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714
전세사기, 청년층이 덜렁덜렁 계약을 해서 발생했다?
[팩트체크] 전세사기 피해가 청년층의 부주의한 계약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이 사실인지 확인했습니다.
883
우리는 ‘길’이 아닌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길'에서 '집'으로, 아니 다시 '거리'로
50년생, 남성 김수호님(가명. 이하 김 씨). 그는 집이 없었다. 거리를 전전하다가 한 고시원에 터를 잡았다. 오랜 거리 생활 끝에 구한 거처라 맘이 놓였다. 하지만 자꾸 복통이 시달리던 그는 대장암 초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이라는 생각에 앞으로의 일이 두려웠다. 해서 그 길로 고시원을 나왔다. 그렇게 다시 한동안 거리를 떠돌다가 어느 지인의 집으로 거처를 두었다. 그 지인 또한 형편이 좋지 않았고 월세를 살고 있었기에 주거비 부담이 되었다. 김 씨는 그에게 조금의 돈을 지불하고 방 하나를 얻었다. 그렇게 1평 남짓의 방을 주거로 삼아 수급 신청을 했는데 행정복지센터에서 지인과 김 씨를 동거인으로 접수하였다. 이를 뒤늦게 안 김 씨는 본인의 채무로 인해 지인이 피해를 볼까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다. 대장암 환자인 김 씨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62년생, 남성 박민수님(가명. 이하 박 씨). 그는 어디든 본인이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했다. 사업에 실패한 후 노숙을 한지 해가 지나가니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났더니 구안와사(안면마비)가 왔다고 한다. 그렇게 마비증상은 오른손까지 타고 내려왔고 시간이 지나도 증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해서 쪽방이든 고시원이든 어디든 좋다고 했다. 그저 맘 놓고 쉴 수 있는 곳이라면 괜찮다고 했다. 휴대폰이 없던 그가 수급 신청을 할 때 필자의 휴대폰 번호를 빌려주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서 이따금씩 박 씨를 찾는 전화가 온다. LH에서 주거 실태조사를 나가겠다는 전화이다. 그가 살던 쪽방에 찾아가봤지만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 걸까.
'주거' , 빈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상
나 한 몸 쉴 수 있는 곳 ‘집’을 찾으려 하지만 찾을 수 없는 힘든 여정을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필자가 만난 이들도 그러했다. 그들이 거리로 흘러나오기까지 이유는 다양하지만 특별하지 않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업에 실패하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하는 그런 이유들이다. 그렇게 극한의 빈곤 상황에 내몰린 이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포기하는 것이 집이다. 그렇기에 주거는 빈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상이다.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있어야만 하는 것. 그것이 매우 열악하거나 그조차 없다는 사실은 그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위기의 상태에 놓였다는 의미다.
혹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그에게 있다고 한다. 온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결코 옳은 말도 아니다. 우리 사회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를 글로 명시한 것이 헌법 제10조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10조는 국가의 목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명시했다. 최저빈곤선에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최저수준의 주거비를 보조하는 수준인 현실
그래서 지금의 한국사회는 어떻게 국민의 주거의 안정을 보장하고 있는가. 정부는 저소득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수요자 보조방식(주거급여, 보조금 지원 등)과 공급자 보조방식(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을 통해 주택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 모든 방식이 대상과 지원 범위를 확장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효과가 유효하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주거급여의 경우 급여 대상이 매년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주거급여 지급액도 증가하였다.(아래 표 참고)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24년 기준 중위소득의 48%의 가구가 주거급여 대상이며, 서울에 거주하는 1인 가구의 경우 34만 1천원이 최대로 지급된다. 하지만 이는 물가 상승에 따른 수준의 변동이며, 더욱이 빈곤 비즈니스의 형태로 쪽방과 고시원은 급여에 맞춰 임대료를 올리고 있다. 지금의 주거급여는 그저 거리에서 생활하지 않을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주거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정권에 따라 흔들리는 공공임대주택, 후퇴하는 공급물량
