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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도전과 데이터 액티비즘
[스터디 노트1] AI 시대의 도전과 데이터 액티비즘
빠띠는 ‘데이터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시민의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공익데이터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 파트너와 이해관계자와 협력하여 만들어가야 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공익을 위한 데이터 활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새로운 인공지능 서비스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시대에 왜 사회문제와 관련된 데이터를 논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이러한 취지에서 빠띠는 ‘인공지능 시대, 데이터 액티비즘과 거버넌스'라는 주제로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스터디는 기술과 사회혁신 두 분야에서 연구 및 국제협력 경력을 보유한 김정원 박사의 발제로 총 4회에 걸쳐 진행되며, 데이터와 시민의 역량, 데이터 액티비즘의 개념, 그리고 데이터의 생산, 관리, 공유를 둘러싼 거버넌스 유형 등 국내외 인공지능과 데이터 관련 주요 이슈를 다룹니다.스터디를 통해 얻은 핵심 내용을 요약해 더 많은 분들과 나눔으로써 공익데이터 활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네 줄 요약 (데이터 액티비즘 이전에 인공지능과 데이터에 대한 이해 쌓기)
AI와 데이터 편향성 문제는 예상보다 사회와 일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회적 문제 해결과 시민 참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AI 개발에는 민주적 요소와 함께 디지털 기술 전문가와 일반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AI 규제와 정책은 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챗GPT, 오늘날 인공지능 발전 흐름의 집약체
2022년 11월 30일, 오픈AI가 챗GPT를 발표한 이후, 유사 모델이 잇따라 개발되면서 AI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고 성능 변화도 뚜렷해짐. AI 기술은 매 3개월 주기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
최근 AI 기술은 대부분 생성 AI 알고리즘의 결과물로 데이터가 많을수록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는 점이 중요함(오늘날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게 된 배경임). 이러한 생성 AI 개발에는 방대한 훈련 데이터와 막대한 컴퓨팅 파워를 요구함.
과거에는 학계가 AI 개발의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민간 기업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 AI 모델의 학습 비용이 계속 증가하면서, 투자 자본이 부족한 기업은 경쟁에서 밀려나고 현재 빅테크 기업이 AI 연구와 개발을 주도함.
그래프 출처: AI Index Report 2024, Stanford Human-centered AI, 2024
데이터와 알고리즘 편향 문제를 파헤치는 콘텐츠 가이드 거대한 해킹(2019):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과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캠페인에서 인공지능과 페이스북 데이터가 활용된 캠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페이스북은 약 8천 7백만 명의 이용자 개인 데이터를 동의없이 선거 캠페인 전략 회사인 캠브리지 애널리티카에 넘겨주고, 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다루고 있음.
소셜딜레마(2020): 실리콘밸리의 유명 소셜미디어 기업에서 일했던 핵심 인력들이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의 위험성과 해악을 고발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음. 광고 수익으로 성장하는 IT 기업이 광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용자의 정보를 어떻게 추출하고, 행동을 유도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알고리즘에 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함.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 전환: 시민의 권리에 대한 시스템 오류, 그 영향
공공 부문에서 AI 활용이 점차 늘고 있음. 왜 그럴까?
보다 정확한 정보와 예측을 제공하여 더 나은 결과를 도출(예: 기후변화 예측, 응급 서비스 수요 예측, 교통량 예측 등)
어려운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 제시(예: 기후테크)
맞춤형 공공 서비스 제공이 가능(예: 맞춤형 복지 및 교육 서비스 연계)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의 자동화를 통한 효율성 개선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공공 서비스를 점차 디지털로 전환하고 있음.
알고리즘이 중립적이고 무결할 것이라는 일반적이 인식이 있으나, 이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게 하는 ‘대학입시’ 관련 사례가 영국에서 일어남.
[케이스 스터디]알고리즘이 대학입시를 결정한다고?! 2020년 코로나19로 영국 대학입시(A-Level)가 취소됨. 대신 모의고사 점수와 내신 성적으로 대학 입시를 대신하기로 결정하는데, 여러 편차를 보정하고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개별 교사의 판단이 아닌 정부 입시 기관의 자동 알고리즘을 활용함.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예측 점수보다 낮은 성적을 받아 합격할 것으로 예상한 대학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음. 결과에 대한 재심 요청 후 분석 결과, 성적이 하향 조정된 대부분의 학생이 빈곤 지역에 위치한 학교에 재학 중이며, 이들 학교의 과거 대학 입시 결과가 낮았던 것으로 드러남. 반면, 부유한 지역 사립학교 재학생의 점수는 4.7% 상승해 공정성 문제가 제기됨. 최근 3년간 시험 결과 데이터를 반영해 만들어진 알고리즘 계산이 불공정 시비를 불러오자 교육부는 최종 시험결과 통보 후 4일 만에 결정을 취소하고, 결국 각 교사가 제출한 예측 결과를 대입 최종 결과로 인정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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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를 초래하는 AI와 저작권, 데이터 편향성
생성형 AI는 차별과 배제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으며, 민감한 정보를 누설하거나 추론할 위험이 있음. 또한, 거짓이나 왜곡된 정보를 생성할 수 있고, 악의적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예: 딥페이크)도 존재함.
