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저격수' 박용진이, 고작 하위 10%?
하위 10%로 평가 받은 박용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 내부 평가에서 하위 10%로 평가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하위 10% 의원의 경우 경선 득표에서 30%를 감산한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박용진 의원의 정치인생이 끝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용진 의원은 패널티를 받아들이고도 탈당하지 않고,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는 “제 정치 평가는 채점표를 가진 몇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당원과 국민들이 평가하는 것.” 이라며 당원들의 평가를 받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채점표를 공개했고, 박용진 의원은 당직을 맡지않고, 포상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점수에서 0점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박용진 의원은 수상경력이 있다며, 채점 기준을 공개하라고 비판했다.
당내 평가는 당원들이 하는 것이다. 박용진 의원도 “당원 분들이 평가해 주시길" 요청하고 있다. 박용진 의원의 평가에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는 건, 평가가 공정했는지 여부와 단순히 이재명 대표와 척을 지었다는 이유로 박하게 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때문에 박용진의 정치 이력이 하위 10%라는 걸 누가 납득하겠냐는 비판과 “이재명 사당화” 라는 비판이 계속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의 의원 평가가 공정했는지, 불공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내의 복잡한 관계를 일일이 풀어가며 평가를 할 수는 없다. 공개된 평가 항목에 대해 박용진 의원이 모자랐다면, 그에 맞는 평가를 받은 것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바라보고 싶다.
정치인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정치 의제도 함께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의 퇴장은 그 의제가 더이상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 때, 혹은 해결되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해당 의원이 그 의제를 갖고, 법안을 발의할 만한 능력이 없다면 퇴장해야 한다. 그런 의제도 없고, 법안 발의도 하지 않는 의원들은 애초 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현재 박용진 의원의 퇴장은 시기 적절한 것일까? 박용진 의원의 의제가 과연 우리나라에 필요 없는 의제가 됐을까? 그의 의제가 우리사회에서 하위 10%에 해당할 의제일까?
재벌 저격수, 박용진
박용진 의원은 현역 국회의원 중 마지막 남은 '재벌 저격수'라고 불린다.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이는 이재용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렸다.
해당 법안이 이재용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이유는, 법안이 통과되게 되면 삼성전자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삼성일가는 삼성전자 지배력과 영향력이 약해진다. 이재용 회장 -> 삼성물산 -> 삼성생명-> 삼성전자로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박용진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주식 평가 기준을 취득 원가가 아닌, 시가(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로 변경하자는 내용이다. 기존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특정 회사의 주식을 3%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주식 가치 산정을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로 평가하고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 취득원가를 시가로 바꾸자는 것이다. 해당 법안으로 영향을 받는 게,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뿐이라 해당 법안이 ‘삼성생명법'으로 불렸다.
삼성생명, 삼성화재의 삼성저자 주식 비율 및 주식 가치 (자체 제작)
삼성생명은 1980년 대에 삼성전자 지분을 약 5,400억 원에 매수하고, 삼성화재는 1979년에 약 770억 원에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득원가 당시로 적용받기 때문에, 당시 삼성전자와 현재 삼성전자 주가가 약 80배 이상 차이가 남에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여전히 0.2%와 0.1%로만 평가받고 있다. 3% 이상이 법에서 규정하기에 지분 매각을 할 필요가 없다.
주식 가치를 시가로 평가받는 걸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게 조금 의아하다. 주식이 시가로 거래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초기 멤버에게 주는 스톡옵션도 아닌데 말이다. 유독 삼성만 특혜를 받는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박용진 의원은 법안 발의 이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약 20조~25조 이상씩 더 보유함으로써 이재용 총수 일가가 고객의 돈을 이용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말도 안 되는 특혜를 받았다. 법을 무시하는 재벌 특혜를 바로잡아야 한다” 라며 “나는 재벌 총수들의 편법·탈법·부당한 기업 지배에 집중해왔었다.” 라고 말했다.
