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수능] 존버 : 의대 진학의 법칙
목차 들어가며 본론 성적이 높지 않아도, 기다리면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 고졸이라는 낙인, 독일에선 없다 나가며 들어가며 “2025학년도 수능에는 전년도보다 1만 8,082명 많은 52만 2,670명이 지원했다. 재학생은 전년 대비 1만 4,131명 증가한 34만 777명(65.2%)이었고, 졸업생은 2,042명 늘어난 16만 1,784명(31.0%)이었다. 검정고시 등 기타 지원자는 1,909명 증가해 2만 109명(3.8%)을 기록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오늘(14일) 진행됐다. 많은 전문가가 수험생이 늘어난 것의 이유로 의대 증원을 꼽고 있다. 이에 따라 의대를 진학하고자 하는 N수생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1년에 한 번 치루는 시험에 의해 나머지 인생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입시에 대한 사람들의 언어는 다양하다. 혹자는 정직•끈기•성실 등의 지표가 대학이라고 주장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정직하게 공부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끈기가 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한지. 필자는 대학을 위해 재수를 했고, 현역 때 붙은 대학에 입학했다. 여전히, 재수를 했던 1년을, 엄마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여긴 반전이 있는데, 이것은 독자와 나만의 비밀이다🤫. 실은 현역 때, 그 정도 성적이 되지 않았는데 운이 좋게 붙었다. 마치 컵에 큰 돌멩이로 가득 채워도 ‘다 차 있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재수 기간 1년간, 필자는 그 빈 곳에 모래를 채워 진정한 ‘다 차 있음’을 만들었다. 열심히 공부했던 재수가 끝나고 엄마에게 친구의 3수 소식을 전했다. 돌아오는 엄마의 말은 “재수할 때보다 더 놀았나 보다”. 그날 대판 싸웠다. 수능 성적이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사회가 ‘괴상’하지 않은가? 대학을 졸업한 지 몇십 년이 지나고 여전히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사회가 ‘기괴’하지 않은가?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든 국민이 동의할 터. 정권을 잡는 사람마다 뜯어고치는 입시 제도. 그렇다면 우리와 멀-리 떨어진 독일은 어떨까. 성적이 높지 않아도, 기다리면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 최근 의대 정원과 관련하여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종종 나오는 말이 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대거 의사 되면… 의료 사고가 많아지면 어떡해? 내 몸은 누가 책임져!” 그렇다면 본질적인 물음은 다음과 같다. 의사는 똑똑해야 하는가? 이어지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얼마큼 똑똑해야 하는가? 상위 0.01%?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의대생들의 과제량과 공부량이 많다고들 하지만, 필자와 같은 비의대생들은 아무리 들어도 ‘아 많구나’ 정도로 받아들일 뿐이다. 수능이 똑똑함의 지표가 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물론 지성이 영향이 있겠으나 그것만이 지표가 될 수는 없다. 예로부터 의사에 대한 선호도는 ‘전문직 선호’ ‘높은 연봉’ 등에서 나왔기에 천재•영재와는 거리가 있기도 하다. 독일은 기다리면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 한국에는 ‘수능’이, 독일에는 ‘아비투어(Abitur)’가 존재한다. 아비투어는 독일 고등학교의 졸업시험으로, 전과목 논술시험이면서도 절대평가 등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아비투어를 통해, 대입 전 자신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줄세우기식으로 진행되는 수능과는 다르게, 자신의 현 상태를 파악하고 대학에서 수학이 가능한 본질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수학능력검정시험과는 형태와 목적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도 ‘의학’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다. 한국처럼, 독일 대학도 아비투어 성적을 반영한다. 다른 건 아비투어 반영 비율에 있다. 수능의 정시 제도는 수능의 점수를 100% 반영하여 대학에 입학한다. 반면 독일의 대학은 아비투어 성적을 20% 내외로 반영한다. 이외에 ‘대기 연한’과 내신 그리고 대학의 자체 선발이 반영된다. 대기 연한은 ‘얼마나 그 학생이 특정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했는지’이다. 첫 입시에서 떨어지더라도 다른 대학에 가지 않고 계속 그 대학 그 학과에 가고 싶은 학생들만을 위한, 대기 명단이 존재한다. 오래 기다린 학생들의 햇수를 반영하여 입학 학생들을 선발한다. 대체로 2년 정도 기다리면 대부분 선발된다고 한다(의대의 경우 선호도가 높아 일반 학과에 비해 길어질 수 있다). 대기 기간 동안 선수 과목들을 듣거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대기 제도를 통해서 우리는, 독일이 ‘시험 성적’만으로 의과대 학생을 선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기다릴 정도로 의학을 공부하고 싶은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대학 입학 성적이 낮은 의사는 의료 사고를 더 많이 내는가? 의사는 똑똑해야 하는가? (현재 독일 내부에서 아비투어 반영 비율과 대기 연한 변경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 놀랍게도 독일의 무상 등록금은 ‘학생들의 운동’으로 얻어진 결과다.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행정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 2009년 거리에 나온 학생들의 구호 “Reiche Eltern fur ALLE(모두를 위한 부자 부모님)”, “suche reiche Eltern(부자 부모님을 찾아요)”. 처음부터 대학 등록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인 - 아마 전 세계인들 - 이 생각하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돈을 내고 교육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교육은 국민의 기본 권리다’라는 주장이 등장하며, 1970년 최초로 등록금 제도가 폐지되었다. 이후 35년간 무상 등록금이 이어졌지만, 대학의 재정 약화 등의 이유로 등록금 제도 부활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주장했다. “suche reiche Eltern”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 전국 27만 명 이상의 대학생들이 모였다. 그들은 도로와 철도, 법원, 의회를 점거했으며 다니는 대학의 강의실도 점거했다. 다소 격한 시위가 벌어졌지만, 놀랍게도 시민들은 학생들의 편에 선다. 학교 본부와 교수들은 점거가 끝날 때까지 계속 강의하며 그들의 운동에 함께했다. 학생들의 부모와 시민들, 동네 주민들 등 기성세대들도 동참했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맘껏 공부할 수 있어야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기조 하에. 대학 교육을 청년들의 자기계발로 바라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가의 인재 양성의 측면으로 바라본 결과였다. 청년이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레 기성세대는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독일 전역은 청년들의 목소리로 물들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맞추어 ‘등록금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결국 2013년, 독일 대학 등록금 제도는 폐지되었다. 물론 여전히 교육복지의 측면에서 일부 금액을 지불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기후동행카드의 충전 금액’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된다. 흙수저 → 플라스틱수저 → 나무수저 → 철수저 → 동수저 → 은수저 → 금수저 → 다이아몬드수저 2010년대부터 대두된 수저 계급론은 ‘그’가 아닌 ‘그의 부모’를 판단한다.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뒷받침해 줄 수 있느냐, 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현대판 신분제도. 필자는 이와 같은 담론에 실증을 느끼면서도, ‘나는 왜 “부자 부모를 찾습니다”의 피켓을 들고나간 독일의 학생들처럼 하지 못할까’ 부끄럽기도 하다. 고졸이라는 낙인, 독일에선 없다 한국과 달리, 독일 고등학생들은 ‘대학’만을 바라보고 공부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1) 3년제 직업학교(전문대)에 진학하거나 2) 아비투어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3) 바로 직장을 찾는다.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6.2%로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반면 2000년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33.3%로, OECD 국가 중 대학 진학률이 낮은 국가였다. 2021년에는 대학 진학률이 55.8 OECD 평균(86%)과 떨어진 편에 속한다. 제조업 기반의 독일 경제를 위 현장의 기술직을 양성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더욱이 궁금증은 커진다. 독일 대학엔 등록금이 없다. 그리고 대학 입학 혹은 졸업에 얽매지도 않는다. 경제적 부담이 줄어 대학 입학이 수월해졌음에도,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임금 수준에 있다. 독일은 학력과 상관없이 개인이 습득한 기술에 의해 임금이 좌우된다. 3년제 직업학교(전문대) 졸업자와 대학 졸업자의 상대적 임금지수는 153과 158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115와 145로, 이는 OECD 평균인 122와 146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전문 기술에 대한 국가적 우대가 임금으로 이어졌고, 대학과 상관없이 스스로 진로를 찾는 것까지 나아간 것. 이명박 정부 시절 시작된 ‘직업계고 제도’는 어떻게 되었나.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독일은 중학교 때부터 직업 훈련 및 체험 - 일종의 인턴쉽 - 을 필수적으로 진행한다. 비슷한 목적으로 시행된 직업계고 제도는 2024년 지금 거의 방치된 수준이다. 2021년 기준 학력이 고졸 이하인 신입사원 연봉은 평균 2,363만 원이며 대졸은 3,031만 원으로, 약 700만 원의 차이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대졸자들보다 먼저 입학하기에 호봉이 높아질수록 그 차이는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졸 이하 전체 직원의 평균 연봉은 3,400만 원이고 대졸은 4,500만 원으로, 1,000만 원 차이가 난다. 한국은 되려 그들에게 ‘고졸’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나가며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 2025학년도 수능의 필적확인란 문구다. 필자가 본 수능의 경우,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였다. 수능 당일 첫 과목인 국어 시험지를 받고, 필적확인란을 제일 먼저 확인했다. 눈물이 났다. 분노의 눈물이. 고등학교 3년 내내 읽고 싶은 책을 뒤로 하고 국어책에 조각난 소설을 읽은 결과는 ‘수능’이었다. 포항의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일주일 미뤄졌을 땐 절망밖에 없었다. ‘나의 해방이 일주일 멀어지다니!’ 그리고 해방을 앞두고 읽은 저 글귀. 큰 바다와 넓은 하늘을 가졌지만, 고등학교 내내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체육 시간이라 보지 못했다. 방학 때에도 학교 자습에 참여해 바다와는 이별한 지 오래였다. ‘수능 이후 나는 해방될 수 있을까? 줄에 묶인 코끼리처럼 줄이 풀려도 그 자리에 주저앉을까?’ 수능과는 전혀 관련 없는 생각들이 많아졌고, 그렇게 불수능에게 패배했다(실은 졌잘싸, 라고 생각한다. 아니, 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잘 싸웠다.). 독일의 교육제도를 봤지만 그렇다고 독일을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작금의 교육제도를 개정하라고 적극 요청하는 것도 아니다. 교육제도를 둘러싼 사회 환경 전반의 문제가 있음을 말하며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 달라고 요청한다. 더 이상 대학 앞에 무너지는 학생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얼마 전 대학에서 강의 중, 교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남아있다. “여러분,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시라고. 지금의 제도는 이전에는 없었어요. 이것도 바뀐 거라니까. 그니까 또 바뀔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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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 금액에서 사라진 사천 원] 영화 티켓값, 왜 자꾸 올라갈까요?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탈루 의혹 지난 17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국정감사가 이어졌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강유정 의원은 관객이 실제로 구매한 영화 티켓값과 영화관 통합전산망에 넘겨지는 가격 차이가 최대 4,000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필자 또한 영화관 티켓 구매 시, 인터넷 혹은 키오스크를 통해 카드로 결제한다. 필자의 경우, 지금껏, 당연히, 영화 티켓이 영수증 겸용이라고 생각해 왔다. 한편 ,올해 7월 “구매 금액과 영수증 금액이 다르다.”라는 주장이 나왔다. 지류 영화 티켓은 영수증이 아니며, 영수증은 영화관 직원에게 별도로 요청해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주장에 따르면 통신사 할인을 받고 8,500원에 결제했으나, 요청한 영수증에 적힌 금액은 7,000원이었다. 문제는 실제 예매권 가액(7000원)을 기준으로 영화발전기금(3%)과 부가세(10%)를 책정하고 있기 때문에, 차액만큼 기금과 세금이 부과되지 못하고 있다. 결제한 금액과 영수증의 금액이 다른 것. 그 차액은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영화관은 사양산업일까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3년 9월 영화관 전체 매출액은 653억 원이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9월 전체 평균 매출액의 52.9% 수준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코로나 시기를 제외한다면 2008년 이후 최저 매출액을 기록했다. 국내 극장 영화 관람객 수는 2019년 2억 2천 명에서 2023년 1억 2백만 명으로 하락하였다. 지난 2022년 국내 멀티플렉스 3사인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CGV는 2D 영화 성인 티켓값을 기준으로 주중에는 1만 4천 원, 주말에는 1만 5천 원으로 상향했다. 이는 빠르게 성장하는 OTT 플랫폼과 비교하여 극장 방문을 부담스럽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중학교 시절 조조 영화로 5천 원의 행복을 경험했지만, 이제는 조조 + 통신사 할인을 받더라도 1만 원이 넘어간다. 이에 어떤 영화든지 1만 원 값은 해야 한다는 인식과 더해지며, ‘요즘 영화는 재미가 없다’까지 이어진다. 킬링타임용 영화는 5천 원으로 납득이 되지만 1만 원이 넘는 심지어는 1만 5천 원의 가격으로는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맞서 멀티플렉스 3사는 다양한 상품들을 내놓았다. 롯데시네마는 ‘수퍼플렉스관’을 선보이며 일반 영화관보다 3배 넓고 3D 입체 사운드 음향 기술을 적용했다. 메 박스는 ‘돌비 애트모스관’을 개시하며 4K 레이저 영상기가 적용되고 3차원 공간에 소리의 움직임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CGV 또한 ‘아이맥스’, ‘스크린X관’, ‘4DX관’ 등 다양한 특별관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스낵류도 이전과는 다르게 늘어났다. 팝콘 이외에도 오징어, 핫도그, 떡볶이, 라볶이 등 다양한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다. 심지어는 - 극장에서 먹을 수 없지만 - 집에 가져가서 먹을 수 있는 팝콘도 판매하고 있다. 또한 영화 이외의 즐길 거리도 늘어났다. 영화와 관련된 굿즈샵, 영화의 내용을 담은 포토부스, 푸드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공간이 그에 해당한다. 관객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한 관객당 지불하는 금액을 늘리려는 시도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티켓 수익분배의 방식 티켓의 수익분배 방식을 알아보기 전에 생소한 단어부터 먼저 살펴보자.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 영화 티켓 하단을 꼼꼼히 살펴보자. 결제 금액 하단에 작은 글씨로 ‘영화발전기금 3%’가 보인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24조에 따르면 영화발전기금의 조성을 위해 부과금을 징수한다. 부과금 징수 대상은 예외를 제외한 모든 영화상영관이다. 부과금 징수 금액은 영화상영관 입장권 가액의 100분의 3 즉, 3%에 해당한다. 이때 입장 가액은 각 영화관에서 회차, 연령, 좌석 등으로 구분한 실제 입장권 금액으로 측정하고 있기에 언제 어디서 누가 영화를 봤냐에 따라 그 금액은 달라진다. 부과금 징수 목적 : 영화발전기금의 조성 부과금 징수 대상 : 예외를 제외한 모든 영화상영관 부과금 징수 금액 : 영화상영관 입장권 가액의 3% 이렇게 부과된 금액은 ‘한국 영화 지속 성장 생태계 조성’ ‘한국 영화 미래가치 확장 환경 조성’ ‘보편적 영화 문화 가치 확산’의 목적을 가진 영화발전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티켓 수익 분배 구조를 살펴보자. 우선 객단가의 3%를 영화발전기금으로, 10%는 부가세로 제외된다. 이후 남은 금액의 50%는 극장의 수입이고 나머지 50%에서 배급사의 배급수수료 10%를 제외한다. 남은 금액은 투자사와 제작사가 나누어 갖게 된다(업계 평균은 투자사 60%, 제작사 40%라고 함).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티켓값은 10,000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중 300원은 영화발전기금으로, 1,000원은 부가세로 구성된다. 이를 제외한 남은 금액은 8,700원. 그중 50%인 4,350원은 극장의 수입이 된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의 10%인 435원은 배급수수료로 배급사의 수입이다. 이를 제외한 금액은 총 3,915원. 그중 60%인 2,349원은 투자사가, 40%는 제작사가 나누어 갖는다(해당 비율은 계산하기 쉽게 조절하였음). 영화 티켓값으로 지불한 금액 =/=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전달되는 금액 사례 1. 영화 <베테랑2>를 통신사 할인을 받아 11,000원에 결제했다. 이후 받은 영수증에는 7,000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사례 2. 영화 <원더랜드>를 보기 위해 KT 통신사 할인을 받아 결제했다. 원가 15,000원에서 할인가 4,000원을 뺀 결제금액은 11,000원이다. 이후 받은 영수증에는 10,500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사례 3. CGV 범계점에서 14,000원 영화 티켓을 SKT 멤버십 앱을 통해 할인을 받아 8,500원에 결제했다. 현장에서 요청한 영수증에서는 7,000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은 전국영화관 입장권 발권 정보를 실시간으로 집계 처리하는 시스템(서비스 플랫폼)으로, 신속하고 다양한 박스오피스 정보와 각종 영화산업 통계정보를 제공하여 한국영화산업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영화산업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이용하고 있다. 즉 전산망의 관리 주체는 영진위. 티켓 발권에서 시작해서 영화관을 거쳐 통합센터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다. 통합전산망에서는 총관객 수와 매출액, 지역별 점유율, 국적별 점유율 등 다양한 데이터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발전기금과 세금을 징수할 때 기준이 되는 금액이 바로 이 통전망에 등록된 금액이다. 