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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의회 전∙현직 의장의 은밀한 공무국외출장
대전시의회 전∙현직 의장의 은밀한 공무국외출장 - 나야, 트램 2024.10.23. 대전시의원들의 공무국외출장 단골 소재가 있어요. 사골도 이정도 끓이면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이에요. 바로 트램이에요. 조원휘 의장과 이상래 의원은 10월 21일부터 28일까지 6박 8일의 일정으로 호주 브리즈번과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방문해요. 이번 출장은 전・현직 의장 둘만 출장을 가는데요. 그래서인지 축하 파티 또는 놀러가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어요. 어떤 이유로 공무국외출장을 가는지 띠모와 하나씩 살펴봐요.제일 먼저 출장 계획서를 살펴볼까요? <대전시의회 공무국외출장 계획서> 이번 조원휘 의장과 이상래 의원, 전・현직 의장의 출장지는 호주와 뉴질랜드예요. 생각보다 이동이 빡빡한데요. 시드니 도착해서 다음날 브리즈번으로 비행기를 타고 또 이동해야 해요. 브리즈번 이동을 마친 뒤에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비행해서 이동해야 하죠. 6박 8일간 귀국까지 하면 총 4번의 비행을 해야 하는데요. 띠모는 이쯤 되면 피곤해서 못 다닐거 같은 데 말이에요. 고약한 일정이네요. 그럼 이제 왜 비판이 나오는지 하나씩 살펴봐요. 1) 심의는 없었습니다 먼저 지방의원은 공무국외출장을 가기전 심사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요. '대전광역시의회의원 공무국외출장 조례'에서 규정하고 있어요. 대전광역시의회의원 공무국외출장 조례 조례에서 공무국외출장의 범위를 정하고 있어요. 바로 제 2조인데요. 살펴보면요. 대전광역시의회의원 공무국외출장 조례 제2조(적용범위) 1. 외국의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지방의회가 직접 주최하는 공 식행사에 정식으로 초청된 경우 2. 3개 국가 이상의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경우 3. 자매결연 체결이나 교류행사와 관련하여 국외출장을 하는 경우 4. 대전광역시장 또는 대전광역시교육감의 요청에 따라 국외출장을 하는 경우 5. 본회의 또는 상임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공무로 국외출장을 하는 경우 6. 그 밖에 의회관련 국제회의 참석, 상임위원회 해외시찰 등 대전광역시의회의장(이하 "의장"이라 한다)의 명에 따라 공무로 국외출장을 하는 경우   그런데 제 5조 2항에서 심사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예외 규정을 정하고 있는데요.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의원이 제2조제1호부터 제4호 까지의 경우에 해당하여 공무국외출장을 할 경우에는 심의를 하지 아니 할 수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제 2조 1호부터 4호까지의 경우는 심의를 안 받고 갈 수 있어요. 지방의회 또는 상임위원회가 자체적으로 계획하지 않은 출장은 예외로 뒀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심의를 받지 않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이번 공무국외출장은 심사위원회 심의를 받지 않았어요. 브리즈번이 대전광역시와 자매도시이기 때문인데요. "브리즈번과의 교류 강화"를 이유로 가기 때문에 심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10월 16일 조원휘 의장은 후반기 의장 취임 100일 성과와 향후 비전 제시를 하는 기자회견을 했었는데요. 기자 회견 중 공무국외출장 목적도 이야기 했었는데요. 출장 목적은 무궤도 트램의 시범사례 시찰을 위함이라고 했어요. 주 목적은 무궤도 트램 시범사례 시찰인데 교류를 이유로 심의를 받지 않은 거죠. 그리고 브리즈번 시(의회)와의 교류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고요. 단 두 시간이에요.물론 장시간 만난다고 해서 교류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트램 운영 현황 등 현장 방문을 브리즈번 의회와 같이 가는 등 정책 교류 등을 할 수 있겠죠. 그런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있는데, 외유가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지방의회라면 의회에서의 정책 대안 제시, 정책 견제감시 등 교류도 할 수 있겠죠. 요식행위처럼만 느껴지는 건 저뿐일까요? 2) 은밀한 전∙현직 의장의 출장  이번 출장은 조원휘 의장과 전반기 의장이었던 이상래 의장 둘만 가요. 우선 트램은 대전시의회에서 산업건설위원회(=산건위) 소관이에요. 트램을 비롯한 대중교통은 산건위의 주요한 의제 중 하나죠. 그런데 이상래 의원은 현재 교육위원회 소관이에요. 의장과 교육위원회 위원 둘만 가기에는 명분이 너무나도 부족하지 않나요? 그래도 의원인데, 의제 구분 없이 의정활동 하는게 중요한거 아니야? 맞아요. 의정활동을 하면서 의제에 관계 없이 관심을 갖고 정책 대안 제시도 하고, 견제,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상임위원회 역할과 관련 공무원의 역할도 필요하죠. 그리고 지난해 8월 이상래 의장과 산업건설위원회는 트램 시찰을 이유로 호주를 다녀왔어요. 목적은 조금 다를 수 있어도 큰 틀에서는 비슷하겠죠. 그렇다면 지난해 공무국외출장을 통해 어떤 결과가 도출되었고, 올해 무엇을 보완하고 새롭게 보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계획이 더 있어야 했어요. 의제의 다양성을 보장받으려면, 계획과 조사도 중요하겠죠? 3) 조원휘 의장의 '구태' 반박 조원휘 의장은 공무국외출장 당일인 21일 월요일 기자 브리핑을 했어요. 산업건설위원회가 가지 않는 이유는 이미 다녀왔고, 이상래 의원과 같이 가는 이유는 도시 재생에 관심이 많고 뉴질랜드에 성공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어요. 그리고 해외만 나가면 외유성이라는 비판도 '구태'라고 이야기 했고요. 그렇다면 다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죠. 이미 산업건설위원회에서 다녀왔다면 같은 내용이라는 건데 왜 또 다시 예산을 들여 출장을 가냐는 거죠. 이상래 의원도 도시 재생에 관심이 많다면, 관련 계획서를 충실히 작성해 공개하고 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단순히 관심이 많다는 이유로 출장을 가면 못 갈 곳은 없죠. 조원휘 의장은 시민사회 등에서 나오는 비판이 구태라고 비난 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요식행위, 부실한 계획으로 가는 출장에 대해 반성하고, 변화시켜 나가는것이 의장으로서 해야할 일 아닐까요? . . 조원휘 의장은 오늘(10/23) 브리즈번으로 이동해 브리즈번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겠네요. 오늘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공개해야 할 것 같아요. 아니면 여러분이 직접 공개를 요청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 글은 뉴스레터로 발행된 지난 띠모크라시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띠모크라시 모아보기🧡 띠모크라시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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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뒤틀린 몸’…나는 의료파업 생존자다
‘뒤틀린 몸’…나는 의료파업 생존자다 (2024-10-28) 문진영 | 대전여성장애인연대 활동가 수술 전후를 비교하기 위해 파킨슨센터 복도에서 영상을 찍는 모습. ♣️H6s필자 제공 나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몸을 가졌다. 서류상 지체장애인이며, 지체장애 중에서도 하지장애인이다. 뇌병변장애인이기도 하다. 언어장애가 있으며, 온몸이 자연스럽게 이완되지 않고, 걷는 것도 위태로워 보인다. 머리가 왼쪽으로 쏠린 탓에 척추측만증이 진행 중이고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도 진행 중이다. 심각한 두통으로 얻은 불면증을 해소하려 지역 대형병원 신경과를 찾게 된 이후로는 근긴장이상증 환자가 되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한의원,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신경과, 신경외과 등 각종 병원을 돌아다녔다. ‘뒤틀린 몸’, 흔히 말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몸’을 이끌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려 할 때면 의사들이 불편해했다. 제멋대로 움직이며 뒤틀리는 몸을 보며, “움직이면 검사가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 같은 반응을 보였고, 진료를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열살 때 처음으로 수술 제안을 받았으나 두개골을 열어 신경을 잘라내는 수술이라 당시 기술로서는 위험성이 컸다.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2년 전 지역의 대형병원을 찾았다. 머리를 감싼 근육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의 통증을 견딜 수 없었다. 신경과 의사는 몸이 이렇게 된 원인을 찾아보자 제안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몸 검사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검사가 가능한 몸’, ‘유전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는 몸’으로 인정받아, 서울의 빅5 병원 중 한곳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똑같은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목의 신경과 근육이 고착되지 않아 ‘수술을 시도해볼 만한 몸’이라는 것을 확인받았다. 의사는 나와 같은 사례가 처음이라 예후를 장담할 수 없지만, 환자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말했다. 통증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나는 무조건 수술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광고 지난 2월26일에 뇌심부자극술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40년 만에 찾은 수술 기회였다. 가족들은 지금보다 몸이 더 나빠질까 불안해했다. 재활·간호 기간을 걱정하며 서로의 마음에 비수를 꽂기도 했지만, 가족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일도 수술의 일부였다. 수술 한달 전 가족여행을 다녀오며 온 가족이 나를 위해 애써주는 마음을 확인했다. 모두 수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술 열흘 전, 빅5 병원이 의료파업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던 병원에서 온 것이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 인생은 왜 이러나 싶었다. 혼란스럽고, 원망스러웠다. 지인들은 수술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라며 위로인지 악담인지 알 수 없는 말로 나를 다독였다. 처음엔 의료파업이 금방 끝날 줄 알았다. 학창 시절 버스 파업으로 임시버스를 타고 등교한 적이 있었지만, 버스 파업은 오후가 되면 원상복귀되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고 있었다. 혼란의 시기가 끝나고 빨리 병원에 갈 수 있기를 바라며, 한동안 내 시각과 청각은 언론사 속보에 고정되었다. 이전에는 관심도 없던 대한의사협회 사람들의 에스엔에스(SNS)까지 염탐하며 병원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실망감과 우울감, 무력감을 피하려고 더욱 열의 있게 일상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며칠째 이완이 되지 않는 머리, 목, 어깨, 허리의 불쾌함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해 탈이 나버렸다. 현재는 지역 병원에서 신경을 마비시키는 약물을 맞으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의사는 머리가 지난번보다 많이 기울었다며, 너무 힘들면 보톡스 주입 용량을 늘리겠다 한다. 익숙하게 하던 동작이 갑자기 되지 않을까 봐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언제까지 이런 방식을 견디며 생존할 수 있을까 겁이 난다. 얼마 전 나와 비슷한 장애와 증상을 가진 분이 내가 받게 될 수술을 다른 병원에서 받고 예후가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약도 없는 기다림에 지쳐 수술이 예정돼 있던 빅5 병원의 담당 교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다른 병원에서 진료와 수술 상담을 받아볼 생각이니 내 데이터를 줄 수 있는지 문의했다. 가능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도 좋겠다는 회신이 왔다. 나는 과연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 취약해서 더욱 하염없이 기다린 통증의 시간을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약자들의 시간은 도둑맞아도 되는 것인가.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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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이라 불러야겠습니다
이제 그 남자를 새 별명으로 불러야겠습니다. 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으로. 김상욱과 그 일당 김재민 전 무궁화신탁 대리는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다섯 명을 모두 고소했습니다.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의 발단이 된 김상욱 일당의 불법대출 사건. 약 2000개의 녹음파일과 문건들을 입수한 셜록은 지난 4월부터 20편의 기사로 사건의 전말을 밝혔습니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김상욱 일당은 ‘명의만 빌려주면 수천만 원을 주겠다’, ‘수백만 원씩 월세 수익을 보장하겠다’ 등 감언이설로 속여, 그들 명의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수억 원의 대출을 내게 했습니다. 새마을금고 내부에선 전종남 당시 상무가 대출 실행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연히(?) 그 돈은 명의자들의 통장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대출금은 김상욱 일당과 브로커들이 모두 뽑아가고, 명의자들에게는 한번 만져보지도 못한 수억 원의 빚만 남았습니다. “누가 피해자입니까? 저도 피해자입니다. 기자님, 누가 제 전화번호 알려줬습니까? 저는 1500억 원 불법 대출한 적도 없고요. 정확하게 어떤 라인을 타고 (연락을 해)왔는가 얘기를 해주세요.” ‘사채왕’ 김상욱은 반론을 요구하는 셜록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도 ‘피해자’라고. 전화를 끊어버린 그에게 재차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허위주장과 모함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하며, 만약 그들이 ‘아지트’처럼 쓰던 서울 신설동 카페 등으로 취재진이 찾아온다면 “건조물 침입 등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내가 피해자다’라는 말.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말입니다. 진짜 피해자들은 오히려 가족들이 알까봐, 자신도 공범으로 처벌받을까봐 전전긍긍 속앓이만 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수억 원의 빚더미만 남기고 인생을 박살내버린 주범은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라고 합니다. 김상욱이 공범 김재민과 한 통화에서 그토록 칭찬하던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는, 지난 4월 셜록의 보도가 시작되자 SNS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거액의 돈을 요구하던 공갈범의 거짓 진술만을 근거로 한 허위보도로, 형사고소, 민사소송 제기할 예정이고, 보도 내용의 사실여부에 관하여 상대방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고 사실인 양 퍼뜨리는 자격 없는 언론매체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는 정말 김상욱과 김재민을 대리해 셜록을 고소했습니다. 셜록 기자 다섯 명의 이름을 모두 고소장에 적어서. 셜록 기자들이 김상욱 일당에게 ▲개인정보보호법위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명예훼손 ▲모욕의 죄를 저질렀다고 줄줄이 늘어놨습니다. 새마을금고의 조사와,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피해자들의 공통된 진술과, 무엇보다 범죄를 자백(?)한 김상욱 본인의 녹음파일 속 목소리가 모두 같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오직 김상욱만은 자신이 피해자이고, 아무 죄가 없고,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나는 무죄다” 사채왕 측, 법정서 20분간 억울함 호소>) 고소장을 접수했으니, 이제 경찰이 셜록 기자들을 괴롭혀줄 거라 기대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권력을 이용한 사적 복수라. 영리하다고 할까요, 교활하다고 할까요. 김상욱이 고소장에 적어놓은 ‘명예훼손’이란 네 글자를 보니 참 기가 찹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인생을 훼손하고, 시민의 상식을 훼손하고, 사회의 정의를 훼손한 자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억울함을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가소로운지. 애당초 그들에게, 훼손당할 명예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이 지금껏 무슨 명예로운 일을 했는지. 훼손될 명예조차 없는 이들이 명예훼손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네모난 동그라미’ 같은 형용모순입니다. 차라리 솔직히 말하는 건 어떨까요. 당신들이 당한 것은 명예훼손이 아니라 ‘범죄수익 훼손’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고, 금융기관을 속이고, 검은 돈을 주머니에 쓸어담는 짓을 더 이상 못 하게 된 것이 너무 아깝고 분하다고. 김상욱과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 등은 지난 4월 셜록이 보도를 시작한 뒤 구속됐습니다. 그들의 여죄는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2024년 10월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창원 외 다른 피해 지역과 200억 원대 추가 불법대출 및 공범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습니다. 2022년 7월부터 2023년 3월까지 경남 창원과 경기 평택, 충남 당진 등 10여 곳에서 중고차 매매단지 등 106개 건물과 토지의 담보 가치를 부풀려 불법대출을 일으킨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경찰이 확인한 불법대출 933억 원 중 106억 원은 김상욱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전종남 전 상무는 고급 외제차 등 약 3억 4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 챙겼다는 겁니다. 경찰은 나머지 대출금액도 명의를 제공한 피해자(경찰은 ‘허위 매수인’이라 표현했습니다)들에게 가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그 돈도 공범인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셜록 기자들에게는 아직도 피해자들의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 역시 명의를 대여해주는 것으로 불법행위에 가담한 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빚은 빚대로 떠안고 벌은 벌대로 받게 된 그들은, 여전히 살 길을 찾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저 혼자 죽으란 말입니까”… ‘공범’이 된 사기피해자>) 그 와중에 김상욱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리고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를 시켜, 언론사 셜록과 다섯 명의 셜록 기자들을 모두 고소했습니다. 예전에도 셜록을 고소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사람들은 많았고 실제로 고소를 한 사람도 있었지만, 셜록의 모든 기자들을 한꺼번에 고소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지난 5월에 작성된 고소장을 10월에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고소장에 줄줄이 적힌 기자들의 이름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영화 <내부자들>(2015년)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정치깡패 출신 공익제보자 안상구(이병헌)가 검사 우장훈(조승우)에게 묻는 말입니다.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 셜록이 하는 일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입니다. 정의란 말이 좀 거창하다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염치’나 ‘양심’, ‘선함’과 같은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 마음. 옳은 것을 가까이 하고 그른 것을 물리치는 당연한 마음, 마땅히 사람답게 살려는 마음을 지키는 게 셜록의 일입니다.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는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셜록은 바쁩니다. ‘바른 말’ 했다가 정신질환자로 몰려 해고된 신부 이야기(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교수 엄마’가 만들어준 거짓 스펙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가짜 대학생 이야기(관련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간이 녹아버린 스무 살 청년 이야기(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로 셜록의 지면은 매일 뜨겁습니다. 고소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월급 걱정도 하지 말고 셜록의 일을 더 오래, 더 잘 하라고 마음 모아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셜록의 친구(유료독자) ‘왓슨’. 셜록이 전하는 모든 이야기에는 셜록의 땀과 왓슨의 정성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또 셜록의 기사를 퍼뜨리며 함께 분노하고 감동하고 공감해준 수많은 시민들이 셜록이 가는 길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이병헌 배우가 이렇게 물었죠? 정의가 남아 있긴 하냐고. 저희는 압니다. 왓슨과 시민들이 셜록에게 보여준 그 ‘달달한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오늘도, 셜록은 셜록의 일을 합니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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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울부짖는 악어들을 아시나요?
