간 게.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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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빈 세 번째 기일… ‘대한민국’의 자리는 여기 없다 [대한민국 ‘생존비’ 청구소송 5화]
추위에 떠는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떨리는 그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줄은. “구조 요청! 혼자 있어, 혼자. 엄청 추워요. 주마(등강기)가 필요해, 주마. 주마 두 개 정도 필요해.” (2021. 7. 19. 김홍빈 대장 마지막 구조요청) 한 방송국은 김홍빈 대장의 등반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김홍빈 원정대의 도전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김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이다. 하지만 김 대장은 하산길에 찾아온 불행을 막지 못했다. 2021년 7월 19일, 그는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 중 실종됐다. 김 대장과 함께했던 원정대원들은 그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다. 원정대는 함께 식사할 때 사용하던 알루미늄 접시로 김 대장을 위한 추모판을 만들었다. 김 대장과 한솥밥을 나눠 먹던 그 접시다. 추모판에 “김홍빈 Broad Peak에 영원히 잠들다”라는 문구를 새겼다. 김 대장을 브로드피크에 남겨두고 떠나지만, 그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원정대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K2 추모탑(k2 Memorial)에 추모판을 설치했다. 밥도 지어 올렸다. 한 대원은 절을 올리며, 절규에 가까운 통곡을 했다. 지난 13일 진행된 ‘고(故) 김홍빈 대장 3주기 추념식’에서 이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추념식에서 상영된 영상 ‘故 김홍빈 대장의 삶’에선, 김 대장의 마지막 등반 모습과 함께 떠났던 대원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영상 속 김홍빈 원정대의 울음소리가 추념식이 열린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3년 전인 2021년 7월 18일. 김 대장이 ‘최초’의 기록을 만든 그날. 기자 역시 TV에서 김홍빈 원정대의 소식을 접했다. 원정대는 브로드피크 등반을 통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돼주고 싶다”고 약속했다. 김 대장이 브로드피크 등정에 성공했을 때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로 신문과 방송에서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분위기는 뒤집혔다. 뉴스는 그의 실종 사실로 도배됐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김 대장의 무사귀환을 기원했지만, 그 염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대장은 결국 히말라야에서 잠들었다. 기자가 기억하는 김 대장 소식도 거기서 끝이었다. 김 대장의 실종을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그쯤에서 잊고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원정대에게 닥칠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도 동상을 입어보고, 주변에는 (등산하다 동상으로) 손가락 잘린 후배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홍빈이 손은 보기가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 아직도 홍빈이 카톡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활짝 웃고 찍은 사진이 앞에 (카톡 프로필) 표지로 돼 있습니다. 그걸 지금도 한번씩 들여다봅니다.” (산악인 최○○, 2024. 7. 13. 김홍빈 3주기 추념식) 김홍빈 대장의 마지막 원정으로부터 2년 뒤인 지난해 7월. 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故 김홍빈 대장 구조비 소송.. 정부, 승소하고도 항소” 내용은 이랬다. 원고 대한민국이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비용을 내놓으라며 김홍빈 원정대를 상대로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대한민국이 청구한 구조비용만 약 6800만 원. 김홍빈 대장을 살리지도 못한 실패한 구조작전 비용을, 생사의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원정대원들에게 고스란히 지운 상황. 1심 법원은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원들에게 비용 일부(약 3600만 원)를 나눠서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원고 대한민국은 구조비용 전액을 돌려받아야 한다며 지난해 7월 항소했다. 기자의 머리를 스치는 의문은 한 가지였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건 당연한 책임인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가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구조비 청구 소송을 다룬 많은 기사들 사이에, 한 가지 없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바로 원정대원들의 목소리.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들어야만 했다. 김홍빈 원정대의 시작과 끝을 모두 지켜본 목격자들이자, 원고 대한민국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당사자들이니까. 이들만이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 길로 원정대원들부터 찾아 나섰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에서 시작된 사건을 취재하는 건 역시 쉽지 않았다. 광주광역시산악연맹도, 유가족도 기자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지쳐 보였다. 한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시작된 구조비 소송. 정부 측을 비판하는 국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여유는 사라지고 경계만 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대장의 이름 뒤에 ‘구조비용’이란 단어가 따라붙는 상황 자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거라 짐작한다. 그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됐지만, 그래서 더욱 기사를 써야만 했다. 유가족과 산악연맹, 그리고 피고 당사자들까지 모두 말을 아끼고 몸을 사리게 만든 건 모두 ‘소송’ 때문이니까. 그리고 그 소송을 제기한 대한민국 때문이니까. 또 다른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선 김홍빈 원정대의 소송을 선례로 남겨선 안 된다는 목표가 생겼다. 오랜 취재와 설득 끝에, 지난 6월 첫 보도를 시작했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항소심 결심재판을 앞두곤, “원고 대한민국의 소송비용 청구를 기각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도 직접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셜록 보도 이후, 일명 ‘김홍빈 대장법’도 발의됐다. 