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글쓰기는 봉사가 아니라 어문 노동입니다​
[6411의 목소리] 글쓰기는 봉사가 아니라 어문 노동입니다 (2024-01-22)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차 한잔과 만화책, 그리고 군데군데 이 나간 지 오래인 13년 지기 노트북. 일면 평온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사실은 시간 내에 화면에 문장을 밀어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환경을 맞춘 결과물이다. 필자 제공 나는 1998년부터 만화를 중심으로 글을 써온 칼럼니스트다. 한겨레 ‘서찬휘의 만화 숲 산책’, 일요신문 ‘서찬휘의 만화 살롱’, 인천일보 ‘덕질인생’, 국방일보 ‘만화로 문화 읽기’, 여행스케치 ‘만화 속 배경 여행’…. 그간 매체에 연재해온 코너명들이다. 물론 단발성 청탁은 셀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만화를 칼럼이라는 틀로 다루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나를 비롯해 글 쓰는 직업을 둘러싼 환경은 참으로 열악하다. 매체 입장에서 외부 필자는 소모품이다. 지면 구색을 갖추기 위해 기용했다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쳐내는 대상이다. 그래서 나 같은 외부 필자들은 언제고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연락을 받을 수 있다는 체념을 안고 산다. 내가 겪은 사례를 소개하자면, 한 언론에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사정이 어려워 상부에서 외부 오피니언 지면 자체를 줄이라 했다”고 들은 게 대표적이다. 코로나19 당시 중소규모 매체들은 외고 분량을 반토막 내거나, 고료를 몇달씩 주지 않기도 했다. 근래에도 한 전문지 담당자에게 밀린 고료를 요구했다가 “아무래도 다른 곳을 알아보셔야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전문분야 매체 칼럼니스트 모집에 응했다가, 차를 대접받으며 “우린 작고 사정도 안 좋아 이 정도 경력자분의 고료를 감당할 순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받기도 했다. 광고 이런 상황은 갈수록 외부 필진을 기용하지 않거나, 무임금을 감내할 이들만 쓰는 쪽으로 몰고 가고 있다. 출판사와 연계를 빌미로 글을 모으는 ‘브런치’나 작가 멘토링을 붙여준다는 ‘창작의날씨’도 결국 그런 발상의 연장선에 있는 오픈마켓이다.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부류의 표어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한 콘텐츠의 원천으로서 갈수록 그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읽을거리들을 고료 한 푼 안 받고 제공하게끔 독려한다. 게다가 누구는 개인출판을 하라고, 누구는 글을 써서 목소리로 읊으라고, 누구는 하드 속에 쟁여둔 글을 전자책으로 내서 투잡하라고 한다. 실제 원고를 검토해 함께해보자던 한 오디오북 업체가 있었는데, 녹음에 후가공까지 다 해주는 만큼 초기 비용인 원고료는 줄 수 없다고 했다. 아예 못 준다는 곳은 그렇다 치고, 주는 곳은 어떨까. 원고료는 내가 활동을 시작했던 26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원고지 장당 1만원 안팎을 벗어나지 못한다. 연감이나 사보 등 극히 일부의 경우가 아니곤, 언론사도 웹진도 모두 외부 원고료는 1만원 안팎이었다. “죄송하지만…”이라며 장당 5천원, 8천원에 원고를 청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앞서 언급한 “이 정도 경력자분의 고료”란 게 이렇게나 알량하다. 광고 광고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글이 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 작성된다는 점이다. 무계약 용역이다 보니 표준계약서 체결이 조건인 예술인복지재단 산재보험 지원 대상이 될 수도 없고, 주 52시간 노동제나 최저시급 대상에서도 비켜나 있다. 매체 대부분이 칼럼이든 평론이든, 연재든 단발이든, 글쓴이의 위치를 법률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직업인으로서 나의 경력을 확인시킬 방법은 매체들에 별도로 경력증명서를 떼 달라 ‘부탁’하는 것뿐이다. 결국 나 같은 사람들은 글을 쓰는 행위만으로는 법의 보호를 받을 길이 없다는 얘기다. 계약서 없이 글을 의뢰하는 건 관례다. 원고지 장당 1만원 또한 관례다. 관례가 가리키는 건 명확하다. “네가 하는 건 ‘직업으로서의 일’이 아니다”라는 것. 나는 글쓰기에 얽힌 관례가 암묵적인 법칙으로 작동하지 않길 바란다. 얼마 전 나의 일을 어문 노동, 집필 노동으로 인지하고 작가노조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광고 물론 당장은 이런 사례를 언급하는 것이 내게 역효과가 될 공산이 크다. 매체들로서는 귀찮은 이야기이고, 지면이 궁한 건 언제나 나니까. 그럼에도 말한다. 단 한 편의 글을 청탁하는 데에도 계약서가 제시될 수 있기를, 그리고 최소한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적정 수준의 글값이 책정되기를. 이건 매체들이 필자들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전문성을 바란다면 보장돼야 하는 사항들이다. 성장은 이를 감당한 상태에서 꾀해야 한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6411의 목소리]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그들
[6411의 목소리]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그들 (2022-05-25) 유미(필명) |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주얼리회사 노조원 2018년 9월28일 찾은 서울 종로구의 한 귀금속 세공수리업소 책상 위에 각종 작업 도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현아! 잘 지냈어? 내 걱정 많이 했지? 처음부터 노조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어. 현장 점거해서 밤새 회사를 지킨다고 하니 많이 놀랐지? 정말 이런 방법밖에 없냐고? 뉴스에나 나올 법한 집회에, 이제는 현장 점거까지…. 사실 나도 실감이 안 나. 광고 코로나19로 회사가 힘들다며 지난해(2021년) 3월 갑자기 무급휴직 하라고 할 땐 한달만 쉬는 줄 알았지. 그래서 무급휴직동의서에 사인한 건데, 회사에선 4월부터 고용유지보조금 신청을 위해서라며 몇몇에게 4~5월 월급의 70%를 받는 유급휴직을 하게 했고, 내 의사와 무관하게 나도 그 대상이 됐어. 6월에야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다시 출근했지만, 일이 없어서 휴직한 게 아니니 유급휴직 기간에도 회사는 수시로 부르더라. 대신 고용유지보조금 신청 요건에 맞게 출퇴근 기록을 남기지 말라더라고. 줄어든 수입을 메꾸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대기 상태에 있어야 했으니 구할 수가 없었지. 고용유지보조금 지원기간 연장으로 회사는 거짓 휴직을 강요하고, 갑자기 줄어든 수입으로 힘들었던 난 너도 알다시피 사직서를 들고 출근했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로 정부는 회사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줬는데, 그 지원금이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휴직과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 거지. 광고 광고 이런 상태로 일할 수 없어서 그만두려는데 회사는 조금만 참아달라고, 실업급여도 받게 해주겠다고, 나라에서 주는 급여를 자기들이 주는 것처럼 말하더라. 베트남에서 엄청난 피해를 보고 돌아온 사장은 그동안 부서별로 몇몇에게만 폭탄 돌리기 식으로 건넸던 동의서를 모든 직원에게 건네고 유급휴직동의서와 단축근무동의서를 쓰도록 했어. 휴직과 임금 삭감이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 거지. 노조를 만들기 전 직원들과 한 면담에서 사장은 그동안 베트남에 머무느라 부사장이 무·유급 휴직으로 임금을 삭감한 것을 몰랐다며 ‘회사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이해를 바란다’고, 제발 노조는 만들지 말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직원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가 생기니, 유급휴직 임금삭감률이 30%에서 10%로 쉽게 바뀌더라고. 광고 노조가 만들어지고 단체협약을 맺는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참 어려웠어. 점심시간을 40분에서 60분으로 바꾸는 데만 5개월이나 걸렸단다. 처음 노동조합에 관해 들었을 땐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을 것으로 생각지 못했어. 같은 일을 하는 지인이 코로나19로 피해를 많이 본 종로 주얼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어. 혼자서 회사와 싸우는 것보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하는 건 어떠냐며 종로 귀금속 거리에서 받은 노조가입안내서를 내게 줬지. 거기에 빼곡하게 적힌 종로 주얼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하더라. 환기구도 없는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청산가리, 질산, 황산 등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화공약품을 사용해 귀금속을 세공하는 수작업은 힘들었어. 하지만 기계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관련해 그 어떤 보호장비 지급도 없었고, 사전 안전교육도 없이 위험하고 미숙하게 현장에 적응해나가야 했지. 위험한 환경에서 매일 작업하는데 건강검진조차 받은 적 없을뿐더러, 독한 화공약품들로 인해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어. 또 수작업과 기계작업을 하다 자칫 손가락이라도 잃게 돼도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거야. 회사 사정이 안 좋아 감원이라도 하면 누구든 속수무책으로 회사를 나가야 해.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오직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던 1970~80년대 노동 현장 모습 같지 않아? 종로 주얼리 사용주는 근로기준법 적용에 예외가 많은 작은 사업장을 운영해. 그래야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거든. 처음에는 수습사원이라며 4대 보험 가입을 미루고, 차감될 보험료를 현금으로 주겠다며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인 것처럼 말하지.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금융거래 때 편의 제공이나 건강검진, 연차, 실업급여 등 혜택이 없어진다는 건 경험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더라고. 입사할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잘못된 관행이 계속 유지되는 곳이 이 주얼리 업계란다. 누구는 “청년통장, 청년우대형 주택청약통장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4대 보험이 없어서 불가능”했다고 한숨을 쉬더라고. 광고 누구는 유급휴직 하며 쉬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겠지. 그런데 원래 적은 월급으로 한달 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월급 30%가 삭감됐는데,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대기 상태가 되니 정말 힘들더라. 아직 할 말이 많은데 일단 이만 줄일게. 네게 다음 안부를 전할 땐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며, 너의 친구가.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등에서 일하는 세공노동자들이 2018년 9월4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제공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6411의 목소리] 을지로 ‘분업의 골목’에서 따로 또 같이
[6411의 목소리] 을지로 ‘분업의 골목’에서 따로 또 같이 (2024-01-01) 이진훈 |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회 인쇄업종분과 준비위원장 2023년 11월23일 서울 을지로 인쇄인 호프데이 행사장에서 필자가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필자 제공 2023년 11월23일 서울 을지로에서 인쇄인 호프데이를 열기로 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한해 조직농사 결산이다. 당일 몇시간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몇시부터 하느냐? 참가비는 없느냐?’ 포스터를 보고 전화했단다. 광고 행사장은 명보극장 사거리 치킨집이었다. 을지로 인쇄인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였고, 금속노조 사업비로 치르는 행사라 따로 참가비는 받지 않았다. 모자라는 금액은 행사장에 후원함을 두어 충당할 거였다. “오늘 몇명이나 올까?” 인쇄밥 먹는 친구에게 물었다. “한 100명? 자리가 모자라면 어쩌냐?” 친구의 넉살에 웃음이 나왔다. 편집디자인 일을 했다. 20여년 전 스물여덟에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작은 인쇄기획사였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무척이나 놀라웠다. 서울특별시 한복판에 삼발이(세바퀴 오토바이)가 돌아다니는 골목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인쇄소 옆 재단집, 그 옆 제본집, 그 반대편 톰슨(특정한 모양으로 종이를 따내는 작업)집, 또, 또…. 인쇄골목이 놀라움에서 친숙함으로 변할 즈음, 나는 몇군데 회사를 거쳐 2003년 가을 소위 ‘합판집’이라는 인쇄업체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평생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투쟁이란 것을 시작했다. 광고 광고 그 합판집은 직원 수가 60~70명 되는 꽤 큰 규모의 인쇄업체였다. 방문이나 인터넷으로 인쇄물을 주문받고 제작해 출고하는 회사였다. 합판집에서는 주문받은 여러 인쇄물을 하나의 인쇄판에 모아 찍는다. 주로 명함이나 전단을 인쇄한다. 전국에서 일감이 넘쳤고, 합판집들끼리 가격 경쟁이 점점 심해지는 시기였다. 합판집은 주문이 밀리면 작은 인쇄소에 맡겼다. 합판집이 을지로의 ‘갑’이었다. 우리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사장 아들의 윽박이 두려웠고 “노예근성에 빠진 놈들”이란 모욕을 더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구는 간단했다. 사장 아들 김 과장의 퇴진이었다. 광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야 알았다. 직원 60명이 넘는 인쇄업체가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연장수당, 노동시간, 유급휴일…. 뭐 하나 법대로 하는 게 없던 사장은 당연히 노동조합을 인정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2년에 걸친 ‘투쟁’ 끝에 우리는 단체협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사이에 조합원은 7명으로 줄었다. 사장은 전문경영인을 고용한 뒤 차근차근 구조조정을 준비했다. 우리에게는 더는 싸울 힘이 없었다. 이제 그 합판집에 노동조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육신은 피곤하고 정신은 허탈했다. 다시는 인쇄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인쇄와 동떨어진 일을 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을지로 인쇄바닥에도 뿌리내리고,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도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것, 그 다짐을 부여잡고 나는 돌아왔다. 대형 인쇄업체와 달리 작은 인쇄업체는 사장이나 노동자나 처지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돈벌이나 노동시간에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분업의 골목이다. 다양한 공정을 소규모 인쇄업체들이 하나씩 맡아 처리한다. 서로 다른 공정들을 이어주는 끈은 예의 삼발이다. 따로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인쇄골목의 영세업체들이다. 골목 전체가 하나의 큰 공동체라는 점에서, 어쩌면 협업의 골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돕고 사는 공동체라 해도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돈 앞에서는 이웃사촌 간에도 인정사정없는 게 우리 사회다. 재개발 이슈로 일터를 잃지 않을 권리, 일하면서 생활이 가능한 임금을 받을 권리, 노동법을 제대로 적용받을 권리를 중구와 서울시와 대한민국이 함께 돌봐야 하는데, 과연 자동으로 될까. 자고로 권리는 누릴 사람이 지켜내야 한다. 노동자가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이를 대표해 누군가 전달하고 교섭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다. 광고 “이야, 너 어떻게 한 거야?” 친구에게 감탄사를 날렸다. 그의 말대로 “한 100명”이 오지는 않았지만,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50명 넘는 인쇄인이 모였다. 가게에 앉을 자리가 모자랄 만큼 꽉 찼다. 이 친구는 20년 전 그날 힘을 합쳤던 동지다. 함께 하고 힘이 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6411의 목소리] 택배 노동시간 단축은 헛된 꿈일까?
