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36주 임신중지의 살인죄 적용 수사는 ‘낙태죄’ 부활과 다름없다
정보 공유 위축시켜 임신중지 절실한 여성 더욱 취약하게 만들 것  수사 중단하고 보다 빠르고 안전한 임신중지 가능하도록 법과 의료 체계 만들어야 36주 임신중지에 관여한 이들에 대한 무리한 경찰 수사는 어렵게 성취한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일순간에 퇴행시켰다. 이번 수사는 ‘태아보호법을 발의해야 한다’, ‘큰 아기 낙태 근절, 의협이 합니다’라는 퇴행적 논의 혹은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비범죄화된 행위를 다시 범죄화하는 이번 경찰의 수사는 생명과 직결된 정보 공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경찰에 혐의없음으로 해당 수사를 종결시킬 것을, 보건복지부에 임신중지의 상황을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지금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여성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임신중지 체계를 조속히 구축할 것을 촉구한다.  경찰의 이번 수사는 취약 계층이 가까스로 얻은 권리를 행정기관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박탈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진 후 지금까지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을 방치하다 사람들을 자극할 만한 일이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악질적인 지점은 태아를 사람으로 간주하는 법적 조항도 없고, ‘낙태죄’가 폐지되어 임신중지로 처벌할 수도 없으니 보건복지부가 처벌 가능한 사례를 찾고 찾아 임신 34주 여성에게 임신중지 시술을 한 의사가 신생아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2021년 판례를 바탕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것이다. 굳이 살인으로 수사 의뢰를 하고 2차례에 걸쳐 병원을 압수수색하는 과도한 수사는 윤리적인 책임을 묻는 화살이 되어 여성에게로 되돌아간다. 보건복지부의 살인죄 수사 의뢰는 2024년 8월 20일 “큰 아기 낙태 불법 근절”이라는 이름으로 대한의사협회의 의사 직업윤리 및 대국민 신뢰회복을 위한 ‘범죄와의 전쟁’ 첫 과제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결국 보건복지부의 수사 의뢰는 폐지된 ‘낙태죄’를 우회해 임신중지를 규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빌미로 이어진 것이다.  경찰 수사를 동원한 엄포는 임신중지가 절실한 여성들을 더욱 더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인터넷 게시물을 표적삼고 공권력을 동원해 수사를 벌이는 행태는 여성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위축시킨다. ‘낙태죄’는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임신중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낙인이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병원의료 서비스의 품질, 시술 가격에 대한 정보, 후유증과 대처법 등 임신중지를 계획하고 있는 여성들이 정작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기 어렵다. 더군다나 임신 말기에 가까워질수록 여성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도 높아져 더 많은 병원들이 시술을 거부하므로 말기의 경우 참고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는 정확하게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오픈넷은 위의 맥락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명령으로 전체 사이트가 차단된 위민온웹의 행정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에 관한 방대한 정보 제공과 함께 임신중지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전 세계 여성들에게 유산유도제를 배포해온 위민온웹은 보건복지부가 유산유도제의 도입을 미루고 있어 한국에서 유통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불법의약품을 유통하는 사이트로 낙인 찍혔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체 사이트가 차단되었다. 유산유도제는 WHO가 그 안전성을 입증해 수많은 국가에서 필수의약품으로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방심위의 사이트 차단 행정명령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해할 수 없는 법원과 방심위의 판단에 의해 여성들은 성과 재생산 권리에 관한 유용하고 절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출처를 상실했다.  그간 수많은 여성연구자들이 ‘낙태죄’의 폐지와 임신중지 권리의 보장이 여성들의 ‘무분별한’ 임신중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택하는 이유는 태아의 생명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출생 이후 태아와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였기 때문이라는 점 등 임신중지를 둘러싼 우리들의 통념이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우리 사회가 잘못된 통념에 갇혀 과도한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무엇보다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사안에 대한 책임을 명명백백하게 방기함으로써 사회적 혼란과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억지스러운 노력으로 시간을 역행하지 말고 서둘러 여성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24년 8월 22일사단법인 오픈넷 [관련 글] [캠페인] 위민온웹X오픈넷, 엑세스 잠금 해제: 온라인 임신중지 정보를 해방하라 언제까지 여성들의 성과 재생산 권리 침해를 묵인할 것인가? (2024.05.17.)위민온웹과 오픈넷, 지연된 임신중지 권리에 대한 조치를 촉구하다 (2024.05.03.)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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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자격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공병 출신의 공학도 친구와 ‘지뢰 제거’를 놓고 격론을 벌이게 됐죠. 마침 저는 그 전에 모 시민단체에서 민북지역을 조사하는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보고서의 대인지뢰 파트 작성을 담당했던 터였습니다. 그는 지뢰 제거가 매우 위험한데다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면서 M14(일명 ‘발목지뢰’) 제거는 불가능하다, 민북지역 지뢰 제거는 300년 400년이 걸린다는 한국군의 입장을 옹호했습니다. 저는 지뢰 제거가 위험하고 복잡한 일은 맞지만, 한국군의 방식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국제적인 수준과 동떨어져 있다고 반박했어요. 연구 당시 인터뷰했던 지뢰 제거 사업가의 해외 지뢰 제거 사례도 이야기해 보았지만, 제 말은 그에게 하나도 가닿지 못했습니다. 저는 군대에 간 적도, 갈 일도 없는 영원한 ‘미필’ 여자였으니까요. 그는 공병 출신인 자신을 앞에 두고 어린 미필 여성인 제가 지뢰 제거에 대한 견해를 내세우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그때의 격론은 으레 있었던 술자리 갑론을박 중의 하나로 지나갔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꼭 그만 그런 반응을 했던 것도 아닙니다. 제가 군인이 어쩌고, 안보가 어쩌고 하는 말을 꺼내면, 그것이 말이든 글이든 혹은 눈빛이나 표정으로도 ‘흐린 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종종 느낄 수 있었거든요. ‘군대도 안 갔다 와본 게’로 시작되는 그와 같은 반응은 이해하기 싫으면서도 또 한편 이해가 되기도 했어요. 저는 그 와중에 ‘안 간 건 사실이지 암’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대신 그 뒤에 꼭 한 마디를 덧붙이는 거죠. ‘안 갔는데 그래서 뭐? 군대 안 가면 아무 말도 하면 안 되나? 사람들이 꼭 국가대표만큼 운동 잘해서 선수들 욕하고 그러나?’ 하고요.   그럼에도 제 경험은 아주 작은 에피소드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군대, 국방, 안보, 하여간 무엇이든 ‘나라 지키기’ 같은 환상과 엉키는 순간, 여성들의 목소리는 터무니없이 작아지곤 하거든요. 