지난달 10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광주 광산구을)은 국민이 국위선양을 하다가 해외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국가의 비용 부담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영사조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산을 보면 김홍빈 대장님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영원히 산이 됐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 김 대장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구상권과 관련된 소송이 조금 문제가 있는 상태입니다. (일명 ‘김홍빈 대장법’을) 민형배 의원님이 대표로 발의하시고 저는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려서, 제도적인 부분에서 재발을 방지하는 일을 국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024. 7. 13. 김홍빈 3주기 추념식) 지난 토요일(13일)에 광주에서 열린 김홍빈 대장 3주기 추념식도 다녀왔다. 이날 추념식에서, 김 대장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던 김홍빈 원정대 대원 세 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정인복(가명), 유현철(가명), 정민식(가명)이다. 2021년 사고 당시엔 코로나19 격리 방침에 따라 김 대장의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했던 그들이다. “(실종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김홍빈 대장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까지도 말입니다.” (산악인 정인복 2024. 3. 19. 인터뷰) 원정대원들은 추념식 날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모든 참석자들이 다 떠난 뒤에도 이들은 체육관에 머물렀다. 김홍빈 대장과 함께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례식에도 오지 못했다는 한이 남아서일까. 그들은 마치 스스로를 상주(喪主)로 여기는 듯했다. 김 대장의 얼굴이 실린 현수막도, 그의 업적이 기록된 책자도 이들이 직접 나서 손수 정리했다. 김 대장의 마지막 순간을 추모판에 기록했던 것처럼, 추념식의 마지막 뒷정리도 모두 이들 손에 의해 이뤄졌다. 김홍빈 대장에게 훈장을 주고, ‘스포츠 영웅’으로 헌액하고, 현충원에 위패를 봉안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갔을까. 어째서 지금은 김홍빈 대장을 잃은 원정대원들에게 구조비용을 물어내라는 대한민국만 남아 있는 걸까. 추념식 현장, 김홍빈 대장의 얼굴 앞에 걸린 태극기가 괜시리 원망스럽다. 김홍빈 대장도 잃고 구조비용 수천만 원도 짊어진 원정대원들. 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 동료를 잃은 슬픔조차 회복하지 못한 이들에게…. 오늘(19일)은 김홍빈 대장의 세 번째 기일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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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번의 ‘진심’… 씁쓸함과 온기가 교차한 그날 대법원 [이시우, 향년 12세 6화]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로 살다보면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재판 있을 때마다 찾아와줘서 감사해요, 기자님.” 그러면 나는 “회사에서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 덕분”이라며 겸손하게 답하는 식이었다. 일주일 전 대법원에 갔을 때는 김정빈(가명) 씨가 내 손을 맞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자긍심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느껴졌다. 정빈 씨 손을 잡고 “어머님께서 고생 많으셨다, 다음 재판에 또 오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시우, 향년 12세’ 프로젝트는 제보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2월 계모와 친부의 학대와 방임으로 열두 살 시우가 숨을 거둔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 안타까운 죽음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사건 발생 이후 약 반년 동안 무려 650여 건(네이버 기준)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정치권도 움직였다. 국회는 사건 이후 반년 사이 4개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런 관심이라면 이제라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안전한 울타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내가 이시우 군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한 때는, 시우의 1주기 기일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언론의 뜨거운 취재 열기도, 정치권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라는 시우의 친모 김정빈(가명) 씨의 말. 그의 곁에는 소수의 그 지인들만 남아 그를 지키고 있었다. 아직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도, 어딘가에서 학대받고 있을 또 다른 아이들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채로.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피해자는 영유아가 많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3년간(2020~2022년) 아동학대로 사망에 이른 아동 총 133명 중 102명이 영유아였다. 그에 반해 시우는 열두 살이었다. 이웃 주민,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그 고통을 털어놓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시우는 주변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고통을 감내했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도 숨죽여 아파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도 세상에는 괜찮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시우를 ‘계모로부터 학대당하다 사망한 안타까운 초등학생’이 아닌, ‘우리 사회에 아동권리의 경종을 울린 고마운 아이’로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도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정빈 씨를 만난 지난 1월 31일. 그의 곁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다섯 명의 시민들이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온라인 카페를 통해 맺은 인연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서울고등법원 정문에 모여 피켓을 들었다. 시우 사진이 프린트된 판넬에는 ‘부디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부탁드린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추위에 손끝이 붉어지도록 서 있던 이들은 한 시간가량 시위를 마치고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언 손을 녹였다.(관련기사 : ‘향년 12세’ 시우의 첫번째 기일… 엄마는 법원 앞에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7월 11일에도 정빈 씨 곁을 지켰다. 그날 법정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빈 자리도 몇 군데 남지 않았고, 인파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지난해 이시우 군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으니 그만큼 기자들도 대법원의 판결에 관심을 가지리라 생각했다. 