빈곤국이지만 해외 자본 유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 캄보디아에서는 성장하는 속도와는 다르게 아직은 낮은 교육 수준과 사회의 사각지대로 인해 많은 동물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동물보호법 또한 동물을 심하게 혹사 및 학대하는 행위에 매우 짧은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어느 날 캣치독팀은 "교육 방송에서 악어 농장에 대한 방송을 한다"는 제보를 접수하였습니다. 영상을 확인해 본 결과 해당 방송사에서는 캄보디아 악어 농장을 방문하여 악어를 번식하고, 사육하고, 도살장으로 보내 가죽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송출된 방송에서 나온 악어들은 멸종위기종입니다. 농장의 악어들은 원치않는 번식과 죽음을 반복하고 고통속에 포효하지만 농장의 직원들은 "매일 농장의 물을 갈아준다" "밥을 일주일에 한 번씩 신선한 생선을 사다가 밥을 급여한다" "6살 때부터 악어 농장의 일을 배우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라며 방송 나레이션까지 더불어 잔인한 악어 농장이 긍정적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악어 농장의 진실은 참혹합니다. 이끼가 가득하고 썩은 물이 담긴 비좁은 콘크리트 우리에 갇혀 살며, 상처가 나거나 병이 들어도 그대로 악취나는 썩은 물에 방치됩니다. 시장에서 갓 구매한 신선한 생선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악어에게 밥을 급여한다는 방송상의 내용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썩은 생선이나 내장을 급여합니다. 도살 과정 또한 끔찍합니다.  악어를 전기충격기로 기절시키거나, 올무로 잡아매고, 전기가 누전되었을 시에는 그냥 둔기로 치거나 칼로 찌릅니다. 이후 악어의 머리를 밑으로 내려 척추뼈 중간이나 머리를 칼로 베고 발버둥을 억제시키기 위해 길고 얇은 쇠막대기로 척추부터 꼬리까지 마구 쑤신 뒤 뇌를 찔러 쇼크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항문이나 입에 호스를 꽂아 물을 채워서 몸을 빵빵하게 만든 후에 산 채로 악어의 가죽을 벗겨냅니다. 악어는 자연에서 인간의 수명보다 훨씬 오래 살지만 농장에서는 3살이 되면 가죽을 사용하기 위해 도살합니다. 여기서 악어의 나이가 더 어리면 어릴 수록 등급은 높아지고 가죽을 제외한 몸통은 주민들에게 주문을 받아 고기로 판매됩니다. 캄보디아 전역에는 약 700여개의 악어 농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하루 한 도살장의 작업 물량은 100마리 정도라고 합니다.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 등에서도 불법 악어 농장이 적발되곤 합니다. 해당 교육 방송사에서는 악어 가죽 뿐만 아니라 한국의 소 가죽, 돼지 가죽 등 다양한 동물들의 가죽 공장을 다뤘습니다.  멸종위기종인 악어를 번식시키는 것부터 가죽으로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을 방송상에 그대로 송출하는 것은 올바른 행위일까요? 동물을 죽여 가죽으로 사용하는 문화는 과연 용납될 수 있을까요. 캣치독팀은 특히나 교육을 위한 방송사에서 시청자들을 상대로 동물의 가죽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송출함으로서 생명의 존엄성을 높이지 못하고 오히려 생명 존중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국민들의 소중한 의견을 모아 해당 방송사에 직접 전달할 예정이며, 현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할 것입니다. #캣치독팀 #교육방송 #캄보디아 #악어가죽 #악어농장 #멸종위기종 #동물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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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월간 함:비] 산업재해 특성과 중대재해처벌법 개혁과제 토론회
산업재해 특성과 중대재해처벌법 개혁과제 토론회 노회찬의원은 2017년 4월 14일 ‘한국형 기업살인법’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표발의하면서, “재해사고는 성과를 위해 사람의 안전을 소홀히 하는 기업의 조직문화와 제도가 낳은 결과”라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산재 유가족과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 정의당 등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2021년 1월 26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현장과 시민생활에서 중대재해가 줄어들고 있는가?’ ‘중대재해처벌법이 노동자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로서 제대로 기능하는가?’하는 의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회찬비전포럼은 정의정책연구소와 공동으로 ▲중대재해 발생 실태와 특성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실태와 제도개혁 과제에 대한 토론장을 마련했습니다. 모쪼록 이번 토론회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참가신청 바로가기 * 원활한 행사 준비를 위해 미리 참석 여부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사 개요  일시 : 2024년 10월 31일(목) 오후 2시  장소 : 전태일기념관 2층 울림터 & 유튜브 생중계  주최 : 노회찬비전포럼, 정의정책연구소  진행 순서  사회 : 박창규 노회찬재단 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장 인사 : 조돈문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발표 : 손익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동대표변호사  토론 : 류현철 (재)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조 위원장  ※ 전태일기념관 찾아오시는 길 ※ 온라인 참가 링크는 당일 오전까지 문자로 발송 예정입니다.  ※ 발표문, 토론문은 당일 오전까지 노회찬재단 홈페이지에 첨부파일로 게시하겠습니다. 문의 : 02-71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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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의 표심을 그대로 반영했다면, 그 결과는?
유권자의 표심을 그대로 반영했다면, 그 결과는? [녹색정치리포트] 현행 지방선거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지방선거)는 지역의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으로써 광역과 기초 단위의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을 뽑는다. (현행 지방선거의 과정과 결과 모두 문제가 많지만) 이 글은 현행 지방선거 제도로 주제를 좁혀서 문제점을 찾아보고 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투표 이미지 ⓒ Tara Winstead 지방선거 제도의 문제점: 투표 왜곡 (중앙 의회와 중앙 정부의 선거제도를 포함하여) 지방선거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정 정당의 유불리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이자 유권자인 시민의 투표를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그림1>은 함수(function) 계산식을 나타난 것이다. 즉 a를 f(x)에 넣으면 그 결과는 f(a)가 나온다. <그림2>는 함수 계산식을 빗대어 투표와 선거제도의 상관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즉 투표가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와 결합하면 그 결과는 주권자인 시민의 투표 그대로(또는 가장 유사하게) 반영되고 권력을 평등하게 나누게 된다. <그림3>은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의 모습이다. 비례성이 낮은 현형 선거제도 때문에 주권자이자 유권자인 시민이 어떻게 투표를 하더라도 그 결과는 투표를 왜곡시키고 권력은 거대 양당이 나눠 먹는 형태가 된다. ▲함수 계산식과 비교한, 좋은 선거 제도와 나쁜 선거 제도의 예시 ⓒ 박제민 <표1>과 같이 한국의 지방선거 제도는 다소 제각각인 측면이 있다. 광역의회 선거의 경우에는 지역구 의원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뽑고 비례대표 의원은 폐쇄형 정당명부식(Closed list system)* 비례대표제로 뽑는 혼합형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기초의회 선거의 경우에는 지역구 의원은 중선거구 단기비이양식(單記非移讓式, SNTV; Single Non-Transferable Vote)**으로 뽑고, 비례대표 의원은 폐쇄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뽑는 혼합형이자 병립형인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편 지방자치단체장과 교육감 선거의 경우에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에 중앙 의회와 중앙 정부의 선거제도까지 합치면 각 단위의 선거제도는 더욱 제각각이 된다. ▲<표1> 한국의 현행 선거 제도 ⓒ 박제민 지방선거에서 광역과 기초의회 선거는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를 각각 따로 투표하는 '병립형' 방식이다. 정당득표율이 전체 의석 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연동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연동형이 아니라 병립형이라고 부른다. 또한 비례대표 의원 수가 지역구 의원 수의 약 10%에 불과하다. 요컨대 매우 비례성이 낮은 선거제도인 것이다. <그림3>에서 본 것처럼 비례성이 낮은 선거제도는 시민의 투표 결과를 왜곡한다. <표2-1>은 2022년 6월 1일에 치러진 제8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 정당 득표율과 시의회의 실제 의석률을 비교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40.98%를 득표했는데 36개의 의석을 얻어 의석률은 32.14%에 그쳤다. 국민의힘은 53.99%를 득표했는데 76개의 의석을 얻어 의석률은 67.86%에 달했다. 정의당은 4.01%를 득표했지만 의석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이를 선거의 비례성을 측정하는 '갤러거 지수(The Gallagher Index)***'로 계산하면 11.97로 나왔다. ▲<표2-1>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서울시의회 선거 결과 ⓒ 박제민 <표2-2>는 제8회 지방선거에서 서울 용산구의 정당 득표율과 구의회의 실제 의석수를 비교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34.75%를 득표했는데 6개의 의석을 얻어 의석률은 46.15%에 달했다. 국민의힘은 59.31%를 득표했는데 7개의 의석을 얻어 의석률이 53.85%에 그쳤다. 정의당은 4.46%를 득표했지만 의석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이를 갤러거 지수로 계산하면 9.50으로 나왔다. ▲<표2-2>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서울 용산구의회 선거 결과 ⓒ 박제민 대안1. 개방명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의원 정수와 비례대표 확대 오랫동안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투표의 왜곡을 바로잡는 대안으로써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꼽아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유권자가 지지하는 지역구 후보자에게 한 표, 지지하는 정당에 한 표를 행사하게 한다. 전체 의석수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데 총 배분 의석에서 지역구 당선자 수를 뺀 나머지만큼 비례대표 후보자를 당선시키는 방식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제가 지역대표성을 약화시킨다는 단점을 보완하며, 무엇보다도 투표에서 나타난 민심과 의회의 의석 배분을 가장 유사하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위성정당이 출현할 경우 그 효과가 심각하게 훼손되는데, 현재 한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충분한 만큼의 비례대표 의석수가 있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경우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50:50으로 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을 충분히 늘릴 경우, 필연적으로 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것에 국민적 반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의원 수가 지금처럼 300명 있을 때보다 OECD 평균에 맞게 500명 정도 있을 때, 의원의 기득권은 줄어들고 시민의 권력은 더 커질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역구 후보자에게 투표하기도 하지만, 결국 정당 투표를 통해 전체 의석수를 배분하기 때문에 정당의 입김이 세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 부분은 폐쇄명부가 아니라 개방명부를 도입하면 된다. 폐쇄명부란 유권자가 정당이 만들어 놓은 후보자 명단을 보고 정당에만 투표하는 것이고, 개방명부란 유권자가 정당이 만들어 놓은 후보자 명단에서 선호하는 비례대표 후보자에게 직접 투표할 수 있는 것이다. 개방명부를 도입할 경우 명망가 중심으로 투표를 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선거는 비례대표 명부의 개폐 여부와 상관없이 부득이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 아래 예시는 의원 정수와 비례대표 수를 확대하고 개방명부 연동형 비례대표를 도입한 경우를 예상한 것이다. ▲<그림4> (부분)개방형 정당명부식 투표용지 ⓒ 참여연대 <표3-1>은 서울시의회 선거에서 의석수를 지역구 100석과 비례대표 100석 등 총 200석으로 확대하고, 개방명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을 경우다. 지역구 의석 배분은 2022년 당시 서울시의회 선거의 지역구 당선 비율을 그대로 적용했다. 즉 더불어민주당은 31석의 지역구 의석을 얻고 국민의힘은 69석의 지역구 의석을 얻었으며 다른 정당은 지역구 의석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했다. 다음으로 정당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은 40.98%를 득표해 총 82석의 얻었고 국민의힘은 53.99%를 득표해 총 108석의 의석을 얻었으며 정의당은 4.01%를 득표해 총 8석의 의석을 얻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총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뺀 만큼 비례대표 후보자가 당선되는 방식이므로, 더불어민주당은 51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얻고 국민의힘은 39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얻었으며 정의당은 8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얻었다. 눈에 띄는 점은 녹색당과 진보당도 각 0.33%와 0.30%를 얻어 각 1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를 갤러거 지수로 계산했을 때 0.26으로 나와 현재에 비해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다. ▲<표3-1> '대안1' 적용시,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서울시의회 선거 결과 ⓒ 박제민 <표3-2>는 서울 용산구의회 선거에서 의석수를 지역구 7석과 비례대표 7석 등 총 14석으로 확대하고, 개방명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을 경우다. 지역구 의석 배분은 2022년 당시 서울 용산구의회 선거의 지역구 당선 비율을 그대로 적용했고 다만 지역구에서 2인 이상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가 아니라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적용했다. 즉 당시에 국민의힘이 강세였던 선거 분위기를 반영하여 국민의힘이 7석의 지역구 의석을 석권했으며 다른 정당은 지역구 의석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했다. 다음으로 정당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은 34.75%를 득표해 총 5석의 얻었고 국민의힘은 59.30%를 득표해 총 8석의 의석을 얻었으며 정의당은 4.46%를 득표해 총 1석의 의석을 얻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총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뺀 만큼 비례대표 후보자가 당선되는 방식이므로, 더불어민주당은 5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얻고 국민의힘은 1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얻었으며 정의당은 1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얻었다. 이를 갤러거 지수로 계산했을 때 2.62로 나와 현재에 비해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다. ▲<표3-2> '대안1' 적용시,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서울 용산구의회 선거 결과 ⓒ 박제민 대안2. 결선투표제 또는 선호투표제 도입 이번 제22대 국회에서 천하람 의원(개혁신당)이 대표발의하고 여야 8개 정당 의원들이 고르게 공동발의하여,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결선투표제의 장점은 유권자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는 후보에게 소신껏 투표할 수 있도록 하며, 당선자는 결선을 거치면서 과반의 지지를 얻게 돼 정당성을 부여받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횡행하는 인위적인 후보 단일화도 굳이 필요 없다. 단점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개정안의 경우 결선투표 기간을 본 선거의 7일 후로 정하고 선거운동을 선거공보, 방송연설, 방송토론 등으로만 하는 것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은 '선호투표제'를 도입하면 극복할 수 있다. 즉 본 선거 때 1순위, 2순위 후보자를 한꺼번에 찍게 함으로써 비용과 시간이 더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림5> 선호투표제 예시 ⓒ harmonyvotes.org.au 제8회 지방선거의 경우에 대통령 선거 후 약 3개월 만에 치러졌기 때문에 여당이 강세인 분위기로 시작하여 여당이 압승하는 결과로 끝났다. 서울의 경우 25개 자치구 중에서 16개 구에서 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1대 1 구도로 치러졌다. 나머지 9개 구 중에서 8개 구에서는 무소속 또는 원외 소수정당 후보자가 출마했을 뿐이다. 예외적으로 <표4>와 같이 서울 마포구청장 선거에서는 박빙의 결과가 연출됐고, 당시 원내 소수정당이었던 정의당 조성주 후보가 출마하여 양당 후보의 표 차보다 많은 수를 득표했다. 국민의힘 박강수 후보가 과반 득표에 실패했으므로 만약에 결선투표제나 선호투표제가 도입됐을 경우, 정의당 조성주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2차 투표에 따라 선거 당락이 뒤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표4>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서울 마포구청장 선거 결과 ⓒ 박제민 위 개정안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로 한정했지만, 프랑스처럼 지방의원 선거에서도 결선투표제 또는 선호투표제를 채택하면, 유권자에게 소신껏 투표할 수 있도록 하고 선출된 의원이 과반의 지지로 당선되어 활동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대안을 실현할 전략이 필요하다 이 글의 주제를 현행 지방선거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찾는 것으로 한정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투표를 왜곡하는 것으로 꼽았다. 대안으로써 의회의 경우 의원정수와 비례대표 수를 확대하고 개방명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서울시의회와 서울 용산구의회에 선거 결과에 적용했을 때, 현재보다 비례성이 높은 선거 결과를 도출함을 확인했다. 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유권자의 선택에 자유도를 높이고 당선자의 정당성을 확보할 것을 제안했다. 이 대안은 아직 유권자의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지 않다. 방법이 옳다고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이 대안을 실현할 구체적인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가 속히 열리길 기대한다. * 폐쇄형 정당명부식(Closed list system)은 유권자가 정당에만 투표할 수 있고 비례대표 후보자의 당선 순서는 정당이 결정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개방형 정당명부식(Open list syetem)은 유권자가 정당뿐만 아니라 정당이 추천한 비례후보자에게도 투표할 수 있어서 비례대표자의 당선 순서에도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이다. ** '단기(單記, Single)'란 단 1명에게만 기표하여 선출한다는 뜻이다. 단기의 대응하는 개념은 '연기(連記)'로써 2명 이상의 후보에게 순위를 매기지 않고 동등하게 기표하여 선출하는 방식이다. 한편 '비이양식(非移讓式, Non-Transferable Vote)'이란 당선이나 낙선이 확정된 후보의 표를 다른 후보자게에 넘겨줄 수 없는 방식이다. 반면에 '이양식(移讓式, transferable vote)'은 1순위, 2순위 순으로 선호를 투표한 후 1순위 투표에서 낙선이 확정되어 탈락한 후보의 2순위 투표를 다른 후보자들에게 적용하여 최종적으로 당선에 필요한 득표 수, 예를 들어 과반수 이상이 되도록 채워나가는 방식이다. *** 선거의 비례성을 측정하는 갤러거 지수(The Gallagher index)의 계산식은 다음과 같다. 숫자가 클수록 선거의 불비례성을 나타낸다. (Vi 는 각 정당의 득표율, Si 는 각 정당의 의석율) ▲갤러거 지수(The Gallagher index) 계산식 ⓒ Gallagher, Michael (1991)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주최한 <모두를 위한 정치포럼 “선거제 개혁, 지방선거부터!” 지방선거 공직자 선출 방식의 문제점과 대안>(10.21)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녹색정치연구소 홈페이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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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와 SMR의 선순환, 이걸 우선 논의해야 한다