[6411의 목소리] 택배 노동시간 단축은 헛된 꿈일까? (2024-01-15) 서정수(가명)|택배노동자 설 연휴를 1주일가량 앞둔 지난해 1월13일 밤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기사가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월4일 서울 강남구에서 30대 용차 기사가 미끄러지던 택배차를 멈추려다 택배차와 승용차 사이에 끼여 숨졌다. 아내와 뱃속 아기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그를 기억한다. 2021년 가을 일하던 터미널에서 택배를 분류하고 차에 싣는 일을 하며 한달 동안 봤었기 때문이다.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지역으로 갔는데, 옮겨간 곳에서 화를 당했다. 차 사고가 잦은 겨울철이면 나도 이런 일을 당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용차는 택배기사가 다치거나 아플 때 빈자리를 긴급하게 메우는 택배차와 택배기사를 아우르는 말이다. 기사들이 용차를 구하는 일은 드물고, 주로 원청이나 영업소에서 용차를 구하곤 한다. 택배기사들은 아프거나 다쳐서 일을 못 하면 배송하지 못한 만큼 수수료(임금)를 못 받고, 용차 비용도 물어야 한다. 그러니 아주 큰 병 아니면 쉴 수가 없다. 한 동료는 지난해 11월 말 절임배추를 배송하다 넘어져 아킬레스건 손상 진단을 받았는데 깁스한 채 나와 일했다. 척추분리증이 악화돼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구부정한 자세로 계속 일하는 동료도 둘이나 있다. 광고 분류인력 투입으로 노동강도가 낮아지긴 했다. 앞서 2021년 1월과 6월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1·2차 합의 때 중요한 내용은 “택배 분류작업이 택배기사의 작업 범위가 아니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0시간 이내로 한다”였다. 내가 일하는 터미널에는 조합원이 없어서 그런지 2022년 5월께부터서야 분류인력이 본격적으로 투입됐는데 어쨌든 이를 계기로 ‘까대기’라 부르는 분류작업이 덜 힘들어졌다. 일부 기사들은 분류인력 투입으로 이직 빈도도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인 노동시간 단축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물량이 많은 화요일, 수요일 단체카톡방에서는 심야배송 제한시간을 해제해 달라는 기사들의 글이 빗발친다. 2020년 택배기사 22명이 과로사로 숨지자 택배사들은 심야배송 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제한했다. 오후 9시 이후에는 배송완료 문자를 보낼 수 없게 되자, 8시55분쯤 미리 배송 문자를 보내놓고 마저 배송을 마무리한다. 물건이 오지 않았는데 배송완료 문자를 받은 고객은 기사에게 항의 전화를 한다. 원청은 명절 연휴 같은 때엔 심야배송 제한시간을 1시간 늦춰주는데, 평상시에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1시간이라도 배송시간을 더 확보해야 항의 전화를 덜 받기 때문이다. 원청은 “우린 오후 9시까지로 배송시간을 제한했는데 기사들이 스스로 더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억울할 뿐이다. 수수료 인상, 인력 충원, 노동조건 개선 같은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으면서 우리보고 어떻게 하란 말인지. 광고 광고 택배사와 구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택배 건당 수수료는 대부분 700~850원 사이다. 서울지역에서 건당 900원 이상 받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1~2년 사이 모든 택배사가 택배비를 올렸지만 기사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다. 24년 동안 택배기사로 일해온 한 동료는 “처음 4년 동안 월급제로 일했고 그 뒤로 건당 1300원을 받았다. 계속 깎여 지금은 1천원도 안 되는데 물가 오른 거 생각해 봐라. 아무리 물량이 많이 늘었다 해도 이건 아니다. 거기다 보험료, 대리점 소장에게 줘야 하는 수수료, 세금까지 생각하면 무조건 많이 싣고 오래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일배송 압박도 장시간 노동 이유 중 하나다. 원청은 매일 전략 고객사 물품 당일배송 지표나 미배송 과다 보유 집배점 현황을 공개하면서 기사들을 압박한다. 심지어 전략 고객사 물품을 당일배송 하지 않으면 건당 천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하거나, 기사들이 물건을 수거해 올 수 있는 거래처를 회수하겠다고 한다. 광고 2020년 정부 조사 결과, 택배기사들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은 12.1시간이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에 맞추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얘기했다. 이미 주 70시간 이상 일하는 택배기사가 많은데 노동시간 단축도 아니고 유연화라니.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2차 합의 때 주요 의제 중 하나는 ‘택배기사의 주5일제 실시’였지만, 시범실시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 주5일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흘렀는데 택배기사들은 언제까지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중대재해처벌법 첫 실형 확정, 어떻게 보시나요?🤔
이제 원청 대표가 처벌 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적용 범위와 처벌 수준 등에 이견이 많았죠. 결국 이 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3년의 유예기간을 거치며 준비 단계를 밟아 작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4월에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업체 대표에게 징역이 선고되면서 중대재해법 첫 실형 선고 케이스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성 대표는 앞서 모두 네 차례 벌금형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재판부는 “적발내역 및 처벌전력을 종합하면 한국제강 사업장에는 근로자 등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종전에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던 중인 2022년 3월16일 재차 이 사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실과 “2022년 6월9일 경 이 사건 중대산업재해를 계기로 실시된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감독에서 또다시 안전조치의무위반 사실이 적발”된 점도 짚었다. 한국제강에선 지난해 3월 공장 내 설비보수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던 60대 노동자가 1.2톤 무게의 방열판에 깔려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검찰은 지난달 결심 공판에서 성 대표이사에게 징역 2년, 법인에는 벌금 1억5000만원을 구형했다. [23.04.26] ‘중대재해’ 첫 법정구속…한국제강 대표 징역 1년 실형 - 한겨레 판결_최종_진짜 최종.hwp 그리고 지난 12월 28일, 재판부는 위의 사건에 대해 징역 1년의 원심 내용을 확정하였습니다. 한국제강 법인에도 벌금 1억원이 선고되었고요. 검찰은 상고장을 내며 중대재해법과 나머지 죄를 ‘실체적 경합’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고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내용을 ‘상상적 경합’으로 판단한 것인데요. 낯선 개념이 등장했네요. *실체적 경합: 여러 행위가 여러 범죄에 해당한다고 사법적 판단하는 것. 가장 무거운 법정형을 기준으로 50%까지 가중 처벌이 가능함. *상상적 경합: 1개의 행위가 여러 범죄에 해당한다고 사법적 판단하는 것. 여러 범죄의 내용 중 가장 무거운 법정형을 적용함. 🗯검찰: 가중처벌이 가능한 실체적경합 판단 검찰은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인 A씨가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로 재판에 넘겼다. 또 경영책임자인 A씨의 회사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리 책임자 등이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혐의(중대재해처벌법상 산업재해치사)가 인정된다고 봤다. [23.12.28] 한국제강 대표, 중대재해처벌법 첫 실형 확정 - 조선비즈 🗯법원: 가장 무거운 법정형만 적용하는 상상적경합 판단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 상고심 재판부는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신체의 보전을 그 보호법익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업무상과실치사죄도 마찬가지"라며 "중대재해법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는 사회 관념상 1개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23.12.28] 중대재해법 위반 한국제강 대표, 대법서 첫 실형 확정 - 한국경제 재판부는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것’을 하나의 행위로 보고 ‘상상적 경합’을 적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산재가 여러 번 발생한 것, 안전관리 기준이 미비한 것 등 여러 행위가 위법하다고 주장했고요. 사법분야에서는 선례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다보니, 이번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후 첫 실형 확정을 받은 사례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노동계에서는 죄질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중대재해처벌, 아직 갈 길이 멀다💨💨 노동건강연대 유성규 노무사는 "실형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죄질에 비하면 결코 높은 형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벌 이력이 있고 그중에는 사망사고도 있었는데도 (원청업체 대표가) 제대로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아서 또 노동자가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와 관련해 (중략) "50인 미만 사업장에 '면죄부'가 부여되고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기업 입장에서 그 입법 공백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23.12.29] '중대법 위반' 첫 실형 확정…"죄질에 비해 '코끼리 비스킷'"[노동:판] - 노컷뉴스 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한겨레에 “한국제강의 실형 선고는 당연하다”며 “오히려 다른 사건에서 줄줄이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대재해법이 법 취지와 달리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기소율도 낮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올해 9월 기준 중대재해로 노동자 423명이 숨졌으나, 검찰 기소는 32건에 불과하다. [23.12.28] 중대재해법 첫 대법 유죄 판결에도…선고된 12건 중 실형은 ‘1건’ 뿐 - 한겨레 소규모 사업장에는 🤜이르다 VS 늦출 수 없다🤛 현재 시행중인 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는데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정부는 유예기간을 2년 더 두는 방향으로 개정할 것으로 국회에 요구했습니다. 경제계에서도 사업장의 부담이 우려된다며 소규모 사업장 적용을 유예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고용노동부는 9일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상정 불발과 관련해 "83만7천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노동부 "경제단체도 정부 대책에 적극 협력하고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50인 미만 기업 대다수는 중대재해로 대표 처벌 시 폐업과 일자리 축소로 인한 근로자 피해 등을 우려하며 적용유예를 호소하고 있다." 🧑‍💼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 "그간 정부와 경제단체 등이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유예를 주장했지만, 이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죽음의 위험에 방치한 채 사업을 이어 나가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한번 죽은 사람의 생명은 유예되지 않는다."  [24.01.09] 정부, 국회에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2년 유예' 촉구 - 연합뉴스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 내용은 경제단체들의 공동성명 내용과 비슷했습니다.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중대재해법 안전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기 더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일괄적인 법안 적용보다 사업체의 규모와 업종에 따라 기준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반면 이런 논쟁들이 법안을 무력화시킬 수 있고, 입법 취지인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 보장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9일 공동성명에서 "중대재해법 유예 법안이 끝내 처리되지 못한 데 안타까운 심정을 표한다"며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조차 안 된 것은 83만개사가 넘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호소, 폐업, 그에 따른 근로자 실직 등 민생을 외면한 처사"라고 밝혔다. [24.01.09] 국회 못 넘은 중대재해법 유예...경제6단체 "참담하고 답답해" - 머니투데이 전문가들은 대기업, 중소기업, 영세기업에 각각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또 기업 규모별, 산업별, 업종별로 명확한 안전의무 이행 기준을 주고, 미충족 시에만 처벌하는 등 법을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예기간을 2년 연장해 중소기업에 준비할 시간을 더 주고 정부가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국회·노동계·경영계는 강력한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왜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않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부터 머리를 맞대야 한다. [24.01.07] 영세中企에 중대법 강행만이 능사인가 - 매일경제 이는 과거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논란과 닮아 있다. 지금까지 경총 등 경제단체들이 스스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나 불합리한 원·하청 구조에 대해서 중소영세 기업들의 고충이나 이해를 대변하고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의 권익과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나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내미는 카드가 중소기업의 취약성과 경제활동 위축이다. [24.01.07] 누가 중대재해법 무력화하나 - 경향신문 법 시행은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적용 범위와 시기, 법의 실효성 등의 부분에서 여러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안전을 보장하려는 입법이 기업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논쟁이 의아하게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미 주어졌던 유예기간 동안 준비하기엔 요구되는 안전 조건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일까요? 재해예방과 안전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만큼 더 나은 논의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덧글로 의견을 적어주세요!
