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동안 번듯하게 굴러가던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이 갑작스레 폐지 논란에 오르내리는 광경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안건을 이른바 ‘치트키’로 활용한 정권이 무언들 새롭겠냐마는, 이번 상황은 유독 필자의 지난 기억을 더듬게 했다.
버터나이프크루 4기 출범식이 있던 지난 6월 30일, 같은 건물에서 여성가족부가 개최한 ‘청년과 함께 하는 타운홀 미팅’이 진행되었다. 전국에서 모인 2030 청년 23명과 여성가족부 장관이 마주 앉아 젠더 문제에 대해 소통하는 자리였다. 젠더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다양한 경험을 두 시간가량 듣고 난 후 여성가족부 장관은 마무리 발언으로 “그래도 여가부는 폐지한다”고 못 박아 말했다. 그의 발언은 자리를 정리하는 형식적인 절차조차도 아닌, 이미 정해진 답으로 그간의 논의를 모조리 뒤엎어버리는 방점과 같았다.
책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에서는 '시민 참여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줄곧 비판받는 지점은 “변화를 이끌 힘이 없는 엉터리 참여는 최악의 모독”이라는 점이라고 한다. 위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답을 내리는 방식의 사업은 너무나도 쉽게 시민의 참여를 선별하고 약화시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관리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성평등이 중요하다고 털어놓은 청년들에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단언하는 행위나 여성가족부 장관의 지지를 받으며 출범식을 마친 사업이 단숨에 고꾸라지는 상황 역시 이와 같다. 그동안의 과정을 모두 무시한 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주무르는 ‘엉터리 참여’는 기존 사업 성격에 반할뿐더러, 시민에게는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경험을 심어 준다.
그렇다면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이 그간의 궤적과 최소한의 절차를 전부 뛰어넘어 재빠르게 폐지 수순을 밟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현 여당 원내대표의 주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가 지적한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의 문제점 중 하나는 ‘특정 이념을 국가가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특정 이념이란 그가 선행해서 문제시한 ‘페미니즘’을 뜻하며, 이는 “관제”로 포함되지 않는 개개인의 사상이고 “증폭하는 남녀갈등의 원인”이기에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의 잠정적 중단이 결정된 후 열린 참여자 간담회에서 역시 “‘일반 청년’들이 참여하지 않았기에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여성, 청소년, 청년, 다문화가정과 같은 주류 사회에 속하지 않는 소수자가 사회의 문턱 안으로 들어가 동등한 시민의 선상에 서기 위해서는 그들을 대변할 기구와 집단이 필요하다. 여성가족부의 설립 목적 역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소수자가 자신의 권리를 직접 다루는 것이 기존의 관제와 일반적인 범위에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다면 버터나이프크루 사업과 같은 시민 참여 정책은 애당초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폐지에 대한 논리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은 긴긴 인류의 역사와 시민의 투쟁이 자연스레 설명한다.
여느 때와 같이 내용과 방법은 상호적으로 호응한다. 성평등과 페미니즘을 시민의 뜻 혹은 발전된 민주주의로 여기지 않고, 개인의 몫으로 축소하거나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떠넘기는 논리는 일방적인 사업 폐지 방식을 마땅한 처사로 만든다.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폐지의 근거와 과정은 그들이 짜놓은 틀에 맞지 않은 것은 언제든 내칠 수 있다는 기득권의 위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앞서 말했듯이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의 폐지 과정은 본 건에만 해당하는 사안이 아니다. 이는 여성가족부를 포함한 지금의 정권에서 성평등과 페미니즘 의제가 언제든 혹은 어떻게든 배제될 수 있다는 상황을 뜻한다. 따라서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되돌리는 움직임은 그들에 대응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여기 ‘버터나이프크루 정상화 공동대책위원회’가 발 빠르게 움직여 사업 정상화와 성평등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들이 서명에 참여하여 어딘가 든든하다. 그러니 어디 한 번 시민의 목소리에 더 넓은 파장을 일으켜보자.
코멘트
4이야기를 끝까지 다 나눈 다음에 '그래도 폐지한다'고 했다는 말이 좀 충격이네요. 그렇다면 왜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을까요. 변화를 기대하며 이야기에 참여하고, 나의 생각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허탈감은 얼마나 컸을까요...
'시민 참여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줄곧 비판받는 지점은 “변화를 이끌 힘이 없는 엉터리 참여는 최악의 모독”이라는 점'이라는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 점에서 솔직한 정권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점점 시민이 이야기 할 수 있는 행정 상의 공간을 없애고 있으니까요.
이는 여성가족부를 포함한 지금의 정권에서 성평등과 페미니즘 의제가 언제든 혹은 어떻게든 배제될 수 있다는 상황을 뜻한다. 따라서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되돌리는 움직임은 그들에 대응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이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말씀대로라면 현재의 ‘시민참여'는 ‘엉터리 참여’가 되어가는 상황이로군요. 소수자들의 권리가 투쟁을 통해 시민의 권리로 인정 받아온 역사는 무시되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시민과 ‘특정 이념’(페미니즘 등..)으로 갈라치기 당하고 있는 거구요. 공감이 갑니다. 마음이 답답해지네요.ㅠㅠ