SMR(소형모듈원전) AI 시장 친환경 에너지로 낙점 최근 1주일 남짓 신문에는 원전을 다루는 기사가 많았다. 2024년 노벨상 과학분야를 AI(인공지능)가 휩쓸면서 관심이 더 증폭된 듯 보인다. AI가 사용됨에 따라 데이터 센터 확충이 필요해지고, 전력 사용량 폭증이 예상되니, 24시간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친환경' 에너지인 원전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기사들의 핵심이었다. 그중에서도 주목받는 건 SMR(소형모듈원자로)이다. SMR은 작게 축소한 원자로다. 기존 원전대비 발전량은 작지만, 크기가 기존 원전대비 3분의 1수준으로 작고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은 더 좋다고 평가 받는다. 그동안 AI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것이 '전기'였다. 익히 알려진대로 AI가 사용하는 막대한 전기와 AI가 생산하는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기량은 상당하다. 이는 국가 단위와 맞먹는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200-250TWh(테라와트시)였는데, 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체 전력 사용량은 200TWh 이상 수준이었다. 더구나 이 양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프랑스의 에너지 기업인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이 발표한 AI 혁신:데이터센터 설계에 대한 과제와 지침(The AI Disruption:Challenges and Guidance for Data Center Design)'에 따르면, 향후 AI 서버를 적용한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2028년까지 연평균 26~36%씩 증가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을 생산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여겨졌다. 기후위기 문제로 석탄과 석유를 통한 전기 생산은 어려웠고, 친환경 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AI와 데이터센터는 24시간 내내 돌아가야 하는데, 태양광과 풍력은 24시간 안정적인 공급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환경적 요인과 지리적 요인 및 안정성을 고려하면 SMR밖에 대안이 없다” 라거나 “‘SMR’이 AI 전력 해결사” 라는 말이 나온다. SMR(소형모듈원전) 확산 이끄는 빅테크(아마존・구글・MS),  세계원자력협회 “2035년에는 SMR시장 640조 원으로 성장할 것” SMR에 가장 활발한 투자자는 단연 빅테크(MS・아마존・애플・구글)다. 경기부진에도 너도나도 AI에 투자하고 있다. 금액도 상당하다. 아마존은 SMR 기업인 X 에너지에 5억(한화 약 6,800억 원)을 투자했으며, 에너지 노스웨스트와 계약을 체결해 4개 SMR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구글은 SMR 기업인 카이로스로와 500MW의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500㎿는 중형 도시 또는 AI 데이터센터 캠퍼스 한 곳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으로 2030년부터 공급받을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9월, 2028년부터 20년 간 스마일 원전 1호기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MS는 창업자 빌 게이츠가 투자한 SMR 기업 ‘테라파워'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SMR이 사용화되면 테라파워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을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오픈 AI CEO 샘울트먼이 투자한 SMR 스타트업인 오클로는 지난 10월 15일 미 에너지부로부터 SMR 설계 승인을 받았다. 오픈AI 역시 SMR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이 AI에 사활을 거는 만큼 투자는 더욱 커지고, SMR 시장 역시수 백조원 단위로 커질 전망이다. 세계원자력협회(World Newclear Association, WNA)는 “SMR 시장이 2035년까지 5,000억 달러(한화 약 640조 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영국왕립원자력 연구원도 “2035년에 SMR 시장이 63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MR 빅테크가 끌고, 정부가 밀고 우리나라 정부 “전력수급계획에 SMR 4기 건설 반영・・・여기엔 여야가 없다." 현재 이런 모습은 빅테크와 원전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상용화가 된 적이 없다는 약점이 있는 SMR에 빅테크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기술 발전을 이루고 상용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SMR은 필요한 자본을 공급받고, 빅테크는 사용화의 열매의 무탄소 에너지를 공급받는 고리다. 빅테크 입장에서는 막대한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지만, 성공만 하면 달고 맛있는 과실을 양껏 취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에 고리가 점점 강화되는 모습이다. 한편, 원전은 정부의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제도적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체코 원전 수주를 이후로 계속해서 원전 밀어주기를 하고 있다. 지난 20일 발표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전력수급계획에 SMR 4기 건설 반영" 하겠다고 발표했다. SMR을 통해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의미이자, 밀어주겠다는 의미다. 대통령실은 “(SMR이) 원자력 기술이기도 하거니와 차세대 성장 동력이자 수출 주력 효자 상품이 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여야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나서서 추진할 테니, 여야가 적극 지원해달라는 의미다. 정부 입장도 이해가 간다.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경제다. 그 경제 일선에 있는 건 단연 기업이다. 더구나 기업은 AI라는 산업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다. 여기서 뒤쳐지만 영영 뒤쳐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고, 실제 실적 부진으로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AI 경쟁에서 뒤쳐진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삼성전자는 연일 실적 부진을 일으키고 있다. 반면, AI 파운드리 생산을 하는 TSMC는 연일 주가가 높아지며 최고 실적을 경신하며, "AI 산업의 장기 승자가 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내 기업이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할 수 있다. 아니 충분히 작용해야 한다. AI와 SMR 발전의 전제, “인공지능 발전은 필연, 기술 발전=진보, 기술 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상의 이야기는 빅테크 기업이 AI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그것을 정부가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만 보면 빅테크가 AI를 발전시키기 위해 원전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부가 뒷받침하는 게 일말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건 왜 AI를 발전시켜야 하는가 이다. 빅테크들은 마치 AI가 인류를 더욱 발전시킬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이 정말 그럴까는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AI의 발전과 SMR의 사용 뒷편에는 AI의 발전과 전력 사용 증가를 당연시하는 기저가 있다. 마치 AI의 발전이 인류에게 필연적이며, 이 필연을 이루기 위해 전기 사용 극대화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으로 우리는 AI 발전을 인류가 당연히 받아 들여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기술 발전은 늘 있어왔고, 그것이 인류를 진보하게 만들었으니 AI도 인류를 진보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기술 진보=좋은 것’ 혹은 ‘기술 진보=당연히 해야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기술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발전 이후 발생할 문제들은 뒷전이 된다. 설사 그런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해도, 기술 발전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고, 그렇기에 지금 이 기술을 발전시키는 기업과 기업가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기술 발전이 진보와 같은 의미로 쓰일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모두에게 혜택을 줄까? 2024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 “‘기술 발전=진보’는 틀렸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와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은 책 <권력과 진보(Power&Progress)>를 공동 집필했다. 여기서 진보는 정치 이념이 아니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생산성과 부의 증가, 그로 인한 번영을 말한다. 그들은 책의 서두에 책 집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진보가 결코 자동적인 과정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오늘날의 ˝진보˝는 또다시 소수의 기업가와 투자자만 부유하게 하고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량과 권한을 박탈당하고 이득은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에 대해 더 포용적인 새 비전이 생겨날 수 있으려면 사회의 권력 기반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려면 통념에 맞설 수 있는 조직과 반론이 있어야 한다.”¹ (권력과 진보/ p.20) 집필 이유 중 “또다시 소수의 기업가와 투자자만 부유하게 하고 있으며"와 “사회의 권력 기반이 달라져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 이는 소수가 독점한 상황에선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진보가 있을 수 없으며, 일부 소수가 권력(또는 경제성과 힘)을 독점하는 것을 철폐하고 분배해야 한다는 의미다.  소수의 독점과 권력의 분배는 대런 아세모글루가 또다른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과 함께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Why Nations Fail>에서 국가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를 비교하며 포용적인 제도를 갖춘 나라는 발전했고, 착취적 제도를 갖춘 나라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포용적 제도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동시에 개개인의 사유 재산권을 보장하여,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이뤄낸다.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다양하게 반영하기 위해선 민주주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고, 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마련된 정치제도가 사유 재산과 창조적 파괴를 보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모두가 의견을 게재할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권력이 작동하기 때문에 어느 소수의 독점이 있을 수 없도록 막아준다는 것이다. 반면, 착취적인 제도는 정반대로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며,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창조적 파괴와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가 결여되어 새로운 발전이 나타나지 않는다. 권력과 힘을 쥔 소수가 권력의 분배와 대항자의 발생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적 파괴와 경제적 동기가 없어서 성장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대런 아세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한 주장이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이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로 남한과 북한을 뽑는다. 남한은 포용적 제도를, 북한은 착취적 제도를 갖고 있으며 위의 위성 사진이 그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고 소개한다.² 여기까지만 보면,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권력과 진보>를 통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이 주장하는 건, 과거에 기술 발전=진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기술이 발전할수록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소수의 권력과 부만 집중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기술 기업의 출현함과 동시에 이들이 그 기술과 권한을 독점하여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진보> 서두에 “소수의 기업가와 투자자만 부유해지고 있으며, 테크놀로지에 대해 더 포용적인 새 비전이 생겨날 수 있으려면 사회의 권력 기반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려면 통념에 맞설 수 있는 조직과 반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기술이 발전할 수록 더욱 착취적으로 발전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책을 통해 AI로 인한 생산성 증대와 부의 확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AI와 SMR의 성공과 실패의 폐해는 모두에게 폐해가 된다 에너지 감축을 위한 논의가 우선 되어야 한다 AI의 발전과 SMR 모두 막대한 자본이 든다. 그 막대한 자본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건 자본을 가진 소수 빅테크들 뿐이다. 이들은 성공할 경우 그 과실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따먹다. 물론,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만큼 실패시 위험부담도 크다. 성공의 과실과 실패의 폐해를 함께 가져가는 양날의 검을 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 부담을 떠안는다고 해서 그들에게 모든 것을 허용해도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실패시 폐해가 모두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AI는 성공의 과실이 모두의 폐해가 될 수도 있다. AI는 그 자체로 막대한 양의 전기를 사용한다. AI 발전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믿는 것 만큼, 전기 사용도 당연히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됐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에너지 총 량을 어떻게 줄일까이다. 현재는 에너지 총량 증가는 당연하니, 여기서 친환경으로 효율적으로 조달하자라는 논리다. AI 발전에 가려진 또 다른 논리기도 하다. 이 논리 자체를 바꿔야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한 이렇다. 1. 전체 에너지 사용량 감소 2. 에너지 효율성 증가 3. 친환경 에너지 사용 4. 상쇄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이 후 순위인 것은, 이것을 구축하기 위한 인프라 개발을 위해 수많은 환경 자원을 지구로부터 착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사용량이 줄지 않으면, 태양광과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가 되었건 원전이 되었건 환경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건 똑같다. 설령 SMR이 사용화가 되어 사용된다 해도 이 장비를 만들기 위해 지구 어딘가에서 막대한 양의 광물을 착취한다면, 이는 곧 무탄소 전기를 생산하자고,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탄소 배출만 막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지구의 여러 시스템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SMR이 탄소배출 해결책일지언정, 기후위기 해결책이 아닌 이유다. SMR 자체도 문제다. 소형 원전으로 기존 대규모 원전보다 안정성이 있다고 해도, 완전히 100%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SMR이 지역 생태계에 미칠 영향과 사용 후 핵원료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SMR을 설치하는 지역의 지역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조차 논의되고 있지 않다. 이런 중요한 사안들이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AI 발전에 도움이 되니 해야지”라는 논리로 밀어 붙여선 안 되는 이유이자, AI가 발전할 경우 과실은 빅테크가 가져가지만, 폐해인 기후위기는 인류 모두가 함께 지게 된다 말하는 이유다. 당연히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 소수만 누리는 의제 설정의 독점을 깨고, 다양한 관점이 포함되어야 한다 "미래를 재구성하는 길은 길항권력을 창출하는 것이고, 특히 다양한 목소리와 이해관계와 관점이 지배적인 비전에 맞서 균형추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폭 넓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고 의제 설정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로를 열어줄 제도를 일굼으로써, 우리는 소수만 누리는 의제 설정의 독점을 깨뜨릴 수 있다"² (권력과 진보/ p.143) 현재 빅테크와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가 만드는 의제는 AI의 발전이 당연하며, AI의 발전을 위해 원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빅테크의 기술발전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어느 주장에서도 이 발전이 어떤 폐해를 불러올 수 있는지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발전에는 “여야가 없다"는 반론의 여지를 내지 말라고 말한다. 정치에는 여야가 없지만, 그 여야를 만드는 건 결국 국민이다. 그리고 그 국민들은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다. 또한 그 국민들은 빅테크가 만든 기술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정부 입장에서도, 빅테크 입장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 의견들을 모두 듣고서 자신들의 의제와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소수 빅테크와 투자자들만 배가 불러지게 되면 이는 또다른 독점과 소수의 권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자 소비자이자, 인류 구성원인 개개인이다. 개별 개인이 깨어 있지 않으면, 그 개인이 모인 공동체도, 나라도 깨어있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결국 소수의 의견과 방향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소수의 권력과 힘의 강화로 가는 지름길이며, 그 종착지는 착취적인 제도의 부활과 폐해다. 우리가 진보의 수혜를 입은 것은 맞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주요 이유는 우리 앞의 세대들이 그 진보가 폭넓은 사람들을 위해 작동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다시 그 일을 해야 한다. ² (권력과 진보/ p.18) AI 발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소수의 의견과 힘이 강해지고, 다수의 의견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이는 곧 그 어느 때보다 개개인이 다양한 의견을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있게 해야하는 시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두가 자신들의 생각을 조금 더 과감없이 표현하고, 또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AI 기술 발전의 수혜가 나와 공동체 모두에게 돌아오게하는 방법이다. 1) <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생각의 힘/ 2023) p.18, 20, 143 2)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아세모글루・제임스 로빈슨/ 시공사/ 2016)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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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고 붐” 밀어붙이는 정부… ‘다음 선우’ 없을까 [열아홉, 간이 녹았다 4화]
인천공항에서 차로 약 15분 떨어진 인천국제공항 물류단지. 잿빛 건물 틈으로 대형 화물차들이 바삐 움직였다. 5차로를 사이에 두고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장들. 바로 그곳에 스태츠칩팩코리아가 있었다. 오후 2시를 넘기자 공장 정문에 택시 세 대가 멈춰 섰다. 스무 살 남짓한 젊은 노동자들이 여럿 내렸다. 이들은 부리나케 달려가 개찰구를 통과했다. 안쪽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앳된 얼굴이었다. 김선우(가명, 23) 씨도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서 근무했다. 그는 2020년 10월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의 ‘1호’ 취업생이었다.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몸에 이상이 생겼다. 간이 녹아내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만 열아홉이었다.(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얘가 그냥 인문계(고등학교)를 갔으면… 대학을 갔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엄마 이하영(가명) 씨는 선우 씨가 아픈 게 꼭 엄마인 자기 탓 같았다.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한다던 선우 씨를 말리지 못한 것도, 울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인천에서 일한다는 선우 씨를 붙잡지 못한 것도, 안색이 좋지 않았을 때 병원으로 바로 가지 못한 것도. 선우 씨는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재를 신청한 것. ‘일’을 하다가 아프게 됐단 걸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앞으로 들 치료비 걱정도 덜 수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1년 8개월 만에 산재 ‘불승인’ 결정을 통보했다. 그는 지난 8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산재 승인을 다시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솔직히 알리고 싶기도 한데, 학교에서도 안 들을 것 같아서요. 취업 담당 선생님 말고는 안 알렸어요. (…) 다른 분들은 뭐 없죠. 졸업하면 끝인데.” 선우 씨는 취업 담당 교사 외에는, 아파서 퇴사했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는 “학교가 취업률을 더 신경 쓸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후배들을 거기(스태츠칩팩코리아)에 보내는 것 같더라고요.” 선우 씨가 졸업한 고등학교 홈페이지에는 졸업생 취업 현황이 공개돼 있다. 최근 5년간 90% 이상의 취업률을 자랑했다. 10월 집계된 취업 현황에 따르면 올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취업한 3학년 학생은 8명이다. 지난해에는 6명이 취업하고, 2명이 현장실습을 나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회사는 전국 수많은 직업계 고등학교, 대학교와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2021년에는 “전국 특성화고등학교 출신 학생 500명 이상 채용”을 홍보했다. 선우 씨는 마이스터고등학교를 다녔다. 정식 명칭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로, 직업훈련을 통한 전문기술인 양성을 목표로 했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3학년 2학기가 되면 학교와 협약을 맺은 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간다. 선우 씨도 2020년 10월 ‘실습생’으로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출근했다. 