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인터뷰]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저자 박순우 작가 -인터뷰어 및 정리 : 김민준
* '세상을 바꾸는 인터뷰' 시리즈는 기존 인터뷰들과 색다른 접근(인물, 이슈 등)을 통해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김민준(오마이뉴스 시민 기자)과 김재경(연구활동가)가 함께 약 2주에 한 번 오마이뉴스, 캠페인즈, 얼룩소, 브런치에 연재합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순간을 떠올려본다.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글쓰기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보다가도 펼치고 나면 내 고민이 딱히 풀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쓰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듯하다.제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글을 쓰는 박순우 작가를 알게 된 건 2021년이다. 글쓰기 플랫폼 <얼룩소>에서 처음 알게 된 그(박현안)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자기만의 시선과 세상에 대한 애정을 글 속에 듬뿍 담아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란 어려우니까. 글쓰기와 다양한 소재로 대화를 하면서 그 역시 자연스럽게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게 됐고, 글을 모아서 최근 책을 내게 됐다.지난 2월 12일, 분당의 모처에서 박순우 작가를 만났다. 책을 낸 이야기부터 글쓰기 전반에 관한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물었다. 아래는 박 작가와의 일문일답.
겁 없고 모험하는 사람 박순우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쓰는 사람입니다. 엄마이면서 바리스타이면서 아내이기도 하고 며느리이기도 해요. 많은 역할이 있지만 '쓰는 사람'이 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쓸 때 가장 제가 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소개하는 게 가장 간단하면서도 맞는 말 같더라고요."
첫 책을 내셨어요.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나요?
"예전부터 글을 쓰면서 책을 내고 싶긴 했어요. 그런데 욕심이 생기니까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글을 쓰는 삶을 살면서 책은 그 과정 중의 하나인 거지, 책을 내기 위해서 글을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책을 내는 건 언젠가 기회가 닿을 거로 생각하고 꾸준히 썼는데요, 글방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다 보니까 오프라인에 제가 내놓은 글이 없잖아요? 글을 쓰게끔 도와드리고 싶은데 책을 내면 저를 믿고 함께 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에요. 그런 와중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책을 내게 됐어요. 의도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 소개글에 "오래 방황하며 떠돌았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에요.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제가 생각하는 이상과 실제 행동이 다르다는 걸 깨닫고 거기서 오는 불협화음을 견디지 못했던 사람이었어요. 그 외에도 집에 개인적인 문제가 있어서 늘 탈출하고 싶었거든요. 도시에서 오래 살았는데, 도시가 저랑 그렇게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질적인 부분이 저를 잡아먹었던 시기도 꽤 길었고요. 그래서 여행이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여행을 길게 다녀와서는 독립을 했는데, 그 이후에 제주도로 내려간 것도 도망의 일종이었던 것 같네요."
- <오마이뉴스>에 '육아삼쩜영'과 '제주 이민 10년차들을 만나다'를 연재 중입니다. 각각의 연재물을 기획한 혹은 참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육아삼쩜영은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 사는 5명의 부모가 모여서 하는 기획입니다. 처음에 '프로젝트 얼룩소'에서 글로만 만났던 임은희 시민기자님과 저의 육아관이 이 시대에 '노멀'이라고 불리는 방향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고 그런 우리의 시선을 담아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해보다 보니 여러 사람을 영입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제주 이민 10년차들을 만나다'는 정말 순수한 궁금증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제주에 자리를 잡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계속 제 마음 속에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10년 동안 여기서 뭐 했지?', '나는 어떤 마음으로 여기서 산 걸까?'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졌어요.저는 아이를 낳고 장사를 하면서 바쁘고 정신없이 지낸 시간이 많았어요. 그러면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또 나처럼 아이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지냈을까 이런 궁금증들... 그 사람들은 지난 10년 간 어떻게 변화해왔고 어떤 마음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 육아삼쩜영의 소재는 어떻게 찾으시는 편인가요?
"아무래도 소재가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많이 따지죠. 아무래도 육아가 개인의 일이면서도 사회적인 차원의 일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시민을 길러낸다는 생각으로 육아를 하는 편이거든요. 나중에 어른이 돼서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육아를 접하는 저의 가치를 이렇다는 걸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어렵네요. 개인적인 일을 사회적인 일과 묶어서 쓴다는 게 아직도 계속 과제인 것 같아요."
- 제주 이민 10년 차인 분들을 만나고서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겁이 없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이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가 불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불안하면 행동반경이 좁아지잖아요. 새로운 걸 시도하기 어려워지죠. 그런데 이주민들은 나고 자란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터를 잡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죠. 확실히 겁이 없어야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일종의 개척자 같기도 해요.그런데 어떻게 보면 서울의 삶을 버리고 온 거잖아요. 이 사람들은 또 제주에만 머물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언제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거나 새로운 모험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증언하고 기록하고 싶은 사람 박순우
- 시중에 이미 글쓰기 관련 책들이 많잖아요. 시장에 또 하나의 글쓰기 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그런 책들과 어떻게 차별화를 하려고 했는지, 어떤 부분을 유념하면서 썼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글쓰기 책들이 가진 방향을 살펴보면, '잘 쓰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 있는 것 같았어요. 매끄러운 글은 어떻게 쓰고, 문단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등등…. 심지어는 글로 어떻게 하면 유명해지고 돈을 벌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들도 있죠. 그런데 글 잘 쓰는 방법보다 중요한 건, 일단 써야 할 거 아니에요?(웃음)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건데, 써본 적 없는 사람들은 일단 쓰는 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서 잘 쓰는 건 둘째 치고, 일단 그냥 쓰는 일상으로 나가는 것까지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줘야 해요. 제가 직접 부딪히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이 책을 통해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자기만의 이야기를 내뱉을 수 있을 때까지 어려운 건 기술보다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 글쓰기 책을 쓰시면서 도움을 받거나 영향을 줬던 작품이 있나요?
