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불평등을 싫어합니다. 모두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지난 한 해 동안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장애인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저를 소개하고 나면 어김없이 ‘지하철 시위’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어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투쟁이 필요합니다. 제가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투쟁하는 활동가분들을 보면 뭔지 모를 부채감을 느낍니다. 전장연의 활동도 그래서 늘 지지합니다. 특히 ‘지하철 시위’를 이어나감으로써 많은 시민과 정치인이 장애인 정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이준석 국회의원과의 공개토론, 오세훈 서울 시장과의 공개 면담 등이 실시간으로 매체를 타고 확산되었습니다. 장애인 정책이 이토록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었을까요.
반대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특히 시민사회 영역이라 하면, 시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지금의 시위 방식은 시민을 적으로 돌리는 방식이라는 의견에 공감이 됐습니다. 출퇴근 시간의 열차 지연으로 시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생계유지를 위해 이용하는 열차의 지연으로 발생하는 피해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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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하철 시위’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갈 때,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어요. 전장연 활동가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데, 왜 지하철이 지연되는 것일까? 평소 출퇴근 시간이면 수십, 수백 명의 비장애시민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립니다. 약간의 열차 지연은 발생하지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죠. 겨우 열댓명의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데, 왜 이토록 많은 지연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수십 명의 비장애인과, 열댓명의 장애인, 두 집단의 속도의 차가 상당히 큰 모양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지하철은 철저하게 수십 명의 비장애인만을 고려하여 승하차 시간을 정했습니다. 지하철 정차 후, 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너무 빠른 시간인 것이죠. 이토록 ‘비장애인 중심적’인 설계는 장애인을 지하철에서 몰아냈습니다. 승하차 시간뿐만이 아닙니다. 개찰구 카드를 대는 위치, 개찰구 개방 시간, 승강장과 열차간의 거리, 고장 난 전광판과 음성 안내 방송까지. 지하철에 들어서기 전부터 끝까지 ‘비장애인 중심적’이지 않은 공간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려하면 그토록 많은 지연과 불편이 발생하는 것이죠. 지하철 뿐 아니라 이 사회는 ‘비장애인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은 그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일자리를 갖지 못하며, 사회에 드러나지 못한 채 살아왔을 겁니다. 지하철은 실재적이면서 상징적인 공간인거죠.
전장연의 시위가 ‘이동권 시위’로 알려져 있지만 장애인의 모든 권리 보장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동권을 비롯해, 탈시설, 교육권, 노동권 등의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이야기하는 장애인의 권리 증진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장애인 관련 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GDP 대비 장애인정책 예산은 OECD 국가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늘 ‘예산이 없는데 어떡하냐’고 하지만, 예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장애인,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을 확대할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외치는데, 대한민국은 높은 사람만 더 높이 가려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언제까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문명적’인 방식으로만 대화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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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 중심적'인 지하철에서 비장애인인 저는, 빠르고 편리한 지하철을 그저 잘 누려왔습니다. 차별적인 사회에서 장애인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동안, 이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묵인했습니다. 비장애 중심사회가 견고해지는데 일조 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비롯한 비장애시민들이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시간을 마땅히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내가 누려온 속도와 편의가 장애시민이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다는 점을 깨닫고 나니, ‘지하철 시위’에 대한 저의 생각이 명징하게 정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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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소영 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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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소영 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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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0공감되는 글이네요..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밑에 분 말씀처럼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행위를 운동의 방식인 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진정으로 다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속도로 흘러가야 할까요?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단순 대중교통을 '타고 내리는 것' 자체가 시위의 방식이라는 점을 지적해주셔서 그동안 대중교통이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적'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만들어져 왔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실 출퇴근 시간만 되면 매일 붐비고 숨이 막히는 지하철, 절대로 안전하지 않은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생각한다면...그동안 장애인이 얼마나 이동 자체에서 자유롭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죠...
성찰 또 성찰의 글에, 공감 또 공감, 반성 또 반성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빠르다는 것이 고속성장 시기에는 굉장한 장점이었는데, 이제는 또 관점을 가져야하지 않나 싶네요. 지하철이 살인적으로 붐비지 않고 출근시간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고 해도 지하철 시위가 이렇게 비난을 받았을까요?
마지막 문단, 특히 "그동안 내가 누려온 속도와 편의가 장애시민이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다는 점"이라는 부분을 읽고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문장을 품에 지니고 살겠습니다....
글을 읽어보니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는 이 사회가 "비장애인 중심적"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실재적이면서 상징적인 공간"으로서의 '지하철'을 명징하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열차가 지연되서 지각을 했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30분 일찍 나오면 지각은 커녕 일찍 도착해서 차분하게 해야할 일을 준비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요. 그러면 1분이 귀한 아침 시간에 뭐 30분? 이라며 반문을 받겠지요. 그런데 그 분들은 인식하고 있을까요? 같은 거리를 당신이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장애인들이 걸리는 시간의 차이를요. 단지 30분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리고 장애인들에게 편리해지면 우리의 일상도 훨씬 더 편리해질텐데요. 젊은 저도 종종, 다쳤거나 아플 때,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하거나 아이와 함께 가야하는 이유로, 일시적 장애 경험을 하기 때문이죠.
필자의 글을 읽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다시 한번 찾아봤다. 협약은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장애인의 인권선언으로 모든 장애인의 권리를 존중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비준 되었다고 하지만 정부는 장애인 정책 및 복지 등등..과연 장애인의 권리를 존중을 해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