통전망을 운영하는 영진위의 위원장은 “실제 지불한 금액과 차이가 나는 것은 있으나… 그것까지는 우리가 관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불어 영화관과 배급사 간의 수익을 분배할 때도 통전망에 등록된 금액으로 나눈다. 그렇다면 영화관에서 결제된 금액은 그 즉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 영진위의 관리의 누락? 의도적인 세금 탈루? 강유정 의원 : 영진위, 입장가액 무엇으로 하십니까? 한상준 위원장 : 저희는 전송되어 오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가액들이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한 기사들은 보았습니다만은, 그부분까지는 저희가 알지 못합니다. 강유정 의원 : 통합전산망 운영 주체는 누굽니까? 한상준 위원장 : 영화진흥위원회입니다. 강유정 의원 : 입장권 가액은 뭡니까? 한상준 위원장 : 입장권 가액은 실제로… 강유정 의원 : 별도 정의 없죠? 한상준 위원장 : 네 없습니다. 강유정 의원이 영진위와 극장에 차액 발생 원인에 대한 자료를 각각 요구하였으나, 기업 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다며 답변 제출을 거부하였다. 앞선 대화에서도 보았듯이, 영진위원장은 통전망으로 보내는 영화 티켓 금액과 결제된 금액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영진위는 통합전산망을 운영하는 주체이다. 통합전산망은 영화산업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통합전산망에 들어오는 입장 가액이 실제 관객이 결제한 금액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면, 그 간격이 어디에서 발생하고 있는 찾는 역할이, 영진위가 하는 역할일 테다. 국정감사에서 한상준 위원장은 ‘기사들은 보았습니다만, 그 부분까지는 저희가 알지 못합니다.’라는 말 속에서 이미 책임을 다하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또한 이것은 단순 책임 회피의 문제가 아니다. 강유정 의원인 이것이 ‘구조의 문제’임을 주장했다. 영화 흥행 지수를 ‘관객 수’로 책정한다는 근거를 주장했다. 미국과 같은 해외의 나라들은 관객 수가 아닌 매출액으로 책정한다. 이 점은 우리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영화 홍보에 항상 뜨는 문구. ‘관객자 수 백만 돌파!’ ‘천만 돌파!’ ‘천만 영화’ 등등. 한편,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 역대 흥행 영화 순위를 살펴보면, 1위는 <스타워즈:깨어난 포스> 9억 3,666만 달러다. 2위는 <어벤져스:엔드게임>으로 8억 5,837만 달러를 달성했다. 이처럼 한국은 ‘관객 수’로 책정하지만, 미국은 ‘매출액’으로 책정한다. 이와 같은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결제한 금액과 통전망에 올라가는 금액의 차액인 4,000원이 지속적으로 새어 나가고 있었다면, 관객 수와 매출액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관객 수로 책정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극장의 관객이 줄어도, 흑자로 전환! 2024년 7월 4일, 영화인연대는멀티플렉스 3사인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CGV가 깜깜이 정산을 하고 있다며 공정거래 위원회에 신고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영화 티켓의 가격은 상승했지만, 객단가(통전망에 등록되는 금액, 영수증 금액)는 오히려 떨어져 제작사 등에 돌아오는 몫이 줄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발기금의 경우 그림자 세금이라며 이후의 명확한 계획도 없이 폐지했다. 3%의 영발기금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수준이 못 될뿐더러, 독립 영화나 대학생 등의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시드머니로 사용된다. 통신과 카드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할인의 경우, 기업 간 계약이 제각각이기에 카드정산이 복잡하다. 더불어 카드 정산금은 극장으로 바로 입금되기 때문에 극장으로 얼마나 입금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이 불가능하다. 극장과 통신사, 카드사는 '영업비밀'이라는 말 뒤에 숨어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는 것. 영화진흥위원회는 이와 같은 소비의 불투명성을 해소하기 위해 조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숨겨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루빨리 통신사와 극장 그리고 영진위와의 적극적인 해명과 활동이 진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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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수상 한강, 소설 속 폭력은 어떻게 구현되는가?
개요 폭력에 대한 전지구적 공감 : 한강의 노벨문학수상 국가폭력 :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상식으로 대변되는 폭력 : <채식주의자> 개인의 세계관으로부터의 폭력 : <채식주의자> 폭력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 폭력에 대한 전지구적 공감 : 한강의 노벨문학수상 10월 10일,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노벨 문학 수상작을 원서로 읽을 수 있다는 벅차오르는 감정이 한결 지난 후, 수상의 이유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2024년 노벨 문학상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작가 한강에게 수여되었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은, 전 세계인들의 공감을 받았다는 것. 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개인의 이야기 혹은 목소리를 초연히 담아낸 한강 작가의 글들이 공감을 받은 것이다. 또다시 그 말은 여전히 전 세계에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일 테다. 그것이 물리적인 폭력이든 상징적이거나 명시적이지 않은 폭력이든 간에 말이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가 한강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앞의 세 소설 모두 ‘폭력’에 대한 깊은 성찰이 묻어난다. 앞의 두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는 한국에서 자행되었던 국가폭력에 대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채식주의자>는 일상생활에서 상식으로 작동되는 폭력과 미시적인 차원에서 작동되는 폭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야 말로 인간 삶의 폭력에 대해 다측면으로 분석했다고 볼 수 있다. 국가폭력 :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국가폭력은 국가권력을 통해 발현된 폭력이다. 폭력에 주체가 국가인 모든 폭력이 국가폭력이다. 넓게 본다면 폭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방치하고 묵인한 경우도 국가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폭력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심지어 현대까지도.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4월 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국가에 대한 언론의 탄압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국가폭력이다. 하지만 가장 비통한 지점은 국가 혹은 지배 계급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수십 년이 지났다는 것에 있다. 분명한 가해자가 있음에도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아, 우리는 누구에게 분노해야 할지 모르는 세월을 살아왔다. 나를 단숨에 눌러버릴 수 있는 그 권력 하에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억눌려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폭력에 대한 무감각함과 일종의 정당함을 국민에게 내면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폭력 속에 살고 있음에도 폭력이 없다고 생각하며, 폭력이 당연시되는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2017년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한 생각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미국이 전쟁을 얘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으로. 한강 작가는 영토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고려되지 않고 그저 국가 간의 거대한 세력 싸움에만 집중한 부분을 꼬집는다. 그는 이것을 “subhuman”이라고 정리한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이곳에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We have several scenarios.” “We will win.” “If war breakds out on the Korean Peninsula, 20,000 South Koreans will be killed every day.” “Don’t worry, war won’t happen in America. Only on the Korean Peninsula.” “서울과 도쿄,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전쟁이 날지도 몰라.’ 말을 배웠던 어린이집 시절부터 모두가 얘기한 그 말. 언젠가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그 얘기를 듣고 자란 한국인들. 국가폭력과 국가 간의 폭력은 우리에게 참 무뎌졌다. 한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전쟁은 이미 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란과 이스라엘. 이전의 폭력적인 지배에서 벗어나 현대에는 비폭력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때론 ‘신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명시적이고 물리적이고 강제적인 폭력 혹은 지배에서 벗어나, 다양한 신념과 독립적인 제도들이 존재하는 산업적인 사회 혹은 과학적인 사회로 이행되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강대국 간의 전쟁 빈도는 줄어들었음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증가했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레 군에 대한 자본집약도도 높아졌다. 전쟁 무기의 치명적 파괴력이 증대되자, 혹자는 강대국들의 군사적 타격 범위가 지구 전체보다 훨씬 클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군사적 효율성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부대의 팀 규율로 혹은 정밀한 후방지원 계획 등으로. - 휴전 국가인 한국은 당연하겠지만 - 세계 어느 나라든, 전시 상황이 되면 모든 국민들이 전쟁 태세에 돌입할 준비가 된다. 자본주의와 군사주의 혹은 군사문화와 전쟁체제가 결합한 사회가 된 것이다. 찰스 틸리에 따르면 사회 내적인 폭력이 감소함과 동시에 국가폭력은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국가의 구석구석 아주 작은 시골까지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이 세밀하고 강력해지니, 국가가 폭력수단을 감독, 통제, 독점하는 경향이 커져 사회 내적으로는 되려 폭력이 감소하고 평화로워지는 것이다.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으로 표현되는 국가의 목적이자 목표가 달성된 형태처럼 말이다. 상식으로 대변되는 폭력 : <채식주의자> 최근 지인들이 결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게 된 독특한 심지어는 기이한 문화, 청모. 청모는 청첩장 모임의 줄임말이며, 청첩장을 반드시 대면으로 전달하고 그 자리는 청첩장을 주는 사람 즉 결혼 당사자가 밥값을 지불해야 한다. 결혼식의 높은 경제적 부담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정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한 것과는 반대로 청모의 문화가 발달한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그 관례가 어디서부터 도출된, 어디에서 야기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요지는, 내가 결혼식장에 방문하여 축의금을 내고 결혼 당사자들을 축하하니, 그 초대장은 대면으로 받아야 하며 그 자리는 결혼 당사자의 지갑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청모에 참여한 나는, 그저 불편함만 느껴지는 자리였다. 처음 보는 지인의 예비 배우자가 나타나 이미 모바일로 받은 청첩장을 재전달하고,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이 자리는 반드시 결혼 당사자가 결제해야 한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결혼 당사자들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 결혼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끌 시끌해야하는 이 자리는 그저 불편만 하다. 몇 번 기이한 청모를 경험하니 이후 나는 온라인 청첩장으로도 충분하다는 답장과 절대 결혼식에 가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 하면서도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드는 - 이상한 변명을 하고 있다. 청모를 처음 가던 날, 엄마 아빠한테 물어봤다. 엄마가 결혼할 때도 청모가 있었어? 아니. 모바일로 청첩장을 전달할 수 없는 그 시기에도 청모는 없었다. 청첩장을 줄 때,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하는 입장에서 음식을 대접한다는 건 문제 될 게 없다. 나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한다. 기쁜 자리에 와줬으면 좋겠다,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행복한 날. 그런데 이상한 점은 기특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마인드에 ‘청모’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점이다. ‘뭐라고 이야기할지 모르니까 이름이 붙은 거지~’ 아니다. 청모라고 이름 붙인 이후 이것은 사회적인 약속으로 자리 잡았다. 결혼 전에 꼭 해야 하는. 결혼식의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는 청년들과는 반대로 청모의 문화가 발달한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A가 결혼식 전 청모를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청모를 하지 않았으니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더라도 가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청모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A는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바라볼 가능성도 존재한다. 상식을 누가 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느냐, 는 학자마다 혹은 학파나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이것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네오맑시스트 안토니오 그람시는 ‘헤게모니’라는 단어를 통해 물질 토대를 갖고 있는 지배계급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이슈들을 common sense 상식으로 자리 잡게 한다고 주장했다. 미셸 푸코는 우리가 자유 속에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유 속에서 무엇을 욕망하도록 모세혈관부터 주입’되고 있다고 말한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명하지 않은 것 - 여기서 자명하지 않은 것은, 한가지로 통일할 수 없는 다양성을 뜻한다 - 을 자명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상징적 권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는 한국 사회에 깊이 박힌 가부장제의 현황과 당연해진 식생활(육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회에서 상식으로 자리 잡은 제도나 신념, 가치들을 통해 진정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 혹은 집단은 누구인지 고민 해 봄직하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상식이 개인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존중하지 못한 채 남아있다. 이런 상식들은 소설에서도 나타나듯이 가부장제처럼 뿌리 깊게 박혀있기도 하지만, ‘국룰’이라는 단어처럼 가벼운 농담거리로 내재화되어 있기도 하다. 연봉 수준에 맞춰 국룰로 사야 하는 자동차가 정해진 사회는, 자신만의 의견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폭력을 가한다. 개인의 세계관으로부터의 폭력 : <채식주의자> 세계관은 독일어 das Weltanschauung에서 시작되었다. Welt는 world 세계를 뜻한다. Anschauung은 동사 anschauen의 명사형이다. anschauen은 an + schauen. ‘보다’라는 뜻의 schauen과 ‘목표의 방향으로’라는 뜻의 an이 합쳐졌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닌 관조하다, 살펴보다, 응시하다 등의 뜻이다. 결론적으로 세계관이라는 것은 세계를 관조하고 응시하는 시각을 뜻한다. 칼 만하임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특수한 세계관을 갖고 세계를 본다. 그렇기에 100명이 있다면 100개의 세계관이 있다. 한 존재의 사회구조적인 위치에 기반하여 생성되는 세계관은 존재구속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세계관은 사회 안에서 어떤 위치에 종속되어 있는지에 따라 다른 시각을 갖게 한다. 이는 타인의 세계관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과 연결된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영혜’지만 영혜는 서술자가 되지 않는다.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 세 시점으로 영혜를 바라본다. 남편은 영혜를 ‘같이 살기에 무던한 여자’라고 바라본다. 누구와 같이 살기에 무던할까. 지극히 남편의 기준에서 같이 살기에 무던한 여자다. 남편의 세계관에서 바라볼 때의 영혜는 무던한 여자다. 영혜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당연히 서로의 관계로부터 나오는 사랑은 없다.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잘 맞는 영혜는 그렇게 선택 ‘당한다’. 영혜의 형부는 영혜를 욕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형부의 세계관에서 영혜는 욕정의 대상이자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줄 여성이다. 자신이 욕망했던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리는 작업이 우연하게도 영혜에게 삶을 찾아주는 계기가 되지만, 그것 따윈 형부에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작품을 완전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영혜의 언니는 영혜에게 모성애를 느낀다. 한없이 도와주고 아파하는 사람이다. 몸에 꽃을 그리면서 안정을 찾는 영혜에게 언니는 ‘아직 아픈 아이’일 뿐이다. 언니의 세계관에서 영혜는 보살핌을 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타인의 모습을 타인에 투여한다. 그렇게 폭력을 행사한다. 내 눈으로 바라보는 타인이, 그래야만 한다고 말이다. 나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 타인은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존재다. 한편 우리는 타인이 될 수 없다. 즉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세계관을 갖게 되는 그 순간부터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폭력이 인간 존재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세계관으로부터의 폭력을 드러내기 위해, 한강 작가는 서술자를 영혜가 아닌 영혜 주변 인물로 구성했다. 