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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치니 억! 하고 - 박종철의 유산과 국가폭력의 민낯
1987년 1월 14일. 새해를 맞아 희망과 기대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을 그날, 대한민국은 역사에 남을 큰 상처를 입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한 청년이 경찰 손에 목숨을 잃었다. 분주하고도 평화로워야 할 새해의 한복판에서 남영동 회색 벽돌 건물 5층에서 청년은 차가운 타일 바닥에서 온기를 잃어 갔다. 1월 14일을 맞아 박종철 열사의 이름과 그 뜻을 다시 떠올려 본다.
21세 청년, 고문으로 사망하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987년 1월 13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종철 열사는 경찰에 의해 불법 체포되었다. 경찰의 목적은 민주화추진위원회 활동과 관련된 수배자 박종운(한나라당, 자유공화당에서 활동하던 그 박종운이다)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짜고짜 박종철을 체포한 경찰은 열사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로 끌고 가 고문을 가했다. 물고문과 전기 고문이 쉼 없이 이어졌고, 이튿날 새벽 끝내 열사는 사망했다.
▲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남영동 대공분실 5층 고문실. 당시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박배민(2020년 촬영)
경찰은 언론 브리핑에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내놓았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치안본부장 강민창과 내무부 장관 김종호를 해임하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하지만, 부검 결과 물고문과 전기 고문에 의한 살인이 밝혀졌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마티아 김승훈 신부가 사건의 진실을 폭로하며, 경찰 고위층과 정부 기관의 은폐 조작 시도가 세상에 드러났다.
▲ 1987년 추모 시위 모습. 최루탄에 대비해 눈에 비닐을 두르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국가기록원
김 신부의 발표는 말 그대로 온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 단순한 분노를 넘어, 억눌린 사회적 울분과 정의에 대한 갈망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그동안 억눌려온 자유에 대한 열망과 부당함에 대한 저항을 외치며, '우리 종철이를 살려내라!'며 절규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기폭제가 되어 대한민국 현대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열사의 희생은 6월 항쟁으로 이어져 직선제 개헌을 포함한 민주화의 초석을 놓는 데 기여했다.
열사의 뜻을 잇다 - 박종철기념사업회
박종철 열사의 '의로운 죽음'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정의와 인권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박종철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는 2003년부터 '박종철인권상'을 제정해 열사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 상은 정의와 신의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박종철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작년(2024년)에는 군 내부 부조리를 고발한 채 상병 순직 사건의 박정훈 대령이 수상자로 선정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 박종철센터에 벽면에 있는 박종철 캐릭터 ⓒ성찰과성장
2023년부터는 박종철센터(이하 센터)가 개소하여 열사의 삶과 사상을 되새길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대학교가 있는 관악구에 위치한 센터는 열사의 유품뿐 아니라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며, 시민들이 열사의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센터가 개소하기에 앞서 2020년, 관악구에서는 박종철 열사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박종철거리’를 조성하였다. 이 거리에는 박종철 열사를 기억하기 위한 야외공간을 마련하고, 벤치와 동상도 설치했다.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을 시켰지만 나의 사상과 신념은 결코 구속시키지 못합니다.”라는 옥중 편지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박종철센터와 동상은 기억의 공간을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교육하고 전파하는 중요한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31년 만의 고백, 남영동의 수사단장
▲ 박종철 열사의 희생 과정과 당시 사회상을 잘 표현한 영화 '1987'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박종철 열사를 고문했던 경찰들은 이후 어떻게 살아갔을까. 안타깝게도, 법의 심판을 받았음에도 그들의 삶은 비교적 평온하게 마무리되었다. 1927년생인 치안감 박처원(영화 1987의 김윤석 배우)은 1996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이후 80세까지 살다 생을 마쳤다. 치안본부장 강민창(영화 1987의 우현 배우)은 징역 8개월을 복역한 뒤, 2018년 노환으로 사망하기까지 85세를 살았다. 법은 그들의 죄를 인정했지만, 고문이라는 행적에 비해 단죄의 무게는 충분치 않았다.
▲ 1987년 추모 시위 모습 ⓒ국가기록원
한편, 반성하며 살아가는 인물도 있다. 사건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의 수사단장이었지만 유일하게 구속당하지 않았던 전 모 씨는 사건 이후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은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2018년, SBS와의 면담에서 전 씨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후회를 꺼내 놓으며, 사건이 터진 날의 긴박했던 상황과 자신이 지휘관으로서 느꼈던 책임감을 상세히 밝혔다.