공공기관이 직접 주택을 공급하거나 주택공급이 확대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은 보다 주거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 왔는데 2021년 국토교통부는 "10년 이상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2020년 말 기준 170만 가구를 기록해 재고율은 8% 수준으로 추산된다"며 "OECD 국가들 간 상이한 산정기준을 감안할 경우에도 임대주택 공급 수준이 상위권에 진입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이는 한국은 공공임대 재고율이 8.9%로 OECD 평균의 6.9%를 상회한다. 당시 38개국 중 8번째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면밀히 들여다 보면 이또한 상당 수 부풀려져있다. 전세임대와 분양전환 아파트 등 민간이 소유하고 있거나, 일정시간이 지나면 민간 소유로 넘어갈 주택도 정부가 추산한 공공임대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한국도시연구소 분석 결과에 따르면 10년 임대(10년 후 분양전환)와 전세 임대를 빼면 2022년 기준 공공임대 주택 비율은 5.8%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정권이 바뀜에 따라 관련 공공임대 정책은 시대를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거·시민단체 모임인 ‘내놔라 공공임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연평균 18.8% 삭감되었고 2024년 예산에서는 6조원으로 축소됐다. 반면 분양주택·민간임대지원(융자) 예산은 2023년 3조 2000억원, 2024년 4조 3000억원으로 연평균 40.4% 늘어났다. 그나마도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한 공공주택이 당초 목표 대비 11.7%에 그친 것으로 밝혀지면서 공공임대주택 공급 부족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실제로 서울 내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하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기 기간만 1년 이상 걸린다. 취약계층에게 주거는 당장에 닥친 문제인데 정권의 방침에 따라 이들의 주거안정은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밀려간다.
계속해서 늘어가는 취약거처 거주자, 총선에서 주거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고시원·판잣집·쪽방 등 집이 아닌 취약거처에 사는 사람들은 최근 5년간 7만 3,625가구가 늘었다. 이는 국토교통부의 2022년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에 따른 것으로 서울에만 9만 2,890가구이고 전국으로 44만 3,126가구가 주택이 아닌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주거는 다시 한번 더 강조하지만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이다. 우리가 이번 총선에서 ‘주거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비적정 거주지로 밀려나가는 이들이 늘어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요원한 지금,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한 첫발로서의 투표가 절실한 때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2024년 4월 10일, 주거안정을 당연히 요구하고 그것이 지켜지는 사회로의 변곡점이 되기를 마음 속 깊이 희망한다.
주거 안정
·
2,459
전세사기 피해 '선구제 후구상' 방안은 비용이 얼마나 들까?
2024년 2월 27일,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회부를 의결했다. 작년 12월 27일에 국토교통위 안건조정위를 통과한 특별법 개정안이 법사위에 계류된지 60일동안 여당의 비협조로 심사 한번 받지 못하자 국토교통위에서 본회의에 직회부하기로 의결한 것이다. 그러자 여당에서는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한 인천지역에 출마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냐"라는 황당한 내용으로 반발하고(언론보도), 2월 28일에는 국토교통부에서 '특별법 개정안에 포함된 선구제-후구상 방안으로 인해 수조원의 혈세 낭비가 발생하며 상당 액수는 회수가 어려울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냈다. (링크) 이에 반발해 전세사기 피해자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열어 국토부의 혈세낭비 프레임은 상당 부분 과장되어있으며, 실제는 먼저 투입한 세금의 대부분은 회수가능하며 실제 지출해야할 예산은 4,000억원 이하라고 추정한다고 반박했다. (링크) 비록 여당의 반발로 총선 전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은 무산되었지만, 총선 이후에는 전국의 수만명의 피해자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특별법 개정안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야당·시민사회·피해자들의 입장 차가 첨예한 가운데, 도대체 특별법 개정안에 나오는 그 선구제-후구상 법안은 어떤 내용일까? 그리고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피해자들은 지금의 전세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소위 '선구제-후구상' 방안에 소요되는 비용은 얼마나 될 것인가? 이 부분을 한번 짚고가려고 한다.
✔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나는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글을 쓰고있기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이 글을 쓰지 못한다. 그렇기에 객관적이고 면밀한 팩트체크를 기대하신 분이라면 실망하실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다.