그들보다 기사를 잘 쓰고 싶다는 긴장감도 생겼다. 순간 법정에 환호성이 일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9년간 법적 다툼을 이어오던 노동자들이 승리한 것. 이들은 부둥켜안고, 밝은 표정으로 법정을 나섰다. 그러자 썰물처럼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쓸려 나갔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사람들만 법정 안에 남았다. 정빈 씨는 방청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다가 맨 앞 줄로 이동했다. 정빈 씨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기도했다. 바라는 건 딱 하나. 가해자들이 다시 재판을 받게 하는 것. 앞선 항소심에서 계모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 친부에 대해 상습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열두 살의 나이에 고통스럽게 죽어간 시우 군을 떠올리면 천벌도 부족하다는 게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원심 판결 중 피고인 A(계모)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전향적인 판결이었다. 그동안 피고인들에게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 ‘아동학대살해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만 적용받았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아동학대살해죄 여부를 다시 다툴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A가 “지속적이고 중한 학대행위가 다시 가해질 경우 피해아동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내지 위험이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살해죄에서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판'이 뒤집혔다.(관련기사 : “살해의 미필적 고의 있다” 대법원, 시우군 사건 ‘반전’) 그 순간 정빈 씨는 힘이 빠졌는지 허리를 반쯤 굽혔다. 손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고 쉬지 않고 1인시위를 해온 지난날이 떠올랐을까. 한 번 더 가해자에게 죄를 물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시우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와 한 발짝 떨어진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섯 걸음쯤 내디딘 정빈 씨는 나와 눈이 맞주쳤다. 붉어진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다. 여태 표정을 지우고 울음을 참아내던 정빈 씨가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감정들을 이제야 쏟아냈다. 그는 그날 법정을 찾아준 이들과 모두 포옹을 나눴다. 정빈 씨가 다가가 손만 잡아도, 어떤 이는 눈물을 훔쳤다. 뭉클했다. 다만 부끄러웠던 건 재판이 시작하기 전에 걸었던 기대 때문이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던 인파들. 그 틈에 나 말고도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대법원 선고를 취재하러 온 기자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빈 씨도 그런 기대를 했을까. 예상은 빗나갔다. 기자는 나뿐이었다. 사건 초기 반년간 650여 건의 기사가 쏟아진 것을 기억한다. 그에 반해 대법원 판결 이후 일주일간 발행된 기사는 세 건에 불과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쓴 거다. 사건 초기 뜨거웠던 취재 열기는 금세 식어버리고 말았다.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열 명 남짓한 이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이들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다.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간 2월 19일부터 7월 11일까지 총 237건의 진정서, 엄벌진정서, 엄벌탄원서가 접수됐다. “시우가 내 아들과 동갑”이라서, “우리 아이 같아서”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손을 맞잡은 이들을 ‘나’라도 지켜주고 싶었다. 사건 이후 약 18개월이 지났지만 가해자에 대한 형사 재판은 진행 중이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소송 역시 진행 중이다. 겨울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29일간 등교하지 않았던 시우. 시우는 겨울방학이 끝나고 약 일주일 뒤 사망했다. 하지만 학교와 교육청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관련기사 : 아이가 죽고 ‘죄인’이 된 엄마, 국가에도 책임 묻는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돌아온 아이. 정빈 씨는 시우의 죽음 이후, 아이를 먼저 데려오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죄인이 된 엄마는 죽어서 시우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 ‘엄마가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기 위해 1인시위를 하고 법원을 찾아다닌다. 아이를 잃고 18개월이 지난 지금도 피 말리는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아동학대 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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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조치 했다고 새마을금고 면죄부? “엉뚱한 소리!”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18화]
감사원이 1500억 원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에 대해 행정안전부의 관리·감독 책임을 묻는 공익감사를 종결했다. 행안부가 ‘사후조치’를 했으니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반쪽 검토 결과”라며 감사원의 종결처리 결정을 규탄했다. 이들은 지난 4월 23일 감사원에 행안부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사채왕’ 김상욱(52) 일당의 1500억 원대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 대출이 발생했을 당시 행안부가 관리·감독 책임을 다했는지 조사해달라는 취지였다.(관련기사 : “사채왕 김상욱 하나에 휘둘리는 이게 나라입니까!”) 감사원은 감사 청구 취지에서 벗어난 답변을 내놨다. 감사원은 행안부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새마을금고중앙회 내규를 개정하는 등 사후조치를 했기 때문에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감사원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 이번 종결처리는 감사원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답변으로 행안부가 책임을 회피하도록 해준 것”이라며 “감사원은 시민사회가 제기한 사안에 대해 분명하게 감사를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그야말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1500억 원에 달하는 불법대출이 적발된 후에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발 방지 대책을 강화했다고 해서 그 전에 관리·감독의 부실로 인한 사건까지 책임이 면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참여연대 실행위원인 서성민 변호사도 “과거부터 있던 명확한 문제에 대해 관리・감독을 했는지 감사를 요청했는데, 감사원은 쟁점을 회피하는 식의 어이 없는 답변을 했다”고 비판했다. “종남이(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 ‘회장님(김상욱 본인 지칭) 새마을금고가 솔직히 규정이 어디 있습니까? 