[6411의 목소리] 홈쇼핑 콜센터가 믹서기라면 플렛폼업체는 초고속 블렌더였다
[6411의 목소리] 홈쇼핑 콜센터가 믹서기라면 플렛폼업체는 초고속 블렌더였다 (2022-05-18) 데비(필명) | 고객센터 상담노동자 지난해 4월 서울의 한 고객센터에서 상담노동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글은 이상적인 노동 환경에서 상담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는 상상 속 인물 ‘리나’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독일에 사는 행복한 상담사 리나는 고양이도 키우는데, 고양이의 이름은 무려 세계 최대 규모의 서비스 노조 이름과 같아요. 잘 있었나요? 당신의 고양이 베르디에게 제 안부를 전해 주세요. 한국은 베를린보다 봄이 먼저 왔다가 벌써 가버린 것 같아요. 이제 낮에는 좀 더워요. 저는 아직 배달의민족 콜센터에 다니고 있어요. 여전히 노조도 없고, 고양이도 없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없어요. 광고 리나,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 플랫폼 콜센터에 취업했을 때 하도 유니콘기업 어쩌고, 혁신 어쩌고 하길래 ‘설마 악명 높은 홈쇼핑 콜센터처럼 하청에 하청을 두고 화장실도 못 가게 상담사 갈아 넣어서 운영하지는 않겠지?’ ‘시대가 달라졌고 콜센터도 많이 바뀌었을 거야’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하필이면 처음 들어간 회사가 야놀자랑 쿠팡이츠였어요 그동안 다녔던 홈쇼핑 콜센터가 일반 믹서기라면, 이들 플랫폼업체 콜센터는 초고속 블렌더였어요. 진짜 형태도 없이 갈려서 3개월도 못 다니고 도망 나왔어요. 홈쇼핑 콜센터가 일반 믹서기라면, 플랫폼업체 콜센터는 초고속 블렌더였어요. 형태도 없이 갈려 3개월 못 다니고 도망 나왔어요. 야놀자 콜센터는 충격적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환경에, 에어컨도 잘 안 돌아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사장님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쿠팡이츠의 횡포에 화내고, 애원하고, 이러다 자기 죽는다며 울부짖으셨죠. 꿈에서도 민원인이 나와서 그만둔 첫 회사였어요. 야놀자 콜센터는 충격적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환경에, 에어컨도 잘 안 돌아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밀려 있는 대기 고객이 너무 많아서 전화 연결되자마자 고객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냐’고 소리를 질러대고, 관리자들은 2분 간격으로 ‘계속 콜 받아라’라고 소리 질러요. 팀장 자리에는 퇴사 서류가 쌓여 있고, 한쪽에서는 그럴싸한 구인광고에 낚인 신입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죠. 모든 사람이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대서 그런지 어느 날부터 이명이 들려서 그만뒀어요. 퇴사하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야놀자 본사는 정말 근사하던데, 자기들 대신 욕먹는 콜센터 화장실이나 한칸 더 지어 주지, 싶더라고요. 광고 광고 쿠팡이츠에서는 가게 사장님들 전화를 받는 재택근무를 했어요. 통화가 6분이 넘어가면 여기저기서 사유서를 보내라고 미친 듯이 메시지가 와요. 왜 6분인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일하는 내내 감시와 통제를 받지만, 정작 화가 난 식당 사장님이 전화로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상황에서는 ‘그냥 잘 들어주라’며 미뤄요. 그때 이 회사는 상담사를 욕받이로만 생각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식당 사장님들 당장 생계가 걸린 문제라 하나하나 너무 절실하고 처절한데, 회사는 민원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이유 설명 없이 그저 콜 수만 늘리라는 식이라 점점 강성 민원인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사장님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쿠팡이츠의 횡포에 화내고, 애원하고, 이러다 자기 죽는다며 울부짖으셨죠. 꿈에서도 민원인이 나와서 그만둔 첫 회사였어요. 근데 리나, 더 무서운 걸 말해 줄까요? 퇴사하고 얼마 뒤에, 쿠팡이츠 상담사와 통화하던 사장님이 숨졌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어요. 사람 쓰러졌다는데도 세상 메마른 목소리로 “그래도 고객이 요청하시니까 사과 부탁드립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아! 저게 나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소름 끼쳤어요. 그 상담사는 회사에서 치료 지원이라도 받았을까요? 이제 쿠팡 로고만 봐도 소름이 끼쳐서 로켓배송은 꿈도 못 꿔요. 광고 리나, 어제 콜 평가 점수 85점 받았다고 피드백 왔어요. 무슨 평가냐고요? 매달 서너번씩 랜덤으로 상담 내용을 듣고 점수를 주는 거죠. 점수를 잘 받으려면 어떤 콜이든 “아, 그러세요?”가 두번 들어가야 해요. “아~네. 그러세요?”라고 하면 빵점이에요. 또 고객이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면 빵점이에요. 고객이 감사하다면, 상담사는 그보다 더 감사함을 표현해야 한다는 거죠. 고객이 불만을 말하는데 그냥 “죄송합니다”라고 답해도 빵점이에요. 이게 뭔 소리냐고요? 배달의민족에서 하청 준 콜센터 업체들끼리 경쟁하다 상담사 말려 죽이는 소리예요. 2018년도에 배달의민족 본사 근처에 대규모 콜센터를 오픈한다는 기사가 났는데, 그 기사 말미에 배민 최고운영담당자라는 분이 “상담사의 행복과 만족도가 자연스럽게 고객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배달의민족 고객센터가 이번 통합 확장 오픈을 계기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모범 사례이자 기준점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럴듯하죠?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실제로는 부산과 광주에서 지자체 보조 받아서 간접고용만 대규모로 늘리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배민이 아직 ‘세계적으로 우수한 모범 사례’가 되려고 노~오~력 중이라고 굳게 믿고 있답니다. 배달의민족은 계속 노력할 거고, 저도 최저시급 받으며 버티다 보면 언젠가 리나처럼 안정적인 직장에서 장기근무도 해보고, 내가 하는 일에 애정과 자부심도 느껴보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귀여운 고양이랑 깨 볶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닌가요? 그냥 노조나 만들까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6411의 목소리] 타투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
[6411의 목소리] 타투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 (2022-05-11) 김도윤 │ 타투유니온 지회장 지난해 9월1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타투이스트 인권침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에서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오른쪽)이 진정 및 긴급구제신청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제니야! 오랜만이다. 얼굴 맞대고 앉아본 건 고등학교 졸업하고 23년 만인가? 사법시험 준비한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는데, 중년의 판사가 되었네. 잘 어울려. 진심이야. 나? 난 디자인 그만뒀어. 이제 17년차 타투이스트야. 까만 옷 입은 네 동료들은 나보고 불법의료시술자라고 말하지만. 지난달 헌법재판소에서 선고가 있다고 연락이 오더라. 급한 일을 미루고 가봤는데, 까만 옷 입은 이들이 나란히 앉아 판결문을 읽더니 휘리릭 들어가더라. 그럴 거면 그냥 인터넷에 공지하지 왜 시간 낭비 하는지 모르겠어. 하여튼 타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타투는 의료행위라고 하더라. 폭력적인 코스프레 같았어. 결론은 자기들한테 묻지 말고, 국회의원 졸라서 입법을 하라는 거야. 매듭을 잘못 묶은 건 사법부인데, 엉망인 매듭은 입법부한테 풀라는 거지. 광고 삼권분립? 그렇지, 케이(K)-삼권분립 최고지. 들어봐봐. 지난해부터 갑자기 국세청 직원들이 타투 스튜디오를 찾아왔어. 문신업으로 사업자등록을 내라는 거야. 몰랐어? 우리 정식 사업자등록 가능해. 2015년에는 고용노동부의 미래유망신직업 17개에 타투이스트도 포함됐어. 물론 직업코드도 있고. 정말이야. 웃기지? 물론 우리도 정식으로 등록하고 세금 내면서 떳떳하게 하고 싶지. 그런데 국세청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단속당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불법의료행위를 했다’며 최저 형량 징역 2년을 선고받아야 해. 이게 말이 되니? 그림 그리고 징역 2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서, 내 동료들은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해. 성실한 동료들이 그렇게 떠나가는 걸 보면서도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어. 결국 우리는 투명인간이 되는 것을 선택해. 사업자등록 없이 일하면 단속돼도 보통 벌금형으로 끝나거든. 이게 케이-삼권분립이야. 삼권분립이 너무 잘돼서, 입법·사법·행정, 서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전혀 몰라. 웃으면서 말하지만 난 진짜 슬퍼. 타투가 의료라는 법원 판례는 1992년에 만들어졌거든.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 판례를 그대로 베껴왔어. 그런데 그 일본마저도 2020년에 이 판례 폐기했어. 이제 진짜 한국만 불법이야. 물론 일본이나 한국이나 그 시절엔 모든 국민이 타투를 싫어했지. 우리 어렸을 때는 문신을 한 사람은 조폭 아니면 조폭 흉내 내고 싶은 양아치라고 했으니까. 광고 그런데 이 궤변이 30년이나 연명하다 보니 이제는 의사들이 타투로 돈을 벌어. 지금 네이버에서 ‘눈썹타투’라고 검색해봐. 유료광고하는 업체 100%가 의원들이거든. 이제 밥그릇이야, 큰 밥그릇. 궤변 위에 쌓아올린 겁나게 큰 밥그릇. 의사협회는 국민의 안전을 핑계대며 타투 법제화를 막아. 지지난달에는 의사협회가 타투합법화 저지 티에프(TF)도 만들었더라. 부끄러운 줄을 몰라. 정작 병·의원에서도 타투를 하는 건 의사가 아니야. 당연히 우리 같은 비의료인이지. 그러니 병·의원이 타투를 하면 더 큰 범죄가 돼. 의사면허 대여, 불법의료시술 지시 및 알선 그리고 홍보, 불법계약 등등. 이런 게 적발돼 의사면허가 정지되는 사례도 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나 보더라. 1조원 규모의 어마어마한 시장이니까. 더 웃긴 건 타투는 의사가 직접 해도 불법이라는 거야. 왜냐하면 전세계에서 의료기기 인증을 받고 생산되는 타투 용품은 없거든. 세계에서 타투를 의료행위로 분류한 곳이 한국밖에 없는데, 누가 한국만을 위해 의료기기 인증을 받겠냐고. 의사도 비의료기기로 타투를 할 수밖에 없는,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 상황인 거지. 결국 한반도에서 이뤄지는 모든 타투는 불법이야. 제니야, 이것 봐. 네 동료들이 망쳐놓은 건 나랑 내 동료의 삶뿐만이 아니야. 양심 없는 의사들도 돈벌이에 혈안이 돼서 의료의 존엄함마저 버렸어. 광고 그리고 보니 너 눈썹 타투 했네? 아! 받는 건 불법이 아니고, 타투를 하는 것만 불법이라고? 물론 알지. 작업을 청탁한 손님이 갑자기 돌변해서 신고하겠다며, 되레 돈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거든. 제니야, 같이 웃으면 어떻게 해? 내가 웃으면서 말한 건 진짜 웃겨서가 아니잖아. 갑자기 불안하네. 내가 연예인한테 타투를 해줬는데, 어떤 한가한 녀석이 신고를 했어. 곧 2심 재판이 시작돼. 판사들이 문화적 소양은 부족해도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웃음의 맥락도 파악 못 하는 너를 보니까 갑자기 불안해진다. 광고 그냥 우리 10년쯤 지나거든 다시 보자. 그때는 나도 투명인간이 아닐 테니, 맥락을 파악하지 않아도 되는 웃음을 지니고 있을 거야. 널 위해 기도할게. 내 아내가 목사거든.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후기] ‘함께 안전’ 집담회 : 함께 상상한 노동의 미래
캠페이너들이 같은 기간동안 동일한 주제로 사회 이슈에 대한 토론을 만드는 ‘함께 프로젝트’ 12월에는 ‘함께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정리하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캠페이너와 ‘노동, 안전, 산업재해’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집담회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집담회를 영상으로도 구경하실 수 있답니다! 🧊아이스브레이킹 겹치는 주제로 모였다 할지라도 각자의 배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마련인데요. 먼저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을 질문부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캠페인즈 시즌이슈 시리즈인 ‘캠페이너 여러분은 안전하게 일하고 있나요?’에 답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안전하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위험성 평가는 모든 사업장 대상으로하는데 제가 속한 사업장에서는 안 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왜 내가 다니던 곳에서는 해본 적이 없지?' 라는 의문이 들면서 안전한 곳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네요.” “체크는 첫 번째 ‘안전하다’에 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정신적 피해의 위험이 있더라고요. 직장에는 사람의 관계, 조직문화와 조직 구조에서 오는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운동 진영의 분위기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요. 헌신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주변에서 실제 번아웃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병가도 못 쓰고 치료도 못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더 안전한 노동을 상상하는 질문들 더 진솔하고 다른 곳에서는 편하게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위해 질문을 기반으로 집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1)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란 무엇일까요?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 중지할 수 있는 곳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노동환경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상태가 필요합니다.” “노동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노동자가 갖고 있는 게 중요합니다. 아파서, 지쳐서 떠나지 않도록 열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해요.” “작업중지권 관한 최근에 있었던 사고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현대제철 불법파견 사내하청업체 문제가 있었습니다. 불법파견 리스크를 해소한다고 협력업체를 모두 자회사로 포함시켰는데 한 달도 안 되어 자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설비의 일부가 파손이 돼서 작업중지를 요청했습니다. 자회사는 원청에 요청했고, 작업중지가 안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2차사고가 발생했고요. 작업중지를 요청한 자회사 사람을에게 현대제철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자회사는 작업중지를 요청한 직원에게 감봉처리가 되었습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위해서는 이런 다단계 구조부터 해소해야 합니다. 원청이 책임질 것은 다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2) 산재는 무엇때문에 반복될까요? “원인은 ‘전부 다'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기업은 효율만 중시하고 안전 예방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직업성 암 등 문제 되는 것을 보면 유해물질도 사용하거나 급식실 노동자 폐암처럼 우리가 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동권, 안전문제 교육이 잘 안 되는 것도 문제고요. 반복되는 이런 문제를 아예 막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데요. 흔히 말하는 ‘후진국형 재해', 그런 죽음들 정도는 막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생산 효율을 중시하는 산업 현장의 문제가 강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한 작업이나 위험한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북유럽에서 건설노동은 전혀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게 왜 위험한 일이야?’라고 되려 물을 정도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놓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산업재해가 누구한테 반복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반적인 격차나 불평등. 노동시장 외에서 발생합니다.” 3) 많은 시민들이 산재에 관심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서사’에 대한 생각을 해봤어요. 이게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미디어 언론이 그 일을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경우 한겨레, 경향이 1면에 싣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연대가 퍼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언론이 관심을 가져서 문제의식이 확산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질환 산재의 경우도 국민일보 취재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산업재해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아주 많이 일어난다는 서사가 필요합니다.” “산재 문제의 경우 시민의 관심뿐만 아니라 국회와 언론의 관심을 가져야지만 풀어집니다. 큰 흐름에서 주목받아야만 해결되거나 왜 사회는 이를 주목하지 않는가는 항상 의문인데요. 지역의 커뮤니티를 회복하여 내 일상의 주제로 다가오게 만들어야지 이슈가 끊기지 않고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고 “올해 가장 산업재해가 많이 일어난 기업이 배달의 민족. 라이더유니온 분과 얘기를 하다가, 배달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는 형태가 대부분 교통사고더라고요. 교통사고라서 노동을 벗어난 일상적인 사고처럼 느껴지거나, 배달 노동자가 실수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운전을 한 사람의 책임만 생각하고 무리한 배차, 무리한 알고리즘 등 기업의 책임은 빠져있습니다. 기업이 문제라는 생각은 공유되고 있는 것 같지만 때때로 잊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과 범위를 더 늘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자리였습니다.“ “기고글을 쓰면서 5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간 순으로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놓쳤던 것들을 많이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산업재해와 중대재해, 노동재해의 관점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지 나눠서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많이 배운 자리였어요. 살면서 노동에 대해 진득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그런 기회였습니다. 협동조합 활동가로서 조직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모여서 관심을 가지고 모여서 운동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대화의 장이 끊이지 않고,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행동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캠페인즈는 디지털 시민광장으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왜 어떤 산재는 보이고 어떤 산재는 보이지 않는가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왜 어떤 산재는 보이고 어떤 산재는 보이지 않는가 전수경/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산재가 험하고 힘든 일을 하다 사망하는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산재 사망의 심각성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망 만으로 산재 문제 전체를 보기는 어렵다.  