1. 특별법 개정안에 들어간 선구제 후구상 방안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특별법 개정안 원문과 회의록을 확인해보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제28조4에는 '선구제 후구상' 방안의 핵심인 임차보증금채권의 매입에 대해 규정되어 있다.
제28조의4(임차보증금반환채권의 매입) ① 제28조의2에 따른 신청이 있는 경우 채권매입기관은 매입을 신청한 전세사기피해자의 전세사기피해주택에 관한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공정한 가치 평가를 거쳐 매입할 수 있다. 이 경우 채권매입기관의 매입가격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에 따른 우선변제를 받을 보증금의 비율 이상으로 한다.
여기서 나오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에 따른 우선변제는 소액임차인과 최우선변제 규정을 가리킨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는 다음과 같다.
제8조(보증금 중 일정액의 보호) ① 임차인은 보증금 중 일정액을 다른 담보물권자(擔保物權者)보다 우선하여 변제받을 권리가 있다. 이 경우 임차인은 주택에 대한 경매신청의 등기 전에 제3조제1항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② 제1항의 경우에는 제3조의2제4항부터 제6항까지의 규정을 준용한다.③ 제1항에 따라 우선변제를 받을 임차인 및 보증금 중 일정액의 범위와 기준은 제8조의2에 따른 주택임대차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다만, 보증금 중 일정액의 범위와 기준은 주택가액(대지의 가액을 포함한다)의 2분의 1을 넘지 못한다. <개정 2009. 5. 8.>[전문개정 2008. 3. 21.]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와 시행령을 종합하면, 임차인이 '근저당 설정일 기준 시점의 소액임차인 보증금 상한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했다면 경·공매가 진행되더라도 선순위 근저당/압류금액보다 우선적으로 보증금의 1/3 이하 금액을 돌려받는다는 것이다. 각 지역별 현행 소액임차인(최우선변제금) 기준은 다음과 같다.
추가로, 국토교통위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채권매입방안의 취지에 대해 설명한 대목이 있다.
조정위원장 맹성규 : 주요 내용은 전세사기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보증금 반환을 위하여 임차보증금의 선구제 후회수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을 채권매입기관으로 하 며, 채권매입기관의 임차보증금반환채권 매입가격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에 따른 우선변제를 받을 보증금 비율 이상으로 하도록 하여, 전세사기 피해자가 적어도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금 이상의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 2023.12.27 국토교통위원회회의록 3p-
즉, 법안 원문과 회의록을 살펴보면 피해자 누구라도 보증금채권매입 방안을 통해 최소한 최우선변제금만큼의 보증금은 피해자에게 먼저 돌려주는 것이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 특별법 개정안의 '선구제-후구상' 방안이다. 국가에서 먼저 투입한 비용은 비용은 피해주택을 경매·공매 등으로 환가하거나 전세사기 가해자에 대한 형사절차를 통해 범죄수익·부당이득을 몰수·추징하게 된다. 특별법 개정안 본문만 나오고 시행령과 세부 기준이 나오지 않아 정확한 채권매입방안을 알 수는 없으나, 보증금채권 매각의사가 있는 피해자가 채권매입기관을 통해 채권평가를 거쳐 감정가를 산정한 후 감정가에 보증금채권을 판매하고 그 대금을 회수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단, 보증금채권의 감정가가 최우선변제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라도 최우선변제금 수준만큼의 금액은 보장해주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는 '보증금의 30%를 보장해준다.'는 내용으로 와전되어 보도가 되고있지만, 법적으로 최우선변제금 상한이 정해져있어 돌려받는 금액이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다. (언론보도)
그런데, 시행령과 채권매입기관의 세부방침이 나오기 전까지는 보증금채권매입 방안은 해석의 여지가 크다. 현행 소액임차인(최우선변제금) 판단 기준시점은 계약일 기준이 아니라 근저당 설정 기준인데, 위 특별법안에서 소액임차인 규정을 준용한다면 채권평가액의 하한선 기준을 어떻게 할지 정해야한다. 다시 말해, 위 보증금 채권매입 방안에서 준용하는 소액임차인(최우선변제금) 기준일을 근저당 설정일/계약일/현재 중 어느 시점으로 하느냐에 따라 피해자들이 돌려받는 금액에 큰 차이가 생긴다. 이 문제는 특별법 개정안이 본회의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큰 산 2개를 넘은 다음에도 계속 불거질 것으로 보이지만, 피해자를 돕는다는 취지를 고려하면 현재 시점의 최우선변제금 기준을 적용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놀랍게도, 피해자가 정말 많은 대전/부산 등에서는 보증금채권 매입을 실행해서 현재 기준으로 최우선변제금을 받는다고 해도, 피해자가 보장받을 수 있는 금액은 2,800만원에 불과하다. 최근 3월 20일 기준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1억 이상의 피해를 본 피해자가 최소 57%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다.)
