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모두의 권리
"우리 나이 들면 같은 실버타운에 들어가자.” 제가 친한 친구들과 주고받던 농담입니다. 우리 부모님도 “늙으면 요양원에 보내라.”라고 하십니다. 나이가 들면, 혼자서 살아가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거나,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은 사람들은 내가 살아온 곳을 벗어나 요양원 같은 곳을 선택하죠. 왜, 우리는 나이가 들면 요양원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선택하게 될까요.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것들, 이를테면 건축물이나 돌봄 서비스, 일자리 정책 같은 것들이 노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에서 논의 되고 있는 ‘노인권리협약’ 초안은 제19조에서 ‘주거지, 또는 공동체에서 나이 들 권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국가인권위원회, 2022. 11. 24.).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나이 들어가는 것을 노인의 권리로 천명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를 명문화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인 것입니다.  노인이 되어도 내가 살던 집에서, 내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내가 필요한 돌봄과 기타 서비스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나와 친구들은, 그리고 부모님은 요양원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한 선택을 진정한 ‘선택’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장애인 거주시설, 차별과 인권침해 그 자체 1980년대 소위 부랑인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시설은 아직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시설에는 6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는 매번 우리를 충격에 빠트립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일부 시설의 문제라고 해도, 시설은 장애를 이유로 사람을 특정한 장소로 분리합니다. 장애를 이유로 하는 분리, 배제, 거부는 명백한 차별입니다. 또한 시설에서의 통제와 관리를 위한 규칙들이 거주인들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시설 수용 방식 자체는 인권 침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탈시설,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장애인이 시설을 선택할 수도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시설에 사는 것도 장애인의 선택’이라며 탈시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습니다. 35.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탈시설 과정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과 정보를 접근가능한 형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37. 일부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살 수 없고 시설에 남아야 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차별이다. 의사결정에 대한 권리를 부정당해온 이들은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통합을 시작하더라도 초반에는 이러한 생활환경이 편안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시설은 그들이 아는 유일한 생활환경일 수 있다.... 장애인의 “취약점” 또는 “약함”이 탈시설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긴급상황을 포함한 탈시설 가이드라인’, 2022). 그러니까, 어떤 장애인에게는 지역사회 자립에 대한 정보가 접근 가능 한 형태로 제공되지 않았거나, 시설이 그들이 아는 생활 환경의 전부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시설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그것이 시설을 선택한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많은 사람들이 ‘늙으면 요양원이나 들어가야지’하고 이야기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탈시설 정책, 시설이 필요 없는 사회 만드는 것 우리나라도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회피하듯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설을 선택할 장애인을 위해 시설을 남겨두기도 하며, 탈시설을 희망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천명하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에 충분히 맞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에 발의되어있는 ‘탈시설 지원법’도 제자리 걸음입니다. (이미지:  장혜영 의원실 “탈시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4월 임시국회 탈시설 입법 촉구 기자회견(2022. 04. 07.))  “탈시설은 시설을 없애는 정책이 아니라, 시설이 필요없는 사회를 만드는 정책입니다(장혜영 의원실, 2022. 04. 07.).” 2022년 탈시설지원법 통과를 촉구하는 자리에 참여했던, 장애인당사자의 가족이자 정의당 국회의원인 장혜영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애나 연령, 질병 등을 이유로 분리되지 않고,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탈시설의 핵심입니다. 탈시설에 대한 의미없는 찬반 논쟁을 멈추고 즉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온전히 이행하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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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만난 콘텐츠 속 장애인, 어떤 모습인가요?
2022년 12월, 2023년 3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더글로리가 공개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은 가해자들에게 성인이 되어 복수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스토리, 배우, 연기, 대사, 메시지 등 드라마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현실을 반영했다고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끔찍한 학교 폭력을 당합니다. 주인공은 가해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인생을 바칩니다. 주인공의 복수는 성공적입니다. 폭력과 마약, 살인 등 수도 없는 악행을 저지른 가해자들은 결국 벌을 받게 됩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들이 겪게 된 악행의 끝은 통쾌했습니다. 나쁜 짓을 끊임없이 저지르던 그들은 죽고, 버려지고, 감옥에 갑니다. 그런데 그 중 한 가해자는 장애를 갖게 됩니다. 학교폭력을 비롯해 수많은 나쁜 일을 저질렀던 인물이, 그에 대한 벌로 언어 장애를 갖습니다. 장애가 악행에 대한 처벌의 개념으로 활용 된 것입니다. 만약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장애가 지독한 악행에 대한 처벌로 활용되고 있는, 인기 많은 드라마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하다가 마음이 아찔해졌습니다.  권선징악의 스토리에서 ‘징’의 소재로 장애를 선택한 설정에 대해서는 신중했어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작은 설정들은 장애에 대한 뿌리 깊은 부정적인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며, 그 부정적인 인식을 더욱 견고히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잘못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장애를 갖게 된 것이 아닙니다. 장애라는 것은 벌도, 불운한 일도, 불쌍한 일도 아닙니다. 그저 다양성 중의 하나이며, 누군가에게는 정체성입니다.   특출난 재주, 사랑스러운 외모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 조장 2022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장애인과 장애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조명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많은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은 일상을 보내는데 어려움을 겪고있다”며, “특출난 재주가 있는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장애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어 불편하다”는 당사자와 당사자 가족의 우려도 있었습니다(여성신문, 2022.7.23).    