누구든, 어떤 일이든 일을 하면서 몸이나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하루의 삼분의 일 또는 이분의 일을 보내는 공간, 작업 또는 보이지 않는 관계 같은 것들이 사람의 신체와 마음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보통 산재라고 부르는 것들은 국가가 정한 기준 즉 산재보상법이 정하는 산재의 요건을 통과한 것을 가리킨다.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질병, 부상이라면 산재의 기본적 요건이 된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다르기에 노동하는 사람이 처한 조건에 따라 국가의 산재보험 제도에 접근이 불가하거나 보험 이용을 포기, 또는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산재보험 이용자 수에 집계되지 않았다고 해서 산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22년 107,214명의 노동자가 사고를 당하고, 23,134명의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판명되어 모두 130,348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입었다고 발표하였다. 130,348명의 노동자 가운데는 사고사망자 874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 통계 자료의 하단에는 ‘산재요양 승인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임에 유의’하라는 문구가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느냐가 첫째, 산재보험을 신청했지만 ‘승인’받을 수 있느냐가 둘째이다.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노동자, 공장에서 기계설비에 끼여 사망하는 노동자와 같이 산재로 인한 사망이 명백한 사례들이 최근 수년간 많이 알려져 시민들의 마음을 울리고 산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왔다. 이와 같은 사망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제조업이나 건설업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쉽게 산재보험을 신청하고 쉽게 ‘산재요양 승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전국건설노동조합’ 활동을 정부가 탄압하고 경찰수사에 들어가면서 노동조합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가 은폐되고 있다는 제보가 많아지고 있다-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쳐 가며’ 아파트를 짓고 배를 만들고, 빵을 생산해야 하다니, 노동자의 사망과 사고 뉴스를 접하며 우리는 사람보다 경제가 먼저인 체제의 비정함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을 통해 개인 사업자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을 하다 다치거나 사망하였다면 어떻게 되는가? 최근 2~3년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처럼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노동을 하는 이들이 600만~70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노동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상시적으로 일감을 받고 한 곳에서 일을 해도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언제든지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살얼음판 같은 조건에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이들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고용보험 가입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 가입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 정부는 말하고 있다. 다행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산재는 쉽지 않다. 최근 뉴스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보자. 정부의 산재사망 통계에 포함되려면, 쓰러진 택배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하고, 쓰러진 후 산재 신청을 했을 때 가령, ‘ 일주일 이내 업무량이나 시간이 이전 12주 (발병 전 1주일 제외) 평균보다 30% 이상 늘거나 업무강도 및 업무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 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산재 사망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빗길 배달을 가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사망한 배달 라이더, 고속도로 졸음 운전으로 사망한 화물차 기사에 대한 뉴스를 보았다면, 이 죽음이 산재라고 생각해 보았는가.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졸음 운전에 이르기까지의 노동시간, 업무량 등을 입증해서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산재 사망 노동자의 숫자로 헤아려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통사고 사망자이다. 산재 사고의 수, 산재 사망자의 수가 적다, 많다, 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으로 생계를 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노동자임에도 다치거나 사망하였을 때 그 자신과 가족의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지거나 부족해지는 것이다. 노동자의 자격이나 산재의 조건은 사회적 흐름에 따라, 필요에 따라 변화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인데, 정부는 이를 방치한다.  이런 의문도 든다.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천천히 오는 산재는 어찌할 것인가. ‘산재요양 승인’은 요건만 갖추면 형식적으로는 모든 노동자에게 열려 있지만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에 산재보험 이용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 노동자가 많다. ‘비용과 시간의 소요’라 함은 산재 신청을 위한 정보탐색과 상담, 법률서비스 구매,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기간, 이의제기 등의 지난한 과정이 수반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자들의 증언, 사례발표, 실태 조사 등을 통해서 제도의 복잡성, 접근성의 장벽은 이미 드러나 있지만 고용노동부와 산재보험운영기관 근로복지공단은 외면해 왔다. 또한 앞서 말한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가 아니더라도 고용이 안정적인 일부 노동자층을 제외하고는 많은 노동자들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노동자가 내 일을 대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비정규직일수록 불안은 더 크다. 아파도 출근하고, 참기 어려우면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재보험으로 치료해야 할 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건강보험에서 새어 나가는 돈이 연간 최소 277억 원에서 최대 3,2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의 21.0%~42.4%가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은 보험료를 더 걷었다며 해마다 수백억의 산재보험료를 기업에게 환급해 준다. 일을 하다 다치고 아픈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받도록 산재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은 기업의 책임이고, 제도를 통해 더 많은 노동자가 보험을 이용하도록 촉진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이용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개혁하지 않고,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를 축내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산재보험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기 전에는 산재 발생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도와 노동 현실의 불안정함이 만나 산재를 감추는 한편에 또 하나의 쟁점이 있다. 정부는 산재요양 승인 노동자 집계를 발표하면서 성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2022년 산재사고 사망 노동자 874명 가운데 여성 32명, 이라고 분류한 사망자료 외에 산재 전체에서 여성을 구분해 발표하는 통계가 없다. 고용이 더 불안정하고,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이들일수록 산재보험 이용을 꺼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고 그 조건에 여성의 비중이 큰 현실을 고려하면 정부의 발표는 너무 안이하다. 여성 노동자의 산재로 최근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학교 급식조리 노동자의 폐암이다. 2023년 11월 현재, 4만 명이 넘는 학교 급식조리 노동자가 건강검진을 받았고 이 가운데 폐암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가 130여 명에 이른다. 환기시설 없는 조리실에서 노동자 1명당 학생 100~200명 분량의 식사를 준비하는 노동강도를 감당하며, 굽고 튀기고 볶는 과정에서 조리흄을 흡입하면서 폐암이 왔다. 학교 무상급식 시행 12년차, 학교급식실 조리노동자의 작업환경에 교육 당국은 관심이 없었다. 중년 여성의 ‘밥 짓는 일’을 노동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무상급식 12년이 되도록 잠복되어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직업병은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았다면 여전히 가리어져 있었을지 모른다.  <노동건강연대>가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2022~2023년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펴며 청년 여성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 현황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사업에 신청서를 낸 600여 명의 청년 여성 노동자 가운데 단 5명만이 산재보험을 신청했다고 답했다. 여성 노동자의 산재는 아직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함께 안전] 경과를 쫓는 일
임금체불과 직장내괴롭힘으로 노동자가 분신 사망하고 계절이 바뀔만큼 시간이 지나도 가해자가 아무런 사과나 반성이 없다면, 10년 넘게 일한 노동자가 질병 산재로 사망한 후 소속 행정기관 앞에 분향소를 마련할 때 공권력과 물리적 충돌을 겪어야 한다면,  2인1조의 작업 매뉴얼도 비상정지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을 때 아무도 실형을 받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산업재해는 줄어들 수 있을까요? 2023년 12월, 여의도 한강성심병원 주차장 한편에는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한 택시노동자 방영환 열사의 분향소가 있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택시월급제를 지키지 않는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택시월급제를 준수와 체불임금 지급을 촉구하던 방영환 노동자는 사측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습니다.  지난 9월 26일 회사 앞에서 분신한 방영환 노동자는 10월 6일 사망했습니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재를 신청했습니다. 사측은 방영환 노동자의 사망 후에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재발방지 대책도 내지 않았습니다. 방영환 노동자가 사망하고도 70여 일이 지나고 나서야 해성운수 대표의 구속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분신 택시노동자 방영환씨 유족 산재 신청 (2023.11.30. 매일노동뉴스) “때리고 화분으로 위협”…‘분신 택시기사’ 업체 대표 구속 (2023.12.12. KBS) 12월 4일, 14년 동안 경기도의 학교에서 학교급식 노동자로 일한 이혜경 노동자가 폐암 투병 끝에 사망했습니다. 단시간에 다량의 음식을 조리하며 발생하는 발암물질(조리흄)은 학교급식 노동자의 폐암 발병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2021년 학교 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첫 인정 후 현재까지 113명의 학교급식 노동자의 폐암이 산재로 승인됐습니다. 학교비정규직노조는 12월 6일 이혜경 노동자 추모 분향소를 경기도교육청 앞에 설치하려 했습니다. 교육청 직원은 이를 막아섰습니다. 곧 경찰이 출동하여 분향소가 철거되고 노동조합 관계자를 연행해 갔습니다. 이틀 후, 노동조합과 경기도교육청은 노사합동으로 지하 1층에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학교급식실 노동자 폐암 산재인정, 2년 만에 113명 (2023.10.5. 매일노동뉴스) 폐암으로 숨진 급식노동자 분향소, 노사 합동 설치 합의 (2023.12.9. 참여와혁신) 12월 6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김용균 노동자 5주기 현장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추모제에서는 계속되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비판, 작은 사업장의 위험을 외면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다음 날인 12월 7일, 김용균 노동자 사망과 관련하여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당시 대표이사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이로써 김용균 노동자 산재 사망에서 실형을 받은 원, 하청 임원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일하다 죽는 ‘죽음의 외주화’ 중단하라”…고 김용균 5주기 현장추모제 열려 (2023.12.6. 서울신문) ‘김용균 사건’ 원청 법인·대표 모두 무죄 확정 (2023. 12. 7. 한겨레) 산업재해 이후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이래서 어떻게 산업재해가 줄어들까 싶은 심정이지만, 그렇기에 현시점의 상황들을 우리는 더욱 정면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산업재해 이후 사건의 경과를 쫓아가야 합니다. 이 경과를 보고 듣고 말하여 책임과 추모가 당연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미 발생한 산업재해 현장의 오늘을 바꾸는 일이고, 앞으로 발생할 산업재해 현장의 내일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떤 산업재해의 무엇을 목격하고 또한 기억하는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함께 안전] 아무 말도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노동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불만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노동자’라고 하면 왠지 '빨갱이'스럽고 깃발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향신문과 우리리서치·공공의창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와 노동자 중 평소 주로 접하는 단어를 묻는 항목에는 ‘근로자’라는 응답이 71.3%였다. ‘노동자 동질감’을 물은 항목에는 ‘노동자라고 하면 거리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49.9%로 ‘동질감을 느낀다’(33.8%)보다 16.1%포인트 높았다. (2022.11.18 경향신문)  인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는 ‘노동’을 남 이야기 인듯이 다루려는 것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다. 우리가 개인의 성장을 위해 이야기하는 워라벨, 커리어 같은 것들 모두 노동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왜 노동권이라고 하면 운동권스럽고,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성실하며 갓생을 지향하는 화이트칼라의 이야기로 여기는 것일까? 우리는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려 한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산업재해에도 적용된다. 쉽게 말하면 ‘구조적 무감각증’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기준 한해 재해자수는 130,348명, 사망자수는 2,223명에 달한다. 여기서 집중해야 하는 건 이 지표에서조차 소외된 사람들은 없냐는 것이다. 2021년에 ‘은폐되는 산재 건수가 전체의 66.6%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국노동연구원 김정우 전문위원)가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 또한 2014년 ‘산재 은폐율이 최소 54.8%에서 93%에 달한다’는 연구보고서(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개선방안)를 냈다. 노동계는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등 취약 계층 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이 정규직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유해물질에 노출됐더라도 수년에서 수십년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는 암에 걸린 상당수 노동자는 병의 원인을 ‘운명’이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자신이 다루는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 채 근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023.3.14. 한겨레) 문제라고 말하지 않으면 정말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즉,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이 노동에서 온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겨지는 원인은 산재 예방 정책의 방향에 있다. 서울대학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의 김승섭 교수는 “한국의 산재 예방 정책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산재 발생을 실제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산재 발생시 보고하는 숫자를 줄이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즉, 노동자의 목숨이 숫자놀음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놀라웠는데, 제도상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끔 처리하는 것이 목표였다.  “조금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특정 병원을 지정해서 산재가 아닌 ‘공상’이라는 이름으로 치료를 합니다. 공상의 경우 당장 필요한 치료비는 내주지만 산재보험과 달리 이후 후유증을 치료할 수 없을뿐더러 증상이 악화되어 결근하면 임금을 보전해주지도 않습니다.”, “2014년 진행된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다 다쳤던 조선소 하청 노동자 125명 중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았던 이는 9명(7.2%)에 불과했습니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못했던 가장 흔한 이유는 ‘원/하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였습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난다 ) 위의 사례는 공상으로 들었지만, 이 자체도 기업에게 위험부담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일명 ‘위험의 외주화’. 다치기 쉬운 업무는 하청업체에게 넘겨 버리는 일도 발생한다. 다치면 고용이 단절되어 버리는 하청 노동자들은 다쳐도 산재보험에 신청하지 못하고 만다.  또 다른 원인은 미비한 처벌에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 은폐에 대한 처벌은 4년 동안 41건, 산재 미신고는 4년 동안 3805건에 불과했다. 