2. 그럼 선구제-후구상 방안에는 어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판단할 수 있는 근거자료 자체가 많지 않아 소요되는 비용을 예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다. 호기롭게 총선 전에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여러 자료를 찾아봐도 쓸만한 자료를 찾아보는게 너무 어려웠다. 국토교통부는 정기적으로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 접수된 내역을 '집계'해서 발표하지만, 그건 정말로 말 그대로 피해자 신청 접수내역을 기계적으로 취합한 결과일 뿐 유의미한 분석결과라고 보기가 어렵다. (참고 링크) 국가의 공식기관 어디서도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재까지의 전세사기 피해규모와 향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세사기 규모를 분석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2월 말에 국토교통부가 공식적으로 수조원의 혈세 낭비가 예상된다는 것은 정밀한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은 과장된 주장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토부는 국가가 먼저 피해자를 구제하는데 투입하지만, 추후 회수가능한 비용이 있음에도 투입하는 비용 전부가 혈세낭비이자 회수불가능한 손실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시민사회와 피해자대책위에서 주장하는 소요 예산은 작년 10월에 발표된 보고서에 근거하고 있다. (표본이 전체 피해자를 표본으로 하지 않고, 조사기간도 한정되어있다는 점에서 전체 피해규모를 정확히 알기에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전국의 피해자들을 광범위하게 직접 조사한 보고서는 이 문서가 유일하다.) 시민사회와 피해자대책위에서 판단한 결과, 선순위 임차인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우선변제금 이상은 받을 수 있을 것이고, 후순위 임차인 중 최우선변제금을 받는 임차인은 채권매입방안을 통해 보증금을 회수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금액을 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세금이 투입되는 것은 소액임차인 기준을 벗어나 최우선변제금조차 건지지 못하고, 거액의 전세대출 부담을 지고,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후순위 임차인일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평균 보증금은 1억 2,711만원(보고서 51p)이고, 최우선변제금 대상이 아닌 후순위 임차인 비율은 48.6%(보고서 79p)이다. 지역별 최우선변제금이 다르고 보증금의 1/3도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계산 편의를 위해 보증금의 30%, 피해자가 2만명에 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1억 2,711만원 x 48.6% x 30% x 2만명) = 약 3,706억원이 산출된다.