법안이 통과되게 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주식 가치가 14.1%가 되고, 삼성화재는 8.6%가 된다. 특정 회사 주식 3% 이상을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현행법으로 인해 삼성생명은 약 11%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고, 삼성화재는 약 6%의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전자 지배구조도. 기업명 하단 숫자는 기업 시가 총액, %는 보유 주식 비율 (자체 제작)
매각이 이루어지게 되면, 기존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구조도 변하게 된다. 이재용 회장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던 지배구조 순환출자 고리가 끊기게 된다. 지배구조 고리가 끊기게 되면,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경영권과 지배력도 약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보험업법 개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만약 박용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동일한 법안을 밀어 붙일 의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탈당 없이 경선에 참여한다고 밝힌만큼, 경선에서 탈락하면 무소속으로도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해당 법안은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의 경영권 문제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주식 시장에서 언급되어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소액 주주 피해 문제, 환경과 사회 이슈와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의 경영권 상속 문제와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해당 이슈들은 우리나라 주식 시장 가치가 평가 절하된 원인으로 지목받던 이슈다.
보험업법 개정의 핵심은 기업지배구조 개편
박용진 의원이 재벌 저격수라고 불리며, 20대 국회와 21대 국회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을 밀어 붙인 핵심은 ‘기업지배구조 개편'이다. 기업지배구조는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시스템, 이사회의 역할과 기능, 경영자와 주주와의 관계 등을 총칭한다. 다시 말해 경영진, 소액주주, 채권자, 종업원 등 기업 이해관계자들의 역할관계를 총칭하는 말로 기업을 다스리는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주식회사는 주주 의결을 거쳐 이사선임,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 의결권은 보유 주식 수에 비례한다. 1주에 1표를 갖는다. 즉, 주식 수를 많이 가지고 있을 수록 더 많은 의결권을 갖게 된다. 이재용 회장이 0.7%의 주식을 가지고 삼성전자를 실효지배하고, CEO로 선임될 수 있던 것은 지배구조에 있다. 삼성전자의 주주인 삼성물산의 대주주가 되고, 그 삼성물산으로 삼성생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삼성생명으로 삼성전자과 삼성화재에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기업 창업자들은 이 지배력을 공공히 하는 결정들을 했다. 그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사를 쪼개고, 신규 상장하고, 신규 상장사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지배력을 공공히 했다. 그 과정에서 재산뿐만 아니라, 경영권 상속까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건, 소액주주들이다.
기업 쪼개기와 상장, 그로인한 경영일가의 지배력 강화가 우리나라 주식 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해 우리나라 주식 시장은 약 40%로 평가 절하 됐다고 평가 받기도 하며, 전문가들 역시 기업지배구조를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1위로 뽑고 있다. 주주환원 대신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강화에 돈을 쓰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들에게 매력이 떨어지고, 가격도 제 값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장악에는 장점도 있었다. CEO의 경영 평가가 1년에 한 번 씩 이루어지고, 그 경영 평가가 주가 상승으로만 평가된다면 CEO는 어떻게든 단기 주식 가치 상승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재선임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주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면, CEO는 조금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당장에는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결정들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기업지배구조는 최고경영자들로 하여금 주주 눈치를 보는 것을 원척적으로 차단하고, “단기적 성과를 올리지 못할 경우 그 직을 잃는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성과들을 일구어낸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많은 부작용들 가져오긴 했지만, '재벌'이라 불리는 한국 고유의 기업지배구조 체제가 경영자들이 단기성과주의를 극복하고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가능하게 한 부분이 있다”*
견제 없는 기업지배구조, 그대로 둬선 안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인 고려대학교 김우찬 교수는 “모든 기업은 경쟁하고, 견제를 받아야 한다"라며 “"그런데 유독 한국 경영자 시장에서는 창업자의 자손이 아버지, 할아버지가 만든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경쟁 없이 그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재벌 중심 지배구조에서는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2년 5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약 1년 간 대기업 소속 309개 상장회사 이사회 안건 7,837건 중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55건 뿐이다.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의사회에서 No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No를 외칠 줄 모르는 거수기 이사회인 셈이다. 이사회가 주주를 대변하지 하고, 대주주만 대변하는 셈이다.
한국 사회 대기업 총수 일가는 지배권 강화를 위해 주주환원을 줄여 총수 일가 지배권 강화에 쓰고, 주주 가치와 총수 가치가 충동할 때 이사회는 총수 가치에 손을 들어줬다.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약 1,400만 명의 국내 개인 주식 투자자와 약 638만 명의 삼성전자 주식 투자자들이다.