지난 5월 임기를 마친 제21대 국회에서 여성의원 비율은 19%(300명 중 57명)였는데요. 21대 국회 임기 종료일을 기준으로 국방위원회는 정원 17인 중 여성의원이 단 1명(5.9%), 외교통일위원회는 정원 21인 중 여성의원이 마찬가지로 단 1명(4.8%)에 불과했습니다. 국정원을 다루는 정보위원회에는 여성의원이 전무했고요. 전체 여성의원 비율도 높지 않은데, 국방이나 외교 문제에선 한참 더 낮아지는 거죠.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국은 여성 안보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전 세계 전문가들 사이에도 익히 알려진 것 같습니다(BBC, 2020/01/08).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군대를 비판하고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에서조차 여성들의 존재는 지워지기 일쑤였습니다. 신재욱(2024)의 연구에서 1987~1993년 사이 군 민주화(군인·전경 양심선언) 운동에 동참했던 여성 활동가 신경아(가명)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양심선언했던 당사자들의 경우,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내가 그냥 조력자였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이 운동을 끌고 갈 것인지 이런 걸 함께 협의해나가야 하는 동지라고 생각을 안 한 거지. 나를. 그러다 보니까 본인들이 출소를 했다거나 복학을 하고 졸업 이후에 자기 전망을 세워 나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배제돼 있었던 거죠. 마지막에 내가 운동을 계속해 나가야 할 전망이 안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던 게, 그러한 관계가 형성이 안 되다 보니. … 내가 여자이다 보니 갖는,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나를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고 배제되는.       ―‘신경아 2차 인터뷰’ 중, 신재욱(2024: 78)  신재욱은 신경아가 당시 함께했던 동료들로부터 ‘활동에 대해 가장 잘 안다’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해나가면서 동료가 아닌 ‘조력자’로서만 대우받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분명히 군 문제에 있어 암묵적으로 젠더 위계가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군 문제에서 작동하는 젠더 위계는 군 안팎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죠.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학생회 활동의 일환으로 대체복무제 입법 운동에 참여했던 장박가람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로 ‘군대’ 문제를 둘러싼 강고한 성별/젠더의 벽을 보여줍니다. 제가 1학년 때 전학협(전국학생회협의회)에서 ‘대체복무제 국회 입법을 위한 전국 10만인 서명운동’을 했어요. 그래서 각 대학의 전학협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학내에서 서명을 받았는데, 제 기억으로는 저희 학교가 서명을 제일 많이 받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공격도 제일 많이 받았죠. 우리가 서명을 제일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이화여대’라서. / … ‘햏자*’를 주축으로 해서 사이버 테러가 일어난 거예요. 그때 사람들이 공격할 좌표를 찍었는데요. 어떤 사람들이 병역거부연대회의에 병역거부 관련된 사람들은 다 모여 있으니 여기에도 좌표를 찍자고 주장하는 가운데 ‘햏자’들은 “아니다. 그건 필요 없고 이 학교를 좌표 찍어야 된다”라고 주장했어요. 용납할 수 없었던 거죠. *편집자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하던 그룹. 병역거부 운동에 소위 '좌표'를 찍고 공격적으로 악성댓글을 달았다.  ―“페미니스트, 평화활동가, 평화교육 연구자 장박가람” 전쟁없는세상(2022: 26)  장박가람은 당시 이화여대 구성원들을 향한 사이버 불링이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말합니다. 총학생회 홈페이지를 다운시키려 들고, 학교 구성원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난입하고, 사이버 성폭력과 ‘신상 털기’가 잇따른 까닭에 그 자신도 “공포에 떨고 있었”다고 해요. 이 뒤틀린 분노는 이미 2000년 군가산점제 폐지 때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이죠(엄수아, 2014/02/20).    병역거부 운동의 초기부터 활동해 온 최정민은 운동 초반 “내내 ‘노’라는 소리만 맨날 들었”다고 말합니다. 초청하는 쪽의 거부로 어떤 토론회나 지면에도 글을 쓰거나 토론자로 나갈 수 없었다고 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요. 이에 따라붙은 핑계는 “여성이 징병제도에 관한 얘기를 꺼내면 토론이 어떻게 징병제도를 개선할까로 생산적으로 가지 않고 엉뚱한 산으로 간다”는 거였죠. 그는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어떤 군사적인 해법이라고 하는 게 힘이 강한 남성이 힘이 약한 여성을 보호해 준다, 이 구도가 되는 거잖아요. 근데 이 구도가 확립이 되려면 내가 보호해 준 대상자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이 구도가 확립이 되는 거지 이 보호해 준 대상이 갑자기 어느 날 내가 보호받는 이 시스템은 별로인 것 같아, 이렇게 얘기를 하는 순간 그 구도가 깨지니까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한국 병역거부운동의 시작 최정민,” 전쟁없는세상(2022: 11) 여성들이 군대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때, 여성들에게 돌아온 반응은 하나같이 비슷했습니다. ‘여자가 왜 설치냐’, ‘암탉이 우니 시끄럽다’ 따위의 반응부터 ‘여자가 있어서 성폭행이 발생하니 여자를 없애자’는 기상천외(?)한 반응까지(이대학보, 2002/10/07). 당시 대선후보였던 정몽준은 양심적 병역거부 지지를 밝힌 이화여대 학생 앞에서 “여자는 군대를 안 가는데 왜 문제인가? 징병제랑 여성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임세환, 2002/09/28). 한 마디로, 조용히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거죠. 너는 ‘말할 자격’이 없다고요.   그렇지만 조용히 하기도, 가만히 있기도 싫습니다. 그보다 누구라도 말하고 누구라도 딴지를 걸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군대도 안 가는 여자는 조용히 해’하고 말하면 마치 ‘군대 가면 말해도 돼’, ‘남자라면 말해도 돼’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요. 군대에서의 사건 사고, 일상에서의 여러 폭력과 불안전을 지적하는 것은 군대에 다녀온 남성들에게도 쉽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 ‘말할 자격’의 장벽을 풀기 위해선 입대를 앞둔 남자도, 군대에 있는 여자도, 군대에 다녀온 트랜스젠더도 모두 다 떠들 수 있어야 합니다. 특급전사, 도움배려병사(관심병사), 방위, 공익, 초급간부, 병사, 병역거부자, 병역면제자 그리고 군대와 가장 멀어 보이는 비군인 여자까지도 자유롭게 참견하는 세계가 되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징병제도를 깊이 고민해야만 할 겁니다. 군대 내 폭력이나 위계에 의한 성폭력도 대충 넘어갈 수 없게 될 거예요. 군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군대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국방과 안보는 어떻게 성취되는 것인지, 국가는 시민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 그 반대는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하고 설득해야만 하겠죠. 그런 뒤라면 SNS를 돌아다니다 벽 곳곳마다 곰팡이가 가득 핀 초급간부 관사 영상을 보지 않아도 될 겁니다. 초과근무수당이나 당직비가 입금되지 않아 가족의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직업군인의 하소연을 볼 일도 없어지겠죠. 부당한 폭력과 부조리에 노출된 군인들의 사연도 더는 쌓이지 않을 테고요. “3.8일에 한 명꼴로 군인이 죽는다”는 통계도(나경희, 2024/06/18), “입대 10일차 ‘얼차려 사망’ 막을 기회 22번 있었다”하는 뒤늦은 탄식도(심우삼, 2024/06/06)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는 비겁하고 치졸한 변명 따위를 듣지 않아도 될 거고요(세계일보, 2024/06/11).    그러니까 저는 ‘말할 자격’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하려고 합니다. 다치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소외되는 사람도 없어질 때까지요.    참고문헌 김형은. “북한과 한반도 평화를 분석하는 여성 안보 전문가들의 이야기,” (BBC, 2020. 