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이라 불러야겠습니다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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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고, 퍼트리고, 해결합니다'

이제 그 남자를 새 별명으로 불러야겠습니다. 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으로. 김상욱과 그 일당 김재민 전 무궁화신탁 대리는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다섯 명을 모두 고소했습니다.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의 발단이 된 김상욱 일당의 불법대출 사건. 약 2000개의 녹음파일과 문건들을 입수한 셜록은 지난 4월부터 20편의 기사로 사건의 전말을 밝혔습니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김상욱 일당은 ‘명의만 빌려주면 수천만 원을 주겠다’, ‘수백만 원씩 월세 수익을 보장하겠다’ 등 감언이설로 속여, 그들 명의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수억 원의 대출을 내게 했습니다. 새마을금고 내부에선 전종남 당시 상무가 대출 실행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옛 청구동새마을금고. 지난해 뱅크런 사태 이후 문을 닫고 이웃 금고와 통폐합됐다. ⓒ셜록

당연히(?) 그 돈은 명의자들의 통장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대출금은 김상욱 일당과 브로커들이 모두 뽑아가고, 명의자들에게는 한번 만져보지도 못한 수억 원의 빚만 남았습니다.

누가 피해자입니까? 저도 피해자입니다. 기자님, 누가 제 전화번호 알려줬습니까? 저는 1500억 원 불법 대출한 적도 없고요. 정확하게 어떤 라인을 타고 (연락을 해)왔는가 얘기를 해주세요.”

‘사채왕’ 김상욱은 반론을 요구하는 셜록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도 ‘피해자’라고. 전화를 끊어버린 그에게 재차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허위주장과 모함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하며, 만약 그들이 ‘아지트’처럼 쓰던 서울 신설동 카페 등으로 취재진이 찾아온다면 “건조물 침입 등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내가 피해자다’라는 말.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말입니다. 진짜 피해자들은 오히려 가족들이 알까봐, 자신도 공범으로 처벌받을까봐 전전긍긍 속앓이만 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수억 원의 빚더미만 남기고 인생을 박살내버린 주범은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라고 합니다.

깍듯한 의전을 받으며, 그들이 ‘아지트’처럼 사용하는 카페로 들어서는 사채왕 김상욱 ‘회장’ ⓒ셜록 ⓒ셜록

김상욱이 공범 김재민과 한 통화에서 그토록 칭찬하던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는, 지난 4월 셜록의 보도가 시작되자 SNS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거액의 돈을 요구하던 공갈범의 거짓 진술만을 근거로 한 허위보도로, 형사고소, 민사소송 제기할 예정이고, 보도 내용의 사실여부에 관하여 상대방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고 사실인 양 퍼뜨리는 자격 없는 언론매체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는 정말 김상욱과 김재민을 대리해 셜록을 고소했습니다. 셜록 기자 다섯 명의 이름을 모두 고소장에 적어서. 셜록 기자들이 김상욱 일당에게 ▲개인정보보호법위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명예훼손 ▲모욕의 죄를 저질렀다고 줄줄이 늘어놨습니다.

새마을금고의 조사와,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피해자들의 공통된 진술과, 무엇보다 범죄를 자백(?)한 김상욱 본인의 녹음파일 속 목소리가 모두 같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오직 김상욱만은 자신이 피해자이고, 아무 죄가 없고,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나는 무죄다” 사채왕 측, 법정서 20분간 억울함 호소>)

고소장을 접수했으니, 이제 경찰이 셜록 기자들을 괴롭혀줄 거라 기대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권력을 이용한 사적 복수라. 영리하다고 할까요, 교활하다고 할까요.

김상욱이 고소장에 적어놓은 ‘명예훼손’이란 네 글자를 보니 참 기가 찹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인생을 훼손하고, 시민의 상식을 훼손하고, 사회의 정의를 훼손한 자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억울함을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가소로운지.

애당초 그들에게, 훼손당할 명예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이 지금껏 무슨 명예로운 일을 했는지. 훼손될 명예조차 없는 이들이 명예훼손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네모난 동그라미’ 같은 형용모순입니다.

차라리 솔직히 말하는 건 어떨까요. 당신들이 당한 것은 명예훼손이 아니라 ‘범죄수익 훼손’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고, 금융기관을 속이고, 검은 돈을 주머니에 쓸어담는 짓을 더 이상 못 하게 된 것이 너무 아깝고 분하다고.

