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리얼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나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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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남성성' 의제로 활동하는 페미니즘 단체입니다.
<리얼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나> by 남함페 정민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Pixabay

지난해 12월 26일, 관세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리얼돌 수입통관 지침』이 개정・시행됨을 알렸다. 사실상 전신형 리얼돌의 수입, 유통의 활로가 열린 셈이다. 근거가 된 법원 판결문 중 ‘문란한 느낌을 주지만,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평가할 정도는 아니다’에서, 어떻게 더 표현해야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아함을 누른 채 자료를 찾았다. 이때 몇몇 포스팅을 훑다가 깜짝 놀란 대목은, 쿠팡에서 리얼돌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었다. 국세청 창고에서 보관되던 리얼돌이 시중에 풀린다는 기사, 기다렸다는 듯 체험방이 운영될 거란 보도는 접했지만, 우리 집 현관까지 진입한 쿠팡에서 리얼돌과 만나리라 상상한 적 없었다. 가격도 천차만별, 수십만원부터 7백만원이 넘는 제품도 검색됐다. 두 번의 성인인증만 거치면 ‘프리미엄플래티넘명품’이라는 ‘인물’을 장바구니에 담아 소유할 수 있었다. 조사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는 내게 남은 생각은 이뿐이었다. ‘아니,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법적 허용 & 금지 이전에 따져볼 문제들

사실 수입・통관의 허용 여부는 핵심이 아닐 수 있다. 리얼돌은 이미 국내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쿠팡의 상품 후기를 통해 구매 시기를 확인해보니, 진즉 유통과 구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국내 공급에는 수입이 절대적 요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한 수입・통관의 논의는 ‘전신형 리얼돌’에 국한되어 있는데, 실상 여성의 특정 신체를 본떠 만든 ‘남성용 자위기구’는 오래전부터 판매되어 왔다. 나아가 이 제품 중 몇몇은 실제 일본 AV 배우의 신체를 본떠 만들었다고 홍보한다. 이는 리얼돌을 비롯한 남성용 자위기구가 포르노 및 성매매와 같은 성산업과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는 또한 리얼돌이 한 사회가 여성을 어떤 존재로 대하는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소비하는가와 관련한 문제임을 시사한다. 즉, 법적 금지에 관한 논의 이전에, 여성의 신체를 성적 도구로 전락시켜 소비하는 건 괜찮은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규정해 남성의 성욕을 위해 ‘봉사’하도록 여겨도 되는지에 관한 최소한의 도덕적 물음이 있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물건’이라도 말이다.

이른바 리얼돌 논쟁에서 너무 쉽게 전제되는 사항은 ‘리얼돌은 사람이 아닌 인형’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형이니 괜찮다’는 진술로 이어진다. 문제는 그것의 제작 기준이 실제 여성의 몸으로 설정됨에 있다. 리얼돌은 현실 여성의 신체와 유사할수록 높은 값이 책정된다. 2019년 리얼돌의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하라는 국민청원이 개재된 데는 실존 여성의 얼굴을 리얼돌로 제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합성 기술과 AI 안면인식을 활용해 ‘지인능욕’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성폭력이 발생하는 작금의 현실을 고려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염려였다(지인능욕 뿌리뽑기). 국민청원으로 표출된 분노는 리얼돌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넘어 현실 여성이 실체적인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위에 놓인 것이었다. 리얼돌에 담긴 여성의 성적대상화는 하나의 스펙트럼처럼 연속적 단계를 가지는 것 같다.‘성매매&성산업 - 남성용 자위기구 - 전신형 리얼돌 - 실존 여성을 두고 제작한 리얼돌의 도식처럼 말이다. 이 과정은 여성을 향한 남성의 지배 욕구가 노골화・실재화 되는 과정이다. 이처럼 리얼돌은 그 묘사와 구현 방식에 있어, 남성이 여성의 몸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상화라는 문제

리얼돌이라는 인형 안에 담긴 속성이 비록 성적대상화로 가득차있다 하더라도, 어찌되었건 인형은 인형 아니던가. 인형한테 무엇을 어떻게 한들 결국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싶을 수 있다. 마치 누아르 영화를 즐겨 본다고 해서 실제 폭력을 자행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대상화라는 건 여러 각도로 따져볼만한 관점이다. 우리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누군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가또한 중대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 글은 가수 이적이 과거 SNS에 게재했던 단상이다.


