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의 대화] 디지털 시대와 노동에 대한 관점(feat. 기술의 발전에 따른 양극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이제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디지털과 플랫폼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클릭 한번만 하면 문 앞에 모든 것들이 올 수 있을 정도로 사회는 발전했지만, 오히려 ‘누가 내 문 앞에 이러한 것들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한 고민은 점차 희미했어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잊고, 결과물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표정과 감정은 모른 채, 눈 앞의 화면만 보는 것이죠. 지난 6월 29일,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나눠보고자 온라인 공간에서 3명의 지인이 모였습니다. 나름(?) 같이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분들이라 그런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어요. 노동 4.0에 관한 <노동 4.0과 미래를 위한 민주주의>와 플랫폼과 노동자의 삶을 다룬 <플랫폼 노동은 자유로운 삶을 제공할까요?> 를 읽고 ‘디지털 시대의 좋은 노동’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좋은 노동이란 무엇일까 4차 산업혁명에서 노동에 대한 관점은 크게 2가지로 나뉩니다. 1. 단순노동에서 모두가 벗어나 창의력을 발휘할뿐만 아니라, 자율적인 선택에 기반에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2. 노동은 여전히 하게 되지만 노동의 시간이 훨씬 줄어들고,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는 워라벨이 커진다. 두 가지의 관점은 비슷한 것 같지만 초점은 조금 다릅니다. 첫 번째는 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진행하고, 인간은 흔히 말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는거죠. 두 번째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재택/유연 근무 등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삶에 가깝습니다. 최근에는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회사가 많아졌기에 두 번째에 관한 내용이 우리 삶에 더 빨리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함께 이야기한 한 분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좋은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막상 회사를 보니 지역이 다양하지 않더라. 결국 서울에 살아야 일을 하기 쉬운 환경이겠다 싶더라.’ 라며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먼 미래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구요. 도대체 노동이란 무엇이길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 가지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도대체 노동의 정의와 범위가 뭐야?” 노동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서 ‘좋은 노동’의 생각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죠. 가사노동도 노동이고, 식물을 키우는 것도 노동 중 하나인데, 어떻게 논의를 해야할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보통 노동이라고 하면 대부분 전제하고 있는 것이 먹고살기 위해 ‘원치 않는' 것들로 한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노동으로 자아를 찾기에 계속해서 노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잉여시간이 생겨서 그 시간을 다른 활동에 쓴다고 하더라도 무언가를 하지 않을까요? 결국 우리는 ‘다른 형태의 노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사회 발전 속 점차 심화되는 양극화 노동에 대한 관점은 조금 달랐지만 모두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선 디지털 양극화도 있지만 삶을 영위하는 양극화도 심해진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서 삶이 좋아질 것도 있겠지만, 한 사람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단점이 있는 거죠. 1910년도에는 하나의 기술만 있어도 되었겠지만, 현재는 다양한 기술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일의 시간과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배워야 하는 노력이 필요해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 흐름을 타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격차가 커지게 되죠. 비슷한 사례로 서빙 로봇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보며 전문가들은 서빙 로봇이 들어와서 제조,관리 등으로 직업군이 늘어난다고 하고 있지만 청년의 입장에서는 그 직업군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즉, 디지털 기술로 인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 대한 양극화가 심해지고 특히 지금 사회에 진입한 청년일수록 이 양극화는 극단으로 이어질 것 같다는 걱정으로 대화 모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대화 모임을 통해 ‘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현상’ 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도 영향이 있겠다는 발견을 하게 되었어요. 누구나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결국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 아래에 청년들은 ‘모든 것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고 있죠. 여전히 어렵습니다. 한 번의 대화 모임으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더 복잡해졌네요. 그만큼 사회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겠죠. 이번을 시작으로 디지털 시대의 발전과 그로 인해 우리의 노동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더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노동권
·
1
·
'행복'이라는 단어가 없어지는 사회를 바랍니다.
“행복한 새해 되세요~” 라는 신년 인사, 모두 한번씩 들어보셨죠? 행복한 하루가 되라는 작별인사도 자주 듣구요. 행복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많이 쓰고 있는 단어라 생각해요. 그런데 슬프게도 '행복하세요?'라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쉽지 않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누구도 정의하기 어려운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혹은 왜 자주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정의하지 못하는 것일까오? 행복이 무엇인지 명확히 규정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행복한 순간’이 있습니다. 또한 그 순간에서 우리는 편안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죠. 이 묘한 감정을, 혹은 고통스럽지 않기를 원하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행복을 정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행복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다다르는 것에 방법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물론 이것이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개인이 추구하는 바를 우리가 함부로 짐작할 수 없기에 이를 감히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하구요.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있습니다. 순간적인 쾌락과 행복은 다르다는 것이죠. 행복은 결국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현되기 때문이에요. 시험 성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시험을 보았을 때 시험을 잘 보았다는 기준을 어디에 삼고 있으신가요? 만약 내가 공부한 것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알기 위해서 시험점수를 확인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보다 내가 몇 점이 높은지를 비교하는 사람은 똑같은 점수로 똑같은 행복을 느끼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차이가 발생합니다. 점수가 떨어졌다고 가정했을 때 전자의 경우 어느 부분에서 이번에는 부족했는지를 생각하고, 앞으로의 공부 방향을 설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나의 등수에 집착을 하게 되고, 공부를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죠. 결과가 좋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전자는 앞으로의 방향성과 스스로의 성취감을 느끼겠지만 후자는 높은 등수를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등수를 유지하기 위한 부담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순간적인 쾌락과 행복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사례는 나의 목표를 외부(특히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아 쾌락은 얻었으나 이는 오래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주위에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원동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따라간다는 것은 그들의 모습 중 닮고 싶은 것을 내가 배우겠다는 의지를 표출한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한 결정적 힘이 감각적인 즐거움이 아닌 삶의 의미, 더 정확하게는 의미를 발견하려는 의지였다.” 굉장히 공감되는 말이었습니다(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안나네요...) 이를 통해 우리는 행복을 명확히 규정짓지는 못하고 있지만 행복에 조금씩 다다를 수 있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원동력이 생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탐구하고, 나만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기에 이상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죠. 그렇기에 사람들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쾌락만을 쫓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상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를 전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 걸음 다가가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겠지만 다가가는 순간 속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성취감을 맛보게 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더욱 나은 존재로 발전해갑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왜 매년 부각되고, 소확행과 YOLO 등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단어는 매년 생겨나는 것일까요? 이는 결국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내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찾고, 더 행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싶어하는 거죠. 그렇기에 저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사회를 꿈꿉니다. 모두가 스스로 탐구하고, 나를 위한 목표를 세워서 모든 과정을 그냥 삶으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고통이 없는 것과 행복은 다릅니다. 내가 원하는 바가 있다면 그 길 속에서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길의 끝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웃게 됩니다. 모두가 나만의 길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희망하면서 웃을 수 있기를, 그리고 자연스럽게 ‘당신은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이 삶이 제 삶인걸요?’라면서 모두가 행복하냐는 질문을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는 그러한 사회를 꿈꿉니다.
새 이슈 제안
·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