학교에서 교사의 소개로 구한 일자리. 검증된 회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이제 취업률 올리니까 그냥 아무 곳에 나가서, 선생님들은 이제 일일이 확인하지 않거든요. 근데 저희는 이제 중요하잖아요. 저희는 3년이 걸린 거니까.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제 선별해서 갖다줬다고는 하는데 저희가 알아보면 아, 이거는 아닌 거 같은데, 싶은 회사가 많은 거죠.”(면접참여자 H, 김혜진 외 2인,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 중) 현장실습생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병을 얻었다는 소식은 흔한 뉴스가 됐다. 올해만 해도, 지난 5월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설비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황화수소 중독’을 의심했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삼성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출신 이승환 씨 이야기도 화제가 됐다. 그는 2021년 10월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케이엠텍’에서 일했다. 케이엠텍은 삼성의 1차 하청 업체로 갤럭시 휴대전화 등을 조립하는 곳이다. 그는 이듬해 1월 영진전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업무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해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승환 씨는 이후 7차례 항암 치료를 받았다. 올해 3월에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도 받았다. 통증으로 잠 못 드는 날이 늘었고, 이식 후 염증반응으로 온몸이 까맣게 변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4월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와 질병간의 인과관계는 피해노동자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케이엠텍은 회사 내부 자료를 승환 씨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선우 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산재 신청을 하기에 앞서 회사에 작업환경 관련 정보를 요청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자료를 주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내부 자료를 요청하라고 답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현장실습생 F : “학교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교육은 딱히 잘 못 받았던 것 같아요.”현장실습생 D : “얘기해줬을 수도 있는데 기억 안 나요.”현장실습생 C : “딱히 얘기해 준 게 없는 것 같아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3단체, <특성화고 학생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노동세계진입연구> 중) 현장실습을 앞둔 학생들을 상대로 한 노동안전 교육은 여전히 미흡하다. 일터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실습생 B : “바닥 미끄러우니 유리 조심하고, 뜨거운 거 조심하고… 그 정도밖에 없어요.”현장실습생 A : “그냥 몸에 안 좋다는 것만. 그래서 토시랑 마스크 끼라고. 그거 할 때는 꼭 마스크 끼라고 하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3단체, <특성화고 학생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노동세계진입연구> 중) 사회는 실습생에게 친절하지 않다. 선우 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라고 경고할 뿐이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 (…) 아니, 그 새끼들 공장 나갔던 것들이 다 처돌아와. 몇 달 더 버티라니까. 아유, 우리 반이 바닥 찍을 것 같아. 니는 괜찮지? 사고 안 쳤지? 소희야, 버텨야 된다이?”(영화 <다음 소희> 대사 중)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퇴사는 쉽지 않다. 직업계고 3학년 학생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에 거의 의무적으로 참여한다. 법률상 의무는 없지만 관행처럼 굳어졌다. 심지어 현장실습 중 돌아오는 학생에게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저희 학교만 해도, 업체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은 학생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반성문을 쓰게 하고 징계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그 학생의 실습 기회는 가장 마지막에 주어졌습니다.”(김종하, 2017 인권논문 수상집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현실과 개선방향> 중) “선생님들은 현장실습 보냈다고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알아서 버티라고만 하고. 무책임해요. (실습 중에 학교로) 돌아오면 욕하고. (…) 선생님들이 안 좋아했어요. 실적이 떨어지니까.(면접참여자 D)”(김혜진 외 2인,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 중) 왜 현장실습생들은 안전하지 않은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을까. 현장실습제도는 산업체 인력 공급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직업계고 학생들에 대해 재학 중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강제했다. 이후 여러 정권을 거치며 실습 기간은 2개월에서 1년까지 늘어났다. 실습생의 인권침해 문제와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자, 2006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제도에 제약이 생겼다. 수업 일수와 취업 보장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실습을 나갈 수 있게 된 것. 규제는 2년이 지나지 않아 풀렸다. 이명박 정부는 청년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고졸시대’의 포문을 열고자 했다. 그는 현장 중심 직업교육을 강조하며, 특성화고 취업률 목표를 60%로 잡았다. 취업률은 학교 평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때부터 학교의 취업률 경쟁은 시작됐다. 감사원은 2015년 고등학교 직업교육 활성화 분야에 관해 이렇게 지적했다. “일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취업률을 높이고자 전공과 무관하거나 현장실습이 제한된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거나 현장실습 협약과 배치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등 현장실습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감사결과보고서-산업인력 양성 교육실책 추진 실태(2015)> 중)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뇌출혈 사고 이후, 2012년 울산 금영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사고, 2014년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사망사건, 2016년 성남 토다이 사망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사망사건, 제주 생수업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교육부는 2018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시도교육청 평가 기준에서 ‘직업계고 취업률’을 폐지한다는 대안이었다. 이어 조기취업 형태의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이 폐지되고,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만 허용됐다. 취업 시기 역시 3학년 2학기가 종료된 겨울방학부터 가능했다. 다만, ‘현장실습 선도기업’인 경우, 3학년 2학기 수업 중 3분의 2 이상을 이수하면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실습 선도기업’은 현장실습을 운영하는 기업 중 교육청 심의를 통해 우수한 실습 여건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은 기업이다. 이후에도 사건·사고는 이어졌다. 2021년 여수 요트 선착장 실습생 사망사고, 2024년 전주 페이퍼 사망사고로 현장실습생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선도기업’이라는 꼼수로 여전히 ‘값싼 노동력’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월 ‘현장실습 제도’를 ILO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도제 제도나 직업훈련 참여 최저 연령은 16세인 것으로 보이며 현장실습생은 노동에 진입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을 초과하고 있다”며 “실습생에 대한 안전과 훈련 감독 부재의 상황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현장실습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8월 중등직업교육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제2의 마이스터고 붐’을 조성하겠다며, 첨단산업 중심 마이스터고를 육성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은 정말 많은 유해화학물질이 집약적으로 사용되는 산업입니다. 새로운 공정과 새로운 물질이 끊임없이 사용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이윤추구 논리가 안전보다 늘 우선돼 왔습니다. (…) 10대의 몸은 성인의 몸보다 유해물질에 민감합니다. 따라서 10대 후반부터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을 정부가 적극 육성하는 게 걱정될 수밖에 없죠.”(이종란 노무사, 2024. 10. 23.) 이종란 노무사는 고 황유미 씨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근무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발병한 것이다. 유미 씨는 산재를 신청한 지 7년 만에 인정받았다. 이를 계기로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역학조사가 실시됐다. 이때 반도체 산업노동자들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김선우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1년 2개월 만에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질환으로 간 이식을 받았다. 산재 신청 결과는 불승인. 행정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 그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실습생으로 열아홉의 나이에 공장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2014년 CJ 현장실습생 김동준 군 사망사건을 소재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쓴 은유 작가는 책에 이렇게 썼다. “청소년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과 문화에서는 누구의 노동도 안전하지 못하다.” 오늘도 다음 소희, 다음 동준, 다음 선우가 공장으로 출근한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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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무기, “데이터”
디지털 사회에서 데이터는 사회를 읽는 창구이자 하나의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중요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빠띠는 오래 전부터 ‘데이터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으로, ‘공익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어요. 공익데이터는 말 그대로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데이터’를 말합니다. 기업이나 기관뿐만 아니라 시민 혹은 공익단체가 모은 데이터도 공익데이터가 될 수 있어요. 이는 사회문제 해결에 직접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삶의 생생함을 담고 있는 데다가 선명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데이터를 더 많은 시민에게 공유한다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할 기회가 늘어납니다. 공익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여 사회문제를 발견하거나 해결하는 활동을 ‘공익데이터' 활동이라고 부릅니다. 빠띠는 공익데이터의 생산, 공유, 활용, 관리가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공익데이터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데이터트러스트’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시작한 ‘이달의 데이터톤’(이하 데이터톤) 또한 이 일환으로 열리게 되었어요. 데이터톤은 ‘데이터’와 ‘해커톤’의 합성어로, ‘일정 시간 동안 특정 주제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한 후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보는 이벤트’입니다. 기후위기라는 벼랑 끝에 선 우리 첫 주제는 ‘기후위기’입니다. 올 여름, 유난히 길었지요. SNS에서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이제 ‘봄-여어어어어어어어어어름-갈-겨어어어어어울”이라는 표현이 유행어처럼 번지기도 했지요. 단순히 길었던 것만은 아니에요. 평균 기온, 열대야 기간, 강수량, 해수면 온도 등 많은 부분에서 역대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여름’으로 기억될 올 여름, 하지만 동시에 ‘올해가 남은 인생 중 가장 시원할 여름’일 것이라는 역설적인 이야기도 들립니다. 하지만 막상 ‘그래서 기후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데?”라는 질문을 들으면, 시민 개인이 답할 수 있는 건 한정적입니다. 에어컨 사용을 줄이고 자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얼만큼 도움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의 힘으로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비단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는 복잡하고 규모도 큽니다. 때문에 단일 분야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요. 데이터? 기술? 잘 몰라도 괜찮아요 데이터톤에서도 협력이 중요합니다.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데이터에 대해 잘 몰라도, 특별한 기술이 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안자의 진행에 따라 나의 생생한 경험과 관점을 나누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작업에 함께하면 됩니다. 데이터와 기술 관련 활동 경험이 있다면 결과물을 만들거나 멘토로도 참여할 수 있고요. 각자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협력해나가면 됩니다. 이번 데이터톤에는 4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는데요. 참여 동기는 각각 달랐지만, ‘데이터로 기후위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같았습니다. “일상의 작은 시점에서,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위한 임팩트를 데이터로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기후위기를 데이터를 통해 정량적으로 확인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액션을 고민해보는 것에 대한 관심과 기대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평소에도 환경이 관심이 많았지만, 9월이 되어도 식지않는 열대야 날씨에 심각성을 더욱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내가 이런 상황 속 무얼 할 수 있는지 지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하게 됐습니다.”- 참여동기 중 발췌 -  데이터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데이터톤은 총 4개의 주제별 세션으로 진행되었는데요. 각 세션에는 공익단체들이 세션 호스트로 함께했습니다. 공익단체는 그간의 활동으로 쌓아온 데이터를 공유한 후 시민과 머리를 맞대고 ‘데이터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어요.(👉 공익단체 데이터와 함께하는 사회문제 해결 협력의 장 ‘활동가의 서랍’  자세히 보기) 세션1. 데이터 캠페인 - 기후위기 데이터 발굴하기 함께한 공익단체 : 빠띠 세션 주요 내용 기후위기 관련 데이터를 찾아보는 기초 과정을 함께했습니다. 정보를 손쉽게 기록할 수 있는 구글 확장 프로그램 ‘물음표’를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원본 데이터와의 대조 작업을 통해 기초 배경 데이터를 발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확인에 필요한 구글 검색 노하우를 학습하고 실습에 활용했는데요. 데이터 활동의 범위와 의미, 기획방법 등을 살펴보고, 더 많은 시민이 공익데이터 활동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참여자 회고 “데이터 원본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어서 ‘데이터 작업은 인형 눈붙이기와 같다’는 다른 분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원하는 데이터를 필요할 때 참고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곳에 모으고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추후 원본 데이터를 가공하거나 시각화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도 배우고 싶습니다.”  세션2. 1.5도씨 라이프스타일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 함께한 공익단체 : 녹색전환연구소 세션 주요 내용 녹색전환연구소는, 시민이 개인 일상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규모를 확인하고 감축 계획까지 세울 수 있는 ‘1.5도 계산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세션에서는 그간 수집된 데이터를 함께 살펴보고, 이 내용을 어떻게 잘 가공하여 전달할 수 있을지 시각화 방법을 함께 찾아보았습니다. 참여자 회고 “1.5도씨 라이프스타일 계산기의 단순한 사용을 넘어, 모인 데이터값으로 어떤 인사이트를 제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유익했습니다. 데이터를 통해 인사이트를 뽑아낸다는 것은 원본 데이터를 정확하게 잘 정리하는 것을 넘어 소비하는 사람들의 시점에서 무엇이 끌리고, 왜 시도를 하려고 하는지까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학교 기후 관련 앱개발에 참고할 수 있는 설문 문항이나 이와 연계된 학습 자료 개발과 관련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와 지속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강의,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생성 등)을 기획해보고자 합니다."  세션3. 선거용 홍보물품 데이터 가공 및 수집 함께한 공익단체 : 웨어마이폴 세션 주요 내용 선거철마다 의류, 현수막, 명함, 문자메시지/ARS 등 엄청난 홍보물이 쏟아집니다. 웨어마이폴은 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을 고민하는 비영리 스타트업입니다. 이번 세션에서는, 선거 홍보물이 만들어내는 탄소 배출량 데이터를 가공, 처리, 분석하는 과정을 시민과 함께했습니다. 2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지역 후보자 홍보물품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보고, 홍보물품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스토리텔링 방안을 고민해보았습니다. 참여자 회고 “데이터에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 간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데이터를 같이 살펴보고 어떻게 정리할지, 정리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설을 설정하고 어떻게 검증할지 논의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세션4. 지속가능한 축제를 위한 기후위기 대응 모니터링 함께한 공익단체 : 그린피겨스 세션 주요 내용 10월은 축제의 계절입니다. 다양한 공연과 체험행사 등이 우리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지요. 하지만 축제의 이면에 탄소배출과 환경파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보통의 축제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양의 자원을 소모하고 거대한 폐기물을 만듭니다. 그린피겨스는 축제 탄소배출 모니터링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최자를 위한 탄소배출 관리 가이드와 참여자를 위한 기후영향 자가진단 모형을 제작하고 있어요. 이번 세션에서는 시민과 함께 진단 설문을 테스트하고, 데이터 수집 방법을 공유해보았습니다. 참여자 회고 “축제와 관련된 탄소배출을 정량화하는 모니터링을 통해 실제적으로 어떻게 탄소배출 감축을 관리할 수 있는지 축제 이해관계자 모두의 인식을 높이고 있는 활동들이 인상깊었어요. 이번 자라섬 페스티벌에서도 좋은 임팩트가 있길 기대하며,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린피겨스의 노력들이 꼭 리포트 작성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데이터로 사회문제를 여러 사람들과 얘기하는 경험이 잘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데이터 분석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얻어가는 것 같아서 다음에 어떤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할지 기대됩니다." "데이터화하기 위해 필요한 제반 논의들을 오신 분들과 여러 관점에서 나눌 수 있어 의미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압축적이고 농도 깊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데이터톤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기후위기를 당장 해결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움직임들이 하나의 실마리가 되고, 그 실마리들이 모이다보면 언젠가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빠띠는 앞으로도 사회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고 찾는 데에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만 높게 평가합니다. 사회문제 관련한 데이터의 생산과 관리는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지속가능 관점에서 바라보면, 데이터의 사회적 가치를 결코 등한시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터톤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다음달에는 어떤 주제로 데이터톤이 열릴까요? 꾸준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시민 여러분의 생생한 삶의 목소리를 언제라도 편히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데이터가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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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검열과 싸우는 도서관
