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언론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데요. 일반 대중이 가지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가장 두드러지겠지만 언론계 내부로 보자면 이 시기를 거치며 기자의 노동환경, 특히 정신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대두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부 언론사는 이태원 참사 이후 기자들의 정신과 진료를 지원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 기사에 나온 사례처럼 문제는 곳곳에서 발생합니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좋은 노동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는 게 필수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기자의 기삿거리 정도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기사'가 좋은 기사의 기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망한 교사의 일기장을 보도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공개하면 정말 더 나은 사회가 만들어질까요? 기사를 쓰기 전에 기자들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으면 합니다.
같은 사안이라도 해당 지역의 시민과 수도권의 시민이 느끼는 격차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다양성을 담기 위해서도 지역 언론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물론 지역 언론에서 벌어지는 광고 협박 등 고질적인 문제들도 해결되어야겠지만요.
아래에 있는 쿠팡 로켓배송 관련 글과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네요. 공유경제와 플랫폼 노동은 한국 사회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배달앱 등 한국인의 식습관부터 갖가지 소셜커머스의 배송까지 생활습관에도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들의 노동이 제대로 인정받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사회적 인식의 문제도 있겠지만 제도적 울타리 안에서 보호되지 않는 현실 때문입니다. 공유경제를 비롯해 플랫폼 노동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를 위해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비슷한 듯 다른 것 같지만 읽으면서 한 자리에 앉아 누군가에게 시간을 쏟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를 떠올렸습니다. 궁금하다는 건, 이해한다는 건 상대방 혹은 무언가를 충분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의미 같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