1. 8.).나경희. “3.8일에 한 명꼴로 군인이 죽는다,” (시사IN, 2024. 6. 18.).세계일보. “임성근 전 사단장 ‘탄원서’, "군인이란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 (세계일보, 2024. 6. 11.).신재욱(2024). “군 민주화 운동가들의 정체화 과정 연구: 1987-1993 군인·전경 양심선언을 중심으로,” 성공회대학교 국제문화연구학 석사학위논문.심우삼. “입대 10일차 ‘얼차려 사망’ 막을 기회 22번 있었다,” (한겨레, 2024. 6. 6.).엄수아. “군가산점제 위헌판결, 불붙은 논쟁의 시작,” (여성신문, 2014. 2. 20.).이대학보. “병역거부지지, 이화는 남성의 적?,” (2002. 10. 7.).임세환. “"군대안가는 여자가 왜 거부운동을..",” (오마이뉴스, 2002. 09. 28.).전쟁없는세상(2022). 『2022 병역거부운동 여성활동가 인터뷰집』. /김엘림언론정보학과 북한학에 발을 담그고 미디어, 사회, 젠더, 통일, 평화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평화를 더 배워보겠다며 시작한 국제정치학 공부 중에 전쟁과 젠더의 교차에 눈길이 머무르면서, 6.25 전쟁기 여성의 전쟁 경험을 연구했다.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 연구소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웹진 <다양성+Asia>에 함께하고 있다.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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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일 -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이 남긴 것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 김진선(피스모모) , この記事は日本語でも読むことができます(クリック)。 중국의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완아이화(万爱花, Wan Aihua)님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13년 여름이었다. 나는 당시 대학원생으로, 중국 산시성의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의 대일 재판 투쟁을 지원해 온,‘산시성일본군성폭력실태를밝히는모임’의 이시다 요네코(石田米子)등과 동행하고 있었다.  글 머리에 밝혀두고 싶다. 중국의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 중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불리는 것을 극구 거부해 온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위안부’라는 말이 일본군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강간을 ‘위안’이라고 부르는 기만과 모욕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다수가 식민지 제도 아래의 피해자인 한반도나 대만과 침략 전쟁의 전선이 된 중국의 피해 형태가 다르고, 사실상 일본군‘위안부’가 아닌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위안소 피해 외에 난징 같은 도시를 점령할 때 발생한 대규모 집단 성폭력, 작전행동 속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진 전시강간(포로 성고문 등 포함), 또 위안소가 없는 곳에서 병사들이 현지 여성들을 잡아 개인적으로 강간소를 지어 벌인 성폭행 등 다양한 형태의 피해가 있었다. 일본군의 성폭력은 위안소 바깥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이 확산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 성노예화 이외의 피해도 많았다. 이미 지적되었 듯이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도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완아이화님은 일본군‘위안부’라는 명칭은 2차 피해라고 딱 잘라서 끊임없이 주장해 온 사람이다. 완아이화님을 보면서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의 재판투쟁이 국제적인 인권운동으로 확장되었고, 이를 통해 생존자들의 권리의식이 회복되고 있으며, 피해자들은 인권운동가로 거듭났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완아이화님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한껏 차려 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 함께 싸워 온 이시다 요네코님의 손을 잡고, 강한 눈빛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일본 정부에는 정의가 없어요.” ”이 투쟁은 당신들이 계속해줘요… 포기하면  일본정부가 가볍게 볼거예요.”   완아이화님은 그로부터 9일 후 숨을 거두었다.   나는 페미니즘을 일본군 성폭력/성노예제의 생존자들로부터 배웠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한국의 할머니들을 비롯해 많은 일본군 성폭력/성노예제 생존자들이 일본에 와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재판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성차별을 비롯한 일본 사회의 차별에 직면했던 내 눈에는 정의를 찾는 피해자들이 무척 눈부시게 보였다.   하지만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가‘우리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나 한일 합의에 의한 화해·치유재단 등으로 시간을 벌고, 피해자를 ‘동정’하는 척 하면서 결코 사죄하지 않는 등 식민지 지배 책임과 침략 전쟁의 책임을 흐리게 하고 있다. 중국 산시성과 하이난섬에서는 모두 4건의 대일 사죄 배상 청구 재판이 벌어졌으나 모든 피해 사실은 인정하는 대신 사죄와 배상 청구는 기각됐다.   산시성 피해자의 대리인을 맡은 일본 변호사는 일본 사회의 사법 상황을 감안하면 100% 이길 수 없는 재판이라고 말했다. 이길 수 있다고 희망을 심어주어, 원고를 속이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 했다. 그래서‘산시성일본군성폭력실태를밝히는모임’의 이시다 요네코 등은 제소 전에 원고를 방문해 예상되는 결과를 말했다. 왕가이허(王改荷)라는 피해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이 잦아들자 왕가이허님은“出口气(화풀이)”라고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가슴 속의 한을 토해내기 위해 재판을 한다고, 그만한 일이 있었는데 말하지 않고 죽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 농촌의 피해자들이 일본에 가서 재판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피해자들 대부분 중국 표준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고,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도 울퉁불퉁한 길을 하루종일 가야 할 정도로 오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원고들은 이길 가망이 없는 재판을 이어가며 “당신들이 계속해 주세요”라며 돌아가셨다.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와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가지면서, 내가 사는 사회의 차별 구조와 역사를 자각하게 되었다. 산시성의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장시엔투(张先兎)님은 1992년 주중국 일본대사관에 피해를 호소한 탄원서를 내고 배상금을 요구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장시엔투님의 남편은 일본군에 납치된 그를 되찾기 위해 빚을 내 몸값을 지불했다.‘탄원서’에는 그 빚을 1992년이 되어서도 다 갚지 못했다고 써있다. 가난한 중국 농촌에 있는 피해자의 집을 찾았을 때 일본군의 손자인 내가 어떤 역사의 토대 에서 무엇을 누려왔는지 되묻지 않고서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지난달, 산시성 친구로부터 과거 대일소송을 제기한 원고들(현재 모두 고인이 되신)의 유족들이 한국 할머니들이 쟁취한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주권 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 배상을 명령한 것)을 알고 중국 산시성 고급인민법원에 일본 정부를 제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학순님이 나선 이래 30년에 걸쳐 사회운동이 두텁게 거듭된 한국과 달리 중국 사법과 사회 안에서는 이 소송이 여러모로 매우 어렵다. 일본군 성폭력 문제에 정통한 중국인 전문가나 변호사도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재판이다. 완아이화님의 딸 리라디(李拉弟)님은‘우리가 시작한 재판투쟁이 이미 돌아가신 어르신들(어머니들)을 만족시킬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시성 유족의 소장은 아직까지 중국 법원에서 수리되지 않고 있다. 