검열과 싸우는 도서관 (2024-10-21) 김주영 | 성북문화재단 도서관사업부장 지난 3월 한 도서관 로비에서 진행된 ‘어쩌다 사과는 한개에 1만원이 되었을까?’ 전시 모습. ♣️H6s필자 제공 “어쩌다 사과는 한개에 1만원이 되었을까?” 이 질문은 지난 3월 한 도서관 로비에서 진행된 주제 전시의 제목이다. 큰 부담 없이 사서 먹을 수 있었던 사과의 가격 상승 요인이 무엇인지 기후, 노동, 경제 등 다양한 관점에서 알아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전시다. 그런데 민원이 제기됐다. 이 전시가 ‘정치적’이라 불편한 마음이 든다며 이용자가 사서에게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 시기, 사과 가격 상승과 관련한 논쟁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으리라.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최근 공공도서관 현장에서는 특정 정치인, 세월호, 성교육, 성평등, 젠더, 페미니즘, ‘위안부’ 등을 소재로 한 도서에 관해 특정 단체가 도서관을 대상으로 금서 목록을 만들어 열람 제한이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도서관 책임자나 책을 사들이는 담당 사서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등 압력을 행사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또한 이러한 일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공론화되면서 개인 이용자들조차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도서관 현장의 사서들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지적 자유 수호’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모든 이념적, 종교적, 정치적 갈등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도서관 및 사서직의 권리선언’에 입각해 자료를 수집하고 이용자들에게 제공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하는 여러 일들로 사서들은 자료 선정과 관련한 전문가적 자존감 상실과 함께 법적 소송, 지속적인 민원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광고 최근 발표된 김신영의 논문 ‘도서관 지적 자유 침해 양상과 대처 방안’에서도 도서관·사서의 자료 선정권 침해와 자기검열에 대한 압박, 자료 대출·열람 서비스 위축, 도서관 일상 업무 방해, 법적 소송에 대한 정신적 불안감 등이 도서관 현장의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이러한 현장의 애로사항들로 인해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지적 자유 수호’를 위한 도서관과 사서의 역할이 축소될까 도서관계에서는 우려가 크다. 많은 도서관 현장의 사서들은 외부 압력으로 인해 자신들이 소극적인 태도로 업무에 임하는 것을 경계하여 함께 서로 격려하며 지적 자유 수호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장서 선정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검열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2021년 서울 성북구립도서관은 ‘아동 성추행’으로 실형을 받은 아무개 작가의 어린이책을 연구자와 성인에게만 열람할 수 있게 하는 열람 제한을 결정했다. 이 사건 이후 사서들은 검열과 관련하여 전문가와의 워크숍, 도서관 이용객과의 토론회를 통해 우리의 결정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어떤 과정을 더 수반해야 하는지 등을 논의했다. 사서들과 구민들은 연대와 학문적 논의를 바탕으로 지적 자유와 검열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장서 개발 정책의 보완과, 관련 문제 발생 시 위원회 개최 등 실질적인 방안들을 함께 정했다. 이 과정은 구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도서관협회는 지난 8월 도서관의 지적 자유 보장을 위한 ‘도서관 지적 자유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한국도서관협회가 ‘도서관에 대한 일체의 검열 반대와 지적 자유 수호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한 이후 도서관 현장에서 지적 자유를 침범하는 행위에 대해 실제적인 대응 방법을 담은 가이드라인이다. 그러나 지적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국내외 성명서나 윤리 선언 등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알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임에도 이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는 현장과 사서들은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지적 자유를 지키기 위한 사서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다양한 가치, 입장 등을 교류하고 표현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갈등이 고조되는 요즘, 지적 자유를 수호하는 공공도서관은 갈등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공론의 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서들이 안심하고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가 시급히 마련되기를 바란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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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군 모두의 이중 용도 기술 AI
민-군 모두의 이중 용도 기술 AI by 🎶소소 “군사 목적으로 AI를 활용하는 게 왜 문제인가요? 국방 기술력이 곧 국력이고 방위 산업은 수출 효자 산업인데 더 많이 투자해야죠.” 최근에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질문을 듣는 순간, 깊은 불편함이 몰려왔습니다. 얼버무리듯 답을 했지만, 그 후로 마음 한구석이 계속 찜찜해 이렇게 레터를 빌려 다시 답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AI와 같은 첨단 기술은 군사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조종 신호가 끊겨도 자율 폭격이 가능한 AI 드론이,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이 개발한 AI 폭격기가 초고속으로 표적을 찾아내며 효율적으로 살상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흔히 AI 기술이 그 자체로 특정 용도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군사 안보 분야는 다양한 AI의 활용 분야 중 하나일 뿐일까요? AI 기술은 범용 기술이지만 동시에 이중 용도 기술(Dual-Use Technology)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기술이 군사용으로 개발되어 민간으로 확산되거나, 그 반대의 경로를 거쳤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군사 통신용으로 개발된 ARPANET이 오늘날의 인터넷으로 발전했죠. 거의 모든 기술이 이중 사용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일반적인 영역과 "의도적인 오용"은 다릅니다. 미국 국방부는 이중 용도 기술을 상업적 용도와 군사적 용도로 모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이라 정의합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는 생물학 분야의 연구 중 공중 보건, 개인 안전 또는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연구를 우려할 만한 이중 용도 연구(Dual-Use Research of Concern, DURC)로 분류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 관리합니다. 예를 들면, 병원체나 물질의 해로운 독소를 증가시키거나, 병원체에 대한 면역이나 예방 접종 효과를 방해하는 등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연구는 사전에 분류하여 관리합니다. 유럽연합은 이중용도 품목을 지정하여 수출, 운송, 중개, 기술 지원을 통제하고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요구합니다. 대량살상무기 혹은 인권 침해와 관련된 품목도 통제 대상입니다. 핵확산금지조약, 화학 및 생물무기금지조약 등에 따른 조치이며, 국제 평화와 안보에 기여하고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 AI 행정명령에서는 “이중 용도 파운데이션 모델(Dual-use foundation model)”을 별도로 정의했습니다. 정의에 따르면 이 모델은 광범위한 대량의 데이터로 학습되고, 일반적으로 자체 감독을 사용하며, 최소 수백억 개의 파라미터를 포함하고, 광범위한 맥락에서 적용 가능하며, 안보, 국가 경제, 공중 보건, 안전 등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작업에 높은 수준의 성능을 발휘하거나 발휘할 수 있습니다. 모델의 위험성을 고려해 개발자는 상무부에 AI 안전 테스트 결과를 포함한 핵심 정보를 보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단한 규모의 AI가 아니더라도, AI 기술은 기존의 그 어떤 기술보다 자유롭게 민간과 군사 분야를 넘나들며 전쟁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AI가 현대 전쟁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AI는 드론 작전, 사이버 전쟁, 정보 분석 등 다양한 군사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실험실로 활용해 개발한 감시 기술을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AI의 군사적 활용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AI를 전쟁에 투입하는 상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AI는 언제든 무기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적절한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 더 읽어보기- 전쟁 기술 만들기를 거부하는 이들(2024-04-15)- 죽음의 기술과 효율성(2024-04-08)- 전쟁과 죽음의 기술(2023-10-30)- 자동화된 아파르트헤이트(2023-05-15)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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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와 심연의 아카라이브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4년 10월 넷째 주by 🍊산디 1. 규제 사각지대 나무위키와 심연의 아카라이브 나무위키의 하위 커뮤니티 사이트 ‘아카라이브’가 성착취물 유통의 온상으로 지적되었습니다. AI로 만든 성착취물도 활발히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아카라이브는 서버가 파라과이에 있으며, 한국어로 콘텐츠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해외 IP로 우회 접속하도록 하여 국내 규제를 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모 인플루언서에 대한 나무위키 페이지의 접속차단을 의결했습니다. 해당 나무위키 페이지가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통신사로 하여금 인터넷 이용자가 해당 URL로 접속하지 못하도록 주문한 겁니다. 방심위는 인플루언서를 공인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들의 사생활을 보장할 필요를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방통심위 인터넷피해구제통합시스템에서 개인정보의 유포, 인격권을 현격히 침해하는 내용의 정보, 명예훼손 정보 등 권리침해정보에 대한 삭제, 접속차단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방심위의 이번 결정이 검열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방통심위의 통신심의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규모의 온라인 행정 검열이라는 비판은 예전부터 있었죠. 딥페이크 성착취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과 온라인 검열 사이에는 아주 얇은 선이 놓여있을 뿐입니다.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을 두고 권리의 천칭이 혼란하게 흔들리는 요즘입니다. 균형은 어디에 있을까요? 🦜더 읽어보기- 텔레그램 건국 설화: 자유의 이름으로 세탁된 자본(2024-10-16) 2. AI 디지털 교과서, 커지는 신중론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신중론’이 제기되었다는 보도가 눈에 띕니다. 충청권 교육감들을 대상으로 한 질의에서 교육감들이 ‘신중하게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지요. 한편 국회입법조사처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내년부터 도입될 경우 향후 4년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최소 1조 9천억원에서 최대 6조 6천억원의 재정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책당 가격은 올해 12월에 정해질 예정으로, 시도교육청의 예산 편성 일정과도 어긋나 예산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재정적 지속 가능성, 심지어는 법적 근거마저 불비하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교육의 효과성은 미지수입니다. 현장에서는 개인정보보호 조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AI 디지털 교과서로의 이행이 과연 불가피한 것인지, 최선의 절차가 이것뿐이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3. 정체를 드러내는 각국 AI 안전연구소들 지난 5월 열렸던 AI 서울 정상회의. 대한민국 외에도 호주, 캐나다, 유럽연합,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싱가포르, 영국, 미국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채택된 ‘AI 서울 정상회의 서울선언’에는 참여국들이 AI 안전연구소(또는 그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를 설립하고 해당 단체 간 네트워크를 육성하여 협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AI 안전연구소(AI Safety Institute, AISI)를 설립한다는 각국의 약속이 점차 실현되는 모습입니다. 비영리 공익 싱크탱크 국제미래세대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Future Generation, ICFG)는 각국의 AI 안전연구소 추진 현황을 점검하여 보여줍니다. 정상회의에 참여했던 국가들 간에도 접근 방식이나 자금 규모에서 상당한 차이가 관찰됩니다. 영국은 2030년까지 1억 파운드의 예산이 확보된 반면, 미국은 자금이 불확실합니다. 일본과 싱가포르, 프랑스는 규제보다는 R&D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네요. 각국의 AI 안전연구소 중 유일하게 EU의 AI 오피스만 규제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도 다음달 AI안전연구소가 문을 엽니다. AI 안전 정책, 평가, 기술분야 등 세 개 연구실로 운영된다고 하네요. 이들 기구가 인공지능의 위험 관리와 신뢰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해줄지 지켜보아야겠습니다.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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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신부가 해고됐다 1화]
그는 짐가방을 꺼내놨다. 무언가 하얀 속지로 정성스럽게 싸여 있었다. 거기서 꺼내든 곱게 개어진 옷 한 벌. 검은 사제복이었다. 목덜미 라벨에는 ‘심기열’ 이름 세 글자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심기열(34)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였다. 그는 더 이상 사제복을 입을 수 없다. 교구는 심기열에게 명확한 근거 없이 정신질환이 있다고 판단했다. 면직 통보를 할 때는 한마디 설명도 없었다. 심기열은 하루 아침에 사제직을 빼앗겼다. 사제로 보낸 4년의 시간을 고이 접어, 검은 사제복과 함께 가방 속에 보관해야 했다. 그는 2022년 3월 업무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총대리주교. “심기열 신부가 어떤 억압된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전문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2022. 3. 15.) 심 신부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의심된다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교구는 ‘자문단’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대구대교구 홈페이지상 조직도에는 없지만, 정신과 의사와 심리전문가로 구성된 대주교 인가 조직이라고 덧붙였다. “자문단이 편집성 성격장애 진단을 내렸다는데, 어떻게 본인 없이 병 진단이 가능합니까?” 심 신부는 교구청을 찾아갔다. 당사자 면담도 없이 편집성 성격장애가 의심된다고 판단한 자문단의 명단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교구는 정신과 진료를 권하는 것 말고는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 자문단은 무급으로 자문을 주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 부담스럽다고 했다. 교구는 한 발 물러섰다. 당장 정신과적 치료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문제가 생기면 그때 조치하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교구는 일방적인 ‘조치’를 결정했다. “2022년 4월 8일부로 신부님의 ‘휴양’이 결정되었습니다.” 심 신부에게 휴양 결정이 내려졌다. 휴양은 질병, 사고 등으로 요양이 필요한 신부에게 내려지는 결정이다. 대구대교구 사제생활지침서에 따르면, 휴양을 원하는 사제는 총대리와 상의하고 교구장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휴양 기간은 의사의 소견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만 심 신부 본인의 신청도 없이, 의사의 진단도 없이 내려진 일방적 통지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심기열은 그 배경에 A 성당 주임신부와의 갈등이 영향을 줬을 거라고 짐작했다. “A 성당 주임신부는 외박, 외출이 잦고 본당에 잘 없었습니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 목요일은 골프를 치러 가서 미사 일정을 항상 바꿔야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미사가 없으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토요일에 나타났습니다. 주일(일요일)에도 당구 치러 간다고 본당을 비우곤 했습니다.” 휴양 통보가 있기 약 5개월 전인 2021년 12월, 심 신부는 A 성당 주임신부를 ‘업무태만’으로 교구에 고발한 바 있다. 이 문제로 심 신부는 주임신부와 함께 교구청 관계자들을 면담했다. “주임신부에 대한 고발 내용을, 아주 부정적인 고발 내용으로 일관했고, 아주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보통 젊은 보좌신부가 주교님과 본당 신부, 또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거든요.”(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이후 교구청 총대리주교가 심 신부에게 “억압된 감정”이 있다며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메일을 보낸 거였다. 교구는 심 신부가 고발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심 신부를 B 성당으로 인사이동 시켰다. 그리고 뒤이어 내려진 휴양명령. 사실상 징계 처분이었다. 교구는 휴양명령에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 신학대 입학 인성검사 당시에 보인 부정적 결과가 현재 악화됐다는 것. 교구는 당시 기준으로도 이미 14년 전인 2008년 진행된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지원생 인성검사’ 결과를 근거 삼았다. 당시 인성검사 결과에는 “지나치게 자신을 좋게 보이고자 하는 상태”라며, “유연성과 융통성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을 뿐, 정신질환의 가능성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심기열은 인성검사에서 B등급(정상범위)을 받아 정상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했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신학교 입학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구는 14년 전 인성검사에 들어 있던 몇 줄의 부정 평가를 근거로, 심 신부의 상태가 악화돼 거짓말을 하고 다른 구성원들과 갈등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신학교 입학 당시의 인성검사 결과에서 조금의 개선도 없이 더 심각해진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천주교 대구대교구 ‘휴양에 관련된 결정사항 통지’, 2022. 4. 4.) 두 번째 이유는 심 신부에게 더 모욕적이었다. 바로,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했다는 것. B 성당 주임신부는 심 신부가 한 50대 여성 신자의 승용차를 자주 얻어 타는 등, ‘지나치게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적인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져 있던 때였다. 심 신부는 성당 안에만 있는 게 갑갑해, 종종 가까운 카페를 찾아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다. B 성당에서 걸어서 20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주경희(가명, 당시 51세) 씨였다. 주 씨는 심 신부의 첫 부임지 성당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신자다. “심기열 신부님과 저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도 아니고요, 손끝 하나 댄 적 없습니다.”(주경희 증언,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2023. 10. 12.) B 성당 주임신부의 증언 말고 다른 증거는 없었다. 그러면서 교구는 심 신부에게 보낸 휴양명령 통지서에서, 두 사람을 ‘부적절한’ 관계로 몰아갔다. “너무 어이없었습니다. 신부 옷을 벗기려면 적어도 돈 문제가 있거나, 여자 문제가 있어야 해서 그런 프레임을 씌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휴양 기간 중 치료를 명령했다. 천주교 신자가 운영하는 C 정신과의원을 지정해, 그곳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분기별 치료 상황과 생활에 대한 보고서 제출도 요구했다. 심 신부는 억울했다. 자신에게 정신질환은 없다고 ‘증명’해야 했다. 심 신부는 교구에서 지정한 C 의원보다 규모가 큰 경북 포항시 소재 종합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2022년 4~5월 두 차례 심리검사를 받았다.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구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구에서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소견서’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정신질환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제출했는데, 교구는 계속 C 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어서 치료상황 보고서는 내지 않았지만, 미사 드리는 생활에 관한 보고서는 전부 제출했습니다.” 이후 교구는 심 신부에게 한 곳의 병원을 더 지정해줬다. 