최근 4년간 산업재해 은폐 및 미신고 건수는 15만건이 넘었지만 처벌은 전체의 2.5%인 3846건에 그쳤다. 사업주는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그대로 보고하는 경우 기업의 평판 저하와 이로 인한 시장에서의 신용저하 등이 우려돼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고 여기며,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해도 기껏해야 과태료만 부담하기 때문에 사업주로서 이러한 과태료를 감수하면서도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하고자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2023.4.28. 안전신문) 강태선 서울사이버대학교 안전관리학과 학과장은 “한국의 산재 은폐율이 높은 이유는 노동자가 회사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자유롭게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하도록 사업주를 독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대산업재해가 아닌 일반 재해의 경우 감독이나 처벌보다 예방과 지원에 더 집중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산재 신청이 크게 늘어나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현재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실태를 알아야 산재를 줄이는 법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2023.3.14. 한겨레) 앞서 노동권을 말하면 빨갱이고 커리어와 워라벨을 말하면 화이트칼라냐는 다소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본 글을 쓰면서 발견한 이야기가 이 구분이 아예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라는 답을 해주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앞서의 논문을 준비하며 만난 활동가는 ‘산재가 왜 이렇게 반복될까’라는 질문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화이트칼라가 죽는 거 봤냐?” 맞는 말이다. 만일 대학교수가 1년에 900명씩 연구실에서 사망한다면, 대기업과 공기업의 관리직·전문직 종사자들이 매일 3명씩 산재로 사망한다면 이 문제가 이렇게 방치되었을까? 조선소에서 하청 노동자가 죽으면 ‘보상금 5000만원’이 거의 관행처럼 통용된다. 정규직의 3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으로 “죽음마저도 그렇게 헐값”이다. 반복적인 재래형 산재사고의 본질은 불평등 문제다.” (2021.1.9. 시사in) 매년 발표되는 산업재해 통계에는 일하다 다치거나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 통계에서조차 소외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중 상당수가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노동자, 이주노동자라는 점은 이들의 산업재해가 숫자로 기록되지 않은 이유가 우연은 아니다. 사회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은 더 많이 다치면서도 자신들의 아픔에 대해 소리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다친 이야기가 배제된 숫자에만 주목하며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무관심 뒤에서 하염없이 쌓여왔던 사고들은 사람이 죽고 나서야 기록된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김용균 5주기] 산업재해 피해자로 마주한 삶
우리 부부는 자식이 태어나며 더욱 행복이 충만한 가정이 되었다. 모든 중심은 용균이었고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것을 보며 너무나 행복했었다. 특별히 공부하라고 다그친 적도 없이 알아서 노력하는 편이라 내신성적만으로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덧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1년 동안 자격증도 여러 개 따놓았다. 이제 직장만 잘 얻으면 되는 일이었다. 전국을 다니며 잘 나가는 기업들 상대로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수십 번을 봤지만, 아들은 경쟁에서 밀려 매번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곁에서 괜찮다고 달래 주었지만, 아들은 점점 자존감이 낮아져 힘들어했다. 그러다 김천에서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렇지만 한 달 후 합격이 무산되었다는 비보... 운조차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우선 다니기로 했나 보다. 아들은 태안 서부발전 하청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하게 되었다.  안전장치 없는 현장에서 발견한 위험의 외주화 입사한 지 석 달 못 되어서 아들 사고 소식을 접했다. 하청 이사가 처음 만난 나에게 아들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고 했는데 뭔가 미심쩍었다. 그래서 아들이 어쩌다 사고를 당했는지 알고 싶어 사고 현장에 들어갔는데 현장은 70년대 탄광을 연상케 할 만큼 열악했다. 아주 비좁은 캐비닛 안에는 배고플 때 먹을 컵라면이 있었고 고장 난 플래시가 있었다. 입사한 지 사흘 만에 안전교육도 없이,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장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랜턴 하나 지급받지 못한 채 어두컴컴한 현장을 개인 핸드폰 불빛으로 밝히며 1~2킬로나 되는 긴 거리를 혼자서 점검하러 다녀야 했다. 낙탄이 쌓이거나 탄 덩이가 회전체에 끼면서 불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이상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 아들의 점검 업무 중 핵심이었다. 외항의 철재 구조물 속 컨베이어벨트 위에 수많은 회전체가 안전 커버도 없이 돌아가고 있었으므로 사고의 이유를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더욱 비상식적인 것은 개구부와 회전체가 일치하지 않아 머리를 개구부에 넣어야만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2인 1조는 규정에만 존재했으므로 회전체에 몸이 딸려 들어가 죽을 때까지 아무도 안전줄을 당겨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너무도 비참했다.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 사고 난 장소를 갔는데 사측은 이미 물청소로 모든 증거를 없앤 뒤였다. 그때부터였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 꼭 되도록 제대로 밝힐 것을 다짐한 것이. 사람들에게 공공기관조차 현장의 안전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더 알리고 싶었다.  부르는 곳마다 연대하러 갔지만 실상은 아들의 위험한 작업장을 알리고 부당한 처우를 사회에 고발할 목적으로 다녔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산재 사망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고 모두 아들과 같이 안전하지 않은 현장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아들의 피켓을 이어받아 하청에 월급도 주고 구체적 작업지시까지 하면서 안전 예산을 짜고 인력을 늘릴 권한이 있는 원청은 안전을 책임지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로 발생하는 산업재해였다는 것이다. 업무 수칙을 더 잘 지키면 지킬수록 죽는다는 것이다. 원청은 하청을 주었으니 내 직원 아니라고 했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라 현장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원하청 단절로 아무도 안전에 책임지지 않았으므로 동료들의 28번의 위험 시정 요구는 모두가 묵살시킨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사고 당사자한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우면 기업 입장에서 가장 피해가 없는 손쉬운 처리 방법일 것이다. 이런 부당함과 싸우기 위해 아들이 피켓을 든 이유처럼 나 또한 이어받아 싸우고 있다.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한 유족들은 모두가 내가 당할지 몰랐다고 했다. 특히 위험하고 힘든 일일수록 걱정 끼치기 싫어서 부모에게 알리지 않으니 더욱 현장 상황엔 어둡기 마련이다. 하청에 재하청일수록 급속도로 위험한 현장이 증가했고 다치거나 죽는 것도 내려갈수록 더 심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유족들은 각자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이다 보니 서로가 큰 의지가 되면서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이라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산재 피해 유족들의 바람은 하나같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더 이상 우리처럼 억울하게 가족을 잃는 끔찍한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수많은 죽음을 용인하는 사회 지난 7일 갑작스레 잡힌 아들에 대한 대법 재판을 하게 되었다. 정부 차원으로 이뤄진 특조위 조사에서 아들의 잘못이 아님을 낱낱이 밝힌 많은 증거가 있었기에 그대로 적용하면 원청 대표까지 처벌이 가능할 거라고 예상했다. ‘구의역 김군’ 사건도 원청을 처벌할 수 있었으니 당연히 좋은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법은 판결은 원심 그대로 ‘기각’이었다. 오늘을 위해 5년 동안 열심히 싸워 왔는데 예상은 빗나갔고 결과는 참담했다. 용균이를 서부발전이 죽인 것은 맞지만 처벌은 하지 않겠다는 기업 봐주기. 실제 감옥에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너무 부당한 판결이다. 사법 정의가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 50인 이하 사업장 즉시 적용해야 할 이유를 재판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원청에 사망사고의 책임이 묻지 못하면 아무도 처벌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러함은 수많은 죽음들을 용인하겠다는 것인데 국민의 생명 안전을 보호할 국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중대재해처벌법부터 지킬 수 있도록, 함께 여러 유족의 손을 잡고 힘을 주며 함께 했다. 마사회 문중원 기수 때도 동국제강 이동우 사건도 디엘이엔씨를 쭉 겪고 느낀 점은 기업은 기업이미지 리스크가 크면 클수록 잘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유족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 수립과 함께 합의를 성의 있게 협상하는 것을 봐왔다. 더 큰 성과는 시민들의 안전 의식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는 것이고 노동자 죽음이 과거에는 대부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기업 살인이라는 인식이 크게 변한 것이다. 하지만 이편한세상 아파트를 짓는 디엘이앤씨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7번의 사고로 8명이나 죽었는데 단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아마도 기업이 유족들에게 처벌불원서에 사인을 해야만 합의를 해준다고 협박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동안 죽음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던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든 취지마저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또 현재 50인 이하 사업장 유예하자는 경총의 의견을 받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사망사고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함에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은 기업을 봐주기 위해 국민의 눈치를 보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도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놓고 협상하자고 나서고 있다. 이미 2년을 유예했음에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다시 2년을 더 유예해달라고 함은 앞으로도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예는 곧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이기에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중차대한 일이 가장 시급한 민생임을 저들은 왜 망각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수많은 시민을 살리기 위해 내년 초 예정했던 그대로 당장 시행하길 바란다. 뒤늦은 후회는 무엇도 되돌릴 수 없으니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을 막는 일에 모두가 나서길 바란다.  
[함께 안전]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기
*대체텍스트 있음 우리나라가 2014년부터 꾸준하게 유지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국제노동기본권 등급이다.  No guarantee of rights노동권 미보장 나라 5등급인 ‘No guarantee of rights’를 벗어난 적이 없다. 유일하게 5등급의 하위인 5+등급은 대부분 내전으로 법치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가 받는다. 사실상 우리는 최하위를 받은 것이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은 노동기본권 지표 보고서를 통해 등급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올해는 단체행동권 침해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Right to free speech and assembly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침해작년 6월 전국공공운수노조는 최저임금제와 같은 기본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했다. 청와대 주변 시위 허용 방침 이틀 만에 경찰은 이들의 시위를 금지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정부는 이들의 총파업을 막기 위해 개별 운전자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긴급법을 발동시켰다.  Violent attacks on workers 노동자에 대한 폭력올해 1월 18일, 경찰과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단체가 아닌 개인 간부가 대상이었는데, 경찰 수백명이 동원되어 10시간동안 진행되었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해당 활동가들이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을 당해 하부망을 조직했다는 주장이었다. Right to civil liberties 자유에 대한 권리작년 5월 민주노총 윤택근 수석부위원장이 체포되었다.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였다. 기준이 모호했던 감염병관리법이 집회 자유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논란과도 이어진다. 국제운수노동자연맹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위반이라며 직접 적극 개입하기도 했다.  Union busting 노조 급습작년 6월 전국은행연합회가 세 명의 한국금융산업노조 전직 간부를 해고했다. 2017년 단체교섭 원상회복을 요구하기 위해 한국금융투자협회 사무실을 항의 방문한 사건 때문이었다. 해당 노동자들은 이미 기소되어 징역형과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전국은행연합회는 재발 방지를 위해 이들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Prosecution of union leaders for participating in strikes 파업에 참여한 노조 간부 기소작년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을 진행한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를 상대로 470억 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파업은 하청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작되었다. 이들은 10년 이상 경력이라도 계약직이란 이유로 최저임금만을 받으며 일해야 했다.  2015년 어느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광화문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의경 컨테이너 맞은편 좁은 도보. 낡은 돗자리 몇 개를 덧댄 바닥에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피해 돌아가려 길을 건너다 방향을 바꿔 그들의 돗자리로 다가갔다. 털썩 주저 앉으며 물었다.     “여기 왜 앉아 계시는지 궁금해요.” 무작정 곁으로 온 초면의 청년에게 찬 데 앉지 말라며 자신들의 방석을 전부 내어주시던 그들은 강원도 삼척에서 온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였다. 나는 이 돗자리에서 어디에서도 자세히 듣지 못한, 하지만 너무나 알고 있어야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화 도중 한 행인이 “힘내십시오!” 한마디 건네며 지나쳤다. 그러자 한 분이 벌떡 일어나 그 행인에게 뛰어가서는 허리 숙여 감사인사를 하고 음료수 한 병을 건넸다.  이 장면을 오래도록 또렷이 기억하고자 한다. 그들이 요구한 건 시멘트 대기업의 몰락이 아니었다. 그저 중학생이 된 딸내미에게 떡볶이 사 먹으라 용돈을 주고, 내일 회사에서 잘리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며 잠드는 밤을 바랐다. 이런 당연한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이란 보안직원을 앞세운 꽉 닫힌 본사 건물 앞 길바닥에서 먹고 자는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누군가의 작은 이해와 응원만으로도 힘을 내어 변화를 만드는 노동자의 움직임은 여전히 단단하다. 그들의 돗자리에 찾아가 앉지 않으면 듣지 못할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청소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하자 파리 시민들은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를 모아 시청 앞에 쌓아 올렸다. 이는 파업을 진행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파업의 원인을 제공한 고용 측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한 유명한 일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대학 청소노동자 파업 당시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빗자루는 알고 있다> 중) 우리는 노동기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거나 응원 한 마디를 건넨 적은 언제일까 떠올려본다. 늦어진 출근길에 욕설을 내뱉거나 찢어지는 스피커 음향에 귀를 틀어막진 않았는지. 그리고 상상한다.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로 덮인 길거리를 마주한 우리는 과연 누구를 탓했을까? 2015년 동일한 주제와 제목으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때도 여전히 나는 노동기본권 최하위 국가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 5등급의 이유는 교직원노조의 법외노조 통보,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 철도파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었다.  8년이 지나가는 오늘 반추하니, 놀랍게도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출발선 전이지만. 전국교직원노조는 법외노조 처분 위법 판결을 받았고 전국공무원노조는 9년만에 설립신고증을 교부 받았으며 삼성 임원진은 무노조 경영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우리의 일터가 수많은 투쟁으로 더 안전하게 바뀌고 있다. 그 작지만 거대한 변화의 가치를 잊지 않아야 한다. 다른 일터가 무사(無事)하지 않다면 나의 일터도 무사하지 않다. 그들의 일상이 위험하다면 우리의 일상도 위협받을 수 있다. 우리 모두 똑같은 권리를 가진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나의 안전한 일터를 위해서는 쓰레기가 가득한 거리에서 파업 중인 노동자를 비난하지 않는 시선이 필요하다. 쓰레기를 시청 앞으로 쌓아 올려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일상 속 연대가 필요하다. 
'김용균 5주기'와 대법원 : 일은 시켰는데 고용관계가 아니라고요?
