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들어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기후위기 등의 초국적 위협 요인이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자원의 수입 비중이 높고 수출 중심의 성장을 추구해온 한국 경제 역시 국제적인 경제 위기에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 들어 외환보유액이 -310억 달러가 되었다는 그래프가 퍼지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그래프인데요.
위 이미지는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여기 등에 퍼지며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는데요. “역대 정부 외환보유액 변화”라는 제목을 단 채 역대 정부의 외환보유액을 그래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외환보유액이 -310억 달러를 기록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해당 그래프 속 정보가 사실인지 시민팩트체커 그룹 K.F.C.에서 검증해봤습니다.
국가의 비상금 역할을 하는 외환보유액
먼저 외환보유액의 의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한국은행에서는 외환보유액을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국제수지 불균형을 보전하거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보유하고 있는 대외 지급준비자산’이라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국가가 관리하는 외국 돈’인데요.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화나 엔화 등의 외화 현금, 국채나 회사채 등의 채권, 해외 기업의 주식 등이 모두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됩니다.
외환보유액은 국가의 비상금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급격한 환율 변동이 발생할 때 외환보유액을 사용하여 환율을 안정화할 수 있고, 외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적자에 대응하는 데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충분한 외환보유액은 곧 그 국가의 충분한 지급 능력을 의미하므로 국가 신뢰도를 높여주고, 갑작스러운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외환보유액을 사용하여 대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면 국가적인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대표 사례가 한국이 경험했던 1997년 외환위기인데요.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갚아야 할 해외 부채에 크게 못 미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며 발생한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위기로 국민 대다수가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당시(1997년 12월)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9.4억 달러까지 떨어졌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IMF 위기 탈출을 발표한 2000년 12월 외환보유액이 약 961억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외환보유액은 약 4,183억 달러로 큰 차이
만약 그래프 속 내용대로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310억 달러라면 1997년 외환위기 당시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인 건데요. 정말로 그럴까요? 한국의 외환보유액 관련 통계는 한국은행이 운영하는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에서 확인한 1998년 2월부터 2023년 8월까지의 외환보유액 추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그래프는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있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증가하는 우상향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커뮤니티에 퍼진 검증 대상 이미지에서는 역대 정부별 외환보유액을 표기해놓았는데요. 검증 대상 이미지 상의 외환보유액과 실제 각 정부 말기의 외환보유액을 표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실제 외환보유액과 검증 대상 이미지 속 외환보유액의 차이가 무척 크게 나타납니다. 특히 검증 대상 이미지에서는 음수로 나타났던 윤석열 정부 시기의 실제 외환보유액은 4,183.01억 달러로 무려 4,493억 달러가 차이납니다. 다른 정부의 값도 매우 큰 차이가 나타나 검증 대상 이미지 상 수치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이미지 속 값의 정체는 외환보유액 ‘변화’액
검증 대상 이미지 상의 값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해당 이미지에는 ‘최배근 TV’가 출처로 표기되어 있는데요.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더불어시민당의 전 공동대표였던 최배근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최배근TV”의 이 영상(1:21:16 경)에서 해당 값들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해당 값들의 정체는 각 정부별 외환보유액이 아니라 정부별 외환보유액 ‘변화’액이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최배근TV’ 영상 갈무리)
영상 속에 나오는 값들이 실제로 변화액이 맞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확인 과정에서 영상 속 자료의 사소한 오류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김대중 정부의 경우 영상 속 자료에선 임기 종료 시점이 2002년으로 표기되었으나 실제론 2003년이 맞았습니다. 이 기간으로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자료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외환보유액 변화액은 동일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650.31억 달러, 박근혜 정부는 479.07억 달러로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의 변화액이 통계와 다른 이유는 허무하게도 ‘오타’에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재임 기간은 2008년 3월부터 2013년 2월까지, 박근혜 정부의 재임 시기는 2013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인데요. 영상 속에서는 각각을 2008년 3월부터 2012년 2월까지, 2012년 3월부터 2016년 2월까지로 오기를 하고, 해당 오타대로 계산하여 값을 적어놨습니다.
실제로 2008년 2월과 2012년 2월의 외환보유액 차이는 534.39억 달러로 영상 속 이명박 정부 시기 외환보유액 변화액 값과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또 임기 시작 시기는 영상 속 오타(2012년 3월)대로, 임기 종료 시기는 실제 종료 시기(2017년 2월)로 설정하여 계산했는데요. 이 역시 위와 같은 방법으로 계산해보면 581.05억 달러로, 영상 속 값과 일치해집니다. 검증 대상 이미지는 통계적 수치의 곡해와 출처 영상의 오타 및 계산 실수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허위정보였던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외환보유액이 -310억 달러가 됐다? … 사실이 아님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되었던 외환보유액 그래프 이미지는 외환보유액이 아니라 외환보유액 ‘변화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래프였습니다. 실제 외환보유액은 몇 천 억 달러에 달하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에 ‘윤석열 정부 들어 외환보유액이 -310억 달러가 됐다?’는 ‘사실이 아님’으로 판정합니다.
이번 검증 대상 이미지에는 그래프에 사용된 통계의 출처가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거가 되는 통계값의 의미를 왜곡함에 따라 허위정보가 되었고, 이는 다양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심지어 원본 통계마저 오타와 그에 따른 계산 실수가 포함되어 있어 결함이 있는 통계였습니다.
이처럼 출처가 표기되어 있어도, 명확한 숫자로 표현된 통계가 활용되었어도 허위정보일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래프와 통계 자료들도 항상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결과물을 비롯해 더 많은 검증 결과물은 K.F.C.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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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2원본 통계의 오타, 그리고 그걸 잘못 가공해 잘못된 정보가 커뮤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고.. 정말 팩트체크가 필요한 사안이었네요!
이 그래프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게 흥미롭네요! 외환보유액이 -310억 달러라면 큰 문제였겠지만, 실제로는 수천억 달러 규모라는 걸 알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통계나 그래프를 볼 때는 출처와 맥락을 제대로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도 얻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