국가와의 싸움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를 처음 만났을 때, 대학생이었던 내가 죽는 것도 기다릴 수 있다. 그런 상대와 싸우는 방법은 사회를 바꾸려는 긴 무명인들의 행렬에 줄을 서서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운동하고, 나보다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건네는 것뿐이다.  ‘나에게 용기를 준 여러분들에게 살아 있는 동안 정의를 돌려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도 살아있는 한 계속 싸워 나갈 것이다. 늘 희망을 붙들고.   / 아츠타 케이코 젠더 및 사회학 연구자이자 페미제미&카페('젠더와 교차성에 관한 독립 페미니스트 세미나 및 페미니즘 예술 공연 카페'라는 뜻)의 이사, 중국어-일본어 통역 및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낙태, 일본군 전시 성폭력 생존자 명예 회복 운동, 동아시아의 페미니즘 운동 등이다. '해시태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아시아의 페미니스트 운동(오츠키 출판, 2022)'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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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벽돌을 쌓으며 -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1> 서울고등법원(2심)은 2023년 11월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그 유족인 원고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주장한 국가면제를 배척한 후, 일본국의 불법성과 책임을 인정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원고 승소)하였습니다. 여기서 ‘국가면제’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인데, 쉽게 말해 ‘국내 법원이 외국 국가에 대한 소송에 관하여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일본 정부는 위 법리 뒤에 숨어 우리 법원의 재판절차에 일체 응하지 않았습니다. 1심 법원이었던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국가면제가 적용되어야 한다면서 원고들 청구를 기각했습니다(원고 패소) 그런 상황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위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들 청구를 인정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하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은 위 판결을 통해 일본국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80여년 만에 온전한 시민권을 취득한 것입니다.   <2> 이번 승소판결은 세 가지 측면에서 국제인권법의 발전 과정에 있어 기념비적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일본 정부가 그동안 ‘연행의 강제성’을 부인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가져왔는데, 서울고등법원은 일본 육군에서 당시 작성한 공문서들을 증거로 채택하여 일본 정부의 각 기관이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에 체계적으로 개입하였으며, 일본군이 위안소의 운영을 통제하고 감독한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국내법원을 통해 일본제국과 일본군의 책임이 명백히 인정된 것입니다. 또한,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개인별 ‘강제연행 과정’과 ‘위안부 생활’, ‘국내로 돌아와 한평생 겪어야 했던 여러 고통’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짚어나가면서 피해자들이 이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음을 명확히 확인하였습니다. 끝으로, 법원은 국가면제라는 법리를 배제함으로써 전쟁범죄와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그 누구도 면죄부를 누리를 수 없음을 국제법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3>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린 가장 큰 이유는 국가면제 법리의 적용여부에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다른 나라의 법원들은 국가면제를 무조건적으로 적용해 보편적 인권침해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역시 2012년 ‘무력 충돌 과정에서 발생한 타국의 주권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것’이 현재의 국제관습법이라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은 ‘법정지국 영토(당시 조선의 영토를 말합니다)에서 그 국민에게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를 묻지 않고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관습법이 현재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울러, 서울고등법원은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2012년 ICJ 결정 이후, 국가면제 적용을 부정한 최근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국가면제와 관련된 국제법 체계가 이미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국가 중심의 국제법 질서가 인권 중심의,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4> 이번 판결은 세계적으로도 국가면제를 극복한 몇 안 되는 사례입니다. 위 승소판결이 있기까지 여러 법원과 각국의 입법례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권 중심, 개인의 재판청구권 중심의 판결례를 쌓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고등법원 판결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전향적인 판단을 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ICJ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로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이탈리아인 ‘페리니’의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관련하여, 독일 측 국가면제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면제를 배척한 이탈리아 대법원의 판단을 부정하였습니다. ICJ는 당시 국가면제 적용의 근거로 든 사례로 총 8개 국가의 법원 판결이었는데, 이 중 브라질(1심) 법원 판결을 포함하여 6개국의 법원이 국가면제를 적용하였고, 국가면제를 배척한 것은 2개국(이탈리아, 그리스)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국가면제 적용 사례가 더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5> 몇 년 지난 후 국가면제의 적용을 인정했던 브라질(1심) 법원의 판결은 2021년, 2022년 브라질 최고재판소에 의해 취소되었습니다. 1심에서 인정된 독일 측의 국가면제 주장을 배척한 것인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1차 소송에 대해 국가면제를 배척하고 원고들 승소 판결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방법원(2차 소송의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와는 다른 재판부에서 판단하였습니다) 사례를 인용하여 국가면제를 배척한 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폭격으로 침몰한 민간선박에 탔던 피해자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하였습니다. 