(사진 : 언스플레시) 2018년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던 24살 김용균 씨가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습니다. 사건 관련, 검찰은 수사를 진행한 뒤 2020년 8월 원청인 서부발전과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법인과 사장 등을 김용균씨 사망 사고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1심 판결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 무죄*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전 대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 재판부는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에서 연평균 9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었고,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인 점 / 컨베이어 벨트 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수차례 발생한 점 / 한국서부발전이 컨베이어 벨트를 비롯 모든 설비를 소유하고 운영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점 / 한국서부발전이 한국발전기술 작업 인원에 관여하고, 안전 회의를 통해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에게 직접 작업 지시를 하는 등 관리 및 감독한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소속 노동자들 사이 실질적 고용관계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서부발전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사업주라고 볼 수 없어 한국서부발전이 노동자 사망으로 인한 법 위반을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전 대표에 대해서는 근로자가 점검 작업을 시행할 때 컨베이어 벨트 운전을 정지하지 않는 등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이 인정된다며 판결했습니다.  즉,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에서 사고가 많이 났어도, 서부발전이 설비들에 대한 실질적인 소유와 운영권을 가지고 있어도,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려도,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은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서부발전 책임자 및 법인은 법 위반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업무 지시까지 내리는 상황에 고용관계가 아니라 사람이 사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결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책임 없는데 업무지시를 내릴 권한은 어디 있는 건지, 이해하기 불가능합니다. 이에, 유족은 서부발전과 하청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실질적인 고용관계에 있다는 의견서를 항소심에서 냈습니다. 2심 판결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 무죄*한국서부발전 법인 무죄 선고*한국서부발전 안전보건 총괄책임자 권유환 전 태안발전본부장 무죄 선고*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전 대표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한국발전기술 법인 벌금 1200만 원으로 선고*태안발전본부 직원 2명에게 선고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벌금 700만 원 원심 판결이 무죄 선고 재판부는 서부발전의 한국발전기술에 대한 구체적 지시 및 감독 행위는 용역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급인으로서의 일반적 지시권에 기초한 권한 행사에 해당한다며 근로의 실질 종속 고용관계는 그 의미를 달리해 반드시 동일하게 판단할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용역계약의 목적은 부여하고 부여받은 서로의 일을 다 마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합니다. 노동에는 구체적 지시와 감독 행위가 수반되는 것이고요. 계약서에 고용관계로 적시되지 않아도 지금과 같은 관계라면 실질적 종속 고용관계라고 부르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렇게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재판부의 판결이 1차원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재판부는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가 구체적 설비의 형태나 작업 방식이 다른 컨베이어 벨트에 대해 사고 예방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즉, 유죄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전 대표에 대해서 재판부는 산업재해 사고 재발방지 의무가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위험성을 알면서 사고가 발생하게끔 고의로 방치한 것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고의든 아니든 의무를 다하지 않고 방치한 것을 보통 ‘직무유기’라고 합니다. 재판부는 다르게 생각하나 봅니다. 대법원 판결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 무죄 선고*한국서부발전 법인의 무죄 선고*한국서부발전 안전보건 총괄책임자 권유환 전 태안발전본부장 무죄*한국서부발전 관계자 6명 금고형의 집행유예*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전 대표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형량 결정*한국발전기술 관계자 5명 벌금형, 금고형의 집행유예|*한국발전기술 법인 벌금 1200만 원 확정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에 대해 “원심 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죄의 사업주·고의·안전조치의무 위반·인과관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말이 어렵지만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 내려진 판결에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진 사건입니다. 책임자 처벌로 사건이 종결되지 않고, 책임자들에 무죄 판결이 내려지며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인한 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한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 질까요?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한 기분입니다.
서사의 사건화, 끝나지 않는 노동자 죽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또 한 명이 죽었다. 6일 오전, 금속노조 사업장인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기자가 다급하게 물어왔다. 뉴스가 나오기 전이었다. “또 하청인가요?” 사건에 대한 팩트를 확인하고 취재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필자이기에 노동조합 내부적으로 사안을 확인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외부업체인데 하청이라 봐야죠. 10미터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대응 중인 금속노조 충남지부 간부의 설명을 들었다. “또 하청” 기자의 예상은 늘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곧 뉴스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외주업체 직원 추락사” “현대제철, 깊은 애도 표해” 따위의 제목이 빠르게도 통일됐다. 현대제철 측은 “향후 이런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 및 안전 점검을 최우선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말을 언론에 남겼다. 중대재해 사망 기사에서 한결같이 마지막 문장을 채운 말이었다. 말은 무색하게 통용됐다. 언론은 빠른 단신 처리로 적당한 조회수, 트래픽을 챙겨갈 것이다. ‘왜’라는 질문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사건으로 치부되고 후속 보도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후에 노동조합이 사고의 근본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는 항의에 나설 경우 그때는 언론 입장에서 ‘기사의 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감히 광고주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한국에선 매일 두 명이 퇴근하지 못한다. 오늘 두 명, 내일도 두 명 더, 그렇게 지난해 사고 사망으로 88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사고 포함 산재 사망자는 2022년 2,062명에 달한다. 한국의 사망만인율은 0.43퍼밀리아로 OECD 국가 중 34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러있다. 모두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 한국이란 사회를 치켜세우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이 노동자가 죽는 사회에 대해선 침묵한다. 침묵의 배경에는 ‘서사의 사건화’가 있다. 사라진 한 사람의 세계를 기억하는 것은 서사에 집중하는 일이다. 공동체가 하나의 서사에 집착할 때 그 서사는 집단의 문제로 부상하고 구조에 접근하는 지름길을 개척한다. 그렇지 않고 서사가 사건으로 그칠 때 공동체는 뉴스 소비자의 입장에서 반응을 내는 것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사건화가 방관자를 양산하는 셈이다. 계속되는 서사의 사건화로 우리 모두 ‘다른 이의 죽음’에 무감각해진다. 그 결과 ‘책임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지’는 더욱 커져만 간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쏘아올린 공 지난해 산재 사망자가 2천 명을 넘지만, 우리가 아는 죽음은 극히 일부다. 대다수 사건화되고 이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극히 일부 사례가 세간에 알려지고 사망한 노동자, 그 유족에 대한 서사가 대중에게 전달된다. 대중 전달 과정의 첫발은 유족, 동료의 투쟁이다. 죽지 않아도 될 목숨이었다고, 죽음의 책임은 기업에 있다고 주장하고 싸움에 나설 때 이슈는 출발한다. 5년 전 이맘때 길고 길었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투쟁이 그렇게 시작됐다. 유족이 처음 취재진 앞에 등장했을 때 필자는 현장에 있었다. 유족도, 노조 관계자도, 취재진도 모두 울음바다였다. 모두의 머릿속은 참담한 사고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자회견 진행은 불안정한 호흡에 따라 천천히 진행됐다. 적막 속에 넘어가는 사고 현장과 원인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에는 구조가 담겼다. 작동했어야 할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았고, 2인 1조 매뉴얼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원청은 하청에 책임을 떠넘기고 노동자들의 현장 개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죽음의 외주화’라는 구조는 그렇게 이슈를 폭발시켰다. 원인이 없는 죽음은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그 선택을 내리게 된 배경은 존재한다. 근본적인 원인과 배경은 구조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구조적 특징으로는 하청, 외주화, 비정규직, 50인 미만 사업장이란 특징이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사망자 중 하청 노동자 비율은 70%에 달한다. 또 사고사망자 중 50인 미만 사업장의 비율은 80%에 육박한다. 노동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화되고 환경이 불안정할수록 죽음의 문턱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주변으로 밀려날수록 임금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위험한 환경까지 감수해야 하는 사회의 구조는 양극화를 강화했다. 그렇게 자본과 정부는 죽음의 외주화를 통해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하는 것을 포함해 현장 안전 등 각종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법망을 교묘히 피해 원청의 책임을 희석했다. 하지만 진실은 감출 수 없는 법. 유족과 동료 노동자들의 싸움은 고인의 죽음의 원인과 구조를 드러냈다. 구조가 드러나자 곧 책임이 떠올랐다. 고 김용균을 비롯한 노동자의 죽음에는 원청의 책임이 컸다. 사회와 사법부 등 당국이 원청의 책임을 인정하고 안전 문제를 개선해야 비로소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원청 책임’ 네 글자를 들고 유족과 동료 노동자들이 국회로, 청와대로, 광장으로 나섰다.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시민들은 SNS에서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 부르기 챌린지로 화답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고 김용균 노동자가 쏘아올린 공은 3년이 지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발돋움했다. ‘서사 말하기’가 사그라들자 거꾸로 간 시간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은 ‘원청 책임’이다. 원청에 일터에서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 의무를 부여하고, 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시 원청 사용자,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는 것이다.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법 처벌의 전제는 사용자의 ‘안전 의무’에 있는데 정치권과 언론은 ‘처벌’에만 집중했다. 마치 죄 없는 기업가들이 ‘툭’ 하면 구속되고, 그 까닭으로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말했다. 안전과 책임은 다시 경제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존재로 전락했다. 기업가들은 ‘잠재적 피해자’, 약자의 위치로 옮겨갔고 이내 생명과 안전의 시간은 거꾸로 갔다. ‘e편한세상’ 건설사로 유명한 DL이앤씨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월 이후 지금까지 8명의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숨졌다. 지난 8월 목숨을 잃은 고 강보경 씨의 모친은 DL이앤씨 본사가 있는 서대문역 사거리 도심 한복판에서 상복을 입고 아들의 영정을 들었다. 필자도 사거리에서 원청이 사과하고 책임지라는 피켓을 들었다. 대기업이 밀집한 주요 도심에서 수많은 인파가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왔다. 강남대로 한복판 못지않은 유동 인구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시민은 흘깃 보고서는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무관심 속 강보경 씨의 이야기는 외롭게만 울려 퍼졌다. 만약 더 많은 이가 강보경의 서사에 집중하고, 또 많은 이가 유족의 곁에 함께 서 있었다면 생명과 안전의 시간은 더디게라도 흘러가지 않았을까. 지난 3일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은 또 유예됐다. 대법원은 7일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에 대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무죄를 선고했다. ‘죽음에 대해 책임 묻기’는 다시 멀어져 간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떠나간 이들의 서사를 다시 좇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죽은 이는 말이 없다. 그들의 말을 꺼내는 자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다. 그래서 죽지 말았어야 할 이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우리다. 그 이야기가 빠지고 덩그러니 영정만 남는다면 책임에 대한 사회의 무지는 걷히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일터에서의 죽음은 반복될 것이다. 차츰 나의 주변 영역으로 파고들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 죽음을 감각하기 위해 모든 이의 서사를 쉬지 않고 말할 때다.