2022년 12월 20일까지 C 의원 또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중 한 곳에서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심 신부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병원은 심 신부의 아토피 피부염 증상에 정신심리적 영향이 있다고 봤지만, 교구에서 말하는 ‘편집성 성격장애’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은 없었다. “제가 행복하기 위해 종교 안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이 행복한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괴롭힘을 당하면서 어느 순간 점점 지옥이 됐습니다.” 약 8개월에 걸친 ‘해명의 시간’은 심 신부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50대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한 적이 없다고, 치료를 받아야 할 정신질환 같은 건 없다고 외롭게 싸운 시간이다. “제가 죽으면 이런 일이 다 끝날까, 생각했습니다. 누구 하나 도움을 안 주더라고요.” 교구는 심 신부의 처절한 해명마저 외면했다. 2022년 성탄절 다음 날인 12월 26일, 심기열 신부에 면직이 통보됐다. 인사 발령 공지 어디에도 사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심기열(야고보) 신부 / 계시는 곳 ‘휴양’ / 가시는 곳 ‘면직’ / 비고 12월 31일부” 일방적인 면직 통보 후 3일이 지난 12월 29일. 심 신부는 업무 시스템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사용자 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기열은 20대를 전부 바쳐 얻은 사제직을 허무하게 잃었다.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대체 왜 면직이 됐는지. 심 신부는 지난해 2월 교구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심 신부의 면직 사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불순명(不順命)’. 교구에서 시키는 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면담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였다. 심 신부가 ‘교구에서 시키는 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교구가 지정한 정신과 의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것, 그리고 치료상황을 보고하지 않은 것밖에 없었다. 그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교구에서 요구하는 걸 지속적으로 행하지 않은 모습들이 지속되다 보니 사제직을 계속하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참사 위원회에서 판단한 것 같습니다.”(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성직자국장은 23년간 교구에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면직 처분은 세 건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나는 여자 문제가 있는 사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돈 문제, 마지막 하나는 심기열 신부 사례였다. 그의 말처럼 대구대교구에서 면직 처분을 내린 것은 흔치 않았다. 교구 징계 사례를 살펴봤다. 아동성추행으로 징역 3년 형을 받은 신부가 있었다. 사제의 자격이 아니라 인간의 자격도 없는 범죄를 저지른 이 신부도, 면직이 아닌 ‘정직’ 처분에 그쳤다. 교구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도 면직되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를 불러 술판을 벌인 신부도 정직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정직이 끝나자 한 성당의 주임신부로 복귀했다. 이런 신부들을 모두 제치고, 심 신부는 ‘면직’됐다. 지난 8일 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에게 ‘면직 기준’을 물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다시 사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참사회의를 거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죠.” 성직자국장은 심기열 신부에 대해서는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했다. 심기열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8일 1심 재판부는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6일 2심 재판부 역시 소송을 각하했다. 종교단체의 내부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다.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실체적인 심리・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법원은 자율권이란 명분 아래, 이 문제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있다. 그럼 종교단체 내부에서 누군가를 이유 없이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행위도 용인돼야 하는 걸까. 신의 뜻으로도, 인간의 법으로도 심기열을 구할 수 없다면, 그는 이제 누구에게 기도하고 무엇에 기대야 하는 걸까. “인권을 짓밟는 행위가 옳은 건가, 싶은 거죠. 인간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하잖아요. 근데 정작 그 사람들은 존엄한 마음이 없습니다. 해볼 때까지 해봐야죠.”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B 성당에서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당구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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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도 봉사도 ‘대타’… 가짜 고대생, 서울대도 속였다 [교수 엄마와 가짜 고대]
“항상 이렇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상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부터 포스터, 실험까지 ㅠㅠ 정말 감사합니다.”(2016. 11. 28.) 무엇이 “이렇게” 감사한 걸까. 누가 그렇게 “항상” 도와주신 걸까. ‘가짜 고대생’ 이해린(가명)이 ‘교수 엄마’의 제자인 대학원생 A에게 이메일로 답변한 말이다. 사실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고려대학교 합격부터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입학까지, ‘숨은 조력자’들이 만들어준 ‘가짜 스펙’을 활용한 거니까. 거기다 ‘운 나쁘게’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치과의사까지 될 뻔했으니 말이다. 지난 7월, 교수 엄마 이수희(가명)와 딸 해린은 법원에서 나란히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입시비리 사건의 주인공 해린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법원의 유죄 판결에도 해린의 고려대 입학취소 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학교 당국을 통해 최초로 확인한 사실이다. 이수희 당시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딸 해린의 대학 입시를 위해 대학원생 제자들을 동원했다. 그들이 만들어준 ‘대필’ 보고서로 해린은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았고, 덕분에 2014년 고려대 생명과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려대 입학은 1차 목표에 불과했다. 이 교수의 최종 목표는 ‘의사 만들기’. 본게임(?)은 해린이 고려대에 입학한 뒤에 시작됐다. 해린이 대학교 3학년이던 2016년. 이때부터 해린은 의학 및 치의학 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대입 때처럼 이번에도 교수 엄마가 나섰다. ‘2016년 학부생 연구프로그램’(교육부·한국과학창의재단 주관)에 선정된 연구과제를 해린의 ‘가짜 스펙’을 만드는 데 활용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본인이 지도하던 병태생리학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에게 지시했다.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을 진행한 다음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대학원생들의 연구과제와는 전혀 관련 없는 실험이었다. “대학원생들은 모두 피고인 이해린을 위한 실험이라고 알고 있었다. 2016.4경 있었던 예비실험은 대학원생 C가 한 것으로 기억되며, 피고인 이해린이 관여한 바는 전혀 없다. 피고인 이해린은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단 2번만 이 사건 연구실에 방문하였을 뿐 함께 실험을 한 적이 전혀 없다. 첫 번째 방문 때에는 이 사건 연구실 및 실험 도구 등을 설명해주었고, 두 번째 방문 때에는 실험을 참관하였을 뿐이다.”(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B 진술) 심지어 이 교수는 조작도 강행했다. 실험결과 측정된 수치가 가설에 부합하지 않거나, 가설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확연한 차이를 얻지 못했다고 보고, 대학원생들에게 실험 결과 수치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저버린지 오래였다. “대학원생들이 각자의 실험을 한 이후에 결과 그래프를 인쇄하여 교수님께 가져다 드렸고, 그러면 교수님은 임의의 숫자를 테이블에 직접 기재하시거나 그래프의 모양을 새로 그리셨고 이렇게 다시 그래프를 그려오라고 했다. 모든 실험을 대학원생들이 나누어 하였기에 데이터의 조작사실을 이후에 확인했고, 이에 그러한 문제점을 기록해 놓기 위해 왼쪽에는 대학원생들이 갖고 있는 raw data를, 오른쪽에는 교수님의 지시 하에 변경된 수치를 정리한 ‘스트레스 실험 총 정리’ 파일을 만들었다.”(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B진술) 해린은 심지어 보고서를 쓸 시기에는 한국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2016년 9월부터 교환학생으로 캐나다 밴쿠버에 체류 중이었다. 2017년 1월에야 귀국했다. 조작까지 감행된 대필 보고서. 해린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손에 쥔 대필 보고서를 그대로 한국과학창의재단에 제출했다. 이 교수는 해당 재단으로부터 총 800만 원의 지원금을 타먹기도 했다. 이때 이 교수는 고려대 차준미(가명)와 이화여대 안서윤(가명)의 이름을 공동연구자로 함께 넣었다. 이들도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지 않은 것은 해린과 마찬가지. 특히 안서윤은 고등학생 시절 해린과 함께 ‘대필’ 보고서로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은 적도 있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들은 이들을 위해 ‘연구노트’도 대필했다. 이해린·차준미·안서윤이 직접 작성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대학원생 세 명이 돌아가면서 서로 다른 글씨체로 연구노트를 작성했다.  결국, 해린은 2016년 12월 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부터 ‘우수연구과제상’을 수상했다. 해린은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 결과를 요약한 학술대회용 포스터를 대한면역학회에도 제출했다. 이 역시 대학원생들이 대신 작성했다. 하지만 해린은 대한면역학회가 주관한 ‘포스터 발표’ 현장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포스터 발표는 연구 내용을 여러 패널에 부착 및 게시해 발표하는 방법을 뜻한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 D와 E가 ‘대리 발표’를 했다. 규정대로라면 그들은 학회에 등록되지 않아 학회장 출입조차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대한면역학회는 2016년 11월, 문제의 포스터에 ‘우수발표상’을 수여했다. 2017년 6월에는 고려대 주최 포스터 대회에서도 ‘우수포스터상’을 수상했다. 교수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이번엔 논문이었다. 이 교수는 대학원생 제자들에게 앞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논문 제목은 <Melatonin protects mice against stress-induced inflammation through enhancement of M2 macrophage polarization>(스트레스 생쥐 모델에서 멜라토닌이 M2 대식세포 분극화에 미치는 영향). 2017년 1월, 해린은 ‘대필’ 논문을 SCI(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급 국제면역약리학회지(International Immunopharmacology)에 투고했다. 해린이 단독저자였다. 교신저자는 고려대 생명과학부 F 교수. 교신저자는 논문의 최종본을 작성하고 승인해 학술지에 투고하는 사람을 말한다. 교신저자인 F 교수는 엄마 이수희 교수의 성균관대 약대 동문이다. F 교수는 수사기관에 출석해 이렇게 증언했다. “논문에 본인(F 교수 자신)이 작성한 부분은 없다. 피고인 이해린이 스트레스 유도 동물실험을 하고, 이 사건 논문을 써낼 수준이나 경험, 경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피고인 이수희 교수가 많은 부분을 대신 처리해주겠거니 추측만 하였다.” 이 교수는 딸 해린의 스펙을 다방면으로 꼼꼼하게 챙겼다. 이 교수는 대학원생들이 해린의 봉사활동도 대신하게끔 지시했다. 대학원생 G는 해린을 대신해 시각장애인 점자도서 타이핑 봉사활동을 했다. 이 교수는 사례비로 대학원생 G에게 50만 원을 줬다. 해린은 이 결과물을 그대로 한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제출해 54시간 봉사활동을 인정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들은 해린의 자기소개서도 손봐줘야 했다. 해린의 고려대 입시 때와 똑같았다. 결국, 해린은 2018년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당시 합격생 중 SCI급 논문 제출자는 해린 포함 2명뿐이었다. 하지만 해린의 ‘대필 인생’은 영원할 수 없었다. 교육부는 2019년 3월 특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2019년 5월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이 교수를 구속기소했다. 딸 해린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 결과는 올해 7월 나왔다. 검찰의 기소로부터 약 5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9단독(판사 김택형)는 이수희 교수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딸 이해린에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최근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교육부는 2019년, 성균관대학교에 이 교수에 대한 중징계(파면)을 요구했다.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도 비슷한 시기 해린에 대해 입학취소를 결정했다. 같은 해 대한면역학회는 과거 해린에게 수여한 ‘우수발표상’을 취소했다. 고려대만 아직 이해린의 입학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다른 대학들과 학회는 이미 5년 전 이들 모녀에 대해 조치를 했는데도, 법원이 유죄 판결까지 내렸는데도 말이다. 고려대는 지난 8월 셜록에게 서면 답변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해당자(이해린)에 대한 입학허가 취소/미취소는 심의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안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근거로 본교 학칙과 규정에 의거하여 처리할 예정입니다.” 지난 15일, 기자는 고려대 입학처에 “지난 8월 서면 답변 이후 변동사항이 생겼는지” 문의했다. 입학처 담당자는 “서면 답변과 달라진 건 없다”고 답했다.(관련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이 전 교수 모녀는 오히려 소송전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이 전 교수는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학술지원대상자 선정을 제외하는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이다. 딸 해린은 서울대를 상대로 입학취소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걸었다. 이어 대한면역학회를 대상으로는 수상취소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각 소송의 1심 결과, 이들 모녀가 모두 패소했다. 해린이 “항상 이렇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했던 대학원생 A. 이 전 교수의 ‘갑질’ 때문에 엉터리 실험을 하고,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거짓 논문까지 작성해야 했던 그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해린의 인사처럼 그렇게 훈훈했을까. “처음부터 피고인 이수희 교수가 연구계획을 수립하여 지시를 하고 그 이후 실험 수행, 연구보고서 작성, 포스터 작성 등 일체의 과정이 대학원생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A 진술) 기자는 지난 9월 이 전 교수와는 잠깐 통화를 나눴다. 이 전 교수는 “기자”라는 소개에 “지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후 10월 21일 현재까지 12번에 거쳐 전화를 걸었지만, 이 전 교수는 받지 않았다. 기자는 다른 번호로도 이 전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 15일 해린의 고려대 입학취소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입장을 문자메시지로 물었다. 하지만 이 전 교수는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 전 교수 딸 해린에게도 접촉했다. 지난 16일 입시비리 사건 관련 항소심 담당 법률대리인을 통해 인터뷰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해린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도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지난 17일, 모녀의 주소지로 찾아갔을 때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셜록은 대필 논문의 교신저자 고려대 생명과학부 F 교수를 찾아갔다. 지난 17일, 고려대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다. 기자는 F 교수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반론을 받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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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신종 돈벌이’…‘조선몰’ 제품 광고 기사
뉴스어디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독자의 신뢰에 기반한 '돈'만으로 굴러가는 언론 생태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언론의 모든 문제가 파생되는 시작점이 편법으로 점철된 언론의 돈벌이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번 보도는 조선일보의 새로운 돈벌이에 관한 기사입니다. 전문가들은 "되게 우회한 기사형 광고", 한 국회의원은 "국내 1등 신문이라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매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놀랍다. 제재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합니다.  뉴욕타임즈에도 기사형 광고와 유사한 상품 추천 기사가 있습니다. 한국의 '기사형 광고'만 접해온 제게는 이 기사가 꽤 새로웠는데요. 상품 추천 기사에서도 "강력한 저널리즘"을 강조하고 있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자들의 노력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즈의 이 기사도 오늘 보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캠페인즈 구독자분들도 함께 읽어보시고, 독자의 신뢰에 기반한 '돈'만으로 굴러가는 언론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뉴스어디의 다른 보도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진실과 공익을 추구하는 언론 생태계를 만들겠습니다. 캠페인즈 '응원'으로 뉴스어디에 힘을 보태주세요! (뉴스어디 후원 바로가기) 조선일보 홈페이지 ‘조선닷컴’에 들어가 2~3초만 스크롤하면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나온다.  환절기 기력 보충 자연산 바다장어, 9마리에 2만 7500원 수백만 원대 대기업 탈모 관리기, 10만 원대 실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노트북 단독 특가 돼지에서 이런 맛이? LA갈비 특가 이 기사가 실린 코너는 조선경제 메뉴의 ‘스타트업 취중잡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를 싣는다고 하지만, 기사 상당수가 특정 상품을 소개하는 사실상 광고다. 이 코너 기사 상단에는 “콘텐츠와 제품에 대한 책임은 조선몰에 있다”고 적혀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게재한 기사 책임을 영리 쇼핑몰인 ‘조선몰’에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사를 실은 주체와 기사 책임자가 일치하지 않는다. ‘조선몰’은 ‘조선일보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상품을 만나보세요’라고 홍보하는 인터넷 쇼핑몰이다.  ‘취중잡담’에 실린 기사에는 각 문단 사이마다 ‘단독 최저가 사러 가기’ 링크가 있다. 링크로 연결되는 곳은 쇼핑몰인 ‘조선몰’ 구매 페이지다. 기사에는 “많은 상품 중에서 제대로 된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중략) 직접 비교하고 선별한다”, “우수 제품을 소개한다”라고 적혀있지만, 이 기사와 조선몰이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공지하는 정보는 없다. “직접 선별해 골랐다”라는 말을 신뢰할 만한 근거도 기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스타트업 대표 인터뷰 코너에 실린 탈모 관리기⋅LA갈비 기사⋯광고 아니다? 이러한 광고성 내용의 ‘기사’를 쓰고, 쇼핑몰을 운영하는 곳은 조선일보 계열사 ‘더비비드’(회사명 비비드몰)다. 대표는 박유연 현직 조선일보 기자다. 박 대표와 ‘더비비드’ 소속 기자가 ‘취중잡담’ 코너 ‘기사’를 쓴다. 2022년 기준 더비비드 연 매출은 13억 8천만 원이다. 박 대표는 지난 9월 30일 뉴스어디와 만난 자리에서 “대가를 받고 작성한 콘텐츠는 일절 없다”, “중소기업,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했다”라고 했다.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 알고 보니 5000만 원짜리 폴리텍대 광고  뉴스어디가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실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의 주장은 사실과 차이가 있다. 더비비드는 돈을 받고 공공법인의 기사형 광고도 싣는다.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폴리텍대학과 올해 1월 5566만 원의 ‘콘텐츠 제작 및 송출’ 계약을 맺었다. 수협과는 2024년 1년 동안 월 1회 “조선닷컴 메인” 등에 “광고 송출” 조건으로 월 550만 원, 총 6600만 원의 홍보 계약을 했다. 폴리텍대 기사형 광고로 졸업생과 교수의 성공담을 실었는데, “중소기업, 스타트업을 지원한다”라는 더비비드 측 주장과 거리가 있다. 정부기관, 공공법인은 매년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광고⋅홍보에 사용한다. 정부광고법은 이 기관들이 특정 매체에 광고를 몰아주는 등의 불공정 행위를 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폴리텍-더비비드 계약, 3년째 정부광고 시스템에 누락 폴리텍대는 정부광고법을 준수해야 하는 기관인데도 더비비드 측과의 계약 내역이 ‘정부광고 통합지원시스템’에  기록되지 않았다. 폴리텍대가 2024년 1월 더비비드와 계약한 건과 유사한 기사형 광고는 2022, 2023년에도 확인되는데, 이 내역도 없다. 