위 브라질 판결이 선고된 직후, 우크라이나 대법원도 2014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과 전투 중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면제 법리를 배척하여 러시아 정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위 브라질 최고재판소 판결과 우크라이나 대법원의 판결은 다시 2차 소송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가면제를 배척하는 또 하나의 실행사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선고 후,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 18명의 유족은 2024년 4월 21일 위 판결을 참고하여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또다시 영향을 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판결들은 인권 중심의 국제법, 국제인권법이 각국 법원의 판례를 통해 도약하고 진일보하고 있는 상황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6>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고 해서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금 지급은 아직까지 요원하기만 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금전 지급과 상관없이 국가 폭력이나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무력 분쟁 상황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 책임에 면죄부를 줄 수 없고, 뒤로 숨을 수 없다는 것을 천명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통해 새롭게 벽돌을 하나 쌓은 것입니다.   <7> 포르투갈의 마르셀루 대통령은 2024년 4월 24일, ‘1534년부터 1822년까지 브라질에 대해 식민지 자원 약탈, 원주민 학살, 노예 매매 등 식민 지배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지금까지 쌓여온 하나하나의 벽돌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과 같이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간다면, 지금의 한일 관계 뿐 아니라 최근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 가자지구 분쟁에도 변화와 평화의 물결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양성우법부법인 지향이라는 작은 로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민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대리인단, 민변 10.29 이태원참사 대응 TF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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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는 존재들의 지도 -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존재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야스쿠니, 뉴스로만 듣던 그 곳에 가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3월 말, 평화교육에 관심을 가지신 일본 분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 동료와 도쿄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중 하루를 스터티투어로 계획했는데, 오전에는 야스쿠니의 전쟁박물관인 류슈칸(ゆうしゅうかん)을, 오후에는 ‘액티브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박물관(WAM)’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야스쿠니역에 내려 계단을 오르니, 큰 나무들이 좌우로 늘어선 대로가 펼쳐졌다. 멀리 거대한 토리이(鳥居,とりい)*가 보였다. 4월 초의 도쿄는 벚꽃이 한창 피었다 흩어지느라 바쁜 계절이었는데, 신사 앞 마당에도 벚나무가 꽤 많았다. 신사 앞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는 사람들과 벚나무 아래 사진찍느라 바쁜 사람들 사이를 지나 전쟁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대동아공영권의 역사를 전시하던 공간 초입에 적혀있는 문장부터 마음에 얹혔다. 사진없이 기억에 의존한 기록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외국선박들이 계속해서 아시아 지역을 침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본이 떨치고 일어났다’는 설명으로 전시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시아를 위해 일어난 일본의 군대는 서구에 맞서 아시아를 지켰는가? 누가 누구로부터 누구를 지켰다는 말이지? 류슈칸은 로비를 포함하여 딱 두 공간에서만 사진촬영을 허용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옆에 붙어있는 아시아 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 점이 곳곳에 찍혀 있는 지도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의 기지가 있던 지역들을 표시해둔 것이었는데, 아시아 전역에 걸쳐 수 많은 빨간 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나는 그보다 더 많은 빨간 점들이 찍힌 지도를 마주하게 되었다. 액티브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박물관(WAM),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소의 위치를 표시해둔 지도였다.      WAM의 활동가 한 분이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내게 한글로 된 전시자료집을 꺼내주셨다. “내버려진 조선인 위안부"라는 주제로 열렸던 2006년의 전시기록이었다. 전시기록에는 아시아 전 지역에 강제로 배치되었던 수많은 '위안부'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철수하는 일본군들 뒤에 남겨진 존재들, 일본군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미군의 '위안부'가 되기도 했고, 연합군의 포로로 수용되기도 했던 이들의 사진과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기록들 중에 배봉기님의 사진을 보았다.    배봉기,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 1991년 김학순님의 증언 이전에 배봉기님이 계셨다. 1914년 9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배봉기님은 스물아홉살이던 1944년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는 조선인 남성 두 사람의 제안을 따라 길을 나섰다. 사시사철 맛있는 과일이 지천이라던 곳은 일본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의 일본군 위안소였다. 그 곳에서 배봉기님은 아키코라 불리며, 낮에는 일본군의 식사를 해주고, 저녁이면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다. 1972년 오키나와는 미군의 손에서 일본의 손으로 넘어갔고, 1975년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체류와 관련한 법적 지위를 재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배봉기님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로 오키나와에 왔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특별체류의 자격을 얻었다. 임경화(2020)는  그의 논문에서 “이로써 배봉기는 30년 만에 국가에 등록”되었다고 기록한다.** 의자를 가져다 배봉기님의 사진 앞에 앉았다. 배봉기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슬프면서도 그 슬픔을 넘어서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는데, 배봉기님의 삶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따라왔다. 그러다 문득, 뮤리엘 루카이저의 시가 떠올랐다. “What would happen if one woman told the truth about her life? The world would split open.(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세계는 폭발해 버릴 것이다.)”  전쟁의 한가운데 강제로 던져진 존재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폐허에 버려진 존재들. ‘버려짐'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감히 그 ‘버려짐'을 헤아릴 수 있는가? 나에게는 그것을 헤아릴 수 있는 역량도, 자격도 없다. 류슈칸, WAM, 벽에 걸린 같은 지도, 그러나 전혀 다른 지도. 