"사실 책을 쓰면서 다른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오히려 노력했어요. 그래서 글쓰기 책은 의식적으로 안 읽었고요, 박완서 작가를 개인적으로 제 글쓰기의 고향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분이 육아하다가 마흔이 넘어서 글쓰기에 도전했잖아요. 그 부분이 정말 존경스럽고, 자기가 겪은 일들을 정말 가감 없이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팔딱거리는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걸 보면 나도 더 솔직하게, 살아있는 언어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죠. 어떤 계기로 열게 됐고, 어떻게 꾸준히 이어나가는지 궁금해요.
"매일 쓰는 삶을 사면서 저 스스로가 단단해지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주변 사람들부터 같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쓰는 삶으로의 변화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처음에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서 찾아오신 분들이 늘어나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려움이 되게 많았어요. 에세이를 쓰는 모임이다 보니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야 하잖아요? 합평을 하다보면 글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에 대해 평가를 한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셔서 제가 말을 좀 사려 깊게 할 필요가 있었고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죠.그런 여러 경험을 하면서 쓰는 삶으로 이끈다는 게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웃음). 그런데 쓰면서 자기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 분들이 결국 끝까지 쓰게 되더라고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분에게 '그런 질문을 이제 던져보세요'라고 권유해드리기도 했죠."
- 지금의 글쓰기 모임을 글방으로 확장해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구상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모임을 운영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돼요. 좀 써본 분들도 있지만 아예 그런 경험들이 없는 경우도 있죠. 그런 분들에게 벽을 허물게 하는 클래스도 생각하고 있고요, 조금이나마 그런 경험을 해본 분들이 계속 쓰는 삶이 일상이 되도록 붙잡아드리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그 중 모임 하나에서는 저도 같이 글을 쓸 것 같네요. 도움을 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건데 제가 더 많이 배웠거든요."
- 혹시 아이들한테 책을 더 많이 읽히신다거나 글쓰기를 봐주신다거나 그러시나요?
"제 기질이 억지로 시켜도 마음에 안 들면 절대로 안 하는 스타일인데, 제 아이들도 그래요. 너무 강요를 하면 반감을 가질까봐 조심스럽더라고요. 제가 어쨌거나 계속 쓰는 일상을 살다보니, 아이들 옆에서 자연스럽게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해요. 아이들이 그걸 일상적으로 보는 건데, 사실 책 내는 것도 아이들이 먼저 저한테 물어봤어요. 엄마는 맨날 글 쓰는데 왜 책 안 내냐고. 엄마 글은 다 어디에 있냐고(웃음). 그럴 정도니, 어느 순간부터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저 책은 저번에 엄마가 읽었던 책이네'라고 기억하더라고요. 결국, 강요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 스며들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 책에서 제일 애정하는 챕터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가장 마지막 글인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제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결국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알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쓰는 삶으로 나아가는 게 제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지점이라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글쓰기의 시작을 그런 마음으로 대하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은 거죠."
- 여행을 결심하면서 앞으로 글 쓰는 삶을 살기로 하셨다고 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삶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계획이신가요?
"습관을 만드는 게 되게 어렵잖아요. 저도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드는 게 제일 힘들었거든요. 지금은 관성처럼 글을 쓰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제가 쓸 수 있는 글의 장르에 한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글 하면 역시 소설이지!'라는 생각을 했다 보니 아무도 압박을 주지 않았는데 제 스스로 압박감을 주고 있었거든요(웃음)."
- 그때 당시에는 왜 그렇게 생각하셨던 건가요?
"약간 고리타분했던 거죠. 특히 예전에는 작가로 살려면 무조건 등단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었잖아요? 저 역시 글 쓰는 삶을 살려면 당연히 등단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꼭 등단할 필요는 없겠구나, 그냥 쓰면 되겠다, 라고 생각이 바뀌게 됐죠. 글을 쓰면 쓸수록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같아요.
- 두 번째 책 계획도 있으신지.
"이번 책에 맛보기처럼 제 에세이를 몇 편 넣었거든요? 온라인에서 저를 본 사람들은 제가 어떤 글을 써왔는지 알지만, 책으로 처음 저를 만난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제가 원래 이런 글을 써왔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중간중간에 에세이를 넣은거였어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지금 생각 중인거로는 아예 에세이만 묶은 책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혹은 제가 좋아하는 분야와 에세이를 접목해서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 책의 제목처럼 글을 쓰고 싶은데 '아직도 망설이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모든 사람이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로 그 욕구를 분출했으면 좋겠는데, 처음에 시작하는 게 어려우니까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 그걸 글로 풀어내 봤으면 해요. 그러다 보면 습관이 되는 거죠. '내가 무슨 글쓰기야', '나는 제대로 된 문장도 구성 못 하는데' 이런 나 자신을 틀에 가둬놓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런 것들을 다 내려놓으시고 그냥 쓰셨으면 좋겠어요.일단 막 쏟아내듯이 뱉어내다 보면, 분명 계속 쓰게 됩니다. 또, 여러 사람이랑 같이 글을 써보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 글을 보면서 내 글을 또 다듬게 되고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