하지만 영혜 또한 이 세계관으로부터의 폭력을 행한다. 예컨대 그 어떤 폭력을 행하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어하지만, 실은 영혜의 꿈 속 나무는 뾰족한 가시로 영혜에게 폭력을 행한다. 3부 나무불꽃에서 나무들은 ‘불꽃’처럼 보이며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영혜 또한 그 자신의 세계관에 갇힌다는 것. 우리는 결국 폭력성과 떨어질 수 없음을 드러낸다.  폭력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 최근 나는 캠페인즈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총 3편의 원고를 작성하였다. 글을 쓰기 위해 당시의 나를 다시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무서워서 돌아보지 못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나는 금방 그곳으로 이동했고 또다시 두려움을 경험했다. 이후 쳐다보지도, 가보지도 않았던 이태원에도 방문했다. 근 2년간 가보지 못했던 곳(못했던 걸까, 안 했던 걸까 여전히 모르겠는 그곳). 뉴스 기사의 사진으로만 바라보았던 이태원이었다. 뉴스 기사들 속의 이태원은 적막했다. 실제 방문해 보니 다시금 활기를 찾고 있었다. 대규모 압사가 일어났던 공간은 여전히 어두운 분위기가 있는 듯했으나 이태원의 대표 술집이라고 불리는 가게들은 웨이팅을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이태원참사에 대한 얘기도 했다. 나만 그랬는지, 너는 어땠는지. 돌이켜보니 나는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이태원참사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참사 직후에 가족들과 뉴스를 보며 간간히 이야기를 나눌 때도 나는 입을 닫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참사를 비용의 이슈로만 바라보고 나에게 동의를 요청할 때도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 대화가 그 순간이 당황함을 넘어선 황당함이었고 무엇이라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고 감정은 차올랐지만, 혀에 걸려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말이 나오지 않는 거였을까. 나 또한 침묵과 외면으로 폭력을 행하고 있었다.  폭력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행했던 폭력을 반성하며 돌이켜보는 과정일 테다. 국가폭력에 대해 내가 저항하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았는지, 상식이라는 틀로 누군가에게 행했던 폭력은 없었는지, 그저 나의 시각에 비추어 타인을 배제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한강 작가는 글을 통해 그만의 언어로 그 과정을 반복했다. 그의 소설에는 유독 ‘꿈’이 많이 나타난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 혹은 바꿀 수 없는 권력에 맞서는 행위를 글로 승화하면서, 그 과정이 자연스레 꿈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한국에서 겪는 다면적 폭력에 대한 글을 작성했음에도, 여전히 폭력을 - 혹은 폭력에 가까운 - 시선으로 그를 보지 않았던가. 한강의 남편이 누구고. 한강의 아들은 누구고. 한강의 집안 내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한강의 출신 학교를 이야기하고. 한국의 대표 얼굴이 된 것처럼 이야기했다. 한국인이라는 명목으로 받는 관심에 어쩌면 한강 작가는 씁쓸한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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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국가폭력의 경험을 안고 자란 아이
어른들은 몰라요 서울의 한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실습을 하면서, 감사하게도 매일 1시간씩 활동 소회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혹은 교육을 들으며 궁금했던 것들과 실무자와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을 나눴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약자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나누었다. 어느 날 과장님의 질문. 서희 너의 민감성은 어디서 시작된 거야? 그날 이후 나는 내게 영향을 주었던 사건들을 공책에 나열했다. 이전엔 알지 못했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모두 폭력과 관련이 있었다. 며칠 전에 엄마와 술을 마시며 대화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진 경험이 있다. 엄마 나 밭을 걷는 것처럼 느껴져. 지뢰가 마구 퍼져있는, 근데 지뢰의 위치는 몰라. 어디서 어떤 지뢰가 터질지 모르는 밭을 내가 걷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도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길을 걸을 때 다가오는 차량이 갑자기 날 박지는 않을까. 뒤에 오는 이 사람이 혹시 나를 좇아오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가 건넨 주스나 사탕에 약이 발라져 있지는 않을까. 일상의 불안함은 때론 강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내가 이 세상의 주류가 아니라면,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긴다면, 그 결과는 오롯이 나의 몫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 이 사회에서, 참사의 결과는 모두 동일했다. 참사의 맥락을 ‘비용’의 문제로 바라보고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 사람들의 목숨이나 인권은 상관하지 않는 것. 내가 국가의 쓰임이 있지 않다면 혹은 그만한 생산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나는 버려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국가는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 나를 관리한다. 이 불안함은 과연 나만 느끼는 감정일까. 나의 조부모 세대, 전후 가난 나의 할아버지, 홍*희, 48년생. 나의 할머니, 전*숙, 49년생. 나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3살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종종 전쟁의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군모를 쓰고 있더랬다. 머리가 너무 작아 군모가 자꾸 벗겨져 나가는데 그 순간 총알이 날아왔다. 할아버지는 군모 덕에 살았고 그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3살이면 내가 자주 보는 아기 유튜버의 나이. 완벽한 문장 구사가 어려워 여러 단어를 나열하며 말하는 그 나이. 3살, 만 2살, 할아버지는 그때의 기억이 여전하다. 4남매의 장남이었던 할아버지와 5남매의 장녀였던 할머니가 결혼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가난과 함께 살아갔다. 할머니가 시집간 날,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옆집에서 수저를 빌려왔다. 그렇게 가난한 집이었다. 할머니는 돈이 되는 모든 일들을 했다.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당신의 형제들과 자식들은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조부모 세대의 사람들은 나보다 내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 그게 그 시대의 세대적 과제였다. 동네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족을 위해 일했으며 전쟁으로 망가진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같은 목적의식이 있었다.   나의 부모 세대, 가난 + 독재 정권 + IMF 나의 아빠, 홍*용, 69년생. 나의 엄마, 김*환, 71년생. 민주항쟁 당시 나의 아빠는 19살, IMF 당시 29살이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그 날, 11살이었던 나의 아빠는 뉴스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 아빠에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웅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당시엔 업적들에 대해서만 들었을 뿐이라고, 다른 것들을 몰랐다고 덧붙였다. 그 시대엔 전부 다 그랬다고. 그로부터 몇 년 후, 아버지와 2살 차이 나던 아빠의 이모 - 할머니의 막내 여동생 - 는 대학에 다니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옷에는 수류탄 냄새가 항상 배어있었지만, 당신의 아버지께 들키지 않으려 혹은 경찰에게 잡히지 않으려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독재 정권을 벗어난 민주화 사회를 꿈꾸었다. 대학에도 경찰이 있던 그 시대에. 한편 할아버지 세대의 가난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가난의 대물림은 아빠 세대까지 이어졌다. 3남매 중 장남이었던 나의 아빠는, 고등학교 중퇴 후 이른 나이에 친척 집에 전전하며 돈을 벌었다. 이후 나의 아빠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했고 나의 엄마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 해 IMF가 터졌다. 사회 공헌 활동에도 열의 넘쳤던 나의 외가는 그때부터 가세가 기울었다. 이제야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한 아빠의 회사는 문을 닫았다. 아빠는 부도가 난 회사에서 가정집에서 쓰기도 힘든 대형 프린터기를 집에 가져왔다. 그 뒤로 나의 아빠는 쭉 자영업자의 삶을 살고 있다. 민주화, IMF, 이 시대의 세대적 과제였다. 대다수의 사람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독재 정권 타도를 외쳤다. 더 나은 한국 사회를 꿈꾸며. 나라를 살리자는 목표로 금을 모았다. 같은 목적을 가진 채 삶을 살아갔다. 나의 세대, 없음 나, 홍서희, 99년생. MZ세대이자 Z세대의 첫 발을 딛는다. 우리 세대의 세대적 과제는 딱히 없다. 온 세대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같은 목적을 내세울 만한 요인도 동력도 없다. ‘행복하기’가 목표가 될 수 있지만 “세대적” 과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각자의 행복은 다를 테고 행복하기 위한 방식도 다를 테니. 이전 세대보다 풍요로웠다.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과 친숙했다. 자영업을 하는 부모님이 아침에 일 하러 가면, 아기(나와 동생)은 혼자 남아 TV를 열심히 봤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왔다. 책보다 TV로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잡지식이 상당했다. 그런 나를 보며 부모님은 “살기 진짜 좋아졌다”고 말했다. 나는 살기 좋아졌다고 불리는 사회에 살아서 그런지 그 말이 와 닿지 않았다. 세대적 과제가 없다면, 나의 세대는 국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나에게 영향을 줬던 큰 사건들을 돌아봤다. 내가 경험한 참사 내 나이 16살, 서울로 전학을 왔다. 다니는 학교에서 내가 나고 자란 ‘정선’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종종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정선에 현장체험학습 갈만한 곳을 물어보곤 했다. 내가 살던 곳을 친구들에게 보여준다니!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예정된 일정의 한 달 전, 세월호에 탄 단원고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원이 구조됐다는 오보가 떴을 때만 해도, 갈 수 있겠다는 얘기가 오고 갔다. 불과 몇 시간 후 유가족들에 의해 사실이 전달됐다. 나와 2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던 언니 오빠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키워나갔다. 안국역 근처에 살던 나는 예비 고3이었지만 하야 시위에도 매주 참여했다. 세월호 참사가 가장 강력한 동기였다. 내 나이 18살, 강남역에서 20대 여성이 낯선 남성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살면서 수많은 여성 피해자 사건들을 봐 왔다. 딸을 끔찍이 아끼는 우리 집에서는 밤에 골목길로 절대 다닐 수 없었다. 이어폰을 끼고 걷는 것도 금지됐다. 엘리베이터는 혼자 타는 것이 편했다. 심지어는 터덜터덜 걷는 모습이 범죄자들에게 쉽게 표적이 된다는 뉴스 보도로 인해, 나는 밤에도 당당하게 걸어야 했다. 2016년의 강남역 살인사건은 묻지마 살인사건이 아닌 ‘여성혐오 범죄’로 굳어지는 시발점이었다. 사건 직후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나와 몇몇 여성을 보며 자위행위를 했고, 불행히도 나는 그것을 마주했다. 두 개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남자와 단둘이 있는 걸 극히 꺼렸으며 남자 아르바이트생 혼자 근무하는 편의점에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정부는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묻지마 살인’으로 바라보았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여성혐오 범죄는 지속되고 있다. 내 나이 24살,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책임은 마치 폭탄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누구 하나 품에 껴안는 사람이 없었다. 당일 이태원 근처에서 놀았던 나는, 자괴감과 부채감만 느껴졌다.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나는 뭐가 좋다고 그 시간에 놀았을까. 앞으로 나는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할까. 내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나 또한 그 자리에서 서서 사망했으리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혐오 표현을 들으면서 고통을 감내했을 거로 생각했다. 이태원 참사 직후 국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에는 무관심해 보였다. 여전히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이며 피해자들에 대한 파악 중일 때, ‘국가애도기간’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참사가 아닌 사고로 바라보며 ‘보상’의 맥락으로 축소했다. 그들에게 참사의 고통은 그저 개인적일 뿐이었다.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며 보장해 줘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을 살리는 대가로 드는 돈을 계산했다. 그리고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더 효율적으로 고통을 없애기 위한 방법 - 보상 - 을 찾고자 했다. 사과는 늦어졌고 진상규명은 진척이 없었다. 국가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 부채감도 자괴감도 불안감도 고통도 전부 개인의 몫이었다. 내 나이 25살, 나와 두 살 터울인 내 남동생은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군 내에서의 사망 사건들이 종종 보도되고 있었고 불안함이 커진 건 그해 7월이었다. 경북 예천군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채수근 일병이 목숨을 잃었다. 막을 수 있었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책임 넘기기는 계속되었다. 나라를 위해 젊음을 다 바친 결과였다. 당시 군복무 중이던 내 동생 또한 호우 피해 지역에 투입되었다. 나의 동생이 다치더라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나는 그저 몸 다치지 않게 조심히 복무가 끝나길 바라기만 했다. 군에서의 사건들은 매번 같은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2024년, 매우 더웠던 여름이 지나갔다. 기후위기가 나에게 큰 공포로 다가왔다. 뉴스에서는 이제 더 이상 사과를 먹지 못할 것이라고, 국내산 김치를 먹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과 그에 대해 얘기를 하며, 앞으로 내가 살아갈 미래가 너무 무섭다고 토로했다. 나의 부모님은 내 고민이 크게 와닿지 않으신 듯했다. 어차피 네가 죽을 때까지는 괜찮다고. 진정 괜찮을까? 온열질환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들이 곳곳에 나타났다. 아파트 주차장만 들어가도 숨이 막히는 데 그런 곳에서 하루 9시간 이상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후위기에 무관심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정부에 화가 났다. 위헌 결정이 나자 그제야 아주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더욱 열불이 났다. 언제 탄소중립이 이뤄질 수 있을지 답답했다. 백날 텀블러 들고 다녀도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국가의 부재? 아니, 국가폭력 내가 겪은 참사들이, 국가가 국가의 일을 하지 않은 결과라고 단언할 수 있나? 국가의 역할과 소임을 다하지 않은 결과로만 볼 수 있나? 사실 이건,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국가가 국민을 ‘방관한’ 폭력이다. 사람들의 목숨은 ‘비용’으로 환산하고, 구조하고 예방하는 것에서 ‘효율성’을 찾는 국가의 폭력행위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보호라는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 것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폭력을 행했다. 국가는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어쩔 수 없는-막을 수 없는 사고’라는 말로 숨겼다. 응당해야하는 역할과 책임을 앞선 말로써 축소했다. 저 말이 어떻게 들리는가? 너의 죽음은 오롯이 너의 몫. 나의 조부모 세대와 부모 세대와는 다르게, 나의 세대는 전-국가적인 목표가 없다. 국가가 나서서 이끌만한 요인도 없다. 그런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사회보장 능력이 없는, 보호의 능력도 없는, 책임도 지지 않는, 회피하는, 역할과 소임을 축소하는, 심지어는 교묘한 언어와 행동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나의 세대는 이 국가 앞에 불안함만이 남는다. 나의 환경에 대한 모든 신뢰가 붕괴되어 언제든 내게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불안함을 주는 저 강력한 권력자에게 반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극복하거나 비판하거나 변화하고자 하는 행동이 내 삶에 위험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다른 곳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아파할 여유도 신경 쓸 여유도 없다. 더욱더 ‘나’의 현실에만 몰두할 뿐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의 생존을 위해 제테크를 공부하고 스펙을 쌓는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사회와 분리하고 다름을 강조하고 타인을 구분 짓는 삶의 태도를 택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앞으로 내가 살아갈 미래의 국가는 달라질까? 국민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종종 불안함이 커질 때 친구들에게 털어놓는다. 나 요즘 길거릴 걷는 것도 무서워. 우리는 함께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 그럴 때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 내 감정이 틀리거나 배제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함과 함께 극복할 수 있음에 기쁨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에 나는 더 솔직하게 이 자리에서 토로한다. 너무나도 자연히 행해지는 국가폭력을 직시하겠다고, 그리고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다고. 일상의 불안함을 느끼는 나의 세대들에게 연대의 손을 건네며 주저앉지 말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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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우리에게 참사의 언어가 없다.