@한경닷컴 뉴스기사(가수 이적 SNS)


물론 이 글을 두고 ‘비약이다’라고 응답한 네티즌의 말마따나, 눈사람을 걷어차는 행위가 곧 동물 학대는 아니며, 동물 학대가 곧 사람에 대한 폭력은 아니다. 그러나 글에 묘사된 남자친구가 어떤 대상을 걷어차며 크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중요하다. ‘눈사람’ 정도로 여겨지는 대상은 언제든 다시 걷어찰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는 언젠가 A씨가 ‘파괴해도 될 대상’이 되면 걷어차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걷어차는 행위는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강자/약자, 윗사람/아랫사람, 귀한 것/천한 것, 중함/사소함이라는 위계와 약자에 대한 대상화가 뚜렷할 때 가능하다. 사연의 남성은 이러한 인식에 깊이 뿌리내린 권력의식을 바탕으로, 아무 맥락 없이 ‘그냥’ 눈사람을 걷어찬 것이다. 위 글 속의 성별관계 또한 중요하다. 걷어찼던 성별이 여성이고, 그걸 남성이 지켜봤어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사뭇 달랐을 것이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데이트 폭력으로 여성이 죽고, 성폭력 가해자가 직장동료·학우·이웃·친족 등 ‘가까운 사이’인 경우가 부지기수임을 너무 잘 알지 않은가. ‘그냥 발길질 한번 가지고’로 넘어가기에, 무맥락의 ‘사정 없는’ 폭력성은 무게가 꽤 나간다. 안전이 전제돼야 할 연애관계를 고려하면 더 그렇다. 이러한 논의는 눈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해함・평온함・온정의 상징과 그것을 만들었을 누군가의 정성을 무미건조하게 짓밟은 것을 차치하고도 가능하다.

이 서사에서 리얼돌의 포지션은 눈사람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리얼돌로 여성의 몸을 소유하려 한다면, 이 성적대상화의 종합적인 산물을 유희를 위해 꺼내 쓸 수 있다면, 평소의 사람 관계를 어떻게 상정하고 있을지, 그리고 그 관계가 한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를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인과관계라면 비약이겠지만, 상관관계라면 이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다뤄볼 여지가 많다. 게다가 이러한 사고의 비약은 유효하다. 우리 인간은 노비를 재산으로 셈하며 팔아먹던 역사, 흑인 노예를 상자에 가둬 짐짝처럼 다뤘던 기억을 갖고 있다. 당연히, 그들은 그때도 인간이었다. 그러나 ‘노예인데 뭘 어때’라는 일념으로 인간이 그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다. 먼 얘기 같다면 20세기 초 조선인의 삶을 떠올리면 된다. 모든 순사가 조선인을 죽이진 않았지만, 순사로부터  총검이 떠오르는 건 결코 억지가 아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 그 결과는 참혹했고, 아직 끝난 이야기도 아니다. 함부로 대해도 되는 대상이 따로 있다는 구별, 그리고 그런 대상을 막 대하는 건 정당하다는 뻔뻔한 폭력성을 사유하는 비약이라면 몇 번이고 이뤄져야 한다.

남성의 성적 욕망과 여성의 몸

한편 리얼돌과 이를 옹호하는 주장들은 아주 오래된 편견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남성의 성적 욕구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는 성별고정관념이다. 성적 욕구는 남자라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때마다 경험하는 것도 아니며, 끌려다니도록 조건화된 것도 아니고, 반드시 배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배가 고파도 빵집에서 빵부터 집어먹지 않는다. 식욕 정도는 참을만 해서가 아니다. 꾸준한 교육과 훈련으로 학습된 ‘기본소양’이 만들어낸 결과다. 또 이따금 리얼돌이 성욕 해소를 대신해주므로 성범죄를 막는 데 유용하다는 따위의 주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성범죄는 성욕이 아니라 왜곡된 성인지와 위계로 인해 발생한다. 욕구가 행동을 결정하지 않으며(제발), 이 글은 리얼돌의 소비로 인해 더 왜곡될 성인지를 우려해 쓰는 글이다(제발2). 

짚고 넘어갈 것은 또 있다. 남성의 성욕은 반드시 여성의 몸을 통해 해소되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남성의 성욕을 매우 고유하고 본능적인 주체 행위로 이야기하면서, 그것의 해소는 반드시 어떤 대상이 ‘마련’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 ‘남성’의 욕구가 꼭 ‘여성’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면, ‘여성’은 ‘남성’의 욕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위치시키는 꼴이다. 여성의 몸을 경유하지 않고 스스로 욕구조차 충족할 수 없다는 건 그야말로 의존성이지 않을까. 이런 낡고 오래된 통념이 바로 맨박스(Manbox)이고,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과 그것을 위한 실천이 ‘남성지배’다. 이러한 편견들을 모두 조합하면 다음과 같은 명제가 성립된다. 남성의 당연한 성욕은 주기적으로 해소해야 하는 것이니, 그 역할은 여성(또는 여성형 리얼돌)이 도맡아야 한다. 이게 말이 될까? 그런데 리얼돌 산업은 이 두 가지 명제를 거름으로 먹고 자란다. 이러한 편견들이 가리키는 지점은, 바로 관계의 말소다.