[함께 안전] 수많은 ‘이름에게’
#1 그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이었기에 고등학교 방학 기간에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 노동을 했고, 취업을 위해 진로도 변경했습니다. 이 청년은 언제나 성실했지만 여느 20대가 겪는 것처럼 취업의 문턱은 높았습니다. 원했던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2018년 9월 화력발전소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경험을 쌓아 더 안정적인 일자리로 옮기길 꿈꿨습니다. 첫 월급으로 엄마가 평소에 즐겨 먹고, 쓰던 비타민, 보습크림, 홍삼을 사오는 살가운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2 그는 엄마가 해준 시금치 나물을 좋아했습니다. 누나들과 가족을 참 아꼈습니다. 노래도 좋아하고, 기타 연주도 잘 했습니다. 수학을 특히 잘했던 그는 수학과로 진학해 성적 장학금을 받기도 했지만 취업을 위해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지 고민했습니다. 군대를 졸업한 후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시간이 남을 때마다 아버지가 일하던 평택항에서 일과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일해서 번 돈으로 누나, 조카들에게 간식을 베풀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아빠는 핸드폰에 그의 번호를 ‘삶의 희망’으로 저장했습니다. #3 그는 친구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했습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배구선수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배구를 했지만 꿈을 향한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배구부 내 학교폭력 피해를 겪었고, 배구선수의 꿈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돈을 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직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했고, 엄마는 그에게 전망이 있다고 생각한 애완동물과를 추천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그는 한 대기업 통신사의 콜센터에 ‘실습생’으로 취직하게 됐습니다. 앞서 설명한 세 사람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때로는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했고, 가족을 아끼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내 주변 어딘가, 혹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느껴지시나요?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던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는 2018년 12월 10일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했습니다.  엄마가 해준 시금치 나물을 좋아했던 물류기업 동방의 일용직 아르바이트 노동자 이선호 씨는 2021년 4월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친구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했던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엘비휴넷 노동자 홍수연 씨는 업무 중 지속적인 폭언을 듣고, 실적압박을 받은 뒤 2017년 1월 23일 섬진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고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앞의 이야기를 듣고 보시니 조금 다르게 느껴지시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산업재해 사고를 마주할 때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곤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다 보면 너무나 평범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걸 자주 느낍니다. 이 습관은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이후 생겼는데요. 동갑내기였던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은 여러모로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일하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 사실 산업재해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 건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이후부터였습니다. 김용균 노동자와 저는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득권은 언제나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를 마주하며 한편으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운이 좋게도 키보드와 모니터 앞에서 노동을 하고 있던 저는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에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노동을 하는 김용균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해 고민할 일이 없었으니까요. ‘나는 상대적 기득권이어서 너무 쉽게 산업재해 문제를 외면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어떤 일터가 안전한 일터인지 묻는다면 정확한 답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적어도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문장은 너무 당연하지만 한국에선 당연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너무 많은 노동자가 일하러 출근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멀쩡히 살아서 일하고 있는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상대적 기득권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산업재해를 돈의 문제로 보는 접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산업재해로 기업이 위축될 것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내 주변, 혹은 또 다른 내가 일하다 죽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돈을 이유로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외면한다면 김용균, 이선호, 홍수연과 같은 또 다른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어쩌면 나 혹은 당신의 이름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수많은 이름이 헛되지 않도록 저는 잊고 싶지 않은 일이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음악을 이용하는 편입니다. 특정한 가사를 들으면 장면이나 얼굴이 떠올라서 시계를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인데요.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 이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가수 아이유의 ‘이름에게’였습니다. TMI를 조금 풀자면 곡을 부른 아이유 씨는 2017년 콘서트에서 이 노래가 “어디에 살고, 무슨 직업을 가졌고 이런 조건 없이 어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하는 위로 같은 곡”,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잘 골라서 사람으로서 쓰고 사람으로서 부른 곡”이라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 곡은 아이유 씨가 조금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창에 집중하기 위해 가사를 작사가 김이나 씨에게 부탁한 노래이기도 한데요. 저는 12월 언저리가 되거나 산업재해 사고 소식을 볼 때마다 이 곡을 항상 떠올립니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위로의 가사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다짐의 가사로 느껴지기도 해서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마음을 되새길 때도 찾아 듣곤 합니다. ‘김용균’, ‘이선호’, ‘홍수연’을 비롯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수많은 이름들이 헛되지 않도록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노래와 함께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가져 기억해야 할 이름이 이제는 더 생기지 않길 바라며 곡의 마지막 가사를 공유합니다. 수 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멈추지 않을게 몇 번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참고자료 내 아들, 내 친구, 우리 모두의 김용균(한겨레21.2018.12.28) 정규직 전환 희망하던 평범한 청년의 죽음(발전산업신문.2018.12.12)  “일터엔 주인잃은 전공노트…꿈도 희망도 안전부재에 스러져”(한겨레.2021.05.09)  “우리 딸 수연이 죽음 때도 반짝 관심…‘다음 소희’ 더는 없어야”(한겨레.2023.02.20)
고 김용균 추모5주기 특별기획전시 <유감>에 대해 말하다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5주기를 맞아, 특별기획전시 <유감>이 지난 11월 25일부터 12월 3일까지 문래동 대안공간 이포에서 열렸습니다. 문화연대 사회예술네트워크 신유아 활동가가 전시를 준비하며 어떤 고민을 했고, 전시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유아HERE] 고 김용균 추모5주기 특별기획전시 유감(Regret):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다 고 김용균 추모5주기 특별기획전시 <유감>은 지난 11월 25일~12월 3일까지 문래동 대안공간 이포에서 진행되었다. 이 전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필요성과 산재로 인한 죽음, 살아 남은이들의 추모와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기획했다. 기획은 3가지 형식과 내용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지난 2018년 12월 10일 태안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상태점검을 하다 벨트와 롤러사이에 끼여 사망한 고 김용균의 공간이다.  이 공간은 고 김용균의 유품과 그의 유품들이 의미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는 공간이다. 전면에 설치한 두 장의 사진. 한 장의 사진은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에 이름도 없는 수천 명의 ‘00현장 00사고로 사망’ 이라는 기록속의 한 줄로 남았을지도 모를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려주었고 하청노동자, 불법파견, 차별, 원청의 책임회피등등 비정규직의 문제와 산재사망, 중대재해기업처벌이라는 사회적 숙제를 던져주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한 장의 사진은 고 김용균 추모1주기 때 김미숙어머니가 아들의 묘지 앞에서 발언하는 사진으로 어머니 삶의 변곡점이라 생각했다.  두 장의 사진 아래 고 김용균의 유품은 청년노동자의 피곤한 일상이 보인다. 사발면과 치약, 작업복과 슬리퍼, 켜지지 않는 작은 랜턴, 우산, 이어폰과 과자. 유품을 설치하던 중 작업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열쇠 하나가 새로 발견되었다. 열쇠에는 준혁 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함께 일하던 친구의 이름이다. 발전소에서 온 분들도 정확하게 용도를 알지 못했으나 벨브작업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열쇠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전시기간 중 고 김용균의 시신을 처음 발견했던 이인구님의 방문으로 이 열쇠의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작은 열쇠는 컨베이어벨트를 운전시키기 위해 쓰이는 열쇠였고 벨트운전을 책임지던 사람이 준혁이라는 것이었다. 준혁은 고 김용균 사고이후 벨트 책임자로 자신을 자책하며 엄청 힘들어했다고 한다. ‘제가 벨트만 안 돌렸어도...’ 이인구님의 시간도 준혁의 시간도 함께 일한 모두의 시간도 멈춰버린듯하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김미숙 어머니가 소중하게 보관 중이던 자격증과 학생증 그리고 군번줄과 용균이가 직접 종이로 만든 절대반지도 공개했다. 절대반지는 2018년 당시 인기 있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이 자신의 영혼과 권능을 녹여 만든 반지로 소유주에게 걸 맞는 능력을 부여한다. 아마도 청년노동자의 삶에 희망 같은 반지가 아니었을까. 그가 죽기 전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절대반지는 그가 죽은 뒤 집으로 배송되었고 어머니는 이 반지를 모란공원 그의 묘역에 함께 넣어주었다. 마지막 유품으로 손목시계가 있다. 산산이 부셔진 시계는 벨트에 낀 그의 모습을 연상시켜 보고 있는 것도 버거웠다. 김미숙어머니가 유품을 가져 오던 날 눈치 없는 나는 왜 이리 기운이 없어 보이냐 물어봤었다. 다시 꺼내 봐야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고 김용균의 공간 옆에는 김미숙 어머니의 시간이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투사가 되어버린 어머니가 지난 5년간 어떻게 싸워왔는지 연표로 정리하여 설치했다. 김용균재단이 만들어지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재판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어머니의 시간 옆에는 고 김용균의 죽음이후 산재로 사망한 이들을 아카이브형식으로 구성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름들을 중심으로 연도순으로 서술해 놓았고 그 아래 팬과 ‘당신이 기억하는 죽음을 남겨주세요’라는 메모를 써 두었다. 관람자들 중에 나의 오빠가 00년 0월0일에 어느 현장에서 일하다 죽었다며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기록이 잘못되었다며 연도를 수정해 주기도 했다. 기획 의도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산재로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고 서로가 기억하지 못하는 죽음을 공유하여 새롭게 아카이브 하는 것이었다. 고용노동부의 이름 없는 공식기록이 아닌 이름으로 불려 지는 죽음들을 기록하고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벽에는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에서 정리한 수천 명의 이름 없는 산재 사망내용을 2018년 고 김용균의 죽음이후 부터 현재까지 나열식으로 정리하여 설치했다. 이 많은 죽음 앞에 고용주와 회사의 처벌은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두 번째는 산재사망으로 고통 받는 가족들에게 또는 언론을 통해 회사와 고용주들은 어떠한지 묻는 나쁜 말들의 나열이다. ‘병 있는데 숨기고 입사했지?’ ‘재수 없게 여기서 죽었냐’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죽은 거다’ ‘위험한 현장이 아니다’ ‘작업자가 부주의해서 죽은 거다’ ‘하청업체가 시킨 일이다. 우리와는 상관없다’ ‘근로 여건이 열악하지 않다’ ‘업무요청을 한 것이지 업무지시를 한 것이 아니다’ ‘얼마 원하냐’ 등등 이 어이없는 말들이 죽음을 대하는 책임자들과 회사의 입장이다. 처음엔 발뺌하고 마지막엔 유감으로 정리되는 노동자의 죽음과 사용자의 태도에 분노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설치였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이런 쓰레기 같은 말들로 기분이 엉망이 되길 바라는 기획이었다.  세 번째는 노동자의 안전장치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안전물품이 노동자에게 진심 안전한 것인지. 그나마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안전물품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노동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노조에 요청하여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의 물품을 전달받았다. 처음 기획의도는 현장에서 사용하다 버리는 물품이나 쓰고 있는 물품과 노동복이었다. 하지만 보내온 물품들은 대부분 깨끗한 새것들이 많았고 노동복은 일부현장의 것뿐이었다. 직종별 보내준 물품의 수는 많았지만 노동현장을 그대로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복장을 입체화 시키려하니 마네킹등 사람의 형태를 구현할 도구가 필요했는데 이 또한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중간에 기획을 바꾸고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작업장의 사진을 배경으로 하고 안전물품을 오브제형식으로 설치하기로 했다. 노동의 직종을 정리하여 사진가들에게 사진요청을 했다. 급하게 요청했음에도 빠르게 사진들이 도착했고 전달받은 사진들은 전시장 벽 싸이즈에 맞게 편집하고 안전물품인 오브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흑백으로 전환해야했다. 사진가들은 이 모든 걸 아무런 요구 없이 사용가능하도록 해주었다. 콜센터 노동자는 사진이 없다. 국민들의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곳이라 일하는 사람조차 현장 사진을 편하게 찍을 수 없다고 한다. 항공승무원은 노동자의 편의를 위한 승무복이 아니라 보여지기 위한 복장으로 신축성이 전혀 없다. 산림청 산불진화복은 방염처리 되어있지만 방수처리가 안돼 물호스 작업을 하거나 헬리콥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온 몸이 젖은 상태로 진화작업을 한다. 자동차노동자는 하청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가 하는 일이 같다. 복장도 같다. 다만 하청노동자의 경우 로고가 다르다. 급식노동자의 장화는 물기있는 조리공간에서 미끄러지기쉽고, 택배노동자의 잠바는 한겨울을 버티기엔 역부족이다. 조리사는 조리장갑을 개인돈으로 장만해야한다. 건설노동자 또한 하청노동자의 경우 작업화등 안전장비를 개인이 장만해야한다. 노동자들은 안전장비의 불안전함을 쉼없이 이야기한다. 우리의 노동은 안전한가!   김용균 추모5주기 특별전시 유감(Regret)은 김용균재단에서 매년 추모주기에 진행하는 기획사업의 하나이다. 기록을 위해 글로 정리하다보니 서술과 감정이 뒤죽박죽이지만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보내주신 물품들을 모두 전시에 사용하지 못한 것에 미안하고 대안공간 이포 전시공간을 빌려주신 관장님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공간 구성과 작품 설치등 관장님과 상의 할 수 있어서 큰 의지가 됐다. 전시장이 문래동 철공소 골목 안에 위치해 노동의 소리까지 전달 할 수 있어서 기획의도가 한층 잘 드러날 수 있었다.  철공소 골목 전시공간이 보인다. 옥상에서 전시현수막을 설치하는 중 신유아 | 문화연대 사회예술네트워크 몸은 움직일 수 있을 때 아끼지 말자는 생각으로 최선의 노력으로 최소한의 것을 쟁취하고 싶은 문화활동가
사람 죽는 기업, 더이상 숨겨선 안됩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를 당한 재해자의 수는 모두 13만 348명에 달합니다. 한국의 취업자 수가 대략 2800만 명이니, 일하는 사람 200명 중 한 명은 산업재해를 경험한 셈입니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습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874명, 산재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1349명입니다. 모두 222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해당 통계가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된 경우에 한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숫자로 집계되지 않은 죽음 역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산업재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 산업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위험 기업'인지 물어본다면, 막상 쉽게 떠오르는 이름이 많지는 않습니다. 산재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더라도 SPC, 대형 참사가 연달아 발생한 현대산업개발, 역시 잇따른 인명사고가 일어난 DL이앤씨 정도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년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위험 기업'은 두세 곳 정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기업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어떤 산재 사고가 발생했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죽거나 다쳤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애초에 산업재해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공개 되더라도 찾아보기도 힘든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산재 발생 사업장, 공개는 하지만 한계가 많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매년 한 차례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을 공표합니다. 이는 '연간 2명 이상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 '사망 만인율이 규모별같은 업종의 평균 사망만인율 이상인 사업장', '화재, 폭발, 위험물질 누출 등 중대산업사고가 발생한 사업장',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한 사업장', '산업재해 발생 보고를 자주 누락한 사업장' 등을 공개하는 제도입니다. 어느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일어났는지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을 통해 “사업주의 명예·신용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통한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의무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겠다는 취지인데요. 문제는 이러한 공표 제도가 그 취지에 걸맞지 않게 매우 소극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공개된 '2022년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 공표'(2022년 12월 28일 공개) 자료를 살펴보면 '연간 2명 이상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은 17개(원청), 사망자는 47명입니다. '사망 만인율이 규모별같은 업종의 평균 사망만인율 이상인 사업장'은 모두 210개(원청), 사망자는 286명입니다. 이를 합치면 227개 사업장, 333명의 사망재해자가 공표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년 2000명이 넘는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공개 대상에서 빠지는 곳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개하는 정보 역시 부실합니다. 업종, 규모, 원하청 사업장명, 사업장소재지, 사망자 수 등을 공개하는데, 몇월 몇일에 일어난 어떤 사고였는지, 그 원인은 무엇이고, 사업주가 어떤 안전보건 의무를 어겼는지 등의 정보는 전혀 알수가 없습니다. 공개 대상에서 빠지는 사각지대도 넓으니, 연구 목적이나 통계 자료로 활용하기도 어렵습니다. 공개 시점 역시 문제입니다. 2022년 12월 28일에 공개한 자료인데, 2020년~2021년에 일어난 사고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심지어 2017년에 일어난 사고의 내용이 뒤늦게 실려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고가 일어난지 한참 후에야 '뒷북 공개'가 이뤄지는 이유는 재판을 통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이 확정된 후에야 공개 절차를 밟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고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씨는 2018년 12월 11일에 사망사고를 당했습니다. 한국서부발전이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으로 공표된 날짜는 3년이 넘게 지난 2021년 12월 29일입니다. 재판이 길어질수록 공표 날짜 역시 질질 끌리고, 결국 사고가 관심에서 멀어질 무렵이 되서야 슬며시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한 구석에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실 공개', '늦장 공개'는 공표 제도의 본래 취지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산재 예방을 위한 정보 전달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많습니다. 최근 여러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구조적 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산재 사망 사고는 제대로 보도되지 못하고, 단신 기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기업은 취재를 거부하고, 고용노동부 역시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입을 닫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싶어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니 취재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벌어졌는지 언론사도 기사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들이 '위험 기업'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적극적인 정보공개가 노동자를 지킨다 해외의 사례는 어떨까요?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살펴볼 수 있는 ‘사망 및 재난조사 요약’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벌어진 산업안전 사고들의 사고 발생일, 사업장 명칭, 사고 장소, 사고의 원인과 상세 내용, 부상 정도 등의 정보는 물론이고, 사업체가 무슨 법을 위반했고 그로 인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등의 내용을 키워드 검색을 통해 쉽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망사고나 이에 준하는 심각한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체를 조사한 후 조사 결과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합니다. 이런 보도자료에는 사업체에 대한 기본정보와 함께 사고의 경위, 법 위반 사항, 범칙금, 유사 사고 예방을 위한 교훈 등을 담아, 언론사들이 제대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영국 보건안전청(HSE) 역시 보건안전법을 위반해 유죄가 결정된 사건들에 대해 사업체의 정보, 법 위반 사항, 구형 내용, 사고 기록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사고의 내용과 원인, 조사 결과, 예방을 위한 필요 조치 등을 정리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도 미국과 마찬가지입니다. (관련 기사) OSHA나 HSE가 이렇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중대재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공개하고, 사고 내용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이유는 기업에서 어떤 산업재해가 일어나고 있는지 더 많이 알릴수록 사고를 더 예방하고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 미국의 노동경제학자 매튜 존슨은 [수치심을 통한 규제 Regulation by Shaming]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어느 기업이 산업안전법을 위반했는지 밝히는 언론보도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개선하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어떤 사업장이 산업안전법을 위반했는지 알리는 기사가 나올 때마다, 반경 5km 이내에 위치한 같은 업종 사업장의 법 위반 사항이 73%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이웃한 사업장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노동자들부터 안전을 위해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을 이끌었던 데이비스 마이클스 전 청장은 “문제를 알리는 보도자료 하나가 210번의 근로감독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는 말을 통해 정보공개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임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중대재해 일어난 '위험 기업' 공개하라 정보공개센터는 지난해 12월 '일하다 죽지않을 직장찾기'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2017년 1월부터 2021년 5월까지 5년 동안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데이터를 공유하고, 어느 기업에서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나 몇 명이나 사망자가 발생했는지 검색할 수 있는 웹사이트입니다.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들의 순위도 공개했습니다. 그 결과 대우건설, DL대림산업(DL이앤씨), GS건설 등이 5년간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한 위험 기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올해에는 이 웹사이트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2022년 한 해 동안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명단’을 공개해달라고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요,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이름이 '수사 및 재판에 관한 정보'이며 '공개될 경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이름은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 위반 여부를 따지는 것과 무관하게, 단순히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결국 정보공개센터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에 나섰습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이름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또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공개되어야 할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중대재해 기업의 이름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공개 판결을 요구하는 탄원 캠페인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소송이 '위험 기업'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넘어서, 정보공개가 산재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법정에서 인정 받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고용노동부가 더이상 기업과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산재를 줄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제도 개선에 나설 수 있길 바랍니다.