씨X. (대출) 나가면 다 나가는 거지.’” (2023. 6. 19. 김상욱 통화녹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의 통화 음성파일 900여 건을 입수했다. 음성파일에는 김상욱이 청구동새마을금고를 마치 자신의 ‘개인 금고’처럼 사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관련기사 : “청구동새마을금고는 사채왕 김상욱의 개인 금고다”) 김상욱은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 상무와 짜고 불법대출을 실행했다. 그 여파로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고 인근 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이들 일당은 피해자를 속여 명의를 빌린 뒤, 상가 매매를 담보로 최대한도의 대출을 받았다. 심지어 감정평가사를 미리 섭외해 부동산 담보 가치를 부풀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행안부는 1500억 원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발생한 뒤 2023년 10월 새마을금고중앙회 내규를 개정했다. 70억 원 이상 PF대출에 대해서 중앙회의 사전검토를 거치도록 했다. 감정가격 과다 평가 방지를 위해 온라인 탁상감정서비스를 도입했고, 특정 법인에 연간 30%를 초과해 감정평가를 맡길 수 없도록 조치했다. “1500억 원 불법대출 사건은 대부분 2023년 6월 이전에 발생했다. 이런 반쪽짜리 검토 결과로 이번 공익감사 청구사항을 종결처리 해버리는 것은 행안부에게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감사원 스스로도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다.”(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불법대출을 비롯한 새마을금고 관련 사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새마을금고와 행안부에 적절한 감사를 한 적은 없었다.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으로 다수의 금융소비자 피해가 발생했고, 심지어 비슷한 양상의 범죄가 전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드러난 중대한 상황에 대하여 이번에야말로 행안부에게 과거의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감사원의 종결처리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들은 “감사원이 자체적으로라도 시민사회가 요청한 감사청구 내용에 대해 왜곡이나 책임 회피 없이 분명하게 감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대출의 주범인 김상욱과 전종남은 지난 5월 23일 구속기소 됐다. 이들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김상욱은 “대출 과정에서 수수료만 일부 받았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고, 전종남 역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대출”이었다고 항변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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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의 미필적 고의 있다” 대법원, 시우군 사건 ‘반전’ [이시우, 향년 12세 5화]
“원심 판결 중 피고인 계모 A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11일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2심 법원에 돌려보냈다. 계모 A에게 적용되지 않았던 아동학대살해죄 인정 여부를 다시 다툴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지난해 2월 발생했다. 계모와 친부의 학대로 열두 살 시우가 죽었다. 계모는 알루미늄 봉과 플라스틱 옷걸이 등으로 장기간에 걸쳐 아이의 온몸을 수차례 때렸다. 그리고 약 16시간 가량 커튼 끈으로 책상 의자에 결박해놓기도 했다. 그날 새벽 통증으로 잠 못 자고 신음하던 시우는 이튿날 숨졌다. 사망 당시 시우의 체중은 고작 29.5kg. 초등학교 6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었지만, 몸무게는 초등학교 2학년 남아 평균(31kg)에도 못 미쳤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여러 둔력 손상’이었다. 시우의 머리, 몸통, 팔, 다리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었다. 200회 넘는 학대 흔적이 아이 몸에 남았지만,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정생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결과를 감내하면서까지 살인을 감행하였다고 볼 수 있으려면 그만큼 강렬한 범행 유발 동기가 존재하여야 한다. (…) 피고인(A)이 자신의 친자녀와 격리되어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을 돌보지 못하는 결과를 감수하면서 피해자(시우)를 살해할 만큼 피해자를 미워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인천지방법원 2023고합159 판결문) A가 시우를 죽여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았고, 시우의 사망 결과를 예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관련기사 : ‘향년 12세’ 시우의 첫번째 기일… 엄마는 법원 앞에 있다) 6개월 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A는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형이 선고됐다. “살인죄조차 적용되지 않는 재판 결과가 너무 암담해요. 시우가 불쌍해서 자꾸 눈물이 나는 거예요.” (김정빈 씨, 지난 2월 2일 항소심 선고 후)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매주 1인시위를 이어가던 김정빈 씨는 재판정을 나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가 바란 건 단 하나. 가해자들을 엄중 처벌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법원 앞에서도 피켓을 들었다. “재판장님, 이 세상 전부인 제 아들 이시우. 어디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은 제 인생의 유일한 이유이며 의미였고 희망이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제가 그 어떤 고통도 대신하고 싶습니다. 부디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부탁드립니다.” (피켓 내용 일부) 그녀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반전은 대법원에서 일어났다. 대법원은 지난 11일 A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은 “쟁점 공소사실 중 살해의 미필적 고의에 관한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A에 대한 아동학대’살해’죄를 다시 다툴 여지가 있다는 것. “학대행위가 지속·반복적으로 가하여진 경우 그로 인해 피해아동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어 생활기능의 장애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피해아동의 나이·발달정도나 취약해진 건간상태를 고려할 때 중한 학대행위를 다시 가할 경우 피해아동이 사망에 이를 위험이 있다고 인식 또는 예견 가능한 상황이었는지 (…) 범행 전후의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인에게 아동학대살해의 범의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 2024도2940 판결문) 아동의 경우 “골격이나 근육, 장기 등이 발달과정에 있어 손상에 취약하고, 심리적·인지적으로 미성숙하여 자신의 건강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보호자에 의존적인” 특성이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아동의 취약성을 고려하여 ‘미필적 고의’를 폭넓게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시우는 학대를 당할 무렵 일기장에 자살하겠다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재한 바 있다. 