▲ 박종철 추모제와 관련해 명동성당 입구를 막고 있는 경찰 ⓒ국가기록원
전 씨는 당시 대공분실 내부에서 이루어진 체계적인 고문과 폭압적인 지시들이 조직적이고 정권 차원에서 강요된 것이었음을 증언했다. 전 씨는 강민창 치안본부장으로부터 '검거율이 많이 떨어졌다'며 공개 질타를 받는 등 폭력 수사에 대한 강한 압박이 있었음을 밝혔다. 경찰의 폭력과 고문 수사는 몇몇 극단적 행동이 아니라 공권력으로 포장된 정권의 구조적 문제였다. 전 씨의 증언을 통해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 폭력의 필연적 결과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아들 곁으로 떠난, 어머니 정차순
2024년 4월 17일, 박종철 열사의 어머니 정차순 여사가 향년 91세로 막내아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정차순 여사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막내아들과 함께 마석 모란민주열사묘역에 영면했다.
▲ 남영동 대공분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박배민 (2020년 촬영)
1987년 2월, 정차순 님은 경찰의 저지로 아들의 서울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대신 부산 괴정동 사리암에서 종을 치며 아들의 넋을 기렸다. “종철아 이 종소리 듣고 깨어나거라!”라며 통곡하던 여사는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남편 고 박정기 선생과 함께 민주화운동과 막내 아들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일생을 헌신했다.
▲ 남영동 대공분실의 5층 복도 모습. 각방에서 서로 확인할 수 없도록 문이 교차되어 만들어져 있다. ⓒ박배민 (2020년 촬영)
여사는 생전에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곳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랐다. 그 뜻은 사그라지지 않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박종철기념사업회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2020년에 임시 개관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재정비를 마치고 2025년 연내 개관을 앞두고 있다.
너는 밟힌 자가 될 수 없음을
죽음의 공포 앞에서 박종철 열사가 남긴 용기와 정의감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엄숙한 울림을 전한다. 한겨울에도 꺾이지 않고 버티는 매화처럼,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열사의 의지는 희망의 꽃을 피워냈다. 민주주의가 다시 흔들리는 작금의 시대에 열사의 삶은 우리에게 용기와 연대의 힘을 가르치며,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일깨운다.
▲ 1987년 서울대 언어학과 학우 일동이 발표한 추모 시 ⓒ성찰과성장(이미지 제작)
열사의 삶은 짧지만 강렬했고, 숭고한 희생은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박종철 열사 추모 시에서 필자가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우리.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너는 밟힌 자가 될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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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학습 놀이터'성찰과성장'글 작성 및 편집 : 박배민성찰과성장.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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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노예는 어떻게 다른가'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이 달의 도서 추천)
24년 10월에눈 한국인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해준 마이클 샌델의 2023년 작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Democracy’s Discontent)』를 추천한다.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출판사에 대한 불만부터 얘기하고 싶다. 책의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면 ‘민주주의의 불만’ 정도로 해석되는데 왜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로 번역했는지 의문이다.
책 내용도 공화주의의 성격이 변질되면서 민주주의가 약해지고, 돈이 많은 소수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핵심이다. 책 띠지에 적힌 글은 더더욱 이해가 안된다. “민주주의는 정말 선한가?” 라는 질문은 책에서 만나볼 수 없다. 번역된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면 이 책은 마치 ‘민주주의도 문제가 있어’라고 말할 것처럼 보인다. 책 표지를 다시 보면서 필자가 책을 잘못 읽었나 싶었다. 출판사에 대한 불만은 여기까지 하자.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초기 미국에서 ‘시민은 공동선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정부는 시민에게 자치에 필요한 소양과 덕목을 적극적으로 심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다는 것이다. 샌델은 그 근거로 미국 초기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연설을 분석하는데, 필자의 기억에 가장 남는 내용은 미국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이 ‘대규모 제조업은 공화주의 시민의식의 전제조건인 독립성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하며 대규모 제조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년 4월 13일 ~ 1826년 7월 4일) 미국의 3번째 대통령 ⒸWhite House Historical Association
당시 제퍼슨을 포함한 전통 공화주의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시민의식은 자신이 소유한 생산수단을 가지고 자유롭게 상품을 생산할 때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대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처럼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강제로 일을 한다면 시민 의식이 성장할 시간과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시민의식의 악화가 우려되어 경제성장을 반대하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봤을 때 미래를 아주 잘 예측한 주장이기도 하다. 생업에 치여 혼자 먹고 살기도 바쁜 현대 사회에서 시민의식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은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것이다.
