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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공유 위축시켜 임신중지 절실한 여성 더욱 취약하게 만들 것
수사 중단하고 보다 빠르고 안전한 임신중지 가능하도록 법과 의료 체계 만들어야
36주 임신중지에 관여한 이들에 대한 무리한 경찰 수사는 어렵게 성취한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일순간에 퇴행시켰다. 이번 수사는 ‘태아보호법을 발의해야 한다’, ‘큰 아기 낙태 근절, 의협이 합니다’라는 퇴행적 논의 혹은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비범죄화된 행위를 다시 범죄화하는 이번 경찰의 수사는 생명과 직결된 정보 공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경찰에 혐의없음으로 해당 수사를 종결시킬 것을, 보건복지부에 임신중지의 상황을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지금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여성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임신중지 체계를 조속히 구축할 것을 촉구한다.
경찰의 이번 수사는 취약 계층이 가까스로 얻은 권리를 행정기관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박탈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진 후 지금까지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을 방치하다 사람들을 자극할 만한 일이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악질적인 지점은 태아를 사람으로 간주하는 법적 조항도 없고, ‘낙태죄’가 폐지되어 임신중지로 처벌할 수도 없으니 보건복지부가 처벌 가능한 사례를 찾고 찾아 임신 34주 여성에게 임신중지 시술을 한 의사가 신생아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2021년 판례를 바탕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것이다. 굳이 살인으로 수사 의뢰를 하고 2차례에 걸쳐 병원을 압수수색하는 과도한 수사는 윤리적인 책임을 묻는 화살이 되어 여성에게로 되돌아간다. 보건복지부의 살인죄 수사 의뢰는 2024년 8월 20일 “큰 아기 낙태 불법 근절”이라는 이름으로 대한의사협회의 의사 직업윤리 및 대국민 신뢰회복을 위한 ‘범죄와의 전쟁’ 첫 과제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결국 보건복지부의 수사 의뢰는 폐지된 ‘낙태죄’를 우회해 임신중지를 규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빌미로 이어진 것이다.
경찰 수사를 동원한 엄포는 임신중지가 절실한 여성들을 더욱 더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인터넷 게시물을 표적삼고 공권력을 동원해 수사를 벌이는 행태는 여성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위축시킨다. ‘낙태죄’는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임신중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낙인이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병원의료 서비스의 품질, 시술 가격에 대한 정보, 후유증과 대처법 등 임신중지를 계획하고 있는 여성들이 정작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기 어렵다. 더군다나 임신 말기에 가까워질수록 여성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도 높아져 더 많은 병원들이 시술을 거부하므로 말기의 경우 참고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는 정확하게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오픈넷은 위의 맥락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명령으로 전체 사이트가 차단된 위민온웹의 행정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에 관한 방대한 정보 제공과 함께 임신중지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전 세계 여성들에게 유산유도제를 배포해온 위민온웹은 보건복지부가 유산유도제의 도입을 미루고 있어 한국에서 유통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불법의약품을 유통하는 사이트로 낙인 찍혔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체 사이트가 차단되었다. 유산유도제는 WHO가 그 안전성을 입증해 수많은 국가에서 필수의약품으로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방심위의 사이트 차단 행정명령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해할 수 없는 법원과 방심위의 판단에 의해 여성들은 성과 재생산 권리에 관한 유용하고 절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출처를 상실했다.
그간 수많은 여성연구자들이 ‘낙태죄’의 폐지와 임신중지 권리의 보장이 여성들의 ‘무분별한’ 임신중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택하는 이유는 태아의 생명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출생 이후 태아와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였기 때문이라는 점 등 임신중지를 둘러싼 우리들의 통념이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우리 사회가 잘못된 통념에 갇혀 과도한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무엇보다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사안에 대한 책임을 명명백백하게 방기함으로써 사회적 혼란과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억지스러운 노력으로 시간을 역행하지 말고 서둘러 여성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24년 8월 22일
사단법인 오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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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3제도의 과도기가 너무 길어지고 있다고 보이네요. 낙태죄는 폐지되었지만 반대 세력의 목소리가 사실상의 억제 장치로 역할을 하면서 문제가 이어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말씀에 동의합니다. 특히 이 문단에 밑줄을 긋고 싶어요.
"경찰 수사를 동원한 엄포는 임신중지가 절실한 여성들을 더욱 더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인터넷 게시물을 표적삼고 공권력을 동원해 수사를 벌이는 행태는 여성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위축시킨다. ‘낙태죄’는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임신중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낙인이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런 일이 있었군요, 시간을 역행한다는 표현이... 딱 맞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