저 지도 위의 점들이 기지가 아니라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한 사람, 한 사람이라면, 저 지도는 금세 빨간 점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저 지도위의 점들이 위안소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라면 저 지도는 온통 새빨간 점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WAM 입구의 한 쪽 벽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분들의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소천하신 분들의 사진 옆에는 작고 하얀 국화가 붙어 있었는데, 안내해주신 분이 점점 더 많은 사진에 국화를 붙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혜령(2023)은 “폐허, 바다의 기억”이라는 논문에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라는 부제를 붙였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실 때마다 아직 살아계신 분들의 숫자를 헤아리는 행위가, 결국 이 생존자들을 숫자적 의미에 가두어두는 한계를 안고 있지 않느냐고. 기실, 센다는 행위로 헤아릴 수 없는 존재들을 셈하려 함으로써 그 생존자의 역사를 협소한 국가의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냐고. 이 사려깊고도 예리한 질문을 마주하며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점으로 뒤덮힌 지도를 떠올렸다.  일본제국은 그래서 결국 무엇을 지켰고 누구를 보호했는가? 연합군은 그래서 누구를 보호했고 무엇을 지켰는가? 애초에 지킬 수 없는 것들을 지키겠다고 떨쳐 일어난 가부장의 허세, 그 허세는 어찌하여 아직도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버려짐에 대해 생각한다. 그 단어가 주는 서글픔에 대해 생각하다, 배봉기님과 수많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국가가, 이 세상이 온통 자신을 버렸어도, 결코 버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전장은 어디인가? 전장은 그 지도위에 있지 않다. 버려졌으나 버려지지 않은 존재들, 그 존재들의 몸이 곧 전장이다.  버림과 버려짐. 버려졌어도 스스로 버리지 않으면 결코 버려진 것이 아니다. 증언을 통해, 또 침묵을 통해, 이 세계를 터뜨려버린 존재들의 뜨거움. 지구위의 생을 벗어두고 떠난 존재들을 기억하며, 나는 침묵 또한 언어임을 스스로에게 환기한다.    No longer speaking Listening with the whole body And with every drop of blood Overtaken by silence But this same silence is become speech With the speed of darkness. <Speed of Darkness>, Muriel Rukeyser - 더이상 말하지 않는다 온 몸으로 들을 뿐 모든 핏방울들과 함께 침묵에 압도된다   하지만 이 동일한 침묵은 곧 ‘말’이 되었다 어둠이 가진 그 속도로    뮤리엘 루카이저, <어둠의 속도> 중에서    *토리이, 불경한 곳과 신성한 곳을 구분짓는 경계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신사 입구에 위치한다.  **임경화, 「마이너리티의 역사기록운동과 오키나와의 일본군 ‘위안부’」, <대동문화연구> 제112호,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2020, 494-495쪽 *** 이혜령. (2023). 폐허, 바다의 기억 -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 대중서사연구, 29(1), 141-175.        / 문아영  2012년 9월, 평화와 교육, 평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피스모모(PEACEMOMO)를 동료들과 함께 창립했다. 사회혁신의 궁극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 그치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본과 소비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나빠지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하는 사람, 실천적 사유에 관심이 많으며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고 북한산이 보이는 집에서 새촘, 우아, 레오, 라라,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산다.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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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제 2의 남성이 아닌 또 다른 신체' 평등한 여성의 몸을 말한다 #2
2021년 10월 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CT를 찍어보니 난소에서 발생한 출혈로 내장과 생식기관 등을 감싸는 복강에 혈액이 차 있었다. 당시 인과성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백신 접종 후 부정 출혈 또는 월경 패턴의 변화를 경험하는 사례들이 온라인에 공유되고 있었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월경이 예정보다 늦어져 백신 부작용을 의심했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출혈이 부작용일 가능성은 작다고 했다. 더불어 월경이 2~3개월 미뤄지는 건 스트레스로도 가능하고 큰 문제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19 백신은 개발이 신속했던 만큼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높았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2021년 2월 26일 접종을 시작하며 백신 이상 반응을 수집했다. 하지만 ‘월경장애’ 선택지는 8개월이 지난 10월이 되어서야 생겨났다. 온라인에서 여성들의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실시한 추적 보고에도 처음에는 월경장애 항목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 일리노이대 의료인류학과 케이트 클랜시 교수가 올린 트윗을 계기로 모인 부정 출혈 및 월경불순 사례만 14만 건에 이르렀다. CDC는 자체 조사에 착수했고, 미국국립보건원(NIH)은 코로나 백신과 월경불순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례가 모였는데, 왜 임상 단계에서는 이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임상 실험 참여자들에게 월경 패턴 변화에 대한 질문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의학계의 오래된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근대 해부학이 출발한 17세기부터 70kg의 성인 백인 남성은 인간의 표준형으로 간주되었다. 생식기관을 제외하고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과 다르지 않게 여겨졌다. 이러한 전제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사례는 아주 많다. 한 예로 1980년대에 이뤄진 한 연구는 아스피린이 심장마비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남성만을 대상으로 했다. 1990년대에 여성에게 같은 연구를 수행하자 심장마비 위험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1992년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의 인가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약물 시험에서 여성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고, 설사 여성이 다수 포함되어 있더라도 결과를 해석할 때 성별에 따른 차이가 고려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1993년 미국에서는 NIH가 지원하는 연구는 임상 연구에 여성과 소수 인종을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굳어진 의학계의 시스템과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1997년에서 2000년까지 FDA에서 판매를 중단시킨 약물 10개 중 8개는 여성에게 더욱 유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네 개는 여성에게 더 자주 처방되어 부작용 사례가 더 많이 보고된 약물이고, 나머지 네 개는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하게 처방되었지만, 여성에게 더욱 해로운 영향을 미친 약물이었다. 