장애에 대한 혐오, 잠재적 범죄자라는 편견 조장 (이미지: "나를 살해하려는 거 같아서" 지적장애 11살 아들에 흉기(2022.06.17/뉴스데스크/MBC)) 언론에서 장애를 다루는 방법도 문제가 많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일부 정보만을 전달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합니다. 특히 정신장애인 범죄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는 보도들이 많습니다. 언론은 범죄 사건의 가해자가 조현병 등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거리낌 없이 보도합니다. 마치 조현병이 높은 확률로 범죄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현병의 유병률이 약 1% 것에 비해, 전체 범죄자 중 정신장애 범죄자의 비율은 0.3%에 불과하다는 것이 팩트입니다(김혜선, 박도원, 홍영은.(2018).정신장애 범죄에 대한 언론보도 경향과 범죄위험성 인식.장애의 재해석, p210.). 장애극복, 동정, 시혜적 프레임 조장 (이미지: 유튜브 JTBC ‘차이나는 클라스’ 화면 갈무리)  ‘장애 극복’ 프레임도 매체에서 흔히 다뤄지는 이야기입니다. 시각장애 당사자이자 인권변호사인 김예원 변호사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나와, 한 방송사에서 “시각장애를 극복한 인권변호사 김예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시각장애를 극복한 적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사회적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네가 극복해’라고 하는 것은 폭력일 수 있어요. 왜냐, 장애는 그냥 나와 같이 가는 것이지, 개인이 노력해서 극복해야 하는 범주가 아니에요. 이 사회가 할 일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가 불편하지 않게 사회를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에요.”라며 언론이 갖고 있는 장애극복 프레임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었습니다. 저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참 좋아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장애인들이 나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드라마 속의 영희와 별이는 무언가에 천재적이지도, 범죄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지도, 장애를 극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을을 구성하는,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장애가 있는 배우들이 드라마에 참여했다는 것도 큰 의미로 다가왔고요. 여러분의 기억에 남는 미디어 속 장애인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그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내가 갖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모습과 같은 모습이었나요, 다른 모습이었나요?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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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을 기다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지난 한 해 동안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장애인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저를 소개하고 나면 어김없이 ‘지하철 시위’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어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투쟁이 필요합니다. 제가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투쟁하는 활동가분들을 보면 뭔지 모를 부채감을 느낍니다. 전장연의 활동도 그래서 늘 지지합니다. 특히 ‘지하철 시위’를 이어나감으로써 많은 시민과 정치인이 장애인 정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이준석 국회의원과의 공개토론, 오세훈 서울 시장과의 공개 면담 등이 실시간으로 매체를 타고 확산되었습니다. 장애인 정책이 이토록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었을까요. 반대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특히 시민사회 영역이라 하면, 시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지금의 시위 방식은 시민을 적으로 돌리는 방식이라는 의견에 공감이 됐습니다. 출퇴근 시간의 열차 지연으로 시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생계유지를 위해 이용하는 열차의 지연으로 발생하는 피해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그렇게 ‘지하철 시위’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갈 때,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어요. 전장연 활동가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데, 왜 지하철이 지연되는 것일까? 평소 출퇴근 시간이면 수십, 수백 명의 비장애시민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립니다. 약간의 열차 지연은 발생하지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죠. 겨우 열댓명의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데, 왜 이토록 많은 지연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수십 명의 비장애인과, 열댓명의 장애인, 두 집단의 속도의 차가 상당히 큰 모양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지하철은 철저하게 수십 명의 비장애인만을 고려하여 승하차 시간을 정했습니다. 지하철 정차 후, 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너무 빠른 시간인 것이죠. 이토록 ‘비장애인 중심적’인 설계는 장애인을 지하철에서 몰아냈습니다. 승하차 시간뿐만이 아닙니다. 개찰구 카드를 대는 위치, 개찰구 개방 시간, 승강장과 열차간의 거리, 고장 난 전광판과 음성 안내 방송까지. 지하철에 들어서기 전부터 끝까지 ‘비장애인 중심적’이지 않은 공간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려하면 그토록 많은 지연과 불편이 발생하는 것이죠. 지하철 뿐 아니라 이 사회는 ‘비장애인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은 그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일자리를 갖지 못하며, 사회에 드러나지 못한 채 살아왔을 겁니다. 지하철은 실재적이면서 상징적인 공간인거죠. 전장연의 시위가 ‘이동권 시위’로 알려져 있지만 장애인의 모든 권리 보장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동권을 비롯해, 탈시설, 교육권, 노동권 등의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이야기하는 장애인의 권리 증진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장애인 관련 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GDP 대비 장애인정책 예산은 OECD 국가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늘 ‘예산이 없는데 어떡하냐’고 하지만, 예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장애인,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을 확대할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외치는데, 대한민국은 높은 사람만 더 높이 가려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언제까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문명적’인 방식으로만 대화할 수 있을까요? ???? '비장애 중심적'인 지하철에서 비장애인인 저는, 빠르고 편리한 지하철을 그저 잘 누려왔습니다. 차별적인 사회에서 장애인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동안, 이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묵인했습니다. 비장애 중심사회가 견고해지는데 일조 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비롯한 비장애시민들이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시간을 마땅히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내가 누려온 속도와 편의가 장애시민이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다는 점을 깨닫고 나니, ‘지하철 시위’에 대한 저의 생각이 명징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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