물론 국민의 세금은 정말 소중하지만, 그럼에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해 이 정도의 금액을 쓰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2023년 대한민국의 실질 GDP는 2천조원에 육박하고, 2024년 정부 예산은 650조원에 달하는데, GDP의 0.1% 또는 예산의 0.3%만이라도 전세사기 피해구제를 위해 쓴다면 문제해결은 훨씬 쉬워진다. 다른 사기피해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피해자 구제에 부정적이며 어떠한 방안도 고려하지 않는 정부는, 부동산 PF 부실에 수십조원을 선뜻 내놓는 모순된 행태를 반성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만약 정부의 재정만으로 부담을 느낀다면, 작년 12월에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주장한 것처럼 은행의 초과이윤 중 일부라도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에 활용하도록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언론보도) 사기성이 의심되는데도 국가의 보증을 받아 불법/편법 전세대출을 남발하고, 문제있는 전세계약을 막지 않은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측면에서 은행이 재원을 출연할 명분은 충분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정확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선구제-후구상 방안에 따른 비용을 추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현 시점에서는 근거가 부실한 추정에 기댈수 밖에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전세사기 피해 전수조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3. 전세사기 피해 전수조사, 도대체 왜 안하고 있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아직도 전세사기 피해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미래에는 얼마나 발생할지 알지 못한다. 어느정도 신뢰할만한 데이터가 있어야 계산을 하고, 대책을 세울텐데 데이터 자체가 없으니 나오는 대책마다 맹탕이고, 실효성이 극히 제한적이다.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 전세사기 지뢰가 터질지 모른다. 글을 작성중인 4월 8일에도 수원 지역에서는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언론보도)
그런데, 정부는 이 문제에 있어 사실상 손을 놓고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진정성있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예방/관리감독 대책을 엄격히 시행해서 신규 전세사기를 막고, 기존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서는 종합적이고 세심한 피해구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전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리며 전세사기 문제해결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특별법이 제정된지 1년이 되어가는데 정확한 피해실태조차도 파악하지 못한게 현실이다.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총선 이후에는 부디 정부가 정신차리고 문제해결에 진지하게 임하기를 바라본다. (피해자들 좀 살려주세요!!!)
관료조직의 전가의 보도인 '관련 근거가 없고, 선례가 없다'는 핑계를 댈까봐 특별법 조문을 가져왔다. 현재 시행중인 전세사기 특별법 제13조를 보면 전세사기 피해조사를 위한 근거는 마련되어있다.
제13조(피해사실의조사) ① 국토교통부장관은 제12조제1항에 따른 신청이 있는 경우 제14조에 따른 전세사기피해자등 결정 등을 위하여 임차주택의 가격 및 실태, 임차주택의 권리관계, 임대인의 채무 등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조사할 수 있다.② 국토교통부장관은 제1항의 조사를 수행하는 경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조치를 할 수 있다.1. 임차인, 임대인등, 이해관계인 및 참고인에 대한 진술서 제출 요구 2. 임차인, 임대인등, 이해관계인 및 참고인에 대한 관련 자료 제출 요구 ③ 국토교통부장관은 제1항에 따른 조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국가기관, 공공기관, 금융기관 등에 대하여 자료 또는 정보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요청을 받은 기관의 장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
13조 내용을 모두 서술하지는 못하지만, 제13조3항 각 호에서는 전세사기 피해조사를 위해 법원, 한국자산관리공사, 지자체, 국토교통부, 근로복지공단, 국세청, 행정안전부, 국민연금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금융기관, 검찰청, 경찰청, 보증기관, 기타 국가기관·공공기관·금융기관 등 전세계약에 관여하는 매우 많은 기관을 대상으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조사 협조요청을 받은 기관은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따라야한다고 되어있어 강제력도 있는걸로 보인다. 이제라도 국토부에서는 현행 전세사기 특별법에 근거해 전세사기 피해규모 실태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4. 전세사기 피해 전수조사, 이렇게 해봅시다!
우선, 국가적 차원에서 전세사기 피해조사를 진행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관계당국과 전세사기 피해자대책위의 지속적이고 심도깊은 소통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만큼 이 문제에 천착하고, 중요한 포인트를 세밀히 짚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존재하겠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만큼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피해 인지 단계부터 해결 단계까지 구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고, 건강과 생계를 망쳐가며 에너지를 쏟은 피해자들이 수년간 집단지성으로 축적한 정보는 비전문가라고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실제로 피해자들은 피해자지원센터나 은행에 도움을 받으러 갔다가 도리어 전세사기에 익숙하지 않은 각 영역의 전문가 분들을 가르쳐드리고 있다.)
그럼 전세사기 피해 전수조사는 어떻게 진행해볼 수 있을까? 각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법적/실무적인 제약은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만 해본다.
