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전세사기 피해자 연속기고] 7. 전세사기 피해자란 이유로 파혼... 이게 다가 아닙니다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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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더 안전한 살 곳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모읍니다.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2023년 2월 28일, 첫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남긴 말입니다. 그 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졌습니다. 피해자들의 죽음, 절규, 투쟁으로 2023년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제대로 된 피해 구제와는 거리가 멀고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방치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피해 소식이 터져나오고, 기존 피해자들은 빚으로 빚을 돌려막거나 빚을 더 내서 피해주택을 떠안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4·10 총선을 앞둔 지금도 제대로 된 피해 구제 공약과 대책은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직접 호소하고자 합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공약과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관련 릴레이 기고를 진행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답해주세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지난 1월, 부산 지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부산대책위원회-

2023년 6월, 갑자기 집 와이파이가 끊겼습니다. 한참을 셋톱박스와 씨름하다가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문의했는데,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요금이 3개월간 미납되어서 인터넷이 끊겼다는 것입니다. 단 한 달도 빠지지 않고 관리비를 입금했는데 지금까지 낸 관리비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전말은 이러했습니다. 저의 임대인은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고 주위 부동산에서 중개를 꺼릴 정도의 '악질'이었습니다. 그 임대인은 시장 경기가 나빠지자 임대차보증금 뿐만 아니라 인터넷 이용료 등에 사용하는 관리비, 근저당 이자를 하나둘 체납하였고 나중에는 사기 혐의로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피해자들은 보증금은 돌려받지도 못하고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되어 피해주택에 발이 묶였습니다.

이제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미 갖고 있는 빚에 빚을 더해서 새로운 집으로 탈출하거나 지옥 같은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계속해서 살아야만 합니다. 많은 경우 전세사기의 악몽을 떠오르게 만드는 피해주택에 남는 것을 선택하곤 합니다. 월세나 이자라도 아끼고 이사집 찾기 등 집 걱정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 마음에서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삭아버린 완강기... 이곳에 '안전'은 없습니다

걱정 없이 집다운 집에 살려면 적어도 인터넷, 전기, 수도, 엘레베이터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입주자들을 모았고 엉겁결에 입주자 대표까지 되어 여러 곳을 수소문했습니다. 알고보니 임대인은 작년 1월부터 모든 세금과 공과금을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전기·수도·청소업체와 엘레베이터·주차타워·안전관리 회사 등에 일일 문의해보니 모든 기관과 회사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미납된 요금을 일시에 납부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고 말입니다.

입주자들이 체납한 것도 아닌데 밀린 관리비를 왜 우리가 내야하는지 억울했습니다. 당시 부산에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센터라는 지원기관이 있어 이런 상황을 전달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협조 공문을 발송하겠다고 했습니다. 지원센터가 해준 것은 딱 그것 뿐이었습니다. 관련 지원 조례나 법률안이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알고 9개월이 지난 지금 전기, 수도, 엘레베이터 정도는 그럭저럭 해결이 되었지만 안전 관리 문제는 아직 미해결 상태입니다. 한 건물에는 소방, 전기, 승강기 세 분야의 안전관리자가 필요합니다. 보통 집주인, 용역업체 관리자, 거주자 중에서 선임하게 되는데 저희 주택의 경우 피해자들이 이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소방안전관리자가 되려면 1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평일 중 하루 종일 시간을 내어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또, 1년에 한 번 점검을 진행하고, 고장난 시설을 사비를 들여 수리하고, 점검 사실을 소방서에 신고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건물 관계자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합니다. 왜 피해자들이 이런 것을 부담하여야 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저희 건물의 소방안전관리자 선임은 1년간 유예되었지만 몇 개월째 시설이 방치되며 고장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전층의 화재감지기 경종이 수시로 울리는 탓에 알람을 전부 꺼버린 상태입니다. 각 호실에 필수로 설치해야 하는 소화기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지 오래고 각자가 사비로 이를 교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벽에 설치된 완강기는 삭아버려서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습니다.