폴리택대 측은 “실수로 누락된 것”이라고 했지만, 더비비드 측은 폴리텍과의 계약 건에 대해 기사형 광고 여부를 부인하고 있다. 비공개와 관련해 “따로 요청드린 건 없다”고 했다. 우회적 방식의 기사형 광고가 정부 광고의 불투명성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광고법 위반 법인을 두고 몇 년째 대안이 없다. 문체부 미디어정책과는 “시정 조치를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국회에 보고를 하게 돼있다”라고 했다. 시정 조치 외에 하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더비비드 기사처럼 정부광고가 기사형 광고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계약되는 것에 대해서도 “저희가 일일이 다 전수조사를 할 수도 없다”라고 했다. 쇼핑몰 수수료 받고 기사형 광고 공짜?  전문가들 “우회한 기사형 광고” 이에 대한 해명 요구에 더비비드 측은 “기사형 광고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 배경에는 기사형 광고 윤리 규정을 우회하는 기사형 광고 거래 방식이 있다. 박 대표는 “폴리텍 졸업생을 인터뷰해 폴리텍 블로그에 올리고, 제작비를 받는 거다. (중략) 조선닷컴 독자들이 봐도 의미있겠다 싶은 건 조선닷컴에 (대가 없이) 다시 올린다”라고 했다. “조선닷컴 노출이 되니 광고비가 더 높아지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그것(조선닷컴) 노출과 (비용 책정은) 상관이 없다”고 했다.  민간 기업 제품도 기사형 광고에 대한 대가 지불 외의 방식으로 비용을 치렀다. 조선닷컴에 홍보 기사를 낸 한 중소기업 대표는 “저희 돈이 들어간 건 없다”라며 “(수수료가) 다른 데와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제품 광고료는 내지 않지만 조선몰에 입점 상품이 팔릴 때마다 수수료를 낸다는 것이다. 기사형 광고와 연계된 이 수수료가 더비비드 매출 대부분을 차지한다. 더비비드 측은 “조선몰, 메타샵(다음, 네이버 포스트에 실린 콘텐츠와 연결된 쇼핑몰. 판매 상품은 조선몰과 같다) 제품(수수료)이 (매출)대부분”이라고 했다.  기사형 광고는 싣지만, 이와 연계된 다른 용역 대가로 이득을 얻으면 기사형 광고가 아닐까.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을 지낸 경상국립대학교 최진호 교수는 “업체들도 여기(조선닷컴)에 기사가 나가기를 기대하고 입점을 하는 형태”라며 “상당히 우회한 (기사형) 광고의 형태로 보인다”라고 했다. 입점 업체 제품 판매가 늘어날수록 더비비드 수익도 늘어난다.  ‘일주일 리뷰’라는데 업체 대표 “기자 한 번씩 체험” 더비비드 콘텐츠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무수히 많은 상품 중에서 제대로 된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콘텐츠 기반 큐레이션 커머스 더비비드가 직접 비교하고 선별해 추천해 드린다”라고 기사를 소개한다. 객관적으로 선별하고 검증한 취재물이라고 읽힌다. “무수히 많은 상품”은 무엇이고, 얼마나 쓰고,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는 설명이 없다. 유튜버 등은 지켜야 하는 수수료 등의 대가를 받는다는 표기도 없다. ‘[일주일 리뷰]’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에 소개된 업체들을 접촉했다. 유일하게 취재에 응한 한 업체 대표는 “저희 거 다 체험하고 그 담당자 기자분 말고 다른 분들도 체험을 한 번씩 다 했어요”라고 말했다. ‘일주일’이 아닌 “한 번씩 체험”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에는 일주일 동안 사용해보고 썼다고 적혀있다고 하자 “(상품을 보여주고) 다시 가져왔”으며, “(일주일 사용 리뷰는) 고객들이 쓴 거”라고 했다. 재차 ‘일주일 사용’ 여부를 묻자 “그랬(써봤)겠죠”라고 답변을 바꿨다.  리뷰 상당수는 전형적인 기사형 광고 패턴을 보인다. 업체 측이 제공한 사진만 사용하고, 단점을 적은 경우는 거의 없다. 박 대표에게 생각나는 단점이 있느냐고 묻자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라고 말했다. 극히 드물게, 유의 사항 정도를 적어 놓은 게 있다. 동일한 상품 기사를 반복해 올린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심의규정에 따르면, ‘동일한 매체에 연속적⋅중복적으로 게재된 경우’, ‘특정 광고주나 상품에 대한 상업적 광고를 주목적’으로 한 경우 등을 기사형 광고로 본다. 한 예로 골프공 업체 대표 인터뷰를 제목만 바꿔 2021년, 2024년에 게재하고, 이 업체의 특정 상품을 9월과 10월 현재까지 총 세 차례 실었다. 10월 10일 실은 한 통역기 관련 기사는 이 기사 포함 6월부터 4건을 싣고, 기사 해당 업체 대표 인터뷰 1건도 올렸다.  조선일보 “검증은 외부와 협업”,  협업 기관 “조선이 다 검증” 상품 검증도 충실히 이뤄지지 않은 걸로 보인다. 검증 절차와 관련해 더비비드 측은 “중소기업유통센터, 서울경제진흥원 등에서 기업 추천을 받는다”라며 “외부와의 협업으로 그거(검증)를 하고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더비비드와 협력하는 중소기업유통센터 측 이야기는 달랐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조선일보와 ‘중소기업 제품 홍보-판매 지원’ 사업을 한다. 이 사업에 선정된 업체는 조선일보에 홍보 기사를 1회 게재하고, 조선몰 입점을 지원받는다. 센터 측은 “상품기술서를 모아 조선일보 측에 전달한다. 그쪽에서 상품성을 검토한 다음에 선정하는 걸로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더비비드 콘텐츠를 제재할 방법은 없을까. 더비비드는 “무수히 많은 상품 중에서 제대로 된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콘텐츠 기반 큐레이션 커머스 더비비드가 직접 비교하고 선별해 추천해드린다”, “우수 제품을 단독 최저가로 소개한다”라고 할 뿐 광고 등의 표기는 하지 않는다. 추천 상품을 객관적 기준에 따라 고르고 검증했다고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최근 뉴스어디가 조선몰을 접촉하는 등 취재를 본격화하자 이전엔 드물던 “본 코너는 광고성 내용을 담고 있다”는 문장을 추가했다. 유튜버 등과 달리 언론사는 광고 여부를 표기하지 않은 기사를 작성하더라도 사실상 제재가 없다. 기사와 광고를 명확히 분리해야한다는 편집 기준을 명시한 신문법이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됐다. 자율 심의를 맡은 신문윤리위원회는 위원회 운영 규정에 따라  1천만 원의 과징금 부과 또는 윤리위 회원 자격 정지 또는 제명을 할 수 있지만, 단 한번도 이 조항을 적용한 적이 없다. 또 다른 자율 기구인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는 기사형 광고 위반 내역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왔지만, 광고주와 언론사 항의를 받고 비공개로 바꿨다. 이를 지적한 뉴스어디 보도 이후 다시 공개로 바꿨다. 유튜버⋅블로거는 광고 표기 위치도 제한, 언론사에는 사실상 제약 전무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나마 언론사를 제재할 여지가 있다. 공정위는 유튜버의 이른바 ‘뒷광고’ 논란으로 추천인도 제재할 수 있도록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개정했다. 소비자에게 광고 표기를 하지 않고 홍보 글 등을 게시할 경우 추천인에게도 최대 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공정위 소비자정책과는 더비비드 사례에 대해 “계약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면서도 “지침이 제재하는 위반 사례와 비슷하다는 건 알겠다. (중략) 블로거, 사업자 등을 제재한 적이 있다”라며 더비비드도 제재 대상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다. 있으나 마나 신문법⋅자율규제, “공정위, 미국 연방거래위 참고해 제재해야”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은 더비비드 사례에 대해 “국내 1등 신문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매체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게 놀랍다”라며 이를 제재하기 위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의 네이티브 광고 규제 정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기만적 광고(기사형 광고)를 하는 정부 기관에 5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고, 공정위가 기사형 광고를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을 준비 중이다.  뉴욕타임스, 상품 추천하면서도 “강력한 저널리즘 강조” 독자에게 신뢰받는 상품 기사의 조건은 무엇일까. 더비비드가 설립 당시 모델로 삼았다는 뉴욕타임즈의 ‘와이어커터(Wirecutter)’와 비교하면 몇 가지 조건을 찾을 수 있다. 와이어커터는 2016년 뉴욕타임즈가 인수한 상품 추천 전문 매체다. 뉴욕타임스 CEO 마크 톰슨은 이 매체 인수 당시 와이어커터에 대해 “독자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인 제품을 만드는 데 대한 우리의 헌신과 일치”한다며, “연구 중심의 강력한 제품 추천을 하는 저널리스트의 강력한 편집 기반 위에 구축”됐다고 평가했다. 톰슨은 이를 ‘서비스 저널리즘’이라고 했는데, 소비자에게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저널리즘’을 강조했다. 와이어커터는 ‘기사형 광고’와 정보성 상품 기사의 차이를 보여준다. 뉴욕타임즈의 한 카테고리인 와이어커터를 누르면 나오는 메인 페이지 상단에 “우리가 추천하는 모든 상품은 독립적으로 검증한 것입니다. 우리가 제공한 링크로 구매할 경우, 우리는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공지한다. ‘더 자세히’를 누르면 와이어커터가 상품을 독립적으로 추천하면서도, 어떻게 돈을 버는지, 제품을 검증할 때 사용하는 기준과 그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실제 증거 자료를 통해 독자에게 설명한다. 또 앞서 김 의원이 언급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가이드라인을 준수한다고도 명시한다. “여러 상품 비교하고 단점까지 명시해야 기사 가치” 한 예로 와이어커터는 겨울 부츠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기자가 작성한 비교표 원본을 공개했다. ‘눈이 올 때 착화감’, ‘얼음 위에서 걸을 때 용이성’ 등 총 8가지 기준으로, 14가지 모델을 비교했다. 복수의 상품을 복수의 기준으로 검증했다. 어떻게 테스트했고, 어떻게 상품을 골랐는지도 적혀있다. 다른 제품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를 섭외하는 경우도 많은데, 낚싯대의 경우 “걸을 수 있을 때부터 낚시를 해온 해안 경비대 선장” 등을 섭외하고, ‘왜 당신이 나를 믿어야 하는가’에서 그의 전문성을 기술했다. 가격 정보도 제시하는데, 세일가와 비 세일가를 모두 고려해 12개월 가격 기록을 활용한다고 안내한다. 신뢰할 만한 상품 기사 요건에 대해 전문가들도 복수 상품을 비교하고 장단점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상대 최진호 교수는 “이 제품은 어떤 부분이 좋고, 이 제품은 어떤 게 좋지 않다는 걸 비교할 때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된다”라면서, 더비비드의 경우 대개 “하나의 제품을 소개하는 형태로 보인다”라고 했다. 취재: 박채린(rin@newswhere.org) * 이 기사는 뉴스어디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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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만 보면 화나는 사람 모여라!
 📰 여러분은 하루에 몇 가지 뉴스를 접하나요? 신문과 방송 위주로 뉴스가 생산되던 시절과 달리 포털사이트, SNS, 유튜브, 뉴스레터까지… 오늘날 뉴스를 접하는 경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요. 😵‍💫 쏟아지는 뉴스에 피로감을 느낄 법도 하죠.  😨 그런가하면,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는 언론의 태도에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예를 들면, 영부인의 명품백 수수 의혹은 '조그마한 파우치'로 포장한다던가요. 언론 또한 정파성, 편파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에 시민의 실망이 커지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공정하고, 있는 그대로 보도할 '책임'이 있는 언론. 하지만 이런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볼 때, 우리는 왜곡되거나 편파적인 뉴스를 접하게 되죠. 나에게 필요한 뉴스, 내가 원하는 공정한 뉴스를 판별하는 능력이 어느때보다 중요합니다. 흔히 이런 능력을 "미디어리터러시"라고 부르곤 합니다. 🧐 미디어 리터러시란? 다양한 매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며,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에 접근하여 메시지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어떠한 기술의 습득이 아니며, 미디어 산업 혹은 일반적 미디어 내용의 패턴, 매체 효과와 관련된 지식구조의 습득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지만 미디어리터러시 언제,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미디어 다변화 시대, 시민에게 필요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기 위한 방법, 댓글로 함께 고민해주세요 🍀  🔻이런 행사도 있어요! ⭐️ 참여신청 👉 https://forms.gle/V6EZ9LQXcp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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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무지개도 비가 그쳐야 뜬다🌈
폴라리스 항해도 vol. 120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은 캐릭터 이야기로 레터를 열어볼게요. 혹시 ‘감자도리’를 기억하시나요? "도리도리도리도리 감자도리 / 빨간 망토 작은 눈에 감자도리 / 고구마가 되고 싶어 꿈을 꾼다 / 모험을 떠난다!" 멜로디를 흥얼거리셨다면 반갑습니다. 저와 동년배이실 것 같네요. 감자도리는 고구마가 되고 싶은 감자예요. 자라면서 자신이 주변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지죠. 가족, 친구, 선생님, 심지어 마트 종업원까지 모두 고구마인 세상에서 자신만 감자라는 사실은 그를 외롭게 합니다. 그래서 감자도리는 고구마가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나요.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갈망,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비유적으로 표현해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야기이죠.  한국에도 정체성을 이유로 소외를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퀴어는 한국 주류 사회로부터 마치 감자도리처럼 여겨져요. 이성애, 성별 일치감이 당연한 세상에서 성적 지향, 성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립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퀴어의 분투가 점차 사회적 목소리로 확산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최근 한국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 퀴어 의제를 다뤄보겠습니다. <동성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판결>,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교실>, <2024년 미디어 콘텐츠 속 퀴어>를 순서대로 따라갑니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적 합의’라는 말로 퀴어를 미루는 정치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 볼게요. 감자로 태어난 사람이 고구마가 되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면서요. 질문으로 꽉 찬 레터를 보낼 때면 독자님 의견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댓글과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中 - #1 법정에서 삶과 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퀴어 끝이 보이지 않는 폭염을 뚫고 비가 온 7월 어느 날, “사랑이 또 이겼습니다.” 동성부부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인정한 첫 대법원판결이었습니다. 2019년, 동성부부이자 실질적 혼인 관계인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는 “인정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용민 씨는 소성욱 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했습니다. 공단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 배우자에 대해서도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얼마 지나고 등록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담당 건강보험공단 직원은 ‘착오 처리’였다고 설명하며 소성욱 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시켰습니다.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착오’가 만든 8개월간의 피부양자 자격은 없는 셈이 됐습니다. 담당 직원은 소성욱 씨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였음을 전제로 8개월분의 건강보험료 등 합계 115,560원을 납입할 것을 고지했습니다. 소성욱 씨는 위 처분에 2021년 2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소 씨의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 결합 상대방 집단은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결과는 원고 승소였습니다. 그러나 공단의 상고로 판단은 다시 대법원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올해 7월 18일, 대법원장은 “동성 동반자를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제도: 보험가입자가 납부하는 보험료와 국고 지원을 재원으로 하여, 국민에게 발생하는 질병ᆞ부상 등 사회적 위험을 보험의 방식으로 대처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보험제도로서 국가가 헌법상 국민의 보건에 관한 보호의무를 실현하기 위하여 마련한 사회보장의 일환이다. 이는 국가공동체가 구성원인 국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에 해당한다. *피부양자제도: 건강보험제도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서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이 경제적 능력이 없어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더라도 직장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에 기반하여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이번 대법원판결이 중요한 이유는 명시적으로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실상 혼인 관계의 집단과 동성 동반자 집단을 달리 취급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즉, 이번 판결은 공단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취급한 것을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보았고, 이는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 했습니다. 사실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되어 왔는데요. 이번 판결은 동성 동반자의 사실혼을 인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선례를 남겼습니다. 아래는 판결문 발췌입니다. “동성 동반자를 직장가입자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로, 그가 지역가입자로서 입게 되는 보험료 납부로 인한 경제적인 불이익을 차치하고서라도,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전통적인 가족법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에서조차도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  박한희 공익변호사는 위 판결문의 구절이 문제의 본질을 짚어낸다고 설명합니다. 즉, 대법원은 피부양자 자격 불인정이 경제적 손실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침해’라고 판결했기 때문이죠. 애당초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소성욱 씨가 월 소액을 부담하면 지역가입자로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굳이 소송함으로써 얻을 이득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존재를 부정당했던 동성부부에게 실질적, 금전적 손실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법적 잣대로 자신들의 삶이 지워지고 재단당하는 경험, 즉 ‘존재가치의 침해’가 이들 부부에게 더 큰 손실이었습니다. 다만, 이번 대법원의 결정에 기뻐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판결의 보충의견은 법원이 “미래의 일을 앞당겨 현재의 법으로 선언할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확실히 말합니다. 입법부의 역할이 도드라지는 대목입니다. 대법관들은 “후속 판결과 입법을 통하여 동성 동반자들의 법적 지위에 대하여 더욱 포괄적이고 명확한 법리나 제도가 축적되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지는 글들은 정치권과 사회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글 보러 가기 #2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라고요? 퀴어 문제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급선무라 했던가요? 누군가에겐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퀴어 청소년의 경우 더욱 위태로운 생사의 비탈길에 서 있습니다. 청소년 퀴어를 가장 괴롭게 하는 건, 미디어에서 흔히 묘사하듯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퀴어를 부정하는 학교와 가정의 반응 때문이죠.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걱정한 이유로 '가족, 친구의 부정적 반응'을 꼽은 응답자 비율이 평균 80%를 차지하고 있어요. 아래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는 대구MBC의 ‘들어보니’는 기댈 곳 없는 청소년 퀴어의 현실을 낱낱이 드러냈습니다. 우선 성 정체성에 관련된 고민을 교사에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환경입니다. 교사를 대상으로 한 퀴어 관련 교육이 부족하다 보니, 퀴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교사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 상담 기관도 좋은 선택지가 못 됩니다. 실제로 상담 기관을 이용해 본 청소년 퀴어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나 보호자에게 연락해서 다시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올해 4월 폐지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학교의 퀴어들을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했으니까요. 