1) 조사범위 좁히기 : 악성임대인 목록 취합- 전세사기 명목으로 기소된 임대인 정보 (검찰청/경찰청)- 보증기관에서 대위변제가 발생한 임대인 정보 (HUG/HF/SGI)ㄴ 2023년 말부터 공개하고 있는 악성 임대인 정보는 신규 보증사고가 발생한 악성임대인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공개대상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기준으로 삼기에 부적절하다. (수도권에서 전세사기로 유명한 임대인의 이름 대부분은 악성임대인 명단에서 빠져있다.)
2) 악성임대인 채권채무 등 권리관계 확인- 금융권 근저당 (1금융권, 2금융권, 3금융권)- 세금체납내역 (세무서, 지자체 세무과)- 보증보험 가입/대위변제 여부 (보증기관 전체)- 4대보험 관련 미납내역(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등)- 전세권·임차권 등 주택임대차 관련 채무- 기타 채무 (민사 채무로 인한 압류/가압류 등)
3) 권리관계 분석- 임대인 신용도, 자기자본 비율 등 조회 (금융권)- 임대인-임차인 간 전세계약 체결내역 조회(행정부 및 지자체 확정일자내역, 전월세신고내역 / 법원 전세권설정 내역)ㄴ 선순위 임차인/후순위 임차인/무권리 계약 여부- 위험도 분석ㄴ 해당 지역 경매정를 고려한 예상 피해금액ㄴ 임차인 자산 및 소득수준 / 전세대출 등 채무 규모
4) 데이터 취합한 유형 정리 & 맞춤형 대책 설계- 전세사기 피해자를 그룹화하고, 피해자 그룹에 맞는 대책 설계ㄴ ex) 다세대주택 후순위 임차인과 신탁사기 피해자, 다가구주택 피해자는 문제 접근방향부터 다르기 때문에 각 피해유형에 특화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1~4의 과정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과정에서 관계 당국과 피해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방안을 찾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피해자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낮밤/주말 가리지 않고 무급으로라도 이 일을 할 수 있다.
///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얼른 총선이 끝나고, 이번 21대 국회가 문을 닫기 전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최우선변제금 수준의 돈만 우선 돌려받는 '선구제-후구상' 방안과 몇가지 대책이 추가되는 것 정도이다. 이 방안에 따라 보증금을 돌려주면 시장의 거래질서를 어지럽히고, 대한민국이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쉽게 말하기 전에 제대로 된 데이터를 가지고, 면밀히 따져봤으면 좋겠다.
국가의 미래를 계속 이끌어가야할 2030 청년들이 전세사기 덫에 걸렸는데 언제까지 방치하고 있을 셈인가. 지금부터라도 전세사기 피해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
참고 페이지 1 :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금 당장, 특별법 개정을 외치는 이유참고 페이지 2 : 전세사기 오해와 진실 3가지참고 페이지 3 : 캠페인즈 함께살자 이벤트 페이지
주거 안정
·
291
비닐하우스 밖 가설건축물은 괜찮다? 위험천만 이주노동자 주거권
[22대 총선] 여기, 주거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어요!
2024 총선주거권연대 연속기고
네 번째, ‘집이 아닌 곳’에 사는 이주노동자 이야기
노동, 빈곤, 종교, 청년, 주거시민단체 등은 부동산 정책만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무분별한 부동산 규제 완화를 저지하고 주거불평등 심판, 온전한 주거권 실현을 위해 ‘2024 총선주거권연대’를 출범하였습니다. ‘2024 총선주거권연대’는 주거권 역행 후보 선정, 주거 분야 공약 평가 활동에 이어 주거 정책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속기고를 진행합니다.