이는 당시 시우가 “신체적·정신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A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폭력을 가했다. 플라스틱 옷걸이, 선반받침용 봉으로 아동의 팔과 엉덩이를 때릴 뿐만 아니라, 연필이나 가위, 젓가락, 컴퍼스로 아동의 다리와 몸통을 200회 넘게 긁거나 찔렀다. 특히 사망하기 하루 전 A는 시우가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봤고, 심야에 통증으로 아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대로 방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A가 “지속적이고 중한 학대행위가 다시 가해질 경우 피해아동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내지 위험이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살해죄에서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닌 아동학대’살해’죄로 봐야 하지 않냐는 게 대법원 판결의 핵심. “만약 이번에 대법원에서 (아동학대)살해죄가 무죄로 나왔으면 일부 아동학대 가해자한테는 꼼수가 될 수 있는 사례가 됐을 겁니다. 아이를 한 번에 죽이는 게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아이를 쇠약하게 만들었는데, 아이가 어느 날 죽는다면 살인의 고의를 피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법률자문을 맡은 김승유 변호사(흰여울 법률사무소)는 이번 판결이 “좋은 판례”가 될 거라고 말했다. 김정빈 씨는 대법원의 판결을 들은 뒤에야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이날 재판정에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국민아동학대근절협회 관계자들이 있었다. 정빈 씨는 열 명 남짓한 이들과 한 사람씩 포옹했다. 약 18개월가량 이어진 가해자들과의 법정 싸움에서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킨 이들이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안도와 설움이 뒤섞인 현장. 정빈 씨는 시우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에게 다시 한 번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정빈 씨는 이번 판결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다행’이 계모 A에 대한 죄를 다시 묻는 것이라면, ‘불행’은 친부 B에 관한 것이었다. 검찰의 공소 사실을 보면, 학대 행위와 정도 및 횟수의 차이만 있을 뿐 B도 아이의 죽음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는 상습아동학대 및 상습아동유기·방임 혐의만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제 다시 한번 파기환송심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들은 또 한 번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아동학대 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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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 해결 없이 자국민에게 소송… 지혜롭지 못해” [대한민국 생존비 청구소송 4화]
“파키스탄 정부가 ‘구조헬기 띄운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한국 정부는 (김홍빈 원정대에) 구상권 청구를 하고… 매우 지혜롭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2024. 7. 1. 문현철 교수 인터뷰) 대한민국이 자국민에게 구조비용을 청구한 이 ‘지혜롭지 못한 소송’은 언제쯤 끝날까. 원고 대한민국이 ‘김홍빈 원정대’를 상대로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제기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김홍빈 원정대는 현재 항소심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 고(故) 김홍빈 대장은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이다. 2021년 7월 19일,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하던 중 실종됐다. 그리고 약 10개월 뒤. 원고 대한민국은 김홍빈 원정대에 소송을 걸었다.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 비용을 내놓으라는 것. 김홍빈 대장을 살리지도 못한 실패한 구조작전 비용은, 생사의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원정대원들에게 고스란히 지워졌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전문가는 이 소송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1일, 문현철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재외국민보호 분야의 전문가다. 한국재난관리학회(KAD) 부회장인 문 교수는, 외교부 재외국민보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2019년 12월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업무 체계의 개선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논문을 쓰기도 했다. 해당 논문에선 아직 시행 전이던 영사조력법의 주요 쟁점들과 하위 행정입법(시행령, 시행규칙)의 구체화 필요성에 대해 짚었다. 먼저, 문 교수는 김홍빈 원정대에 제기된 구조비용 청구 소송에서 아쉬운 지점부터 짚었다. “한국 정부가 파키스탄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구조비용 문제를 잘 해결)해냈다면, 조금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을 겁니다. 그런데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 외교부가 무관심했든지 아니면 (김 대장에 대한) 구조 활동이 정부와 명확한 협의 없이 성급하게 진행됐든지, 크게 두 가지 가능성으로 보입니다. 하여튼 (구조비용 청구 소송이 제기된 현 상황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게 비법률적인 판단입니다.” 대한민국의 청구 금액은 약 6800만 원.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원 3명, 촬영감독 2명 총 6명(광주광역시산악연맹 포함)은 2022년 5월 원고 대한민국이 보낸 소장을 받아들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21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소관청은 외교부, 법률상 대표자는 당시 법무부 장관 한동훈이다. 1심 법원은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원들에게 비용 일부(약 3600만 원)를 나눠서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원고 대한민국은 구조비용 전액을 돌려받아야 한다며 지난해 7월 항소했다. 