생성형 AI 모델의 활용도가 높아짐에 따라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문제, 즉, AI의 결과가 허위일 확률이 존재함(챗GPT-4 3%, 클로드 8.5%, 제미나이 프로 4.8%의 확률이라는 연구 결과, 출처: Economist, 2024년 2월)
일부에서는 데이터셋을 단순한 알고리즘의 원료가 아닌, 특정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그들이 제공한 데이터가 개입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음. 따라서 어떤 데이터를 입력할지, 그리고 누가 이 결정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질문해야 함.
또한, AI 연구자나 개발자의 구성과 이로 인한 편향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며, 몇몇 연구에 따르면, AI 학자 및 연구자들 사이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음.
데이터 자체의 투명성과 사용 과정의 투명성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원래 의도와 달리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대응 방안도 필요함.
AI 발전에서 민주화 논의의 필요성
왜 필요한가?
AI는 부정확하거나 편견과 편향성을 포함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
AI의 의사결정 과정은 블랙박스와 같아, 의사결정의 근거를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음. 이로 인해 문제 발생시, 개발자나 시스템 운영자는 결과의 책임을 알고리즘에 전가할 수 있으며, 실제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
AI 개발자와 연구자는 자신들이 개발한 시스템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우며,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움.
이러한 맥락에서 AI 발전 과정에서 민주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공정하고 투명하며,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 이는 ‘AI 사용', ‘AI 개발', ‘AI 이윤', ‘AI 거버넌스'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음.
출처: Democratisig AI: Multiple Meanings, Goals and Methods, AIES '23: Proceedings of the 2023, Seger, E. et al
AI가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해 창출한 이익의 공정한 분배 문제도 대두되고 있으며, AI의 영향력이 광범위하게 미치는 만큼, 시민 참여와 책임성 확보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음.
AI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기술 업계뿐만 아니라, 시민과 시민사회의 이해가 요구됨. AI 시스템 개발의 각 단계에서 시민사회의 참여와 모니터링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AI 개발 시 이해관계자와 시민 간의 협력, 즉 AI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함.
안전한 AI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미국 공공기관은 AI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으며, AI를 잘못 사용했을 경우의 사례가 보도되면서 AI 기술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음.
2023년 4월에 발표된 EU의 인공지능 법안은 우리나라에서도 주목하고 있음. 이 법안은 AI를 위험도에 따라 4개 카테고리로 나누어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 예를 들어, 가장 위험한 AI는 사용이 금지되고, 고위험 AI는 특정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하는 방식임.
이러한 법안의 제정 차제로도 의미가 있지만, 모호한 표현과 복잡성으로 인해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실질적 운영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됨.
출처: AI법 집행주체는 과기부, 산업진항기관이 윤리감시까지… EU와 한국의 AI 법안 차이점, 힌국일보, 2023년 4월 20일
함께 생각해봐요.
AI의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문제는 무엇이며, 그 문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요?
AI와 데이터의 통제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각국의 AI 규제 움직임은 어떠한가요? 규제 완화가 AI 강국을 만드는 방법일까요?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데이터와 AI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 정리: 박아영 빠띠 협력가(ahyoung@parti.coop)
* 본 내용은 김정원 박사(jungwon@spreadi.org)가 진행한 ‘인공지능 시대, 데이터 액티비즘과 거버넌스' 스터디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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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을 넘어, 한국을 넘어
모델 안전을 넘어선 AI 안전의 필요성
by 🤔어쪈
지난주 저명한 정치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가 쓴 ‘AI 안전성 논의가 아예 잘못되었다(The AI Safety Debate Is All Wrong)’는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올해 초 AI 윤리 북클럽에서 읽은 <권력과 진보> 저자이기도 한 그는 사실 비교적 일찍부터 AI에 관심을 가지며 기술의 경제적 함의를 연구한 바 있는데요. 이번에 쓴 글에서 나타난 그의 입장은 놀라우리만치 AI 윤리 레터에서 지적해 온 내용과 비슷했습니다.