학생인권조례마저 사라진 학교에서 청소년 퀴어의 존재는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학생인권조례는 특정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장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주류적 경향과 다른 성적지향을 가진 개인, 그리고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들 또한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의 동등한 주체라는 점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도록 교육하려는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맨 처음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한 지역에서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의 숫자가 급증했다는 자료가 있지도 않습니다. - 학생인권조례, 오해 넘어 이해로, 국가인권위원회(2023) 존재의 부정은 제도권이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 밖으로 내몰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청소년 퀴어는 자살 위험군이지만, 이들만을 위한 국가의 자살 예방 대책은 전무합니다. 성장한 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 7월 도입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는 성소수자 괴롭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실태조사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실시한 실태 조사가 전무한 탓에 퀴어가 얼마나 있는지, 퀴어가 겪는 차별은 무엇이며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논의를 시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퀴어가 없는 존재가 되는 건 현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가상의 세상을 그리는 미디어에서도 퀴어의 존재는 부정당하곤 합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 #3 원작 속 퀴어 캐릭터, 드라마에선 사라졌다고? 대중문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 했던가요.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정년이>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퀴어가 지워지거나, 납작하게 재현됐습니다. 두 작품 원작은 모두 작중 캐릭터의 퀴어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워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죠. 웹툰 <정년이>는 여성 국극단 속 여성들의 경쟁, 연대, 사랑을 다뤘는데요.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주인공 정년이와 연인 관계였던 캐릭터 ‘부용’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속 인물 ‘흥수’는 게이지만, 영화 예고편에서는 마치 여자 주인공의 연인처럼 비쳤고요. 이처럼 퀴어 서사는 상업성과 맞물리며 종종 삭제되거나 감춰지곤 합니다. ‘도둑맞은 퀴어’라는 칼럼에서 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퀴어베이팅’이라는 용어만큼이나 퀴어 서사를 이성애 서사, 혹은 퀴어가 등장하는지 알 수 없는 서사로 둔갑시키는 행태를 지적할 만한 ‘헤테로(heterosexual, 이성애)베이팅’ 같은 용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이죠. 먼저 ‘퀴어베이팅(Queer-baiting)’이라는 용어에서 ‘베이팅(baiting)’은 미끼를 의미합니다. 본편에 퀴어 서사가 등장할 것처럼 편집한 예고편은 퀴어베이팅의 대표적인 예시예요. 퀴어 팬덤의 구매력을 노리고 퀴어 친화적으로 편집한 예고편을 공개한 다음, 정작 본편에서는 예고편과 다른 서사를 보여주는 미디어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퀴어베이팅’이라는 용어가 생겼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소설의 폭발적 증가, 퀴어 문학 팬을 만든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영화로 각색되면서 인물의 정체성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왜 캐릭터의 게이 정체성이 예고편에는 나올 수 없었는지 질문이 남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퀴어 서사는 단순히 삭제되는 것을 넘어 노골적인 혐오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곧 공개될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교회 단체로부터 ‘동성애 미화를 중단하라’는 반대에 부딪혔죠. 이에 박상영 작가는 “혐오의 민낯은 겪어도 겪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한편 퀴어 콘텐츠가 양적으로 많아졌고, 법적 권리를 위한 투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지는 건 그만큼 퀴어 이슈가 중요한 사회적 갈등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퀴어 의제의 ‘속도’와 ‘방향’을 고민하며 변화를 만들어 나갈 때가 아닐까요? 대중문화에서는 퀴어가 그저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일상임을 인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논문이 있습니다. <한국 성소수자들의 넷플릭스 퀴어 콘텐츠 수용에 관한 탐색적 연구>입니다. 하단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논물을 정리한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37명의 성소수자에게 앞으로 보고 싶은 콘텐츠를 물었더니, 많은 이들이 ‘한국판 논스톱’ 같은 시트콤을 꼽았습니다. 그동안 퀴어는 주로 특수한 사랑이나 비일상적인 존재로만 재현되어 왔습니다. 가족들과 사소한 일로 다투고, 서로의 끔찍하고 귀여운 면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시트콤 속 인물들의 일상성은 지금껏 주류 미디어가 담아내지 않는 것이었죠.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퀴어들도 이미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하고, 밥을 먹으며, 평범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 보러 가기 #4 퀴어에게 뒤로 가라는 정치, 이제는 뒤안길로 세상에서 가장 퀴어 프렌들리한 것은? 정답, 번호표 기계. 밀릴 일 없이 순번 정확하니까. 퀴어 인권에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란 말이 지겹도록 따라붙습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대표의 입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 더 급선무’라고 변주되기도 했습니다. 정치는 퀴어가 궁극적으로 차별받는 무대입니다. 번번이 다수 집단에 밀려 동등한 권리를 얻을 기회가 지연되곤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18년째 국회를 체류 중인 차별금지법이죠. 주된 원인은 종교계의 영향력이 꼽힙니다. 특히 많은 인구와 조직적인 행동력으로 한국 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독교는 대대적으로 성소수자 차별을 주창합니다. 정치인들이 성소수자에 연대하다 이들의 항의를 받거나, 주요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 돌연 입장을 철회하는 사건은 비일비재합니다. 명확히 퀴어의 편에 서는 정치인이 부재하다 보니, 극우·보수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도 퀴어들은 배제됩니다. 퀴어 의제보다 우선해야 할 의제가 있다며 퀴어혐오 발언을 한 후보자나 정당에 눈물을 머금고 투표하도록 압박합니다. 선거 패배를 대의보다 개인을 우선한 퀴어들의 이기심으로 탓하는 경우들도 있죠. 퀴어를 차별하는 정치, 그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정치철학자 박이대승 씨는 퀴어 차별의 원인을 종교계의 혐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절대다수의 무관심’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신이 감각하지 못하는 타인의 구조적 차별과 폭력에 무관심하고, 구조적 개선을 외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는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이기도 합니다. 시민을 길러내는 가장 기초 현장인 교육계부터 돌아봅시다. 최근 서울을 포함해 여러 지자체 학생인권조례가 잘못된 성 인식을 주입한다는 이유로 폐지되었습니다. 교육청에서 페미니즘, 성교육 등 다양성 도서를 유해 도서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조전혁 보수 진영 교육감 후보는 ‘페미니즘과 동성애 교육을 폐지할 것’이며, 교원의 사상을 검열할 것임을 공약으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종교계, 정치인, 시민 모두가 퀴어에게 새치기를 했습니다. 결여된 민주 의식으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뒤로했습니다. 그 결과는 성에 대한 그릇된 교육, 규정, 자유 탄압의 메시지가 사회를 잠식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비단 성소수자에만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 여성, 노동자 등 다른 소수자들의 운동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연대 대신 혐오와 소수의견 취급이 만연합니다. 퀴어 문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차별에 동조했던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보고, 평등을 위한 행보에 함께할 때입니다. 🧭글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이번 레터를 준비하며 동성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판결문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을 공유합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인 건강보험제도의 보호에서조차 공식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사회와 국가의 공인된 보호를 받을 존재가치를 부정 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퀴어는 “‘숨겨진 나’와 ‘드러내는 나’가 따로 존재하는 분열의 상태에서 불안한 삶을 강요당할 수 있다.” 저에게도 ‘숨겨진 나’와 ‘드러내는 나’ 따로 존재하는 순간들이 있는데요. 이 ‘간극’을 떠올리니 1년 중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날은 과연 몇 일이나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손에 꼽는 ‘나다울 수 있는 날’을 묘사하면 이런 순간들이 아닐까요. 을지로 일대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행진하던 날, 울면서 춤추며 애도하던 날, 친구와 스탠딩코미디쇼를 관람하며 웃은 날, 바바라 해머 감독의 영화 속 관객의 모습에서 나를 본 날,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바다를 본 날.  위처럼 '예외적인 시간'과 사회와 불화하는 일상을 살다보면 모순적인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행정, 제도적 인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가령 판결문의 내용처럼 '숨겨진 나'가 제도적인 현실때문에 미래의 배우자를 부양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래전부터 국가는 돌봄과 부양의 책임을 가족이라는 경제공동체에 맡겨왔고 '숨겨진 나'는 그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는데, '드러내는 나'로 살면 최소 나라는 존재와 내가 맺는 관계를 국가에게 소명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렇게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 분노하길 반복하면, 퀴어를 비롯한 ‘국회 정치’에서 밀려난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최근엔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매주 화요일 국회 앞에서 사랑하는 자식이 “평등히 살길” 바라며 권리중심 지원체계를 요구하는 시위를 자주 봅니다.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돌봄과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나' 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자고, 쉬고, 친밀함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일상은 삶의 가장 필수적인 부분일테지요. 돌봄/부양 체계가 더 다양한 가족과 관계의 형태를 포함하길, 그리고 돌봄의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것 뿐만 아니라, 모두가 사회 제도적 돌봄을 차별없이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레터를 마칩니다.  2024.10.21 에디터 산호🐠 드림 만든 사람들: 해안🌊, 모래🏖️, 푸릇🌿, 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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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교수 엄마와 가짜 고대생]
서울 서초동 회색빛 빌딩 숲. 그사이 빛바랜 외벽의 아파트 단지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재건축”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는 아파트 입구를 지나,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일터에 가 있을 평일 낮. 집에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의 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예상과 다르게 집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여성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누구세요?”“따님 이해린(가명) 씨가 사는 곳 맞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여성의 목소리는 조금 더 커졌다. “누구세요!?”“(이전에) 전화로 연락드렸던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김보경 기자입니다.” 기자라고 소개하자, 이번엔 여성의 대답이 달라졌다. “아닙니다!”“이수희(가명) 선생님 댁 아닌가요? 이수희 선생님이시죠? 잠깐만 대화 나눌 수 있을까요?”“아닙니다!” 애타게 불렀지만, 여성의 대답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17일 오후의 일이다. 기자가 집까지 찾아가 만나려 한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만든 ‘가짜 스펙’으로 딸 이해린(가명)을 의사로 만들려 한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이수희(가명). 교수 엄마의 엇나간 모정(?) 이야기는 약 10년 전부터 시작한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2013년 7월 ‘제4회 국제청소년학술대회(ICY)’를 열었다. 9개국 청소년 500여 명이 참가하는 큰 규모의 대회였다. 당시 해린은 양재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해린은 고등학생 안서윤(가명)과 함께 팀을 꾸려 학술대회에 참여했다. 내로라하는 전국 각지의 우수 학생들이 모여도 해린은 기죽을 필요가 없었다.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결과물이 알아서 나오는 마법. 엄마 이수희 교수가 해린의 뒤를 ‘든든히’ 지켰다. 이 교수는 노골적으로 지시했다. 본인이 지도하던 병태생리학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에게 ‘스트레스 비교 동물실험’ 최종보고서와 대회 발표용 PPT 자료를 만들라고. 사실상 대필이었다. 막상 해린과 서윤이 연구실에 방문한 횟수는 ‘단 한 번’에 불과했다. “이수희 교수의 지시에 따라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PPT 자료를 만들었다. 당시 또 다른 대학원생 B가 위 실험을 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원생들이 진행한 위 실험으로 이해린은 삼성 휴먼테크 논문대상(2012년 12월)에도 출전했었다.” (1심 판결문 중 대학원생 A 진술) 이 교수가 직접 나선 적도 있다. 딸 대신 연구일지를 작성했다. ‘친구’ 서윤의 엄마도 딸을 대신해 연구일지를 만드는 데 합심했다. 해린과 서윤은 직접 쓰지도 않은 최종보고서와 연구일지를 한국교육개발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았다. 대필 보고서를 제출한 고등학생들이 ‘우수청소년학자’로 불리다니. 고등학생 해린은 끝까지 대범했다. 대회 심사위원들도, 학교도 감쪽같이 속였다. 해린의 동아리를 담당하던 양재고 교사 C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해린이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스트레스와 호르몬 관련 실험을 한다고 찾아왔고, 해당 실험과 관련하여 그 어떠한 활동도 양재고에서는 전혀 진행된 바 없으며, 나중에 이해린이 최종 보고서를 갖고 와서 수정 의견 정도 준 적이 있었을 뿐이고, 이해린이 국제청소년학술대회에 참여하는지도 몰랐고, 해당 대회에 제출된 ‘연구일지’ 표지에 지도교사 C라고 수기로 기재되어 있으나 자신의 글씨도 아니다.” (양재고 영재과학동아리 담당교사 C, 수사기관 진술) ‘교수 엄마’와 그의 제자들은 대필 보고서와 연구일지를 합작했다. 심지어 학교 담당교사 서명까지 조작한 상황. ‘비장의 무기’는 대학 입시 때도 빛을 발했다. 이 교수는 ‘우수청소년학자상’ 내역을 포함해 해린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작성했다. 그러곤 또 다시 대학원생 제자들을 소환했다. 이들에게 해린의 자기소개서를 수정·보완하게 지시했다. 이번에도 통했다. 해린은 2014학년도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과학인재특별전형에 최종 합격했다. 당시 고려대 안암캠퍼스 수시모집 전체 경쟁률은 22:1(정원내 기준)이었다. 그러나 고려대 입학은 이 교수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그의 더 큰 목표는 ‘의사 만들기’. 해린이 고려대에 입학한 뒤에도, 제자들을 향한 이 교수의 ‘대필’ 지시는 이어졌다. 오히려 더 과감해졌다. 대학원생 제자들에게, 딸 대신 SCI(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급 연구논문을 쓰게 했다. 자기소개서도 마찬가지였다. 효과는 확실했다. 해린은 2018학년도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치전원)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하지만 해린의 ‘대필 인생’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한 대학원생의 제보로 교육부는 특별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2019년 5월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이 교수를 재판에 넘겼다. 딸 해린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1심 재판 결과는 기소로부터 약 5년 만에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9단독(판사 김택형)는 올해 7월 18일 이 교수에게 징역 3년 6개월, 딸 이해린에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이 교수는 법정구속은 피했다. “피고인들의 입시비리 관련 범행은 해당 교육기관이 원하는 인재를 공정한 절차에 의하여 선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기관의 업무를 방해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허탈감과 실망을 야기하고, 우리 사회가 입시 관련 시스템에 대하여 갖고 있었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게 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그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 (1심 판결 양형이유 중) 2019년 5월 이 교수는 구속기소됐다. 교육부는 그해 3월 이미 성균관대에 이 교수 중징계(파면)를 요구했고, 서울대 치전원도 그해 8월 딸 해린에 대해 입학취소를 결정했다. 이 교수가 구속기소된 때를 전후로 몇 달 사이, 모녀와 관련된 세 대학 중 두 곳은 발 빠르게 그들에 대한 조치를 단행했다. 그렇다면 남은 한 곳은 어떨까? 바로 해린이 ‘대필 보고서’를 활용한 가짜 스펙으로 입학에 성공한, 고려대 말이다. 셜록은 지난 8월 교육부 인재선발제도과에 질의했다. 이해린의 고려대 입학허가가 취소됐는지 물었다. “고등교육법 제34조의6에 따라 대학의 장은 해당 학교에 입학을 허가한 학생이 입학전형에 위조 또는 변조 등 거짓 자료를 제출하거나 다른 사람을 대리 응시하게 하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정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그 입학의 허가를 취소하여야 합니다. 이에 고려대학교 학부생 입학허가 취소 절차 및 특정 학생의 입학허가 취소 여부는 해당 학교에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원칙적으로 부정행위가 있을 경우 대학교에서 부정입학자의 입학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는 답변. 하지만 교육부가 그 결과를 파악하고 있지는 못했다. 셜록은 이번엔 고려대에 문의했다. ▲학부생 이해린을 대상으로 한 고려대학교 입학취소처리심의위원회 구성 여부와 ▲이해린 입학허가 취소 여부에 대해 물었다. 고려대의 답변은 아래와 같다. “해당자에 대한 입학허가 취소/미취소는 심의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안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근거로 본교 학칙과 규정에 의거하여 처리할 예정입니다.” 고려대는 아직 ‘부정입학자’ 이해린의 입학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다른 대학들이 이들 모녀에 대한 조치를 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1심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도. 셜록은 지난달 10일 이수희 전 교수의 반론을 듣고자 전화를 걸었다. 이 전 교수는 “기자”라는 소개에 “지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달 18일 현재까지 11번에 걸쳐 전화를 걸었지만, 이 전 교수는 계속 받지 않았다. 기자는 다른 번호로도 이 전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 15일 해린의 고려대 입학취소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입장을 문자메시지로 물었다. 하지만 이 전 교수는 전화와 문자메시지 모두 응답하지 않고 있다. 딸 이해린 측에도 접촉을 시도했다. 지난 16일 항소심 담당 법률대리인을 통해 인터뷰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해린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도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기사 서두에 이야기한 대로, 모녀의 주소지로 찾아갔을 때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장본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특혜입학 문제로 이화여대 체육학과 입학이 취소됐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딸 조민도 입시 비리로 고려대와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취소됐다. 셜록이 지난 2022년 ‘유나와 예지 이야기’로 보도한 미성년 부당 저자 최지희(가명)도 고려대 입학이 취소됐다. 하지만 교수 엄마의 부당한 도움으로 고려대에 입학한 해린은 예외다. 그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엄연한 ‘고려대 졸업생’이다. 성실히 노력하며 공정하게 경쟁해온 모든 사람들을 조롱하고, 온 세상을 속여서 손에 넣은 ‘가짜 고대생’ 타이틀. ‘자유’, ‘정의’, ‘진리’를 표방한다는 고려대는 언제까지 그의 ‘불의한’ 인생을 두고 볼 건가. 한편, 해린과 함께 대필 보고서로 ‘우수청소년학자상’을 수상한 고등학생 안서윤은 어떻게 됐을까.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준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시정) 도움을 받았다. 안서윤은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다만 그는 정시전형으로 입학해, 문제의 수상 내역을 입학자료로 활용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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