두 번째 흥미로운 지점은 ‘자유’에 대한 생각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관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뭐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일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또 다른 자유관을 소개한다. 19세기 미국에서 ‘자유’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다스릴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을 의미ㄹ했다고 한다. 즉 ‘자치’를 하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인 것이다.
▲ 민주주의는 모두에 동등한 발언 기회 제공을 넘어 스스로 공동체를 다스리는 능력, 즉 '자치'로 나아가야 한다. Ⓒ성찰과성장
이때 공동체를 다스리기 위한 의견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를 것이므로 사람들에게는 ‘모두의 의견을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이를 하나로 이끄는 토론의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시스템과 교육이 필요하며, 19세기 미국의 정치인들은 그러한 교육을 통해 시민의 덕성을 기르는 일을 국가가 나서서 해야한다고 보았다. 필자가 보았을 때 19세기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실행시키는 토대가 되는 개념이었다.
▲ '자유'에 정의와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성찰과성장
20세기를 지나면서 자유의 의미는 위에서 앞서 전자의 의미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독립적이며, 스스로 무엇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야 하며 ‘시민의 덕성’과 같은 도덕적 가치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 중지하도록 요구 받았다. 공동선을 고민하던 시민은 시장의 상품과 서비스, 중앙 정부의 복지 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되었고, 국가 경제 정책은 생산과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자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흐려졌으며 정치인을 뽑는 투표에 참여하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게 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 것 처럼 보이고, 원하는 것은 국가에 요구하는 정도로 끝낸다.
▲ 경제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성숙한 민주주의'다 Ⓒ성찰과성장
책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치를 잊고 지낸 사이 정치는 거대 자본과 소수의 권력자에게 넘어갔다. 글로벌 대기업과 금융 기업에게 이익이 되는 법안이 계속 통과된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없애야한다고 복지 예산을 축소시키면서 고소득자의 세금을 줄여야 한다는 모순적인 주장을 펼친다. 자치할 방법과 시간을 잃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삶은 점점 힘들어 지고, 소수만 잘 살고 있는 상황에서 분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샌델과 마찬가지로 필자는 이것이 미국의 트럼프,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기존의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꼈기 때문에 그저 새로운 인물을 찾은 것이다. 새로운 인물들이 나라를 더 망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 대중이 임금노동에서 벗어나,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의 확보'가 핵심이다 Ⓒ성찰과성장
민주주의가 약해졌고 자본은 강해졌다. 사람들은 소수의 권력이 만들어낸 정치 구조 속에서 그저 살아가고 있다. 경제는 살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청년들은 그저 쉬고 싶어 한다. 이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간단하다.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책의 결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이 경제 성장은 불가능해보이고, 성장한다 해도 내 삶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를 가지긴 어렵다. 4차산업은 일자리를 오히려 줄이고 있는 것 같다. 제조업 등 기존의 산업은 생산력을 늘림으로써 이윤을 챙기는 것이 아닌, 임금 등 비용을 줄임으로써 이윤을 늘리고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포기한(자치를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유는 경제성장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일부 맞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모두가 자본에 먹히고 있다. 자치를 통해 다시 민주주의를 강화할 시기가 왔다.
▲ 광명 도덕초 6학년 학생들이 '작은 민주시민 되기' 활동의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광명교육지원청
자치를 강화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우선 ‘자유’에 대한 보편적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미국 초기 공화주의자들이 ‘자유’를 대했던 태도를 참고하여, 자치에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는 교육이 필요한데, 이미 몇 지자체에서 실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진행하고 있는 민주시민 교육이 이를 위한 교육일 것이다.
두번째로 사람들이 자치를 실현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임금노동시간의 축소가 필요하다. 과거 미국에서는 임금노동을 자유로운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강제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에게 종속되는 것으로 생각했고, 이는 자치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필자도 이 생각에 동의한다.