글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현재 AI 안전성 논의는 AGI의 잠재적인 파멸 위협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어 기술 개발 및 사용 주체의 의도나 권력 구조를 간과한 채 AI 모델의 정렬(alignment) 문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음
이는 AI의 불필요한 의인화를 넘어 이미 발생중인 실질적인 위험 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AI 산업에 대한 과장 광고 효과로서 투자와 인재 유치에만 도움이 될 뿐임
AI 안전성 논의는 주요 AI 개발 및 사용 주체이자 권력을 가진 기술 기업과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시민 요구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함
이른바 AGI 논쟁은 AI 윤리 레터의 시작부터 함께해 온 주제입니다. 뉴스레터 초기부터 지금의 기술 기업들의 정반대편에 서있는 팀닛 게브루를 소개하고, AGI가 가리고 있는 현실을 보자고 말해왔죠. AI 하이프 뉴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AI 윤리 논의를 혼탁하게 만드는 과장 광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겉보기에 마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AI가 실제로는 어떻게 학습되고 작동하는지를 다루고, 미래가 아닌 지금 바로 여기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지적했습니다. 최근에는 AGI를 주제로 북클럽도 진행하여 성황리에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대런 애쓰모글루와 AI 윤리 레터가 계속해서 지적해온 AGI 논쟁을 차치하고서라도 저는 여전히 지금의 AI 안전성 논의가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단일 AI 모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AI 안전이라는 주제가 기술적 문제 해결에만 천착하는 문제는 이미 지난 레터를 통해 다룬 바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술적 문제 역시 충분히 다루고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오픈AI, 구글, 앤스로픽, 네이버 등 AI 기업들이 내놓은 AI 안전성 프레임워크는 하나같이 GPT-4o, Gemini 1.5 Pro, Claude 3 Opus 등 그들이 개발한 최신 AI 모델의 위험성 평가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험성 평가란 해킹 문제를 풀 줄 아는지, 생화학 무기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지, 사용자를 속일 수 있는지 등을 의미합니다. AI 정렬 문제란 거창하게는 AI가 인간 사회의 가치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챗봇이 어떤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할 것인지가 핵심입니다. 대런 애쓰모글루가 지적한대로 과도한 의인화로 인해 AI 안전이 너무 축소된 모습이죠.
단일 AI 모델을 대상으로 한 평가는 최신 AI 연구 및 산업 동향과도 동떨어져있습니다.
요즘 AI 업계의 키워드인 AI 에이전트 내지는 에이전트 워크플로우(agentic workflow)는 하나 이상의 AI 모델로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을 전제합니다. 위 도식을 예로 들자면, 실행 (Execution), 맥락 제공 (Context), 작업 생성 (Task Creation), 우선순위 설정 (Prioritization) 등의 모듈 각각에 AI 모델이 위치하여 에이전트로 기능하는 것이죠. 실제로 많은 서비스가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소 복잡한 구조의 ‘시스템’으로서의 AI 서비스를 두고 단일 AI 모델만을 AI 안전 평가 대상으로 삼는 것을 효과적이라고 보긴 어렵죠. 실제로 복수의 AI 모델을 활용하면 개별 AI 모델로는 불가능하던 위험한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많은 종류의 기술들 중 단일 객체로 구성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여러 모듈로 구성된 시스템이죠. AI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일 AI 모델이 부적절한 출력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서 안전하다고 홍보해도, 여러 개의 AI 모델과 다른 기술들을 활용해 만든 복합적인 시스템은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AI 안전성은 모델 안전성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이렇게 모델이 아닌 시스템을 보면서 AI 안전에 대한 시야를 넓히면 시스템이 기술로만 구성되는 것도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요. 다음에는 이처럼 AI 안전을 보다 확장된 시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회기술적 접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AI 윤리가 궁금한 사연
by. 🤖아침
AI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하는 뉴스레터를 1년 남짓 운영하며 줄곧 느끼는 갈증이 있습니다. 내가 사는 한국, 좀 더 넓게는 동아시아 지역에 발을 디딘 비판적/대안적 AI 담론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웬 푸념? 조금 부연해보겠습니다.
AI 기술에 관련된 이야기는 흔히 서구-영어권을 위주로 서술됩니다. 이 세계관의 중심에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술적 혁신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또다른 주연급인 EU는 법규제 등 제도적 장치를 선도하는 역할이고, 중국은 기술개발과 제도 측면에서 모두 발빠르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사실상의 적대 진영으로 자리합니다.