10.29 이태원참사가 내게 남긴 것 작년 10월에도 그랬듯, 올해도 이맘때쯤이 되면 마음이 뒤숭숭하다. 이렇다, 저렇다, 표현할 단어가 없어 ‘뒤숭숭하다’로 퉁-쳐버릴 때마저도 쓰라리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매번 들었지만, 너무 크게 다가올까 두려워 찜 목록에만 담아둔 지 오래. 10.29 이태원참사 2주기를 맞아 드디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 - 많은 내 또래 친구들이 그랬듯 - 나는 수많은 전화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곳에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들의 추측은 실로 타당했다. 참사 당일, 나도 이태원에 가려고 했다. 29일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 침대에 누워 각종 SNS를 확인했다. 현장의 사진들이 빼곡했다. 사진들을 처음 마주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익숙지 않은 ‘압사 사고’라는 단어와 이해하기 힘든 사진들이 합쳐져 혼란스러웠다. 쏟아지는 사진들을 계속 보다 보니 이해하기 두려웠다. 이해하면 무서울 것 같아 황급히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들로 대체하거나 스크롤을 내려 사진보다는 글을 확인했다. 나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혹은 나와 인연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새도록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새로고침할수록 늘어만 가는 사망자 수를 계속해서 확인했다. 궁금증일까? 왜 사람들이 다치는지 궁금한 상태인가? 무서움이 많은 내가 자꾸만 소식을 찾아보는 이유가 뭘까?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궁금함에서 시작된 행동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족들이 잠들어 너무도 고요한 내 방에서, 심장 소리가 빨라지고 커지는 걸 느꼈다. 혹시 지인이 있을까, 수많은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오지 않는 사람들에겐 전화를 걸었다. 허망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당일, 코로나 방역에서 벗어난 첫 축제, 10월의 마지막 날, 바람이 선선해 밖에 나가기 좋은 날. 그들은 나였고, 내 친구였고, 내 가족이었고, 내 이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 지하철과 버스를 타지 못했다. 조금만 붐벼도 숨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퇴근 시간에 이동이 필요하다면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했다. 여유가 된다면 붐비는 시간을 피해 미리 장소에 도착했다. 축제, 페스티벌, 대회, 콘서트 등 사람들이 밀집할 만한 곳은 절대 가지 않았다. 나에게도 10.29 이태원참사는 후유증이 있었다. 내가 피해자도 아닌데.... 어쩌면 나도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 나도 참사의 생존자였다.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피해자가 어떤 모습이라고 상상하는가? 피해자들은 숨고 가리고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피해자다움. 재판에서는 자신이 피해자임을 호소하고 입증해야 한다. 이때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피해자로서 인정을 받는다. 피해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일 경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재판에서는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다움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은, 성범죄에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에 대한 비판이 늘면서 ‘피해자다움’과 ‘가해자다움’의 의미가 변하거나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오랫동안 법원은 성범죄 피해자를 정형화된 틀에 가뒀다. 그들이 생각하는 피해자는 1) 피해를 본 이후 가해자와 최대한 접촉을 피하거나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진정한’ 피해자라면 2) 분노·좌절·무기력·두려움·공포 등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으로 3) 일상생활이 마비되어 관계가 단절된 상태여야 한다. 피해자는 그래야 한다. 하지만 살아온 환경이 다를 텐데, 피해자가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모습을 보이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는 중이다. 내 주변엔 꽤 쉽게, 전세사기 피해자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죄의식에 고통을 겪는다. 뉴스에 나오는 피해자들도,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에 나오는 피해자들도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표현된다. 때론 피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기도 한다. “네가 잘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피해자들은 그렇게 사회가 종용하는 피해자의 틀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그 틀에 벗어나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피해자들이 된다. ‘보상금 때문이지’ ‘정부한테 뭐 하나라도 더 달라고 하는 거지’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는 것 좀 봐’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쉿’ 묵음을 강요한다.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정치적인 언어로 쉽게 축소된다. 그들에게는 ‘흐느끼는 것’만으로 애도하길 바란다. 조용하게 잠재운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는, 피해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2차 가해를 양산한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귀 기울일 사람이 몇이나 되며 들어줄 노력은 하는가?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말 속엔 ‘피해자다운’ 목소리를 내라고 강요하고 있지 않는가? 피해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은 분명하다.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다움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 피해자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 정형화된 피해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또 다른 피해를 경험한다. 이에 피해자는 겉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피해를 겪을 수 있다. 이들 또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을 것이다. 마치 나처럼. 10·29 이태원참사는 이전에 일어났던 참사들과는 ‘다르다’라는 평을 받는다. 혹자는, 이는 참사가 아닌 단순 ‘사고’라고 하기도 한다. 다름의 가장 큰 원인은 피해자들의 핼러윈 파티 참여 동기에 있다. ‘자발적’으로 ‘놀러 나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이 강요된다. 참사의 경험은 속으로 삭혀야 하며, 유가족들은 목소리를 낮춰 흐느껴야 하고, 애도조차 조용하고 간단하게 진행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태원참사가 일어난 시기에 자신이 이태원에 있었음을 밝히고 싶지 않아 한다. 실제로 이태원참사 당시 이태원에 있었던 내 친구는 “이태원에서 생긴 트라우마는 네가 감당해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런 말들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라는 말을 줄여 만든 ‘누칼협’은 지극히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조어로, 이태원참사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사용했다.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렵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은 때때로 개인 안에서 부딪힌다. 피해를 겪고 있는 내 내면과 그 피해는 너의 책임이니 침묵을 강요하는 환경 사이에서. 외부에서 정의 내린 피해와 내가 겪은 피해 사이에서. 결국 자신이 피해자이지만 스스로가 피해자가 아님을 종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또 다른 피해를 보고, 때론 2차 가해로 나타난다. 그렇게 피해자는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언어가 없는 피해자들 나는 종종 내 경험이 부정’당하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사회적인 차별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예컨대 나의 경우 나서길 좋아하는 여성으로서 불쾌한 경험이 잦았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사회적인 차별로 드러났다. 반면 가장 가까운 친구와 애인과 가족과 얘기할 때도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 경험은 ‘내가 고깝게 생각해서’ ‘내가 피해의식이 있어서’로 치부된다. 나의 피해 경험은 곧 사적이고 무의미한 일이 된다. 내가 별나서, 로 축소된다. 한때 나도 적극적으로 내 경험을 설득하고자 했다. 여전히 그런 충동이 든다. 어필하고 강조하며 상대의 이해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못해 ‘그래, 그렇구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찝찝하면서도 ‘이 정도면 됐지’하고 안도의 숨을 쉬며 넘어갔다. 하지만 대화 끝에 언제나 나는 지쳐있었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 실은 공감할 노력도 없는 사람을 앞에 두고 - 나는 혼자서 뻘짓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받아낸 공감(처럼 보이는 것)에 아주 작은 위로를 받는다. 그 위로는 곧 사라지지만. 상대가 나에게 가지는 ‘피해자로서의 기대’에서 내가 벗어난다면, 나의 경험과 목소리는 사라진다. 튕겨 나간다. 매번 도전하지만, 큰 벽에 가로막힌다. 그렇게 나도 곧 무너질 듯한 공허함을 느낀다. 그런 경험이 있는가? 무언갈 말하고 싶은데 정확한 의미를 담은 단어가 없는 경험. 나는 빈번히 그런 상황과 마주한다. 내 감정과 내 경험을 이야기할 단어가 없다. 언어가 없다. 길게 늘어뜨려 놓고 기존에 알던 단어를 조합해도 명쾌하게 정의할 언어가 없다. 일 생활에서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어로는 내 경험을 표현하기 어렵다. 언어가 없으니,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기득권들의 언어로 나를 담아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게 10.29 이태원참사는, 언어가 없어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것이다. “놀다가 죽었다”라는 기득권 혹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언어로 표현되는 세상에선 내 감정을 가시화할 수가 없다.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어 설득하고자 하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지칭할 단어가 없어서.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피해자로서 행동양식이 정해져만 있는 것 같은 사회에서, 광의적인 차원의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보전될 수 있을까? 그들에게 그들이 오롯이 느낀 것을 말할 언어가 있을까? 우리에게 참사의 언어가 없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작가가 집필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학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관념적이면서도 울림 있게 담아내며, 한 시대에 이루어졌던 학살이 동시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연결됨을 보여준다.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에 대해 “이별을 고하지도, 행하지도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하며 “애도를 멈추지 않고, 결코 끝내지 않겠다는 결의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16살, 중학교 3학년 당시 세월호참사가 일어났다. 나와는 불과 2년 차이 나는 언니·오빠들이었다. 나는 당해 수학여행이 취소됐다. 그리고 또다시 내 나이 24살에 이태원참사가 일어났다. 내 나이 또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군복무를 하던 일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내 남자 동기들이 떠올랐고 2살 터울의 남동생이 떠올랐다. 여러 차례 사회적인 참사 앞에 나는 두려움만 남게 되었다. 혹시 내가 그러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다치지 않을까. 그렇게 나도 숨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꺼내지 않았다. 나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저 두려움에 떨 뿐이다. 최근 영화 <벌새>를 다시 감상했다. 영화는 성수대교 붕괴참사로 인해 친구를 잃은 중학생인 은희를 다뤘다. 당시 20대이면서 잠실에 살던 우리 엄마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그 시절 그 큰 다리가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성수대교 붕괴 이후 은희의 삶을 보여주진 않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 내가 그랬듯,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은희도 같은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갔을 것이다. 살아냈을 것이다. 영화 속 은희의 마음을 나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 은희는 지금의 나였다. 이태원참사로 혼란을 겪었던 내게 은희는 위로를 건넸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조용하면서도 우울한 무드를 갖고 있다. 참사를 겪은 동시대의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한편에 비슷한 무드를 갖고 있지 않을까? 여러 차례 참사를 겪은 내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시대의 참사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개인의 삶에 자연스레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강요되고 억압되는 현실에 마치 영향이 없던 것처럼 살아간다. 영화는 ‘은희’만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이들이 ‘은희’에 본인의 이름을 대입하는 것에서, 동시대에 하나의 참사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책 <작별하지 않는다> 영화 <벌새>, 나는 이것이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느껴졌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개인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우리에겐 개별적이고 사적인 감정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으고 모아 스스로 이름을 붙여 가시화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 있음을, 어떤 감정을 느낌을 실체화하는 것의 힘을 나는 굳게 믿어본다. 그러기 위해 나는 “애도를 멈추지 않고, 결코 끝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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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 OT 후기
들어가며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의 한 골목, 우리는 또 다시 많은 이웃을 잃었다. 그런데 이 참사엔 다양한 이름들이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이태원참사, 10.29 참사, 핼러윈 참사, 이태원 압사 사고 등. 이름을 붙인 이들마다의 참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참사를 상상하는 방식이 다르다. 10.29 이태원참사 2주기를 맞아, 나는 어떻게 참사를 상상하는지 떠올려보았다. 20대 초반이었던 나에게 그날은, 놀아야 하는 날이었다. 마스크와 인원수 제한, 운영시간 축소 등 다양한 방역 지침으로 내 3년의 대학 생활은 날아갔다. 흔히들 간다던 MT도, 친구들과 떠나는 우정 여행도, 미루고 또 미루고 또 미뤘다. 그리고 드디어 방역 지침 대부분이 권고 사항으로 축소되었다. 때마침 중간고사도 3일 전인 26일에 끝났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친구들이랑 놀아야 했다. 오랜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미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피드엔 이태원 구석구석에서 행복해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한가득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 이태원에 갈 준비를 마쳤다. “야 오늘 이태원 사람 X많아 ㅋㅋㅋㅋ” 먼저 가 있던 친구들에게 메시지가 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곳도 마땅치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방향을 틀어 근처 용산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김없이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계속해서 넘긴다. 그리고 곧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졌다. 주로 나의 위치를 묻는 내용들이었다. 모두가 자는 불 꺼진 우리 집에 나는 거실에 혼자 나와 티비를 본다. 실시간으로 뉴스가 보도된다.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면서 나도 내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이태원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다. 나는 그날 이후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을 쉽게 가지 못한다. 출퇴근 시간엔 아빠에게 부탁해 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고, 여력이 없을 땐 택시로 움직였다. 피치 못 하게 대중교통을 타야 한다면 시간대를 피해 미리 가거나 늦게 갔다. 옆 사람과의 간격이 점차 가까워지면 극도로 불안해졌다.  이상했다. 나는 그 장소에 있지도 않았는데.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을까? 나와 같이 아픈 마음을 갖고 있을까? 아파하는 게 맞는 걸까? 비판이 두려워 앞장서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2주기가 가까워지니 맞닥뜨릴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캠페인즈에서 진행하는 “이태원 참사,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첫 시작은 9월 11일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 함께 글을 쓴 사람들과 만나 소개와 소감을 나누고 ‘참사를 상상하는 방법에 관하여’ 강연을 들었다. 최성용 연구자의 강연 : 참사를 상상하는 방법에 관하여 참사를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전적인 의미의 참사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참사를 있는 그대로의 명확한 사실이나 사고로 파악한다. 