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함께 안전] 아무 말도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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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를 모으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더 안전한 노동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노동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불만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노동자’라고 하면 왠지 '빨갱이'스럽고 깃발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향신문과 우리리서치·공공의창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와 노동자 중 평소 주로 접하는 단어를 묻는 항목에는 ‘근로자’라는 응답이 71.3%였다. ‘노동자 동질감’을 물은 항목에는 ‘노동자라고 하면 거리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49.9%로 ‘동질감을 느낀다’(33.8%)보다 16.1%포인트 높았다. (2022.11.18 경향신문

인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는 ‘노동’을 남 이야기 인듯이 다루려는 것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다. 우리가 개인의 성장을 위해 이야기하는 워라벨, 커리어 같은 것들 모두 노동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왜 노동권이라고 하면 운동권스럽고,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성실하며 갓생을 지향하는 화이트칼라의 이야기로 여기는 것일까? 우리는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난다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려 한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산업재해에도 적용된다. 쉽게 말하면 ‘구조적 무감각증’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기준 한해 재해자수는 130,348명, 사망자수는 2,223명에 달한다. 여기서 집중해야 하는 건 이 지표에서조차 소외된 사람들은 없냐는 것이다. 2021년에 ‘은폐되는 산재 건수가 전체의 66.6%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국노동연구원 김정우 전문위원)가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 또한 2014년 ‘산재 은폐율이 최소 54.8%에서 93%에 달한다’는 연구보고서(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개선방안)를 냈다. 노동계는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등 취약 계층 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이 정규직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유해물질에 노출됐더라도 수년에서 수십년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는 암에 걸린 상당수 노동자는 병의 원인을 ‘운명’이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자신이 다루는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 채 근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023.3.14. 한겨레)

문제라고 말하지 않으면 정말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즉,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이 노동에서 온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겨지는 원인은 산재 예방 정책의 방향에 있다. 서울대학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의 김승섭 교수는 “한국의 산재 예방 정책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산재 발생을 실제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산재 발생시 보고하는 숫자를 줄이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즉, 노동자의 목숨이 숫자놀음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놀라웠는데, 제도상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끔 처리하는 것이 목표였다. 

“조금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특정 병원을 지정해서 산재가 아닌 ‘공상’이라는 이름으로 치료를 합니다. 공상의 경우 당장 필요한 치료비는 내주지만 산재보험과 달리 이후 후유증을 치료할 수 없을뿐더러 증상이 악화되어 결근하면 임금을 보전해주지도 않습니다.”, “2014년 진행된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다 다쳤던 조선소 하청 노동자 125명 중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았던 이는 9명(7.2%)에 불과했습니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못했던 가장 흔한 이유는 ‘원/하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였습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난다 )

위의 사례는 공상으로 들었지만, 이 자체도 기업에게 위험부담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일명 ‘위험의 외주화’. 다치기 쉬운 업무는 하청업체에게 넘겨 버리는 일도 발생한다. 다치면 고용이 단절되어 버리는 하청 노동자들은 다쳐도 산재보험에 신청하지 못하고 만다. 

또 다른 원인은 미비한 처벌에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 은폐에 대한 처벌은 4년 동안 41건, 산재 미신고는 4년 동안 3805건에 불과했다. 최근 4년간 산업재해 은폐 및 미신고 건수는 15만건이 넘었지만 처벌은 전체의 2.5%인 3846건에 그쳤다. 사업주는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그대로 보고하는 경우 기업의 평판 저하와 이로 인한 시장에서의 신용저하 등이 우려돼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고 여기며,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해도 기껏해야 과태료만 부담하기 때문에 사업주로서 이러한 과태료를 감수하면서도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하고자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2023.4.28. 안전신문)

촐처 : 용혜인 의원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학교 안전관리학과 학과장은 “한국의 산재 은폐율이 높은 이유는 노동자가 회사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자유롭게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하도록 사업주를 독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대산업재해가 아닌 일반 재해의 경우 감독이나 처벌보다 예방과 지원에 더 집중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산재 신청이 크게 늘어나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현재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실태를 알아야 산재를 줄이는 법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2023.3.14. 한겨레)


앞서 노동권을 말하면 빨갱이고 커리어와 워라벨을 말하면 화이트칼라냐는 다소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본 글을 쓰면서 발견한 이야기가 이 구분이 아예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라는 답을 해주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앞서의 논문을 준비하며 만난 활동가는 ‘산재가 왜 이렇게 반복될까’라는 질문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화이트칼라가 죽는 거 봤냐?” 맞는 말이다. 만일 대학교수가 1년에 900명씩 연구실에서 사망한다면, 대기업과 공기업의 관리직·전문직 종사자들이 매일 3명씩 산재로 사망한다면 이 문제가 이렇게 방치되었을까? 조선소에서 하청 노동자가 죽으면 ‘보상금 5000만원’이 거의 관행처럼 통용된다. 정규직의 3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으로 “죽음마저도 그렇게 헐값”이다. 반복적인 재래형 산재사고의 본질은 불평등 문제다.” (2021.1.9. 시사in)

매년 발표되는 산업재해 통계에는 일하다 다치거나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 통계에서조차 소외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중 상당수가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노동자, 이주노동자라는 점은 이들의 산업재해가 숫자로 기록되지 않은 이유가 우연은 아니다. 사회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은 더 많이 다치면서도 자신들의 아픔에 대해 소리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다친 이야기가 배제된 숫자에만 주목하며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무관심 뒤에서 하염없이 쌓여왔던 사고들은 사람이 죽고 나서야 기록된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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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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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는 것만큼 말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중대재해로 죽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고, 그들의 절규를 우리가 듣지 않았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네요. 누구든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함께 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히면 좋겠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기사를 보면 사고가 벌어지면 어떻게든 숨기고 덮으려는데 급급한 것 같습니다. 사람의 안전이, 심지어는 사람의 죽음이 '비용'일 뿐인 사회는 끔찍한 사회인 것 같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노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한국사회는 줄세우기, 갈라치기가 너무 심하다고 종종 느끼는데요.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을 개선하기보다는 마치 ‘노오력해서 안전한 일자리, 좋은 일자리를 얻어내라.’, ‘그정도 노력하지 않으면 위험하고 문제가 많은 환경에서 노동하고 고통받아 마땅하다’라고 이 사회가 줄곧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노동 안전은 몇몇 사람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