재벌 총수가 최고경영권을 갖고,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안건에서도 가장 많은 의결권을 갖고, 이사회가 그런 총수와 최고경영자의 눈치를 본다면 소액주주 가치는 계속 훼손되고,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환경과 사회 이슈 역시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재벌 총수 일가 중심 기업지배구조가 개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주주도 고려하지 않고, 대주주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상황에선 우리 사회가 직면한 환경, 사회 이슈에 대응할 수 없다.
박용진의 재벌 개혁은 결국, 소액주주, 환경, 사회적 이슈까지 영향을 미친다
ESG(환경・사회・거버넌스)**가 몇 년 전부터 큰 화두다. 몇 년새 언론의 태도는 찬양에서 저주로 바뀐듯 하지만, 그 핵심은 기업이 속한 사회와 환경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면 기업 조차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환경과 사회를 고려한 의사결정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환경과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을 탈피하는 의사결정을 하고, 최고경영자가 환경과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경영 방침을 지속할 때 이사회와 주주들이 이를 견제하는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권한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주주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아니라, 환경과 사회까지 동일 테이블에 놓고 의사결정 하라는 게 ESG의 핵심이다. 기업의 목적함수를 주주에서 환경과 사회로 확장하라는 것이고, 그것을 토대로 변화를 추구하는 추세다.
하지만 “전 세계 선진국들이 주주우선주의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지역사회와 국가, 심지어 병든 지구를 고치는 책임까지 강제적으로 기업에 맡기고, 기업 또한 이를 생존의 이슈로 받아들여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소위 ESG 논의가 한창인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이 모든 것들이 마땅히 환영할 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쓰리고 부럽기만 하다."*
"주주만이 기업의 주인은 아니라는 흐름이 밀려오는데, 한국에선 아직 주주조차 기업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은 커녕 아직도 기업을 제멋대로 쪼개고 붙이며 사익 편취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속수무책인 후진 기업지배구조로 결국 고통을 받는 것은 자본시장에 성실히 참여하는 주주들일 것이다. 이제 이런 피해는 더 이상 생기지 않아야 한다. 주주들이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고 대접받기를 응원한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박용진의 의제는 여전히 필요하다
국내 재벌 개혁 이슈는 곧 기업지배구조 이슈이고, 이는 곧 기업의 소액주주 가치와 환경, 사회 이슈까지 연결된다. 그 점에서 박용진 의원의 재벌 개혁 의제는 여전히 필요하다.
환경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선 기업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업이 자신들의 문제를 더욱 깊이 돌아보고, 기업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에 까지 시선을 돌리게 해야 한다. 만약 기업의 시선이 대주주에게만 향해있다면, 기업의 문제는 대주주가 시선을 둘 때만 고려될 것이다. 그 시선은 결코 주변으로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대주주 스스로 각성해서 돌아보길 바라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이를 위해 한 곳에 쏠린 힘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기업지배구조개편이다.
앞서 정치인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정치 의제도 함께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치인의 퇴장은 그 의제가 해결이 됐거나, 해당 정치인이 그 의제를 다룰 능력이 없을 때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박용진의 의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국내 주식 투자자 수가 건제하고, 기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후위기와 사회이슈가 증가하는 이상 그의 의제는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그 핵심이 기업지배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그처럼 이 의제에 매달린 사람은 없다. 박용진 의원은 해당 의제에 6년을 매달렸다. 아직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평가를 통해 박용진 의원이 하위 10%라고 평가했지만, 그가 2선을 하며 제시한 정치 의제와 경력을 봤을 때 나는 그가 상위 10%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기업지배구조 관련 의제는 계속 주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도 아니고, 박용진 의원 지역구인 강북구 사람도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그의 의제와 법안이 필요하다.
*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이관휘/ 21세기북스/ 2022) p.51, 52, 172, 249, 250
** 언론에서는 ESG를 ‘환경・사회・지배구조’로 해석하지만, 개인적으로 G를 지배구조로만 해석하면 그 의미를 축소시킨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주인이 누구냐로만 해석하기 때문이다. G의 본질은 기업의 주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어떤 의사결정을 하고, 환경(E)와 사회(S)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결정을 바로잡고, 견제할 수 있는 등의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느냐이다. 때문에 그 의미를 포괄할 수 있는 거버넌스 자체로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