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안전한 노동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체텍스트 있음
우리나라가 2014년부터 꾸준하게 유지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국제노동기본권 등급이다.
No guarantee of rights
노동권 미보장 나라
5등급인 ‘No guarantee of rights’를 벗어난 적이 없다. 유일하게 5등급의 하위인 5+등급은 대부분 내전으로 법치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가 받는다. 사실상 우리는 최하위를 받은 것이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은 노동기본권 지표 보고서를 통해 등급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올해는 단체행동권 침해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 Right to free speech and assembly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침해
작년 6월 전국공공운수노조는 최저임금제와 같은 기본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했다. 청와대 주변 시위 허용 방침 이틀 만에 경찰은 이들의 시위를 금지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정부는 이들의 총파업을 막기 위해 개별 운전자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긴급법을 발동시켰다.
- Violent attacks on workers 노동자에 대한 폭력
올해 1월 18일, 경찰과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단체가 아닌 개인 간부가 대상이었는데, 경찰 수백명이 동원되어 10시간동안 진행되었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해당 활동가들이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을 당해 하부망을 조직했다는 주장이었다.
- Right to civil liberties 자유에 대한 권리
작년 5월 민주노총 윤택근 수석부위원장이 체포되었다.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였다. 기준이 모호했던 감염병관리법이 집회 자유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논란과도 이어진다. 국제운수노동자연맹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위반이라며 직접 적극 개입하기도 했다.
- Union busting 노조 급습
작년 6월 전국은행연합회가 세 명의 한국금융산업노조 전직 간부를 해고했다. 2017년 단체교섭 원상회복을 요구하기 위해 한국금융투자협회 사무실을 항의 방문한 사건 때문이었다. 해당 노동자들은 이미 기소되어 징역형과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전국은행연합회는 재발 방지를 위해 이들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 Prosecution of union leaders for participating in strikes 파업에 참여한 노조 간부 기소
작년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을 진행한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를 상대로 470억 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파업은 하청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작되었다. 이들은 10년 이상 경력이라도 계약직이란 이유로 최저임금만을 받으며 일해야 했다.
2015년 어느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광화문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의경 컨테이너 맞은편 좁은 도보. 낡은 돗자리 몇 개를 덧댄 바닥에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피해 돌아가려 길을 건너다 방향을 바꿔 그들의 돗자리로 다가갔다. 털썩 주저 앉으며 물었다.
“여기 왜 앉아 계시는지 궁금해요.”
무작정 곁으로 온 초면의 청년에게 찬 데 앉지 말라며 자신들의 방석을 전부 내어주시던 그들은 강원도 삼척에서 온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였다. 나는 이 돗자리에서 어디에서도 자세히 듣지 못한, 하지만 너무나 알고 있어야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화 도중 한 행인이 “힘내십시오!” 한마디 건네며 지나쳤다. 그러자 한 분이 벌떡 일어나 그 행인에게 뛰어가서는 허리 숙여 감사인사를 하고 음료수 한 병을 건넸다.
이 장면을 오래도록 또렷이 기억하고자 한다.
그들이 요구한 건 시멘트 대기업의 몰락이 아니었다. 그저 중학생이 된 딸내미에게 떡볶이 사 먹으라 용돈을 주고, 내일 회사에서 잘리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며 잠드는 밤을 바랐다. 이런 당연한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이란 보안직원을 앞세운 꽉 닫힌 본사 건물 앞 길바닥에서 먹고 자는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누군가의 작은 이해와 응원만으로도 힘을 내어 변화를 만드는 노동자의 움직임은 여전히 단단하다. 그들의 돗자리에 찾아가 앉지 않으면 듣지 못할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청소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하자 파리 시민들은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를 모아 시청 앞에 쌓아 올렸다. 이는 파업을 진행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파업의 원인을 제공한 고용 측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한 유명한 일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대학 청소노동자 파업 당시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빗자루는 알고 있다> 중)
우리는 노동기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거나 응원 한 마디를 건넨 적은 언제일까 떠올려본다. 늦어진 출근길에 욕설을 내뱉거나 찢어지는 스피커 음향에 귀를 틀어막진 않았는지. 그리고 상상한다.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로 덮인 길거리를 마주한 우리는 과연 누구를 탓했을까?
2015년 동일한 주제와 제목으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때도 여전히 나는 노동기본권 최하위 국가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 5등급의 이유는 교직원노조의 법외노조 통보,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 철도파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었다.
8년이 지나가는 오늘 반추하니, 놀랍게도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출발선 전이지만. 전국교직원노조는 법외노조 처분 위법 판결을 받았고 전국공무원노조는 9년만에 설립신고증을 교부 받았으며 삼성 임원진은 무노조 경영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우리의 일터가 수많은 투쟁으로 더 안전하게 바뀌고 있다. 그 작지만 거대한 변화의 가치를 잊지 않아야 한다. 다른 일터가 무사(無事)하지 않다면 나의 일터도 무사하지 않다. 그들의 일상이 위험하다면 우리의 일상도 위협받을 수 있다. 우리 모두 똑같은 권리를 가진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나의 안전한 일터를 위해서는 쓰레기가 가득한 거리에서 파업 중인 노동자를 비난하지 않는 시선이 필요하다. 쓰레기를 시청 앞으로 쌓아 올려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일상 속 연대가 필요하다.
코멘트
4프랑스와 한국의 파업을 대하는 자세를 보고 느껴지는 점이 많네요
국제노동기본권 등급을 결정하는 모든 항목들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군요.. 만화 ‘송곳’을 보면서는 화내고 공감하는 것 같다가도, 실제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나치면서는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 속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