이에 최성용 연구자는, 사람들이 참사를 상상하고 해석하는 것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참사를 상상하는 방식, 특히 이태원 참사를 상상하는 방식에 관해 설명하며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함께 나누었다. [위로부터 상상하기] 책임의 주체 혹은 책임의 목적 및 결과는 무엇인가? 국가적 재난이 생겼을 때, 우리는 늘 책임의 소재를 찾는다. 이태원 참사에도 같은 방식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의 사후 대처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2022년 말에 진행되었던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사후 대처를 기준으로 장관의 부족함을 지적했다. 책임의 주체를 좇아 사후 대처의 과정과 결과만을 따졌다. 하지만 사전 대비가 아닌 사후 대처에만 집중한다면, 구조적인 문제를 놓치기 쉽다. 구조적인 문제는 사후 대처가 아닌, 사전 예방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찾을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에서 책임의 주체를 찾는 것이 이후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예방하는 것보다 중요할까? 이 외에 다른 질문도 던질 수 있다. 법이 없는 경우, 다시 말해 불법이 아닌 경우에서는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고위 장관 개인과 관료 시스템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같은가? 국가와 경찰과 지자체의 책임은 같은가? 진상규명의 목적은 무엇인가? 법적 처벌을 위한 진상 규명을 해야 하는가? 정치적인, 혹은 사회적인 차원의 진상 규명은 무엇이 다를까? 국회 내에서 혹은 제도권 내에서 진상 규명이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보상금의 관한 쟁점으로 참사를 축소한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가? 10월 31일 행정안전부는 보상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참사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보상금의 관점으로 축소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게 위로금 2,000만 원, 장례비 최대 1,5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구체적인 액수를 내걸었다. 이러한 축소의 결과는 부정적인 여론으로 즉각 나타났다. 이태원 참사에 세금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당시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했고, 용산 구청장 또한 축제가 아닌 ‘현상’으로 참사를 한정 지었다. 정부가 참사를 보상 액수로 제한하고 축소한 결과,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한 번 더 고통에 휩싸이고 고립되었다. 일방적으로 희생자들의 이름을 내걸었을 때, 무엇이 휘발되는가? 시민언론 민들레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을 게시했다. 희생자들을 그늘 속에 묻히게 하지 않겠다며 온전한 추모를 진행하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다른 인적 사항과 특징들 없이, 이름 자체만으로 진정한 애도를 할 수 있을까? 어떤 사연과 맥락을 가진 개별의 사람들인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이것을 통해 추모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참사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를 부르는 명칭은 지금까지도 제각각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이태원 ‘사고’라고 칭한다. 어떤 기준으로 참사와 사고를 구분할 수 있을까? 피해자가 적다면 사고인가? 참사가 되지 못한 사고들이 오히려 사각지대로 내던져지는 것이 아닐까? 한국심리학회 트라우마 학회 연구소에서는 이를 두고, 이태원을 제외하고 ‘10.29 참사’를 제안했다. 장소를 언급하는 순간, 그곳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다는 의미였다.  [아래로부터 상상하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유언비어와 사진들을 옮긴 것에 대해 비난할 수 있을까? 2차적 증언자로서의 언론들의 역할은 없었을까? 이태원 참사 직후, 갖가지 유언비어들과 이미지들이 여럿 생성되었다. 화재가 났다, 마약이 성행했다는 등. 하지만 이것이 악의를 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당시 현장에서는 상황을 설명하려는 담론들이 유언비어의 형태로 퍼졌다. 목격자들이 상상 밖의 일을 마주했을 때, 오히려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해 사진을 나르거나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퍼뜨릴 수 있다. 문제는 그 이미지와 유언비어들을 보고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데 활용한 다른 시민들이나 언론들이다.  녹사평 시민분향소에 있던 포스트잇들의 언어는 어디로 갔을까? 참사 이후 녹사평역에 시민분향소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2월 5일, 서울 시청 앞에 시민분향소가 설치되었다. 각기 다른 장소에 붙인 포스트잇들의 메시지는 꽤나 다르다는 걸 볼 수 있다. 예컨대 녹사평역에서는 희생자들과 자신의 유대관계를 언급하며 자신의 슬픔과 애도를 표현하는 메시지들이 많았다. 반면 서울 시청의 분향소에는 주로 특별법 제정이나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의 내용들이 대다수였다. 결국 참사에 대한 애도로부터 정치적 언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제한 채로 정치적 언어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정치적 언어가 되지 못한 채 골목에 붙어있던 수많은 포스트잇에 담긴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 또 다른 피해자는 누구일까? 오후 10시, 참사 발생 골목 및 그 근처에서 사용된 핸드폰 내역을 보면, 약 1만 4천 명 정도가 골목 주위에 밀집되어 있었다. 이태원 전체로 보았을 때엔 약 3만 5천 명 정도가 밀집했다. 이 숫자는 내국인만 조사했기에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더 큰 숫자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실제 공적으로 출연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혹은 할 수 있는 피해자는 극소수다. 유가족가족주의적 애도는 한국 사회 운동의 전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슬픔을 드러내는 것을 억압하고 슬픔을 축소했던 우리의 현대사들을 볼 수 있다. 최근까지도 국가는 유가족들의 상실과 슬픔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는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참사가 일어나자마자 팽목항으로 달려가, 당시에 무수히 생성되던 오보들을 적극적으로 정정했다. 그들은 유가족인 동시에 자신의 가족들이 배 안에 갇혀있는 걸 지켜봐야 했던 목격자이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는 실제 축제에 함께 참여하여 가족들을 잃기도 했다. 공적 출연의 동기가 부재한 생존자좁은 의미에서 159명의 희생자가 있고, 196명의 부상자가 있다. 이 부상자를 생존자라고 보았을 때, 트라우마가 없고 공적으로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와 관련된 활동의 동기를 느끼지 못하는 생존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피해자의 한 모습이다. 부상자/목격자/구조자 등, 결국 참사에 연루된 수많은 피해자가 어디에 위치해 있었냐에 따라, 그들은 각각 다르게 감각한다. 죄책감이나 트라우마 등으로 그들을 대변할 수 없다. 또한 외국인/이주민/성소수자들 등은 공적 출연을 꺼리기도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 없다. 이태원 지역의 식당 종업원이태원 지역의 상인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다. 참사 당일, 사실상 고용주가 아니라 대부분 종업원이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참사 이후 많은 종업원이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이 또한 피해자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이태원에서 놀다가 죽었다’ 이태원의 장소성은? 많은 이들이 참사가 아닌 ‘사고’로 명명한다. 놀다가 죽었다, 는 단순한 언어로 표현했다. 이는 풍기문란통제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풍기문란통제는 과거 일본에서서 사회통제의 한 방식이었다. 조선을 식민지화하며 이 통제방식이 그대로 조선에 작동하게 된다. 국가는 그들의 기준으로 ‘문란함’을 규정했고, 제도 혹은 장치로서 사회를 통제했다. 하지만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했기에 문란함의 기준은 모호했다. 이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사람 혹은 행정기구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은 해방 이후에 기지촌이 되는 이태원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후 매년 언론들은 이태원을 풍기문란한 곳으로 재현했고, 이태원은 ‘위험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나가며 10.29 이태원참사의 2주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1주기엔 어떻게 보냈는지 다시금 떠올렸다.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이태원에 방문하기도 두려웠다. 활동가들이 올린 글들을 보며 ‘내가 언제쯤 이전처럼 이태원에 갈 수 있을까’ 떠올렸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났다. 이제 나는 차츰 마주할 용기가 생겼나 보다. 이태원참사와 관련된 메시지들을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고 바라본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10.29 이태원참사의 현장에 있지 않은 나는, 거짓말처럼 현장의 두려움을 아직까지도 느낀다. 마치 내가 생생히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느낀다. 혹시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어딜가든 두리번거리며 쉽게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눈물이 고이고 함께하지 못함에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이번 강연을 들으며 ‘나도 피해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각자의 위치에서 동일하지 않지만 개별적인 두려움으로 피해를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부상자로서, 목격자로서, 유가족으로서, 이웃으로서, 구조자로서, 나와 같은 또 다른 목격자로서.  정부는 참사에 대한 애도를 축소하였고,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 한편 각각의 두려움을 겪은 사람들의 개별적인 경험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목소리를 왜곡하거나 무시하진 않았을까? 혹은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언어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다가오는 2주기까지 광의적인 피해자들의 감정과 목소리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10.29 이태원참사에 대해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고 나누며 온 마음으로 추모하는 2주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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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관심 영역 이외의 것들에 대해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으니, 영화를 보지않으신 분들은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본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4 감독조나단 글레이저 출연크리스티안 프리델 | 산드라 휠러 정보12세이상 관람가 / 105분 / 드라마,독립예술 개봉2024.06.05 (한국 기준) 겁이 많은 저는, 귀를 틀어막은 상태로 영화 첫 시작을 함께했고, 귀를 틀어막은 상태로 영화가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귀를 틀어막지 않아도 되는 극초반과 극후반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지루하다’로 표현할 수 있지만 문득 문득... '꺼림칙'하고 나중엔 '반성하게' 됩니다. 영화의 첫 장면, 들리는 것에만 집중하기 영화의 첫 장면은 검은색, 그저 검은 바탕입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검은색이 유지되며 기괴한 소리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실제로는 2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고 하는데, 체감상 5분 이상 지속된 것 같았습니다. 땅굴 깊은 곳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듯합니다.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인 것 같기도 합니다. 공포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에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환호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살려달라 외치는 소리같기도 합니다. 현악기의 기분 나쁜 불협 화음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같기도 한’ 추측입니다. 검은색 화면 덕에 추측이 늘어납니다. 혹여나 영화 상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몇 번을 문쪽으로 시선을 주었지만 영화관 직원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롯이 소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이 소리는 무엇일까, 하며 공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곧이어 새가 날아다니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떠드는 산뜻한 소리도 들리고요. 그리고 한 가족의 소풍 장면을 보여주며, 영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의 청각에만 집중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던지듯이요. 영화의 주인공, 나치 친위대 실제인물 ‘루돌프 회스’ 가족 영화의 주인공은 ‘루돌프 회스’ 가족입니다. 루돌프 회스는 실제 인물로, 제2차 세게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 중령이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책임자였는데요.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학살하기 위해 소각 시스템을 철저히 이성적으로 의논하는 장면도 나타납니다.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인물인 것이죠. 루돌프 회스 가족은 강제수용소와 담 하나를 두고 2층짜리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가난했던 회스 부부는 커다란 마당이자 정원이 있는 그 집을 굉장히 흡족해 합니다. 영화는 지루합니다. 회스 가족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마치 브이로그처럼요.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집에 들어올 때 신었던 군화를 벗고 생일 때엔 생일 잔치를 합니다. 아빠는 일을 나가고 엄마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봅니다. 새로운 아이가 태어난 것 같아요. 막내는 정원에 핀 꽃을 보고 형•누나•오빠•언니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놀이를 합니다. 영화의 내러티브 방식,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대한 괴리감 그런데 문득 문득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놓고 드러나진 않지만, 저 멀리 보이는 저 굴뚝은 분명히 유대인들을 학살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여주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그 와중에 태평하게 회스 부인은 막내딸에게 꽃에 대해 설명합니다. 색감도 예쁘고 장면도 정말 평화롭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자꾸 뒷 배경으로 향합니다. 그런 제 마음을 감독은 정확히 파고 듭니다. 회스 부인이 집에 놀러온 지인들과 떠듭니다. 지인이 남편에게 폭행 당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지만, 담 너머 자행되고 있을 폭행은 생각거리 조차 되지 않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유대인들도 ‘굳이?’ 싶을 정도로 장면에 툭툭 튀어나옵니다. 지인의 폭행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에도 집에서 일하는 유대인들이, 회스 부인보다 앞에 위치한 상태로, 집안일을 합니다. 화면 중앙을 마구 걸어다니죠. 떠드는 이야기는 들리지만 실제 화면에서는 유대인들의 일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쁜 정원을 꾸몄다며, 회스 부인은 친정엄마에게 자랑스럽게 정원을 보여줍니다. 정원의 벽 뒤엔, 수감소가 있고 그곳에선 회색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옵니다. 누군가가 소리를 지릅니다. 누군가는 명령조의 어투로 사납게 얘길합니다. 회스 부인에게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일까요? 그저 엄마와 따뜻한 대화를 나눌 뿐입니다. 자신이 가꾼 예쁜 정원에 대해서요. 그래서 저는 계속 의문이 듭니다. 이 소리, 나만 들리는 건가? 저거, 나만 거슬리는 건가? 영화의 회스 가족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무뎌진 듯한 가족들의 모습도 종종 나옵니다.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에게 빼앗은 옷들 중 고급진 옷은 직접 입어보기도 하고 아들 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캐나다 마켓’이라며 은어로 표현합니다. 회스 부인은 평범한 엄마같지만 유대인이 신경에 걸리는 행동을 하면 가차없이 얘기합니다. “내가 남편한테 말하면 너는 한순간 재가 될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으면서 말이죠. 아이들도 수용소의 소리에 노출되어있긴 마찬가지 입니다. 작은 아들은 군인 피규어를 들고 다니며 역할극을 하는데, 그 대화는 마치 수용소의 관리자와 수감자들의 대화같습니다.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온실에 가두는 놀이를 합니다. 수용소처럼요. 앞서 얘기한 장면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회스 가족에게 외할머니인 회스 부인의 친정엄마가 방문합니다. 낮 시간에 회스 부인이 가꾼 정원을 둘러봅니다. “저기가 수용소 벽이니?” “네” 간단한 대화로 수용소의 얘기는 끝을 내고, 꽃을 가꾸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털어놓습니다. 수용소에서 소각되어 나온 재들을 비료삼아 꽃들이 자란 장면을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을 소각한 그 재로,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 “그 이가 제게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요.” 회스 부인은 말합니다. 