후자는 여성과 남성의 생리학적 차이가 원인이 되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2014년에 발표된 노스웨스턴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동물실험의 22%가 성별을 명시하지 않았고, 명시한 실험 중 80%는 수컷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NIH의 법이 통과된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사람이 아닌 동물을 활용하는 전임상 단계부터 설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코로나19 백신 사태를 보면 그리 많이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2022년도 7월 미국 세인트루이스워싱턴대와 일리노이대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여성들이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을 경험했다. 2022년도 8월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코로나19백신안전성위원회는 빈발 월경 및 출혈, 이상자궁출혈 발생 위험이 코로나19 예방접종 이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으며 인과관계가 있음을 수용할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지 약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이뤄진 발표이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가 다르다는 증거는 나날이 쌓이고 있다. 앞으로는 성별에 따른 영향이 충분히 탐구되어 여성이 제 2의 남성이 아닌 또 다른 신체로 여겨지기를 기대한다. 작성자: 노다해복잡계 연구의 대표적인 대중서 <세상 물정의 물리학>을 읽고 통계물리학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위대한 여정은 척척석사로 마무리할 예정이다(23년도 8월 졸업). 복잡계 '연결'망을 연구한 만큼 '연결'하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과학과 대중 사이에,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 사람과 사이에 다리를 놓고 싶다.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관심사는 그 밖의 모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읽고 쓰는 재미에 빠져 책 모임과 글 모임을 오랫동안 꾸려왔다. 출처본 글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ESC에서 운영 중인 과학기술인 커뮤니티 '숲사이(원문링크)'에 등록된 정보입니다.ESC: https://www.esckorea.org/숲사이: https://soopsci.com/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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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어때서!' 평등한 여성의 몸을 말한다 #1
@ British Vogue May 2018 Magazine Models Cover 미국 힙합 가수 잭스의 노래 Victoria’s Secret은 이렇게 시작한다. “God, I wish somebody would've told me when I was younger that all bodies aren't the same”(참, 내가 어릴 때 누가 좀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의 몸이 전부 같진 않다고) 깡마른 모델을 내세우고, 청소년기 여자아이들을 거식증으로 내몬다는 비판을 받아온 패션계에 바디 포지티브(body-positive) 운동이 퍼지고 있다. 한때 전속모델 ‘엔젤’을 내세워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제시하던 빅토리아 시크릿은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에 빅토리아 시크릿은 달라진 소비자 가치를 인정하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모델을 선정했다. 이제 전문 모델 대신 IT기업 투자자, 축구선수, 사진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들이 빅토리아 시크릿의 홍보대사로 활동한다. 외모보다는 여성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브랜드의 가치로 삼겠다는 것이다.유튜버 치도(CHEEDO)는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사이즈를 대표한다. 유튜버 치도는 샌드박스 및 스파오와 협업하여 <사이즈 차별없는 패션쇼>와 ‘사이즈 차별없는 마네킹’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남성 190cm, 여성 184cm에 달하던 마네킹 키는 우리나라 평균 신장을 반영해 172cm, 160cm가 되었다. 국내 브랜드 더잠은 동양인에 맞춘 26가지 사이즈의 속옷을 출시하고, 체형에 따라 속옷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밖에도 컴포트랩, 비브비브, 에어리 등 여러 국내외 브랜드가 다양한 신체 사이즈를 제품에 반영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나는 인생 최저 몸무게인 58kg를 기록한다. 이 몸무게는 굶어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 직후, 한 남자 선생님께서 내 얼굴을 보더니 ‘얼굴이 보름달이 되었네’라고 하셨다. 스스로 통통하다고 생각해 자신감이 없던 나는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식단조절을 했다. 밥을 정말 새 모이만큼 먹었다. 체력 유지를 위해 점심/저녁 시간에 뛰던 줄넘기는 그 수를 배로 늘렸다. 그렇게 58kg가 되었다.이 몸무게는 나의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학업 성적은 떨어지고 기운은 없었다. 극단적인 식생활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이어졌고, 결국 1학년 여름방학에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 과정에서 몸무게는 다시 62kg로 돌아왔다. 그 이후 나는 극단적인 식사량 조절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내 몸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데 필요한 식사량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몸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몇 년 전 여자 아이돌 남자 아이돌 가리지 않고 예뻐서 좋아한다던 동생이 있었다. ‘살을 빼야지’하면서도 운동을 게을리하거나 음식량을 조절하지 못하면 스스로 자책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폭식으로 이어졌다. 선망의 대상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을 미워하던 그 친구에게 나는 별다른 말을 해 줄 수 없었다. 직접 경험하는 것과 다른 이를 설득하는 것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당시에는 바디 포지티브 운동이 활발하지 않았다.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다양한 사이즈와 형태의 신체의 사람들이 자신 있게 살아간다. 이제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도 된다고 좀 더 쉽게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예전에 여성이 운동하면 늘씬한 몸매를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다르다. ‘예쁜 몸’보다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한다. 그리고 근육이 있는 여성을 멋있다고 생각한다.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라는 책 제목을 보시라.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는 <근육 있는 여자들>이라는 주제로 화보를 제작했다. 이제 여성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 @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 근육 있는 여자들  작성자: 노다해복잡계 연구의 대표적인 대중서 <세상 물정의 물리학>을 읽고 통계물리학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위대한 여정은 척척석사로 마무리할 예정이다(23년도 8월 졸업). 복잡계 '연결'망을 연구한 만큼 '연결'하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과학과 대중 사이에,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 사람과 사이에 다리를 놓고 싶다.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관심사는 그 밖의 모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읽고 쓰는 재미에 빠져 책 모임과 글 모임을 오랫동안 꾸려왔다. 출처본 글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ESC에서 운영 중인 과학기술인 커뮤니티 '숲사이(원문링크)'에 등록된 정보입니다.ESC: https://www.esckorea.org/숲사이: https://soopsci.com/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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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No만 정답인가요? - 섹스의 진부화된 의사소통을 페미니즘의 감수성으로 다시 구성하기
