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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없었다”는 국가애도기간, 우리는 어떤 일주일을 보냈는가
대통령이 10.29 참사에 대해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습니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역 근방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의 희생자에게 조의를 표하고 참사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부 입장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국가애도기간은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되었습니다. 국가애도기간 중 서울 시내 곳곳에는 합동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공공기관에서는 시급하지 않은 행사를 연기하도록 했습니다.(정책브리핑, 22.10.30.)
국가애도기간이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사망하거나 재난 재해로 많은 사람이 숨졌을 때 시 국가적으로 추모 기간을 갖도록 하는 전 세계적인 관습입니다. 얼마 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후 영국 정부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지난 9월 베네수엘라의 이례적인 폭우로 인한 피해에 대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역시 국가애도기간을 공표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국가애도기간과 관련된 법적 토대가 마련되어있지 않지만,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희생자의 장례 기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했던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10.29 참사에 두 번째로 선포된 것입니다.(시사뉴스, 22.11.07.)
거대한 참사에 있어서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 책임을 다한다는 뜻을 비판할 이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낸 국가애도기간을 돌아본다면 그리 달갑게 여기기는 어렵습니다.
참사 직후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대규모 인파를 통솔할 경찰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정부 브리핑을 통해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다”,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며 비판에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간의 용산경찰서 소속과 외부 지원을 모두 포함한 경찰 인력 차이와 정복 경찰, 폴리스라인 등 효율적인 질서유지 요소를 미루어 봤을 때 올해 경찰 통솔이 미흡했던 점이 드러났습니다.(팩트체크넷, 22.11.08.) 또 지난 1일 경찰청이 공개한 112 신고 내용에 따르면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경찰의 통솔을 요청하는 시민들의 신고가 총 11건 접수되었습니다. 최초 신고부터 직접적으로 ‘압사’ 위험이 언급되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불편신고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했습니다.(BBC, 22.11.02.)
10.29 참사에 대한 정부의 과실은 부실한 사전 예방 조치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참사 당시 현장에는 용산경찰서장, 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 등 일선 지휘를 맡아야 했던 경찰지도부 전체가 공백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사전 보고가 되었음에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경찰지도부는 인명 구조는커녕 현장 지휘와 수사, 교통 통제마저도 늦추는 상황을 낳았습니다.(경향신문, 22.11.04.) 행정부 역시 참사 당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당일 관련 보고를 받음에도 관련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경우 당시 국외 장기 순방을 떠나있었습니다. 참사 현장에 어느 행정부도 나서지 않은 상황을 두고 박희영 구청장은 1일 ‘이태원 사고’ 관련 입장 발표에서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수사기관의 수사가 계속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책임 소재가 밝혀질 것”이라며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시사앤뉴스, 22.11.02.)
한편 경찰청 ‘정책 참고 자료’도 논란을 빚었습니다. 참사 이틀 뒤인 31일 경찰청에서 제작한 자료의 첫 번째 주제는 ‘정부 부담 요인’으로,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 장례비, 치료비 관련 갈등 관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보상 문제는 외부인 참여가 늘어날수록 협의가 어려워지니 초기에 가족 대표를 정하고 의견을 단일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더하여 다른 주제로는 ‘주요 단체 등 반발 분위기’가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 당시 일부 진보 성향 단체들이 정권 퇴진 운동으로 끌고 간 사례를 언급하며, ‘제2의 세월호 참사’로 정부를 압박하지 못하도록 유족 측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SBS, 22.11.01.)
이렇듯 우리가 보낸 국가애도기간은 누구도 10.29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은 일주일이었습니다. 아무도 참사 원인과 향후 대책, 추후 개선 방안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모두가 책임으로부터 앞다퉈 발을 빼려 했습니다. 더하여 희생자와 유족이 마주해야 하는 황망함을 단순히 ‘보상’으로 여기며 그들의 존엄을 해치고, 참사에 대해 애도하고 연대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모독하기도 했습니다. 국가애도기간의 의미와는 달리 우리는 “국가는 없었다”는 말이 여느 때보다 널리 퍼지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10.29 참사 직후 모두가 정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세월호 가족협의회와 4.16재단, 4.16연대가 공동 서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다중이 참여하는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고, 미리 경고하고, 대비하고, 사고 발생 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은 우선적으로 도시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이들에게 있”다며 참사 속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참사 수습에 더하여 희생자와 유족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세월호 참사 당시 이런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참사의 수습과 피해자들의 치유에 크나큰 장애가 초래”했다고 꼬집었습니다.(416재단, 22.10.30.)
삼풍 백화점 참사 유족들도,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도, 그리고 세월호 참사 유족들도 모두 오랜 시간 하나같이 말합니다.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고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참사들을 누군가 책임을 지고 제대로 진상을 조사한다면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요.(닷페이스, 21.04.13.)
앞선 참사 유족들,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들의 오랜 바람을 하루빨리 이루기 위해서는 애도와 위로뿐만 아니라 신속한 수습과 안정적인 지원,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 변화가 필요합니다. 진정으로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한다면 이번 10.29 참사에 대한 국가애도기간 역시 이러한 작업을 서둘러 시작해야 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말로만 하는 약속이나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려는 시도가 아니라, 다음을 만들지 않을 그런 노력과 책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