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단독]이, 그 언론만의 것이길

202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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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입니다

연이은 안타까운 선생님들의 죽음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서이초등학교 교사부터 최근 대전의 모 교사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졌다. 한 유명 웹툰 작가의 고소로 알려진 장애인 학급 교사의 이야기도 현재 진행 중이다.

서이초등학교에는 한동안 선생님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의 선생님들은 거리에 모여 교권 회복을 외쳤다. 그들의 목소리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였다. 구조적 문제 해결을 외친 그날, 수 많은 선생님들은 서이초 교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러 걸음을 옮겼다.

교사였던 적은 없지만, 젊은 선생님의 죽음을 추모하고자 서이초등학교에 갔었다. 그 날은 비가왔다.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도 선생님들은 우산을 쓰고, 검은 옷을 입고 국화를 들고 서이초로 향했다. 교문 앞에서부터 울며 들어온 선생님과 입을 다문채 조용히 들어온 선생님들은 모두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때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 그때 이 문제를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 선배 교사로서 너무 미안하다는 메시지였다.

서이초등학교에 붙어 있던 선배 교사의 메시지 (사진 촬영 일자 23.07.22)

서이초등학교에 붙어 있던 누군가가 남긴 메시지 (사진 촬영 일자 23.07.22)

비 때문에 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비 속에서도 모이는 사람은 많았다. 수 많은 메시지와 선생님들 앞에 아무 말도 못하고 국화를 놓고 합장한 기억이 난다. 수 많은 메시지에서 서이초 선생님에게 악성 민원을 넣었다는 학부모들을 비난하는 글도 있었지만,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룬 메시지는 없었다. 애초 그런 문제를 다루는 것보다 구조를 바꾸는 게 더 나은 해결책이어서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어느 한 언론매체는 구조보다 고인 개인의 사생활을 다룬 기사를 냈다. [단독] 기사였다.

출처 : 뉴데일리 기사 제목 캡쳐

해당 기사에는 서이초 교사의 일기장을 토대로 이미 극단 시도를 하려고 했다는 암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보도가 나간 뒤, 사람들은 분노했다. 고인 개인의 삶을 들춘 내용이었고, 죽음까지 내밀어진 사건과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관련 있는 내용이었다처도, 고인에 대한 윤리에 맞는지 지적 받아 마땅한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해당 보도 윤리에 대해 지적한 건 개인들만이 아니었다. 

출처 : 언론인권센터 논평 캡쳐

해당 보도에 대해 언론 인권 센터는 유감을 표했다. 인권센터는 “(기사의 내용이) 어떻게 고인의 일기장을 압수했는지, 유가족 허락을 받았는지, 정신과 치료 기록은 어떻게 입수 했는지 언급이 빠졌다” 라며 “이는 고인의 사생활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은 물론 ‘자살보도윤리강령’에도 어긋난다.”라고 지적했다.

해당 내용 보도에 대해 유족의 허락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유족으로 알려진 사촌 오빠의 블로그 글에는 해당 내용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출처 : A씨 유족 블로그 캡쳐

A씨 유족은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언론 윤리강령 제 3, 4, 5, 6, 7조를 어겼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가 말하는 윤리강령과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아래와 같다.

출처 :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출처 : 한국기자협회 자살보도 윤리강령

윤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할 도리를 말한다. 이러한 윤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할지 선택할 때 작용한다. 보도 윤리 강령이란, 언론사가 특정 사안에 대해 보도 할 때,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사안들이다.