침수 피해 수리비용 전세사기 피해자가 갚기도

심지어 이런 사정은 다른 피해건물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부산 수영구의 다른 전세사기 피해건물은 여름 침수 피해로 2000만원 이상의 수리비용이 발생했는데 모든 피해자가 분담하여 할부로 갚고 있다고 합니다. 대전의 누수, 포항의 지붕 붕괴, 인천 미추홀구의 보일러 고장과 건물 외벽 붕괴 등 이같은 건물 안전 관리 문제를 다른 누구도 아닌 전국의 많은 피해자들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한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헐어버린 건물 내벽 모습

▲ 한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헐어버린 건물 내벽 모습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부산대책위원회 제공-

조례가 없어서 건물 관리를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시청이 구청으로 민원을 돌리고 구청은 시청으로 책임을 넘기는 상황도 열이 받기는 하지만 이해는 합니다. 그런데 조례를 만들 수 있는 구의원, 시의원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만을 보입니다. 법이 없으니 움직이기 어렵다고 답합니다. 법이 없으니 조례를 만들어 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것인데 계속해서 핑계를 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정부 또한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전세사기 특별법을 가지고 온갖 생색을 내며 파격적인 구제를 제공하는 것처럼 말은 하지만 실상은 빚에 빚을 더하는 정책이 대부분입니다. 피해자로 인정을 받아도 사용할 수 없는 대책이 너무 많습니다. 거기에 더해 전세사기 문제를 "개인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인간의 거래"라고 폄하합니다. 피해자를 질타하는 시선을 적극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할 망정 부추기는 것입니다.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절망에 빠져 사는 것보다 희망을 가졌다가 다시 절망하는 것이 더욱 비참합니다. 반쪽짜리라고 하기도 민망한 전세사기 특별법은 피해자들에게 희망고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입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중개보조인에게 안전한 매물이라고 소개받고 추후 보증금 반환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안내 받았습니다. 보증보험 가입을 하려고 하면 가입할 필요 없다는 설득을 들었고, 중개보조인이 대출 은행을 소개해줘서 문의해보면 은행 역시 걱정할 것 없는 매물이라 안심시켰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전세 보증금은 전재산이기에 더 이상 확인할 게 없을 만큼 열심히 확인하고 매물을 계약합니다. 선순위 보증금, 공시지가, 임대인의 재산규모, 공실은 얼마나 있고 건물에 몇 명이 세를 들어 사는지를 하나하나 따져보고 은행에서도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는 확인도장을 찍듯 턱턱 대출을 해줍니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란 이유로 파혼까지 당하기도

피해자들은 이미 몇 번이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너무 어리숙하게 굴었던 탓일까, 사기 당할 만했던 것일까, 좀 더 알아봤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불행이 불행을 불러오는 불행의 굴레에 빠져 일상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예비 시어머니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이유로 부주의한 사람과 가정을 꾸리게 할 수 없다는 질책을 듣고 파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만으로도 벅찬데 아버지가 쓰러진 분, 가족들이 전부 떨어져 살게 된 분, 밤낮 없이 일하며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게된 분까지 이 불행의 굴레는 지금도 조용히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반면 전세사기범들은 수탈한 보증금을 어디론가 빼돌려 값비싼 변호사를 선임하고 또 다른 범죄를 꾀합니다. 임대인, 건설사, 은행, 정부, 공인중개사 모두가 연관되어 있는데 나서서 책임지겠다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세사기는 경제적 살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정작 그 범인은 나몰라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전세사기는 평범한 청년들과 서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파괴하며,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빠뜨렸습니다. 허술한 국가시스템, 임대차 시스템, 피해자를 전혀 구제해주지 못하는 현재의 전세사기 특별법을 규탄합니다. 이제는 불행의 굴레를 끊어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의 암담한 현실과 고통을 제대로 파악하고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합니다. 최소한 피해자가 '안전'과 '내일'를 걱정하지 않도록.


-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노정윤, 닉네임 'i' -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으며, 캠페인즈에도 중복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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