회스 부인은 아우슈비츠에서의 삶이 너무나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오래 머무를 것 같던 친정 엄마는 편지를 남기고 떠납니다. 전날 밤 잠에서 깬 친정 엄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빨간 불꽃과 냄새에 잠에서 깨게 됩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빛이 사라지자 밤에는 보이게 된 것입니다. 회스 가족과 반대로, 비인간적인 상황을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친정엄마는 떠납니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 이미 삼켜버린 악에 대하여 그리고 영화가 유일하게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회스 장교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대뜸 헛구역질을 합니다. 김수영의 시 <눈>이 문득 떠오릅니다. 눈과는 정반대로 ‘가래’는 불순물을 의미합니다. 화자는 ‘가래’를 ‘기침’으로 정화하고 싶어합니다. 회스 장교는 ‘헛구역질’로 ‘가래’를 내뱉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나오질 않죠. 수 많은 폭력들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회스 장교의 몸 속엔 자신의 악행이 불순물로 남아 있었던 걸까요? 그것을 아예 없애기 위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뱉으려고 하지만 불순물은 결국 나오지 못합니다. 자신의 악행을 그대로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요. 이동진 평론가는 이것을 ‘소화’해버린 악이라고 표현합니다.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하지만 아무것도 뱉어내지 못한 회스 장교가 서 있던 자리를, 지금에 와서야 청소부선생님들이 걸레질을 합니다. 아주 조금의 불순물을 계속해서 닦아냅니다. 저항 정신, 온기로만 볼 수 있는 것 회스 장교가 여느 아빠와 마찬가지로 다정하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줍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인데요. 빵 부스러기 혹은 돌맹이로 길을 만들려고 했던 그 이야기와 맞물려, 한 폴란드 소녀가 나타납니다. 이 소녀가 나오는 장면은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가운 땅들과 수용소 내부 노동 현장과는 반대로, 소녀만이 빛을 냅니다. 소녀가 전달하는 사과들과 먹을거리들 만이 빛을 냅니다. 이 소녀는 실제 존재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당시 아우슈비츠 근처에 살던 10대 소녀 ‘알렉산드라 비스트로니 코워제이치크’는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노역 장소에 과일을 갖다 놓았다고 하는데요. 일반 카메라로 촬영되는 다른 장면과는 다르게,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녀의 온기를, 따뜻한 마음을, 인간으로서 갖는 따뜻함을 촬영한 것이지 않을까요. 질서 유지를 가장 중요시했던 사회에서 만들어낸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 그리고 그 차가움에 반기를 들며 따뜻한 희망을 전달했던 소녀.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 그때가 아닌 지금. 저는 독일어문학과를 전공하는 학부생입니다. 나치가 자행했던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역사도 배웠으며 특히 예술을 좋아하는 저는, 관련된 책들과 영화를 종종 보았습니다. 쉰들러 리스트 사울의 아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더 리더 : 책읽어주는 남자 조조 래빗 많은 분들이 본 유명한 영화들일 텐데요. 제게 이 영화의 공통점은 직설적인 내러티브 방식입니다. 가해자들이 서스럼없이 행하는 악행의 순간들도 직관적으로 드러납니다. 피해자들이 고통에 겨워 죽음을 그저 맞닥뜨리는 장면들도 나타나지요. 인간이 이럴 수 있을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나눠지고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 관계를 드러내며, 피해자가 겪는 고통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다릅니다. 집에서 일하는 유대인들을 제외한다면,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뒷 배경 소리로, 뒷 배경 건물로, 뒷 배경 연기로, 마당의 재로, 표현 됩니다. 너도 들리지 않은 척 하고 있지 않아? 너도 보이지 않은 척 한 것 없어? 너가 회스 부부와 다른 점이 없다고?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오스카 수상소감입니다. All our choices were made to reflect and confront us in the present not to say look what they did then rather look what we do now.우리의 모든 선택은, 그때 그들이 한 일이 아닌 지금 우리가 한 일을 보기 위해, 현재의 우리 자신을 반영하게하고 직면하게 합니다. 감독은 영화에서 다룬 비인간화가 과거만의 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요. 그리고 이스라엘 희생자들과 가자 지구의 희생자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리고 다시 물어봅니다. How do we resist?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까요? 온기로 빛을 내던 폴란드 소녀의 저항정신에 대해 얘기하며 수상소감을 마칩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금 이 영화 제목을 떠올려봅니다. 관심·흥미·이익이라는 뜻의 das Interesse와 영역·지역이라는 뜻의 das Gebiet의 합성어입니다. 관심있는 영역…….. 그리고 부끄러워집니다. 나 또한 내가 관심있는 영역만을 바라보진 않았나. 바로 옆 담장 너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는 있지만, 관심을 두지 않고 눈과 귀를 닫지는 않았나. 먼 나라의 일이라고 혹은 나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것들에 대해서 떠올리며,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도 같은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칩니다. 영화를 추천해주신 서창훈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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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A 초등학교, 97.4%의 다문화 학생
목차 들어가며 이주배경아동 이주배경아동? 다문화아동 아니야? 어떤 아이들이 이주배경아동이야? 불가피한 이주 확대 한국의 인구 공백을 메우는 이주민 이주배경학생의 증가와 다원화 이주민다방문지역 소재 학교 증가 적극적인 정부 대응의 필요성 유럽의 국가적 문제 : 이민 2세대·3세대의 불평등 호소 한국 정부 : 임시방편의 이민 정책 마치며 :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다문화 존중 방법 들어가며 작년 여름, 물과 불, 마치 F와 T 커플의 사랑을 보여줬던 영화 <엘리멘탈>이 한국에서 큰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영화의 피터 손 감독님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 2세대였는데요. “어릴 적 나는 나의 부모가 이민자라는 것을 몰랐다. 너무 순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 가족이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알았다.” - 씨네 21 인터뷰, 피터 손 이민자로 살아가며 느꼈던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담은 영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 또한 한국에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 한 명씩은 꼭 이주배경학생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다문화사회로 점차 접어들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배경아동·청소년들이 한국에서 어떤 경험을 쌓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오늘은 정부가 이주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이주배경아동·청소년의 현황은 어떤지, 한국은 어떤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지에 대한 제 고민을 담아보았습니다. 1. 이주배경아동 1) 이주배경아동? 다문화아동 아니야? ‘이주배경’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신가요? 익숙지 않은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당연합니다. ‘이주배경’이라는 단어는 이전부터 곳곳에서 쓰였지만, 교육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건 2023년 10월이었거든요. 교육부는 2024년부터 다문화라는 명칭 대신 이주배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의 혼란이 있을 수 있어 여전히 ‘이주배경’과 ‘다문화’라는 용어를 병용하고 있습니다. 단어 ‘다문화’를 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다문화(多文化)는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국가나 사회를 지칭할 때, 다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다문화’라는 특징을 부여하는 것은 부정확해 보이기도 하네요. 그 사람이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보긴 어려우니까요.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에는 “우리와 다른 민족·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가정”이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와 다른’인데요. 다문화 가정이라고 이름 붙임으로써 타자성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지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서도 이주를 하나의 특성으로 간주하며 ‘children in the context of international mig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2) 어떤 아이들이 이주배경 아이들일까?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에 따르면 이주배경청소년이란 “부모 혹은 본인이 이주의 경험을 지닌 9세에서 24세 이하의 연령에 속한 사람”을 뜻합니다. 결국 ‘이주배경’ 아동 혹은 청소년들은 이주의 경험을 1번 이상 겪은 아동 혹은 청소년인 것입니다. ‘이주의 경험’이 있다는 1개의 특징으로 범주화한 것이기에, 이주배경학생이 “-한 학생”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이주를 언제 왔는지, 어디에서 이주를 왔는지, 부모님도 이주의 경험이 있는지, 이주를 온 장소가 어딘지 … 등등. ‘어떤’ 이주의 경험이 있는지에 따라, 겪고 있는 상황과 필요한 지원도 다르겠지요. 그 때문에 많은 집단에서는 대 개국적과 자녀의 출생 국가에 따라 이주배경청소년을 세분화하기도 합니다. 이주배경청소년을 이주배경청소년을 지원하는 무지개청소년센터,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에서는 국제결혼가정자녀(다문화청소년, 중도입국청소년), 외국인가정자녀(무국적자, 난민 포함), 북한이탈배경청소년(남한출생, 제3국출생 포함) 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류마저도 부처마다 천차만별인데요. 그야말로 ‘다양한 이주의 경험’이기 때문에 사실상 분류가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결혼이민지와 한국인 사이에 자녀가 태어난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자녀는 결혼이민자 본국에서 성장합니다. 이후 부모는 서로 이혼하게 되고, 결혼이민자는 다시 한국인과 재혼하게 되어 자녀가 한국으로 입국하게 됩니다.  이때 자녀가 겪을 수 있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중도입국했기에 한국어능력이 부족합니다. 두 번째로 한국의 학교 시스템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공교육에 진입하는 과정도 어려울 수 있죠. 세 번째로 새로운 가족에 적응이 어렵습니다. 네 번째로 한국문화 자체도 낯설어 정체성 혼란이 일어나거나 많은 스트레스가 발생합니다. 결국 국제결혼가정 자녀이지만 중도입국자녀로서 살아가는 위 상황에서는 다층적인 어려움이 혼재됩니다. 2. 불가피한 이주 확대 1) 한국의 인구 공백을 메우는 이주민 최근 핫한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에서 제 눈에 훅! 들어온 장면이 있었는데요. 바로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입니다. 농업이나 어업에서 농장주나 선장은 한국인이지만, 그 외의 사람들이 대부분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히려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일자리를 보는 게 더 드문 일인 것이죠. 1차 산업에서의 노동 인구 고령화와 노동 기피 현상으로 인해, 이미 오래 전부터, 농촌과 어촌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10년 전부터 이미 이주노동자 고용제도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계절근로자 제도’는 파종기, 수확기 등 계절성이 있어 단기간·집중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농어업 분야에서 합법적으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장호원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제 삼촌께서도 계절근로자 제도를 이용하여 이주노동자 1명을 고용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주노동자 고용제도는 ‘고용허가제’입니다. 인력을 구하지 못한 300인 미만의 제조업 등의 한국기업에 외국인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입니다. 계절근로자 제도는 최대 8개월 근무할 수 있지만, 고용허가제의 경우 재고용까지 한다면 4년 10개월간 근무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2024년 이주노동자 고용 허가 규모를 16만 5천 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2023년보다 37.5% 늘어난 규모인데요. 일자리의 빈 곳이 많으며 현장에서의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내린 결론임을 설명했습니다. 지방의 인구 소멸 또한 이주민들을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2022년 10월부터 ‘지역특화형 비자’를 신설하였는데요. 이는 지방의 인구 감소 지역 거주와 취업을 조건으로 외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해 주는 것입니다. 배우자 및 미성년자녀와 함께 들어와 살 수 있지만, 2년 동안 거주지가 제한됩니다. 2년 이후에는 이주가 가능하지만, 동일 광역자치단체의 인구 감소 지역으로만 이주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정부가 노동력 부족 문제와 지방 인구 소멸 문제를 ‘이주민’을 통해 해결하고자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주민이 ‘중요’한 것에서 더 나아가 ‘필요’한 것이죠. 한국에서 이주민들의 확대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2) 이주배경학생의 증가와 다원화 2024년 1월 기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44만 명이 넘습니다. 이주민들의 증가는 이주배경학생의 증가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10년간 이주배경학생 수는 매년 1만 명 이상 증가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주배경학생 수는 2019년 13만 7천 명에서 점차 증가하여 2023년 18만 1천 명을 초과했습니다. 전체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23년 521만 명에 달했는데요. 때문에 2023년 기준 전체 학생 대비 이주배경학생의 비율은 3.47%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위 그래프는 유형별 다문화학생의 비율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최근 두드러지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전체 이주배경학생 중 국내 출생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감소하였습니다. 2018년 기준 국내 출생 이주배경학생은 82.1%이지만, 2018년을 기점으로 80% 이하로 감소하였고 2023년에는 71.7%까지 하락했습니다.  두 번째는 외국인가정 이주배경학생의 비율 증가입니다. 중도입국 이주배경학생은 2013년 8.8%에서 2023년 6.0%로 적은 감소를 했지만, 외국인가정 이주배경학생은 2013년 9.0%에서 2023년엔 그의 두 배가 훌쩍 넘는 22.3%까지 상승하였습니다. 위의 그래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내출생 이주배경학생들이 여전히 높은 비율을 갖고 있지만 10년 전에 비해 다원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이주민다방문지역 소재 학교 증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밀집’이라는 말이 이주민/외국인과 함께 쓰일 경우,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이에 필자는 ‘이주민 다방문 지역’으로 표기합니다. 다만 통계자료 이용 시에는 해당 통계에서 사용된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에서도 대림동은 H-2 비자, 다시 말해 동포 비자를 받은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도 평택과 같은 곳은 제조업 회사가 많은 곳으로,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합니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은 제조업이 밀집해 있는 곳에 있게 되고, 계절 근로자는 농어업이 발달한 곳에 거주합니다. 결혼이민자들의 경우에도 대다수 청년 인구가 부족한 지역에 거주합니다. 또 정부에서는 지역특화형 비자를 부여하여 특정 인구 소멸 지역에 이주민이 거주하도록 하고 있죠. 이와 같은 상황에 더해,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이주민 밀집 지역은 총 57곳으로 시 25개(43.9%), 군 18개(31.6%), 구 14개(24.6%)입니다. 이는 전체 시·군·구의 약 25.7%에 해당하며, 최초 조사 시점(2006년) 대비 약 2,850% 증가하였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전교생 100명 이상, 이주배경학생 재학 비율이 30% 이상’인 경우를 밀집학교로 분류하고 있는데, 2018년~2023년 사이 전체 학교 수가 1.57% 증가한 데 비해 이주배경학생 밀집학교의 수는 278.26%로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이주민다방문지역의 학교는 이주배경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데요. 중도입국 이주배경청소년이 증가하고 있지만, ‘’어학 능력 부족’, ‘한국어  교육 능력 부족’, ‘다문화교육 설계의 어려움’ 등 교사의 다문화교육 역량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주배경학생의 낙인효과나 차별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이주배경학생 중심 교육으로 인한 비이주배경학생 역차별이 있기도 합니다. 이주배경학부모를 위한 교육 지원 역시 필요하나, 실제 지원은 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이주배경학생의 비율이 높은 지방의 경우, 지역 사회에서의 교육 연계가 더더욱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3. 적극적인 정부 대응의 필요성 1) 유럽의 국가적 문제 : 이민 2세대·3세대의 불평등 호소 한국보다 먼저, 이주민들과의 공존하고자 했던 나라들이 있습니다. 프랑스는 19세기 후반부터 많은 이주민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산업화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그 자리를 많은 이주민들이 메꾸게 됩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인데요. 