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중년 비정규직 ‘여사님’, 이름을 잃다
중년 비정규직 ‘여사님’, 이름을 잃다(2024-12-09)
호텔 룸메이드 모습. 사진은 글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원상혜(가명) | 호텔 룸메이드
화려한 호텔 현관을 지나 건물 모퉁이를 돌면 지하로 들어가는 검품장 입구가 나온다. 호텔에 물건을 납품하는 트럭들이 들고 나는 경고음이 수시로 울리는 통로 한쪽에 차단봉을 세워 만든 좁은 길이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출퇴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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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카드를 찍고 나면 트럭에서 내리는 식자재들, 품목을 확인하고, 옮기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검품장을 지나고, 세탁물을 담은 커다란 철제 카트들이 덜컹거리며 오가는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더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 탈의실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정받은 층으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객실에서 사용할 침구류와 각종 용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준비실로 간다. 준비실에 있는 객실 현황판을 확인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청소용 철제 카트에 싣고서 호텔 복도로 향하는 문을 열면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나는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있는 특급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하고 있다. 흔히 ‘하우스키핑’이라 불리는 룸메이드는 호텔의 객실을 청소하고 정리하며, 손님이 요구하는 서비스를 가장 근접해서 제공한다. 호텔 소속이 아니라 외부 인력 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파견 직원으로 1년 단위로 회사와 계약한다. 내가 일하는 호텔에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포함해서 약 100여명의 룸메이드가 일하고 있는데, 대부분 나와 비슷한 50~60대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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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휴게시간 1시간이 포함되어 있지만 늘 시간에 쫓기는 터라 점심도 건너뛰기 일쑤다. 불규칙한 식사 시간 때문에 룸메이드들은 관절염과 함께 위염을 달고 산다. 청소는 하루에 기본으로 10유닛을 할당받는데, 방의 크기에 따라 7~10개의 방을 배정받게 된다. 임금은 숙련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기초시급과 직무수당으로 이루어진 기본급에, 매달 달라지는 중점 정비, 추가 베드 설치 등 몇가지 업무 추가에 따른 수당이 더해지면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야간 근무는 담당자가 따로 있고, 휴일 특근은 명절 휴일에만 적용된다. 손님이 정비를 거절하거나, 시간이 부족해서 유닛을 다 채우지 못하면 그만큼 임금에서 차감된다. 정비 관련해서 고객이 불만을 제기해도 깎인다. 방 하나를 청소하는 데 드는 시간은 체크아웃 객실은 1시간, 재실 객실은 30분 정도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시간인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 방이 몰려서 열리면 마치 단거리 경주를 하듯이 잠시도 쉴 틈 없이 숨 가쁘게 뛰어다녀야 겨우 기본 유닛을 채울 수 있다. 올여름 같은 때에는 온종일 에어컨이 나오는 곳에서 일하는데도 땀이 주룩주룩 흘러서 저녁이면 유니폼 옷깃과 등에 허옇게 소금꽃이 피어나기 일쑤였다.
서두르다 보면 사고가 일어난다. 청소 카트에 부딪히고, 객실 가구에 걸려서 넘어지고, 출입문에 손가락이 끼여서 골절이 되거나, 열어 놓은 서랍이나 문에 부딪혀 머리가 찢어지고, 화장실 청소하다 미끄러져서 고관절 손상을 입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회사는 사고가 나도 산재 처리를 꺼려한다. 개인 비용으로 치료를 받고 치료가 끝나면 정산해주겠다는 게 회사 입장이다.
이 일을 하면서 고된 노동 강도, 낮은 임금, 유닛 삭감에 대한 불합리함, 이런 것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여사님’이라는 호칭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비정규직 중년 여성 노동자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숙련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중년 여성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이모나, 고모나, 여사님으로 불려야 할까. 어릴 적, 바둑이와 놀던 철수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철수지만, 영희는 비정규직이 되어 직함을 잃는 순간 아주 불합리하게 이름도 잃는다. 이모나 고모나 여사님이 되고, 그 노동은 엄마의 손맛, 여사님의 손길이 된다.
존중이 들어가지 않은 ‘존칭’을 받는 우리 중 누구도 반기지 않는 이 호칭이 비정규직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을 주변부 노동 혹은 노동 밖의 노동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반성을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시작했으면 한다. ○○씨, ○○님, 혹은 ○○메이드, 비정규직 중년 여성 노동자인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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