으레 페미니즘은 당위적인 성평등으로 쉽게 일컬어진다. 그럴싸하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감수성'은 달라야 한다. 그것은 이 얘기의 첫 문장을 확장하는 데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페미니즘의 감수성은 - 여성이 마땅히 존중받는 조짐이나 분위기를 나타내는 개념이 아니다. 누가 얼마나 페미니즘 학문에 박식한지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말 수가 적고 비교적 덜 마초적인 남성이 페미니즘의 감수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습득한 페미니즘적인 배움은 천대받던 '여성적' 공감과 이해 능력을 재해석하고, 감정의 중요함을 밝혀내는 일이며, 이러한 공감능력을 '페미니즘의 감수성'으로 일컬어 덕목으로 부르기였다. 감정은 의외로 개인적일뿐만 아니라 정치적이다. 전희경, 마사 누스바움, 그리고 한나 아렌트는 감정이 지니는 정치적 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약자가 억압이나 차별에 직면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히려 부당한 상황에서 '감정적'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합리'나 '이성'이 아니라 약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는 무능력일 뿐이다."- 전희경, 『오빠는 필요없다』, 139쪽 "문학(적 상상력에 깃든 공감과 연민 등의 감정)은 삶의 부박함과 인간의 비속함에 맞서 어떻게 생의 감각을 되살릴 수 있는지, 비통하고 억울한 자들에게 어떻게 정의를 되돌려 줄 수 있는지 등을 묻는다. 문학은 본디 시대의 총체에 관여하는 것이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우리는 어떤 변화도 꿈꾸기 어렵다. 문학은 폐허가 된 이 세계에서 인간의 가능성과 의미를 찾아 탐사한다. 눈에 보이는 사실과 현상들 너머엔 복잡하고 신비로운 삶의 진실이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진실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진을 치고서 구체적 삶의 현장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며, 입체적으로 탐색하고, 생명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66-67쪽 "감정의 부재는 합리성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조장하지도 않는다. '참을 수 없는 비극'에 비추어 볼 때 '초연함과 냉정함'이 오히려 '두려운' 것일 수 있는데, 이를테면 그것이 통제의 결과가 아니라 이해력 결핍의 명백한 징후인 경우에 그렇다.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동'해야만 하며, 감정적인 것의 대립물은 어떤 의미에서도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감동에 대한 무감상'으로서 대개 병리적인 감상이거나 아니면 감상으로서, 느낌의 도착이다."-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101쪽 구체적 삶의 현장을 입체적으로 탐색하면, 마침내 단일한 상황에서 인간 감정의 정동이 얼마나 복잡한지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섹스의 조짐을 마주친 여성들은 마음 속으로 각자의 혼돈을 겪는다. 그럼에도 자기와 불화하는 '단순한 (부)동의'를 명확하게 결정할 것을 강요당한다.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예스 means 예스", "노 means 노"라는 명료한 정치적 구호로 가시화될 수 있었지만, 진실은 이 결정권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순탄히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성적자기결정권 담론이 띄워진 이후 많은 여성들이 사뭇 찜찜한 채 명확한 (부)동의 표현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내몰렸다. 정확한 의사표현만이 자신의 주체성과 권리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혼동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함에 "예"를 던져놓고 왠지 불안한 섹스를 한 여성들이 있다. 막연히 급한 것 같은 예감에 "아니오"를 말하고 내심 아쉬워하는 여자들이 있고, 이들은 자기모순에 혼란스러워도 한다. 결정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하기 이전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결정의 지난한 과정이 보호받을 권리였을 것이다. 언제나 변화하는 마음가짐과 속도에 따라서, 결정과정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갈 기회가 여성에게 구조적으로 주어졌어야 했다. 섹스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순간에 사람은 명확하고 단순한 "예"와 "아니오"를 발설하지 못하고 주저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유부단한 마음의 정체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감수성이다. 주저하는 건 한낱 회피일 뿐이고 모든 것에 명확한 답을 내리는 자세만이 정정당당하다는, 기존의 남성적 도덕으로는 페미니즘의 감수성에 접근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예"와 "아니오"라는 최종적인 대답을 듣고 반응하는 것을 상호간 좋은 소통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침묵과 더듬대는 말씨, 떨리는 눈동자와 시선의 외면과 두루뭉술한 문장을 포함한 모든 반응에 상호작용하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의 감수성을 갖춘 더 효과적이고 나은 소통이다. 결정이 내려지기 전 그 불확실하고 지지부진한 과정 속에서, 섹스를 하고 싶으면서 하고 싶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한다. 섹스가 아닌 대안적인 애무로 이 사이를 초대하고 싶은 욕망도 성실히 검토한다. 때로는 마주보는 것만으로 멈추고 싶어하며, 어떤 이는 BDSM적인 사이를 원하지만 스스로 비밀스러워 어떤 대답도 주저한다는 가능성도 훤히 열어젖힌다. 그 은밀한 언어적, 비언어적인 조짐을, 우리는 기다리고 눈치챔으로써 성적으로 자기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더욱 더 밀접해진다. 그리고 다른 어느 관계의 도식이 아닌 우리 서로의 관계에서, 가장 알맞은 속도와 방식으로 상호 동의된 섹스를 향하여 수렴한다. 결국 모든 것은, 남성적으로 부패하여 진부화된 언어와 멀어지는 과정이다. 상대의 진짜 의사를 살피다보면, 상투적이고 강압적이고 무책임한 도덕주의적 언어로부터 멀리 떠나는 우리를 발견한다. 그렇게 우리는 감각을 활짝 열고 페미니즘의 감수성으로 만난다. 차츰 더 정직한 성적 이해를 꿰어나가게 된다. 우리는 섹스를 통해, 섹스를 하지 않을 때에도 관계의 조짐이 달라지는 수많은 경우들을 본다. 이 경험을 비추어 본다면 섹스는 사실상 인간관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인간관계를 위한 실천에 더 좋은 섹스를 위한 방법론이 필요할 것이고, 그것은 진부화된 언어와 멀어지는 것과 상통한다. 예컨대 누군가 남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특정한 비주류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을 해보자. 그를 마주한 상대방으로서 그의 비주류성에 관해 소통할 때에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언어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상대의 궁극적인 진실에 다다르기 위한 비법이 그러하다. 왜냐하면 비주류성을 지닌 자에게 진부한 언어는 익숙한 절망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페미니즘과 퀴어성, 우울을 고루 아는 사람들이라면, “우울”과 “퀴어성”을 호명하는 오염된 언어 때문에 자길 설명할 길을 잃고 고독해진다. 쉽고 진부하고 얄팍해진 언어는 그들 앞에서 힘이 없거니와, 오히려 인간을 고독 속으로 넣는 뜻밖의 힘을 낸다. 이에 그의 단일한 맥락과 외로움에 좀 더 뾰족하게 접근하는 언어를 써야지,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공감이 가능하다. 페미니즘의 감수성은, ‘언어-느낌-인식’으로 이루어진 고루한 패턴을 거스르는 것이다. 자기의 고유한 감정을 설명하지 못해 머리 찧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평범하고 보편적인 언어에 대항하는 이해방식이다. 그렇게 보통의 억압적인 섹스가 아닌 주체적인 섹스를 설계해나갈 수 있다. 그동안 "예"와 "아니오" 또는 어떤 도식화된 말로는 풀어낼 수 없었던 여성의 정동을 페미니즘의 감수성으로 들춰내면 된다. 요지는 상대의 동의와 거부를 최종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과정을 함께 밟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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