원고 대한민국이 소송을 제기한 법적 근거는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영사조력법). 법의 취지를 살려 ‘재외국민보호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김홍빈 원정대’는 “재외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영사조력법에 의해 오히려 소송을 당했다. 쟁점은 영사조력법 제19조. 이 조항에 따르면, 재외국민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의문이 따라붙는다. 애초 영사조력법 제19조가 ‘국가가 국민 개인에게 비용을 청구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 재외국민보호는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의무다. 아무리 법적 근거가 있다 해도, 김홍빈 원정대를 상대로 소송을 선택한 한국 정부의 판단을 ‘최선’이라 볼 수 있을까. 문 교수는 “인도주의적 외교력을 통해 해결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인도주의적 휴머니티(인간애)로 상호 협조하자’고 파키스탄 정부에 먼저 제안을 하는 거죠. 휴머니티는 인류의 보편적인 공감 가치예요. 휴머니티에 공감대가 있는 파키스탄 정부가 (김홍빈 원정대 구조 활동을) 도와주면, 향후 한국에 와 있는 파키스탄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한국 정부가 도와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장 훌륭한 모습은 외교력으로 해결해내는 것이죠. 휴머니티를 서로 공감하는 두 나라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문 교수는 정부의 외교력이 발휘된 대표적인 모범 사례 하나를 꼽았다. 지난해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일어난 군벌 간 무력충돌 사태에서 이뤄진 ‘한일 간 공조’ 사례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4월 수단 현지 교민들을 철수시키는 ‘프라미스 작전’ 때 수단에 체류 중이던 일부 일본인들의 탈출을 도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수단 거주 일본인 대피 과정에서 한국의 협력이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국의 외교적 도움은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에는 이스라엘에 군용 대형 수송기를 보내 우리 국민 163명과 일본인 51명을 긴급 대피시켰다. 당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현지에 체류 중인 교민들이 고립됐었다. 김홍빈 원정대 사례에선 왜 이런 외교력이 발휘되지 못했을까? 문 교수는 우선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 “외교부의 예산이나 인력이 상당히 부족합니다. 외교부 1년 예산은 중앙행정기관의 청 단위보다 적은 약 2조 30000만 원가량입니다. 산림청 예산보다 조금 많습니다. 이중 재외국민보호 사업 예산은 100억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금액으로 전 세계 190개 재외공관을 운영하고, 3000만 명의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외교부가 휴머니티를 해피엔딩으로 만들 만한 여력이 없는 겁니다.“ 문 교수는 위에서 언급한 논문에서도, 재외국민보호가 더 치밀해지기 위한 첫 번째 대안으로 “외교부의 예산 증액, 재외공관의 증설, 외교관 영사의 증원”을 꼽았다. “영사조력의 범위를 주재국의 행정청의 처분 등에 대한 영사조력 등에 대하여도 필요하며, 구체화 세분화 하는 과정에서 외교부의 실무적 고충과 국민적 공감대를 동시에 고려하는 등 더욱 구체화 하는 세부적인 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논문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업무 체계의 개선에 관한 연구>, 문현철, 2019) 하지만 김홍빈 원정대를 상대로 제기된 구조비용 청구 소송은 이미 벌어진 일. 지금 상황에서 또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 문 교수는 “우리 정부도 (일반 국민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권 청구를 취하하는 조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종수 숭실대학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구조비용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조정절차’를 강조했다. 정 교수는 “민사 분쟁은 판결보다도 조정을 잘 해주는 게 법원의 역할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원은 유럽에 비해 조정을 잘 안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김홍빈 원정대 구조비 청구 소송의 경우도 (원고와 피고) 서로 조정을 해서 해결하는 게 국격에도 좋을 듯하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 제12-1부(재판장 성지호)는 지난 9일 피고 김홍빈 원정대 측이 원고 대한민국에 구조비용의 60%를 지급하는 것으로 조정하는 화해권고결정을 했다. 원고 대한민국이 청구한 구조비용은 6800만 원. 60%는 약 4080만 원으로, 1심에서 인정된 금액(약 3600만 원)보다 약 480만 원 많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에서 원고 대한민국 측 법률대리인을 향해 이렇게 강조했다. “원고 대리인은 원고 대한민국을 잘 설득하세요.” 재판부는 지난달 11일 진행된 항소심 두 번째 변론기일 때도 화해권고를 제안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조정성립은 원고 대한민국과 피고 김홍빈 원정대의 합의에 따라 향후 결정될 예정이다. 김홍빈 원정대를 향한 정부의 소송은 계속해서 논란을 낳고 있다. 김홍빈 대장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주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위패를 모신 것도 대한민국 정부였다. 국위를 선양한 ‘스포츠 영웅'(2021년 대한체육회 선정)으로 치켜세울 때는 언제고, 구조비용을 받겠다고 국가가 소송까지 제기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일명 ‘김홍빈 대장법’도 발의됐다. 지난달 10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광주 광산구을)은 국민이 국위선양을 하다가 해외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국가의 비용부담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영사조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대장의 유해는 아직 히말라야에 묻혀 있다. 7월 19일. 일주일 뒤면 김홍빈 대장의 세 번째 기일이 돌아온다. 오는 13일엔 김홍빈 대장 3주기 추념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홍빈의 조국 대한민국은 그의 영정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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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이규태 회장, 셜록 기자 고소는 입막음용”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9화]