▲ OECD에 비해 여전히 높은 우리나라의 노동 시간 ⒸKDI
따라서 자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임금노동시간을 축소하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노동 또는 자치에 참여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임금노동시간을 축소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기본소득이나 참여소득도 있고, 법정 노동시간을 더 축소하고, 원하청 구조의 변화 등등… 애달픈 것은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정치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제도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강화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 민주주의 '자치'를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성찰과성장
책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지역사회에서 ‘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시민사회 활동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도를 바꾸기 이전에 시민들이 스스로 시민적 덕성을 키운다면 그것이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것이 필자가 책을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이 책을 특히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고, 지역사회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은 충분한 통찰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작성: 신동주
편집: 박배민
기획: 성찰과성장 - 민주주의 학습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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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NGO의 정기 모금을 돕는 NGO를 설립하고 싶어요" - 윤근휴 공익활동가 인터뷰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비영리 공익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이들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이들은 더욱 더 많습니다. 성찰과성장은 이 숨은 주역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합니다.
▲ 윤근휴 활동가 인터뷰 모습 ⓒ 성찰과성장
성찰과성장은 활동가독서모임 '성장가들 - 비영리 마케팅' 세션에서 윤근휴 님을 처음 만났다. 성장가들은 활동가의 자기주도학습을 목표로, 세션마다 주제(마케팅, 대안경제 등)를 다르게 하여 진행하는 독서모임이다.
윤근휴 활동가는 이 모임에서 유독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인의 말에 경청하고, 열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자기 소개 중 비영리 마케팅, 그중에서도 '모금'에 뜻이 있다는 그의 말에 흥미가 일어 윤근휴 활동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Q.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윤근휴 팀장은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윤근휴라고 합니다.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행정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어필은 난민, 인신매매 피해자, 무국적자, 구금된 이주민, 그리고 해외에서 한국 기업에 의해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법률 지원을 주로 하지만, 그 외에도 캠페인이나 인식 개선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죠.
저는 주로 후원 관리, 행정, 개인정보보호, 자원봉사자 관리, 난민영화제, 배분 사업 등을 맡고 있습니다.
법률 지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행정적 업무를 다루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모금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난민 영화제 업무와 자원봉사자들이 저희와 잘 연결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도 하죠.
▲ 항상 밝은 모습의 윤근휴 활동가 ⓒ 공익법센터 어필
윤 활동가의 말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부드러운 표정 속에서 느껴지는 결단력은 이 분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의 신념을 대변하는 듯했다.
Q.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참여하셨거나 운영하셨던 활동을 하나 소개해주신다면요?
어필에서 진행한 캠페인 중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냐는 질문에 윤근휴 팀장은 '누가 내 생선을 잡았을까?' 캠페인을 언급했다.
이 캠페인을 소개하는 윤 팀장의 목소리에는 애정이 묻어났다.
▲ ‘누가 내 생선을 잡았을까’ 캠페인 이미지 ⓒ 공익법센터 어필
'누가 내 생선을 잡았을까?' 캠페인은 제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준 활동이에요.
이주 어선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서명 운동, 강의, 방탈출 게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이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심어주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뿌듯했습니다.
Q. 오늘 제일 궁금한 부분이기도 한데요. 사이드 프로젝트로 소규모 단체의 모금을 도와주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저는 과거부터 작은 단체들을 돕는 모금가로서의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을 가지고 조금씩 실력을 키워왔었는데 작년에 주변 동료 단체 두 군데가 문을 닫게 된 걸 지켜봤어요.
그거 보면서 '아 진짜 다들 어렵구나' 싶더라고요.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작은 단체의 모금을 도와주는 활동을 하게 됐어요.
안녕하세요.모금프로젝트 진행자 윤근휴 모금가 입니다.모금프로젝트는 모금가가 퇴근 후에 하는 자원봉사로써소규모 NGO의 매월 정기후원금을 증액하기 위해기획부터 실행까지 모금가와 단체가 함께하는 프로젝트입니다.모금가가 단순히 조언 몇 마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모금가가 기획부터 모금 실행까지 같이 합니다.3개월 안에 기획해서 실행까지 하려면 시간이 많지 않고모금가도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에 하는 프로젝트여서혼자서 다 할 수 없습니다.그래서 단체에서도 모금프로젝트 3개월 동안은주 2,3일 이상을 모금 업무에 시간을 내주시고함께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실행도 같이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습니다.정말 모금이 필요하고 시간을 내어서 3개월 동안 집중해서모금을 같이 하실 단체에서만 지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정기후원금 개발 단체 모집 글 中 일부
모금은 항상 단체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외부 모금 회사에 위탁을 주는 방식만 생각해왔던 나에게 '타 단체의 모금을 지원하는 활동'은 신선했다.
올해(24년) 상반기에 처음 (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고 있어요. 지금까지 진행된 사항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작은 단체의 정기후원금을 직접 마련해 주는 거죠. 캠페인이나 홍보 같은 걸로 새로운 사람을 끌어와 주기 보다는, 해당 단체와 기존 관계가 있는 분들에게 신규 후원 요청을 하거나 증액 요청을 하는 거예요.