한국에서 독일로 광부나 간호사로 파견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1950년대 후반부터 많은 노동자가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또한 제2차세계대전 이후 그들의 옛 식민지에서 적극적으로 노동자를 끌어들였지요. 그리고 시간이 훌쩍 흘러, 이주민들은 그 나라들에 터를 잡고, 자녀가 태어나고, 또다시 그들의 자녀가 태어납니다. 2023년 7월, 작년 이맘때쯤 프랑스 전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이 시위는 알제리계 이민자 소년 ‘나엘’이 경찰에 의해 사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통 검문을 받던 나엘이 차를 탄 채로 출발하려 하자, 경찰은 나엘을 향해 총을 쐈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경찰은 나엘이 경찰을 향해 차를 몰았다고 주장했지만, 현장 영상이 퍼지자, 과잉 진압으로 사망함이 드러났죠.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히 과잉 진압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이민자 차별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프랑스는 19세기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이민자를 유입합니다. 유엔에 따르면 2020년 프랑스 전체 인구의 13%가 이민자들인데요. 혹자는 프랑스의 성장에 이민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과 이민 가정의 높은 출생률, 이민자 출신 문화계 인재들 등. 부족한 일자리와 인구 감소 문제에 해결책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나엘’의 사망 사건처럼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차별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요. 실제로 이민자 청년들의 평균 실업률은 프랑스 전체 평균 실업률에 비해 두 배가 넘었으며, 사회적인 차별과 학업 실패 등으로 부모 세대의 가난을 대물림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민자가 프랑스 문화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프랑스의 이민 원칙은,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충돌을 만들었습니다.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이 있는 1세대와는 달리, 이민 2세대와 3세대들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국민’이라는 의식이 강합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주변 친구들이 모두 프랑스인이며 프랑스어를 쓰는 2세대와 3세대들은, 부모세대부터 이어져 온 차별에 반발합니다. 이들의 불만은 점차 유럽의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고, 많은 국가가 이주민과 선주민의 대립을 줄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 한국 정부, 임시방편의 이민 정책 지역특화형 비자 혹은 외국인 고용허가 제도를 살펴본다면, 정부는 이주민을 ‘노동력 대체제’ 혹은 ‘인구소멸 방지 대책’으로 도구화하여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2023년에 발표한 ‘제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서 ‘국민과 이민자가 함께 도약하는 미래지향적 글로벌 선도국가’를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통합]과 [인권]의 정책은 과거에 비해 후순위로 밀렸지만 [경제]의 정책은 이번 정부에 급부상했습니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이민자와 우리 경제에 필요한 이민자 유치와 육성이 그에 해당하는 내용인데요. 한국이 당착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이주민을 바라본다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가 파생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대부분의 정책들에서도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체류기간을 늘려준다’ 혹은 ‘우리가 필요하기에 정주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식의 접근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제] 분야에만 집중한다면 이주배경청소년 혹은 결혼이민자와 같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주민들의 상황이 악화할 수 있습니다. ‘제 7차 청소년정책 기본계획’에도 이주배경청소년에 대한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며, 다문화와 관련된 교사 연수 참여 실적도 저조한 상황이죠. 현재 다문화가정 자녀의 대학 이상 취학률은 40.5%로 한국 전체 평균인 71.5%에 비해 월등히 낮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 우리는 유럽의 선례들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2021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가구 자녀의 평균 연령은 10.7세입니다. 이는 아직 한국에서 유럽의 사례 같은 이민 2세대와의 갈등이 가시화되지 않은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도입국 이주배경학생이 많아지고 청소년기 자녀 수가 크게 증가하였으므로, 한국에서도 이주민들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마치며 :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다문화 존중 방법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다문화 교육 방법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하지만, 미국에서는 포크와 숟가락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한복을 입지만, 일본에서는 기모노를 입는다.” 이것은 다문화 교육이 아닌, 국제이해교육입니다.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가르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교육이 바로 진정한 다문화 존중 방법이겠죠. 오랜 이민의 역사를 가진 호주에는 이백 개 이상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 국가입니다. ‘다채로운 국가, 호주에서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진행할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호주에서는 학생의 다양성을 고려하기 위해, 선생님들의 다양성에 대한 계획장애 학생의 요구 충족, 영재 학생들의 요구 충족, 영어가 제2 언어 또는 사투리인 학생들의 요구 충족, 그리고 관할권과 자료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문화→가족의 문화→친구의 문화→지역 사회의 문화) 보자마자 눈에 딱 들어온 단어는 ‘자신의 문화’였는데요. 레벨1부터 레벨 6까지, 자신의 문화에서 가족의 문화 그리고 친구의 문화, 마지막으로 지역 사회의 문화까지 내 세계를 확장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결국 다시 말해, 다문화라는 것이 인종 다양성만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친구네 집 문화와 우리네 집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다문화 교육의 첫 걸음입니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장 옆에 있는 내 이웃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요? 한 명, 한 명이 존중받고 다채로운 세상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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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시위, 대학생이 이뤄낸 총리 사임
방글라데시 '국가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 반대 시위 타임라인 지난 7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 500명이 넘는 방글라데시인들이 모였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과, 가정을 책임지며 가장으로서 일하러 온 노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총리 셰이크 하시나의 퇴진을 요구하며 국제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인 시위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6월, 방글라데시 각 지역의 대학생들을 주도로 ‘공무원 일자리 할당제’ 반대 시위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곧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됩니다. 이번 시위로 인해 300여 명이 방글라데시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2024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방글라데시 내 통신이 차단되어 시위의 상황을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보과학연구소의 존 하이드만은 “인구가 1억 7,000만 명인 나라에서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은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로 본 적이 없는 조치”라 일컫습니다. 국가유공자 후손에게 주는 특혜는 한국에도 있습니다. 국가유공자에 공직의 일부분을 할당하는 것은 ‘존중의 표시’일 수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싸운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그들을 존중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대학생들이 의문을 던졌던 부분은 ‘특혜의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의문으로 15년간의 하시나 총리의 집권 하에 이루어졌던 수많은 억압에 국민들이 분노가 드러났습니다. 그 속에 대외적으로는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경제 파탄을 몸소 겪던 청년들이 불꽃을 지폈습니다. 방글라데시 ‘국가가유공자 가족, 공무원 일자리 할당제’의 변천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은 1971년 당시 동파키스탄이었던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두고 파키스탄군과 인도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입니다. 이 결과로 방글라데시가 독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1972년 공무원 일자리 할당제가 도입됩니다. 이 제도의 논란이 되는 지점은 공무원 일자리의 30%를 국가유공자 가족에게 할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외에 여성에게는 10%, 저개발 지역에는 10%, 원주민 등의 소수 민족에는 5%, 장애인에는 1%가 할당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안정적인 공무원 일자리가 주목받듯이, 경제가 안정되지 않은 방글라데시에서도 공무원 일자리는 매우 치열합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절반 이상, 정확히는 56%가 이미 할당된 채 진행되는 이 제도에, 많은 학생과 시민 단체는 공정성을 이유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합니다. 결국 2018년, 전국의 공립대학 학생들이 할당제 개혁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터졌고 이에 이 제도는 폐지됩니다. 하지만 다시 2024년 6월 5일, 방글라데시 다카 고등법원은 “합헌적이지 않고 불법적이며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할당제 폐지가 무효라 판결합니다. 다시 이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타난 것이죠. 결국 사법부의 결정으로 정부는 ‘국가가유공자 가족을 대상으로 공무원 일자리의 30%를 할당한다’는 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카 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전국의 대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나가 할당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분노한 이유, 40%에 다다르는 실업 취업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취업이 되던 시기도 한참 지나, 이제는 30대들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2023년 기준 5.7%입니다. 반면 방글라데시 청년 실업률은 17.5%에 달하며 현재 1,800만 명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OECD 평균인 10.6%에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방글라데시 대학 졸업생들의 실업률은 17년 기준 47%에 달했으며, 최근 자료에 의하면 40%에 육박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취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시기부터 줄곧 약 20년 동안 청년층 공무원 선호도는 1위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상황에서 방글라데시 공무원직은 청년들이 선망하는 일자리입니다. 민간 부문의 일자리 기회가 확대되고 있긴 하나, 상대적으로 보수도 높고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자리의 56%를 특정 계층에 할당한다는 것이, 불공정하게 다가옵니다. 결국 매년 약 40만 명의 졸업생이 공직 3천 개를 놓고 경쟁하게 되는 것이죠. 심지어 많은 대학생은,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이익을 위한 정책이라고 비판하는데요. 친정부 단체 회원들의 자녀를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해외로 취업하는 청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23년 해외송금 유입은 219.1억 불로 전년 대비 2.96% 증가했다고 합니다. 또 해외 송출 인력은 21년 61.7만 명, 22년 113.5만 명, 23년 130.7만명 으로 해마다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4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인구는 약 13,500명이라고 합니다. 급격한 경제성장 이후, 불거진 정부 불신 코로나 이전,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중 하나 였습니다. 2009년 하시나 총리의 재임 이후 방글라데시는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6%대를 기록하며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로 꼽혔던 방글라데시는, 2019년을 기점으로 파키스탄과 인도를 앞질러 2022년 2,688달러를 기록하게 됩니다. 2009년 기준 1인당 GDP는 698달러로, 무려 4배 가까이 다다른 수치입니다. 의류 산업 등 노동집약적 산업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추진한 하시나 총리는 방글라데시의 경제 호황을 이끌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018년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6위에 오르기도 할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방글라데시 경제는 코로나19와 세계 경제 침체로 2022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주방글라데시대사관에 따르면 2023년 방글라데시 인플레이션은 10%에 육박하였으며, 소비자 물가가 실질 소득보다 높아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대폭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높은 인플레이션) (IMF)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짧은 경제 호황 이후 흔들린 경제에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게 됩니다. 경제 성장을 이끈 방글라데시 총리 셰이크 하시나, 억압의 상징으로. 셰이크 하시나는 한때 방글라데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방글라데시의 ‘건국 아버지’라고 불리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입니다. 그는 방글라데시 독립을 위한 독립운동가였으며 건국 이후 초대 대통령이 됩니다. 하지만 1971년 독립 이후 방글라데시에서는 쿠데타가 여러 차례 발생했고, 1990년대까지 후세인 무함마드 에샤드 장군이 군부 독재를 이끌었습니다. 이때 셰이크 하시나는 현 집권당인 아와미연맹을 이끌며 반군부 민주화 투쟁을 벌였고, 이때 민주화 상징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1996년 첫 선거에서 승리하며 40대 여성 총리에 올랐고 이후 약 21년간을 집권하며, 가장 오랜 기간 집권한 선출직 여성 지도자가 됩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보다도 오래 권력을 잡은 셈입니다. 방글라데시 민주화의 상징이자 최고의 여성으로 추대받던 셰이크 하시나, 그를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습니다. 인권 단체들은 하시나 총리가 2009년 재집권한 이후 최소 600건의 의문의 실종 사건이 발생하고 수백 명이 의문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18년 치러진 방글라데시 총선에 15명 이상 사망한 사건도 있었는데요. 야권과 인권 단체들은 총선 유세기간동안 정부가 1만 5천 명의 활동가들을 구금하는 등의 행위로 하시나 총리의 부당 행위에 관해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야권 후보 17명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1월 7일에 진행되었던 방글라데시 총선에서는 아와미연맹이 전체 의석의 78%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 선거는 주요 야당인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과 일부 군소 정당들이 보이콧하며 총선에 불참했는데요. 주된 이유는 ‘부정선거’였습니다. BNP의 몇몇 주요 지도자와 지지자들 약 25,000명이 체포된 상태였으며 전년도 야당 집회에서의 유혈사태도 그 이유가 되었죠. 결국 투표율은 직전 총선의 절반인 40% 수준을 보였습니다. 이런 비판 속에서 하시나 총리는 말합니다. “15년 이상 나는 이 나라를 건설해왔다. (중략) 내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 어쩌면 국민들은 하시나의 진정이 깃든 사과와 그에 대한 올바른 대책을 원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소리를 외면한 건 하시나 전 총리였습니다. 우리, 세계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 얼마 전, 저는 서울에 한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외국인노동자 대상 자기 계발 프로그램의 보조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의 대상자 대부분이 방글라데시 청년들이었는데요. 저와 비슷한 나이의 청년들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해외로 나와 각기 다른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제게 물음을 던집니다. “선생님, 대학교 졸업하면 대기업 들어갈 거예요?” 사회통합시스템에서 한국 자본주의 하의 산업구조를 배웠나 봅니다. “하하, 요즘은 대학생들이 취업하기가가 어려워서요. 잘 모르겠네요.” 이에 갑자기 여러 청년이 모입니다. 하나같이 방글라데시 청년의 어려움에 대해 말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알람 씨가 열을 내어 말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진짜 취업 안 돼요. 대학생들, 청년들 너무 힘들어요.” 방글라데시, 한국에서도 멀리 떨어진 나라입니다. 쉽게 가볼 수 없는 그 나라의 청년들을 한국에서 마주합니다. 문득 영화 <국제시장>이 떠오릅니다. 한국의 1960년대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방글라데시와 비슷하게 한국도 봉제산업이 가장 큰 시장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가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 독일로 파견 나가 열심히 일했던 지금의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계셨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청년 문제는 단순히 ‘그’ 나라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한국의 과거가 드리워집니다. 하시나 총리의 억압적인 정치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지탄받아 왔습니다. 적지 않은 세계 인권 단체들이 비판을 해왔지요. 하지만 결국, 죽어서는 안 되는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에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지요. 이미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UN, 세계 인권 단체, 미국과 영국 등이 방글라데시 정부의 무력행사를 비판하며 평화적 시위의 권리를 지켜달라고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시위는 지속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했던 순간이었습니다. 2013년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 참사 이후, 우리는 국제적인 관심으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인재를 줄일 수 있다는 선례를 보았습니다. 타자화하지 않는 나 자신, 그리고 사회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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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씨앗, 자녀의 사생활을 공유하는 셰어런팅 [함께 디지털 안전]