방송국놈입니다 근데 이제 비정규직을 곁들인...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어마무시하게 큰 방송국 사옥 어딘가의 사무실에, 평균보다 작은 몸(?)을 집어넣고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방송작가'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방송국놈' 쯤 됩니다.   ‘작가’란 칭호로 불리긴 하지만, 저는 늘 글 쓰는 일을 부끄러워합니다. 글재주가 없음은 물론, 방송작가란 직업은 수려하고 짜임새 있는 글을 쓰는 진짜 ‘작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에요. 다만,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곳의 일을 일러바칠 수는 있을 것 같아(?) 나를 골리고 간 친구의 행동을 담임선생님 앞에서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아이의 마음으로 방송작가가 살아가는 법을 슬쩍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 제 직업을 (불가피하게) 이야기할 때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어요.   "그럼 연예인 많이 봐요?!"     굳이 답을 하자면 그렇습니다. 당연합니다. 방송국이니까요. 연예인들이 '일'을 하러 옵니다. 연예인들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단 "아, 저 사람도 일하러 왔구나" 싶어요. 모든 분들이 그러하듯 회사는 저의 일터고, 그 곳이 방송국일 뿐입니다. 평범한 회사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지만, 결국 ‘방송국’이라는 이 환경과 장소가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내긴 하더라고요. 방송작가의 고용 형태를 설명할 때면, 어느새 4년차(!)가 된 지금도 순간 눈을 굴리고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정도로 꽤나 애를 먹습니다.    -   회사는 하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형태의 일이 있는 이 곳의 직업들은 크게 '앞'과 '뒤'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의 대표적인 직업들은 흔히들 생각하시는 아나운서, 기자, 각 국의 국장들을 비롯한 데스크(최종 책임 라인)들입니다. ‘뒤’의 직업들은 ‘앞’직업들을 제외한 모든 직업입니다. 각 프로그램의 카메라 담당 스탭, 영상취재 담당 기자와 VJ, AD, 조연출, 디자이너, 편집자, 그리고 저를 비롯한 방송작가들 등등이요. 그리고 예상하셨듯, '앞'과 '뒤'의 기준은 '카메라'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카메라 앞보단 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이들의 약 80%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는 저의 체감상 수치이고, 자세한 수치는 알지 못하지만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의 비율이 그만큼 예상보다 많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   방송작가인 저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흔히들 방송작가면 방송국에 소속이 되어 정규직 형태로 일을 한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외주업체 같은 프로덕션에 소속되어 직원으로 일을 하는 방송작가가 아닌 이상, 방송작가의 90% 이상은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방송국의 특수한 상황들, 일하는 방식들을 생각하면 이러한 형태가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소수의 레귤러(정규•정기 편성)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프로그램 런칭과 폐지가 흔한 일이고요. 세월호 참사나 10.29 참사 등 사회적인 사건사고로 인해 뉴스 위주로 편성이 잡힐 때엔 준비된 프로그램들이 방송되지 못할 때도 있고요. 시기에 따라 며칠, 혹은 몇 주 방송되고 마는 특집성 프로그램(ex. 명절 특집, 창사 특집 등)과 프로젝트성 프로그램(ex. 선거방송)들도 있기에 '방송일'의 특성상, 변동성이 매우 크죠.   일하는 상황도, 사람도, 사람의 구성도 너무나 많이 변하기에 모든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엔 무리가 있지요. 때문에 몸 담는 회사가 같아도 계약 형태와 조건, 단위, 기간 등 모든 게 천차만별입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크지 않은 보도국(뉴스) 프로그램의 작가들은 정규직인 것이냐 물으실 수도 있겠는데요. 대답부터 드리자면 아닙니다. 파일럿(테스트용)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어 레귤러 프로그램이 된다면 작가들은 정규직으로 다시 계약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것 역시 아닙니다.   -   글쎄요, 저도 방송작가로서 몇 해 째 살고 있지만 잘 모르겠어요.      보도국 작가들 역시 '방송작가'라서 그냥 비정규직이 된 것일까요? 레귤러 프로그램 작가들은 정규직인 본사 PD와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 똑같은 사무실에 앉아, 똑같이 일을 하고, 야근하며 머리를 쥐어뜯다 퇴근하는데(물론 비정규직이기에 야근 수당은 없습니다) PD는 정규직이고 작가는 비정규직인,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법카로 밥 먹고 싶지만 법카따위 나오지 않아 나의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휴가 한 번 쉽게 낼 수 없는, 초과근무 수당은 그야말로 '판타지'에 가까운, 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소하고 선명한 불합리함들은 어디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하나둘씩 늘어가는 물음에 저는 명쾌한 대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고용 사항에 대해 회사 측으로부터 어떠한 명확한 설명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고, 되고 보니 비정규직이었고, 여전히 저의 일을 사랑하기에 그저 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불합리함까지 사랑하겠어요, 방송작가란 저의 일을 사랑하는 거죠.   퇴근 후 터져나온 한숨에 일을 마친 개운함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불안과 현타가 더 크게 섞여나오는 어느 날엔, 제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가야 할까요? 쓰라림을 삼키고, 외사랑임을 인정하며 또 하루 살아갈까요? 저는 제 일을 좀 더 오-래, 건강하고 현명하게 사랑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Loving clumsy of you' 제가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서툰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혹은 서투름마저 사랑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요. 오늘도 서툴고 치열하게 노동 현장의 앞과 뒤, 옆에서 일하는 여러분을 같은 노동자로서 아주 많이 응원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시는 그 일이, 지독한 외사랑은 아니길 바라면서요.
산재사망, 일터안전, 그 일이 내일이 된다
“대한민국 사람들 다 아셔야 됩니다. 내 새끼가 10만 원 벌러 갔다가 죽어서 돌아올 수 있다는 거” - 청년노동자 故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의 발언 중에서 “저도 지금 옆에 지나가는 분들처럼 나의 일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내 일이 되고 말았어요” - 동국제강 산재사망 노동자 故이동우 씨의 아내 권금희 씨의 발언 중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었다는, 뉴스에 짤막하게 다뤄지고 마는 그 일이 사실은 나의 일이었다는 것을 가장 슬픈 방식으로 알게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유족과 지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정말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고. 그러나 많은 산재사망 사건에 있어서, 떠나간 이를 온전히 애도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는지, 사고는 왜 발생한건지, 누가 이 죽음을 책임져야 하는지, 노동자를 죽게한 처벌은 누가 어떻게 받아야 하고, 이 죽음은 어떻게 배상받아야 하는지 제대로 규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된 이들은 죽음의 이유를 반드시 밝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와 안전관리자 등 책임을 져야할 주체들은 여러 수단을 동원해 법적이고 도의적인 책임과 비판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그렇게 미디어에서 보던 ‘투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재래형 재해’는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세계>에서 취재를 시작하면서 배운 단어입니다. 이는 말그대로 끼임사고 넘어지거나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재해를 일컫습니다(좋아하진 않지만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후진국형 재해’라고 불린다는 점도 덧붙입니다). 처음 이 단어를 취재 현장에서 들었을 때, 심장이 바닥에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일터에서의 죽음을 설명할 때, 재래형 사고였다고 말하는게,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고 자주 언급되는 게 맞나 하는 충격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여전히 ‘재래형 재해’란 중대재해를 포함한 직업성 사망, 과로사 등 모든 산재사망을 통틀어봐도 가장 압도적인 발생원인으로 분류되고 있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9월까지의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중대재해 사망자수 459명 중 399명이 떨어짐, 물체에 맞음, 부딪힘, 끼임, 깔림·뒤집힘, 무너짐 사고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 재래형 재해는 최소한의 기초적인 안전장비와 설비만으로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안전요원이 한 명만 있었어도, 보호장치 고리가 하나만 있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죽음이 올해에만 이만큼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로 그 ‘돈 몇 푼’을 아끼기 위해 빼먹은 안전 장비와 관리감독 부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는 산재유형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직업병, 과로사, 직장내괴롭힘이나 직장갑질으로 인한 자살 등 수없이 가슴아픈 산재사망이 비일비재한 가운데서도, 우리의 노동 현실은 이렇듯 아주 일차적인 안전 소홀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한때 경제대국이라고 불리던 대한민국이 져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본다면, 한없이 부끄럽고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지만, 모든 유족들이 투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족과 지인들이 투쟁을 시작하는데까지 이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사망사건 발생 시, 많은 경우 회사측은 유족들에게 진상규명 약속이나 사과 대신 배상금 얘기를 먼저 꺼내며 사건을 은폐·축소하려고 합니다. 다음 단계로 자본과 기업은 유족(지인)에게 다가가려는 노동조합(노조가 없는 경우 노동안전 활동가)들을 격리하거나, 이간질을 하면서 접촉을 방해합니다. 많은 산재사망이 이 과정에서 알려지지 못합니다. 지금껏 사회적으로 알려진 산재사망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이같은 자본의 훼방을 뚫고 투쟁의 길을 나서겠다고 다짐하는 유족들은 말합니다. 다시는 ‘내 일’같이 처참한 ‘내일’은 없어야 한다고. 비상식적인 노동 현실을 폭로하고 고발해야겠다, 일하다가 죽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입니다. 청년노동자 故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씨가, <혼술남녀> PD였던 故이한빛 씨의 아버지인 이용관 씨가, 평택항에서 일하다 목숨 잃은 故 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가, 동국제강에서 일하다 목숨 잃은 故이동우 씨의 아내인 권금희 씨가, 디엘이앤씨 하청업체에서 건설노동을 하다가 사망한 강보경 씨의 누나와 어머니가 그렇게 세상과 싸우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문제를 문제로 만듭니다. 산재 피해를 사회적 문제로 만들고, 여론화 시키고 법 투쟁으로 끌고가는 핵심적인 주체입니다. 산재사건이 발생하면 자본이 재빠르게 유족과 노조를 갈라놓으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의역 김군 사망사건’을 기억합니다. 2인 1조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해야 했지만, 안전인력이 감축되며 혼자서 이 작업을 하다 결국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앞서 3년 전 성수역에서, 9개월전 강남역에서 똑같은 이유로 사망사건이 일어난 것은 알지 못합니다. 똑같은 사고, 똑같은 죽음이지만 원인을 파헤치고, 지하철 안전인력 부재, 안전관리체계의 부재로 쟁점화 한 것은 김군이 민주노총의 노동조합 소속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슬픔을 슬픔으로만 두지 않는 유족의 결단과 일터의 문제를 포착하고 끝까지 바꿔내려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작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빚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람보다 이윤을 앞세웠던 자본에 일정정도 부담을 가하고 있고, 계속되는 노동안전 활동은 시민들에게 꾸준히 닿고 있습니다. 안전한 노동을 위해서는 여전히 더 큰 마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바꿔내는 일은 결코 유족들과 활동가만의 역량으로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계속되는 산업재해는 우리 모두의 오늘입니다. 어떤 내일을 마주할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산재사망도, 일터의 안전도, 그 일은 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