전종남 당시 상무가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부당수익금을 현금으로 반출하는 모습 ⓒ경기북부경찰청 제공

김상욱과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 등은 지난 4월 셜록이 보도를 시작한 뒤 구속됐습니다. 그들의 여죄는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2024년 10월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창원 외 다른 피해 지역과 200억 원대 추가 불법대출 및 공범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습니다.

2022년 7월부터 2023년 3월까지 경남 창원과 경기 평택, 충남 당진 등 10여 곳에서 중고차 매매단지 등 106개 건물과 토지의 담보 가치를 부풀려 불법대출을 일으킨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경찰이 확인한 불법대출 933억 원 중 106억 원은 김상욱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전종남 전 상무는 고급 외제차 등 약 3억 4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 챙겼다는 겁니다.

경찰은 나머지 대출금액도 명의를 제공한 피해자(경찰은 ‘허위 매수인’이라 표현했습니다)들에게 가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그 돈도 공범인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셜록 기자들에게는 아직도 피해자들의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 역시 명의를 대여해주는 것으로 불법행위에 가담한 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빚은 빚대로 떠안고 벌은 벌대로 받게 된 그들은, 여전히 살 길을 찾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저 혼자 죽으란 말입니까”… ‘공범’이 된 사기피해자>)

그 와중에 김상욱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리고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를 시켜, 언론사 셜록과 다섯 명의 셜록 기자들을 모두 고소했습니다. 예전에도 셜록을 고소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사람들은 많았고 실제로 고소를 한 사람도 있었지만, 셜록의 모든 기자들을 한꺼번에 고소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지난 5월에 작성된 고소장을 10월에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고소장에 줄줄이 적힌 기자들의 이름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 ⓒ내부자들문화전문회사/하이브미디어코프/스톤픽쳐스

영화 <내부자들>(2015년)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정치깡패 출신 공익제보자 안상구(이병헌)가 검사 우장훈(조승우)에게 묻는 말입니다.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

셜록이 하는 일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입니다. 정의란 말이 좀 거창하다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염치’나 ‘양심’, ‘선함’과 같은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 마음. 옳은 것을 가까이 하고 그른 것을 물리치는 당연한 마음, 마땅히 사람답게 살려는 마음을 지키는 게 셜록의 일입니다.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는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셜록은 바쁩니다. ‘바른 말’ 했다가 정신질환자로 몰려 해고된 신부 이야기(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교수 엄마’가 만들어준 거짓 스펙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가짜 대학생 이야기(관련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간이 녹아버린 스무 살 청년 이야기(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로 셜록의 지면은 매일 뜨겁습니다.

고소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월급 걱정도 하지 말고 셜록의 일을 더 오래, 더 잘 하라고 마음 모아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셜록의 친구(유료독자) ‘왓슨’. 셜록이 전하는 모든 이야기에는 셜록의 땀과 왓슨의 정성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또 셜록의 기사를 퍼뜨리며 함께 분노하고 감동하고 공감해준 수많은 시민들이 셜록이 가는 길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이병헌 배우가 이렇게 물었죠? 정의가 남아 있긴 하냐고. 저희는 압니다. 왓슨과 시민들이 셜록에게 보여준 그 ‘달달한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오늘도, 셜록은 셜록의 일을 합니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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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소라는 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꽤나 크게 느껴지는 일인데요. 경찰, 검찰 출석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압박감도 크니까요. 그럼에도 잘못된 일을 알리고, 문제를 지적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게 저널리즘의 본분이고, 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저널리즘을 보호하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셜록 기자분들에 대한 고소도 상식이 작동해 조금 귀찮지만 당연히 승소하는 결과가 나오길 바랍니다.

오...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있네요. 정말 어이가 없다는 생각과, 억울한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화 등등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드는데요.. 이후 후속 이야기도.. 있겠죠...?

이 기사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셜록의 끈질긴 진실 추적과, 그에 맞서 법적 반격을 감행하는 김상욱 일당의 모습이네요. “사채왕”이 아닌 “고소왕”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릴 정도로, 불법을 덮으려는 그들의 시도가 참 치졸해 보입니다. 정의가 사라졌냐는 질문에 셜록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셜록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 덕에,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멈추지 않는 것 같아요. 끝까지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