0. 들어가며 제 인스타 돋보기 탭에 들어가면 귀여운 강아지들과 아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볼 수 없는 것 시대라고들 하지만, 핸드폰을 열면 수많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여러 아이의 랜선 이모가 되어 열렬히 아이들을 응원하고 애정하고 있습니다. 때론 아이들의 순수한 말들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엉뚱한 아이디어로 소리 내 크게 웃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밈이 되어 친구들과의 대화 때에도 종종 사용하죠. 비혼에 대해 열려있는 우리 세대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아- 나도 결혼해서 저런 아들, 딸 낳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리고 항상 그곳에는 출산 장려 홍보 영상으로 넣어도 손색없는 행복한 가족이 보이죠. 그런데 얼마 전, 제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다니게 만들었던 영상 하나를 마주하게 되었는데요. 한 아이가 길에서 자신에게 “너 인스타그램에서 본 적 있어~”라는 말을 듣고, 엄마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는 영상입니다. “나는 호주, 필리핀, 미국만 가봤는데… 엄마! 우리도 인스타그램 가보면 안 돼요?” 아직 인스타그램의 존재를 모르는 아이가, 인스타그램을 현실 세계 공간으로 인식하여 나타난 귀여운 영상이었죠. 이 영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봤다며 이름을 불러 아이를 유괴할 수도 있지 않을까…? 1. 셰어런팅(Sharenting)이란? 셰어런팅(sharenting)은 공유(share)와 양육(parenting)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합성한 말입니다. 주로 양육자가 아이의 일상을 소셜미디어나 동영상 서비스 등에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사진과 영상 등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에 올리는 것도 포함하지만, 더 큰 범위로 보았을 땐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거나 친인척 카카오톡 단체방에 올리는 행동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런 셰어런팅을 하는 부모를 ‘셰어런츠(sharents)’라고도 부릅니다. 셰어런팅은 영국의 일간지[가디언]에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들은 셰어런츠는 소셜 미디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활발히 참여한 사람들이며, 낯선 사람과 자기 생각을 공유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기에 셰어런팅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하였습니다. 셰어런팅,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아동 권리 보호 비영리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이 2021년 11살 이하 자녀를 둔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을 주기적으로 소셜미디어에 올린다는 응답이 84%에 달했다고 합니다. 자녀가 만 5세 이하일 경우에는 89%에 가까운 부모가 셰어런팅을 하고 있거나 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자녀가 만 5세 이하일 때 셰어런팅이 두드러지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기적으로 자녀의 사진을 올리는 84%의 부모 중 42.7%는 일주일에 1회 이상 자녀의 사진 등을 게시합니다. 그러나 이들 중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 혹은 글을 게재하는 것에 대해 자녀의 의사를 구하거나 이해를 구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44.6%로, 게시 경험을 가진 부모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부모님들이 자녀의 정보가 담긴 SNS 게시물을 어떻게 공개하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 결과를 보면, 전체 공개로 설정한 부모님은 35.8%로 나타났습니다. 친구(팔로워) 공개로 설정한 부모님은 47%이고, 선택한 일부 사람만 공개하는 경우는 12.4%입니다. 또한, 비공개로 설정한 부모님은 3.8%에 그쳤습니다 국내에서는 2013년에 처음 시도된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셰어런팅의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부모님만이 알고 있는 아이의 엉뚱함과 귀여움을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담아, 많은 랜선 삼촌 이모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런 개방성과 함께 쉽고 빠르게 게시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되자, 일반인들 또한 ‘나만 아는 우리 아이의 귀여움’을 보여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인스타그램에서는 해시태그 ‘육아스타그램’이 약 4,600만 게시물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셰어런팅을 통해 자연스레 육아 정보를 나누기도 하지만,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2. 지금 당장이 아닌, 미래의 문제 : 셰어런팅 셰어런팅을 하는 즉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셰어런팅으로 인해 미래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널리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울리는 사진과 영상들은, 게시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인 관심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더 큰 관심을 받아 불특정 다수에게 닿게 되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과 닿게 되거나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제삼자로 보게 되었을 때 문제가 종종 발생합니다. 셰어런팅의 두 가지 큰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자녀의 의사 반영의 어려움 이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이들의 의사가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어린아이들은 당연히 의사를 묻지 않고 사진 및 영상을 올리게 됩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초등학교 이상의 아이들도 완전히 의사가 반영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한 영상을 보았는데요. 부모님께서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유튜브에 얼굴 공개를 해도 괜찮겠냐, 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는 잘 모르겠지만 괜찮을 것 같다, 는 말을 남겼는데요. 과연 아이가 미디어로 인한 결과를 모두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태어나면서부터 온라인에 정보를 쌓아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아이들이 SNS의 역기능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추기란 어렵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이 본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공개된 아이의 얼굴은 인터넷 ‘곳곳에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죠. 2) 자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빠르게 퍼지는 범죄 악용 도이치 텔레콤이라는 독일 회사의 공익 영상 하나를 같이 한 번 볼까요? SNS 돌아다니는 어린아이 ‘엘라’의 사진에 AI 기술을 접목해 성인이 된 ‘엘라’가 부모님께 영상 편지를 쓰는 영상입니다. 성인 엘라는 부모님이 사랑으로 올린 사진들이 범죄로 악용될 수 있는 미래를 horrible future라고 일컬으며 여러 사례를 보여줍니다. 1. 엘라가 행한 일이 아님에도, 범죄에 연루되어 감옥에 간다.2. 영상의 목소리가 스캔 되어 보이스피싱에 사용된다.3. 학교에서 밈이 된 나의 영상들로 굴욕을 받는다.4. 딥페이크 기술로 음란물에 엘라의 얼굴이 합성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이의 이름은 물론이고 사진에 보이는 것들로 사는 곳과 학교 등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제 책가방에 달린 이름표를 보고, ‘네가 서희구나~ 나는 서희 아빠 친구야.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라는 말로 저를 데려가려고 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 어머니는 그 이후 학교 가방이나 명찰을 전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저처럼 악의적으로 아이에 대한 정보를 파악 후 아이에게 접근한다면, 아이는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호주 사이버안전위원회가 호주 소아 성도착증 범죄 사이트에서 발견한 사진의 절반가량이 SNS 사진이었습니다. 부모가 올린 사진·영상이 추후 범죄에 악용되었던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한국에서 2021년 10월 한 범죄자가 SNS에서 확보한 정보를 활용해 9세 여아에게 접근해 유괴했다가 미성년자 유인 혐의로 구속된바가 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는 SNS 유료 구독 기능을 통해 미성년 자녀를 돈벌이 수단으로 착취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걸며,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에서 내부적으로 문제 제기되었다는 사례가 드러났습니다. 메타의 내부 조사에 따르면 유로 구독 콘텐츠에는 비키니 차림의 어린 여자아이 사진들도 포함되었으며, 해당 이미지에는 성적인 댓글이 달렸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스타그램의 자동 추천 알고리즘이 아동 모델 계정의 구독을 소아성애 성향의 이용자에게 추천하고 있는 점입니다. 3. 셰어런팅에 의한 문제를 막기 위한 노력 1) 잊힐 권리, 개인정보보호법 2021년 3월 국제연합 UN 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 프라이버시권을 ‘디지털 환경에서 보장해야 할 아동의 권리’로 규정하였습니다. 유럽연합에서는 17세 미만 아동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 ‘잊힐 권리’를 명시합니다. 잊힐 권리는 2014년 유럽연합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가 내린 판결에 따라 생긴 단어입니다. 국내에서는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보통신망법 제 44조의 2항에서 정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온라인 상에 노출되고 있는 자신의 각종 개인정보를 삭제 요청 할 수 있는 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23년부터 국내에서도 ‘아동 청소년 디지털 잊힐 권리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만 24세 이하 대한민국 국민은 개인정보 포털 ‘지우개’ 서비스에서 본인이 작성한 게시물에 대한 삭제를 신청할 수 있고, 본인이 쓴 게시물이 아닐 경우에 대한 상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셰어런팅의 위험성을 양육자, 지역기관,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기관 등에 교육하는 것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근본적으로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 원칙이나 제도가 미비한 상황입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22조 6항은 아동 개인정보 수집 시 법정대리인 동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본인이 개인정보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동·청소년이 ‘보호’ 대상일 뿐, ‘권리 보장’ 인식이 미흡한 것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보호하는 대상을 더욱 넓히고, 연령대별 세부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도화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2) 아이의 성적 대상화 규제 자극적인 게시물과 영상 대상으로 수익 창출하는 것을 규제하고 임의로 삭제해야 합니다. 이는 이미 진행하고 있는 플랫폼이 많은데요. 페이스북은 유아의 알몸 이미지가 발견되는 즉시 임의로 지우고, 허락 없이 사진을 퍼가서 올리면 삭제 요청이 가능합니다. 유튜브는 침실, 욕실에서 미성년자를 촬영하거나 개인 신상이 노출된 영상을 게시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경도가 심할 경우 일부 기능이 중지되기도 합니다.  3) 인식 개선의 필요 자녀에 대한 게시물을 올렸을 때 이후의 내 아이가 싫어하지는 않을지, 게시함으로써 부정적인 작용이 일어나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이 아주 필요합니다. 이미 엄마가 SNS에 자신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자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충분히 서로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이가 어려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우면 보수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단 양육자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셰어런팅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사진을 공유하고자 할 때, 그것의 의사를 콘텐츠 제공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후 콘텐츠 제공자가 게시물을 삭제하더라도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스크린 캡처나 영상 저장은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4) NGO의 '셰어런팅 가이드라인' 콘텐츠 제공자의 입장에서 셰어런팅의 가이드라인입니다. 대부분의 기관들에서는 아이의 의사를 묻는 것을 시작하여, 아이의 개인 정보는 최대한 가린 채 게시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외에도 게시물을 주기적으로 삭제하거나, 개인정보 보호가 지켜지고 있는 확인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유니세프의 셰어런팅 가이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5. 나가며 2018년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 바클리 은행은 "2030년 말까지 청년들이 직면하는 신원 사기(identity fraud) 중 3분의 2가 셰어런팅에서 비롯되고 매년 피해액은 6.7억 파운드(한화 약 1.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더욱 문제가 심각할 수 있는 ‘아동’에 한정해 글을 작성하였지만, 이것은 아동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SNS에 올리고 있고 그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무한히 뻗어 나갑니다. 이에 대한 피로감을 표현한 일부 Z세대들은 폐쇄형 SNS를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SNS 플랫폼에서 더 나아가 인터넷 트래킹으로 나의 욕구들을 파악하는 상황에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합니다. 최근 오픈 AI와 앤트로픽이 Rrobot.txt로 데이터 크롤링을 거부한 사용자들의 데이터도 무시하거나 우회해서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일반 개인 사용자들은 원하지 않음을 밝혔음에도 사용자들의 데이터 수집을 막을 방법이 없는 실정입니다. 메타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자녀 사진도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미 가족사진을 여러 차례 게시하였지만, 처음으로 자녀 얼굴을 스티커로 가려 올린 것입니다. 셰어런팅의 가장 큰 장을 만든 당사자가 정작 자기 자녀의 얼굴을 가린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방문한 웹사이트에서 생성된 파일인 쿠키 설정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자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심코 ‘모두 동의’를 누르는 회원가입의 상황에서도 개인정보와 관련된 사항을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개인 사용자들의 노력만으로 데이터 확산 혹은 오용을 막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지정된 개인정보만을 사용하고 불법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정부의 규제 및 관리도, 기업들의 꼼꼼하고 청렴한 운영 방식도 필요합니다. 자유롭지만 누구도 고통받지 않는 커뮤니티를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안전한 디지털 공간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야이기를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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