“일광학원 전 이사장(이규태 회장) 측은 지속적인 반론 취재 요청에도 응하고 있지 않다가 기자를 고소했다. 이는 언론에 대한 압박이자 입막음이다.” (참여연대 보도자료, 2024. 7. 10.)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를 고소한 사건에 대해, 참여연대가 ‘불송치 처분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 회장은 ‘우촌초등학교의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행위를 지시하고, 이를 고발한 공익제보자들을 5년간 괴롭히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이를 보도한 셜록 기자와 프레시안 기자를 지난 4월 고소했다. 사유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이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입막음용 소송의 일환”이라며, 불송치 처분 의견서를 9일 서대문경찰서에 제출했다. 이 회장은 서울 성북구 소재 사립초등학교인 우촌초 인수자이자,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 이사장이다.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로 유명하다. 2022년 기준 학부모 부담금은 연간 1468만 원에 달한다. 2019년 우촌초 최은석 교장, 이양기 교감 등 6명의 교직원은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회장이 스마트스쿨 사업의 예산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리고, 미리 섭외한 업체가 입찰에서 선정되록 사업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적발했다. 이외에도 학교장 업무방해, 학교예산 횡령 등 각종 비리가 밝혀졌다. 이 회장과 일광학원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들은 2022년 참여연대 ‘올해의 공익제보자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일광학원 측은 공익제보자들에게 반복적인 징계를 내리고, 고소와 소송을 진행했다. 공익제보자들은 5년째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의 보복성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해고 이후 아직 학교로 복직하지 못한 이들도 있고, 힘든 법적 다툼 끝에 복직한 교직원은 또 지속적인 따돌림과 불이익에 시달려야 했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셜록은 지난 1월부터 공익제보자들을 향한 이 회장과 일광학원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보도해왔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이 회장과 일광학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23차례나 반론 취재를 시도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무응답’이었다. “형법 제310조는 “(명예훼손)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그 보도 내용 역시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우촌초등학교 스마트스쿨 비리 관련 공익제보자들이 받고 있는 부당한 불이익조치에 관한 것이었기에, 이 보도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임이 분명하다.”(참여연대 보도자료, 2024. 7. 10.) 참여연대는 이 회장의 고소 사건이 명예훼손에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사는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와 공익제보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취재원과의 인터뷰, 관련 소송 공소장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된 점을 근거로 삼았다. 또한 공익제보자 보호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작성됐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이 회장의 고소장 접수에 앞서, 지난 2월 일광학원은 셜록의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한 바 있다. 일광학원 측은 ▲3000만 원의 손해배상 ▲해당 기사의 열람·검색 차단 ▲정정보도문 게재를 요구했다. 1차 조정기일에는 일광학원 측이 출석하지 않았고, 2차 조정기일 결과 ‘조정 불성립’으로 마무리됐다. “일광학원 비리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집요한 보복행위를 반복해왔다. 이번 고소 역시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행위 및 입막음 소송의 일환으로 판단된다.” (참여연대 보도자료, 2024. 7. 10.) 이 회장과 일광학원이 언론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은 2019년 우촌초 스마트스쿨 비리를 처음 보도한 방송사 기자들을 고소하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한 바 있다. 심지어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에게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광학원의 패소로 끝났다. 참여연대는 “일광학원 및 전 이사장과 관련된 취재 및 보도가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두 기자에게 불송치처분을 내려줄 것”을 서대문경찰서에 요청했다. 한편, 셜록과 참여연대는 지난 1월 17일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 이사장 2명을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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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19화]
그들만의 꿀단지로 여겨진 검사들의 ‘공짜유학’.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국외훈련 후 표절 논문을 제출한 검사들이 훈련비 일부를 환수당했다. ‘논문 표절’을 이유로 검사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최초의 사례. 셜록이 ‘표절 검사’들을 상대로 ‘혈세 환수 대작전’을 시작한 지 무려 1년 6개월 만이다. 셜록이 신고한 5명의 전·현직 검사 전원이 훈련비 일부를 환수당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지난달 27일, 국외훈련 연구논문 표절 의심 검사 5명에 대해 “법무부 담당 부서에서 관련법령과 규정에 따라 국외훈련비를 환수했다”는 처리 결과를 통보했다. 환수 비용은 최대 3800만 원으로 예상된다. 셜록이 지난 2022년 12월 첫 보도 이후, 이듬해 1월 직접 권익위에 신고한 데 따른 것이다.(관련기사 : https://www.neosherlock.com/ar...)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이 시행된 2010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5일까지, 법무부가 표절 문제로 환수한 검사 국외훈련비는 ‘0원’이다. 법무부는 2022년 12월 5일 국민신문고 답변을 통해 “현재까지 연구보고서, 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하여 훈련비를 환수한 사례는 없다”고 답한 바 있다. 권익위는 환수 조치 사실을 통보함과 동시에, “법무부가 2023년 6월 26일자로 ‘검사 국외훈련 운영 규정’을 개정해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 근거를 명시했다”는 내용도 밝혔다. 다만, 법무부가 검사 국외훈련비를 언제, 얼마나 회수했는지 등 상세내역을 공개하진 않았다.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와 운영규정 개정 모두, 셜록의 보도 이후 일어난 일이다.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이번 권익위 조사 결과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검사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검찰 조직에 경종을 울려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더구나 독립언론의 노력에 의해 (검사 국외훈련비) 예산 환수조치가 이뤄진 건 의미가 매우 큽니다.” 