벌써 3년 전이다. 2020년 12월 경기도 포천 한 농장 기숙사로 쓰는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고 입국해 고용노동부가 지정 알선한 농장 기숙사에서 사망한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던 건 2016년, 아니 훨씬 전부터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이런 비극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14일 김삼화 당시 국민의당 의원,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익법재단 공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함께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 주거환경을 다룬 영상물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가 상영됐고, 고용노동부 또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1년이 지난 2017년 12월 22일, 고용노동부는 ‘농업 분야 외국인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방안’ 대책을 발표했다.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은 신규 외국인력 배정을 중단(‘18.4월 배정 시부터)하고, 기 제공된 사업장은 자율개선기간 내 숙소를 개선하지 않은 경우 외국인 노동자 사업장 변경을 허용(‘18.2월 고시개정 예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더 이상 정식건축물이 아닌 가설건축물 기숙사 제공이 금지된다는 소식에 시민사회 단체들은 환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기숙사 제공에 대해서는 계속 허용했다. 2019년 1월 15일 외국인고용법 개정으로 ‘사용자가 외국인근로자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100조에서 정하는 기준을 준수하고,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라는 규정(법 제22조의 2 제1항)이 신설되었지만,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없는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의 기숙사 제공은 계속 허용되었다. 제도개선과 법개정이 이루어졌음에도 속헹씨 사망을 막아내지 못했다.
속헹씨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고용노동부는 부랴부랴 2020년 12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아래와 같은 방침을 발표했다.
“농촌 등에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 가설건축물을 주거시설로 이용하는 등 근로자의 안전과 인권침해 등이 우려됨에 따라 앞으로는 농축산업 외국인근로자의 주거시설 개선을 위해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고용허가를 불허하기로 결정(제28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20. 12. 23.))하였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소중한 생명을 잃고서야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런 의문이 남는다. 이제 이주노동자의 주거권 문제는 모두 해결된 것일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라는 말처럼 비닐하우스 밖에 있는 가설건축물, 지자체에 신고가 된 임시숙소 등 가설건축물은 이번 대책에도 빠졌다. 결국 이주노동자는 위험천만한 기숙사에서 계속 거주할 수 밖에 없다.
세계인권선언 제25조는 모든 사람이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한국이 1978년 기압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제5조에서도 ‘(d)기타의 민권’에서 ‘(iii)주거에 대한 권리’를 명시한다.
인종과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주거에 대한 평등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보장에 관한 국내법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주거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고용허가제도는 외국인이 4년 10개월 동안 임시적으로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하도록 하는 제도로 고용노동부가 사업장 알선부터 변경까지 독점하고 있다. 한시적 합법노동자인 이주노동자에게 주거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사용자에게만 떠넘길 문제도 아니다. 적절한 기숙사를 제공한 사용자에게 외국인 고용을 허가하고, 기숙사 설치 및 운영에 대한 예산을 국가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이주노동자가 기숙사에서 사망하는 이런 비극을 막아내도록 디테일을 살려 제대로 된 입법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이 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주노동팀장, 최정규 변호사가 작성하였습니다.
주거 안정
·
256
거리를 택한 청소년들에게 ‘집’을 달라
[22대 총선] 여기, 주거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어요!
2024 총선주거권연대 연속기고
세 번째, 거리를 택한 청소년들의 이야기
노동, 빈곤, 종교, 청년, 주거시민단체 등은 부동산 정책만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무분별한 부동산 규제 완화를 저지하고 주거불평등 심판, 온전한 주거권 실현을 위해 ‘2024 총선주거권연대’를 출범하였습니다. ‘2024 총선주거권연대’는 주거권 역행 후보 선정, 주거 분야 공약 평가 활동에 이어 주거 정책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속기고를 진행합니다.
청소년 시기에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오늘의 잠잘 곳을 마련하고자 노력해야 하고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매일의 쓸 돈을 마련해야 하는 생활. 늘 불안하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는 거리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낫다고 판단할 때 청소년들은 거리로 나온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들은 집에서 거부당하거나 생존을 위해 돌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오늘의 잠잘 곳 마련을 위해 친구집, 여관방, 피씨방, 찜질방 그도 안되면 거리를 택하는 그들은 “홈리스 유스(Homeless Youth)”이다.