언론 윤리 강령은, “언론이 공적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과 윤리의식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대두”됐다. 또한,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은 자율규제의 원칙에 따라 언론기관 또는 언론단체가 스스로 제정하여 스스로의 행동과 활동에 규제를 가하는 규범과 규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강령을 만드는 주체는 언론기관 또는 언론단체 스스로가 될 것은 당연하다.”*

물론, 이런 윤리강령을 무조건 따라야 되는 건 아니다. 실제 언론사 중에는 윤리 강령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는 듯 하다. 정확하게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언론사의 윤리 강령을 확인해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윤리 강령 글의 애매모호함 때문에라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강제성 없는 애매함은 실천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한, 십 수년 전에는 언론 취재 윤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 윤리 관련 포럼에서 한 교수는 “언론의 목적은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지, 취재 윤리를 지키는 데에 있지 않다"며 "기자는 윤리 규정의 경계를 넘나들며 언론의 자유 신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벌써 십 수년 전의 이야기인데도, 여전히 현실에서 발생하는 듯하다.

출처 : 쿠키뉴스 화면 캡쳐

모든 언론이 이렇게 하는 건 아니다. 쿠키뉴스의 경우, 단독과 기획 기사는 기자의 실명과 함께 윤리강령과 보도준칙을 지켰다는 걸 명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장치들이 기자와 언론사 모두에게 자신들의 기사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고 생각한다. 애매한 윤리를 따르기 어렵다면, 최소한의 보도준칙을 더욱 명확히 하고 보도 전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1980년 대 우리나라 언론에는 보도지침이 내려졌다. 정부에서 언론 통제를 위해 사용한 것들이다. 보도지침으로 인해 각 신문사의 헤드라인과 신문 구성이 동일한 경우도 있었다. 출판과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는 보도지침은 없어져야 마땅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파헤치고, 본질과 상관없는 문제를 들추는 언론이라면 마땅한 보도지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2023년에 새로운 보도지침을 만들어서 하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좋은 기자가, 좋은 시스템 안에서 강력한 규범과 윤리 지침의 통제 아래 훈련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언론의 정의는 다양할 것이다. 202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는 “좋은 언론이란 강력한 규범 및 윤리 지침의 통제 아래 뉴스룸에서 실행되는 직업적 훈련과 판단의 결과다.”* 라고 말했다. 규범과 윤리 지침을 따르는 직업적 훈련이 된다면, 우리나라의 언론도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처음 기자가 되어 수습 기자 신분일 때, 수습의 수'는 ‘닦을 수修'다. 그 ‘수'가 기자들 사이에서 말하는 ‘짐승 수獸'가 되지 않도록, 인간이 가지고 언론이 가지는 그 윤리란 것을 잘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훈련된 기자와 언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한 언론사의 [단독]을 보며 추모에 갔던 그 날이 떠오른다. 내가 봤던 모든 사람의 추모하는 마음과 교사와 그 가족의 마음을 매장한 기사였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단독]을 보고 선생님의 죽음을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단독]이 붙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디 윤리가 없던 해당 보도가, 그 언론사 단독의 모습이길 바래본다.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다른 언론은, 그 윤리없는 [단독]에 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집논문] 국내외 언론윤리강령의 비교와 제언> (한병구/ 언론중재위원회, 1990) p.3~4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마리아 레사/ 북하우스/ 2022)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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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기자들

누군가의 죽음이 기자의 기삿거리 정도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기사'가 좋은 기사의 기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망한 교사의 일기장을 보도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공개하면 정말 더 나은 사회가 만들어질까요? 기사를 쓰기 전에 기자들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으면 합니다.
언론도 더 빠르고 파급력이 있는 뉴스를 통해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서 이런 사태가 자꾸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을 위해선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되겠지요. 속도가 느리더라도 윤리에 맞고, 검증된 뉴스만 접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네요.
매번 사건이 터질 때면 나타나는 반복적인 이슈입니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것 같지만, 관련된 분들의 경우에는 상처가 더 심해지도록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죠. 윤리강령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강력하게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 강령은 지키는 사람만 지키는, 유명무실한 강령이 되는 거죠.
유가족의 글에서 절절한 분노가 느껴지네요. 보도윤리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언론이 알아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요. 지키지 않는다면 언론으로 취급해줄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