김예찬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도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대안언론 셜록이 이끌어낸 변화라는 점에 의미를 뒀다. “이전에 국회의원 정책연구보고서 표절 문제는 환수까지 못 가고 의원들이 자진 반납하는 방향으로 풀렸습니다. (이번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 건은) 공무원 국외훈련비 환수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셜록처럼 (공무원 국외훈련) 검증 절차에 직접 나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가 된 듯합니다.” 권익위가 밝힌 국외훈련비 환수 대상자엔 셜록이 지목한 전·현직 검사 5명이 모두 포함됐다. 셜록은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에 공개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84건(2019~2021년 발행)에서 부정·부실 의심 논문 5건을 확인해 보도했다. 박건영 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타인의 논문을 무단으로 인용한 문장으로 거의 논문 전체를 채워 ‘표절률 1위(93%)’를 기록했다. 김형걸 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같은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온 선배 검사의 논문을 베낀 걸로 보인다. 진현일 전 검사(사법연수원 32기)는 연구논문 총 92쪽 중 73쪽, 약 80%의 페이지를 표절로 의심되는 문장으로 채웠다. 그는 이직한 로펌 ‘법무법인 세종’ 홈페이지 프로필에 표절 의심 연구논문을 아직도 홍보하고 있다. 최지현 전 검사(사법연수원 36기)는 본인의 석사학위 논문을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가져와 연구논문의 약 80%를 채웠다. 그는 현재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다. 부실 논문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사례도 있다. 오○○ 검사는 과거 학술대회에서 자신이 작성한 발표문을 국외훈련 연구논문에 ‘재활용’했다. 이들 5명에게 총 1억 9040만 원의 국외훈련비가 지원됐다. 모두 국민들의 세금이다. 법무부가 규정에 따라 ‘표절 검사’ 5명의 국외훈련비를 환수했다면, 그 비용은 최대 약 3808만 원에 달할 걸로 예상된다. 공무원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국외훈련비의 지급 등)연구보고서의 내용이 부여된 훈련과제와 관련이 없거나 다른 연구보고서ㆍ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지급한 훈련비의 100분의 20 범위에서 환수할 수 있다. 셜록이 ‘표절 검사’들로부터 세금 환수를 이끌어낸 여정은 지난했다. 시작은 사소한 궁금증이었다. ‘검사들도 일반 공무원들처럼 세금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있지 않을까?’ 2022년 당시 논란이 됐던 공무원들의 장기 해외연수 결과보고서 표절 문제를 보고 떠오른 문제의식이었다. 공무원 국외훈련 제도를 알아봤다. 예상대로 검사들도 수혜 대상에 포함됐다. 법무부는 “검찰의 발전과 훈련대상 검사의 자기계발”을 위해 검사 국외훈련 제도를 진행하고 있었다. 국외훈련비용은 모두 세금으로 지원됐다. 매년 검사 국외훈련비(항공운임, 학비, 생활준비금 등)에 투입되는 예산만 평균 약 43억 원. 검사 한 명당 평균 6100만 원의 세금을 지원받았다. 국가가 보내주는 ‘공짜 유학’이었다. 다음 단계는 표절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였다. 검사들이 작성한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에 먼저 돌려봤다. 큰 기대는 없었다. 이미 연구논문은 누구나 쉽게 검증할 수 있게끔 인터넷 사이트에 전체 공개돼 있으니까. 심지어 법무부는 ‘연구결과 심사위원회’를 통해 논문을 심사까지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임을 ‘자부’하는 검사들이 작성한 논문이 아니던가. 하지만 ‘카피킬러’ 검사 결과로 나온 숫자는 실로 놀라웠다. ‘93%’, ‘86%’, ‘80%’…. 검사들의 성적표라고는 믿기 어려운 표절률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검증 절차에 들어갔다. 표절 의심 연구논문과, 표절 대상이 된 원자료를 나란히 놓고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했다. 형광펜을 꺼내 들고, 똑같은 문장에 색을 칠해봤다. 표절 의심 문장과 같은 색깔로 표시한 결과, 한눈에도 심각성이 느껴졌다. 어떤 경우는 한 페이지 안에 형광펜이 칠해지지 않은 문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느 날은 하루 만에 형광펜 하나가 다 닳아버리기도 했다. 세금으로 지원되는 검사들의 ‘공짜유학’. 그만큼 국가가 관리와 감독에 책임을 다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표절로 밝혀지면 국외훈련비를 환수할 수 있다는 규정대로 말이다. 셜록은 2022년 12월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18편의 기사가 보도됐다.(관련기사 : https://www.neosherlock.com/ar...) 셜록은 이번에도 보도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셜록이 밝혀낸 표절 의심 검사 5명을 권익위에 부패행위로 직접 신고했다. 이어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베낀 검사 3명(박건영, 김형걸, 진현일)에 대해서는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공익침해행위로 추가 신고했다. 하지만 초기 권익위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권익위는 지난해 7월, 공익침해행위 신고에 대해 “한국저작권보호원 검토 결과, 표절로 볼 수 있다”고 밝히면서도, “행정 조치 권한은 법무부에 있다”며 아무 처분도 결정하지 않았다. 국회도 나섰다. 지난해 10월 이탄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향해 ‘표절 검사’들에 대한 조치와 국외훈련비 환수 계획에 대해 질의했다. 한 장관은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면서, 표절 의심 검사들에 대한 국외훈련비 환수 조치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한 장관은 “(표절 의심 검사로 지적받은) 상당수가 퇴직 검사”라며,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지 검토 중에 있다”고 답했다. 권익위가 ‘표절 검사’들에 대한 국외훈련비 환수 사실을 셜록에게 통보한 건 지난달 27일. 한 전 장관의 응답으로부터 약 8개월이 지난 뒤다. 아직 남은 과제도 있다. 징계다. 연구논문이 표절로 밝혀져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이상 ‘표절 검사’들에 대한 징계는 당연한 수순. ‘검사징계법’에 따르면, 검찰총장은 검사가 징계 사유에 해당되는 비위를 저질렀을 경우 징계위원회에 징계심의를 청구해야 한다. 권익위는 이번 조사 결과에서 ‘표절 검사’ 5명에 대한 신분상 조치로 “법무부가 대검찰청에 사건 내용을 송부했다”고 밝혔다. 셜록은 대검찰청에 ‘표절 검사’ 5명에 대한 감찰과 징계 여부에 대해 물었다. 대검찰청은 지난 2일 “비공개 대상인 감찰에 대한 사안으로 외부에 공개될 경우 감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어 답변이 어렵다”고 답했다. 셜록은 또 다른 ‘표절 검사’들을 찾기 위한 정보공개 소송도 이어가고 있다.(관련기사 : https://www.neosherlock.com/ar...) 1심 법원은 지난 3월, 국외훈련 검사들의 학위 취득 현황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와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정보에 대한 공개 청구는 기각했다. 셜록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표절 검사’들을 향한 셜록의 ‘혈세 환수 대작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징계가 이뤄지는지 끝까지 감시하고, 또 다른 ‘표절 검사’들에 대한 추적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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