청소년들은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청소년들이 탈가정한 이유를 살펴보면, 집에선 인간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탈출한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가정을 탈출”한 것이다.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1년 위기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을 나오게 된 이유'(복수응답)에서 ‘가족과의 갈등'(69.5%)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안에는 부모로부터의 학대도 있고, 쫓겨난 경우 등이 숨어있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아동학대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는 뉴스에서 주로 학대로 인한 끔찍한 영아 사망 사건들을 접하게 되는데 실제로 아동학대 피해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연령대는 13-15세로 중학생 시기이다. 학대는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유아기부터 지속되어 오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 나이가 되었을 때 학대 피해 아동은 더이상 참지 않고 생존을 위해 가정을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탈가정 청소년의 문제를 “청소년 비행”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동학대” 문제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하며 청소년 개인의 일탈행동이 아닌, 가정의 불화와 부모의 학대, 학대에서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아동학대 피해 상황에서 주변에 의해 발견된 아동은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위탁가정이나 시설보호체계로 들어가게 된다. 시설에서 자라 성인이 된다면 자립준비청년이 된다. 그렇게 시설과 같은 국가가 정한 보호체계 안에 있어야만 지금의 자립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시설을 이용하지 않거나 못하는 청소년이 거리에 나오게 된다면 보호체계의 사각지대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왜 시설로 가지 않는가?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청소년 쉼터”이다. 쉼터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시설을 가지 않고 거리에 남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쉼터에 가면 우선 친권자에게 연락을 하게 되어 있다. 미성년은 친권자의 동의 없이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도망쳐 나오거나 부모에게 연락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은 자연히 쉼터를 피하게 된다.
또한 집단생활인 시설은 각종 규제와 규율이 엄격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시설을 피하게 되는 청소년들이 생겨난다. 쉼터들은 청소년의 개인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이전의 문제가 되었던 행동들로 인해 쉼터로부터 거부당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여기서 “시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시설 외에 “여러 명이 공동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곳”하면 어떤 곳이 떠오르는가? 군대, 교도소 같은 곳이다. 시설은 그런 곳이다. 전쟁 이후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경우, 그들을 모두 모아 한 곳에서 숙식을 하도록 만든 것이 시설이다. 몇몇 해외 복지국가에서는 더이상 시설에서의 집단적 보호를 금하고 있다. 물론 아동 경우도 시설에서 성장하는 것을 지양하고 가정적 환경에서 자라도록 하고 있다. “아동 탈시설” 정책이 이미 보편화 된 것이다. 한국사회는 장애인의 탈시설 정책이 가장 진전된 상태이나 아동 청소년의 경우 여전히 시설에서의 보호가 가장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시설 보호가 종료되어 자립한 청년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사실 이들의 문제는 18세에 갑자기 자립을 지원하는 정책만이 아니라, 시설의 보호 자체를 다른 대안으로 바꿔야 해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거리 청소년들이 시설에 가지 않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자유로운 영혼들이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당연한 욕구인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
현재 한국사회는 장애인들이 더 이상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독립 주거에서 살도록 하는 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활동지원사들이 이들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노숙인의 자립에 시설에서의 보호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주거우선지원(Housing First)” 정책을 펼치고 있다. 자립이 준비되면 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을 가장 먼저 제공해야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시설에 들어가라 하지 말고 지역사회에서 살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자립을 먼저 하라고 하지 말고 주거를 먼저 제공해야 한다. 장애인과 노숙인에게 지역사회에서 혼자 살거나 주거’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듯이, 청소년에게도 “지역사회에 주거”를 제공하되 “촘촘한 삶의 지원”이 당연히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가정에 있거나 시설에 있는 경우만을 상상한다. 최근 아동복지법이 바뀌면서 시설에서 중도퇴소한 청소년도 자립을 지원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일부지만 거리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정책적 혜택이 돌아가리라 기대하였으나, 정부는 아동복지시설에서 타 관할시설(소년원, 치료시설 등)로 옮겨져서 중도퇴소한 청소년만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청소년이 시설도, 가정도 아닌 거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 대안이다. 청소년은 성인의 보호 하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는 현재 엄연히 존재하는 “거리의 청소년”들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들의 존재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오히려 청소년들을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가정도 시설도 아니라면, 집을 주는 것!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원이 함께 되는 것! 그리고 이 사회가 미성년인 청소년이 독립된 주거를 가질 수 없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많은 청소년의 문제는 해결점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유원선(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활동가)님이 작성했습니다.
주거 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