이 세계관에서 한국을 포함한 여타 국가에게 중요하다 여겨지는 것은 위 국제질서 속에서 생존하는 일입니다. 서구 기업과 적극 협력하거나, 아니면 실리콘밸리 자본에 잠식되지 않는 독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 산업을 육성하며 자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규제를 마련하거나, 기본 전제는 비슷합니다. 즉 기술은 서구에서 나와 비서구로 전파되거나, 비서구에서 따라잡아야 하는 무언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관점입니다. 기술은 서구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것도 아닙니다. 각 지역의 기술 개발은 서구 기술의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여러 비판적 연구, 언론 보도, 활동가의 개입 덕분에 우리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저임금 노동이 AI용 데이터를 만들고, 컴퓨팅 인프라를 위한 광물이 세계 각지에서 채굴되는 의존 관계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같은 비판적 담론은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 하나는 AI 기술이 기존 권력 구조를 강화 재생산하는 방식을 보여줌과 함께 남반구 세계(제3세계/다수세계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의 관점을 드러내어, 서구 중심의 AI 세계관에 균열을 내는 것입니다. AI를 둘러싼 개념을 다양한 관점에서 재정립하는 작업(사례1, 사례2), 참여-개입-연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사례1, 사례2), 비-서구에 초점을 맞춘 언론 활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이같은 노력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서구 - 남반구]로 확장된 구도에서도 한국 같은 지역은 다소 모호한, 희미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고 느낍니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AI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기술 비판 담론 역시도 서구-영어권을 주축으로 활발한 조건 속에서, 한국 등지에 주목하는 비판적 AI 논의가 실제로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이곳을 기반으로 힘쓰는 연구자, 기술 종사자, 교육자, 활동가, 창작자, 언론 종사자, 정책전문가 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실제로 이들의 노력 덕에 노동, 교육, 기후 등 AI를 둘러싼 여러 이슈에서 사회적 대화가 풍부해지고 있고요. 그러니까 제가 국내 논의에 아직 과문해서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도 있겠지요. 이 뉴스레터 역시도 서구나 남반구의 관점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를 찾아 배우고 연결하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럼에도 아쉽습니다. AI 관련 논의가 사회적 가치보다 산업 육성, 국제 경쟁, 트렌드 적응 같은 것에 쏠려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건 한국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적 개입은 물론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곳’, 한국 그리고 나아가 동아시아의 이야기가 획기적으로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역적 현실에 충분히 발딛지 못한 기술 비판 담론은, 주류 질서에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에 편취될 위험을 갖는 것 아닐까요? 예컨대 AI 윤리/안전 분야 일각에서 ‘다양성’이라는 키워드가 ‘AI 주권 확보’를 위해 국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동원되거나 ‘리터러시’ 개념이 ‘AI 서비스 사용자 비중’으로 환원되는 양상을 보며, ‘AI 윤리’가 정치안보/경제 논리를 맞닥뜨릴 때 어떤 효력을 가질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다시 말해 앞서의 서구 중심 AI 세계관이나 거기서 뻗어나오는 발전주의 논리가 AI 윤리 논의를 포섭하여 무력화할 위협이 있으며, 이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 중 하나는 지역적 현실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리잡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국경의 테두리 안에서만 진행되는 논의 역시 (그간의 비판적 담론이 보여주듯 현실과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개별적 국가 내부의 사회적 이슈로만 머물러서는 '발전주의'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다른 곳의 사정을 파악하고, 그곳의 비판적 목소리와 이곳의 목소리를 연결하고 확장하는 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역적 맥락을 구체화하고, 특정 국가 이상으로 더 넓은 연대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통해 국가주의/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른 AI 발전론을 견제하는 하나의 축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적 맥락은 앞서 언급한 서구 및 남반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한국과 주변 지역의 위치성과 관계성 측면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독자 피드백 중 종종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이 주변에 잘 없는데 뉴스레터 같은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요지의 의견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감사한 일입니다. 동시에, 이같은 공간이 더 넓고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첫머리에서 동아시아를 호출한 것은 이런 연유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한국과 여러 특성을 공유하는 지역에서 AI 윤리 관련 논의를 확장하고 연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대만 등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공간은 한국과 지정학적 맥락뿐만 아니라 근현대를 거쳐오며 평화, 노동, 환경, 젠더 등 다양한 시민 연대를 실천해온 역사적 맥락 또한 공유합니다. 이같은 조건이 AI 기술에 관한 비판적 논의에서 공통의 지점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즉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목소리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 자체도 더 다듬어야 할테고요. 우선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 AI 윤리와 관련된 주요 이슈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찾아보려 합니다. 거창한 취지와 별개로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고요. (일본이나 대만 등지에서는 한국의 이루다 이슈 같은 것이 없었을까요?) 이 주제에 관해 조언이나 팁이 있으신 분, 같이 디깅하고 싶으신 분은 연락 주세요.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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