작은 단체 담당자분들과 회의하면서 이 단체의 현재 후원 상황이 어떤 상황이고, 목표 금액은 어느 정도로 할 지 설정을 해요. 그 다음에 제가 직접 문자, 전화 돌리는 방식이에요. 그렇게 해서 정기후원금을 마련해 주는 게 목적이에요.
윤근휴 활동가는 '정기 후원'을 강조했다. 후원자 모집, 후원 요청 등 다양한 표현이 있음에도 '정기'를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일시 후원금도 있지만 후원금이 정기적으로 들어올 수 있어야 그 단체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 그래서 저는 단체가 재정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정기 후원금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 윤근휴 활동가의 거리 모금 모습. ⓒ 윤근휴 제공
Q. 저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이에요. 과거 비영리 공익 활동에 발을 디딘 계기를 들으면 근휴 님의 활동이 조금 더 잘 이해가 될 것 같은데요?
윤근휴 팀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과거를 떠올리며 미소를 떠올렸다.
대학교 시절부터 비영리 활동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있었어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비영리 활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거리 모금 활동을 하면서였죠. 처음엔 단순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UN 난민기구의 거리 모금 활동이었는데, 그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기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어요. 특히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길거리에서 전도를 하던 경험이 있었는데, 거리 모금은 전도보다도 거절이 적고, 사람들에게 더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죠. 그 경험이 저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뭐랄까, 저는 거리 모금이 상대적으로 쉬웠달까요? 즐거움도 있었고요. 저는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라서, 퍼포먼스 위주로 했거든요. 단순히 후원 요청만 아니라 손짓 같은 걸 섞는 거죠. 혹시 그 무한도전 아시죠? 거기서 쓰는 손동작 같은 거 활용하면서요. 그래서 후원 성사를 떠나서 제가 퍼포먼스를 했을 때 사람들을 웃기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거리에서의 소통과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그때의 경험이 윤근휴 활동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분명해 보였다.
Q. 항상 밝은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혹 어려움을 겪는 순간도 있으셨나요?
이 질문에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사실 비영리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거의 매일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가장 어려웠던 건, 모금을 진행할 때 많은 거절을 받는 거죠. 저도 거절 당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후원 요청을 할 때마다 거절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럴 때마다 심리적으로 많이 지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명의 후원자가 성공적으로 참여했을 때, 그 기쁨은 정말 크죠.
그 작은 성공이 저를 계속 버티게 하는 힘이 돼요.
윤 활동가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고뇌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도 크게 와 닿았다.
▲ 활동가독서모임 ‘성장가들’ 모금 세션에서 활동 중인 윤근휴(가운데) ⓒ 성찰과성장
Q. 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듣고 윤근휴 팀장은 잠시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최종 목표는 작은 NGO들이 안정적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기 모금을 돕는 NGO를 설립하는 것입니다.
많은 작은 NGO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요.
그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후원 체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제가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NGO의 모금을 돕는 NGO'라…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며 재정적 어려움에 늘 시달렸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뿌리'라는 그의 활동명처럼 공익활동 생태계의 뿌리가 튼튼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그의 활동을 열렬히 지지하는 순간이었다.
단체가 설립된다면 1호 정기 후원자는 내가 되리라.
▲ 비영리 마케팅에 대해 함께 공부 중인 윤근휴 활동가(오른쪽) ⓒ 성찰과성장
Q. 비슷한 길(모금)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큰 단체에서 경력을 쌓는 것도 좋지만, 작은 단체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작은 단체에서 일하면 모금, 행정, 회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우는 좋지 않을 수 있지만, 그만큼 보람은 큽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용기와 신념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윤근휴 팀장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묻는 질문에 신중하게 생각한 뒤 답변을 이어갔다.
이야기를 마칠 때 그의 표정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후배들이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진심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통해 윤근휴 활동가는 자신이 맡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공익을 위한 활동에 대한 깊은 신념과 작은 단체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담겨 있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윤근휴 팀장이 지닌 공익 활동에 대한 사명감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줄 것임을 확신했다.
인터뷰이: 윤근휴 (공익법센터 어필 행정팀장)인터뷰어: 신동주, 박배민인터뷰 정리: 박배민인터뷰 날짜: 2024년 7월 11일, 오후 6:00 ~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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