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뉴스에 붙이는 각주
by 🍊산디
진실을 알고, 알리기 위해서는 섬세한 애정이 필요합니다. 복잡한 것을 나의 편의대로 납작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섬세함이라는 미덕과 애정이라는 동력이 필요하죠.
지난 12일부터 13일까지, AI 거버넌스의 프런티어 이슈를 주제로 <서울 AI정책 컨퍼런스 2024>가 개최되었습니다. 컨퍼런스는 이틀간 표준화부터 저작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AI와 관련하여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들을 다루었습니다. AI가 화두가 되기 전부터 꾸준히 인터넷 정책 분야에서 연구를 계속해온 유수의 연구자들이 모였습니다. 그 중 제가 소개하려는 파트는 개인정보보호 정책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개인정보보호 세션은 대니얼 솔로브(Daniel Solove)라는 조지 워싱턴 대학 법학교수의 기조연설로 시작했습니다. 솔로브 교수는 정보 기술과 프라이버시의 관계를 꾸준히 다루어 온 세계적인 석학입니다. 발표 내용과 청충과의 호흡 모두 훌륭해서 몰입할 수밖에 없는 훌륭한 기조연설이었습니다.
제가 구글에 검색했을 때, 두 개 언론사가 솔로브 교수의 발표를 내용으로 보도했습니다.
- 아시아경제, "AI 기술 발전할수록 유연한 법체계가 개인정보 보호에 바람직"
- 아주경제, “'석학' 솔로브 교수 "포괄적 법체계가 AI 시대 개인정보 보호에 적합"
위 보도들은 자칫 솔로브 교수가 오늘날의 기술 환경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이 실질적 효력을 갖기 어려우며, 법이 더욱 유연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읽힙니다. 이러한 요약은 그의 주장을 충분히 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 레터에서는 저 나름의 섬세한 애정과 함께 컨퍼런스에서 솔로브 교수의 발표 내용을 나눠보려 합니다.
그는 현재 이용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사막에서 갈급해하는 와중에 물을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는 개인정보를 내놓으라고 한다면, 누구나 기꺼이 개인정보를 내어줄 것입니다. 이용자들은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에 동의하는 데 대한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이용자들은 수 많은 기업과의 ‘계약’을 통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관리해야합니다. 더군다나 개인정보보호약관은 나날이 길어지고 있죠. 정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 개인정보 관리란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여기에 당신의 권리가 있고, 당신이 스스로 당신의 권리를 지키세요”라는 현재의 개인정보보호 체계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다고 솔로브 교수는 주장합니다. 정보주체 개개인의 ‘동의’에 기반한 현재의 모델은 환상이라는 것이죠.
그는 개인정보보호가 사회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에게 통제권을 준다는 환상을 강화하기보다는, 법이 사회적 요구로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기업의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을 규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개인정보의 수집과 관리를 개인의 동의 여부, 개인-기업 간 계약관계로 축소하는 대신 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개인정보보호 원칙을 분명히 하는 작업을 뜻합니다.
맞습니다. 솔로브 교수의 주장은 앞선 두 보도들이 언급한 것처럼, ‘엄격하고’, ‘구체적인’ 법을 마련하는 것과 다릅니다. 하지만 기업의 처지와 기술의 특성을 십분 고려하여 법 체계가 유연해져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패널 토론에서 솔로브 교수는, 기술이 변하고 있으니 법도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하지만, 법은 원칙이지 기술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실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이 기술은 전에 없던 신기술이라 기존 법리가 적용될 수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의 논거들이라는 거죠. 솔로브 교수는 이윤은 자신들의 것이고, 모든 위험은 이용자 개인이 부담하기로 동의했다는 기업의 주장에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법의 역할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개인정보보호법이 무엇을 보호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개인정보보호는 왜 중요하며, 무엇을 지키고자 할까요. 집단으로서, 사회로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러한 물음이 납작해지지 않기 위한 섬세한 애정이 더 많아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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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저는 읽으면서 '왜 저 기사들은 맥락을 전달하지 못했을까'를 고민했는데요. 기자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 원인으로 읽혔습니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말을 옮겨 쓰는 것'에는 전문성이 생겼지만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선 전문성이 없으니 말을 번역하고 옮기는 일만 하다가 생긴 오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말을 옮겨 쓰는 것'에도 전문성이 없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네요.) 기자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순 없지만 적어도 맥락을 이해하고, 혹은 맥락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문화가 한국 언론계에 자리잡으면 좋겠습니다. 무작정 현장에서 나온 말을 부정확한 맥락으로, 빠르게만 전달하는 기사는 독자가 원하는 기사가 아니니까요.
"정보주체 개개인의 ‘동의’에 기반한 현재의 모델은 환상이라는 것이죠. 그는 개인정보보호가 사회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에게 통제권을 준다는 환상을 강화하기보다는, 법이 사회적 요구로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기업의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을 규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개인정보의 수집과 관리를 개인의 동의 여부, 개인-기업 간 계약관계로 축소하는 대신 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개인정보보호 원칙을 분명히 하는 작업을 뜻합니다."
이 문단이 정말 멋지고 와닿네요. 언론의 보도는 정말 방향을 잘못 잡았군요. 멋진 각주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내용이 쉽고도 너무 좋아요. 수없이 많은 회원 가입과 데이터 이용에 대해 개인정보를 넘겨주게 되는데 도무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용자들은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에 동의하는 데 대한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합니다>라는 말이 너무 공감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