@Pixabay
실제 같아야 하지만, 실제는 안 되는 아이러니

리얼돌 제품의 상품 후기를 보면 흥미롭다. ‘여친을 만들어 주었다’, ‘여친보다 좋다’, ‘여친이 없어서’, ‘결혼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등 끊임없이 현실 관계를 호출하고, ‘실제 살결 같다’, ‘진짜 사람 같다’, ‘완전 리얼하다’ 등 사람과 비교하는 발화가 이어진다. 여기서 가장 큰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리얼돌을 순수한 인형으로 인식하자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앞에서 밝혔듯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 리얼돌의 가장 좋은 점이 ‘실제 사람 같아서’라니.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좋은 평가를 받지만, 실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모순이다. 아마도 실제 사람이라면 제 멋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실상 성욕의 달성을 언제든 원하는 만큼 취하고 싶을 진데, 상대가 사람이라면 거쳐갈 단계가 많고 복잡하다고 느낄테니까. 그리고 그런 일방향적인 욕구가 곧 남성 성욕이라 여길 것이 불보듯 뻔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리얼돌을 구매하는 이들은 ‘틈만 나면 침대로 가자’고 말하는 여성 앞에서는 얼어붙거나 심지어는 못마땅히 여길 것이라 확신한다. 그들이 기대하는 건 이렇게 상호적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적 역동은 ‘관계의 소멸, 대상화의 확대’가 리얼돌을 소유하는 심리의 핵심이자 구매요인임을 말해준다. 이 지점에서 리얼돌에게도 옷을 입혀주고, 이름을 지어주고, 같이 목욕하고, 잠도 잔다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리얼돌의 본질을 놓쳐선 안 된다. 리얼돌의 목적은 어쨌든 성기능이다. 성기능이 없으면 리얼돌이 아니다. 존재 가치가 성기능으로 결정된 리얼돌에 관계성을 일부 부여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대상화되지 않은 성욕 해소의 대안이 없어서일까? 대안은 버젓이 있다. 한국에 진출한지 7년이 다 되어가는 텐가라는 기업의 존재 때문이다. 


@텐가 공식 홈페이지 온라인 스토어


텐가(tenga)는 남성 중심의 성인용품을 취급함에도,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로부터 자유롭다. 제품군 모두 성감을 위한 즐거운 자극 부여에 집중할 뿐, 그것의 외형을 묘사할 때 여성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제품의 모양은 기둥, 타원, 달걀로 다양하지만 모두 일관되게 여성의 몸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실제 여성과 비교했을 때 느낌이 어떤지 등을 언급하며 마치 물건 견적을 비교하듯 도구화를 일삼는 병적인 마케팅이 없다. 기능에 집중하고 제품의 특성을 말할 뿐, 특정 대상이 소비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텐가의 CEO 마츠모토 코이치는 창립 15주년 인터뷰에서, 텐가가 ‘여성의 나체나 소녀의 일러스트, 여성기를 본뜬 노골적인 형상에 관한 위화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음을 밝혔다. 텐가의 성공은 ‘여성의 몸을 경유하지 않은’ 성적 즐거움의 가치와 독창적인 제품 개발의 조화를 통해 이뤄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각적으로 ‘보는’ 남성 쾌락에서 실제로 내 ‘몸을’ 체험하는 남성 쾌락으로 담론을 이동시킨 것이다. 그렇기에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에 있어 텐가라는 기업은 중요한 위상을 지닌다.(텐가에서 프라이드 에디션 제품을 출시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프라이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일련의 축제, 행진, pride month를 일컫는 상징)

@텐가 공식 홈페이지
리얼돌, 왜곡된 남성 섹슈얼리티의 온상

리얼돌은 왜곡된 남성 섹슈얼리티의 모든 요소의 집합이다. 여성에 대한 지배(통제), (성적)대상화, 고립이 그 요소들이다. 여성의 형상을 한 ‘몸’에 자신의 모든 섹슈얼리티(특히 성적 욕망과 실천)를 담고, 집에 가둔다.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 꺼내쓸 수 있으므로 자유로운 듯 보이나, 실상 그 집에 갇힌 것은 자신이다. 가장 병폐적인 것은 고립이다. 고립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가능성의 상실이다. 고립된 생활에서 더 나은 삶,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기대가 자랄 수 없다. 이는 지배가 아닌 평등, 대상화가 아닌 관계맺음에 대한 고민을 원천차단하는 기재로 연결돼, 결과적으로 고립을 심화시키는 악화일로의 원인이 된다. 리얼돌은 고립을 고착화시킨다. 남성의 성해방은 커녕, 안 그래도 비좁은 자아와 소통의 창을 피부색 플라스틱 조직으로 틀어막을 뿐이다.

이 고립의 굴레를 빠져나가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위계나 권력 없이 사람을 만나기 어렵고, 평등하게 관계 맺는 것이 낯설고 불편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유해한 남성문화는 남성이 자신의 약자성을 드러낼 때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았던가. 또 우리 주변에는 여자 같다, 게이 같다, 하남자다, 찌질하다는 언어로 무장한 젠더 폴리스(특정 성역할의 강요를 위해 마치 경찰처럼 ‘문화적 감시·단속’을 실천하는 이들의 비유)들이 언제나 존재했고 말이다. 이로 인해 취약성을 드러내본 경험과 그것이 수용받은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길도 여전히 고립무원하다. 성적대상화 또는 성폭력과 관련된 이슈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남성들의 발화는 늘 이런 식이니까. ‘현실에서 여성을 만나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아느냐’, ‘내가 내 돈 내고 누리겠다는 데 뭐가 문제냐’, ‘솔직히 똑같이 해놓고 왜 남자 탓만 하느냐’는 식의 항변들 말이다.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방법을 찾기는 커녕 오히려 본인을 사회적 약자로 상정하고 여성을 강자의 위치에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코로나19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지금은 글로벌리즘(세계화)이라는 게 흔들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벽 안에 틀어박힐 것인가, 아니면 벽을 넘어갈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_무라카미 하루키(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인터뷰에서의 논점은 '반전(反戰)'이었으나, 유해한 남성 섹슈얼리티가 사실상 여성, 그리고 우리의 몸을 매개로 벌이는 전쟁과 같다고 보기에 해당 인터뷰를 인용한다.


현관문 앞까지 ‘사무용품’ 처리된 리얼돌이 직배송되는 시점에서, 리얼돌에 관한 논의가 더 진전되지 않는다면 고공행진하는 기술력이 향하는 곳은 불보듯 뻔하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리얼돌이 등장하고 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앞선 문제들이 해결되는 걸까? 이런 접근을 우리는 해결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금이야말로 남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비판과 성찰, 새로운 탐구를 반드시 이어가야 하는 시기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넘어 '비정상의 상식화'가 이뤄지는 세상에서, 모쪼록 성평등한 사회가 더는 뒷걸음질 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제 여성만한 리얼돌이 버젓이 거래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논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남성 스스로 길을 찾아나서는 수밖에 없다. 끝끝내 자신의 선택일 것이다. 리얼돌에 틀어박혀 침몰할지, 불확실하나 심장이 박동하는 관계의 장으로 넘어갈지.


[참고]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작성하여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얼룩소 5화 원문 주소 : https://alook.so/posts/ZktbM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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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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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남성의 몸을 보고 섹시함을 느끼고 "와일드와일드"와 같은 쇼를 보듯이 남성도 리얼돌을 성적인 도구를 넘어서 애착인형으로 삼는게 문제일까?
태어나면서 스마트폰을 보고 세상을 알고
젠더갈등에 파이나눠먹기 경쟁에 갈수록 살기 힘든 사회속에 만남과 소통이 부재해지고 코로나 팬데믹까지 더해진 상황 속에 예측된 결과가 아닌지...

본문의 논지와는 관련성이 덜해지는 이야기지만.. '대상화'라는 단어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본문에도 어느정도 드러나 있지만, '리얼돌을 매개하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필요하고 깊이 생각하고 논의해야 하지만 철학적 의미에서, 개인의 심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대상화' 그 자체는 피할 수 없고 또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미입니다. 대상화는 특정 주체가 객체로 인식하거나, 혹은 또 다른 특정 주체를 개체화 하여 이해하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현재의 삶에서는) 이 대상화라는 행위가 없다면 다른 주체를 이해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상화가 문제라고 말하기 보다는 물화/사물화가 문제가이고, 이해를 위한 일시적인 대상화는 더 깊은 공감과 이해를 위해 필수적인 단계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쓰고보니 글의 논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네요.
이런 문제가 있는 줄 몰랐네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습니다.
텐가의 사례와 비교해서 보여주시니 더더욱 리얼돌의 문제점이 드러나네요. 관계의 소멸과 성적 만족감을 동시에 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을 오롯한 나의 탐구로 가져가느나, 특정 성별의 대상화로 가져가느냐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결과의 차이를 불러오는 것이군요.
여성을 도구, 상품 취급하는 문제를 국가가 정당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얼돌 수입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